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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2 (세상을 향한 날개짓)

초록물고기 |2007.12.07 23:04
조회 320 |추천 0
 

다음날 멧돼지와 노루, 살쾡이를 비롯해 옥수수종자처럼 줄줄이 꿰인 퀑 무더기까지 풍성한 포획 감을 싫은 김두령 무리가 산채에 입성했다. 마을사람들이 언덕아래까지 내려와 반갑게 그들을 맞아 조촐하게 입성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밤이슬을 맞으며 공동 곡간을 채울 겨울 양식들을 사냥해 온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들을 모아 작은 술판이 벌어졌다.   

산 아래의 흉흉한 인심과는 달리 쌍두골은 하나의 공동체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마을이 그렇게 소리 없는 질서로 운영되고 있는 밑바닥에는 그들을 이끌고 있는 두령의 의지가 깊게 내제된 탓이었다. 쉬 들어나지 않으나 곧은 의지로 마을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는 그에게 누구도 다른 뜻을 보이지 않았다. 

피폐하고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마을을 찾아들었던 난민들이 그런 그의 기운에 조금씩 마음을 놓고 안정을 찾아 하나의 무리 속으로 융화되어 갔다. 온통 찢기고 피멍이 든 사람들의 가슴을 품어 안 듯 산을 뒤덮은 붉은 단풍이 가야산의 절경을 더 한층 돋우고 있었다.

마을을 안위와 또 다른 이유로 두령은 젊은 청년들에게 비밀리에 무예를 훈련시키고 있었다. 쉬 볼 수 없는 그의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에 호기심으로 고개를 넘으려든 이들이 산의 혼령을 보았느니 날개를 단 인간을 보았느니 하며 수많은 소문들을 낳고 있었다.


왜란 중 남해바다를 지키고 있던 장수를 친례하고 돌아가던 훈은 민심을 돌아보기 위해 도포차림으로 야행을 나섰다. 선조의 끝없는 권력에 대한 집착과 뜻을 세우지 못한 군왕의 미약한 의지에 훈의 가슴 또한 민심만큼이나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자신들을 유린하고 짓밟은 왜구보다 더 치명적인 상실감과 배신감을 안겨준 군왕에게 이미 민심이 떠난 지 오래였다. 믿고 따를 어버이를 잃은 민심의 분괴는 곳곳에 도적과 산적을 출몰케 했고 그나마 황폐화된 터전을 지키고 있던 이들마저 타지로 내몰아 갔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그 모든 것들을 보고 들은 훈의 가슴이 더 깊은 자책감과 무력감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호위하던 병사들을 물리고 주막에 앉은 그가 익숙지 않은 탁한 술을 연거푸 마셔대며 암담한 국운을 연민하고 있었다. 마주앉은 시종이 난감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만하시지요. 이리 탁한 술을 드시면 몸이 상하십니다. 천민들이나 마시는 것입니다.”

 

시종의 말에 옆자리에서 홀로 술을 하던 젊은 사내가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쓴 소리를 흘려냈다.

 

“천한 것들이나 마시는 천한 술은 몸을 상하게 하지요. 허면 귀한 분들이 마시는 달고 부드러운 술은 무엇을 상하게 해 그 생각들이 그리 썩어 문드러진답니까. 비단 도포를 휘날리고 다니며 염통까지 썩어빠진 그네들은 도대체 어떤 술을 마신답니까?”  

 

사내의 말에 시종이 놀라 눈을 치켜뜨며 그를 노려보며 무슨 말을 하려하자 훈이 먼저 눈짓으로 시중을 재지하며 사내를 돌아보았다.

 

“아마도 그들이 마시는 술에는 정신을 마비시키는 독이 들었지 쉽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 나라가 이리 되었겠느냐!”

 

사내가 또 한잔을 비우며 훈의 말을 받았다.

 

“그 독이 제 몫을 못하는 듯 쉽습니다. 마비된 정신으로 온통 썩은 내를 풍기고 있는 역병같은 자들을 거두어 가지 못하고 저리 3악의 대죄를 짓게 하고 있으니...”

 

시종이 더 듣지 못하고 사내를 꾸짖고 나섰다.

 

“어디서 함부로 미천한 입을 놀리느냐. 행색을 보아하니 떠돌며 사냥이나 하는 자 같은데...”

 

훈이 시종을 물리며 그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내 술 한잔 받겠느냐?”

“어찌 천한 것에서 손수 술을 따르려 하십니까?”

“저 사람 말은 개의치 마라. 그저 주인을 잘 모시려는 본분에서 나온 것이니.”

“주인을 잘 모시는 것이 하인 된 자의 도리겠지요. 그렇다면 제가 한 가지 묻지요.”

“물어보아라.”

 

훈은 갓 아래로 내려뜬 사내의 깊은 시선을 응시했다. 애써 자신의 눈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 광채가 짙은 어둠의 명암을 밀어내기에 충분했다.

 

“이 나라는 누구의 것입니까?”

 

훈이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지 못하고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그 물음에 뜨거운 숨을 삼켰다.

 

“이 나라는...... ”

 

시종이 훈의 곤욕스러운 표정을 읽어 또 다시 사내를 질책하며 거친 말을 내놓았다.

 

“니 놈이 참으로 허무맹랑하구나. 지금 감히 뉘 앞이라 그런 해괴한 언변으로 사람을 농락하려 드느냐. 그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 관에 끌려가 몰매를 맞아야 네 천한 본분을 알겠구나.”

“귀한 댁 도련님이라 하시니 더 궁금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귀한 몸이니 그런 태생의 시야에는 이 나라가 누구의 것으로 보이는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지 진실로 그 답을 듣고 싶습니다.”

 

시종이 눈을 치켜뜨며 사내에게 다가섰다. 금방이라도 그 따귀를 올려붙일 태세였다.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사내의 시선을 곧게 받은 훈이 여전히 사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시종을 주막 밖으로 내몰았다. 

 

“물러서라. 나가 있으라. 말이 끝날 때까지 주막으로 들어오지 마라.”

“도...련님!”

“나가 있으라.”

 

사내가 한 치 흔들림 없이 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훈이 남은 술잔을 비우며 따끔거리는 가슴으로 입을 열었다.

 

“이 나라는.... 이 땅에서 숨 쉬고 하늘을 떠받들어 사는 이들의 것이다.”

“이 땅에서 숨 쉬는 이들 속에는 천하디 천해 감히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는 이들도 있지요. 그들도........ 이 땅의 주인이라 하겠는지요.”

 

사내와 훈의 뜨거운 시선이 서로의 가슴을 정통으로 투과해 보이지 않는 통증을 읽어내고 있었다.

 

“네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겠구나.”

“저를 알아 달라 드린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이 나라는 주인을 잃었습니다. 어리석은 군주가 하늘과 땅이 자신의 것인 냥 녹슨 칼을 국민에게 휘둘러 그들의 뼈와 살을 으스러뜨리고 있습니다. 그 칼은 이 나라를 침범한 왜적에게 겨누어졌어야 합니다. 허나 뜻을 잃은 군왕은 자신의 용렬함을 질책하기 보다는 그 앞에 우뚝 선 뛰어난 장수를 시기하고 질타하기 급급했고 피를 토하며 쓸어져 가는 국민의 토혈을 외면했습니다. 녹슨 칼을 휘둘러 국민을 사지 속에 몰아넣고 있는 군왕과 한 잎 가랑잎 보다 천한 생명들.... 그 어느 쪽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미 그 모두를 잃은 것을...”

“한낮 사냥을 일삼는 무지한 백성의 심중이 아니구나.”

“아니지요. 이 처참한 현실은 갓 밥술을 떠 넣는 세 살배기 어린것들조차 아는 것이지요. 다만 방향을 잃은 칼끝이 두려워 소리 내어 뱉어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요.”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한스럽겠구나.”

“옳은 군주를 세우지 못한 한 잎 가랑잎의 서글픈 울음소립니다.”

“그 울음소리는 고요하나 커다란 음성으로 내 심장을 파고드는구나.”

“이 미천한 가랑잎들의 고요한 외침을 경청해, 숲의 울림을 들어낼 수 있는 어버이를 원합니다.”

“내어 놓는 말끝이 서슬 퍼런 칼끝보다 더 날카롭고 날이 서 있구나. 누구냐? 너는 누구더냐?”

“그저 천한 잎새에 불과한 생명이라 이름 또한 의미를 잃은 지 오랩니다.”

 

훈은 문득 그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입으로 내놓고 있는 말이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곡예인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들어야 할 사람을 찾아 풀어내는 듯 흔들림이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을 알아 그 뜻을 전하려 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는 나를 알고 있다. 그렇지 않느냐?”

 

사내가 훈의 술잔을 채운 후 갓을 들어 그 시선을 마주했다.

 

“이 외침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해맨 것뿐입니다. 선비님께서 천한 외침을 들어주신 것을 보니 제가 사람을 제대로 찾아낸 듯 합니다.”       

“혹여..... 내가 훗날 너를 보려면 어찌해야 하겠느냐?”

“다시 보아야 되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고리를 만들지 않아도 그 인연이 이어지겠지요.”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사내에게 훈이 다급히 자신을 말했다. 막연하게 그가 자신을 찾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사내에게 더 묻지 않았다.

 

“우리에게 남은 인연이 있다면 오늘 이 밤을 그 인연의 초심으로 삼을 것이다. 혹여 훗날 어떤 자리 어떤 신분으로라도 다시 보게 된다면 오늘의 나를 되새겨 다오. 오늘 너를 만난 나는 훈이라 한다. 나를 보게 되거든 그 이름을 말해라. 그럼 강산이 변한 다음이라 해도 내 너를 기억해 낼 것이다.”

 

그 밤 훈의 가슴에 뜨거운 바람이 일었다. 그저 천한 백성이라 자신을 일컬은 한 사내의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은 날카로운 외침에 그 가슴이 고요한 바다를 삼키며 치솟는 태양의 꿈틀거림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국운을 쇄하고 있는 나라의 근본을 기필코 자신의 손으로 돼 세워 그들의 고요한 외침을 품어 안는 어버이가 되리라 온몸의 뼈와 살 속에 세기고 있었다.


2. 세상을 향한 날갯짓


선조의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과 아들들에 대한 남다른 경계로 광해와 임해는 늘 햇볕이 가려진 그늘에서 몸을 낮추며 그 존재의 안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속에도 그 제목의 탁월함은 덮어 가릴 수 없는 것이라 왜란의 폭풍 속에서 광해의 뛰어난 왕재가 만천하에 들어나 건저(왕위를 둘러싼 파동)를 잠재우고 있었다. 또한 선조의 견제마저도 민심과 조정 내부의 움직임으로 조심스럽게 피해갔다.  

왜란 중 세자로써 초라한 출발을 시작한 광해에게 선조는 인사권과 상벌 권을 내린다는 교지를 내렸다. 이로써 광해의 눈부신 분조가 시작되면서 그 민심이 더욱 광해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지방을 돌며 왜란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시작했고 의병을 일으키게 해 쇠퇴의 기로에 선 국운을 돌리려 충심을 다했다.

왜란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립의 충주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을 잃은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떠났다. 그로 인해 흥분한 군중들이 궁궐을 불태우고 조선은 이미 사라진 나라라며 살기에 찬 적의를 들어내고 있었다.

그때 지방을 돌던 광해에게 위해를 입히려던 군중을 한 사내가 막아냈다. 광해에게 날아들던 화살을 사내가 몸으로 막아내 그 목숨을 구해냈다. 깊게 관통한 화살촉이 팔을 뚫고 나갔음에도 사내는 얼굴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광해를 맞아 허리를 조아려 군왕을 맞는 예를 갖추었다. 광해가 놀라 말에서 뛰어내리며 그를 부축하려 했다.

 

“일어나라. 상처가 심한 듯 하다.”

“아닙니다. 크지 않은 상처입니다. 마마께서 이리 와 주신 것만으로 이곳의 모든 군중들이 다시 나라를 찾은 듯 찢기고 배어진 가슴의 상처들을 위로받고 있습니다.”

“아니다. 화살이 관통한 것 같으니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될 일이다. 어서 의원에게 보여야 한다.”

사내가 고개를 들어 광해를 마주했다. 순간 뜨겁고 강한 기운이 광해에게 전해져 그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이름이 무엇이냐?”

“무영이라....흐흡......”

 

무영이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현기증으로 몸을 휘청이며 쓰러졌다. 그때 다급히 무영에게 뛰어들어 떨리는 손으로 상처를 살피던 한 여인이 섬광처럼 광해의 눈 속으로 들어왔다. 무영의 도포를 찢어내고 관통한 화살을 살피던 여인이 화살촉의 변색을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었다.

 

“독화살을 맞았습니다. 어서 의원을 불러주세요.”

 

여인이 다급히 소매 섶에서 무명천을 꺼내 무영의 상처를 싸매고 그 몸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무영이 통증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여인에게 말을 내었다.

 

“괜찮다. 놀랄 것 없다.”

 

광해가 자신의 도포자락을 잘라 삿갓 속에 얼굴을 묻은 여인에게 건네며 염려스런 말을 내었다. 

 

“그냥 두거라. 사람을 보냈으니 금방 의원이 올 것이다.”

 

얼굴이 하얗게 상기된 여인이 차갑게 광해를 쏟아보며 날카로운 말을 토해냈다.

 

“독화살을 맞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일각이 위험한 상태입니다. 한가롭게 의원을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여인의 무뢰하고 당돌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곁을 지키고 있던 신하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있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리 방자한 언사를 늘어놓는 것이냐.”

 

무영이 여인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고갯짓을 했다. 두 사람만의 언어를 눈으로 전하고 있는 그 광경이 일순간 광해에게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주위의 모든 것들을 그림자로 밀어내고 오직 서로만을 품어않는 그들의 교류에 광해의 심장마저 뜨거워지고 있었다.

 

“몰랐다. 그래. 각별한 사람인 듯하니 네 뜻대로 해 보거라. 어찌하면 되겠느냐?”

"이 사람을 저기 가까운 주막으로 부축해 주십시오. 그리고 의원에게 독화살을 맞았다 전해주시고 처방할 약을 가져오라 일러주십시오.”

 

호위병들이 무영을 주막으로 옮기자 여인이 쓰고 있던 갓을 풀어내고 뜨거운 물로 입을 헹구어냈다. 거칠게 그을려 고운 빛을 가지지는 못했으나 한눈에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여인의 풋내가 흐르고 있었다. 서둘러 갓을 벗어낸 여인이 무영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광해의 심장이 자신도 모르게 뜨겁게 달아올랐다. 분명 독을 맞았다 말했었다. 그런데도 한 점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입을 가져가 그것을 빨아내고 있었다.

정신을 잃어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는 무영의 맥을 짚어 보던 여인이 염려스러운 얼굴로 따라들어 온 광해에게 싸늘한 말을 흘려냈다.

 

“나가 주십시오. 독이 퍼져 혈을 집어야 합니다. 집중이 필요한 일입니다.”

 

여인이 서둘러 무영의 도포고름을 풀어내며 광해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또 한 번 말을 재촉했다.

 

“어떠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냐?”

“나가 주십시오.”

 

몸에 퍼진 독으로 온몸이 불덩이처럼 끓어오르던 무영이 새벽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물 한 모금조차 재대로 마시지 못하고 마른 숨을 삼키며 무영을 지키던 운이 눈을 떤 그에게 곱지 않은 말을 던졌다.

 

“오라버니를 방패로 쓰려 했나요?”

“다급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맹수들의 공격으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늘 다행스러운 산천보다 사람의 숲이 더 위험함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놀란 가슴이 얼굴에 번져 하얗게 변해 있는 운의 낯빛에 무영은 안쓰러운 듯 그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구나. 많이 놀랐구나.”   

“제게 무모한 위험에 빠지지 말라 해놓고..... 어찌 제 앞에서....”

 

운이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자 무영은 못내 안쓰러워 그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래. 다시는 그리 하지 않을 것이다. 약속하마.”

 

무영과 함께 산을 내려온 운은 몇 달이 지나도록 재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산야의 기운과 다른 곳이라 그런 탓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다 내보이지 않는 무영의 일들이 날이 갈수록 두려움을 키우고 있었다. 몇 해 전 두령과 무영의 대화를 우연찮게 엿듣게 되어 그가 산야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갈 사람이 아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 때가 되면 떠날 사람이라 여기며 자신의 감정을 오직 오누이의 정으로만 눌러 담아 힘겹게 그를 보고 있었다. 그런 찰나에 무영이 자신의 몸을 던지면서까지 광해를 구해내 그 모든 것들이 운의 가슴에 천근같은 무게를 지우고 있었다.


지방 순시를 마친 광해가 보름 후 다시 그곳을 찾았다. 무영이 아직 불편함이 남은 팔로 검을 휘두르고 있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광해를 보고 놀라 허리를 조아렸다.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팔은 좀 어떠냐?”

“심려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시간이 가면 흔적만 남을 미천한 흠집일 뿐이옵니다.”

“검을 휘두르는 모양세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구나. 허기야, 내게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내 몸놀림을 짐작하게 하는 일이다만.”

 

툇마루에 앉아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던 광해가 불현듯 그 차갑던 여인을 떠올려 무영에게 물었다. 순시를 도는 매순간 이상스럽게도 자꾸 그 얼굴이 떠올라 광해 자신도 의아해 하고 있었다. 

 

“각별한 인연인 듯 보이더구나.”

 

갑작스러운 광해의 말에 무영은 잠시 어리둥절하다 이내 뜻을 알아차려 빙긋이 웃었다.

 

“운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운이라......... 그 아이의 이름이더냐?”

“그날 무뢰를 용서하십시오. 아직 철이 없어....”

“아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앞에 내가 무에 그리 중하겠느냐. 나로 인해 네가 다친 것이니 미운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광해가 시원한 웃음을 보이며 농을 내놓자 무영의 얼굴이 더 붉어져 난색을 했다.

 

“무예는 어디서 배웠느냐?”

“산채에서 자랐사옵니다. 그곳에 무예를 하시는 분이 계셨사옵니다.”

“그 아이는...”

광해가 말끝을 흐리자 무영의 가슴에 묘한 긴장감이 일었다. 

“제게는 혈육과도 같은 아이옵니다. 전쟁 중에 버려져 산채에서 함께 자랐사옵니다. 충격이 컸던지 무엇 하나 기억하는 것이 없어 스승님께서 구름처럼 자유로이 살라 운을 지어주셨사옵니다.”

“그랬구나.... 구름처럼 자유로이 흘러 살라 지은 이름이구나. 그 아이와 잘 어울리는 듯싶구나.”

“앞으로 내가 어찌 될지 장담하지는 못한다. 허나 너를 곁에 두고 싶구나. 몸을 세우기 힘든 풍파속이 될지도 모를 길이나 함께 해주겠다면 내 호위를 맞기고 싶구나.”

 

광해의 말에 무영은 얼른 대답을 잇지 못하고 그 눈을 응시했다.

 

“어찌 저 같은 미천한 것을 호위무사로 쓰려 하시옵니까? 아직 다듬어지지도 않은 실력이옵니다.”

“겸손함이 지나치다. 나 또한 깊은 신력은 아니나 검을 쓴다. 내 무예가 눈에 익은 것은 아니나 분명코 어떠한 경지에 이르러 있음은 눈으로도 알 일이다. 다른 것이 걸리는 것이라도 있느냐?”

“아니옵니다. 그런 것은 아니오라...”

 

광해는 이미 그를 자기 사람으로 낙점하고 있었다. 화살을 맞고도 정중한 예로 자신을 대하던 그 곧은 품성에 단번에 난세를 같이할 사람임을 읽어냈다.

 

“뛰어난 무사는 얼마든지 있다. 네 말대로 신력이 미흡하다 하면 무예는 익혀 다듬으며 되는 것이다. 허나 천성은 다듬어 빚어지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네게서 하나의 곧은 마음을 보았다. 그것을 취해가지고 싶구나.”

“........제게 말미를 좀.....”

“혹여 누이 때문이라면 걱정마라. 함께 데려가도 무방하다. 크지는 않으나 너희가 기거할 곳을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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