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베.뜨거운 물.미역의 삼박자
옛날 여자들이 출산을 할 때 치성을 드린 후 산실에 짚을 깔고 산모는 검은 치마를 입고 출산을 준비한다.
산파가 흰 천과, 뜨거운 물, 그리고 미역국을 준비해달라고 한다
왜 하필이면 이 세 가지인지 궁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출산의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일까? 이번 기회에 이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흰 천은 무명베로 문고리나 기둥에 매달아 잡아당김으로써 출산의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마땅히 줄을 맬 때가 없으면 무명베를 필로 끓어 밖에까지 길게 늘어뜨린 다음
출산 경험이 있고 힘 센 여자의 허리에 묶어 산모가 힘줄 때 같이 잡아당기도록 했다.
이것은 출산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나중에 이 천은 아기 기저귀귀로도 사용하고, 생리대로도 잘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이 천을 잡아당겨 아들을 낳았다면 비싼 돈에 다른 산모에게 팔기도 했다.
아기가 나오면 준비한 뜨거운 물로 온몸에 양수나 오물이 묻은 아기를 소독시킨다.
그리고 나서 산모가 정신이 들면 미역국을 먹이는데 이것은 단단한 것을 먹이면
산모의 치아가 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산 후 상한 피, 죽은 피 모두 쏟아 내고 남은 피를 정화시켜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산풍속
옛날의 부인네들은 해산을 하다가 사망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
의술이 발달한 요즘에는 아기 낳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거의 없지만,
당시에는 심한 하혈이나 아기가 거꾸로 들어서는 경우 등 위기 상황에
특별한 처치법이 없었기 때문에 쉬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과거의 산모들은 산실로 들어가기 전에 신을 벗어놓으며
'내가 살아서 다시 저 신을 신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벗어놓은 신발을 다시 뒤돌아보곤 했다고 전한다.
'해산 계집 놔두고 처녀 구하러 다닌다', '애 낳다 죽는 일은 사주에도 없다'라는 속언이 있을
정도로 해산시 산모의 사망률이 높아서 순산을 비는 풍속도 일반화되었다.
*물레방아

물레방아는 '물레'와 '방아'의 합성어이다.
이 물레는 한자로는 수차(水車)라고 하는데,
물레를 이용하여 방아를 찧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방아가 뜻하는 것은 곡식 따위를 절구에 넣고 찧거나
빻는 기구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렇다고 보면 방아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맞먹는
아주 오래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벼나 보리 따위의 곡식을 빻거나 찧는 물레방아의 힘은 민간신앙으로까지 그대로 전달된다.
물레방앗간에서 신방을 차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신을 믿고 신방을 물레방앗간에 차리던 풍습이나,
방앗간에서 출산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진통하는 산모를 물레방앗간으로 업고 가기도 했던 것은 물레방아가 지닌 영험을 믿었기 때문이다.
방앗공이를 남근으로 여겨 아들을 낳고자 했던 예전 여인네들의 간절한 바램을 반영한 풍습중의 하나이다.
*부적과 말고삐/궁중
산기가 있으면 그 달의 길한 방향에 짚과 양털 담요 및 기름 먹인 두꺼운 종이, 백마 가죽 등을 겹겹이 깔아서 아이 낳을 자리를 마련했다.
방의 사방에는 순산을 비는 부적을 붙이고, 백마 가죽 밑에는 득남을 비는 뜻에서 다람쥐 가죽과 마로 꼰 실을 넣고 말고삐를 벽에 걸었다.
말고삐를 걸어둔 까닭은 말고삐가 남아의 상징이기 때문이며, 해산할 때 산모가 이 고삐를 잡고 힘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말 가죽
임산부의 출산에 붉은 말가죽을 덮어 주면 순산한다고 했다.
*날달걀과 메밀수제비
경북 안동 지방에서는 산고 트는 산모에게 날 달걀을 깨어서 먹였는데, 닭이 알을 낳듯이 쉽게 아기를 낳으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삼신빌기
신분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일반화된 풍속도 있었다. '삼신빌기'가 대표적인데, 산고가 진행중이거나 출산 직후에 삼신상을 차려 순산을 비는 풍속이다.
삼신은 태신을 가리키는데, 태신은 순산과 아기의 건강을 관장하는 신(神)이다.
삼신상에는 쌀밥 세 그릇, 씻은 미역이나 미역국 세 그릇을 차려서 공양하는데, 상은 주로 산실이나 산실 옆방, 산실 문 밖 마루에 차려졌다.
순산을 빌 때는 손을 마주 비비면서 고개를 숙여 기원을 표현했다.

*미역국 먹기
출산을 한 뒤에는 당시에 보기 힘들던 기름기 흐르는 백미와 미역으로 첫 국밥을 지어 산모에게 먹이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미역은 '대각'이라고 하는 기다란 상품(上品)을 사용했는데, 운반하기가 힘들어도 중간이 꺾이지 않도록 했다.
미역을 꺾으면 산모와 아기의 수명이 꺾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첫 국밥은 삼신할미에게 삼신빌기를 한 다음 산모에게 먹였다.
그리고 이것은 하루에 4회나 6회 정도를 삼칠일 동안 먹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해산식은 누구와 나누어 먹는 것을 금하였는데, 그 이유는 '복을 나누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기의 밥줄(?) 끊는 법
아기가 세상구경을 할 때 같이 구경나오는 것은 아기의 밥줄이었던 탯줄이다.
탯줄은 청결하고, 조심스럽게 잘라야 아기가 별 탈이 없다. 우선 탯줄은 위로 치켜들고 아기쪽으로 한두 번 훑는다.
그리고 나서 명주실로 탯줄의 중간 부분 두 곳을 묶어 자른다. 이 때 탯줄은 이빨로 잘라야 했다.
왜냐면 옛날엔 칼을 마땅히 소독할 데도 없었고, 소독을 한다해도 칼 자체에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기 쪽으로 잘린 탯줄은 아기 배 위에 올려놓으면 저절로 말라 떨어진다.
산모 쪽으로 잘린 탯줄은 산모의 몸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마무리한다.
탯줄은 3일 후에 태워 버리거나 태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기도 하는데 방법은 집집마다 차이를 보인다.

▶산모를 위한 기념일 3 X 7 = 21
아기를 출산하면 삼치일, 즉 21일 동안은 산모와 아기가 모두 조심해야 한다.
이 시기를 잘 넘겨야 출산 때 흐트러진 산모의 뼈마디가 제자리를 잡고 임신 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 때 아기는 배꼽이 아물어 여러 병균으로부터 무사할 만큼 신체기능이 향상된다.
삼칠일은 일주일은 기본으로 하는 7일, 3은 천(天),지(地),인(人)의 삼신을 뜻한다.
여기서 3은 삼신의 의미 외에, 3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조상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삼칠일은 겨울이 지나고 대지에서 새 생명이 움트는 봄과 같이 산모의 몸과 마음이 새롭게 태어나는 시기. 산모와 아기에게 매우 중요한 기간이 아닐 수 없다.
금줄을 삼칠일 동안 매달아 놓는 이유도 같은 이치다.
의학적으로도 출산 후 삼칠일에는 자궁내막이 재생되고 오로가 분비되는 등 산모의 몸이 회복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무사히 보내야 예전처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삼칠일은 출산에 있어서 중요한 기간이 아닐 수 없다.
삼칠일을 매우 중하게 여겨 축하 의식을 벌이기도 했다.
먼저 삼칠일이 되면 아침 일찍 삼신상을 차려서 아기와 산모의 건강을 지켜준 것을 감사하고, 금줄을 걷어서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했다.
또 수수떡과 속이 빈 송편(망두)을 만들어 문 앞에 놓아두고 길가는 사람에게 나누어주면서 기쁨을 함께했다.
집안의 어른들은 삼칠일이 지나야 비로소 아기를 친척들에게 보여주었고,
산모 역시 삼칠일이 지나야 하루 6회 먹던 산식을 3~4회로 줄여서 먹었으며, 이때부터 가벼운 집안일을 거들게 했다.
▶부정아 썩 물러가라
금줄은 외부 사람들에게 출산 소식을 알려 아이와 산모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대문 기둥 위에 쳤다.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잡귀.귀신.부정은 물론, 필요 없는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신호와 같았다.
왜냐면 잡된것,부정한 것, 잡귀.잡신 등이 모두 대문을 통하여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식구가 아닌 사람은 금줄이 쳐진 집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금줄은 면역력이 없는 아기를 보호하는 매우 과학적인 풍습이다.
금줄에 매다는 물건은 태어난 아기의 성별에 따라 달랐다. 아들이 태어나면 새끼줄에 고추, 숯 등을 달고 딸의 경우에는 숯, 솔잎, 종이를 달았다.
이것은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해하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금줄에 걸린 오남매
금줄은 짚으로 꼰 새끼줄. 짚은 생산 능력을 지닌 토지를 의미한다.
조상들은 출산 역시 생산능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짚으로 금줄을 만들었다.
종이의 백색은 태양의 빛깔로, 신성을 의미한다.
새로 태어난 아기의 백일이나 돌잔치에도 백설기를 하는데, 이것 역시 그런 맥락이다.
흰색의 떡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부정이나 잡귀.잡신의 침범을 막고, 아기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던 것이다.
붉은 고추는 귀신이 싫어하는 색으로 붉은 색의 고추를 매달면 잡귀들이 문안으로 못 들어오기 때문이다. 숯은 더러운 모든 것을 정화하라는 의미에서 매달았다.
숯은 더러운 것은 모두 태워버리고 남은 것. 따라서 숯은 소각을 통한 정화의 의미인 동시에 항균작용의 의미이기도 하다.
솔잎은 겨울에도 단풍이 들지 않는 높은 절개를 지닌 불변과 희망을 뜻한다. 그래서 딸이 태어나면 늘 푸르르고 그 절개를 잃지 말라는 의미에서 금줄에 매달았다.
▶제주
태어나서 자라고 결혼하고 늙어 죽을때도 육지와는 사뭇 다른 풍습을 안고 있다...
제주의 풍습은 '風多', '石多'로 일컬어지는 제주의 독특한 풍토적 조건과 피해의식의 역사로 인해 제주만의 독특한 풍습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제주의 아낙들은 산신인 '삼신할망'에게 기원하는 굿을 하여 자식 얻기를 기원했다.
또한 아들을 원하는 집에서는 동,서 자복미륵에 치성을 드렸다. 임산부는 게,닭,돼지,상어,오징어,문어등의 고기를 먹지 않는등 금기사항이 있었다.
출산시는 산파를 부르며 시집간 시누이와는 한집에서 출산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모는 메밀가루를 친 미역국을 먹고,유아나 산모는 출산 3일후에 쑥물로 목욕을 했다.
제주도에서는 출산 직후 3일 이내에 지혈을 위해 해산모에게 메밀국수를 먹이거나 메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를 먹이는 풍습이 있었다.
>> 메밀수제비가 미끄러워서 잘 넘어가는 것처럼 순산을 하라는 기원의 의미.<<
해산의 고통을 같이 했던 선조들
아내와 산고를 함께 나누려는 적극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는 해산 풍속
*재떨이 두드리기
산고가 심해지면 남편은 산실 밖에서 큰기침 소리를 내면서 왔다갔다하거나 옆방이나 사랑방에서 담뱃대로 놋쇠로 만든 재떨이를 두드리는 풍습도 있었다.
이런 소리를 아기를 낳는 산모가 듣게 함으로써 위급한 상황이라도 남편이 옆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음을 알려주어 산모의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노력이었다.
*상투빌기
'삼신끈' 대신에 남편의 상투를 잡고 힘을 쓰게 하는 풍속이다.
산실의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서 남편의 상투를 산실로 넣은 후 산모가 이 상투를 잡고 해산하게끔 하는 풍습도 있었다.
*지붕 올라가 뛰어내리기
평안도 지방 산실의 지붕에 남편이 올라가 용마루를 잡고 힘을 쓰게 하는 해산속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함경도 지방에서는 사다리를 가지고 초가지붕에 올라가 아이를 해산 할때까지 뛰어내리는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들이 아파트에서 아이날때까지 뛰어내린다면??
이런 풍속은 오래갔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