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할까요?
어느날 남친과 섹스를 하는데, 남친이 사정하는 그 순간 임신이다 란 생각이 확 들더군요
이제까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날 그 순간엔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죠
전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서 배란일을 따져봐도 소용이 없었고
콘돔은 둘 다 싫어해서 잘 안 썼어요
남친은 이전에 관계를 가졌던 여자랑은 콘돔을 한 번도 안 끼고 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하며
농담조로 자긴 불임인거 같다고 했구...전 반은 농담, 반은 진담으로 받아들였었죠
둘 다 무지했어요 넘 바보같았고...
어느날부턴가 배가 볼록한 거 같더군요
제가 생리할 때가 되면 배가 빵빵해지는데(임신한 여자처럼) 그때보다 약간 더 빵빵해졌어요
그리고 가슴...유두가 쓰렸어요 시커멓게 변하고..
그래도 아닐거다..생각했죠
남친과 전 진단약을 사서 해봤는데 이게 두 줄이 선명한게 아니라 한 줄이 희미하게 나온거에요
그래서 아닐거다 싶었는데 확실히 하기 위해 병원에 갔어요
초음파를 해보더군요
제 초음파 사진을 보는데 제 눈엔 아무것도 안보였어요
근데 의사 선생님이 "임신이네요" 하시더군요
전 넘 놀랐는데....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검은 점 같은게 아기라고 했어요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
전 대학도 아직 졸업하지 못했고 남친 역시 학생이고 혼자서 나 키운 울엄마 이 사실 알면 쓰러질거 생각
하니 미치겠고...
근데 가장 큰 문제는,
그때까지만해도 남친과 제 사이가 좀 어정쩡하다는거였죠
남친은 절 무척 좋아했어요 근데....저만 좋은게 아니었죠
다른 여자와 저...둘 중에 누가 더 좋은지 모르겠다고...그 여자가 더 좋다고 무심결에 말하다가 아니다,
잘 모르겠다로 말을 돌리던 그
그 얘길 나눈지 한달도 채 안되서 임신이 된거였거든요
아기 때문에 그 남자 발목 잡긴 정말 싫었어요 자존심 땜에
어떻게 하지? 물었더니
제 의사를 존중해주겠대요
낳자고 하면 낳고 지우자고 하면 지우고...
제가 떠봤죠 낳자고...그랬더니 알았다고 하더라구요
전 제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온갖 당혹한 감정들과 실망감이 생겨날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했고 그래서 재빨리 아니라고 했죠
어떻게 낳냐구 둘 다 능력도 없는데...
일주일 후에 병원에 갔습니다
지금까지 제 가슴에 한이 되는건요
그 남자가 병원 입구까지만 따라가곤 밖에서 기다린거죠
전 들어와서 기다려주고 할 줄 알았는데...
당연하게 같이 들어갈거라 믿었는데 쭈뼛쭈뼛하며 밖에서 기다리고 싶은 눈치를 주더라구요
그래서 저 혼자 들어갔습니다
혼자서 싸인하고 옷 갈아입고 수술대에 누웠죠
깨고 어떻게 회복실로 옮겨졌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제 방엔 딴 여자 한 분이 있었는데 많이 아픈지 끙끙 앓더라구요
남친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끝났다고...링겔 맞고 나갈거라고
그 여자랑 등을 맞대고 누워있는데
그냥 눈물이 나더라구요
제 발로 걸어들어와서 수술대로 올라간 주제에
눈물을 흘린다는게 부끄러워서...제 양심에...
소리 죽여가며 울었습니다
아기한테 넘 미안했고...
병원을 나와 남친을 만났는데 우연히 그의 핸드폰 통화내역(이었는지 문자내역)을 봤어요
제가 그때 몰래 보는거라 정확히 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가 전화를 했었나 아님 이 남친이 먼저 했나 여튼 그런 기록이 있는거 같더라구요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갑자기 남친이 오는 바람에 확인을 못했지만
여튼 기분이 넘 더럽고 속상하고..
다른 날도 아니고 나 수술한 날에...그런 맘이 생기니 미치겠더군요
그 남자를 지금 3년 째 만나오고 있어요
이제 그 여자와는 연락을 안하구요
제가(오직 저만) 세상에서 제일 좋대요
그래도 과거 일 때문에 제가 매일 꼬투리 잡고 의부증 증세를 보이곤 하죠
바보같은 생각들이지만요..
제가 수술할 때가 4주였나 5주쯤 되었거든요
그때 울 아기가 아픔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
넘 괴로워서 산부인과 상담 게시판에 올렸더니 지나간 일은 잊고 앞으로 잘하라는 격려성 글만
쓰시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하시더라구요
사람은 처음이라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죠
첫키스 첫사랑 첫섹스..
그 아기는 제 첫아기라서 더 사무치는거 같아요
그날의 섹스가 정말 임신이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런 생각, 느낌이 든 적은 그때밖에 없었거든요
마치 울 아가가 "나 인제 생겼어요" 알려준 것처럼 느껴졌으니깐요
그거 생각하면 울 아기 넘넘 이뻐요
임신인 걸 알고서...배를 한번 만진 적 있는데
그때 4주째여서 물론 아무 느낌도 없었지만..
울 아기는 느꼈을까요?
엄마가 착잡한 심정으로 자기를 어루만진거?
진짜 신기한건,
임신일까봐 불안해하던 때부터 아기 지울때까지
계속 미혼모, 낙태 이런 것들이 방송에 나오더군요
임신 알기 전엔 미혼모에 관해, 지우려고 맘 먹고 나서는 낙태에 관해...
그 아기 꼭 낳아야만 하는 거였나봐요
생길때부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제가 나쁜 맘 먹으니까 그러지 말라고 방송에서 떠들었으니깐요
갑자기 너무너무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임신인 걸 알고 수술하기까지의 그 일주일동안
그래도 아기를 위해 맛난거 많이 먹고 재밌는 책 많이 읽고 그랬을걸..
그랬더라면...지금의 괴로움이 덜하진 않겠지만 조금은 행복했을텐데
그 일주일은 제가 아기의 존재를 알고 지낸 시기니깐요
전 집안 사정상 밥도 잘 못 챙겨먹고 거의 사 먹거나 과자 먹거나 라면 먹거나...아님 굶거든요
맛있는거, 영양가 많은거 많이 많이 챙겨먹을걸 그랬어요
너무 미안해요
수술하고 나서 나중에 다시 제게 와달라고 기도했는데
그렇게 될리가 없다는 거 잘 압니다
이런 일은 정말 잊기 힘든거 같아요
잊어서도 안되겠지만 물론..
전 이미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아직 그런 일이 없는 분들은
꼭 피임 하세요
전 아기 지우고 나서 전에 없던 생리통에, 병원 간지 딱 한달 째 되던날 심한 복통(자궁수축인듯)으로
3일동안 밖에도 못 나가고 먹지도 못하고 힘들었어요
근데 그때 아픈것보다 마음 아픈게 오래 갑니다
이건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어요
꼭 피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