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교 창시자) [Jesus Christ, 그리스도]
출처: 브리태니커
예수의 생애와 사역
- 탄생과 가족
예수의 생애와 그가 활동한 지리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단지 윤곽만 파악할 수 있다. 비성서적 자료들에 의하면 티베리우스 15년(루가 3:1), 즉 AD 28~29년 세례 요한이 등장하는 것을 근거로 상당히 정확하게 활동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탄생 시기와 장소는 불확실하다. 〈마태오의 복음서〉 1·2장에서는 예수의 탄생과 초기시절이 헤로데 1세 때와 정권의 교체기(BC 4)였고, 〈루가의 복음서〉 2장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AD 6) 있었던 유대의 첫번째 인구조사와 연결시킨다. 또한 BC 8년경에 행해진 인구조사에 대한 역사적 증거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많은 자료는 탄생 연도를 BC 7~6년으로 추정한다(BC와 AD의 사용은 중세까지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음). 예수의 탄생 장소가 베들레헴이라는 전승은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구약성서〉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신학적 주제는 그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마태오의 복음서〉 2장에서 베들레헴은 부모가 본래 살던 곳이었으며 그들은 자녀들을 위협하는 위험 때문에 이집트를 갔다가 나자렛으로 옮긴다. 그에 반해 〈루가의 복음서〉 2장에서는 예수의 부모가 실제로 나자렛에 살았으나 예수를 다윗 가족 출생지의 호적에 올리기 위해 잠시 베들레헴에 머문 것으로 나타난다. 두 전승이 각각 고유한 방식대로 그가 탄생한 장소를 지정할지라도 예수의 메시아성이라는 신학적 주제의 전설적 변형으로 판단해야 한다.
〈마태오의 복음서〉 1장과 〈루가의 복음서〉 3장의 상당히 다른 계보들에서 메시아(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교리를 내포한다. 그것은 예수의 메시아성에 대한 계보적 사고를 위한 유일한 〈신약성서〉의 증거이다. 그러나 두 본문은 조화될 수 없다. 그들은 본래 예수의 선조들에 대한 일치된 전승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의 메시아성을 계보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들이 〈구약성서〉의 70인역(그리스어 번역)을 사용하여 유대 그리스도인 집단에서 처음으로 행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본문들은 역사적인 자료들로서는 무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그리스도론(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교리)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왜냐하면 동정녀 탄생이라는 후기의 사상과,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계보적 증명을 조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정녀 탄생 전승도 역시 오직 두 자료(마태 1, 루가 1)에만 기록되었으며, 본래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주제와 연관된 것도 아니었다. 바울로, 요한 및 나머지 〈신약성서〉 저자들은 이 생각에 친숙하지 않다. 〈마태오의 복음서〉 1장에서 예수의 기적적 탄생이 언급되고 〈루가의 복음서〉 1장에서는 더 자세히 설명되는데, 이 전승은 하느님과 성령의 창조적 능력을 말해주며,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교로부터 알려진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동기가 예수에게 적용되었고, 이차적으로 〈이사야〉 7장 14절(70인역에서 히브리 단어 alma, 즉 '젊은 여인'이 '처녀'로 번역됨)의 메시아 약속에 대한 그리스어 번역과 연합되었다. 매우 오래된 믿을 만한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고향은 갈릴리 지방의 나자렛인데, 이곳은 그리스 도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유대인 거주지였다고 한다(마르 1:24, 10:47, 14:67, 16:6).
예수의 가족으로는 형제 4명과 몇 명의 누이가 〈마르코의 복음서〉 6장에서 언급된다(본문에는 교리적 동기를 드러내기 위해 그들을 이복형제나 사촌들로 만들 근거가 없음). 가족의 이름은 어머니 마리아(미리암), 아버지 요셉과 형제들은 야고보(야곱)·요셉·유다·시몬(구약 족장의 이름들)이다. 예수의 이름은 히브리 이름인 요수아, 즉 '여호와가 도우신다'의 그리스어 형태이다. 〈마르코의 복음서〉 6장에서 예수 혹은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고 언급한다.
부활절 (그리스도교) [復活節, Easter]
출처: 브리태니커
(라)Pascha (그)Pascha.
그리스도교 교회력의 주요축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날.
개요
부활절의 기원은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마도 그리스도교에서 지키는 기념일 가운데 매주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 주일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영어명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가경자(可敬者) 비드는 이 말이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부활절의 날짜
서방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춘분(3월 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의 만월(滿月 :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 부활절 달(paschal moon)은 황금수(서기 연수에 1을 더하여 19로 나눈 나머지 수)와 태양력과 태음력의 1년의 날수 차이(약 11일)로 계산하는데, 이는 천문학상의 만월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만일 이 만월이 일요일일 경우 그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 따라서 부활절은 대개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될 수 있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많은 논쟁과 의혹을 거친 끝에 정해졌으며, 이 논쟁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여러 분파에서 8세기까지 계속되었다. 동방정교회는 약간 다른 계산법을 따르고 있으며, 그결과 동방정교회의 부활절은 서방교회의 부활절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 또는 5주 후에 해당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부활절 날짜를 고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논의되어 일부 성직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으나, 이 가능성의 채택 여부는 여러 교파가 이에 동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동안 4월 2번째 일요일로 부활절을 정하자는 안건이 제시되어왔다.
종교적 의식
부활절 행사는 특정한 일요일에 거행하지만, 그 중요성은 사순절이라는 오랜 준비기간, 엄숙한 예식들이 행해지는 성주간(Holy Week), 그후 부활절 시기(Eastertide)로 알려진 오순절(성령강림 축일)까지 50일 동안 교회예배에서 강조된다.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라 짜여지고, 한 해의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 그리스도교에서 1년 중 가장 중심되는 절기이다. 전례서(典禮書)에는 부활절이 그리스도교 유월절(구속의 때)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2세기)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전야예배를 보았다. 바로 여기서 부활절 전날 행하는 전야예배의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모두가 행하는 주목할 만한 부활절 축하행사로서 매주 행하다가 1년에 1번 부활절에만 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의 미사 경본에 나타나 있듯이 이 전야행사는 새로운 불의 강복(중세 초기 유럽에 도입된 관습), 부활절 촛불 점화, 예언이라고도 부르는 성구봉독, 세례반(洗禮盤)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양식은 초기의 것으로서, 그 주요행사로 볼 때 3~4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방교회의 전야예배는 토요일 저녁에 행해지다가 토요일 오후로, 중세 말엽에는 토요일 아침에 행하게 되었다. 1951년에는 선택적으로, 1955년에는 의무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 전체에서 부활절 전야예배는 오후 10시로 조정되어 현재 부활절 첫 미사는 한밤중에 시작한다(→ 부활전야).
부활절에 세례를 받는 것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몇 세기 동안 사순절 기간은 참회의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세례예비자들(catechumens)이 세례받을 준비를 하는 기간이었으며, 당시 세례는 1년에 1번, 즉 부활절에 받을 수 있었다. 부활절 전 6주 동안 세례예비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교육받았으며, 로마 가톨릭 미사경본의 사순절 전례서에는 지금도 이 관행에 대한 지침이 분명하게 보존되어 있다. 세례예비자들은 부활절 밤에 엄숙하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세례준비기간을 마무리한다. 부활절 밤에 세례반을 축복하는 긴 의식, 세례와 그 의미를 크게 강조하는 것, 이에 대한 많은 언급들이 지금도 부활절 예배에 여전히 행해지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방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는 교회가 매년 지키는 절기로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예배 전체와 영적 삶의 핵심으로서 부활절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전야예배 전에 그리스도의 시체를 찾으려는 무익한 행위를 상징하는 행진이 교회 밖에서 벌어진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공포한 뒤 부활절 성찬을 행한다. 처음에 행렬이 교회를 출발할 때는 사방에 불을 전혀 밝히지 않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올 때는 수백 개의 촛불과 여러 가지 색채의 램프를 밝혀 그리스도 부활의 광휘를 보여준다.
성공회에서는 아침기도 때 성공회기도서의 특별 성가로 〈시편〉 95편(Venite)을 대신하고 있고, 루터교의 찬송집에는 부활절 예배순서가 실려 있으며 부활절에는 특별한 악절(樂節)을 사용한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공동전례집에는 부활절기도문이 실려 있고, 감리교의 〈거룩한 예배 Divine Worship〉에는 부활절 아침예배순서가 실려 있으나 이것을 꼭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신교교회에서 부활절 의식은 종려주일로부터 시작되는 성주간(고난주간) 동안 행해지는 일련의 예배의식의 절정을 이룬다. 성주간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 관례지만, 다른 때에도 성찬식을 행한다. 많은 교파들이 '세족(洗足)목요일'(부활절 전 목요일,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긴 날)에 성찬식을 행하는 관습을 지켜왔으며, 또 어떤 교파는 부활절 아침 정규 예배시간 전에 성찬식을 갖기도 한다.
많은 개신교교회들이 성금요일에 초교파적 연합예배를 갖기도 하는데, 이 예배는 그 지역 목회자협회의 후원으로 이루어진다. 많은 교단에서 이 예배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7언(言)을 중심으로 정오에서 오후 3시까지 진행되며 참여한 교파의 성가대·성직자가 주관한다. 이러한 초교파적 예배는 부활절 새벽예배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 예배를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중계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이 일출(日出)예배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한 〈요한의 복음서〉 20장 1절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라는 구절에서 근거한 듯하다. 이 성서적 근거와 더불어 부활절 새벽예배는 죽음의 겨울에서 자연의 재생을 상징하는 봄의 새로운 탄생개념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널리 행해지고 있는 관습
그리스도교인들이 성주간과 성금요일로 이어지는 여러 예배의식의 절정으로 지키고 있는 부활절 의식에서 많은 민족적 풍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중에는 유럽인의 고대예식과 상징적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으며, 부활이라는 주제와 관련있는 중동 이교도들의 봄의 축제들로부터 유래된 것도 있다. 이 풍습들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예를 들어 사순절 기간 동안 먹지 못하게 되어 있던 달걀이 이 의식에선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풍요의 상징이었고 후에 유럽에서도 역시 같은 상징으로 쓰였던 큰 산토끼가 북아메리카에 서식하지 않으므로, 그보다 작지만 인간의 풍요와 달의 주기(週期)를 상징하는 부활절 산토끼로 대체하여 준비한 달걀과 함께 둥지에 넣거나, 달걀을 멀리 감추어 아이들이 찾도록 하는 놀이가 부활절 풍습으로 이용된다.
한국의 부활절
가톨릭 교회에선 '예수 부활대축일'이라 하여 전례서가 정한 대로 예식을 행한다.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는 사순절은 성(聖)3일로 끝나게 된다. 성목요일에는 성사집행에 사용되는 성유(聖油)의 축성미사를 교구별로 주교좌 성당에서 드리며, 저녁에는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여 성만찬미사를 드린다. 그후 그리스도의 부재(不在)를 나타내기 위해 보라색 천으로 십자 고상 등을 가린다. 성금요일에는 망부활미사(부활 전야예배)를 드리며 가능한 한 단식을 한다. 개신교에서는 1947년 교파에 관계없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나, 1960년대에는 분열과 대립으로 별도의 행사를 가졌다. 1978년 다시 통합되어 대도시별로 부활절 새벽에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에 채색하고 장식하여 선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