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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집단 개독놈들이 너무 무서워요.......

겁나요 |2007.12.30 20:04
조회 1,079 |추천 2



 

마녀사냥과 개신교(칼뱅주의자)

...마녀사냥은 천주교뿐 아니라 개신교에 의해서도 많이 져질러 졌지요...

 

* 유럽 각국에서 칼빈주의자들이 자행한 마녀사냥

제임스 6세(Paul Carus. op.cit. p.402-404)는 학식이 풍부한 마녀사냥의 지지자였다.


제임스는 1560-1592년 북 베릭셔 주에서 마녀재판을 경험한 이래 마술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질리 던컨이라는 젊은 여자가 병자를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질리의 고용주는 그녀가 악마의 힘을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그녀가 자백할 때까지 직접 고문했다.

질리가 악마의 도움을 받아 왔다는 자백을 하자 의기양양해진 고용주는 그녀를 재판소로 넘겼다. 거기서 다시 고문 위협을 당한 질리는 에딘버러 시내와 근교에 사는 많은 남녀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그들 중에는 아그네스 심프슨이라는 교양있고 평판도 좋은 중년 부인이 포함되어져 있었는데, 왕(제임스 6세 후에 영국의 제임스 1세가 됨)은 그녀를 직접 취조했다.

그녀가 자백을 거부하자 취조관들은 그녀를 벌거벗겨 온 몸의 털을 밀어 버리고 악마의 표식이 발견될 때까지 철저하게 몸수색을 했다.

‘입 안에 마녀의 재갈이 물린 채 그녀는 독방 안에 매달렸다. 그것은 날카로운 갈퀴가 네 개가 달린 기구였는데, 그 중 두 개가 현쪽을 향하도록, 나머지 두 개는 뺨 쪽으로 향하도록 해서 입안에 끼워졌다. 그녀는 잠을 잘 수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자백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녀는 많은 남녀가 할로윈 축제 때, 배를 타고 북베릭으로 모여들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춤을 추면서 검은 초가 밝혀진 교회로 들어가 남자로 변신한 악마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둔부에 입을 맞췄다.

마녀들은 덴마크로 건너갈 때 폭풍을 일으켜 그가 탄 배를 침몰시킬 음모를 꾸몄다. 만일 이것이 실패하면 아그네스가 두꺼비의 피로써 왕을 해치는 주술을 행할 계획이었다. 아그네스와 다른 피고들에게 나온 증거를 근거로 다수가 화형대로 보내졌다.

제임스의 주목을 끈 이 재판은 이 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Jeffrey B.Russell. op.cit. p.166-170)

 

 

 



1) 마녀사냥,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1) 마을과 마을을 돌면서 무작위로 마녀 색출과 재판을 하였다.

영국의 마녀사냥의 특징은 마녀사냥꾼들이 마을과 마을을 계속해서 돌아 다니면서 마녀들을 색출하고 심판했다는 것이다. ' 매튜 홉킨스와 존 스턴이 애식스와 서포크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하였는데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면서 마녀술 재판을 계속하였다.'(Brian P. Levak.op.cit.p.237)

지나가는 여인이 수상하다 싶어 신고하면 마녀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복수심에 신고해도 마녀로 몰려 처형되는 경우도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민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대체로 무작위적으로 그런가 하면 부자들은 신중하게, 어떤 식으로든 매우 치욕스러운 미신의 희생양으로 전락하였다.'(Paul carus.op.cit.p.344) 무고하고도 무차별적인 인간사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2) 목회자들이 밀정이 되어 마녀를 찾아 다녔다.

'16~17세기에 교회에서 벌린 마녀사냥은 잔혹한 고문과 탄압 그 자체였다. 교회의 목사들, 다시 말해 목회자라는 밀정들은 마녀를 찾아내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녔다. 그들은 어떤 여자든 마녀라고 의심이 되면 어떠한 몸짓이건 그녀가 마녀와 어울리고 있다든가, 이전에 어울린 적이 있었다든가 하는 증거로 삼을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여자든지 마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세계사-송원옥. 큰 산. pp.47-49) 즉 개신교의 목회자들이 밀정이 되어 마녀를 찾아내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져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이를 두고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닌다' 라고(1베드 5,8) 하였는데 사람들을 하느님의 뜻대로 이끌어야 할 목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죽일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살인마들이었다.

그들이 그런 행각을 벌인 계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그들의 교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어떤 여자든지 마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는 것은 어떤 여자든지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다는 말이다.


칼빈은 외치기를 '인간은 끊임없이 주님의 공포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고(Stefan Zweig.op.cit.68) 하였는데, 그야말로 온 세상이 사람 죽이는 칼빈 사상으로 인한 공포가 온 천지를 뒤엎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마녀로 고발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면 그 사람도 마녀가 되었다.

마녀사냥이 황당했던 것은 마녀로 고발을 당한 사람을 붙잡아 들여 고문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면 그 이름의 당사자들도 마녀가 되어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수명, 수십명, 수백명의 이름을 대면 그것으로 마녀가 되고 처형되었다. 그러므로 애꿎은 사람이 마녀가 되어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뜨려 죽거나 목잘라 죽어야 하는 불쌍하고 불행한 여인들이 속출하였다.

1661-1662년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대규모 마녀사냥, 1645-1646년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대규모 마녀사냥, 미국의 세일럼에서 일어난 소녀들에 의한 대규모 마녀사냥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면 고발된 사람들은 졸지에 마녀가 되어 마녀로 처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고발된 마녀들은 한번에 처형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반드시 죽임을 당하였다

 

(4) 나체에 불을 붙여 견디지 못하면 마녀로 처형하였다.

마녀로 잡혀 온 여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이나 고문하는 과정 또한 잔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실상의 한 예들은 다음과 같다.


'밀정마녀로 지목된 사람들은 보통 여인이었다. 일단 마녀로 의심받게 되면 이단심문관은 그녀를 붙잡아다가 비약을 감추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나체로 만들고 체모나 항문 음부까지도 철저히 조사하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몸에 숨겨놓은 비약이라는 것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모발에서부터 겨드랑이털, 치모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깎아 내렸다. 거기서 아주 미세한 이물질적인 다시말해 농촌이니까 지푸라기나 깃털같은 것이 나오면 그것이 비약이라며 마녀로 간주해 보린다. 만약 그런 것들이 발견되지 않으면 나체로 고문대에 쇠줄로 묶어 놓고 바늘같은 것으로 몸을 사정없이 찌른다. 그것도 유방이나 허벅지 외에 눈꺼풀이나 혓바닥, 성기까지 찔러댔다.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마녀는 아니라고 했으나 대개 찡그리기 마련인데 얼굴을 찡그리면 마녀라고 판정을 내린다. 그래도 고백을 하지 않으면 물고문을 가했는데 9리터 정도의 물을 마시게 하였다. 그것도 견디어 내면 이번에는 발바닥이나 겨드랑이 밑, 성기에까지 기름이나 유황을 발라 불을 붙였다. 견디지 못한 여자들이 자백하면 마녀로 판정하여 화형을 시켰다. 나체 위에 유황을 바르고 불을 붙이는 것은 악마의 오염을 정화시키고 그 힘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구실로 화형을 시키는 것이었다.'(송원옥.op.cit.pp.47-49)

 

(5) 불태워 죽임으로 영혼이 구제된다는 미명하에 살상하다.

칼빈과 제인스 왕의 경우에서 여실히 볼 수 있듯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해석이 가능하고, 아전인수적인 자기 해석과 자기 정당화가 가능한 칼빈의 예정교리만큼 마녀사냥 인간사냥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도구내지 지원자는 없다.


그것에 의해 정당회된 청교도들에 만행에 대한 역사학자 네루는 다음과 같이 고발하였다.

'그들은 쉼사이 없이 이단사냥을 하여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형틀에 매달아서 태워 죽였다. 이보다 더 심했던 것은 전향을 강요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가해진 고문이었다. 수많은 불쌍하고 불행한 여인들이 마녀로 고발되어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특히 영국이나 스코틀랜드(청교도들을 지칭)에서는 종교재판의 명령에 위해서가 아니라 폭도들에 의하여 행해진 일도 있었다.---그들은 인간을 형틀에 걸어 놓고 불태워 죽임으로써 그의 영혼 또는 타인의 영혼까지도 구제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종교인은 가끔 강제로 억누르고 자신의 의견에 억지로 다른 것을 강요하는 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가 있다. 신의 이름을 빌어서 그들은 살상을 하고 살인을 자행하였다. 그들은 불명의 영혼을 구제한다고 말하며 화형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종교가 거쳐온 길은 대단히 부정적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종교재판의 잔혹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하여튼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이 그것은 개인적인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행동했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다.'(Jawaharlal Nehru, op.cit.p.45)

 

 

2) 스위스에서 자행된 청교도들의 인간사냥

(1) 제네바에서 세달 동안에 자행된 500명의 마녀사냥

폴 카루스에 의하면 ‘칼빈의 고향인 제네바에서는 단 세달 동안에 5백여명의 사람들이 이단과 마녀로 처형을 당했다. 1545년 제네바의 교칙을 보면, 고문과 형벌에 드는 인력이 형집행인의 그것을 초과했고, 어떤 고문을 가해도 죄인을 여전히 고백을 거부한다는 불평이 쏟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Paul Carus. op.cit. p.442)고 하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세 달 동안에 무려 500명의 이단자들과 마녀들이 처형되었다고 전해 주고 있다. 이들이 성경을 손에 들고 이와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경악할 일이다. 칼빈주의자들의 이같은 만행이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실로 놀랄 만한 일이다.

종교개혁이라는 위장된 옷만 갈아입었을 뿐, 실상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테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1650년 이후 개신교가 급격하게 몰락하고 사람들이 개신교를 떠나 가톨릭교회나 아니면 무종교 내지 무신론을 급격히 빠져 나간 배경에는 칼빈주의에 의한 만행에 대한 평가와 결코 무관치 않다.

 

3) 스코틀랜드에서 자행된 청교도들의 인간사냥

(1) 스코틀랜드에서의 칼빈주의의 마녀사냥

제프리 레이건(G. Regan)이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1620년대 무렵, 마녀사냥은 칼빈교파가 지배했던 스코틀랜드에서도 성행해 국경 남부 지역보다도 3배나 많은 마녀들이 사형을 당했다.---’(Geffrey Regan pp.180-181참고) 특히 제프리 러셀(J.B.Russell)은 ‘스코틀랜드에서는 찌르기를 선호하였다’(Jeffrey B.Russell. op.cit. p.162)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찌르기란 마녀의 몸에는 악마의 표식인 무감각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마녀는 몸의 어디엔가는 무감각한 곳이 있어 아무리 찔러도 아무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체로 묶어 놓고 뾰족한 바늘 같은 것으로 몸을 사정없이 찔러대는데 주로 허벅지, 눈꺼풀, 혀 바닥, 유방, 성기까지 사정없이 찔러대는 끔찍한 고문방식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이 아니라 악마적인 행위 그 자체였다. 누가 이와 같은 만행적인 행위를 보고 종교개혁이라고 하겠는가? 왜 오늘날에도 개신교가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는가를 생각해 보라. 이와 같은 만행이 종교개혁이라고 믿을 사람이 누가 있으며 과연 개신교를 가톨릭교회보다 더 나은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1661-1662년에 스코틀랜드에서 대규모 마녀사냥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특히 남동부 지역에서 수백 건의 고발 재판, 처벌이 있었다. 이 재판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개별적인 재판이 아니었는데 -- 마녀의 혐의자의 몸에서 악마의 표식을 찾은 사람도 같은 사람이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다른 마을 사람을 동료 마녀로 고발했다.’(Brian P. Levack. op.cit. p.235)고 전하고 있다.

(2) 물에 빠뜨려 심판하는 스코틀랜드에서의 칼빈파의 재판 형식

스코틀랜드에서는 심판의 방식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이 채택되었다. ‘퓨리턴(청교도들)들은 악마로 지목된 사람 특히 여자들을 모두 벗겨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 근처의 강이나 연못에 빠뜨려 익사시킨 후 시체가 가라 앉으면 결백하고 떠 오르면 유죄라는 식의 수영 시험을 하여 악마의 마법 재판에 이용하였다.’(Geffrey Regan pp.180-181)는 것이다.

물론 떠올라서 살아 있어면 역시 악마라고 하여 다시 끌고가 이번에는 불에 태워 죽이는 광신적 행위를 저질렀다. 그러므로 한번 마녀로 고발되어 물에 잠기면 살아 날 수가 없었다.

찌르기나 또는 모두 벗겨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 근처의 강이나 연못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방식이나 그것은 종교개혁이 아니라 정신나간 광신이라는데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이러한 광신적인 살상적 행위들에 대한 칼빈주의자들의 가장 흔한 변명은 ‘그 시대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불가피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가당착에 빠진 자기 해석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것으로 정당화 되거나 합리화 될 수 없는 반그리스도적인 가장 사악한 악마적 소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외치는 교리나 자행한 역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무관한 교리와 행위일 뿐이다.

(3) 청교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마녀사냥에 대한 증언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는 청교도들에 의해 대규모로 마녀사냥과 이단사냥이 이루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560년 이후 모두 프로테스탄트가 되었고, 극심한 종교적인 갈등을 겪었다. 스코클랜드는 칼빈 사상이 널리 퍼졌는데--- 스코틀랜드의 목회자와 장로는 교구 위원회의 일원으로 마녀 심문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총회 회원으로 마녀를 처벌하여 신정적인 국가를 확립하도록 세속 정부에 끊임없는 압력을 가했다. 이러한 압력은 종교개혁가들이 세속 정부가 마녀사냥의 노력을 배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가장 좋은 예가 된다.’(Brian P. Levack. op.cit. p.273)

스코틀랜드의 비옥한 토양(마녀사냥에 대한)은 대륙의 관념이 씨를 뿌리기에 적합했다. 대륙의 관념은 결국 스코틀랜드를 거쳐 영국에 상륙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학식이 풍부한 마녀사냥 지지자였다. 제임스는 1590-1592년에 북 베릭셔 주에서 마녀재판을 경험한 이래 마술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제임스 왕은 아그네스 샘프슨이라는 중년 부인을 직접 취조했다.’(Jeffrey B.Russell. op.cit. p.166-168) 그리고 끝내 아그네스는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화형에 처해졌다.(Jeffrey B.Russell. op.cit. p.170)

아그네스 샘프슨의 재판은 1563년 에식스 주 첼름스퍼드 재판과 1579년 에식스 순회 재판의 엘렌 스마이드란 여성에 대한 재판과 함께 17세기 스코틀랜드와 영국에서 행한 마녀재판의 선례로 사용했다고 역사가들은 전하고 있다.


4) 칼빈이 지배했던 스위스에서의 마녀사냥에 대한 증언

칼빈의 사상적 영향력이 크게 미치고 있던 스위스에서의 마녀사냥 역시 영국 못지 않는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칼빈이 지배했던 당시 스위스에서 자행된 마녀 사냥을 보면, ‘16세기 동안, 보(스위스 서부의 주)에서만도(무고하게 잡혀온) 마녀들이 년 40명 비율로 처형되었다. 인구가 고작 7백명에 불과했던 오베르 마르흐탈이라는 마을에서는 단 2년 동안 43명의 여자가 화형을 당했는데’ --(‘The Guiness Books of Historical Blunder' Geffrey Regan : ‘세계사의 대실수’ 세종서적. pp.180)라고 증언하였다.

그 비율을 보면 가히 마을마다 초토화시키는 인간사냥의 만행이 얼마나 참혹하게 이루어졌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보(스위스 서부의 주)라는 주에서만 매년마다 40명 비율로 처형했다는 것은 매일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 잡는 것이 일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야말로 당하는 사람이나 가족에게는 하느님과 그리스도가 악마의 화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5) 스위스 전역에서 일어났던 마녀사냥의 희생자

‘유럽의 마녀사냥’의 저자 브라이언 레벡(Brian P. Levack)에 의하면 칼빈사상이 지배하였던 스위스에서는 8.800명 이상의 마녀가 재판을 받고 5.000명 이상이 처형되었다.’(Brian P. Levack. op.cit. p.267)고 전한다. 실로 엄청난 숫자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다.

‘영국도 그러하지만 칼빈주의가 지배적이었던 스위스에도 영국에 못지 않는 인간사냥이 폭넓게 자행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Brian P. Levack. op.cit. p.267)

‘특히 마녀술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들 가운데 90%가 처형되고 희생자가 2.000명이 넘었다.’(Brian P. Levack. op.cit. p.267)


6) 마녀사냥의 배경

 

(1) 개신교의 마녀사냥은 지배도구로서의 세습적 재산이었다.

 

개신교 국가에서 마녀사냥이 계속된 것은 지배도구의 수단으로 세습된 것이다. 중세의 사실상의 마술의 종교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마녀사냥은 목회자들의 지배권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결과였던 것이며, 마술에 대한 믿음이 지속되는 동안은 개신교 국가에서는 암흑기의 세습재산으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개신교, 특히 칼빈의 수많은 살상 가운데도 그러한 성격은 충분하게 내포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칼빈이 멸한 대상은 불신자들이 아니었다. 이단도 아니었다. 또 교회를 거역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멸한 대상은 칼빈의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칼빈은 자기의 교리와 자기의 성경해석의 권위와 자기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을 처형하였다.'(조찬선 op.cit.p.110)


예외없이 이 교리적 근간에서 상대방은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2) 마녀사냥은 개인의 목적으로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다.

대개, 개신교도들의 마녀사냥은 대개 자신과 다른 종교적 관점을 가지도 있던 사람들에게 이단이라는 오명하에 적용된 경우들이 적지않다.


'악마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들어보라고 하면, 악마의 추종자들, 이교도들, 그리고 마녀로 간주되었던 자들을 처형했던 일이다.'(Paul Carus.op.cit.p.343)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칼빈에게도 노골적으로 자행되었다.

조찬선에 의하면, '칼빈은 형제를 미워하고 판단하고, 배척하는 죄를 범했다. 그는 성경을 들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죄명은 이단이었다.'(조찬선 op.cit.p.110)라고 하였다. 그리고 칼빈이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을 두고 '처형을 하면 할수록 그의 권위와 명성은 더욱 높아지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처형은 승리의 상징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 일을 통해서 승리의 쾌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사형을 서슴치 않았던 그의 행동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 같다.'(Ibid.p.109)라고 평가하였다.'

(3)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마녀사냥이 이루어졌다.

영국이나 스코틀랜드, 그리고 스위스에서 자행된 마녀 사냥의 큰 목적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인 이득과 무관치 않다. '마녀재판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가 마녀인지를 알아내는데 도움을 주었던 마녀 사냥꾼들이었다.'(Brian P. Levack.op.cit.p.245)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역사가들은 마녀술 재판이 재정적 이득과 연관시키는 것을 너무 과장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지만 북유럽 전역에서 재판관과 관리가 재정적인 이득을 취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마녀술 사건에서 피의자 재산은 몰수가 원칙이었고,---돈은 재판관에게 직접 지급되거나 간접적으로 법원 관리에게 지급되었다.-- 유죄인 사람의 경우 재산은 대개 이러한 재판관의 보수로 지급되었으며, 또한 지배자의 추가적인 수입이 되었다.'(Ibid.p.245)고 한다.


그리고 '마녀 사냥꾼의 수고비가 거부되었을 때(사냥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없었을 때) 마녀 사냥은 끝을 맺게 되었다.'(Ibid.p.245)라고 진술해 주고 있다.

 

(4) 고의적으로 남을 해치려는 의도에서 드러난 마녀사냥의 허구

고의적으로 남을 해치려는 의도가 드러났을 때, 마녀사냥은 가장 극적으로 끝났다. 1633년 영국의 호스튼에서 일어나 팬들 스윈들 사건이었다. 에드먼드 로빈슨이라는 소년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어떤 여자가 자신을 마녀의 사바트에 데려 갔는데 거기서는 60명의 마녀가 헛간의 꼭대기에 달린 밧줄을 당겨 고기, 버터, 우유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의 제의에 따라 그 소년은 누가 마녀였는지를 지목했고 그 가운데 17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의 이야기는 조작된 것이었으며 아버지의 질투, 복수, 그리고 탐욕 때문에 마녀들의 이름을 댔다고 자백했다.--(그 결과) 홉킨스와 스턴이 주도한 영국 최대의 마녀 사냥도 조작되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에 끝나게 되었다.(Ibid.p.244)


허구적인 조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개신교에 의해 자행된 마녀사냥은 그것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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