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시끌벅적하다. 손님이 왔나? 사람소리가 무지 많이 들린다.
낯익은 목소린거 같다. 벨을 누르지 않고 열쇠를 따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에온 손님은 다름아닌 언니네와 오빠네였다.
" 어! 보원이 오랫만이다. 많이 예뻐졌네?"
오빠는 여전히 나에게 관대하고 자상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 그래... 오랫만이네."
이내 집안을 자신들의 그간의 일들을 얘기하느라 시끄러워졌다. 아마 그런속에서 내 얘기도 분명 하고 있으리라.
옷을 갈아입는 손길이 무겁다. 내가 나가면 온 화제가 나에게 쏠릴텐데...
" 휴... 나가기 싫은데..."
하는수 없이 거실로 나갔다. 역시나 가족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 아가씨, 괜찮아요? 많이 속상했죠?"
뜬근없는 올케언니의 질문. 올케도 아는거잖아! 그렇담 분명 형부도...
" 뭐가요? 속상할 일 없었는데요?!" -_-;;
다들 나의 반응에 의와라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쳐다보고 있다. 특히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진 올케언니의 표정을 좋은 가십거리를 놓쳐서 아쉽다는 표정이다. 올케는 진작부터 날 별로 살가와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런 민망하고 불편한 자리를 피하려고 조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무언가 속닥거리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따르릉~~~~~따르릉~~~~~~
웬 전화지? 이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 여보세요?'
" 야, 나야 세일이. 바쁘니?"
웬일이야 이녀석이?! 여전히 삐쳐 있는줄 알았는데...
" 아니, 괜찮아. 근데 너 이제 괜찮아 진거니? 전활 다하고?"
" 할말이 좀 있는데, 만나자. 중요한 얘기야."
" 어 그래... 알았어."
중요하단 얘기가 뭔지 궁금해진다.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다시 옷을 갈아 입었다.
" 어디가니?"
" 네. 세일이가 잠깐 보자구 해서요. 할 말이 있나봐요."
" 일찍와라."
" 네, 엄마"
요 며칠사이 엄마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몹시 부드러워졌다.
정말 내 눈치를 보시나보다.
바깥 날씨는 너무너무 더웠다. 해가 진지도 한참이나 되었는데 더위가 가라앉지 않는다.
역시 여름은 여름인거 같다.
약속장소에 세일이가 먼저 나와 있었다.
" 일찍 왔나봐?"
" 왔어? 실은 아까 전화했을때 이미 여기 있었어."
" 한참 기다렸구나..."
세일이 하고자 했던 말은 다름이 아닌 나에게 취직을 해보라는 말이었다.
자기가 일하는 대리점에서 여직원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한 사무실에 다니자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날 자기옆에 두고 살펴보려고 하는듯 했다.
" 글쎄...생각을 좀 해봐야 할거 같애. 지금 하던일도 있고 하니..."
" 잘 생각해봐. 알바하는거보다야 정식 직장이 있는게 니 애인...한테도...당당하지 않겠어?"
" 단순히 그이유야? 니 옆에 두고 살피려는거 아니구?"
아무 대답이 없다. 내 예상이 맞았나 보다. 내가 알기로 세일이 일생에 사랑했던 여자는 나 하나뿐인었던거 같다. 남자들은 첫사랑을 쉽게 잊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나는 둘도 없는 친구인지라 더욱 포기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 생각해 볼께. 어찌되었든 직장이 있어서 나쁠건 없으니까..."
세일이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나쁠거 같진 않았다.
마리 엄마 눈치를 살피며 형수씨 얼굴 보는것도 못할노릇이고 차라리 그일을 그만두면 밖에서라도 편하게 만날수 있을테니까... 그래도 새사람 구할때까지는 있어줘야 하는데...
막상 그만두려니까 아쉽기도 하다.
집에 찾아온 불청객(?)들은 아직도 가지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안그래도 더운 날씨가 더 후덥지근하게 느껴진다. 무슨 찜질방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 엄마, 긴히 드릴말씀이 있는데..."
" 그래? 말해라. 방으로 들어가랴?"
" 아니요. 저... 다름이 아니라 세일이가 자기네 대리점에 취직할 생각없냐고 해서요. 여직원을 구한데서요."
다들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더니 이내 엄마 안색을 살핀다.
마치 많은 신하들 앞에서 임금의 허락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 잘됐구나. 아르바이트보다야 직장이 훨씬 좋지 그럼... 간다고 해라."
엄마는 흔쾌히 허락을 하셨다.
원이네 집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제 겨우 한달밖에 안됐는데 그만둔다고 하기가 왠지 미안하다. 마리씨의 따발총 같은 원성을 어찌 감당할지...
" 뭐라구? 갑자기 이러면 어떻게해! 미리 말해서 다른 사람이라도 알아볼수 있게 하든가! 자꾸 사람이 바뀌면 애기한테 얼마나 않좋은줄 알아?"
등에서 식은땀까지 난다. 한꺼번에 몰아부치니 뭐라고 대꾸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 죄송해요. 그렇지만 저두 언제까지나 이런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지낼순 없잖아요. 제대로 된일을 해야죠..."
난 연신 마리씨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말을 꺼냈다.
" 그래. 보원이도 자기 인생계획이 있는거데 우리 맘대로 붙잡을수 없지...
보원이가 우리 노예도 아니구... 안그래?"
역시 형수씨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내편을 들어주다니...
갑자기 그만 두는건 미안하지만 눈치 안보고 형수씨를 만난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진다. 이런 내 모습을 세일이가 보았다면 한심하고 정신나간 아이라고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워낙에 보수적이고 범생이니까...
" 걱정마세요. 여기 새사람 구할때까진 있어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죄송해요. 정말정말 죄송해요 원이어머니...'
그말 한마디에 굳었던 마리씨 얼굴이 그나마 좀 풀어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