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을 하시겠어요?"
나는 가위질에 짤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반백이 되어가는 얼굴이 거울 속에 앉아있었다.
가랑잎 날리는 간이역
어머니의 손을 놓으며 청년은 그 역을 떠났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반백의 신사가 그 역에 내렸다.
텅 빈 역에는 옛 추억이 맴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어머니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린다.
흰머리의 어머니를 뒤로하며 떠나던 날.
가랑잎처럼 흔들리던 어머니의 눈시울이 눈부셔 매정하게 고개돌려 기차에 오르던 날도 오늘처럼 가을이었다.
나의 머리를 짜르는 이발사의 가위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앞 뒤로 돌아가는 날카로운 쇳소리는 하얀 머리카락을 자꾸 토해놓고 있었다. 흡사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짤려 나가는 것 같았다.
삼 십 년전에 간이역에서 날리던 어머니의 흰 머리가 아닌가......
가을 햇살에 축 쳐진 호박잎 달린 담을 돌아서며 청년은 소리질렀다.
"엄마~ 나 취직되었어. 서울회사에서 올라오라고 연락이 왔어."
빨간고추를 마루에 잔뜩 늘어놓고 꼭지를 따던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청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청년이 내민 입사통지서를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다음날 읍내로 나간 어머니와 청년은 새 양복을 샀다. 어머니가 시집 올 때에 가지고 온 낡은 장롱 속에 깊이 모아 두었던 꼬깃한 돈을 내미는 어머니의 손 매듭이 무척 굵어 보였다. 몇가지 옷을 더 사고는 시장 뒷골목의 식당에 들어섰다.
청년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활기찬 회사생활을 상상하며 지껄이는 자식 앞에서 어머니는 지긋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 날밤에 잠자는 청년의 머리맡에서 어머니는 다리미질을 하고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의 옷깃을 날카롭게 세우기 위해 두 손으로 다리미를 꼭꼭 눌러 문질렀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청년의 속옷 위에 어머니가 다린 옷이 가지런히 놓였다. 혹시 빠진 물건이 없나 둘러본 어머니는 이불을 끌어 청년의 어깨까지 덮어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멀리 간이역이 보였다.
가로등만 횡하니 켜진 그 곳을 바라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부엌으로 들어선 어머니는 아침 일곱시 열차로 떠나는 아들을 위하여 미리 아침상을 준비했다.
"약간 갈색이 도는 약으로 염색하시면 젊어 보이겠는데요."
이발사는 가위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나는 씩 웃으며 고개 저었다. 거울에 비친 하얀 내 머리 위로 어머니의 흰머리가 스쳤다.
간이역에는 어머니와 청년이 서 있었다.
어머니는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회사에 입사하면 웃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며, 동료들에게 미움받지 않게 처신을 잘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끼니를 거르지 말며, 건강을 조심하라고 재차 당부하였다.
철길 끝에서 기차의 모습이 보였다.
지축을 흔들며 들이닥치는 기차의 굉음은 빨라지는 어머니의 가냘픈 목소리를 덮었다. 양복 넥타이를 어설프게 바로 잡으며 기차에 오르는 청년의 뒤에서 어머니는 모든 일이든 조급해 하지 말고 침착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던졌다.
텅 빈 간이역에 서 있던 어머니.
서서히 움직이던 창가에서 손을 흔드는 어머니는 가랑잎 처럼 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청년은 간이역을 떠났다.
기차의 꽁무니가 산길을 돌아서 사라진 후에도 어머니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돌아서며 손을 눈가로 올렸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이발사는 나에게 씌웠던 하얀 까운을 벗기며 말했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거울 속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떠나는 청년에게 말을 계속 되풀이 하던 어머니였다.
너는 아비를 닮아서 성질이 급하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옷이 꽤재재하면 남들이 눈살을 찌푸리니깐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 한다. 아침밥은 꼭 먹고 출근해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다.
나는 빗을 들어서 머리를 빗었다. 가랑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별의 눈물을 당부의 말로 토하던 어머니가 거울 속에 서 있다. 경음을 울리는 열차가 천지를 흔들며 역으로 들어선다.
반백의 신사가 기차에서 내렸다. 텅 빈 간이역.
눈물이 바람처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