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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꽃 핀 집

참돌 |2003.08.14 12:11
조회 170 |추천 0

우리 집은 정원이 넓다.

마당도 넓다.

집도 옛 기와 집이지만 크고 멋스럽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은 이 마당을 채우고 집을 채울만한

사람이 많다.

우리 식구래야 나와 6학년 딸 아이, 그리고 3학년 아들이 전

부다.

그러나 아침이 시작되자 마자 우리 집엔 사람들이 들 끓는다.

 

한 울타리 안에서 사는  혜슬네 네 식구와 아가씬지 아줌마들

인지 모르지만 저녁에 나갔다 아침에 들어오는 우측건물의

여자들 말고도 대문이 닳을 지경으로 사람들이 많이 온다.

 

가장 먼저 우리 집 대문을 여는 이는 대체의학의 한 분야인 카

이로프락틱 닥터인 미스터 진이다.

그는 나와 아주 절친한 친구인데 늘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면 우

리집에 놔 두고 간다.

점심을 우리 집에서 먹기 위해서 이다.

 

그 다음엔 조 회장님이라 불리우는 나와 함께 일을 하는 동네의 동

생이다.

이 친구는 늘 소리없이 대문을 열고 들어 와 헛기침 한 번 없이 한옥

의 마루에 털썩 주저 앉으며, 길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형님."하면 그게 아침 인사이고 출근 도장이다.

 

그러나 우리집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은 바로 이 사람들!

3학년 우리 아들 친구 재만이가 1학년 짜리 귀여운 여동생을 데리고

쪼르르 대문 안으로 들어 선다.

"재만아!

아침 먹었냐?"

"아니요."

"왜 아직 아침을 안 먹었어?"

"엄마가 아직 안 차려 주셨어요."

"그래. 그럼 우리하고 같이 먹자꾸나."

"네."

이 아이는 너무나도 착하고 귀엽게 보이는 침팬지와도 같다.

얼마나 순박하고 사랑스러운지 남자인 나로서도 우리 아들 은성이와 함

께 아예 우리집에서 영원히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 아들 녀석은 생기거와는 달리 영 개구장이고 말썽꾸러기라서

보통 골치가 아니다.

 

두 아이들은 만났다 하면 축구공을 가지고 마당을 쓴다.

때로는 옆집으로 넘어 가기도 하고 너무 시끄러우면 야단도 맞지만 언제

야단을 맞았냐 싶게 돌아 서면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 깔깔대고 웃으며 쟤

들의 일에 열중하곤 한다.

 

재만이의 동생 인정이는 늘 웃는 얼굴이다.

어젯밤에 마라톤 연습을 하러 향토문화회관을 갔는데 거기에 따라 와서도

딸 아이와 놀면서 내내 까르르르 웃고 있었다.

 

지금도 딸 아이와 몇 몇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들려 오는 소리는 그 아이

의 말보다 "헤헤헤."하고 웃는 소리가 더 많이 들려 온다.

 

그 다음엔 카이로 닥터 진의 두 아이들.

하나는 2학년 딸이고 하나는 1학년 아들이다.

딸 현정이는 교회에서 율동을 뛰어 나게 잘 하고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

지 동생이 괴롭게 할 때는 로켓펀치를 가끔 구사 하기도 한다.

남동생인 동현이는 살아 있는 곰돌이다.

행동도 느리고 말도 느리고...

한 마디로 모든게 느린 아이다.

짱구처럼 큰 머리를 이기기 힘들 때가 가끔씩 보이는 아인데, 그렇다고 동현

이가 모자라는 아이라고 생각 한다면 큰 오산이다.

뛰어난 집중력, 철저한 예의범절, 그리고 착한 마음씨.

난 동현이를 늘 자주 감싸 주는데 이 녀석은 교회를 가기만 하면 내 옆에 와서

앉는 통에 아빠를 헷갈리게 보이도록 한다.

 

딸아이의 친구들이 방학전에 우리집 마당을 채웠었다면 지금, 정원에 예쁜 배롱

꽃이 피어 있는 순간은 전혀 새로운 친구들의 놀이터이고 공부방이며 새로운 에

너지의 분출구이며 생산장소가 되고 있다.

 

정원 한 켠에 심어 놓은 깻잎을 따고 있는데 매미가 내 곁에 와서 "포르르..."하더니

아니다 싶었는지 휙 돌아서 배롱나무에 앉는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조심스레 다가가 매미를 잡아서,

"얘들아! 매미 한 볼래?"했더니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 온다.

"은성이 아빠!

제가 한 번 잡아 볼께요."

재만이가 불쑥 나오더니 매미 날개를 잡으려 한다.

"아니야.

여기 몸통을 잡아야 매미가 손송을 입지 않는단다."

재만이가 몸통을 잡았는가 싶었는데 잽싸게 매미가 달아나 버린다.

"이그!

놓쳐 버렸네..."

멋적은듯 재만이가 머리를 긁적인다.

"괜챦아.

또 다음에 잡자."

 

녀석들은 이제는 뽀르르  방으로 들어 가더니 컴퓨터 앞에 매 달린다.

"얘들아!

온라인 게임만 하지 말아라.

요즈음 바이러스가 극성이니 말이다."
"아빠.

걱정마.

우리가 그런것도 모를줄 알아?"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아들 녀석이 말하며 무슨 게임인지는 모르지만 실

행시켜 놓고 저희들끼리 킥킥 거리며 웃는다.

 

마루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게임을

하는데 상황 파악이 빨리 안 된다.

 

이 집을 들어 오면서 많이 망설이고 걱정도 됐었다.

하지만 정원의 나무들을 대충 전정을 하고 잡초들을 제거하고, 뒷 터에는

열무와 쑥갓을 뿌리고 콩을 조금 들이고 나니 집이 좀 폼도 나고 사람사는

맛이 나더니 급기야 꼬마 손님들이 들라거리면서 자칫 옛 정취만 풍기고 있

을 오래된 기와집이 생기가 넘치는 곳으로 변해 있다.

 

아직 밤이면 세 사람만이 남아 오봇한 기운이 감돌지만 햇님과 함께 시작되

는 낮에는 늘 생명이 활짝 열리는 공간이어서 난 가난한 중에 감사를 드린다.

 

언젠가 오실 님이 어디메쯤 와 게시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매일의 시간을 아름

답게 채워 가다 보면 님과의 만남 또한 배가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배롱꽃이 이제 한 껏 멋을 부린 정원에 더 많은 꽃들이 채워 질 때면 더 많은

아름다운 이들이 이 집을 찾아 사랑를 나누어 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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