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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한다.***

질경이 |2003.08.15 09:52
조회 542 |추천 0

 

 

 

***나는 사랑한다.***

 

 

죄도 없이

머나먼 알래스카에서

유배를 떠나와, 해저터널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는 대게의

집게발을,

 

퇴화의 길만 남았으나

위급한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방패막이 자존심을,

나는 사랑한다.

 

끝도 없는 광활한 바다를 두고

좁디좁은 수족관에서

홀로 자라 해파리가 되고

홀로 늙어 죽어가는 *에피라의 현란한 독성을,

나는 사랑한다.

 

키 작은 다이버와

장난이 하고 싶은 청년, 푸른등거북의

경계할 필요가 없는 자유의 땅에서 짧지 않는 긴 목 빼고

유영이 보장된 자유로운, 장난기마저

나는 사랑한다.

 

혼자서는

생존은 꿈도 못 꾸는

빨판상어의 공생마저 기가 막히게 부러운 나는

그 뻔뻔함 마저, 그 변죽마저

나는 사랑한다.

 

달빛이 창틀에 걸렸고,

창틀 그림자 계단에 걸렸고

생각도 계단에 걸려

발목을 접질렸다.

 

아파 동동 구름도 잠시,

나머지 계단을 다시 내려와야 하는

내 열정을,

나는 사랑한다.

 

강자라는 이유로 깐죽거리고 촐랑대는 허세 앞에

수양버들의 부드러운 강함을 사랑하고,

 

한두  번의 시도에 절망하는 현세의 상심 앞에

십여 년을 넘게 지속하면서도 잃지 않는

섬세한 인내를 사랑하고,

 

불의에 파르르 떨어야 하는

예민한 정의를

나는 사랑한다.

 

홀로 언 땅위에 서서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부자의 가난한 마음에

따뜻한 미소로 안내할 수 있는

 

가난한 당당함을

나는 사랑한다.

 

 

 

*에피라: 어린 해파리를 칭해서 '에피라'라고 한대요,

 

글/이희숙

 

 

<해운대 아쿠아리움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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