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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아웃사이더인생...... 내마지막 사랑

몽택 |2008.01.24 00:48
조회 3,324 |추천 0

 

 

 흠 ... 적다보니 이렇게 길어졌군요 한 10년 됬나

 

 제가 다닐적 고등학교때 유명한 전설이었습니다.

 

 

 

4년전 그날

 

 

 

 

 


몸이 찌뿌둥하고 유난히 왼쪽눈이 아팠던 그날 오후.


비가 내렸던 걸로 기억해.


날짜는 글쎄. 9월1일이였던거 2일이였던가.

 

 

아.이쯤에서 잠깐 밝혀두지만 나 그때


떠돌이 거지나 마찬가지였거든.


그래 떠돌이 거지.

 


잘곳이 없어서 얼룩고양이처럼 잔뜩 몸을 움추리고.


이따금 아무남자한테나 따라붙어 밥 한끼 얻어먹기 위해 때묻은 얼굴로


베시시 웃어보이던 떠돌이 거지.

 


하지만 잠을 잔다거나 하진 않았어.


그건. 어렸지만 내 딴에 가슴속 깊이 세워둔 철칙이였어.


그것도 그래. 나이가 14살이였으니까.

 

어리잖아.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대꾸하잖아 이렇게.

'그래.넌 어리구나.'

어리구나.어리구나.

 


키스와 섹스의 차이를 충분히 아는 그 나이가.


뭐 어리다고 말하면 어리게 되는거겠지.


어쨋든 이 얘긴 접을께.

 


음.그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전이 되나.


헤헤 웃겨 세월도 참 빨라..


엿이야.엿이나 먹으라고 해.

 

아득하고 아득했는데 말야.그때 난 영원한 14살로 남을거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말야.


뭐.지금 역시 내가 열여덟살로 평생 남을것 같긴 하지만.

 


음..


이름이. 운정 중학교 였어. 예쁜 이름이지. 그애만큼..


그날도 어김없이. 난 아파오는 왼쪽눈을 연신 어루만지면서.


그 예쁜 이름의 운정중학교의 정문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잠시후.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하나둘씩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고.


난 두근대는 맘으로 그 아일 기다렸어.


나의 작은 천사를 기다렸어.

 

그리고. 손가락으로 열을 채 꼽기 전에. 그아이 목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지.

 

 

 

"설이야!!!!!설이야!!!!!!"

 

 

입가에 미소가 번지던 그시간.


지금도 잊을수가 없어.몇몇 아이들은 혐오스런 시선을 내게 던지며


놀려대기 일쑤였지만. 그런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어.

 

 

정말.


윤영이가 내 옆에 있어주는한. 그것쯤. 한여름에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세수하는것보다도 훨씬 더 쉬운 일이였어.

 

 


"윤영아.!!!!!나 여기!!!"

 

 


"응응.!!있지 내가 늦었어.!!아휴 바보같은 국사 선생님 자꾸 안끝내주고 그래서."

 

 

"아냐.아냐 나도 방금왔어.!!^-^"

 

 

"그래.그럼.!!

가자.오늘 반찬.오이무침이랑 계란볶음밥이다.!!"

 

 

"좋아.나 그거 젤 좋아합니다.!!"

 

 

"오렌지 쥬스도 있어용.^ㅇ^"

 

 

쇼핑백을 달랑달랑 흔들어보이는 윤영이랑 함께.


딱 세달하고 12일전부터 그래왔듯. 운동장 구석에 자리한


작은 나무 벤치로 달려갔었지.

 

 


우리 그렇게.


축구하는 남자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기분좋게 밥을 먹었어.


윤영이네 엄마 음식솜씨는 정말정말 좋았다.


굳이 오이마녀랑 비교하자면. 갑판이 무너져가는 초라한 돛단배와


태평양을 횡단하는 호화유람선이였어.

 

 

 

 

"냠.맛있어."

 

"오늘 내가 특별히. 많이 많이 싸달라고 했지!!"

 

"웅.최고야 최고"

 

"토요일이잖아. 토요일은 특별해야돼 너도 알지?"

 

"응.!!"

 

"나 그리고 연습 많이 했어.!!"

 

"뭘..?"

 

"니가 가르켜준 노래.이젠 많이 늘었어.!!"

 

"좋아 해봐."

 

"흠흠.."

 

 

 


망설이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던 윤영이.


그런 그아이의 순수함과 솔직함이 난 정말로 좋았어.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투명하고 작은 빗방울처럼.

 

 

"네가 남긴 작은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작은 개구리마저 구슬프게 날 위로해주던 길.♬

 

 

"아냐 틀려."

 

 

난 그런 면에 있어선 꽤 단호한 성격이였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왜.?왜 틀려?"

 


"음이 다 틀린데. '추억을' 에서 그렇게 목 떨어선 안돼.

떠는건 작은개구리 다음에 나오는 구슬프게야."

 


"도통 모르겠어. 아무리 해도. 네가 다시 해줘."

 

"음.."

 

 

 


눈앞에 있는 맛있는 밥을 얼른 먹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았지만.


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등을 꼿꼿히 폈어.


그건 윤영이의 부탁이였으니까.

 

 


""네가 남긴 작은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작은 개구리마저 구슬프게 날 위로해주던 길.♬


목놓아 울다 네가 다시 내게 돌아와주길.


진동없는 작은 상자 힘을내 부숴져버리길.♩"

 

 

눈을 감고 꿈꾸듯 내 노랠 들어주던 윤영이.

 


옆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던 몇몇 여자아이들도.


호기심어린 얼굴로 이쪽을 보다가.


슬그머니 다가앉아 내 노래를 감상했지.


그리고 마지막 구절이 두번쯤 되풀이될때.

 


'짝짝짝짝짝'

 


늘 그래왔듯 씩씩한 윤영이 박수소리가 내 노래의 끝을 알렸고.


내가 허겁지겁 계란 한조각을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을때.

 

 

 

 


"그런데 나쁜소식이 하나 있어요."

 

빨갛게 양념된 오이 하나를 입에 물고. 그앤 안타까운듯 고개를 저었었지.

가슴이 철렁함을 느끼면서. 나는 목구멍에 걸린 계란을 힘주어

삼키곤 그앨 보았어.

 

 


"뭐냐면."

 

"..응.."

 

"뭐냐면..응.."

 

"응"

 

"오늘 나.너랑 놀지 못할거 같아."

 

 


이런.넘어간 계란이 소화가 되는둥 마는둥.


토요일만이 우리들 유일히 함께 할수 있는 날이였는데.


그때 내 기분은 마치 앞으로 남은 토요일을 바닷속으로 몽땅 던져버린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였어.

 

 


"왜..?"

 

 

힘들게 물었지.


그러자 윤영인. 난생 처음 보는 수줍은 표정으로.


어깨를 조금 넘는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나의 시선을 피하더구나.

 

 

이번엔 좀더 크게 되풀이된 그 말.

 


"왜..?"

 


그러자 좀더 작아져 웅얼대던 그말

 


"남자친구.."

 

"뭐..?남자친구..?"

 

"응..남자친구야.."

 

"남자친구...?"

 


내가 다시 한번 힘주어 물었을때.


윤영이의 말속에 등장한 그 빌어먹을 남자친군지 뭔지 하는놈이.


정말 꿈처럼 내 앞에 나타나 버렸어..

 

 

 

 

 

 

"병신 한참 찾았는데."

 

 

병신..


이라는 윤영이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충격적인 말과 함께.

 

 

 

난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그놈을 보았지.

 


나보다 반뼘정도 커보이는 키에. 교복마이 대신 헐렁하게 걸친


점퍼. 아무것도 묻히지 않은 까만 머리.


적당히 그을린 작은 얼굴. 우스꽝스럽게도 거꾸로 달려있던 명찰.


그리고. 까만 물감과 회색 물감을 섞어 붓에 뭍힌 다음.


힘주어 박박 칠한것 같은 짙은 두 눈.

 

 

 

졌다.........


라는 생각에. 난 공격적인 표정을 하고 그앨 보았어.

 

 

 

그러자 그애 아주 잠깐동안 멈칫한 얼굴을 한채 나랑 윤영이를 번갈아 보았지.


왜냐하면. 우리둘 좀 많이 닮아 있었거든.


처음에 윤영이랑 친해진 기계가 그것이기도 하고 말야.

 


그리고 놈 옆엔 농구공을 튕기며 서있던 마른듯한 남자아이도 하나 있었지만,


그 아이의 숨막히는 짙음에 눌려서 마치 물에 불린 종이 인형처럼 보였었지.


그렇게 난 잠깐 종이인형을 바라보다가, 다시 놈을 향해 눈을 치켜떴어.

 

 

 

 


"뭘봐.?"

 

"....."

 

"내 친구한테 그러지마."

 

 

윤영이의 조급한 목소리가 우리둘 사이를 가르는 동안.


옆에 있던 종이인형은 무언가 말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눈치였어.


자꾸 내 쪽을, 흘깃흘깃 대면서 말이지.

 

 

 


"어쨋든 잘됐다. 안그래도 설이.소개해주려고 했는데.

설아 봐 이쪽은 내 남자친구.."

 


"됐어!!"

 


"뭐..?"

 


"됐다고."

 


그놈이 말한거였어.내가 아니라 그놈이.

 


"너 왜그래 정말."


"배고파!!"


"응?"


"나도 배고프다고."


"........그게..갑자기..."

 

 


그때 종이인형이 끼어들었지.

 

 

"니가 아까 도시락 들고 학교 나가길래. 이 새낀 니가 자기랑 같이 먹는줄 알

고 따라..압.."

 


순간.윤영이 남자친구가 종이인형의 입을 뒤에서 막아버리고.


윤영이는 어쩔줄 몰라하며 난감해 하는 표정이였지.

 

 

 


"그랬어? 미안해.미안해 난 몰랐어.미안해."


"친구라고.??"


"응....내 친구야.."

 

 

 


다시 놈의 시선은 나를 향했고, 똑바로 바라볼수 없는 그 눈으로 내 얼굴을 한참 뜯어보았어.


젓가락을 든 내 손이 굉장히 무색해질만큼 말이지.


빤히 내 얼굴을 보다가.


손등을 자기 입가 왼쪽에 가져가던 놈.


난 무의식중에 내 입을 닦았고,


아니다 달라. 오이에 묻어있던 양념이 그대로 손등에 묻어나왔어.

 

 

한마디로 참.

수.치.스.러.웠.지.

 

 


"더럽게.."

"....."

 

 


당시 내 나이 또래 남자와 말해본적이 없었던 나는.아무런 대꾸도 안하고


그저 쏘아보기만 했는데. 놈은 그런 내가 우스운듯


고개를 돌린채 보일듯 말듯 씨익 웃더구나.

 

 

젠장.

지금 생각해도 한마디 욕 해주지 못한게 너무 후회돼.

 


그리고.

 

 

"밥 먹고 와.먼저 간다."


놈은 순순히 종이인형과 돌아서더라.


"응.교실 가있어.금방 갈게."

 

 

 


대꾸없이 멀어져가는 놈과. 옆에 찰싹 달라붙어 무언갈 소근거리던


종이인형.


순간 난 홍당무 마을중에서 가장 빨간 홍당무로 선발된 것 처럼


얼굴이 화끈거렸고,


괜시리 끌어오르는 부아의 화살표를. 애꿏은 윤영이에게 돌리고 말았지.

 

 

 

"저런애 질색이야.너 남자보는눈 형편없어."

 

 


"아냐..원래 저렇지 않은데..미안..미안 설아.."

 


"...형편없어 저애.."

 


"알고보면 착해.정말 알고보면 착한데.."

 


천사처럼 착한 윤영인 모난 내 심술을 달래려고 쩔쩔매기 시작했고,


내 부루퉁한 입술이 조금씩 들어가고 있을때..

 

그때..

 

 

 

 

 

 

 

 


"떨어져."

 

 


머리위로.차게 얼어붙은 한마디가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어.


'떨어져'란 말처럼. 정말 떨어져버리고 말았어.


올려다 볼 용기마저 상실케 하는 아무 감정없던 목소리.

 

 

윤영이는 당황한듯 놈을 보았고.


나는 그 지긋지긋한 직감으로. 습관처럼 몸을 또 움츠려 버리고 말았지.

 

 

"박윤영한테.떨어져."


"너 왜그래 정말!!!!!!!!!!!!!!!"

 

 


윤영이가 벌떡 일어섰을때.


그애가 낮은 톤으로 지껄인 한마디.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윤영이와 단 일분도 함께 하지 못하게 만든.


나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친구를 영영 앗아가버린 한마디.

 

 


난 지금도 잊지 않아.


4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생각하면서. 이를 갈고 . 마음을 갈고. 복수를 갈고.


다시 한번 마주치면 .망설임없이 죽여버릴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물론 중간에서 떠벌린 종이인형도 있었지만.

그렇대도. 나의 친구앞에서 당했던 그 모욕을.

꼭 배로 갚아주리라고. 그 한마디 . 끔찍한 그 한마디.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

 

 

 

 

 

 

 


"걸레야"


"뭐!!!!!뭐라구!!!!!!!!!!"


"걔.걸.레.라.고."

 

 

순간 싸한 경적이 감돌았고.

윤영는 할말을 잃은채 나를 바라보더구나.

 


나.? 난 어떻게 했느냐고..?

 

 


달렸어.

달렸다구.

시야를 가리는 눈물을 마구 훔치면서. 앞을 향해 무작정 달렸단 말이야.

뒤에서 날 부르는 윤영이 다급한 목소리를

피나는 가슴밖으로 철철 흘리면서. 그렇게 쉬지않고 달렸어.

 


당장 느낀 수치와 분노보다.다신 윤영이 앞에 나타날수 없다는

막막한 현실에 몸을 던지면서.

울고 또 울고.

달리고.또 달리고 말았어.

*******************************************************************************

뚜우우우..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우....

 

 

"설아!!"


음..냐..음..


"한설!!"


= _=...


"전화!!전화 오잖어!!"

 

 

13번 언니의 커다란 고함소리에.

헉 - 0 -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어쩔수 없단듯 혀를 끌끌 차는 13번 언니의 쌔빨간 입술이

눈앞에 포착되고.

이어서. 탁자위의 작은 물고기 모양의 시계를 보고 5시임을 확인한뒤.

 


"아..안받어.."


"야아!!받어!!"


"그새끼야. 5시잖어."


"그럼 어떡해!!마냥 안받어?지지배야!!너 그러다 짤려.!!!!!-0-"

 


그새낀데 이거.

 

울상이 되서 전화기를 바라보자. 13번언니는 당장 자기가 받기라도 하려는

 

자세로 엉금엉금 책상위에 기어 올라오려 했고.

 

나는 화들짝 놀라 한손으론 13번 언니를 저지하며 또 한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벌써 이게.

112번째.

 

 


"네 12번 상담원 연결 되었습니다."

"......신발........"

 


어김없이. 그새끼의 첫인사는 욕중에도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한마디였다.


그리고 이미 그 지긋지긋한 '신발' 에 귀딱지가 앉도록 익숙해져버린 나는.

 


"네. 말씀하세요."


..

 

후...

이렇게 돈받고 욕먹는다는것도 참 못할짓이구만.

 

"나..어떡해..."

 

두번째로 놈이 낮게 내뱉은 말은 ' 나 어떡해 '


순서는 정해져있다. 한번도 틀린적 없이.


나는 입모양으로 다음 놈이 말할 대사를 살그머니 쳐보였고.


13번 언니는 그러지 말라는듯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렴 어때.


어차피 이자식 사이코인걸.

 


"죽었어..죽었어.."

 

"네.그렇습니까.-_-."

 

시큰둥한 목소리로 한쪽손으론 귀까지 후벼가며. 백퍼센트 들어맞은 나의 입모양을 칭찬해


주었다.


뭐.나라고 첨부터 이랬던건 아니다. 분명 .. 음.. 아마 처음 한 15번까지는..

 

"죽다뇨!!!!!!누가요!!!!누가 죽었습니까!!!!!!!!-0-!!!!!"


하며 난리 법석을 떨었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 전화 상담실은 한바탕 난리 부르스가 일었었고.


13번 언니가 빨간 입술을 오무리며 고함을 치던 그 모습도 결코 잊을수가 없다.

 

 

"꺄아아아아악!!!!!!!꺄아아아아아악!!!!!!!!!!!-0-"

 

이렇게.-_-.

 

 

 

그때 놈은 말했었다.

 


"소리 지르지마 병신들아!!!!!!!!"

 

그래.

그 병신소리를 거듭 15번 듣다보니. 이젠 놈의 말엔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보여선

안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것이다.

어쨋든 난.

이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놈의 말을 외운탓에, 이젠 다음에 나올 대사에도 아무런 반응없이

평행을 유지할수 있었다.

 

 

 

 

"충주가..많이 머냐.."

 

"아니요.많이 멀지 않습니다만."

 

"충주가..걔 할머니네 집이 아닌데.."

 

"아.예.-_-"

 

"....왜....거기서 죽었어.....?"

 


알쏭달쏭.


이 자식은 늘 이랬다. 하루가 지나면 그에 따른 진전이 있어야 하는건데.


이 자식은 어떤 한 날짜에 완전히 짱박혀서.


심지어 머리카락 한가닥 마저도 꽁꽁 묶어놓고.


그자리에 그대로 웅크린채. 다른 어떤 말은 전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 죽었을까요. 붕어빵이 폭발해서 .?"


"죽는다..."

 

참고로 농담은 전혀 통하지 않는 놈이였다.-_-

 

 

".....왜.....우리.....형......옆에서...죽었어......?"

 

이 부분부터 조금 슬퍼지긴 했다. 그래서 나또한. 이부분부터는 어떤 농담도 말장난도 하지 않


았다. 다만 아무말없이 입을 꾹 다물고.


맞은편에 앉아 화장을 고치고 있는 13번 언니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보일뿐.

 


"왜...우리..형 옆에서..죽었어...?"

 

또다시 되풀이되는 물음.

 

"죽어서 미안합니더.."

 

해서는 안될 말임에도. 나는 아무 반응없는 13번 언니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이렇듯 사투리 섞인 억양으로 수화기쪽을 향해 나즈막히 속삭였고.


놈은 원래대로라면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어야 했는데.


나의 느닷없는 조크에 굉장히 화가 났던지.


한참을 시근덕 시근덕 거리다가.


13번 언니가 바르고 있던 립스틱을 툭 떨어트릴만큼. 굉장한 고함을 질러냈다.

 

 


"왜 혼자 죽었어!!!!!!!!!!!!!!!!그새끼는 왜 안데려갔어!!!!!!!!!왜 그새낀 왼쪽다리 하나만 부러트렸

어!!!!!!!!!"

 

 

.....멍.......해지고..있었다..


고함엔 분명 눈물도 몇그람 섞여있었고, 더군다나 , 요 몇년간 꾹꾹 숨겨온 나의 어둡고


습한 성격과 너무도 닮아있는 놈의 목소리에..


잊어버렸던 까만 한설을 찾은것처럼..


온몸이 작은 멍자국을 내면서 멍..해지고 있었다.

 

 

 

".....난......"

.........

............

 

"난......너한테..대체......."

 

 

그렇게. 전화는 끝이 났다.

5시 12분.

10분이면 기계처럼 뚝뚝 끊어지던 그 전화가. 오늘은 나의 한마디로 인해 2분 더 연장된

것이다.

 


"설아!!무슨일이야!?응?!"


"........"


"한설.!!뭐라구 한거냐니까?!다리를 부러트려?니 다릴 부러트리겠대?!"


"시끄러워!!!!!!!!"


".................설아........-0-......"

 


.......이런..

실수해버렸다.

몇년간 완벽히 무장해온 내 밝고 코믹한 모습이. 그놈의 고함으로 인해. 아주 잠깐.

짜디찬 파도에 습격받은 작은 모래성 처럼.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럼 안돼. 모두 날 떠난다. 이렇게 되면 난 또 외톨이가 된다.

허겁지겁.

당장 주워 담아야해.

 

 


"헤헤.속았지요-0-"

 

"어휴..뭐야..깜짝이야..난 또.."

 

"헤헤.-0-.이새끼 진짜 또라인가봐."

 

"야 너 조심해 정말.언젠가 니네집 침대밑에서 불쑥 튀쳐나올지두 몰라"

 

"우웩.생각만 해두 우웩이다"

 

"우웩이 아냐.위험해.위험한거라구 그건."

 

 


-_-.위험.?


내가 너무 태평한건지. 아직까지 이놈한테서 위험하단 느낌 받은건 한번도 없었는데.


그냥 단지.


위로해주고 싶은것. 얘기해보고 싶은것.


그래. 그것뿐.

 

 

..

 

 

..

 


그날 일이 끝나고 퇴근하는 길은. 여느때보다 참 길었다.


날씨가 추워서 일까.


어쨋든. 잔뜩 얼어붙은 몸을 통통 튀기며 2차 알바인 3.4.호프 앞에 도착했을때.


내 거무튀튀한 얼굴은 새빨갛게 얼어붙어 있었다.

 

 

 

"우헤헤헤-0-우헤헤헤-0-니 얼굴에 군밤 튀겨도 되겠다.우헤헤.-0-"


"뒤질래..-_-"


"야.넌 씨꺼먼스가 왜이렇게 잘 빨개지는거냐!?그런건 백옥같이 흰 애들이나 되는거야!!"


"당장 안다물면 니 입에 내 머리통 쑤셔넣는 수가 있다."


"그건 안돼지.-_-."

 

 

 


\ 3.4 호프 주방.

 

 

막 도착해 앞치마를 두르고 파인애플 썰기에 한창인데. 서빙을 하다 말고 기웃거리며


나를 비웃고 있는 찬영이.


이새끼는 꼭.


내가 칼질할때만 이 지랄 떨어서. 칼든 내 왼손에 강력한 계시를 내려준다.

 


"너 근데. 참 기집애가 칼질 못한다.응."

 

 

부들부들.


잘게 썰리는 파인애플이 점점 찬영이 얼굴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갖고 시집은 가겠냐. 애가 여자답길 해. 요리를 잘해. 그렇다구.."

 

"너.서빙.안하니.-_-.?"

 

"응.손님이 없다 야.월요일이잖냐 우헤헤"

 

"그럼 가서. 청소나 즘 할래.?"


"야 청솔 내가 왜 하냐?형호 형 있는데.!!"

 

"금 입을 좀 닥쳐주든가!!!!!!!!!!!!!!!!!!!!!!!!"

 

"-0-..아이고..무서라.."

 


"왜 자꾸 칼질할때만 나타나서 내 염장을 돋구는거야!!!!!!!너때문에 마름모꼴로 썰어야 되는거

채썰어서 내가 얼마나 쿠사리 먹구 있는지 알기나 해!!!!!!!!!!-0-"

 


"..알았다..가면 될꺼 아니냐..-0-..입 찢어지겠네..입 찢어지겠어.."

 

 

칼든 내 왼손이 10cm쯤 위로 솟구치는것을 포착한 찬영인.


서빙하던 접시를 싱크대위에 내려놓고, 두손을 탁탁 털며 주방을 나갔고,


덕분에 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열심히 칼질에 몰두할수 있었다.


그런데.

 


"설아.설아."

 

"............너........정말............"

 

"그게 아니라.!!누가 너 찾아왔단 말이야!!"

 

"..날..?"

 

"그래.!!!"

 

"누군데.?!"


"남자야."

 

"남자?"

 

"응."

 


남자가 왜 날 찾아와?


아니.그보다 날 찾아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렵다.


난 분명 친구도 하나 없고. 게다가 지금은 혼자 살고 있고. 가족도 한사람 남김없이


죽어버렸고.

 

 

그런데 누가?

 


"나가보라니까."

 

 

..이상하네..


반가움보다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내심 찬영이가 내 뒤를 따라와주길 바라면서.


매니저 오빠에게 허락을 받고 입구를 향했다.

 

근데 이 문드러질 김찬영 새끼는. 딴때는 찰찐드기처럼 내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더니.


이번만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는듯.


카운터쪽에 앉아 날 보며 베시시 웃고 있었다.-_-.

 

 

검은머리 파뿌리 될 그날까지 내 인생에 한톨도 도움 안될새끼..

 

 


그렇게 입으론 투덜대고. 가슴으론 두근대고 하면서.


차갑게 얼어붙은 왼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넣은채


문을 활짝 열어제꼈을때.

 

 

앞에 마주한 낯익은 얼굴 하나는


몇분전 추위에 땡땡 얼어있던 내 얼굴을


이번엔 분노로 차갑게 굳혀버렸다.

5년간 안봐서 속편했던 저 얼굴을 내가 왜 또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거지..

 

"설아.."

 


그자식 입에서 어떤말이 나올까 두려워. 재빨리 몸을 돌려 문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순간 찌부러진 문어처럼 포개진 찬영이 얼굴이 유리문에 찰싹 달라붙어있고.


헉..


내가 놀라며 뒷걸음질 치는 사이.


그 자식이 내 왼손을 꽉 움켜잡았다.

 

 


"놔..."

 

"외삼촌이..미안하다.."

 

"놔!!!!!!!!!!!"

 

 

행여 찬영이놈한테 들릴새라. 나는 그 자식을 향한 솟구치는 분노보다.


훨씬 더 약하고 묽은 고함을 내질렀고.


그 자식은 거기서 희망을 얻었는지 이번엔 움켜쥔 내 손목에 조금더 힘을 주었다.

 

 


"잘 지냈어.?"

 


"잘 지냈냐구.?"

 


".....그래..."

 


"그거 형식적인 인사야. 아니면 진짜 인사야.?"

 


"...왜그래 정말.."

 

"아니.형식적인 인사면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진지하게 물은거라면 나 역시 진지하게

대답하려고 그래!!"

 

"...진심이다..형식적일리가 없잖아.."

 

 


나는 그놈을 향해 씩 웃어보이고.


잡은 손을 힘주어 뿌리친뒤. 놈 앞에 정면으로 똑바로 서보였다.


그리고. 먼저. 낡은 신발이 신겨진 두 발을 바닥위에 땅땅 굴렸다.

 

 

 

"발부터 시작할까요. 신발은 이래. 3년째 신고 있는건데. 내일이라도 금방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야.!!옷은 설명할 필요 있나 뭐."

 


헤진 남방과 밑단이 다 튿어진 청바지를 물묻은 손으로 가르켰다.

 

 

 

"보이지.?!의류수거함에도 이런건 없을껄.찾기도 힘들꺼야 이런 옷들.대단하지 않어?!"

 

"삼촌은 널 도와주려고.."

 

"아.젤 중요한게 얼굴이구나 얼굴!!^-^"

 

"널 도와주기 위해.."

 


말을 더듬거리는 그자식 앞에 몇년간 무장해온 내 가짜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잘 웃고 잘 지내는데. "

 

 

그리고. 아주 잠깐. 0.1초동안. 원래의 내 얼굴을 들어냈다.


놈은.공포에 질린듯 숨을 스읍 들이쉬더니. 몇걸음 뒤로 물러나 버렸다.


이렇듯.


내 원래 얼굴은 무서웠다.

 

 

 

"이렇게 되버렸어. 그래서 한밤중에 혼자 일어나 거울 보는게. 세상에서 젤 무서운 일이 되버렸


어"

 


"...나도 알아..뉘우치고 있다. 후회하고 있다."

 

 

"그럼 꺼져."

 

 

"...난 널 도와주기 위해 온거야..."

 

 

"대체 뭘로.?뭘로 날 도와줄껀데.??가져갔던 울엄마 보험금 다시 돌려줄래?


아니면 몇년간 집에 가둬두고 나 괴롭힌 그 3년 세월. 죽음으로 갚아줄래?"

 


"널.입양하겠다는 곳이 있다."

 

 

텁..하고 숨이 막혔다.

 


일단 찬영이가 엿듣고 있나 살짝 고개를 돌렸더니.


그놈은 눈치 있게도 이미 자리를 비운뒤였다. 그래서 이번엔. 그자식 향한 적대감을 좀더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열여덟살 먹은 날 누가 입양해.아니면 늙은 호래비한테 팔아넘기기로 했어?돈받고?"

 

"한설!!!!!"

 

"어 내이름 한설!!!!!!!!"

 

"........제발....널 도우기 위해 왔어...예순 두살 먹은 할아버진데..아내도 있고..아이들도 있어..


그런데 네 사진을 보더니..강력히 입양하길 원해..그냥 장난삼아가 아냐.


네 사진 본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전화해서 조른다. 그래서 고민끝에 찾아왔어."

 


"변태영감이겠지."

 


"골프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인데.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어. 대단한 사람이야. 평판도 좋고.


네가 걱정하는거라면 전혀.."

 


"아하..골프모임.."

 

"........"

 

 

"좋다.골프.골프도 치는구나 그쪽.멋지다."

 

 

"...........미안하다.내가 네 앞에서 무슨말을 하겠냐.."

 

 

느닷없는 그 자식의 모습은 날 통쾌하게도 하고, 서글프게도 했다.


허리띠로 내 등짝이며 허벅지를 휘갈기던 그 모습은.


바다괴물이 흔적도 없이 삼켜버린걸까.

 

 


"어쨋든 네가 싫다면.."

 

"연락처 나한테 줘."

 


순간 환히 밝아져오는 그자식 얼굴. 대가가 상당히 큰게 틀림없었다.

 


"그래.그럼.내가."

 

 

똑바로 쏘아보는 내 눈을 피하며. 그자식 허둥지둥 지갑에서 명함 한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고


나는 명함을 받아든뒤 재빨리 문을 향해 몸을 디밀었다.

 

 


"설아...!!"

 

"다신 오지마. 얼굴 한번만 더 보이면. 마름모꼴로 썰어버릴니까."

 


...


......

 


숨을 헐떡이며 가게안에 들어왔을때. 손안에 꽉 쥐어진 명함 한장만이.


꿈같고. 꿈이길 바란 그 자식과의 만남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때맞추어. 스물스물 내 곁으로 춤추듯 다가오는 찬영.-_-.

 

 

"누구야???"

 

"남이사."

 

"너 막 소리지르는거 같던데."

 

"신경 꺼주길 바람."

 

"나쁜년.."

 

"너도 나쁜년."

 

"야!!!!!!!!남자한테 년이 뭐냐!!!!!!!!!!!!-0-!!!!!!!!"

 

"그럼 넌 여자한테 년이 뭐냐!!!!!!!!!"

 

"하이튼 대화가 안돼 한설.!!!!!완전 막무가내야!!!!!!!"

 

"비켜!!!!!나 파인애플 썰꺼야!!!!!!!!"

 

"그래 썰어라!!썰어!!팍팍 썰어라!!!!!!"

 

 


샐쭉하니 삐져 가버리는 찬영일 보고.-_-


위로해줄까 하다가. 내정신도 내 정신이 아니였기 때문에.


다시 앞치마를 스윽 걸고 주방안으로 들어갔다.

 


입양..?할아버지..?중소기업..?


어느 한구석 현실적인 것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자식이 가져온 소식이였다.


그러나. 명함 한장쯤 가지고 있는것도 나쁠건 없겠지.


그래. 사람 일 모르는거니까.

 


쓰레기통을 발로 끌어다가. 그놈과의 기분나쁜 재회를 한번에 떨어내듯 침을 카앗 뱉고.


다시 파인애플을 툭툭 썰기 시작했다.


파인애플이 다섯개쯤 내 손에 의해 동강났을때.


어느덧 시계바늘은 11시를 가르키고. 한산하던 호프집 역시.


점점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설아!!설아!!-0-!!"

 

주방으로 불쑥 고갤 내미는 형호 오빠.

 

"응?"

 

"여기 넘 바뻐.~!!그거 좀이따 하구 너두 서빙부터 해!!"

 

"사람 그렇게 많어?!"

 

"아우 야.아주 미어 터진다.!!월요일인데 왜이래!!"

 

"알았어 그럼."

 

 


서빙이 파인애플 썰기보다 재밌는 일인건 확실하기에. 날렵하게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홀로 나갔다.

 

 

이게 왠걸.-0-.

 

 

정말 사람들이 연못의 올챙이처럼 득실득실.


블루의 노래가 커다랗게 울려퍼지는 호프안엔. 사람들 반쯤이 곤드레 만드레 취해서


온갖 진상을 부리고 있었고.


그들 나이는 아무리 좋게봐주어도 내 동갑이였다.-_-.

 

 

어쨋든.


솜씨좋게 샤샤샥 접시를 받아들고 벨이 울리는곳마다 허겁지겁 뛰어다니는데


정말 쉴틈도 없이 여기저기서 띵동하고 울려대는 벨들.

 


인간들 작작좀 쳐부어들이지!!!!!!!-0-

 


시간이 지날수록 헐떡임이 커질수록 점점 짜증이 치솟아 오르고.

 

저 끝 테이블에서 울리는 벨을 보며 힘들다고 기대오는 찬영일 확 떠밀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줌마 여기요!!"


아줌마..-_-..?


"네네.가요."

 

 

그래요 가긴 간다만. 아줌마.-_-.?


주먹을 불끈 쥐고서. 그래도 미소를 잃지않고 창가쪽 테이블인 10번쪽에 다가섰다.


그곳은 분명 조금은 의문스러운 분위기를 띄고 있었는데..


나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여자아이가.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린채 고개숙인 죄인처럼 훌쩍대고


있었고.


그앞엔. 내나이나. 아니면 나보다 좀 많아보이는 남자아이들 셋이 앉아있었고.


또 아이라인 5cm를 소유한 여자 하나가 중간자리에 떡하니 앉아있었다.

 

 

뭐지.이게 요새 학교에서 하는 물갈이라는건가.-_-.?

 


고개를 갸웃하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손을 까딱해보이는 맨 가생이의 남자.

 


"아줌마 여기요"

 

"근데.저 아줌마 아닌데."

 

"근데요?"

 

"아니요.아줌마가 아니라구요"

 

"그럼 뭐라그래요?"

 

"-_-..네..?"

 

"누나 소리라도 해달라는거에요?"

 

 


너한테 별로 누나소리 듣고 싶지 않다.-_-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얼른 주문이나 하라는듯 계산서위에 볼펜을 가져갔고,


그 자식은, 내 얼굴을 보고 주문할 맛이 떨어졌는지.


맞은편에 앉은 고개숙인 죄인을 향해 버럭 소릴 질렀다.

 


"야.!!!!!!!너 그만짜 이년아!!!!!!!"

 


..거의..조폭 수준을 방불케하는 험악한 목소리.


순식간에 시선이 이리로 꽃히고. 여전히 훌쩍대는 긴머리의 주인공.


분명.뭔가.좋지 않은 일임에 분명한대.

 

 

 


"...은찬이한테..이를꺼에요.."

 

"뭐..?"

 

"은찬이 오고 있어요..그다음 나도 몰라요."

 


"아니 근데 이게!!!!!!!!!!"

 

 


남자가 어이없어 하는 사이. 아이라인 오센치가 재떨이를 탁자위에 탕 내려치고 째지는듯한


고함을 질렀고, 남자아이들은 어이없는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일러?일러봐.응?일러봐.누가 그새끼 무섭다든?그렇대?"

 

"......."

 

 


부들부들 떨려오는 여자아이의 어깨.


약간..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뭐?우리가 니 친굴 때리고 협박했다고?니가 간이 배밖으로 나와서 경찰서가서 그딴말

지껄였냐?"

 

 

...사태파악이 된다...


이놈년들이. 이 아이 친굴 괴롭혔고. 그래서 이아이가 경찰서에 신고했고.


그래서 바로 끌려온거고. 아하.

 


그렇다면........

 

 

경찰서에 신고하자.

 


나는 기웃대는 찬영이에게 눈짓을 해보이며, 카운터에 가서 신고를 하기 위해


침착히 등을 돌렸지만, 때마침 벌어난 소동은 너무도 컸기에 신고버튼을 누르는 그 시간마저도


너무나 부질없는 짓임을 명백히 증명했다.

 

 

 

"너 진짜 제대로 맞아볼래!!!!!!!!!!"

 


옆테이블에 있던 언니가 가느다란 비명을 지를만큼. 위협적인 목소리로 호프 안을 울리는


5센치 아이라인. 이 오센치가 남자들의 우두머리인거 같았다.


그래. 뺨따구에 나아있는 저 반달모양의 상처. 심상치가 않다.


분명 공사판에서 몇백번 굴러본 면상떼기다.

 

 

 

여자아이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에게 호소하고,


아까 외삼촌과의 재회로 본디 내 모습을 조금 의식하고 있던 나는.


분명 그 오센치의 반달모양 상처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망설임없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손에 든 메뉴판 모서리로 오센치의 머리를 콕 찍어버렸다.

 

 

 

정말 조금의 멋도 없는 추접스러운 공격이였다.

 

 

'콕!!'

 

 

.......


...............

 

-_-..............

 

 

그 '콕' 소리와 함께 테이블을 주변으로 잠시동안 정적이 흐르고.


그들은 할말을 잃은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찬영이가 재빨리 나서서 일을 수습하기에는.


이미 사건과 시간은 분명하게 자리잡은 뒤였다.-_-.

 

 

 


이내 오센치의 뺨따구에 힘차게 자리한 반달모양의 상처가 실룩이고,


곧바로 그 누구도 말릴수 없는 대 혼란이 일어났다.

 


"이년이!!!!!!!지금 내 머리에 무슨짓을 한거야!!!!!!!!!!!!!!!!!!!!!!!!!!"

 

 


오센치의 파워는 상상보다 훨씬 기가 막혔다.


말리는 찬영일 가볍게 8번 테이블 기둥이 있는곳까지 내다 꽃더니.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표정한 나의 멱살을 들어 올린것이다.

 

 

그 와중에도 궁금한건.

 

 

"너 아이라인 펜슬로 그렸냐.액으로 그렸냐.-_-?"

 

"야 미친년!!!!!!!!!!!!!!!!!!!!!"

 

"응.?"

 


"너 죽구싶어 환장했어!!!!!!!"

 

"아니."

 

"아니 근데 이게.진짜 뭘 먹구 이렇게 막나와?!"

 

 


예고도 없이 철썩 날아든 싸대기 한대.


남자아이들은 '이제 넌 죽었다' 라는 얼굴로 비아냥대듯 날 바라보았고.


난 이번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오센치의 반달모양이 있는 왼쪽뺨을. 둔탁한 소리와 함께 힘껏 갈겨 주었다.

 

'철썩.'

 

 

그러자 훌쩍이고 있던 긴머리의 여자아이 마저도. 이제 모든게 끝났다는 얼굴로


질끈 눈을 감았고.


아니나 다를까.


남자셋을 등에 업은 오센치는. 입고있던 밍크를 의자위에 거칠게 집어던지고

 

 

"아아아악!!!!!!!!!!!!!!!!!"

 


듣기에도 끔찍한 기합을 넣으며.내 몸 위로 달려들었다.


분명히 덧붙이지만. 남자셋도 함께다.

 


"그만해요!!!!!!!!!!!!!!!!"

 

 

형호오빠를 비롯한 종업원들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내 몸위로 올라타 머리 끄댕이며 배며 다리며 미친듯 쥐어뜯고 깨물고 있는 오센치가


짓이겨진 눈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

 

 

나도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두 주먹을 힘차게 뻗으며 그들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건 이미 주문을 하려던 그 새끼의 손에 영락없이 붙들린 채였다.

 

 

뭐야 이거.


삼촌 허리띠보다 몇백배 더 아프잖어.

 

 


"죽어라!!!!!!!!!!!죽어!!!!!!!!!!!!!!!!!!!!!"

 


"경찰 불러 찬영아!!!!!악!!!!!제발 그만해요!!!!!아니 이여자 코뿔소 다리를 달여먹었나!!


왜이렇게 힘이 쎈거야!!여러분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요!!!!!"

 

 

 

형호오빠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


이미 감각을 잃어버린 내 몸뚱이와 머리통.


아수라장이 되버린 호프집.


뒤늦게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나온 사장님.


그리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 여자아이.


내가 주방에 앉아 피를 닦고 있을때야 울리기 시작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그것은 한마디로.


'아니 세상에 이런일이' 에 나온다면 대 히트를 칠만한 어마어마한 싸움이였다.

 

 

 


"하아.....하아.........."

 

 

거친숨을 몰아쉬는 내 곁엔. 어떡해만 연발하고 있는 긴머리 소녀가 있었고.-_-.

 

눈물을 머금고 피를 닦아주는 찬영이가 있었고.

 

그리고 허리에 두손을 짚은채 콧바람을 시근덕 거리는 사장님이 있었다.

 

일단. 그 빌어먹을 난장판은 끝난뒤였다.-_-

 

 

 

"너.미쳤냐.한설.?"

 


잔뜩 부운 내 입술을 보며, 사장님이 말했다.

 

 

"아뇨.미친건 아닌데요-_-"

 

"이게 무슨짓이야!!!!!!!!피흘리고 찢기고!!!!!!"

 

"괜찮어요.끄떡없어요!!!"

 

"니가 끄떡없는게 문제야아!!!!!!!!!!!!!!"

 

"죄송합니다..."

 

"손님들 다 달아나고!!경찰오는 바람에 미성년 출입시킨거 싹 걸리고!!!!!!!


내가!!!!!집도 없는 어중이 데려다 알바시킨 내가 잘못이지!내가아!!!!!!!!!!"

 

 


.....쿡쿡..애려오는 가슴..

 

집도없는 어중이 떠중이랑 이게 무슨 상관이라고..

 

 

 

"나가!!!!!!!당장 나가!!!!!!!"

 

"사장님 왜그러세요.!!설이도 많이 다쳤잖아요!!!"

 


잠자코 있던 찬영이가 내 앞을 막아나서고,

 

 


"시끄러!!!!!!!!내가 뭔가 이상하다 했어!!!!지난달부터 계산대 돈 슬슬 줄어드는것도 수상쩍었지


만 말 안했는데!!!!!!내가!!!!!!!"

 

 

"사장님!!!!!!!!!!!"

 

 


찬영이가 그만하라는듯 그 비참한 말을 막았지만.


두 귀가 있는 한 이미 난 들어버린 뒤였고. 이젠 더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느껴.


잔뜩 까진 두 손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고 잘 싸십쇼-0-"

 

"..-0-..이것봐..내가..얘..이럴줄.."

 


"이빠이 먹고.이빠이 싸십쇼-0-"

 


"-0-..그..그..그만하지..못.."

 

 

 

코를 대강 훔치면서. 툭.- _-.지나는척 하며 사장의 어깨를 툭 건드린뒤에.


주저없이 그곳을 걸어나왔다.


여자아이랑 찬영이가 쫄래쫄래 내 뒤를 따라왔는데.


찬영인 중간에 사장의 손에 낚임을 당해서 질질 끌려가버렸다.


그자식은 그랬다.-_-.약하디 약한 물두부 같은 놈이였다.

 


쯧쯧.이 험난한 세상 어찌 살려고.

 

 


"언니..죄송해요.."

 

 

 

\ 3.4 호프 앞.

 


"죄송해요 언니.."

 


다시 한번 되풀이되는 여자아이의 말. 나는 유리문에 비췬 내 한심한 몰골을 이리저리 뜯어


보고 있었는데. 그아인 내가 굉장히 화난걸로 보였나보다.

 

 


"저때문에.."

 

"아냐.내가 모서리로 콕하고 찍은거잖아."

 

"제가요.새로운 알바자리 구해다 드릴.."

 


그때였다.


상큼한 교복차림의 남자아이들 대여섯명이 이쪽을 향해 우르르 몰려온것은.


그리고 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입고있는 교복을 바라보았다.


부러워 미칠지경으로. 온 얼굴이 욱씬거림에도 불구하고. 온 정신이 팔려버렸다.

 


"은찬아!!"

 

 

...은찬이...?


나의 교복감상이 채 끝나기도 전. 그 교복무리를 향해 뛰어가는 여자아이.


난 5미터쯤 떨어진곳에서 멀뚱히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그 남자놈은. 여자아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고함을 질렀다.


참 고함도 염병나게 많은 날이였다-_-

 

 


"그 새끼들 어딨어!!!!!!!!!!!!!"


"경찰서.........."


"넌!!!!!!!다친데 없어!!!!!!!!!!!!!!"

 


마치 윽박지르듯이 여자아이를 내모는 남자.


여자 대하는게 한참이고 서툴어보였다-_-.


그때 여자아이가. 한쪽 손가락으로 말없이 나를 가르켰고.


무표정한 얼굴로 날 가만히 바라보던 그 열혈남아가. 저벅저벅 내 앞으로 다가왔다.

 

 

쥐색 마이에 새겨진 회색 이름 석자는.


'강.은.찬.'

 

 

 

샘물체로 휘갈겨진 그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_-


별안간. 차디찬 손가락 끝이 내 이마를 꾸욱 눌렀다.

 

 

 

"뭐야..-_-..?"

 

"니가.쟤.때렸냐.?"

 


말을 끊을 때마다. 이마에 얹은 내 손가락에 힘을 주는 놈.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으니까. 놈이 따라 웃어보인다.

 

 

"웃기냐?"

 

"손가락좀 치워줄래.차갑거든.-_-"

 

"그래.?"

 

 

그러자 이번에. 그 차디찬 손바닥을 내 이마에 떡하니 얹어보이는 강은찬 -_-


키가 나보다 20센치는 더 커보였기 때문에, 내가 올려봐야 하는 엿같은 상황이 연출되었고.


나는 발을 까딱까딱 떨어보이며 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 치워."

 

"야.거지."

 

 


두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이거지' 를 잘못 들은것임을 바라며 다시 물었다.

 

 


"뭐?"


"야.거지"

 

 

그리고. 그 나머지 교복파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던 여자아이가 생각난다는듯 내 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왜.너한테 거지란 소릴 들어야 되는데?"


"꼴이 거지니까"


"은찬아!!그 언닌 아냐!!나 도와준 언니야!!!!!!!"

 

 

내가 말없이 그 놈의 손을 내 이마에서 천천히 내릴때. 때맞추어 여자아이가 다급히 외쳤고.


강.은.찬.씨께서는 적잖이 당황한듯. 내 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여자아이쪽을 향해 애꿏은 화살을 돌렸다.

 

 

 

"야!!!!!!!!!!!!!!!!!!!!!!!!"

 

"어......?"


"구라 치지마!!!!!!!!!!!!!!"

 

"진짜야......."

 

"너 자꾸 구라치면 죽어!!!!!!!!!!!!!"

 

"진짜야 은찬아. 이 언니. 나땜에 이렇게 다치고. 나 막아주다가."

 

 

 


구라이기를 바라는 듯한 강은찬의 목소리가 자꾸만 구라를 부르고.


난 주머니속의 명함을 꼭 잡는 동시에. 놈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그래 구라야."

 

"........"

 

"됐지?내가 그지인것만 진짜야.됐지.?"

 

"뭐??"

 

"그냥 그지 내이름으로 하지 뭐."

 

"그래 너 그지 실컷해라."

 

 


깔보는듯한 시선을 천천히 내 얼굴에서 거두고. 여자아이의 어깨를 한팔로 감싸는 그 놈을


보면서. 나는 참고 참고 또 참아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곤.


목적없는 마라톤 선수처럼 또 달리기 시작했다.

 

 


4년전 윤영일 잃어야했던 그 달리기처럼. 또 또. 눈물을 메마른 바닥위에 실컷 뿌려주며


정처없이 뛰기 시작했다.


여러사람들을 밀치고. 넘어트리고. 또 욕을 먹고.


내가 있어야 할곳은 이 넓고 넓은 지구중 단 일평도 허락되지 않았단 사실을 뼈속 깊이


느끼면서 그렇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용없는 뜀박질의 끝에 내가 쓰러지듯 도착한곳은.


포장마차 바로 옆에 자리한 낡은 공중전화 박스였다.

 

 

 

이제 공중전화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내가 숨어든 그 박스안의 수화기는.


사람냄새가 아닌 차가운 기계 냄새만을 의무적으로 풍기고 있었고


난 귀신에 홀린것처럼 명함을 집어 들어서.


1541로. 백원짜리 하나 없는 바람에 참 처량히 그 수신자 부담전화로.


명함에 또박또박 적힌 작은 번호를 눌러갔다.

뚜..뚜..뚜..뚜..뚜..뚜..

여섯번의 신호가 가고. 안내원의 녹음된 음성이 전화를 연결시켜 주려고 할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서 황급히 수화기를 던져놓으려는데..

 


"네..여보세요.."

 

저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너무너무 편안해서.

한없이 푸근해서.

나도 모르게.

그냥 나도 모르게..

양팔 벌리고 가득 안기고 싶단 심정으로 홧김에 입을 열고 말았다..

 

 

".....네..여보세요.."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저 거진데요."


"...네..?"


"저 거지거든요 할아버지.."

 

 

공중전화 박스의 열린 문틈사이로 시리디 시린 공기가 내 등뒤를 쿡쿡 쑤셔왔고.


난 그로부터 도망치듯.그리고 수화기 건너편의 따뜻한 목소리로 빨려가듯..


처음통화하는 그 할아버지에게 온갖 주책을 부리고 말았다.

 

 

"나 지금.단추 두개 떨어져간 남방에다가..신발은 발가락 삐져나올꺼 같은 신발 신고있고.

얼굴도 그리 예쁜편 아니에요.일을 잘하는것도 아니라 오늘은 또 짤렸거든요.

그런데요.."

 

"....허..."

 

"..나좀 데려가주실래요......"

 

"니가..설이구나..."


"그래도..빨래나.다림질은 잘하니깐..나좀 데려가주실래요.."


"..지금..어디냐..."

 

 

 

나즈막한 그 한마디와.


지금 내가 있는 강남역6번출구의 위치를 마지막으로.


전화는 끝을 맺었다..


나는 꿈같던 그 따뜻한 통화에서 다시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곤..


그 박스안에 꼼짝않고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네가 남긴 작은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작은 개구리마저 구슬프게 날 위로해주던 길.♬

목놓아 울다 네가 다시 내게 돌아와주길.

진동없는 작은 상자 힘을내 부숴져버리길.♩"

 

 

이노래가 끝나기 전에 와줬음 정말정말 좋겠다..


하고 생각하면서.


윤영이가 그토록 좋아해주던 그 노래를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노래가 정확히 다섯번 감겨서 마지막 소절을 반복하고 있을때..


짙은 회색의 BMW745 한대가 전화박스 앞에 있는 도로에 미끄러지듯 주차했다.

 

 

저거다..분명..저거다..


거의 맞아 떨어지던 나의 직감을 믿으면서 몸을 부르르 떠는 찰나.


운전석에서 내린채 주위를 휘휘 둘러보는 양복차림의 아저씨.

 

 

일단 박스에서 나온 난 기웃기웃 대며 괜시리 기지개를 펴보였고.


둔하디 둔한 그 아자씨는-_- 애꿏은 여자아이를 붙들고 치한 취급을 받다가.

 

 


"어크흐음!!!!!!!!!!!!"


가래에 가까운 내 헛기침 소리를 듣고서야. 주저주저 하며 내쪽으로 다가왔다.

 

 

'제발 아니기를.제발 아니기를'


하는 아저씨의 간절한 눈빛이 뼈속깊이 사무쳤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지.

 


"혹시..한설..씨.."


라는 그 조심스럽고 두려운 물음에.


"네.제가 한설인뎁쇼-.,-"


한치의 오차없이 이런 냉정한 대답이 떨어졌으니..

 

 

아저씨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하하하하하!!"


하면서 아주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비췄고. 곧바로 나를 그 기름칠 한것 같은 거대한 차쪽으로


안내했다.

 

기웃대며 창문을 바라봤지만. 워낙 시커먼 창문인지라. 안에 탄 사람이 남자라는것만 확인하고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던 아저씨가 뒷문을 열어주면.


그 사람 역시.


다름아닌 전화속의 푸근한 할아버지임을 알수 있었다.

 

 

미묘한 내 얼굴을 보면서. 환하게 웃어보이는 할아버지.


백발의 머리는 깔끔이 빗어넘기고. 감색 조끼에 겨자색 면바지를 차림.


얼굴에 적당히 자리잡은 주름은 친근하면서도 품위 있었다.

 

 

분명 말하지만.


젊었을때 한딱가리 하셨을것 같은....

 

 

이런 못된 생각을 하며 할아버질 찬찬히 뜯어보고 있을때.


아저씬 어서 타라는듯 손짓을 해보였고. 나는 조심스레 그 무겁기도 더럽게 무거운 문짝을


열어제끼고. 할아버지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잠시후.


차가 얼음판의 스케이트 처럼 정말 미끄러지듯 도로위를 달리기 시작했을때.


할아버지가.나즈막히.입을 여셨다.

 

 


"한.설."

 

".......네......"

 

"베풀 설인가.?아니면..흰.."

 

"흰설이요.."

 

"음..그런데..까맣구만.."


-_- 네. 저 까맣습니다

 


내가 가장 컴플렉스 삼는 부분을 너무도 쉽게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난 아무말없이 싱긋 미소지었고. 할아버진. 작은 유리 도자기를 다루듯이 찬찬히 나를


뜯어보셨다.

 

 


"...많이...아팠지...?"

 

 

울컥..눈물이..흐를것 같아서.얼른..시커죽죽한 창가로 고개를 돌리고.


아주 약간.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꼭 쥔 두주먹위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이제.괜찮을거다.아무일 없을거다."


"...."


"사진보다 훨씬 예쁘고.따뜻하구나."

 

 

따뜻하다는게 무엇을 의미하는건진 몰랐지만.


난 너무나 오랜만에 받는 이 다정한 미소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서.


눈치없는 운전사 아저씨가 아무 노래든 틀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그러나 그 눈치라곤 백찬영보다도 없는 아저씨는


차가 목적지에 도착할때까지 미러로 자기 얼굴을 바라보기에 바빴고-_-


나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무뚝뚝한 어조로 이것저것을 대답하며.


이것이 꿈이 아니기를. 그리고 꿈이라면 제발 깨어나지 않기를.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 평창동.

 

 


경비실이 딸린 저택이다. 담높이는 4년전 내가 기웃대던 운정중의 그 담보다 정확히 3배 이상으


로 높고, 대문은 외삼촌네 집 거실만 하다.


주눅든 나는. 차에서 내린채 말없이 그 괴물같은 집을 외면했고.


할아버진 여전히 조개처럼 말없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더니.


곧이어 열린 문 안으로 먼저 들어가셨다.

 


그리고.분명 말하지만.


그 대문부터 현관문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5분이 걸렸다.


정원엔 노랗게 죽은 잔디들이 깔려있고. 한켠엔 골프 시설이 장치 되있고. 또 나를 보며


컹컹 짖어대는 진돗개가 5마리나 되고.

 


아무튼 그곳은. 내가 이제껏 본 집중에 가장 컸고. 또 가장 슬펐다.


각종 문양이 새겨진 현관문을 잡아 당기며. 할아버지가 얼른 들어가라는듯 고개짓을


해보이셨을때. 나는 솔직한 내 심정을 말씀 드렸다.

 

 


"집이 슬퍼요."


"...슬프다니...?"


"이런집에 죽을때까지 살수 없는 사람들한텐.이런집은 죽을때까지 슬퍼요."

 

 


그말에..물끄러미 날 바라보던 할아버지..


그리곤..

 


"집은.단지 집일 뿐이란다."

 

라고.

딱 잘라 말씀하신다.

 

 


그래.집은.단지 집일 뿐이다.


하지만.그러기엔 이집. 정말 숨막히게 거대하다.

 

 

신발을 벗기에도 미안한 신발장에. 조심스레 신발을 벗어넣고. 커다란 심호흡과 함께


거실로 들어서서. 할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집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2층집에 방이 11개였는데. 심지어는 방문 손잡이까지 나를 기죽고 놀랍게 만들어서.


2시간에 걸쳐 샅샅한 조사가 끝났을때.


나는 마치 아라비안 궁전에 물건을 팔러온 잡상인이 된 기분이였다.

 

 

 

 

"어때.마음에 드냐.네 방은.2층 화장실 옆에 있던 방인데.싫다면 내가."

 

"아뇨.그방 좋아요.그 방 충분히 좋은데요 할아버지."

 

"응.그런데."

 

"저.아무래도.잘못.."

 

"그래.!!밤이 깊었구나!!뻐꾸기가 벌써 11시를 알린다!!어서 자는게 좋겠다!!"

 

 

 

뻐꾸기는 커녕 자명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는데-_-


할아버진 허둥지둥 내 등을 떠밀며 계단위로 나를 힘차게 밀어버리셨고.


나는 마침 문이 활짝 열린 그 화장실 옆의 방안으로 가두어지듯 들어와버렸다.-_-.

 

 

방문 너머로 쩌렁쩌렁 울리는 할아버지 목소리.

 

 

"잘자라!!!!!!!내일은 할일이 많을테니까!!!푹 쉬어두거라아!!!!!!!!"

 

 


....

 


"저..할아버지.!!"

 

 


이미 할아버지께선 빠르게 도망가신듯-_-


방문너머론 조용한 경적만이 흘렀고.


난 분명 무언가 이상하단 느낌을 받았다.

 

 

상식적으로 사진만으로 열여덟난 여자를 입양한다는것도 말이 안되고


(더군다나 이 모자랄것 하나 없는 할아버지가 말이다.)


게다가 이 집안에 들어온뒤로.행여 내가 다른말 할 새라 문밖으로 도망칠새라.


할아버진 굉장히 안절부절 못하고 계셨다.

 

 

게다가 이방.!!이방은!!!!!!!

 


마치 내가 올것을 확신한듯!!!!

 

온통 핑크색으로 난도질 되있는 전형적인 공주방이 아닌가!!!!

 

 


저 호박모양의 침대에 로맨스 소설이 가득 꼽힌 책장.

 

저 화장대에다가 바닥에 깔린 분홍 카펫.레이스 커텐에 두손으로 들기에도 벅찬 인형들이


한가득!!!!!

 

 

이상해.뭔가 있다.


뭔가 있다.


앉기에도 부담스런 타원형의 삐까뻔쩍한 책상위에 앉아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두드려 맞고 깨물고 쥐어뜯어 만신창이가 된 몸덕분에.


갑작스런 후유증이 몰려와서.


난 모든일을 내일 생각키로 하고. 부시럭부시럭 대는 어마어마한 이불속에 폭 파묻혀 잠이


들었다.

 

때를 묻히는게 미안해서 꼿꼿히 누워 얼굴은 천장을 향한채 그렇게 정신없이 곯아 떨어졌다.

 


그렇게..수면마취 된것처럼 숨도 쉬지 않고 죽은듯 자고 있을때..

 

 

 

'그래서 어쩌라고.'


'넌 볼 필요 없어.내려가.'


'꺼져.너도 자격없어'


'말 함부로 하다 정말 죽는수가 있다'


'병신.너야말로 죽어'


'걸리적 거리지 말고 내려가!!!!!!!!!'


'입닥쳐!!!!!!!!!그건 너야 이 미친새꺄!!!!!!!!'

 

 


....꿈 한번 참 살벌하다..


오늘도 욕듣고 욕보느라 참 진땀 흘린 난데..


꿈속에서마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수면마취가 천천히 풀리는 느낌으로..나는 푹 빠진 잠에서 조금씩 헤어나오며..


꿈속의 목소릴 듣기 시작했고..

 

 

 

 

"미친새끼!???야!!!!!!!!너 생일 몇월 며칠이야!!!!!!"

 

"넌 동생 생일도 모르면서 뭔데 지껄여!!!!!!!!!!!!!!!!!"

 

 

 

 

그..구체적이고도..실질적인 대화 두개는..이것이..꿈이 아님을..내게..

명백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제발.그것이.내 눈앞이 아닌.방문 너머에서 벌어지는 사태임을 간절히 바라면서


눈을 떴을땐.


아주 고맙게도.


참으로 감사스럽게도.

 

 


내 바로 눈앞에서 치닥치닥 거리며 싸우는 두 남자가 동시에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게다가 그중 한놈은.

 

 

 

 


"야!!!!!!!!!!!!!!!!!!!!!!!!"

 

 


........

 

 

 


그래...

아까 그놈이였다.

"아아아악!!!!!!!아아악!!!!!!!!!!!!"

 

 

비몽사몽에 커다란 재앙을 맞은 나는 벌떡 일어나 미친듯 소릴 지르고.

마찬가지로 그 개싸가지 또한 아까의 그 교복차림으로 꼿꼿이 서서 미친듯 소릴 질렀다.

그렇게 몇초간의 비명이 오고갔을때.

그제야 비로소 새로 눈에 띈 뉴페이스.

 

강은찬 잔뜩 노려보다가. 잠깐 눈을 돌리니까.


글쎄 이놈도..


심상치가 않다..

 

 

왜 저렇게 날 찢어죽일듯 노려보고 있는거지....


강은찬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그 자식은. 강은찬보다 키가 반뼘이나 더 컸고.


엄마나 아빠가 외국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 들 정도로.


혼혈아 냄새를 풀풀 풍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강은찬보다 훨씬 더 독하고 강한 눈으로.


나를 죽일듯 노려보고 있었다.-_-

 

 

잠깐.


그렇다면.


설마.?

 

 


"너희들.이집 아들이냐.?"

 

 


움추려 마땅한 내가 까치집 머리를 위로 붕붕 세운채 이런 질문을 던졌을때.


그놈들은 어처구니 없다는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덕분에. 강은찬놈의 듣기싫은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들을수 있었다.

 

 

 

"너.니가.아빠가 데려온다던 걔냐?"


"나 개 아니다."


"내가 지금 너랑 농담 따먹기 하쟤?"


"그럼 니가 이집 아들이냐?"


"야!!!!!!!!!!!!!!!!!!!"


"왜!!!!!!!"


"여기 우리집이야!!!!!!!!나가!!!!!!!!!!!"

 

 

 


-_-..

 

그 유치찬란한 말에. 나는 잠시 할말을 잃고 멍하니 놈을 보다가.


다시 나를 찢어죽일듯 노려보는 그 옆의 튀기놈을 한번 보다가-_-

 

'니가 나가지 말래도 나는 나간다'

 

라는 생각을 몇번이고 다잡았다.

 

 

 


"신발.내가 이상하다 했어.입양아는 얼어죽을.무슨 꿍꿍이가 있다니까.


데려와도 이런 거지같은걸 왜 데려오냐.아빠 노망났어"

 


"야!!!!!!!!!!!!"

 


"왜!!!!!"

 

 

"이게 자꾸 근데 말끝마다 거지거지야!!니가 거지한테 백원짜리 하나 줘봤어!!!!!!!!?-0-


기껏해야 기집애 뒤꽁무니 졸졸 따라다니는게.어디서 거지래 거지가!!!!!"

 

 

"..너..방금 뭐랬냐..?어??"

 

 

은찬놈이 다음번 공격을 위해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때.


그리고 내가 바짝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있을때.


그때. 그 정체불명의 새끼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시끄러워.등신아."

 

 


-0-...

 

나는 다시 한번 1톤의 망치로 뒷덜미를 얻어 맞은것 같은 충격을 느끼곤.


적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에. 좀더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기 위하여 침대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이 자식아!!넌 뭔데 첨본 사람한테 등신이래!!!!!내가 꼴이 이래서 무시하냐!?

내가 너같은 놈한테 무시당할려구 태어난줄 알어!?천만에!!야!!웃기지마!!

내가 이래뵈도!!!!!!!!!!!!!"

 

 

 

정확히 말해보지만.


내가 '천만에' 부분을 읇조리고 있을때.


그 새로운 신종 싸가지는. 성큼성큼 방을 나가버렸고.-_-


나는 침대위에 우뚝선 '안녕하세요.바보씨' 가 되어서.


무표정한 은찬놈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_-

 


"쟤 누구냐?"

 

"니가 알바 아니야"

 

"...어쨋든.나 니가 나가지 말래도 나갈꺼니까.쓸데없는 걱정 하지마."

 

"그럼 지금 당장 나가."


"내일 아침에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리고.아침에 나갈꺼야!!!!!!알았어!?!"

 

"병신.여기가 지집인주 알어"

 

"내가 너 따라왔어!?할아버지 따라왔지!!!!"

 

"그럼 이불에서 자지마!!!!!!!!!!!!"

 

"뭐!!!!!!!!!"

 

"우리집 이불에 니 벼룩 옮으니까!!!!!!바닥에서 자든지 화장실에서 자라고!!!!!!!!"

 

 

 

...정말 서럽다...


이러기에 따라오는게 아니였는데.


그래.일이 순조롭게 풀리면 그건 한설의 무자비 인생이 아니지.


나는 더이상 그놈 낮짝 꼴보기도 싫어서.


침대에 배짱좋게 벌렁 돌아 누워 버렸다.

 

 

 


"야!!!!벼룩 옮아!!!!!!!"

 

"드르렁!!!!!!!!!!푸우우!!!!!!!!!!!-0-드르렁!!!!!!!푸우!!!!!!!!!!!-0-"

 

"조카..남자새끼......"

 

"음냐아!!!!!!!음냐아!!!드르렁!!드르렁!!"

 

"..............."

 

 

뒤에서 얼마간 그 새끼의 살기가 느껴지더니.


이내 보기도 밥맛 떨어진다는듯. 성큼성큼 기어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지.


악몽이였다.


차라리 들어오지 않는것이 좋을뻔 했다.

 


그래도. 하루쯤 이런 호사스런 침대에서 자는것. 나쁘지 않기에. 내일 아침 당장


뛰쳐 나가리란 각오를 중얼중얼 대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그 각오는..


다음날 아침 정각 7시에..빛을 잃었다.

 

 

 

 

"오오!!일어나라!!일어나!!설아!!아침이다!!"

 

 


..-_-..저..정겨운 목소리는..

 

 

"학교가야한다!!학교 가야해!!"

 


학교!?

 

 

학교란 말에.눈을 번쩍 떴을때.


말쑥한 정장차림의 할아버지가 유연한 몸동작을 선보이시며


내 머리맡에서 활짝 웃고 계셨고.


나는 반쯤 몸을 일으킨채.

 

 

 


"학교..요..?"

 

"전학 수속을 밟자!!듣자니까 중2때부터 학교를 못다녔다면서!!"

 

"..학교..가요..할아버지..?저..학교..갈수 있어요..?"

 

"그래!!학교다!!학교!!"

 

 

그때.콰당!!문이 열리고.


교복차림에 칫솔을 문 은찬놈이 또다시 등장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빽그라운드로 업고-_- 의기양양한 얼굴로 놈을 바라보았다.

 

 


"야!!!!!너 왜 안나가!!!!!!!!!!!!!!!"

 


더럽게시리. 말할때마다 튀는 치약 거품들 .-_-

 


"강은찬!!!!!!!"

 

"아빠!!내가 말했잖아 입이 부르트도록!!쟤 거지라니까!!!!!!!!!"

 

 


순간.믿을수 없게.


옆에 놓인 책 한권을 방문쪽으로 빠르게 던져버리시는 할아버지-_-

 

놈은 용케 옆으로 슥 피해서 그 책을 턱 잡곤.

 

다시 한번 치약거품을 튀기며 소리 질렀다.

 

 

 


"미쳤냐!!!!!!!!!대체 무슨 속셈이야!!!!!!!!!왜 저딴애를!!!!!!!!!"

 

 


이번에 할아버지가 백과사전 한권을 집어드시자.-_-

 

놈은 휑하니 사라져버렸고.

 

나는 바닥에 남은 그 치약거품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할아버질 향해 고갤 들었다.

 

 

 

 


"신경쓰지마라.!!저놈은 원래 저렇단다.첫째랑 둘째는 아냐!"

 

"할아버지."


"그래.!!"


"저.정말 학교 가요..?"

 

 

조금씩 떨려오는 목소리.

 


"그렇대도!!"

 

"그런데.정말 궁금한거 하나 있는데.지금 물어봐도 되요!?"

 

"그럼!!"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저한테 이렇게 하시는 진짜 이유요. 형식적인거 말고 진짜요.

그 이유..뭐에요.."

 

 

 

.....

........

 

그말에.할아버진 멈칫한듯.다시 한번 나를 보다가.

 

 

"딸이 필요했어.그뿐이란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분명. 그 말이 나오기 전엔.


아주 짧았지만. 묘하고 . 비밀스러운 침묵이 감돌았다 ...

 


..

 

 

"그럼 부탁해.신기사.이거 전해주고.그리고.내가 보호자라고 말하는 사실 잊지 말고.

잘좀 해달란다고.알지.?"

 

 


\ 평창동 본가 앞.

 

 


지금 상황이 좀 그렇다.


앞좌석엔 신기사 아저씨가.열린 창문으로 할아버지에게서 서류를 받아들고.


그 옆 조수석엔 어제 그 신종 싸가지가 타있으며.


은찬놈은 아까아까 벌써 한참전에. 태풍 매미처럼 온 집안을 헤집어놓곤


집을 뛰쳐나간지 오래다.-_-.


난 살다살다 그렇게 까탈스러운 자식은 처음봤다.

 

 

 


"아이.걱정마시라요.제가 이런거 한두번입니까.염려 마시고 회사일이나 잘 보세요"

 

"그래.설아.알지.!!웃고!!주눅들지 말고!!잘해라!!응?!"

 

"네!!"

 

"하루야!!니가 잘 돌보고.수시로 교실 놀러가고.응??"

 

"................"

 

"하루야!!"

 

"........."

 

 

하루.?

 

저놈 이름이 하루..?

 

이름도 되게 웃기네..

 

내 이름도 비웃을만한 처지는 아니지만..

 

 


어쨋든.차는 그렇게 출발했다. 할아버지에게 두손을 마구 흔들어대는 사이.


차는 평창동 주택가를 조용히 벗어나고 있었다.

 

 

"왜.안갔냐."

 

 

....신기사 아저씨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때...차가 네번째 신호등에 다다랐을때..

 

하루..그래..성은 '강'이겠지.

 

강하루가. 내게 물었다.

 

빽미러로 본 놈의 얼굴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 표정이 없었다.

 

 

 

"...학교 가려고..."

 

"학교가 너한테 뭔데"

 

"목숨이랑 바꿀수 있는거."

 

 


더이상 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래.학교는 정말 내게.목숨이랑 바꿀수 있는것.

 

은찬놈이랑 이놈이 아무리 나를 구박하고 굴욕을 줘도. 심지어 벼랑끝에 나를

 

대롱대롱 매달리게 한대도.

 

그렇대도 포기할수 없는거.

 

그래서 날 이 괴물같은 집에 남아있게 만든거.

 

 

 

"그 뭐지. 학생 가는 중학교가. 하루랑 은찬이 고등학교 부속중이야."


"네..?정말요 아저씨.!?"

 


아저씬 내가 반가움 마음에 그렇게 물었다고 느끼셨는지.

신이나서 다시 또 대답하셨다.

 

 

"응.하루랑 은찬이 학교가 덕풍고.작년에 신설된거고.너 가는 중학교가 정선중학굔데.


그거두 작년에 신설된거.그래서 3학년이 없지 아마.맞지 하루야?!"

 


천진난만한 아저씨가 고개를 화들짝 돌리며 강.하.루.에게 맞장구를 받아내려 했을때.


놈은 의자를 뒤로 한껏 제끼고 (뒤에 내가 앉아있음에도-_-^) 잠이 들어 있었고.


아저씬 민망한듯 다시 내쪽을 향해 말했다.

 

 

"맞어.그래.그래서 좋아.신설학교라 깨끗하구.건물두 바루 하루랑 은찬이랑 옆건물이구."

 

"얘넨 몇학년인데요..?"

 


가장 궁금했던걸 물었다.

 


"응 둘다 고등학교 2학년"

 

"네?어제 보니까 동생이 어쩌구 하던데."

 

"생일이야.생일이 은찬이가 더 늦어."

 

"..저.."

 

"...^ㅇ^..응"

 

"근데.그게 가능해요..?일년에 애 두명 낳는거.쌍둥이도 아닌데.."


...

 


나의 철딱서니 없는 질문에..


아저씨는 일순간 입을 다무셨고..


대신에 조용한 침묵을 지키며 에프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아뿔싸..하는 마음에 재빨리 빽미러로 강하루의 눈치를 보았을때..

 

꾹 감은 그 놈의 빗자루 같은 속눈썹이..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았다.

 

 

 

 

 

\ 덕풍고.-_-.정선중앞.

 

 

학교 건물이 시야에 좁혀올수록.


가슴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고. 하루놈도 부스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그 건물은 둥그스름한 모양에 초록색 발코니까지 달려있었고.


길가다가 흔히 보는 그런 학교가 아니라.


티비속 드라마에 나오는 예술고등학교처럼. 참 예쁘고 아담했다.

 


정말. 저 학교에 내가 다닌단 말인가.

 

 

차가 교문과 조금 떨어진곳에 멈춰섰을때.


내 심장 박동은. 내 자신도 믿을수 없을만큼 빨라져 왔고.


차에서 내려 콘크리트 바닥을 밟았을땐. 숨이 턱 막히는 나머지 바닥에 주저 앉을것만


같은 심정이였다.

 

 

"자!어서 가자구.!!두사람 먼저 와요 교무실 가있을테니까!!"

 

 

허둥지둥 서둘러 먼저 달려가버리는 신기사 아저씨-_-


이러면 어떡하지.-_-?

 


이러면 이놈아랑 나랑 어떻게 오붓이 그곳까지 가라는거야..


뻘쭘히..놈의 눈치를 슬쩍슬쩍 보자니..


나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조금 앞서걷는 강하루.

 


.......

 

 

터벅터벅..

두사람의 건조한 발자국 소리만이 허공을 메우고 있을때..

 

 

 


"빨리 따라붙어.강은찬 선도 본다."

 


"어..?"

 

"너 혼자 교문 들어가면 그새끼한테 온갖 쪽 다 먹으니까. 내 뒤에 따라붙으라고."

 

"........어..그래.."

 

 


자식이.


보기보다 친절하네.


애새끼가 좀 어두침침하고 말이 없어서 그렇지.


강은찬보단 좀 낫다.-_-.

 


미소띈 얼굴로.긴장된 마음으로 놈의 뒤를 쫄래 쫄래 따라붙다가.


문득.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눈에 띄는.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기........"


"................"


"너.."

 

 

 

 

.............

 

........


..............

 

 

....................

 


"너........왼쪽 다리를 저네.............."

 


..........

 

 

 

 


그때였다.

강하루가. 말없이 걸음을 멈추어 버린건..

내가 무슨 실수라도..한건가..


다리 저는것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 미련퉁이 주둥이가 또 주책바가지를 떨었구나.

 

 


갑자기 그놈이 어제처럼 변신해서


"근데 이 등신아!!!!!!!!!!!!"


하고 내게 왕 쿠사리를 줄까봐-_-


난 그놈에게 들키지 않게 아주 잠깐 몸을 움찔했다.

 

 

그러나 아주 고맙게도 놈은.

 

그 감정없는 눈동자로 내 얼굴을 다시 한번 노려보다가.

 

말없이 다시 천천히 걷기만 할뿐.


더이상 아무런 태도도 취하지 않았다.

 

 


휴 살았다.-_-.

 

 


"...미안..."


"뭐가"


"쓸데없는 참견해서."


"원랜.안절어."


"뭐..?"


"원랜.멀쩡하다고"


"그럼 그냥 똑바로 걷지-_-.."


"........"

 

 

 

헙..-_-...내가 또 실수했구나.


그래 그냥 주둥일 꾹 다물자.


나는 입술 한가득 침을 발라서 이빨 하나 보이지 않도록 꾸욱 입을 다물었고.


잠자코 놈의 뒤를 따랐다.

 


음...

 

 

저 멀리 앞을 보고 있자니.


신기사 아저씨는 오른손에 든 서류를 팔랑팔랑 흔들며 이미


교문안에 쏙 들어가버렸구나.


-_-^

 

 

 


\ 덕풍고.정선중 교문앞.

 

 


"야!!강하루!! 여..여자랑 같이!!!!!!!!!!!"

 

 

 

교문 앞 일미터 쯤 가까워왔을때. 제일 먼저 들려온 말.


경박스러운 여자의 그 한마디에. 난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고.


강하루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듯.


나 따위 네버 신경쓰지 않고. 그냥 휑하니 자신의 길을 가버리고 말았다.

 


그럼으로써.

 

 

 


"어머 쟤 뭐야-0-?"


"거지야 거지.옷좀 봐"


"무서워!!ㅠ0ㅠ머리카락 대신 지푸라기 얹었나봐!!ㅠ0ㅠ!!"


"강하루 왜 저런애랑 오는거야?"

 

 

......-_-.......

 


결코 좋다곤 할수 없는 어마어마한 그 스포트라이트를 나 혼자 독차지 할수 있었다.

 

 

교복차림의 선도부원들.

혹시나 강은찬의 눈에 띌까 싶어 멀어져가는 하루 뒤에 바싹 따라붙으려 하는데.

 


아니나 달라.

호기심과 공포어린 시선중 당당히 앞서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그 원조 싸가지가. 내 앞을 당당히 막아섰다.-_-

 


한마리의 히틀러처럼.


그리고 한마리의 일본 앞잡이처럼.-_-^


아주 위풍 당당하게.

 


고개를 들지 않아도.

저 빌어먹을 샘물체 '강은찬' 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그가 그라는걸 알수 있었다.

더불어.

어제 나의 도움을 받은 그 긴머리 소녀도 함께.

 

 

 

"어!?이 언니!!!!!!!!!어!?언니!!!!!!!!!!!"


"..안녕.반갑다.-_-.."


"명찰.교복.머리.신발."

 

 

 


나의 텁텁한 인사를 막아서는 강은찬의 단호한 목소리.


하루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그는 나라는 존재를 까맣게 잊은듯.


왼쪽 다리를 약간 절며 작은 점이 되어가고.


난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번엔 똑바로 강은찬의 얼굴을 쏘아 올려봤다.

 

 

"뭐?"

 

"명찰.교복.머리.신발."

 

".......야..."

 

"벌점 2점.쓰레기 청소.운동장 두바퀴."

 

"야!!!!!!!!!!"

 

"아.이젠 선배한테 반말.-_-.? 벌점 2점 추가.운동장 다섯바퀴"

 

 

-_- 이 개놈이 진짜..

 


"언니 여긴 왠일이에요!?네?!"

 


여자아이가 꺅꺅 대는 사이에. 나를 둘러싼 선도부원들의 표정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고.


강은찬놈은 무표정한 얼굴로 수첩위에 무언갈 적어내려갔다.

 

 

 

"말 안들리냐..운동장 도는법 몰라??"


"후..."


"다리 짧아서 힘드냐??"

 

 

 


하..참자..여기서 싸우면 안된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학교가 날라가느냐 아니면 나의 모교가 되느냐가 달려있다.

 

 

"저.."


"뭐.."

 

수첩에서 고개를 들어 건방진 얼굴로 나를 내려보는 강은찬.

 


"제가.이래뵈도 전학생이거등요.?^-^?

 

"그래서.?"

 

"그래서.보시다시피.교복도 없고.명찰도 없고.신발도 없고.이러네요..??"

 

"그럼 다 갖추고 다시와."

 

"...저기..실례지만..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라도..되시나요..??"

 

"교복입은 교장봤냐??"

 

"근데!!!!!!!왜 자꾸 니가 이래라 저래라 쌔빡이야!!!!!!!!!!!-0-!!!!!"

 

 

슬슬 드러나는 나의 본색에. 놈 역시 자신의 원래 얼굴을 슬슬 드러내보였고.


선도 부원들은 입을 쫙 -0- 벌린채로.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나를 향한 호기심이.


다시 두려움으로 바뀐것이다.

 

 

 


"내가 선도부장이다!!!!!!!!!!어쩔래!!!!!!!!!!!!"


"전교회장도 아니고 부회장도 아니고 반장도 아니고!!선도부장 자랑이다 이새꺄!!!!!!!!!!"


"뭐!!!!!!!!!!!!!!새꺄!???!이 자식이 어디다 대고 욕이야!!!!!"

 

 


이 자식이란다...

-_-..

 

 

"은찬아!!!!!!!!그만해!!!!!!!!ㅠ0ㅠ!!!!!!"

 

 


어제의 그 여자아이가. 위협적으로 내게 다가서는 강은찬 놈의 앞을 막아섰을때.


누군가의 손이. 내 손목을 턱 하고 잡아서.


그 끔찍한 소굴에서 질질 끌고 나와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 그 손목의 주인공.


강하루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어...?"

 

 

놀란 나의 얼굴에 재빨리 손을 놓는 강하루씨.

 


"쪽팔리게 하지마"


"...고마워..."


"등신"


"..-_-..그래..이번엔 등신 하지 뭐..헤헤 나 등신"

 

 

 

 

 


그쯤 되면. 분명 물먹은 강은찬이 이차 공격을 들어올법 했다.


아니나 달라. 재빨리 중앙 현관으로 도망치려는 찰나에. 강은찬의 서슬퍼런 고함이.


나와 강하루의 등을 날카롭게 쑤셨다.

 

 

"강하루!!!!!!!!!!!!!!"

 

걸음을 멈추는 하루.


".............."

 

저벅저벅 다가오는 은찬.

 


마주선 두사람을 보며. 선도부원을 비롯한 그 여자아이가 시선을 재빨리 외면하는걸 봐선.


이런일 있는게 한두번은 아닌듯 했다.

 

"너 어제 쟤랑 잠이라도 잤냐?"

 


-0-........저...저..........미친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성난 맹수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이빨을 드러내며-_-?)


놈에게 달려드려는 찰나. 일순간 딱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버리는


하루.

 

 

 

"어."

 

 


-0- 뭐라고!!!!!!!!!!

 

 

그의 짧은 대답에. 선도부원들은 마치 본드를 분듯한 어질어질 풀린눈으로 비틀거렸고.


은찬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쪽을 한번 보곤.

다시 강하루쪽을 한번 보았다.

 

 

"아.어쩐지.어제 자는데 이층이 조카 시끄럽더라고.야.거지.너 재주 좋다?

어떻게 이새끼를 꼬셨냐.?!"

 

"아니야!!!!!!!!!!!사실이 아니란 말이다!!!!!!!!!"

 

"에이즈 조심해라.강하루"

 

 


..절..망..

이로다..

 


그말을 끝으로. 강은찬놈은 하루 어깨를 툭툭 두들기곤.


대 혼란에 휩쌓인 선도부원들 사이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고.


내가 재빨리 달려가 사태를 수습하려는 찰나. 대책없는 강하루놈. 내 헤진 소매끝을


질질 끌고서 중앙현관쪽으로 걸어나갔다.

 

 

 

 


"야!!!!!!!놔!!!!!!!!!!!!!"

 

"가봤자 좋을거 없어."


"야!!!!!!!!놓라고!!너 지금 순식간에 사람 병신 만든거 아냐!!!!!!!!!!!!!"


"너.진짜 병신이 뭔지 알아..?"


"...뭐...?"


"니가.진짜 병신 되봤어..?"


"..........그게..갑자기.."


"진짜 병신.너처럼.소리 못질러."


"......."


"진짜 병신. 숨쉴 힘도 없어서. 너처럼 그런 큰소리. 꿈에서도 못질러."

 

 

 

 

순간..묘하게 읽혀버린 강하루씨의 슬픔.....


난 중앙현관쯤 도착하여 할말을 잃은채 그놈을 바라보았고..


그놈은 다시 어제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차갑게 쏘아보더니


저벅저벅..층계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뭔진 몰라도.


강하루와 강은찬.단단히.미친것 같았다.

 

 

 

 


\ 2- 5반 교실.

 

 

신기사 아저씨와의 정신없는 전학 수속이 끝나고.


(그가 교무실에 있는 동안 모든 선생님들은 기를 빼앗겨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_-)


지금은 뻘쭘하니 이 교실에 들어와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줄수 없어서 난 고개를 푹 숙인채 소개를 하란 말에도


몸만 베베 흔들어 보였고


아이들은 웅성웅성 거리며 새로운 이방인을 평가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나를 두렵게 만든것은.

 

 

 


'새로운 먹이가 걸려들었다..'

라는.아주 원시적이고 음흉한 한마디였다.-_-

 

 

"그럼.여러분보다 4살 많으니까.언니 누나 하면서 잘 따르고.


공부 어려워하면 도와주고.점심도 같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학교 구경도 시켜주고!알았죠!?"


"네에!!!!!!!!^ㅇ^!!"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목소리에..

조금씩 용기를 얻어 고개를 살그머니 들자니.

일분단 삼분단 사분단 맨 뒷자리에 앉은...

동물처럼 생긴 여자아이들 세명이. 날 보며 입맛을 쩝쩝 다시는것이 느껴졌다.

 

 

'쩝쩝쩝쩝 맛있는 먹이가 왔군 ㅡ.,ㅡ'

 

 


이건.아니다.


이 교실은.내가 올곳이 아니였다.


그래. 앞문짝이 조금 부서져있는걸 보고. 난 재빨리 달아나야 했던 것이다.

 

 

이윽고 담임이 몇가지를 더 일러주고 교실을 나가자.


수업중이던 머리가 벗져긴 남자선생님이. 나를 2분단 다섯번째 자리로 안내했다.

 

 

두근두근두근.

 

동물원 원숭이 보는듯한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앉은 자리.


가슴이 벅차오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드디어 내가 학교에 왔다.


드디어 내가. 책상에 앉고 교실에 들어오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나란히 앉았다.


그렇게 십분가량을 감격에 부들부들 떨었을까..

 

 

 


나를 향한 시선도 얼마간 거두어지고.


한문담당인 그 선생님이 칠판에 열심히 한문을 적고 있을때.


갑자기 어디선가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호오!!!!!!!1!!!!!!!!!!!!!!!!!!!"

 

-_-..응??호..?

 

그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재빨리 고개를 돌려.작은 눈과 주름을 부르르 떠시는 선생님.

 

"너..너희들..그..그만하지 못해..!!"

 

 


그러나 교실은 고요했고.


아이들은 무언갈 알고 있는듯. 무표정한 얼굴로 필기만 열심히 해나갔다.


그리고 다시 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갈 적어내려갈때.

 

 

 

"빠앙!!!!!!!!!!!!!!!!!!!!!"

 

 

 

..두번째 외침이 울려퍼졌다.


-_-..이게 뭐지..?빵이라니..?호..빵..?

 

 

 

"제발..제발...그..그만해..!!너..너희들은..대체..언..제..철이..드..들..꺼냐..!!"

 

 

보기에도 가엾게 부들부들 젤리처럼 온몸을 떠시는 선생님.


그리고 또 한참뒤. 선생님이 칠판쪽으로 몸을 돌리는척 하다가 학생들쪽으로


확 고갤 꺾으셨을때

 

 

"매앤!!!!!!!!!!!!!!!!!!!!!!!!!!!-0-"

 


..-_-..

 


...-_-...

 

 


잠시후..아까 날 바라보던 동물을 닮은 세 여자아이들이 칠판앞에 돌아서서 슬리퍼로 궁댕이를

 

찰싹찰싹 얻어 맞는것을 보면서.


그리고

 

 

"쟤들은 한문시간만 되면 매일 저래요.그래도 호빵맨은 양호해요.원랜 똥싸개나

새우눈이나 할방구라고 하는데..호빵맨은 양호한거에요'

 

 

라는 짝꿍의 속삭임을 전해 듣고서.

 

 

 

난 쉬는시간을 울리는 종이 '딩동댕' 하고 노래 하면.


재빨리 교무실에 가서 반을 바꿔달라고 항의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팥떡이였다.-_-

 

 


'딩동딩동.댕동댕동.둥동둥동.♬'

 

 


\ 쉬는시간.

 

 

 


"우리 패밀리에 들어올래!!!!!!!!!!!!?"

 


-_-.......

 

 

 

재빨리 튀어나가기 위해 의자에 반쯤만 엉덩이를 걸치고. 교실앞문을 향해 돌진 태세를


갖추었는데.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내 주위를 에워싼 세 동물들.


아이들은 모두 딱하다는 얼굴로 날 보며 혀를 쯧쯧 차댔고..


어느 아이는 겁먹은듯 교실을 나가버리기까지..-_-

 

 


"...난...글쎄...패밀리라면..."

 

"몇살이냐!???!"

 

 

맘모스를 닮은 아이가 말했다..

 

 

"열여덟.."

 

"그럼 충분해.그치.?"

 

"응.괜찮아 그정도면. 좀 늙은감이 있지만.봐줄수 있어."

 

 

여우 원숭이처럼 생긴 아이가 대답했다.

 

"이름이 뭔데!?!?!?"


코끼리처럼 코가 큰아이가.다시 나를 향해 물었다.

 

 


"..나..한설.."

 


"좋아!!그럼 '전식' 을 성공하는데로 우리 패밀리 끼기로 하자!!머리랑 옷이 좀 구리지만.


우리가 앞으로 바꿔주면 되는거니까.그건 식은죽 먹기지"

 

 

 

지금의 너희들처럼이라면..

 

.....안바꿔줘도 되는데....


나는 나보다 네살 어린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암담한 표정을 지었고.-_-.

 

 

 

 

"전식이 뭐냐면.전학생 신고식이야."


코끼리는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_-.."


"우리 반 오면 다 해야돼.."


"...응..그게 뭔데..-_-..?"


"잠깐.오늘 몇학년 몇반 할 차례지.숭아야.??"

 

 

 

맘모스를 닮은 애 이름이 숭아인가보다..


성이 '원'이면 딱 좋겠는데..명찰을 보니까 '양'이다.


그래.'양숭아'도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2학년 7반인데 이번에 수업 있고, 2교시에 가정시간이라 자리 비우는건 2학년 2반이야"

 

 

그들은 모든 전교실의 시간표를 다 꿰고 있는듯 했다.-_-

 


"2학년 2반!?꺄아악!!!!!!!!!!!!-0-우리 오라버니 있는 데잖아 꺄아악!!!!!!!!!!"

 

 

이윽고. 코끼리가 농약을 한사발 들이킨 돼지처럼 팔딱팔딱 미친듯 날뛰어댔고.


그때까지 교과서 뒤에 얼굴을 감추고 오들오들 떨던 내 짝꿍은.

 

 


"아.아..배야..왜..배가 아프지.."

 


어색한 연기를 하며 허둥지둥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_-.

 

 

 

"..2학년 2반이라니..?"

 

"덕풍고 2학년 2반에 가서 문패 가져와야돼.!!꺄악 오라버니!!!!!!!!!!!-0-"

 

"니네 오라버니가 거깄어?"

 

"응.우리 오라버니.아아.-0-."


"그럼 니가 가지 그래-_-"

 

"언니가 전학생이잖아!!!!!!언니가 가야지!!"

 

"그래 언니가 가야지!!"

 

 


...


....


...난..물론..친구가 필요하고..친구가 갖고 싶다..

 

하지만..이것들은..도저히..

 

 


"나....안가면 어떻게 되냐..-_-..?"

 

"왕따야"

 

"누구한테.너희들한테.?"

 

 

그런거라면 왕따 당해도 되는데..

 


"아니.우리반 전체야"


맘모스가 단호하게 말하자.나머지 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보니. 이것들이 '저년하고 놀지마!!!!!!!!!-0-'


하고 한번만 협박을 하면 나머지 아이들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곧바로


'아..알았어..ㅠ0ㅠ..' 하고 복종할것만 같다.-_-

 

 

 


..왕따는..싫은데..왕따는 정말..끔찍한데..

 

만감이 교차하는 사이.


세 동물들은 콧구멍으로 커다란 수중기를 내뿜으며 나를 내려보았고.

 

 

 

그래.문패쯤이야.식은죽 먹기긴 하지.열네살땐 밥먹고 하는게 도둑질이였는 걸 뭐.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물론 그땐 정말.


그 문패 하나가. 나를 왕따보다 더 심한 구렁텅이에 빠트릴것이란 사실을


단 일퍼센트도 예감할수 없던 때였다.

뚜벅...


뚜벅......


뚜벅..........

 

 

 


2교시가 시작한지 10분이 지난 지금.


나는 동물들로부터 정평중 중앙현관 앞까지 열렬한 배웅을 받고서


이곳 '덕풍고' 3층 복도에 올라와 있다.-_-.

 

 

니미랄.

 

 

꿈에 그리던 내 학교생활이 초장부터 이렇게 꼬여버리다니.


어쨌든.


난 수업중인 교실을 지나칠땐 오그라붙은 지렁이처럼 복도 바닥을 설설 기어서.


드디어 코끼리의 오라버니가 있다던 '2학년2반' 교실앞에 도착할수 있었다.

 

 


앞문에 아주 높이 달려있는 '2학년2'반 문패.


이것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리 높이 달려있는 문패를 나보고 꺼내오라 한거냐..

 

 


"끄응차.."

 

 

발돋움을 해보지만. 그것은 지금의 나로썬 도무지 닿을수 없는 거리였고.


고민끝에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교실안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가 손아귀에 넣는것이였다.

 

 

 

텅 빈 교실안.


살짝 열린 창문을 통해 개미 새끼 하나 없는것을 단단히 확인하고.


복도를 휘휘 둘러본뒤.재빨리 교실안으로 침임했다.

 

 

두근두근.


우유나 빵 훔칠때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었는데.


행여 누군가가 들어올까봐.재빨리 맨 앞에 있는 작은 의자를 집어 드는데.....

 

 

 


"아 진짜 웃겨.지가 가져오면 될껄 왜 시키구 지랄이야"

 

 


-0-

 


...

 

 

교실 앞문쪽에서 들려오는 앳된 남자의 목소리.!!

 


걸리면 끝장이다!!!!!!!!!


난 본능적으로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재빨리 칠판옆에 붙어있는 철장 캐비넷 안으로 몸을 던졌다.

 

 

삐그덕.

 

 


캐비넷 문이 닫김과 동시에. 교실에 들어오는 남자.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려오고 .

 

 

 

"...아씨..야..우리 그냥 교실에 있자.."

 

 

..두사람이다..젠장..

 

 

"그럴래.?가봤자 재미도 없는데"

 

 


안돼!!이 자식들아!!가!!!!!!!!가란 말이다!!!!!!!

 

 

 


작은 캐비넷안은. 내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문이 활딱 열릴만큼 버겁고 비좁았고.


정체를 알수 없는 내 팔뚝만한 몽둥이들이 발이며 등에 잔뜩 걸려서.


온몸의 신경들을 쿡쿡 쑤셔왔다.

 

 

그리고


후레질 그놈들은 정말 눌러붙을 생각인듯.


나와 아주 가까운곳에 앉아 주둥이를 놀려댔다.

 

 


"야 얘기 들었냐?"


"뭐?"


"강하루 말야.어떤 그지같은애랑 오늘 학교왔는데.걔랑 잤댄다 글쎄?"

 

 


............

 

 


...................끝장이다..

 

 

 

 

"아 들었어 그얘기.사마귀 파 애들이 아주 반 죽여논다 그러드라."

 

 

 

 

 


사마귀파!!!!?!!!!!!!!! -0-

 

도대체 이 학교는 동물들만 득실거린단 말인가...!!!!!!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놈들에게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버럭버럭 고함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지금 나의 꼬락서니와 처해진 상황은


영락없는 '빈 교실 지갑 털이범' 이였다..

 

 


그리고. 이 순간 강은찬 만큼이나 두 동강 내고 싶은 두놈들은.


교실에 아이들이 꾸역꾸역 몰아닥칠때까지.


쉬지않고 강하루와 같이온 '거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딩동댕동.댕동댕동.둥둥둥둥.'

 

 


\ 쉬는시간.

 

 

 


하아..하아..


바짝 말라붙은 입술..숨쉬지 못하여 허옇게 뜬 얼굴..


잔뜩 헝크러진 머리..얼굴에 쌓인 먼지..


코끼리와 여우 원숭이.그리고 맘모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나는 점점 지쳐자고 있었다.

 

 

"와하하 진짜 골때린다 걔!!!ㅠ_ㅠ!!!"

 

 


이윽고..


조금씩 교실을 메워가는 아이들의 목소리..

 

 


지금 여기서 내가 태연하게 나가서..


"안녕하세요 저는 이래뵈도 캐비넷에서 나왔습니다"


라고 중얼거린뒤 이 교실을 유유히 나가면..어떤 일이 벌어날까..

 

 

온 첫날 학교에서 짤리는 신기록을 세우게 될까..


아니면 사마귀파에게 곧바로 붙들려 십자가에 매달릴까..

 

 

그렇게..멍한 진공상태가 되어..여러가지 갈래로 상상을 하고 있을때..


야속하게..선생인듯한 작자가 교실문을 세차게 열며 들어오면서..

 

 

"야 왜들 이렇게 시끄러워!!자자 앉어!!!!!!!!!!!"

 


그렇게 3교시가 시작되었다..

 

 

 

......개부랑...........샤부랑...........

 

.............이 순간 투명인간이 될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때..


상당히 비열스럽게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

 

 

 


"아싸..너 무슨 생각하냐..?응??"

 

 


아싸는 또 뭐야 ..


갑자기 던져진 수수께끼 이름에.난 나의 처지도 잊은채 골똘히 귀를 기울였고.

 

 

 


"여~!임마!!내 말 안들려.!?"

 

"................."

 

"......."

 

"나와."

 

 

 

........잠시후....저 뒷편에서부터..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왔고...


난 아무런 이유없이 온몸이 저려오는것을 느꼈다.

 

 


"너.니네집 잘나간다구 나 무시하는거지?응?"

 

 

아이고 유치스러워라.-0-

 

 

"아니요."


단호히 들려오는 대답.

 

 

 


"그럼 뭐야.왜 내말에 대답안해.너.그렇게 맞구두 정신 못차리냐?응?내가 같잖어?"


"재밌는데요."


"뭐??????????이자식이 이거 진짜!!!!!!!!!!!!!!!!!!!!"

 

 

 

고요한 정적이 맴돌고..


나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상황에 어쩔줄 모르고.한껏 더 몸을 움추렸다.


그리고 그때.


제대로 된 날벼락이 떨어졌다.

 

 

 


"니 몽둥이 꺼내와"

 

"..........."

 

"말 안들려 이 자식아!!!!!!!!!!"

 

 

 


선생님의 윽박지름에....


조금씩 가까워오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

 

 


!!!!!!!!그렇다면!!!!!!!!설마!!!!!!!!!!!!!!!!!!이것은!!!!!!!!!!!!!


나는 그제야 발에 잔뜩 밟힌 둥그랗게 마모된 몽둥이 더미들을 바라보았고....


캐비넷앞에서 그 발자국 소리가 멈춤에 따라서..


나의 숨도 함께 멈추었음을 느꼈다..

 

 


그리고...손 하나가...캐비넷 손잡이를 잡았을때...

 

정말 물에 빠져 가느다란 머리카락 하나 잡는단 심정으로..

 

캐비넷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다행이 그 선생이 버럭버럭 계속 고함을 질러주는 바람에. 그 소리는 내 앞의


남자에게나 들렸을테고.


멈칫한 남자는. 한쪽손으로 캐비넷 문을 받쳐서 문이 활짝 열리지 않도록 한다음.


아주 살짝 열린 그 몇센치의 문틈 사이로. 내 얼굴을 건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맙소사...

 

......하느님 맙소사 부처님 맙소사........

 

 

 


'콰당!!!'

 

 


다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닫기는 캐비넷 문.


..이게 대체..어떻게 된 심판이냐..

 

 

 

"너 뭐하는거야 이자식아!!!!!!!!!!!!!!!!!!!!!"

 

"몽둥이가.없는데요"

 

"이 새끼가 진짜 장난하나!!!!!!!!"

 

 

 


나의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되있는동안.


이쪽으로 가까워오는 선생님의 발자국 소리.


그러더니.

 

 

 

"비켜!!!!!!!!!!"

 

"싫어요."

 

"너...미쳤냐...?...비..켜...."

 

"손으로 패요.아니면 발이나."

 

"야 이새꺄!!!!!!!!!!!내 손이나 발이 너같은 놈 패라구 달린줄 알어!???????????"

 

"그럼.칼로 죽여요."

 

 

 

 


그때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바닥으로 텅..하고 나가 떨어진것은..


동시에 아이들의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고..

 

 

'제발..제발..그만해....제발...그만해...................제발...........'

 

 

꼼짝없이 굳어버린 나의 중얼거림이...


족히 몇천번은 반복 되었을때...


그제서야. 그 선생의 욕지거리와....무자비한 폭력은.....끝을 맺었다.

 

 

 

"미친놈.지 애비 얼굴에 먹칠 하는줄도 모르고."

 

 

 


쉬는시간 종소리와 함께.


그 더러운 위선자가 교실을 나서자.


아이들이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고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바닥에 떨어져 쉴틈없이 짓밟힌 그 남자.


차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그 아이들에게.


평소와 같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부탁 하나 있는데."

 

침묵..

 


"책상위에 잠깐만 엎드려..."

 

 

 

부탁치고는 좀 건방져보이는 그말.


그러나 그말은. 멈춘 내 심장을 방망이질 치게 만들었고..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흐르자..


캐비넷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입술이 다 튿어진것 치곤 너무도 멀쩡한 표정의 그애가.

 

 

 

"빨리 나가."

 

 

형편없도록 이기적인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미안....................."

 

"빨리.나가."

 

"................"

 

 

 

다시 반복된 그아이의 말에.난 감각없이 굳어버린 두 다리를 비틀대며 캐비넷을 나왔고.


엎드려서 수근수근 대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통을 힘없이 바라본뒤에.


재빨리 교실을 뛰쳐나왔다.

 

 

 

 

이것이 2-2반 문패 때문에 일어난.


하루와 나의 첫번째 사건이였다.

"실패했지!!!!!!!!!!!!!!!!!!!!"

 

 


의자에 앉자마자. 내 주위를 빠르게 애워싸는 애니몰 패밀리.

 

 

 

난 아무말없이 책상을 손등으로 탁탁 두드리며 그들을 올려보았고.


그들은 아직 나의 눈에서 분노를 읽지 못하였는지.


계속해서 두 주먹에 잔뜩 핏줄을 세우고 고함을 질러댔다.

 

 

 

"솔직히 말해 가두 않었지!!!!!!!!!!!-0-"

 

"..............."

 

"2-2반 문패.!!!!!!!!!!!!!!"

 


"......문패..."

 

"문패 뭐!!!!"

 

"이놈들 진짜 죽어볼래!!!!!!!!!!!!!!!!!!!!!!!!!!!!!"

 

"..-0-..."

 

 

 

약속이나 한듯 뻣뻣이 굳어버리는 아이들.


멈추지 않고 쐐기를 박아야 한다.


여기서 또 어물쩡 흘리면 난 쥐도새도 모르게 이 패밀리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왕따구 뭐구 니네 한번만 나한테 알짱대면 아주 죽어어!!!!!!!!!!!!!!!"


"꺄아아아악!!!!!!!!!!!!!!!-0-"

 


그들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재빨리 달아날때.


난 동시에 교실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황급히 내 시선을 피하는것을 느꼈고.


이젠 정말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책상위에 털푸덕 엎드려 버렸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그렇게 계속 시간은 흘러갔다.

 

 


점심시간에.


애니몰 패밀리가 급식소에서 불고기를 훔쳐먹다 걸려


복도에서 영양사와 추격전을 벌이다 교무실로 끌려간것 빼고는.


특별히 이렇다 할것 없었던 그 수업시간들.


내가 강하루 생각을 하는동안 5교시나 흘러와 버렸다.

 

 

 

\ 쉬는시간.

 

 


대체 왜.


왜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날 구해준거야


아니. 그보다. 왜 그 고마운 행동과 눈빛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거야...

 

 

책상위에 길게 엎드린채 왼손가락 끝으로 강하루를 적어보았다.


그리고.

 

 

 

"...저...기....설이 님...."

 


-_-..이건 또 무슨 소리야..


누군가의 잔뜩 겁먹은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어보니.


나의 짝꿍이 나를 보며 사시나무 떨듯 벌벌벌 떨고 있었고.

 

 

 


"설이 님이라니.-_-."


"...그럼..."


"그냥 언니라구 불러.나 마귀가 아니라구..-_-.."


"...네..언니.."


"..무슨일인데..?"


"...누가..불러요..."


"누가.."


"모르겠어요.누가..복도로.."

 

 

 

설마.강하루.!?


혹시 그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재빨리 뒷문쪽을 향해 달려갔다.


내가 한발자국 움직일때마다 열발자국씩 멀어지는 아이들을 느끼며...

 

 

쾅!!


커다란 괴음과 함께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자니.


강하루는 없고. 껄렁 해보이는 덕풍고 아이들 세명만 스치듯 눈에 들어왔다.

 

 

 


"뭐야...아무도 아니잖아.."


"한설!!!!!!!니가 한설이지!!!!!!!!!!"

 

 

얘넨 뭐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주위를 에워싸는 그 아이들..


나는 그아이들의 머리통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사마귀 파가 드디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 옥상 밑 계단.

 

 

 

 

쿵쿵쿵쿵.


계단을 빠르게 오르는 그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의 뒤를 따랐고-_-

 


그들이 옥상문을 힘차게 열어제낌으로써.


나처럼 재수없는 아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것이라 자학했다

 

 

 

"야!!빨리와!!!!!!!!!!!!!!!!!!!!"

 

 

사마귀 대장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옥상에 서서 손짓을 해보이는것이


아무래도 나와 학교는 물과 기름이라는 하늘의 계시인가보다.

 


어쨋든. 첫날 다 해치워두면 다음부턴 가뿐할테니.

으샤.

기합을 넣고 그들의 바램대로 옥상에 올랐을때.

 

 

 

"어...어.......?..."

 

 


그들은 다소 당황한듯 옥상 한구석을 바라보았고.


무심히 나도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털푸덕 주저앉아 열심히 뽀뽀를 하고 있는 한쌍의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참.....


...........죽이는 학교다 여기........

 

 

 


"야!!너 누구야!!"

 

 

사마귀 대장의 외침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는 강은찬.

 

강은찬이다.-_-

 

게다가 옆의 그여자. 그동안 본 그 긴머리 소녀가 아니라 딴 기집애다.

 

 

 

"뭐...."

 

"어...!!선배..!!몰랐어요..미..미안요!!"

 

"어..?쟤 그지 아냐?"

 

 


흥미롭다는듯. 나와 사마귀들을 번갈아보는 강은찬.

 

 


"쟤 까러 왔냐..?"

 

"아니요..!!그냥 경고만 주..려고요."

 

"우리 형때문에??"

 

 


피식 웃으며 던진 강은찬의 물음에. 당황하는 사마귀들.

 

 

 

"....아니..그게요......"

 

"됐어.말안할게."

 

"...네..맞아요..."

 

 

난 그동안 증오섞인 눈으로 천하의 날바람돌이 자식을 내려다 보았고.


그놈이 털푸덕 앉아있는 덕분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맛이란.


정말 생각 이상으로 끝내줬다.

 


그리고 내 끝내주는 기분을 용납할수 없다는듯 끼고 있는 여자와 함께 일어나는 은찬.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

 

 

"자리 비켜줄게"

 

"아니요.그러실 필요 없는데!!다른데 갈게요 저희가!!"

 

"야 됐어.여기서 해"

 

"괜히 미안해서요..."

 

"나 신경쓰지 말고.최선을 다해.열심히.팍팍 밟아라.알았지?"

 

"...네..네..!!"

 

 


-_-...후아....

 

 


또 한번 해보겠다는건지.


강은찬놈. 내 곁을 스치며 사마귀 대장 어깰 툭툭 두드리더니.


이내 내쪽을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그지.수고해라"

 

"넌. 진짜 최악."

 

"넌. 진짜 그지"

 

 

 

아니.난 농담 하는거 아냐.

 

 


넌 진짜 최악.

강하루는 너에 비하면 최고.

넌 진짜 외삼촌.

강하루는 너에 비하면 박윤영.

 

 


사라져가는 강은찬과 기집애의 뒷모습을 말없이 쏘아보고 있을때.


사마귀 파 세명이. 이제야 살았다는듯 두 어깨를 쭈욱 펴보였다.

 

 

 

 

"야 이 가스나야!!!!!!!!!!"

 

".....왜......"

 

"처음이니까 경고만 준다!!!!!알았어!!!!!!!!!!"

 

"빙신들........"

 

"뭐..뭐!!!!!!!!"

 

 

 


흠칫한듯 뒤로 물러나는 세 사마귀.


나는 손톱을 타각타각 맞물려가면서 물끄러미 사마귀들을 바라보았고.


다시 정신을 차린 대장 사마귀가 내 바로 코 앞에 섰다.

 

 

 


"너 그 꼬질꼬질한 몸으로!!!!!!우리 하루한테 깔짝대지마!!!!!!!알았어!!!!!!!!!!!"

 

"근데............."

 


"..........."

 

 

"니네 남자아니냐........-_ -....?"

 

 

 

 


나의 그 한마디에.


일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사마귀들.


아무래도 역효과를 본듯 했다.

 

 


"그게 뭐!!!!!!!!!!뭐뭐뭐!!!!!!!!!그게 잘못됐어!!!!!!!!그게 잘못됐어!!!!!!!!!!!!!!


왜!!!!!!그게 어쨌는데!!!!!!!!!!!!!!!!!!!!!!!!!!!"

 

 

 


그말은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을뻔 했다.


그냥 조용히 경고만으로 끝낼수 있었던 그 옥상위의 쉬는시간을.


난 그들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림으로써 6교시 내내 혈투를 벌여야했고.

 

 

만신창이 된 그 꼴로 그만둔단 말을 하기 위해


전화 상담실에 도착했을때.


13번 언니는 나의 흉측한 몰골을 보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 전화 상담실.

 

 

 


"설아!!!!!!!!!!!!!!!!!"

 

"..-_-..그만둘꺼야.."

 

"너...또 싸웠니!!!!!!!!!!"

 


"......그 기집애..아니..그 새끼들이.."

 


"어떻게 된거야 응!?응!?"

 

"실장언니 어딨어..-_-..?"

 

"아니 그보다 뭐야 머리가 왜이래.!!"

 

"그냥 싸웠지 뭐.나 그만 둔다니까 언니."

 

 

 

그제야 내 말의 진짜 핵심을 알아들은듯.


의자위에서 벌떡 일어나는 13번 언니.

 

 

 

"뭐??"


"그만둬.나."


"아니 왜!?"


"....학교...다녀...야돼"


"학교라니!?!?"

 

 

 

그때였다.


그러니까 그게.13번 언니가 다시 한번 내 말을 확인하기 위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을때였는데.


12번.내 테이블에 있는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시계가 가르키고 있는 시각.

분명 5시였다.

그놈이다.

 

 

 

"전화부터 받어봐..."


"..전화받을 기분 아닌데.."

 

 

 

아냐.


이제 마지막인데. 작별인사 해야지 이놈한테도.


그래도 3달넘게 통화하면서 정들었는데.


나는 언니의 차가운 손을 꾸욱 잡으며. 왼손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고.

 

 

 

"네 12번 상담원 연결 되었습니다."


"........"

 

 

 


여느때랑 조금은 다른 놈의 숨소리를 느끼면서.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었다.

"..말씀하세요.."

"......신발........"

 

 

 

역시.그놈의 첫마디는

 

자나깨나 '신발'

앉으나 서나 '신발'

지구가 뒤집혀도 '신발'

 


허나 이젠 이것도 마지막이니 너그러이 받아주도록 하자.

 

 

 

"네..말씀하세요..."


"나..어떡해.."

 

 


여기까지도.똑같다.


왠지 이놈 목소리 어제와 다르게 느껴지는건. 나만의 착각인 것일까.

 

 


"죽었어..."

 

".....네....그렇군요....."

 

"충주가...많이 머냐...."

 

"아니요.가까울걸요.아마도"

 

"충주가..걔 할머니네 집 아닌데.."

 

 


왜 거기서 죽었어?할려 그러지.?

 

 


"왜...거짓말했어.....?"

 

 

 

응?????????


난 나의 앞선 입모양이 틀린것에 화들짝 놀랐다가.


조용히 숨죽이고 다시 수화기에 집중했다.

 

 

 

"....왜....형만...살았어........"

 

.

 


난 점점 메어가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마지막이란 작별인사를 건넬


그 어떤 틈도 찾을수가 없었고.


놈은 계속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도...죽을까.......?.."


"죽다니!!!!!!!!!!"


"...나도...죽을까.....?"


"죽는단 말 함부로 하지마 따샤!!!!!!!!!!!"

 

 

 

아차..이래선 안되는건데...

 

13번 언니가 내 팔을 세차게 흔들었을때.

 

이미 난 놈에게 거센 고함을 질러버린 뒤였고.

 

놈은 아무말없이 눈물 흘리는 소리를 나에게 건넸다.

 

 

'눈물 흘리는 소리' 따위 없다고. 많은 이들이 날 비웃을지 모르지만.


난 분명히 들었다.


'눈물 흘리는 소리'

 


..

 

 

"...복수하고......"

 

 

".....복수......?"

 


"그 여자 뺏고..그다음에 죽어도..."

 


"야!!!!!!!!!!!!"

 

 

"그래도...돼....?"

 

 


"나 이제 여기 그만둔단 말야!!!!!!이게 우리 마지막 통환데!!!!!!!!!

넌 언제까지 그렇게 질질 짜대구 끔찍한 소리만 해댈꺼야!!!!!!!!!!"

 

 

"..................."

 


"장난 아니라면 정신차리란 말야!!!!!!"

 

 


".......그 여자 뺏고...그다음에......."

 

 


후....

 

 

 

대체 이자식 뭐야.


뭐가 그렇게 힘들고 뭐가 그렇게 죽고싶길래 매일 다섯시마다 여기 전화해서


사람 신경을 긁어대는거야.


지가 힘들면 대체 얼마나 힘들길래.

 

 

 

"사랑한다고......그랬는데........"

 

 

 

내가 놈을 향한 원망의 볼륨을 팍팍 키우고 있을때..


그때..놈은..내 귀를 의심케 만드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가슴이..아파온다..


머리가..아파온다..


왜..갑자기...그런 목소리를 낸거지...

 

 

"뭐라는거야?!오늘 통화 왜그런거야!?"

 

 

다그쳐묻는 13번 언니에게 두손을 힘없이 저어보이고.


상담실을 나와버렸다.


말할 의미도 말할 힘도 찾지 못해서. 그냥 그곳을 나와버렸다.

 


첫날.


내 평생 소원인 학교에 간 그 첫날은.


정신없고.시끄럽고.두근대고.마음 찢기는.


엄마 아빠 유민이 떠난날보다 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날.

 

 

 

\ 평창동 본가.

 

 

"오 설이 이제와!!!!!!!!!"

 

 

아직도 낯설고 괴물같기만 한 집.


그 집의 현관문을 열고 힘없이 들어서자. 슬리퍼에 잠옷 차림의 할아버지가


반갑게 나를 반기셨다.

 

 


"네..."

 

"왜 이렇게 늦었어!!집 못찾는건가 걱정했다.."

 

"...하루는요..?"

 

"응!!하루!!하루 아직 안왔는데..!!"

 

"아.....네..."

 

 

 

일하는 아줌마가 쇼파를 닦다 말고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고.

 

난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음. 층계쪽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설이야...!!"

 

"...........네....?"

 

"아직 8신데..바로 올라가 자려고..?"

 

 


...-_-...

 

 


그렁그렁 나를 보며 호소하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느껴지고.


그 결과 나는 나란히 쇼파에 앉아 할아버지와 함께 앨범 구경을 하게 되었다.

 


거대한 빨간색 앨범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뿌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오늘 학교 어땠니?"


"그냥요."


"근데.안색이 안좋구나"

 


분명 들어오기전 공중 화장실에 들려 얼굴도 머리도 손질했는데.


아직 부스스한 모습이 남아있는지.할아버지가 의심쩍은 얼굴로 날 바라보셨다.

 

 

 


"아니요.아니에요.!!^^얼른 사진 봐요 할아버지!!"


"그래.!!허허허허-0-!!"

 


나의 밝은 미소에 흡족해하며 앨범 첫장을 넘기는 할아버지.

 

 


"하루가 잘해줬어?"


"네..^-^.."


"은찬인..너무 신경 안써도 된다..애가 수줍음이 많아서.."

 

 

순간.


옥상위에서 입술 박치기를 하고 있던 놈의 모습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더이상의 소동을 일으키지 않기위해 입을 꾸욱 다물었다.

 

 


"...봐라...이게..은찬이..하루..7살때다..."

 


에........?


이게 그 놈들이라구요..!?


사진속에서 서로 엉키고 주먹질하며 사이좋게 어울려 있는 두 꼬맹이.

 


이땐..사이가 좋았구나..


하루는..지금하고 얼굴이 많이 다르네..혼혈아 같은 모습 조금도 없고..


마냥 귀엽네..


활짝 웃고 있는 은찬놈은 그냥 없는 사람인셈 치고-_-

 

 


이새끼 이거 아니나 달라.


사진에서도 날 향해 혓바닥을 비죽 내밀고 있네.


할아버지만 없음 침을 카악 뱉어 버리는건데..-_-^

 

 

사진사진마다 하루의 얼굴만 뚫어져라 보았다.


공놀이를 하는 하루랑 개싸가지


목욕탕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찍은 하루랑 개싸가지.


외국인듯한 벌판에서 말을 타고 있는 하루랑 개싸가지.


그리고 뒤에서 할아버지 옆에 나란히 서있는 12살 가량의 아이.

 

 

이후에 나오는 사진마다.


곳곳에서 의젓히 서 빙긋 미소짓고 있는 그 아이는 내 호기심을 마구 땡겼지만.


내가 앨범을 다음장으로 넘기려 할때.


할아버지가 재빨리 내 손을 막는 바람에.이내 까맣게 잊혀지고 말았다.

 

 

 

 

"자자!!허허!!-0-이제 그만 보자!!"

 

"할아버지..-_-.."

 

"얘들은 애기때만 볼만해서!!커서는 징그러워!!안보는게 나아!!"

 

"...네..- -..?"

 

 

허둥지둥. 덮은 앨범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시는 할아버지.

 

 

"자!!밥먹자!!저녁 아직이지!?"

 

 

그날저녁.할아버지의 수수께끼 같은 행동은 저녁을 먹는 내내.


할아버지와 체스를 두는 내내.


방으로 올라와 장농안의 교복을 보며 기뻐 날뛰는 내내.


그 앨범의 다음장은 머릿속을 넘실넘실 흘러다녔고.

 

 


"..잘자거라.."

 

 


할아버지가 불을 끄며 인사를 건네셨을때도.


여전히. 내 호기심을 부추겼다.

 

 

 


\ 오전 12시 반.

 

 

 

아래층이 조용한걸로 봐선 두놈 다 안온건가..


거대한 이불에 폭 쌓여. 오늘은 어제와 달리 이리저리 뒹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하루 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은데..

 

에잇..!!!


내일 아침이면 그 개싸가지두 같이 붙어있을거 아냐..!!!


아님.


현관 앞에 앉아서 기다려볼까....-_-....?

 

 


괜시리 몸을 뒤척뒤척 거리다가.


답답한 마음에 창문이나 보자고


웃샤 하고 몸을 일으 켰을때.

 

그때.

 

 

어디선가..작은..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서..방문가에 슬금슬금 다가가 귀를 기울였을때..

 

나는 멎은듯한 심장을 움켜쥐고 바닥에 털퍽 주저앉고 말았다..

 

 

..............

 


....................

 

 

'네가 남긴 작은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작은 개구리마저 구슬프게 날 위로해주던 길..."

 

 

말도 안돼..이건..말도 안돼..

 

귀신에 홀린듯 방문을 열고...

 

한발자국..두발자국.

 

 


노래소리가 흐르는 곳으로...

 

이층 맨 왼편에서 울리는..그 노래가 있는곳으로..

 


그리고..복도 왼쪽에 가까워올수록..조금씩 더 커져오는 그 노래소리..

 

 

'목놓아 울다 네가 다시 내게 돌아와주길.


진동없는 작은 상자 힘을내 부숴져버리길...


내가 잠든 사이에 거짓말처럼 날 데려가주길.....'

 

 


...우연이..아냐...

 

저노래..내가 만든거였어..

 

한글자도 틀리지 않아...

 

한음도..틀리지 않아.........

 

 


거짓말이야.........저노래..........저노래...........

 

윤영이 외엔 그 누구도 알수 없어.....

 

 


터질것만 같은 울음을 거칠게 삼켜내고..

 

 


그래..문..


복도 왼편에 있는 발코니의 문을 열었다..


정원쪽을 향해 둥그렇게 자리잡은 발코니의 문을 열었다..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


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주길.'

 

삐그덕............

 


하얀잠옷 차림의 내가 투명한 유리문을 힘주어 여는것.

 

어쩐지. 유령 얘기에 등장하는 슬픈 한장면 같았다.

 

그리고..반쯤 열린 문사이로 보인 얼굴은..

 

그 신비스러운 정적을 거짓말로 만들어 버렸다.

 

 

'외톨이의 눈물을 기억해주길....

외톨이의 사랑을.....'

 


"어째서....."

 

"...."

 


"어째서.니가 그노랠 알아..."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


헝크러진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강은찬.

 

 

난 분노에 쩔은 얼굴로 저벅저벅 놈앞에 다가섰고..

 

놈은 술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묘한 눈으로 날 비스듬히 내려보았다.

 

 

 

 

"그노래를 니가 어떻게 알아!!!!!!!!!!!!!!"

 

"외톨이."

 


이자식. 술을 얼마나 쳐먹었길래 완전 개가 됐다.


아주 잠깐 비틀거리다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간신히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믿을수 없는 일이지만.


두 눈에 눈물을 담는다.


똑바로 바라 보기엔 너무 애처로운 그 슬픈 눈을 잠시 돌렸다가.


다시 내 쪽을 향해 이번엔 웃어보인다.

 

 


사진속의 7살 그모습처럼. 내가 지 원수라는것도 못알아보고.


두 눈이 보이지 않도록 활짝 웃어보인다.

 

 

 


"외톨이....."

 

 

 


잠시후. 내가 입을 열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정말 외톨이가 되버린 그놈이. 나를 안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 안겼다.

 


외톨이가 되어서. 사진속의 그 7살짜리 어린아이가 되어서.

내게 안겼다.

 

 

 

정원에 교복차림으로 비스듬이 서서.


발코니의 우리를 가만히 올려보는 하루를 바라보며.

 

 

아무도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무도 이해 못할지 모르지만.


난 나보다 큰 덩치의 은찬놈을 조금 세게 안아주었다.

 

 

 

'외톨이'란 그말에

나도 모르게 홀려 나도 모르게 취해.

 

 

 

 

내 어깨위로 자꾸 자꾸 떨어지는 은찬놈 눈물 아랑곳 하지 않고.


하루의 바싹 말라버린 시선 아랑곳 하지 않고.


처음 남자와 맞닿은것 치고.


좀 세게 안아 주었다.
 
 
\ 아침.

 


벌겋게 충혈된 두눈.


엉키고 엉켜 눈앞에 있는 시간까지 제대로 분간할수 없게 된 머리.-_-.


그리고.


밑에서 벌써 다섯번째 되풀이 되어 들려오는 아줌마의 목소리.

 

 

"학생!!!!!!!!내려와!!!!!!!아침 먹어요!!!!!!!!!!!!!!"

 

 

후...


강은찬 그 자식때문에..


오도가도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이야..

 

 

죽어도 얼굴 마주할 자신이 없는데..

 

 

"학새앵!!!!!!!!!!!!!!!!!!ㅠ0ㅠ"

 

 


좋아..!!이런다고 뭐가 해결 되겠어!!


일단은 박치기나 해보자...!!

 

 


"네.!!가요!!!!"

 

 


옷장에 걸려있는 교복을 대충 걸쳐 입고.


아주 잠깐 거울에 담긴 내 모습에 멍..하니 넋을 잃다가..


아줌마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조심스레 부엌에 들어섰을때.

 

 

 

"아주 잘어울려.!!굿이야!!굿!!"

 

숟갈을 들다 만 할아버지가 손뼉을 짝짝 치며 나를 반겼다.

 

"..아하하..-0-..정말요.."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대며 두 볼을 붉히는데.

 

갑자기 고갤 홱 돌려 나를 바라보는 강은찬놈.

 

 


옆에 앉아있는 뒷통수 하나는 목덜미가 까무잡잡한걸 보면 분명 하루인데.

 

내게 아무런 인기척이 없고.

 

 

 

"풉........"

 

..-_-..대신 강은찬 입에서 나온 정체모를 무언가가 나를 반겼다.

 


"....."

 

 

 

민망한 마음에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숟가락을 드는데 나를 빠안히 바라보는 강은찬.

 

이게 뭐하자는거지.-_-.


이제 막 나오겠다는건가.


그놈의 꿍꿍이가 뭐든 간에 여전히 부끄러운 마음으로


할아버지 질문에 열심히 대답을 해가며 밥을 뜨고 있는데.

 

 

 


"아줌마!!!!!!!!!!!!!!!!!!!!"

 

 


갑자기 커다란 목소리로 아줌마를 부르는 강은찬.


그러자 싱크대를 닦고 있던 아줌마가 무슨 일이냐는듯 식탁쪽을 돌아보고.

 

 


"그릇 하나 더 줘"


"...왜...?"

 


숟갈로 식탁을 탕탕 치는 강은찬.

 

 


"얘!!!!이거 국!!!!이거 얘가 먹던 숟갈로 국 먹어요!!!!!!!!!!"

 

 

...-_-...

 

 


이..개.....새...


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을때.


탁!!하는 소리와 그놈의 머리통에 꿀밤을 먹이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

 

 

 

"아아!!!!!!!!!!!!!!왜때려!!!!!!!!"

 

"너 그만 못해!!!!!!!!!!!-0-"

 

"나 된장국 좋아한단 말이야!!!!"

 

"그게 어때서!!!!!!!!"

 

"얘!!!!!!!!!이도 안닦았잖아!!!!!!!!!!"

 

"설이가 왜 이를 안닦어!!!!!!!!!!!그게 무슨 억지야!!!!!!!"

 

 

그런데.


안닦았습니다 할아버지.-_-.

 

 


"야!!!!!!!그지 너 된장국에 손대지마!!!!!!!!"

 

"어허!!!!그래도!!!"

 

"이씨.............."

 

 


..저새끼..


아무리 보고. 또 뜯어봐도.


어젯밤의 일을 끊긴 필름속에 영원히 묻어버렸나보다.


나로썬 고마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0-!!!!!!!!!!!


어제 니 어깨를 두드려주던 나의 따스한 손을 쥐도새도 모르게 까먹은거냐!!!!!!!!!!!!!!

 

 

왠지 괘씸해진 마음에 놈과 불같은 시선으로 소리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을때도.

 

아무말 없이 밥만 먹고 있는 하루.

 

 


그러고 보니 하루한테 미안하단 말 해야 하는데...


미안하단말 해야 하는데..


슬금슬금 하루의 눈치를 보며 수북한 밥그릇을 점점 비워내고 있을때..

 

 

말없이 된장국을 노려보고 있던 강은찬놈이.

 

갑자기 숟가락을 입에 넣고 사탕 빨듯이 쭉쭉 빨아대기 시작했다.

 

 


"아구아구아구.-0-아구아구-0-"

 


저 싸이코 또 왜저래.

 

 

 


"....강은찬..!!!!!!!!!"

 


그리고.


할아버지의 호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중간에 놓인 된장국에 숟가락을 놓고 마구


휘젓는 강은찬.

 

 

 


순간.식탁위에는 아주 고요하고도 무서운 침묵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고..


내가 놈을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때.


가만히 있던 강하루씨. 별안간 계란말이 하나를 집더니


은찬놈 얼굴로 툭-_- 하고 던져버렸다.

 

 

 

언제나 그랬듯 그 포커 페이스를 하고서..

 

 


"뭐야!!!!!!!!!!!!!!"

 

 

툭.!!!

 

 

또 하나 날라가는 계란말이.


이번엔 강은찬놈의 얼굴위에 케찹이 아주 조금 묻었고.

 

 

할아버지가 온몸을 푸르르푸르르 떠시는 사이에. 나는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아주 조금 의자


를 뒤로 물렸다.-_-

 

 

 

"이게 진짜!!!!!!!!"

 

 


그 후로.


식탁위를 이리저리 날라다니는 계란말이들.


할아버지가 육중한 쇠젓가락을 은찬놈의 대갈통에 명중시키실때까지.


십여개가 넘는 그 계란말이는 마치 날개가 돋힌듯 이리저리 날라 다녔고.

 

 

 

"그만 하지 못해!!!!!!!!!!!!!언제 철들거야 니놈은!!!!!!!!!!!!!!!!!!!"

 

 


....할아버지의 노발대발한 호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은찬놈은 씩씩거리며 부엌을 나가버렸다.


멍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옷깃에 있는 계란말이를 손으로 떨구고 날 노려보는 하루.

 

 

 

대체 이 자식들은 날더러 어쩌라는거야...


밥을 먹지 말라는거냐. 아니면 집을 나가라는거냐.-_-


말로 하란 말야 짜식들아.


차라리 알아듣게 말로.

 

 


노려보기를 멈춘 하루가 부엌을 나가고.


할아버지가 하루 뒤를 따라 나가셨을때.


난 이 비정상적인 가정에 대하여 또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중 이해되는것은.


단 한가지도 없었다.

 

 


"자 출발!!!!!!!!!!!!"

 


심지어. 기어코 학교에 데려다준다는 신기사 아저씨 뒤에.

외롭게 혼자 앉아있던 그 순간에도.

 

 

 


\ 덕풍고.정평중 정문앞.

 

 

 

 

오늘은 하루도 없으니 이일을 어쩌면 좋다니.


난 강은찬놈에게 단독으로 된박 깨지게 생겼구나..-_-..

 

 


"화이팅!!설!!!화이팅!!!!!!!!!!!!!!"

 

 


내 속을 절대 알리 없으니.


우렁찬 목소리로 날 배웅하는 신기사 아저씨.


그런 아저씨께 힘없이 양 손을 흔들며


제발 그놈이 오늘은 선도 스는날이 아니길 바라며 정문에 들어섰을때.

 

 


아니나 달라.

 

이럴 속셈으로 버스를 타고 이른아침 학교로 튀어간건지.

 

선도뱃지를 가슴에 단 놈이 위풍당당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_-.

 

 

 


"어..!!언니..!!가 아니라..너 중학생이였어..!??!"

 

 

 


은찬놈 옆에 꼭 붙어서 날 보고 놀라는 긴머리.


명찰을 흘낏 보니 ' 한예란'


...예쁘네 이름...

 

 

 

"아니.복학했어"

 

"..몇살인데..?"

 

"열여덟"

 

"뭐야!나랑 동갑이네!!에이!!언닌줄 알았잖어!!!!!!!!!!"

 

 

 

그래. 내 얼굴 삮았다 -_-^

 

반가워하는 그 여자아이를 방패삼아 어물쩡 현관으로 토끼려는데.

 

당연 어림도 없단듯 내 옷깃을 턱 잡아 뒤로 빠꾸 시키는 강은찬놈.

 

 

 


"손 놔라.-_-.응?"

 

"누가 널더러 그냥 가래"

 

"야"

 

"야 아니라.선배다 나.!!!!!"

 

"너 어제 일 기억 하나도 안나냐!!!!!"

 

"이게 어디서 또 개수작이야!!!!!!"

 

 

 


이런 뻔뻔으로 보약을 열첩 달여먹어도 시원찮을 새끼!!!!!!!!!-0-


예란이의 놀란 얼굴을 무시하고 놈의 가슴팍에 얼굴을 마구 들이대며


다시 한번 힘주어 물었다.

 

 

 


"어제 일 기억 하나도 안나냔 말이다!!!!!!!!!!"


"너 옥상에서 사마귀파한테 다구리 당한거 말하냐?"

 

 

 

 

...이게...한번 해보자 이거지..


좋아..


니가 잊은게 하나 있다 강은찬.


니놈이 잊은것이 하나 있어!!!!!!!-0-

 

 

 

"아니 그거 말고!!!!!!!!"

 

"그거 말고 뭐.!!!!!!"

 

"너 옥상에서 여자애랑 키스 하구 있던거 말이다!!!키스!!!!!!!!-0-"

 

 

 

일순간에 굳어버리는 은찬놈의 얼굴.


남은 선도부 아이들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한예란이와 강은찬이의 눈치를 살펴대자.


나는 서서히 두려워지는것을 느끼며.


점점 눈에 눈물이 고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한예란의 눈치를 살펴야했다.-_-.

 

 

그리고.

 

"너....한설......."

 

강은찬이 고개 숙인채로..나즈막히 내 이름을 불렀을때.


재빨리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_-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애니몰 패밀리가 있는 교실을 향해 미친듯 뛰고 말았다.

 

 

 

\ 교실.

 

 


"이번시간 기술시간이라!!!!!!컴퓨터 실 가야돼!!!!!!!!-0-!!!!!!"

 

 


하아..하아..ㅠ_ㅠ..

 

가쁜숨을 몰아쉬며 교실 앞문을 열었을때.

 

기다렸다는듯 커다란 얼굴을 두둥 드러내며 큰 소리를 지르는 맘모스.

 

 


날 보며 빙긋 미소짓는 이아이.


왠지.불안하다.

 

 

 


"근데......넌...왜 안갔어...?"

 

"언니랑 같이 가려고!!!!!!!!!"

 

"왜!!!!!!!!!!!!!"

 

"왜긴!!!!!우리가 어제 상의한끝에.언니도 우리 패밀리에 넣어주기로 했으니까 그러지!!!!!!!"

 

"나 문패!!문패도 안가지고 왔는데!!!!!!!!!!!-0-"

 


"그깟 문패가 무슨 상관이야.안그래?'

 

 


망연자실한 나를 보며 흐물흐물 미소짓더니.


그 튼튼한 팔을 내 손에 가차없이 끼워놓는 맘모스.


그리하여 나는.


졸지에 애니몰 패밀리가 되어. 2층 교무실 옆에 자리한 컴퓨터실 옆으로 끌려가야 했다..

 

 

"아우!!언니 왜 이제와!!!!!!!!!!어무나!!교복 입었네에!!!!!!!!!"

 

 


코끼리와 여우원숭이는 어느덧 후미진 뒷구석에 내 자리를 마련해놓은 상태였고.


나는 애처로운 아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그곳에 털썩 앉았다

 

 


"...-_-...나...앞에 앉고 싶은데"

 

"그건..언니가 뭘 몰라서 그래.."

 

 


곧바로 내 옆 의자에 (막아) 앉으며 나즈막히 속삭이는 맘모스.

 

 

 

"..앞에 앉으면..채팅을 못한다구우..-0-.."

 

 

 

 


누가 기술시간에 여기 앉아 채팅하고 싶대!!!!!!!!!!!!!!!!!!-0-


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버리자.


맘모스는 그 거대한 덩치로 내 앞을 막아버렸고.


때마침 선생님이 앞문을 열며 천진난만히 웃으며 들어오셨기에.


난 일단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그리고.

 

 

 


"야 학교 앞으루 오라구 해!!응?!우리 끝날때 맞춰 오라구 해!!!!!!!!!"

 

"이년아 입좀 닥쳐!!!!!!!!-0-니년 때문에 안녕이라고 언년이라고 썼잖아!!!!!!"

 


"아 야아!!!!!!!!그렇게 웃는 표정 막 날리지마!!도도한 컨셉 하란 말야!!"

 

"사진 보내달라는데?!"

 


"새끼들.보고 상사병 도지면 책임 못지는데"

 

 

....

 


......암담하다.....


그나마 멀쩡한 여우원숭이마저..

 


"기다려.내 사진 찍을께!!"

 

이렇게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아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며 사진을 찍고.

 


"언니도 같이.!!"

 

 

그것도 모자란지.


열심히 수업중인 선생님과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막아서더니. 마구 사진을 찍어댄다

 

 

 

 

죄송합니다.할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내에 신속히 떨구겠습니다..


친구 하나 없이 지낼지언정. 이들과 어울려 할아버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딩동댕동.딩동동동.둥둥둥둥'

 

 

 


그 길고 눈치보이던 1교시를 끝내는 종이 울리고.


애니몰 팸이 그들이 학교앞으로 올거라며 미쳐 날뛰는 사이에.


활짝 열린 문으로 재빨리 달려나가 도망나와 버렸는데.

 

 

 

"한설.이지."

 


덕풍고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의 남학생이.


내 앞을 조심스레 막아서며 들릴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왔다.

 


"..어.그런데."

 

"잠깐 같이 좀 가야겠는데"

 

"왜."

 

"은찬이가 불러서."

 

.....

.......

 


그럼 그렇지..


그놈이 어떤 놈인데. 그냥 넘어갈리가 없지.

 

 

 

"안간다면.?"

 


"부탁이야.같이 가줘.."

 


"그놈보구 내려오라고 해."

 

 


애니몰팸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까 흘끗 등을 보며 말하는 사이.


이미 그녀들은 내 뒤에 줄지어 선지 오래였다.


이런 제길.-_-

 

 


"...부탁이야..."

 

 

 

날보며 애처로이 호소하는 까까머리..


분명 내가 안가면..요놈한테 불똥이 튀기겠지..


그래.어차피.


이따 집에서 마주쳐 전쟁 한번 일어날꺼.


지금 가서 실컷 싸워주지 뭐.

 

 

 

이런 장한 결심을 먹고. 대답도 없이 까까머리의 뒤를 따라 걷는데.


뒤에서 자꾸 살금살금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6개가 나를 두렵게 만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옆에 위치한 덕풍고 안에 들어섰을때.


그 안에 위치한 4층 마지막 계단을 막 밟고 올라섰을때.


난 잠깐. 본의아니게 걸음을 멈춰서야만 했다.

 

 

"..안녕..."

....

 

 

.........아무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는 하루.

 

 

 

"저기..은찬이가.."

 

 

바로 등뒤에서 까까머리가 애타는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미안하단 말을 할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결코 놓칠수 없어서


난 하루 앞에 쪼그려 앉아버렸고


그앤 복도 벽에 대걸레를 비스듬히 세워놓은채 그옆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했어.어제."

 

"....뭐가....?"

 

"어제..니가 내 대신 맞고..그랬잖아..나때문에.."

 

 


왜일까.


이놈하고 마주하면. 왜 본의아니게 목소리가 작아지고.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걸까.

 

 

 

"그딴거.."

 

"..응..?"

 

"그딴거 기억 하지마.."

 

"..-_-..그래..근데..미안하다고.."

 

"미안하단 말.."


"...?"

 

"내게 젤 싫어하는 말일걸..."


"..그..그래...?"

 

 

 


끄덕끄덕..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내 뒤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하루.

 

 

"저건 다 뭐야...?"


"응?"

 

 

하루의 말에 얼른 뒤를 돌아보니.


울상이 된 까까머리 뿐만이 아니라.


콧구멍과 입이 벌름대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것 같은 얼굴의 코끼리도 보였다.


물론. 숭아와 하연(여우 원숭이)이도 함께.-_-

 

 


그렇다면 알겠다.


코끼리의 2-2반 오라버니가 바로 이놈인 모양이다.


그리고. 내 예상을 딱 때려 맞추듯.곧바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행동파 애니몰.

 

 

 

 

"...오빠가...오빠가..ㅠ0ㅠ..."

 

 

차마 무서운 하루에게 선뜻 다가오지 못하고. 두 손을 꼭 쥔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코끼리를


보고. 하루가 까딱까딱 손짓을 해보였다.

 

 


"..저..저요?"

 

 

계속해서 손짓을 하는 하루.


코끼리가 믿을수 없단 얼굴로 숭아와 하연이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이쪽으로 다가왔을때.


하루는 그녀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해보였고.


영문을 알지 못하는 내가 두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을때.


하루놈.


갑자기 코끼리의 머리를 동여매고 있던 끈을 끌러 버리고 말았다.

 

 

ㅇ_ㅇ...???

 

 

그리고..


끼리끼리가 황홀해 하는 사이에.


하루. 그 끈을 내게 내민다.

 

 


"뭐..야...?"


"묶어"


"..왜..?"

 

"묶어."


"...-_-...왜..지금 내 머리 그렇게 보기 흉하냐...?"

 

"데이트 한번 해줄테니까..묶어.."

 

 

-_- 아니 잠깐..


니가 지금 그 말을 하면 안되는 거였..

 

 


"으허어엉어엉엉엉엉!!!!!!!!!!ㅠ0ㅠ"

 


내 생각이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머리가 산발 된채로 층계쪽에 마구 달려가버리는 끼리.


그러자 숭아와 하연이도 나를 향해

 

"이 나쁜년!!!!!!!!!-0-"

 

을 외치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고..

 

 


나는 그 화근의 말을 던진 하루를 한번 보고..그리고 머리끈을 한번 보고..

 

 


"누가 너더러 데이트 해달래..-_-..?"


하고 물었다.

 

 

 

"학교 앞에서 기다려."

 

"할아버지가..시켰냐...?"


".........."

 

"그런거라면 안 그래도"

 

"등신"

 

"...뭐!!!!!"

 


"등을 고치는 신."

 

".....뭐라고....-_-...."

 


"재미없지"

 


"어.화가 나는데..-_-.."

 

"그러니까 기다려."

 

"....-_-.."

 


"내 말 안들려.?대답해.기다린다고."

 

 

땡깡부리는 어린애 같어 이놈..

 


그쯤.나를 부르는 까까머리의 모기소리는 애처로움의 극치에 달해있었기에.


나는

 


"알았어.이따 봐"

란 한마디를 뚝뚝히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때. 날 올려다보며 싱긋 웃어보이는 하루.

 

잘못본건가 싶어 얼른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니.

 

그사이 되찾은 무표정한 얼굴로 " 머리 안묶으면 데이트 안해준다" 하며 중얼댄다.

 

 

 

다시 한번 웃어보지..


너무너무 예뻤는데...


고갤 끄덕이며.좀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잠자코 까까머리의 뒤를 따라갔다.


잠깐동안의 기분좋은 만남을 끝내고. 최악의 만남을 시작하기 위해서.

\ 2- 4 반 교실.

 


끼이익.

 

문이 조심스레 열리면.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는듯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 앉는 까까머리.


난 신기한듯이 쏟아지는 몇십개의 시선들과 함께.


맨 뒷자리에 아이들에게 둘러쌓여 웃고 있는 은찬놈을 보았고.


동시에 그놈도 이쪽을 본듯 표정이 화악 굳어지는것 같았다.

 

 


그리곤 이내. 까딱까딱 손짓하는 문드러질 손가락.

 


하루랑 매우 다른 느낌.

 

 

저벅저벅저벅.


그 다른 느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며 내가 놈앞에 척하니 다가섰을때.

 

 

"이야아!!멋진데에!!!!!!!!!!!"

 

"애기야.몇살이냐!!응?!"

 

 

나와 동갑내기 자식들이 박수를 짝짝 쳐가며 내 주위에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난 눈앞의 은찬놈만 가만히 쏘아보며 신경전을 벌였다.


그리고. 어이없는 눈으로 날 가만히 올려보던 은찬놈이 입을 여는 찰나에.

 

 


"요놈들아 지금 뭐하는거야!!!!!!!!자리에 앉어!!!!!!!!!!!"

 

 

.........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교실안에 들어왔다.

 

 


- 0-

 


!!!!!


저 남자!!어제 하루 죽도록 두드려 팬 그 남자!!!!!!!!!!!


나도 은찬놈도 놀라 동시에 굳은얼굴로 그 선생을 바라보자니.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는 선생.

 

 

 


"넌..여기 왜왔냐...?"

 

 

선생의 물음에. 일분단 맨 앞에 앉아있던 촉새같은 놈이 재빨리 외쳤다.

 

 


"걔 은찬이 여자친구래요!!!!!!!!!!!!!!!!!!!!"

 


"어떤 자식이!!!!!!!!!!-0-!!!!!!!!"

 

 


그리고. 홧김에 내가 고함을 질러댔을때.


그 선생.


어제와는 사뭇 다른. 장난기 섞인 얼굴로 나를 교탁앞에 불러냈다.

 

 


쳇..이놈..


......개 싸이코에다가..이중인격자...


건들건들 다리를 흔들며 그 선생을 노려보자니..

 

 

"..니가..은찬이 여자친구냐..?"


"아니요!!!!!!!!!!!!"

 

 

동시에 튀어나온 나와 은찬놈의 말.


그러자 그 선생 피식피식 웃더니만..

 


"노래 하나 하구 가라"

 

 

 

..네..뭐라구요..노래 말씀입니까..?

 

 


그때였다.


은찬놈의 얼굴에 아주 비..열한 웃음이 번진것은.


나는 이빨을 부드득 부드득 갈면서 그놈을 노려보았고..

 

 

 

"골룸 시켜요 선생님.!!!!!!!!!!!"


...-_-...

 


나의 예상대로 은찬놈.


왼팔까지 번쩍 들어가며 상당한 열의를 보였다.

 

 


"아하하하하 너무한다 강은찬 ㅠ0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책상을 탕탕 두드려가며 웃는 아이들.

 

뭐야..골룸이 뭔데..-_-..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그런 아이들과


어제와 달라도 너무 다른 얼굴을 한 그 선생을 번갈아 보았고.

 

 

"그래.골룸 해라.그럼 보내주지."

 

그런 날 재밌다는듯 바라보며 싸이코 변태 선생이 말했다.

 

 


"그게 뭔데요..."

 

"너 반지의 제왕도 안봤냐..!?"

 

"반지의 제왕?."

 

 

 

일순간 싸한 공기가 맴도는 교실.


나 이런거 정말정말 싫은데..

 

 


"..영화잖아..!!영화!!그 유명한 영화를 몰라!!"

 


"몰라요...."

 

"장난치나!!"

 


"영화.본적 없어요..."

 


"...뭐???한번도?????"

 


"한번도요.."

 


"이게.선생을 갖구 놀리네..!"

 

 

 

콩.하며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는 선생.


난 하루것까지 더해서. 아까보다 한트럭은 더 적의감 넘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어떻게 영화를 한번도 안봐!!!!!!!!!!"

 

"아무도 안보여 줬어요.."

 

"비디오도 안봤다는거냐!?!?"

 

".........."

 

"너 반지의 제왕이 뭔지도 몰라??"

 

"........네......"

 

 

 

굴욕적.치욕적.

 

강은찬 개자식.진짜 제대로 된 개자식.

 

 

 

"그럼 쌈박한 트로트 하나 부르고 가라!!"

 

 

 

선생의 말이 떨어지기 박수소리가 무섭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참. 이젠 살다 살다 별걸 다하는구나.


고아에 모자라.구걸에 모자라.아동학대에 모자라.입양에 모자라.


이젠 쌈박한 트롯트라니.

 

 

 

"얼른 불러.트롯트 몰라??"

 

"아는 노래가 없는데요.."

 

"..뭐..?"

 

"아는 트롯트가 없어요"

 

"아니 넌 티비두 안보구 사냐!?노래방두 한번도 안가봤어!?!?"

 

".네"

 


"말이 돼!!!!!!!!!니네 엄마 아빠가 집에 티비두 안갖다 놨단 말이야!!!!!!!!!!!!!"

 

"엄마 아빠 없어요."

 


"뭐!!!!!!!!"

 

 

"우리 엄마 아빠 죽었어요"

 

 


선생이 할말을 잃은듯 나를 바라보고. 아이들이 웅성거림을 멈추고.


강은찬놈마저 굳어버린 얼굴로 나를 응시 했을때.

 

 


"너..지금..나랑..장난하냐..?"

 

 

 

선생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역시. 어제의 사건으로 단단히 진 빛이 있었기에. 절대 물러나지 않고


두눈 똑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 죽은게.어째서 장난인가요."

 

"야!!!!!!!!!!!!!!"

 

 


선생이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그리고 놀랍게 강은찬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남과 동시에.


탕!!하고 열리는 교실 앞문.

 

 


"뭐야!!!!!!!!!!!!!"

 

"청소 다했어요"

 

 

 


이런...젠장..

 

하루다...

 

........또......하루다.

 

 

 

"....알았어..기다려..."

 

귀찮다는듯 가라는 시늉을 해보이는 선생.

 

 

"청소.다했어요"

 

"....그래...기다리라고..기다려 이자식아..."

 

 


화를 꾹꾹 눌러참는 선생이 하루에게서 간신히 시선을 거두어 다시 나를 보았다


그리곤.

 

 

"야.너 몇학년 몇반이야.."

 

라며 금방이라도 한대 칠듯 말을 건네는 찰나에.

 

"다했습니다.청소."

 


...................또한번 되풀이되는 하루 목소리.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고개를 숙이며 그런 하루의 모습을 외면했고.

 

"따라와 강하루"

 

란 소리와 함께 선생이 앞문을 열고 나가버리자.

 

쌩뚱맞게도 강은찬이 뒷문을 열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끝나고 기다려.머리 묶고."

 

 

 

멍해있는 나를 남겨두고. 그리고 이 한마디를 남겨두고.


교실을 나가버리는 하루.

 

 


.......................말도 안돼....

 

뒤늦게 사태파악이 된 내가 재빨리 교실을 나왔을때.

 

이미 은찬일 포함한 세 남자의 뒷모습은. 작은 점이 되어 저만치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 방과후

 

 

분명 아까 교무실에 갔을때도.


하루네 교실에 갔을때도.


그리고 다시 은찬이네 교실에 왔을때도.


세사람 모두 머리 털 하나 볼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셋이 학교 옥상에라도 올라간건가..아니면..

 

 


"하이.이 학교 학생이에요.?"

 

 

밀려드는 걱정에. 교문에 기대서서 운동장쪽으로 열심히 하루의 얼굴을 찾고 있을때.


누군가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밝은 오렌지색 컷트에.커다란 갈색눈을 한..그리고 큰키에 많이 마른듯한 여자가..


내 앞에 서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네..그런데요.."

 

"...고등학생..?"

 

"아뇨.."

 


"아..그럼..하루 모르겠구나.."

 


"...누구요...?하루...?"

 

"응.하루하루."

 


"하루를..어떻게.."

 

 


.....그때....낯익은 모습 하나가 시야에 작게 잡혀오고..


곧 그 낯익은 모습이. 재수없는 모습 하나로 바뀌더니..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 가까워져 왔다.

 

 

 

"어!!!!!!!!!은찬!!!!!!!!!!!!!!!!!!!!"

 

 

 


놀랍게도..내가 부르기도 전에..그리고 놈이 내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반갑게 은찬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


지친듯한 얼굴의 은찬인 그 여잘 잠자코 바라보더니..

 

 


"..안녕하세요.."

 


"응..이제 나와..!!"

 


"..네..여긴 왠일이세요.."

 


"아..저기..음..그러니까.."

 

 


당황한듯 말을 더듬거리는 여자..


왜그러지..

 

 

 

"하루 만나러.!!^^"

 

"...왜요...?"

 

"...아니..그냥..맛난거좀 사주러..그럼 안되나..?"

 

"그럼 난요?"


"응?"

 

"됐어요..."

 

 

무슨 관계지 이여잔....??


어색한 두사람의 침묵을 지켜보며. 나는 또다른 궁금증에 휩쌓여야 했고..


이내 날 바라보는 은찬놈의 시선에 고개를 돌리니..


때마침..그토록 찾아 헤매던 얼굴이 이쪽을 향하여 가까워 왔다..

 

 


그리고..

 

 

"하루야!!!!!!!!!!!!"

 


동시에 그의 이름을 외쳐버린 우리 두사람..


그여자가..조금 더..빨랐다..


멍해있는 나를 보며. 그여자 하루를 향해 경쾌하게 달려갔고..

 

 


휴..


..다행이다..


하루..멀쩡하네..

 

 


상처 없는 하루의 얼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때.


여잔. 하루의 옆에 바짝 붙어서서 이쪽으로 가까워 왔다.

 

...


......


그래서 마주보고 서게된 우리 네사람.


은찬이랑 내가 이쪽. 하루랑 그 여자가 저쪽이다.

 

 

 

 

"머리.안묶었네."

 

"..응..아무래도..좀 어색해서.."

 

"약속.어겼네."

 

 

이번엔 좀 심각히 들려오는 하루의 목소리.

 

머리 안묶은게..그렇게 죽을 죄를 저지른건가..?

 


좀 유별나다는 생각에..무심코 고갤 들어 하루를 보았다.

 


그런데 우리 두사람의 시선이 오가기도 전.


나보다 족히 5살은 더 많아 보이는 그 여자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가자 하루야. 차 가져 왔어."

 

 


미안하지만. 걔 나랑 데이트 하기로 했는데요.


왠지 모르게 힘이 들어간 어깨를 세우고. 여자를 똑바로 바라 보았을때.


나를 몇초간 내려다보곤..그 여자쪽으로 시선을 향하는 하루.

 

 

그러더니. 말한마디 없이 그여자와 함께 등을 돌려버린다.


.....

........

 

이럴수가..-0-..

 

 

 

 

 

"야!!강하루!!!!!!!!!!!!!!!!!!"

 


".........."

 

"나..나랑!!!데..."

 

 

에이 제기랄.데이트라니.

 

 


"너..너..나랑!!논대매!!!!!!!!!!!!!!"

 

".........머리 안묶었잖아."

 


"뭐..-0-..?!!!!!!!!!!!!!!!!"

 

 

 

어이가 없어 다시 되물으려니.

 

뒤도 한번 안돌아보고 멀어져가는 하루.

 

그사이 그여잔. 은찬일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들어 댔고..

 

두사람이 시야에서 완전 사라진뒤 내가 맥없이 교문가에 기대섰을때..

 

 

 


"병신..혼자 삽질도 잘해요."

 

 

듣기도 싫은 강은찬의 목소리가 완벽한 나의 일패를 알렸다.

그래. 요놈이 남아 있었구나.


멀어져가는 하루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스리슬쩍 곁눈질을 하자니.


매서운 바람에 교복 마이를 여미며 날 씨익 웃어 보이는 은찬놈.

 

 

 

재수 털리게 시리.

 

 

"왜...?"

 


"아까.뭐라구 그랬냐 너...?^-^.."

 


"....뭐가?"

 


"키스가 뭐!?!!!!!!!!!"

 


"니..니놈이 먼저 사마귀 파가 어쩌구 저쩌구 한거 아냐!!!!!!!!!!!!!!!"

 

 

"이자식아!!!!!!너때문에 헤어졌단 말이야!!!!!!!!!!!!!!!!!!!!!"

 


".그...그..러..냐..-_-..?"

 


"그리고 너!!!!!!!!!!"

 


"...-_-..."

 


"아주 뽀뽀랑 키스도 구별 못하지!!!!!!!!!"

 

 

 

내 앞에 바짝 다가서 고막이 닳도록 고함을 지르는 은찬놈.


이게 씨.


안그래도 지금 기분 꼴깝인데..

 

 

 

"알게 뭐야 그딴거!!!!!!!!!그거나 그거나 뭐!!어쨋든 입술 부댄거 아냐!!!!-0-"

 

"푸하..그게 같냐?응?그게 같어?"

 

"니가 잘한건 또 뭔데!!"

 

"...하긴...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남자 하나 못사귄 니가 뭘 알겠냐."

 

"....뭐...?"

 

"어떤놈이 널 데려갈지.참.내가 다 걱정이다"

 

 


....이자식이...

 

 

내가 쏘아보는 사이. 차갑게 얼어붙은 손으로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치는 은찬놈.


그러더니 내가 손모가지를 비틀어버리기 직전에.


얼른 손을 교복 마이에 쓱싹쓱싹 문지른다.

 

 

 

"아우 드러.드러드러드러.!!!"

 

"드러우면 왜 만지냐 이새꺄!!그리구!!!나 남자 있어!!!!!!!!"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뱉은 비참한 뻥 한마디.


그리고 그 뻥 한마디에.


놈이 묘한 미소를 또 한번 짓더니. 이번엔 아까와 사뭇 다른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하루라면 관둬라."

 

"걔 아냐.!!!"

 

 

좀 오버된듯 싶게 나온 큰 대답

 

 


"걔 좋아하다가. 여러 여자 피 봤다.."

 

"누가 걔 좋아한댔냔 말야!!!!!!!!"

 

 


내가 한번 더 힘주어 고함을 질렀을때.


그때였다.


그러니까 막 은찬놈이 나를 향해서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뜻모를 한마디를 중얼 거릴 때였는데.


아까부터 시야에서 거슬리던 완전 빽쫄바지 놈 네명이.


이쪽을 향해 건들건들 다가오기 시작한것이다.

 

 


...뭐야..저것들은..


마치 바지가 아니라 스타킹을 신은것 같구..

 

 


"어이!!!!!!!!니가 불타는 쌔끈녀지!!!!!!!!!!!"

 

 


...지금..나보고...

 

 

"나머지 애들은 어딨어!!!이야!!너 사진빨이였구나!!!"

 

 


할말을 잃은 나를 삼삼오오 에워쌓는 스타킹 바지들.


그러자 강은찬놈은 우스워 죽겠다는듯 뒤로 물러나 킥킥 대기 시작했고.


난 벌개진 얼굴로다가 놈들에게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야!!무슨소리야!!불타는 쌔끈녀라니!!!!!!!!!니들 나 알어!!!!!"

 

"아까 채팅했잖아!!니가 사진 보내줬잖아!!봐!!명찰!!이름두 한설 맞구만!!"

 

 


이 애니몰 패밀리를 진짜!!ㅠ0ㅠ

 

점점 더 커다랗게 들려오는 강은찬의 웃음소리에. 나는 이마위로 흐르는 땀방울을


느끼며

 

 

 

"그거 나 아냐!!걔네 이제 곧 나올꺼니까.!!걔들하구 벙개를 치든 뭘 치든 알아서해!!"

 

"야 왜그래.불타는 쌔끈녀.얼굴보구 도망치기 없기로 했잖아!!이러기냐!?"

 

"이자식들아 나 아니라니까!!!ㅠ0ㅠ!!"

 

 

내 목소리가 커져갈수록 그 핏덩이같은 스타킹 바지들은 언성을 높이며 나를 궁지에


몰아갔고.


그러는 사이 강은찬놈은 이 한마디를 던진채 유유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벙개걸.즐."

 

 

......

 

........

 

 


"야 저자식은 뭐냐!?팍 삮아가지구.불타는 쌔끈녀 니네 학교냐?응?"

 


"나머지 애들은 어딨어..??왜 불타는 쌔끈녀 니만 나와 있는데..?"

 

"아우 추워!!야!!불타는 쌔끈녀!!빨리좀 나오라고 해!!"

 

 

 

이 조막만한것들이 아직도 내 기분을 파악하지 못했구나..

 

 

가면을 벗은 나의 참 얼굴을 아직 보지 못했는지.


그놈들은 계속해서 궁시렁궁시렁 대며 투덜거렸고.


이윽고 꽁꽁 얼어붙은 내 손이 그중 키가 젤 작은놈의 머리에 쿵!!하고 주먹을 먹였을때.


입이 딱 벌어진채로 나를 올려보았다.

 

 

 


"나..불타는 쌔끈녀 아니다..그만해라..응......?"

 

 

뻣뻣이 굳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응시하는 스타킹 동생들.

 

 


"......"


"거지에..애니몰 패밀리에..벙개걸에..정말..후.."


"..그럼 불타는 쌔끈녀는...."


"스읍..!!"


".....-_-..네.."

 

 

 


다소곳이 고갤 숙인 동생들을 뒤로하고. 횡단보도 쪽으로 몸을 돌렸을때.


유유히 앞을 지나가는 빨간 자동차 한대.


그리고 열린 오른쪽 창문을 통해.


손을 흔들어보이는 강하루씨..

 

-_-...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빠르게 스쳐간 하루의 얼굴을 기억했고.


아무리 보아도 그놈.


날 가지고 잠시 장난을 친것 같다는 기분나쁜 예감에.


집에 돌아오는 내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발로 뻥뻥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 평창동 집.

 


꾸욱.


축 처진 어깨를 하고서 벨을 눌렀는데..

 

 

"누구세요..?!"

 


인터폰으로 흘러나오는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

 

누구지..??

 

 

"..설..인데요.."

 

"설이가 누구에요..?!"

 

 

누구냐구..?..이럴땐 뭐라고 해..?


이집 군식구..아니면 입양아..?하루 친구라고 해야하나..?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고민되어 난감해 하는 사이.


쌔근쌔근 숨소리에서. 다시 앙칼지게 바뀌는 꼬마의 목소리.

 

 

"..한설..?"

 

".....네.."

 

"....칫.."

 

"...응..??"

 

 

이게 무언가..-0-..

 

싶어 다시 한번 되묻는 사이. 철크덕 하고 쉽게 열리는 문.

 


친척들이라도 놀러온건가..?


왠지 위축되는 마음에. 어제보다 몇배는 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현관안에 들어섰다.

 

그러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길고 굽슬거리는 머리를 가진 여자아이가..


현관 앞에 떡 버티고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인형인가 이거..?

 

 

 


"한설이야.니가?"

 

"...-_-..몇살이니 꼬맹아.."

 

"내가 몇살이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그래..그것도 그렇다..그치..-_-..?"

 

 

얼른 이층으로 도망가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선. 신발을 신고 종종 걸음으로 거실에 들어서는데..

 

 

이아이 뿐인건가..?

 

왜 아무도 안보이지...

 

 


".....너..!!!!!!!!"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첫번째 계단으로 발을 올려놓았을때.


그 마론 인형같은 꼬맹이가. 나를 향해 아주 도전적인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

 

"..왜..?"

 

"...하루랑 친하다며..!?"

 

"...하루?"

 

"그래!!하루!!!!"

 

"...글쎄..친한건가...근데 넌 누구야..?"

 

"하루 신부야!!!!"

 

"..아하하..그래..축하해..결혼식날 불러줘..도움은 안되겠지만.."

 


나의 말이 농담조로 들린건지.


밝은 갈색의 그 아이 눈동자가 진한 초콜렛 색으로 물들어 갔다.


신기하기도 해라..-_-..


나의 본분도 잊고서. 잠깐동안 그 그림같은 눈 두개에 집중을 하고 있을때..

 

 

"뭘봐!!"

 

"...아...미안...안볼게..됐지..-_-..?"

 

"재수없어.거지면서.거지면서.."

 

"..-_-..꼬맹아..너 그대로 자라면. 나중에 친구 하나 없을꺼다."

 

"근데!!니가 무슨 상관이야 이 그지야!!!!!"

 

"....그래..그럼 거지는 이만..."

 

 

..후..아...

 

후우...아....


넘치는 분노를 꾹꾹 누르면서. 뒤에서 들려오는 그아이의 앙칼진 외침을 무시하고

 

방으로 재빨리 들어왔다.

 


'설마 저애. 여기서 산다거나 하면. 나. 영락없이 나가야 하는건가..?'

 


이런 저런 생각에.


가방도 벗어놓지 않고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방문이 삐그덕 열리며..


그아이가 들어왔다. 양손에 종이들을 잔뜩 들고선..

 

 


"....왜....?"

 

"딱지 접어줘"


"...나 거진데도..?괜찮어..?"

 

"응.딱지 접어줘.."

 

 

헤에..이거..꽤 귀여운 구석이 있네..


여전히 잔뜩 심통난 얼굴을 하고. 바닥에 털퍽 주저앉아 꾸깃꾸깃한 종이들을 늘어놓는


꼬맹이.


나는 입가에 저절로 번지는 미소를 그대로 놔둔채 그아이 앞에 주저앉았고..

 

 

"...이름이 뭐야..?"


"강미라"


"예쁘다..이름..^ㅇ^.."


"딱지 접어줘"


"..그래!!아..손..씻고 올까..?"


"됐어.그냥 접어"


"..헤헤..그래그래..좋아..딱지라..음.."

 

 

딱지를 어떻게 접었더라. 초등학교때 일이라 다 까먹어 버렸네..

 

이집에 온뒤로. 내 방에 처음 놀러온 꼬마손님을 보면서.

 

아까 들었던 '거지' 소리는 까맣게 잊은채. 딱지들을 접는데 열중해 갔다.

 

 

"맘에 들어..?괜찮어..?"

 

"몰라."

 

"..그럼..배 접어줄까?배?"

 

"..아무거나 접어.."

 

"그래.배!!배도 접고.나 별도 접을줄 아는데!!별도 접어줄까!?"


"맘대로 하라니깐"

 

 

원래 꼬맹이를 좋아한다.


6살 차이나던 남동생이 웅얼이를 하기도 전에 죽어버렸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면 꼬맹이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이 아이는 오랜만에 나에게 따뜻한 숨소리를 느끼게 해주었고..


나는 교복도 가방도 벗지 않은채.


그렇게 손때 묻은 딱지와 별 따위를 무려 53개나 접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종이를 잘게 찢어 별들을 여러개 만들었을때.


만족한듯 빙긋 미소를 짓는 미라.

 

 


"예뻐.맘에 들어"

 

"그래?헤헤헤.또 뭐. 만들고 싶은거 없어??"

 

"...밖에 나가 놀아.."

 

"밖에서?"

 

"정원에서 놀아"

 

"이렇게 추운데...........???안에서 놀자..언니가 재밌는거"

 

"밖에서 놀아!!!"

 

"..너 감기 걸릴텐데..!!"

 

"밖에서 놀래.밖에서 놀아."

 

"........그래...그럼..대신 옷 따뜻히 입고 나가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배며 딱지들을 두 손 가득 들어올려 방을 나가는 미라.


나는 가방을 침대위에 벗어둔채 황급히 미라 뒤를 따라 나섰고.


그아인. 일층 거실에 종이배와 딱지.별들을 흐트려 놓더니.


쇼파위의 외투를 걸치고 정원으로 휭하니 나가버렸다.

 

 

다행이다. 건방진 꼬맹인줄만 알았는데.


좋은 친구가 생겼구나. 더군다나 저렇게 예쁜 눈을 가진 아이가 말야..


난 문득 4년전의 윤영이 얼굴을 떠올리며..


비밀스럽게 조금씩 열리는 가슴을 안고 정원밖에 나갔고.

 


아까 은찬놈이 교복마이를 힘껏 여미었을 정도로.


바깥 날씨는 굉장히 많이 추웠다.

 


"아아..추워..!!!!"

 

 

아니나 달라.


골프채 하나를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몸을 덜덜 떨어대는 미라.

 


"거봐.춥다고 했잖어!!들어가자!!"

 

"싫어!!"

 

".....그럼..이거라도 걸쳐.."

 

"싫어!!"

 

"말 들으라니까!!!!!!!!!"

 

"........."

 


좀 높아져버린 나의 언성에. 놀란듯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샐쭉한 얼굴로 교복마이를


건네입는 미라.


그러더니 다시 금방 신이 난 얼굴로 정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너무 그렇게 뛰지마!!넘어져!!"

 


걱정스런 마음에 커다란 돌위에 올라앉아 그렇게 소리를 지르려니.


갑자기 고무호스를 빼내어 물을 트는 미라.

 

 

그리고.


뭔가 불안한 예감에 재빨리 몸을 피하기도 전에.

 

 

"꺄하하하하하하!!!!!!!!!!!!!!!"

 


그 고무 호스의 주둥이쪽을 내쪽으로 돌려


아주 차갑고도 차가운 물줄기를 용서없이 퍼부어 버렸다.

 

 


"차가워!!!!!그만 꺼!!!!!!!!!!!미라야아!!!!!!!!!!ㅠ0ㅠ!!"

 

"꺄아하하하!!!!!!!!!!!!!!!!!!"

 

 

저거 진짜 강은찬놈이면 당장에 달려가 귀퉁댕이를 내려쳐버릴텐데 ㅠ_ㅠ

 

 

유달리 여자에게 약하고.


또 꼬맹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강한 물줄기를 두 팔로 막아냈고...

 

그 길고 긴 정원의 물고문이 끝났을때에.


이미 나의 윗니와 아랫니는 사정없이 버물려 '딱딱딱딱' 하고 호두 까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 거실.

 

 


어둑어둑해진 하늘.


옷을 세겹이나 껴입고. 으슬으슬한 몸의 한기를 느끼며 벽난로 불을 쬐고 있을때.


양탄자 위에 주저앉아 종이배를 갖고 노는 미라

 

 

 

"슈우웅..슈우웅.."

 

"미라야.옷입어."

 

"싫어."

 

 

그랬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미라는 입고 있던 코트와 스웨터를 집어 던지고.


얇은 티 하나와 반바지만 입고 저렇듯 몇시간째 혼자 놀이를 하고 있다.

 

 

행여 내가 끼어들라 치면


"저리가!!!!!!!!-0-"


하며 아주 매몰찬 반응을 보이면서..-_-..

 

 


"삼촌들 왜 안오지..?"

 

"삼촌이라니..?"

 

".....왜 안오지...."

 

 

삼촌이라면..하루랑 은찬일 말하는건가..?


아니면 할아버지...?

 


..아..젠장..머리야...


아까 맞은 물줄기의 후유증인지.이젠 머리가 아닌 온몸이 부슬부슬 떨려오는게.


아무래도 빌어먹을 감기몸살에 걸린것 같았다..

 

 

"..미라야..약 어딨는줄 알아..?"

 


그리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앉아있는 미라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을때.


갑자기 자리에 벌렁 누워 버리는 미라.

 

 

 

"..왜그래..미라야...??"


"......."


"야!!너 왜그래!!어디 아픈거야!?!응?!!?"

 

 

 


'띠디디디디 띠디디디디 띠디디디디디♬'

 

 


그때. 그러니까 미라가 막 양탄자위에 어지러운듯 누워버린 그 시각에.


갑작스레 울려대는 인터폰 소리.

...

 


"누구세요...?"

 


빠개질것만 같은 머리를 한손으로 받치며 인터폰을 향해 말하면.

 


"문열어!!"

 

 

이 목소리는 아무리 봐도 은찬놈 같은데.


아닌게 아니라 놈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는것 같았다.

 

 


찰칵. 버튼을 누르고 다시 거실 쇼파를 향해 돌아 섰을때.


이번엔 돌아서 엎드린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는 미라.

 

이런!!

 

 

 

"미라야!!왜그래!!야!!!"

 

"............."

 

"뭐라고 말좀 해봐!!!!!어디 아퍼!?!?응!?!?"


"삼촌.........삼촌........"

 

"삼촌!?!?은찬이!?은찬이 지금 왔!!!"

 

 


그때.


요란스레 열리는 현관문 소리.


이윽고 굉장히 피곤해보이는 은찬놈이 교복차림으로 성큼성큼 거실안에 들어섰고.


나를 지나쳐 그냥 층계쪽으로 가려다 누워있는 미라를 보곤.

 

 

"미라야!!!!!!!!!!"

 


다급한 목소리로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이렇게 놈 얼굴이 반가워보이는 상황이 올줄이야..

 

 

"미라야!!왜그래!!!.."

 

"삼..촌..."

 

"어!!삼촌 여깄어!!!!"

 

"...삼촌..."

 

 

점점 기어들어가는 미라의 목소리.

 

은찬놈은 처음보는 다급한 얼굴로 미라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이제야 날 발견한듯..

 

 

 

"야..어떻게 된거야.."

 


"정원에서 같이 놀았는데...감기 걸렸나봐.."

 

"야!!!!!!!!!!!!!!"

 

".......어...?"

 

"너 제정신이냐!?!?꼬마애한테 이런 옷 달랑 입히고!!너만 그렇게 옷 두껍게 입고!!!!!"

 

"야..그게 아니라..."

 

 


그때. 은찬놈의 손을 턱하고 잡는 미라.

 

그러더니..

 

 

"아냐.삼촌.언니한테 그러지마..내가 고집 부린거야.."


하며 아까와 너무도 다른 창백한 얼굴을 힘겹게 들어보인다.

 

 


그리고..


이제야 사태파악이 서서히 되고 있는 나는..


더욱더 빠개질것 같은 머리에 숨을 조이며 아이쿠 맙소사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한설....."

 


"...그래..내가..다 잘못했다..죽을 죄를 지었다..."

 

"너 지금 그런 말투가 나오냐...?내가 지금도 장난하는것 같냐 너..?"

 

"...아냐..미안..내가 미안..됐지.."

 


두 손으로 비는 시늉을 하고..


더이상 대꾸할 힘도 남아있지 않아..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정말이다.


누군가 힘주어 등을 세게 꾸욱 누르기만 하면. 반항 한번 못하고 고꾸라 질것 같..

 

 

"한설!!!!!!!!!!!!!!!!!!"

 

"..........어....."

 

"애가 이지경이 되도록 가만 뒀어!!!!?!!!아무리 니 동생 아니라지만 너무 한거 아냐!?!!!"

 

"...........휴우....미안..실수했어..실수했다구.."

 

 

 


그 사이. 미라는 점점 더 가쁜 숨을 몰아쉬어 대며


은찬놈의 교복 자락을 꾸욱 움켜 잡았고..

 

휴...정말 그 아이의 아역배우 뺨치는 연기에 감탄하며 내가 한숨을 내쉬고 있을때.


은찬놈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만 가고 있었다.

 

 

 

"나 지금만큼은. 너랑 장난하자는거 아냐."

 

"...나도 알아.."

 

"얘. 내가 젤 아끼는 동생이다.이거 무슨말인지 알아듣냐 너..?"

 


"알았으니까 그만하자..말할 힘도 없으니까.."

 


"너.우리 아빠 있어서.겁나는것도 없냐...?"

 

 

이런 말 나오는게 겁이 났는데..


난 은찬놈의 그 냉정한 말에.


두 주먹 꼭 쥐고 눈을 부릅뜬채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썼고.


그런 모습이 놈의 눈엔 빈정대는것으로 보였는지..

 

 

"야.거지."

 

기어코 내가 젤 싫어하는 그 한마디를 내뱉는다.

 

나는 잠깐 몽롱한 정신을 느끼며 그놈을 빤히 올려보고.

 

그 사이 미라는 아주 죽겠다는 시늉을 해가며 은찬놈의 마음을 더욱 조급히 만들고.

 

 

 

"야 거지.너 아빠 믿고 여기 눌러앉겠다는 속셈인가본데.

 

"...."

 

"거지면 거지답게 굴어라."

 


"...강은찬아.."

 


"니 주제파악 해.당장."

 

 

 

피식..

 

상황이 아닌데도 터져나오는 웃음..


강은찬을 더욱더 화나게 만드는 웃음..

 

 


주제..주제파악이 뭔데..


내 주제는 뭔데...?


비참히 살다가 비참히 죽는거...?


학교도 안다니고 그냥 구걸하다가..남 눈치보다가 외롭게 죽는거...?

 


그럼 넌..


넌 날때부터 왕자님.?

 


고함으로 터져 나가 마땅할 그 말들은..


잔뜩 말라붙은 입술 덕분에 속으로 속으로 자꾸만 말려 들어갔고.


지금처럼 내 모습이 비참해보인적이 또 있었던가 싶어..


쭈그리고 앉아있는 내 자신을 멍청히 내려다보다..


차게 식은 강은찬의 얼굴을 힘없이 올려 보았을때..

 

 

 

"...뭐야...?"

 

 

반쯤 열려 있던 현관문으로 하루가 들어왔다.


왜일까. 이순간 왈칵 눈물이 솟아버린건.

 

 

"삼촌.....!!"

 

 

순간. 누워있던 미라가 아주 힘겨운 동작으로 머리를 들고.


하루는 이 묘한 분위기를 서서히 감지하며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왜그래..."

 

"미라.감기 걸렸다."

 

 


감정없는 은찬놈의 한마디.

 

 


"....그래서...?"

 

"한설때문에."

 

"...그래서."

 

"또 얘 편들게?"

 

"그게 어쨌다는건데"

 


"나 이거랑 같은집 못살아"

 

"........."


"기분 더러워서 같은집 못살아."

 

 


말없이 강은찬과 나를 번갈아 보는 하루.


그러더니 반가운 얼굴의 미라를 내려다보고. 새하얗게 뜬 내 얼굴을 보며 무언가를 말하려


하다가. 내 옆에 흩어진 종이배며 별따위에 시선을 떨구었다.

 

 

 


"..이거...누가..이랬냐...."

 

 

순간 두 귀를 의심할만큼.


너무도 싸늘하게 들려오는 하루의 목소리.


난 힘겹게 눈동자를 움직여 그아일 보았고.


그아인 마치 가장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잃은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종이배와 딱지를 손에 집어 들었다.

 

 

젠장. 또 당했다.

 

 

 

"이거...누가..이랬냐고..물었어.."

 

 


빙긋 미소짓는 미라의 얼굴이 포착되고.


난 그 얼굴을 보며 아주 잠깐 함께 미소 지어주다.


이내 미세하게 떨려오는 왼팔을 조용히 치켜 들었다.

 

 


".....내가......"

 

 


침묵..


은찬놈조차 당황해버린 너무 고요한 침묵..


사람이 죽는다 해도 나올것 같지 않은 공포가 잔뜩 서린 침묵..

 

 

말없이 가만히 손안의 종이배를 내려다보는 하루.

 

 


그리고..

 

 


"꺼져........"

 

 

 

하루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는.


방금전 은찬놈이 했던 거지와 주제파악이라는 모욕적인 말보다.


몇곱절은 더 커다란 충격으로 나의 가슴을 찢고 나의 심장을 졸랐다.

 

 


"...강하루..."

 

 

 

은찬놈이 흠칫한 목소리로 그 아이 이름을 불렀을때.


또한번 반복되어 나오는 그 나즈막한 목소리.

 

 


"내 앞에 다시는.나타나지마."

 

 

 

다시는.나타나지 말라고...?

...

...


알았어..

 

 

 


나는 먼저.


미라의 완벽히 성공한 계획을 축하하며 승리에 찬 그 아이에게 조용히 웃어주고.


울렁거리는 가슴을 움켜쥔채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

 


미동도 하지 않고 종이배만 들여다 보고 있는 하루.


그리고 묘한 표정으로 나의 움직임을 쫓는 은찬놈의 까만 눈.

 

 


"주제 파악 안된 거지..이만..물러갑니다..."

 

 

겹겹이 입고 있던 옷 두개를 현관문 향하는 길에 차례차례 벗어던지며.


행여 눈물을 들킬새라 뒤한번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집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또 마구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 달리기.


마치 4년전 윤영이 앞에서 했던 그 비참한 추억을 그대로 재현하는것 같아서.


고통으로 점점 저려오는 몸과 머리보다


훨씬 더 슬프게 내 심장을 울렸다.

 

 


"어머..뭐야..쟤...?"

 

 

 

눈물을 쏟아대며 금방이라도 넘어질듯 비틀비틀 달리는 나를 보며.


길거리의 사람들은 행여 옷깃이라도 스칠새라 재빨리 몸을 피했고.


그랬기에 난 어두운 곳으로.


사람 한명 없는 곳으로.

 

 

 

늘 해왔던 아웃 사이더 방식으로.


혼자 살아가는 아웃 사이더 방식으로.


눈물을 등에 업고 끝없이 달렸다.


하루의 얼굴이 작아서 완전히 없어질때까지.


골목 귀퉁이에서 넘어져 형편없는 울음을 터트릴때까지


정신없이 그렇게. 비참한 달리기 경주를 또 해버리고 말았다.

왜 이런곳에 쓰러져 있어...?'

 

'......상관..마...'

 


'많이.....추워보인다...이거..너 입어...'

 


'필요없어...안추워..하나도 안추워...'

 

'그러지 말고 입어.자.아..넌 이름이 뭐야.?'

 

'............몰라...'

 

'난 박윤영인데...너 근데. 나랑 많이 닮은거 같아.안그래?넌?'

 

'..........'

 

'우와 정말 그래.무지 신기하네..'

 

'......'

 

'이름이 뭐냐니까..이름도 비슷할까봐서 그래..'

 

'.......'

 

'난.운정중학교 2학년.박윤영.넌?'

 

'........'

 

'다시 한번 말할까?난.운정중학교 2학년 8반 박윤..'

 

'한설.'

 

'응??'

 

'한..설이야..'

 


'우와..되게 이쁜 이름이다..!!'


'.........'

 

'예뻐.네 얼굴만큼.아..나랑 닮았다고 해놓고 예쁘다고 하면 너무 속보이나?헤헤헤..-0-..'

 


....

 

......

 


꿈을..꾸었다.


그날..처음 윤영이와 만나던 날..


그 미치도록 그리운날을. 골목 귀퉁이에 형편없이 엎드린채로.

 

 

 

미안..이런 모습으로 꿈꿔서 미안 윤영아.


적어도 넌.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 소중하게 꿈 꾸어야 하는 사람인데.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찾아와서.


정말 정말 미안..

 

 

 


"어이.눈좀 떠보래도..!!"

 


".....미안..미안해..미안해..윤영아.."

 


"에이씨.할수 없구먼...."

 

".........미안.....미안..."

 

 

"끄응차!!!!!!!!!!!!!!!"

 


...


......


보고싶어.윤영아.


너무너무 보고싶어 네가.


단 하나뿐인 내 친구 윤영아..너무너무..네가..보고싶어...

 

 

 


끼이이익..

 


그렇게. 이젠 눈 하나 떠올리는것조차 힘들어진 윤영이의 얼굴을 간신히 그리며

 

두 눈을 떴을때..

 

눈물로 범벅된 두 눈을. 간신히 치켜 떴을때..

 

등뒤에 업고 있던 날 침대위에 거칠게 집어던지는 한 여자..

 

 


".......윤영..."

 


"야!!윤영이구 나발이구.!!아우.어깨 쭉지야!나 죽네 나죽어어!!-0- 나참. 살다 살다 여자를


업네 인제!!!

 


"..누구..."

 

 

"운좋아 만난 천사라구 생각해!!넌 대체 뭐야!!!열이 그렇게 나는데 어딜 돌아다니는거냐!!


아무리 젊음이 좋다지만 말야!!!-0-"

 

 

.....

 


아무리 들어도 낯선 여자의 걸죽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젖먹는 힘을 쥐어짜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짧은 미니스커트에 무스탕. 짙은 화장에 담배를 입에 문 선이 굵직한 여자 한명이 눈에 들어왔다

 

경계하듯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날 발끝으로 밀어 침대위에 발랑 눕히는 여자.

 

 

 

 

"그꼴루 어딜 갈려구!!-0-퍼뜩 쳐자!!"

 


".....누구냐구요..."

 

"버터 플라이 넘버원이다 어쩔래 짜샤..-_-"

 


"버터 플라이..?"

 


"시꺼.잠이나 자.뭐.약이라두 줄까..?"

 


"..됐어요..고맙습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무기력한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가려는데.


또다시 구멍난 스타킹이 에워싼 발끝으로 나를 침대위에 벌렁 밀어버리는 여자..


-_-..

 

 


"왜 이래요!!!!!!!!-0-"

 


"아니 이것이 구해주니까!!!!!!!!-0-그 몸으루 어딜 나가겠다는겨!!누구 살인자 만들라

하는겨!!!-0-!?"

 


"됐어요...!!말할 힘 있음 걸을 힘도 있는거에요!!걸을수 있다구요..!!"

 


"그럼 어디 한번 걸어봐라!!-0-"

 

 

 

이 여자가 정말....


보란듯 나는 몸을 일으켜. 문을 향해 한발자국 한발자국 내딛기 시작했지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픽 쓰러져버리고 만 가련한 몸뚱이.

 

 

 

"쯧쯔쯔.거봐라.꼴깝 떨지 말구..끄응차!!!..그래.여기 누워 있어.이것도 인연인데.


나 이상한 년 아니니까.."

 

"......."

 


"어디 보자.약이.먹다 남은게 어디 있는데.."

 

 


말을 마치곤. 흙파는 개처럼 서랍을 헤집어 약봉지 하나를 꺼내는 여자.

 

그러더니. 물 한방울 없이 나보고 그 알약을 삼키란다..

 

 

 

"..퍼뜩 먹어.."

 

"...왜..."

 


"왜 업구 왔냐구?그럼 영하 15도 날씨에 길바닥에 쓰러져 빌빌대는 년 보구

그냥 지나치라는거냐 넌? 나 행색은 이래두 인정은 살아있다.!!"

 


".....몇살인데요.."

 


"왜.몇살인주 알면 남자라두 소개시켜주게?"

 

"....."

 


"스물 여섯.넌."

 

 


왠지 그 나이에 주눅이 들어. 알약 두알을 침으로 꿀꺽 삼키면서.

 


"스무..살요.."


본의 아니게 구라를 치고 말았다.

-_-

 

 


"..자..인제 약 먹었음...아..집에서 걱정 하려나..?"

 


"..집 없어요.."

 


"집이 없어!?"

 

"..네.."

 

"그 나이 쳐먹구 가출했냐 너!!!!!!!?!-0-"

 

"......."

 

"으이구 쯧쯔.잘한다.나중에 너같은 딸 날까 걱정이다 걱정이야!!"

 

 

 

그 말을 끝으로 내 머리를 (이번에도 발끝으로-_-)툭툭 치곤.


손끝 디딜 틈도 없이 더러운 방바닥에 이불을 날렵하게 까는 여자..


그러더니 화장도 지우지 않은채 무스탕 하나만 벗고선 낼름 그 위에 누워 버린다.

 

 

 

"나 내일 저녁 6시에나 일어나니까. 니가 알아서 나가..오케바리?"

 

"오케바리..."

 

"아.너 이름이 뭐냐?"

 

"..한설.."

 

"...그래.. 예쁘네"

 

"그쪽은요..?"

 

"나나."

 


"...그쪽도 이름 괜찮은데요.본명이에요?"

 

"아니.영업용."

 

 


옷차림이나 말투로 보아선..술집이나..아니면 뭐 비슷한 곳에서 일하는 여자인듯 했고..


난 여자의 눈감은 얼굴을 내려다보며..


더이상 버틸수 없음에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감음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정신을 잃고서..

 

 

"드르렁 쿠우울..-0-..드르렁..쿠우울...-0-.."

 

 

여자. 아니 나나언니의 천둥같은 코고는 소리가 귓구멍안을 노크할때까지


정신없이 잠을 잘수 있었다.

 


"....음...........음........"

 

 


한손으로 뜨거운 이마를 짚고. 가늘게 왼쪽눈을 떴을때.


무심히도 짙은 어둠이 깔려버린 창밖.


놀란 마음에 얼른 벽시계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뭐야...


7시 반...?!!!!!?


나 그럼 15시간이 넘게 잔거야..!!!!!!!!?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번쩍 일어나니. 어제보다 훨씬 가벼워진 몸.


그 미덥지 않은 알약이 쓸모가 있었던건가..

 

 

"뭐야.너 아직두 안갔냐..=_=..?"

 

 


그때 나나언니가 형편없는 몰골로 너부러진채 두눈을 번쩍 뜨며 내게 묻고.


난 쪽팔린 마음에 그 초췌한 시선을 외면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_-


그러자 날쌘돌이처럼 일어나 재빨리 머리맡의 무스탕을 걸치는 나나언니.

 

 

"젠장.한참 늦었네.난 몰러.제대루 작살나게 생겼구먼.."

 

".....무슨..일해요..?"

 

"내숭 떨지마. 다 알면서."

 

"..............저.."

 

"뭐..?"

 

 

거울앞에 서서. 어제 한 화장도 지울 생각 않고 빨간 립스틱만 바르고 있던 언니가..


머뭇 대며 망설이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일...하면 안돼요...?"

 

"무슨소리야?"

 

"나 갈데 없는데..거기서 일하면 안되냐구요"

 

"....-_-..경험 있냐?"

 

"...네.."

 

"그래?너 스무살이라며."

 

"..고등학교때 가출해서요.."

 

 

한번 터지기 시작하더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짓말.

 

 

"..그래..?..흠..일자리 하나 모자라긴 한데"

 

"잘할수 있어요.!!"

 

"....뭐....얼굴은 그럭저럭..."

 

"..-_-.."

 


결코 기분좋지 않은 음흉한 시선으로. 입술 화장을 마무리한채 날 아래위로 흝어대는 언니.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너.근데 표정이 왜그러냐.?"

 

"표정 왜요-_-"

 

"...너..웃어본적 한번두 없지.."

 

"미쳤어요.내가 무슨 로봇인가"

 

"..흠..얼굴에 그늘이 잔뜩인데.."

 

 

젠장.


그거야 뭐.


......그거야..뭐...


그럴수 밖에 없었으니까..

 

 


"좋아. 사이즈 55면 되려나?"

 

"...55가 뭔데요..?"

 

"어허이.문제 많네 이 아가씨.."

 

 


턱을 어루만지며 나나언니는.


화장대 앞에 날 세워둔채. 바퀴벌레 백 마리가 서식할것 같은 옷장을 활짝 열어.


빨간 자켓과 까만 반짝이 탑. 그리고 두뼘도 채 안될것 같은 짧은 청치마를


내쪽으로 내던졌고..

 

 

이게 뭐냐는 표정으로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다짜고짜 내 얼굴에 따귀를 때리듯 로션을 퍼발랐다.

 

 

그러니깐.

'철썩!!'

소리와 함께.

 

 


"아아!!!!!!!!!!!!!!-0- 왜 때려요!!!!!!!!!!!!!"

 


"이놈의 기집애야 가만 있어봐. 아유 피부는 좋네. 너 화장 한번두 안해봤냐?"

 

"....네..."

 

"이거 무슨 천사한테 술먹이는 기분이구먼..허허허허..-0-"

 


"아우 술냄새..떨어져서 말해요!!!!!!-0-"

 


"아가리 다물구 가만 있어!!!!!!!!!!!!!-0-"

 


"...젠장...-_-.."

 

 

"이 쪼끄만것이.근데.."

 

 


화장을 하는 내내 궁시렁 대는 내 입을 찰싹 찰싹 때려가며. 언니는 초 스피드로 화장을


끝마쳤고.


나는 어슴푸레 머리를 죄여오는 미열에 알약 두알을 (이번엔 물과 함께) 삼키며.


잠자코 그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야 올빽으로 넘겨 하나루 묶어라"

 

 

지금 막 커피색 스타킹을 신은 내게. 머리끈 하나를 툭 내던지는 여자.

 

 


"..싫어요.."

 


"그럼 너 안델꾸 가..-0-"

 


"......씨..."

 


"아.이마도 이쁘니까 후딱 묶어!!늦었어 이아가씨야!!!!!!!!!!"

 

 


.....


.....거울앞의 내 낯선 모습을 보며. 천천히 머리를 뒤로 묶어 넘기고 있자니..


문득. 그렇게나 머리를 묶으라고 닥달했던 하루가 떠올랐다.

 

 

 

"젠장.하루 자식!!!!!!!"

 


"...뭐..-0-..?"

 

"아니에요..-_-.."

 


"이거 쪼끄만게 어디서 욕을 그렇게 배웠대!?"

 


"....다 묶었어요.됐죠.?"

 


"..야..!!훨씬 이쁘다!!!!!!!!!"

 


"............"

 


"좋아.좋았어.가자!!!!"

 


"아.!잠깐만요..아직.."

 


"아직은 얼어죽을 아직.지금 딱좋다 야!!"

 

 

 

핸드백에 담배 한갑을 챙긴 나나언니는. 신발장에서 까만 부츠를 신어 내 발에 강제로 신켰고.


내가 신발이 작다며 꽥꽥 거리는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금방이라도 넘어질듯 허둥지둥 집을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또각.또각.또각.또각.또각.

 

 

 

언니와 내가 달릴때마다 거리를 요란스레 울리는 굽소리.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은 나와 언니를 흘끗 거리기 시작했고.


술 쳐먹은 놈들의 휘파람 소리도 여기저기서 간절히 들려왔다.

 

 

"택시!!!!!!!!!!!!"

 

나나 언니의 우렁찬 목소리에 겁먹은듯 멈춰서는 택시.

 


"논현동이요!!"

 

 


이윽고 택시가 출발하고.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그리고 순식간에 변해버린 내 모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담배를 태우려는 언니를 바라보았고..

 

 

 


"아픈건 좀 낫냐?"

 


"...네...-_-.."

 


"....근데....너.내가 지금 어디 가는줄은 알어?"

 


"...대충요..."

 


"노래는 잘해?"

 

"......아는 노래가 거의 없는데.."

 


"됐어 그럼.춤으루 밀구나가라.나이두 어리니까"

 


"....네..."

 


"글구 가명 하나 정해라."

 

"....가명이요..?"

 


"응.가명말야."

 

 


순간.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르고 ..

 

 


"미라요...-_-..."

 

"미라?"

 

"네.강미라"

 

"그래.미라.좋네"

 

 

이놈이 계집애. 내가 가서 네 이름을 아주 실컷 팔아주마..-_-


나이도 열살이나 더 많으며 치사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고 있는 내 자신에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을때.

 

어느덧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번개같은 언니의 손에 이끌려 정신없이 차도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야야.늦었다.얼렁 가자이!!!!!!!!!!!!!!!!!"

 

 


그리고 언니의 기합과도 같은 목소리에 힘을 얻으며.


동시에 길거리에서 요란스럽게 반짝이는 간판들을 바라보며.


일단 한번 한숨을 내쉬고.


두 주먹을 불끈쥐고.


언니의 등뒤를 따라 씩씩하게 가게 '버터플라이' 안으로 들어섰다.

 

 

 

"휘이욕!!아가씨!!이쁜데!!"

 

 


난생처음으로 들은 예쁘다는 말이.


술취한 남자에게 희롱 당하듯 건네받은것임을 한탄하며.


"지각.벌금 오천원"

 


지하에 있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나나언니보다 몇배는 더 요란한 옷차림의 여자가 급히 뛰어들어온 언니에게 한손을


내밀고.

 

 

 

"알았어 지지배야!!"

 

 

"근데..걘 누구냐...?"

 

 

"오늘부터 새로 일할애."

 


"에?미성년 아냐?"

 


"스무살이야"

 

 

"..그래..?괜찮네..야 잘됐다. 아까부터 5번룸에서 영계 찾구 지랄났는데. 니가 좀 데리구 데려가"

 


"아 기집애야.숨좀 돌리자 방금 왔는데!!"

 


"어허이.벌금 낼래 그럼?"

 


"....날강도 년.."

 

 

 


술에 쩌들어 비틀비틀 대는 사람들을 한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날.


말 한마디 없이 길게 나있는 어두침침한 복도로 끌고가는 나나언니.


그러더니 내가 입을 채 열기도 전.


까만 글씨로 5번이라 써있는 문을 활짝 열고 방안에 들어선다.

 

 


길게 늘어져있는 테이블. 노래방 기계. 위에 있는 과일안주와 양주들.


그리고 정장차림의 아저씨 세명.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발끝에서부터 거부반응이 치밀어 올라와서. 나는 재빨리 시선을 피했고.


내속을 알리없는 나나언니는 나를 구석 안자리에 집어던지듯이 앉혔다.-_-

 

 

그리고..

 

 


"늦어서 미안미안 오빠들.오래 기다렸어.?"


"아아이.참.미워!!얼마나 기다렸다구 나나!!"

 

 


우웩. 어제 먹은 계란말이가 콧구멍으로 넘어오겠다.

 

 

"그래서 오늘 뉴 페이스 데리구 왔잖아. 애 이쁘지?"

 

"우웅.그러네..-0-..우와..몇살이야 이 아가씨?"

 

"스무살 티티엘이라네"

 

"이야!!!!!!!죽인다 죽여!!!!!!!!!!"

 

 

..죽이긴 내가 널 죽이겠다 이자식아..-_-..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무뚝뚝히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

 

나나 언니는 시끄러운 노래를 하나 선곡해놓고 그들의 빈잔에 술을 들이 부었고.

 

'빨랑 안웃음 죽는다-_-^'


라는 눈초리를 나에게 마구 날려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맘에도 없이 입을 조금 벌리려니.


얼굴 전체에 실룩실룩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어이.이름이 뭐야..?"

 


그중 제일 젊어뵈이는 놈이. 내 어깨에 손을 두르며 능글맞게 물어온다.

 


"강.미.라.!!요.."

 

힘주어 말한 그 이름에 껄껄 웃어보이는 남자.

 

 

"뭘 그렇게 긴장해!!-0-.이 오빠가 무서운거야!!그런거야!!"

 

 

나는 말없이 그 손을 뿌리치며. 놈의 빈잔에 술을 따라 넣었고.

 

 

"걔 아직 초짜니까 술 살살 먹여"

 


나나 언니는 이 한마디를 툭 던져놓으며.


넥타이를 목에 두른 나머지 두사람과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를 해대기 시작했다.

 

 


휴..이거..정말..


아무나 못하는 일이구나..


한숨을 푹 내쉬며. 멍청히 그 광경을 바라보자니.


음흉한 미소와 함께 내게 술잔을 건네는 남자..

 

 


그래..-_-..이자식이 또 징그럽게 들러붙지 못하게 술이나 쳐먹이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놈이 건네는 술을 꿀떡꿀떡.


구렁이 담장 넘어가듯 목안으로 넘겼고.


신기하게도 머리에 있는 열이 싸악 내리는것 같은 묘한 기분을 받았다.

 

 

그리고..나나언니의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6번째의 트롯트를 토하고 있을때.

 

 

 

꿀꺽.꿀꺽.-0-


캬아..꿀꺽..꿀꺽..-0-..

 

 

 

"어허이 잘먹는다 우리 미라!!옳지 미라!!옳지!!"


"캬아!!-0-내이름은 미라!!강!!!!미!!!!!라!!!!!!!!"

 

 


그렇게 양주 한병이 거진 내 뱃속으로 모두 들어갔을때.

 

노래를 하던 언니와 나머지 두놈들은 어이없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중이였고.

 

처음 맛본 술에 나의 정신은 이미 머리 밖으로 출타 중이였다.

 


.....


........

 

 

 

"너!!!!!!!!!강하루 이자식아!!!!!!!!!!!!!"

 

"어허이!!우리 미라!!왜이래!!!"

 

"니가 뭐가 그리 잘났냐!!으으응!!!!"

 

"그래!!맞아!!뭐가 그리 잘났냐!!!"

 

 


덩달아 취한 남자는. 나와 함께 너저분한 테이블위에 올라와 고함을 지르고..

 

 

 

 

"강은찬 그렇다 쳐.그래 니놈 싸가지에 밥말아먹은놈.!넌 그렇다 치고 강하루 넌 뭔데!!


뭔데 뭔데!!나한테 꺼지래!!"

 


"맞아!!강하루!!나뻐!!하루 나뻐!!-0-!!"

 


"...젠장...할아버지..."

 


"나 할아버지 아닌데....!!-0-"

 


"..죄송합니다..할아버지..죄송합니다아..죄송합니다아.."

 

 


테이블위에 올라선채 꾸벅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맛이 간 남자도 나를 따라

 

인사를 해댔고.

 

나머지 남자 둘과 나나언니는 혀를 끌끌차며 우리를 보더니.

 

구석 의자에 앉아 다시 짝이 맞아 깔깔대며 난리 부르스를 치기 시작했다.

 

 

 

 

"...쳇...난 이렇다니까..그래..내 주제에 학교는 무슨..!!거지가 학교는 무슨..!!!"

 

 

"아니!!우리 미라가 왜 거지야아!!-0-우리 이쁜 미라가 왜!!어디가!!"

 

 

"...젠장..강하루 강아지..나쁜새끼..잘해줄땐 언제고..나쁜새끼..


내가 어제 얼마나 아펐는데...내가 어제 지 들어왔을때 얼마나 좋아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 새끼.."

 


"우리 그러면!!!미라 괴롭힌 강하루 놈 혼내주러 갈까!!!!!!!!!!"

 


"....진짜..!!!!!!!-0-"

 

"그래!!이 아저씨랑!!그놈!!강하룬지 강나룬지 하는 놈 혼내주러 가자!!"

 

"진짜!!진짜!!진짜!!"

 

 

 

방방 뛰는 나를 향해 고갤 끄덕이곤. 테이블 위로 거칠게 날 끌어내리는 남자.


그러자 나나언니. 오징어 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헝크러진 얼굴로 날 바라보고.

 

 

"첫날에 이차라니 너 끝내준다 야"


하며 알수없는 소릴 중얼 거렸고..


나는 비틀비틀 거리며. 복도를 걸어나와. 남자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층계를 올랐다.

 

 

 

그리고..


건물을 나왔을때. 이내 매서운 바람이 내 양 빰을 휘갈기며.


그 마약과도 같은 알코올 가루를 아주 조금 날려 버렸다.

 

 

 

 

"..자자..강하루 찾으러 가자구우..!!!"

 

 


.말을 마치며. 택시를 잡으려는듯 도로로 뛰어가는 남자.


난 길바닥에 주저앉은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남자는 이내 택시 한대를 잡고서. 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미라야.하루 찾으러 가자.!!"

 


"하루가 어딨는데...-0-.."

 


"택시 타구 가면..있어..!!"

 


".....음.....하루....아냐..됐어..그딴 자식 필요없어..안봐도 돼.."

 

 

"에이 왜그래.미라야.하루 찾으러 가자.응?"

 

 

"됐다니까...!!"

 

 


"...-0-..어허..다 알면서 왜이래..!!가자.응?따뜻한데 가자아.미라야.."

 

 

 

이 자식 이거..왜 이러는거야..-_-..

 

 

남자는 두 눈이 맥없이 풀린 나를 길바닥에서 일으키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뿌옇게 보이는 사람들과 차들을 바라보며 힘없이 남자의 손에 이끌렸다.


그리고.택시 앞에 다다라.

 

이게 아니다 싶어 남자의 손을 재빨리 뿌리치는데..

 

택시 바로 뒤에. 어디선가 많이 낯이 익은 차 한대가 서있다...

 

 


...저게..그러니까..저 쥐색에..반들반들하게 빛나는 차가..저게..그러니까..

 

 

 


눈을 마구 비비며.. 차를 향해 한걸음 다가서려는 찰나..


지이익.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열리는 뒷좌석의 창문.

 

 


"아이.미라야.오빠 힘들게 왜이래 정말.."

 

 

 


그리고...남자가 뒤에서 한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았을때.

 

열린 창문안으로 나를 무심히 바라보는 그 얼굴은.

 

또 한번 나의 자존심을 할퀴고. 주무르고. 그것도 모자라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다.

 

 

 

"...야..너..강하루..."

 

 

 

힘주어.또박또박 내부른 그 이름에.

 

아무말없이 날 보고. 내 뒤의 남자를 바라보는 하루.

 

 


"너..이..나쁜새끼...니가 뭔데...니가 대체 뭔데...."

 

 


다시 한번. 술기운에 빌은 용기에 놈을 향해 욕설이라도 퍼부어줄 심정으로


입을 열었을때.


아무표정없는 놈의 얼굴이. 까만 창문안으로 사라져 버리고..

 

 

 

탕탕탕!!


탕탕탕탕!!


창문을 두들기는 나의 두 주먹.

 

 

 

 


"야 문열어 이자식아!!니가 뭐가 그렇게 잘났어!!!!!니가 뭔데 나더러 꺼지래!!!!!!!!!


이자식아 니가 뭔데!!니가 뭔데에!!!!!!!!!!!!!!!"

 

 


...니가 뭔데..니가 뭔데...


도로에 힘없이 주저앉는 내 앞으로. 하루가 찬 타는 천천히 멀어져갔고.


나는 또 형편없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최악이다. 강은찬이 아니라 내가 바로 최악이다.

 

 

 


"...미라야..왜울어..-0-..오빠랑..그러니까 따뜻한데.."

 

".꺼져...."

 

"미라야....-0-..."

 

"꺼지란 말 안들려!!!!!!!!!!!!!!!!!!!!!!!!!!!!!!!!!!!"

 

 

 

.........잠깐동안 되찾아온 나의 섬뜩한 얼굴에..


주춤하며 뒤로 물러나는 남자...


그러더니. 형편없게도 택시를 타곤 휭하니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난 그후로 십여분간 사람들에게 둘러쌓인채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야!!한설!!뭐하는거야!!"

 


나나언니가 고함을 지르며 날 일으켜 세워줄 때까지.

 

 

 

 

\ 버터 플라이.

 

 

 

홀에 있는 의자에 날 앉혀놓고. 혀를 차며 바라보는 나나언니.

 

음악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술취한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이 들려오고.

 

..하루의 얼굴이 자꾸만 들려오고..

 

 

 

 

"어이구.잘한다.너 내가 순순히 따라 나갈때부터 이상하다 했다니까.."

 

".....나쁜자식..."

 

"그 아저씨가 뭔죄야!!이 바닥 다 이런데.니가 유별 떤거지!!그러게 왜 따라나가냐구!!"

 

"..나쁜자식..그냥가냐..나쁜자식.."

 

"얼씨구..-0-.."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자식..."

 

"..야...이걸로 그 추하게 번진 화장이나 지우구. 집에 들어가 있어."

 

"..일 할거에요.."

 


"들어가.!!"

 


"일 할거야..!!"

 


"..-0-..뭐..?너 자꾸 꼬장 부릴래..!?!"

 

 

탁.

 

나나언니가 내민 물수건을 뿌리치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복도 맨 앞에 있는 일번룸으로 대책없이 비틀대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그럼 그 화장이나 지우구..!!"

 

 


콰앙!!!!!!

 

 


나나언니의 다급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문을 열었을때.

 

신나게 놀다말고 놀라서 날 바라보는 세쌍의 남녀.

 

 

 

"안녕하세요!!-0-한서...아니..강미라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아!!!-0-"

 

"..와우..어서와!!어서와!!"

 

 

그중 한남자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고꾸라질것 같은 몸을 쇼파위로 내던지며.


문쪽에 앉아있던 남자옆에 철썩 붙어 앉아버렸다.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남잔.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어이..울었어..?얼굴이 왜그래.."

 

"술한잔 주십쇼............."

 

"....어..?술..?"

 

"술한잔.주십시요..!!!!"

 

"어..하하하..그래..아주 꼴통 하나 들어왔네 이거.좋아 술.술먹자구.."

 

 

아까 5번룸 남자와 마찬가지로. 한팔로 내 어깨를 두르며.


술을 잔에 따르는 남자..


그리고..이번엔 그 낯선 남자의 손을 그대로 내버려둔채 눈앞의 잔을 향해


술냄새에 찌든 왼팔을 뻗을때..

 

 

...그때...

 

 

 

 

끼이이이익...


방금전 내가 열었던 일번룸 문이 다시 한번 열리고....


낯익은 얼굴 하나가 조용히 모습을 나타냈다..

 

 

 


그동안 봐왔던 그 어느때보다. 훨씬 더 많이 화가 난 얼굴로..

"너 뭐야!!!!!!!!!!"

 

 

 

내 옆에 앉아있던 남자의 외침을 아랑곳 않고.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오는 하루..


그래..하루..내가 좀전까지 가만두지 않겠다고 윽박지르던 강하루씨..

 

 


그러더니. 아무말없이 증오섞인 내 눈을 내려보다 긴 한숨을 내쉰뒤.


식탁위에 있는 물수건을 집어 마스카라로 잔뜩 번진 내 눈을 거칠게 닦아낸다.

 

 

 

"야!!너 뭐냐니까!!!!!!!!!!!!!"

 

 

"얘 남편. 너 시끄러우니까 입 다물어"

 


"..뭐야?남편? 이것들이 근데 장난하나..!!허참..야..마담 어딨어..마담 오라구 해!!!!!!"

 

 


난동 부리는 남자를. 나머지 두 남자가 붙들어 말리기 시작했고.


그 사이 하루놈. 멍해있는 내 눈에서. 립스틱으로 범벅된 입술쪽으로 시선을 옮겨.


잠시 화난듯한 얼굴로 바라보더니.

 


마스카라 범벅된 물휴지를 바닥에 내버리고.


이번엔 교복깃으로 꾹꾹 입술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이딴거.한번만 더 하면 죽여버릴꺼니까."

 

"...다신 니 앞에 나타나지 말라며..."

 

"야!!너 뭐냐니까!!!!!!!!너 당장 안꺼져!!!!!!!!!!!"

 

 


친구들에게 양손을 붙들린채. 또한번 윽박지르는 남자.


그러자 내 입술을 닦던 하루가.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너.얘랑 뭐했냐."

 

"뭐!?!!"

 

"립스틱 다 번진거 보니까. 뽀뽀라도 했냐.?"

 

"...허참..저..교복입은 새끼가..그래..이새꺄..뽀뽀했다..키스두 하구 다했다 아주!!어쩔래!!!!!!!!!!!"

 

 

 

그때였다..

 


하루가 놈의 얼굴을 향해 테이블위의 재떨이를 던져버린건..

 

 

"아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남자가 입술을 감싸쥐었을때.


그제야 여자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룸을 뛰쳐나갔고..


하루놈은. 놀라 벌어진 내 입을 다시 한번 노려보더니.


말도 없이 내 손목을 낚아 올려 문쪽으로 걸어나갔다.

 

 

 

"야 놔.."

 

 


그럴수록 더욱 힘이 들어가는 하루의 손.

 

 


"놔!!!!!내가 나가라면 나가고 오라면 오는 니 장난감인주 알어!?????????!놔!!


놔 이자식아!!!!!!!!!!!"

 

 

"안그래도 화났다.목소리 낮춰."

 

 


"필요없으니까 놓라고..놔..나 맘대로 살꺼야..나 살던데로 살게 놔..


얼렀다 뺨쳤다..데려왔다 버렸다...나 장난감 취급 하지 말란 말야!!!!!!!!!"

 

 


눈물섞인 그 비명을 끝으로.


도저히 힘으론 안되겠단 생각에. 바닥에 털퍽 주저앉으려는 찰나.


나를 어깨위로 둘러메치는 하루놈.

 

 


부츠밑에 달린 뾰족한 굽으로 놈이 등을 마구 내리쳐도. 놈은 눈하나 꿈쩍 하지 않았고.


그 사이. 어느덧 카운터에 와버려서.


혀를 끌끌 차며 담배 한개피를 마악 지져끄는 나나 언니와 두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쯧쯔. 넌 그럴줄 알았다.뭐?가출?스무살.?"

 


"언니.언니가 도와줘요!!나좀 내려줘요!!!!!이자식 이거 사기꾼이에요!!이새끼 말 순 구라에요!!"

 


"떼끼!!얼른 오빠랑 같이 집으루 가!!"

 

 

"오빠 아니에요!!!!!!!!!이새끼 나보고 꺼지라고!!이새끼가 나보고 꺼지라고!!!!!!!!!!!"

 

 

 


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나언니를 바라보는 사이에도.

 

하루놈은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나나언닌 취한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거.참 행복한거다 너.괜히 튕기지 말구 얼른가.

 

나 지금 질투나 뒤져버릴거 같으니까..아..!!그리구 거기 멋진오빠!!나중에 졸업하면

 

꼭 놀러와요!!내가 잘해줄께!!"

 

 

 

"언니!!!!!!!!!!!!!!!이 자식 빚쟁이야!!!!나 데려가서 감금시키구 팰려고 하는거야!!!!!!!


진짜라니까요!!!!!!!!!!!언니!!!!이새끼 나 팰려고 지금!!!!!!!!"

 

 


"잘가라 강미라!!!!!!!아니..잘가라 한설!!!!!또보자!!!!!!!!!"

 

 


"아아아악!!!!!!!!!언니!!!!!!!!언니이!!!!!!!!!!!!!!!"

 

 

 

안되겠다 싶어. 이빨로 놈의 어깨를 물어보고. 주먹으로 때려보고.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놈의 걸음은 점점 더 빨라져만 갔고.


이내. 아까 보았던 그 차. 나를 노려보고 있던 바로 그 차앞에 도달하여서.


꺽꺽 대는 나를 열린 뒷문으로 거칠게 집어 던져버렸다.

 

 


그리고. 내가 재빨리 일어서려는 찰나.


부릉부릉 출발해버리는 신기사 아저씨.

 

 

차문도 채 닫기지 않은 상태였기에.


내 옆에 버티고 탄 강하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차 문을 닫았고.


나는 신기사 아저씨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문열어.문열어 이자식아..!!!!!!!!!!나 안가!!!!!!!!!!!!!!니네집 드러워서 안간단 말야!!!!!!!!!!!"

 


"뽀뽀했다고."

 


"니가 뭔데 날 두번이나 울려!!니가 뭔데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순간. 놈의 커다란 손이 내 얼굴을 돌려 잡고.


나의 입술이 마치 참새처럼 구겨진채 우물우물 움직이고 있을때.

 

 


"아저씨.앞에 휴지 없어요.?"

 

 


신기사 아저씨를 향해 화난 어투로 묻는 놈.


그러자 잠깐.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한번 보다가. 티슈 한통을 뒤로 건네는 아저씨.


곧이어. 하루놈이 천천히 휴지를 빼내어 내 입술을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고.

 

 

 

"이 아이아 어 이금 뭐하은거야!! (이자식아 너 지금 뭐하는거야!!)"

 

 

 

그러면 그럴수록. 그놈. 잡은 내 입술에 더욱 더 힘을 준채.


휴지로 거칠게 문질러 댔다.

 

 

 

"이딴거 한번만 더하면.죽어.진짜.죽어."

 

 

 

이윽고. 내 이빨이 물어 뜯고 뜯어 하루놈의 손에 여러개의 상처가 났을때.


그리고 차의 시트 밑바닥에 내 입술을 닦아낸 휴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였을때..


차는 이미 평창동의 집앞에 도착해버린 뒤였다.

 

 

 

 

\ 평창동.

 

 

 


대문앞에 조심스레 멈춰 서는 차.

 

차가 멈추자 마자. 신기사 아저씬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강하루놈은. 뒤늦게 점점 더 취해온 술에.

 

반쯤 탈진 상태가 된 나를 말없이 내려다보며. 마지막 휴지 한장으로 또 입술을 닦아낸다.

 

 

 

 

하도 벅벅 문질러 홀라당 벗겨진 내 입술을.


그러더니..

 

 

 

 

"오늘일.아빠한테 말하지 마요."

 

"....그래..아저씨도 눈치가 있다..."

 

 

신기사 아저씨를 향해 정없는 말투로 그 한마디를 내던지곤.

 

열린 차문으로 불쑥 내리는 하루.

 

 

"..내려.."

 

"멋대로...굴지말..란..말이야..이자식아....내가..비록..거지라도...이렇..게.."

 

"....아저씨 제 가방좀요."

 

"어..어..그래.."

 

 


반쯤 뜬 눈으로 보이는건. 하루의 가방을 받아드는 신기사 아저씨.


그리고 하루놈. 힘겹게 나를 차 밖으로 끌어내려. 아까처럼 또 어깨위에 둘러업곤..


뚜벅뚜벅..대문쪽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젠장...비참해..이렇게..비참할데가 없어...비참해.."


"나도 비참해."

 

"......."

 


.....

 

........나는 말없이 놈의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고.

 

 

 

"하지마."

 


".....내가 상처받은 만큼 뽑을꺼다.. 다 뽑을꺼야 니놈 머리..내가 슬펐던 만큼..아팠던만큼.."

 


".....니 맘대로 해..그럼."

 

 


그렇지만. 내 유치한 마음과는 달리.


.
손에 머리카락이 다섯개쯤 들어왔을때.그 동작을 멈춰야했다.

 

그건 맘대로 하라는 놈의 말 탓이 아니라.

 

대문앞에서 서성거리는 은찬놈 때문에..

 

 

 

천천히 가까워지는 사이. 몇번이고 되감겨 고장난 머리는. 똑바로 눈앞의 얼굴을 기억하기


시작하고.


그놈. 안절부절 못하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이내 나와 하루를 발견하곤.

 

 

 


"야!!!!!!!!!!!!!너!!!!!!!!!!"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술 쳐먹었냐!!!!!!!!!!너!??!!!!!!!!!!!"

 


"..........이..새끼..천하의..둘도 없는..나쁜..강아지.."

 

"옷 꼬라지는 왜이래!!!!!!!!어떻게 된거야 얘.!!!!!!!!!"

 

 

".....소리지르지마 이자식아.....꼴보기도 싫으니까.."

 


"얘 어떻게 된거냐니까!!!!!!!!!!!!!!!!!"

 

 


은찬놈의 화가난 얼굴을 그대로 지나쳐. 정원을 가로지르는 하루놈.

 

 

 

 

뒤에선 계속해서 은찬이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내 손가락은 계속해서 하루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뽑아내고..


하루는 아무말없이 현관문을 향해 힘없이 걸어가고..

 

 


한마디로..그건..세사람 모두에게..

 

한없이 지독하고. 더없이 형편없는 밤이였다.

 

 

 

 

\ 한설 방.

 

 

 

침대위에 나를 집어던지듯 눕히는 하루..

 

젠장...인간들..다 큰 여자 번쩍 들었다 참 잘도 집어던지네...

 

 

이젠 땀구멍 하나하나까지 빼곡히 메워버린 지독한 알코올을 느끼며..


놈을 향해 욕하고..또 방을 뛰쳐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채 두 눈을 감았을때.


하루놈이 침대에 걸터앉아 빨간 재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야!!!!!!대체 어떻게!!!!!!!!!!!!!"

 

 

방문을 열고 들어서던 은찬놈이. 그 광경을 보더니.


붉어진 얼굴로 다시 쾅!!! 소리를 내며 방을 나가버렸다.

 

 

 

이내..머리위로 들어오는 하얀 잠옷.


할아버지가 사주신 하얀 잠옷.


두팔이 들어가고. 이내 오랜 시간 끙끙대다가 간신히 잠옷을 입히는 하루..

 

 

 


그리곤..옷깃으로 또 한번 내 입술을 훔친다.

 

 

 

"..아..아퍼..이...새꺄..아퍼...아프다구..."

 

 

"죽을줄 알어.한번만 더 그러면."

 


"..죽...을...줄알어..너야말로...너..죽..어..나한테..죽..어..."

 

 

 

이내. 스르르 두 눈이 감겨버리고.

 

 


일어나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이놈하고 강은찬놈한테 쏘아붙혀주고 이 집 나가야 하는데.


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 눈이 맥없이 감겨버리고..

 

 


...분명...

 

 

다 헐어버린.입술에


술냄새로 찌든 입술에.


차갑고 촉촉한 입술이 아주 잠깐 맞닿은듯한 감촉을 느꼈을때...

 

방문 소리가 삐그덕나며. 하루놈의 숨소리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어이없이 항복 하는거...내 사전에 없는데..


....없는데...

 

 

 

점점..시계의 초침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기 시작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때.


아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 느꼈을때.

 

 

 

...........

 

 

...................머리맡에서 느껴지는..누군가의 인기척............

 

 


눈뜨는것조차 귀찮아..이불속으로 얼굴을 파묻어 버리면.

 

누군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것이 느껴지고...이내...머리를 꽉 동여매고 있던 머리끈을

 

스르륵 끌러버린다.

 

 

 


그리고 곧. 들려오는


나즈막한 저음의 목소리.

 

 

 


"병신.넌 푸르는게 그나마 나."

 

 

....

 

 


....이거..이거..목소리로..보아하니..강은찬 이새끼 분명한데..


..이게..꿈인지..진짜 한설의 오늘인지..도무지..분간이 안간다.


눈을 뜨면 알수 있는데. 눈을 뜨면 확인할수 있는건데.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얼굴 근육에..나는


'젠장..젠장' 을 마음속으로 외쳐댔고...

 

 

 

"그날밤엔.고마웠다.....


나..술먹어도 다 기억해...멍청아..."

 

 

 


그 한마디로.


그놈은.. 이것이 진짜 한설의 오늘인것을 명백히 알려주더니....

 

 


그후로..몇시간동안..


그러니까 해가 조금씩 밝아와 내 정신을 흔들어 깨울때까지....


내 머리에 따뜻한 한쪽 손을 얹고서 꼼짝않고 자리를 지켜주었다...

 

 

 

 

'네가 남긴 작은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작은 개구리마저 구슬프게 날 위로해주던 길...

목놓아 울다 네가 다시 내게 돌아와주길.

진동없는 작은 상자 힘을내 부숴져버리길..'

 

 

 

 

 


덕분에 꿈속에서 윤영일 또 한번 만나게 해준 노랠 불러주면서..

 

너무 많이 아픈 목소리로. 잠결에 듣기에도 힘겨운 애달픈 목소리로.

 

또한번.

 

내가 윤영일 위해 만든 그 노랠 불러주면서.

"설이 학생!!밥먹어!!"

 

 

얼마전부터 귀에 익기 시작한 아줌마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고.


머리통이 깨질것만 같은 압박에 끄응. 신음소리를 내며 돌아 누웠을때.

 

 

"설이 학생!!!!!"

 

 

또 한번 반복되어 들려오는 아줌마의 목소리.


그러니까..지금이..몇시지..

 

 

 

\ 부엌.

 

 

"어제 어디 갔다 온거냐 설아.."

 

 


술이 덜 깬건지. 울렁울렁 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낑낑대며 부엌에 도착했을때.


식탁앞에 앉아 신문을 펼치시는 할아버지.


나는 잔뜩 찡그린 인상을 간신히 펴며 그 앞에 마주 앉았고.


할아버지 옆에서 아무말없이 밥만 먹는 하루랑 은찬놈이 더욱더 내 신경을 자극해 왔다.

 

 

"...네..제가..그러니까....."


"걔 어제 술처먹고 들어왔다.."

 

 


저 개새이...또 시작이네...-_-...

 


은찬놈이 물컵을 입에 가져대며 이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면

 


나는 할아버지의 선량한 얼굴을 피하며 조용히 밥그릇에 얼굴을 묻고.

 

 


"...그랬냐..설아..?"

 

"..아니요..그러니까..술을 먹긴 했는데..처먹진 않았습니다...-_-."

 

"..흠..뭐..다른일이 있었던건 아니고..?"

 

 

의미심장한 빛이 담긴 큰 눈으로.


내쪽을 흘끗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면서. 난 하루의 얼굴을 슬쩍 곁눈질 했고.


그런 나를 놈은 뚱한 표정으로 보더니..

 

 

"너 머리 묶어"

 


또 그 빌어먹을 머리 타령이다.

 

 

"......"

 

"묶어."

 


"...상관마..."

 


"그리고.오늘부턴 학교 끝나면 집으로 곧장와."

 

"상관 말라구..."

 

"묶어 당장."

 


"내 머리지 이게 니 머리야!!!!!!!!!!!!"

 

 

밥 숟가락을 식탁위에 타앙 내려치고 그렇게 고함을 질렀을때.


비로소 하얗게 질린 할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죄송합니다.."

 

"..-0-.."

 

"...죄송합니다.할아버지."

 

"싸우지 마라.왜들 그래.사이좋게 지내야지.응??"

 

"...네.."

 


다소곳이 대답을 하고. 놈에게서 그 칼날같은 시선을 거두어 다시 밥을 먹자니.

 

툭..

대체 이게 뭐하자는 플레인지.

양념된 굴을 한숟갈 집어다가 내 밥그릇에 툭 던져버리는 하루놈.

 

 

 

".나..해산물 못먹는다..도로 가져가."


"먹어."


"...이거 못먹는다고.나."


"이제부터 먹어."


"야....강하루......"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어제의 개쪽도 아랑곳하지 않고 똑바로 하루의 얼굴을 응시하면.


헛기침을 커다랗게 두어번 하시는 할아버지.

 

 

 

 

"크허어어엄!!!!!!!-0-"

 

...

....

 


그렇게 해서. 어제의 그 커다란 대 소동은.


싸늘한 아침식사에 쥐도새도 모르게 묻어와 버렸다.

 

 

 


\ 평창동 집앞.

 

 


"그러니까. 어제 일이 기억 하나도 안난다!!이말씀이냐!!-0-!?!"

 

 

...-_-...

 

 


차 뒤에 낼름타 하루놈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까부터 자꾸만 나를 다그쳐대는 신기사 아저씨.


대체 무슨 말이 듣고 싶은건지.


나는 굴하지 않는 정신으로 또 고개를 끄덕였고.


아저씬 이번에 고개까지 휘딱 제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뜬채 나를 보았다.

 

 

"-0-어제 술먹고 창문 두드리고 난리 부르스를 치고.하루 등에 업혔다!!은찬이 등에 업혔다


가 한게 기억이 하나도 안난 다고라!!"

 

 

"...그렇게..일일히..다 설명 안해주셔도 됩니다.아저씨.-_-."

 


"쯧쯔.니가 몰라서 그렇지.그저께 너 나가고 난리도 아니였다."

 


"..난리요..?"

 

 

"아.다음날 아침이 되도 안들어오니까.하루가 안절부절 아주 잠을 한숨 못 이루다가.


학교 가는길에 나보고 대뜸 방향을 틀라잖어.."

 

"...왜요...!!"

 


"왜긴왜야!!너 찾는다고 그랬지!!

아주 왕십리부터 압구정동까지 안돈 대가 없어.

내 태어나 10시간 넘게 쉬지않고 운전한게 어제가 첨이야."

 

"....걔가....그랬어요.....?"

 

"그렇대도."

 


"왜 그렇게까지 나한테 잘해줘요.?그놈 원래 무뚝뚝한 놈이잖아요."

 


"아니.근데 그것이.하루가 원래부터 그런놈이 아냐.몇년전만 해.."

 

 

그때. 불현듯 입을 꾹 닫아버리는 신기사 아저씨.


난 뭔일인가 싶어 반사적으로 창밖을 바라 보았고.


아니나 달라.


하루놈. 말 한마디 없이 문을 벌컥 열더니 앞좌석에 털퍽 앉아 버린다.

 

 


순간. 차 안에는 싸안 정적이 맴돌았고.

 


더욱더 놀라운건.


하루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내 옆좌석에 재빨리 올라타 고개를 까딱해보이는 강은찬씨다.

 

 

 

이놈. 벌써 간거 아니였나....?

 

 

 


"..야..너..왜..타냐..?"

 

 

어리둥절한 나의 물음에. 대뜸 고개를 돌려 고함을 지르는 강은찬.

 

 


"이게 니 차냐!!!!!!!!!!?!!"

 

"누가 내차랬어!!?!"

 

"아저씨 빨리 출발해.!!나 선도 늦었어!!!"

 

"어..그래그래.."

 

 

 

부랴부랴 시동을 거는 신기사 아저씨.


그때까지도 분위기 파악에 익숙해 지지 않은 나는. 날씨가 춥다니 어쩌느니 하며


궁시렁대는 은찬놈을 바라보았고. 차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할때야 내 시선을 눈치챈 그 놈은

 

 

 


"뭘봐.징그럽게."

 


".....너 어젯밤에 나한테 무슨 노래..."

 


"야야.술냄새나.입 열지마."

 

 


..-_-..무안하게 시리..그 말과 함께 창문을 열어버리는 은찬이.


나는 잠시 할말을 잃고 고개까지 홱 돌려버린 그놈을 보다가.

 

 

 

"걘 갔어..?꼬맹이?"

 


"그럼 지네 집이 있는데 가지 안가냐!!!"

 


"근데 이게 왜 말끝마다 성질이야!!누가 너보고 욕했어!?"

 


"다 큰 기집애가 술냄새 풀풀 풍기고 옷은 어디서 아동복을 훔쳐 입어가지고!!!"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네!!"

 

 


그때였다.


하루가 음악을 아주 큰소리로 틀어버린것은.


운전하던 신기사 아저씨가 깜짝 놀랄만큼. 놈은

 

 


♬So if I did Something wrong Please tell me. I wanna understand


'Cause I don't want This love to ever end♬!!!!!!!

 

 


처음 듣는 팝송을 귓고막이 떨어져 나갈만큼 커다랗게 틀어댔고.


나와 은찬놈은 잠시 할말을 잃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또다시 논쟁을 벌이려고 하는데.

 

 


그럴수록 조금씩 더 커져가는 음악소리...

 

 


결국엔 못들어줄 지경까지 이르자. 은찬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알수없는 하루놈. 고집쟁이 하루놈.


차가 학교 근처에 도착할때까지.


끝내 볼륨을 높이면 높혔지 낮추지 않은채로. 나와 은찬이의 대화를 차단시켜 버렸다.

 

 


그리고. 폭발 직전에 다다른 신기사 아저씨가 16분만에 차를 학교 정문앞에


아주 난폭스레 정차 시켰을때.


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아저씨에게 조심스레 이 한마디를 건네야 했다.

 

 

 


"..아저씨..저..집에 가방 두고 왔어요..-_-.."

 

"...-_-..."

 

"헤헤헤헤..."

 

"...-_-...."

 

 

 

부릉부릉부릉.


갖은 구박을 다 퍼분 은찬놈이 차에서 내리고. 하루도 나를 스윽 한번 흝어보고 차에서


내리니. 이차에 남은것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나와 신기사 아저씨 뿐.

 

 


미안하단 말을 열번도 더 반복했을때. 신기사 아저씨의 화는 좀 누그러진듯 싶었고.

 

 


"아침도 못먹었는데 말야!!아침도!!!!"

 

"그러니까요.죄송해요..-_-.."

 

"몰라!!!!"

 

 

 

저토록 화를 내는 아저씨께. 아까 하루에 관해 하던 말을 마저 해달라고 조를수도 없고..


나는 차가 다시 집으로 빠꾸 하는 내내.


아저씨의 눈치를 조심스레 봐야만 했고..-_-..

 


차가 다시 집앞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시간이 9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기 때문에.


현관문이 열리자 마자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야만 했다.

 

 

 

\ 평창동 집.

 

 


신발을 벗자마자 후다닥 거실로 들어서는데. 베란다 쪽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분명 그러면 안되는 거지만.


난 너무도 비밀스레 들려오는 그목소리에. 조심조심 인기척 없이 다가서기 시작했고.


이내 똑똑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파출부 아줌마가


그것의 주인공임을 분명히 내게 알려주었다.

 

 

 

 

"아.그래.그 기집애.여간 당돌한게 아냐.벌써부터 술을 먹고 외박을 한다니깐 글쎄.


어휴.그러게 말야..


나중에라도 혹여 지가 왜 이집에 얹혀 살게 됐는지 그 이유 알면.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세상에.

 

 

"..........."

 

 

"아이구 머니나!!!!!!!!-0-"

 

 


"저.....말씀하시는거에요 아줌마....?"

 

 

다시 한번 이어진 내 물음에. 수화기를 거칠게 탕!!하고 내려놓시는 아줌마.


그리곤.

 

 

 


"무슨 소리야.!!"

 

"..지금요..제 얘기 하고 있던거잖아요"

 

"아냐아냐.!!!연속극 얘기 하고 있었구만!!뭔소릴 하는건지 모르겠네!!"

 


"..연속극이요..?"

 


"그래.!!-0-연속극 줄거리 얘기 하구 있었어.!!

 

"확실해요..?"

 

"어.."

 

"확실한거에요.!!?!"

 

"그렇대도 그래..!!"

 

"............저랑 관련된거..아니라구요....."

 

"하이구 참.!몇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아냐아냐!설이 학생하구 관련된거 절대루 아냐!!"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부엌으로 재빨리 도망치듯 가버리는 아줌마.


나는 아주 잠깐 그곳에 멈춰서서 방금전 들은 말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이층 내방에서 가방을 꺼내들고 아무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가 학교에 도착하고.


간신히 2교시 수업을 마친후.


주제넘는 짓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바로 옆에 위치한 덕풍고 2-4반 교실을 찾았다.

 

 

 


왜 하루가 아니라. 그토록 못 뜯어 먹어서 안달난 은찬이를 찾아온거지.


이유는 알수 없다.

 


다만. 내 본능과 직감이 이쪽을 원했다.


하루놈한테 가면. 아무런 대답도 얻을수 없을거라는 절실한 예감이 들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재수탱이를 찾아와 버렸다.

 

 

"우하하하하!!-0-배트매앤!!!!!!!!!!!!!"

 

 


고등학교 교실임에 불구하고.


우리 중학생 교실보다 몇배는 더 소란스러운 덕풍고


2-4반.

 


난 거의 자지러지듯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뒤켠에 서서.


음침한 눈으로 조용히 놈의 행적을 찾았고..


아무리 찾아도 은찬놈. 머리카락 부스러기 하나 보이지 않아서.


다시 천천히 뒷문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그때.


남자 아이들 여럿에게 둘러쌓여 즐겁게 웃고 있는 은찬놈 포착.


조금 망설인 끝에 천천히 다가가자니.

 

 

 

"어이 이새끼.내가 지난번에 너한테 생일빵 맞은거 생각하면!!-0-아우우!!-0-!!


야야 빨리 다 밟어 밟어!!!!!!!!!!"

 

 

...생일...??

 


그 낯선 두글자에 멈칫 동작을 멈추니.


아직까지도 내 존재를 발견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도망치기 바쁜 은찬놈.

 

 

 

 

"야 생일이 내일인데 왜 오늘 이 지랄들이야!!!-0-내일 밟어!!내일!!"

 

 

"웃기지마.!!이자식!너 작년처럼 생일날 또 학교 안올려구 하지!?얍삽하게!!"

 

"아 이자식들 진짜 거머리 같이 왜들 이래!!절루 안가!!!!!!!"

 


"야아아!!!!!!!저놈 잡아라아!!!!!!!!!-0-!!!!!!!!!!!"

 

 

 

아니 저..저놈들이..-_-...

 


강은찬이 저쪽으로 돌아서 마구 달아나기 무섭게.


그 코뿔소 같은 인간들은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우당탕탕 그의 뒤를 따라 달렸고.


나는 굳센 마음으로 그 알쏭달쏭한 말의 뜻을 물으러 왔다가.


여자 아이들의 거지같은 눈흘김만 잔뜩 받고 교실로 도로 내려와야만 했다.

 

 

 


생일...?


내일이 강은찬 생일이란 말이지...


휴...내일 또 집에서 파티다 뭐다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그날은 하루종일 아줌마의 묘한 말 때문에 무언가 탁탁 걸려왔고.


또 아직 하루에게 완전히 풀리지 못한 마음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고.


공부시간 쉬는시간 가리지 않고 나를 괴롭혀대는 애니몰들 때문에 상당히 열이 받은.


한마디로 일진이 사나운 날이였다.

 

 

 

그리고 그 사나운 날이 가고 다음날 아침 해가 밝았을때.


난 마음에도 없는 '생일 축하해' 라는 말을 아침 식탁상 앞에서 은찬이에게 건네려 방안에서


몇번이고 거울을 보며 연습을 했지만..

 

 

 

 

이윽고. 그 연습이 아무 소용 없는 짓 이였다는것을


잠시후 확인할수 있었다.
 
휘양찬란한 아침상을 떠올리며 부엌에 들어선 순간.


평소와 다를바 없이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어.인제 오냐.얼른 밥먹어라."

 

 

케익은 커녕 미역 줄기 하나 안보이는 식탁.


어제와 마찬가지로 신문을 펼치며 물을 한잔 들이키시는 할아버지.

 

 


게다가. 하루놈은 아예 없다...


어제 이후로 나와 말 한마디 안한 놈.


대체 이 집 남자들은 왜 이 모양인건지..

 

 

 

"얼른 먹어야지.학교 안갈거야.?"


"네...네...."

 

 

할아버지의 말에 비스듬히. 강은찬 눈치를 보며 앉은 의자.


그러자 날 한번 보다가. 젓갈로 깨작깨작 밥을 휘짓는 강은찬놈.


아니나 달라. 할아버지의 번개같은 시선이 그리로 꽃히고.

 

 

 


"밥 똑바로 안먹어!!!-0-"


"..........."


"니놈 어제 몇시에 들어왔어."


"..오늘..."


"어제 몇시에 들어왔냐니까 오늘은..!!"


"..오늘 내......."


"....니 뭐..."


"....아니다..."

 

...-0-..

 

 


젓가락을 식탁위에 탕 내려놓고. 부엌을 나가버리는 은찬이.


어떻게 된게 이 세 부자는. 차가운 얼음위에 낼름 올라앉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나라도 어떻게..애교를..떨어..볼까..-_-..

 

 

 

"헤헤헤.밥이 맛있어요 할아버지.!!!-0-"

 

"....-_-...."

 

"......-_-...."

 

"그래.많이 먹어라."

 

 

 

내가 이렇지 뭐.젠장.

 

 

 

"그런데요.할아버지."

 

"응.."

 

"왜이렇게. 은찬이한테만 엄격하세요.?"

 


"저놈이 철이 덜 들었으니까."

 

 


내 보기엔 하루나 은찬이나 그게 그거인거 같은데..-_-

 

 

"..오늘..은찬이..생일 같던데.."


"그러냐..?"

 

 

.....

 


무기력한 목소리로 들릴듯 말듯 대답하시는 할아버지.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은찬놈이 처음으로 가엾게 느껴졌고.


오늘은 나홀로 '변덕쟁이 신기사' 아저씨와 차를 타고 오면서.


가슴한켠에 자꾸 '생일' 이라는 한마디가 맴도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야야!!오늘 3교시 가사 시간에 요리 실습한대!!!!!!!!!!!!!!!!"

 


본의 아니게. 내게도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해줄수 있는 뜻하지 않는 기회가 찾아 왔으니..

 

 

 

 

\ 실습실.

 

 

 

"우리 오라버니 바닐라 시럽 좋아하냐!!!!!딸기 시럽 좋아하냐!!!!!!!!!!!"

 

 

-_-...

 

3교시 가정시간. 구석 한켠에 외로이 앉아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는데.


어울리지도 않는 앞치마를 거꾸로 뒤집어 입고 내 앞을 가로막는 코끼리.

 

 


"..몰라.."

 

"니가 알거 아냐!!!!!!!!!"

 

"진짜 몰라..!!"

 

"말해!!!!!!!-0-"

 

"모른다니까!!!!그자식 뭘 좋아하든 내가 알게 뭐야!!!!!!!!!"

 

"너 지금 그자식이랬다!!!!!"

 

"그래!!그자식!!"

 

"숭아야!!이리 와봐!!"

 

 


코끼리의 손짓에. 거대한 몸을 마구 흔들며 이쪽으로 가까워 오는 맘모스.


나는 가정선생님이 어서 와 이들을 데려가 주길 바랬지만.


그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럽을 찍어먹기 바빴고..-_-..

 

 

 


"피부도 새까만 주제에!!-0-어디 하루오빠한테 살랑 살랑 궁댕이를 흔들어대!!!!!"

 


"....이것들이..진짜....누가 궁댕일 흔들어!!누가 그런놈한테 궁댕일 흔든대!!"

 


"우리 오빠한테 놈이라구 하지마아!!!!!!-0-"

 

"그럼 년이냐!!년이야!!?!!"

 


"뭐어!?!년!?!?!"

 

 

 


나는 교실을 잘못 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정시간 내내 애니몰들의 공격을 받아가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팬케익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리하여. 그랬기 때문에.

 

 

 

"발로 만든게냐!!!!!!!이건 영락없는 D야!!D!!!!"

 

 


..-_-..가정선생님한테 'D' 를 받은 그 팬케익을.


은찬놈에게 건네주어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젠장..이거..차라리 안주는게 낫겠네...."

 

 


교실로 돌아와. 랩에 쌓여진 개떡같은 팬케익을 바라보자니. 착잡해오는 나의 마음.

 


그러나. 그냥 지나쳐 버리기엔. 아까 말없이 부엌을 나가던 은찬놈의 뒷모습이


자꾸만 걸려왔고.


생일날. 그 무엇보다 가족들의 축하가 없을때 제일 비참해 진다는 사실.


몇년동안 너무도 뼈저리게 겪어 왔기에.


나는 공책 한장을 부욱 뜯어. 간략한 편지글을 적고서. 비장한 마음으로 교실을 나섰다.

 

 

 

' 생일 축하한다. 비록 재수없는 너이지만.한집에서 살기 때문에 불쌍해서 케익이나 준다.


맛없다고 버릴지언정 나한테 욕은 퍼붓지 마라.어쨋든 누구 주기 위해 요리한건 처음이니까.

 

P.S.어제.우연히 들은 얘기중에.내가 입양되온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들었는데.


너한테 물어볼 기회가 없었어.사실 말로 물어보기도 그렇고.이거 받으면.단 한줄이라도 좋으니


까.나한테 답장좀 해줘.'

 

 

참 뻔데가리 없는 그 편지를. 전해줄까 말까 몇번이고 주먹안에서 꾸깃거리다가.


결국엔 2-4반 교실앞에 오고 만 소심한 한설.

 

 

 


"아우.야아!!"


"미친년.그러길래 내가 뭐래!!걔는 안된댔잖어!!"

 


.....

...

 


"어?얘?은찬이 쫓아다니는 애 아냐?"

 

 

 

쫓아다니는 애.

 

아니다.-_-

 

 


팬케익과 편지를 등뒤로 감춘채. 뒷문쪽에 오도커니 서있더니.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아이 두명.


난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 보았고..

 

 

 


"은찬이 불러줘..?"

 

"복도 끝으로 나오라고 해줘.."

 

".....어머..야..근데 너 나이두 쪼끄만게 왜 반말이야?"

 

"너희랑 갑이야."

 

"..허우..참..기가막혀..-0-.."

 

"강은찬.나오라고 해줘."

 

"그래.그렇게 끈질기게 따라붙으니까 전해주긴 하겠는데.


은찬이가.나오려나 모르겠다.^-^."

 

 

...-_-..저 호두빵 같이 생긴게...

 

난 하나둘씩 내게로 메다 쫓히는 시선에. 재빨리 뒷문에서 물러나.


복도끝으로 허둥지둥 달려가 버렸고.


애꿏은 소화기를 발로 투욱투욱 걷어차며.


만.나.줄.지. 안만나줄지도 모를


은찬놈을 기다렸다.

 

 

 

"왜 불렀냐..?"

 

 

 

...팍 깬다.팍 깨..

-_-

 


자다 일어나 나온듯. 부스스한 머리를 한주제에.


진심으로 귀찮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앞에 마주선 은찬놈.

 

 

나는 그냥 등뒤의 팬케익 내가 아구아구 먹어버릴까 하다가.


에이.그래도 아니지.


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불쑥. 팬케익과 편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뭐야..이거.."

 

"..너..생일이잖어.."

 

"...너..내..스토커냐...??"

 

"미친소리 말고 받어.줄맛 확 떨어지니까네."

 

".........병신..시키지도 않은짓 되게 잘하네............."

 

".....안먹냐..?도로 가져갈까..?"

 

"....맛도 더럽게 없겠네.."

 

"아 그럼 먹지마!!!!!!!!"

 

 


내가 내밀었던 팬케익을 도로 등뒤로 숨기려 할때.


아주 재빠른 동작으로 그것을 낚아채는 은찬놈.

 


그러더니. 씩 웃는다.

 

 

졸린 눈을 손바닥으로 슥삭슥삭 비비는척 하며 그 웃는 얼굴을 숨기려 했지만.


분명 보인다. 웃고 있는 입만은 ..


아직도 내게 익숙하지 않은. 그 밝게 웃고 있는 입만은..

 

 

 


"편지도 있는데.."


"....뭐야..이자식..나 진짜 좋아하나 보네.."


"..읽고 나서 판단해라 그건.-_-."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스럭 대며 편지를 펼쳐보이려는 은찬놈.

 

 


"야!!안돼!!!"

 

"왜...?"

 

"아무한테도 보여주지마.절대로.너 혼자 읽어.읽고 태워야돼.알았지.?"

 

"야.안된다.응?엉아 눈 높다.?"

 

"...미안한데..."

 

"....?"

 

"길거리에서 벌거벗고 춤추는 한이 있어도 넌 안좋아해.-_-"

 

"..진짜냐..?"

 

"그래.진짜다.난 거짓말 안한다."

 


그 말에 은찬놈. 편지를 주머니에 구겨넣으며 또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니들 거기 꼼짝말구 서있어!!!!!!!!!!!"

 

 

저 불길한 목소리는...


분명..

 

 

입으로 쒜따뻑을 외치며 소리가 터져나온 계단쪽을 바라보니....


현장을 놓칠새라 시뻘개진 얼굴로 마구 올라오는 남자...

 


...케비넷 사건의 그 남자...아니..그 선생...

 

 


점점 가까워 오는 그 남자의 얼굴에. 난 참을수 없는 불쾌함으로 인상을 확 구겼고.


은찬놈은 미치겠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 거렸다.

 

 

 

"...이럴줄 알았어..이럴줄 알았어..너..누가 또 기어 올라오래..응!?"

 

 

막대기로 배 부분을 쿡쿡 찌르며. 나를 똑바로 노려보는 남선생.

 

 

불독같이 생겨가지고..키는 나만한게...씨...


난 있는 힘을 다 해서 눈앞의 불독을 노려보았고..


그놈은..이내..은찬놈의 편지를 든 손에 그 귀신같은 시선을 꽃아서는..

 

 


"그거 이리 내."

 

청천벽력같은 말을 지껄여 댄다.

 

 

 

"..안되겠는데요."

 


"....난..하이튼..너랑 니 형놈이랑..아주 맘에 안들어..조막막한 새끼들이 지 애비 빽 믿고


설치는거 보면.잠을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여..알아..?"

 

 


나즈막한 목소리를 힘주듯 한마디씩 끊으며. 이번엔 은찬이를 향해 돌아서는 불독.

 


후..이자식은 정말..빽에 대한 극심한 컴플렉스가 있는건지.

 

대체 자기보다 20살도 더 어린 애들한테 이 무슨 유치한 짓이냔 말이다.

 

 

 

"그럼 다시 감아요.그럼 되겠네.아니면 평생 감던지."

 


....-0-....

 


분명 말하지만. 은찬놈은 하루놈보다 성질이 몇배는 더 다혈질에다가.


몇배는 더 입심이 쎘다.

 


나는 그 다음에 벌어질 행동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의외로 불독놈. 은찬이에겐 약한건지. 멈칫한듯 막대기를 손에서 떨어트릴 뻔 하다가.

 

 

 

"편지 이리내!!!!!"

 

"제껀데요."

 


"학교에서 연애질 금진거 몰라!!!!!이리 내!!!!!!!!!"

 

"그런 규칙.들어본적도 없고.지켜본적도 없는데요..^-^.."

 


"이 자식이 진짜!!!!!!!!이리 안내!!!!!!!!!!!"

 

 


정육점의 돼지고기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은찬놈의 꽉쥔 주먹을 향해 달려드는 불독.

 

 


그러자.너무도 순식간에.


그러니까 내가 '앗' 하고 소릴 치기도 전에.


그 편지를 입에 넣고 꿀꺽 삼켜 버리는 은찬놈.

 

 

....

 


이럴수가....

 


앞으로 저놈과 싸움해서 이기려는 생각따윈.


지금 당장 버려야 겠다..

 

 

 

 


"너..너..지금 뭐한거야..."

 


"보고 싶으면.저 화장실 갈때마다 졸졸 따라오세요."

 

".......내가 지금 무슨말 할지..니놈이 더 잘알지..."

 

"따라와.^-^"

 

"...............후........"

 

 

더 할말도 없다는듯. 층계쪽을 향해 팔자 걸음으로 멀어지는 불독.


그러자 강은찬. 팬케익을 주머니에 구겨지지 않게 집어넣고.


나를 한번 보더니.

 

 

 

 

"편지 다시 써라 너."

 

"..저..자식..왜 너희한테 유독 야단이냐..?"

 

"있다 그런게"

 

"...같이가..나도.."

 

"시끄러.넌 편지나 다시 써."

 

"나도 갈거야."

 

"일 더 복잡해져.교실로 가."

 

".....나도 갈거라구....."

 

"너 가면 아빠한테 치명타야."

 

"........"

 

 

분노로 가늘게 떨리는 내 눈을 장난스러운듯 들여다 보더니.


손등으로 눈썹을 두어번 툭툭 두드리는 은찬이.


그리곤.

 

 


"개떡.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남기고. 운동장에서 아무 걱정없이 달리면서 노는 어린애처럼.


불독이 사라진 계단 쪽으로 가볍게 뛰어가 버린다.

 

 

 

...대체..불독자식..

 

왜 하루랑 은찬이만 못잡아서 안달이 난거지...

 

게다가 왜 저놈들은 집에다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거야...

 

불독을 향한 증오심과 답답함은 더욱더 커져서.

 

난 4교시 내내. 애니몰들이 던지는 종이 뭉치며 귤 껍데기를 아랑곳 않고 묵묵히 버텨냈고..

 

 


'딩동딩동.딩딩딩딩.둥둥둥둥.♬'

 


4교시를 끝내는 종이 울리자 마자. 재빨리 은찬놈을 찾기 위해 교실을 뛰쳐 나왔다.


"거기 안서어!!!!!!!!!!!"


무시무시한 맘모스와 코끼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

....

 

 

덕풍고 현관에 들어서자 마자.


이젠 그 덕풍고 학생들 얼굴이 반가워 보이기 까지 하고.


3층에 있는 은찬이 교실에 오르기 위해 층계쪽으로 방향을 틀었을때.

 


순간.


계단을 급히 내려와 내 옆을 지나치는 하루.


얼굴 마주할 새도 없이 지나쳐 버리는 하루.

 

 

 

대체 뭐에 그렇게 열이 받쳤는지. 내가 누군지 분간도 못하고. 아예 보려 하지도 않고.


그 알수없는 하루놈.


꼼짝없이 자리에 박혀 멍청한 표정을 짓는 날 남겨두고


귀신같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도저히..알래야..알수 없는놈..


지 멋대로에다가 남 기분 신경도 안쓰는 왕 재수없는놈..


그리고. 불평을 하려던 내 머리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하루의 모습을 떠올리는 내 가슴.

 

 

그날. 1번룸 문을 열고 들어오던 하루놈.


내 입술이며 눈을 박박 문지르던 하루놈


너무 가뿐하게 날 집어든 하루놈.


잠옷으로 갈아 입혀준 하루놈.


그리고..이건..정말 확실치 않지만..꿈인지 진짠지 나도 모르겠지만..


입술에..

 

 

 

"그 선생님은 뭔데 맨날 우리 은찬이 건드려!!!!!?이번이 대체 몇번째냐구!!!!!"


"많이 다쳤대...?"


"....몰라..가보면 알겠지...."

 

 


날 또다시 멈칫하게 만드는 대화를 나누며.


이번에는 하루가 내려온 층계쪽에서.


예란이와 그 친구인듯한 여자아이가 가까워 왔다.


그러더니 이내 날 발견하고.

 

 

 


"어..?너..."

 

".....은찬이...여자친구 맞지...?"

 

"응.다시 그렇게 됐어.헤헤."

 

"은찬이가 왜?다쳤대?"

 

"...있어..병적으로 은찬이 싫어하는 선생 있는데..아..몰라몰라!!진짜 죽겠어 내가..!!"

 

"어딨는데 강은찬?"

 

"양호실.."

 

"양호실이 어딨는데..?"

 

 

 

뭔가 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니 뒤에.."

 

손가락 끝으로. 아까부터 줄곳 내 뒤에 붙어있던 문을 가르킨다.

 


그랬기에. 난 그 친절한 손가락이 가르키는데로.


망설임없이 뒤돌아서 그 문을 열었고.

 


....

 

 

 

"아아.!!살살좀 문질러요!!!"

 

 

 

.....아니나 달라....


한낮의 따뜻한 햇빛이 환하게 비춰오는 그 양호실 안에는.


솜으로 놈의 눈가를 닦아내는 양호 선생님과.


온갖 오도방정을 다 떨다. 지금 막 내 얼굴을 발견한 놈이 있었다.

 

 

 

"너.. 여기 어떻게 알았냐..?"


"..괜찮아 은찬아..!?"

 

 

멍청히 서있는 나를 가로질러. 은찬이에게 다급히 달려가는 예란이.


그러자 양호선생님. 나와 예란이를 한심스런 눈으로 번갈아 보더니.

 

 


"야.니 잘난 남자친구.니가 대신 치료해줘라.난 밥좀 먹어야 겠다."

 


예란이에게 소독약과 솜을 넘기고.


양호실을 휘적휘적 나가버린다.

 

 


"..어떻게 된거야.이번엔 또 왜 맞았어.!!그러게 아빠한테 말 하래두..!!"

 

 


솜으로 슥삭슥삭 놈의 멍든 눈가를 닦아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예란이.


놈은 머쓱한듯. 이번엔 따갑다는 엄살 한번 내지 않고. 다시 내 쪽을 바라본다.

 

 

 

"....괜찮냐....?"

 

"스.토.커."

 

"....나 때문에..맨날 니네만 얻어 터지는구나.."

 

".....시끄러.."

 

"내가 또.병균 몰고 왔나봐."

 

"...."

 

"난 맨날 이러거든. 병균이랑 재앙만 몰고 오는 까마귀거든.."

 

"...그딴말 할거면 가라..."

 

"..진짜야..."

 


"그딴 말 할거면 가.."

 

 


....의미심장한 우리 대화에. 조금씩 굳어가는 예란이 얼굴.


그 친구마저 수상쩍다는 눈으로 우리를 번갈아 보고 있을때.


갑작스레 은찬이 등 뒤로 난 양호실 창문이 홱 열리면서.


덕풍고 교복을 입은 놈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야!!강은찬!!"

 

 

이놈들은 참 불쑥불쑥 잘도 나타나는구나..-_-..

 

 

내가 예란이의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창가쪽을 바라볼때..


반쯤은 흥미로운 목소리로. 반쯤은 다급한 목소리로.


내 가슴을 주저앉게 만드는 그 한마디를 외치는 남자아이.

 

 


"하루.무슨일 난거 같다.!!"

 


....뭐...?"

 


"......뭐...?"

 

눈가를 솜으로 문지르다 말고. 고개를 돌리는 은찬이.

 

 

 


"...교문쪽에 왠 아저씨들 왔는데.하루도 같이 있어.!!!"

 

"...그래서..?"

 

"야...니 형이잖아...."

 

"걔 싸움 잘해. 때리면 때렸지 안맞을걸."

 

"하루는 혼자란 말이야!!"

 

"그새끼 자살을 하면 자살을 했지.누구한테 맞아 죽을놈 아니다."

 

 


....어쩌면..이렇게...

 

 


잠시나마 너한테 따스한 정을 느꼈던 내가.


내가 머저리고 내가 등신이다.


그렇게 미동조차 하지 않는 은찬이를 남겨두고. 망설일 틈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간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잠시 뒤를 돌아 보았을때.


왜 그런진 몰라도.


눈에 가만히 솜을 대고 있는 은찬이 얼굴이. 참 많이. 쓸쓸해 보였다.

 

 

"강은찬......나..가도 되지.."

 

"..가지말라면..안가냐..?"

 

"...뭐..?"

 

"내가 가지말라면.너 안가냐..?"

 

"........아니."

 

 

 

단호히 내뱉은 그 한마디에. 고개를 저으며 소리없이 웃어보이는 은찬놈.

 


놈의 주머니 밖으로 조금 삐져나온 핫케익이 무진장 마음에 걸려왔지만.


그렇대도.


무슨 일 생겼을 하루를 생각하면. 단 일초도 이 자리에 있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문을 향해 다급히 뛰기 시작했고..


뛰는 그 짧은 순간.마음이 아닌 몸으로 깨달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문쪽을 향해 넘어질듯 고꾸라질듯 달리는 내 몸을 보며.


하루를 향한 마음을.


부정할수도 없을만큼 너무 깨끗하게 깨달아 버렸다.

"하루야!!!!!!!!!!!!!"

 

 


교문쪽에 가까워 올수록. 무언가를 에워쌓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날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랬기 때문에.


하루 얼굴이 눈에 띄기도 전에. 이렇게 성급히 그놈의 이름을 불러 버렸다.


나의 우렁찬 목소리에. 일제히 내 쪽을 보고 수근대는 아이들.

 

 

"...강하루..!!!!"

 

 


하나둘씩. 아이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그제야 가운데의 그 누군가를 향해


자리를 터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주먹 불끈쥐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 갔을때..

 

 


"어이구.학생이였구만..!?!"

 

 

...제기랄..이 새끼들이 근데..

 

 

술집에서. 하루에게 재떨이로 입술을 얻어 맞은 그놈.


그놈이. 그때 왔던 친구 두명을 대동하고. 삐딱한 걸음으로 내 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기..어떻게 알고 왔어..."

 

"수소문 했지. 그때 이놈이 입었던 교복이 어디학굔지.근데 이놈이 이 학교에서 꽤


유명인사더라고.?그래서.얼른 찾을수 있었지.버터 플라이 미라 아가씨.^----------^"

 

 


"........."

 

 


"우와.이거.학교에서 알면 어떻게 되나.?둘다 짤리는건가?응?"

 

 

 

비열한 놈..

 

 


커다란 입으로 활짝 웃으며. 말없는 하루와 나를 번갈아보는 남자.


아이들은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제각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웅성 대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남자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말한다.

 

 

 


"아..이 학생들은 모르나..?니가 무슨일 했는지..야야..여기 제말좀 들어보세요.!!


그러니까 이 학생이요!!나이를 20살로 뻥치고...버터 플라이라는 단란주점에서.."

 


그때.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나 버린일.


잠자코 있던 하루가. 놈을 바닥에 넘어 트리고 배 위에 올라 타버린 일.


아이들은 제각기 비명을 지르며


"선생님 불러와!!!!!!!!!!"를 외쳐댔고.

 

 

나는 분명 말려야 했지만. 더이상 하루가 엇나가지 않도록 말려야 했지만.

 

 

아니.


어느 누구도 그럴수 없었다.

 

심지어 그 남자의 친구들조차. 잔뜩 겁에 질린채 뒷걸음질을


쳐댈뿐. 그 어느 누구도. 하루의 몸에 손을 댈수가 없었다.

 


말조차도 걸수 없었다.

 

 

 

"아...나..죽어....나 죽어...이새끼들아..이새끼들아..!!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

 

 

십초도 안되어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남자의 입..

 

 


그리고.


미친것 같은 강하루. 분명히 말하지만. 거짓말 하나 안보태어 말하는거지만.


이제껏 살아오며 보아왔던 그 어떤 얼굴보다.


아니 심지어. 지독한 증오에 치밀었을때 한밤중에 거울로 보이는 내 얼굴보다.


훨씬 더 무서운 얼굴로. 훨씬 더 지독한 얼굴로.


남자를 처참히 짓뭉개 버리는 하루...

 

 


구경하던 여자아이는 겁에 질린채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말았고..


남자는..바닥에 쓰러진지 채 10분도 안되어 까마득히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만해 강하루.됐어!!!!!이제 그만해!!!!!!!하루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내가 하루의 옷깃을 붙드는 순간에도.


이미 남자가 정신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그리고 불독이 호루라기를 요란스레 불며 다가오는 순간에도.

 

 


하루는..


하루는..그 낯선 얼굴로..마주보기 조차 소름돋는 얼굴로..


숨소리 조차 내지 못하는 남자를 짓밟아 버렸다..

 

 

 

\ 학생과.

 

 

 


"미친거지.이놈들이 아주 쌍으로 미친거야!!!"

 

 


타앙!!

 

 

또 한번 학생부로 하루의 머리를 내려치는 불독.


나는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놈의 말을 아랑곳 하지 않고.


벌써 30분째 꼼짝없이 하루의 옆을 지켰고..


하루는 다시 되찾은 아무 감정없는 그 얼굴로. 불독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야..너희...나랑 한번 해 보자는거지..응?하루에 두놈이나..나랑 해보자는거지..?"

 

"......"

 

"거기다 이기집앤 또 뭐야.?넌 뭔데 볼때마다 이놈들 옆에 껴있어..?"

 

 


기분나쁜 막대기 끝으로. 이번에도 내 배를 쿡쿡 찔러대는 불독.


그리고 이번엔. 그 막대기 끝을 힘주어 잡아버리는 하루.

 

 


"하하하..야...놔..."

 

"......"

 

"안놔...?...."

 

"..."

 

"이거...안놔...!?!!!!!!!!!"

 

 


이윽고.그 폭력배보다 더 폭력적인 불독이 왼쪽 주먹을 불끈 쥐고 하루의 얼굴위로


들여 보였을때.


그리고 내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을때.

 

 

타아앙!!!!!!!

 

문이 열리면서..


...할아버지가..모습을 드러냈다...

 

 

아까의 그 섬뜩한 하루와 꼭 닮은 표정을 얼굴에 담아내고..

 

 

"..아...."

 

 


당황한듯. 주먹을 멈추는 선생.


그러자 할아버지. 옆에 함께 온 신기사 아저씨에게 모자를 벗어 건네고.


말도 없이. 책상앞에 앉은 의자에 털퍽 앉아 버리신다.

 

 

"......젠장...."

 

 

분명히 들려온 하루의 작은 중얼거림.


나는 도저히 할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면목이 없어. 고개를 90도로 푹 숙여 버렸고.

 

 

 

"이거 어떡할겁니까.술집에서 일을 했었답니다!!그..그것도 모자라!!


이놈이 그 스물 여섯 먹은남자를 전치 2달이 나오게 패버렸습니다!!!


이거 어떡할겁니까!! 아!!그리고 작은놈이요!!


은찬이!!쉬는시간마다 기집애들하고 연애질 하는데!!이건 어떡하실겁니까!!


틈만 나면 기집애 옆에 끼고 입술이다 볼이다 뽀뽀를 해대는데!!이건 뭐라고 설명하실 겁니까!"

 

 


조금은 겁먹은듯. 그러나 악에 바친듯.


눈앞에 앉아 손에 든 담배를 까딱까딱 해보이는 할아버지에게 큰 목소리로 따져대는 불독.

 

 


..잠시..조용한 정적이 흐르고..


아무말씀 없이 불독을 똑바로 바라보시던 할아버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작은놈이 저지른짓은. 학교 규칙에 특별히 위배 되는것 없는걸로 내 알고 있고.


문제 되는 하루 일은 내가 해결했네.


더이상 그놈들 학교에 찾아오는 일도 없고. 더욱이 우리 아들놈 학교에서


자르라고 난동 부리는일은 없을걸세."

 

 

"제가..제가 용서 못합니다..!!!!그놈들이 넘어가도!제가 안된다고요!!"

 

 

"그때 그 돈 사건이.아직도 마음에 걸리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래서 일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아들놈 데려다가 저 지경으로 만드나..?"

 


"아닙니다!!!!!!아니에요!!!!!!!!!!!"

 

 


타앙.!!


순간. 라이터를 책상위에 집어던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는 할아버지.

 

 


"누가 우리 아들 얼굴 저지경으로 만들어도 좋다고 했나!!!!!!!!


단순히 싸움해서 다친거라는 하루말!!여지껏 그냥 속아주는척 하며 들어왔지만!!!!!!


자네 지금 건들여선 안될 상처까지 건들였어!!!!!알아!!!!!!"

 

 


"....제가..선생입니다!!!!저놈이 학생이라고요!!!!!저도..!!저도 저 기분나쁜 놈 마주 하기

싫어요!!아시겠어요!!!!!!!"

 


"...그래...?


그럼... 전근 가는게 좋겠구만....우리 아들같은 놈 하나 없는..


순한 양들만 득실대는 그런 곳으로 가면 되겠어.."

 

 

"...뭐..뭐라구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불독을 스윽 지나쳐서는.


신기사 아저씨에게 모자를 받아 쓰는 할아버지..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나를 한번 보고. 하루를 한번 올려 보시더니.

 

 


"공부는 잘되냐....?"


하고 물으신다.

 


"...........아니요...죄송합니다..."

 

모기만한 목소리의 내 대답에. 껄껄껄 웃으시고는.

 

"그래.이따 집에서 보자.."

 

문을 열고.


어느새 위엄한 얼굴로 변신한 신기사 아저씨와 학생과를 나가려는 할아버지.

 

 


"그게.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버님!?절 맘대로 전근 보낸다고요!?제가 가만 있을줄 알아요!?


잘못은 이쪽이 먼접니다!!학생 신분에 술집에서 일하고!!그것도 모자라 찾아온 그 남자를


두드려패고!!!!!!!"

 


"그 다음에 자네가 내 아들을 두드려 패고."

 

 

"...그게.."

 


"나한테 중요한 사실을 그거 하나야.

내 아들이 자네같은 버러지한테 두드려 맞았다는것.

신기사.이 학교 교장실 2층 맞지.?"

 

 

"네....."

 


....

 

이윽고......할아버지와 신기사 아저씨가 문을 쾅!!닫고서 학생과에서 자취를 감추자..

 

"으아아아악!!!!!!!!!!!!!!!!!!!"

 

의자며 책을 마구 집어 던지며 마구 고함을 지르는 불독.

 

 


그리고 그 광분한 불독은.


그날부로 덕풍고에서 더이상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을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난. 할아버지 힘이.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사실을.


결코 좋지 않은 기회를 통해 깨달을수 있었다.

 

 

 

\ 학교앞.

 

 

이젠 아예 노골적으로 날 피하게 된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며.


터덜터덜 정문쪽으로 걸어 나왔을때.


벽에 기대선 반가운 얼굴 하나.

 

 

 

"..강하루.."


"가자."


"....기다렸냐..나..?"


"그럼 내가 할일도 없는데 여기 서있냐."


"........그래..그렇네..진짜..."

 

 


하루와..첨으로..나란히 하교 하는 길..

아까의 그 섬뜩함이 사라진.하루의 예쁜 눈을 보며.

나는 조금씩 마음이 밝아져 옴을 느꼈고. 하루는 조금씩 떠는 내 머리 위에.

교복마이를 말없이 툭 떨어트렸다.

 

 


"야..안보이잖아!!"

 

"그럼 내려서 입어."


"..-_-.."

 

"...버스탈래..택시탈래.."


"..버스..!!"


"몇번 가는줄 알아?"

 

"....아니...-_-."

 

 


한심한 얼굴로 날 보다가. 이내 달려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드는 하루..-_-

 

 

그리고 돌아오는 택시 안.


옆에 앉는 바람에. 하루의 어깨와 내 어깨가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운 두근거림을


느끼며. 또 이런 내가 싫어져. 여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헛기침을 자꾸만 해댔다.

 

 

 

"야..."

 

"...응..?"

 

"시끄러."

 

"...그래..-_-.."

 

"....."

 

"...미안했다..."

 

"뭐가."

 

"버터플라이 사건..아까..나때문에 괜히 너 맞은것..그러면서 너한테 말한마디 안건거..

전부다."

 


"그럼 머리 묶어."

 

 

...-_-....

 

어이를 상실해서. 가만히 놈을 바라보자니. 덩달아 나를 빤히 보는 하루.

 

 

....젠장..내가 졌다...


머리를 묶어야만.우리의 화해가 성사 된다 이거지.

 

 

 

결국 강씨 고집에 밀린 나는. 손목에 돌돌 말려있던 머리끈을 꺼내어 버터플라이에서


그랬던것처럼. 올빽을 해서 긴 머리를 하나로 묶었고..


....그 순간....내가 앗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하루가 왼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뭐야..미쳤냐 너?왜이래?"

 

"말투 예쁘게 써.끝에 '냐' 자 붙이지 마."

 

"...왜그러냐 너 진짜?"

 

"쓰지마 '냐' 자."

 

"...-_-...참나..이젠 별걸 다 시키네..야..팔이나 놔..징그러워.."

 

 


내가 살짝 밀어내려 할수록.점점 힘이 들어가는 하루의 왼팔.

 

 

..이러지마 자식아..


심장소리 들킨단 말야...나 벌개진 얼굴 들키기 쪽시렵단 말야..


..무엇보다..인정하기 싫단 말야..


이런 낯선 감정 같은거...

 

 


근데..그러고 보니..나만..미안하단 말..했네..-_-..


차가 집앞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쳐 놈을 빤히 바라보았고.

 

 


"..뭘봐.."

 

"너도 사과해."

 

"...?"

 

"나한테 꺼지라고 했던거.나 그때 정말 충격 컸다구.아주 다 때려 부수고 싶었다구.


사과해 너도."

 

"싫어."

 

"..-0-....왜..?왜 싫어..?"

 

"꺼져라고 할만한 짓 했어.니가."

 

 


...-_-...

 

 

할말을 잃은 나를 남기고. 휭하니 택시에서 내려버리는 하루.

 

휴...


이놈을 좋아해버린 날 발견해버린 이상.


앞으로 나의 고생길이 환하게 보인다.

 

 


투덜투덜 대며. 정원을 가로지르는 하루의 뒤를 따르는 길.


그래도.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오는건.


아무리 입을 손으로 가려도 허벅지를 손톱으로 꼬집어 봐도.


어찌할수가 없었다.

 

 

 

 

\ 그날밤. 거실.

 

 

 

"뒤돌아!!!!!!!!!!!!!!!!!!!"


.........


............

 


"뒤돌란 말 안들려!!!!!!!!!!!"

...

 


.
벌써 한시간이 넘었다....


일층 안방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고함소리...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거실 주변을 왔다갔다 거렸고.


쇼파에 앉아 말없이 게임만 하고 있던 하루가. 그런 나를 향해 툭 하고 한마디를 내뱉는다.

 

 

 


"정신 사나워.."

 

"...왜저러시지..응?은찬이한테 대체 왜 저러시지.?"

 

"....젠장..죽었다.."

 

"은찬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왜 맨날 은찬이한테만 저러시는거야..응?"

 

"..비용..비용..총알을 먹자..총알.."

 

"야!!강하루!!!!!!!!!!!!!!"

 


.....

 


그제야. 게임기에서 시선을 떼어.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하루.

 

 

 


"...니 동생 생일이잖아 오늘!!너 몰라!?몰라서 이러는거야!?"

 

"생일이 왜."

 


"..아무도 안챙겨주잖아.축하한단 말 한마디 안건네잖아.그것도 모자라서.

은찬이 저렇게 밥도 못먹고 혼나고 있잖아..!!"

 


"생일은 일년에 한번씩 와."

 

"....-0-...그런말이 어딨냐.."

 


"그런말이 어딨어."

 


"그런말이 어딨냐!!"

 

"그런말이 어딨어."

 


"내 말투야!!이거 내 말투라구!!"

 


"생일은 일년에 한번씩 와."

 


"..하..정말..말이 안통해 니놈은.."

 


"평생 안오는것도 있어...그러니까..생일..아무것도 아냐.."

 


"그래!!!!!!!하지만!!!!!!!!"

 

"....?"

 


"평생 생일 축하한단 말 못듣고 죽는 사람도 있어!!!!!!!"

 

 

 

무슨말이냐는듯.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날 올려보는 하루놈.

 


젠장..이제..저 눈만 보면 성질도 못내게 생겨 버렸으니.


난 어쩌면 좋아....

 


더이상 그 악의 마수에 걸려들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문득 떠오른 한가지 생각에. 2층에 있는 내 방에 가기 위해 층계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면...


여지없이...할아버지의 잔뜩 성난 커다란 목소리가..


귓구멍안에 직빵으로 꽃혀 버렸다.

 

 


"내가 기집질이나 하라고 너 학교 보낸줄 알아!!!!!?!넌 대체 언제 철이 들거야!!!!


니놈 얼굴만 보면 이제 아주 화가 치밀어 올라!!점점 더 보기도 싫어져!!"

 

 


..이어서 들려오는 매서운 회초리 소리..

 


대체..왜 저렇게..은찬이한테만 저렇게 차갑게 구시는거야..


대체 왜..


그 짧은 순간. 케익을 받아들고 좋아하던 놈의 얼굴이 눈에 선해서.


더이상 지체 않고 재빨리 내 방을 찾았다.

 

 

 

그리고..다시 써서 달라는 놈의 말대로.


종이와 펜을 서랍에서 꺼내다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선채 편지를적었다.

 

 


아까와 다른것이 있다면..


생일 축하해와 미안해라는 말만 빼곡히 적어버린것...

 

 


그래..어제 그 알수 없는 얘기는..나중에 따로 물어보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근데 너 아까.좀 멋있었다' 라는 내 딴엔 가장 낯간지러운 한마디를 붙인


그 성미와 맞지 않는 편지를 곱게 접어든채..


살금살금..내 방과 반대편에 있는 은찬이 방을 찾는길.

 

 


...삐그덕...

 


행여 누가 올라올까봐. 재빨리 뛰어들어서 은찬이 책상위에 편지를 올려놓으려 할때..


책상 옆에 놓인 침대위의 물건에.

 

 

 

잠깐..아주 잠깐..

 

시선이 멎고..이어 손과 다리마저 멎어버리고.

 

이 순간만큼은..아무것도 모르는 야속한 할아버지가..많이 원망스러워져 버렸다.

 


...

 

 


침대 구석엔 아무렇게나 쌓아 올려진 생일 선물들.


그리고...다시 침대 위로 시선을 돌리면..

 

 

핫케익.

 


내가 아까 건네준.쭈글쭈글한 핫케익.

 

 

천천히 확인을 하며 그것에 다가서면. 핫케익에 올려진 촛불 열여덟개.


옆에 놓여진 포크 하나..

 

 

포크..하나...

 

 

 

혼자 촛불을 꼽고.불을 킨 은찬이.


분명 저녁엔 할아버지의 따뜻한 인삿말을 기대하면서.


친구들과의 파티를 다 뿌리치고 집으로 들어왔을 은찬이.

 

 

 

혼자 촛불을 꼽고..혼자..불을 킨 은찬이..

 

 

 


조금씩 녹기 시작한 그 핫케익을 보면서..


나는 옆에 놓여진 성냥불을 켜 촛불 하나하나에 조심스레 불을 밝혔다..


은찬이의 차갑게 꺼진 마음속에..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떨리는 손으로 불을 밝혔다.

\ 그날밤.

 

 


하루와 은찬이에 대한 각기 다른 감정으로..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다는걸 깨닫고.


창가에 걸터 앉은채 물끄러미 정원을 내려보았다.

 

 

참. 넓기도 오라지게 넓다...


송아지 열댓 마리랑 염소 서른 댓마리 풀어놔도 끄떡 없겠네...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 주제에.. 그 두놈들은 대체 왜 그렇게 살벌한거야..

 

 

은찬이놈.


그 형편없는 핫케이크는 다 먹었으려나..


그 후로 두시간도 넘게 더 혼난거 같았는데..

 

 


이런저런 쓸데없는 참견을 다 하며.


손에 든 마지막 귤 한조각을 입안에 털어 넣었을때..


그때.

 

 

 

'..우.....우으.....우욱....."

 

 


...이게 무슨 소리야.!!!


-0-


방 바깥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정체모를 신음소리에.


나는 책상위에 있는 커터칼을 손에 꾹 움켜쥐고 조심조심 방문가에 다가섰고..

 

 


"..우으......으..."

 


세상에나...-0-..

 


그럴수록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는 신음소리.

 

아니..아냐..이건 신음소리가 아니라..

 

 


...울음소리다..!!

 

 

누군가 울고 있는거야..


은찬이..?아니면 하루가..? 설마 할아버지..!?!-0-

 

 

이집에 온뒤 시도때도 없이 뒤집어지고 있던 심장이.


그 정체모를 울음소리에 어김없이 또 가슴을 두드려 오기 시작하고.


때문에 일분 일초라도 빨리 방문을 열어 그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니.


그럴수 없다.


방문을 벌컥 여는순간. 저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하늘로 함께 증발해버릴거 같은 무서운


예감이 든다..

 

 

저 소리..


너무 아프다..너무 슬프다..너무너무..애처로와서..


들어주기 조차 힘이 든다..

 


그래서 결국 난 이불 밑으로 기어 들어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꾸욱 막아버렸는데.

 


어느 순간.


그 눈물소리가 발작으로 변해버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도 목격한듯한..


끔찍하고..소름돋는 발작소리..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건...단순한 고함이 아냐. 단순한 울음이 아냐.

 

 

그래!!!!


끔찍한 사태가 발생해 버린걸지도 몰라!!


설마 하루나 은찬이한테 무슨일이 생긴거라면..!!

 

 

고막이 찢어져 나갈듯한 그 울부짖음에. 다시 용기를 얻어 방문앞에 다가섰다.


그리고 이번엔 망설임 없이 문을 활짝 열어 버렸는데..

 

 

 

"우아아아아악!!!!!!!!!!!!-0-"

 


"아아아악!!!!"

 

"우아아아악!!!!!!!!"

 

"설아!!할아버지다!!놀래지마.진정해라.진정!!"

 

"..-0-...할아버지.."

 


그랬다. 분명 문앞에 서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이집의 주인인 할아버지.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그 울부짖음의 주인공.!?!

 

의심의 눈초리로 천천히 할아버지의 하얀 얼굴을 올려보는데..

 


...저 먼곳에서부터


이젠 조금씩 작아져가는 지친 울음소리..

 


.....그렇다면.....

 

 


"하루에요..은찬이에요...?!?!!"

 

"....잠깐..얘기좀 하자 설아."

 

 


그렇게 말씀 하시며.할아버진.열려있던 내 방문을 조용히 닫으셨고.


난 나도 모르게 미세히 떨려오는 두 팔을 등뒤로 숨기며. 할아버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신경쓰지 말아라..아무것도 아니니까.."

 

"누군데요..누가 우는건데요..?"

 

"........."

 

"누가 우는건데요.할아버지.."

 

"제발..묻지 말아라..제발..묻지 말아라.."

 

 


..이집은 대체..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지..

 


두 눈을 꼭 감는 할아버지 앞에서. 난 이제 혼란스러움을 넘어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고.


점점 더 떨리기 시작한 등뒤의 두 팔을 눈치를 챈건지.


내 머릴 조용히 쓰다듬으시는 할아버지.

 

 

"....은찬이죠...아까 그 일때문에..은찬이가 울고 있는거죠..?"

 

"제발..설아..부탁이다.."

 

"왜..그렇게..은찬이한테만 차갑게 구시는거에요.."

 

"......"

 

"은찬이 생일이였잖아요.그거 이미 알고 계셨던 거잖아요."

 

"..안그래도..그것 때문에 너한테 미리 일러둘 말이 있다.."

 

"........?"

 

 


이젠 거짓말처럼 뚝 그쳐버린 울음소리에. 안심한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으시는 할아버지.

 

 

 

"..내일..이집에서 은찬이 생일 파티가 있을거야."


"네..??"


"오늘 하려고 했지만. 애들 엄마가 주말에야 시간이 나기 때문에.토요일로 미뤘다."


"...엄마요...?하루랑 은찬이 엄마요..?"

 


끄덕끄덕.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시면.

 

 


"이집에서 같이 안사시는건가요..?"

 

"그래.그런데 그 아줌마가 내일과 모레 이집에 있을 예정이다.."

 


"..네.."

 


".....네 존재를 몰라....알면 또 난리가 날테지.."

 

"....그럼..어디 다른곳에 가있을까요..?"

 

"아냐.그럴 필요까진 없고. 이층엔 아예 올라오지 않을테니까. 이틀동안 방에만 있는게 좋겠다"

 


"그럼 은찬이 생일 파티 해주시는거에요.!?!"

 


"내 아들인데. 당연하다마다."

 


"우와!!!살았다!!!!!!"

 

"하여간..그 여자 아는 날엔 아주 난리법석이 날테니까.수고스럽 겠지만 꼭 좀 부탁한다.설아.."

 


"네.할아버지.!!!"

 


"그런데 왜 그리 좋아하냐...?이틀동안 방에만 있을 생각하니까 신이 나?"

 


"...아니요..아니에요 할아버지..^-^.."

 

"그래.그럼.부탁한다."

 

"네..!!^-^.."

 

 


나의 씩씩한 대답에 안심하신듯. 씩 웃어보이시더니..


놀랍게도. 그 인자한 표정을 굉장히 화가 난듯한 얼굴로 재빨리 뒤덮고서


성큼성큼 방을 나가시는 할아버지.

 


문을 닫는김에 살며시 그 뒷모습을 보니..


내려가는 층계가 아닌. 은찬이랑 하루 방이 있는 저쪽 복도를 향해 가신다..

 

 

....

 

할아버진 왜 갑자기 또 화가 나신거야...


대체 두놈중 어떤 놈이 울고 있었길래..

 

 

이거 완전 보이지 않는 공포의 숨박꼭질이 따로없네..

 


..그나저나..은찬이 생일 그냥 넘어가신게 아니라니..

 

 

헤헤!!좋다!!좋아!!!!!


단순한 한설.


은찬이 생일 파티를 해준다는 그말에. 울음소리의 정체를 까맣게 잊고서.


침대위로 털퍽 뛰어 들어 버렸다.


그리고..내일이 토요일이라는 즐거움에..이불속에 얼굴을 폭 파묻고 잠이 드려는 찰나..

 

 


끼이이익..

 

 

또다시 열리는 방문소리..

 

 

이젠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누구세요...?"

 

"......"

 

"누구세요..??"

 

 

거대한 양털 이불을 걷어 치우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자니.


잠옷차림에. 한손에 베개를 든 은찬놈이 퉁퉁 부운 얼굴로 천천히 침대쪽을 향해 다가오고.

 

 


"야!!뭐야!!!"

 

"......."

 


말없이 베개를 내 방바닥에 던져놓고. 그위에 웅크리고 누워버리는 은찬놈.

 


"야..너..니가 운거지.."

 


추궁하는듯한 내 한마디에. 놈은 반대편을 향해 돌아 누워 버리고..

 

 

 

"...야..강은찬..너지. 니가 울었지.."

 


"안울었다..."

 


"너 낼 할아버지가 파티 해주신대더라!! 들었어!?"

 

".......필요없어.그딴거.."

 


"에이.새끼.속으론 좋으면서.."

 


"....."

 


"좋지?좋지?속으론 좋지?!"

 

 


기쁜 마음으로. 철딱서니 없이 놈의 등을 발로 툭툭 쳐보이자니.


별안간 은찬놈 몸을 벌떡 일으키며.

 

 

 

"이 그지같은게!!!!!!!!!!하나도 안좋다고!!!!!"

 


"...왜 또 성질이야!!그리구 왜 불쑥 남의 방 와서 자는건데!! 니 방 가!!!!"

 

"......."

 

 

그 한마디에 꼬랑지를 내린듯.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애매하게 방바닥을 바라보는


은찬놈.-_-

 

 


"너 근데....핫케익..무지 맛있게 먹었나부다.."

 

"..안먹었다.."

 

"먹었구만 뭐.."

 

"그런 참새똥 같은거 누가 쳐먹냐.."

 

"네 그래서 말씀인데..입에..그 참새똥가루가...무지 많이 묻었습니다요..-_-"

 


"...뭐...?"

 

 

한심한 나의 눈초리에. 쪽팔린듯 팔로 입가를 슥슥 문지르는 은찬놈.

 

으이구..거기가 아니라 여기다 이새꺄..

 


아무 생각없는 나는. 방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놈의 입가를 손등으로 (패듯이-_-)문질렀고..


놈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잠자코 있다가..내 거친 손목을 확 잡아 비튼다.

 

 


"아아악!!!!!!!-0-"

 

"드러운 손으로 감히 어딜 만져!!"

 

"니 주둥이가 더 드러워 이자식아!!!"

 

 

손을 홱 뿌리치며 그렇게 소리치자. 다시 바닥에 벌렁 누워 돌아눕는 은찬놈.

 

 

"야!!니 방 가서 자라니까!!!"

 

"....."

 


"아니.갑자기 이자식이 왜이래!?언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을 하더니만.!!


왜 지 좋은 침대 냅두고 딱딱한 방바닥에 벌렁 눕구 지랄이래!!-0-"

 


".......무서워.."

 


"...-_-..뭐..?"

 


"무섭다고 병신아.!!!"

 

 

"....참....-_-...가지가지 다한다..너.."

 


"...시끄러...나 낼 선도 서야돼.

일찍 일어나야 되니까.앞으루 그 드러운 주둥이 열지마.."

 


"아니 얘 진짜 웃기는애네!!다 큰 사내놈이 뭐가 무섭다구 여자방에 와서 자!!?!!!"

 

 

"나 잔다...잘자라.거지.꿈에선 제발 만나지 말자."

 


"야!!나가아.나가!!나 너 싫어!!!"

 


"..........."

 


"나가서 자래니깐 이자식아!!"

 


"............."

 

 

아니 이런 금붕어 대가리보다 모자란 자식!!


어떻게 눈을 감자마자 바루 쳐자냐!!!!


정말로 놈은 두 눈을 꼭 감고서.


대화의 공백이 일초를 넘기기도 전에 쌔근쌔근 잠이 들어있었고.

 

 


나는 새우처럼 웅크린 놈의 등짝을


발로 깔아 뭉개고. 손으로 꼬집고. 알람 시계를 세차게 울려도


그 잠을 깨우는것엔 아무 소용이 없다는것을 깨달아.


내일 아침까지 잠자코 참아주기로 했다..

 

 


하루 깨기전에. 새벽닭 울면 얼른 내쫓아 버리면 되겠지 뭐..-_-..

 

 

그나저나..이자식..진짜 미친듯이 케익을 먹었나부네..


대체 얼마나 묻힌거야 주둥이에다가..

 

 

 

곱게 잠든 놈의 주둥이를 거칠게 터는 짓.


참으로 신나고 재미난 짓..

 

 

 

문득. 잠든 놈의 얼굴이 평소의 얼굴보다 훨씬 어리고. 순수해보인다는


정신나간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눈에서 입가쪽을 향해 흐르듯 말라 붙은 눈물자국을 바라보았다.

 

 

 

...애구만..애야..


맨날 나한테 병신이라니..거지라니..욕해도...


애는..애야...

 

 


눈물자국과 잠든얼굴. 그리고 입가에 묻어있던 케익의 부스러기는.


그놈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마구마구 불러 일으켜서.


나는 남아있는 거지 근성 그대로. 놈의 웅크린 몸위에 그 푹신푹신한 양털 이불을 덮어 주었고.


덕분에 딱딱딱 이빨을 떨어가며 그 추운 밤을 꿋꿋히 견뎌내야 했다.

 

 

 

 

\ 다음날 아침.

 

 

 

"후아아아암!!잘!!잤!!다!!"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기지개를 쭈욱 펴는 찰나..


그러니까..잠옷이 한껏 위로 올라가 내 참외 배꼽이 적나라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 찰나..

 

 

"......"

 

 

 

바로 눈 옆에서 느껴지는 굳은 얼굴 하나.


...그래..그러고 보니...이 후닥다리 같은놈이..어제 내방에서..

 

 

 

"야!!!!!너 왜 아직두 안나갔냐!?!!"

 


"그나마 남은 정 다 떨어진다...다 떨어져.."

 


"니 정 필요없어!!나가!!얼른 나가!!!!!!!"

 

 

"너 잘때 주댕이에 깔대기를 꼽든지 해라...무슨..악어 새끼도 아니고..

아우.드러.침봐..욱.....넘어올라 그래.."

 

 

"아니.이자식이 재워주니까!!"

 

 

 

아냐. 내가 이럴때가 아니지.

 

여기서 이놈이랑 한방에서 있는거 하루나 할아버지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거울앞에 서서 재빨리 머리를 다시 정갈히 올려묶고..

 

 

 


"야..풀러라..풀러.."


라는 은찬놈이 말을 가볍게 씹은뒤 방을 후다닥 뛰쳐 나왔는데.

 

 

 

"...아..안녕...하루.."

 

 

 

지금 막 계단을 내려가려던 하루와 정면으로 마주쳐 버렸으니.


이 일을 우째...-_-...?

 

 

 

"잘잤어..?"

 

"응..하하..-0-..하루 넌..?"

 

"나도."

 

 


교복을 깨끗히 차려입고. 내 머리를 한번 보더니. 싱긋 웃어보이는 하루.


그래.바로 이 과묵함과 이 미소다.ㅠ_ㅠ


아..정말 한번 느낀 이 감정이 계속해서 밀어 닥치는것을. 난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

 

 

 

"어제 그 잠버릇은 너무 야했 잖아요 >_<"

 

"...-0-..."

 

 

 

유유히 방문을 걸어 나오며..(거기다 자신의 베개를 들고)


그 5월달의 우박만큼이나 쌩뚱맞은 소리를 지껄이고 만 강은찬.


그리곤. 화강암 처럼 굳은 내 앞을 지나 타닥타닥 층계를 내려가 버렸으니..

 


....

 

 

"야.아냐.그게 아니라.저자식이 어제 무섭다길래."

 

"....."

 

"나 그런애 아냐.진짜야.야.진짜 아냐."

 

"...."

 

"야.진짜 아니래도.저새낀 바닥에서 자구.난 침대에서 잤단 말이야!!"

 

 


다급한 나의 목소리에. 그 특유의.


사람 미치게 만드는 아무 표정없는 얼굴로 나를 스윽 보고.


찬바람 한점을 남긴채. 왼발을 조금 절뚝대며 계단을 내려가 버리는 하루.


..이젠..명백한..내 짝사랑이 되어버린 하루..

 


...하루...하루..하루...


...

 

 

"강은촤안!!!!!!!!!!!!!!!!!!!!!!!!!!ㅠ0ㅠ"

 

 

 

 


\ 평창동 집앞.

 

 

 

후..아..후..아..


아직까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는 신기사 아저씨.

 

 


하루놈은 아침밥도 먹지 않은채 휭하니 집을 나가 버렸고.


은찬놈은 할아버지 앞이라 아무 소리 못하는 날 보고 히죽대다.


집앞을 나오자마자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으니.

 

 


"아아아악!!!!!!!그 자식 진짜 맘에 안들어!!!!!!첨부터 그럴 작정으루 온거야!!!!!!!"

 

"..그러니까..설이야..학교 늦었지 않니..?"

 

"아저씨!!!!!!!!"

 

"...그..그래.."

 

"강은찬 죽이면 어떻게 됩니까!!!-0-!!"

 

"글..쎄..아마도..내생각엔..감옥에..가지..않을까.."

 


"아아악!!첫 만남부터 맘에 안들었어!!잠시나마 불쌍하다고 핫케익까지 갖다바친 내가 등신이

지!!잠시 미쳤던거야!!분명해!!"

 

"...토요일이라고..아예..학교에 안갈 작정이니..설아..?"

 


"...아...아니에요..가요..가야죠.."

 


"..그래..얼른 가자.벌써 8시 50분이다..-_-"

 

 


조금 잠잠해진 날 보며. 다행이라는듯 얼른 운전석에 올라타는 아저씨.

 


..후..아..이새끼..학교에서 보자..


예란이 보는 앞에서 아주 개쪽 상쪽. 니가 여지껏 모르고 산 온갖 쪽을 다주마..


그렇게 굳은 결심을 하며. 차로 다가서려는 순간..


그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집앞에 버려진 까만봉투.

 

 

물론. 까만 봉투가 눈에 들어온것은 아니고..


삐죽이 삐져나온 하얀 천이 그 주인공이다.


그래..그러니까..정확히 말하면..하얀 레이스..

 

 

"..설아..왜그래..?"

 

 

창문을 열고 의아해하는 아저씨를 내버려두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천천히 봉지앞에 다가가 그 하얀 물건을 꺼내 들었고..

 


세상에..너무 예뻐...

 

 

봉지안에서 나온건 새하얀 드레스. 티비속에서나 보던 웨딩 드레스...


레이스가 가슴이며 밑단에 수도없이 달린 그 드레스가 일순간 나의 마음을 홀랑 빼앗아 버려서.


넋이 나간채 그 드레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아.설아.!!학교 안갈거야.!?!"

 

 

이 예쁜걸 대체 왜 버린거지...?


...할아버지가 버리신건가..


세상에..이렇게 아름다운걸. 여지껏 난 감히 만져보지도 못했던걸..

 

 

 

"아이고 설아!!!학교 끝난다 끝나!!ㅠ0ㅠ"


"아저씨.잠깐만요!!"


"..아니!!어딜 도로 들어가!!"


"오분!!아니..일분!!아니..30초 안에 나올게요!!잠깐만요 아저씨!!!!!!!!"

 

 

...

.....

 

 


...미친짓인거 안다.


도리에 넘은짓인거 알고.


주제를 배반해도 확실히 배반하는짓인거 알지만.

 

 

나는 그 모든 명백한 사실을 뒤로 하고.


드레스를 움켜쥔채 현관문을 향해 도로 뛰기 시작했다.

 

 


"어머.설학생.왜 다시 들어와?"

 

 

행여 아줌마에게 들킬새라.


드레스를 가방안에 꾸깃꾸깃 접어놓고. 내 방을 향해 쿵쾅쿵쾅 뛰어오르는 길.

 

 


..미쳤어..단단히 미쳤어 한설..

 

 

그런데 아냐..이건 달라..


이건 뭔가 이상해...


터무니 없는것 같지만..날 유혹하는 가루가 잔뜩 뿌려져 있는것 같아..


버려진채로 그냥 놔둬버리면..평생 후회하면서 매일 이 드레스 꿈만 꿀것 같아..

 


그렇게 현실적으로는 설명할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린.


그 대단하고 아름다운 드레스.

 

 

그 아름다운 드레스의 등부분이. 내 머리통보다 조금 큰 크기로 부욱 뜯겨져 있다는것을


알아챈건.


이미 그것이 내 옷장 구석에 은밀히 걸려져 버린 뒤였다.

 

 

"..이게..뭐야..."

 

 

옷장에 걸고 나서야 발견한 .그 보기싫은 구멍을 자세히 들여보려는 찰나.


이미 대문 밖에선 신기사 아저씨의 경적 소리가 관악대의 나팔소리만큼 커다랗게 울려퍼지는


중이였고.


때문에 나는 옷장 문을 닫고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했다.

 


....

 


그리고 그 드레스.


말로 설명할수 없는.


동화책 에서 억지로 잡아 빼낸것 같은 그 드레스는.

 

 

 

토요일의 오전 수업 1.2.3교시 내내.


단 일초도 쉬지않고 내 심장을 (고통스러울만큼) 꽈악 졸라댔다.

그날 모든 정상 수업이 끝나고.


재빨리 은찬놈의 교실을 향해 뛰어 들었지만.


이미 청소도 띵가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놈..-_-..

 

 

그리해서. 뒤늦은 발걸음을 돌려 하루의 교실을 조심스레 찾으면.


하루 역시 이미 집에 가버리고. 그앞에 버티고 선 코끼리 만이 나를 반기고 있으니.

 

 


"여긴 왜 또왔어!!!!!"

 

"...하루..갔냐..?"

 

"우리 오라버닐 니년이 왜 찾냔 말이야!!!!!!!!"

 

"..젠장..진짜..미치겠네..이놈들은..등에 날개를 달았나..어떻게 찾기도 전에 맨날

없어지냔 말이야.."

 


"우리 오빠를 왜 찾아아!!!!!!=0=!!!!!"

 


"......-_-..휴...."

 

 

 

등 뒤에 악착같이 따라붙는 코끼리를 뒤로하고.


먹먹한 가슴으로 교문을 나서는 길..


하나둘씩 짝을 이루며 즐겁게 하교하는 아이들을. 부러운듯 바라보자니.


문득 집에 두고온 그 새하얀 웨딩드레스에 생각이 미치고.

 

 

"그래..드레스..!!"

 


그리하야.


다시 찾은 활력으로 처진 발걸음에 조금 더 속도를 붙이는 순간..

 

 

 


"하루하루!!우리 이렇게 또 만났어요!!"

 

 

나를 멈칫하게 만드는 이름을 호들갑스럽게 부르는 한 목소리.


불안한 예감을 품으며 조심스레 등을 돌리니..

 


아니나 달라.

 


오렌지색 머리의 그여자. 말없는 하루의 팔에 수다스레 매달리며. 차키를 손가락에 끼운채 뱅뱅


돌려 보였고..


내가 다가설 틈도 주지 않은 그 두사람은.


도로옆에 세워진 빨간 차에 올라타 곧바로 내 앞을 비웃듯 지나가 버렸다.

 

 

...


...

 


이씨....


....이씨....ㅠ0ㅠ....

 


"강하루 나쁜놈!!!!!!!!가다가 벼락이나 맞아라!!!!!!!!!!!!!!!!!!!!"


"..-0-..."

 

 

이젠 대놓고 나를 피하는 아이들.

 

 

...젠장...

 

 

순..바람둥이..안그럴것 같으면서 더럽게 바람둥이..


대체 저 여잔 뭔데..시도때도 없이 학교 앞에 나타나냐..!!

 

 

강하루 치사한 새끼..


내가 지때문에 안묶던 머리도 묶었는데..

 

 

그 아름다운 드레스도 하루와 다른여자의 다정한 모습앞에선 꼼짝 할수 없는건지.


난 집앞에 도착하는 내내 주둥이를 삐쭉 내밀고 내가 아는 욕들을 모두 다 씨부려댔고..-_-..


덕분에 모든 이들의 눈총과 쑥덕거림을 한몸에 받으며.


아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빵빵!빵빵!!'

 


...으엑..!?저것들은 다 뭐야..!?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면서 드레스를 볼 생각에 조금 위안을 얻고 있는데.


집 앞서부터. 쭈욱 줄지어 주차된 한국 중형차와 외제차 7대.

 

 


"호호호.세상에.내가 그래요.은찬이 5살때 본게 엊그제 같은데.."

 


이윽고. 지금 막 클락션을 울리며 정차한 차 안에서.


온 몸을 돈으로 감싼 아줌마 두명이 내려 초인종을 눌렀고.

 

 

...벌써 손님들이 온건가..!?!!


그럼 하루랑 은찬이 엄마두 온거 아냐!!!!!!!-0-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참기름을 바른것 같은 그 미끄덩 거리는 차들을 쏜살같이 지나쳐..


다음은.

 

 

"어머..저게..뭐야..족제비인가요..-0-..?"


놀라는 그 두 아줌씨들을 번개같이 지나쳐..


족제비보다 훨씬 빠른 속력으로 쿵쾅 쿵쾅 집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0-..쉿..설학생..얼른..얼른..올라가.."


"..네..-0-.."

 


안절부절 못하다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즈막히 속삭이는 아줌마를 지나쳐.


정면으로 보이는 계단을 향해 젖먹던 힘을 다해 달려갔고..

 

 

끼이익..


거친 심호흡과 함께 아주 살그머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우아아..나 죽는다..!!-0-"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침대위에 벌렁 뻗을수 있었다.

 


...휴....


정말...죽는줄 알았다...


.....휴.........


...............휴...........

 

 

몇번의 한숨을 내쉰끝에. 반사적으로 옷장을 향해 올라가는 시선..


..그래..저게..있었는데..말이야...

 


방안엔 분명 아무도 없음에 불구하고. 난 주위 눈치를 살금살금 보다가..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옷장문을 열었고..


이내.그 묘한 냄새를 잔뜩 풍기는 드레스를 천천히 어루 만졌을때..

 

 


'똑똑.똑똑똑.'

 


누군가의 노크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옴을 느꼈다.


쿵닥쿵닥..조금씩 가빠오는 심장소리.

 

'똑똑.똑똑똑.'

 

대답하면 안돼. 아줌마일지도 몰라.

 

 


"..나..나쁜 사람 아니에요.잠깐 문좀 열어봐요.."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

 

 

나는 열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미 방안에 누군가 있는것을 여자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느낌에.


잔뜩 몸을 움츠리며 방문을 열었고.

 

 

 

"..어..?!!!우리..!!한번 봤죠!!"

 

 

문지방 하나를 중간에 두고 서서. 반갑게 미소짓는 그 여자의 얼굴에.


멀쩡히 달린 내 두눈을 곧바로 의심해야만 했다.

 

 

 

"당신!!!여기 어떻게 왔어요!?"

 

"우와..입양된 여자가 그쪽이구나..우와..난또.."

 

 

지금 내 눈앞에 있는건. 오렌지 머리. 그러니까. 아까 까지만 해도 하루랑 함께 있던 그 여자.

 

 

그여자가 왜..?? 왜 여깄는거야..?

 

 

"...어떻게..여기 있어요..?하루랑 같이 놀러 온거에요..?"

 

 

좀 험상궃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나의 질문에.


작은 머리를 뒤로 젖히곤 하하하 웃어보이는 여자.

 

 

강하루 빌어먹을 새끼. 이젠 집까지 데려온다 이거지..


차츰.차츰. 잠시 내렸던 혈압이 또다시 올라가기 시작할때.

 

 


"나 이집 할아버지랑 굉장히 잘 알거든요.."

 


내가 상상했던것보다 훨씬 더 깨름직한 소릴 내뱉는 여자.

 

 

 

"네..?"

 

"하루 할아버진 나 많이 싫어하실지 모르지만..어쨋든..분명 잘 아는건 사실이니까..^-^.."

 


"......그래요.."

 


"듣자하니까. 이 집 안주인한테 들키면..끽..-0-..이거라면서요..?"

 

 

 

파출부 아줌마가 고새 또 떠벌렸구나..-_-

 

 

나는 아무말없이 나보다 조금 더 큰 그 오렌지족을 (어느새 오렌지 족-_-) 쏘아보았고..


그여잔 내 칼날같은 시선에 잠깐 흠칫 하는듯 싶다가.

 

 


"그냥.궁금해서 와봤어요.근데 그쪽일줄은 정말 몰랐네.^-^"

 

다시 한번 또 그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네.저도 그쪽이 여기 올줄은 꿈에도 몰랐네요.-_-"

 

"그럼.수고해요^^오늘 정원 밤새 좀 시끄러울테니까..^-^.."

 

"그럼 안녕히.!!-_-"

 


쾅!!

 

끝까지 웃고 있는 그 여잘 거칠게 배웅하고.


나는 침대 끝에 걸터 앉아 또다시 궁시렁 궁시렁. 아까 오는 길에 했던 욕을 되감아서 하다가.


조금씩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정원밖을.


타원형의 창문밖으로 아주 몰래 내다보았다.

 

 

 

"호호호.은찬이 너 이놈!!!그런 장난 하면 못써!!"

 

대가리 윗꼭지만 살짝 내놓고 훔쳐보는 처량한 내 신세.

 

 


정원에는 아예. 호텔 차를 세대 대동해서 온 일류 요리사들이 열심히 접시를 퍼나르고 있고.


텅 비어있던 정원엔 어느새 하얀 식탁이며 의자가 가득차있다.

 

 

거기다가 눈에 거슬리는건.


정장 차림으로 낯선 아줌마 옆에 붙어 앉아 멋쩍게 웃고 있는 강은찬놈.

 


..저자식..핫케익이다 뭐다 어제 불쌍한척 온갖 쇼를 다하더니..


저렇게 휘양찬란한 생일 파티를 하고 있다니..-_-..

 

확..창문밖으로 가래침을 뱉어 버릴라..

 

 

그리고....조금 더 시선을 돌려서 보면...


어느새 오렌지 머리와 나란히 서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있는 강하루놈.

 

-0-..아니..저..저년이..

 

 


할아버지에게 밝은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인 오렌지 족은. 하루놈의 얼굴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쓰다듬었고.


역시나 정장차림의 강하루놈은. 아무렇지 않은듯 빤히 오렌지 족을 바라본다.

 


제기랄.!!!!!!!


죽여버릴테다 저 순 날바람돌이 새끼!!!!!!!!!-0-!!!!

 

...끄응..

 

근데..되게 잘어울리네..정장도..


.....무지 멋있네..자식...

 

 


나도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데..


나도 저기 있는 바베큐 요리 먹고 싶은데..

 

 

..에이...내가 무슨...


이런 집 살고 학교 다니는것만 해도 감지 덕지 해야지..


스스로도 처량한 시선을 하고.해가 어둑어둑 지는 그 순간까지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한설.

 


정말이다. 다른 세계에 온것 같다.

 


조급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줌마 아저씨들.


듣도 보도 못한. 식탁위를 빠짐없이 메우고 있는 음식들.


간간히 보이는 활짝 웃고 있는 할아버지.


5단 케익 앞에 서서 자꾸만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강은찬놈.

 

 

그리고...


아까부터..아아아까전부터..안보이는..=_=^


강하루와..오렌지족..

 

...

 

 


.....역시..무리인거겠지..하루는..??

 

그래. 앞으로 받을 상처들에 비하면. 이건 정말 공룡발톱의 작은 때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천근만근 무거운 낙담으로 두 손을 탁탁 털어내며..

 

 

 


"은찬아 얼른 촛불 불어!!!"

 

"어머.너 촛불 잘못 꼽았어!!열 일곱개가 아니라 열 여덟개잖아!!"

 

"오호호 내 정신좀 봐 세상에.미안해 은찬아.고모가 니 생일도 기억을 못하고"

 

"어이구 주책 그만 떨구 초나 하나 더 가져와"

 

 

창문밖의 그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도 함께 털어내고.


천천히 문가쪽을 향해 돌아서서 기대 버렸다.

 

 


....왠지..이런거..싫다...


.....하나 생기니까 두개 바라고..두개 생기니까 세개 바라고..


이런 욕심쟁이 되는거..정말 싫다..

 


하나..하나로 족하자.설아.


원랜 빵개 였으니까. 이젠 하나로 족하자.

 

 

 

심술난 마음을 천천히 달래며. 이번엔 침대 끝에 걸터 앉았다.


..그러고 보니..옷장안에 걸린 말없는 드레스가 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천천히 드레스를 향해 움직이는 손길.


...그리고 곧바로 눈에 들어올수 밖에 없는 커다란 구멍..

 

 

...입어볼까..?


구멍나서 버린건데..한번쯤 입어봐도 되잖아..


한번만...입어...볼까...?....

 

 

창밖의 자지러질듯한 웃음소리가 허공을 맴돌고. 그 웃음소리에 거세게 반항하듯.


어느새 드레스를 꾸욱 움켜 잡아버린 내 두손.

 


그 다음. 처음부터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커다란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큼.


드레스는 안성맞춤으로 달라붙으며 머리서부터 천천히 내 몸을 휘감았고..


이윽고 밑단의 레이스를 털어내며 화장대 앞에 마주섰을때.

 

 


"..예쁘다.."

 

뻔뻔하게도 내입에서 터져나와버린 그 한마디.

 


하지만. 정말이다.


여지껏 수없이 보아온 거울속의 모습중. 오늘이 최고다.


이것이 최고다.

 


나는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킨듯한 표정을 하며. 거울 앞에서 몸을 빙그르르 돌려 보였고.


그때마다 둥그렇게 퍼지는 레이스를 보며.


신데렐라의 기분이 이보다 더 행복했으랴 하는 생각과.


이 모습을 하루에게 한번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딱 하나 눈에 거슬리는 등의 구멍.


그래. 덕분에 내 거무잡잡한 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 구멍을.


무언가로 막기 위해 옷장쪽을 향해 다가섰을때..

 

 

 

"진짜에요.할머니.여기 거지가 있다니까요"

 

"그러니까.미라야.그런 쓸데없는 말 하지말고.가서 삼촌한테 축하한단 말이나.."

 

"진짜 라니까요.!!이 안에 있어요!!제가 그전에 얘기도 했다구요!!"

 

"어허.얘가 정말!!"

 

"..야..거지!!거지!!문열어!!"

 

 


탕탕탕탕.

 

 


"...문열어.거지!!너 소용없어.이제!!문 열라구!!"

 

 


....맙소사....


잘못 들은것임을 바라며. 조용히 숨죽인채 귀를 기울였을때.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점점 더 거세오는 강미라의 주먹소리.

 

 


"가자.미라야.할아버지가 찾으실거야"

 

 

...그래..제발..


제발..가...


제발 가란 말이다..ㅠ_ㅠ..

 

 


"잠깐만요.할머니.제가 열쇠 가져올게요!!잠깐만요!!"

 

 


....헉....


또 한번 무참히 주저앉는 내 심장.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면서. 난 분명히 미라의 멀어져가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고.


드레스를 벗어야 한다는 첫번째 임무도 잊은채..


숨을 곳을 찾아 이리저리 방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래.!!침대밑!!!!


...젠장...서랍으로 다 막혀있잖아..ㅜ0ㅜ


그렇다면 옷장안은?!!!!


여긴 분명 미라년이 벌컥 열어보겠지.....


방문 뒤는!??!


..말도 안돼..이건 정말 삼류 스릴러 영화에나 먹힐만한 얘기...

 

 

그때. 또다시 내 신경을 뚝뚝 끊어버리는 공포의 한마디.

 

 


"할머니.열쇠!!이거 맞아요!?"

 


...오..맙소사..


저 불여시가 오늘 끝내 사람 피를 바싹 말리는구나..

 

 


"어휴.네 고집은 정말.당해낼수가 없어"

 

 

..이윽고..


열쇠가 문을 만나 달칵달칵. 나를 약올리듯 즐거운 노래를 불러댔고..

 


'달칵달칵♬-0-안녕 날 달칵달칵 양이라고 불러주세용.♪'

 

 

그 노래소리가 점점 내 쪽을 향해 가까워오려는 찰나.


나는 거지 근성을 발휘하여 정말이지 엽기찬란한 액션을 취해버리고 말았으니..

 

 

흐야아아압!!!!!!!!


나도 모르겠다 젠장!!


나도 모르겠다구요!!ㅠ-ㅠ!!

 

 


"...꺄아아악!!!!!!!저게 뭐야아!!!!!!!-0-!!!!!!!"


"시체야!!!!!!!!!꺄아아악!!!!!!!!!!"

 

 


정원에서 불거져 나오는 아줌씨들의 비명소리.

 

 


"드레스를 입었어요!!"

 

"아이구 흉칙해라.!!등허리가 다보이는데!!세상에!!저게 대체 뭐람!!'

 

 


....하...정말...이젠..지쳤다..


이 괴물같은 집에 완전히 지쳐버렸다구...

 

나는 모든것을 다 포기한듯한 표정으로. 처참한 몰골이 되어 아래쪽을 바라보았고.


정원쪽에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기겁한 표정으로.


영화속의 한장면을 고스란히 옮긴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창문 바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것이다.

 

 

마치 만화의 서커스 한장면에 등장하는 빨.간.코.광.대.처.럼.

 

 


"야!!너 미쳤어!!!!!?!!"

 

 


이윽고. 케익을 즐겁게 쳐먹던 은찬놈이 내 쪽을 향해 마구 달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창문을 잡은 두 손에 악착같이 힘을 주며.


뒤이어 달려오는 하루와 오렌지족을 발견하고 망연자실. 눈을 감았다.

 

 

"야!!!!!당장 도로 올라가!!!!!!!!"

 

 

곧바로 들려오는 은찬놈의 고함.

 

 

"안돼.."

 

"올라가란 말 안들려!!!!!!!!"

 


"니네 엄마라구!!니네 엄마 이제 곧 등장이란 말이다!!"

 


"뭐!?!?!"

 

 

 

은찬놈의 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듯 탕!!하는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열리는 방문.


젠장. 이제 다 끝장이다.

 

 

 

 

드레스 입은 구멍 난 뒷모습은 하루랑 은찬이. 게다가 이집 친지들에게 다 보이고.


대롱대롱 매달린 앞모습은 이집 안주인님이랑 미라년한테 다 들키고.

 

....이제 난....신문 일면지를 커다랗게 장식하며 신종 싸이코로 급격히 떠오르겠지.

 

 


'한때는 갈곳 잃은 떠돌이였던 한모양. 비밀스런 이유로 입양되어.

재벌가 창문에 빵꾸난 드레스 입고 대롱 대롱 매달리다'

 

 


이쪽으로 점점 가까워오는 할머니와 미라년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모든게 끝났다는 생각으로 맥없이 너털웃음을 지어보였기 때문에.


그 다음 바로 나온 하루의 그 한마디는.


분명 커다란 충격이 되어 내 구멍난 등을 두드릴수 밖에 없었다.

 

 


"뛰어"

 

 


....뭐라구...하루야...?


지금..너..뭐라구..한거냐..

 

 

으아압!!!


휘청이는 팔로 다시 창문을 악착같이 부여잡고.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얼굴로


밑을 내려다 보았을때.


두팔을 벌리며 단호히 그 한마디를 되풀이 하는 하루.

 

 


"나 믿고.뛰어."

 

 

 

 


...오..맙소사...

차라리 여기서 덤블링을 하라고 해라..이자식아..

"뛰어!!"


"올라가!!!!!!한설!!"

 

 

 

주인 아줌마와 미라의 얼굴이 조금씩 시야에 가까워올때.


하나로 겹쳐 들려오는 하루와 은찬이의 다급한 목소리.

 

 

올라가..뛰어..


뛰어..올라가...

 

 

여기서. 분명 내 인생의 기로가 결정 나는거겠지.


은찬놈 말대로 올라가느냐. 하루 말대로 뛰느냐.


이중 어떤것을 선택 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백퍼센트 뒤바뀌어 버리는거겠지.

 

 

후으읍..

 

 

심호흡을 한번 하고 밑을 내려보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발을 구르고 있는 은찬이와.


어쩌면 잘못 본것인지도 모르는. 하루의 미소서린 얼굴이 보이고.

 

 

 

 

"올라가란 말 안들려!!!!!!!!"

 

 

은찬이의 화가난 목소리가 절정에 달했을때.


그리고 미라년과 아줌마의 숨소리가 코앞에 가까워 왔을때..

 

 


"으아아아압!!!!!!!!!!!!!!"

 


나는 두 눈 꾹 감고. 잔뜩 오그라 붙어있는 손을 순식간에 놓으며.


번지점프라도 하듯 발 아래 정원으로 데구르르 굴러 떨어지고 말았으니.

 

 

 

"꺄악!!!!!!!"

 

 

오렌지 머리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갑작스런 내 무게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하루.

 

 

 

"하루야아!!!!!-0-"

 

"아....."

 


"괜찮아!?괜찮은거야!?"

 

 

그래. 이를테면 그것은. 0.01초와 0.1초 간격에서 일어난 일이였다.

 

 

할아버지가 장면을 목격하고 고함을 치시기도 전에.


나는 귀공자 차림의 하루를 처참히 뭉개며 정원위로 털썩 뛰어내려 버린것이고.

 

 


"진짜 이거 돌대가리 아냐!?!!!!!!!!"

 

 


은찬놈이 악에 바친 구박을 내게 퍼부었을때.


비로소 정신을 차린 하루.


등에 묻은 죽은 잔디들을 탁탁 털며 어쩔줄 몰라하는 나를 빤히 올려 본다.

 

 

 

그리고 그때. 타이밍도 절묘하게 시리.


이층 내 방 창문으로 불쑥 고개를 내미시는 아줌마.

 

 


"...난..이제..끝이다..."

 

 

구멍난 등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자포자기한 내가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려 할때.


단호한 결심을 한듯.


추욱 늘어진 내 손목을 잡고서. 갑자기 대문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하루.

 

 

하루야..ㅇ_ㅇ..!?

 

 


"하루야!!!!!!!!하루야!!!!!!!"


"설아아아!!!-0-"

 

 

 

오렌지족과 할아버지의 고함이 겹쳐 양귀를 땡땡 울리는 사이.

 

문득 뒤를 돌아보면.

 

놀라 뒤뚱대는 아줌마들의 사이를 헤집고 뒤를 쫓아오는 은찬이가 보이고.

 

다시 정신을 차려 하루의 뒤를 맹렬히 잡으면.

 

 


"아아악!!!!!!!-0-"

 

맨발인 탓에. 발바닥에 쿡쿡 밟혀오는 정원의 자갈들.

 

 


"..참아..조금만.."


"아아아아..."

 

 

내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커져갈수록. 점점 더 달리기에 속도를 붙이는 하루.

 

 

 


오 맙소사.ㅜ_ㅜ

 

이 장면. 분명 내가 어릴적에 TV를 보며 부러워 하던 한 장면이긴 하지만.


맨발에 구멍난 드레스. 게다가 창문에서 풍덩 하고 뛰어내린 꼴이라니.


오오 맙소사 ㅠ0ㅠ

 

 


그 엄청난 쪽팔림에 발바닥의 아픔도 잠시 잊고서


거친 하루의 손에 이끌려 대문을 간신히 벗어났을때..


더불어. 뒤에서 들려오던 아줌마와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점차 작아져 갔을때..

 

 

 

"아니.이것이 어떻게 된일이야!!!-0-"

 

 


문앞에 서서 차를 닦다 말고.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신기사 아저씨.

 

 


그러자 하루는. 더 설명할 것도 없다는듯 무작정 뒷좌석에 올라타버렸고.


별다른 도리없는 나 역시. 따가운 발바닥을 어루만지며 냉큼 하루 옆에 앉아 버렸다.

 

 

 


"아니.대체 뭐야!!어떻게 된거냐니까!!"


"빨리 가요.아저씨."

 

 

 

이 상황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는 하루의 멋진 목소리.


난 잠깐 나의 주제도 잊은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아니.어딜가!!-0-.생일 잔치 하다 말구 어딜 간다는겨!!"

 

"빨리 가요.."

 

 


한번 더 힘주듯 되풀이된 하루의 말에 압도 당해 버린듯.


아저씬 잠시 할말을 잃고 우리를 보다가. 앞좌석에 허둥지둥 앉아 문을 닫으셨다.

 

 


그리고.

 

 

"젠장.마귀 할망구!!"

 


지금 막 슬슬 출발하려는 차에.


덥썩 올라타버리는 또 한 작자가 있었으니.

 

 

 


"야!!넌 왜!!!"

 

"이자식 진짜 미친거 아니야!!!!!-0-"

 

 

타자마자 대뜸 내 드레스 깃을 붙들며 고함 지르는 은찬놈.

 

 


"아이구 말세구만.말세야."

 

 

 

은찬의 갑작스런 등장에 한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차를 모는 아저씨.


그제야 안심한듯 가쁜숨을 몰아 쉬며 창가에 머리를 기대는 하루.

 


그래. 내가 지금 요놈한테 신경쓸때가 아니야.


중요한건 하루가 나 때문에...

 

 

 

"야.강하루.괜찮냐?어디 다친거 아냐..?"

 

"냐..빼."

 

"......."

 

"그 말투 쓰지마."

 

 


후..-_-..


그래..좋다..이번엔 내가 잘못한거니까..

 

 


"..그래..너..괜.찮.니.-_-?"

 

 

심드렁한 나의 말에. 아무말없이 드레스 입은 내 몸을 내려다 보는 하루.

 

 

"하하..그.러니까..이옷이..말야.."

 

 


따악!!!

 

 

"아!!!!!-0-"

 

"왜사냐!!!왜살아!!!!"

 

 

이것이 근데 진짜!!


반대편으로 잽싸게 고개를 돌리면.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인채로 도끼눈을 하고 있는 은찬놈.

 

 


"왜때려!!왜때려!!니가 뭔데 내 머리를 때려!!-0-"

 

"넌 좀 더 맞아야돼!!"

 

 


씩씩 숨을 몰아쉬며. 정장 마이를 홱 벗어 던지는 은찬놈.

 

 


"넌 왜!!!대체 왜 따라온거냐!?!인젠 나 니 얼굴 보기두 싫어!!-0-!!"

 

"니가 그렇게 판을 벌려 놨는데 어떻게 혼자 남아 있냐!!!!!"

 

 

 


언제나 그랬듯. 그놈과 내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언성을 높히자.


신기사 아저씨가 참다참다 못해 빠앙.클락션을 울리시고.


그랬기에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아야만 했다.

 

 


"...제길놈..."

 

"그 빵꾸난거나 어떻게 해라. 아깐 진짜 내가 다 쪽팔리드라!!"

 

"어이구. 그 귀한 쪽을 팔아 주셨다니 참으로 황!!송하다!!"

 


"진짜 고만들좀 해!!이 아저씨 중간에 차 문 열구 내려버리는 수가 있다..!!-0-"

 

 

 

진심으로 화가난듯한 신기사 아저씨의 목소리에.


나와 놈은 아예 서로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홱 돌려버렸고.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은듯. 창문밖을 뚫어져라 보고있는 하루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내는 신기사 아저씨.

 

 


"어디로 갈까 하루야..?"

 

"..........."

 

"어디...잠깐 외곽 한바퀴 돌다 다시 집으로 와..?"

 

"남양주."

 

"엉??"

 

"남양주 가요."

 

"-0-..아니..갑자기 남양주 별장이라니.은찬이 생일파티는 어쩌고."

 

"남양주."

 

....

 

 

남양주 별장이라니...?

 

 


할말을 잃은 나와 은찬이는. 점점 하얗게 바래가는 하루의 옆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그 시선을 잠시후 의식한 하루는.


귀찮은듯한. 혹은 버거운듯한 표정으로.


두 눈을 조용히 감으며. 우리의 불타는 눈길을 차단시켜 버리고 말았다.

 

 

 

...이런..젠장..


그럼 이 촉새 나다리 같은 놈하구 가는 내내 지지고 볶아야 되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재빨리 잠자는척 이나 하고자 눈을 질끈 감아 버렸지만.


그 눈치 없는 은찬놈은 차가 달리는 내내 나의 용솟음 치는 분노를 쿡쿡 자극해대니.

 

 

 

 

"근데 그 희쭈꾸리한 드레스는 뭐냐?니가 커텐으루 기워서 만든거냐.?"

 


"상관말고.잠이나 쳐 자셔.-_-^"

 


"너 솔직히 말해."

 


"...뭐...."

 


"장래희망 미친년이지..?"

 


"........안내리냐..너...?"

 


"이거 니 차 아니다.그건 알지.?"

 


"나 너 진짜 싫다.그것도 알지?"

 


"너 지금 개 추하다. 당연히 알지?"

 


"너 할아버지 아들만 아녔음 나한테 죽었다. 무조건 알."

 

 

 


"고만 못해 이 철딱써니 없는 것들아!!=0=!!"

 

 

...-_-...

 

 


순간 핸들을 확 비틀어버리는 신기사 아저씨.정말로 우리를 차 밖으로


휙 집어 던질것 같은 표정이였기에.


나와 은찬놈은 약속이나 한것처럼 입을 꾸욱 다물어 버렸고...

 

 

 


그러는 사이.


우리가 탄 차는 신기사 아저씨 특유의 방식대로 거칠고 빠르게 달려서.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해 버리고 말았다.

 

 

 


"일어나.설아..일어나라..."


"..음..."

 

 

 

 

나만 정신없이 곯아 떨어져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우와.이거 진짜 니네꺼냐?!죽인다 야!!"

 

"조심해라.계단에 얼음 얼었다."

 

"우와와!!!!!!!!!!"

 

 


은찬놈의 띠꺼운 목소리를 뒤로하고.


목조로 된 별장의 계단을 우당탕 맨발로 오르는 길.


그리곤 본의 아니게 은찬놈에게 또 즐거운 구경꺼리를 선보이고 말았으니.

 

 

"우와악!!!!!-0-!!"

 

 

이름하야 계단 두개 남겨놓고 벌러덩 넘어지는 짓.

 

 

"......저러고 싶냐..진짜..."

 

 

...-_-...

 

 


죽고 싶은 마음에. 아무렇지 않은듯 벌떡 일어나서


씩씩히 계단을 오르고. 그다음으론 번호 키로 되어있는 문앞에 오도커니 서서.


계단 아래에 있는 은찬놈과 하루.


그리고 신기사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다.


여기는 남양주 할아버지네 별장.


눈덮힌 산으로 둘러쌓인 이곳은 전형적인 휴양지인듯.


십미터 간격마다 예쁜 이층 별장이나 일층 별장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었고.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탓도 있겠지만.


어쨋든 우리들을 제외한 사람은 콧구멍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설명을 멈추고 계단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아예 나가 죽으라는 표정으로 한심스레 나를 보는 은찬놈.-_-.


그리고 더욱더 괴롭게시리. 포커 페이스로 나를 보는 하루놈.-_-.

 

 

마지막으로 혀를 끌끌끌 차다가.


하루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여는 신기사 아저씨.

 

 

 


"회장님이. 늦어도 내일 오후 5시쯤이면 사모님 나가실꺼라고..


6시쯤에 데리러 오라는데..괜찮겠어..?"

 

 


"아빠한테.말했어요.?"

 

 

"아 그럼 어쩌냐.니들은 뛰쳐나왔지.나는 차 몰고 없어졌지.

이미 상황을 다 꿰뚫고 계시는걸..ㅠ_ㅠ.."

 

 

"그렇게 해요.그럼."

 


"아직 사모님은 눈치 못채신 모양이야.그러니까 안심해도 될것 같다."

 

"네."

 

 

"먹을거 좀 안사놔다도 될까??"

 


"안에 컵라면이랑 물 다 있어요."

 


"그래.그럼.내일 오후에 데리러 오마."

 


"....."

 

 

말없는 하루에게 머쓱히 어깨를 치켜 올리고는.


다음으로 한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시는 신기사 아저씨.

 

 


그럴만도 하시겠지유.


맨발에 누더기 드레스에.


하지만 그런 시선. 은찬놈꺼 하나로 족합니다 아저씨.-_-.

 

 

"내일 보자 설아. 가능하다면 올때 멀쩡한 옷을 하나 갖고 오도록 하마.-_-"

 


"...네...-_-..."

 


"은찬이랑 그만좀 싸우고.."

 

"....-_-..."

 

 

대답없는 내 얼굴을 불안스레 한번 보시다가.


은찬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종종 걸음으로 차를 향해 멀어지시는 아저씨.

 

 

그러자 우려했던 데로.


마치 나 보란는듯이 또박또박. 은찬놈이 얼어붙은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고.


하루는..


이곳에 온뒤부터 부쩍 표정이 밝아진것 같은 하루는.


별장 주변을 한바퀴 휘 둘러보더니. 은찬놈을 따라 올라와 내 바로 등뒤에 섰다.

 

 

 

"넘어진데 괜찮아..?"

 

 

...-_-...


까진 내 무릎이 무색하도록. 다정하게 (걔가 언제? -_-) 물어오는 하루.

 

 


"어...굴러떨어지지 않아서.타격은 크지 않아."

 

"얼음 있다고 조심하라니까.병신."

 

"넌.좀.갈래.-_-?"

 


"여기가!!!!!!"

 

"그래그래.여기 니네 별장.됐지??"

 

"...-_-..."

 

 

 

할말을 잃은듯. 윗도리를 내게 덮어주진 못할망정.


오들오들 떨며 자신의 몸에 더욱 꽈악 여미는 강은찬놈.


그 사이 하루는. 핸드폰으로 현관문 번호키를 밝게 비춘뒤..


비밀번호 네자리를 꾹꾹 눌러대고.

 

 

 


"어..번호 바꿨냐..?아빠 생일이였잖아."

 

"..바꿨어..내가.."

 

 

 

0309.

 

 

0309에 어떤 의미가 있는건지..


내가 분명 포착한건. 서서히 굳어지는 은찬놈의 얼굴 이였고.

 

 

이윽고 그놈이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하루. 휭하니 문을 열곤 별장안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은찬놈이 매서운 바람에 계단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지길 바라며.


나 역시 별장안으로 재빨리 뛰어 들어 섰는데..

 

 


"....와........여기...진짜.....끝내준다...."

 

 

 


\별장안.

 

 


온통 목조로 만들어진 별장안엔.


불이 꺼진 거대한 벽난로가 있었고. 그 앞엔 내 몸뚱이만한 곰돌이며 토끼 인형이


20개도 넘게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이 인형들 다 뭐야.!?"

 

 


말을 마치며 뒤를 홱 돌아보면.


창문의 커텐을 치던 하루가.


그리고 벽난로에 불을 밝히던 은찬이가.


아무 대답없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_-..달라고 안해.이놈들아.나도 인형 싫어한다구."

 

"그래.잘생각했다.니가 인형 갖고 다니면 변태 소리 듣는다"

 

 

 

-_-..


니네 별장이니까 참는다 은찬아..

 

 

 

나를 별로 환영하는것 같지 않은 그 인형들에게서.


간신히 시선을 거두고 유난히 추운 이곳의 날씨에 손을 싹싹 비비며.


벽난로앞 쿠션의자에 조심스레 앉아 보았다.

 

 


"니넨 참 좋겠다.부모 잘만난덕에.아주 별 호강을 다 누리는구나."

 

"너도 가족이잖아."

 

"..뭐..?"

 

"아!!못들었음 마.!!"

 

 

 

자식이..

 

 

가만 보면 따뜻한데가 있다니까...


볼멘소리로 외치던 은찬놈이 난로에 불을 밝히자..


낯선 모습으로.멍하니 별장안의 액자며 장식장을 바라보던 하루가..


천천히 다가와 놀랍게도 은찬놈 옆에 털퍽 주저 앉는다.

 

 

 

".....나도..나도..."

 

 


그리고. 눈치없는 내가 그들 사이에 궁둥이를 들이밀며 앉아 버리니.

 

 

처음으로 세사람의 어깨가 맞닿으며.


어쩐지 행복한 기분이 된다.


따뜻한 공기를 맛본다.

 

 


그렇게 마치 약속이나 한것처럼.


우리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기분좋게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았고.


꾹 다문 입의 하루랑 은찬이의 얼굴을 보면서 새삼스레 정말 '진짜 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하며 냉랭한 공기가 맴돌아도.


속은 정말 어쩔수 없는 피를 나눈 형제.


한때는 사진속처럼 다정했던 하나뿐인 형제..


나는 열번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는 가질수 없는 형제..

 

 

 

"....기분..괜찮네...."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건지.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눈을 반짝이면서.


은찬놈이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고..


여기에 탄력 받은 나는.


하루와 은찬이를 가로막고 있는 싸늘한 얼음을 조금씩 녹여 나가자는 기특한 생각에..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 여지껏 젤~ 놀이 하자."

 


"그건 뭐냐..?"

 


"여지껏 젤 기뻤을때. 여지껏 젤 화났을때. 뭐 이런식으로 말하는거.."

 

"니가 지었지?"

 

 


제발. 산통좀 깨지마라.


이 표주박 같은 자식아..

 

 


나는 잔뜩 분노 서린 눈으로 왼쪽에 앉은 은찬놈을 바라보았고..


그놈은 뚱한 표정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다시 오른쪽에 앉은 하루를 바라보면..


.......이름조차 부르기 무색하게.......


어디론가 자신의 시선을 던져버리고 만 하루.

 

 

그곳이 어디인진 모르지만. 대상이 누구인진 모르지만.


어쨋든. 저 눈길을 받는 주인공은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젤 기뻤을때.난 지금이야.지금."

 

....

 


불쑥 튀어나온 나의 말에. 동시에 나를 물끄러미 보는 하루와 은찬.

 

 


...-_-..뭐...

 

얼굴 반반한 놈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건 좋지만.


그런 눈으로는 안봐줘도 되는데..-_-..

 

 

머쓱해져버린 나는.


빵꾸난 드레스를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만지작 거렸고..


그런 내가 가여웠던지. 벽난로에 나무 하나를 더 던져넣으며. 이번엔 은찬놈이 입을 열었다.

 

 

 

 

"4년전.그날이 시작되기 전까지."

 


"답이 너무 애매하다."

 


"그럼 4년전.그애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애가 누군데..?"

 

 

"난 4년전 그날부터."

 

 

이것들이 지금 나를 갖고 노는거여 뭐여..-_-

 

 

지금 막 입을 연 하루놈에게 다시 시선을 옮기면. 나를 한번 보고.


다시 은찬놈을 한번 보다가. 주특기인 말 되풀이기를 또 시작하는 하루.

 

 

 

"4년전.그애가 나타난 그날부터.사라지기 전까지."

 


"..-_-..그애가 누군지 물어봐두 니들 둘다 안말해줄꺼지..?"

 


"...."

 

 

 

이 순간만큼은.


뛰어난 형제애를 과시라도 하듯. 두놈 다 입을 꽉 다물어 버렸고.


덕분에 난 술취한 대머리 앵무새처럼 또다시 주절주절 다른 얘기를 꺼내야 했다.

 

 

 

 

"제일. 누군가가 미웠을때는..음..난..."


"4년전 그애."

 

 

 

이자식아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데..-0-..


그랬다. 내가 그 강미라년 얘기를 스리슬쩍 꺼내며 그때의 누명을 살며시 벗으려 할때.


은찬놈은. 단호히 내 말을 끊으며 그 한마디를 던졌고..

 

 

"걔가 대체 누군데 그래..?"


"...넌 몰라.."

 

 


후..참자..참아..-_-..

 

 


".....그래..그럼 하루..넌...?"

 

 

간신히 하루쪽으로 고개를 돌려.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놈.아무 대답없이 활활 타오르는 난롯불을 죽이기라도 할듯 노려본다.

 

..대체 얼마나 미워했던 사람이길래..

 

그 질문 하나에 저렇게 민감해 하며..-0-..

 

 

이 놀이를 시작한것 자체가 커다란 실수임을 깨닫지 못한 우둔한 나는.

 

거기서 당장 입을 멈춰야 하는 차디찬 분위기를 자각하지 못한채.

 

다음 질문을 떠올리기 위해 몇년전부터 녹슬어 있던 뇌세포를 마구 흔들어댔다.

 

 

 

음..음..뭐가 좋을까..

 

뭐가 좋을까..하루랑 은찬이의 사이를 좁혀줄만한 것이..

 

가장 형이 사랑스러웠을때..-_-?

 

 

에이 이건 너무 티난다..

 

 

가장 동생이 재수 없었을때..-_-..?


아냐.


은찬놈 나를 또 미친년 취급하겠지..

 

 


그렇게 내 딴엔 중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때..


옆에 있는 파란 곰돌이 인형을 집어서. 품에 안으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정확히 말하면. 내게 말하는것이 아니라. 마치 그 곰돌이에게 묻는듯한 목소리로..

 


"가장...슬펐을때는...."

 

 

나오지 않기 바란 그 질문을 기어코 던지고 마는 하루.

 

 


..순간..


벽난로로 인해 조금씩 냉기가 풀려가던 별장안엔


마치 존재없는 유령이 들어오기나 한것처럼.


숨소리 하나없는 강렬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 생각없는듯한 은찬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 곰돌이의 팔을 가만히 움직이는 하루의 손을 보면서..


솔직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 솔직한 답을 꺼냈다.

 

 

 

 

"엄마.아빠.유민이.차 사고로 죽었을때...."

 

".............."

 


"하루야!!?!!!!!!!!"

 

 

 


그때 갑작스럽게 벌어난 일.

 

 

 

내 옆에 꼼짝없이 앉아있던 하루가.


품에 안고 있던 곰돌이 인형을 타오르는 벽난로 속으로 던져버린 일.

하루야...

 

 


할말을 잃은 나는. 그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투명한 공포에 짓눌려서.


멍하니 벽난로를 바라보았고..


역시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던 은찬놈이. 턱을 바친채 그 광경을 보다가..

 

 

 

"빌어먹을.....차사고..."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목소리로 이 한마디를 내뱉았다.

 

 

 

 

"강하루..너 왜그래..."


"...미안...."


".....무슨일 있는거야...?어디 안좋아..?"


"..미안..........미안.........."

 

 


이제야 문득 정신이 든듯. 이미 반쯤 타버린 곰돌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내 어깨에 힘없이 머리를 기대는 하루.

 

 


또다. 또 이런 숨소리다.


...하루거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든걸 체념한듯한.


죽음을 눈 앞에 둔듯한. 듣기도 힘들만큼 가빠 오는 숨소리.

 


...

.....

 

 

내가 제안한 놀이로 인해. 이런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는 막심한 죄책감이 들면서.


나는 이 소중하고 귀한밤 을 또 불행의 탑속에 쌓아 올릴수 없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애써 지은 밝은 표정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여기!!눈 많이 쌓였던데!!우리 눈 보러 가자!!응?!"

 

"....."

 

 


말이 없는 무심한 두 남자.

 

 

 

"서울엔 눈 구경도 힘들잖어!!여기 그리구 별두 잘 보일꺼야!!우리 나가자!!응?!"

 

"얼어 뒤질일 있냐..."

 

"잠깐만 있다가 오자..응?그럼 되잖아."

 

"..............."

 

"잠깐만 있다가 오자아!!!"

 

".............."

 

 

쳇. 니놈들이 그런다면야.


내가 몸소 실행으로 옮겨주지.

 

 

나는 맨발임을 감안하여. 방문 앞에 있는 슬리퍼를 신고서 씩씩하게 현관문을 향해 걸어나갔고.


그 사이 그 두 남자는.


멋드러진 정장 차림을 하고서.


구멍난 내 드레스를 위 아래로 흝어 보았다.

 

 

..젠장..=_=...


등 엄청 시렵게 생겼구먼..

 

 


놈들의 시선을 철저히 무시하며. 현관문을 벌컥 열어제꼈을때.


아니나 다를까.


따뜻한데 있다가 나온 덕분인지.


한층 차갑게 언듯한 바람이 내 등을 사정없이 두드려 오고.

 

 


그 모든걸 꿋꿋히 견뎌내고 이번엔 주의를 기울 이면서.


잔뜩 얼어붙은 계단을 내리자니..

 

 

 

..팔랑..


..............

 

까만 정장 자켓 하나가 내 등을 덮으며. 심술맞은 바람을 순식간에 막아 버린다.

 

 

 

 

"역시 강하루 넌."

 

 

 


활짝 미소를 지으며. 지금 막 문을 열고 나온 하루를 바라보자.


또 한장의 자켓이 내 등위로 살포시 내려 앉고.


미심쩍은 눈으로 쏘아보면.


어색한 헛기침을 두어번 하는 은찬놈.

 

 

 

 


"야.니꺼 됐다.-_-.가져가라.응?"

 

 

"줘도 지랄이야 이거는.."

 

"가져가!!난 하루꺼 하나로 족해!!-0-"

 


"나도 실수로 떨어트린거야!!!!!!!-0-젠장.벼룩 옮을뻔 했네!!"

 

 

 

버럭!!

 


계단에서 발을 헛디딜만큼 큰 소리를 내지르며. 냉큼 자켓을 챙겨입는 은찬놈.

 

 

흥.


니가 멋있는척 하는건 죽어도 못본다 이거다.


아까 아침에 지껄인 말을 생각하셔야지...-_-^

 

 

 

끝으로 은찬놈을 한번 더 쏘아보며.


나는 아주 침착하게. 엉금엉금 기다시피 계단을 내렸고.


결코 기분 나쁘지 않은.


멋진 수트 차림의 두남자의 호위를 받으며 ( 쫄랑쫄랑 뒤꽁무니를 따르며-_-)


별장과 그리 멀지 않은곳에 위치한


작은 언덕을 향해 종종 걸음을 옮겼다.

 

 


분명. 마을 주민이나. 놀러온 누군가가 봤다면.


정신 병자들인줄 알고.


혹은 유령인줄 알고.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꽁무니를 내뺐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눈이 내리기 시작한 그 늦은 밤에.


하얀 웨딩 드레스 차림의 여자와. 까만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차분한 달빛을 온몸에 반사 시키며 언덕을 오르고 있다는것.


보통 사람 눈에는 도저히 납득할수 없는 장면일 테니까..

 

 

 

\ 언덕 위.

 

 

 

 

벽난로 앞이나 여기나 별로 다를것은 없었도다..-_-


나는 대체 뭣때문에..


슬리퍼를 뚫고 발을 간지럽히는 눈을 지져밟으며 이곳에 오길 고집했단 말인가..-_-..

 

 

 

눈이 잔뜩 쌓여 있는 덕분에.


우린 쓰러진 나무 등걸에 위태위태 걸터 앉은채 그 걸러지지 않는 생바람을 당당하게


두드려 맞고..

 

 

"춥잖아!!!!!-0-!!!!!"

 

 

 


끝까지 따라나온 은찬놈의 구박을 막아내며..


난 말없이 하늘위에 깨알같이 박힌 별들을 바라보았다.

 

 

 

 

"너무 이쁘다..서울 하늘엔 서너개 보일까 말깐데..


여긴 꼭.사람 코에 있는 피지처럼 별들이 많다.."

 

 


"꼭..거기다가 비유를 해야 되냐....."

 

 

"...-_-....미안하다..비유력이 딸려서.."

 

 

"근데 왠 눈이 이렇게 많이 왔냐 진짜."

 

 


투덜투덜 대며. 발밑의 눈을 꾹꾹 지저밟는 은찬놈.

 

 

 

..진짜다..

 

 

진짜 별도 참 많다..


저 별중에..엄마 아빠도 있는건가..?


그땐 너무 어려서 별이 뭔지도 몰랐을 유민이도......?

 

 

 

"나 지금 행복하다 무지."

 

"...뭐가..?"

 

"그냥.이러고 니들이랑 있는거..너무너무 좋다.."

 

 

진지한 분위기를 눈치챈건지. 이번엔 태클을 걸지 않고 입을 꾹 다무는 은찬놈.

 

그래서 난 용기를 얻어.

 

양 옆에 나란히 앉은 하루와 은찬이의 얼어붙은 손을 꽈악 움켜 잡았다.

 

 

..그리고..한번 더 용기를 내어..

 

마주 잡은 그 네개의 손을..내 무릎위에 살며시 겹쳐 올렸다..

 

 

 


".........."

 


뭐하는 짓이냐는듯.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두 남자.

 

 

 


"오늘만.소원이다.오늘만 나 하는데루 해주라."

 

 

....두 남자의 손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 할때.

 

나의 열오른 뜨듯한 두 손은 재빨리 그 솔직하지 못한 손들을 다시 움켜 잡고..

 

 

 


"나 드레스 입은김에..한번만 공주 기분좀 내면 안되냐..?"

 

"빵꾸난 드레스 입은 공주가 어딨냐."

 

"그래서 하루가 가려줬잖아...."

 

 

 

할말을 잃은듯. 이마를 긁적이는 은찬놈.

 

 


나는 온통 하얗게 뒤덮인 언덕을 바라보며.


그리고 손안에서 점점 따스해지는 그 두놈의 작은 체온을 느끼며.


천하장사도 절대 막을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 미소를 본 하루와 은찬인..


피식..


사진을 찍으면 분명 쌍둥이처럼 보일 그 미소를 지으며. 잠자코 내 무릎위에 손을 떨군다.

 

 

 

"눈 진짜 예쁘다..그치..?"

 

"..어.."

 

 

 

이번엔 오랜만에 듣는 하루의 대답.

 


"내 이름도 눈인데.."

 

"설..?"

 


"응.한설.나 태어날때 눈이 내렸대.


그래서 내 이름 설이가 됐대.


근데 왠걸.자라면 자랄수록 피부가 새까매 진거야. 울엄마도 아빠도 되게 하얀데 말야.


뭐.할머니가 까맸다던가.?그런가봐..."

 

 

"그랬나보다.."

 

"근데 하루야."

 


"응..?"

 

 

"너 내 이름 한번도 불러준적 없다..?그거 알아...?"

 


"....그런가..."

 

"그래.은찬이는 비록 듣기 싫은 고함이나마.-_-.한설!!한설!!내 이름 불렀는데.


넌 그런적 한번도 없단 말이지."

 

 

"..........."

 

 


....=_=...아니 뭐..딱히 이제와서 불러달라는건 아니지만..


그렇게 또 썰렁한 표정 지을것은 없지 않니...?

 

 


나는 왠지 뻘쭘해져 오는 기분에..


이 행복해 터질것 같은 감정을 고스란히 안고 가기 위해.


자리에서 또 한번 벌떡 일어나..


등 뒤에 있던 말라붙은 나무들 사이로 우렁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야!!!너 배고프냐!?!!!?!"

 

 


나무 밑둥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불안한 표정을 짓는 은찬놈.


그리고 놈의 다음말이 떨어지기 전에. 나는 재빨리 눈속에 파묻인 작은 나무 판떼기를


손으로 집어 들며 이렇게 외쳤다.

 

 

 


"썰매 타자!!!!!!!!!!"

 

...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_-...그게 뭐냐..?"

 

 

"...썰매 모르냐 너..?"

 


"......들어 본것 같은데..."

 

 

"으이구 불쌍한 놈들.니들이 이런것두 모르구 살았으니까 그렇게 각박한거야!!비켜봐!!"

 

 

 


탁탁.

 

두 손을 털며. 은찬이랑 하루 앞을 뒤뚱뒤뚱 지나서..

 

언덕 경사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너 설마.그거 타구 내려가려는거 아니지..-_-..?"


"왜 아니야!!!!!맞쥐이!!!!!!-0-!!!!!"


"..-0-.."

 

 

 

경악하는 은찬놈을 남겨둔채.


판떼기를 타고 신나게 언덕을 내리는 길.

 

 

 


"야호오!!!!!야!!니들두 빨랑 아무거나 주워서 따라와!!!"

 

"그게 썰매냐!!!!!!!!"

 

"그래!!이게 썰매다!!!!"

 

 

 

이게 바로 윤영이랑 내가 제일 좋아하던 썰매다!!!


토요일날마다 만나면. 항상 동네 작은 언덕에서 쌀포대 타고 신나게 달리던 그 썰매다.!!

 

 


나는 입을 함지박 만하게 벌린채 마구 고함을 질러댔고.


이젠 너무 커버린 탓에..-_-..생각처럼 안나가주는 판떼기를 원망하며.


썩 보기 좋지 않은 모습으로 언덕을 미끄러져 내렸다.

 

 

 

"야호오!!!!!!!!!!!!!-0-!!!야호오!!!!!!!!!"

 

 

아주 힘겹게.


발로 벅벅 밀어가며 강제적으로 도착한 언덕 아래.

 

 

 

"야!니들두 내려와봐!!진짜 재밌다!!!!죽여!!!"

 

 


두 손을 흔들며 팔딱팔딱 뛰자니.


팔짱을 낀채 가만히 내려만 보고 있던 은찬놈이.


어디서 판떼기 하나를 구해가지고와 언덕에 털썩 주저 앉는 모습이 포착되고...

 

 


"옳지!!야!!하루야!!너두 타봐!!!!니가 하는 그 눈아픈 게임보다 억배는 더 재밌다!!"

 

 


이번엔 하루를 망가 트리기 위해.


하루쪽으로 몸의 방향을 틀면.


뭐가 그리 우스운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활짝 웃어 보이는 하루놈.


두 눈을 작은 반달로 만들며. 너무 기분좋게 웃고 있는 하루놈.

 


그러나 분명.


2.0 의 정확한 내 시력엔. 그 눈에 서려있는 눈물이 포착 되었고..

 


지금 당장 올라가 내 꽁꽁 언 손등으로 훔치면.

 


의심할수도 발뺌할수도 없이 없이 명백히 묻어나올 그 눈물을 보면서.


한손에 든 판떼기를 더욱 꽉 움켜쥐며. 까닭도 알수 없는 그 슬픔을 위로했다.

 

 

 

"이새끼 왜 절루 가냐!!!!젠장!!!이거좀 어떻게 해봐봐!!!!!!!!=0=!!!!"

 

 

 

 

..아.아니..

 

내가 탔을땐 꿈쩍도 않던 저 판떼기가. 왜 강은찬놈이 올라타니 저렇게 미친듯이


도랑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거냐..

 


-0-..

 

 


나는 하루에게서 거둔 놀란 토끼눈으로..


도랑을 향해 주접스럽게 질주하고 있는 은찬놈을 바라보았고.


이내 그 뻣뻣히 얼은 도랑물을 깨며 온몸에 물을 뒤집어 쓰는 은찬일 바라보며.


배를 움켜 잡고 마음껏 비웃어 줄수 있었다.

 

 

 


"푸하하하하-0-꼴 좋~~다!!물방개가 따루 없구나!!푸하하하!!-0-!!!"

 

"젠장!!!!!니가 하잘 때부터 알아봤다!!!!!!!!!"

 

"푸하하하하하!!!ㅠ0ㅠ!!"

 

 

 

구멍난 웨딩드레스 차림에 최고로 행복하게 웃고 있는 한설.

 


생일 파티 하던날 처음으로 썰매타고 도랑에 쳐박힌 강은찬.

 


마지막으로.

 

 

이젠 너무 좋아져 버려서. 이젠 너무 간절해져 버려서.


지금 이순간.


가슴아파 차마 똑바로 볼수도 없게 되버린 별장의 작은 주인 강하루.

 

 

 

 

그렇게


할아버지 집에 온뒤 맞은 최고의 하얀 밤은.


하루와 은찬이의 웃는 얼굴. 그리고 슬픈 얼굴과 함께.


드레스의 구멍만큼 숭숭 구멍나 있던 내 가슴을.


둥글게 둥글게 감싸 주었다.

쾅!!쾅!!쾅!!

 

 

 

....


......

 

 

따뜻한 햇빛이 창밖으로 인사하며 내 달콤한 잠을 깨우고.


이내 정체를 알수 없는 둔탁한 소리가 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어...."

 


눈을 거칠게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히 새벽녂에 깔깔거리며 집에 들어온것 까진 생각이 나는데..

 

...

 

 

문득 고개를 숙여보면.


내 옆에 곤히 잠든 하루가 있고.

 

 

요놈의 한쪽 팔은 벽난로쪽을 향해 뻗어 있는 데다가..


그 팔에 기다란 머리카락이 하나 놓여 있는 걸로 봐서..


내 몸을 은찬놈의 자켓이 덮고 있던 걸로 봐서...

 

 

-0- 이..!!이놈이!!

 


슬리퍼를 신는것도 잊고. 다급히 열어제낀 현관문.

 

 

 

아니나 다를까.


삽 끝으로 계단의 얼음을 마구 부수고 있던 강은찬놈이.


힐끗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고.

 

 

 


"야!!내가 왜 쟤한테 안겨 자구 있냐!?니 짓이지!니 짓이지!!이놈아!!"

 

 

"내짓..?"

 

 

"그래!!!!!!니짓!!!!!!!!"

 

 

"차근차근 설명해주길 원하냐?"

 

 

"당장 실토해!!이 자식아!!-0-"

 

 

 

그러자.


하고 있던 삽질을 멈추고. 억지로 미소를 짓더니. 허리를 꼿꼿이 펴서 내 쪽으로


얼굴을 향하는 강은찬.

 

 

 


"어제 분명히. 너랑 나랑 형이랑. 난로 불앞에서 일미터 간격을 유지하고 잤다..

알지..?"

 

 

"그래!!안다!!"

 

 

"그러니까 니가 맨 끝에서. 내가 가운데서. 강하루가 문쪽에서 잤다.이것도 알지.?"

 

 


"안대도!!-0-!!!"

 

 


"그럼 새벽녂에.니가 내 몸위로 데굴데굴 굴러서 강하루 한테 철썩 안긴거.

이것도 알겠네.?"

 


"-0-...내가..."

 


"니가."

 

 

"그랬다고..?"

 


"그랬다."

 

 


"....-0-..우헤헤헤헤"

 

 

 

멋쩍게 웃는 내 얼굴을 한심스레 보곤.


쌩뚱맞은 삽질에 더욱더 힘을 주는 강은찬.

 

 


푹푹푹!!!!


-_-

 

- _-..........-_ -..........

 

 

 

"말할꺼냐 하루한테..?"

 


"병신...."

 


"말 안할꺼지 하루한테..?"

 


"너 지금 삽질 하는데 무진장 방해되거든요? 입을 닫든지 다시 안으루 사라지든지 해라."

 


"너.그거 말하면.도랑에 빠진거 예란이한테 말한다..-_-.."

 


"삽질 하는데!!!!방해된다!!!!!!!!"

 

 

".....화났구나..-0-..."

 


"삽질하는데!!!!!!!"

 

 

쾅!!!!!!


황급히 문을 닫고. 열심히 삽질 하는 놈을 내버려둔채 다시 별장 안으로.


-_-

 

 

그리곤 뚜벅뚜벅. 벽난로를 향해 수줍게 다가서자니..

 

 

 

"....아..뭐가..이렇게 시끄러워..."

 

 

바닥에 누운채. 눈을 찌푸린 하루가 나의 시선을 자극했다.

 

흡...

 

 


".....왜...?

 

 

재빨리 거두는 내 시선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듯.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는 하루.

 

 


"좋은아침!!-0-아니지.좋은 낮이구나.좋은낮!!"

 

"....은찬이는...?"

 

 


첨으로 은찬이 이름에서 성을 떼고 말하는 하루..


나는 어안이 벙벙해 잠시 놈을 보다가..

 

 

"은찬이는..?"

 


다시 한번 되돌아온 그 물음에..

 


"삽질해.."

 


멍한 표정으로.


어쩌면 어젯밤부터 시작 된건지도 모를 작은 변화를 직감했다.

 

 

 

 


\ 별장앞.

 

 

 

"너 근데 아까 왜 어울리지두 않는 짓을 한거냐..-_-..?

 

 

 

벽난로 불을 끄고. 문단속을 단단히 한뒤.


별장앞에 서서 신기사 아저씨를 기다리는데..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어제 도랑에 젖은탓에-_-) 바지를 입고 덜덜 떠는 은찬놈이 눈에 들어오


고.

 

 


"딩굴딩굴.-_-"

 

 


놈은 내 쪽을 보지도 않은채 심술궂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 저 빌어먹을 주둥이가 저럴줄 알았지.

 

 

 

"강은찬.도랑에 빠지다.."

 

"한설.간밤에 변태짓 하다.."

 

"도랑에 푹!!"

 

"내 몸 위를 뒹굴뒹굴!!"

 

"...-_-..알았어..하지말자..휴전..휴전.."

 

"뒹굴뒹굴.아~!!남자의 품을 향해 뒹굴뒹굴!!"

 

 

저 자식이 정말 !!ㅠ0ㅠ


하루가 눈치를 다 채기전에. 난 놈의 입을 막기 위해 성큼성큼 은찬일 향해 다가섰고.

 

 

 

"어이구!!강씨 형제들 오랜만에 왔네!!"

 


그때..


낯선 목소리와 함께. 정정해보이시는 할머니 한분이 지푸라기 한푸대를 갖고 지나치다가.


하루와 은찬이 앞에서 걸음을 멈추신다.

 


말이 없는 하루와 반대로.


"어!!할머니!!"


반가운듯 인사를 건네는 은찬이.

 

 


"아이구 왜 이리 오랜만이야!!"


"아.할머니 잘 지내셨어요!!그건 뭐에요?반찬거리..?"

 

 

..-_-..


세상 물정 모르는 놈.지푸라기보고 반찬 거리라니..

 

 


"아냐아냐.얼음 얼까봐 뿌리려고.에게!?이 이쁜 처녀두 왔네!?"

 

"..-_-..네?저요..?"

 

 


되묻는 나의 손을 덥썩 붙잡으며. 주름을 늘어뜨리며 활짝 웃으시는 할머니.

 

 

"일년만이네.그때 준 사탕 아직두 집에 있는데"

 

"...네.....?"

 

"그러니까..이름이..뭐드라..?"

 

"한설인데..저 아세요..?"

 

"한설인..?"

 


"아니요.한설.한설이요"

 


"이름이.외자가 아니였는데..이상허네.."

 


"......네...?"

 

 


노망이 나신 분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고

 


"박......."

 

 


빵빵!!빵빵빵빵!!

 

 

 

알수 없는 한마디를. 할머니가 천천히 읇조릴때.

 

마악 눈앞에 나타난 신기사 아저씨의 차가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고.

 

그런 할머니께 은찬이가 꾸벅 인사를 하고 있는데.

 

하루놈. 빠른 걸음으로 차 안에 쑥 들어가 버린다.

 

 

....버릇 없기도 하지...

 

 

 

"아이구.벌써 가는거여.?"

 

"네.할머니 다음에 또 놀러올게요.!!"

 

 


깍듯이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곤. 나를 향해 까딱까딱 손짓을 해보이며.


하루가 들어간 차 안으로 사라져 버리는 은찬이.

 

 

아..그럼..나도..

 

 


"할머니.저도 갈게요.안녕히 가세요.."

 

"응.응.잘가 윤영이"

 

"....네....?"

 

"잘가...^ㅇ^..."

 

"아뇨.그 다음에요.뭐라구요.할머니.."

 


...

 

....빵빵..빵빵빵..

 

 

멈칫한 내 손을 한번 꼭 붙들더니. 할머니는 지푸라기를 거리에 뿌리며 홀연히 자취를


감추셨고..

 

...윤영..이...

 


그 세글자에. 꽁꽁 얼어붙은 내가 꼼짝없이 서 있을때.


신기사 아저씨는 특유의 그 급한 성격대로..


재빨리 나를 차에 태워 버리셨다.

 

 

 


\ 차안

 

 

 

 

박윤영..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왜...박윤영...


....박윤영...박윤영...

 

 

 

"그래.좀 재밌었냐?"

 

 


은찬이랑 하루가 잠든 사이.(혹은 잠든 척 하는 사이)


미동없이 굳어버린 내게 신기사 아저씨가 다정스레 물어오고..


난 그제야 정신을 차려. 멍청히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굳어있어..?은찬이가 또 괴롭힌거야..?"

 

"아저씨.."

 

"..왜..?"

 

 

"...저랑..하..

아니요.아니에요."

 


"아니 왜 말을 하다 말어잉!!궁금하단 말야!!-0-"

 


".....아니에요..."

 

 

"말해줘.말해달란 말이야!!-0-"

 


"....잘못 나온거에요.아녜요."

 

"말해줘!!말해줘잉!!!"

 


"아니라니까요 정말!!!"

 

"........"

 


..-_-..

 

또 삐지신건가..

 

나이에 맞지 않는 그 애교에. 내가 조금 크다 싶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그때부터 말 한마디 않고 또 그 특유의 거친 드라이브를 선보이는 아저씨.

 

 

 

뒤에서 어깨를 누르고. 노래를 부르고.


어제 탔던 썰매 얘기를 조잘조잘 대도.


변덕쟁이 신기사 아저씨의 화는 누그러질지 몰랐고..


차가 집앞에 도착한 그 순간에. 세 남자는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입을 꾸욱 다물어 버렸다.

 

 


젠장.


이 변덕쟁이 일당들을 대체 누가 당하냔 말야.

 

 


\ 평창동 집앞.

 

 

 


모두가 피곤에 지친 탓에.

 

어둑해져 오는 하늘을 맥없이 바라보다가.

 

대문을 향해 비틀비틀 다가서는데....

 

 

"인제와!?"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 하나...

 


"은찬아!!"

 

그리고. 귀에 굉장히 익은 목소리 하나..

 

 


내가 반사적으로 하루 뒤에 숨는 그 순간.


오렌지족.그래 오렌지 족과.


그 옆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던 예란이가. 우리쪽으로 반갑게 뛰어오기 시작했고..

 

 

 


"..어..!?너!!어떻게 여깄어..!?"

 

 

예란이가 나를 보며 놀라는 사이에.


은찬놈. 황급히 하루 옆에 서서 나를 가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것임을..

 

 

"드레스는 뭐구..?에?은찬아!!너 바지가 왜 이렇게 젖었어!!"

 

 

 

말없이 시선을 피하는 은찬이를. 푹 안아버리는 예란이.


그러더니 지 몸이 젖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느라 조금 눌린 은찬이의 머리를 부스스


매만지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 버린다.

 

 

"어떡해.꼴이 왜이렇게 됐어요 우리 여보..전화도 계속 안받고..나 5시간도 넘게 기다린거


알아..?세상에..그 예쁜 얼굴이..이렇게 수척해졌어.."

 

 

 

우우우우우웩-0-

 

 

"근데..너 왜 그런 이상한 옷을 입구 여깄는거야...??"

 

 

 

토하는 시늉을 하는 내게 또다시 수상한 눈총을 보내는 예란이.

 

덕분에 나는 그 추접스러운 시늉을 재빨리 멈추며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

 

 


"내 여자친군데 뭐.잘못됐어..?"

 


하루가 그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압축 시켜 버렸으니.

 

 

오오.역시 나의 하루로다.


멋진 놈 ㅠ_ㅠ

 

 


순간 오렌지 머리의 당황한듯한 표정을 재빨리 캐치하면서.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였고.


이내 다시 그 여유만만한 얼굴을 되찾은 오렌지 족.


망설일 틈도 없이 은찬이와 하루의 양팔에 자신의 손을 끼워 넣는다.

 

 

 

"그래.한참 기다렸어.예란이랑 나랑.은찬이 여자친구는 오늘 첨봤는데.


너무 깜찍하게 생겼네..?"

 

 

"당연하죠.제 여자친군데."

 

 

 

-_-.흥 난 하루가 여자친구라구 해줬다구 뭐.


아직도 눌리지 않은 콧대를 의기양양하게 세우고 있을때.


그때 바로 결정타를 먹이는 오렌지 족.

 


"넷이 바에 놀러가자.은찬이 여자친구도 같이 모인 기념으로.내가 쏠께."

 

 

 

쳇.

 


여지껏 그래왔던 데로 그 빨간 차 타고 하루를 납치하려는 수작.?


웃기지도 마라 이여자야.


나랑 하루는 어젯밤에 별장에서 같이 밤을 지새운 사이라..

 

 


"그래"

 

 

..구...


...-0-...

 

 


너무도 쉽게 나온 하루의 대답에. 나는 두 귀를 의심해야 했고.


이내 그 오렌지 족. 만족스러운듯 싱긋 웃더니.


날 향해. 조금의 악의도 없이 친절하게 물어온다.

 

 


"그쪽도 갈래요..?"

 

".....-_-.."

 

"그쪽도 같이 가요.어제 창문에서 고생했잖아요^^"

 

"안가요.."


..

 

 

"야 너도 같이 가자"

 

젖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은찬놈.


그러나 정작 하루는 아무런 말이 없고..


..

 

 


"그래요.같이 가요."

 

"안가요!!"

 


"무지 좋은 바 갈껀데..나 성년이니까..같이 칵테일도 마실수 있어요.^-^.."

 


"나 좋은 바 같은데 무지무지무지 싫어하구요!!칵테일도 세상에서 젤!!세상에서


제일!!싫어해요.됐죠.!!"

 


"....그렇담...어쩔수 없지만요..."

 


"..야..너 왜 심술이야 또..!!"

 


남의 속도 모르는 은찬놈을 뿌리치고.


과격한 손놀림으로 초인종을 마구 눌렀다.

 


그러면서 혹시나 싶어 흘끗 뒤를 돌아보면..


이미 오렌지 머리의 손에 다정스레 붙들린 하루놈은.


아무런 미안한 기색없이 명령조로 이렇게 말했다.

 

 

 

 

"너 집에 꼼짝말고 붙어있어.한시간마다 확인전화한다."

 


"....뭐...?"

 

"아무데도 나가지 말라고."

 


"내가 니 꼬봉이냐 이자식아!!!-0-!!

 

 


때마침 열린 대문을 탕 치고 들어오며.


악에 바친 그 한마디를 내질렀다.

 

그리고 놈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얼른 대문을 쿵!!닫고서.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어휴.어젠 정말 십년 감수 하는줄 알았어..!!"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호들갑스럽게 날 맞는 가정부 아줌마를 지나쳐.


거실 탁자위에 놓인 전화기로 향하는 길.

 

 


난 뭐 만날 사람도 없는줄 아나.

 


그렇게 망설임도 없이 그 오렌지족을 향해 가버리다니..

 

 

...나도 친구 있다 이거야..


나도 주말에 만날 친구 있다 이거야..!!!

 


.....친구...누구.....

..-_-..


애니몰 패밀리..?


..맙소사..내가 드디어 맛이 갔군...

 

 

 

나나언니는..전화번호도 모르고..


없나..역시..없는건가....


또다시 친구 하나 없는 왕따라는 생각에 낙심해 갈때..

 

 

그래!!!찬영이!!


찬영이가 있었다!!!!

 

마치 구석에 박아뒀다 일년만에 발견된 바나나 껍질처럼.


뚝심있게 내 기억을 비집고 나오는 찬영이.

 

 

 

찬영이라면 전화번호도 알고 말야!!

좋다 좋다!!!!

 


옳다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수화기를 집어 드는데..

 

 

 

 

"따르르릉!!따르르릉!!따르르르릉!!'

 

 

 


그 순간.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겨우 생각해낸 찬영이의 번호가 뿌옇게 지워질만큼.


아주 요.란.스.레.
 
누구지..


내가 받아도 되는건가..?

 

 


아줌마는 부엌일에 정신이 없어보이고.

 

그랬기에. 조심스레 한손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을때.

 

 

"...."

 

"너 나가면 죽어"

 

 

-_-..긴장해 있던 맥을 순식간에 풀어버리는 하루의 단호한 목소리.


기가 막혀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나가면 죽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점점 험악해지는 그 재수없는 목소리다.

 

 

"어디 니 손에 좀 죽어나 보자!!!!!!-0-!!!"

 

여지없는 그 고함을 확 던져놓으며.


전화를 거칠게 끊어버렸다.

 


그리곤. 또다시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 재빨리 찬영이의 번호를.


금방이라도 날아 없어질것 같은 찬영이의 전화 번호를 눌렀다.

 

 

...뚜르르르르..뚜르르르르..뚜르르르르..

 

 


이거..오랜만에 전화했다고 문전 박대 하는건 아니겠지..


아니면 욕을 한바탕 퍼붓거나..


에이..설마..욕을 퍼붓겠어..옛정이 있는데..

 

 

 

\ 삼겹살집.

 

 

 

 

"이 빌어먹을 가스나!!!!!!!처언하의!!!!!역적에다 피도 눈물도 없는 못되 쳐먹은 가스나!!!!"

 

..-_-..

 

 

그러니까 벌써.


미안하다고 백번 넘게 말하지 않니..

 

 


지글지글. 삼겹살이 타는 불판앞에 앉아. 소주 한잔에 완전 맛탱이가 가가지고는.

 

쓰레빠에 츄리닝 차림으로 눈물을 글썽이는 찬영이.

 

난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에. 익는 고기마다 족족 놈의 앞에다 갖다 바쳤고.

 

그래도 놈은 분이 안풀리는듯. 그 자그마한 두 눈으로 나를 노려 보았다.

 

 

 

"그래.죽기전엔 보겠다 싶어서 연락을 한거냐..?"

 


"아 진짜 왜그래.여건이 안됐다니까.."

 


"그러니까 그 여건이 대체 뭔지 얘기해 보래두!!-0-!!"

 


"너 안믿을꺼잖아..-_-.."

 

 

"뭐라도 좀 납득이 갈만한 변명을 해보란 말이다!!-0-!!"

 

 

 

이 새끼가 근데..-_-..


이번 건수로 나를 휘어 잡으려는 수작인가..-_-..

 

 

나는 벌개진 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성이 거짓말을 못하는 탓으로. 줄줄이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 사이에 불판위에 있던 고기들은 다 바닥이 났고..


쩌억 벌어진 찬영이의 입을 보며. 나는 소주 냄새에 취해 나를 이놈과 만나게 한


그 장본인들을 사정없이 씹어 대기 시작했다.

 

 

 

"그 작은 아들놈이 얼!!마나 못됐는지 아마 넌 모를거다.


참네.지가 무슨 귀족인줄 아나?!시도때도 없이 나보고 더럽대지!!같은 반찬 죽어두


못먹겠대지!!그러면서 한밤중엔 다큰 자식이 무섭다구 내 방 밑에서 웅크리구 자는데!!


차암나!!"

 

 


"지금 니 말이 다 참말이란 말이냐!!=0=!!"

 

 

 

어느덧 소주 두잔으로 거나하게 취한 찬영이는.


삿대질까지 해가며 언성을 높혔고. 나는 유일한 나의 편에 용기를 얻어.


이번엔 그 재수없는 아우의 형놈을 씹어대기 시작했다.

 

 

 


"그 형이란 놈은 말도 못해요.말투가 맨날 뭔지 아나!!


'밥먹어.조용히 해.너 죽는다.머리 묶어-_-^'


지가 뭔데 나한테 맨날 그런 명령이냔 말야!!


거기다 잘 놀다가두 그 오렌지 대가리만 오면 슝하니 가버린다니까!!"

 

 

"뭐 그런놈이 다 있냐!?"

 

 


"거기서 끝나면 또 말을 안해.그래놓고 나보곤 집에만 꼼짝없이 박혀 있으라는거야!!


원조 교제두 아니구 지보다 나이두 훨~씬 많아 보이는 여자랑.그 자식이 제대루 된 자식이냐!!"

 


"아 그놈 안되겠네!!걸리면 혼을 좀 내줘야겠어!!"

 

 

 

씩씩. 나보다 더 흥분한 찬영일 보며 뭔가 미심쩍은 느낌을 받았지만.


둔한 나는 그 결코 그냥 넘어가선 안될 감정을 그냥 무시해버렸고..


점점 그놈의 맛탱이는 뒤늦게 취해오는 술을 따라 헬렐레 가버렸으니..

 

 

 

"아!!홍도오야!!울지마아아라!!-0-오!!빠가 있자아아안 니!!짜가장장!!짜가짜가장장!!"

 

 


..-_-..

 


삼겹살 집을 나와. 한사코 2차를 하자면서 호프집을 찾는 찬영이.


나는 소주 2잔에 취한 창피한 그놈을 붙들어.


눈앞에 띄인 건물 안으로 다짜고짜 몸을 던졌고..

 

 

 


"내가..니..좋아하는거..알았냐아..몰랐냐아.."

 

 


놈은...3층 호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의 둔한 눈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날벼락 같은 소리를 지껄여 댔으니.

 

 


"뭐라고..-_-"

 

"푸헤헤헤헤.몰라!!몰라!!!"

 


"너.....맞는다..-_-.."

 

 


엘리베이터를 퉁퉁 두들기면서. 갖은 주접을 다 떠는 찬영이.

 

 


그 이후로 놈은 그 날벼락 같은 고백에 대해 무언갈 주절주절 늘어 놓으려 했지만.


난 재빨리 놈의 입을 아주 꾸욱 틀어 막아 버렸다.

 

 

그리곤. 곧바로 호프집 문을 열며 당당하게 들어 섰지만..

 

 

"..아..어떡하죠..자리가 없는데.."

 


미안한듯한 표정으로 두 손을 내젓는 종업원.

 

 


뭐.자리가 없다면 어떡해.집에 가야지.

 

속으론 내심 잘됐다 싶어 엘리베이터를 도로 탔는데.

 

1층이 아닌 지하 2층을 누르는 찬영이.

 

 

 

"야..뭐야.."

 

"여기 지하에 기가막힌 바가 있지!!거기서 이 오빠가!!쏜다!!-0-!!"

 

"이 돈도 없는게.."

 

"설아아!!설아아!!!ㅠ0ㅠ!!"

 

 

-0-..

 


말을 마치고. 두팔을 뻗어 내게 돌진하는 찬영이.


그러니 당연히. 언제나 준비가 되있는 내 주먹은 놈의 얼굴을 무식스레 과격해 버렸고.

 


덕분에 찬영인 한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그 기가막힌 바로 들어가기 위해 쫄래 쫄래 앞장을 서야 했다.

 

 

 

\ S바.

 

 

 

뭐가 이리 삐까 뻔실?.-_-..

 

 

 

낑낑대는 찬영이 뒤를 따라.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창가쪽에 털퍽 앉자니.

 

대리석을 깐듯한 맨질맨질한 천장과 바닥이 내 신경을 간지럽히고.

 

 


곳곳에 앉아있는 손님들도 분명 나와 찬영이와는 다른 부류로 보였기 때문에..


나는 아주 큰 심호흡과 함께 마음을 가다듬으며.


유리로 된 메뉴판을 조심스레 들여다 보았다.

 

 

'산타 모니카 카르베르 쇼비뇽 - 67000원'

 

....

 

 

.......뭐..산타놈이 어쩌구 비뇽자식이 어쨌다구...?

 


그래서..다 덧셈한것이 67000원이라구...-_-....?

 


...


....

 

 

 

"우우...토할꺼 같어..설아..우우우..."

 

"가자.-_-"

 

"우우우.."

 

 

 

우우 대는 찬영놈을 거칠게 일으켜 세우고.

 

탐탁치 않은 종업원을 향해 애써 미소 지은뒤. 위풍당당하게 문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빈티나는 나와 찬영이를 보며 수근대는.


이 잘난 빠 손님들의 시선을 되받아 쳐주면서..

 

 


그리고. 회전식으로 된 그 어지러운 문에 막 몸을 던지려 할때.

 

 

 

"어!?!?주연이 누나!!!!!!!!"


"아니 저 놈이!!!!!-0-!!"

 

 


금방이라도 토가 나올것 같은 입을 움켜쥐고.


우리가 앉아 있던곳과 반대 테이블을 향해 마구 달려가버리는 찬영이.

 

 


"너 거기 안서 이눔아!!!!!!!-0-!!"

 

그리고. 천박하다는듯 바라보는 모든이의 눈길을 (또냐-_-) 한눈에 받으며


놈의 뒤를 맹렬히 추격했을때.

 

 

...헉...


.....

 


곧바로 그 뒷테이블에 앉아있던 덩치 좋은 아저씨뒤에 몸을 숨겨야 했으니..

 

 

"우와!!주연이 누나 맞지요!!"

 

"세상에..찬영아..!!"

 

 


.....이런 개 빌어먹을 우연이 다 있담...

 

 

"어..?그때 호프집에서 일하던 오빠 아냐..?"

 

"찬영이 알아 예란아.?"

 

"네.그때 호프집 끌려갔을때.이 오빠 있었거든요.언닌 어떻게 아세요.?"

 

"아.나 대학교 다닐때 과외 해줬던 애거든.."

 


...-0-...


과외라고라..?

 

 


진심으로 반가운듯.


아예 옆자리에 털썩 앉으며!! 앉으며!!?!


오렌지 족에게 아양을 떨어대는 찬영이.

 

.....

 


그 맞은편엔 당연히...아까 나갔던 멤버 그대로..은찬이와 하루의 뒷모습이 보이고..


하루놈은 어디론가 자꾸 전화를 걸면서..타앙.테이블을 발끝으로 차고 있었다.

 

 

 

..설마..-0-..


집에다가..?!


찬영이의 위태위태한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구 저리좀 가요!아가씨!!"

 

나를 막아주고 있는 아저씨의 온 핍박을 다 견뎌내고 있는데..

 

 

 


"내가 누나 얼마나 좋아했는데!!모르지 누나!!"

 

"..-0-..어머..찬영아..너 취했니..?"

 

 

 

아이구 저 왠수..ㅠ0ㅠ..

 

 


"그때 우리 과외받던 애들의 우상이였다구 누나는..우우..토할거 같아..우우우.."

 

"..찬영아..-0-.."

 

'여전히 곱네..주연이 누나..근데..앞에는 남자친구..?"

 

"어어..아냐 그런거.."

 

 


그런게 아니긴!!-0-!!


그럼 왜 맨날 나랑 있을때만 하루를 끌고 나가는겨!?!

 

 


순간 벌떡 몸을 일으킬뻔 하다가.


다시 덩치빨 끝나는 아저씨 뒤에 웅크리고 앉았을때..


여지껏 했던 그 어떤 말보다 더욱더 미친 소릴 지껄이기 시작하는 찬영이.

 

 


"근데 나도 여자친구랑 같이 왔단 말이지!!"

 

"어머..그래..?정말?"

 

 


-0-...나는 아닙니다.


나는 맹세코 그 여자친구가 아니에요.

 

 


"아이구 근데 내 여자친구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래.


어떤 할아버지랑 내 나이 남자 새끼들 두놈이 있는 집으루 들어갔는데.


밑에 놈은 맨날 무섭다구 지 방에 쳐들어와서 자는 겁쟁이에다가.


깔끔한척은 혼자 다하고.왕자병 말기라 학교에선 왕따라는겨..!!-0-생긴건 원숭이 똥꾸멍


같이 생겨서.하이튼 캔디에 있는 이라이저보다 훨씬 더 못됐게 괴롭힌대요 글쎄!!!"

 

 


..-0-..내가..언제..찬영아..


내가 언제..변태에..왕자병 말기에..왕따에..원숭이 똥꾸멍이라는 소리를 했다는거냐..


게다가 그 이라이저는...-0-..

 

 

너..니가..정말로..죽고 싶어서..-0-..

 

 

 

이렇게 내 낮빛이 시푸르둥둥하게 변해갈때.


여전히 하루놈은 그 어딘가에(아마 집으로-_-)전화를 걸며.


애꿏은 테이블을 발로 차대고 있었고..

 

 

 


"어머.정말요?되게 안됐다 여자친구분.."

 

 


예란이가. 자신의 남자친구 얘긴지도 모르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찬영일 바라볼때.


찬영이는 그 반응에 힘을 얻은듯.


간신히 토를 삼키며 반짝이는 눈으로 입을 벌리니.

 

 

"근데 그게 다가 아녜요!!위에 놈은!!여자 여럿이랑 한꺼번에 뒹구는 호색한인데!!


내 여자친구를 좋아하는 척 했다가도!!그 뭐냐.원조교제를 한대요!!"

 

 


아아아아악!!!!!!!

 

 

"원조교제요!?"

 

 


"아 그러니까!자기보다 나이가 훨 많은 오렌지 대가리 여자랑 맨날 놀아난대요!!


그 여자가 뒷돈을 대준다나!?우우우.."

 

 

"어머.괜찮아요?!"

 

 


"우우우..괜찮아요..ㅠ0ㅠ..게다가..그 큰놈!!매일 집으루 확인 전화를 한대요!!


집에 있나 없나!!그래서 없으면 천장에 거꾸로 매달고 밧줄로 철썩철썩!!"

 

 

"세상에..진짜 변태 아냐..!?!!"

 

 

"그쵸!!여자친구가 아주 그것때문에 날 만나서 펑펑 우는데..ㅠ0ㅠ..


근데..얜 대체 어딜갔지..?...우우..우우우우.."

 

 

 

....그때....핸드폰을 들고 있던 하루...


갑자기 손에서 핸드폰을 내리며 찬영이의 얼굴을 응시 하는듯 싶었고.

 

 

 

나는..


어질어질..무너지려는 정신을 단단히 다잡고서.


남은 방법 하나에 나의 모든것을 올인했다.

 

 

 


그래..

 

저리로 향해..뛰는거야..


내 뒷모습을 발견하기도 전..곧게 나아있는 저 입구를 향해 뛰는거야..

 

 


난 빠르잖아..

 

그래.한설.넌 빠르잖아!!

 

마구 뛰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는거야..

 

 

 

그리고.찬영이와는 인연을 끊자..

 

 

짧은 몇초간의 순간에. 이 모든것을 계획하고..


달릴 준비를 하기 위해.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였다.

 

 

 

 

자...

 

파이브...포...쓰리...투....

 

 

 

"여자친구 이름이 뭔데"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하루의 목소리가 들려 왔을때.


엉덩이를 곧추 세운 내가 튀어나갈 준비를 마악 끝마쳤을때.

 

 


"이 아가씨가 정말 왜이래!!!"

 

 

 


나의 유일한 방패막이 노릇을 하던 아저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덕분에 나는 곧추 세웠던 엉덩이를 살며시 내리면서...


찬영이의 반가운 목소리를 생생하게 건네 들을수 있었다.

 

 

 

 

 

 


"어!!?저깄다 내 여자친구!!!!!!!!!"

 

 

....


......

 

.........저깄다...내...여자..친구....
 

저깄다.

내 여자친구.

 


..

 

 


"설아!!!설아!!여기다!!여기야!!-0-!!"

 

 

 

꼼짝없이 굳어버린 나에게. 두손을 휘휘 흔들어 보이는 찬영이.

 

-_-

 

그들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신께 기도를 드리고.


그런 나의 기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내 찬영이의 둔탁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옴을 느꼈다.

 

 


뚜벅.


제발..


뚜벅뚜벅..


은찬놈은 상관없다지만..


뚜벅.뚜벅.뚜벅.


하루만은 안됩니다.하루만은 안돼요.ㅠ0ㅠ.

 

 

 


"안녕하세요."


.....

 


이건...

이건....ㅠ0ㅠ...

 

 

 


"...아....안녕..하...."

 


"확인할게 있어서 그러는데.뒤좀 돌아볼래."

 


"아하?.제가..지금 쌍커플 수술을 한 관계로..눈이 퉁퉁 부어서.."

 


"한설."

 


"응?아니.그게 아니라.한설이 아니라 제 이름이 백설입니다만.."

 


"한.설."

 


"그러니까.제가 실은.."

 

"한설!!!!!!!!"

 

 

 

이제..정말..모든것이 끝이로다..

 

 

 

바를 통째로 뒤흔드는 하루의 커다란 고함소리.


처음으로 하루의 입에서 이름이 불리워 진다는것이.


결국엔 이 꼴이로구나. 결국엔 이 지경이로구나.

 

 

 

 


".....그래.....죽여라..."

 

 


두 눈을 꼭 감고. 놈과 마주선채. 이렇게 대책없이 내뱉은말.


그러나 반대편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고.


그 공포스러운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한쪽눈을 살며시 떠보이자니.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하루와.


의자에 앉아 미치겠다는듯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은찬놈과.


영문을 몰라 오렌지족을 계속 다그치는 예란이와.


다그침을 받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오렌지족과.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설아아!!설아아!!!그 총각 멋있지!!-0-!!우리랑 같은 나이래!!우우우우우..ㅠ0ㅠ.."


이 사건의 원흉지인 거지 발싸개가 보였다.

 


...

 

 


"....야.그러니까.내가 확실히 말하고 싶은건!!은찬놈이.아니 은찬이가 원숭이 똥꾸멍이라는


소리랑 니가 오렌지 대가.."

 


아차.-0-


오렌지 대가리.!!

 

 


거기까지 생각이 미쳐. 또다시 슬그머니 그쪽 테이블로 시선을 옮기면.


이번엔 삐딱하니 고개를 틀고 나를 노려보는 은찬놈과.


뭔가 좀 묘하다 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오렌지 족이 보이고..

 

 

...맙소사...


이건 정말. 호박씨를 몇개 우려 먹은게 된거냐..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응??그럼 날 용서해주는거야!?!"

 

"..........."

 

"....미안해..-_-..정말이지..하지만 정말 니가 밧줄로 묶어서!!"

 

"내 말 안들었지."

 

"...어..?"

 

"집에 붙어 있으라는 말."

 

"야!!그건 솔직히 니가 잘못한거야!!그 상황에서 뛰쳐나온건 나도 미안한거 하나 없다!!"

 


"남자친구."

 


"너..너..지금..그 말을 믿어..?내가 정말 저놈하구 사귈것이라 생각하냐?!


봐봐좀!!쟤 취했잖아!!무진장 취했잖아!!"

 

 

"만났잖아."

 

 


점점 조용하게 깔려가는 하루의 목소리.


똑바로 바라볼수 없게 변해가는 하루의 얼굴.

 

 

 

"...친구니까.."

 

"만났어."

 

"거야..친구니까.."

 

"다른 남자.만났어."

 

"..솔직히..너랑..나랑..사귀는 사이도 아닌데..그건.."

 

 

 

그리고 그때.


절정에 달하고 만 하루의 표정들.


그랬기에 나의 거세고 거친 기가 뿌리도 없이 모두 죽어버렸음을 느끼며.


찬영이 쪽으로 화살을 옮겨 여전히 우우우 거리는 놈을 맥없이 바라보고 있을때.

 

 

하루는.


쭈삣대는 나를 그 두려운 눈으로 내려보던 하루는.

 

 

 

"야!!!!!!!!!!"

 


은찬놈의 고함이 떨어짐과 동시에.


테이블위에 있던 칵테일 잔을 들어서. 그 안에 있던 액체를 내 얼굴위로 부어 버리고 말았다.

 

 


....

 

.......이런...

 

 


달콤 씁쓸한 칵테일이 입안으로 스며들고..다음으론 목안으로 흘러 내리고..


마지막으로 심장속을 후벼 파내고..

 

 


"....미안......"

 

 


중얼대듯한 나의 그 한마디에.


아무말없이 바를 나가버리는 하루.

 

..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가지 확신할수 있는건.


아무도 감히 하루를 막을수 없었다는것.


멀리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보던 웨이터도. 나를 밀어내던 뒷테이블의 아저씨도.


술에 취해 비틀대던 찬영이도.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던 오렌지족도.


아무도..감히..하루를 막을수 없었다는것..

 

 


"아..아니!!저놈이!!내 여자친구에게!!!!!!!!!!!"

 

 

 

이제야 사태를 파악한 찬영이가.


끝까지 '여자친구' 라는 그 한마디를 잃지 않은채 우당탕탕 바를 뛰쳐나가고..


그럼으로써 소란이 조금은 진정되었다는 생각에.


나를 꽉 졸라대던 긴장도 순식간에 풀어지고 말았다.

 

 

"하...."

 

 


그렇게 비틀거리며 의자에 기대어 설때.


"말이 조금 심했군요."


차분하게 내 쪽을 응시하며 말을 내뱉는 오렌지 족.

 

 

 

 

"...면목이 없네요.."

 


"오렌지 대가리니 하는건 그쪽이 살아온 생활 습관일지 모르지만.


원조교제니 뒷돈을 대준다느니 하는건.정말 그쪽 얼굴 다신 보기 싫게 만드는 말이네요."

 

 

대답대신. 목으로 스며드는 칵테일을 손등으로 거칠게 훔쳐냈다.

 

 


"내 나이 내년이면 스물다섯인데.원조 교제 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 아닌가요.?"

 

"....제가..섣불렀어요"

 

"네..그래서 저도 실망했어요..."

 


"..그럼..아까 그남자가 말한 그 변태 싸이코 형제들이..은찬이랑 하루야..!!?!"

 

 

이제야 눈치를 채셨군요.


축하합니다.축하합니다 예란님.

 

 

 


그렇다.

 


이제야 모든 사태를 파악한 예란이가. 믿을수 없다는듯 의자를 넘어 트리며 일어났고.


옆에 앉은 은찬인 뚝뚝 떨어져 흐르는 내 몸위의 칵테일을 바라볼뿐.


아무런 미동도 하질 않는다.

 

 


"은찬아!!너 나한테 그런 말 없었잖어!!같이 산다니!?같이 산다니!!"

 

"......."

 

"말도 안돼!!나 니 여자친구 아냐?적어도 그런 자격은 있어야 하잖아!!"

 

".....시끄러.."

 


"그리고 한설!그렇게 안봤는데.정말 괜찮은 애인줄 알았는데.


은찬이더러 변태라니?!학교에서 왕따라니!!솔직히 왕따는 너잖!!"

 

 

 

....예란이의 말이 완벽한 문장을 이루기도 전.


은찬이가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테이블위에 있던 티슈 몇장을 꺼내어서.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설마 그걸 내 입에 처넣으려는건..-_-..

 

 


비참한 몰골로. 그렇게 눈을 질끈 감았을때.


몇장 안되는 티슈로. 부드럽게 내 머리며 얼굴을 닦아내는 은찬놈.


이 상황에 이런말 하는건 우습지만.


하루가 입술을 벅벅 문지를 때완 전혀 상반되는 느낌.

 

 

겉과 속이 다른 두 사람.


겉과 속이 뒤바뀐 두사람.

 

 

 

"내가 방 밑바닥에서 구겨져 잔게 그렇게 불만이였습니까?!"

 

"......"

 

"왕자병 말기라 학교에서 왕따 당했다는건 좀 많이 억울한데요"

 

"..됐어..내가 닦을게.."

 

"근데 원숭이 똥꾸멍이 대체 어떻게 생겼습니까..-_-..?"

 

 

슥..슥..

 

 

은찬이의 손에 들린 티슈가 칵테일과 내 수치심으로 푹 젖어갈때..

 

 


"강은찬!!내 앞으로 와!!"

 

 


나와는 종류가 좀 다른.


분노와 배신감으로 폭 젖은 예란이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

 

 

"아.그리구 캔디는 안봐서 모르겠는데.이라이저가 혹시 괴물이나 뭐 이런건 아니죠?

 

 

예란이의 말을 한귀로 흘리며.


티슈가 다 젖어버린 탓에 이번엔 자켓 주머니에 꼽힌 손수건을 뽑아


목에 끈적끈적 달라붙은 그 달콤한 향을 닦아내는 은찬이.

 

 

 


"지금 당장 내 앞으루 와.강은찬...."

 

 

그러면 마지막이라는듯.


비장한 각오마저 느껴지는 예란이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숙인채.


은찬이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낚아채며 놈의 어깨를 손으로 강하게 밀어냈고..

 

 

 

"이번엔 정말 끝이야.당장 안오면 우리 진짜 마지막이야."

 

 

더이상 참을수 없는 예란이는. 내가 그토록 우려했던 그 말을 결국 내뱉고 말았다.

 

 

 

"우리 진짜 마지막이야.헤어졌다 사귀었다 되풀이 하는거.다섯번으로 족해."


...

 

아무말이 없는 은찬이의 모습에.


안절부절 해진 내가 무슨 말이든 지껄이려 입을 열때.


그런 내 입을 닫아버리기라도 하듯. 천천히 입술을 떼내어 예란이를 향하는 은찬이.

 

 

 


"그 다섯번째가 마지막이야."

 


"무슨뜻이야..?"

 


"여섯번째는 없을거라는 말"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구!!!!!!!"

 


"헤어지자 돌려서 한말"

 


".....................장난...이지..?"

 


"진심이지."

 

 


...

 

 

안돼..이게 뭐냐..

 


나의 망언으로 인해 순식간에 참 여러가지 일이 터졌구나..


테이블위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리는 예란이를 보면서.


이젠 적대감이 가득해져버린 오렌지족의 두 눈을 보면서.

 

 

 

"엉뚱한 곳으로 화살 돌리지마.잘못한건 예란이가 아니라 나야."

 

 


은찬이를 향해 분명한 어조로 똑똑히 말했다.


그리고 놈은.


대답대신. 바 문을 향해 나를 질질 끌고 가는것을 택했다.

 

 

 

"야!!!!여기서 해결해!!!!!!!너 이러면 나 더 곤란해지잖아!!!!!!!!"

 


쩌렁쩌렁 울리는 나의 고함소리에도.


아랑곳 않는 강은찬놈.

 

 

 


"나 미움받는거 지긋지긋해!!!머릿수 또 늘리지마!!!사랑받는거 필요없으니까!!


미움받는거 그만 만들란 말이야!!!!"

 

 

"너 보기보다 힘 없다.."

 


"은찬아!!!!!!!!"

 


"형만 열받은거 아니다."

 


"그건 그거고.이건 이거야.그건 우리 문제고!!이건 니네 문제야!!"

 


"나도 너때문에 열 많이 받았다 지금.."

 


"그 감정을 왜 예란이한테 푸냔 말야 내말은!!"

 

"어쩌면!!!!!!!"

 


"..."

 


"걔보다 더 많이 짜증난 건지도 모르겠다!!!"

 


.....


.........

 

 


회전문을 거칠게 몸으로 밀며


은찬이는 꾹꾹 참아 억누른듯한 어투로.


좀전까지와 확연히 다른 심각한 상황을 연출해 버렸고.

 

 

 


그랬기에.


분명 이런 사태가 일어난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기에.

 

 

 


난 집으로 붙들려 오는 내내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옷에 명백히 남은 칵테일 얼룩을 보며


이것이 꿈이길 바라는 헛된 꿈마저 바닥에 내동댕이 쳐야 했다.

"그 드레스를 왜 설이 니가 입고 있었던 거냐!!!"

 

 

 

\ 평창동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마자.


이틀만에 보는 할아버지가 기다렸단듯 날 맞으시며


첨으로 내게 고함을 내지르시고.


그러는 사이 은찬이는 인사 한마디 없이 이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가 버리니.

 

 


"..강은찬!! 다시 와서 똑바로 인사 못해!!!"

 

 

다시 은찬이 쪽을 향해 호통을 치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강은찬!!!!!!!"

 


"...은찬이 그냥 두세요..."

 


"그냥 두라니..!?아니.근데 그 옷에 묻은 그 얼룩들은 대체 뭐야...?"

 


"...칵테일이요..."

 

 

"저눔 짓이지!!!!!!!!-0-"

 

 

"....제 짓이에요.."

 


"..뭐..-0-..?"

 

 

"하루는요..하루는 왔어요..?"

 

 

"이층방에 있다..그런데 네 짓이라니.너 또 무슨 사고라도 친게냐..!!"

 

 

"...네...무지 큰 사고요...무지무지..큰사고요..."

 

 

"아이쿠..맙소사.."

 

 


"죄송합니다."

 


"너 때문에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구나.."

 

 

 

면목없는 나를 앞에 두시고. 지친 한숨을 내뱉으시는 할아버지.


그리곤 어찌된 까닭인지 물어보기도 싫으신듯.


거실쪽을 향해 단호히 몸을 돌려 버리셨고.


그랬기에 나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하루를 만날수 있었다.

 

 


'똑똑똑똑...'

 


굳게 닫힌 하루 방 문을 조심스레 노크하는 길.

 

 

'똑똑똑똑...'

 

 

그러나 문은 열릴 생각을 않고.


아무도 없는건가? 하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문틈에 귀를 가져가면..

 

 

 

"...십분뒤에 와...아니..지금 말고.십분뒤에 출발해."

 

 

 

-0-..누굴 오라는게지..?

 

나의 몸을 바짝 달아오르게 하는 말을 하면서.


일단은 방안에 자신이 있다는것을 내게 들키고 마는 하루.


그리하여 오기가 생긴 나는..


노크질을 멈추고 방문을 벌컥 열어버리니...

 

 


"..............."

 

 

옷을 갈아 입고 있던 하루와 두 눈이 딱 마주쳐 버리고..

 

 

"..미안.."

 

 

 

분명. 다시 나와야 함이 정상이거늘.-_-.


부끄러움에 비명을 지르며 방문을 닫아야 하는것이 정석이거늘.


그아이의 상처 투성이 손목을 바라보며.


잠시동안 넋을 놓아야 했다.

 

 

"나가"

 


하루의 단호한 그 한마디가 들려오기 전까지.

 

 


"..어..어..미안.."

 


'쾅!!'

 

 

성질대로 요란스레 문을 닫고서.

 

쿵덕쿵덕 뛰는 가슴 탓에 심호흡을 길게 내쉬고..

 

 

푸우우우


푸우우우우우..-0-..

 

 


분명 여리고 곱상할거라 상상 (상상을 했단다-_-) 했던 그 몸이.


왜 그렇게 거친거지..


왜 그렇게 상처 투성이인거지..

 


...그리고.....

...


왜 몸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거지..

 

 

..-_-..


....- _ -....

 


지금쯤은 옷을 다 입었으려나..


아니야..어쩌면 안입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지금 내가 처한 주제를 까맣게 잊고서.


어쩌면 옷을 다 (안)입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눈치없이 방문을 또 열어제끼고 말았다.

 

 


"............."

 

 

 

그러자 참으로 아쉽게도 옷을 이미 다 챙겨 입은 하루.

 


서랍을 닫다 말고.


왜 다시 왔냐는듯한 무정한 눈으로 방문쪽을 싸하게 바라본다.


마치 나와는 시선도 마주치기 싫다는듯.

 

 

 

용기를 내자.한설.


늘 그래온 데로 당당하게 말하자.

 

 

 


"그러니까.....미안하단말..하러왔어.."

 

"필요없어.나가."

 

"무슨 말인지 일단 들어주기는 해야 하잖아.."

 

"...."

 

 


대답없이 나를 지나쳐 방을 나가려는 하루.


나는 재빨리 그 앞을 필사적으로 막아서고..

 

 


"비켜..."

 

"넌 지금 누구 만나러 가는데.."

 

"오렌지 대가리"

 

 

 


..-_-..잠시 또 면목이 없어진다..


그러나. 분명히 할것은 분명히 해야한다.


확실히 지금 우린 이도 저도 아닌 맹물인 것이다.

 

 

 


"그래.그럼 여기서부터 짚고 넘어가자.


넌 그 여자 잘만 만나잖아!!!!!!!!"

 


"니꺼랑 달라."

 


"내꺼??내께 뭔데!찬영이?!아니라잖아!!그냥 친구라잖아!!'

 


"나도 그냥 친구야"

 


"그럼 난?!"

 


"못믿어."

 


"내가 너한테 뭘 어쨌길래...?"

 


"이제 안믿어.그러니까 비켜."

 


"내가 너한테 언제 못믿을 짓이라도 했냐..?큰 배신이라도 쳤어..?"

 


"지금 니 얼굴 보기 싫어...."

 

 

 


그 말이 진심이라는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분명 이 방에 들어온뒤로 내 얼굴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하루는.


내 몸을 방문앞에서 거칠게 밀어냈다.

 

 

 


"확실히 우리 사귀는거 아니잖아!!나도 너한테 좋아한단말 한적 없고


너도 나한테 그런말 한적없어!!그런데 왜 우리가 이런것때문에 싸워야 되냐!?!!


솔직히 이 상황 되게 웃기잖아 니가봐도!!!"

 

 

...

 

 

좋아한단 말. 여지껏 해본적도 없고 죽을때까지 할 용기도 없어서.


속마음과 전혀 다르게 입밖으로 터져나온 말.

 

 

 

"달라."

 

"...뭐....?"

 

"오늘 확실히 깨달았어"

 

"...뭘.."

 

"죽어도 넌 아니라는거"

 


...


하.....

 

 


".....나역시..죽어도 넌 아냐.."

 


오기로 내뱉은 나의 형편없는 거짓말에. 다시 한번 그 말을 받아 단호히 되풀이 하는 하루.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자꾸만 들려오는 그 '죽어도'라는 말에.


머저리처럼 솟아오르는 눈물을 가만히 맛볼때.


마지막 순간까지 내 얼굴을 단 한번도 봐주지 않던 하루는.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오렌지 족을 만나기 위해 방을 나가 버렸고..

 

 

나는 유치원생보다도 훨씬 서투른 내 감정을 원망하면서.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눈물이 흐르고 있는 형편없는 얼굴로.


처음보는 하루의 침대며 책상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떠한 애정이나.어떠한 흔적도.어떠한 냄새도 묻어 있지 않은 가구들을


그아일 대신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어루어 만졌다.

 

 

하루를 좋아하기 시작했을때 들었던 그 불길한 예감은.


아직 내 감정이 절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때 백퍼센트 적중했다.

 

 


하루는.

앞으로 그 누구도 좋아할수 없다.

나는.

하루의 옆에 있는 한 계속해서 이렇게 울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넘쳐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둔채.


계속해서 하루의 물건들을 눈으로 쓰다듬는 길.

 

 

그러다가..


책장의 책들 가운데 비죽히 삐져나온 불에 그을린 커다란 앨범이 눈에 띄고.

 


나는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어떠한 죄의식도 없이.


단호히 그 무거운 앨범을 책장에서 뽑아 든다.

 

 


....모퉁이가 흉하게 일그러져 있는 앨범....


혹시나 이 집에 꼭꼭 숨겨둔 비밀을 밝혀낼 실마리가 있을까 싶어..


눈물을 스윽 훔쳐내며 앨범 첫장을 넘겨보면..


다섯장의 사진이 한면에 아무렇게나 꼽혀 있는데..


....모두가 한여자의 사진인듯..

 


그러나 체구로 보아 머리 모양으로 보아.


오렌지 족은 분명 아니다.

 

 

묘하게 떨려오는 손으로 두번째 장을 넘겨보면. 아무렇게나 꼽혀 있는 일곱장의 사진..


이것 역시..모두가 한여자의 사진..

 

 

그리고..


세번째 장도..네번째 장도..모두가..한여자.한여자의 사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마지막을 펼쳐보아도...


역시나. 내가 갖지 못하는 하루의 심장을 독차지 하고 있는 단 한사람..


얼굴만 불로 그을려 알아볼수가 없는 단 한사람.

 

 


"......이게..답이였구나...."

 

 

앨범을 제자리에 힘겹게 밀어 넣으며.


비틀대듯 방을 나섰다.

 

 

...그 여자가...답이다...


나는 죽어도 하루를 가질수 없게 만든. 그여자가 답이다.

 

 


그 절망적인 답에. 난 하루의 방문을 조용히 닫고서. 그곳에 등을 기댄채 주저앉아.


처음 내 마음을 가져간 주인공이 하루인것임을.


죽도록 후회하고.


이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커다랗게 내 일부를 차지하려는 하루를


죽도록 원망했다.

 

 


하루는 안돼 설아.


하루는 힘들어 설아.


하루는 아플꺼야 설아.

 

 

억지로 달래보고. 다그쳐보고. 협박해봐도.


꿈쩍않고 눈물만 쏟아내는 미련퉁이 한설...


제발.


이럴때엔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데. 아무라도 좋으니 얘기해보고 싶은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처음으로 맛보게 된 이 아픈 감정에 익숙치 않아서.


금방이라도 입을 비집고 터져나오려는 그 한마디를 감당할 길이 없어서.

 

 

뚜벅뚜벅..


주저않고 발코니 옆에 붙어 있는 그 방을 찾았고.

 

 

 

끼이이이익..

 

 

인기척도 없이 문을 열면.


조용한 발라드를 틀어놓은채.


창가 테이블에 앉아 양주병을 기울이던 은찬놈.


문득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그리곤 당황한듯이.


집어 들던 양주병을 테이블위에 위태위태하게 내려놓는 은찬이.

 

 

 

 

"야...야..이거..아빠한테.."

 


"..............."

 


"울어...?"

 


"....."

 


"너..울어.....?"

 

 


심상치 않은 내 얼굴을 본 은찬이가.


급기야 양주병을 테이블위로 넘어트리며 벌떡 일어나고..

 


철철철..

 


내 눈물처럼 바닥으로 흘러 넘치는 그 독한 냄새의 액체를 바라보며..


난 벙긋벙긋 입을 열고..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 않는.


내 자신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말이거들..

 

 

 

"왜 울어!!!!!!!!!!아 나 미치겠네..야..아까 그것때문에 그래..!?"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서. 어쩔줄 모르는듯 안절부절 못하는 은찬이.


눈물을 닦아주려는듯 손을 내밀다가. 다시 밑으로 떨구고.


다시 또 내 얼굴에 가져오다가. 다시 또 밑으로 떨구고..

 

 

 


"젠장......너 안어울려...이딴거 안어울린단 말이야.."

 


"......."

 


"나 원숭이 똥꾸멍 맞아.왕자병 말기에 왕따도 맞는데...내가 미안해..


아까 소리 질러서 미안해.."

 


"..."

 


"화 하나도 안났어 나..그러니까 제발 울지마.....한설.....


그런 얼굴로 제발 울지마......."

 

 

"..좋아..해..."

 


"........."

 

 

"좋아해....."

 

 

"............"

 

 

 

흠칫 뒤로 물러나는 은찬이가 보이고..


곧이어 순식간에 붉어진 은찬이의 두 뺨이 보이고..

 

 


이윽고 그애가 손등으로 볼을 가리면서 시선을 창가쪽으로 던졌을때..


그리고 그날 내가 핫케익을 주던날과 꼭 닮은 개구진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을때..


내게 들키기 싫다는듯 손으로 얼굴을 마구 문질러 댈때..

 

 

나는 꿈쩍않고 그 다음말을 내뱉었다.

 

 

 

 

"하루..좋아해..나 하루가..좋은가봐..


...도와줘...니가 좀 도와줘..은찬아...."

 

 

 

 

순간. 거짓말처럼 미소가 사라지는 은찬이의 입술.

 

 


그리고.

그 누구도 쫓아낼수 없는 회색빛 침묵이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안돼..."

 

 

 


한참후. 은찬이가 힘주어 내뱉은 한마디.


그리곤. 이젠 눈물도 바싹 말라버린 내 두눈을 꼼짝없이 바라본다.

 

 

 


"...왜..."

 

"강하루 안돼.."

 

"안되는게 어딨어"

 

"너 다쳐..너 다쳐..병신아.."

 


"다쳐도 돼.."

 


".....내가..처음에 그랬잖아..강하루는 안된다고...

안된다고 내가 말했잖아...."

 

"모르겠어.."

 

 

익숙치 않은 나의 모습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결국 등을 돌리고 마는 은찬이.

 

 


"처음 하는거야.그래서 많이 서툴러.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허락해야 되는지.아무것도 모르겠어..이런거 첨이라.어떻게 해야 될지 정말 모르겠어"

 

 

대답없는 은찬이의 뒷모습..


이런 반응을 바란건 결코 아닌데..제발..이럴까봐 두려웠던건데..


처음 느꼈을때부터..이럴줄 알고 멈추려 했던건데..

 

 

 


"후회 안할.자신 있냐."

 

 

 

그때 은찬놈. 조용히 다시 내 쪽으로 마주선채.

 

시선도 마주하지 않고 그 한마디를 내던지고.

 

나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아주 잠깐 은찬이의 입가에 떠오르는 쓸쓸한 미소.

 

 

 

"울어도.슬퍼도.죽어도.후회는 안해.


하루로 인해서 생겨나는건.눈물이든 괴로움이든 내가 다 먹고.내가 다 감당할거야."

 

 

"....그게 니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커도.."

 


"몇만배는 더 거대해도.."

 


".......그새끼...질투심 정말 많다.."

 

 

갑자기 튀어나온 '질투심'이라는 단어에.


무슨말인가 싶어 놈을 빤히 올려보면.


자꾸만 내 시선을 피하면서 창가쪽으로 고개를 향하는 은찬놈.

 

 

 

 

"....나..이용해..."

 


"...뭐..?"

 


"나 이용해.."

 


"미쳤어.무슨 개소리냐 너."

 


"강하루 질투심 끔찍할정도로 많으니까.나랑 며칠간만 붙어 다니는 모습 보이면.

강제로라도 너 데려갈걸..."

 

 

"됐다.도와달란 말 취소.내가 알아서 할게."

 

 

"이용해..."

 

 

"그렇게 치사한짓 하기 싫어.하루한테도 미안하고.너한테도 미안하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비굴해 보여서 싫어.."

 

 

'쾅!!!!'

 

 

....-0-...

 

 

 

별안간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꽉 쥔 주먹으로 반쯤 열린 창문을 세게 내려쳐버린 강은찬.

 

 


나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놈의 행동에 잠시 할말을 잃어야 했고..

 

 

 


".......나 이용당하는거 익숙하니까...신경쓰지말고..해...."

 

...

 


그렇게.


별장의 그날과 너무도 대조되는 우리들의 살벌한 밤은.


너무도 쉽게 저물어서.


너무도 아프게 저물어서.


나는 겹쳐서 떠오르는 하루와 은찬이의 슬픈 얼굴에게서


그날 밤 내내 괴롭힘을 당했다.

 

 

 

 

 

\ 아침.

 

 

 

 


"...눈이 왜그래..어제 무슨 일 있었어..?"

 

 

식탁에 조심스레 들어서자 마자. 언제나 그랬듯 맨중앙 의자에 앉아서 유심히 내 얼굴을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난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말없이 물을 마시고 있는 하루를 바라보았고..

 

 


은찬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스런 맘으로 찬찬히 부엌 주변을 살펴 보면..

..

 


"달링아!!!!!잘잤냐!!!!!!!"

 


..-0-..

 


바로 그때.


시끌벅적한 목소리와 함께 젖은 머리를 탁탁 털어내며 후다닥 뛰어들어오는 은찬놈.

 

 


"..다..달링이라니..-0-.."

 

 


두 귀를 의심하시며. 할아버진 그렇게 은찬놈을 향해 물으셨고.


은찬놈. 뻣뻣히 굳어버린 내 어깨에 손을 두르며.


하루 얼굴을 한번 스윽 흝어보더니.


어젯밤 모습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아주 명랑 쾌활한 목소리로


조잘조잘. 잘도 입을 놀려댄다.

 

 

 

"별뜻없어.장난치는거야 장난"

 

"얼른 어깨에서 손이나 내려!!-0-!!"

 

"잘잤냐..?"

 

 

 

할아버지의 말을 고스란히 먹으며.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씨익 웃어보이는 은찬.-_-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버렸고.


그러면 하루놈. 이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물컵을 손으로 빙빙 돌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린다.

 


..젠장할..

 

 

 

 

"이따 점심 같이 먹자.."

 

 


켁..= 0 =..


하루가 부엌을 마악 나가려는 찰나.


재빨리 숟가락을 들며 내게 다정스레 말을 건네는 은찬놈.

 

 

 

"내가 왜.-_-.?"

 

"너 좋아하는거. 고기 만두 내가 사줄거니까"

 

"내가 고기 만두를 좋아한다고 언제 그랬냐.-_-.?"

 

"어젯밤에 내 방에서"

 

"..-0-...어젯밤에..내가.."

 


아뿔싸 싶어 얼른 뒤를 보면. 이미 부엌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 하루.

 

 

난 의욕을 상실한채로 물끄러미 은찬놈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고.


그 시선을 차단이라도 시키듯.


할아버지. 서둘러 은찬이와 나의 중간에 손을 벌려 휘저으셨다.

 

 

 

"강은찬!!너 설이한테 허튼짓할 생각마라!!행여 그런 마음이라도 먹었다간


호적에서 바로 파내버릴거니까!!"

 


"어..아줌마..!설이 해산물 못먹는데 찌개에 새우 넣으면 어떡해!!!!!!"

 

 

..-0-..

 

 


이번 역시. 할아버지의 단호한 외침을 가볍게 무시하며.


대뜸 싱크대를 벅벅 닦고 있는 아줌마에게 화살을 던지는 은찬놈.

 

..

 


"..-0-..몰랐지 뭐.인제 안넣을게."

 

 


...당황한듯한 아줌마는.


조금 구겨진 안색으로 나를 휙 노려보시고..


더이상 참을수 없음에.


나는 밥을 세숟갈도 채 들지 않고. 자리에서 휙 일어나 버렸다.

 

 

"..어디가 설..!!"

 

 

 

 

\ 평창동 집앞.

 

 

 


"설!!!!!!!!설!!!!!!!!!!!!!"

 


"후.............."

 


"야..!!같이 가!!!!!!"

 

 

 

휘적휘적. 대문을 열고 나와. 신기사 아저씨가 손짓하는 차를 향해 재빨리 걸음을 옮기면.


앞좌석에 올라타서 나와 은찬일 번갈아 흝어보는 하루가 보이고.


심호흡을 한번 가다듬고서.


뒷좌석 문을 힘주어 잡으면.

 

 

 


"아저씨 먼저 가요.나 설이랑 버스 타고 갈꺼야."

 

....

 


......동그래진 눈의 신기사 아저씨를 보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는 은찬놈.

 

 

 


"야!!누가 너랑 버스를 타고 간대!!!!!!!-0-!!!!!!"

 

"너 나랑 버스 타면 옆학교 여자애들이 되게 부러워한다."

 

"오 제발.그런 부러움은 우리 학교 애들로 족합니다 아저씨!!-0-!!"

 

"아저씨.형이나 태우고 가"

 

"....정말 버스를 타고 가려냐..-0-!?"

 

"어."

 

"야 웃기지마.누가 너랑!!!!!"

 

"뛰어뛰어!!!!!!!선도 늦는다!!!!!!!!!"

 


강은촤안!!!!!!!!!!!!!=0=!!!!!!!!!!

 

 

 

악착같이 버티고 선 나를. 개 끌듯 질질 잡아 내리막길로 마구 내달리는 은찬놈.


다급히 뒤를 돌아보면.


창문으로 하루의 차가운 얼굴이 하나 보이고.


그다음 경악한 표정의 신기사 아저씨가 보이고.

 

 

 


"됐다니까!!!!!안도와줘도 돼!!!필요없단 말이야!!!!!!!!!!!!!"

 

"선도 같이 스고.야야.강하루 표정 봤냐?완전 벙찐거?!"

 

"벙찌긴 누가 벙쪄!!-0-평소랑 똑같더구만!!"

 

"너 잘되면 나한테 진짜 한턱 쏴라!!알았냐!?!"

 

"도와주지마!!!!!!!내가 혼자 할테니까!마음만이라도 고맙다구 임마!!"

 

"손 시렵지 않냐"

 

"마음이 시렵다 마음이!!!!-0-^!!!!"

 

 

..아니 근데 이자식이..-0-..

 

 


어제부터 다른사람 말 무시하기로 컨셉을 단단히 잡은듯.


악착같이 버티고 선 나를 우왁스럽게 정류장쪽으로 끌고 가며.


얼어붙은 내 손을 자기 교복 주머니에 구겨넣는 강은찬.

 

 


그러더니.호호.자기 손에 입김을 불어서 내 볼을 벅벅 문댄다.

 

 

 

 

"손좀 치울래.이빨로 물기 전에.."

 

"야 내 손 닿으니까 막 떨리지 않냐?"

 

"..엉..분노로 떨리는데..-_-.."

 

"나중에 고맙다고 질질 짜지나 마라 등신.행운인줄도 모르고."

 

"하루는 아무 의식도 안하고.아무 신경도 안쓰는것 같던데요...."

 

"근데 버스가 되게 안오는데요..."

 

"말좀...그만 돌렸으면 좋겠는데요...."

 

"어어!!야 저거아냐!?초록색 버스!?!"

 

"낸들 알아 이놈아!!!!!!!!!!"

 


"여기요 여기!!!여기 손님 있어요!!!!!!!!!!"

 

"안그래도 서!!!!!ㅠ0ㅠ슨단 말이야!!!"

 

 

 

버스에 익숙하지 않은 놈.


두 팔을 위로 번쩍 들고 모든 이의 시선을 받으며 미친듯 깡총깡총 제자리 뛰기를 하고.


덕분에 버스에 올라탔을때.


나는 고맙게도 승객들의 혀차는 소리를 적나라하게 들을수 있었다.

 

 

 


"쯧쯔쯔...-_-..다 커가지고.."


"쯧쯔쯔쯔...-_-..저러고 싶을까.."

 

 

.....-_-.....


창피한 마음에 조용히 고개를 수그리고 있자니.


미처 말릴틈도 없이 버스 안에 토큰을 넣는 강은찬.

 

 

 

 

"너..지금 뭐하니.."

 

"이거 넣는거잖아"

 

"아니 이게 뭐야!돈을 내야죠 돈을!!"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털복숭이 기사 아저씨의 공격이 쏟아져 오고.


나는 다른 일행인척 하기 위해 서둘러 맨 뒷좌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면.


절대 굴하지 않고 오히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강은찬.

 

 

"토큰이잖아요!!"


"이걸 누가 내요!!!700원 내요!!700원!!"


"아 이거 토큰 냈잖아요 지금!!!!!!!!!!!!!"


"토큰 안받는다니까 그러네!!!!!!!!-0-!!!!!!!!!"


"이 아저씨 웃기는 아저씨네!!"


"빨리 돈내요!!돈!!!!!!!!!!"

 

 


저 미친자식이...


날 일부러 골탕먹이려는 수작임이 분명하구나..

 


옆에 탄 여고생들의 비웃음 소리를 들으며.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놈을 바라보면.


씩씩 달아오른 얼굴로.


만원짜리를 휙 쳐넣는 강은찬.

 

 


"거슬러줘"

 


"..-0-..아니 이게.."

 


"아 잔돈..!!!"

 


"아니 뭐 정말 이런놈이 다있담!!!!!!!!!"

 

"기다려!!!!잔돈 받고 잽싸게 튀어갈게!!!!!!!!"

 

 

 

 

...누구...저 말씀입니까....

 

 

나는 놈의 손가락이 가르키는 사람이 나인것을 죽도록 원망하면서..


지금 막 창문가로 지나가고 있는 신기사 아저씨의 차를 멍청히 바라보았고..


차가 학교 앞에 도착할때까지..


동전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내려서..


버스안의 진풍경을 연출해 냈다.

 

 

 


그래. 그렇게. 강은찬의 황송한 도움은 첫번째 막을 올렸다. 

"야 이 미친놈아 저리 떨어져!!!!!떨어지란 말이야!!!"

 

"아 동전 드럽게 많네 진짜...젠장..주머니 축 쳐져서 보기 싫다.그지.어?"

 

"저리 떨어져서 걸어오란 말이다!!!!!"

 

"이게!!버스도 태워주니까!!"

 


"정말 최악이다 최악!!아는 사람이 같은 버스 타고 있었을까 소름이 다 돋는다!!소름이!!"

 

 

 


벌개진 내 얼굴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주머니속의 동전들을 짤랑 대며 교문으로 신나게 걸어가는 은찬놈.

 

그러더니 억지로 뺀 내 손을 다시 자기 주머니 속에 구겨넣고.

 

 


"야 너 솔직히 말해 강은찬"

 

"..뭐.."

 


"나 엿먹이려구 이렇게 도와준다구 한거지..?일부러 나 골탕먹이려구..?"

 


"이 자식이 날 뭘루보냐 지금..?"

 

 

"..헉..!!야..!!저..저기 예란이 있다..잠깐만..야..야..잠깐만.."

 

 


마침 교문앞에 선도 뱃지를 단 예란이가 보여.


황급히 은찬놈의 등뒤에 몸을 숨기면.


그런 날 또다시 조롱이라도 하듯이 몸을 확 비켜줌으로써 내 존재를 그녀에게 알리는 은찬놈.

 


".............."

 

 

곧.

예란이의 얼음장 같은 시선이 내 얼굴위로 꽃히고.

 

 

"..아..안녕..."


"안녕"

 

 

이어서 한겨울의 서리같은 대답이 내 귀를 쿡쿡 쑤셔온다.

 

 


"선도 늦었어 강은찬."

 

 


능글맞게 웃고 있는 은찬이를 막아서며. 울음을 꾹 참는 얼굴로 말을 건네는 예란이.

 

 


"늦어서 미안합니다.-0-"

 

"...잠깐..얘기좀 하자.."

 

"시간 없어서 미안합니다."

 

".........너 진짜 왜이래....하루만에 어떻게 갑자기 이래.."

 

"하루는 우리 형 이름인데."

 


"은찬아!!!!!!!"

 

 


점점 험상궂어 지는 분위기.

 

이윽고 덕풍고 아이들의 못마땅한 시선이 뚜렷하게 느껴져 오면.

 

난 마주본 두사람을 남겨둔채. 중앙현관쪽으로 황급히 달아나 버렸다.

 

 

 

 

"어!?!?!!?야 저거 잡아!!!!!!!!!!!!!!"

 

 

뒷통수를 쩌렁쩌렁 울리는 강은찬의 고함소리.

 


오 맙소사.


내가 어젯밤에 대체 무슨 귀신이 씌어서 저놈에게 도와달란 말을 했단 말인가.


나를 못죽여 안달난 저놈에게.


내가 대체 무슨 미친소리를 지껄였단 말인가!!ㅠ0ㅠ

 

 

 

 

\ 교실.

 

 


"....호호호..그래가지고!!-0-!!"

 

 


..드르륵..

 

 


교실문을 열고 힘겹게 들어서면.


신나게 떠들다 말고 갑자기 대화를 멈추는 아이들.

 


이미 그런 공기에 익숙해진 나는. 맨 뒷자리에 있는 내 자리로 재빨리 걸음을 옮겼고.


그러면 내 앞 책상에 걸터앉은 코끼리와 여우 원숭이가.


보란듯 들으라는듯 행동과 목소리를 높혔다.

 

 

 

"학생증 주면 하루오빠가 받을거야 그치?"

 

"응.요새 널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아.음흉했다니깐 글쎄."

 

 

하루가 코끼리를 보는 눈이 음흉했단 말이냐..-_-..


귀를 쫑긋 세우고 가방에서 책을 한권씩 꺼내들면. 좀더 노골적으로 목소리를 키우는


두 여자.

 

 

 

"학생증에 편지도 끼워서 줘!!"

 

"그렇게 안해두 오빠는 받아줄걸.-0-!?!"

 

 

대체 학생증은 또 뭐구..그걸 왜 하루한테 준단 말이야..?

 

수다를 마친 여우원숭이와 코끼리가.


자습을 위해 자리로 돌아가면. 난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조심스레 짝꿍의 옆구리를 찔렀고.


열심히 필기를 하던 내 짝꿍은.


잔뜩 움추린 어깨를 하고선 나를 바라보았다.

 

 


"..학생증이..뭐야...?"

 

".....하..학교 전통이요.."

 

"학교 전통..?"

 

 

잠시 두 동물의 눈치를 스윽 보다가. 비닐 포켓으로 된 자신의 학생증을 조심스레 책상위에


펼치는 짝꿍.


덕풍고와 정평중 학생증은 모두 카드로 되어 있어서. 사진이 새겨진채 이 비닐 포켓안에


씌어져 있다.

 

 

"....이거..주면...좋아하는거고..."

 

"응..?"

 

"이거..받으면..허락하는거에요.."

 

"....아하...고백대신에..?"

 


"네..그래서..사귀는 애들 보면..서로 학생증 바꿔서 들고 다녀요.."

 

"우와..괜찮네..그러면.."

 

 


그때.


조용한 교실의 복도 창문이 스르륵 열리며.


고개 하나가 불쑥 솟아 오르니.

 

 

"어머어머!!!!!!!!!"

 

놀라며 호들갑을 떠는 아이들.


그리고. 나를 또 한번 처참히 짓뭉개 버리는.


강은찬.

 

 

"야!!고기 만두!?김치 만두!!?!"

 

 

..오..세상에...

 

 


작정을 했구나..작정을 한게야..


나는 재빨리 일분단쪽으로 고개를 틀었지만. 놈은 이미 내 모습을 발견했기에.


아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또 한번 외치고.

 

 

 

"야!!!!!!!고기만두!!!!김치 만두!?????????!"

 

".........맙소사...."

 


"헬로우.애기들아 공부 열심히 해서 무럭무럭 자라나라!!!!!"

 

 

"....."

 


그렇게 놈은 환호성 하는 남자아이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곤.


우리 반 담임의 손에 이끌려 유유히 자취를 감추었다.

 


...

.....

 


그리고. 놈은 정말로.그로부터 4교시가 흐른 행복한 점심시간에


고기 만두와 김치 만두를 양손 가득히 들고서


애니몰 패밀리에게 둘러쌓여 있는 나를 구하러 와주었다.

 

 

 


\ 학교 운동장 벤치.

 

 


"...나..괴롭히면..재밌냐...?"

 

 

 

만두를 실컷 입에 쳐넣고 우물대는 놈에게 나즈막히 물어보면.


대답대신 해맑게 웃어보이는 은찬놈.

 

 


"......웃으라고 물어본건 아니다.."


"야.롯데 월드 갈래?"


".....내가 집에서 나가주길 원하는거지 너..-_-.."


"에이 젠장..단무지 한봉지만 더주지.."

 

 


..부스럭..부스럭..


은찬놈이 단무지 봉지를 뜯을때. 난 한숨을 길게 내쉬며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고.


이 상황에 맞는건 아니지만.


문득.


그날의 악몽이 어슴푸레한 기억을 헤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밥먹으니까.."

 

".어."

 

"...옛날 일 하나 생각이 난다.."

 

"뭔데..?"

 

"....윤영이라고..."

 


".....윤영이..."

 


"..응..친구 있었어..하나뿐인 친구.."

 


"...그 이름............흔한거냐...?"

 


"...글쎄...모르겠다..내가 아는건 그거 하나뿐인데..."

 

 

 

쓸쓸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면.


말없이 만두를 꾸역꾸역 입에 쳐넣는 은찬놈.

...

 

 


"...왜그래...?"


"..아니.."


"......안색 안좋은데...."


"이따 먼저 끝나면 기다려라.잠깐 들릴데 있는데.같이 가자."


"......야...그러다 체해..물이라도 마셔.."


...

 


......갑자기 왜 이러는거지 이놈이.....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아 펄펄 뛰던 은찬인. 그 후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만두를 싹싹


다 긁어 먹기만 했고.


나는 조금 걱정 되는 마음에.


참 착하게도 그날 수업을 마치고 후문앞에 꼼짝않고 서서 놈을 기다렸다.

 

 

 

 


\ 덕풍고.정평중 후문 앞.

 

 

 

기다리기 시작한지 20분이 좀 넘었을까.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걸어나오다가. 내 모습을 발견하곤 반가운듯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은찬이.

 

 


"오래 기다렸어??"

 

"...어..?아니..?!"

 

"...쟤...강하루 맞지...?"

 

"....아마도....."

 


"돌아갈래.."

 

 

"..됐어..다 봤는데 뭐..."

 

 

나와 십미터쯤 떨어진곳에서. 이미 아까전부터


오렌지족과 마주서서 조용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는 하루놈.


그랬기에 겹겹이 무장한 태연한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보면.


은찬놈은 내 손을 잡은채 그 앞을 향해 걸어나갔고.

 

 

 

"어..은찬아..."

 

 

 

반갑게 부르는 오렌지 족의 말도 무시한채.


일그러진 내 얼굴을 등으로 가리며 하루를 노려보았다...

 

 


"병신..."

 

 

나즈막히 들려오는 하루의 그 한마디가.


누구를 향해 쏟아진것인진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나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은 스스로도 대견한 모습으로


은찬이의 뒤를 따라가며 아픔을 삼켰고.

 

 

 


목적지 모를 어딘가로 향하는 내내.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지하철 안에서.


은찬놈. 내 눈물을 가려주기라도 하려는듯. 자신의 가슴팍에 내 얼굴을 묻히고서.


알아듣기도 힘든 작은 소리의 욕설만 되뇌었다.

 

 

 

그리고. 잠시후 우리가 아무런 대화도 없이 도착한곳은.

 

은찬이와 하루의 엄마가 살고 있는 한 고급 맨션의 주차장이였다.

 
"여기 앞에서 기다려.엄마한테 돈만 전해주고 오면 되니까.."

 

"응..."

 

 

힘없는 내 대답소리를 견디기 힘든듯.

 

 

"응!!"


씩씩하게 다시 외쳐오는 강은찬


"응!!"


"그래.응!!"


"응..!!"

 

 

 


그제야 안심한듯. 은찬이가 성큼성큼 맨션 안으로 들어가면.


난 있던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맨션 입구를 바라보았고.


그때 입구 앞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앞문이 열리며.


하루와 은찬이의 엄마가 우아한 몸짓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헉..

 


반사적으로 나는 경비실 뒤에 몸을 숨기고.


..아..저 아줌만 내 얼굴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에 다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면.


운전석의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고 맨션 안으로 허겁지겁 들어가는 아줌마.

 

 

 

신기하게도 차 넘버가 0224.


유민이 생일이랑 똑같다..


하얗게 퇴색된 유민이 얼굴을 간신히 떠올리면서. 멍하니 차를 바라보자니.


차는 요란스러운 마찰음을 내면서 그 모습을 감추었고...


그랬기에 난 은찬이가 맨션안에서 나올때까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루를 원망할수 있었다.

 

 

 

\ 평창동 집.

 

 

 

하루도 아줌마도 할아버지도 없는 집.


은찬이의 게임기 소리만 요란스레 들려오는 거대한 괴물집.


쇼파에 등을 대고 물끄러미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


신이 난 은찬놈은 몸까지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게임에 한창이였고..

 

 

 

"너..학생증 고백 들어봤냐.."

 

 

힘없는 나의 물음에. 은찬인 무슨말이냐는듯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그냥...학생증 주고..고백할까..?"

 

"야 지금 내가 쓰는 방법이 직빵이라니까!!!"

 

"직접 말로 안해도 되고..근데..하루도 그 고백방법 알고 있을래나..?"

 


"나만 믿으라니까!!너 나 못믿는거냐 지금!?!"

 


"...어....."

 


"내일 롯데월드 둘이 가면 직빵으로 먹힌다..봐라 니가."

 


"...롯데월드..."

 

"4년만에 가는 놀이동산..!!"

 

 

 

...저게..설마..자기가 가고 싶어서 저러는건..-_-..


한층 더 짙어진 의심스런 시선으로 놈을 보면.


오락기를 손에 들고 내 옆으로 엉금엉금 붙어 앉는 은찬놈.

 

 


"야.우리 가서 바이킹 타자 바이킹..!!"

 

"......-_-....."


"니가 6교시때 아프다고 양호실 간다 그래.난 음악이니까 땡땡이 쳐도 되거든.알았지?"

 

"나 간단말 안했는데..-_-.."

 


"교복입고 롯데월드 가는거 진짜 재밌겠다..그치!!?"

 


"..........나..학생증 주고 고백..."

 

"아!!내일 뭐 입고 가지!?"

 

 

대체 왜이러는건지 이놈은..


어제부터. 내가 무슨말만 할라치면 중간허리를 싹둑싹둑 끊어 먹고 있는 강은찬놈은.


설레는듯한 얼굴로 오락기를 꾹꾹 누르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고.

 


꽉 쥔 주먹으로 그 머리를 쿵 쥐어박으려는 찰나에.


현관문이 열리면서 오렌지족과 하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젠 아예 대놓고..집안을 불쑥불쑥 드나드시는군요 오렌지양


...

.....

 


피곤한듯한 기색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와.


나와 은찬이를 스윽 흝어보는 하루.


그러더니. 뒤따라온 오렌지 족이 밝고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은찬이에게 말을 건넨다.

 

 

 

"이따 우리 셋이 밤에 바다 갈거야."

 

"우리도 내일 롯데월드"

 

"아빠한텐 비밀이다.알지?"

 

"우리도 롯데월드 비밀이다."

 

"....그래..잘해봐..^-^.."

 

 

바다가 어쩌고 어쨌다는거냐 시방.


잘못 들은건가 싶어서. 스윽 고개를 들어서 보면.

 

 

하루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이곤. 다음으로 나를 향해 씩 미소짓곤.


작은 머리를 갸우뚱 하며 집을 나가는 오렌지 족.

 

 

말도 안돼..


바다라니...


단둘이 바다를 간다는거냐!?

 

 

하루가 계단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려는 찰나. 나는 자리에서 몸을 튕기듯 일어났고.


은찬놈이 한쪽 다리로 앞을 가로막는것도 아랑곳 않고.


홧김에. 그 특유의 성질 머리를 발휘하여 하루의 발목을 잡았다.

 

 

 


"잠깐만!!!!!!!!!"

 

"........................"

 

"할말 있는데.."

 

"무슨 말"

 

 


숨을 턱 막히게 하는 하루의 눈.


아니. 여기서 또 물러나면 안돼..


이번마저 도망치면. 영영 오렌지족한테 하루 뺏기고 말아.

 

 


"여기선 좀 그래.."

 


"......뭔데"

 

"이따..한시간 있다..집앞 공원으로 잠깐 나와.."

 


"....응.."

 

 


..하..됐다..


대답..받아냈다...!!!

 

 

정말이였다.


의외로 쉽게 하루는. 분명 '응' 이라는 대답을 뱉어냈고.


내가 심호흡을 천천히 고르는 사이.


어제보단 분명 부드러워진 표정을 하고. 조용히 2층 방을 향해 모습을 감추었다.

 

 


"됐다!!!!!!이제 됐어!!!!!니 도움 없이 내 힘으로 했다구!!!!"

 

 

 

하루에게 들릴지 말지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불끈 주먹을 쥐며 팔딱팔딱 뛰면.


오락기를 바닥에 내팽겨치고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무는 은찬놈.

 

 

 

"야!봐!니가 안도와줘두 했다 내가!!!!!"

 

"롯데월드 가면 된다 그랬잖아.."

 

"그래서 안가고 내가 받아냈잖아 약속!!"

 


"저 새끼가 이따 어떤말 할지 알고..넌 사람을 그렇게 못믿냐!!!내가 도와주기로 했으면


믿고 따라야 될거 아냐!!!!!!!!"

 

 

"...그래..고마워..여지껏 도와준것만 해두 고맙다구..-0-..근데 이젠 내가 알아서 할게.."

 

 

"롯데월드 가기로 했잖아!!!!!!!!!"

 

"가면 되지..-0-..갈게..가자구.."

 


"병신..짜증나......하마 같은게.."

 

 


..-0-.. 굳어버린 나를 보기나 한건지.


오락기를 발끝으로 밀어내곤 베란다로 나가버리는 은찬이.

 

 

 

"야.롯데월드 간다니까.가자구.누가 안간댔어..?"

 

"내 말 들으랬잖아!!!왜 니 멋대로 약속을 잡어!!"

 

"....그럼 어떡해 바다를 간다는데!!!!!"

 

"시끄러워!!!!!나한테 말걸지마.."

 

"야..너 진짜 좀 이상하다..!?왜 자꾸 심술이야 이자식아!!"

 

 

 

은찬놈이 나가있는 베란다 문을 향해 다가서면.


급기야는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마는 심술쟁이.


그리곤 나와 시선도 마주하지 않고 애꿏은 화분의 나뭇잎을 손으로 다 따버린다.

 

 


"너 진짜 이럴래!!미안해!!미안하다구 하잖아!!"

 

"...ㅗ..."

 

"..-0-.."

 

 


말없이 뻐큐를 날리는 은찬놈의 모습에.


이젠 나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학생증을 찾기 위해 내 방으로 향하는 길.

 

 

정말 이상해.


저 유치한 자식은 뭔가 나랑 꼬여도 단단히 꼬였어..!!

 

 


약속시간을 40분 가량 남겨놓고 그렇게 씩씩거리며


교복 주머니에 달려있던 학생증을 조심스레 츄리닝 쥬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느슨히 묶고 있던 머리를. 거울앞에 마주서 질끈 감고서..


떨리는 심장을 아주 잠깐동안 즐겨 보았다.

 

 

"..후...이거..받어라...아니..아니..이거..너 가져..아니야!!가지라니!!!"

 


그냥 말없이 건네면 될려나..


그러다 받지도 않고 그냥 뒤돌아 가버리면..?!

 

 

 

나 진짜 괜한짓 한거 아냐!?


아냐아냐 ㅠ0ㅠ 안그러면 오렌지 족이 갑자기 웨딩드레스 입고 나타나서


하루랑 식올린다고 할지도 몰라..

 


후..용기를 내자.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차이면 차이는데로..꿋꿋하게 살아가는거다!!!

 

 

 

으잡!!


또 한번 온몸에 기합을 넣고서. 주머니의 학생증을 마지막으로 단단히 확인한뒤.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하루 방이 굳게 닫혀있는걸 보면. 아직 하루는 나가지 않은것 같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


혹여나 싶어 거실 왼편을 바라보면. 이미 베란다에서 자취를 감춘 은찬이 놈.

 

 


에라.....모르겠다...


난..할만큼 했다구..그 천덕꾸러기한테..

 

 

 


\ 공원.

 

 


공중 화장실 거울앞에 서서. 몇번이고 표정연습을 하고 있는 한설.


작은 인기척이 들려와도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고 마는 한심한 한설.

 

 

 

"아아!!차라리 내가 쌍둥이였다면!!!ㅠ0ㅠ!!"

 


급기야는 터무니없는 고함까지 지르면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화장실 밖의 정황을 살폈다.

 

 


가만..


근데 하루가 학생증의 고백같은걸 까맣게 모르고 있다면..


아냐아냐.전학온지 일주일도 안된 내가 아는걸.


하루가 모를리 없지.

 


그렇게 오만가지 걱정으로 냄새나는 화장실을 서성대다가..


이젠 왔을까 싶어 또 문밖으로 삐죽 고갤 내밀면.


멀리서 조금씩 커져오고 있는 하루의 형체.

 

 

오오오!!온다!!와!!


하루가 온다!!!!!!!!!!!!!!-0-!!!!!!!!

 

 

후다닥.후다닥.


긴장된 마음을 도무지 추스리지 못한 나는. 꽁지에 불붙은 다람쥐처럼 이리저리 화장실 안을


뛰어 다녔고..

 

 

"..할수있다..할수 있다...한설...!"

 

 

 

이젠 5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하루를 바라보며...


정말 거대하고 둔탁한 심호흡과 함께. 천천히 화장실 밖으로 한발을 내딛었다..

 

 

그런데..그때..

 


"욱........."

 

 


갑작스레 내 입을 막는 누군가의 손.


그리고 화장실안에 도로 내 몸을 끌고 들어오는 누군가의 몸.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재빨리 고개를 돌려보지만..내 입을 막아쥔 그 손의 힘이 너무도 강했기에.


난 십여분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는 하루의 모습만 맥없이 바라보았고..

 

 

"우우우..우우우우!!!!!!!!!!!-0-"

 

 


목의 힘으로 소리를 질러 하루를 부르려고 하면.


그 손의 주인공은 더욱더 세게 내 입을 틀어 막아 버렸다.

 

 

 

이 강아지.가만 안둬.


진짜 죽여버릴꺼야.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손가락을 이빨로 강하게 물어 뜯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남자.

 

 

..잠깐만..

 

이 향수..


............이........냄새.................

 

...................너....................

 


...

 

 

 

"...............강은찬.........."

 

 

 

이윽고. 기다리던 하루가 공원 출구로 서서히 멀어져 갈때..


나는 손을 풀어준 놈을 향해 등을 돌려..


증오로 뒤범벅된 그 이름을 불렀고..

 

 

 

'타악!!!!!!!!!!'

 

이윽고 내 분노 서린 주먹이 놈의 담담한 얼굴을 가격하면..

 

 


..놈은..


은찬이는..


이빨자국 난 자신의 손바닥을 멍청히 내려 보다가.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벌개진 내 이마에 탁. 하고 붙인뒤.


하루와 형제임을 분명히 나타내주는 그 특유의 무표정을 되찾곤.


내 어깨를 툭 치며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


...............

 

 

 

 

덕풍고등학교 2-4반 강은찬.


姜誾燦


중앙에 새겨진 사진속.


지금보다 조금 더 앳되보이는 얼굴로.


오렌지 족과 조금 비슷한 다갈색의 머리를 하고.


개구지게 웃고 있는 은찬이.

 

 

 

 

강은찬.학생증.

 

 


...


........

 

 

난.


바닥으로 형편없이 곤두박질 친 그 학생증을 바라보며..


이것이 한시간후면 깨어날수 있는 꿈이기를...간절히 바랬다.

바닥에 떨어진 은찬이 학생증.

그리고. 이제서야 떠오르는 은찬이의 어색한 행동들.

 

 

 


"....미안..미안하다..강은찬..."

 

 

은찬이가 나가버린 화장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바닥위의 활짝 웃는 그 얼굴을 보며.


미안하단말을. 몇번이고. 몇백번이고 중얼거렸다.

 

 


하루가 아니면.난 안돼.


미안해 강은찬.


..정말 미안하다..

 

 

 


"...어우..깜짝이야..!!"

 

 

 

막 화장실에 들어온 남녀 한쌍이 깜짝 놀란듯 뒷걸음 질 칠때까지.


그렇게 난 은찬이를 향해 뒤늦은 대답을 하다가.


다음은 그애의 학생증을 집어들고. 비틀대며 화장실을 나섰다.

 

 

 

투둑..투둑..


오랜만에 들려오는 반가운 소리에..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비가..


내리고 있다..


언제부턴진 모르겠지만..


화장실 밖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이구 세상에.쫄딱 젖었네!!"

 

 

\ 평창동 집.

 

 

 

 

머리카락에서 비릿한 빗물을 뚝뚝 떨구며 집에 들어서니.


앞치마 차림의 아줌마가 요란스레 문을 열고.

 


"..하루는요..은찬이는요.."

 

힘없는 내 물음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젓는 아줌마.

 

 

 


"..아무도 안왔어요..?"

 

"무슨 일 있는거야..?"

 

"...사람 좋아하는거..되게 힘드네...."

 

"뭐..?"

 

"아니요.아니에요."

 

 


숨소리 하나없는 썰렁한 거실을 지나쳐. 방으로 오르는 길.


아까보다 훨씬 거세진 빗줄기는 어두컴컴한 내 방 창문을 둔탁하게 두드려 왔고.

 

 


난.


옷도 갈아입지 않고 머리도 가만히 내버려 둔채.


침대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고..

 

 


'.....내가..처음에 그랬잖아..강하루는 안된다고...

안된다고 내가 말했잖아....'

 

 

'강하루 질투심 끔찍할정도로 많으니까.나랑 며칠간만 붙어 다니는 모습 보이면.

강제로라도 너 데려갈걸...'

 

 

'어..아줌마..!설이 해산물 못먹는데 찌개에 새우 넣으면 어떡해!!!!!'

 

 

'화 하나도 안났어 나..그러니까 제발 울지마.....한설.....


그런 얼굴로 제발 울지마......."

 

 

하나둘씩 떠오르는 은찬이의 목소리.


그러고 보니까..그놈..내가 해산물 싫어하는것도 알았네..


하..그렇게 욕하고 구박할땐 언제고..그렇게 나가라고 심술 부릴땐 언제고..

 

 


멍청한 놈..


하필 나야..


왜 하필 한설이야...

 

 

그렇게..몇시간이 흘렀을까..아니면 몇분이 흘렀을까..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내 머리와 옷이 거의 말라갈 무렵.


문득 지나칠 만큼 그 애들의 인기척이 없다는 생각에.

 

 


쿠당탕..!!

 


의자까지 넘어트려 가며 하루의 방을 향해 다급히 뛰었다.


그리고..

 

 

 

"강하루!!"


다급한 외침과 함께 문을 열면...


여전히 어두컴컴하고 싸늘한 하루의 방.

 

 

 

..뭐야..이게 어떻게 된거야..

 

 


"강은찬!!!"

 


........싸한..정적...

 

 


....역시다....


은찬이도 아직이야....


뭐야..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야.

 

 

 

불안한 마음에 벽에 걸린 시계를 향해 시선을 던지면.

 


12:42분

 


망설임을 깨끗히 녹여버린 그 시간에. 난 공포스럽 기까지 한 새벽의 계단을 내려.

 

그리고 괴물같은 집을 벗어나.

 

4시간전 내가 있던 공원을 향해 이를 악물로 달리기 시작했다.

 

 


타닥타닥타닥.


바닥에 흥건히 고인 빗물이 튀길정도로.


하늘에서 대책없이 쏟아져내리는 비.

 

 

 

 

".....하루야....!!!!!!!강하루....!!!!!!!!!!"

 

 

이윽고. 공원에 가까스로 도착해 내가 외친 이름은..내가 찾은 사람은..


하루.

 

 

..하루..

 


은찬이에겐 미안하지만..


..하루..

 

 

 

"..강하루..!!..하루야..!!!"

 

 


..없어..


여기도 없다....


화장실 뒤도..벤치 위도..정문 앞에도..


아무데도..없다..

 

 


이자식들 이렇게 비가 오는데 대체 어디로 가버린거야..

 

 

밀려오는 걱정에.짜증에.불안함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원 후문을 향해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커다란 호랑이 동상 앞에...까맣게 웅크리고 있는 형체 하나가 보이고..


분명 낯익은 교복이기에..확실히 낯익은 머리이기에..


난 눈가에 서린 빗물을 스윽 훔쳐내며 조심스레 그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

 

 

바닷물에 담궜다가 금방 건져 올린것 마냥 온몸이 흠뻑 젖은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가느다랗게 떨고 있는 남자.

 

 

 

"...바보..아냐..."

 

 


조용한 내 목소리에.고개를 들더니.이내 눈이 마주치면.


활짝 웃어주는 바보같은 남자.

 

 

 

"뭐야 이게..나 안오면 그냥 가야지..어울리지도 않게 무슨 짓이야.


너 이러면 내가 멋있다구 소리라도 지를줄 알았어.."

 

 

"할말 있다고 했잖아."

 


"집에 와서 들으면 되지!!그게 뭐가 중요한거라구 여기서 이러구 있냐!!!!!"

 


"...중요한거 맞잖아..."

 


"니가 어떻게 알아 그걸..!!"

 


"..중요한거..맞잖아.."

 


".....대체..이게 뭐야..다 젖어서..너..일부러 나 할아버지한테 미움 받으라구 이런거지!!!"

 

 


씩씩하게 위장한 내 물음에. 작은 미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하루.


...후..

 

난 있는 힘을 다해 하루의 한쪽 팔을 어깨에 걸쳐 그애를 일으켜 세웠고..


호랑이에 칠해진. 채 마르지 않은 노란 페인트가.


빗물덕분에 조금 흘러 머리에 묻혀져 있었기 때문에.


난 상황에 맞지 않게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려야 했다.

 

 

 


"니 뒷통수. 노랗게 물들었다.아냐."

 

"....뒷통수 노랗게 물들었단 말 하려고 불렀습니까."

 

"....아니..요."

 

"..그럼.."

 

"이 말 하려고.."

 


"무슨말.."

 

"...이말..."

 

 


천천히 공원을 등지고 나오며.


아까부터 주머니속에 곤히 잠들어 있던 내 학생증을 꺼내.


시선도 마주하지 않고 하루쪽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면....


예상했던 침묵..


고마운 빗소리가 침착하게 묻어준 처량한 침묵이 날 비웃기라도 하듯 찾아온다.

 

 

그렇게 십초가 지나고..이십초가 지났을까..

 

 

더이상은 견딜수 없음에.


비 묻은 하루의 손을 보다가. 다음으로 하루의 얼굴을 보면..


그애. 학생증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꾸벅..내 쪽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다.

 

 

 


"....나 장난하는거 아냐...그러지마..."

 


"고맙습니다..."

 


"...뭐...?"

 

"다시 와줘서..고맙습니다.."

 


".............그럼...그 말 뜻...."

 


"..다시..와줘서.."

 

"..하루야..!!!!!!!!!!!"

 

 

 


그 한마디를 끝으로. 하루는 창백해진 얼굴을 내 가슴에 묻으며 무너져 내렸고.


난 슬픔과 기쁨.미안함과 걱정스러움.


그렇게 오만가지 감정을 짊어지고. 그리고 하루를 짊어지고.


집으로 오는 그 힘겨운 길을 혼자서 버텨야 했다.

 

 

 

\ 하루방.

 

.......


...............째깍..째깍..째깍..


벌써 한참..시계 바늘 소리만 들려오는 이방.

 

 


둘뿐이다.


아줌마도 퇴근하고.할아버진 아직 연락도 없으시고.


..은찬이..역시..아무런 소식이 없고..

 

 

이 넓은집에..그리고 이 외로운 방에..마지막으로 이 차가운 침대 맡에..


나와..하루..둘뿐이다..

 

 


"..으..응..."

 

 


침대에 누운채. 머리맡에 앉은 내 손목을 꽉 잡고..힘든 신음을 하는 하루.


푹 젖은 그애의 머리카락 사이로. 하나둘씩 땀방울이 흐르고..


조심스레 이마에 손을 가져대면..

 

 

 

"..맙소사..너..원래 이렇게 열이 많냐..!?아니..열이 많아..!?"

 

"...."

 


"약을 먹어도 이정도야!?남자가 뭐 이렇게 약해!!나도 멀쩡한데!!"

 


"되게......쪽팔리게...하네.."

 


"휴..내일 일어나자 마자 병원 가보자..."

 


"..응.."

 

 

"...할아버진..

할아버진 원래 이렇게 집 자주 비우셔..?"

 

 

"...아마.."

 


"은찬이도..?"

 

 

"..아마.."

 

 

"잠깐..이불 하나 더 꺼내올게..이불 어딨냐..압...-_-..어.딨.어."

 

 


말투 때문에 허둥대는 나를 보며.


손을 이마에 가져대며 피식 웃는 하루.

 

 


"...왜 웃냐..가..아니라..왜웃어.."

 


"좋아서."

 


"..으이씨.."

 


"이불 됐어.."

 


"너 자꾸 떨잖아.."

 


"이불 백개 덮어도..안나..그냥 옆에서 말해..니가.."

 


"말하면 낫냐..-_-..요. 피곤만 하지.."

 

 

"아플때..그냥 옆에 있어..그럼..날꺼 같애..안아플거 같애.."

 

 

가슴을 쿡쿡 쑤셔오는 그 말에.


들썩 거리는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앉히고. 이마에 있는 하루 손을 끌어다가


내 두 손안에 꽉 쥐었다.

..

 

.......

 

 

"....아무도..이렇게 안해줬구나..."

 


"..응.."

 

 

"할아버진.너희 아빤 잘해주시잖아.너한테.."

 

"....어릴때..


...감기가 잘걸렸어...그래서..많이 아프면..


컴컴한 방에..혼자 있으면..


의사가..다녀가고..다시..해가 뜰때까지..눈뜨고 가만히 누워 있는거야.."

 

 

 

..점점 잠기어 오는 하루의 목소리.


처음이다. 하루가 두마디 이상 말을 잇는건..

 

 

 


"..투정하면 안돼..떼도 쓰면 안돼..


은찬이가 걱정해주는 유일한 사람인데..들어오면 안돼..걘..내방에 못들어와."

 

 

"..왜..."

 

 

"옮으면 안되니까.."

 

 

"..뭐 그래..되게 살벌하네..씨.."

 

 


"그래서..그땐....누가 밤새 그냥 있어주면..아무것도 필요없으니까..


그냥 옆에만 있어주면..정말 좋겠다..그랬는데.."

 

 

"응.."

 

 

"...니가 처음이네..."

 


"........"

 

 

"근데..되게 따뜻하네......"

 

 


처음으로 보는 하루의 진짜 얼굴.


처음으로 들어본 하루의 진짜 목소리..


처음으로 알게된..하루의 진짜 하루..

 

 


손안에 있는 그 뜨거운 손을..더욱더 꼭 잡으면서..


나 역시도 애타게 느껴봤던 그 외로움에..조용히 고개를 숙여 눈물을 쫓아냈다.

 

 


".......내가..너 아플때마다...."

 

 


쾅!!!!!!!!

 

 


....그리고..그때...


내 힘겨운 대답 소리를 끊기라도 하듯. 요란스레 열리는 방문..

 

...

.....

 

..누군지..알것같다..


보지 않아도..누군지..알겠다..


난 아주 잠깐 하루가 눈치채지 못할 한숨을 내쉰뒤 천천히 문가로 고개를 돌렸고.

 

 


이윽고 그 문소리의 주인공. 두발자국쯤 안으로 들어서더니


나와 하루를 멍하니 응시하곤..

 

 


"......니방..가서..자..라..."

 

 

술에 잔뜩 젖은 목소리로. 내가 조마조마 겁낸 그 한마디를 건넨다.

 

 

 

"...싫어..."

 


.........

...........

 


조금의 간격을 두고


하루만큼 젖어버린 은찬이를 향해


단호한. 그러나 미안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설아..한설.."

 

"..어...."

 


"..니방..가서..자라..설아.."

 


".하루..나..있으면..안아프대..그래서..나 밤새 있을거야..."

 

"니방가서..설아..니방 가서 자라..."

 

 

 

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건지..몸도 가누지 못한채. 간신히 벽에 머리를 기대어


그 말을 계속 반복하는 은찬이.

 


.....

 

....입을 꾹 다문 나는..


이번엔 대답 대신..하루의 두손을 더욱 꽉 잡았고..

 

 

 

"...그게..대답이냐..."

 


이어서 들려온 그아이의 말은.


나를 더욱더 미치게 만들었다.

 

 

 

"..그래..."

 


"..그래..그럼..그래.."

 

"....응...그래..."

 

".......되게...간단하네...."

 

"...그러게..."

 


"....응..너무..간단하다....."

 


"..어..."

 

 

 


뭔가를 눈치챈듯한 하루는..가만히 나와 은찬이를 번갈아 보고..


원망스러운듯 나와 하루의 잡은 손을 보던 은찬인..


비틀대며 방을 나가버리는데..


..........

 

 


머리가...

 

뒷머리가..........

 


..............................

 

 

 

 

 


노란 페인트로 조금 물들어 있다.


눈물 대신.


그 노란 페인트가..한방울..두방울..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

 

 


호랑이 동상 앞엔..하루가..


뒤엔..은찬이가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하루를 동상앞에서 일으켜 세울때.


은찬이의 숨소리는 빗물에 묻혀 들을수가 없었다.

 

 

 

..난..몰랐다..


..뒤에 있던 은찬이를 몰랐다..


그리고..앞으로도 모를것 같다..


뒤에 있는 은찬일..모를것 같다..

 

 

 

 

 

 

................미안...............은찬아..........


정말 미안...........


....미안하단 말밖에 해줄수가 없어서..


정말...정말...미안...

쿠당탕탕..!!


쿠당탕탕....!!

 

 

 

밤새 열이 더 올라. 보는것조차 힘겨울만큼 아파하던 하루.

 

그 하루의 팔에 머리를 묻고..어느덧 잠이 들었던 걸까..

 

 

 

층계를 오르는 요란스런 발자국 소리에 놀라..

 

그리고 어느덧 어둠을 고스란히 데려간 햇빛에 놀라..

 

조심스레 눈을 뜨자니..

 

 

 

".....잘잤어..."

 

 

언제부터 일어나 있었던 건지.


하얗게 마른 입술 사이로 메마른 목소리를 건네는 하루.

 

 


"..아..!!아!!"

 

"..아..?"

 

"병원!!병원가야지!!나 진짜 미쳤나봐..야..일어나..병원가자.."

 

".....괜찮은데..."

 

...

 

 


"큰일났어!!설학생!!빨리 숨어!!빨리!!"

 


몸을 뒤척이는 하루를. 얼른 자리에서 일으키려는 찰나.


문을 벌컥 열어제끼며 다급히 외치는 아줌마.

 

 


...계단소리의 주인공이였나...?

 

 


고개를 갸웃하며. 파랗게 질린 아줌마를 바라보자니.


다음으론 날벼락같은 한마디를 내 귀에 던져놓는 아줌마.

 

 

 

 

"사모님 오셨다구..-0-..사모님..!!ㅠ0ㅠ.."

 

"네..!?"

 

"들키면 끝장이야..!아이쿠 세상에..세상에..이게 갑자기.."

 

 

..오..맙소사..-0-..


사모님이라니..


이 이른 아침에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이윽고..


이쪽을 향해 가까워오는 우아한 발걸음 소리.

 

 

 

"빨리..숨어..설학생..ㅠ0ㅠ.."

 


그리고. 이젠 절규에 다다른 아줌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잽싼 순발력을 발휘하여.


하루의 방에 딸린 화장실을 향해 후다닥 돌진을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후..


후...

 

우아아악..-0-..

 

 


금방이라도 튀어나갈것 같은 심장을 잡아 붙들며. 화장실 변기 위에 털퍽 앉았을때.


문 너머 사이로 들려오는.


금방이라도 깨질것 같은.

 

 

투명하고 창백한 하루엄마의 목소리.

 

 

 

"아..그러니까..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하루학생이...."

 

"됐어.나가봐."

 

"..네.."

 

 


곧바로...조심스레 닫히는 하루의 방문소리..

 

대체 저아줌마가 얼마나 무섭고 흉악스럽길래...

 

 

 

"네 아빤.아직도 안왔니?"

 

"...어.."

 

"또 어디가서 기집질 하느라 정신이 없나보다"

 

"....."

 


"넌 어떻게 된 애가 툭하면 아픈것 같다."

 


"....무슨 볼일이야..."

 

 

"계약서 해지 하려고 하는데. 네 앞으로 된거라 네 싸인 필요해.


후..번거로워 정말..여기다 싸인 하나만 해.."

 

 

 

..-0-..

 

 

저런..싹수국물에서 헤엄치는..-0-..


나는 조금씩 솟아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화장실 문가에 귀를 가져댔고.

 

 

 

"..땀 묻게 하지마..좀 닦던지 해라..보기 흉하게.."

 

 


..-0-..저..저것이 진짜 엄마란 말이냐..

 

 


"니 아빤 왜 모든 명의를 니 앞으로 하는거니..?진짜..이해 할수가 없어..


야!!종이에 땀 흘리지 않게 조심하래도..!!"

 

 

"......됐지...이제..나가..."

 


"은찬인.은찬인 학교 갔어?안보이는데"

 

 

"...몰라..."

 

 

"지 동생이 학교 간지 안간지도 몰라..?넌 아마 나 죽어도 눈물 한방울 안흘릴거다.


그것 뿐이겠어.은찬이 무슨일 생겨도 눈하나 꿈쩍 안할거야.."

 

 


우와와!!


진짜 저 여편네 갈때까지 가는구나!!!!!-0-


어느덧 내 손에 들려있던 하루의 칫솔이 두동강으로 부러지고..


나는 문꼬리로 계속 달려가려는 손을 간신히 억누른채 하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쪽은 몰라도..은찬이는 아니야.."

 

 

..그쪽..?


..엄마한테..그쪽...?

 

 


"너한테 그런거 바라지도 않아.그리고 너보다 먼저 죽을마음도 없다.


내가 누구좋으라고 먼저 죽어?니 아빠 좋으라고?주원이 좋으라구?"

 

 

 

...대체..어떻게 된거야..이집...


...재벌가 복잡한건 알겠지만..주원인 또 뭐구..무엇보다..


저년!!!!!!


저년 정말 들어줄수가 없네!!!!!!!!!!

 

 


"..나가..제발...."

 


"은찬이한테 감기나 안옮도록 조심해.날때까진 같은 밥상도 앉지 말라 이말이야.알아들어?"

 

".....나가....."

 


"난 니가 나 그런눈으로 볼때가 제일 끔찍스러워.."

 


"..."

 

 

 

이제 알겠어요.


이제 알겠네요.


하루가 왜 그런 무서운 표정을 갖고 있는건지..


어젯밤 본 진짜 모습을 왜 잃어버리게 된건지...

 

 

 

"인형눈도 너처럼 죽어있진 않을거다"

 

 


그렇게.여자가 감정 하나 없는 어투로 마지막 말을 던지곤.


방을 나서려 할때.


미안하지만. 내 쪽 문이 먼저 열렸다.


하루의 방문이 아닌. 내 방 화장실 문이 먼저 열렸다.

 

 

 

타앙...


문고리가 벽에 세번가량 부딪히며..여자의 시선을 잡아끌고..


이윽고 여자가 날 보며 창백히 질린 얼굴로 뒷걸음 쳤을때..

 

 

 

 

"초면에 죄송합니다.이런데서 불쑥 나와 죄송합니다.


지금 그쪽한테 이거 두개는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 말씀 먼저 드립니다."

 

 


"..너..너...."

 

 


"그런데요!!!!!!


하루 그쪽보다 먼저 안죽습니다!!하루 눈!!유감이지만 그쪽보다 몇천배는 더 인간답고요!!


그쪽!!그쪽이 하루보다 몇만배는 더 끔찍스럽습니다!!!!!알아들어요 내말!?!!"

 

 

"..아...아..세상에.....아..."

 

 


"아아!!!!그쪽 말중 맞은것 딱하나 있긴 한데요!!!!!!!!!!!"

 

 

"당장 나가!!!!!!!나가!!!!!!!!!!"

 

 

"그쪽 죽어도 하루 눈물 한방울 안흘릴거라는거!!!!!!!!그건 내가 장담하네요!!!!!!!


하루뿐 아니라 그 누구도요!!!!!할아버지도!!은찬이도!!!!!!!!!!"

 

 

 

짜악..!!

 

 

순간.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여자의 차디찬 손이.


막을수 없을만큼 세차게 내 왼쪽 뺨을 내리치고..


..이내..그여잔..한참동안 잊고 있던 내 죽은 얼굴을 바라보고..


겁에 담근 표정으로 시선을 외면한다.

 

 

 


"그리고 나도..."

 

 


내 마지막 말이 침착히 여자의 따귀 한대에 맞섰을때..


어느덧 침대에서 나와 내 손을 움켜잡는 하루.

 

 

 

"....또 얘한테 손대..."

 


"....너희아빠..너희 아빠짓이야...그렇지..너희 아빠 짓이야..이거..너희 아빠 짓이야.."

 


"그럼..당신 죽이고..나도..죽어.."

 

"미쳤어....단단히..미쳤어...."

 

 

어딘가에 홀린듯한 눈으로..중얼중얼..입으로 말을 삼키며..얼굴을 감싸쥐는 하루의 엄마.


..아니..


이 집의 주인 아줌마..

 

 

 

"....병원가자..얼굴..빨갛다.."

 

 


그리고. 내 손을 잡은 하루는. 자신의 처지도 잊은채.


뚜벅뚜벅. 걸음에 힘을 싣고. 침착하게 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세상에..사모님이 아신거야..?사모님 아셨어..!?"

 


거실 쇼파에 앉아 안절부절 못하다가.


현관으로 향하는 우릴 보고. 겁에 질린듯 물어오시는 아줌마.

 

 


"거기서!!!!!당장서!!!!!!!!!!"

 

 


이내 우리 대신 대답이라도 해주듯.


층계위에 선 이집 여주인은 창백한 고함을 내질렀고.

 

 

더 들을것도 없다는듯.


하루는 나를 끌고서 정원을 지나..


그리고 대문을 지나..


반팔차림으로..유난히 추운 바람을 막아서며 동네의 비탈길을 내렸다.

 

 

 

 

\ 평창동

 

 


"잠깐..잠깐..하루야..멈춰봐.."

 


".........."

 


"강하루!!멈춰봐!!!!!!!!!!!!!"

 

 

 

버티고 선 내 몸을 보고..그제야 그 분노의 걸음을 멈추는 하루.


난 일단 내가 걸치고 있던 교복 마이를 그애에게 걸쳐주려 했지만.


하루는 재빨리 그 손길을 뿌리치며 마이를 바닥으로 떨군다.

 

 

 

"..아프잖아 너!!!!!!"

 


"너도 아프잖아"

 


"뺨한대!!이까짓거 암것도 아냐!!간지럽지도 않아!!너 지금 열 많이 나!!많이 아파 너 지금!!

 


"니가 더 아파.."

 


"아니라니까 그래!!!!!!!"

 

 


발악에 가까운 내 고함에.


말없이 마이를 주워들어.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그 마이를 억지로 내 몸위에 걸쳐주는 하루.

 

 


"그럼 나도 안입어.너도 입지마.우리 둘다 얼어죽자.됐지.?"

 

"...죽자..고..."

 

"그래.우리 둘다 얼어 죽어 버리자!!!!!!!"

 

"..그래...죽자..죽어버리자..."

 

"병원가자.일단 병원가서 얘기해.."

 

"..죽자..."

 

 

 

..그여자 때문이야..


그 여자 때문에..다시 이렇게 되버렸어..


어젯밤에 잠깐 만났던 그 다정한 하루가. 그 예쁜 하루가.


그 여자 때문에 또 이렇게 변해버렸어..

 

 


피가 조금 스며 나올만큼 입술을 꽈악 깨물면서.


하루의 뒤를 따라 비탈길을 내렸다.


그런데 그때. 막 앞을 지나쳐 가려던 외제차의 뒷창이 열리고..


50대 후반쯤 된 대머리 남자가 하루를 향해 말을 건넨다.

 

 


"어이!!강회장 아들 아냐!!"

 

"..."

 

"아니 뭐야!!그꼴을 해서 어딜가!!"


"....."

 

"어이!!어이!!"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잡은 내 손이 저릴만큼 더욱 강하게 힘을 주고.


계속해서 비탈길을 내리는 하루.

 

 

참을수 없을텐데..


견디기 힘들텐데...

 

이런 내 걱정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하루는 중간쯤 가다 걸음을 멈춰 이를 악물고..


또 그 중간쯤 더 가다 걸음을 멈춰 이를 악물고 하면서..


내 불안과 초조함을 절정에 이르게 만들었고..

 

 

 

이윽고 동네 입구에 다다랐을때.


난 그애를 잠시 벽앞에 기대 세워둔채.


택시를 잡기 위해 허둥지둥 차도앞으로 손을 흔들어 댔다.

 

 

"...택시..!!..택시..!!"

 

"...."

 

 

 

이른 아침이라 그런건지.


평소에는 눈에 잘만 밟히던 택시가 한대도 나타날 생각을 않고..

 


"하루야!!참아!!조금만..!!"

 

 


조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물끄러미 보는 하루를 향해.


든든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을때..


갑자기 눈앞에 멈춰선 하얀색의 중형차 한대..

 

 

동네 입구로 들어가겠거니 하고 생각한 그 차가. 갑작스럽게 내 앞에 멈춘것을 보며.

 

나는 불안한 예감에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사렸고..

 

 


"..한설..맞지요.."

 

 


그 순간 차에서 내린.


작은 키에 메마른. 그리고 쭉 찢어진 눈에 까만 피부의 사내는.


더 기다릴것도 없다는듯 내 손을 덥썩 잡아 버렸다.

 

 

"그런데.너 누구야"

 

"잠깐 가서 얘기좀 하십시다..잠깐이면 됩니다.."

 

 

 

 

".....손 놔......"

 

이윽고.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


등뒤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하루의 목소리.

 

 

 

"얘기좀 하려 합니다.그쪽은 관계 된 일 아닙니다.."

 

"여기서 해."

 

".....곤란합니다.."

 

"뭔지 아니까.여기서 해."

 

 


그때. 반쯤 열린 창문을 향해 까딱 고갯짓을 해보이는 남자.

 

 

...끝이다...

 

 

순간 차문이 벌컥 열리며 하루의 덩치 두배만한 남자 두명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내 양팔을 잡았고.

 

 

 

"하루야 경찰에 신고해!!!!!차 넘버 외워서 경찰에 신고해!!!!!!!!!!"

 


다음 일을 우려한 내가 그 한마디를 외치기 전.


이미 하루는 그 덩치중 하필 더 풍채가 좋은놈을 바닥에 눕혀버렸으니..

 

 

"안돼!!!!!!!!!!!!!!!!!"

 


당연히..그 다음일은..


안봐도..비디오..


힘 하나 없는 하루가..그 놈들을 견뎌낼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상황은 역전..


덩치가 다시 하루 몸 위로..


..그리고..그 무쇠같은 주먹에 조금씩 입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하루는.


그 순간까지 손을 가까스로 뻗어서.


나를 차에 구겨 넣으려는 작은키 사내의 발목을 잡았다.

 

 

 


"신속히 해!!눈에 띄이면 안된다.그쯤해둬!!"

 

 

"아니.이 어린것이 때렸지 않습니까"

 


"걔 아빠라도 알면 끝장이란 말야!!!!!!!!"

 


"..신발....."

 


"빨리 타!!!!!!"

 

 

 

....그 여자...미쳤어...


미친 여자야...


이거..애들 장난이 아냐..정말이야..정말이다..

 

 

"하루야..더이상 오지마..경찰서에 신고해..차 넘버 봤지..하루야..강하루..!!"

 

 

 

내 말이 들리기나 하는건지.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입가에 묻은 피를.


작은 상처로 범벅되있던 손목에 한가득 묻히는 하루.

 

 

이내. 나를 중간에 앉힌 덩치 하나와 키 작은 사내.


그리고 하루를 바닥에 처참히 짓밟아 뭉갠 덩치가 운전석에 올라탔을때..

 

 

 

"개 쓰레기같은 새끼들.."

 

 


내가 이 한마디를 나즈막히 읇조렸을때..


마지막으로..운전석의 덩치가 엑셀을 힘껏 밟았을때..

 


...

 

 

"하루야!!!!!!!!!!!!!!!!!!!!!!!!!!"

 

 


갑작스럽게 벌어난 끔찍한 일.

 

 


..하루..


아무 표정없는 하루. 양팔을 벌린채 차 앞을 막아섰다.

 

 

아무것도.


죽음도.상처도.피도.아무것도 두려운것이 없는듯한.


모든것을 체념한듯한 표정으로.


아니.어쩌면 작은 웃음이 서려있는 흔들림없는 얼굴로.


급출발한 차 앞을 막아서 버렸다.

 

 

 


'그래..죽자..죽어버리자..'

 

 

 

 

멍한...귓속으로...


하루가 좀전에 했던 그 한마디가 내 몸을 굳혀버리고..


멍한...눈앞으론...


차에 튕겨 도로 한복판에 쓰러진 하루의 몸이 들어왔다.

 

 

 

 

"하루야아!!!!!!!!!!!!!!!!!!!!!"

"하루야!!!!!!!!!하루야!!!!!!!!!!!!!!"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아들인데...


자기한텐 하루가 첫째 아들인데!!!!!

 

 

 

 

옆에 앉은 덩치의 무릎을 딛고 올라서 차를 튀어 나가려 하는데.


그러기 전 재빨리 내 옷깃을 잡아 올리는 놈.

 

 

 


"놔!!!!!!!!!!놔!!!!!!!!!!!!!"


"어떡해야 합니까."

 

 


하루 무슨일 생겼으면 니들 가만 안둬..


아니. 무슨일 안생겼어도 가만안둬..

 

 


쾅쾅쾅!!


발과 주먹으로 문을 마구 두드리는 사이.


하루 주위로 사람들이 몇몇 모여들기 시작하고.


지나가던 차들도 하나둘씩 급정거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말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입을 여는 작은 사내.

 

 

 


"..이쪽 책임 아냐..저놈이 뛰어든거 목격한사람도 있어.."

 


"이 기집앤 어떡하죠"

 


".....후....난리났군..."

 

"목격자가 너무 많은데요"

 

 

덩치의 걱정스러운 말에. 사내가 창밖을 향해 고개짓을 한번 하면.

 


"운좋은줄 알아라.다음에 보자."

 

 

차 문을 쾅 열고서. 나를 도로 한가운데로 휙 던지는 덩치.

 

 


그러면 나와있던 사람들이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놀라 비명을 지르고..


그들이 탄 흰 자가용은.


급정거 하는 차들을 가로질러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하루야..하루야..!!!!!!!!!"

 


"..어떻게 된거에요..?이 차가 저 학생 친거에요?!"

 


"..제발..제발..!!!!!제발..!!!!!눈떠!!!!!!!!눈떠!!!!"

 


"..-0-..어머..뭐야..뺑소니야..?"

 

 


수근대는 두 남녀를 밀치고 바닥에 쓰러진 하루 앞에 털퍽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아이 이름을 부르는것도 잊은채.


커다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마구 떨어대기 시작했다.

 

 

 


".......나.........."

 

 

 


....그리고....조그맣게 들려오는 하루의 목소리.

 

 

 


"괜찮아!?!정신들어!!?!나 누군지 알겠어!!!!!!!!!"

 

".........다르지......."

 

"..아.........."

 

 

 

알수없는 하루의 말에.그리고 기적처럼 들을수 있게된 하루의 목소리에.


작은 신음과 함께 그 아이의 몸위에 쓰러져버린 나..

 

 

 

'삐용삐용삐용삐용'

 

 

 

이내...귓전에서 싸이렌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고..

 

나는 하루의 가쁜 숨소리를 분명히 확인한뒤에.

 

악착같이 붙들고 있던 정신을 조금씩 놓아 주었다.

 

 

 

 


\ 병실

 

 

 


"....저기요...저기요..."

 

......

 

 


"어떡하죠..?정신을 잃은것 같은데..입원 시켜야 할까요..?"

 

"단순한 기절이에요.뺨 몇대만 살짝 두드려봐요.."

 

"네.."

 

 


톡톡..

 

 

 

....조심스런 여자의 목소리 다음에..뺨에 닿는 차가운 감촉..

 

병원이다..이 냄새....병원임에 분명하다..

 

 


좀전에 일어났던 끔찍한 사고를 떠올리며. 익숙한 그 알코올 냄새에 번쩍 눈을 떴을때.


걱정스런 얼굴로 내 이마를 짚어보는 예쁜 얼굴의 간호사.

 

 

 

"하루는요!!!!!!!!!!"

 

"...하루요..?"

 


"...하루..하루.."

 

 

 


조심스레 주위를 살펴보면.


내가 누워있는곳은 병실 문앞에 놓인 작은 의자고.


간호사 뒤엔 의사가.그 의사뒤엔 길다란 침대가 놓여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침대위에 보이는 손가락은..

 

 

".....하루야...."

 

 


더듬더듬 부르면서.조심스레 다가간 침대 앞.

 

그리고 그 침대위. 긴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깐채 잠들어 있는 하루.

 

아니.잠들어 있다고 믿고 싶은 하루.

 

 


차마 무언가를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어젯밤처럼 하루의 손을 꽉 움켜 잡았다.

 

그러면 걱정하지 말라는듯. 의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침착히 말을 꺼낸다.

 

 


"내상도 외상도 전혀 없으니 안심하세요.지금은 쇼크로 잠시 잠든것 뿐입니다."

 

 

"다친데가 없다구요.!?차랑 박았어요!!바닥으로 쓰러졌다구요!!"

 

 

"다행히 차가 출발하자 마자 충돌했기 때문에.


허리 부분에 조금 긁힌 상처 난것 말곤 아무 이상이 없어요.


그런데...이 학생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는게 사실인가요?"

 

 

"......네..."

 


"흠......어쨋든..심각한거 아니니 긴장 푸세요.환자 몸상태는 건강합니다.


열이 좀 많이 나긴 하는데..이건 단순한 감기 몸살이고요"

 

 


"..하..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하루의 배 위에 머리를 묻고 두손을 감싸 쥐면..


분명히 전해져오는 하루의 심장소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최소한 2박3일은 입원해 있어야 해요"

 


"...네..?"

 


"며칠 후에 후유증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병원에 있으며 천천히 경과를 지켜봐야 되거든요."

 

"참..!!다리는요..!?!"

 

"..다리요..?"

 


"원래 왼쪽 다리가 불편한데..거기에 어떤 충격이 왔다거나.."

 

 

다시 마주친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하며 하루의 다리를 쓰다듬는 의사.

 

 


"전다고요?왼쪽 다리를?"

 

"..네.."

 

"촬영 했을땐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아니요....절어요..다리를..."

 


"...뭔가..잘못 알고 계신거 아닙니까..?"

 


"..네...?"

 

 


의사는 절대 그럴리 없다는듯 하루의 왼쪽 다리를 꾹 한번 더 눌러보이고.


간호사는 흘끔흘끔 하루의 얼굴을 훔쳐보고..


갑작스런 혼란에 내가 잠시 기억을 더듬는 사이..

 

 

 

'쾅!!!!!!!'

 

 

우리 세사람을 한꺼번에 놀래키며.


누군가가 병실안으로 들이 닥쳤다.

 

 

"왜이러세요..!!"

 


간호사의 연약한 몸을 뿌리치고 침대로 돌진하는 남자.

 

 

..할아버지..

 

굉장히 화가난 얼굴의 할아버지.


순간..참았던 눈에 왈칵 눈물이 솟고.

 

 

 

땡깡 쓰는 어린아이처럼 할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말씀 드리려 할때.

 

뒤이어 오렌지 머리가..그리고.....그여자가...

 

하루와 은찬이의 엄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어나!!!!!!일어나 이자식아!!!!!!!!!!"

 

 

...?!

 


여자의 앞에 다가서기 위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누워있는 하루의 멱살을 움켜잡는 할아버지.

 

 


"...후..."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 악마년이 코웃음을 치면..

 

나는 넋을 잃고 있다가 재빨리 할아버지의 양팔을 붙들었고..

 


"눈떠!!!!!눈뜨란 말이야 이놈아!!!!!!"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할아버진 차에 치인 자신의 아들을 무섭게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차에 치였단 말이에요!!!!!하루 다쳤어요!!!"

 


"니놈을 대체 언제까지 지켜봐야겠어..대체 언제까지 이 아비를 괴롭혀야겠어!!!!!"

 


"할아버지!!!대체 왜 그러세요!!!!대체 왜이래요!!!!"

 

 

 

간호사와 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병실을 나갈만큼.


할아버지의 서슬퍼런 절규는 계속 되었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내가 할아버지의 허리춤을 붙들려는 찰나..


그 악마가...무서운 악마가...아무렇지 않은듯한 얼굴로 내게 말을 건넸다.

 

 

 


"죄송하지만. 그쪽은 좀 나가주시겠어요..?가족 일이니까.."

 


".....당신..."

 


"좀..나가주세요..^-^.."

 

 

"..다 알아..나..당신이 생각하는것만큼 바보 아니야.."

 

 

"..그게 무슨말이죠..?"

 


"당신이!!!"

 

 

 


아니야..


...아직 안돼..


...여기서 이런다고...아무도 내말 믿어 주지 않아....


하루가 분명 뛰어든거고..이 여자가 그놈들 보냈다는 증거도 없어..


게다가..유일한 목격자 하루는..잠들어있어..

 

 


하루가 정신 차리면..


그때..당신 부숴줄게 내가.


그때 당신 죽여줄게 내가..

 

 

"무슨 말이냐고 묻잖아요"

 


뻔뻔스런 얼굴로 웃음을 머금고 재촉하는 여자.

 

 

"...며칠안에 알게 되요..며칠안에.."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네.^-^.그리고 이제 그만 나가달란 말 안들려요?"

 

"..."

 


"가족이 왔으니까..그만 가주세요..^-^.."

 


"..나도..마찬가지에요.."

 


"..뭐라구요?"

 


"나도..가족이라구.."

 


"호호호호호.이 학생이 지금 뭐래요.?호호호호"

 


.....

 

 


.....금방이라도 손을 뻗어 뺨이라도 한대 후려 갈기고 싶지만...


나는 입술을 꽈악 물며 그 어마어마한 분노를 참아야했고..


비로소 하루에게 손을 떼신 할아버지는 비틀대며 의자에 주저앉아 버리셨다.

 

 


"우리 호적에.이런애가 있나요 여보?"

 

"..."

 

"우리 호적에 얘 이름이 올라와 있어요 여보? 내 배에 이애 들어있던적이 있나요?"

 


"....그만해..당신..."

 


"나도 모르게 잘도 이런일 벌이셨어요..같은집 안산다고 이래도 되는거에요..?"

 


"...그만해..지금은 하루 문제가 우선이니까.."

 


"우리 호적에 그쪽 이름은 없답니다.그러니.우리 아들 병실에서 좀 나가주시겠어요?"

 

 

....하...

 

터져나오는 눈물을 꾹꾹 집어 삼키며..할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면..


그는..힘없이 내 허탈한 시선을 외면하고..

 

 

 

"그럼 저 여자는요.."

 

 


나는 침대 곁에 서서 눈물을 글썽이는 오렌지족을 가르켰다.

 

 

 

"우리 가족이에요..^-^.."

 

 

주저없이 터져나오는 여자의 대답.

 

 

......가족....?

 

저여자랑 하루를 정혼이라도 시키겠다는건가....

 

원망의 눈길로 오렌지족을 보면..증오섞인 얼굴로 내 눈길에 대응하는 그녀.

 


...


...

 

그래도..할아버진 다르다..


할아버진..할아버지니까 다르다.


나 처음 만난날..많이 아팠지..라고 물으시면서..


나 보듬어 주셨다..나 안아 주셨다..

 

 


"할아버지.."

 


"..."

 


"저 여기 있어도 되죠...그쵸.."

 

"..."

 


"저도..같은집에..함께 사니까..하루 옆에 있어도 되죠.."

 


"...후.."

 

 

"비록 호적에 이름 없어도..피 한방울 안섞였어도.."

 


"..집에..가있는게 좋겠다..하루 별 이상 없다니까..걱정말고.."

 

 

"별 이상 없어도 걱정되는데요..그냥 있으면 안돼요?


너무너무 걱정되서 그러는데..그냥 있음 안돼요...?"

 

 


"...우리끼리..가족끼리..할 얘기가 있다..미안하다.."

 


...


...........우리끼리...........


..가족끼리..............


..............

 

 

 

"....알겠습니다..."

 

 

여자의 소리없이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난..할아버지의 뒷통수에 대고 꾸벅 인사를 한뒤.


그리고 여전히 눈감은 얼굴의 하루를 몇초간 바라본뒤.


오렌지쪽엔 눈길도 주지 않고 조용히 병실을 나와 버렸다.

 

 

...끼이이익...


..문을 닫고서..


병실 앞 복도에 힘없이 주저 앉아 버리면..


눈에 들어오는 '705'호 문패.

 

 


....그 후로..병실안에선 할아버지와 여자의 목소리가 작게..다시 크게..


그러다가 다시 작게..


감정없는 억양으로 천천히 들려오고....


난 눈한번 깜빡이지 않고서..


그 앞에 멍청히 기대 앉아 나와 윤영이의 그 노래를 중얼 거렸다..

 


..........

 

.................

 

 

내가 잠든 사이에 거짓말처럼 날 데려가주길.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주길.


외톨이의 눈물을 기억해주길♪외톨이의 사랑을 노래해주길.♪


어제도 혼자였던 외톨이를


오늘도 혼자였던 외톨이를..♬

 

 

 

외톨이를..외톨이를..


어제도 혼자였던 외톨이를..오늘도 혼자였던 외톨이를..


내일도 혼자 지낼 외톨이를..

 

 

 

이집에 온뒤 처음으로.


머리로만 알고 가슴으론 부정했던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아무리 발악해도.아무리 숨죽여도.


난 할아버지네 집 울타리엔 들어올수 없다..


이유도 모른채 얹혀 살게 된 난. 아무리 발버둥 치며 매달려도 언젠간 나가야 한다.

 

 


모르는척..사실이 아닌척...


외면하고 또 부정하려 했지만..


언젠가...난 다시 혼자가 된다..

 

 


평생 모르고 싶은 그 이유가 밝혀지는 날에.

 

 

 


"잠깐만..좀 비켜주시겠어요.."

 

멍해 있는 나를 간호사가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볼때..

 

 


얼마나 시간이 지난걸까..


어느덧 복도 창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둑어둑 해져 있었고..


난 문득..


아무 소식없는 은찬이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놈. 학교 갔었으니 몰랐겠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어..!!

 

 

 

끼이이익.


간호사가 문을 열고 병실안으로 들어갔을때..

 

 

그리고 5시간 넘게 그 안에서 꿈쩍않고 있던 사람들중 하나.


오렌지족이 피곤한듯한 기색으로 병실을 나올때.


난 꼿꼿히 다리를 펴고 일어나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저기요..!!"

 

 


등뒤에서 들려오는 오렌지 족의 목소리.


지금 두번째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목소리.

 

 


"우리 가족이에요^-^"

 


그 여자의 한마디가 떠오르면서..


나는 걸음에 속력을 붙혀 급기야 엘리베이터가 아닌 층계를 택했고..

 

 


"잠깐만요!!!!!!!할말이 있어요!!!!!!!!"

 

 


오렌지족의 목소리가 좀더 다급히 변해갈때.


형편없이 풀린 다리를 몇번이고 꺾어가며 계단을 내렸다.

 

 

 

 

그래.은찬이한테 가서 말하자.


은찬이라면 믿어줄거야.


그 여자가 한짓이라는거 믿어줄거야.


은찬이도 하루가 다친거 알면 분명 달라질거야.

 

 


타닥타닥타닥.

 

 


난생 처음 보는 병원에서 반팔차림으로 뛰쳐나와.


지나가는 환자를 붙들어 이곳의 위치를 묻고


집에서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


가까스로 집앞에 도착했을때..

 

...

 

 

"어..지금 와..설학생..?!"

 

 

 

긴 코트를 단단히 차려입고 대문을 나서던 아줌마.


택시에서 지금 막 내린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 앞에 마주서고..

 

 

"하루 지금 막 정신 차렸다며..?"

 

"..어떻게.."

 


"집으로 전화 왔지.."

 


"..은찬이도..알아요..?"

 

"은찬인 아까 알았지.."

 


"....어때요..좀..괜찮아요..?"

 


"어휴..난리도 아냐..들어가봐 좀.."

 

"...왜요..?!!"

 


"..글쎄..들어가서 보래도..퇴근시간도 아닌데 쫓겨나다시피 가는거야 나 지금.."

 

 


넌덜머리 난다는듯..고개를 저으며 총총 걸음으로 내 곁을 지나치는 아줌마.

....

 

 


이 자식..설마..물건을 다 때려 부순다거나..


울며 불며 소리 치고 있는건가...

 

 


은찬이에 대한 걱정에 잠시 자리에 서서 망설이다가


더듬더듬 정원을 가로지른뒤


집안의 시끌벅적한 소리에 무언가 수상쩍은 것을 느끼며


조심스레 현관앞에 다가서고..

 

 

...

.......

 

 

 

그러면 잠시후.


그 난리가 어떤 종류의 것이였는지...


두눈 똑똑히 확인할수 있었다.

"야!!얘네 아빠 갑자기 들이닥치는거 아냐!?!?"

 


"병원에서 밤샌대잖아!괜찮아!괜찮아!!"

 


"근데 성구 이새끼 어디갔냐!?"

 


"지 애인 끼구 이층 올라가든데"

 

"낄낄낄.음흉한 새끼.."

 

 


.......이게.....대체....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이야......

 

 


현관문 앞에 서서 정체불명의 목소리들에게 귀를 기울이다가.

 

설마 아니겠지..하는 불안감에 천천히 문을 잡아 당기면..

 


'쿵쿵쿵쿵.♬♪!!!!!!!!'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커다랗게 울려퍼지는 음악소리.

 

 


............후........

 


....신발을 벗고....

 


큰 심호흡을 내쉬면서 거실로 들어섰다.

 

 

 

그러면 눈앞에 벌어진 개버러지 같은 풍경들은.


폭발중에 간신히 억눌렀던 내 머리를 기어코 터트리고 말았다.

 

 

 

"어?!누구시래!?!?!"

 


"...그러게..-0-..?"

 

 

 

넓다란 거실에 놓여있던 쇼파며 장식장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난잡한 바닥엔 할아버지가 취미로 모으신 비싼 양주들로 가득하고..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놈년들은 바닥에 앉아 술을 먹거나 뒹굴고 있고..


오디오 볼륨은 최고로 올린건지 금방이라도 귓고막이 터져나갈것만 같다.

 

 

 


"...누구세요..?은찬이 초대 받구 오셨남유..?"

 


"강은찬 어딨냐.."

 

"...-0-...여친인가..은찬이..?바람피는거 잡으러 왔나..?"

 


"아우 야..넌 입좀 닥쳐.."

 

 

..후...


조잘대던 남자의 입을..학교에서 몇번 본듯한 여자아이가 발로 막아버리면..

 

 

"이 기집애가 드럽게!!!!!-0-!!!!"

 


남자는 양주병을 번쩍 든채 여자의 입에 넣는 시늉을 하고.

 

 


이건 그야말로..


....그날 나나언니의 가게에서 본것보다..


열배는 더 지독하고 고약한 퇴폐 유흥업소 같다.

 

 


자그락..자그락..


흩어진 과자봉지를 천천히 지저밟으며 거실을 지나치면.


술에 잔뜩 꼴아 내 발목을 붙들고 엎어지는 덕풍고 교복차림의 놈.

 

 

 

 

"히야히야 호.-0- 내가 짝이 없는데요 나랑 좀 놀아주면 안될까"

 

".........놔라.."

 


"은찬놈은 벌써 벌써 딴여자랑 쪽쪽 대는데.나랑 좀 놀아주숑!!-0-"

 

"..그놈..쪽쪽대는거..상관없다..나랑.."

 

"그럼 나랑 놀아주...와아악!!!!!!!!"

 

 

내 무지막지한 발길에 채인 남자가..얼굴을 감싸쥐며 뒹굴면..


음악에 맞추어 이리저리 몸을 흔들다가.혹은 술을 물먹듯 들이키다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7명의 아이들.

 

 


"어머..쟤..뭐야...???"

 

"..강은찬..이층에 있지.."

 

"야!!너 이기집애!!그렇다구 발루다가 내 얼굴을 차냐ㅠ0ㅠ!!!"

 

 

 

얼굴을 감싸쥐고 뒹굴던 놈이 일어 났을때.


난 그 한심스런 인간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아까 병원 층계를 내렸던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엔 2층으로 향하는 층계를 올랐다.

 

 


바닥에서 미끌거리는 독한 냄새의 술들..

 


..이놈..집을 망가트리려고 작정을 한건지..


정말 발디딜틈없이 온사방엔 술과 벗어던진 교복 마이들.


게다가 여자의 속옷도 보인다.

 

 


'...하아...............'

 

 

이젠 정말 한계에 다다른 마지막 분노를 뱉어내고..


굳게 닫힌 내 방문을 거칠게 열었을때..

 


...

 


"어머 깜짝이야!!!!!!!!!!"

 

"우아아악!!!!!!!-0-"

 

 


...내 푹신한 양털 이불위에서 요리조리 뒹굴고 있는 한쌍의 남녀...

 

 

덕풍고 교복....

 

이 낯익은 것들은..


학교뒤 쓰레기장 청소하러 가면 그 뒤에서 맨날 담배 빨아 대던 것들.

 

 

이것들도..강은찬 친구였구나.

 

 

 

..그놈..


선도부다 뭐다 해서 모범생인척 하면서..


뒷구녕으로..


이놈들과 어울리고 있었구나!!!!!!!!!!!!!!!!!

 

 


"야..뭐야..나가.."

 

 

내 얼굴의 표정을 아직 읽지 못한건지.


자랑스럽게 내 이불위에 두 다리를 쩌억 뻗으면서. 까딱 고갯짓을 해보이는 날돌이.

 

 


"...여기..내방이다.."

 

"뭐?여기가 니 방이라구?"

 

 


이번엔.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코웃음을 치는 날순이.

 

 


".....내 침대에서 둘다 당장 내려와..."

 

"참나.여기가 니 방이면 하루가 내 남자친구다!!!!!!!!-0-!!"

 

"야!?뭐 이 기집애야!?하루가 니 남자친구!?너 그게 무슨말이야!!"

 

"응?아니..순식아..그러니까.."

 

"너 아까 하루방 가서 속옷 서랍 뒤졌다더니 그럼 사실이였어!?!?!"

 

"아니야!!그건 애들이 지어낸거라구!!!!!!!!!"

 

"사실대로 불어 이 가스나야!!!!!!!!"

 

 


...후....


............강은찬..............

 

 

 

나에 대한 도전이냐...


아니면 하루에 대한 도전이냐...

 

 

날돌이 날순이가 내 베개를 던지며.


혹은 내 컴퓨터에 달린 스피커로 머리를 두드려 가며 싸우는 사이에.

 

 


난...이들과 시간을 낭비할바에

 

강은찬을 한대라도 더 패는게 현명 하다는 사실을 깨달은뒤.

 

그놈이 있을 그 장소로 다시 목적지를 바꾸었고..

 


...

 


"..미친놈..이층 복도에까지...이딴짓을 해놨단 말이지.."

 

 


내방에서 그 방을 향하는 복도 밑에까지.


가방이며 음료수병이 뒹굴고 있었기에.


이미 절정에 다다른 내 분노는 순식간에 살기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있잖아.난 니가 예란이 아직도 못잊은주 알구 망설였었거든.."

 

 

 

....예란이라...


..그래..니놈..여깄을 줄 알았다..


....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여자의 목소리에..확신을 얻으며..


마치 땅굴속에 두더쥐를 잡는듯한 심정으로 하루방 문을 천천히 열어 제꼈다.

 

 

 

강은찬 니놈 방이 아닌.


하루방!!!!!!!!

 

 


이게 우리 두사람을 향한 진짜 복수가 되는거니까!!!!

 

...

 

 


"누구세요!!?!"

 

 


활짝 열린 문으로 더욱 까맣게 그늘진 내 공포스러운 얼굴이 등장하자.


소스라 치게 놀라며 은찬이 옆에서 떨어지는 여자.

 

 

 

다른 학교 년인지..어쨋든 저 년은 초면이고...


다음으로..이 모든 재앙의 근원지인 놈을 바라보면..


태연히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의자를 빙글 돌려보이는..


...놈..

 

 

"..너....."

 

"형 병원에서 오는길이냐?"

 

"...하루..다친건..알았냐..."

 

 


아직까진..참고있다..


그래..내 자신이 존경스러울만큼..

 

 

 

"어.별이상 없다며."

 

"..그래서..이렇게..축하 파티라도..벌인거..니..?"

 

"우리집이잖아 여기"

 

"..담배도..폈구나..너..^-^.."

 

"몰랐냐?...하긴..것도 주의깊게 봐야 알든지 말든지 하지."

 

 


........말을 마치고.....

 

담배를..하루 책상위에 보란듯이 지저끄는 은찬놈..

 

그러면..그..첨보는 년..은찬이의 팔뚝을 쓰다듬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고..

 

 

 

"......강은찬..너..이렇게까지 한심한 놈이였냐...?"

 

"응."

 


...후...

 

 

 

"...나한테 복수하는건 상관없는데..이 집..할아버지 꺼고..여기..하루방이다..알지.."

 


"이집.우리 아빠꺼고.여기 우리 형 방이지."

 


.....후..하......후...하....

 


여자의 손을 어느새 뿌리치곤. 다시 또 담배 한개피를 꺼내드는 놈.

 

그리곤 어깨가 결려오는듯 고개를 이리저리 꺾어 보인다.

 

 


"아파 은찬아?안마해줄까?"

 

 


얼씨구.

 

말을 마친 여자는.


충실한 하인처럼 그 썪어 문드러질 새끼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거렸고.


난 치미는 구토를 삼키면서..이번 역시 이성을 잃지 않고


인간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니 형.사고 났다 은찬아?"

 

"근데 여기 왜왔냐?옆에 붙어 있어야지."

 

"이러지마 강은찬..너 원래 모습 이거 아니잖아.."

 

"니가 내 원래 모습을 어떻게 아냐?"

 

 


픽. 웃음과 함께 피던 담배를 여자 입에 물려주는 은찬이.


그러면 이번엔 여자 입에서 연기가 뿜어 나와 내 눈을 탁하게 만들고.

 

 


"...내가..어젠..미안해..사과할께..그래.."


"뭘 사과해"

 

 


처음으로 놈의 눈이 내 눈을 응시하고.

 

 


"..어제..너..못본거..동상앞에서..비오는데..혼자 둔거.."

 

"나 그런적 없는데..?"

 

"...강은찬..."

 

"어."

 

 

"...그래도 이건..아니잖아..하루가 다쳤으면..적어도..와주는건 힘들더라도..

..친구..새끼..년들..다 불러다가...

......집안 꼴..이렇게 만들면 안되잖아.."

 

 

"너더러 치우란 말 안했다."

 

 

"......지금...무지..심각한..상황인데..


너..이집 아들..아니였어..?너 여기..가족..아니였냐..?"

 

 

"아우 저 여자 뭐래.저기요.좀 나가주세요.우리 한창 좋았거든요.!!"

 

 


....담배를 다 쳐핀듯한 여자...


은찬이의 팔에 다시 손을 가져대며.날 향해 짜증나는 어투로 지껄이고..

 

..아까 하루가 차에 친 영상이 떠오르며..


다음으로 병실에서 혼자 나와야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코끝이..조금 빨개지는것을..짜증나게도 아주 잠깐 맛봤다.

 

 

 


"너 좀 나가달랜다 야."

 

"......"

 


"니 방에 문제 있으면.일층 가있던가.일층에 문제 있으면.아빠 방 가있던가.


아...맞다..여기 하루방인데..우리가 이러구 있음 니 기분 더럽겠구나.."

 


"......"

 


"미안하다.미처 생각을 못했네."

 

 


.....어디까지..가자는거니..강은찬...

 

 


의자에서 일어난 놈은..머리를 긁적이며 방안을 휘 둘러보더니..


침대에 놓인 자신의 교복 마이를 집어 들었고..


옆에 있던 여자 역시..책상위에 흩어진 담뱃재를 멍청히 바라보더니.


은찬이의 뒤를 따라 침대에서 일어난다.

 

 

 

"신경 거슬리면.내가 애들 다 데리구 나가야지 뭐.


장차 형수님 될 사람인데 잘 보여야지.그지??"

 

 


"....많이..무섭고..많이..슬펐다.."

 

 

"...."

 

 


"너한테 이런말 할 자격 없지만..


그래..분명 없지만..너밖에 얘기 할 사람이 없어서..너밖에 알아줄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왔다..외톨이가 싫어서..외톨이가 무서워서.....


너 그렇게 차놓고..적반하장 한설이가.."

 

 

"....야..."

 

 

 

당황한듯..내 어깨를 쿡 찌르는 은찬놈의 손..


그리고..꾹꾹 참았다가..살기가 아닌 설움으로 폭발한 내 목소리.

 

 

 

"가족이잖아!!!!!!니네 가족이잖아!!!!!!!!!!


난 끼어들고 싶어도 안되는.죽을때까지 못갖는!!!!!


그렇지만 넌 갖고 있는!!!!!넌 맘대로 위로해줄수 있는 니 가족이잖아 강하루!!!!!!!!!!!!"

 

 

"........."

 

 


"노는데 방해해서 미안했다!!!!!!

파티 끝나면 불러!!!그때 들어올테니까!!!"

 

 

"야!!!!!!!한설!!!!!!!!!!!"

 

 

젠장.


이 괴물같은 집안에서 뭘 위로 받겠다고.


내가 대체 뭘 위로 받겠다고.

 

..

 

 


미끄덩 대는 계단에서 벌러덩 넘어질뻔 하다가.


그래서 일층에 널부러진 아이들의 광대 놀음을 할뻔 하다가.


간신히 난간을 붙들고 서서 이번엔 침착하게 현관을 벗어났다.

 

 

 

 

 

"우오오 바람핀 현장을 목격한 그녀!!달아나고 있습니다!!"

 

 

"네!!그렇습니다!!오!!그 뒤를 은찬군이 쫓고 있습니다!!!그러나 심하게 느립니다!!"

 

 

"오오 그녀!!너무 빠르네요.저렇게 빠를수 있는겁니까!!-0-


마치 발바닥에 바퀴를 단것 같습니다!!


빙판위를 사뿐히 도는 한쌍의 스케이트 같습니다!!-0-"

 

 

"저런걸 올림픽에선 신기록이라고 하죠!!-0-"

 

 

 


..거실에 누운 덜떨어진 놈들의 목소릴 들은후.


괴물집을 뛰쳐나오는 길.

 

...........


...............

 

 


...어떻게 된게..


이놈들 만나고 맨날 달리기만 해..


윤영이 남자친구 놈 이후로 나 달아나게 한 놈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게 저놈 둘이선 하루가 멀다하고 날 뛰게 해.

 

 


날 도망치게 해.

 

 

 

윤영이 남자친구 놈 말곤 없었는데..


그놈 말곤 정말 누구도 나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적 없었는데..

"어서오세..어!?설아!!!!!!!!!!"

 

 


\ 3.4 호프.

 

 


꾸벅 인사를 하다 말고 놀라 주춤하는 매니저 오빠.

 

...하...

 

 

 

"고등학생 받아주는데가 여기밖에 없더라구..미안..오빠 또 죄짓게 만들어서.."

 


"어떻게 된거냐 너?!그만둔뒤루 연락 한번 없구!"

 

"..백찬영..그놈도..있어..?"

 

"오늘 타임 아냐.화수목이잖아"

 

".....살았다.."

 


"뭐야 어떻게 된거냐니까.반팔 옷은 뭐구.그 올빽 머리는 뭐구-0-!!너 지금.."

 

"술 팔꺼지."

 

"못먹잖아 임마!!-0-"

 

"응.그래서 오늘 먹어보려구"

 

"..어허..미치겠네이.."

 

 

 

이마를 탁 치는 매니저 오빠를 지나쳐.


행여 사장 눈에 띄일 새라. 월요일 임에도 북적거리는 홀을 지나쳐


구석 자리에 털퍼덕 앉아 버렸다.

 

 

...젠장..머리야...빠개질것 같네...

 

은찬이놈 목소리...버스 타기 직전까지 들렸었는데...

 

.....나쁜새끼.....

 

잘해봐라..할아버지한테 니가 혼나지...내가 혼나냐..

 

 

 


"어유..어떡할려 그래.진짜 마실거야.?"

 

 

..문득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보니.

 

 

 

"오빠 근데 머리 많이 자랐다.안본사이에..훨씬 나은데..?"

 

".그..러냐?"

 

"..응.."

 

 

내 말에 쑥쓰러운듯 머리를 매만지곤. 메뉴판을 내미는 매니저 오빠.

 

 


"..여긴 월요일이여두 여전히 북적대"

 


"고등학생들 받아주는 유일한 술집이잖냐.


서울 시내 애들은 다 일루 모일걸.아까두 애들 몰려와서 생일 파티 한다구 깝죽 대는데.


참나..양주를 시켜 먹더라니까."

 


"돈좀 있는 애들인가부지"

 


"가관두 아냐.주문 받는데 대뜸 반말이다"

 


"..고런..싸가지 없는 놈들..확 기냥 쳐버리지..-0-!!


아...나..소주 한병이랑 오뎅탕 주세요.아 맞다.콜라도"

 


"같이 마셔줄까?"

 


"됐네요.짤리면 나한테 ?潭侈?땡깡 쓰려구?"

 

"..쳇..농땡이좀 필라고 했더니만..-_-.."

 

 

메뉴판으로 내 머릴 톡 치고. 주방쪽으로 몸을 트는 오빠.

 

그러더니.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나를 다시 한번 부른다.

 

 

"설아."

 

"응?"

 

"너 근데..이런말 해도 되나..?"

 

"...뭐가..?"

 

"무지..많이..밝아졌다.."

 

"풋..말두 안돼.지금두 한바탕 오는 길인데"

 

"..아니야..그전에..나한테 한번도 농담 건넨적 없어"

 

"내가?"

 

"응..그리고..웃을때도.."

 

"웃었잖아!!!그때도 나 잘 웃었다!!"

 


"아니...그땐 꼭.억지로 꼬집어서 웃는애처럼 웃었어.


입은 웃는데.눈은 이렇게..침울하게.."

 

 

말을 마치며. 손으로 눈꼬리 내리는 시늉을 하는 오빠.

 


"하하하.."

 

"..거봐..지금은 그렇게 웃지.."

 

"...그런가.."

 

"응.훨씬 보기 좋다 야."

 

"...^-^..."

 

 

 

매니저 오빠가 자취를 감추고..


난 창에 비치는 내 얼굴을 유심히 한번 바라보았다.

 

 


...그놈들이 얼마나 내 속을 썪이는데..


내 얼굴이 밝아졌다구..?..

.......

 

 

정말...


...그런가...?


..내가..정말..밝아졌나...?

 

 


씨익..억지로 미소 짓는 시늉을 해보이자니. 문득 올려 묶은 내 머리가 어색하단 생각이 들고.


다음으론 그렇게 묶으라고 닥달해대던 하루 생각이 들고.


그 다음으론 자연히 또 은찬놈의 얼굴이 떠오르니.

 

 

 

"이런 육실헐놈!!!!!!!!!!-0-!!!!!!!!!!!"

 


모든 학생들의 눈총을 한눈에 받으며 버럭 고함을 지르고.


문득 생각난것이 있어 주머니속의 그것을 탁자위에 탕 하고 꺼내놓았다.

 

 

 

'덕풍고등학교 2-4반 강은찬.


姜誾燦'

 

....

 

잠시..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르고..


.....

 

 


"오빠!!!여기 유성 매직 하나만 갖다줘!!!!!!!!!!!"

 


저만치 떨어진 주방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지르니.


또한번 내게 집중되는 얼라들의 시선..

 

-_-..

 

뭐..저 시선들..하루랑 은찬이랑 같이 산뒤로 익숙해진지 오래다.

....

 

...이 자식...


이 뽀얀 얼굴에 멋진 점을 다다닥 박아주마..

 

 


그렇게 치사스런 맘으로 손뼉을 짝짝 쳐 보이는데..

 

 

"...한설..언니..아니야..?"

 

 

 

...-_-...별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른다.

 

 

"....."

 


"맞네!!한설 언니 맞어!!!!!!!!!"

 


"..어.................오랜만...-_-.."

 


"언니 뭐야!?여기서 뭐해!?"

 

"....뭐하긴..술먹지..넌.."

 


"나 친구 생일 파티!!세진이두 있어!!"

 


"...어.."

 


"까만거 하나두 안변했냐 어쩜!?!하하 웃긴다 진짜"

 

 


...-_-...이 기집애가...진짜...

 

 

"5년만인가?5년만이지!?"

 

"..어.."

 

"그때 되게 부잣집으루 입양갔다며!?"

 

 

..후..


그 촉새 나다리의 한마디에. 모든 이들의 수근거림이 들려왔고.


내가 말을 씹으며 시선을 외면할때.

 

 


"우리 저기 룸에서 노는데.같이 가 놀자 언니^-^"

 

"됐어"

 


"왜.세진이가 얼마나 좋아하겠어.걔 언니 진짜 보고 싶어 했다고.어제까지 언니 얘기 했다.."

 


"됐다고 했다.그만해"

 

".....참...하나두 안변했네..하나두..안변했어.."

 

"...니 자리 가서 놀아."

 

"웃겨..진짜.."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멀어져가는 자영이.

 

애니몰 팸중에 여우 원숭이랑 똑 닮은 저년..

 

 


5년전까지..큰삼촌..


그자식 집에 얹혀 살때..


세진이 친구들이 집에 자주 왔다.


그 중에 유독 몇명이 날 놀리고 괴롭혔는데..

 

 

 


..저년..저년이 바로 그 우두머리다!!!!!!!!!!!!!!!-0-!!!!!!!!!!!

 

 

나보다 한살 더 어린년이!!!!!!!!!


날 엄마 아빠 없는 고아라고 약올리고 핍박하고 드럽다고 따 시키고!!!!

 

 


"야..너 왜그래..무슨 일 있어..?!"

 


타앙!!탁자를 내려치며 눈썹을 씰룩대자.

 

냄비와 소주병. 그리고 콜라를 내려놓으며 걱정스러운듯 날 바라보는 매니저 오빠.

 

 


"...아까 오빠가 생일 파티한다구 한 애들이..저것들이야..?"

 

"뭐?"

 

"아니야...아니다.."

 

"괜찮겠어?"

 

"..어..가서 볼일봐 오빠.."

 

 


매니저 오빠가 다시 걱정스런 얼굴로 멀어져가면..


새록 새록 떠오르는 그 옛날의 기억들.

..

 

 


큰삼촌의 외동딸 홍세진.


날 참 잘 따랐다.


얌전해서 참 순진하고. 좀 답답한 면이 있지만 귀여운 애였는데.

 

 


...그 인간이..우리 엄마 보험금을 쏙 빼먹고..


다니던 학교까지 자퇴시키며 5년전 나를 휙 내버렸지..

 


그리곤..


세진이한테는 날 부잣집에 입양 시킨다고..?


..하..

 


그래..결국 그게 5년후 현실이 되긴 했구나. .


말이 씨가 된다더니..정말 입양이 되긴 했어..


분명 더러운 음모가 있긴 하겠지만 말이..

 

 


"언니....."

 

 


..이런..제기럴...

 

 

"맞지?설이 언니 맞지!?"


....

 


애써 시선을 외면해보지만 이미 날 발견해버리고


아예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리는 세진이.

 


그것 보라는듯 자랑스럽게 씩씩대던 박자영 년은


허락도 받지 않고 내 맞은편에


냉큼 앉았고..

 

 

세진이의 친구들인듯..

 

멀리서 신기한 눈초리로 날 바라보고 있던 두쌍의 남녀역시..

 

..어느덧 소주에 오뎅탕이 달랑인 내 테이블에 허락도 없이 스멀스멀 앉는 사태가 일어났다.

 

 


"...언니..설이 언니.."

 


"...어..오랜만이다."

 


"언니......................."

 

 

 

긁적긁적-_-

 

 


"언니..................!!"

 

 


와락 내게 안기는 세진이.


이윽고 조그만 그녀의 체구가 내 두팔에 쏙 들어오고..

 

 

뭔가...조금 심장이 물컹한것을 느끼며..난 그애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실수 만만의 헛질이였다.

 

..

 

 

\ 1시간 후.

 

 

 


"어머 진짜 웃긴다..!!어떻게 그래!?!"

 

"그러니깐.5일동안 머리를 안감는게 상식적으루 말이 돼?"

 

 


...-_-...

 

 

친구들을 주루룩 앉혀놓고 5년전 내 얘기로 열정을 불사르는 박자영.


자기가 날 고아라 멸시한 얘기는 쏙 빼놓고.


나의 추저분한 과거만 꽈발리고 있다.

 

 


그럼 어쩌란 말이야!!!!


큰삼촌 자식이 한겨울에 목욕탕 들어갈때만 보일러를 확 꺼버리는데!!!!!

 

 


"언니 진짜 학교 잘 다니구 있어?응?아무 이상 없는거야!?"

 

 

 

여전히 아기같은 얼굴을 하고서.


내 손을 꾹 움켜쥐곤 절대 놓을 생각을 않는 세진이.

 

 

 

"..어..잘 다닌다니까.."

 

"아빠한테 몇번이나 물었는데.언니 부산에 있다길래.여깄는진 정말 꿈에도 몰랐잖아"

 

"..부산..-_-..이래든..내가..?"

 

"응.."

 

"부산 한번 가보기나 했음 좋겠네.씨..-_-.."

 

"...학교는..학교는 어디 다녀...?"

 

"..어..덕풍고.."

 

 

 

"덕풍고!???????????!!"

 

 

 

..결코..


세진이의 목소리는 아니였다.

...

 

 


박자영.고것이였다.


친구들에게 나의 얘기를 미친듯이 씨부려 까다가. 느닷없이 우리 학교 이름을 외치는 고것.

 

 

 


"왜..우리 학교에 아는 사람 있냐.."

 

 

"강 브라더스!!!!!!!"

 


".......감온다..."

 


"강하루 강은찬 맞지?언니네 학교지!?"

 

 

".................어......."

 

"봤어?봤어?본적있어?"

 

 


맨날 본다.지금도 보고 왔다.-_-.

 

 

"..어.."

 

"왠일이야..어떡해..진짜 조카 좋겠다..그지그지.."

 

"응..ㅠ0ㅠ.."

 

 


어이없어 오뎅 하나를 입에 물고 으구작 으구작 씹어 먹자니.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맞잡고 주둥이를 또 나불대는 박자영.

 

 

 

"하루 진짜 멋있지"

 

 

하루가 니 친구냐 -_-

 

그러면 그 말에 재빨리 그다음 박자를 맞추는 그 옆의 덜떨어진 년.

 

 

 

"응 그 오빠 멋있지.ㅠ_ㅠ"

 

"참나.그 새끼들이 뭐가 멋있냐?"

 

 

..질투가 난듯..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떨거지 놈 하나가 입을 삐죽 거리고..

 

 


"야!!니가 봤어!!?그 오빠들을 봤냐구!!"

 

"봤어.개뿔도 안멋있더라!!"

 

"하긴.뭐 눈엔 뭐만 보인다구."

 


"뭐!!-0-!!"

 


"맞지 뭘 그래!?"

 

"야!이것들이 근데!!생일 파티 하러 와서 왜 이 구석자리에 한시간째 앉아 있는건데!!!!!!!!"

 


"어우 싫음 가!!"

 


"진짜 웃기네 애네!!"

 

"아..하루 오빠 진짜 멋있지...."

 

 


떨거지 두놈을 무시한채. 아예 등을 돌려 앉아 얘기를 싹틔우는 여자들.


그러면 순진한 세진인.

 

 


"그 사람이 누구야?"

 

라고 물었다가

 


"넌 세상에 강 브라더스도 몰라!!!!!니가 대체 아는게 뭐야!?!!!"

 

박자영으로부터 한바가지 구박을 얻어먹고..

 

 


..쯧쯔쯔..


어린것들..


이라는 생각에. 내가 또 소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킬때.


그들은 계속해서 그놈들의 이야기로 싹을 틔웠다.

 

 

 

"은찬이가 더 멋있어 난"

 


"야.얼굴은 하루오빠가 와따지."

 

"각자 타입이 있는거지!!"

 


"그리구 하루가 훨씬 도도하잖아.은찬이는 헤프대더라."

 

 

니들보다 한살 많다 걔들-_-

 

 

"헤퍼도 귀엽잖아!!!"

 


"일주일만 사귀면 좋겠다.하루오빠랑.아니 한번만 더 봤음 좋겠다.


그때 축제때 한번 본게 전분데.."

 


"나도 은찬오빠랑"

 

 

"아.근데..설이 언닌 남자친구 있어..?"

 

 

..-_-..

 

 


이제 또 나를 놀려 먹으려는듯.

 

하루랑 은찬이 질을 멈추고 내게 초롱초롱 눈길을 보내는 박자영.

 

난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로 냄비를 마구 휘저었고.

 

 


"..말도 안된다...풋.."

 

 


..-_-..그년은 남아있는 염장을 또 한번 내질렀다.


그리고 동감이라는듯. 나를 바라보며 심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떨거지 두놈.

 

 


"니들 자리로 좀 가라..정신 사나워.."

 

"누군데?누군데?"

 

"..강.."

 

 

하루라고 하면...정신병자 취급 받겠지 내가...?

 

나는 묵묵히. 이번엔 두 손가락으로 냄비를 휘휘 휘젓기 시작했고.

 

그바람에 탁자에 붙어있던 내 오른팔이 번쩍 들려서..

 

 

 


"은찬오빠 학생증이다!!!!!!!!!!!!!!!"

 

박자영의 탐욕스러운 눈에 은찬이의 학생증이 포착 되고 말았다.

 

 


"야..안돼..!!"

 


가로챌 틈도 없이 냉큼 그 학생증을 가져가는 박자영.

 

 


"어..왠일이야..어떡해..ㅠ_ㅠ..은찬이 학생증.."

 

"야.넌 하루가 좋대매!!!"

 

"아무렴 어때."

 


"아 잠깐만 줘봐봐..!!

 

 

 

박자영과 그 덜떨어진 친구년이 실갱이를 벌이는 사이.


세진이는 계속해서 내 얼굴을 쓰다듬어 댔고..


...한계에 다다른 내가 고함을 지르려는 찰나.


고맙게도 박자영년이 먼저 입을 열어 주었으니.

 

 

 

"이거 훔쳤지 언니?"

 

"...뭐..?"

 

"훔친거지?"

 

"....너..정도껏 해라..."

 

".....맞잖아...뭐 그게 나빠..?나라도 훔치겠다"

 


"훔친거 아냐."

 


"..그럼..?언니가 만든거야..?"

 

"..그거 내려놓고 빨리좀 꺼져라.."

 

"오랜만에 봐서 왜그렇게 딱딱하게 굴어?"

 

"오랜만에 봐도 안 반가우니까."

 

"..하..진짜...하나도 안변했어..그 어두 침침한 성격!!!"

 

"손 올리기 전에 빨리 가!!!!!!!!!!!!!!"

 

"...-0-..야..야..가자..가.."

 

 

 

비위가 상한듯. 자영년이 옆에 앉은 덜떨어진 년을 흔들고.


그러면 그년은 그 떨거지 두놈을 어깨로 밀어 흔든다.

 

 


"어우..저 여자..뭐 저렇게 성질이 드럽냐.."

 

 


..-_-..하..이젠..저놈들까지..내 염장을 불사지르는구나..

 

 

떨거지 두놈이 모자를 푹 눌러쓰면서.


한.살.위.인.나를 아래위로 흝어대고..


자영년은 그 독살스런 눈으로 나를 보다 다시 세진이에게 화살을 돌려서..

 

 

 

"세진아 일어나"

 

"싫어.나 언니랑 있을거야"

 

"야!!!우리 생일 파티 하고 있었잖아!!"

 


"...니들끼리 해..나 언니랑 있을래.."

 

 

..눈물나게 고맙네..씨..

 

 

"어후 니 맘대루 해!!"

 


"....."

 


"진짜 짜증나.부잣집 입양 됐다고 기가 살았어.


그땐 노려만 봤지 제대루 맞서지두 못했으면서"

 

 

 

..미쳤구나..미쳤어..


그래 어디 계속 씨부려 봐라..-_-..

 

 

 

"남자친구 있다는것도 뻥이야"

 

"부잣집 입양 됐다니까 돈에 환장한 남자가 사귀어 줄수도 있겠지 뭐.."

 

 


덜 떨어진 년마저 박자영에게 쇠뇌 당한듯..


무표정한 나의 얼굴을 보며 한마디 씨부려 대고.


이들은 아무래도 돈많은 집의 개 망나니 자식들인듯 했다.

 

 

 

"이 훔친 학생증 잘 품구 다녀.괜히 갖구 다니다 언니 돈에 환장한 남자친구한테 걸려서


차이지 말구..!!^-^"

 

 

 

마지막으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본격적인 화풀이를 몰아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 했을때.


박자영은 미소와 함께 은찬이 학생증을 바닥에 내려놓았고.

 

 


...그와 동시에...

 

그림자 한개가 테이블 위에 드리워지며..

 

이내 내 왼쪽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버렸다.

 

 

 

..............

 

 

 

 

............................

 

 

 

 

 

"안녕하세요. 돈에 환장한 남자 강은찬이라고 합니다."

 


"...................."

 

 

 

 

얼어붙은 박자영의 얼굴을 확인한뒤.


난 깊은 한숨과 함께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저....저기..-0-.."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박자영과 그 옆의 떨거지들.

 


나는 식탁위에 있는 강은찬 학생증을 재빨리 주머니에 구겨넣은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은찬이의 옆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런 내 양 볼에 대뜸 두 손바닥을 철썩!(좀 아팠다..-_-..)갖다대면서

 


강브라더스가 두번째 폭탄을 터트리니.

 

 

 

"야 여보야!!어디 갔었어!!"

 

 

"..-_-..돌았니..?"

 

 

"이딴거 먹지 말라고 몇번 말해요!!!여보 건강에 안좋다고!!"

 

 

 

 

계속 미친 소리를 씨부려대며.

 

반쯤 남아있던 내 소주를 오뎅탕 속에 콸콸콸 쳐붓는 은찬놈.

 

그제야 가까스로 정신이 든 나는 재빨리 놈의 손목을 탁 잡아채고.

 

 

 

"뭐하는 짓이야.누가 너더러 따라와달랬어..?"

 

 

"안돼!!!!!!!나 버리지마!!!!!!!!-0-"

 


"..-_-.."

 

 

"딴 남자 만나도 돼.하루살이(하루를 말하는듯-_-)가 자꾸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해두


이해할게.나 버리지마..앞으로 진짜 잘할게요."

 

 

 

입을 봉긋할 틈도 주지않고 여지껏 한번도 보지 못한 큐트한-_-모습으로


손바닥을 삭삭 문대는 시늉을 하는 은찬이.

 

 


그러더니.

 

 

"야!!!!!!!니네 자꾸 보지마!!!!!!!닳어!!!!!!!!!!"

 

 

오뉴월의 개마냥 주둥이를 축 벌린 자영과 떨거지를 향해 대뜸 고함을 지른다.

 

 

 

"아...언니 남자친구에요..?오빠가...?"

 

 

 

이어서 들려오는 세진이의 목소리.

 

조금은 겁먹은듯한 표정으로 그 아이는 아주 조심스레 은찬이를 흝어보았고.

 

그러면 강은찬 이놈은. 내 옆에 더욱더 몸을 붙여 앉으며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근데 맨날 새끼들이 졸졸 따라다녀서 안심을 못하겠다 아주.


하이튼 여자친구 이쁘면 남자친구가 죄라니까!!"

 

 

"...-0-..진짜..둘이..사귀는거에요..?진짜로요..?"

 

 


이번엔. 세진이 아닌 자영이가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몸짓을 해가며 은찬이를 바라보면은

 

그런 자신의 해바라기에게 망설임없이 비수를 꽃아 내리는 강브라더스.

 

 

"엉.야 근데 넌 남자친구 있냐?"

 

"..네..네..?..?아니요!!없어요!!"

 

"그냐?그럼 나중에 생길 니 남자친구는 무진장 행복하겠다."

 


"네?그게 무슨....>ㅇ<...."

 

 

"안심 푹 놔도 되잖어!!아주 남탕에 갔다놔두 속 편하겠네.!!-0-"

 


"....네...?"

 

 

-_-..상처받았을 그 영혼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서비스로 나와있는 뻥튀기를 공중으로 던져 입으로 휙휙 받아 쳐먹는 은찬놈.

 

 


그런 수모를 당해놓고도.

 


자영과 떨거지는 어렵게 만난 강은찬을 놓칠 생각이 없는건지.

 


아니면 우리 두사람의 진짜 관계를 밝히겠다는 생각인지.

 

 

어쨌든 꼼짝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멍청하게 은찬놈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잠자코 그들이 일어나주길 한참동안 기다리던 나는..

 

이러다 날이 샐지도 모른다는 예리한 판단에.

 

철썩 붙어 있던 세진이를 조심스레 떼어놓으며 천천히 엉덩이를 의자에서 들어올렸다.

 

 


"화장실 가게?!"

 


빤히 날 올려다 보는 은찬이.

 

"..."

 


"안돼 야.같이가.가는길에 남자새끼들이 보고 채가면 어떡해.."

 


"내가 되게 만만하지 너."

 

"만만이라니?"

 

"울게 했다가.웃게 했다가.그게 니 사람 대하는 방식이지."

 

 


얼음장 같은 내 말에..잠시 굳게 다물리는 은찬이의 입.

 

그리고.

 

자영이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는 찰나.

 

..............

 

 


"...내가..널..울게..한적이 있었냐...?"

 

"......."

 

"...내가..널..언제 울렸냐.."

 


"많아."

 

 


단호한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던져놓곤.


수근대는 떨거지들을 지나쳐 카운터 앞에 계산대와 돈을 던져놓았다.

 

 

 


"언니...!!설이 언니...!!"

 

 

그렇게 등뒤의 애타는 세진이의 부름까지 뒤로하고.


거친 걸음으로 휙휙 계단을 내리는데..

 


..

 

 


"잠깐..멈춰.한설."

 

 


티에 달린 면 모자를 뒤에서 꾹 잡아 올려 본의 아니게

 

내 모양새를 심히 망가트리는 강은찬.

 

 


"....."

 

 

"말은 바로 하자..내가 널 울렸냐..니가 날 울렸냐.."

 

 

"......피차 일반이야.."

 


"내가 널 울렸냐..............니가..날..울렸냐.........."

 

 

".......그 얘기 하자는게 아니야.."

 

 


"내가 널 울렸냐!!!!!!!!!!니가 날 울렸냐!!!!!!!!!!!!!!!!!!"

 

 

 

서슬퍼런 은찬이의 고함소리와 함께..


아차..이게 아니구나 싶어 고개를 돌리면..


은찬이의 왼쪽 눈에 맺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눈물 방울 하나.

 

 

 

....

 

......


자꾸만..자꾸만 어긋나고 있다..


사랑이 묻은 화살표를 심술궂은 누군가가 뒤죽박죽 돌려놓아서..


상처받고..상처주고..


모든것이 다 상처 투성이다..

 

 

 

 

\ 버스 정류장.

 

 


....

 

......아무말 없이 없다...


벌써 몇분째..


조금 멀찌감치 떨어진곳에 서서.


급기야는 지나가던 애꿏은 사람에게 그 분노를 쏟아붓는 강은찬.

 

 

 

"저.실례지만..지금이 몇시에요..-0-..?" - 무고한 시민.

 


"...내가..시계로 보여..?"

 


"..네..?"

 

 

"내 얼굴이 시계로 보이냐!?!?!!!!"

 

 

"..하..참..기가막혀..누가 그렇대요!?어디서 술주정이야 이사람이!!"

 

 

"야!!!!!!"

 

 

"-0-..야..?야..임마..!너!!너 몇살이야!!"

 

 

"너 여자 울려본적 있어!!!!!!없어!!!!!!!"

 


"..어..없다!!왜!!"

 

 


후..도저히..봐줄래야 봐줄수가 없구만..

 

 


탁탁 손바닥을 털면서.


삐딱히 서있는 은찬놈과 그 무고한 사내와의 중간에 망설임 없이 몸을 내던지고.

 

 


"죄송합니다.대신 사과할게요.그냥 가세요."

 

"..별 미친놈을 다보네 진짜.."

 

"..야..강은찬.."

 

"...."

 

"강은찬씨.."

 


"..."

 


"온동네에서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 강브라더스씨!!!!!!!!!"

 


"..미친..강브라더스는 뭐냐..유치하게.."

 

 


그제야 입을 열기로 작정한듯.


나와의 시선은 절대 마주치지 않은채


대신 지나가는 버스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은찬.

 

 

 


"나도 잘못했고.너도 잘못했다.그치?"

 


"......시끄러.."

 


"넌 집안꼴 그렇게 만들어놓은 잘못.난 도와주려던 너한테 되려 화낸 잘못.쌤쌤이다.그치?!"

 


"버스 졸라 안오네..."

 

"나랑 계속 말 안할거냐 너?!"

 


"......뷰웅신....."

 

 

..후..-_-..

 

 

또 나왔다..이 어린애 근성..


누가 막내 아니랄까봐.하루랑 몇개월밖에 차이 안나는 주제에.


마치 그때 그 미라처럼..

 

 

 

 

"좋아.나 여기 온김에.근처 가게에서 아는 사람 보고 갈거야.그러니까 너 먼저가."

 


"형 병원 간다고 솔직히 말해"

 


"너 혹시 일곱살에서 성장이 멈췄냐?"

 


...-_-...후...

 

 

이번엔 담배를 입에 물고 낚시 하는 시늉을 하는 강은찬..


이 새끼 이거 진짜 나중에 누가 데리고 살까..

 

 


"아까 도와줘서 참 고맙습니다..네..?그 은혜 몰라주고 되려 화내서 미안합니다..네..?"

 

 

"강하루 언제 퇴원한대냐.."

 

 

..드디어 삐친게 풀린건가?

 

 

 

"..이박 삼일후.."

 


"무슨 마징가 제트도 아니고..드럽게 빨리도 나오네.."

 


"...강은찬!!!!!!!!!!!!!"

 

"....."

 


"유치 빤쓰를 처 입었냐!!


자꾸 이딴식으루 나올래!!하루 다친거 걱정은 못할망정 니가 동생이 되.."

 


"것봐..."

 

 

"뭐가 것봐야!!?"

 

 

"미안하다고 절절 매다가도 형 욕 하면 바로 핏대 세우고 덤비잖아.."


...

.....

 

 

어찌할 도리가 없네요 이사람..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힘없이 뱉으며 놈이 도톰한 입술을 더욱더 꽈악 다물면..

 

 


..나도 모르겠다..


요새 들어 자꾸만 터지는 니 심술이.


내가 너한테 가지 않아 자꾸자꾸 불어나는거라면.


그것만은 달래줄 도리도.풀어줄 방법도 없다..

 

 

 

"맘대로 해..그럼..우리 방식인가보다..싸우고 화해하고 하는게.."

 

"싸우고 울리고 하는게.."

 


"그래..울리는거...내가 너를..그 다음에 니가 나를.."

 

".............."

 

 

 

대체 어떡하란 말이냐.그럼.


내 몸과 마음이 하나씩 더 있다면.주저없이 너한테 줘버릴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나뿐인걸.그리고 그 하나는 강하루만 애타게 원하는걸.


나더러 어떡하란 말이냐 그럼..

 

 

 

"...어디가..."

 

길 건너편 골목에 있는 그 가게로 가기 위해..


머리를 감싸쥐면서 횡단 보도를 향하는데..


불안한듯 들려오는 은찬이의 목소리.

 

 


"..남이사.."

 

"..병원..가..냐..?"

 

 


더욱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강브라더스의 목소리..

 

 


저 자식.강미라보다 더 심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반가운 초록색 신호를 맞으면..


나를 향한 은찬이의 발자국 소리도 점점 더 가까워 가고..

 

 

 

"...왜 따라와..."

 

"내 마음이다."

 

"왜.니 형한테 갈까봐 질투나냐?"

 

"...."

 

 


내가 뱉어놓고도 뭔가 뻘쭘한 그 마음에. 한적한 그 횡단 보도를 열심히 건너면..


더욱더 빠르게 내 옆에 따라붙으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그 한마디를 중얼대는 은찬이.

 

 

 


"어....질투나 미치겠어....."

 

 

 

...이젠..


기정 사실이 되어버린 우리의 삼각관계를.


밀어낼수도 부인할수도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차마 똑바로 볼수 없는 은찬이를 고스란히 옆에 세워두고..


저벅..저벅..


버터플라이를 향하여 현실로부터 도망쳐가고 있었다.
 
"이 자식 이거!!!!!!!이 자식 이거 안되겠구마안!!으으응!!-0-!!"

 

 

...-0-...

 

 

가게 앞으로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독하고 역한 알코올 냄새를 마구 풍겨내며 내 품에 뛰어드는 나나 언니.

 

 


\ 버터 플라이 앞.

 

 

 


"언니..정신좀 차려봐..대체 얼마나 먹었냐.."

 


"너 이새끼 이럼 안돼!!학교 다닌다구 무시하는거지!!같이 잠도 자놓구 말이야!!응?!"

 

 

..-0-..잠..?

 


더욱더 가관으로 변해가는 언니의 몰골에.

 

다른 일행인척 옆에 서있던 은찬놈의 얼굴도 점점 구겨져 가고..

 

 

 


"우움..우리 미라..아니지..설이설이..설이..보구싶었다..언니가..응?!"

 

"..아니..저기 그러니까 언니.."

 

"쪽쪽쪽쪽-0-보구 싶었어요!!-0-!!"

 

 

 

손님과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던건지.

 

마스카라가 온통 눈물로 번져 있던 나나 언니는.

 

대뜸 나에게 덤벼들어서 그 번뜩이던 빨간 립스틱을 친절히도 내 얼굴에 발라 주었고..

 

 

"얘 뭐야..트렌스 젠더 아니야...?"

 

 


기어코 한소리를 내뱉는 은찬이를 보며 그 엽기적인 뽀뽀 행각을 멈추었다.

 

 


"..어어..저 총각은..그때 그 놈 아닌데..-0-.."

 

"....우웩...술냄새.."

 

"이야.반갑수다!!응?!어디!!설이 세컨!!-0-!?"

 


"....."

 

 


헉..저 언니가..대체 왜 저러는거야..

 

 

혼자 조용히 찾아올것을 그랬나..-0-..


험상궃게 변한 은찬이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금방이라도 뜯어 말릴 태세를 갖추었고..

 

 

 

"세컨드라도 시켜주면 기꺼이.."

 

놈은..또다시 가슴이 아찔해져 오는 말로 내 고개를 푹 숙이게 만들었다.

 

 

 


"우와아아!!가슴 아프다!!우와아아!그런말!!우와아!!-0-!!"

 

"..이 여자 진짜 왜이래....또라이 아니야.."

 

"우리 잘생긴 동상을 또 저 여자가 힘들게 했단 말이지!!"

 


"야.너 남자지."

 


"남자라니!!-0-떽끼!!일루와!!누나가 뜨겁게 위로를 해주마!!"

 

 

..-_-..

 

말을 마치곤. 대뜸 은찬이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대는 나나언니.

 

가게에서 나온 손님들이 보건 말건 나나언니의 그 추태는 십여분간 계속되었고.-_-.

 

 


은찬이의 거친 손에 의해 바닥으로 휙 내평겨쳐져.


그물 스타킹이 모조리 빵꾸난 뒤에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듯..

 

 

"..우엉엉엉..ㅠ0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이번엔 내 가슴에 대롱대롱 매달려 주었다.-_-.

 

 

 

 

"정말 이 일 더러워서 못해먹겠다..ㅠ0ㅠ..신발..다 똑같은 인간끼리 그래두 되냐..!?


부모 잘만난탓에 호강하는 새끼들..지들 노력으루 된것두 아니면서


뭐가 그렇게 잘났다구 사람 무시하냐!!ㅠ0ㅠ!!"

 


...-_-....

 

 


가까스로 진정이 된 언니가 차 뒤에 털퍽 주저앉아 담배 한개피와 함께 넋두리를 늘어놓으면.


그 말에 무언가 움찔한듯.


벽에 가만히 기대 서있다가 나나 언니를 노려보는 은찬이.

 


나 역시..


나나 언니 입장이긴 하지만...

 

 

 

"그래도..우리 그런놈들이 모르는 행복 많이 알잖아.."

 

 

"젠장.빌어먹을.더럽고 치사한 이세상.눈 감는 그 순간 뻑큐를 마구 날려주마!!!!!뻐큐!!!!!-0-"


뻐큐!!!!!!!!!"

 


"....뻐큐...."

 

 

"...후....그나마..다행이다..넌..잘 지내는거 같아서.."

 


"언니..이 일 그만두면 안돼..?"

 


"..."

 


"새로운 일자리 구하면 되잖아..응..?"

 

 

"..아가야..말처럼 그렇게 모든일이 될수는 없단다.."

 

 


말끝을 흐리며..담배냄새에 찌든 건조한 손으로 내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나나언니.

 

멋진 나나언니.


우는 모습도 죽이는 나나언니.

 

 

 


"좋은 일자리 하나 있는데..정말.."

 

"....뭐...대학생..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예 하지마셔."

 

"..전화 상담원.."

 

"...114..?"

 

"아니.전화로 상담해주는거야.."

 

"..뭘..?"

 

"사람들 힘든 고민.사랑얘기.돈얘기.가족얘기.하이튼 별별게 다있어.."

 

 

 


소근소근.목소리를 낮추면서 난 슬쩍 은찬놈의 눈치를 살폈고..


은찬놈은 여전히 경계 하는듯한 눈초리로.


행여 나나언니가 나를 덥썩 잡아먹진 않을까 하는 눈초리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_-

 

 


"....짭짤해..?"

 


"음...응..괜찮아..몸도 안버리고..말만 하면 되니까..언니 그 화끈한 스타일로 상담하면..


아마 전화 불통 날껄.."

 

 

"......별놈들 다 있겠네.."

 

 

"..얘기하다 보면..난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하고 느낀다."

 


"....흠..."

 

 

"5시마다 맨날 전화하던놈..그놈이 특히 그랬는데..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12번에 아무도 없으면..13번 언니한테 걸었으려나..?"

 


"....12번은 뭐고 13번은 뭐고..5시는 뭐야..?"

 


"아냐...나나언니...나나언니..!!"

 

 

"....왜..."

 

 

"나 그만뒀으니까 아마 12번 비어 있을거야.그렇게 바로바로 사람 차는데 아니니까.

하나쯤 비어 있을거라구..!!"

 


"....흠..12번..나 자퇴하기전에 학교에서 마지막 번호긴 하다..정간다..그번호."

 

 


때 마침 누군가 나나언니를 부르러 나왔기 때문에..


나나언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며 그 말을 던져놓았고.


난 그 말에 희망을 잃지 않으며..재빨리 언니의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손금이라도 봐주게?"

 

"..펜 있어..?"

 

"비슷한거.."

 


"줘봐.."

 

 

대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마스카라 하나를 꺼내주는 나나언니.

 

 


"이게 펜 비슷한거냐...-_-..?"

 

"급할땐 애용해요.^-^"

 

"..-_-...그래..뭐..지금도 급한 상황이긴 하니까.."

 


계속 가게 입구에서 재촉해오는 쌀쌀맞은 목소리에.


나는 마스카라 숄 끝으로 간신히 전화번호 두개를 써내려갔고..


이내 형체를 알아볼수 있는 그 두개의 번호가 나나언니의 손바닥에 새겨졌을때..

 

 

"그때 그놈하구 저놈 번호냐??그런거면 좋은데.킬킬킬."

 


"...-_-..언니.."

 

"미안미안..주책이다..근데 짜식이 탱글탱글하니 귀여워서..자꾸 눈이 가네..-_-"

 

"위에껀 지금 내가 사는 집번호.


아래껀 내가 아까 말한 그 전화 상담원 번호."

 

"...오호..."

 


"12번..다시 한번 해줘..언니가.."

 


"글쎄다.생각좀 해보고요..!!"

 

 

기지개 푸는 시늉을 하며 가게 쪽을 향해 능청스럽게 걸어가는 나나언니.


중간에 은찬이 엉덩이를 툭 치는것도 결코 잊지 않는 나나언니.

 

 


"이 자식아!!!!!!!!-0-!!!!!!!!"

 

대뜸 소리를 지르는 은찬이를 향해.


나나언니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또 킬킬 웃어보이더니..


마지막으로 가게 입구에 서서..나를 향해 아주 활짝.


더이상 활짝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아주 활짝 미소를 짓는다.

 

 

 


"너 자주와라.또 이렇게 오랜만에 오면 니 두놈들 내가 확 납치해서 달여먹는다!!"

 

"...응...알았어..."

 

"어이!!거기 뾰루퉁이 왕자님!!너두 잘가라!!"

 

 


참 귀신같기도 하지..


저놈이 뾰루퉁이인걸 대체 어떻게 알았다냐..-_-..


두 손을 마구 휘젓는 나나언니를 보며. 은찬이는 피식 웃음을 지었고..


들어가는 그 뒷모습을 차마 볼수 없어서..


은찬이를 질질 끌고 횡단보도로 몸을 트는데..

 

....

 

"어이!!!!!!!"


"....?"

 

 

우렁찬 나나언니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내 등을 두드리고..

 

 

"5시에 맨날 전화했다는놈!!!!!"

 

"..응..!!"

 

"그놈이 전화해서 너 찾으면!!!!!뭐라고 전해줄까!!!!!!!!"

 

"...응...?"

 

"나 넌줄 알고 헛소리 씨부리면 뭐라고 말해야 되냐 이말이야!!!"

 

 

슬며시 입가에 번져오는 미소...

 


은찬놈은 무슨말이냐는듯 내 어깨를 툭툭 쳐보이고..


나는 입가에 손을 올려 나팔 모양으로 오므린채 그에게 전할 인사를 대신 소리쳐 주었다.

 

 

 

"난 지금 무진장 행복하니까!!너도 행복하라고!!!!


그리고 그만 형좀 용서해주라고!!!!!!!!"

 

 

"오케이..!!알았어..!!"

 

 

"응!!진짜 나 가 언니!!"

 


"오케이!!!잘 들어가!!!왕자님 공주님!!!"

 


^-^

 

 

 

결국은 입구 안으로 들어가는 언니의 외로운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은찬이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

 

 

사람 하나 없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메마른 건물들을 보면서 최대한 말을 아꼈고..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서.


그 가파른 비탈길을 오를 무렵에야..


조금씩 입을 열어 그 어색한 침묵을 깨트렸다.

 

 

 

 


"너 얼굴에 립스틱 묻었다"

 

"..알아.."

 

"쪽팔리게.버스 기사가 되게 쳐다보더라"

 

"..뭐 어때..다시 볼것두 아닌데.."

 

"....."

 

 

그렇게 시답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며..-_-..


덤덤하게 들어선 괴물집의 대문..

 

 

그리고 거실..다음은 현관..

 

 

찰칵..

 

 

앞장선 은찬이의 손에 의해 현관문이 열렸을때..


그 오도방정 지랄맞은 친구들은 이미 다 내뺐는지..


어두컴컴한 거실에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당연히 어느 인간 하나 청소할 생각을 않았기에..

 


"어후..냄새.."

 

집안엔 술냄새며 음식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아줌마가 와서 다 치워."


"그러기 전에 우리가 치워야지!!"


"그게 아줌마 직업이잖아"


"됐다!!됐어!!"

 


말을 말아야지.이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 놈이랑.

 


그나저나 이렇게 어두우니 이놈 얼굴도 제대로 볼수가 있나..


어서 집을 치워야지.


이 곰팡내 나는 냄새가 온 집안에 스며들기 전에..

 

 

그렇게..얼굴 하나 분간 못하는 칠흙같은 어둠에..


더듬더듬 손을 뻗어 불을 밝히려는데..

 

 


턱..


반팔인 탓에 차갑게 얼어붙은 두 팔에 전해지는 따스한 손의 온기.

 

 

"..죽여버린다..미친짓 하면.."

 

"2박..3일이랬냐..형 오는게.."

 

"죽여버린다고 말했어.."

 

"...내일 모레네.."

 

 


힘없이 들려오는 그 목소리 다음으로..


천천히 얼굴을 닦아주는 따뜻하고 큰 손의 온기..

 

 


"..떼..손.."

 

"조카 빨간 립스틱 붙었잖아 븅아"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잖아."

 

"보여"

 

"세수하면 되니까 비켜"

 

"나한텐 니껀 다 보여"

 

"........"

 

 

언제..이런 상황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하루 때였다..

 

 

하루가 입술로 벅벅 휴지를 닦아준날


내 마음을 빼앗아간 그 결정적인 첫날.

 


그런데..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두사람 손길..

 

 

메마르고 거칠었던 하루의 손길..


따뜻하고 다정한 은찬이의 손길..

 

내가 하루에게 바라는것을..왜 이놈이 가지고 있는거지..

 

왜 하루는..이런 손으로 나를 대해주지 않는거지..

 

 


멍청히 그 씁쓸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립스틱이 잔뜩 묻은 은찬이의 손을 모질게 뿌리쳤을때..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

 

 

거실 구석에 놓인 고요했던 전화가..


갑작스럽게 가느다란 비명을 토해냈고..

 


이제껏 이집에 걸려온 전화를 한번도 받은적 없던 나는.


이번만은 분명 무언가와 다르다는 생각에.


앞을 가로막은 은찬이를 지나쳐 그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두 팔을 더듬어 갔다.

 
 
'따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

 


...

 


열번이 울려도 스무번이 울려도.


전화는 결코 끊어질 생각을 않고.

 

 

"받지마.."

 

 


머리 너머로 들려오는 은찬이의 목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수화기를 집어들면.

 

 


타앗!!

 

환하게 밝아지는 거실의 형광등.

 

 

 

"여보세요..?"

 

 


조심스런 목소리로 그 한마디를 내뱉으며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때.

 

난장판이 된 거실은 환한 불빛 아래로 더욱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냈고.

 

 

 

탁탁..

 

불을 밝힌 은찬이는 원망스러운듯한.

 

그래..원망스러운듯한 두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층계를 향해 갑작스레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나 믿고 뛰어'

 

'올라가 한설!!'

 

'나 믿고 뛰어'

 

'올라가란 말 안들려!!'

 

 


순간..머릿속에..아주 잠깐..

 

그날의 아슬아슬했던 장면이 흑백사진 한장으로 인화되 스쳐 지나가고.

 

지나칠만큼 적막한 수화기 너머를 향해 가만히 입을 열면..

 

 

 

"...여보세요.."

 

 

"뭐해."

 

 

"하루...?하루..냐...?아니 하루..야?"

 


"..응.."

 


"하루야!!!!!"

 


"응.하루...."

 

 

"뭐야!!대체 어떻게 된거야.!!정신 들어?괜찮아!?"

 


"괜찮아...밥은 먹었어...?"

 


"갑자기 무슨 밥이야!!너 괜찮냐니까!!"

 


"...괜찮아..?"

 


"나 말고 너!!너 괜찮냐구!!"

 


"괜찮지...?"

 

 


...휴...그래..니가 이겼다..


또 니가 이겼어..

 

 

 

"그래..너무 괜찮아서 탈이야..넌..넌 어떤데.."

 


"그럼 나도 괜찮아"

 


"응...다행이다...둘다 다행이다.."

 


"....."

 


"하루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말 잘들어..알았지..?"

 


"어..?"

 

 

"..잘..들어.."

 

 


지지직..지지직..수신음에 조금 안좋은 감이 오려고 하면.

 

난 귀가 아파 올만큼 더욱더 세게 전화기를 귀에 가져댔고.

 

뭔가 좀 불안한 예감에.목소리를 한톤 더 낮추며.

 

 

 


"응.말해봐."

 

 


"내일 저녁 6시에 강변역으로 와.."

 

 

강변역..?

 

갑자기 강변역이라니..?

 

뜬금없는 그 말에 잠시 할말을 잃은사이. 재빨리 말을 이어 붙이는 하루.

 

 


"도망가자."

 

 


"....뭐....?"

 

 

 


도망이라니..?!


아니 도망이라니!?!!


나의 소스라치는 목소리에.


더욱더 나즈막히 내려앉는 하루의 대답.

 

 

 

 


"둘다 위험해"

 

 

"위험?!!왜??우리가 왜!!!


잘못은 그여자..!아니..너희 엄마잖아..아냐..?!


너도 그렇게 알고 있는거 아니였어 하루야!?"

 

 


"...안돼.."

 

 


"...뭐가..-0-..대체 뭐가.."

 

 


"..그여잔..안돼.."

 

 


"..-0-..그래서..시방..가출을 하자구..?"

 

 

 

"당분간만 숨어있자.."

 

 

"...나......할아버지한테....그런짓 못해..."

 

 


"내일 저녁 6시.강변역 입구.


내 책상 서랍 지갑에 현금카드랑 신용카드 있어.옷은 니것만 가져와.."

 

 

 

"그러지 말고...


그러지 말고 우리 당당히 맞서자..!!우린 두사람이고 그여잔..아니 너희 엄만 하나잖아!!


내가 어떻게든 말씀 드릴게!!


신고하자..!!그날 목격자도 있었고..분명히 그러니까.."

 

 


"그 여자"

 


"...."

 

 


"은찬이 엄마잖아..."

 

 

 

'은찬이'...'엄마'...

 


따로 분리된 의미 심장한 그 한마디에.


어렴풋이 의심해왔던 그들의 관계가 분명한 사실로 윤곽을 드러내고.

 

 

 


"그래서..안된다고..?이대로 두자고..?우리가 도망쳐야 된다고..?"

 

 

"..."

 

 

"꼭 이렇게 까지 해야돼!?그냥 내가 나가면 되잖아!!"

 

 

"그럼 죽어.."

 


"...뭐...?"

 

 

"..그럼...나..죽는다고..."

 


"야!!!너 죽는단 소릴 왜그렇게 함부로!!"

 

 


"..강변역 6시.."

 


"강하루!!하루야!!"

 

 

 

'..뚜..........뚜...............뚜....................뚜..................'

 

 

 


뭐야..이게..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야..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하루를 그렇게 미워했던 건가..

 

아무리 그래도..어째서..어째서..

 

그렇게까지..

 

 

 


난 수화기를 떨군채 멍청히 그들의 관계를 정리해보다가

 

도저히 나 혼자 답을 찾을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내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


......

 


..조금씩...드러내고 있다..


알고 싶지 않은..묻고 싶지 않은..


밝혀지는 그 순간 우리 세사람 모두를 집어 삼킬것만 같은.


이 괴물집의 거대한 그림자가.


하나...둘


천천히 그 잔혹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 그날밤.

 

 

 


"휴........................"

 

 


침대에 오도커니 앉아.

 

오랜 청소탓에 저려오는 팔을 주무르며.

 

내일 벌어날 일에 대한 걱정으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끼이익'

 

 

 

방문이 삐그덕 열리며 잠옷차림의 은찬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아까..형이냐..."

 

"...응..."

 


"응...."

 

 


이 분위기..또 나오려 한다..

 

안돼..이제 제발 그만..

 

 

 

"너..넌 근데!! 인간이 어쩜 그렇게 청소를 요만큼두 안 도와주냐..!!"

 


"내 맘이다!!"

 

 


"어휴.왕자님 즐.."

 

 

"벙개걸 즐"

 


"..-_-.."

 


"불타는 쌔끈녀.즐"

 

 


"내가 니 새끼 그거 왜 안 우려 먹나 했어.."

 

 

 

투덜대는 나를 보면서.


졸린 눈을 스르르 감으며 빙긋 웃더니만.


펭귄처럼 -_- 내 앞으로 다가오는 은찬이.

 

 

 

 

"오늘도 내방에서 잔다느니 이딴말 하지마. 아주 다리깽이를 분질러 버릴테니깐."

 

 

"....안해..."

 

 

"망할놈..그딴거나 다 기억하고..쪽팔려 죽겠구만.."

 

 

"너 머리 푸르는게 더 예쁘다"

 

 

"참나.니가 예쁘다면 내가 아이구 그래-0-!? 하면서 푸를것 같냐...?"

 

 

"아니요.."

 

 

 


아니. 이자식이 왜 또 이리 순순하게 나와.


졸지에 내가 뺑덕어멈 된것 같잖아..-_-

 

 

 


"....그래서..내 방엔 왜 왔는데..-_-..."

 

 

 

어지간히 졸리신듯.


평소같으면 두눈 부릅뜨고 다다다 말을 쏴붙일 은찬놈이..


눈을 마구 비비면서 내 침대 밑에 털썩 주저앉는다.

 

 


언제 들려 있었던건지.


왼손에 든 베개를 무릎위에 올려놓으면서..

 

 


잠.깐.만.

 

 


베........개.......-0-?

 

 

 

"야!!!!!너 그 베개 뭐야!!대체 내방엔 왜 온거야!!!!=0="

 


"....왜 왔게..."

 


"왜 왔게라니!?!왜 왔냐니까!!!!!!!!!!!"

 

"사고치러"

 

 

 

뭣이여..-0-..

 

 

 

"방금 한말 다시 좀 해볼래-_-한글자씩 차근차근 떼어서."

 


"사.고.치.러."

 

 


후..좋다..


그래. 사고엔 여러 종류가 있지..^-^

 

 

 

"무.슨.사.고.?"

 

"대.형.사.고."

 

"나.랑.같.이.?"

 

"당.연.한.걸."

 


..-_-..

 


"너.미.쳤.니.?^ㅇ^"

 

"그.런.가.봐.^ㅇ^"

 


후..아..아..

 

...

 

아아아아..

 

.......

 

 

 


"나가아!!!!!!!!!-0-!!!!나가아!!!!!!!당좡 나가아!!!!!!!!!이 미친놈아!!"

 

 

 

자리에서 일미터쯤 붕 뛰어올라.


발정기를 맞은 오랑우탄처럼 광란을 일으키는 길.

 

(정말 처음엔 이런 이미지 아니였음-_-)

 

 

그러자 놈은 킥킥 대고 웃으며 두 손으로 내 공격을 막아대다가..


자리에 벌렁 드러 누우며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고.

 

 

 


"벙개걸.김칫국 처먹지마."

 


"김칫국이든 된장국이든!!퍼뜩 일어나 나가란 말이야!!!!!!-0-"

 


"놀러온거야 븅아.나 자러 온거 아냐.놀러 온거야.."

 


"그럼 자리에서 몸 일으켜!!"

 


"야..사랑의 큐피트가 진짜 있을까...?"

 


"말 돌리지 말구 몸 일으키랬다..."

 


"그새끼 잡히면 아주 죽여버릴거야."

 

 


이놈이..또..살살 무게를 잡으려 하는건가...-_-...

 

쫓겨날 궁지에 몰리니 이런 야비한 수작을 부리고 있군..

 

 

 

"한놈은 죽는대고 한놈은 죽인대고..강브라더스가 아니라 공갈 부라더스네.."

 

 


"....강브라더스..하지..말랬다.."

 


"알았다.깡^0^ 브라더스"

 

 

"하지 마!!!!!-0-"

 

 

"그럼 너도 벙개걸 하지마!!!!!!!"

 

 

"좋아.둘다 하지마..둘다 안하기다..!!-0-"

 

 

"..좋아.."

 

 

"..좋아.."

 

 

 

 

나는 침대위에서 책상 다리 자세로.


은찬놈은 침대 밑에 책상 다리 자세로.

 


아까의 흥분이 녹아 내린탓에 가쁜숨을 씨근덕대며

 

물끄러미 고놈의 뒷통수 꼭지를 내려 보자니.

 

이놈의 머리통이 베개위에 착 달라붙는걸 보아

 

아무래도 요상태 고대로 잠들려는 속셈인것 같고.

 

 

-_-...

 

 

 

 

 

"잠드는 날이 니 제삿날."

 


"...내일 모레 형 오기전에.."

 


"...."

 


"너 그 전까지만 나랑 놀래.."

 

"...."

 


"내일만 나랑 놀래?"

 

 

"내일..약속있어.."

 


"..모레로 미뤄라.."

 

 

"..내일..약속인데.."

 


"나한텐..내일이 첨이자 마지막이잖아."

 

 


어떻게 될지 몰라..


내일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구 이놈아..

 

 

 

 

"너 솜사탕 먹어봤냐?"

 

 


뜬금없이 왠 솜사탕.


게다가 그걸 먹어 봤냐니..-_-

 

 


"이 새끼가 누굴 그지로 아나..-_-"

 


"딸기 빙수도?"

 


"..뒤질래.."

 


"..구슬 아이스크림도..?"

 

 


-_-..그..그게 뭐냐..

 

당황한 나의 표정을 어느새 포착하곤.

 

신이 나서 베개위에 눌린 머리를 벌떡 쳐드는 은찬이.

 

 

 

"거봐.너 그거 안먹어 봤지?구슬 아이스크림?!"

 

 

"...구슬..이..그 유리로 된 왕구슬.-_-..?"

 

 

"내가 사줄게!!놀이동산가서 그거 사줄게!!"

 


"됐어!!내가 애냐!?아이스크림 먹으러 홀랑 쫓아가게!?!"

 

(사실 미치도록 먹고싶음-_-)

 

 

 


조금 무너지는 내 낮빛을 바로 캐치하고는.

 

아예 내 쪽으로 등을 돌려 앉아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떠들어대는 은찬이.

 

 

 

"진짜 진짜 앞으로.어?


진짜 진짜 나 좋아해달란말 안할게.세컨드 시켜달란 말도 안할게.


놀이동산만 가자...가자 놀이동산~"

 

 

"....."

 

 

"가자 놀이동산~놀이동산 가자~~"

 

 

"......"

 

 

 


쿡쿡 저려오는 가슴을..달빛이 환하게 비춰올때..


은찬놈은 평소보다 훨씬 어리고 또 어리게만 느껴지는 얼굴로


내 마음을 조그맣게 구겨 버렸고.

 


내가 양털 이불에 스민 아까 그 날돌이의 발냄새를 맡으며 인상을 찌푸릴때.


놈은 잔뜩 졸려오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냥 친구로..


그냥..오빠나..남동생으로..."

 

 


"....."

 

 

 

"내일 모레면 너 다시 걔꺼 되잖아.


나 평생 조카 못된 동생 하는대신..행복한 남자 내일 하루만.."

 

 


"내일 모레면 다시 걔꺼 되는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난 하루거야..은찬아.."

 

 


"........쿨..쿨....."

 

 

 

입으로 쿨쿨 소리를 내면 나보고 무슨 대답을 하라는거냐..-_-..

 

...

 

 

 


그렇게 침대 커버에 머리를 기대고 대책없이 눈을 감아버리는 은찬이를 보면서..


나는 제발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기를..


저 눈부신 달빛이 내일 뜰 태양과 싸워서 당당히 승리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랬지만..

 

 

 

'꼬끼요오!!콕콕콕콕콕!!-0-!!' ( 실제로 닭이 운건 아니다-_-)

 

 


야속하게도..

 

한겨울의 늦은 태양은 뻔뻔한 얼굴을 쳐들고서 아침 7시 반경 얼굴을 나타냈고..

 

나는 한번의 반격 없이 백기를 든 달빛을 죽도록 원망하며..

 

거울속에 보이는 밤새워 푸석해진 내 얼굴에게..

 

 

 

'잘잤냐.한설...'

 

 

 

 


여느때보다 힘없고 자신없는 인사를 건넸다.


"설 학생.아까 하루방에서 뭐했어??"

 

 

\ 아침.

 

 


여느때보다 활기 넘치는 은찬이가 먼저 현관을 나서고.

 

아침 식탁앞에서 그 얼굴의 찬란한 광채를 외면했던 내가 한숨을 내쉬며 신발을 신고 있는데.

 

 


..

 


"^ㅇ^..응..?"

 


..-_-..

 

미소를 잔뜩 머금고 신발장앞까지 따라붙어버린 아줌마.

 

 

 


"..아니요..그냥.."

 

"하루가 뭐 가져다 달래?"

 

"..네.."

 


"하루랑 사귀지??그지?"

 

"..-_-.."

 

 

 

그 한마디에 이렇게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버리다니..

 

 


감홍시처럼 붉어진 내 얼굴을 보며.


다 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줌마.

 

 

 

"그래그래.맘고생 심하겠네."

 


"..왜요..?"

 

 

"..아니...아니...


하루 학생 또 워낙 말수 없고 차가우니까.."

 


"알고 보면 되게 따뜻해요.."

 

"...그래..?"

 

 

"네.밥먹었냐고 물어봐주고. 남 추운거 절대 못봐요.

자긴 얼어 죽어도 다른 사람은 따뜻해야 돼요."

 

 


"...오호...의외네.."

 

 

전혀 동감 할수 없다는듯.


쓴웃음을 짓는 아줌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습관처럼 현관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서는길.

 

 

 

아직 채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내 몸과 마음에 반도 넘게 스며든 이 생활은.


기쁘지만 슬프고.


또 행복하지만 혼란스럽다.

 

 

 


'머리 묶어' '푸른게 더 나 병신'

 


'뛰어내려' '올라가'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 '타앗'

 

 

 

......................

 

 


분명.................

 

선택의 기회는 내쪽에 있었다.

 

 

그리고 난.

 


늘 같은것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이후에 벌어날 모든 행복도 내 차지 겠지만.

 

이후에 벌어날 모든 고통도 내가 짊어져야만 한다.

 

 

 

 

\ 교실안.

 

 

 


"그래서 그래서!!하루오빠가 어제 나 이꽃 줬다아!?


울집 앞으루 와서 줬다아!!-0-!?되게 이뿌지?이뿌지 이뿌지?!"

 

 

..-_-..

 

대체 한겨울에 저 해바라기를 어디서 구한거지..

 

 

 

"오오!!그러니까 하루오빠가!!사랑한다 내 맘을 받아줘!!하면서 그 꽃을 줬단 말이지!?"

 

"그렇다니까!!그렇다니까!!"

 

 


..옳지..


자세히 보니 가짜인게로군..

 

..

 


그랬다..

 

코끼리와 맘모스는.

 

아까 일교시부터 신기사 아저씨 얼굴만한 해바라기를 들고 와

 

내 옆을 알짱대며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하루의 고백을 멋대로 씨부려댔고..-_-..

 

나는 좀전에 필기했던것을 열심히 암기하며 안쓰러운 그 아이들을 외면했다.

 

 

 

 

"뭐어어어!?키스를!?!?!니가 싫다고 하니까 키스를 했단 말이여!?!?"

 

"오오옴..입술이 너무 아파..그래서..입술이 퉁퉁 부었어.."

 

 

 

..-_-..정말 더럽게 걸리적 거리는군..

 

 


눈앞에서 휙휙 날아다니는 조잡스러운 모양의 해바라기 잎사귀에.

 

나는 더이상 참을수 없어 의자를 박차며 일어나고..

 

 


"..-0-.."

 

 

짝꿍을 비롯한 여러아이들의 슬금슬금 눈초리를 또 한번 받으며.


뒷문을 향해 날쎈 걸음을 옮겼다.

 

 


"화장실에 질질 짜러 가나부다.우하하하하!!-0-!!!"

 

"미안해 언니!!!!너무 낙심하지마!!언니한텐 그 싸가지 선도부장이 있잖어!!-0-"

 

 

 


...싸가지 선도부장..?

 

 

지금 막 뒷문을 열고 그 괴로운 지옥을 벗어나려 하던 나는.


재빨리 등을 돌려 그들을 노려보고..


그럼으로써 더욱더 살벌한 공기를 품게된 우리반 교실.

 

 

"니들..욕하는거 나 한사람으루 족해라"

 

 

"-0-내가 뭘?내가 뭘 욕했다구 그래!?"

 

 

"강은찬 착해......알고보면 착해....


걔 착한놈이야!!!!!!절대 나쁜놈 아니란 말이야!!알아들어!!?!!"

 

 

"오께오께.오바 클수 아이엠.-0-"

 

 

오바 클수 아이엠..

 

 

 


기막힌 그 영어에 할말을 잃은 나는

 

더이상 쏴붙일 기도 다 빠짐에 다시 복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낯익은 덕풍고 두마리가 눈안에 쏘옥 들어오니.

 

 


"강은찬 착해!!알고보면 착해!!

걔 착한놈이야!!절대 나쁜놈 아니란 말이야!!알아들어!!>ㅇ<"

 

 


...-_-...

 

 


친절하게도.방금 내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리플레이 해주는.


어제의 그..


날돌이 발냄새.!!!-0-

 

 

 

 

 

"....저 멧돼지 같은게 나 나쁜놈이라냐..-_-..?"

 

 

그리고.


그 옆을 우뚝 지키고 서계신 강은찬님.

 

 

 

 

"왜..왔냐..-_-.."

 


"이거 주러."

 


"..뭐.."

 

 


때마침. 교실안에 있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불쑥 머리를 내밀려 했기에.

 

우리는 복도 끝으로 천천히 자리를 옮겨야 했고.

 

그 사이에도 그 날발이 자식은 쉬지않고 주둥이를 나불거렸다.

 

 

 

"몰라봐서 미안하다.난 니가 어제 진짜 은찬이 바람핀 현장 잡으러 온앤주 알구.-0-"

 

 

"넌 잔말말고 내 이불이나 빨아놔.."

 


"..-0-..왜..?"

 

 


"니 발냄새 다 베겼잖아 이 드러운 자식아!!!!!!!!!"

 

 

"나 발냄새 안나!!!!!!!!!!!안난단 말이야!!!!!"

 


"그럼 내꺼냐!!!!그 정체모르게 나타난 냄새가 내꺼야!!!!-0-"

 


"이게 근데!!나는 너한테 다정스레 대했는데


넌 왜 나한테 이렇게 못되게 구니!!!!!!ㅠ0ㅠ"

 

 

 

생각보다 마음이 여린듯 이 아이-_-

 

 

발냄새에 충격을 받은건지. 두 주먹을 꽉 쥐며 나에게 부들부들 고함을 지르고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사태를 수습하려 하자

 

날발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치우며..-_-

 

 


무언가를 불쑥 내미는 강은찬.

 

 

 

 

"뭐야..이게..찰흙이냐..?"

 


".....아니.."

 

 


비닐에 거추장 스럽게 쌓여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것이..

 

이건 흡사........

 

 

 

 


"똥..-_-..?"

 

 


"뒈질래.."

 

 

"뭐야..이게...이걸 왜 날 줘...뭣에다 쓰라고.."

 


"그건 돈까스야."

 

 

"거짓말마.너 왜 나한테 거짓말 하니..?"

 

 

"그거 돈까스 맞아!!가사 시간에 우리 조에서 만든거라구!!"

 

 


묻지도 않았는데.


불쑥 다시 대가리를 내밀며 끼어드는 날발이.

 

 

 

돈까스라고 이게..?

 

대체 어딜봐서...-_-...?

 

 


나는 깨름직한 시선으로 그 괴상망측한 물체를 내려보았고.

 

그러는 사이 은찬놈은. 자랑스러운듯 헛기침을 몇번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 나 먹으라고.?"

 


"그럼 먹지 얼굴에 쳐바를래!?!"

 


"..-_-.."

 

 

"우리 4조의 야심작!!주물럭주물럭 사랑의 왕돈까스!!!"

 

 


....-_-....

 


이어서 들려온 날발이의 한마디에..

 

나는 돈까스를 은찬이 모르게 등뒤에서 살며시 반으로 접어 버렸고..

 

그걸 알리 없는 놈은 교복 마이깃을 한번 여미곤 대단히도 떳떳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거. 아무나 못먹는다."

 


"아무나 안먹는거겠지..-_-.."

 


"너 남이 힘들게 만든 요리에 자꾸 쌔빡 칠래.."

 


"그래.고맙게 먹으마."

 

 

 

 

"은찬이가 원래 가사시간에 요리 재료만 훔쳐먹는앤데!!


이번엔 두시간에 걸쳐 그걸 만들었다니까!!?


글쎄 우리 조 조장도 자진해서 맡았다 야!!"

 

 


"대단해..선도부장에 요리실습 조장.."

 

 

 

가시돋힌 나의 말에 빈정이 상한듯.


확 굳어지는 은찬이의 표정.

 

 

그러면.

 

틈을 놓칠새라 계속 그 뻥 뚫린 주둥이를 나불대는 날발이.

 

 

"밀가루 내가 반죽했어.!!!"

 

 

....

 

 

 

대체 나더러 이걸 먹으라는거냐..

 

아니면 먹지 말라는거냐...

 

 

 

"핫케익 갚았다."

 

 


혼란스러워 하는 나를 향해.


그 한마디를 아주 위풍당당히 내던지고는.


날파리 (발음이 귀찮아 날파리라 부르기로 함-_-) 의 어깨에 팔을 둘러 질질 끌며


등을 돌리는 강은찬.

 

 


...

 

 

......자식이....

 

은근히 아기자기해서

 

안그럴것 같은데..자꾸만 사람 감동 시키단 말이지.

 

 


"어쨌든... 어쨌든 잘먹을게..!"

 

 

작은 내 목소리에.은찬놈이 힐끗 등을 돌리면.

 

 

 

"어쨌든 잘 먹도록 노력..노력 해봄세!!!!"

 

"이따 다시 갚어라!!!!!!!!"

 

"......"

 

 

 

놀이동산을 말하는듯..

 

은찬이는 그렇게 한손을 휘저으며.

 

놈과 복도에서 온갖 생쇼 부르스를 다 치며 서서히 멀어져갔고.

 

 

난 한손엔 그 찝찌름하며 괴상망칙한 돈까스를..

 

그리고 또 한손엔 혼란스러움과 선택의 순간을 꽉 쥐고서..

 

가슴 억눌리는 여섯교시의 수업을 보내야 했다.

 

 

 

 


\ 방과 후 버스안.

 

 

 


처벅처벅.

 

한손에 그 해괴망칙한 돈까스를 들고 버스에 오르는 날 보고.

 

모세의 기적처럼 양갈래로 쫙 갈라서는 승객들.

 

 

 

 


"어머.똥 아니야 똥.-0-"

 

 

"아서라.얘.우리한테 던질라!!"

 


"조용히 말해.-0-..다 들려.."

 


"..대체 저게 뭐람.."

 

 


-_- 이 빌어먹을 자식이.


요리 하나를 해주어도 꼭 이지경으로 사람을 코믹스럽게 만드는구나.

 

 

 

뒤쯤에 자리한 빈좌석에 털퍽 앉아.

 

나는 아까 코끼리가 가져온 해바라기의 딱 두배인

 

그 흉물스러운 왕돈까스를 가만히 바라보고..

 

 

 


"...그게 뭐요..대체.."

 

 


옆에 앉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할아버지로부터 의심에 찬 눈초리를 또 한번 받아 삼켰다.

 

 

"..........먹을거요.."

 


"아니..그게 먹을거라고..-0-..?"

 


"..네.."

 


"새로 나온 요리요?이름이 대체 뭐요?"

 

 


순간..온 승객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고..

 


꿀꺽..

 

그들은 침까지 꿀꺽 삼켜가면서..


내 입에서 터져나올 그 정체불명의 이름을 기다렸다.

 


....

 

......

 

 

 

"주물럭 주물럭 사랑의 왕 돈까스요=_="

 

"...-_-.."

 

 


그렇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측은하게 바뀌어 갈때..

 


혹은 어떤 호기심 많은 아이는 '아하 그랬던 거구나'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볼때.

 

 

 

나는 주저없이 비닐을 열어 젖혀.

 

맨손으로 아구아구.

 

그 피자 한판만한 돈까스를 이빨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어머머..어머머..저걸 먹네..저걸 먹어.."

 

 

 

참말로 쪽팔린 그 대사와 시선을 감수하며.

 

버스가 집으로 향하는 그 30여분간

 

쉬지않고 악을 써가며.

 

그 타이어보다 질긴 돈까스를 가루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뜯어 먹었는데.

 

 

 

 


그 첫번째 이유는

 


...........

 


이렇게까지 해가며 나같은년을 좋아해주는 '강은찬'에 대한 악이였고.

 

 

 

 


그 두번째 이유는

 

...........

 


이렇게 멋진놈에게 몇시간후 또 상처를 줘야 하는 나 '한설'에 대한 악이였다.

 

 

"어이.학생!!택시 안타요.택시..?!"

 

 

 

\ 강변역 앞.

 

 

 

뒤 한번 안돌아보고 쏜살같이 달려와 버린 강변역.


은찬이를 버려두게 만든


모든걸 등지고 배반하게 만든 최후의 목적지.

 

 

 

"학생.택시 안타냐니까..?"

 

"...요.."

 

"응..?"

 

"안타요!!!!!"

 

"..-0-..아니..근데 왜 소린 버럭 지른댜.."

 

 

 


금방이라도 터질것 같은 악을 꾸역 꾸역 삼키며.


그 눈치없는 택시 기사를 지나쳐


강변역의 입구에 간신히 몸을 세워 놓았을때...

 

 


"하아..."

 

 

그리고 가쁜 숨과 함께 바닥위로 털썩 주저 앉아 버렸을때.

 

 

....


......


발밑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하나.

 

 

 


"그런데 막 앉는거 아니야.."

 

 

마지막으로.


미치도록 그리웠던 그 목소리에 재빨리 고개를 들면


조금 창백해진 낮빛의 하루가 싱긋 웃으며 날 내려보고..

 

 

 

 

"야..!!!!!!!!!!"

 

 

버럭 고함을 치는 내게 왼손을 슬며시 내미는 하루.

 

 


"대체 뭐야!!!이제 우리 어떡해!!!!!"

 

 


차게 식은 그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나.


길가던 행인이 놀랄만큼 커다란 소리로 따져 물으면.


하루는 대답대신 내 등에 짊어진 가방을 자신의 어깨 위로 가져다 맸고..

 

 


"대체 어떻게 할건데 이제..!!우리 어디로 가는건데..!!"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나의 질문을 모두 무시한채.


역안으로 혼자 쏘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야!!강하루..!!"

 

 

사라지는 뒷모습만으로도 날 설레이게 만들면서..

 

 

 


\ 강변역 안

 

 

 


'지금 부산행 버스가 30분간 지연되고 있사오니. 이미 표를 구입하신 분들께서는..'

 

 


웅성웅성.

 

대체 평일에 왠놈의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건지..


안내원의 방송을 들으며.난 쫄래 쫄래 하루의 뒤를 따랐고..


뭇 여성들의 시선을 훔쳐내며 껄렁 껄렁 걸어가다가..

 

 


휙.

 

별안간 내 쪽을 향해 돌아서는 하루.

 

 

 

"아..표 사야지.."

 


"그러니까..내 말이..!!대체 어디 갈거냐구!!"

 


"충주."

 

"뭐!?충주!?!-0-!?!"

 

"충주.."

 


"거길 왜가!?!뜬금없이!?아는사람이라두 있어??"

 

"아니..없어.."

 

"그럼 니네 별장??"

 


"별장없는데.."

 

-_-...

 

 

"설마..거기까지 가서 댐이라도 보자는거야-_-?"

 

"그래.댐 보러 가자."

 

"..댐을 보러 가자구..?"

 


"응.댐 보러 가자..


고개 숙여!!"

 

 

"..뭐..-0-..?"

 

 

 

이 자식이 또 쌩뚱맞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담.


그도 그럴것이.


하루는 갑자기 온 힘을 발휘하여서 내 고개를 밑으로 무참히 꺾어 버렸고.

 

 


"아아악..!!"

 

 

덕분에 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우두두둑.


고개를 떨구었을때.


그앤 내 손을 이끌고 매표소로 다급히 뛰기 시작했다.

 

 

 

"내 목뼈어어어!!!!!!!!-0-"

 


"경찰있어."

 


"아이고오 내 목뼈어!!-0-"

 

"잠깐..니 모자부터 사자.."

 


"내 목뼈어어어!!!!!!!!!-0-"

 

 


목을 부여잡고 꽥꽥 난리 법석을 치고 있자니.


역 안에 있는 슈퍼 안으로 불쑥 들어가버리는 하루.

 

 

어찌할 도리가 없는 나는 쫄래 쫄래 그애의 뒤를 쫓아 들어가고

 

 


"모자좀 줘요."

 


-_-..

 


물건을 사는것이 마치 처음인냥.


그놈은 활짝 웃고 있는 주인아줌마께 아주 건방진 소리를 찍 내뱉었다.

 

 

 


"여기 모자가 없는디..-0-.."

 

"아줌마가 쓰고 있는거.."

 

"이거..?이거 말여..?"

 

"..네.."

 

 

하루의 손이 가르키는.


빨간 리본이 매여져 있는 거대한 밀짚 모자를 무표정히 바라보면.


쑥쓰러운듯 호호호 웃는 아주머니.

 

 

 

 

"이걸 어찌 팔어..!!내가 쓰던 모잔디..!!"

 


"이거밖에 없어요."

 


"오잉..?"

 


"모자르면 돈 더 찾아올게요."

 


"....-0-...진심이여..?이 모자를 진심으로 사겠다고..?"

 

 

 

나만큼이나 놀란 아줌마는


하루가 심각하게 내민 만원짜리 한장을 휘둥그런 두 눈으로 바라보고


더이상 얘기 할 시간 없다는듯.


하루는 아줌마의 머리에 씌어진 그 주접스러운 모자를 쏙 벗겨내.

 

 

 

...

 

 

이내 내 머리위로 덥썩 씌어버리는것이 아닌가..-_-

 


"..-_-..뭐하니.."

 


"...."

 

 


대답대신. 부시럭 부시럭 내 가방을 뒤져서.

 

혹시 몰라 내가 챙겨온 멀쩡한 캡모자를 자신의 머리위로 푹 눌러쓰는 하루.

 

 

나한테 꽉 맞던게 왜 저놈이 쓰니까


얼굴을 반이나 가리는것이냐..-_-..

 


뭔가 좀 빈정이 상해 가만히 놈을 올려보자니.


내 밀짚모자를 보고 풋 웃음을 터트리는 강하루씨.

 

 


"너..지금 왜 웃니..-_-..?"

 


"아니야.가자."

 

 


다시 정색을 하고 돌아온 놈의 표정에.


나는 그 아이의 앞을 턱하니 막아 섰고.

 

 

 

 


"그게 내 모자잖아!!!!!!!!!!-0-보자보자 하니까 이게 뭐하는 짓이야!!!!!!!"

 

 

"....리본 달린걸 내가 어떻게 써.."

 


"그럼 리본 떼줄테니 바꿔!!!!"

 


"싫어"

 

"..아니..왜..-0-..?"

 

 

"그 모자.쪽팔려."

 

 

 


...-0-...

 

 

........-0-.......

 

 

 

 

"서두르자..경찰들한테 들키기 전에.."

 

 

"잠깐..야..이런게 어딨어..나한테 씌운 모자더러 쪽팔리다니..!그럼 난!!


이걸 쓴 난 뭐가 되는거야!!-0-"

 

 


성난 얼굴의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윽고 밀짚 모자에 달린 리본을 팽팽하게 펴주는 강하루.

 

 

 


"아 예쁘다."

 

"..야..."

 

"너 표 사는법 알아..?"

 

"몰라!!!!!"

 


"....일단 가서 물어보자...."

 

 

 

폼나게 모자를 눌러쓴 강하루는.


머저리 꼴을 한 내 손을 꼭 붙든채 매표소로 한발짝 한발짝 가까워가기 시작했고.


나는 쓰디쓴 눈물을 삼키면서.


경찰들의 호랑이 같은 시선을 피하며 그애의 뒤를 따랐다.

 

 

 

"어디 가실겁니까..?"

 

 

 

\ 매표소.

 

 


무뚝뚝한 아저씨의 한마디에.


모자를 더욱 꾹 눌러쓰곤. 주위를 한번 둘러보는 하루.


그러더니.

 

 


"충주."

 

 

 

아무데서나 반말하지말란 말이야


이 자식아-_-

 

 


"충주요?몇시꺼요?"

 


".....6시반.."

 


"그건 없는데요.."

 

"그럼 아무거나요"

 


"7시꺼 드릴께요"

 


"네"

 

 

 


이윽고..

 


매표소 직원과 하루의 사이에 뭔가 말똥말똥한 시선이 오가고.

 

 

 


"표 왜 안줘요"

 

 

"돈을 주셔야지요"

 

 

"왜요..?"

 

 

"..-_-..내가 표를 주니까..학생은 돈을 줘야죠.."

 

"버스에서 내는거잖아요"

 


"그건 시내버스죠-_-"

 


"얼만데요..?"

 

"7500원 되겠습니다만.."

 

 

 

어이없는 남자의 대답에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푸우 한숨을 쉬더니.


이내 나 밀짚모자 찐따에게 말을 건네는 하루.

 

 

 

 

"카드 줘.돈 찾자."

 

"..카드..?"

 

"내 지갑에서.."

 

"아..그거.."

 

 

그거라면 여기 잘 가지구 왔지 내가.-0-

 


직원의 수상쩍은 시선을 받으며

 

주머니에서 짜자잔!!

 

꺼내놓은 카드 두장을 하루에게 내밀었을때

 

 

 


"....-_-...."

 


"...^ㅇ^...."

 

"....-_-....."

 


"...왜...문제 있어...?^ㅇ^"

 

 

 

카드를 받아들 생각도 하지 않고 꾹 다문 입으로 날 노려보는 하루.

 

 

 

"아 왜 그러냐니까!!!!!!"

 

 

"이건 옷가게 적립카드"

 


".....=_=....."

 

 

"이건.공중전화 카드"

 

 


"허허허허허-0- 것참 신기하네.그놈들이 왜 따라왔지."

 

 

"맞을래."

 

 

"나 때릴거야-0-?여자친군데-0-?"

 


"후..."

 

 

 

 

그가 깊은 한숨과 함께 카드를 주머니에 집어 넣으면..


나는 그 오색찬란한 밀짚모자를 더욱더 푸욱 머리위에 눌러 써야 했고..-_-..

 

 

 

한시간후.


퀴퀴한 버스안에 몸을 싣고 있어야 할 우리 두사람은..

 

 

 

 

"어허이..춥다..추워..날씨 한번 오라지게도 춥네....-_-.."

 

"....."

 


"허허허허허..-0-.."

 


".....등신..."

 

"카드가 그렇게 여러개 있는줄 알았나 뭐..-_-.."

 

 


살을 에는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4년전 내가 종종 드나들던 구멍이 숭숭난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와 있었다.

 

 

 

 

\ 왕십리 근교.

 

 

 

"그러니까 여기가..4년전만 해도 한달에 몇번 머물렀던 곳이야.."

 

 


"...-_-^..."

 

 


"잘때가 정 마땅치 않으면 여기 오는거지.


논밭 있는데라 사람들 올 염려도 없고.주인도 없고.


그래도 여름이면 농작물 제배 하니까 없어질 염려도 없고.."

 

 

 

"많이 추웠겠네..."

 

 

"헤헤.그땐 뭐 춥고 이런게 중요한가.안전한데서 눈만 붙이면 되지.."

 

 

 

두시간도 넘게 걸어오느라 온몸이 녹초가 된 우리 두사람은.

 

허물어져가는 그 얇은 비닐에 몸을 기댄채.

 

서로의 얼어붙은 손을 더욱 꽉 마주 잡았고.

 

 

 


"....이제...우리 어떡하냐...?"

 


"어떡하지..?"

 

 


이 상황에서도..끝까지 저 타령이네..-_-

 

 


"좋아..어떡하 '지' !?!-0-"

 

 


"내일은 꼭 가자.."

 

 

"돈이 한푼도 없잖아.


이미 사방에 경찰 쫙 깔렸고..


너도 나도 학교에 친구 한명 없으니.돈 빌릴데도 없잖아.."

 

 

"..있어..빌릴데.."

 

 

"...누구...?"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문득 옆을 바라보면..


모자를 더욱 푹 눌러쓰며 내 시선을 피하는 하루.

 

 

"오렌지족!!!!!!!!?"

 


"그게 누구야..?"

 

 

"아니..그 여자..오렌지 머리 있잖아!!너랑 연애 했던!!!"

 


"...아니..."

 


"그럼 누구..??"

 


"노래 불러봐."

 


"...-_-...너 자꾸 이딴식으루 말 돌릴래..."

 


"노래 불러줘."

 


"또 나 모르는 뭔가 있는거지."

 


"노래.불러주세요"

 

 

...휴우...

 

내가 너를 어떻게 당하겠어요..

 


..

 

 

구멍이 송송 뚫린 비닐 하우스 안.


나 혼자라면 분명 십분도 견디지 못했을 유난히도 어두컴컴한 비닐 하우스 안에서.


하루는 내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오며


속삭이듯 중얼 거렸고..

 

 

 

나는 잠시 놈을 흘끗 노려보다가..


이내 그 죽이는 옆선에 도발될까 다시 휙.


앞에 놓인 깨진 화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래라..어떤게 좋을까..."

 


"...좋은거.."

 


"니가 두번째다..나한테 노래 불러달라고 하는거.."

 


"첫번째는 누군데..?"

 


"윤영이.."

 


"...윤영이..."

 


"응..4년전에 나 밥도 사주고 잘 챙겨주던 착한 친구 윤영이.."

 


"착한 친구 윤영이..."

 

 


얘가 왜 이러지...?


평소 답지 않게 너무 순하고 여리게만 느껴지는 하루 모습에.


난 불안해져오는 마음을 감추며 헛기침을 시작했고...

 

 

...

 

 

좋아..분위기를 띄어보세..

 

라는 생각에. 어렴풋이 들었던 신나는 민요를 주절여 대기 시작했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흥♬성화는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흥♬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늬나노오오오오오!!-0-!!♪늴리리야!!늴리리야아!!!!!!!!!"

 

 

 

"너....진짜 두대만 맞아볼래."

 

 

"왜. 이 노래 맘에 안들어?-_-"

 

 

"그런거 말고..조용한거..슬픈거.."

 


"...발라드..말이지..?"

 


"..응.."

 

 

흠..가만있자..


중학교때 내가 잘 부르던게 있었는데..


뭐였지..그게..

 


...아...!!

 

 

 

"잊혀지지 않음으로 널 그저 사랑하겠다고.


그대여 난 기다릴거에요.내 눈물의 편지 하늘에 닿으면..-0-♪"

 


"그거.말고.."

 

 

점점 작아져오는 하루의 목소리..

 

 


"....대체 뭐..어떤걸 원해.."

 

"더..슬픈거..더..좋은거.."

 


...


.....

 


"그럼..내가 지은거 있는데..그거 들어볼래..?"

 

 

끄덕끄덕.

 

하루의 머리가 내 어깨위에서 미세히 움직이면..

 

 

"...흠.....좋았어......놀리지 마라 너.."

 


"응.."

 


"다 듣고나서 이상했느니 어쨌느니 하면.


너 우리 집에서 내쫓는다.."

 

"응..."


....

 


이노래..요즘들어 꽤 여러번 맴도네..

...

 


조금 쑥스러운 마음을 가다듬고서.


어깨위의 하루 머리에 조심스레 어깨를 두른채.


윤영이와 나의 노래를 시작하는 한설..

 

 

 

"...네가 남긴 작은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작은 개구리마저 구슬프게 날 위로해주던 길.♬


목놓아 울다 네가 다시 내게 돌아와주길.


진동없는 작은 상자 힘을내 부숴져버리길..."

 

 

"....."

 

 

"내가 잠든 사이에 거짓말처럼 날 데려가주길.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주길.


외톨이의 눈물을 기억해주길♪외톨이의 사랑을 노래해주길.♪"

 

 

 

이 노래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아무말이 없는 하루는..

 

살짝 올려만 놓았던 머리를 내 어깨위로 더욱 푹신히 기대어 왔고.

 

 

 

 

 

"강하루....."

 

"....어..."

 

"자..?"

 


"..어.."

 


"근데 어떻게 말해..?"

 

 

"....나 잠꼬대 해..."

 

 

"...하루야.."

 

 

"..."

 

 


"우리..계속 이렇겠지..1년후에도 이렇게 같이 있겠지.."

 

 

"십년 후에도.."

 

 


"은찬이네 엄마가 아무리 방해하고 괴롭혀도..?"

 

 

"그럼"

 

 


"내가 무지 실망할 짓 너한테 해도..?"

 

"그럼.."

 

 

"지구가 뻥..하고 터져버려도...?"

 


"우주가 다 터져도.."

 

 

....


.......

 

 

"그럼..옛 여자가 네 앞에 나타나도...?"

 

 

앨범속의 그 얼굴없는 여자를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 던진 질문..

 


...

 

주책이다..


한설 진짜 우웩이다..


스스로도 민망했던 그 질문에..손사래를 치며 픽 웃음을 터트리는데..

 

...

 

 


왜..

 

 

왜......이번엔......

 

 

 

 

 


아무런 대답이 없어 강하루.......?

 

 

 

 

"자...?"

 


"...."

 


"너..자냐..?"

 


...


....

 

 


"너 진짜 자냐?진짜로 자는거냐?정말 그런거냐?"


"..."

 

 

'냐' 자라는 말이 폭탄으로 쏟아져도 눈 하나 꿈쩍 않는걸 보면...

 

 

 

정말 자는거 맞지.강하루.

 

정말 자는거 맞지.그래서 대답 안하는거지.

 

자느라 대답 못하는거지.

 

 

...

 

 

우주가 뻥 터져도 헤어지는거 아니랬으니까.

 

당연히 옛 여자 나타나도 우리 안헤어지지....

 

.....

 

그 여자 나타나도.


넌 지금처럼 내 손 꼭 잡아주고..차가운 바람 다 막아주는거지..

 

 

 


그치...


그게 진짜지 하루야...

 

 


그게...


우리 얘기의 결말이지...

 

 

...


'빵빠앙!!빵빠앙!!'

 

내 방이 이렇게 추웠었나..

 


'빵!!빵빵빵!!'

 

그러고보니 이불에 스며든 날파리 발냄새도 안나네...

 

 

'빵!!!!!!!!'

.....

 

 

번쩍...

 

세번째로 들려온 그 커다란 클락션 소리에 눈을 뜨면.

 

 


"....에...-0-..?!"

 

 


처참히 부숴진 화분 몇개가 눈앞에서 뒹굴고 있고.

 

엉덩이 밑에 깔려있는 바지 하나.

 

그리고 바닥에 팽겨쳐져 있는 공중전화 카드와 적립카드 한장.


..

 

 


잠시 잊고 있었다..

 

어젯밤 순식간에 일어난 그 가출소동을..

 

 

 

"..흠흠..!!"

 

 

커다란 헛기침과 함께 옷매무새를 만지고.


머리를 다시 한번 졸라 묶고 주위를 살펴보면..

 


"야..!!-0-!!"

 

 


제일 대빵만한 구멍이 뚫린곳에 등을 기댄채 가늘게 몸을 떨며 잠들어 있는 하루.

 

 


"왜 이런데서 자구 지랄.."

 

 


합..-0-

 

은찬이랑 있을적 말버릇을 못버리다니.

 

 

재빨리 입을 틀어막은 나는


두손으로 힘겹게 하루를 구멍뚫린 비닐벽에서 일으켜 세우고.

 

 


".....추워.."

 

 


아니나 달라..


얇은 점퍼 하나 걸친 하루의 등은..


물을 뿌리면 당장 얼음이 될 정도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러게 왜 이런데서 등을 기대구 자!!!!!-0-


미쳤어!!!얼어 죽을라구 환장했어!!"

 

 

 

잠깐만..

 

이놈....그럼.....

 


밤새도록 바람을 막아준건가...........?

 

 


둔한 머리탓에. 뒤늦게 깨달은 그 사실로 멍해 있을때.

 


부스스. 눈부신듯 양쪽눈을 힘들에 떠보이는 하루.

 

 

 

"너 뭐야 임마!!!!!!!누구 살인범 만들려 그래!!!!"

 


"지금....몇시야...?"

 

"뭐..?"

 


"늦었다..!!"

 

"늦다니..?"

 

 

..ㅇ_ㅇ..

 


늦다니 대체 뭘 늦었다는겨.


우리는 이제 오갈곳 없는 빈털털이 인생인데..


...

 

 

알수 없는 그 말에.


이번엔 이놈이 뭘 하나 싶어 가만히 바라보면


주머니를 다급히 뒤져 시계를 꺼내는 하루.

 

 

 

"몇시야..?"

 

"세시.."

 

"우와 꽤 잤네 진짜..-0-.."

 

"끝나는 시간이 네시.."

 

"..뭐..?"

 

"뛰자..!!"

 

"..-0-..아니 어딜..?!"

 

"돈 빌리러 가자..!!"

 

"대체 누구한테 돈을 빌려..!!"

 

 

막무가내 강하루씨.


나의 말이 들리기나 하는건지.


가방을 둘러메고 바닥에 깔았던 옷가지들을 챙겨 들더니.


망설임없이 비닐 하우스의 구멍을 뚫고 튀어 나가버린다.

 

 

 

부우우욱.


덕분에 나의 4년전 보금자리는 형편없이 두동강이 나고..

 

 

 

 

'야!!!!!!!!!너 지금 우리를 간밤에 머물게 해준 고마운 집에 뭐하는 짓이여!!!!!!!-0-!!"

 

"..."

 


"대체 뭔데..어딜 간다는건데..!!"

 

 

 

발을 동동 구르는 내가 답답한듯.


덥썩 내 손목을 움켜잡고 차도를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하는 하루.

 

 


쉬이이잉


쉬이이이이잉.

 


어제밤보다 한층 매서워진 겨울바람은


우리 두사람의 뺨따구를 사정없이 철썩 철썩 때려오고.

 

 

 

"대체 누구!!누가 너한테 돈 빌려준대?!괜히 갔다가 붙들리면 어쩔건데?!"

 

"절대 안붙들려.."

 

"그걸 니가 어떻게 알어..!!"

 

"친구니까.."

 

"..친구..?"

 

"응.내 중학교 친구"

 


.....

 

......하루에게....친구가..있다고...?

 

나와 같은 아웃 사이더 신세가 아니였단 말이냐...-0-...?

 


뭔가 좀 섭섭해지는 마음에 물끄러미 모자밑의 얼굴을 바라보면.


하루는 그 뜨거운 시선을 외면하며


내 머리위에 봉긋 솟은 그 빌어먹을 밀짚 모자를 더욱 꾹 씌어 주었고.

 


잠시후.

 

우리는 정확히 열두명의 경찰관들과 조마조마하게 스쳐지나가며.

 

전혀 의외의 장소 앞에 도달할수 있었다.

 

 

 


\ 대명고 앞.

 


....

 

 


"여기 니 친구가 있어..?"

 

"응.여기 다녀"

 


"전화해서 불러봐 그럼.."

 


"전화 번호 몰라."

 


"..-_-..그럼 별로 친한 친구 아니네.."

 

"친했어."

 

"친했었지.친한 친구가 아니잖어."

 

 

다시 솟아오르는 동질감에.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며 다그치자니 재빨리 내 앞을 가로막고 서는 하루.

 

 


"왜그래..?"

 

"여기도 있다.."

 

"뭐가.."


..

 


대답대신.

 

하루가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면

 

나는 완전 얼굴을 먹어버린 밀짚모자 틈새로..

 

학교 주변 인도를 알짱대는 수상쩍은 두 남자를 확인했고.

 

 

 


"경찰인가.."

 

 

"그럴걸.."

 


"대단하네 정말..우리 없어져서 난리가 났나부다..

아니..우리가 아니라 너구나"

 


"..모자 더 깊이 써.."

 


"그래.그럼 한번 바꿔 써볼래-_-??"

 


"..."

 

 


나의 진지한 요구를 전혀 들어줄 생각이 없는듯..-_-..


그애는 막 옆을 지나쳐가는


초록색 교복마이의 여자아이를 가로막았다.

 

 


"야"

 


..-_-..

 

 


얼굴을 완전히 가린 하루의 모습에 겁먹은듯.


조금 뒷걸음질 치는 단발머리의 여고생

 


"..네..ㅠ0ㅠ..?"

 

"민수환 불러와"

 

"네..ㅠ0ㅠ..?"

 


"민수환.."

 


"...누군데요 그사람이.."

 


"니네 학교"

 


"...ㅠ0ㅠ..모르겠는데.."

 

 

 

-_-..울겠다..저러다가 애 울겠어..

 

 

조금씩 떨려오는 그 애의 입술을 포착한 나는.


재빨리 하루의 허리춤을 붙들어 뒤로 잡아 끌고

 

 


"야..관둬..내가 할게.."

 

"..."

 

 


때마침 지나가던.


감색 마이를 입은 순진해보이는 남학생 하나를 붙들었다.

 

 

 

"저기요"

 

"푸하하하하-0-푸하하하하하-0-"

 

 


내 모자를 보고 웃는듯..-_-..

 

 

 

"..뭐좀 물어볼려고 하는데.."

 

 

"이거 몰래 카메라 이런거죠?푸하하하-0-모자 봐 모자!! 글구 누나 개그우먼이죠!!-0-!?


'날아라 웃음천국' 에서 봤어요!!!-0-"

 


...후..

 


...-_-..

 

 


"야 이 비루먹을 샵새끼야......"

 

 

"...-0-..."

 

 

"잔말말고 이 학교에 민수환 어딨는지나 말해"

 


"....누구세요...ㅠ0ㅠ..."

 


"민수환 말이야!!민수환!!!!민수환 몰라!!!!!!!-0-!!"

 


"수환이...인제 곧 나올텐데..ㅠ0ㅠ.."

 

 

 

.....젠장...

 

이 모자 쓰는게 아니였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캡모자를 지키는거였어...

 

 

세모꼴 눈이 되어 하루의 머리통을 노려보면.

 

그앤 흘끗 내 밀짚모자를 바라본뒤 한발자국 내게서 멀어져가고..-_-..

 

 

 

"진짜 쪽팔려 죽겠어 아주!!!야!!!!나 돈 빌리면 모자부터 사줘.."

 


"....저기 온다..."

 


"...뭐..?!"

 


"..저기 와.."

 

 


까딱..


고갯짓을 한번 하고 아예 교문안으로 성큼 들어가 버린다.

 

 


설마 저놈..을 말하는건가...?

 


..

 

 

 

유독 흰 피부에 표정 하나 없는 깔끔한 얼굴로.

 

가방을 다섯개나 짊어지곤 이쪽을 향해 맥없이 걸어오는 한 남학생.

 

 

 


나는 어디선가 낯이 익은 그 남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터벅..터벅..


이윽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것 같은 힘없는 걸음으로


그 애가 교문을 벗어나려 할때

 

 

 

"민수환.."

 


뭔가 좀 묘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하루가 그애를 제자리에 꽁꽁 묶어 놓아 버렸다.

 

 

 

 

"....누구..세요...?"

 


겁먹은듯한 목소리..


잔뜩 움추려든 어깨...


금방이라도 달아날 준비가 된 두 다리..


...

 

 


이애가..하루의 친구 였다고..?

 

 


"돈 줘..."

 

 

카악..-0-..

 

 

강하루의 그 간결하고 굵은 한마디에.


내가 목에 걸린 가래를 켁켁 뱉어내면..


믿을수 없다는 눈으로...하루를 천천히 흝어보는..그 낯익은 놈..

 

 

 

 

"하루...야...?"

 

"이름 부르지마."

 

 


하루는 그 수상한 두 검정 코트의 눈치를 살피며.


모자를 더욱 푹 눌러쓰고..

 

 

 

"..하루야...."

 


"....이름..부르지 말랬다.."

 


"미..미안해..너무 반가워서..너무 좋아서..그래서..."

 

 


진짜 친했나부네 저놈들...-_-..


그렇다구 울먹이기까지 하다니....

 

 


수환이의 눈물을 발견한 내가.


하루 친구에게 창피 당하기 싫어 리본을 떼려 끙끙 대고 있을때.


또 한번 그 한마디를 내뱉는 하루.

 

 

 

 

"..돈줘.."

 


"우..우리 다른 학교로 갈리고."

 


"...."

 

 

"준영이 그자식이 날 얼마나 괴롭혔는지 알어!?!


너 덕풍고로 혼자 떨어지니까!!갑자기 돌변해서!!


나한테 툭하면 돈 가져오라고 하고!!툭하면 괴롭히고..!!때리고....!!


너 있을땐 나한테 쪽도 못쓰던게..!!지금은..이것봐..이렇게 여기도 멍들었어.."

 

 

 

.......세상에......-0-.........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수환이라는 놈이 교복 마이를 걷어 올리면.

 

시퍼러 둥둥한 멍자국이 내 얼굴만한 크기로 번져 있고.

 

괜시리 열받은 내가 '그놈 어딨냐!!!!-0-' 라고 외치려는 찰나..

 

 

아무 변화없는 목소리로..


또다시 그 한마디를 되풀이하는 하루..

 

 

 


"돈줘"

 

 


"...........준영이 그놈이 이렇게...때리고..그래서..


너희집에 몇번이나 전화했는데..너 안받아서..그래서..."

 

 


"나 돈 필요해."

 

 

"......."

 

 


"........돈 필요하다고"

 

 

.....

 

 

친구였다고...?


두사람이...친구였다고...?

 

 

숨막히게 잔인해보이는 하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 뒤로 물러나면.


다섯개의 가방중 자신의 등에 매고 있던 가방을 뒤져서


까만 지갑 하나를 꺼내주는 민수환.

 

 

"이거면..되겠어...?"

 

"응."

 

 


그때.


보다 못한 내가 주제넘게 끼어들어 그 아이를 감싸주려 할때.


교문과 조금 떨어진 운동장 한가운데서부터


감색 마이의 떼거리들이 천천히 가까워오기 시작했고.

 

 

 

저게 대체 뭐가 싶어 모자를 조금 올려 멀끔히 바라보면.

 

 

감색 마이 차림의 남학생이 여덟명.


초록색 마이 차림의 여학생이 한명.

 

 

...

 

.......

 

아무래도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지갑을 든 하루의 손을 꾸욱 움켜 잡았다.

 

 

 

아니나 달라..

 

수환이가 애원하는듯한 눈빛으로 하루를 보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 무리는 왁자지껄


쌍욕들을 지껄이며 점점 눈앞에 가까워져 온다.

 

 

 

 

"푸하하 그래가지고 그 씹쌔끼가 조카게 작업을 쳐대다가!!-0-결국은 싸대기 한방 철썩!!"

 


"미친놈 그러게 넘볼년을 넘봐야지.


그년이 좀 엥간해야 말이지."

 

 

....

 


잠깐만..


저 초록색 교복..


달랑 혼자만 여자인 저애.


쟤..

 

 

 

"그러니까.세진이 정도 되서 그럼 말을 안해!!"


"이새끼 은근히 또 세진이 건드리네.준영이한테 허벌나게 쥐어 터질라구.."

 

 

 


...세진이 맞잖아...

 

이런..

 

...

 

 

어두운 표정의 세진일 확실히 발견하고서 하루의 등뒤에 몸을 숨겼을때.


어느덧 눈앞에 우뚝 멈춰선 9명의 아이들.

 

 


맨 앞에 선 반반한 면상떼기 한놈이다.


저놈이 세진이의 어깨를 꽉 움켜 잡고 씩 미소 짓고 있다..

 

 


그리고..세진인..


큰외삼촌 딸 세진인..


여지껏 한번도 보지 못한 어둡고 슬픈 표정으로..


그 반반한 면상떼기의 손길을 외면한다.

 

 

 


"우리 꼬봉 1호 여깄었네..!!"

 

 


그때.

 


키가 딱 나만한 눈이 왕방울만한 놈이.

 


하루와 나.그리고 수환이 앞을 깐죽대며 막아섰고..

 

 


"어이구!!꼬봉 1호 친구들두 있었어!!!!!!!-0-"

 

 

 

이윽고.


모자를 써 알아볼수 없는 나와 하루를 보며 건들대기 시작했다.

 

 


그리곤.

 


"내 가방 갖구 가라니까 새꺄.먼저 튀나가면 어쩌자는거야.응?"

 

 


자신의 가방을 수환이 품으로 거칠게 내던지며.


나와 하루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개잡추 같은 놈.

 

 

 

"푸하하.모자가 뭐 이러냐!!누가 꼬봉 1호 친구 아니랄까봐!!-0-!!"

 

"야 진짜 그 모자 뭐냐...?"

 

"크큭..ㅠ0ㅠ웃길려고 쓴거 같은데.."

 

 

 


움찔.

 

반사적으로 튕겨나가려는 내 몸을 재빨리 잡아 묶는 하루의 손.

 

 

그러면 그들중 우두머리인듯한.

 

세진이를 옆에 낀 반반한 놈이 살며시 주둥이를 여니.

 

 


"야..민수환아..."

 


"응....준영아..."

 


"누가 너더러 먼저 나가도 좋다고 했냐."

 


"기다리려고..여기서.."

 


"걔들은 뭐야.니 친구냐?"

 


"아니...그냥 알던애야...학원 같이 다녔던애.."

 

 

 

수환이를 천천히 에워쌓기 시작하는 여덟남자.

 

그 와중에도 세진이의 표정은 더욱 참담히 변해가고.

 

 


"야 니들은 남 학교앞에서 물 버리지 말고 꺼져!!-0-"

 

 


그들이 만든 원으로부터 밀려난 나와 하루를 향해.

 

거대한 덩치 한놈이 걸걸한 한마디를 싸뱉었다.

 

 

 

"....."

 


성질 같아선 정말 밀짚모자를 홱 벗어던지고 머리를 앞으로 내민채 돌진하고 싶지만.


저 멀지 않은곳에서 서성이고 있는건.


분명 할아버지나 그 여자가 잠복 시켜놓은 경찰이거나 심부름꾼.

 


..


....

 


우리 두사람중 하나라도 여기서 사고를 일으켰다간


정체가 탄로나 얄짤없이 붙들려 가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하루 역시.


한때의 친구가 처참히 뭉개지는것을 외면할수 밖에 없다.

 

 

 


"야 니들 꺼지란 말 안들려!!"

 

 

 

다시 한번 덩치가 소리쳤을때


하루는 손안의 지갑을 주머니에 구겨넣고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고


나 역시 어쩔수 없는 상황이란것을 알기에.


잠자코 그애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야.오늘 우리 세진이 기분이 안좋거든."


...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그들의 바로 뒤에 등을 돌린채 서있으면.

 

귓가에 거슬려오는 준영이란 새끼의 한마디.

 

 

 

"원숭이 춤"

 


"여기서..?"

 

 

"그럼 여기서 하지.어디 나랑 여관이라두 가서 출래??!"

 

 


이윽고.


'푸하하하하하하'


곧바로 튀어나오는 미친새끼들의 웃음소리.

 

 


"...아니...."

 

 

 


그렇게 모욕적인 꼴을 당하는 수환이를 버려두고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수상한 자들을 천천히 지나치다가.

 

 


뚜벅..뚜벅..

 

몇걸음 걷다말고 고개를 돌려 교문앞을 바라보면.

 

다리를 벌린채 "끼욱끼욱" 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수환이가 보이고.

 

그 짐승만도 못한 놈들은 좋아 죽겠다는듯 배를 움켜잡고 웃어대고 있다.

 

 

....

 


.........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는 수환이의 두 눈동자.

 

 

 

"하루야..니 친구....아무래도..."

 

 


그 눈동자를 두고 도저히 그냥 갈수 없음에.


하루의 옷깃을 슬그머니 잡고 그앨 바라보면.

 

 

 

"야!!니들 진짜 죽구 싶지 않으면 얼른 가라!!!!!!!!"

 

 

수환이의 앞을 가로막으며 버럭 고함을 지르는 준영놈.

 

 

 


후..저 강아지..

 

진짜 사람 인내심 테스트 끝내주게 하는구나..

 


...

 

 


십미터쯤 떨어진곳에 있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분을 삼키면.


놈은 어서 꺼지 라는듯 나를 향해 손짓을 해보이고.

 

...

 

 


아무 말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던 하루.


자기 친구가 그토록 치욕스런 일을 당해도 눈하나 꿈쩍 않던 하루가.


갑자기 잡았던 내 손을 살며시 놓으며 주머니의 지갑을 꺼냈다.

 

 

 


".....니 친구...진짜 불쌍하다..."

 

"...."

 

"저 놈들만 아니면..어떻게든 해볼텐데.."

 

 


그 한마디를 마치고 수상한 까만 코트들을 힐끗 대면.


놈들은 무언가를 소근거리며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고...

 

 

 


"야..눈치 챘나봐 하루야.."

 


"..."

 


"....계속 쳐다봐...뭔가 아는거 같다.."

 


"..."

 


"뛰자..!!"

 

 


다급히 그 한마디를 외친 난.


고요한 하루의 손목을 움켜잡았고.

 

 

 

이내 그 까만 코트의 남자가 이쪽을 향해 몸을 틀었을때..

 

 

"뛰어!!!!!!!!!!!!!"

 

 


커다란 기합과 함께 앞을 향해 돌진 하는데.

 


...

 

.........

 


"하루야.."

 

 

 


튕겨져 나온건 나 혼자뿐..


하루는 그 자리에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박혀있다.

 

 

 

..

 


"..하루야..도망가야된다니까.."

 

 


나의 애타는 말을 묵묵히 받아 삼키며 지갑이 들린 주먹을 꽉 움켜쥐고는.

 

그 수상한 자들이 점점 가까워올때.

 

 

 


빙글 등을 돌려.

 

그놈들과 수환이를 향해 마주서는 하루.

 

 

 

 

 

"저놈 진짜 안되겠네??!


저 성기밥 시뮬레이션 같은 새뀌가!!-0-야!!너 일루와봐!!"

 

"........."

 

 

"일루 와보라니까!!!!!!!!"

 

 

 

그렇게.


화를 이기지 못한 거대한 덩치놈이 하루를 향해 까딱 손짓 했을때.


멍하니 땅만 보고 있던 세진이도 문득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을때.


그리고 수환이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을때.

 

 

 


그때..

 


그때 일어난일 하나.

 

 

 


'탁!!!!!!!!!!!!!'

 

"아!!!!-0-!!"

 

 

 

하루의 손에 들려있던 수환이의 지갑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강하게 날아가 그 덩치놈의 주먹코를 과격 시킨일.

 

 


"저 새끼 잡아와...!!!"

 

 

 


그래서.


화가 치민 준영새끼가 고함을 내질렀을때.


수상한 자들이 멈칫 하고 걸음을 멈추었을때.


수환이가 하루를 향해 눈물 범벅된 얼굴로 활짝 웃어 보였을때.

 

 

 

그때.


그때 일어난 일 둘.

 

 

 

 

"너 참 많이 컸다.이준영."

 

 

 

 

강하루씨.


쓰고있던 캡모자를 벗어 내 밀짚모자 위에 덧씌우고.


굳어버린 '이준영'을 보며 씩 웃어버린 일.

 

 

 

 

 

 

 

 

 

 

잠깐만....

 


이제.....알았다.

 


이제.....기억난다..

 

 


민수환.....................

 

 

어디선가 분명 낯이 익다고 느낀 하루 친구 민수환................

 

 

 

............

 

 

 

 

 

 

 

운정중이다.

 

 

운정중에서 보았던 그 종이인형이다......


 

 

그럼 하루도...운정중학교였어?


하루도....


윤영이를 알고 있었어..?

 

 


내가 꼼짝없이 자리에 박혀버린 사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하루.

 

 

 

"여..오랜만이다..."

 

 

그러면 조금 당황한듯한 이준영은.


놀란 세진일 등뒤로 숨기며 애써 웃어 보이고.

 


..

 


그러는 사이에.


내가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강하루 학생 되십니까."

 

 


아니길 바랬던..


그냥 지나쳐주길 바랬던 그 검정코트 두놈이..


양쪽에서 하루의 팔을 거칠게 움켜 잡아 버린것.

 

 


..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내 시선이 꿈쩍않고 고정 되어 있는건.


두려운 표정으로 준영놈을 바라보는 하루 친구 수환이뿐.


하루 친구 종.이.인.형.뿐.

 

 

 


"..손 놓자."

 


"사모님이 많이 찾으십니다..."

 


"그 여자 나랑 상관없어."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하...걱정.."

 

 


하루의 입가에 번지는 슬픈 비웃음 하나.

 

 


"자살 소동 이후로.

언제나 주위에서 보살피고 감시하라고 하셨으니까요."

 

 

 


자살소동...이라니?

 


...

 

....대체 뭐야....


강하루 너...대체 뭐야...

 

 

 

"...손...놓...자..."

 


"자꾸 이러시면. 저 학생이 위험해질텐데요.."

 

 

 

하루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검정코트 한놈은 조금 뒤에 물러서있는 나를 흘끗 돌아보았고.

 

 

 

 

"사모님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하루를 향해 씨익 웃어 보았다..

 


..그러면..

 

아주 잠깐 마주치는 하루의 눈동자.


수환일 한번 보고. 날 한번 보고.


힘없이 아래로 떨구어지는 하루의 눈동자.

 

 


무언가 있다..

 

분명....하루는 나와 관련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이윽고 그 검정 코트 두놈은 힘빠진 하루를


맞은편 도로의 검고 커다란 승용차로 데려가며


나를 향해 건방진 손짓을 두어번 해보였고.

 

 

 

"안그래도 간다 이 새끼들아..."

 

 


나는 나즈막한 그 한마디를 중얼 거리며.


놈들의 뒤를 따르기 위해.


그러나 그전.


종이인형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밀짚모자를 더욱 꾸욱 눌러 써버렸다.

 

 

 


"어떡하나.꼬봉 1호. 희망의 구세주가 말한마디 없이 가버렸네..^ㅇ^..."

 

 


이미 차에 올라탄 하루를 보며.


덩치 한놈이 종이인형 턱에 손을 가져가며 비열한 웃음을 흘리고..

 

 

 

"...넌 뭐야..."

 

 

이내 눈앞에 바짝 다가선 날 보며 눈살을 찌푸리면..

 

 

 

 

".....민수환....."

 


"어..어...?"

 


"박윤영 알아..몰라.."

 

 

"박윤영..?니가 윤영일 어떻게 알아..?"

 


"윤영이 어딨어..."

 


"나..나도 몰라..그런데 하루는 대체 왜.."

 


"윤영이 어딨어!!!!!!!!!!!!!!!!!!"

 

 


나는 잔뜩 움츠러든 수환이를 향해 버럭 고함을 내지르고.

 

 

 

 

"몰라..정말 몰라..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분당여고로 전학가서...그 뒤론 나도 몰라..."

 

 

수환이는.


아니 종이인형은.


덜덜덜 떨리는 입술을 손으로 막으며 말끝을 흐린다.

 

 


"아 이년은 또 뭐야 대체!!!!!!!!!!!!!-0-

저 거무죽죽한 시끼들은 뭐고!!!!!!!!!!!!"

 

 

종이인형을 거칠게 옆으로 팽겨치며 날 향해 빼액 고함을 치는

덩치놈.

 

 


"양아치들아.니들도 잘들으세요"

 


"-0-...뭐 이년아...??"

 


"하루는 다시와."

 

 

"허허.그래서.어쩌라고!!-0-!!저놈 하나에 우리가 단체로 쫄기라도 할거 같냐!?"

 


"쫄았었잖아.방금.^-^."

 


"..뭐..=0=..?!?"

 


"니들 방금까지.


한놈도 안빼놓고 비맞은 강아지처럼 덜덜 떨고 있었잖아.^-^"

 

 

"아 신발.어디서 별 그지 깽깽이 같은게 나타나서!!!=0=!!!"

 

 


들고있던 가방을 팽겨치며.


한손을 번쩍 들어보이는 덩치.


그러면.재빨리 그의 손을 움켜잡는 준영놈.

 

 

 

"관둬..."

 


"아니 요뇬 말하는 꼬라지 봐봐..!!!"

 


"여기서 이러지마....오늘은 아냐..."

 


"아후 열받는거..-0-.."

 


"너...방금 한말..후회안할 자신있냐...?"

 

 


후회..?

 

 


"그건 내쪽에서 할말."

 

"좋아.그럼.조만간 다시 보자.^-^"

 

"어쩌면 내일이나..^-^.."

 

"그땐 그 모자 벗고 와라.


팰때 아무래도 좀 방해가 될거 같거든.^-^"

 


"너야말로.


이 원숭이 같은 놈들 다 달고올 생각하지 마라.


쳐다봐주기도 역겨우니까..^-^"

 


"어이!!뒷골이야!!!!!!!!!!-0-"

 

 

나의 마지막말에.


목을 움켜쥐며 쓰러지는 시늉을 해보이는 덩치놈.


그리고 모든 긴장이 풀린듯 깔깔깔 웃어보이는 나머지 양아치 떼들.

 

 

 

"야!!너 빨리 안올래!?!!"

 


맞은편에선.


창문을 내린 운전선의 검정코트가 내쪽을 향해 커다란 고함을 내질렀고.


그랬기에.


난 겁에 질린 세진이를 한번 몰래 훔쳐보고.


다음으론 놈들을 향해 뻑큐 한방을 힘차게 날려주고.


하루가 있는 그 감옥차를 향해 기어 들어가야했다.

 

 


종이인형의 친구.


강하루가 있는 차안에...

 

 

 


\ 차안.

 

 

 

 

"지금 어디로 가는거에요."

 

 

앞좌석에 나란히 타서.


야한 농담을 씨부려대며 낄낄대고 있는 검정코트놈들.

 


..


내게서 완전히 고개를 돌린 하루는.


애꿏은 캡모자만 손으로 꾸욱 비틀어 대는 중이고.

 

 


"사모님한테 간다."

 

 


놈은.


마치 아랫사람을 부리는듯한 건방진 말투로 나의 물음에 답했다.

 

 

 

"대체 그 여자 하루랑 나한테 왜그러는건데요..."

 

"낄낄.그래가지구 그놈 새끼가 하는말이 가관이야"

 

"대체 왜그러는거냐구요.."

 

"아.내가 먹구 싶어 먹었남유!!-0-.푸하하하하-0-!!!"

 

"푸하하하하하!!-0-!!"

 

 

....

 

미친놈들....


...

 


그 덜떨어진 자식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물끄러미 나의 왼편을 바라보면..

 

 

"하루야..."

 

"....."

 

 

여전히 꾹 다문 입술로.


가슴 에릴만큼 짙은 두 눈을 멍하니 창밖으로 던져놓는 하루.

 

 


"강하루..."

 

"......"

 

"너.나한테 숨기는거 있지."

 

".........."

 

"너.운정중학교 나왔지."

 

 


탁탁..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하루의 두눈.

 

 

 

"윤영이라고 알지..."

 

 


...탁탁탁...

 

이번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하루의 두눈.

 

 


"박윤영 알지 너."

 


...

 

...........

 

 

"하루야.대답해."

 

 

조금씩 빨라져가는 내 목소리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검정코트놈이 수상쩍은듯 고개를 돌리고.

 

 

 


"대답해 하루야.


나한텐 무지 중요한거야.윤영이 알지.너희학교 나온 박윤영.


나랑 비슷하게 생긴애.."

 

 

"......몰라......."

 

 

"모른다고?아까 걔랑 친했다며.그런데 모른다고?"

 

 

"...몰라..."

 

 

....정신이 나가있다....


..이애..


지금 옆에 앉은 사람이 나인지 할아버지인지 분간도 못할만큼..


어딘가 굉장히 먼곳으로 정신을 팔아버렸다.

 

 

 

 

"그럼 아까 걔 친구중에.


..왜...그러니까.."

 

 


더듬더듬.


나에게 '걸레'라는 인생 최대의 치욕을 안겨준 놈의 인상착의를 떠올려보면.

 


..분명히..


피부가 다갈색이였고..


눈은 굉장히 짙었고.....


....


그리고 어땠더라...


나보다 키가 반뼘쯤 더 컸으니까...

 

 

 


"어!!종이인형.아니 아니.수환이 친구중에 말야."

 


"....몰라..."

 


"나 아직 얘기도 안 꺼냈어..그러니까...피부색은 너랑 좀 비슷하고..


생김새는 많이 달랐던거 같아...그러니까...


어..윤영이 남자친구였거든..그 당시가 중학교 2학년이니까...


하이튼 수환이랑 친했던 앤.."

 

 

"제발!!!!!!!!!!!!!!!!!"

 

 

".......어....?"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랬잖아!!!"

 

 

"...하루야..."

 


"아무것도..모른다고..내가..모른다고..그랬잖아......"

 


"그래...미안해....알았어..안물어볼게..더이상 안물어볼게.."

 

 

"...."

 

 


"그리고 나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려서.그것도 미안.

카드만 갖고 왔어도 지금쯤 갔을텐데..

일 망쳐버려서 그것도 미안.."

 

 


"미안..미안.."

 


"...."

 

 


"그 말 제일 듣기 싫어..."

 

 

"그래..."

 

 

수수께끼 투성이..


하루도..할아버지도..그 여자도..


모든게 다.


수수께끼 투성이....

 

 


문득.


지난번 하루 손목에서 본 정체모를 상처들이.


검정코트가 말했던 '자살소동'과 연관이 있는걸까..하는 불안한 생각에.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며 하루의 옆얼굴을 바라볼때..

 

 

 

 


놈들의 상스러운 농담이 가득찬 그 더러운 차는...


쌩쌩..빠르게 잘도 달려서..

 

 

 

 

"다 왔습니다.어서 내리세요!!!!"

 

 


의기양양한 그 목소리를 끝으로.


어느덧 거대한 괴물 집앞에 끌려오듯 멈춰서고 말았다.

 

 


마치.


자석에 어쩔수없이 붙들려온 뾰족하고 날카로운 못처럼.
 

"두말 할것도 없어요.이 애 당장 쫓아내요."

 

 

 


\ 평창동.

 

 

 

언제나 고요했던 이 집은.


마녀의 등장으로 인해 더욱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자.일단 얘기부터 들어보자.

대체 어떻게 된건지...."

 

 

이어서 들려오는건 할아버지의 너그러운.


그러나 단호한 한마디.

 

 

...

 


거실이다.


나와 하루가 벽에 붙은 쇼파에.


그 맞은편 쇼파에 할아버지와 마녀(은찬이 엄마)가 앉아 있다.

 

 

은찬이는 학교에서 오지 않은건지.


아니면 다른곳으로 놀러간건지 그 흔적조차 찾을수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 집안엔.


여느때보다 더욱 차가운 냉기가 감돈다.

 

 

 

"내가 가자고 했어.얘 싫다는데 내가 나오라고 했어.


안나오면 죽는다고 그랬어.


죽어버린다고 그랬어."

 

 

 


자살소동 얘기를 들은뒤.

 

하루의 입에서 나오는 '죽음'이란 글자가 너무도 두렵게만 느껴지는 나.

 

그래서 불안한 시선으로 하루를 흘겨보다가.

 

이어서 마주친 마녀의 무표정한 얼굴에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_-

 

 

 


"그래..그럼 설이 넌..


그래서 이 편지 한장 남겨놓고 집을 나가버린거냐..


현금카드 대신 공중전화 카드를 들고.."

 

 


..-_-..

 


삐뚤삐뚤.


내가 맞춤법 다 틀리게 쓰고 온 마지막(이 됐어야 하는)


편지를 손안에 구기면서.


조금 더 목소리를 높히시는 할아버지.

 

 

 

 

"네...."

 

"아무리 그래도..'안녕히 계세요' 를 '안녕히 가세요'로 적은건 너무하지 않니.."

 


"-_-...죄송합니다..."

 

 

"흠..좋다..어쨌든..

하루만에 돌아왔으니 다행이다.별일 없었다니 그것도 다행이고.

근데 대체 그 모자는 뭐냐.."

 

....

 


하루가 만원에 사준 역안의 밀짚 모자입니다..

 

 


"어물쩡 넘어갈 생각 말아요.


아직 내 얘긴 시작도 안했으니까."

 

 

 

할아버지의 조금씩 장난스러워져가는 말을 재빨리 가로막으며.


또다시 냉랭하게 나와 하루를 바라보는 마녀.

 

 

 

"무사히 왔으니 됐소.


이제 당신도 집으로 돌아가시요."

 

 

 

브라보..빅토리..퐈이팅..할아버지..

 

 

 


"지금 그걸 나한테 말이라고 하는건가요 당신?"

 

 

"말이니까 하지 않소.."

 

 

"이 순간만큼은 순순히 넘어갈 생각 말아요...

난 이애 절대 인정 못해요.내가 죽는한이 있어도 이집엔 못둔다구요.

내 말 알아 들어요!!?!"

 


"내 딸이요."

 

 

뭉클..


가슴이 저려오는 그 한마디에.


나는 새삼스레 눈시울을 붉히고.


그 붉어진 눈시울이 눈물을 맺기도 전 재빨리 감동을 깨트리는 마녀의 까시러진 목소리.

 

 

 

"하..제발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해요..!!


호적에도 없는 아이가 무슨 딸이에요!?내가 저앨 낳았어요!?아님 그여자가!?"

 

 

 

...그 여자라면...


하루의 엄마를 말하는건가...

 

 

 


"그보다 난 당신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가 궁금하구랴"

 

 


"그..그게 무슨말이에요..?!"

 

 

 

"평소엔 코빼기 한번 안보이다가


갑자기 집을 드나들면서 이렇게까지 신경쓰는 이유가 뭐요..?


병원건도 그렇지..


하루 한살때 뜨거운 불에 손데어서 기절했을때도.


유유히 거실에 앉아서 음악 듣던 사람이.


그날 하루 병원엔 대체 왜 왔던거요..?"

 

 

 


"무슨말을 하는거에요 당신!!?!!"

 

 


맞아요!!


그 사고 역시 그 여자가 낸거라구요!!!!!!!!!!!-0-

 

 

 

"어쨋든 이건 이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 일이니.


당신은 신경쓰지 말고 당신일이나 잘하시요."

 


"내가 지금 이집에 안산다고 그래요..!?우리 아직 법적으론 엄연한 부부에요!!


나에겐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어요!!"

 


"이혼 서류는 다음달이면 작성되요.


그러니 남의 제삿상에 감놔라 배놔라 그만 해도 됩니다."

 


"하...정말..기가막혀...


..하..."

 

 

 

핸드백을 들고.옆에 놓인 모피코트를 집어든뒤.


코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녀.

 

 

그래 빨리 가라.


네 집으로 빨리 가란 말이야..

 


밀짚모자를 벗은 내가 속으로 그 한마디를 강력히 외치고 있을때.


그 여잔.


현관으로 나서기 전 내 옆에 서서 거만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보았고.


이번엔 나 역시.


고개를 뻣뻣히 쳐들고 그 여자의 시선에 맞섰다.

 

 

 


"아직도 모르겠니?니가 여기 왜 있는지?"

 

"당신 정말!!!!!!!!!!!"

 


당황한듯한 할아버지의 고함소리....

 

 

 

미안하지만.


알아요.....

 

그 이유가 나에게 엄청난 상처가 될거라는 사실만은.

 

 

하지만 모를거에요.


알려준다해도 귀 막을거에요.

 

 

그 사실을 알게 되는날 나는 주저없이 이집을 떠날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몰라도 돼요."

 

"좋아...좋다구...^-^...그럼 앞으로 해보자.."

 

"..."

 


"니가 이기나.내가 이기나.결과는 아마 그 전엔 확실히 나올거야"

 


"그렇겠죠."

 

"적어도 3월9일 전에는..^-^..."

 


...


하루네 집 별장 비밀번호..??

 

 

"조만간 뵙죠.친척들 모임때 말이에요^-^이 애도 함께 오는게 좋겠네요.


와우. 어떤 말이 터져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한데요..그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녀는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날쌘 걸음으로 '쾅!!!' 하며 집을 나가버렸고.


그러면 할아버지는.


이제야 끝이라는듯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쉰다.

 

 


"후우우우우-0-..."

 


"죄송해요..할아버지..."

 


"그래..하룻밤 사이엔 어디 있었냐..?"

 


"...비닐...하우..스요.."

 


"껄껄껄껄-0-비닐 하우스!??!"

 


"...네..."

 


"어디 그 얘기나 좀 들어보자.!!이것 참 흥미진진하겠구만..!!"

 

 

 


이젠 정말 친아빠가 된것 같은 할아버지.


어떤 상황에서도 날 용서하고 하루를 감싸주시는 할아버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존경하게 된 할아버지.

 

 

그토록 감사한 나의 할아버지는


그날 해가 지기 전까지 나와 하루의 그 춥고 배고팠던 날을 들으며.

 

 


"껄껄껄껄껄껄!!!-0-!!!"

 

 

이토록 호탕한 웃음을 아낌없이 흘리셨고..

 

 

 

1시간후.

 

 

 

"그래 어서들 올라가 쉬거라..!!"

 

 


그의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2층방으로 올라왔을때.


하루는.


그때까지도 한마디 말없이 침묵을 지키던 하루는.

 

 


"하루야.분당이 여기서 가까울까.?"

 

 

조심스런 나의 그 말 한마디에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_-


터벅터벅터벅.


자신의 방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_-.

 

 


"야!!!!!!!너 자꾸 왜그러는거야!!!!!!!!-0-니가 여자라서 생리를 하는것도 아니고!!!!!!


뭔데 그렇게 시도때도 없이 예민해져어!!!!!!!!-0-!!!"

 

 


씩씩..

 


대체 뭐야.뭐냐구.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어.?!


윤영이 아냐고 물어본거?


그게 그렇게 잘못한거야!?


같은 학교였으니까 아나 모르나 물어볼수도 있는거지!!!!!!!!=0=

 

 


좀전까지 평화로웠던 기분은.


다시 또 폭발 일보직전으로 바뀌어 가고.

 

 

쿵쿵쿵쿵!!


요란스런 발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왔을때..

 

 


"휴우우우"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침대위로 몸을 내던졌을때.

 

 

 

"아!!인제 우리도 드디어 방학이네..!!"

 


방문밖으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누구지..?

 

여자 목소린데..?-0-..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내가.


살금살금 발을 돋으며 문을 빼꼼히 열면..

 

 

'헉-0-'

 


친근한 덕풍고 교복을 입고 이쪽으로 저벅저벅 가까워 오는 은찬이.


와 예란이.

 

 

뭐야.둘이 설마 다시 사귀는건..

 

 


"...야...어떻게 된거야..."

 

 


그때.


내 방문앞에 우뚝 멈춰선 은찬이가


굳어버린 표정으로 나를 내려보았고.

 

 

"어.안녕 설아^ㅇ^"

 

 

그 옆에 찰싹 붙은 예란이는.


한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_-

 

 

 

"어..안녕.."

 

"어떻게 된거야..왜..여깄어...너...?"

 

 

그러고 보니.

 


그날 음악을 틀고 '이 노래가 끝나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난리 부르스를 떨었더랬지.


그래놓고 하루만에 이렇게 붙들려 오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구나.

 

 


"붙들려왔다....왜...-_-.."

 

 

 

어제 꽉 끌어안고 있던 장면이 떠올라.


민망함에 그애의 시선을 피하며 그 한마디를 내던지면.

 

 

"......븅신..."

 

 


예상했던데로.


한심한다는듯 들려오는 은찬놈의 대답.

 

 

"...-_-..."

 

"왜사냐.왜살아"

 

"...-_-...먹기위해 산다.어쩔래."

 

"형은"

 

"..방에.."

 

"다행이네.너한테 할말 있었는데."

 

"....뭐..뭔데..?"

 


설마 이놈이.


눈치없이 예란일 옆에 두고 어제의 얘길 꺼내는가 싶어 불안한 시선으로 그앨 보면.

 

..

 

예란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혹은 차갑게도 느껴지는 표정으로 쓰윽 나를 흝어대는 강은찬.

 

 


..뭐..


별로 기분 좋은 시선은 아니다..

 

 


"내 학생증 줘."

 

"....-0-...어..?"

 

"내꺼 학생증 달라니까?"

 

"왜..?"

 

"얘 주게."

 

 

...-0-...뭐...?

 


당황한 나는 할말을 잃은채 그 둘을 빤히 바라보고.


한술 더떠.한손을 내 앞으로 척 내미는 강은찬.

 

 


"설마 버렸냐?"

 

"사귀냐 둘이..다시..?"

 

"응.!!^-^!!"

 

 

이번엔.


은찬놈 대신에 예란이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나는 잠시 할말을 잃은채


멍..하니..은찬놈의 그 뽀얀 얼굴을 올려보다가..

 


"어..여기..-0-.."

 


주머니에 있던 학생증을 꺼내어 조심스레 내밀었다.

 


"이제 됐지?"

 

 


나에게 학생증을 받아들고.


예란이를 향해 두 눈을 깜빡이는 은찬이.

 


"응."

 


..뭐야..설마 얘..


은찬이가 날 좋아했다는걸 알면서도.


이 애를 받아들인건가..-0-..?!

 

 

세상에나..-0-..


정말 많이 좋아하나보네..


나같으면 길길히 날뛰고 난리 부르스를 떨텐데..-0-..

 

 


"이제 됐지..?"

 

"응.달아줘 은찬은찬"

 


"너 미쳤냐!!!!!!!!?!"

 


"달아줘."

 

"아 니가 달어!!넌 손없어!?!!"

 

 

이것들이 시방 남의 방문 앞에서서 뭐하는짓이여..-_-..

 

 


"여기서.달아줘.이 자리에서 당장."

 

 

..좀전과 분명 다르게..


아주 단호하게 느껴지는 예란이의 목소리..

 

 

그렇다..


이애도 분명 의식하고.화를 내고 있다.


은찬이의 마음을 잠시 가져갔던 나에게.


그리고 마음을 주었던 은찬이에게.

 

 

...

 


....잠시...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그래.달아줘라 야.달아달라는데..-0-.."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그 말을 뱉으면.

 

 

아주 잠시..


은찬이의 갈색 눈이 나를 노려본듯 싶다가.


다시 예란이를 향해 장난스레 풀려버린다.

 

 

 


"너 방학했어도 맨날 달고 다녀라."


"응!!잘때도 목욕할때도!!"


"븅신.목욕할때 옷 다벗고 어디다 다냐"

 

 

 

한손으로 콩 그녀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나머지 한손으론 서투르게 그 비닐 포켓에 쌓인 학생증을 달아주는 은찬이.

 


그러니까.


아까도 분명 말했지만.


니들 남의 방문 앞에서 뭐하는 짓이느냐고.-_-^.

 

 


"이제 됐지.?"

 

"응.!!"

 

"오케이.응."

 

"니 방 가서 dvd보자.!!"

 

"그래."

 

"설이 안녕.다음에 또봐.!!^-^"

 

"응.재밌게 놀다 가."

 

 

학생증을 가슴에 단 예란이는.


신이 난듯 은찬이 팔에 더욱 깊숙히 머리를 묻고.


그러면 놈은 잠깐 당황한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씨익 웃으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래 안녕이다.이놈아-_-"

 


심드렁한 나의 인사에.


천천히 복도 끝의 자기 방으로 멀어져가는 두사람.

 

 


"빠르구만.하루만에 바로-_-역시 진심일리가 없었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다시 침대쪽으로 몸을 풍덩 던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저놈 아파하는거 보면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텐데..

 

 

"후아아암.그럼 난 이제 자볼까나!!-0-!!"

 


그때.

 

 

 

 


'퍼억!!!!!!!!!!!!!!!!'

 

"아!!!!!!!!!!!!!!!!!!!!!!"

 

 

 

침대맡의 열린 창문을 통해 내 이마위로 떨어진 주먹만한 돌덩이 하나.

 

 


"아아악!!어떤 새끼야!!!!!!-0-"

 

 

 


순식간에 찢어진 이마를 감싸쥐며 창문을 열고 정원을 바라보면.


그곳엔 분명 사람의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아마도.


정원의 벽 너머에서 날아온듯..

 

 

"눈 맞았으면 실명될뻔 했잖아!!!!!!!!-0-"

 


...잠깐...

 

...이게..뭐야...?...

 

 


'죽여버릴거야'

 


발끝에서부터 돋아오르는 소름....

 

돌에 뾰족한 무언가로 새겨진 그 한마디에.


나는 마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켰고..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동시에 두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야!!!!!!뭐냐 지금꺼!!!!!!!!!!!"

 

 


버럭 고함을 지르는 은찬이와


말없이 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하루.

 

 

"어..아니..책상 모서리에 박았네..하하.."

 


나는 재빨리 등뒤로 돌을 숨기면서


태연한 웃음을 지어보였고.

 

 

"이마에 피나잖아 븅아!!!!!!!!!!!!!!이거 진짜 바보 아냐!?!!


가만있는 책상에 왜 대가릴 박아!!!!!"

 


은찬이는.


하루의 옆에 서서 내 이마를 향해 버럭 성질을 냈다.

 

 


"...그러네...-_-..피나네..."

 

 

그리고.


은찬이가 이마위로 손을 가져올때.


'탁.'


그런 은찬이의 손을 쳐내며 내 이마를 감싸쥐는 하루.

 

 

 


"자꾸 다칠래...."

 

"내가 언제..또 다쳤다 그러냐...그러니..."

 

"자꾸 사람 불안하게 만들래."

 

"그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예쁜 이마..이게 뭐야...."

 

 

 


소매끝으로 내 이마를 조심스레 문지르며


하루는 그렇게 끝없는 한숨을 내쉬었고..


...그러면....


은찬인 허공에서 멈춘 손을 떨구며.

 

 

 


"약.꼭 발라라....."

 

 

 

들릴듯 말듯한 그 한마디를 남겨놓고


방문앞에 불안한 표정으로 서있는 예란일 향해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렇게.

서로에게 다 힘들었을 날이 조용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 다음날 아침.

 

 

 


"이마에 대일밴드 뭐냐 설아.?"

 

 

아침 밥상.-_-

 

나란히 둘러앉은 나와 하루.그리고 할아버지와 은찬이.

 

 


"어제..책상에 박아서요..-_-.."

 

"어이구..조심 했어야지.."

 

"네.."

 

"너희들 오늘부터 방학이지?"

 

"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은찬이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낮에 다같이 외식하자."

 

"어..저..안되는데.."

 

"왜.하루랑 놀러가기로 했니??"

 

"..아니요..갈데가..좀..있어요.."

 

"-0-..어디를..?"

 

"그냥..좀..갈데가..하하..-0-.."

 

 

동시에 수상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남자.-_-.


나 이거 정말 미치겠구만.

 

 

 

"너 바람피러 가지"

 

 

 

그리고.


태연한 모습으로 젓가락을 입에 문채 빤히 나를 쳐다보며


감히 그 민망한 말을 내뱉는 하루.

 

 

 


"아니거든-_-"

 


"그럼 어디가"

 


"저어기..멀리.."

 


"빨리 말해."

 


"갔다와서 말할게..-_-.."

 


"지금 말해."

 


"갔다와서 말한대도.."

 


"그럼 같이가."

 


"안돼...둘이 만날거야..."

 

 

 

그 한마디에


하루와 할아버지의 시선은 좀더 노골적으로 변해가고.

 


은찬놈은 관심없다는듯한 표정으로

쿡쿡.

손끝으로 식탁위 꽃게찜을 쑤셔댔다.

 

 

 

 

"갔다와서..말한다니까.."

 

"남자.여자."

 

"어..?"

 

"남자야 여자야"

 

"아아..여자.."

 

"그럼 핸드폰 가져가."

 

"왜..-0-..?"

 

"그래서 니 친구 바꿔."

 

"..-_-..그래.."

 


질투가 엄청시리 많다더니


정말 사실이였구나.

 

 


"그래.그럼 내꺼 가지고 가면 되겠구나!!-0-"

 


할아버지가 무릎을 탁 치며 외치시면


나는 할말을 잃은채 고개를 끄덕거렸고..

 

..

 

어느덧 밥을 다 먹은건지.


은찬놈. 숟가락을 식탁위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강은찬.너 어제 집에 데려온 여자앤 누구야?"

 


"내 마누라."

 


"-0-..마누라..?너 이놈 내가 연애질 말고 공부만 하라고 몇번 말했어!!-0-!!"

 


"그럼."

 

 

"그럼은 무슨 그럼!!-0-!!"

 


"한설이랑 형이랑 하는건 바둑이냐?"

 


"-0-요놈 요거 말 버르장머리 하고는!!!!!!!!"

 

 

"나 걔랑 다음주에 북해도 놀러갈거야.그렇게 알아"

 

 

북해도-0-


그렇다면 일본-0-


동해도 아니고 부산도 아니고 제주도도 아니고 일본-0-

 


역시 있는놈들은 다르구나.달라.

 

 

"뭐가 어째!!누가 너한테 가도 좋다고 했더냐!!!"

 

 

이미 사라지고 없는 은찬놈...

 

 

"아니 저놈이!!!!!!!-0-"

 

그러면.


할아버지는 국을 둘러엎을 기세로 재빨리 은찬이의 뒤를 따라가 버리시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하루의 의심쩍은 얼굴에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잠시후.


주사위는 던져졌다.

 

 


\ 안국역.

 

 

 


'가자마자 전화해서 바꿔.그리고 올때 전화해.마중나갈게'


'응.'


'갔는데 남자랑 여자랑 섞여 있는거면.'


'절대 아니야!!-0-'

 

 

휴..


뭐랄까..


하루의 질투를 받는 이 느낌..


온 여자의 질투를 견뎌냈을 하루의 질투를 받는 이 느낌..

 

 

 

 


"과히 나쁘지 않구나!!!!!!!!!!!!!-0-!!!!!!!"

 

"어디 역이냐니까요!!-0-"

 

"네..?"

 

"아 표 안사요!?!표!!"

 


"아..맞다..서현역 한장 주세요..-_-.."

 

"츳츠.."

 


혀를 내차며 노란 표 한장을 스윽 내미는 역무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표를 받아들고


이내 깔끔한 나의 복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뒤.


떨리는 두 발을 휘저으며 계단을 내렸다.

 

 


"여기..분당 가려면 여기서 타는거 맞아요..?"

 

"네..맞아요..^-^.."

 

"네..감사합니다.."

 

"^-^.."

 


후...

 

떨린다..정말 떨려온다..


많이 변했을거야 분명히..


내가 변한만큼..윤영이도 많이 변했을거야..

 

 

무작정 한설.


'분당여고' 라는 한마디만 듣고서 이렇듯 지하철에 몸을 실어버리는중.

 

 

"이번 역은 종로3가.종로3가 입니다.내리실 분들은 왼쪽 문으로..."

 

종로 3가.


음. 그럼 아직 27정거장이나 남았구나.


이런 제기랄.-_-.한시간도 훨씬 더 가야되겠네.

 

..

 

선물 주려고 산 케익과 곰돌이 인형.(방에 있던걸 가져옴-_-)을 바닥으로 툭 떨구며


나는 텅 빈 좌석위에 엉덩이를 붙혔고.

 

...

 

 

지하철 특유의 그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사람들의 시선에.

 

푹 고개를 숙여 잠을 청하기로 했다.

 

 


참 많이 놀라겠지..


설마 기억 못하는건 아닐거야..


우리 노래는 기억하고 있으려나...?


벌써 방학을 했을지도 모르는데..그럼 교무실에 가서 물어봐야 하는건가.

 

 

그러나.


밀려드는 걱정과 설레임들 탓에 나는 지하철이 스물 일곱 정거장을


모두 거치는 사이 단 일분도.


아니 단 일초도 잠을 청할수가 없었다.

 

 

 


"이번역은 서현역.서현역입니다.내리실 분들 께서는 왼쪽 문으로..."

 

 


후우...

 

 


기다려라 박윤영...!!

 

이제 떳떳하고 깔끔한 모습의 나 한설이 간다..!!

 

4년전의 그 억울한 누명도 벗기러!!나 한설이 간다!!!

 

 

 

 

\ 분당 여고 앞.

 

 

 

 


"야 어제 tv에 주나래 나온거 봤냐!?"

 

"어우 참 그년 조카 이쁜척 해!!-0-!!꼴보기 싫어서 채널 돌렸다니까!!"

 

 

마치 애니몰 패밀리를 보는듯한..-_-..

 

 

여기는 분당여고.

 

간신히 물어물어 찾아온 분당 여고 앞.

 

출발한지 딱 두시간 삼십분만의 도착이다..

 

 


"저기요.."

 

"그년 그거 다 고쳤어!내가 장담해!!-0-!!"

 

"저기요...."

 

"네..?"

 

"여기 지금 쉬는 시간인가요..?"

 

"네.그런데요.?"

 

 

수상쩍은 표정으로


보따리 장수 행색을 한 날 흝어보는 두 여자.

 


회색 마이에 남색 치마.


그리고 검정색의 명찰.

 

 


윤영이도.이런 교복을 입고 이런 색깔의 명찰을 달고 있는건가.?


머릿속에 그려진 윤영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자니


재빨리 등을 돌려 달아나려는 두 여학생.

 

 

 


"아니요!저기!여기 찾는 사람 있어서 왔거든요!!"

 

"...네..?누..구요...?"

 

 

 


그녀들의 수상한 시선이 다시 한번 내 몸위를 흝고 지나가면

 

나는 틈을 두지 않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

 

 


"여기 학교에 박윤영이라고요.."

 

"박윤영이요?몇학년인데요?"

 

"아..2학년이요.."

 

"저희는 3학년이라..잘.."

 

"...아.........네.........."

 

 


그럼..저기 저 키 작은 애한테 물어볼까..


보아하니 2학년 같은데..


시선을 돌리는 그 아이들을 지나쳐 사탕을 쭉쭉 빨아대는 그 2학년에게 가려는 찰나.


등뒤에서 어슴푸레 들려오는 그녀들의 목소리.

 

 

 

 

 

 

 

 

"잠깐만.박윤영..?!걔..지난 3월에 죽은애 아냐!?"

 


"에이.설마.죽은애 찾겠냐."

 


"맞잖아.걔도 2학년..!!"

 

 

 

.....아니야.....


너희들이 말하는 걔..


내 친구 박윤영 아니야.


절대. 죽어도 아니야.

 

 

 

"저기요..!!"

 

 


꼼짝없이 멈춰선 내 등뒤로


다시 한번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

 

 


"...저기요...!!"

 

 


나는 경련이 일어나는 얼굴에 간신히 웃음을 머금고


그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그들은.


뭔가 좀 흥미롭다는 얼굴을 한채 내 쪽으로 가까워왔다.

 

 

 

 

 


"그 친구가 혹시.고1때 서울에서 전학온애 아니에요?"

 


".................맞...아..요.."

 


"걔 3월에 죽었는데.."

 

"그럼 아니에요...내 친구는 안죽었거든요..살아있으니까..걔 아니에요.."

 

"그럼 2학년에 박윤영이 둘인가??"

 

"아니야.맞는거 같은데 뭘."

 

 

 

고개를 갸웃하는 머리묶은 쪽을 쿡 찌르며


이번엔 두 눈을 반짝이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나머지 여학생.

 

 

 

"진짜 아니에요?그쪽 친구..?"

 

 

"아니라고....아니야...


아니야!!!!내 친구 안죽었다고!!!!!!!"

 

 

"...어머..."

 

 

"....왜저래..."

 

 

겁먹은듯


나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 두사람.

 

 


그리고 이젠 얼굴이 아닌 팔과 다리.


심지어 가슴 깊숙히 박힌 심장마저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한다.

 

 

 

 

 

 

"근데 걔가 왜 죽었었지?자살이였나?"

 

 

"아니야.남자랑 차타고 가다가 사고로 죽었잖아"

 

 

"아..맞다..!!!"

 

 

"완전 남자 밥맛이지.차 충돌했을때~


소문으로는 터지기 일보직전에 자기만 혼자 빠져나와서 살았대.


살려달라고 발목 잡는 애를 막 발로 걷어 차면서.."

 

 

"어우 왠일이야..닭살돋았어.."

 

 

"걔두 잘못이 있지.학교 가는날 땡땡이 치구 충주를 왜가냐구."

 


"한참 꽃필 나이 열여덟에..으이구..하이튼 것두 다 팔자라니까.."

 

 

 


점점 작아져가는 두사람의 목소리.

 

마치 먼 세상에서 들려오는듯한 두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투둑.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꽃과 인형.

 

 

 

 


곤두박질 쳐진 꽃과 인형..........


 
 
"설아!!!!!!!!!!!!!!"

 

 

 


\ 버터 플라이 앞.

 

 


콰당.

 


쏟아지듯 계단위로 가까워오는 나나언니.


멋쟁이 나나언니.


그 순간 떠올랐던 유일한 나의 친구 나나언니.

 

 

 

 

"뭐야.무슨일이야!!너 왜이래!?어!?"

 

 

".......친구가....없대......"

 


"나 진짜 미치겠구만.어떤 새끼가 이랬어?!!


첫번에 온 차가운 놈!?두번째 왔던 까불이 놈!!?!"

 

 

 

쓰고있던 긴 가발을 벗어 던지며


내 어깨를 움켜잡는 나나언니의 가느다란 손가락.

 

 

 

 


"......죽었대.......친구가 죽어버렸대....."

 


"죽어!?!?!니 친구가!?!?!"

 

 

"........응...죽어...차사고로..죽어..우리엄마처럼..우리 아빠처럼..


내 동생 유민이처럼..차사고로 죽어.."

 

 


"...이런...젠장..."

 

 

 

한손으로 입을 터억 막으면서.


나나언니는 다시 허리를 숙여 바닥위의 가발을 집어 들고.

 

 

 

"여기서 기다려.알았지.꼼짝말고 기다려!!일분만.아니 오십초만.!!"

 

 


나를 계단 귀퉁이에 침착히 앉힌뒤


요란스런 발소리를 내며 버터 플라이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

 

 

언니..언니..나나언니..


윤영이가.죽었대.


나한테 맛있는 밥 싸다주던..토요일마다 함께 놀아주던..


내 노래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다고 해맑게 웃어주던..


내 친구 윤영이가..


죽어버렸대..인제 이 세상에 없대 윤영이가..

 

 

 

 


"좋아.올라가자..!!"

 

 


어느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나나언니.


녹색 코트를 걸치고서


내 손을 움켜잡고 버터플라이가 있는 건물안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나나언니.

 

 

 

 


"2층에 카페가 있어.거기서 일단 얘기해.너 모든게 다 땡땡 얼어버렸다구."

 

"......"

 

"에이 젠장할.오늘따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거야."

 

 


이층의 어두컴컴한 카페문을 열면서


언니는 아주 약간 인상을 찌푸려 보였고..


나는 손에 들린 곰돌이 인형을 더욱 꾹 쥐면서..


언니의 뒤를 따라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여기 따뜻한 코코아 두잔!!!"

 

 

 

 

 

\ 카페안.

 

 

 

 

"......."

 

 


"좋아...좋아...일단.

그래..오늘 안거야..?"

 

 

 

"...응.."

 

 


"고등학교 친구?아니면 중학교..?"

 

 


안절부절 못하는 나나언니.


그리곤 아주 잠깐 내 손에 들린 곰인형을 바라본다.

 

 

 


"4년전...친구..."

 

"그 사실은 오늘 안거고.."

 

"...어.."

 

"흠......."

 

 

나나언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움켜쥐는 사이


식탁위에는 따뜻한 코코아 두잔이 놓여지고..

 

 

 

"일단 마셔.손 녹여라.대체 밖에 얼마나 있었던거야.."

 

 

언닌.코코아잔 하나를 내쪽으로 밀어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일찍 찾아갈걸...나 못된년이라고 욕하겠다..하늘에서 무지 욕하겠다.."

 

 

"니 친구였다면 절대 그런 욕 안해.그건 내가 장담해"

 


"...그래..그래.."

 


"후....지금은 어떤말도 귀에 안들어 오겠지...잠깐..너 전화 오는거 아냐..?"

 

 

 

벌써 열다섯 번째..

 

주머니에서 요란스레 진동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핸드폰.

 

 

 

"어..괜찮아..이따 다시 걸면 될거야.."

 

 

"얼마나 갈거 같아 오늘 받은 충격은.."

 

 

"....오래는 안갈거야....아마 오래 안갈거야..


이런거 익숙하니까..한방에 세명도 보내봤어..이런거 익숙해..


떠나보내는게 젤 자신 있으니까..."

 

 

"미치겠다 정말..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


이럴때 어떤 말이 위로가 되는지..무슨 말로 안아줘야 하는지..


나 띨빵이라서 아무것도 모르겠어.."

 

 

 


담배를 무는 나나언니의 새빨간 입술...

 

 

 


"그냥 앞에 있어주는게 젤 좋아.숨소리 들려주는것만으로도 최고의 위로야.."

 


"그래..?그럼 숨소리 막 낼까..-0-!?"

 

 

 

피식..


조금 웃음이 번지는 내 입가를 보며


정색을 하고 재빨리 담배를 지져끄는 나나언니.

 

 

 

"후아-0-후아!!!후우아아아!!-0-!!!!후아아!!-0-!!"

 

 


"하하..뭐냐 진짜..최고로 골때리네.."

 

 

"왜 임마!!니가 숨소리가 좋대매!!-0-!!"

 

 

"고마워 언니."

 

 


"고맙긴!!뭐 해준게 있어야 고맙든 말든 하지!!!"

 

 


"고맙고..고맙고..최고로 고맙고..


그리고 고맙고..감사하고..또 고맙고....진심으로 감사하고..."

 

 


"..야..우는거냐.."

 


...

 

....

 

 

 

조금씩 떨려오는 내 어깨와 입술에


나나언니는 어쩔줄 몰라하며 말없이 내 두손을 꾸욱 움켜 잡았고


그렇게 소리없는 흐느낌은 이십여분간 계속되어서..


카페안의 모든 시선들을 남김없이 흝어 가져와 버렸다..

 

 

.........

 

 

대체 얼마나 많이 울었던걸까..

 

 

 

 

 


"이제...된거야...?"

 

 

"...응...됐어...됐다..!!!다 됐다..!!^-^!!"

 

 

"정말 그런거라면 나야말로 죽을만큼 감사하고.."

 


"잘 살거야.윤영인 최고로 착하니까.천사하고 있을거야.!!멋진 날개 무지 많이 달고..!!"

 

 

"^-^...."

 

 

 


마지막 눈물을 삼키며 커다란 소리로 씩씩하게 외쳤을때.


언니는 싱긋 웃으며 조심스레 내 두 손을 놓았고..


나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곰인형을 집어들며 핸드폰을 꺼냈다.

 

 

 

 

"나 이제 가봐야겠다.질투 무지 많은 남자친구 난리 났겠네.."

 


"첫번째.두번째.?^-^"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계산서를 집어드는 나나언니.

 

 

"누굴꺼 같애.?"

 

"난 글쎄..두번째이길 바라는데.."

 

 

....


우려했던 대답.


........

 

 

 

 

 

"왜..?"

 


"첫번째는."

 


"...."

 

 

"위험해."

 

 

"위험...하다니....?"

 

"후...아까 니가 날개 얘기 해서 하는건데..뭐..대충 거기에 비유 하자면.."

 

 

 

 

마지막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이 한마디를 내던지곤 카운터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마는 나나언니.

 

 

 

 

 


"날개 뜯기고 끝없이 추락하는 타락 천사같은거."

 

 

 


타락..천사...같은..거..

 

...

 


지이잉..지이잉..지이잉..

 

 

 

그 한마디를 곱씹으며 두근대는 심장을 억눌렀을때


또 한번 주머니에서 조용히 진동해오는 핸드폰.

 


...

 

 

 


"여보세요..?"

 

"..아..저.."

 

 

 


하루일거라고 생각했는데.


핸드폰 너머에선 전혀 의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누구..세요..?"

 

 

"아녜요.잘못 걸었나봐요.죄송합니다.^-^."

 

 

 


30대 정도로 추정되는 그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는..


다시 되묻기도 전에 찰칵 하고 끊어져 버렸다..

 

 


.............


...

 

 

....하루는....


..타락천사는...


화가 많이 났을까....?

 

 

 

 

\ 버스 정류장.

 

 

 


"가자마자 전화해.핸드폰 번호 알지?!"

 

 

"응..언니도 우리 집번호 알지..?"

 

 

"그럼.그때 여기다 적어줬잖냐.헤헤.-0-"

 

 


앙상한 손을 활짝 펴보이며 어린아이처럼 미소짓는 나나언니.

 

 

"최고로 좋다 언니가."

 


"니 남자친구보다-0-?"

 


"..음..그건 글쎄..^-^.."

 

 

"에이 나쁜년.말만이래두 맞다구 하지!!-0-"

 


"헤헤.-0-."

 


"그래 그렇게 웃어라.너 웃는게 얼마나 이쁜데"

 


"^-^"

 


"..저거 맞지?너희집 가는거..?"

 


"응.."

 

 

조금씩 가까워오는 초록색 버스를 보면서.


한손을 훠이훠이 흔들어보이는 나나언니.

 

 

 

"참.설아!!"

 

"응..?"

 


"나 내일부로 일 관두고.거기 가기로 했다?!"

 


"..어디..?"

 


"거기 있잖아.전화 상담원.12번 아직 비어있대.!!-0-"

 


"우와.잘됐다!!!!너무 잘됐다 언니!!!!!!!"

 


"응!!상처받은 남자들을 뜨겁게 위로해주겠어!!-0-"

 


"언니라면 진짜 뜨겁게 위로할수 있을거야!!-0-!!"

 

 

 


여러겹의 화장이 가려놓은 개구진 어린애 얼굴을 한 언니를 보며


내가 커다란 목소리로 기합을 넣으면.


더더욱 활짝 웃어보이는 나나언니

 

 

 

 

"아참..언니.."

 


"응..?"

 


"거기..어쩌면..다섯시마다 전화한다던 그놈이..또 전화하면 말이야.."

 

 

"응..ㅇ_ㅇ.."

 

"...아마 형이 어쩌구...충주가 많이 머냐 어쩌구..할거야..욕하고..그러거든.."

 


"욕을 해!-0-!?아따 개시끼 나한테 욕만 했단봐라!!"

 


"혹시 그러면..만약에 언니한테도 그러면.."

 


"응-0-"

 


"그 여자애 이름이 박윤영이였는지 한번 물어보고..........."

 

 

"......너....설마....."

 

 

"..만약에..정말 만약에..맞다고 대답하면..."

 


"지금 무슨 상상하고 있는거야.."

 


"전화번호좀 추적해줘..."

 

 


".....뭐.....?"

 


"버스 왔다..!!나 갈게 언니!!내일부터 진짜 화이팅이다!!!!!!-0-"

 

 


"야야!!한설아!!!!!!!!"

 

 

 

다급히 붙잡으려는 언니를 뒤로하고


활기차게 오르는 버스 안.

 

 

 

 

"뭐야 진짜!!어쨋든 조심히 들어가라!!가자마자 전화하는거 잊지마!!"

 

"응!!^ㅇ^!!"

 

 

 

 


창밖으로 손을 마구 흔들면


어느덧 언니의 얼굴은 점점 작은 점으로 멀어져 가고..

 

...

 

 

그때부터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하는 다섯시 놈의 의미심장한 말들.

 

 

 

 


'충주가..많이 머냐..'

 

 


'충주가..걔 할머니네 집이 아닌데..왜 거기서 죽었어?'

 

 


'.....왜.....우리.....형......옆에서...죽었어......'

 


'왜 혼자 죽었어!!!!!!!!!!!!!!!!그새끼는 왜 안데려갔어!!!!!!!!!

왜 그새낀 왼쪽다리 하나만 부러트렸어!!!!!!!!!'

 

 

 

'사랑한다고......그랬는데........'

 

 

 

 

 

혹시..

 

정말..어쩌면..윤영이랑 관련이 있는건지도 몰라..

 

 

 

난 볼꺼야..꼭 봐야겠어..


살려달라던 윤영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개자식..


이 두눈으로 꼭 확인해 봐야겠어..

 

 

 


그래서 윤영이 대신해 복수할거야...


죽음을 지켜보지 못한 댓가로


그 인간같지도 않은 자식한테 철저히 복수할거야...


있는 힘을 다해서 복수해줄거야..

 

 

 

 


그러니까..잘 지켜보고 있어 윤영아..


하나도 놓치지 말고..똑똑히 다 지켜보고 있어..


"다녀왔습니다..............."

 

 

 

\ 평창동.

 

 

 


환하게 불이 켜진 거실.

 

 


현관문을 열자 마자 보이는건..

 

젖은 머리위에 수건을 한장 올려놓고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 은찬이..

 

 


비용비용.비용비용.

 

 

이젠 정말 말도 걸지 않기로 작정한건지.

 

놈은 내가 거실안에 들어선 그 순간에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게임에만 열중을 했고..

 

 

 

"하루는......"

 

 

힘겨운 내 물음에.

 

역시 등도 돌리지 않은채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찾으러 갔나....."

 


"몰라."

 


"하루 핸드폰 없지....."

 


"몰라."

 


"..."

 

 

휴..말을 말자...

 

 


오는길엔 아무데서도 안보였는데..


대체 어디로 가버린거지..


...

 

 

거실의 쇼파위에 털썩 몸을 앉히며 머리를 다시 한번 쓸어 묶으면..


아까의 충격탓에 어질어질 머리가 아파오고


그때.

 

 

 

"은찬은찬!!니 방에 컴퓨터 왜 안돼..!?"

 

 

 

요란스러운 발소리를 내면서


이층 계단에서부터 빠르게 가까워오는 예란이.

 

 

 

"어..?설이 왔네..?"

 


"..어..안녕.."

 


"응.하루 나갔는데."

 

"아..알아....."

 

"어?너 울었구나?"

 

 


퉁퉁 부운 내 눈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까워오는 예란이.


그리고 그 한마디 말에 코빼기도 안보여주려던 은찬놈이 스윽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하하..완전..괴물눈인가부다.."

 

 

난 한손으로 스윽 눈을 가리며 고개를 숙여버렸다.

 

 


"왜그래?무슨 일인데?응응??"

 

 

 

 

특유의 귀여운 말투를 시작으로


눈치없이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아버리는 예란이.

 

 

 


"..아니..그냥..일이 좀 있었어..."

 


"뭔데 뭔데?하루랑 싸웠구나?"

 

 

"...아니...개인적인 일...."

 

 

"나도 말해주면 안돼..?ㅇ_ㅇ??"

 


"....안돼...."

 


"왜~~내가 상담해줄게~!!!대체 뭔데~!!"

 

 

"그냥 좀 안좋은 일이야......."

 

 

조금씩..조금씩..

 

 

불타는 차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윤영이의 모습이 떠오르고..

 


속이 울렁거려 오는것을 느끼며 가슴을 움켜 잡으면..

 

 


..

 

 

"야아 말해줘~궁금하잖아~!!"

 

 


이젠 아예 내 두팔을 붙들면서 앙앙대기 시작하는 예란이.

 

 


"....아니..그만..."

 


"너 싸웠구나??그치??"

 


".....아..."

 


"맞지?그때 우리 첨 만났을때처럼 싸우고 온거지..??"

 

 

"....."

 

 


점점 뚜렷히 떠오르는 윤영이의 얼굴..


한없이 해맑기만 했었던 윤영이의 예쁜 얼굴..

 

 

 

 

"어휴 눈 되게 많이 부었어..어떡해.."

 

 

"제발 그만해!!!!!!!!!!!!!!!!!!!"

 

 


"....-0-...."

 

 


"내가 울건 말건 그게 너랑 대체 무슨 상관이야!!!!!!!!


어디서 싸움을 하던 친구가 죽던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너...너무한다...."

 


예란이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갈무렵.

 


..하아..


난 거친 한숨을 몰아쉬며 쇼파에서 몸을 일으켰고..


하루를 찾으러 가기위해 현관쪽으로 다가설때..

 

 

 

"야..."

 

 


등뒤에서 들려오는 화난듯한 은찬이의 목소리.

 

 

 

"....왜..."

 

 

"너 형이랑 싸워놓고 왜 내 마누라한테 화풀이냐."

 

 

"하..그만하자..나 싸울힘 없다.."

 

 

"야.한설."

 

 

".....대체 왜..."

 

 

"질질 짤꺼면 니 방가서 짜.남자랑 싸워서 그러는거 듣기도 싫고 꼴보기도 싫으니까"

 

 

".....내가.....남자랑 싸워서 운다고...


누가 그러든....강은찬..."

 

 

 


현관문에 손을 가져간채로 빙글 몸을 돌리면

 

예란이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은찬이의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어주고.

 

놈은 어울리지도 않는 아주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강하루 말고 널 울리는 사람이 또 있었냐."

 

 


".......유치한 시비 걸지마....그런거 아니니까..."

 

 


"은찬아.그만해..내가 잘못 한거잖어..."

 

 

 

조금 울먹이는듯한 목소리로.


예란이가 젖은 은찬이의 머리카락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으면..


삐딱한 그 시선을 잠자코 내게서 거두는 강은찬.

 

 

 


"남자땜에 질질 짜기나 하고..한심하게.."

 

 

 


윤영이의 일그러진 얼굴위로 겹치는 그 한마디에


난 있는힘을 다해 무시무시한 욕을 퍼부어 줄까 하다가..


..아니지..아니야..더이상 무슨말을 더해..


재빨리 마음을 고쳐먹고 힘껏 문을 열었다.

 

 

 

투욱.


서러운 마음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 한방울.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코앞으로 불어닥친 차가운 숨소리 하나.

 

 

 


"대체 어떻게 된거야..."

 


"하루..야...?"

 


"하..너 뭐야..대체 어디 있다가 왔어..내가 전화 한건 알았어 몰랐어..!!"

 

 

 

조금 높아진 언성에 고개를 들면


추위에 창백해진 얼굴의 하루가 피곤한듯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그 후로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흐르면...

 

 

 

 

"너 누가 울고 다니래.."

 

".....미안..미안해..."

 


"누가 울렸어.."

 


"....미안...............전화 받으면 이상한 말 할거 같아서............"

 


"누가 니 맘대로 눈에 눈물 달고 다니래!!!!!!!!!"

 

 


하루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주체할수 없을만큼 밀려오기 시작하는 눈물.

 

 

 

 


"왜 우냐고 묻잖아..누가 너 울렸어..그 여자가 이랬어..?"

 


"....죽었어...."

 

 

"..........................누가......."

 

 

 

"내 친구 죽었어...


내 친구 죽었어 하루야..하나밖에 없던 내 친구가 죽어버렸어.."

 

 


무너지듯 안겨버린 하루의 가슴속..

 

 


그러면 하루는.

 

멍하니 자리에 박힌채로 내 눈물을 모두 받아 주었고..

 

등뒤에선 예란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지마....."

 

 

"..........."

 

 

"내 여자친구 착하지.......그쳐...눈물..그쳐..."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오는 하루의 커다란 두 손.

 

 

 

"..은찬아..!!"

 


그리고.

 

갑작스레 쏟아져나오는 예란이의 비명소리.

 

 

 

"어디가.은찬아..!!!"

 

 

그랬다.

 

 

푹 젖은 머리의 은찬이는


신발장에 서있는 나와 하루의 곁을 지나쳐 거칠게 현관문을 열어 제꼈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대로 집을 나가버렸다.

 

 

 


"어떡해.!!!어휴.정말..ㅠ0ㅠ..은찬아..!!강은찬..!!"

 

 

 


쇼파위의 자켓을 집어들고 재빨리 그 뒤를 따라나가는 예란이.

 

 

 

 

'탁탁탁탁'

 

 

 


작은 발자국 소리를 내며 그녀마저 그렇게 자취를 감추면


하루는 더더욱 나를 품안에 세게 끌어 안아넣고.


우리는 그렇게 그곳에 한참을 서있다가..

 

 

 

한참을 위로하고 위로받다가..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씩 문밖으로 가까워져 왔을때.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계단으로 등을 돌렸다.

 

 

 

..

 

 

 

\ 내 방.

 

 


째깍째깍째깍.

 

 

컴컴히 불이 꺼진 내 방


그리고 침대 맡에 앉아서 흐르는 내 눈물을 계속 손등으로 훔쳐주는 하루.


내 남자친구 하루.

 

 

 

 

 

"...은찬이...괜찮을까..."

 


"내가 이따 데리고 들어올거야.걱정말고 자."

 


"....그 친구였어...."

 

 

"....."

 


"너한테 물어봤던 친구..윤영이 말이야...

네가 좋아하던 노래..젤 좋아했다던 친구 말이야.."

 


"......"

 

 

 

"나랑 참 닮았는데..너도 봤으면 분명히 놀랬을거야..

그러고 보니까 걔가 매일 머리 묶고 다녔네 지금 나처럼..

그땐 윤영이가 그랬는데.."

 

 


"............"

 

 


"하루야..하루야.."


..


...

 

 

"왜 말이 없어 하루야.."

 


"자..얼른.."

 


"넌 나 안떠날거지..."

 

 

"...왜 떠나.."

 

 

"나 죽을때까지 니 숨소리 옆에서 들을수 있지..그치.."

 


"......응....."

 

 

"아무데도 가면 안돼..외톨이로 두면 안돼.."

 

 

"아무데도 안갈거야..널 두고 내가 어딜 가..."

 

 


"..헤헤..그런 말 너한테 첨 듣는다..평소엔 무뚝뚝해서 그런말 때려 죽인대두 안해 줄거 같더니.."

 

 

"말 이쁘게 해."

 

 

콩.


내 머리를 쥐어박는 하루의 주먹에


나는 행복한 미소를 흘리며.그러나 서글픈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고

 

 

 

내 남자친구 하루는..


평생 나를 지켜줄거라고 약속한 하루는..


내가 잠드는 그 순간까지..뺨을 타고 흐르는 내 눈믈을 끊임없이 닦아주었다.

 

 

 

 

그리고.

 

 

 


지이잉..


새벽 3시 무렵..


베개 옆에 놓인 할아버지 핸드폰 액정위에..

 

 

 

 

'미안해.....'

 

 

 


........

 


..............

 

 


은찬이의 생일이 번호로 찍힌 그 문자를 확인하고.


이제 다 증발되었다고 느낀 눈물 한방울을 더 떨구며..


나는 완전한 잠에 빠져들었다..

 

 

 

 

 


끝으로 그날 꿈에선.


슬픈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 윤영이를 만났다...............

 

 

 

 


'안돼..설이야..그건 안돼.....그건...........정말 안돼.....................'

 

 

 

 

그 알수없는 말을 되풀이하는..


나만큼이나 슬프게 젖은 눈을 하고 있는 윤영이를 만났다..............

 

 

 


4년전 내 친구 윤영이를.


불에 활활 타오르며 부숴져 내리는 투명한 창 너머로 만났다..........


\ 일주일 후.

 

 

 

 

"미안하다 설이야...어쩔수가 없구나..."

 


"아니에요!!저도 그런 자리는 딱 질색인데요 뭐!!^-^"


"올때 예쁜 선물 사가지고 올게.."

 

"넵!!!!^-^!!"

 

 


거실.

 

쇼파위에 정장차림으로 앉아서 나와 할아버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하루.

 

 

친척들 모임이다.


그때 마녀가 말하던 친척들 모임.

 

 

 

그리고 은찬인 없다.....

 

뛰쳐나갔던 다음날 아침 집에 돌아왔다가.

 

그 이틀후 새벽에 짐을 챙겨들고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은찬이가 혼자서 일본에요!!!!!!!!!!!!!!!?!'

 

 


함께 가기로 한 예란이에겐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채.

 

 


오늘 저녁에나 돌아온다니..


이번에야 말로 꼭 화해 해야지..

 

 

 

"자 그럼 하루야..가볼까..?!"

 

 

기지개를 펴시며


쇼파위의 하루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시는 할아버지.

 

 

"...귀찮아.."

 

 

그러면 놈은.


답답하다는듯 하얀 와이셔츠 남방을 잡아 뜯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어허..귀찮아도 가야지..집안 어른들 다 오시는데.."

 


할아버지의 다정한 그 한마디에


성큼성큼.


눈부시게 멋진 모습으로 내 앞에 다가선다.

 

 


정장이 이렇게 잘어울리는 놈이 또 있으랴.

 

 

 

 

"나 갔다올게요."

 

"응.잘 갔다와.너도 내 선물 사와."

 

"뭐.?"

 


"음...거기 호텔에서 맛있는거..!!"

 

 

"맛있는거 뭐.??"

 


"초콜렛 들어간거 전부다!!!-0-!!"

 


"알았어."

 


"응^-^"

 


"나도 선물"

 


"....뭐.....-_-....넌 왠 선물..."

 

"뽀뽀"

 


"미쳤냐.."

 

 

합..-0-

 

또 튀어나온 '냐' 자 말투에 황급히 입을 가리면.

 

예상외로 싱긋 미소를 짓는 하루.

 

 

..이상하다..이놈..


일주일전부터다..

 


내가 머리를 풀러도 묶으란 말 안하고..


해산물 안먹어도 구박 안하고..


간간히 '냐'자 말투를 써도 아무렇지 않아한다.

 

 


게다가 '뽀뽀' !!!!!!!!!!!!!!!

 

참말로 적응할래야 적응도 안되는 모습으로 이렇듯 귀엽게 굴어대고 있으니!!!!!!!!!!

 

대체 할아버지 얼굴을 어떻게 보란 말이냐 이놈아!!!=0=

 

 

"허허허.난 괜찮다!!-0-!!뽀뽀하고 나와라!!뽀뽀하고 나와!!"

 

 


껄껄껄 웃으시며


허둥지둥 현관쪽으로 모습을 감추시는 할아버지.

 

 


그러면 거보라는듯 하루는.

 

아직도 완전히 익숙하진 않은 미소띈 얼굴로 나를 멀끄러미 내려다 보고.

 

 


"야...할아버지 있을땐 그런거 제발 좀 하지마.."

 

"선물은"

 

"....니가 초콜렛 가져오면..그때 나도 준다..뭐..-_-.."

 

 


민망한 마음에 그 짙은 눈동자를 피하며 고개를 숙이면.

 


'쪽'

 

내 너저분한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현관으로 재빨리 등을 돌리는 하루.

 

 

"야아!!!!-0-"

 


"한시간에 한번씩 전화.꼼짝말고 집에 붙어있어"

 

"....-0-.....잘갔다와..!!"

 

"응!!초콜렛 많이 가져올게!!"

 


"응!!!"

 

등돌린채 한손을 흔들고는


현관밖으로 자취를 감추는 하루.

 

 

 

진짜 이상하다..정말로 적응이 안된다..

 

내가 우울증이라도 걸릴까봐 저렇게 애쓰고 있는건가..??

 

 


..아니면..

 


저게 바로 신기사 아저씨가 말하던 하루의 진짜 모습인가...?

 


입가에 절로 떠오르는 미소를 가만 내버려둔채 이층 계단으로 몸을 트는길.

 

그리고 그때..

 

무언가를 재촉하듯 다급히 울려오기 시작하는 전화벨 소리.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릉."

 

 


...누구지..이 아침에..?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향해 다가서고..

 

다음으론 헛기침을 두어번 한뒤 수화기를 들면...

 

 

 


"..여보세요..?"

 


"..거기..한설네 집 맞죠.."

 


"...네..."

 


"너 설이지"

 


"..나나언니..?"

 

 

"너 설이 맞지..확실하지 설이!!!"

 

 


"언니....왜그래...무슨일 있어...?"

 

 

"너 지금 당장 이리로 와!!!!!!!!!!!!!!!!!"

 

 

"...............무슨말이야...?거기가 어딘데.."

 


"전화 상담소!!!!!!!!빨리 당장 와!!!!"

 


"왜그래?"

 


"아 얼른!!!!!!!!!!!!!!!"

 

 

"..................알았어..기다려봐..."

 


"후..미치겠다 정말..."

 

 

대체 무슨일이 벌어난거지..

 

 

난생 처음듣는 나나언니의 심각한 목소리에..

 

나는 재빨리 이층으로 올라가 나의 외투를 챙겨 입었고..

 

 

"어머 어디가 설학생..?"

 


"네?잠깐 밖에요"

 


"방금 그 전화 그냥 끊는 장난전화 아니였어?"

 


"아니요.저 아는 언닌데.."

 


"이상하다..5일전부터 계속 누가 전활 해서 그냥 끊네.."

 


"하하..네..그럼..저 좀 나갔다가 올게요..!!"

 

 


부엌에서 빼꼼히 고갤 내미는 아줌마께 꾸벅 인사를 드리곤.


헐레벌떡 집을 뛰쳐나와버렸다.

 


..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지..?

 

설마 다섯시 그놈이랑 관련된 일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금씩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는 튼튼한 두 다리.

 

 


애써 지우고 있었던 윤영이의 얼굴이 또다시 떠오르면


난 젖먹던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고.

..

 

 

"어우..뭐야..!!"

 


"죄송합니다..!!"

 

 

 

길가던 사람과 버스안의 사람과.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족히 스무번 이상 부딪힌 뒤에야..

 

 

 

하아..

 

...하아..나 죽는다..나 죽어..

 


이러다 진짜 심장 내려 앉겠네...

 

 

 


"한설!!!!!!!!!!!!!"

 

 


이제 나대신 12번 상담원이 되어버린 나나언니를 만날수 있었다.

 

 

 

 

 

 

\ 전화 상담실.

 

 

 

 

"어머 설이 진짜 진짜 오랜만이네!!-0-!!세상에 얼굴 핀거봐!!세상에!!"

 

 


커피를 마시다 말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13번언니.

 

 


"아 언니 진짜 오랜만이다..!!"

 


"너 뭐야 기집애야!!연락두 한번 없구!!"

 

"아.미안미안.."

 


"야!!너 수다떨때가 아니야!!!!!!!빨리 이리와봐!!!!!!!!!!!"

 

 

..-0-..

 

13번언니의 앞을 턱하니 가로막으며.


나를 전화기 앞 의자에 끌어 앉히는 나나언니.

 

 

 

"대체 뭔데 그래..뭐야.."

 


"니네 집에 같이 사는 남자들 있냐?!!?!?!!"

 


"....어....왜....?"

 


"아주 돌아가시겠구만..돌아가시겠어.."

 


"...뭔데..대체 뭔데 그래..."

 


"후우...................."

 

 


...사람 염장을 지르려고 작정을 한건지..

 

이번엔 입을 꾸욱 다문채 대신 담배 한개피를 꺼내무는 나나언니.

 

 


그리고.

 

두터운 화장이 벗겨진 천진난만한 얼굴을 천장위로 젖혀버린다.

 

 

 

 


"..왜그래..언니..?..그놈이야..?..."

 


".....한번..딱 한번 전화가 왔었어...."

 


"...다섯시..?"

 


"..응.."

 


"..언제..?"

 


"너 그렇게 가버린 다음날 낮에."

 


"그래서..?뭐래..!?"

 


"똑같애 니가 했던 말이랑.


충주가 어쩌고..저쩌고..왼쪽 다리가 어쩌고..저쩌고.."

 

 

"....어.....그리고...?"

 

 

"..뭔진 모르겠는데..미안하다고..하더라.."

 

 

"...미안해..??"

 

 

"..어....너무 미안하다고.."

 


".................그래서...?"

 

 


"후..일단 정리해보니까..


그놈 여자친구가 있었는데..형이랑 바람이 나서 차를 타고 가다가..


여자만 죽은거 같더라..맞지..?"

 

 

"...어...맞아..


그래서 그여자 이름 물어봤어............?"

 

 

 

꿀꺽 마른침을 삼키면서


미칠듯 소리치는 심장을 간신히 꾹꾹 억누르면..


13번 언니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어느덧 나나언니 곁에 찰싹 붙어 서있고..

 


...

 


한참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나나언니는


대답대신에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안물어봤어...?"

 

"물어보니까 그냥 끊던데.."

 

"..하..뭐야..그게..괜히 긴장했잖아!!!!-0-"

 

 


뭐랄까...

 


....안도감이라고 해야하나....

 

이유없이 밀려오는 그 안도감에..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면..


바로 그때..

 

빨간색깔의 12번 전화기를 내 눈앞에 들이미는 나나언니.

 

 

 

 


"왜...?"

 

 


"발신 번호 뜨게 해놨었어..."

 

 

"...언니가..?"

 

 

"그래.니 친구랑 관련 있을지도 모를거 같아서.


들어오자마자 전화국에 신청했는데..."

 


".......응...."

 

 

"...니가..확인해봐라..."

 

 


"..................................."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거야............

 

....확인해보라니....

 

내가 아는 번호라는거야...?

 

아니면 전혀 의외의 지역이라는거야...?

 

 

 

경련하다시피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전화기에 달린 화살표 모양의 버튼을 꾹꾹 누르면..

 

 

오늘 걸려온 열여덟통의 전화들..

 

이건 아냐..

 

어제 걸려온..이것도 아니고..

 

그저께도 아니고..

 

내가 나나언니 만났던 그 다음날이라고 했으니까...

 

 

....6일전...

 

 

.......

 

 

 

"다섯시에 왔지?"

 

 

"어...."

 

 


"..어디보자..음..다섯시가.."

 

 


"젠장할..."

 

 


"..다섯시..다섯시..옳지..이건 두시고..


...다섯...."

 

 


"............................."

 

 


".....다섯........시..............."

 

 


"........미치겠다....."

 

 

 

 

............

 


...............

 


거짓말.................................

 

 

 

 

 

 

"너희집 번호..맞지.."

 

 


"...하하..말도 안돼..진짜..말도 안된다..뭐야 이거..


우연치고 기막히다...."

 

 

"도저히 믿을수가 없어서..아니길 바라면서 전화했는데..


매일매일 어떤 아줌마가 받길래 말안하고 그냥 끊었어...

근데.................오늘은.........네가 받더라.............."

 

 


"말도 안돼.....이게....뭔가..잘못 된거 같은데...이게 아무래도..누가 장난을 친거.."

 

 

 

"그 집 나와 설아"

 

 

 

"...이건 아닌데......정말 이건 아닌데.........."

 

 


"우리 집으로 와."

 

 

 

 


이건 아닌데.........

 

아무리 장난이 심하다지만.........

 

이건 정말 아닌데..................................

 

 

 


"설아!!!!!!!!!!!!!!!!!"

 

 

 

 

말도 안돼..


거짓말...


그럼 은찬이란 말이야...


그 전화가 은찬이란 말이야.....?

 

 

 


거짓말..!!!!!!!


제발 장난이라면 그만둬!!!!!!!!!!!!!

 

 


"어디가!!!!!!!!!!!야!!!!!!!!!!!한설!!!!!!!!!


설이야!!!!!!!!!!!!!!!!!!!!!!!!"

 

 


장난이라면 당장에 때려치우란 말이야!!!!!!!!!!!!!!!!!

 

 

 

절뚝이던 하루의 왼쪽 다리가 눈앞에 맴돌고

 

 


나는 아니길 바라면서.


나나언니의 착각이거나 아니면 전화기의 실수이길 바라면서.


혹은 더더욱 큰 욕심을 내어 이 모든일이 꿈이길 바라면서..


거대한 괴물집을 향해 올때보다 백배는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아니 어떻게 된거야..대체..-0-.."

 

 


현관문을 연 아주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랐을때.

 

터져나오는 비명과 고함을 꾸역꾸역 집어 삼키며 할아버지 방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 집에 온뒤에.


처음으로 할아버지 방안에 몸을 들여 놓았다.

 
"어머 허락도 없이 뭐하는짓이야!!-0-회장님 아시면 혼나!!"

 

 

 


\.거대한 괴물집.

 

 


대체 어딨어..

 

대체 어디다가 둔거야..

 

 

"설학생!!!!!!!!!!!"

 

 

이미 두 눈은 초점을 잃어버린지 오래.


차갑게 식어버린 두 손은 장농이며 책상서랍을 빠르게 뒤집어가고.

 

 

"왜 그래!!!무슨 일인데 그래 대체!!"

 

 

"..하...아줌마..제발 아니라고요..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뭘 말이야..!!"

 

 

"이게 끝이 아니라고..이게 끝이 아니라고.."

 


"....-0-...세상에...저 눈 뒤집힌거좀 봐....끔찍해...."

 

 

...여깄다...

 

...하..찾았다....

 

...

 

 

책들 사이에 교묘히 가려져있는 두터운 앨범 한권.


끝장에 이르러 할아버지가 황급히 덮어버렸던 비밀스러운 앨범 한권.

 

 

 


"그걸 봐서 어떡하려구..!!"

 


..한장..두장..

 

여기까진 나도 알아..

 

이건 나도 알아...

 

...세장...네장....

 


...제발...아무것도 아니길...그냥 하루와 은찬이의 보통 사진이였길...

 

 

 


"제발.....제발...."

 


"어머..사모님 오셨나보다..어떡하면 좋아.."

 


".......하...하하....하하..."

 

 

입가로 맥없이 터져나오는 힘없는 웃음소리..

 

그리고 내 왼손에 들린 꾸깃꾸깃한 사진 한장...

 

 

 

"이건 너무해요...........아무리 그래도...이건 정말 너무해요......"

 

 


하루와 윤영이..

 

윤영이와 하루....

 

나란히 서서 활짝 미소를 짓고 있는 두사람....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도 닮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

 

 

"사모님 오셨어.설학생.!!뒷처리 내가 할테니 어서 방에서 나와!!"

 

 

 

빼꼼히 열린 방문 사이로


아줌마가 다급히 손짓 할때..

 

 


"아니 또 어딜 가는거야!!-0-인사 드려야지!!!!!!!!!!"

 

 


두번째의 단편적인 기억을 떠올린 나는


이번엔 이층을 향해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몸을 올렸고..

 

 

...

 

 

 

"아니아..하루 너 아니아..


....은찬이 너도 아니..너히 둘다 아니야...이건 다 우연이고..다 장나이고..


그래..마녀가 장난치는거야..나 집에어 쫓아내려고..마녀가.."

 

 

 

 


더듬더듬..


형편없이 새어나가는 발음..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는 소름끼치는 피눈물..

 

 


....

 

그리고..


이 모든것이 마녀의 장난임을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들린 하루방..

 

 

...

 

콰당..

 


방문앞에 도달했을때 미끄러져 넘어져버린 나는

 

계단을 올랐던것과 마찬가지로 형편없이 바닥에 두 손을 의지한채

 

하루의 책상 앞에 도달했고..

 

 

 

 

"아니지 하루야..아니지..그거 아니지.."

 


침과 눈물이 뒤범벅된 손을 빠르게 움직여 그 흰빛깔의 서랍하나를 열었다..

 

 

 


여긴 없어..아무것도...

 

 

 

그리고 다시 서랍둘..

 

하..여기도 아냐..

 

 


....마지막으로 서랍 셋...

 

...

 


부시럭..

 

이윽고 손에 잡혀오는 종이별 하나..

 

미라가 하루방에서 가지고 온 종이로 만들었던 작은 별 하나.

 

...부스럭..부스럭...

 

 

 

.....

 

 

 

...........그냥 나갈까....여기서 그냥 나갈까...

 

모르는척 하고..없었던 일로 치고..기억을 잃은셈 치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까..

 


.....

 

하...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형편없는 두 손은 끝내 그 종이별을 반으로 찢으며 펼쳐 버렸고..

 

 

..

 

 

 

 

 

 

 


'하루보세요.


오늘 날이 너무 추워.ㅠ_ㅠ.


목도리 꼭꼭 두르고.이따가 봐요.넘넘 보구싶어요 여보야.♡


하루 마눌님 윤영이가'

 

 

.....

 

........

 

 

두번째...두번째 종이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내 손에 의해 우왁스럽게 펼쳐지는 두번째 종이별...

 

 

 

 

'to하루.


뭐야 아까.말도 안하고 그냥 가는게 어딨어.


나 단단히 삐졌으니까 이따 화 풀어줄 각오 하고 있어.


그래도 역시나 사랑하는거 알죠?


from윤영'

 

 

....

 


...........이거였어요....할아버지....?

 

이거...였어요...?

 

이 집에 얼마간 머무를수 있었던 고마운 댓가가...

 

..이거..였어요.....?

 

 

 


"그래.이제야 알았구나.참 둔하기도."

 


...

 

....

 

 


바닥에 주저앉은채 힘없이 편지 두장을 떨구며 고개를 들면..


방문가에 서서 한심스러운 미소를 흘리고 있는 마녀..

 

 

 

"...알고..있었어요..?다..알고 있었어요..?"

 

 


"나도 첨엔 참 놀랬지.무섭게 닮아있더구나.너희둘^-^"

 

 


"............하...하하...하하하..."

 

 

 


"하루의 끝없는 자살시도.


일기장엔 그애가 죽은 3월9일날 따라 가버린다는 의미심장한 말들뿐.


애 아빤 참 겁이 났겠지..^-^..내년 3월9일이 다가오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야 했겠지."

 

 

 


".............그럼...."

 

 

 

"골프모임에서 알게된 한 남자.


그 남자가 재미삼아 보여준 사진속의 한여자.


자기 아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3월9일까지 이용..


딸이니 소중한 자식이니..눈물나는 이유를 대가면서.."

 

 


"......하하..재밌다..이거..


..이거..되게..재밌네요....사람...순식간에 병신 만들어버리네......."

 

 

 


"그래서 호적에도 올릴수 없었던거고^-^


상처받을거 염려해서 진작 나가라고 그렇게 눈치를 줬건만..


어쩜 애가 그리도 둔한지.."

 

 

 


"....어딨어요...."

 

 

 

"하루랑 애 아빠 말이니??^-^"

 

 


"......그 사람들 어딨어요......지금 어딨어요........"

 

 

"같이 가면 되겠네.지금 거기서 오는 길이니까^-^"

 


....

 

나..죽어요..할아버지..?


나 죽으라고 그랬어요...?

 

 

하루 살리고..나 죽으라고 그랬어요...?


그여자가 내 친구였다는건 알았어요...?


하루가 발로 차며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여자가..


나한테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는건 알았어요.......?

 

 


..

 

부릉부릉..

 


무슨 정신으로 올라타게 된건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고 있는 마녀..

 

 


나는 맥없이 몸을 늘어트린채 실없는 웃음만 흘려대고..

 

 

 


"그러고 보니 우리 은찬이만 참 불쌍하게 됐구나.


그래도 그앤 진심이였던 모양인데"

 

 


"..............."

 

 


"그런데 참 어떻게 알았니??"

 

 

"지금 이 순간부터....."

 

 

"....."

 

 

"나는 당신이 알던 한설이 아니에요."

 

 

 

피식.


여자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원래대로 돌아왔어요...그 죽도록 끔찍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그러니까.나한테 더이상 시비 걸지 말아요.."

 

 

"죽도록 끔찍한 모습이라..^-^..좋아..하루가 아주 좋아하겠구나..


그애도 죽도록 끔찍한 아이니까."

 

 

"........"

 

 

...

.......

 


하...

 


그럼 그 전화가 은찬이...

 


......은찬이의 여자친구가 윤영이.....

 


윤영이가 바람핀 상대가 하루...........

 


윤영이를 죽게 내버려둔것도 하루............

 


나를 윤영이 대리용품으로 대했던것도 하루...........

 

 

 

 


"..강하루..죽어버려..."

 

 

 

끼이이이이익.!!

 

차가 커다란 호텔 입구에 도착했을때..


입가를 비집고 나즈막히 흘러나온 그 한마디..

 

 

 


"그래.어디 한번 해봐라^-^"


....

 

 

 

이윽고 마녀가 그 마지막 말을 내뱉을때.


호텔보이가 정중히 내가 탄 조수석의 문을 열때.


나는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꼿꼿히 세우며 차에서 몸을 내리고..

 

 


...

 

 


"아..괜찮으세요..?"

 

 

 

부축하려는 그 남자의 손길을 거세게 뿌리친뒤


15층 연회장에서 열리고 있는 그 모임의 마지막 손님이 되주기 위해


엘리베이터 안에 가까스로 몸을 실었다.

 

 

...

 

........

 

 


동시에 두여자를 짓밟았구나..


아무렇지 않은 태연한 얼굴로...한 여자를 죽이고..한 여자를 망쳤어....

 

 

 

하하...하하하..진짜..웃겨..


모른다고..?


니가 죽인 윤영이를..니가 모른다고..?

 


딩동.

 

 

엘리베이터가 15층에 멈추면.


문이 열리기 무섭게 왁자지껄 들려오는 상류층들의 고상한 목소리들.

 

 


그리고....

 

입구로 들어서는 나 한설의 등장에..

 

모든 이들의 표정이 언짢게 굳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겠지요..


이토록 고급스런 모임에..이런 옷차림에..이런 몰골을 한 내가 나타났으니..

 

꽤나 거슬리기도 하시겠지요..

 

 


그런데 어떡하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이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 할텐데 말이에요..

 

 

 

 


"....어떻게 오셨어요....?"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사십대 중반의 여자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내 앞을 막아섰을때..

 


...

 

.....그때 마침 나를 발견한 또 한사람의 주인공..


잠시후 벌어날 소동을 겪게될 또 하나의 주인공..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환하게 밝아져오는 얼굴로


그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을 제치며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하고..

 

 

그 손에 들린 초코렛 빵과 초코렛 한웅큼이 아주 잠깐 내 가슴을 아릿하게 만들었지만..


난 이내 그 표독스럽고 잔인한 표정으로 겉껍데기와 심장 깊숙한곳을 휘감아버렸고..

 

 


"..설이야..-0-.."

 

 


당황한 표정으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껄껄 거리던 할아버지도 마침 날 발견했을때.

 

조금 떨어진곳에서 마녀가 아주 흥미로운 웃음을 머금고 날 바라볼때.

 

고상한 이 집안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져갈때.

 

 

 


..마지막으로..

 

 

 

코앞에 다가선 하루가 초콜렛을 내밀며 더욱 밝게 웃어 보였을때.

 

 

 

 

 

 

 

 

 

 

"가위 가져와."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그 첫인사를 멍하니 흘렸다.

 

 

 

 

"어....?"

 


"가위 가져와!!!!!!!!!!!!!!!!!!!!!!!!!!!!!!!!!!!!!!!!!!!!!!!!!!!!!!!!!!!!!"

 

 


.............

 

 

.....................

 

 

 

..숨막히는 침묵..

 

모두들..새파랗게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

 

하루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가고..

 

 

 

"가..가위 여기요.."


....

 


고맙게도..

 

정말이지 고맙게도..

 

앞치마를 두른 눈이 커다란 여자아이 하나가 내 한손에 가위를 들려준다.

 

 

 

".....너 왜이래......"

 

 


피식..

 

 


"야........한설..........."

 


...팔랑...

 

바닥으로 떨어지는 보라색 머리끈..

 

그러면..가슴을 훨씬 넘는 내 까만 생머리가 비참히 흘러 내리고..

 

 

 


"꺄아악!!!!!!!!!!!!!!!!!!!-0-"

 

 


...

 

......

 

 

뒷걸음질 치던 아줌마나..

 

혹은 내 나이 또래의 부잣집 아가씨들이 겁에 질린 비명을 지를때..

 

 

 

싹둑.

 

 


내 머리카락은 귀 바로 밑까지 순식간에 잘려나가.

 

투욱.................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흩어져 내렸다.

 

 

 

 

 

"........내 이름은 한설.........한설입니다..............."

 

 


"뭐하는거냐고..물었어........."

 

 

"박윤영이 아니라 한설.


그게 바로 내 이름입니다."

 

 

".......한설....."

 

 

"..내가..조금도..불쌍하지 않았냐..."

 

 

"......"

 

 

 

............

 


......................

 

 

 

"나한테 왜그랬냐!!!!!!!!!!!!윤영이한텐 대체 왜그랬냐!!!!!!!!!!!!!!!!!!!!!!!


야 이 미친자식아!!!!!!!!!!!!!!!내 얼굴 보고 윤영이 모습 떠올리니까 좋았냐!?????!!!


그래서 매일 머리 묶으라고 졸라댔냐!!!!!!!!!!!!!!!!


지금 나!!!!!!!!!!!!!!지금 나 윤영이랑 전혀 다른!!!!!!


니가 제일 싫어하는 말투 쓰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냐!!!!!!!!!!!!!!"

 

 

 

 

"..하.."

 

 

 

"평생 지켜준단 그 말은 나한테 한말이었냐!!!!!!!!!!!윤영이한테 한말이었냐!!!!!!!!!!!!!!!!!!"

 

 

...........

 

 

....................하...아..

 


하아..

 

 

 

 

흘러넘치는 눈물..

 


머리카락위로 처참히 떨어져 부숴지는 눈물..

 


윤영이의 죽음을 전해들은 그 날보다..

 


훨씬 더 묽고 쓴...새빨갛고 검붉은 눈물.

 

 

 

 

"설아..그만해라..!모두 내가 한거야!!하루한테 그러지 마라!!!!"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가 다급히 하루의 앞을 막아서면.


이내 그 눈물의 화살은 잠시동안 그를 향하고..

 

 

 

 


"딸이 필요했다면서요....


딸이 필요했다면서요 할아버지....


가족이라면서요........단지 그뿐이라면서요!!!!!!!!!!!!!!!!!!!!!!!!!!!"

 

 


".............................미안...미안하구나..


..미안하다...미안하구나...."

 

 

 


할아버지가 맥없이 고개를 떨구면..


사람들의 목소리는 주체할수 없을만큼 커져만 가고..


그 틈에서도 미소 짓고 있는 마녀의 얼굴은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잡으려는 하루의 손..


초콜렛을 바닥으로 떨구어버린 하루의 손..

 

 


머리카락에..눈물에..초콜릿에..


지금 내 심정 만큼이나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바닥..

 

 

 

 

'탁.'

 

 


이내.


그 더러운 손을 내 손목이 거칠게 쳐내고..


난 금방이라도 눈물에 녹아 내릴것만 같은 두 눈을 똑바로 뜨며


놈의 무표정한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내 이름은 한설..한수한..흰설..한설.."

 

 


"이제....그만...하자...."

 

 

 

"윤영인 몸뚱이가 불타 없어졌지만..난 심장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

 

 


"윤영이 그렇게 만든놈 찾으면..갈갈히 찢어죽여버릴거라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너라면..얘기가 틀려지지.."

 

 


"..."

 

 

"내 얼굴 보면서 윤영이 떠올려 행복해 하는게 니놈 방식이니까.


죽을때까지 내 얼굴 너한테 안보여주는것도 내 방식"

 

 


...

 

.....

 

 

 

"마지막으로 또 한번 말하지만.."

 

 

...

 


"내이름은 한설.


여지껏 니 입에서 딱 두번 나온 이름 한설."

 

 

 

 

....젠장........

 


........................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힘없이 바라보고..


입구쪽으로 몸을 돌렸다.

 

 


등뒤에선 하루의 어떠한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할아버지의 손이 다급히 내 손목을 잡았지만..

 

 

이내..


숨가쁘게 죽어버린 내 눈동자를 발견한 할아버진..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놓아버렸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어 그 지옥을 빠져나왔다..

 

 

 

마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 생지옥을 빠져나왔다..

 

 

 

 

 

....

 

 

 

..........

 

 

 

 

내 얼굴 보면서 윤영이 떠올려 행복해 하는게 니놈 방식이니까.


죽을때까지 내 얼굴 너한테 안보여주는것도 내 방식.


태어날때부터 빌어먹을 운명이 정해준 아웃사이더 방식.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주길.


외톨이의 눈물을 기억해주길.외톨이의 사랑을 노래해주길.


외톨이의 복수를 지켜봐주길...................


 
"사지는 멀쩡해서..젊은 처녀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여..."

 

 

 

3일째.


밥 한 숟가락.물 한모금.과자 한조각.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 혜화역.

 

 

 


"어이구..이봐..일어나봐요.응?이래서 어떡하려구.."

 

 

 

초점을 잃은 눈을 멍하니 들어보이면.


60대 초반쯤 되보이는 할머니가 걱정스러운듯 내 팔을 흔들고.

 

 

 

 

"오늘이..오늘이.."

 

 

"응..?뭐라구..-0-..?"

 

 

"...오늘이..."

 

 

"...크게 좀 말해봐 학생..-0-.."

 


"며칠..."

 


"오늘 날짜 며칠이냐구...?"

 

 


하얗게 말라붙은 입술을 꾸욱 다물며 고개를 끄덕이자


혀를 끌끌 차며 내 발앞에 오천원짜리 한장을 내려놓는 할머니.

 

 


"아니.보아하니 내 손녀랑 비슷한 나이 같은데 이게 뭐하는거야...


오늘이 일월일일!!날짜 가는것두 모르구 세상에!!"

 

....

 

1월1일....

 

 

 

 

좋아.......그만 일어나자.

 

 

한설.


이제부터 제대로 망가져보자...


아무도 믿지 말고.아무도 보지 말고.아무도 사랑하지 말고.


이왕 망가진거.세상 바닥 끝까지 비참하게 벅벅 기어보자.

 


...

 

.....

 

 

"-0-!!세상에!!제대루 일어나지도 못하네!!아이쿠!!"

 

"....놔요..."

 

"....-0-..."

 

"내 손 잡지 마요...."

 


멈칫.

 

 

움켜잡은 내 손을 황급히 떼어놓으며 뒷걸음질 치는 할머니.

 

그리고 바닥위의 오천원을 지져밟는 감각 잃은 내 왼쪽 발.

 

 

 

 


"나한테...손내밀지 마요...."

 

"....."

 

 


할말을 잃은 할머니를 남겨두고 비틀비틀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길.


그러면 마치 약속이라도 했다는듯.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나에게서 슬그머니 몸을 피했고.

 

 

 


"아무도 오지마..이제부터 내 눈물 내가 지켜줄거야..


다시는 추운 바깥세상 나와 고생 안하게...


내 눈물 내가 지켜줄거야......"

 

 

 


나는 내 자신을 위해. 오로지 내 자신을 위해.


주머니에 달랑 한장 있던 만원짜리를 움켜쥐며


차도위로 빠르게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천천히 손짓을 해보였다.

 

 

 

 

 


\ 청담동.

 

 

 

 


"-0- 그 몸으로 여기서 일을 하겠다구..!??!"

 


눈에 가장 먼저 띄였던 가장 화려한 간판.

 

 


지하에 있는 주점안으로 발을 들인 나는 도전적인 시선으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웨이터 새끼들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멀찌감치 떨어진곳에 서서 킥킥 웃음을 흘린다.

 

 

 

"하하..아니..머리는 그래가지구.옷꼴은 그래서..


우리 가게 그렇게 수준 낮은데 아냐 학생...^ㅇ^.."

 

 

"....잘해요..."

 

 

"아니 뭘..?"

 

 

"다 잘해요..시키는거 다해요..개처럼 바닥도 기고..개처럼 짖을수도 있고.."

 

 

"누가 우리 가게에 애완견 필요하대?!!!-0-!!!"

 

"...."

 

 

"거기다가 미성년자 인거 같은데.

꼴도 그래서 남의 가게 말아먹을일 있어..나가요.글쎄.."

 

 

....


......

 


건드리기도 싫다는듯.


재빨리 등을 돌리며 고개를 설레 설레 저어보이는 여자.

 

 

 

"약간..이거아니야..=_=..?"

 


그러면 나랑 가장 가까운 곳에 서있던 웨이터 한마리가


머리를 향해 손가락 하나를 빙빙 돌려보이고.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계단을 향해 몸을 틀었다.

 

 

...

 


지금 이 꼴로는 아무것도 할수없다..


거기다가 난 돈한푼도 없고....

 


후..


하는수 없다..


방법은 그것 뿐이다..

..

 

 

 


\ 버터 플라이.

 

 

 


"나나가 소개를 해줬다구요??"

 

".....네...."

 

"어디서 낯이 익은데..?"

 

"하루 일한적 있어요."

 

"그때 왜 그만뒀지?"

 

 


버터플라이.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흝어보면서 고개를 갸웃해보이는 지배인.

 

 

 


"...그때...남자친구...아니....남동생이 찾아와서...소동을 부려서..."

 


"아하~!!!맞구만~!!그때 업혀나갔던!!"

 


"....."

 

"그때 미성년자라 그러지 않았나?"

 


"아니요.스무살이요."

 


"남자애가 교복 입고 있었는데.."

 


"걘 동생이요.남동생이요"

 

 

 


제발 그자식 얘기 꺼내지 말아요.


제대로 서있지도 못할만큼 구역질 치밀어 오르니까.

 

 

 


"나나가 정말 가보래요?"

 

 

"네.자리 하나 비었다고."

 

 

"근데 꼴이 그래서 어떡해..머리에..옷에..마스크는 좋은데 말이지..

나나가 보냈다니까 믿을순 있겠는데.."

 


"잘할수 있어요.시키는거 다할게요.."

 

 

"..흐음..."

 

 


카운터에 몸을 기대며 나를 아래위로 흝어대는 지배인.


그리곤..

 

 


"연초라 무지 바쁜데 일단 일손이 딸리니까.


오늘 하루동안 하는거 보고.그다음에 결정하자.알았지?"

 

 

대뜸 반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야야!!!!!!하라야!!!일루좀 나와봐봐!!!!!"

 

 

...

 


지배인이 등을 돌려 어두컴컴한 복도로 소리치는 사이.


나는 입술을 꾹 다물며 두 주먹을 불끈쥐고..

 

..그러면..

 

그때 본. 나나언니에게 벌금을 요구했던 그 여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복도에서부터 휘적휘적 걸어나왔다.

 

 

 

"야!!-0-손님 닥칠 시간 다됐는데 꼴이 그게 뭐냐!!"

 


"아..화장만 하면 된다구..-_-..

어!?걔..!!그때 나나가 데려왔던애 아냐?!"

 


"어.그래서.야 얘 미용실을 데려가던 가발을 씌우던.

빨리 정리좀 해서 데리구 들어와"

 


"..-0-..세상에..머리가 왜 이런댜..?

너 어디서 대판 싸우구 왔니?"

 

 


신기한듯 내 머리를 어루어만지며 입에 담배를 무는 여자.

 

 

 


"야야 시간없어!!빨랑!!"

 


"아 알았다구..옷은..옷도 입혀서 와..?"

 


"그럼!!!청바지에 후드티 입은애 들여보낼래!!!!!=0=!!"

 


"왜 또 승질이셔.뒷골 땡기게.."

 

 

"얼른얼른 서둘러 봐봐 좀!!"

 

 

"오케이..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내 한손을 꾹 움켜잡은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말없이 여자의 뒤를 따라 맞은편에 있는 헤어샵에 들어섰다.

 

 

 


\ 헤어샵.

 

 

 

"세상에 머리가 어쩌다가..-0-.."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를 솎아내는 고슴도치 머리의 남자놈.

 

 


"그러게요."

 

 

 

그러면.


멀리 떨어진곳에 앉은 그 여자는 다리를 꼬고 앉아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대체 머리 어떻게 해야되요!?"

 


남자는 여자를 향해 호소의 눈길을 보낸다.

 

..


..

 


젠장..


오늘 보니까 머리 진짜 볼만 해버리네..


그래도 머리결 하나 좋단말은 맨날 달고 살았었는데..

 

 

 

 

"그냥 대충 다듬어서 세팅펌 해요.


걔 피부 까마니까 갈색 머리 어울리지 않을까?"

 

 

"음.눈도 짙어서 밝은 갈색 잘 어울리겠는데요..?"

 

 


"그러니깐 내 말이.."

 

 


하라언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만족한 웃음을 짓는 고슴도치.

 


그러더니..

 

 

 

"저기..인상좀 펴봐요..무서워서 머리를 못하겠다..-0-.."

 


"...."

 


"..뭐 화난일 있어요..?"

 


"....네...."

 

 


한없이 차갑기만 한 내 모습에 입술을 삐죽 내민다.

 

 


"머리 감아야 되니까 저쪽으로 가세요."

 


끝으로 구석에 자리한 샴푸실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 한시간 후.

 

 

 

 


"야!!졸 쌈빡하다!!=0=!!갈색 머리가 훨씬 낫구만!?!!


역시!!!내 탁월한 선택인거지!!!!!!!!!!!"

 

 


움푹 파인 분홍 탑과 핫팬츠가 든 쇼핑백을 달랑달랑 흔드는 여자

 

 

그런 그녀의 뒤를 따르며.


난 다시 한번 입술위로 립스틱을 덧발랐고.

 

 

 

"지배인 오빠 보면 좋아 죽겠네.

근데 지금 몇시야..?"

 


"...."

 

 

"헤!!-0-!!벌써 아홉시 반!!뒤졌다!!지배인 아주 팔팔 뛰구 난리가 났겠다!!빨리가자!!"

 

 

 

우리들은 불이 바뀐 횡단보도 위를 달리면서

 

서로 의미가 다른 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마도..

 


여자는 바뀐 내 모습에 놀랄 지배인을 기대하며 떠올린 미소일테고.

 

아마도..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밑도끝도 없이 망가질 내 모습을 체념한 미소일테고..


"야!!!좋다!!딱 좋아!!!"

 

 


\ 버터 플라이.

 

 


의기양양한 표정의 여자를 따라 들어가면


짝짝 박수를 치며 안그래도 유인원 같은 얼굴을 사정없이 실룩이는 남자.

 

 

 

"나 센스 죽이지?"

 


"그래.니 센스 죽인다 그냥!!-0-야 빨리 들어가!!지금 너 찾구 난리났어!!"

 


"누구?"

 


"아 누구긴 홍사장이지"

 

"에이 씨바.그 개진상."

 


"얼른 들어가 이 기집애야!!!!!!!-0-!!!!!"

 


"알았어.가!!"

 

 

지배인의 고함에


여자는 두발을 쿵쿵 구르며 어두컴컴한 복도 쪽으로 멀어져가고


남자는 내 눈을 한번 들여다 보고는 만족한듯 씨익 미소를 짓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개 토 나온다.

 

 


"너 가명 뭐냐?"

 

 

"미라요.."

 


"음.하라랑 비슷하고 좋네.그래 너도 얼른 옷갈아입고 8번룸 들어가"

 


"....그냥 들어가면 돼요....?"

 


"그래. 어린 새끼들인데 돈 꽤나 있는 개망나니 놈들이니까.


잘해라?응?"

 

 

"...네..."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남자.

 


..좋아..


개망나니..


그렇다면. 망가지는덴 더할나위 없는 준비물이 되겠네..

 

 


첫번째 준비물.

 

 


\ 8번룸.

 

 

 

끼이익.


문이 열리고..


미소로 무장한 얼굴과 함께 한발자국 발을 들여 놓으면..

 

 

 

"어이.왜 이렇게 늦게 온거야!!"

 

 

 

정말 돌아 버리겠군......

 


맞은편 쇼파에 널부러지듯 앉은 두놈.


그중 왼쪽에 있던 놈이 날 향해 애교섞인 목소리를 냄과 동시에


나의 시선은 그 옆놈에게 소리없이 멎어 버렸다.

 

 

 

 

 

이.준.영.

 

 


"여 와 앉어!!"

 

 

그리고 저 왼쪽놈 역시.


그때 보았던 그 거대한 덩치놈..

 

 


"왜그래..?첫눈에 벌써 준영이한테 뿅간거야??"

 

 

어이없는 덩치의 말에 난 웃음을 터트렸고..


세상의 개같은 우연을 한탄하며 조용히 이준영 앞에 엉덩이를 붙혀 앉았다.

 

 

 

..가만..


..이놈...


강하루랑 가장 사이가 안좋은 놈이였지..

 

 

 

"우와.근데 딱 보니까 우리 또랜데!!몇살이야!?"

 

"...스무살..."

 

"그럼 누나네잉!!-0-!!"

 

 


그때 그 밀짚모자가 나인지 꿈에도 상상할수 없는 덩치놈은


옆에 앉은 파트너를 무시한채 나에게 추근대기 시작했고..

 


탕..!!

 


동시에 잔 하나를 식탁위에 내려치면서


이준영이란 놈은 일순간에 분위기를 제압해버렸다.

 

 

 

"...어...미안..준영아.."

 


"...........제대로 말해봐.몇살이냐?"

 

 

 

덩치의 말을 무시하며


웃음짓는 내게 거만한 고양이 눈을 내리까는 이준영.

 

 

 

"내 나이 알아서 뭐하게"

 


"킥.스무살이란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그건 피차 일반 아닌가?^-^"

 


".....너 나 아냐.....?"

 


"글쎄...^-^...."

 


대답과 함께 술을 따라주는 나를 보곤 씨익 웃음짓는 이준영.

 

 

"분위기 왜이래~!!우리 분위기 띄우죠~!!"

 

 

한순간 냉랭한 공기가 8번룸에 맴돌자


덩치 옆에 있던 귀엽상한 얼굴의 여자는 손뼉을 마주치며 애교있게 웃어보였고.

 

 

"그래!!자자!!오늘은 일월일일!!아주 제대루 달려보자!!-0-!!"

 

 


그에.


덩치놈은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면서 개판의 첫 시작을 알렸다.

 


...

 

 

 

"우후!!좋아!!내가 노래합니다!!=0=


우리 짱짱한 영계들 온 기념으루 신나는 랩 나갑니다!!"

 

 

 

빠바밤밤.♬


잠시후 노래방 기계에서 커다란 반주음이 흘러나오면.


여잔 마이크를 잡고 테이블 앞으로 걸어나가 배꼽이 다보이도록 허리를 흔들어 보이고.

 

 

"우후우!!!!!!!-0-좋다!!좋아!!!!!!!!!!!!"

 


이에 덩치놈은 양주병을 머리위로 미친듯 흔들며 쇼파위에 냉큼 올라선다.

 

 

 

하..


이 꼴을 강하루가 봐야 하는건데 말야..


이준영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술따르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을.


강하루 그놈이 봐야 하는건데 말야..

 

 

...

 


거의 광기에 가까운 덩치놈과 여자의 쇼를 바라보며


나는 웃음과 함께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고..

 

 

놈은..


그 준영이란 놈은..


테이블위의 잔을 들이키며 자연스레 내 어깨에 한손을 올려놓았다.

 

 

 

 

"이름 뭐냐?"

 


"강미라..."

 


"그거 말고 실명"

 


"글쎄.뭘까...내 이름 말하면...계속 이름좀 불러줄래?"

 


"...봐서..."

 


"아니.진지해.


이 룸 나가는 그 순간까지 한번도 안빼놓고 계속 내 이름 불러줄래.


내 이름.내이름 두글자.계속계속 불러줄래."

 

 

 


양주 4잔을 연거푸 마시며


똑바로 뜬 두눈으로 놈을 응시하면..


장난스런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며 싱긋 미소짓는 이준영.

 

 

 

"우리. 이따 이 룸 같이 나가는거 아니었어?^-^"

 


"니 주머니에 돈만 두둑하다면."

 

 


빈정대는듯한 나의 말에


이준영은 또 한번 미소를 지으며 지갑을 테이블위로 타앙 던져놓고.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아가씨."

 

"한.설."

 

"한.설."

 

"그래.한.설."

 

 

 

강하루 입에서 딱 두번 나왔던 이름 한.설.


니가 증오할 그놈과 사귀었었던 한설.


그래서 지금 너한테 더욱 엉겨붙고 있는 한설.

 

 

 


"오케이 한설.지금 이순간부터 내일 아침까지.


말끝마다 꼬박꼬박 니 이름 붙혀줄게.됐지?"

 

 

"..."

 

 


"대신. 너도 지금 이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라.한설."

 

 


"오케이.니가 질려서 도망갈만큼.^-^"

 

 


지금 이 모습이 강하루 방 TV에 생중계 되고 있다면.


그렇다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텐데 말이야..

 

..

 

그렇게 다섯번째 잔을 입안에 털어놓으며.


이준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댈때.

 

 

 

"오우오우!!영원한 친구!!오우오우!!영원한 쏴라앙!!!!!!!!-0-


놀아보세 달려보세!!오늘 이밤 후끈 불태워보세!!!!!!!!!!!!!!!!"

 


덩치는 바지춤을 내리며 우리쪽을 향해 설렁설렁 엉덩이를 흔들었다.

 


..

 


하하...

 

그땐 그렇게 온갖 폼을 다 잡고 띠껍게 굴더니..

 

저 삼백년 묶은 막걸릴 쳐마신 원숭이 꼴이라니..

 


...

 

 

잠시 어이없는 심정이 되어서


여자와 함께 열여덟번째 웨이브를 타고있는 덩치놈을 바라보면

 

 

..이준영은..


두른 팔에 더욱 힘을 주며 내 잔에 여섯번째 술을 따라넣었고.

 

 

 

"지금 나갈래 한설.?"

 

"....."

 

 


결국 내가 조마조마 겁내온 그 한마디를 내던진다.

...

 

....젠장....


망가지기로 해놓고.


내 자신이 한심스럽고 더러울만큼 밑바닥까지 추락하기로 해놓고.

 

 


한설.벌써부터 이러면 어쩌잔 말이냐.


이래서 대체 무슨 복수를 한다는거냐.

 

 

 


"한설.싫어?싫으면 싫다고 말해.


억지로 그러는거 해본적도 없고 할 마음도 없으니까."

 

 

..억지로 그러는거 해본적도 없다고..?

 

 

그럼 세진이한테 한건 대체 뭐냐 이자식아..


그애 표정에 싫다는 표정이 역력 했었는데..

 

 

"한설.싫으면 지금 나가도 된다고"

 

"..."

 

"..한설.."

 

"좋아"

 

"^-^오케이."

 

"나가자.대신."

 

".."

 


"이거 다 내거다"

 


"원한다면 지갑까지.한설."

 

 

 

쿡.


웃음을 지으며


테이블위의 까만 가죽지갑을 주머니에 구겨넣는 이준영.

 

 


"어?뭐야?둘이만 쏙 나가는거야!?!?"

 

 

그러면.


보기 안쓰러울만큼 흉측스러운 춤을 추던 덩치놈이 우릴 향해 고갤 돌리고.

 

 

"응.놀다와라.계산 하고 나갈테니까"

 


이준영은 내 어깨를 감싸안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때.

 


"아!!이 자식 또 왔네 또!!-0-아 글쎄 없다니까!!!!!!!!!!!!!!"

 

"나나 어딨어!!!!!!!!!!!"

 

"그만두고 없어!!!!!!!!!!!!!!"

 

"신발...나나 어딨어!!!!!!!!!!!!"

 


"걔 일찌감치 때려쳤다니까 이새꺄!!!!!!!-0-!!"

 


"나나야!!!!!!!!나나 대답해라!!!!!!!"

 


........

 


.............설마..........

 

 

 


"아 저새끼 저거 또 룸마다 다 들어가려나보네!!

도저히 안되겠다...야..!!!가서 애들 불러와!!!!"

 

 

....

 

 


이어서 들려오는 지배인의 목소리.


다음으론 쿵쿵 가까워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저거 뭐냐..?"

 

 


굳어버린 나를 눈치채지 못한듯


테이블을 밀고 나가려던 이준영이 덩치놈을 향해 물으면.

 

 


"몰라.3일전부터 어떤 새끼 와서 나나누나 찾는대.


룸마다 다 열어제끼고."

 

 

"나나 관뒀다며"

 

 


"그러니까 미친새끼지.미친새끼.이 룸 들어오면 열라 꼽줄까나??"

 


"됐어.양아치 새끼랑 얽히면 골치 아파."

 


"허허-0-그래.니들 둘이 얼른 나가기나 해!!"

 

 

...

 

.....


문을 활짝 열면서 빙그레 미소짓는 덩치놈.

 

...

 

"야..한설..표정이 왜그래..안나갈거야...?"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꼼짝없이 경직된 내 표정을 눈치챈듯.


이준영은 내 뺨을 조심스레 어루어 만졌고

 

 


"한설.취했어?벌써 취한거야?"

 


...

 

 

그애가 그렇게 두번째 물음을 내던졌을때.

 

 

 

 

"그래.뒤질라고 그렇게 만져라..."

 


우려했던 일이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뭐야..이 새끼...덕풍고 강은찬 아냐.."

 

 

 

등뒤에 끼쳐오르는 소름을 느끼며 가만히 문을 바라보면..


정확히 9일만에 보는 강은찬.

 

 

웃음기 하나 없는 담담한 얼굴로


나와 이준영을 비스듬히 내려보는 강은찬.

 

 


"야.이쪽으로 와."

 

 


까딱..


손짓해보이는 강은찬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나오고..

 

 

 

"야 이 새꺄 너 뭐야.안꺼져!!-0-!?"

 

 


덩치놈은 마이크를 바닥에 팽겨치며 은찬놈의 앞을 막아선다.

 

 

 

 


"역겨운 돼지야.넌좀 꺼져라"

 

"..뭐..!?=0=뭐뭐뭐!?!?=0=!?역겨운 돼지!????????!!?!"

 

"한설아.좋은말 할때 이쪽으로 와라...^-^..."

 

 

...


적반하장.

 


아무것도 모르는건지.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척 하는건지.


룸안에 한발자국을 더 들여놓으며 땀에 젖은 이마를 스윽 훔쳐내는 강은찬.

 

 

 

 

"...누구세요..."

 


"강은찬."

 


"강은찬이 누군데요."

 


"너 찾으러 왔다가 지금 무진장 열받은 놈"

 


"강은찬이 누군데요.나 그런 사람 몰라요.그러니까 상관말고 조용히 좀 꺼져요."

 


"..대체 뭐야..너.."

 


"강은찬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니까.껄떡대지 말고 꺼지라고."

 


"형이랑 싸운거냐...?"

 


....

 


아무것도 모른다...


..강은찬..


그날 있었던 일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여기서 만나니 참 반갑네. 니 형이랑은 중학교때 좀 친했었거든.^-^"

 

 


...

 


형편없이 굳어버린 나를 지나쳐 강은찬앞에 똑바로 마주서는 이준영.

 

 

 

 

"그래서."

 

 


"지금 내가 쟤랑 나가서 좀 재미 보려고 하는데.


상당히 방해가 되거든 니가"

 

 

 

 

...뭐가 그리 우스운건지...


이준영의 그말에


은찬놈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여기 지배인 불러와.."

 

 


쇼파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그 여자에게 나즈막한 한마딜 중얼 거렸다.

 

 

 


"지배인??"

 

"여기 지배인."

 

"뭐.안그래도 지금 조폭 몇명 끌구 오구 있을걸..^-^.."

 

 

 

조폭 몇명..


가시처럼 뇌리에 박힌 그 말에.


번쩍 정신이 들어 강은찬의 얼굴을 바라보면..

 


...

 

때마침 등뒤로 다가온 그 지배인을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리는 놈.

 

 

 

 


"이 새꺄!!-0-진짜 누구 장사 말아먹으려구 환장했어!!


봐봐!!나나 없잖아!!!!!"

 

 

"여기."

 

 


"그러니까 빨리 꺼져!!!!!!!!!=0=지금 불러온 애들로 따끔히 손봐주기 전에!!


당장 꺼지란 말이야아!!!!!!!!=0="

 


"여기!!!!!!!!!!!!!!"

 

 

"....여기 뭐!!그럼 여기 뭐!!"

 

 

"쟤랑 재미 보는데 얼마냐!!?!!!!!!!!!"

 

 

"....뭐....?"

 

 


"아무한테나 몸 굴리는 골빈년 같은데!!!!!!!!!쟤 얼마냐!?!!!!!!!


한 이천원하냐!????????!"

 

 


"...-0-..."

 

 

 

...

 

부스럭..


내가 꼼짝없이 노려보고 있는 사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지배인 가슴팍에 쑤셔넣는 강은찬

 

 


그러면 지배인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 지갑을 반으로 펼치고..

 

 

"..=0=.."

 


이내 벙찐 표정이 되어.


그리고 황홀한 표정이 되어 강은찬을 멍하니 바라본다..

 

 

 

 


"10번룸 들어가시죠."

 

"...."

 

"미라야.10번룸으로!!"

 

 


은찬일 향해 마구 곁눈질을 하면서 입술을 지긋이 깨물어 보이는 지배인.

 

 

 

"지금 나랑 장난쳐...?"

 

 


그러면.


잠자코 있던 이준영이 지배인의 어깨를 쿡 찌르며 중얼거리고


이에 지배인은 조심스레 이준영 눈앞으로 그 지갑을 펼쳐 보였다.

 

 

 

"...."

 


"장사하는 입장에선 어쩔수가 없다.니가 이해해라^ㅇ^"

 

 

"하...나 여기 단골이잖어."

 


"단골이래도 이 돈은 못이기지^ㅇ^"

 

 

"....젠장..."

 

 

 


...뭐야...


대체 뭐야..


나더러 지금 저놈한테 가서 술시중 들라고..?


말도 안돼..

 

 

 

"싫어요"

 

"....."

 

"싫어요!!!!!!!딴여자 보내요!!!!!!나 저새끼랑 안놀아요!!!!!!!"

 

 

 


악에 바친 나의 고함을 읽지 못한듯


지배인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


이에 맞받아 치듯.


다시 내쪽으로 고갤 돌려 씩 웃음짓는 강은찬.

 

 

 


"너 나 모른다며."

 


"그래.나 너 몰라."

 


"나도 너 모르겠는데"

 


"....그래서.."

 

 

"첨본사이에 싫고 좋고가 어딨냐.우리 첨본 사인데.그치?"

 

"...."

 

 


..당했다....

 

 

 

 

"십번룸으로 데려와요."

 


"네네!!"

 

"옷이 저게 뭐냐 근데~!!좀더 쌈박한거 입혀서 와요.기왕 노는거"

 

 

 


..미친놈..


대체 너 나랑 지금 어쩌자는거야..

 

 

"아이구.옷이야 얼마든지 있죠..미라야..얼른..십번..룸..?"

 

 


좋아....

 

 


강은찬.


5시마다 나랑 통화해놓고 시치미 뚝 떼었던 강은찬.


가끔 내가 윤영이 얘기 해도 전혀 못 알아듣는척 했던 강은찬.

 

 


너도 오늘을 마지막으로 깨끗히 떼어내주마.


나는 니가 좋아했던 순수한 윤영이랑 전혀 다르다는거.


두 눈 똑똑히 보여주마.

 

 

 


"이건 혹시나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나 무지 드럽게 놀거든.각오 안됐음 지금이라도 가라.^-^"

 

 

 


이준영을 지나쳐. 덩치를 지나쳐.


막 8번룸을 나가려던 강은찬의 등뒤에 서 비꼬듯 말하면.

 

 

 

"나 이렇게 화난거 태어나 처음이거든.

너야말로 각오 단단히 해라."

 

 

 


꾹꾹 눌러참듯 힘주어 들려오는 그말.


9일전 내가 했어야 하는말..

 

 

 

 

"야.돈 낼만큼 냈으니까 쟤 내 맘대로 해도 되지"

 

"...그거야...그러니까네..-0-..큼큼..!!"

 

 

 


강은찬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지배인은 8번룸을 나가는 내 얼굴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그건 내가 할말."

 

 

 

 

 


상처받은 자존심에 부르르 떨고있는 이준영을 한번 돌아보고.


난 강은찬의 뒤를 따라 터벅터벅 룸을 나섰다.

 

 

9일전 나처럼 가슴 벅차게 슬픈눈을 한 놈을 따르며.


다시 한번 강하루의 얼굴을 삼켜버렸다.


'콰당!!!!'

 

 

 

10번 룸이 닫겼다.


강은찬과 나를 덩그라니 남겨놓고..


10번 룸 방문이 무참히 닫겨 버렸다.

 

 

 


\ 버터플라이 Room Number.10

 

 


"몇살이냐??"

 

 

쇼파 구석에 청자켓을 휙 던져놓으며 정 중앙에 털썩 몸을 앉히는 강은찬

 

 

 

"스무살."

 


"어~~스무살?"

 


"그래.스무살이다."

 


"그럼 난 스물 두살이니까 오빠라고 불러라."

 

 


하...


오빠....?? 스물두살...??

 

 

 

한번 해보자 이거지..그래 알았다 이자식아.


어디 한번 해보자.

 

 

 

 

"오빠 좋을대루.원한다면 존댓말까지 써줄까요?"

 


"...."

 

 

 

 

어처구니 없다는듯.


강은찬은 화를 간신히 눌러참는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난 문앞에서 미리 연습했던 미소를 떠올리며 놈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술 안 마셔요??"

 


"......"

 


"술 안마실거에요?나 혼자 마실까요?^ㅇ^"

 

"....."

 

 

 


입술을 깨물며 눈썹을 구기는 강은찬.

 

...


그러더니 이내 곧 그 장난끼 가득한 표정에 거만한것까지 더해선

비스듬히 나를 내려본다.

 

 

 

 

"여기서 일한진 얼마나 됐냐??^-^"

 


...

 

 

갑자기 던져진 쌩뚱맞은 질문에 내가 술병을 끌어다 잔에 기울이면


조금 더 커져서 들려오는 은찬이의 목소리.

 

 

 

 

"너 여기서 술따른지 얼마나 됐어!!! 형도 이거 알아!!!!!?!"

 


"형이라뇨 형이 누군데요.^ㅇ^."

 


"아후...진짜 사람 환장하겠네.."

 

 


머리를 흐트리며 테이블위에 머리를 숙이는 강은찬.


그리고는 한참을 아무말이 없다.

 

 

 


"사람 앉혀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래?혼자 놀꺼면 나 나갑니다.."

 

"....."

 

"스물 두살 먹은 젊은 오빠. 그럼 딴 아가씨 불러줄텐께 재밌게 놀다 가세요."

 

 

타앙.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려는 찰나에.


고개 숙인채 내 손을 꽉 붙들어 잡는 강은찬

 

 

 

..마치 그날처럼..


마지막 노래를 들어야 했던 그날처럼..

 

 

........

 

젠장..기억하지마.


떠올리면 안된다.지워야한다.


그 집에서 있던 모든일들. 남김없이 지워버려야 한다.

 

 

 

 

"나 진짜 모르냐.너."

 

 

"몰라요..몇번을 말해요 모른다니까..^ㅇ^"

 


"진짜로 모르지....우리 오늘 처음 보는 사이지...."

 


"그렇다니까요."

 

"그럼 가능성 있네."

 


".......에.....?"

 


"좋아."

 

 

단호한 그 한마디에.


아뿔사. 찌릿찌릿 해오는 뒷통수를 느끼기 시작하면..


잡은 내 손을 놓으며 테이블 위로 고개를 들어올리는 강은찬..

 

 


"..."

 

 


그리곤..


뭔가 좀 의미심장한 얼굴로 씨익 웃어버린다.

 

 

 

 

"춤좀 춰봐라^-^"

 


"뭐요!!?!?!춤!!!!!!!!?!"

 

 

"어허.왜 또 대뜸 반말?존댓말 하기로 하지 않았나??"

 


"추..춤이라니!?내가 왜!!!"

 


"너 무지 드럽게 논대매요.근데 춤하나 못춰?"

 

 

"다른 여자 불러줄게."

 


"난 다른 여자랑 놀려고 여기 들어온거 아닌데?^-^"

 

 

"........빌어먹을...."

 

 

"어차피 아는사이도 아닌데 뭐 어떠냐?

오늘 첨 보잖아 우리.^-^."

 

 


"...그래...첨보지.."

 

 

"응.그러니까 춤.^-^"

 

 

"그리고 마지막이 될꺼고."

 

 

"야야. 강한걸로 해라~어설프게 하면 내가 왕 꼽 준다."

 

 

 


...하...


허리춤에 손을 얹은채로 놈을 가만 내려보면.


뭐가 그리 우스운지 히죽히죽 웃어대며 술잔을 손 끝으로 팅팅 튕기는 강은찬

 

 

 

 


"예 베이베.춤이다 춤."

 


"뭐.무슨 노래."

 

 

"어?노래 선곡 내가 해야되는거야..?"

 


"아는 노래가 없는데 뭐!!!!!!니가 하지 그럼 내가 해!!!!"

 


"우와. 그럼 뭐든 다 소화해주시는거에요??"

 


"......니가 알아서 해...."

 

 


쇼파 구석에 놓여있던 노래방 책과 리모콘을 놈의 무릎위로 휙 내던지면

 

휘파람을 불면서 책장을 신나게 넘겨대는 강은찬.

 

 

그 사이에. 어쩔수 없이 눈이 멎어버리는 강은찬의 눈이며 코.

 

그리고 입술

 


....

 


그래..저 아이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인데...


하루한테 윤영이 빼앗기고..

 

그래서..다섯시마자 전화를 걸어 그렇게 힘겨운 눈물 소리를 들려주고..


결국은 또 윤영일 대신한 나마저 하루한테 빼앗기고..

 

할아버지한테도 미움 받고..


게다가 지금은 집에서 있었던 일을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어찌 보면 저놈이 가장 큰 피해자 일텐데..

 

..그런데 왜 저앤...

 

 

.....

 

 


저렇게 티없는 눈으로 웃고 있는거지....

 

....왜 저앤.....

 

저렇게 아무 슬픔 없는 눈으로 날 바라 보는거지....

 

 

 


"너 아무 노래나 한다 그랬다..!!!"

 

 

 


갑자기 터져나온 그 고함에.


깜짝 놀라서 은찬일 바라보면..

 

 

..

 


뾱.뾱.뾱.


마치 오락기 누르듯 아주 신이난 표정으로 리모콘의 버튼을 눌러대는 은찬이.

 

 

 

 

"분명히 아무 노래나 다 소화한다 그랬어..


야!!너 빨리 거기 중앙에 서!!!-0-!!"

 

 


".....휴...."

 

 

"허리에 양손 집고!!!야야!!!거기 딱 중간에 서야지!!!!!"

 


"....-_-..."

 

 

 


노래방 기계 앞에.

 

그러니까 테이블 바로 앞에.


더 정확히 짚어 말하면 두 손으로 테이블위에 턱바치고 있는 강은찬 앞에.

 

 

..터벅터벅..


힘없이 버티고 서서 물끄러미 그 놈아를 바라보면..

 

 


♬♪♬♪딴딴딴딴따♬♪♬♪♬♪♬♪딴딴따따.

 


아주 조심스럽게 시작되는 기계의 반주.

 


...뭐냐..대체..


이 괴상스러운 반주는..

 

 

 


"방글방글 아줌마 투덜투덜 아저씨!!아줌마가 펼치는 꿈속같은 이야기!!!!


꼬마친구 숲속 친구 모두모두 즐거워 ♬"

 

 

...

 

..........

 

 

 

 

"여기에 맞춰서 춤을 추라고요.."

 

 

"너 나 모른대매^ㅇ^"

 


"...."

 


"그리고 다신 안볼거래매....근데 쪽팔릴게 뭐있어...."

 


"..."

 


"이게 첨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건데..."

 

 

 

후아아...


또 이렇게 사람을 골리나 강은찬..

 

 

 


"당신이 모르는게 하나 있어요."

 

 


"어!?시간끌기 작전?!너 안추면 첨부터 다시 감는다!!"

 

 


"......이 노래 끝나면 조용히 나가요...당신이 안나가면 내가 나갈게요..


그리고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

 

 

"율동 시이작!!!!!"

 

 

 

그게 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리고 하루의 복수를 위해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거에요.강은찬씨.

 

 

 

'아무도 모르지만 숲속 요정 알아요

아아아 아아아아아♬-0-

호호 아줌마가 작아지는 비밀을

아아아 아아아아아♬-0-'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주책 발싸개 같은 노래는 문밖으로 지나가는 웨이터들의 웃음보를 터트리며


쩌렁쩌렁 룸을 울리고..

 

 

 

에라 모르겠다.

 

나는 양손에 허리를 짚고서 무릎을 까딱까딱 구부린채 거의 율동에 가까운 동작을 펼쳤다.

 

 

 

'새를 타고 하늘을 나는 호호 아줌마~!!


개미만큼 작아지는 호호 아줌마~!!-0-'

 

 

후..


저 작곡가를 찾아다가 패대기를 쳐버리든지 해야지.

 


거기다 저놈은 열여덟살 쳐먹은놈이 저런 만화 주제가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노래 끝난다면 나간다니까.


노래 끝나기 전에 다 대답해라..."

 

 


고개를 뻣뻣히 든 무표정으로.


그 민구스러운 율동을 하고 있으면..


턱을 괸채 뚫어져라 내 얼굴을 바라보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강은찬.

 

 

 

 


"..."

 

 


"사귀든 애인이랑은 헤어졌냐..?"

 

 


"....."

 

 


"헤어...졌냐...?"

 

 

 

조금 끊기듯 들려오는 그 질문에..


무릎을 또 까딱까딱 구부리면서-_-


고개를 아주 약간. 제대로 분간할수도 없을만큼 아주 약간 끄덕이면..

 


..

 


잠시후 두번째로 던져지는 강은찬의 질문.

 

 

 


"그럼..이제 생각 안나냐.."

 

 

끄덕끄덕..

 

 

"앞으로도........생각 안날것 같냐.."

 


.....................


..........억지로 끄덕끄덕......


눈물과 함께 끄덕끄덕...


빌어먹을 끄덕끄덕............

 

 


반드시 그럴수 있다는 끄덕끄덕이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끄덕끄덕..............

 

 

 

 


"보아하니 왕년에 그 애인하구 좀 찐~했던 모양인데.."

 


"......."

 

 

 


점점 귓속에서 멍해져오는 호호 아줌마송..

 

 

 

 


"니 과거 다 용서해줄테니까..내가 흘렸던 눈물 다 잊어버릴테니까.."

 

 

".........."

 

 

"나한테 올래...."

 

 

"..................."

 

 

 


빰빰빰!!♬

 

요란스러운 마무리와 함께..


호호 아줌마가 노래방 기계 안으로 종종종 사라져 가면..

 

 

 

..이번엔 좀더 작게..

 

그리고 훨씬더 힘겹게 들려오는 은찬이의 목소리..

 

 

 

 

 

 

 


"정중히 말해야 되나 이런거...그때 학생증 이마에 붙이고 나간건 좀 깼지.."

 

 

 


"..........."

 

 

 

 

"난 너 아니면 죽어도 안되겠는데요.


지금이라도 나한테 와줄래요..."

 

 

 

 

 

 

....

 

...........


"난 너 아니면 죽어도 안되겠는데요.

지금이라도 나한테 와줄래요..."

 

 

 

....


.........

 


너도..


윤영이..?


...은찬이 너도...


아직도 날 보며 윤영이..?

 

 

 


"......"

 

 


무너지듯 문가에 머리를 기댄채.


원망스러운 눈으로 은찬일 바라보면..

 

 

 

아주 조금 미소가 번지는 은찬이의 입술.


그러나 미소라고 보기엔 너무 푸르고 메말라 있어..


어쩌면 슬픔에 지독히 젖어버린 건지도 모를 은찬이의 입술.

 

 

 

 

 

"...내가..."

 


"...."

 

 


"모른다고 그랬죠.당신 모른다고.."

 

 


"나도 몰라.그래서 처음 말하잖아."

 

 


"....처음 본 사람한테 왜 그런 말을 해요....?"

 


..

....

 

 

"처음 본 사람한테 왜 잘해줬어요..?


처음 본 사람한테 왜 손을 내밀었어요..?


처음 본 사람인데 왜 집으로 데려갔어요..?"

 

 


"마지막이길 바래서."

 

 

 

"다 꿍꿍이가 있었잖아!!!!!!!!!!

결국엔 이 꼴로 만들었잖아!!!!!!!!!!!!!!"

 

 

 

그 날 이후 또 터지고 만 나의 고함에.


대체 무슨 소릴 하냐는듯 표정을 굳히는 강은찬

 

 


"난 그쪽 몰라요!!그리고 앞으로도 모를거에요!!


그 괴물집도!!전에 사귀었던 빌어먹을 애인도!!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를거에요!!!"

 

 

"한설.....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콰당.!!

 

 

 

하아..하아..


눈에 번진 마스카라를 슥 닦아내며


문 닫힌 십번 룸 앞에 몸을 기대고 서있으면..


7번룸에서 요란스레 튀어나와 나를 빤히 바라보는 하라언니.

 

 

 

 

"너 우니..?"

 

 

"아니요 언니"

 

 

"왜.애새끼가 진상 부려???!"

 


"..아니요.."

 

 

"참.나나 지금 이리로 온댄다.."

 


"...네...?"

 

 

"니가 나나 소개로 왔댔잖아.


지배인 오빠가 의심가서 나나한테 전화한 모양인데..


그랬더니 대뜸 욕을 한바가지 퍼붓더니 이쪽으로 온대잖아.."

 

 

"..................미치겠네.."

 

 


"너 나나 소개로 온거 아니지?나나 몰래 온거지?"

 

 

 


도리도리.


하라언니의 서글서글한 눈매를 외면하며 어두 컴컴한 복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우.우리 대체 왜 부른거야.꿀잠 자구 있었구마안!!"

 

 


아까...

 

지배인이 은찬이때문에 불렀다는 그 조폭놈들인듯.


덩치가 거의 내 두배만한 츄리닝 차림의 두 남자가..


복도위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뭘봐!!!이 기집애야!!"

 

 

그리고


그중 민대머리놈이 내 쪽으로 담배 한개피를 퉁 튕겨냈을때.

 


...

 


삐그덕..


십번룸문이 열리고...

 


...

 

 


어느덧 자켓을 걸쳐입은..


그리고 하루를 아주 잠깐 스치케 하는 무표정의 은찬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 꼬맹이가 진상 부렸니..?-0-?


아이구 볼 뽀얀거봐 세상에.얘얘.너 몇살이니?-0-?"

 


...

 


상황을 알리없는 하라언니가 은찬이의 얼굴에 몸을 바짝 들이대면..

..

 

 

내 쪽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바닥위의 그 두 사내에게 건방진 시선을 돌리는 강은찬.

 

 

..설마..

 

 

 


"나 모른댔지 너."

 

 

"...."

 

 

"나 처음 본다고 그랬지."

 

 

"그래.."

 

 

"그럼 내 이름도 모르겠네."

 

 

"어.."

 

 

"넌 나 어떻게 되도 아무 상관없겠네."

 

 


"..."

 

 


"처음보니까.그리고 오늘이 마지막이니까.그래서 그런 쪽팔린 춤도 췄으니까..


나 무슨 꼴 당해도 너랑은 아무 상관 없는거네."

 

 


....

 


.......

 

 


"..................그래..."

 

 

 


한참의 침묵후 무겁게 열린 입.

 

그러면..

 

하라언니는 대체 뭐냐는듯 내 어깨위에 조심스레 손을 올리고..

 


...

 


우당탕..

 

 

각 룸에서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와 즐거움에 묻힌 비명소리가 더욱 커져갈때.


놈은 왼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어두컴컴한 복도의 두 사내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버렸다.

 

 


...

 

 

미친새끼..


대체 뭘 하려고..

 

 

 


"어머.지배인 오빠도 없는데 쟤 뭐하는거야!!


쌈 붙는거 아냐!?"

 

 


하라언니 말처럼...

 

강은찬. 설마 저 무식스러운 놈들한테 싸움 걸려는건 아니겠지..

 

 

 


"...얘 뭐여...-0-...?"

 

 

...

 

 

두번째 담배를 꼬나문 민대머리가.


눈앞에 있는 은찬이를 향해 스윽 고개를 들면..


아예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턱을 바치는 강은찬.

 

 


...

 

환장해버리겠군..

 

 

 

 


"어이.니들."

 


"뭐 이새꺄??"

 

"알바 하나 안할래?"

 


"허허 참. 요 조막만한 놈이 지금 우리더러 뭐라냐?"

 

 

 


마주보며 껄껄 웃기 시작하는 츄리닝 두놈들.

 

 

 


"야야.가라.응?"

 


"한대 팰때마다 만원씩인데.괜찮지 않냐?"

 

"한대 맞아서 만원짜리처럼 시퍼래 지기 전에 얼른 가라.애기야."

 


"그럼 한대에 이만원.

내가 여행 갔다 오는 바람에 돈이 얼마 없다."

 

 

"아후..이거 어떡해..진짜 쥐어 박아버려..?"

 


...

 

...두근두근..

 

 

심장 박동이 조금씩 빨라져갈때..


그 두놈들은 잠시동안 마주서더니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렸고..


은찬인..

 

쭈그려 앉은채 그들을 빤히 올려보며 장난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한대에 이만원?"

 

 


"야 임마!!!!!!!!!!!!!!-0-"

 

 


"오케이.치사하게 할부 안할게.현금 박치기."

 

 


"아 이새끼 나 진짜.


야 너 따라와.."

 

 


저 자식이 진짜 미쳤나..

 

...


....

 


한숨을 몰아쉬며 복도 끝으로 뒤뚱뒤뚱 멀어져가는 두 남자.


그러면..


그들을 따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경직된 내 얼굴을 향해 씩 웃으며 브이를 그리는 강은찬.

 

 

 

 

"야 쟤 뭐니!?미쳤나봐!!-0-지배인 오빠 불러야겠다!!"

 


".....놔둬요..."

 


"저 새끼들 얼마나 돌대가린데!!한대가 아니라 반대만 맞아두 쟤 죽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보지..아니면 돈지랄 하고 싶어서 병이 났거나."

 

 

 

 

긴 복도 끝으로 작아져가는 은찬이의 뒷모습을 보며


난 재빨리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나나 언니 온댔죠."

 


"응.."

 


"언제 전화 했어요..?"

 


"지배인 오빠 나가기 전에 했으니까.아마 지금쯤 올때 됐을거야."

 

"나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왜..나나 올까봐..?"

 

 


아니요.


이대로 있다가 은찬이 있는 곳으로 튕겨져 가버릴까봐요.

 

 


"금방와.십분 안으로.손님들 미어터져!!"

 

"네.."

 

 


..타닥..타닥..

 

계단을 오르며 최면을 건다..

 

 

 

모른다..모른다..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괴물집도 할아버지도 하루도..

 

그리고 저기서 신나게 맞고 있을 강은찬도..

 

나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야 이 좌식아아!!!!!!!!!!-0-"

 

 

 

 

 

 

\ 버터 플라이 앞.

 

 


..

 

 

한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건물앞을 초조히 서성이는데..


바로 등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그 분노의 목소리.

 

 

"..나나..언.."

 

 


쫘악.!!!!!!

 

....

 


그리고..

 

안그래도 땡땡 얼어있던 왼쪽 뺨을 거세게 내려치는 나나언니의 손바닥.

 

 

 

 


"죽고싶냐!!!!!!!!너 나한테 죽고싶어!!!!!!!!!!!!!-0-"

 

 

"................."

 

 


"이 새끼야!!!!너 나한테 뭐랬어!!!!!이 일 관두라며!!!!!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일자리 있으니까!!거기서 일하라며!!!!!!!!!"

 

 

 

"....망가져야돼...."

 

 

"뭐!!!?!!!!!!!!!!!"

 

 


"윤영이랑 소름끼치게 다른 모습으로 변해야돼....


이젠 아무도 안믿어!!!나외엔 아무도 안믿을거야!!!


나 돈벌거야!!!이 일 해서 돈 많이많이 벌거야....그래서 나 혼자 잘먹고 잘살거야..."

 

 

"하..진짜...얘 이거 어떻게 해야되나.."

 

 


"수단과 방법 안가리고...돈 벌거야...


그래서 십년후에..윤영이랑 정반대로 달라진 얼굴로 강하루 앞에 나타날거야...


알아보지 못하게..내 얼굴에서 윤영이 얼굴 절대로 찾아보지 못하게.."

 

 

"그게 복수냐...?"

 


"..."

 

 


"그게 니가 말하는 복수냐!!!!!!!!!!!!!!!!!"

 

 

....

 

 


길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휘어잡으며.


걸치고 있던 점퍼를 내 탑위로 휙 둘러주는 나나언니

 

 

 

 

 

 

"너한테 너무 실망이다 한설."

 

 

"....."

 

"잘먹고 잘사는거 좋다 그래."

 


"......"

 


"너 근데 진짜 복수가 뭔지 알아..?"

 

 

"...."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히 잊어주는거.


사랑했던 이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주는거..


설령 그 사람이 죽는다 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거..!!!"

 

 

 

"그렇게 하고 있어.은찬이도 처음 본 사람처럼 대했어.


그 사람들 다 지우려고 하고 있어."

 

 


"그런데 지금 너 하는 꼬라지가 그놈 잔뜩 의식하고 있어!!!

 

윤영이랑 완전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는것도 결국 하루 못잊는거 아냐..?!

 

강하루 맘속에 진짜 니 모습으로 자리하고 싶은 속마음 아냐..?!!"

 

 

 

....

 

 

좀더 커져가는 나나언니의 목소리.


처음 듣는 나나언니의 눈물소리.

 

 

 

 


"그럼 어떡해..갈데가 없는데..잘데도 없는데..아무데도 없는데..친구도 없는데..


가족도 없는데!!!!!!!!!!난 아무것도 외톨인데!!!!!!!!!!!!!!!!"

 

 

 


"내가 유일한 니 친구라며!!!!!!!!!!내 생각은 안했어!!!!!!!!!!?


난 그냥 오다가다 만난 미친년이였어!!!!!?!"

 

 

 


"언니..언니....언니................"

 

 

 

"전화받고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임마...


내가 나온델 왜 니가 들어가....왜 그놈 때문에 니가 망가져.."

 

 

 


...흐느끼며 기댄 나나언니의 품...

 


따뜻하다..


따뜻하다....


언니의 품..너무 너무 따뜻하고 눈물 난다..

 

 

 

...

 


천천히 어깨를 어루만져주는 나나언니의 손길에..

 

난 그날 이후 억지로 구겨 넣었던 눈물을 모두 터트려 주었고...

 

 

 

구경꾼들의 웅성거림이 서른개도 넘게 늘어났을때..

 

"..하..정말 더럽게 춥네..."

 

나나언니의 양볼과 내 손위로 붉은 핏줄이 올라왔을때..

 

..

 

언닌 조용히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자..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

 


"가서 생각해보자.앞으로 어떻게 할지..그건 너랑 나랑 차차 생각해보자"

 


"...."

 

 


"응????!"

 

 

"응..."

 


"응!!!!!!"

 


"응!!!!!"

 

 

 


...하하...

 

눈물이 번진 내 얼굴을 닦아주며 싱긋 웃어주는 나나언니.

 

 

 

"어디..날도 추운데 오늘은 특별히 택시를 탈까나..


야 근데 너 머리 무진장 이쁘다..!! 여자인 나두 가슴이 그냥 펄떡펄떡 뛰는데!!"

 


"하하..나좀 웃기지마.."

 

 


"^-^..."

 

 


더더욱 활짝 웃음을 짓는 나나언니에게 기대어..

 

지금 막 눈앞에 슨 택시를 바라보면..

 

언닌 꽁꽁 언 손으로 다급히 택시문을 열어제꼈고..

 

 

 


"잠깐만......"

 


"뭐야...왜..?"

 

 

"아니야.."

 

 


"싱겁긴.춥다.얼른타.."

 

 

"언니........잠깐만........"

 

 


"아 대체 뭐...!!"

 

 

 

 

뒷좌석에 올라탄 나는 문을 닫기에 앞서 더욱 커져만 가는 심장 박동을 느끼고..

 

 

 

"야!!!!!!!!!!!!!너 어디가!!!!!!!!!!!"

 

 


앞좌석의 나나언니가 다급히 그 두마디를 내질렀을때.

 

택시에서 넘어지듯 튕겨나와 버터플라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미친놈....

 

들어간지 30분도 넘었는데 아직도 안나왔어........

 

지배인도 아직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설마..

 


설마 무슨일이 생긴건 아니겠지..

 

 

아냐...

 

그새낀 강하니까...그새낀 튼튼하니까.......................

 

 


많이 안다쳤을거야.....

 

그 능글맞은 얼굴로 분명히 실실 쪼개고 있을거야.....

 

 

 

 

쾅!!!!!!!!!!!!!

 

 

 

 

 

\ 버터 플라이.

 

 

 

 


"야!!너 왜 지금 와!!!!!!ㅠ0ㅠ!!!!!!"

 


발을 동동 구르는 하라언니.

 

 

"그놈들 어딨어요?!"

 

"저 끝방!!ㅠ0ㅠ아휴.무슨 소리가 저렇게 살벌하니!!!내가 못살아 정말!!!!"

 


...

 

......

 

 

뒤이어 내려온 나나언니가 무슨일이냐는듯 하라언닐 재촉하면.

 

하라언닌 겁에 질린 얼굴로 그간의 상황을 대충 늘어놓았고.....

 

 


난 망설일 여분의 틈도 없이 그 어두컴컴한 복도를 향해 뛰고 뛰고..

 

또 뛰기 시작했다..

 

 

 

 


"아후 이 새끼들!!기어코 또 사고를 쳤어!!니들 가만 안둘줄 알어!!!!!!"

 

 

 


등뒤에서 나나언니의 목소리가 가까워오면.


그와 동시에 23번룸 방문을 무섭게 열어제친 나의 손.

 

 


..........

 

.............

 


하.............

 

...............강은찬..................

 

...강은찬..............

 

 

 

 

"강은찬!!!!!!!!!!!!!!!!!!!!!!!!!!!!!!!!!!!!!!!!!"

 

 

 


쇼파위에 앉아 발로 툭툭 누군가를 치고 있는 두 츄리닝.


그리고 바닥에 누운채로 입에서 피를 뱉고 있는 그 누군가..

 

 

 

이거 진짜..바보 아냐..

 

..

 

문틈에 서서..

 

눈물섞인 한숨을 뱉어내며 형편없는 몰골의 놈을 바라보면..

 

특유의 개구쟁이 웃음을 지으며..

 

내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은찬이.

 

 

 

 

 

 

 


"거봐.......내 이름 알면서......................."


어휴 이자식 진짜 또라이구만 또라이야!!!


또라이중에서도 대마왕 또라이야!!!"

 

 

 


\ 나나네 집 비탈길.

 

 

 


나나언니와 내 어깨에 양팔을 올려놓고


거의 업히다시피 하여 계속 피를 뱉어내고 있는 대마왕 또라이.

 

 

 


"강은찬.."

 

 

"켁..그새끼들 진짜..장난 없더라..맞은거중에 젤쎄..어릴때 형하고 싸울땐 쨉도 아냐.."

 

 

"너 그러다 죽으면 어떡할뻔 했어.."

 


"아 근데 뭔놈의 집이 이렇게 머냐...."

 


"너처럼 생각없는 놈 진짜 첨본다...첨봐..."

 


"니가 날 모른대매 이자식아!!"

 

 


콩.

 

 

그 와중에도 피투성이 된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는 은찬일 보며.

 

난 피식.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고..

 

그 사이 어느덧 집 문앞에 도달한 나나언닌..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두 또라이가 만났지 뭐"

 

 

"언니 내가 이정돈 아니잖아.."

 

 

"아무튼 우리집 오는 남잔 은찬이 니가 첨이니까.


평생의 영광으로 안고 살아라..!!"

 

 


"남자가 남자집 오는데 개뿔은 무슨 영광.."

 

 

 

"아니 저놈이!!!!!!!-0-저렇게 맞구두 주댕이는 나불나불 살아있네!!!!!!"

 

 


찰칵.

 

녹이 슨 회색문을 열면서 나나언니가 은찬일 향해 버럭 고함을 지르면..

 

낯익고 정겨운 그 (지저분스한)집이 모습을 드러내고..

 

...

 


우리 세사람은 썩 좋지 않은 몸상태를 하고서 그 바퀴벌레 서식지로 몸을 들여놓았다.

 

..

 

 

콰앙..!!

 

 

 

\ 나나네 집.

 

 

 


"이거 집 아니지..?신발장이지..?"

 


...-_-...

 

 


정말이지..


그렇게 쥐어터지고선도 주둥이가 나불나불 살아서는...


옷더미를 지저밟으며 의심쩍은 한마디를 내뱉는 강은찬.

 

 

 

 

"넌 새꺄!!침대 있는 신발장 봤냐!!!-0-"

 

 

"이런데서 어떻게 자..??잠이 오긴 하냐?"

 


"입 다물어!!조져버리기 전에!!"

 

 


"이건 또 뭐야....행주..?"

 

 

"그거 내려놔라 잉!!진짜 한마디만 더했다가 쫓겨나는수가 있다!!"

 

 

 

 

..-_-..

 

 

 

손에 든 꽃무늬 빤쓰를 휙 내던지며 강은찬이 인상을 구기면.


나나언닌 어디서 노란 종이박스를 바닥에 타앙 내려놓았고..

 


..

 

 

난 침대 하나에 화장대. 그리고 농 하나가 전부인 그 방바닥에 앉아 물끄러미

 

은찬이를 바라보았다.

 

 

 

 


"야.누워라."

 

 

"어디?누울데가 어딨는데?화장대 위?"

 

"니네집 갈래..?"

 


"아니."

 


...

 


'니네집 갈래'

 

라는 그 한마디가 가장 두려운듯.

 

과자껍데기와 속옷들이 뒹구는 녹색 시트위에 털퍽 몸을 눕히는 은찬이

 

 

 


"아후..대체 얼마나 패댄거야..애가 눈을 못뜨네.."

 

 

 


침대맡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은 나나언닌..

 

박스안에서 연고와 반창코를 꺼내며 끌끌 혀를 차댔고..

 

그러면 은찬인.

 

바닥에 앉아 멍한 손놀림으로 화장을 지우는 나를 본다.

 

 

 

"야..한설아.."

 

 

"조댕이 다물어 이새꺄.약바르게"

 

 

"왜 남의 입술을 만져!!!!!!!!-0-"

 

 

"그럼 어떡하냐!흉 남아서 죽을때까지 뽀뽀도 못하고 싶어!?!"

 


"누나 저리 가!!야!!한설 니가 해..!!"

 

 

 

....


......

 

 

 


클렌징 솜으로 눈을 벅벅 문지르다 말고 시선을 옮기면.


입술을 손등으로 막고서 삐딱히 날 내려보고 있는 강은찬

 

 

 


"나 너때문에 이렇게 됐잖아.그러니까 니가 해"

 

 


"미친놈..누가 그딴 꼴통같은 짓 하래..한대에 이만원은 무슨..


백만원어치 맞았음 벌써 뒤졌겠네.."

 

 


"백만원 넘게 맞았어 병신아."

 


"....."

 

 


"이백만원어치는 맞았어."

 

 

".............니가 자초한거야."

 

 

"그러니까 니가해."

 


...

 


휴....

 

......

 

나나언니가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 두사람을 번갈아보면..


난 클렌징 솜을 화장대위에 집어던지곤 바닥에서 천천히 엉덩이를 일으켰다.

 

 

 

 


진짜..얼굴 한번 볼만해주시네...


..

 

 


나나언니에게 받아든 소독약을 놈의 입가에 거칠게 문지르면


아파 죽겠다고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은찬이.

 

 

 


"시끄러 새꺄..."

 

 

"야 진짜 아프잖아!!!!!!!!!"

 

 

"그거 감수하고 맞은거지..그러게 누가 그런 또라이짓 하랬어!?!?"

 

 

"사람 환장하게!!니가 아는데 모른다고 빡빡 우겼냐!!안우겼냐!!!!!"

 


"그렇다고 그런 원시적인 방법을 쓰냐!?!


너 나 안갔으면 어쩔뻔 했냐!?"

 

 

"야야 주댕이에 빨간약 들어갔잖아!!!!우웩!!!!우에엑!!"

 

 

 

...후....

 

 

 

"으이구. 새끼 돼지들이 따루 없구만."

 

 


만나기만 하면 시작되는 우리의 유치한 말싸움에


이불을 펴놓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나나언니..

 

...

 

 

나야말로 미치겠다구요 언니..

 

 

 

 

"닦어 빨랑.."

 

 

"닦으려고 솜 뜯잖아..!!"

 


"아..씹..목으로 넘어갔나.."

 

 

 

 

북 뜯은 솜으로..

 

빨갛게 물든 놈의 주둥이를 벅벅 문지르면..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혀를 내미는 강은찬.

 

 

 


"혀 집어너.."

 


"...."

 


"혀 집어넣라니까.."

 

 

그러자 놈은..

 

무슨 일인지 그 능글맞은 눈으로 슬쩍 곁눈질해서 나나언니를 바라보곤..

 

이내 등돌리고 앉아 이불을 척척 펼치는 그녀를 확인하곤..

 


...

 

 

 

내 뒷대가리를 손바닥으로 확 잡아댕겨서는..

 

그 소독약 묻은 추저분한 입술위에 내 입술이 닿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까..


0.01초도 안되는 그 짧은 시간동안..

 

 

...

 

.....

 

 

 

"야 이 미친 새끼야!!!!!!!!!!!!!!!!"

 

 

 

비로소 사태를 파악한 내가 핏대가 터질만큼 꽥 소리를 지르면.


나나언니를 슬쩍 바라보며 낼름 혀를 내미는 강은찬

 

 

 


"뭐야 왜그래!!뭔일났냐!??!"


....

 

 


그리고.

 

내 소리에 놀란 나나언니가 깜짝 놀라 등을 돌렸을때..

 

난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아무일 없는데.."

 

 

"그냐?아무일 없어?"

 

 


"응.."

 

 

"근데 왜 니 입에 씨뻘건 소독약이 묻었댜^ㅇ^??"

 

 

"......................"

 

 

 

젠장할................

 

 

 

 

 


\ 한시간 후.

 

 

 

 

"어이 넌 왕자님이니까 침대에서 자라잉?


나랑 설이 거지는 바닥에서 잘테니까.."

 

 

 

 

나에게 흠씬 두드려 맞은뒤 사태가 악화된 은찬일 보며..

 

바닥위 이불에 벌렁 드러눕는 나나언니.

 

 


"저 빌어먹을 새끼.."

 

 

 


그럼 침대위로 반쯤 몸을 일으키는.

 


밴드 투성이의 놈 얼굴에 난 재빨리 고갤 돌렸고..

 

놈은 침대위로 털퍼덕 몸을 내리며 터진 입술을 찌푸렸다.

 

 

 


"너 침대에서 자라니까."

 

 

 

또 한번 반복되는 나나언니의 말.

 

 


"싫다."

 


"너 바닥에서 자본적 있냐?"

 


"응."

 


"등 배겨서 못자.얼른 올라가.."

 


"싫다고."

 


"아 요놈 또 고집 피우네.나이도 어린 핏덩이가."

 


"나 왕자 아니야."

 


"뭬야?"

 

 


기분 나쁜듯.


또 한번 인상을 구기며 바닥위에 벌렁 엎드려버리는 강은찬

 

 

 

"나 많이 달라졌어..왕자같은거 아냐..


내가 바닥에서 잘거야.."

 


...

 

......

 


그래..너 참 많이 달라졌다 강은찬..


그래서 더 슬프다..


많이 많이 정들었는데..어느새 이젠 정말 내 남동생 같은데..


어쩔수없이 기억으로 흘려야 한다는 사실이..참 많이 슬프다..

 

 

 

 


"오냐 잘됐다 너 이놈.!!!니가 바닥에서 자라 그럼.


야 설아. 우리가 올라가자."

 

 

 

베개를 가지고 냉큼 침대위로 올라타는 언닐 보며..

 

난 쓴웃음과 함께 침대의 녹색시트위에 몸을 뉘였고.

 


이내 나나언니의 두번째 손가락에 의해서..

 

 


찰칵..

 

 


그 좁고 습한 방은 칠흙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버렸다..

 

 

 

 

"...야..한설아..."

 

 


얼마나 시간이 흐른걸까..

 

나나언니의 코고는 소리가 삼초에 한번씩 규칙적으로 울려올때..

 

밑에서 나즈막히 들려오는 강은찬의 목소리.

 

 

 

"왜...."

 

 

"내일 집 같이 가는거다.."

 


"안돼.."

 


"형이랑 싸워도 내가 있잖아.나랑만 놀면 되잖아."

 


"...안돼..."

 


"그럼 내가 강하루 새끼 내쫓을게"

 

"...병신.."

 


"가자!!가자가자!!엉?!"

 


"다 알어버려서..안돼..."

 


"대체 뭘...?"

 


"니가 아는거...나도 다 안다고..."

 

 

"아 진짜!!!저거 말 답답하는데 사람 환장하겠네!!!!"

 

 


순간 확 커진 목소리의 볼륨과 함께..


바닥에서 만신창이 된 몸을 휙 일으키는 강은찬.

 

 

 


"야!!"

 

 

"..왜.."

 

 

"니 친척동생.세진인가 뭔가!!!"

 

 

"....걔 왜....?"

 


"걔 하루 좋아하더라!!!!맨날 집으루 전화하고 집앞으로 찾아오고!!!!!그건 어떡할건데!!"

 


"상관없어..."

 


"..너..진짜..다 잊었냐..?"

 

 


"잘거야...말시키지마..너도 인젠 찾아오지마..안만나줄거야.."

 

 


어둠속에서 어슴푸레 빛을 발하는 놈의 갈색머리에.


나나언니 쪽으로 등을 휙 돌리면..


그때 바로 염장을 확 돋구는 놈의 한마디.

 

 

 

 

"너 아까 뽀뽀해서 나한테 홍 갔지?"

 

 

"....후...."

 

 

"그래서 강하루 생각 하나도 안나지?"

 

 

"그래.그렇게 계속 지껄이렴...."

 


"근데 강하루보다 내가 뽀뽀 더 잘하지 않냐?"

 


"...."

 


"그럼.그새끼랑 나랑 경력 차이가 얼만데."

 


....

 

바보야..경력이고 뭐고 느낌이 달라..

 

 


니껀.

 

귀여운 남동생하고 하는거.

 

 

 

그새끼껀.


....


심장 터지게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는거.

 

 

 

 


"나도 다 알아..그렇게 눈치없는 병신 아냐.."

 

...

 


뒤이어 들려오는 은찬이의 중얼거림..

 

 

 

 

"근데 나보다 더 눈치없는 왕병신..


간만에 좋은꿈 꾸게 대답이라도 응하고 해주지.."

 

 

...


.....

 


더더더 눈치없는 왕병신은 너다 임마..

 

 

 

어떻게 하나도 모르냐..


어떻게 그날 일어났던 그 악몽을 하나도 모르냐..

 

..

 

 

 

내가 지금 얼마나 아픈지..얼마나 참고 있는지..얼마나 괴로운지..

 


....

 

 


얼마나 보고 싶은지..................

 

어떻게 하나도 모르냐.................

 

 

 

 

"드르렁.드르렁!!!!-0-그래!!12번 받았다!!!!말해라!!!


뭐 새꺄..-0-?!목소리가 지랄같애!?너 죽구싶어!!!!!"

 

 

 

휴우...

 

...^-^....

 

잠꼬대 들으니까 상담 일 어떻게 할지 뻔하다 뻔해..

 

 

..


....

 


코골개 소리와 더불어 씩씩하게 들려오는 나나언니 잠꼬대 소리에..


난 억지로 두 눈을 감았고...

 


3일만에 한 푹신한 잠자리였기 때문에..

 


바닥에서 뒤척이는 은찬이의 모습이 조금씩 작아지는것을 느끼며..

 

 

그렇게..빠르게..

 

너무 빠르게...꿀같은 잠 속으로 빠져들수 있었다...

 


..

 


.....

 

 

 

'하루야..하루야..'

 

 


'왜 말이 없어 하루야..'

 

 

'자..얼른..'

 

 


'넌 나 안떠날거지...'

 

 

'왜 떠나..'

 

 

'나 죽을때까지 니 숨소리 옆에서 들을수 있지.그치.'

 

 


'응.....'

 

 

'아무데도 가면 안돼..외톨이로 두면 안돼..'

 

 

'아무데도 안갈거야..널 두고 내가 어딜 가...

 

 

 

싫어..

 

이런 꿈 싫어..빨리 깨어나버려..

 

 


.....거지같애.....

 

한설 너 진짜 거지같애..

 


...

 


대체 몇시나 된걸까..

 


감은 눈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며..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스윽 닦아냈을때..

 

 

 

 


"야 얼른 일어나!!대체 몇시까지 자!!!!!!!"

 

 

....

 

.....

 

 

 

꿈속의 하루 얼굴을 말끔하게 지워내는 나나언니의 목소리.

 

 

 

 


\ 아침.

 

 

 

 


"어...언니..은찬인..."

 


"모르겠다.아까 전화하러 나간다 그러고 소식이 없네."

 


"집에 갔나.."

 


"지 운동화 대신 내 쓰레빠 끌구 나갔는데..-_-..?"

 


"그럼 다시 오겠다..-_-..지금 몇신데?"

 


"열시.아침 뭐 먹을래!?!?아휴 이새낀 하이튼 자고난 이불도 안개고!!!!!!!


야야 육개장 시켜먹자.알았지?"

 


...

 

....

 


고개를 끄덕이는 날 확인하곤.


이불을 날렵하게 개키는 나나언니..

 

 

읏차..


그럼 나도 이불이나 개볼까나..

 

...

 

 


'찰칵찰칵'

 

 

"...은찬인가..?"

 

 


침대위의 이불을 반으로 접는 순간.


천천히 돌아가는 문고리에 나나언니가 허리를 꼿꼿히 피고..

 

..

 

 


그 바보같은 자식은 열린문도 제대로 못여는지.


계속해서 문고리를 부숴저라 돌려댔다.

 

 

 


"아이고 저놈이!!!!!!-0-남의 집 귀한 문 박살내겠네!!!!!!

얌마 너 가만있어!!!!!!!!"

 

 


보다못한 나나언니가 우당탕 현관쪽으로 몸을 움직이고..

 


..

 


후아..다 갰다..!!

 

이불을 말끔히 정리한 내가 이젠 더러운 방바닥을 쓸기 위해 등을 돌렸을때..

 

 

 

 

 

 

 


"..아..저..그러니깐.."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나나언니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아우 저거.세수라도 좀 하고 있지..미리 말할걸 그랬나.."

 


머리를 긁적이며 신발장으로 성큼 들어오는 은찬이가 보이고..

 

 

.........

 

 

...............

 

 

 

 

 

"오랜만이다..."

 

 

그 뒤엔 여전히 잘나빠지고 매끈한 얼굴로 조용히 들어서는 하루가..

 

 

...

 

 

'오랜만'이라는 한마디로 그간 나의 지옥같은 나날을 일축해버리는 하루가 있다..
 
 
"오랜만이다............."

 


....

 

 

오랜만이다...

 

그래..오랜만이구나....그 말이면 충분한거구나..

 

그게 다구나..오랜만이다..

 

 


뭔가 특별한걸 기대한건 아니지만.

 

이제 너에게 아무것도 기대해선 안되지만.

 

 


그 다섯글자는..지금 내게 너무 아프다 강하루..

 

그 다섯글자만은..지금의 내게 해선 안됐다 강하루..

 

 

 

 

점점 가빠져가는 내 숨소리가 들리기나 하는건지.


천천히 방을 한번 둘러보곤..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내리는 하루.

 

 

 

 

"야야.이제 집으로 가자!!!"

 

 

...

 

....

 

 


"형.형이 끌고 나와.알았지?"

 


"..."

 

 

"아 얼른!!"

 


"이 눈치라곤 개밥 톨갱이 만큼도 없는 자식"

 


...

 

 

 

은찬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


그런 그를 질질 끌고서 문밖으로 나가려하는 나나언니..

 

 

 

 


"아 이 주책맞은 여자가 왜이래!!나 한설 데려갈거라니까!!"

 

 

"일단 나와!!!-0-"

 


"아아!!어깨!!!어깨 잡지마!!"

 

 

"어후.답답한거..!!"

 

 

 

 


콰당..!!

 

 

요란스러운 문소리와 함께

 

시끌벅적한 그 두사람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리면..

 

그러면..

 

한발자국 더 다가와 죽은 내 표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강하루..

 

 

 

 


"그동안 어디 있었어."

 

 

 

전혀 변하지 않은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

 

그 어떤 미안함도..그 어떤 공백도 느껴지지 않는..평소와 너무도 똑같은 목소리.

 

 

 

점점..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가자..."

 


"하..."

 

 

"많이 말랐다..가서 밥 먹자.."

 

 


"누구시죠.실례지만 누구시죠."

 

 

"하루"

 

 

"누구요.정말 몰라서 그러는데 그쪽 대체 누군데요."

 

 

"하루.."

 

 

 


더 또렷해진 그 목소리에..똑바로 고개를 쳐들고 놈을 응시하면..


놈의 눈 색깔이 점점 탁해져가는것을 느끼고..

 

 

 

"....자..."

 

 

"...뭐...?"

 

 

"살인자..."

 


".....가서 밥먹자..."

 

 


"윤영이 니가 죽인거야..나도 니가 죽였어.."

 

 

"나 누군지 아네 뭐."

 

 


이 자식..대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건지..


날 향해 싱긋 웃고 있다..

 

 

 


"웃지마..제발.."

 

 

"응.안웃을게."

 

 


"내 앞에 나타나지마..숨쉬지 말고..입도 열지마..


이해해주는거 바라지도 않으니까..용서 구하고 말고 그런 거추장스러운


짓도 필요없으니까..내 마음속에선 그냥 이대로 죽어버려.."

 

 

"나..두번이나 죽어..?"

 

 


"두번이나 죽인거겠지.."

 

 


"....."

 

 


"소리치기 싫어..이제 그럴 힘도 없고..너한텐 소리칠 힘도 아까워..


내가 그때 말했지..니 앞에 나타날일 없을거라고..자꾸 나 거짓말쟁이 만들지마..


그건 니아빠랑 너.두사람으로 족해."

 

 


"거짓말쟁이 아냐."

 

 

 

"...그래...?"

 

 

 

"나.거짓말쟁이 아냐."

 

 

 


다시 한번 반복되어 들려온 그 말에.


어이없는 웃음과 놈을 다시 바라보면..아래로 힘없이 떨구어지는 하루의 얼굴..

 

 


봐도 봐도 눈물이 나서..


머리완 다르게 날 행복하게 만들어버려서..


그래서 미칠것만같은 하루의 얼굴..

 

 

 

 

 


"꺼져.."

 

 

"같이 꺼지자.."

 

 

"아니.너 혼자 꺼져."

 


"...."

 

 


"넌..내가 가장 소중히 하는걸 두개나 가져갔어.


가져간걸로 모자라서 죽여버렸어.영영 죽여버렸어.."

 

 


"한설 니 이름.이제 나 니 이름만 부를게."

 

 


"하나는 내 친구 박윤영!!!!!!!!"

 

 

"한설..나 이제 그 이름만 부를수 있어.."

 

 

"하나는 내 마음..."

 

 

"한설.."

 

 


"쇼하지마!!!!!!!!이제 더이상 안놀아나!!!!!!!어떻게 해도 안돼!!!!!!!!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에!!!!!!!!


니가 한짓은 어떻게 해도 되돌릴수가 없어!!!!!!!알아!!!!!!!!?"

 

 

 

 

기어코 또 터지고 만 내 고함에..

 


문을 두드리는 은찬이의 주먹소리와 그를 뜯어 말리는 나나언니의 외침이 커져갔고..

 

난 소매 끝으로 재빨리 눈물을 닦아냈다.

 

 

 

 

"나도 같이 죽으면 되잖아..."

 

 

 

"웃기지마...그 죽는단 소리도 지겨워...아님 말만 그러지 말고 진짜 해봐...


너 죽어버린대도 이제 눈물 한방울 안흘려줄거니까 니 맘대로 해봐.."

 

 

"이제.나 싫어..?"

 

 

"..하..."

 

 


"나 버릴거야..?내 옆에 이제 너 없어..?영영 안와..?"

 

 


대체 누가 할말..누가 하고 있니..

 

우주가 다 터져도..평생 내 옆에서 숨소리 들려준다는건 너였잖아 강하루..

 

그래놓고 사람 뒷통수에 어마어마한 구멍내버린건 너잖아 강하루..

 

 

 

 

"그래..."

 

 

"그래...?"

 


"그래!!!천번을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너한테는 안가!!!!!!!!"

 

 

"..."

 

 

 

"윤영이 어딨는지나 말해!!!가서 용서좀 구해야겠어!!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슬펐을까..!!복수는 못할망정 똑같이 놀아나는 나 보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

 

 

"박윤영 어딨어!!!!!!!!!!"

 

 

.....


.......

 

 

"박윤영 어딨냔 말이야!!!!!!!!!"

 

 

 


한참을 눌러참아 되풀이된 나의 말에..

 

자켓안에 달린 주머니에서 성냥 하나를 꺼내 바닥으로 툭 떨구는 하루..

 

그리고..그 성냥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건 나 '한설'의 학생증.

 

티에 옷핀으로 고정되 매달려있는 내 학생증..

 

 

 

 


"이거.니가 지니고 있다는거 잊고 있었네.."

 


"..."

 


"병신같이..하마터면 니 가슴에 내 이름 지니고 살아갈 뻔했네.."

 

 

 

투둑..

 

 

티에서 거칠게 그 학생증을 뜯어내는 동안에도..

 

하루는 마치 실어증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멍청히 바닥만 내려다 보았고..

 

난 재빨리 허리를 숙여 바닥의 그 성냥갑을 집어 들었다.

 

 

 

...

 

 

 

까만 성냥갑.


거기에 하얀색으로 'to you' 라는 카페의 이름이 새겨져있고.


장소는 인천. 가는 길이 작은 지도로 그려져 있다..

 

 

 

 

 

"그래도 양심은 있다.언제 한번 가보긴 했었나보지."

 

 

"나 진짜..버려..?"

 

 

"버린건 너야.버림 당한건 나고."

 

 

"나 진짜..죽어..?"

 

 

....

 


......성냥을 주머니에 넣고 놈을 지나치려는데...

 

한번만 더 바라봤다간 영영 이곳에 발이 묶일것 같아.

 

 

윤영이가 '맙소사'하며 뒤로 넘어갈 얘기겠지만..


이 놈앞에서 또 한번 무너질것 같아..


그렇게 놈을 두고 집을 나가려는데..

 

 


심장을 철렁하게 만드는 강하루의 한마디.

 

등뒤에서 나즈막히 들려오는 그 공허한 한마디.

 


....

 

겁먹지마..


이제 끝난거야..


저놈이 차에 윤영일 두고 혼자 내린 그 순간부터..


우린 눈감는 그날까지 절대 피할수 없었던 적인거야..

 

 

 


"죽어.그렇게 해서 니 죄가 씻겨진다면."

 


"...거짓말.."

 

 


삐그덕..


후...


학생증을 왼쪽 주머니에 쑤셔놓고..


악몽같은..그러나 너무 간절했던 그 만남을 뒤로한채 현관문을 열어 제끼면..

 

 

 


"아 깜짝이야!!!!!!!"

 

 


허둥지둥 뒤로 물러나는 은찬이와 나나언니.

 

 

 

 


"아 뭐야!!왠 소릴 그렇게 빽빽 질러대냐!!"

 

"...니 형 죽는댄다...니가 가서 좀 말려봐라"

 

"뭐..??"

 


"....."

 


"야!!!어디가!!!!!!!!"

 

 


...저벅저벅....

 

 

곱게 코팅 되있던 주머니속의 학생증을 억지로 구겨넣으며..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걸음을 계단으로 향하면..

 

등뒤론 나나언니와 은찬이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오고.

 

 

 


"따라오지마!!!"

 

 

"야..어디 가는데..!!"

 

 

"니가 원망했던 여자 만나러.."

 


"......"

 

 

"니가 젤 원망했던 그 여자 만나러..지금은 죽고 없는 그 여자 만나러.."

 

 

"너 설마.....박윤영........말하냐...?

 

 

"...."

 

 

"아니지..?너 그거 무슨 말이냐..어..?"

 

 


"따라오지마 제발!!!!나좀 혼자 있을게!!!한번만 하고 싶은데로 할게 은찬아!!!!"

 

 


멈칫..

 

등뒤에서 곧바로 멈추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향해 도망치듯 달리는 길..

 

 


윤영이가 잠든 곳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야만해서.

 

얼굴을 마주한 순간 형편없이 흔들린 맘을 꾸짖어야 해서..

 

성냥갑게 그려진 지도만으로 쫓기듯 달리는 길..

 

 

 

 

 

하루에게서 멀어지는 길...


하루에게서 작아지는 길...


하루에게서 달아나는 길...

 

 

 


하루에게서 죽어가는 길.....


"인천 학생 하나요."

 

 


\ 지하철 역.

 

 

 

"네.천이백원이요"

 


"..여기요.."

 

 


짤랑.


잔돈과 함께 표 한장을 받아들곤..한산한 지하철 역을 멍하니 걷고 있다.

 

 


대체 어쩌자는건지..


이 빈 성냥갑 하나로 어떻게 윤영일 찾는다는건지..

 

 

 

"..하..이젠 지겨워.."

 


그래.


그러나 이젠 정말 지겹다..


이미 죽어버린 친구를 놓고 고함 지르고 싸우고 원망하는 일..


너무 많이 지쳐버려서..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걸..하는 어리석은 생각마저 든다.

 

 

 


'한설 니 이름.이제 니 이름만 부를게.'

 

 

 

표를 넣고 개찰구를 통과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꾸만 내 머리를 정지시키는 하루의 한마디..

 

....

 

 

아냐..아냐..그 여잔 다름없는 윤영이였어..생판 모르는 다른 여자가 아니라..


가장 소중했던 친구 윤영이였어.

 


이러지마 한설..


말도 안되는 생각 그만해..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서 층계를 내리는 한설.

 

 

 


"여기서 인천이 많이 머나요.."

 


"글쎄요. 갈아타고 하면 한 두어시간 걸릴걸요.."

 

"네..."

 

 


중절모를 쓴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눈을 감으면..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사오니 승객 여러분들 께서는.."

 

 

열린 귀로 멍하니 흘러들어오는 안내원의 방송.

 

 

 


그럴수 있을까..

 

거기 가면 답을 찾을수 있을까..

 

내가 대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그곳에 가면 윤영이의 대답을 들을수 있을까...

 

 

 

 

\ 지하철 1호선.

 

 

 


덜컹덜컹.

 

 


"니가 그랬잖아!!엄마 내가 안때리고요 용섭이가 먼저 그랬어요!!-0-!!"

 

"내가 언제 씨!!!너가 먼저 나보고 머리 크다고 놀렸잖아!!!"

 

"머리 크다고 안했어!!둥그렇다고 했어!!-0-!!"

 

"어허 그만들좀 해..!!"

 


...

 


피식...

 


맞은편 의자에 앉아 아웅다웅 싸우는 꼬맹이들을 바라보다가..

 

의자 뒤로 몸을 기대어 눈을 꾹 감았다.

 

 

...

 

 


죽은지 거의 일년 다되어 찾아간다 윤영아..

 

미안해..미안하다 정말..

 

이 못난 친구 용서해 줄꺼지..

 


그래도 가면 반겨줘야돼..


나 미운짓 했다고 인사도 없이 등돌리기 없기야.....

 

 


어느새 잠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잠이 들었다고 믿은걸까...


어쨌든..덜컹이는 열차에 몸을 움찔하며 눈을 떴을때..

 

 


'이번역은 도원.도원 역입니다.내리실 분들께서는.."

 

 

열차는 어느덧 목적지인 인천보다 두 정거장 앞까지 와있었고..

 

 


..

 

나는 어떠한 기대감이나 설레임 없이..


주머니안의 성냥을 꾸욱 쥐면서 천천히 의자위로 몸을 일으켰다..

 

 

이미 한참이고 늦어버린 그 만남을 위해 지하철 문가로 몸을 가져갔다...

 

 

 

 


"여기요.이 지도 있는데로 가주세요."

 

 

 

 

\ 택시 안.

 

 


꼬깃꼬깃한 성냥갑을 받아들고.

 

고개를 갸웃해보이는 마음 좋아보이는 기사 아저씨.

 

 


그러고보니..신기사 아저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여기가..가만..어디지..옳지옳지.알겠다..아까 어떤 아가씨도 이리로 가달라더니.."

 

 

"바다 근처에요..?"

 


"응.그래서 가는거 아냐??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나보드라구."

 


"네..맞아요..^-^.."

 

 

"그래.아까 학생 또래 되보이는 이쁘장한 여학생두 여기 앞에 가달랬어..투..투.."

 


"투유요 아저씨."

 


"응 맞아 투유!!"

 


^-^

 

싱글 벙글 웃으며..차를 출발시키는 아저씨.

 

그럼 난 추위에 빨갛게 언 볼을 녹이며 가만히 창가에 머리를 기댔고..

 

..

 


♪♬♪♬♪♪♬♪♬♪♪♬♪♬♪

 

 

아저씬 신나는 트롯트를 차안 가득히 채워놓고


신나게 핸들을 꺾어대셨다.

 

 


"근데 거긴 혼자 왜??"

 

 

"친구요..친구 만나러요..^-^"

 

 


"음.친구랑 거기서 약속을 한 모양이지?"

 

 


"네...근데 있을지 없을지 몰라요...어딨는지도 사실 모르고..그 부근이란것만요.."

 

 

"아니 이 추운날 왜 사서 고생을 한댜!!-0-!!"

 

 

"....그래도....어떤곳에 사는진 한번 봐야죠..."

 


"음흠..그렇구만..-0-.."

 

 


"사는데가 추운지..따뜻한지..풍경은 예쁜지..사람들은 많이 오는지.."

 


"아주 좋은 친구네잉!!요새 애들 답지 않게..!!"


....

 


나쁜친구에요..

 

무진장 나쁜친구에요 아저씨...

 

 

 

지금 이 순간도 그남자 얼굴 떠올리는..

 

모진말. 모진행동 하고 나온거 눈물나게 가슴 아파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못된 친구에요...

 

 

 

"외로운 가슴에~!!-0-꽃씨를 뿌려요~아하아하


사랑이 싹!!틀수 있게!!"

 

 

신나는 아저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창밖의 허름하고 텅빈듯한 건물로 눈을 돌리는 사이.

 

택시는 쌩쌩.

 

차 몇대 없는 도로를 신나게 달리며 목적지를 향해 가까워갔고..

 


..

 

 


"여기구만!!!맞어 아까 그 학생 내려다 준대도 여기야!!"


...

 

 

 

조금 긴장되 오는 마음을 느끼며 내가 엉덩이를 들썩이려는 찰나에..

 

아저씬 바닷가가 내려보이는 흰 통나무 까페 앞에 차를 세우며 즐거운 고함을 질렀다.

 

 

 


"여기요..?"

 

 

"응!!예쁘지!?맞아 맞아.저기 써있네.투유..-0-."

 


"....."

 


"안내려-0-??"

 


"아.내려요..내려야죠.."

 


"그래그래.그럼 친구 꼭 만나라구!!-0-못만나두 너무 낙심하지 말구..!!"

 


"네..!!감사합니다!!-0-"

 

"옛썰!!-0-!!"

 


^-^

 


씩씩하게 경례 표시를 해보이는 아저씨께..


천원짜리 다섯장을 건네드리고 택시에서 몸을 내리면..

 

 


'TO YOU'

 

 

....

 

......

 

 

하루와 은찬이가 몇번이고 들렸을 그 작고 아담한 까페는.

 

이곳에 윤영이가 잠들어 있단 그 사실을 분명한 어투로 내게 알려주었다..

 

 

 


\ TO YOU

 

 


"어서오세요^ㅇ^"

 

"^-^.."

 

 

입구에 서서 반갑게 인사하는 아줌마를 지나쳐.

 

바다가 보이는 창가쪽 쇼파에 피곤한 몸을 털썩 앉혔다.

 

 


"따뜻한 코코아요.."

 


"네.따뜻한 코코아요^ㅇ^"

 

 

주문을 받기 위해 바로 옆까지 왔다가.상냥한 미소와 함께 카운터로 총총 멀어지는 아줌마.

 

 


"후...."

 

 

 

..여기구나..

 

윤영이..잘도 이런 추운곳에..잘도 이런 먼곳에 잠들어 있구나..

 

..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밖의 바다를 연신 바라보면..


이내 가슴 한구석이 싸하게 밀려오기 시작하고..


..

 


"툭툭.."

 


귀를 창문에 가져대고 조심스레 손등으로 그것을 두드리고 있을때..

 

 

 

...

 

....

 

분명..

 

그 창문에 비치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카페안의 한 소녀..

 

 

 

"......"

 

 

 

무언가 좀 이상한 예감에..

 

재빨리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그 소녀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을 하고서 더욱 노골적인 시선을 던져왔고..

 

 

 

 

"나 알아요..?"

 

"..."

 

"나.알아요.?"

 

 

 

반복되어 묻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개를 숙여버린다.

 

 

 

"......"

 

 

"죄송해요..."

 

 

"아니요.그럴것 까진 없구요.꼭 아는 사람 보듯 보길래.."

 

 

"아는사람하고 너무 닮아서요.."

 


"그래요.."

 

 

...뭐...?!?


..

 


덜컹.


의자를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날 보며.


소녀는 깜짝놀란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고..

..


저벅저벅..

 


난 망설일틈없이..

 

소녀가 앉아있는 맨 구석자리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죄송해요..저 정말 아는사람하고 닮아서 그런건.."

 

 

"윤영이요."

 

 

"..네..?"

 

 

"박윤영."

 

 

"..언니..아세요..?"

 


"친구요."

 

 

"..네..?"

 

 

"친구라구요."

 


"세상에..."

 

 

 

 


황급히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는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


윤영이와 조금도 닮지 않은.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사고였어요..."

 


..

 


...

 

 

 


\ 한시간후..

 

 

 

 


"들었어.."

 

"언니도 참 불쌍해요..그런놈 때문에.."

 

"...그래..."

 

 

 

그런 놈 때문에...

 

..

 


점점 떨려오는 윤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죄책감에 가만히 고개를 숙이면..


...

 

이내 그아이의 가느다란 목을 통하여 조금씩 밝혀지는 비참한 진실.

 

 

 

 


"원래 남자친구가 참 불쌍해요..같이 사고난 사람이 그 형이였거든요..


저한테 몇번 상담할때마다..그렇게 말렸는데..듣질 않았어요..


그 남자가 미치도록 좋대요..어쩔수가 없대요.."

 

 

 


..나도 알아..

 

그 남자가 정말 그래..

 

그 남자가..정말로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버려..

 

 

 


"그날도 둘이 기념일이였는데..저한텐 남자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고..그 형을 만났어요..


같이 충주를 가다가 사고를 당했는데..큰 트럭하고 충돌했대요.."

 

 

 

 

하아..하아..

 

 

점점 답답해져오는 머리와 가슴..

 

그리고 기억..

 

 

 

"트럭 운전수 말로는..차가 폭발하기 전 둘이 얼마든지 빠져나올수 있었다는거에요..


그런데 그 남자..그 자식.."

 

 

 

 

제발...거기까지만...

 

...제발....

 

 

 


"그자식이..혼자만 창문을 통해 빠져나왔대요..


언닌 에어백과 의자 사이에 몸이 끼어 어찌할바를 모르고 우는데..


제발 나좀 살려달라고 막 우는데..애원하는데..


그 자식..붙잡는 언니를 발로 차고 나와선..차밖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대요..."

 

 

"....."

 

 


"오분이란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


...그래서...운전수가 재빨리 내려 언닐 구하려고 했는데.."

 

 

"차가 터졌대요.."

 

 

 

"네..그때..차가..터져버렸대요..."

 

 

 


..쨍강..

 

 

손에 들고 있던 은수저가 맥없이 식탁위로 떨구어지면..


그와 함께 점점 힘이 풀려가는 윤지의 목소리..

 

 

 


"원래 사귀던 남자친구가 소개를 시켜줬대요.자기 형이라면서..원랜 되게 친했나봐요..


근데 그자식이 먼저 순진한 언닐 꼬셨어요..언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는데..


자기 그렇게 만들놈인데..결국 그럴놈이였는데.."

 

 


"..하...미안해..미안해..윤영아..내가 미쳤나봐..미안해.."

 

 

"언니가 왜요.."

 

 


"미안해..미안해.."

 

 

주체할수 없을만큼 떨려오는 손과 다리에..


테이블위에 머리를 묻고 눈물을 감췄다.....

 

 

...

 


내가 미쳤었나봐..

 

여기 오는 그 순간까지 난 그놈 생각했어...

 

너 그렇게 만든 그놈..아무렇지 않게 떠올리고 그리워했어..

 

 

 

 

"알고보면 그 오빠가 젤 불쌍하죠..언니 죽던날도 아무것도 모르고 파티 준비 하고 있었으니까..


언니가 이용했어요..그 남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그 오빠 많이 이용했어요..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그럼 큰벌받는다고 했는데.."

 

 

 


...........

 


..................

 

 

 


'나 이용당하는거 익숙하니까'

 

...

 

 


만신창이 된 가슴을 한번 더 헤집고 마는 은찬이의 그 한마디..

 

 

 

"참 많이 좋아했는데..그렇게 사랑받는 여잔 어떤기분일까..할정도로..


우리 언니 참 많이 좋아했는데..매일 집에 데려다주고..비가 와도 눈이 와도 기다려주고..


행여 아프면 새벽 2시에 약가지고 달려오고...언니 죽던 날은 사흘내내 꼼짝않고


장례식장 입구에 서있고..그래서 결국 병원에 실려갔었죠..


바보에요..우리 언니 진짜 바보에요.."

 

 

 


"그래..나도 걔도...정말 바보다..머저리야..병신이야.."

 

 


"언니가 왜요..?"

 

 


"..똑같은놈한테 상처주고..


똑같은놈한테 상처 받았거든..."

 

 


"...네....?"

 

 


"먼저 일어날게..아까 준 번호로 종종 연락해..나 바꿔달라면 바꿔줄거야..


가끔 만나 맛있는 밥 먹자.."

 

 


"벌써 가시게요...?"

 

 

"응...오늘은 윤영이 보고 갈 면목이 없다.."

 

 

"...."

 

 


"대신 위로좀 해야될 놈이 생겼네.."

 

 


"네.전 좀 더 있다가 갈게요..먼저 가세요..^-^.."

 


"그래..또보자..^-^.."

 


"네.."

 


비틀..

 

의자에서 휘청이며 일어나는 날 윤지가 걱정스러운듯 바라보면...

 


난 다시 온몸에 중심을 잡고서..

 

또박또박..

 

놈을 향한 내 마음만큼이나 분명하고 증오섞인 걸음으로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

 

 

아니길 바랬던..

 

단지 소문이길 바랬던 그 사고 당일날의 진실에..

 

 

..

 

 

 

 

이젠 영원히 내 마음속에서 그사람을 묻기로 다짐하고..또 맹세하고..


다시 또 애원했다..


"너 돌았냐!!!!!!이게 아주 맞아야 정신을 차리!!!!!!!!-0-"

 

 

 

 

\ 나나네 집앞.

 

 


오후 7시.

 

문앞에 서서 있는 힘을 다해 성질을 부리다가.


어깨를 힘차게 끌어안아버리는 내 모습에..


얼음 왕자님이 된듯 멍하니 굳어버리는 은찬이.

 

 

 

 

"....미안...미안..은찬아..."

 


"무슨일 있어..?"

 


"..아니야..아무일도 없어.."

 


"근데 왜이래.."

 

 


".......미안해.....그 여자랑 똑같은거 되풀이 해서....그래서..."

 

 

"야....너 대체 박윤영이랑.."

 

 

"언닌..나나언닌 어딨어.."

 

 


품안에 꼭 안았던 놈을 놓고서..


신발장에 선채로 집안을 들여다보면..


말끔히 정돈된 집엔 나나언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이내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잠바 하나를 내 몸위에 둘러주는 은찬이.

 

 

 

 


"나나누나 알바가서 아직 안왔어."

 

 

"아..그렇지.."

 

 

"대체 뭐야 너.어디 갔다 오는거냐니까..아까 그 말은 뭔데..박윤영을 니가 어떻게 아.."

 

 

"밥은 먹었어?"

 

 

"안먹었다!!-0-너 그러구 나갔는데 밥이 주둥이루 넘어가냐!!!!내가 개돼지도 아니고!"

 

 


"나가자.나가서 뭐든 좀 먹구 오자.^-^."

 

 


"나나가 너랑 버터플라이 갔다오래."

 


"..왜..?"

 

 


"자기랑 지배인 친한데 그렇게 말도 없이 또 관두면 안된다구.


그 새끼 무지 열받았으니까.가서 정중히 관둔단 말 하고 오래."

 

 

"그래..그럼..오는길에 밥먹자.."

 

 


"뭐야.이거 진짜 무슨 일 있구만.."

 

 

 

신발장 앞에 서서.

 

심각한 얼굴로 내 양볼에 따뜻하고 커다란 두 손을 가져오는 강은찬.

 

 

 

 

"어어?얘봐라.손대도 암말 안하네."

 

 

"....."

 

 

"그렇네.이상하네 진짜.


갑자기 끌어안지를 않나.아까 형왔는데도 꿈쩍도 안하질 않나."

 

 

".."

 

 


"너 인제 나 좋아하지?"

 

 

"미친놈..잘해주려니 또 기어오르네.."

 

 


"자자!!!드디어 강은찬 랜드에 빠진것을 축하합니다!!-0-!!"

 

 

 

피식..

 

 

또다시 놈으로 인하여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


씩씩한 얼굴로 내 손을 잡아 흔드는 은찬이.

 

 

 

 

"그래!!니가 우리집 안가면 내가 여기서 살지 뭐!!-0-"

 

 

"나나언니가 옳다구나 좋다 하겠다"

 

 


"너 못느꼈냐?나나도 나한테 넘어올라고 준비자세 잡았는데."

 

 


"얼씨구.세상 여자가!!아주 세상여자가 다 니꺼냐!!!-0-"

 

 

 


올라가는 내 주먹을 재빨리 잡으며.


환한 미소로 문을 여는 은찬이..

 


..

 

 

아무렇지 않은척.태연한 웃음으로 지옥같은 과거를 겹겹히 둘러쌓버린 은찬이.

 

누구보다 강하지만.

 

누구보다 여린 은찬이..

 

 

 


"야야.뛰자.날씨 겁나 춥다."

 


"오케이...!!"

 

 

 

내 손을 자기의 호주머니에 넣고는..

 

조금 경사진 비탈길을 마구 달리기 시작하는 강은찬.

 

 


타닥타닥타닥.

 


그렇게.

 

좁고 텅빈 골목길은 우리둘의 빠른 발자국 소리로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고..

 

..

 

 

 

 

"야 너 근데 아까 박윤영 얘기 하려던거 뭐였냐..?"

 

 

 

 

마지막 골목을 빠져나가면서 은찬이가 그렇게 물었을때..

 

그리고 내가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아주 조금 걸음을 늦추었을때..

 


..

 


그때 막 전봇대 옆에서 오도커니 발견되버린 낯익은 그림자 하나.

 

 

 

 

"..어..?형..!!"

 


"....."

 

 

"뭐하냐 여기서..?!언제부터 있었어..!!!"

 

 

"...."

 


"얼어 뒤질일 있냐!!!집에 들어오든가 하지!!"

 

 

...


.....

 

 

"야.한설.니가 좀 봐봐.장난 아니야."

 


"나 혼자 갈테니까 거기서 놀아."

 


"나 미치겠네..둘이 대체 뭐야.."

 

 

 


머리를 긁적이며.나와 하루를 번갈아보는 은찬이.

 


..

 

난 몰라..정말 몰라..

 

그런 비열하고 잔인한 인간..이젠 정말 콱 죽어버린대도 나랑 아무 상관없어..

 

 


저벅저벅.

 


전봇대의 두 남자를 뒤로 한채 천천히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은찬인 차갑게 식은 하루를 질질 끌고서 내 뒤를 빠르게 쫓아왔고..

 

우리 세사람의 그 묘하고 말없는 행보는 그 후로 30여분간 계속되어야 했다..

 

 

 


"야 잠깐만..우리 뭐하냐 진짜..!!"

 

 

짜증섞인 은찬이의 고함이 터져나오기 전까지는.

 

 

 

 

 

\ 논현동.

 

 

 

 

버터플라이 근처에 거의 다다를 무렵.

 


이미터쯤 거리를 유지하며 강하루를 질질 끌고 오던 은찬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소리를 치면..

 

..

 

 

난 건조한 얼굴로 그 두사람을 돌아 보았고..

 

 

 


"둘이 뭐하는거야."

 


"....둘이라니..난 너밖에 안보이는데.."

 


"둘이 진짜 헤어질거야?그럼 나 한설한테 막 들이대?"

 


"...."

 


"막 들이대!!!!!!!!!!!!?"

 


"......"

 

 


"아..답답해...환장하겠다...내가 무슨 깍두기도 아니고..."

 


...

 

....

 

 


"나 어디좀 들렸다 갈테니까.둘이 먼저 가고 있어."

 


"..."

 


"나때문에 둘이 얘기 못하는거 같은데.


꼽사리 잠깐 빠질테니까 먼저들 가고 있어라..!!응!?"

 


"너 있든 없든 상관없어."

 

 

 

차가운 그 한마디를 던져놓고.

 

다시 버터플라이를 향해 몸을 돌리면..

 


...그러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담배를 입에 물고 반대편으로 가버리는 은찬이와....

 

말없이 또 내뒤를 저벅저벅 따라오고 있는 하루.

 

 


아니.

 

살인자.

 

 


"젠장...저 미친놈은 평소땐 못갈라놔서 안달이더니..


왜 인제와서 시키지도 않은 짓이야.."

 

 


분명히 하루에게 들렸을법한 그 혼잣말을 내뱉으며.

 

잠바 깃 안에 몸을 움츠리곤 거의 경보 수준으로 걷고 있다..

 


..

 

 

그리고 대체 어디까지 따라올 작정인건지..


버터 플라이 문앞에 다다랐을때까지 등뒤에서 느껴지는 하루의 발자국.

 

 

 

"아하암..대체 언제 온다는거야.."

 

"어..야..한설.."

 

 


...-0-...

 

 

 

\ 버터 플라이 앞.

 

 


하루에게서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서.

 

버터 플라이 입구로 종종 들어서려 하는데..

 

앞을 하나둘 에워싸는 여덟놈의 사내.

 

 


그러니까..

 

그때 학교 앞에서 보았던 이준영의 똘마니들과..

 

방금 내 이름을 부른 그놈은 다름이 아니라 이준영 본인이다.

 

 

 

 

 


"어..왜...왠일이냐?"

 


"어제 너랑 같이 있던놈.너 룸으로 데려간놈.어딨냐.?"

 


"몰라.."

 

 

"왜 몰라."

 

 

"글쎄 몰라.나도 어제 첨 본 놈이고.-0-."

 


"야야..장난하는거 아니니까 빨리 말해.."

 

 

"진짜로 몰라요..!!"

 


"잠깐만!!!!"

 

 

 

 

재빨리 내 손목을 움켜잡는 놈을 뿌리치고.


어두컴컴한 지하 계단으로 몸을 날렸다.

 

 

 

쿵쾅쿵쾅쿵쾅.!!

 

 

 

저런 무서운 새끼.

 

어제 당한걸 또 갚는다고 그새 찾아오다니..

 

얼른 들어가자 마자 은찬이한테 전화해야겠다...

 

 

 

 


"너 대체 어떻게 된겨!!!!!ㅠ0ㅠ!!!!!"

 

 

 


몸을 사리며 버터 플라이 안으로 들어서면.

 

과도로 사과를 깎다 말고 울음섞인 고함을 지르는 지배인 오빠.

 

 

 

"헤헤.오빠.죄송요-0-"

 


"한번도 아니고!!!!두번이나!!!!!아주 가게를 쑥대밭으루 만들었드만!!!!ㅠ0ㅠ"

 

"그래도 은찬이놈이 매상 팍 올려줬잖아요-0-!!"

 

"그렇게 말도 안하고 가버리는게 어딨어!!!관둔다고 말을 하든가!!-0-!!"

 


"죄송합니다.죽을 죄를 졌습니다-0-"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날 보고.

 

씨근덕 씨근덕 거친숨을 몰아쉬는 지배인 오빠.

 

 

 

"참 오빠 전화 한통만요."

 


"어디다가?"

 


"은찬이요..어제 그놈.."

 


"어제 그놈..?니 등뒤에 있잖아.."

 


"네..-0-.?!"

 

 

 

쌩뚱맞은 지배인 오빠의 말에 재빨리 뒤를 돌아보면.

 

 


..하아..

 

가쁜숨을 몰아쉬며 입구 문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강은찬.

 

 

"어?!야!!너!!"

 

 

"형은 어딨냐..?"

 

 

"너 오다가 어제 그놈 못봤어!?"

 


"어제 그놈이라니?또 언놈!!!!!!!"

 

 

"아니.나 룸에 있을때 이준영 말야.친구놈 한 여덟 데리고서..


모자 푹 눌러쓰고 가게 앞에 있었는데!!못봤냐!?!?"

 

 


"....없었는데...."

 


"...그래...?"

 


"어.왜..그놈들이 나 찾든?"

 


"...강하루다..."

 


"...뭐...?"

 


"이준영이..강하루 봤나봐..."

 

 

"왜.우리 형하고 알아?"

 

 


아니야..나랑 상관없어..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한설 또 무슨 사고 쳤구마안!!!!!!!-0-!!!!"

 

 

빼액 고함을 치는 지배인 오빠의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이미 사태를 파악해버린 은찬이.

 

 

 

"형이냐...?형 데려갔어 그새끼들이...?"

 


"몰라....데려갔거나 말거나...."

 


"야 한설!!!!!!!!!!!!!!!!!"

 


"아 왜!!!!!!!!!!!!!!!!!!"

 


"니 남자친구잖아!!!!!!걱정도 안되냐!!!!!!!!!?"

 

 

"남자친구라니!!!!!!그런거 없어!!!!!!!웃기지 말라 그래!!!!!!!!"

 

 

언성이 높아져가는 우리 두사람의 모습에.


지배인 오빠의 얼굴이 점점 울상으로 변해가면...

 

..

 

 

 

"신발..나까지 8대2네 그럼..."

 


입구 계단쪽으로 몸을 돌리며.나즈막한 그 한마디를 중얼 거리는 강은찬.

 

 

 

"...."

 

 

"여덟놈 확실하냐.."

 

 

"몰라..."

 

 

"경찰 절대 부르지마..아빠 알면 큰일난다.."

 


"가지마..위험해.."

 


"우리 형도 위험해."

 

 

...

 


......나도 이렇게 미운 니 형을...


어떻게 넌 그렇게 쉽게 용서 할수 있는거냐...

 


..

 

 

그렇게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놈을 응시하면..


잔뜩 열받은 얼굴로 쿵쾅쿵쾅 계단을 올라가버리는 강은찬.

 

 

 

"뭐야 대체!!-0-어찌된거야!?!?응!?!우리 애들 불러줘!?!?"

 

 

"아 그 새끼들 나좀 따로 보자 그래요!!!!!고등학생을 그렇게 패는게 어딨어!!!!!"

 


"저놈이 돈줄테니 패달라 어쩌니 하며 먼저 건방진말을 지껄였대매!!!!!-0-!!"

 

"아후 저새끼 저거.상처도 덜 아물었는데.."

 


"기다려봐.내가 우리 애들을 기냥.."

 


"아 일 좀 그만 벌려요!!!!!!!!!!-0-!!!!!!!"

 


"-0-..내..내가..내가..


내가 언제 일을 벌렸다 그래!!!!!!!!!!"

 


"후...미치겠구만..미치겠어..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왔다갔다..


안절부절..

 


손톱끝을 마구 물어 뜯으며 카운터 앞을 왔다갔다 하기 시작하면..

 

나보다 더 초조하게 달아오르는 지배인 오빠의 얼굴.

 

 

 


"정신 사나워!!-0-"

 


..

 


8:2..

 

한명이 네놈을 맡아..?

 

..말도 안돼...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십분을 못베기고 나가 떨어질텐데..

...

 

 

 


젠장..강하루 강은찬..

 

강은찬 강하루..

 

강하루 강은찬......

 

강하루...

 


강하루.....

 


강하루........

 

 

 

"그새끼가 어떻게 되든 말든!!!!!!!!!!!"

 

 

"-0-...."

 

 

"강은찬이야!!!!!!!!은찬이 때문이야!!!!!!!!!!"

 

 


"미안해..내가 구박 안할게..-0-.."

 


"오빠 오분있다가 경찰서로 전화해요.알았지!?"

 


"아까 그놈이 하지 말랬잖어..-0-.."

 

 

"아 그럼 오빤 여자가 뽀뽀하지 말래면 진짜 안하냐!!!!!?"

 

 

"그게 여기서 왜나와!!!!=0="

 


"이 씹쏠것들..."

 

 

"뭐어?씹쏠것들..=0=..?!!?!!"

 

 

 

 

쿠당탕..!!

 

휘둥그레진 눈의 지배인 오빠를 남겨두고..

 

또다시 계단을 향해 되감기.

 

그리고 버터 플라이 입구 앞으로 빠르게 되감기.

 

 

 

"여기요...!!"

 


...

 

 


\ 버터 플라이 앞.

 

 

 

붕어빵 장수 아줌마 앞에 서서 대뜸 소리를 치면.

 

붕어빵을 굽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서 나를 바라보고..

 

 

 


"여기 왠 양아치 놈들 막 몰려 있었잖아요..!!"

 


"누구..모자 푹 쓴놈들..?"

 


"네..!!한 삼십분 전에..!!"

 


"응응.알지.한놈은 붕어빵도 사갔는걸.."

 

"어디로 갔어요..?!"

 


"저기 끝으로.."

 


"저어기.끝이요..?!"

 


"응.응."

 

 

고개를 끄덕이는 아줌마의 시선은.

 

버터플라이 옆옆에 있는 포장마차가 즐비한 좁은 골목을 가르켰고..

 


후..

 

 

난 먹음직스러운 붕어빵에게서 재빨리 시선을 거둔채.

 

그 어둡고 퀴퀴한 골목을 향해 힘차게 씩씩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요!!모자쓴 양아치들!!!!!!!!"

 

"응 몰라.몰라.비켜."

 

 

첫번째 포장마차 주인.

 

 

 

 

"여기요!!모자쓴 양아치들하구요!!"

 

"아..저리루 쭉 가든데.."

 


두번째 포장마차 주인.

 

 

 


"모자쓴 양아치 떼랑요!!!"

 

"응..?"

 

"모자쓴 놈들이요!!고등학생들!!"

 

"어디드라..?저 건물 돌아서 우회전해봐.."

 

 

...하아...세번째..포장마차 주인...

 

...

 

 


젠장...

 

참 꼬고 꼬고 잘도 숨어 갔구나..

 

 

 


"..여기..모자..쓴....놈들..여덟명하구...."

 

 

 

다리가..후들후들...

 

 

30분째 계속된 뺑뺑이 숨은놈들 찾기에...

 

포장마차의 다홍색 천막에 몸을 기대며 네번째 주인을 바라보면..

 

앞치마에 손을 닦다 말고 슬쩍 턱을 들어보이는 여주인.

 

 

 

 


"하이고 그놈들?아주 큰일 낼 기세든데.."

 


"어디로..갔어요..?"

 


"저기 빈건물 들어갔어 시상에..문도 안잠궈놨는지.."

 


"저기요..?"

 


"응.경찰 불러야 하는것 아녀?들어간지 한시간이 다되도록 코빼기도 안보이는디.."

 

 

 


일났군....일났어....

 

...가만...지배인 그 자식은 도무지 믿을수가 없으니...

 

 


"아줌마.."

 

"잉"

 


"제가 만약에 들어간지 오분되서 안나오면요..경찰좀 대신 불러주세요.."

 


"큰일난거여-0-!?!?"

 


"아마...냈을거에요..그놈들이.."

 


"어쩐댜...뒤늦게 잘생긴 총각 하나두 뛰어들어가든데.."

 


...

 


후우..


강은찬..니놈도 결국 찾아오긴 찾아 왔구나..

 


..

 

 

하아아아압..

 

 

 

 

 

"하아아아압!!!!!!!!!!!!!!!!!-0-!!"

 


"어이구 저것이 뭔일이다냐=0="

 

 

 


주인아줌마와 손님들이 뒤로 넘어갈만큼 쩌렁쩌렁한 기합.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세개의 건물중.

 

가운데에 있는 젤 허름하고 낡은 건물 하나.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것 같은.칠이 다 벗겨진 4층짜리 건물.


...

 


저벅..저벅..저벅..

 

...앞으로...다섯 발자국이다...

...

 

하나...

 


...둘.....

 

...셋....

 

넷.....

 


...다...섯......

 


..

 

 

'끼기기기기긱...'

 

 

굳게 잠귀어 있길.

 

그래서 단 한놈도 들어갈수 없었길 바란 그 문은.

 

차갑게 얼어붙은 내 손에 의해서 너무도 쉽게 열리고..

 

 

 

"..은찬아..."

 


...

 

 

미세히 떨리는 음성으로..놈의 이름을 부르며..

 

그 어두컴컴하고 공포스러운 계단을 천천히 오르기 시작하는데..

 

 

 


"..으.....으..."

 

 

 

이층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신음소리.

 

..

 


그리고 금방이라도 멎을것 같은 콩 반쪽만해진 심장.

 

 

 


"강은찬....?"


...

 


....다시 귀신처럼 사라진 그 신음..

 

 

"강은찬..!!!"

 

 

 

쿵쾅쿵쾅..!!

 


앞이 보이지도 않는탓에..난간에 온몸을 의지하여 계단을 오르면..

 

이층에 위치한 얼음장 같은 철문이 반쯤 열려 있는것이 느껴지고...

 

 

"..으............."

 

 

 

다시 한번 들려온 그 신음소리에.

 

망설임 없이 그 무거운 문을 열어 제끼면..............

 

 

 

 

"강하!!!!!!!!....강은찬!!!!!!!!!"

 

 

...

 


....

 

 


"..아...젠장...."

 

 

세상에...맙소사...

 

...

 


여지껏 살면서 보아왔던 그 어떤 싸움터보다 처참하고 횡량하고..

 

..끔찍하다..

 

 

..

 

 


무릎이며 가슴.혹은 머리를 움켜쥐고 여기저기서 뒹굴고 있는 그 여덟놈들.

 

이준영을 비롯한 그 여덟놈들..

 

..

 


그때 학교 앞에서 보았던 그 키 작은 놈은 아예 말도 잇지 못한채

 

엉엉 울어대고 있고..

 

..이준영 역시..피에 엉겨 붙은 눈을 간신히 뜨며 가까스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창가의 네온싸인이 환하게 비춰주는 개떡들의 꼬라지가 바로 이 꼬라지다..

 

 

 

 


"미치겠구만..대단하다..대단해..응..?정말 대~단해..!!"

 


그리고..

 

문과 가장 먼곳에 있는 기둥 하나.

 

그 기둥에 나란히 등을 기댄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하루와 은찬이.

 

 

..

 

 


아니.


은찬이.

 

....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은찬이의 얼굴을 환하게 비춰주면.


하루는 어두컴컴한 곳에 앉아서 머리 스타일만 간신히 알아볼수 있는 정도이고..

 

 

..

 


나는 그애에게서 차가운 시선을 거둔채.


은찬일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미쳤구나.미쳤어.아주 신기록이네.신기록이야.."

 

 

"나 왔을땐 벌써 여섯놈 누워있던데..나 한거 하나도 없다.."

 


"이게 뭐냐..어제 그렇게 맞아놓고..이거 진짜 등신 아냐!!


내가 등신이 아니라 니가 등신이지!!!"

 

 

"아..됐어..하지마..."

 

 

 

털썩 주저앉은채로

 

다 터진 놈의 주둥이를 어루만지려 치면..

 

인상을 찡그리며 그런 내 손목을 꾹 잡는 은찬이..

 

 

 

 

"바로 뒤에.나보다 더 등신 앉아있는데."

 


".."

 

 

"그 등신이 이 등신보다 훨씬 더 많이 다쳤거든요."

 


"..."

 


"형한테 가.."

 


"...."

 

 

흘끗.

 

고개를 돌려보면..

 

등을 돌리고 앉은채 바닥에 피를 토해내고 있는 하루...

 

 

..아니...


한 남자...

 

 

 

 

"일어나.경찰들 오기 전에 빨리 나가자."

 


"형한테..가라.."

 

"일어날수 있겠냐..?"

 


"형한테 가라 한설.이런건 내쪽에서 사양이다."

 


"..너.."

 


".."

 

 

"나..있는 그대로 좋아해준거 맞지.."

 

 


"뭐...?"

 


"그래서 머리 묶으란 소리도 안한거고.말투 고치란 소리도 안하거고.


그 아픔 다 잊고서..나 그냥 한설 자체로 좋아해준거 맞지.."

 

 


그 말을 끝으로..

 

산산조각날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며 다시 하루를 바라보면..

 


...

 


힘없이 아래로 떨구어지는 하루의 머리..

 

바닥으로 흥건히 흘러내리는 하루의 피..

 

 

 


"내 이름이 뭐지 강은찬.."

 

"한설."

 


"난 너한테 뭐지 강은찬."

 


"한설."

 


"그거 말고..그거 말고 또.."

 

 

 


........

 


............

 

 

 

동시에 들려오는 하루와 은찬이의 한숨..

 

그리고..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내 떨리는 왼손..

 

 

 

 

 

 

"죽을때까지 가질수 없는 사람."

 

 


..


탁..

 

....


그리고.

 

 


은찬이의 그 슬픈 한마디가 우리 모두의 귓전을 맴돌때...

 

빨갛고 노란 네온싸인에 반사된 은찬이의 얼굴이 눈부시게 빛났을때..

 

 

 

 

 

 


..

 

은찬이 이마에 붙어 함께 빛을 내버리고 만 내 학생증.

 

 

'한설'

 

 

이라는 두글자와 함께 은찬이의 얼굴을 반쯤 가린 내 학생증.

 

 

 

 

 

 

"나도 좀 깨지....."

 

 


"........................."

 

 

"잘 부탁한다..."

 

 

 

 

 

 

 

이어서 들려온 하루의 힘겨운 기침소리와 함께...


그렇게 나의 슬픈 고백은 짧은 인사를 마쳤다...


 
 
....


.......

 

 

아무말이 없는 은찬이.

 

두근두근..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간직한채 몇분째 놈을 바라보고 있지만.


학생증에 눈과 이마가 가려진채..


꼼짝없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은찬이..

 

 


"왜...말이없어...."

 


"......."

 


"뭐야..나 채인거냐..."

 

 


"달빛이 거짓말 한다...그래서 아프다..."

 


"...-_-...뭐...?"

 


"너도 거짓말 한다...그래서 아프다..."

 

 

"............"

 

 

 

멈칫..

 

굳어버린 눈으로 은찬일 바라보면.

 

학생증을 힘없이 손으로 집어서 내 가슴깃에 달기 시작하는 강은찬.

 

 

 

"...뭐하는거야.."

 


"......"

 


"야..강은찬.."

 


"젠장..안하던 쌈질 하니까 죽겠네 아주.."

 

"장난하는거 아냐.."

 

 

 


강하루 때문에 이러는거 아냐..


그냥 한번 건들여보겠다고 이러는거 아냐..

 

노력해보려고 그래..


윤영이가 영영 씻을수 없?그 커다란 죄..

 

 

 

"내가 대신 갚으려고 그래..."

 


"그게..사랑이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은찬이가.

 

담담한 표정으로 창가쪽을 바라보며 내뱉은 말..

 

 

 


"아직은...아니지만..."

 

"아직이 이젠이 되면..."

 

"..."

 

"이젠이 되면.........."

 


...


..........

 

 

한발자국..두발자국..

 

바닥에 널부러진 놈들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천천히 멀어지는 은찬이.

 

 

맥없이 떨구어진 나와 하루를 두고..

..

 

끼이익..

 

결국은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자취를 감춰버리는 은찬이..

 

 


"신발..강아지들.."

 

 


그러면..

 

 

 

가장 가까운곳에 엎어져있던 이준영이 조금씩 몸을 꿈틀거리는것이 느껴지고..

 

..

 

내내 등돌리고 있던 하루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해 천천히 가까워 왔다.

 

 

 

 


"한설..."

 

 

"내이름 부르지마.이제 와서 왜.."

 

 

"...한설...."

 

 


"난 윤영이랑 달라서 정신 차린지 오래야..."

 


"..한...설..."

 

"그만해..."

 


"한..설.."

 

 

"됐어..그만해.."

 

 

 

하루의 입에서 계속 되풀이 되는 내 이름..


또박또박..더욱 또렷이 불리어지고 있는 내 이름..

 

 

 


"한..설..미안..해..."

 

 

 

마주보기에 형편없이 헝크러진 몰골을 하고서..


내 이름을 계속 부르고 있는 하루..


단호한 결심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이 순간도..


자꾸만..자꾸만..내 이름을 부르는 하루.

 

 

 

"나 갈거.."

 

 


그때였다.


하루가 갑작스레 바닥에 날 주저 앉히며 머리를 감싸 안은건...

 

 

"뭐하는거야!!!!!!!"

 

 

그리고.

 

당황한 내가 고개를 쳐들며 외마디 고함을 질렀을때.

 

 

..

 

타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나뒹구는 하얀 벽돌 하나..

 

 

 

뭐야..대체..이게 어떻게 된거야..

 

 

이내 새파랗게 질린 내가 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미소 띤 얼굴로 비틀비틀 서 있는 이준영...

 

 

 

....

 

 


"..야..강하루..."

 


....

 

.......

 

 

나도 모르게 가늘게 떨려오는 음성..

 

그러면 하루는..이번에도 또 나를 막아선 하루는...

 

더이상 입을 열 힘도 없는듯..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숙인채 마른 기침을 토해냈고...

 

 

 

"하루..."

 

 

..나도 모르게..

 

그러니까 무의식중에. 울음섞인 목소리로 그 이름을 한번 더 불러냈을때..

 

 

 

 

"이 새끼들 뭐야!!!!!!!!!!"

 

 

 

콰당..!!


....

 


아까 은찬이가 닫고 간 문이 요란스레 열리며.

 

경찰제복의 남자들이 빠르게 들이 닥치고 말았다..

 

 


...

 

 

 

"아후!!완전히 전멸이구만 전멸이야!!!!!전쟁터가 따로없네..!!!"

 

 

 

 

다시 되찾은 정신으로.


차갑게 식힌 눈으로 바닥위의 하루를 바라보고 있을때..

 

 


성큼성큼.

 

벌렁 기절한척 하는 이준영을 지나쳐 내쪽으로 가까워오는 경찰관들.

 

 

 

"쟨 여자애잖아?"

 

 


"얘 병원좀 데려가요..."

 

 


"아이고!!!여학생이 왠말이야!!-0-


나 진짜 요새 놈들 겁대가리 없는데 미치겠구만!!"

 

 

"저놈들 여덟명 다 모자 쓴거 보이시죠.."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콧수염이 인상적인 그 경찰관을 바라보면은.

 

기가막힌듯 코웃음을 몇번 쳐보이는 남자.

 

 

 

 

"저놈들이 한패고."

 

 

"넌 뭐냐!!-0-부모님이 이러구 다니는거 아시냐!!"

 

 


"얘 혼자 얻어 터진거에요."

 

 


"부모님이 아시냔 말야!!다큰 기집애가 남자들 패싸움에 끼어들어가지고!!"

 

 


"병원 데려가요..."

 

 

 

자꾸만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 '부모'라는 말에.


..

 

바닥위에서 미동도 않는 하루를 한번보고.

 

다음으론 그 떨거지들을 부축해 일으켜세우는 경찰관들을 한번 보고.

 

..

 

저벅저벅..

 

은찬이가 사라진 녹슨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딜가 이 지지배야!!!!!!!-0-"

 

 


등뒤로 당차게 들려오는 콧수염의 목소리.

 

 

 

 

"당장 니 부모 호출이야 임마!!!!!!"

 


"...."

 

 


끼기긱..

 


떨어지지 않는 손이 기어코 문을 밀어 당기면..


콧수염의 목소리는 두톤이나 더 높아져 버렸고..

 

 

 

"니 보호자랑 같이 경찰서로 가!!!!!!!-0-"

 


"........."

 

 


"내 말 안들리나!!당장 일로 안오지!!!!!!"

 

 

"없어요."

 

 

"뭐야!!!!!!!'

 

 

"이럴때 와줄 보호자도.부모도.형제 자매도.


당신이 지금 얘기하는거 나한테 단 한명도 없어요."

 


"저저저!!저놈이 끝까지 건방 떠네!!!=0=!!"

 

 

"알아요..?


아무도...단 한명도요.."

 

 

"...-0-..."

 

 


마주 본 내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는걸 알아챈건지..

 

하루를 등에 업으며 재빨리 입을 다무는 콧수염..

 

 


"젠장...!!!!!"

 

"..-0-.."

 

 


콰앙..!!

 

 

이놈의 문소리도 이젠 정말 지겹다..고 생각하면서.

 

올땐 한없이 두렵고 긴장되기만 했던 계단을 망설임없이 지저 밟는길.

 

 

 

 

 

"아이고 시상에.여자도 있었네 여자도.."

 

 


...

 

....

 

 

 

\ 건물 앞.

 

 

 

입술을 악 물며 그곳을 나왔을때.


내 앞을 에워쌓고 수근대기 시작하는 거리의 행인들.

 

 

 

 

"뭐 구경났어요!!!!!!!!!"

 


"어메야 저년이 우리도 치려나벼.."

 


"빌어먹을!!!!!!!!"

 

"우리 얼른 피함시...=0=.."

 

 

 

내 눈이 또 그렇게 변해버리고 만걸까..


어쩔수 없이 그 지긋지긋한 모습을 찾아 버리고 만걸까..

 

...

 


스무명 남짓한 그 구경꾼들은..

 


주저없이 걷는 나를 중심으로 양갈래로 슬금슬금 등을 돌렸고..

 

..

 


후우..

 

결코 기분 좋지 않은 그 개같은 시선들을 등위에 업고..

..

 

마지막으로 하루가 있는 그 건물의 창을 힘없이 올려본뒤..

 

나나언니가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니.

 

떨어지지 않는 몸을 악착같이 굴려 버렸다.

 

 

 


'한설..한설..한설..'

 

 

하지마..떠올리지마..

 

아무리 그래도..이건 너무하잖아..

 

어제 그렇게 윤지 앞에서 다짐해놓고..완전 남자에 미친년 되버리잖아..

 

 

 

'한설......'

 

 

"나는야!!!!!굳센!!!!!!십팔살의 천하무적!!!!!!!!!!!!-0-"

 

 

....

 

 


지우자.버리자.이기자.

 

 

 

내 이름을 부르던 그 젠장맞을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없애기 위해..


나나언니의 집으로 가는 내내. 입에서 터져나오는 얼토당토 않은 노래들.

 

 

 


"아무리 그래도!!!!!씩씩하다네!!!!!!!!-0-


나를 무찌를소냐!!!!!!한번 해봐라!!!!!!!절대로 절대로 안무너진다!!!!!!!!


칼로 찔러라!!도끼로 찍어라!!!!!내가 내가 꿈쩍하나 웃기지 마라!!!!!-0-!!!!!!!!'

 

 

 


근데 강은찬 이새낀 대체 어디로 토낀거야.


달빛이 어쩌고 저쩌고..


지놈하고 한개도 안어울리는 멋진말만 잔뜩 씨부려대더니..

 

 

 


"쇠로 만든 천하무적!!!돌로 만든 천하무적!!!

 

아무리 밟아도 울지 않는다!!아무리 욕해도 꿈쩍 않는다!!!!"

 

 


어쨌든 그 정겨운 동네 어귀를 걷는 내내.


그 듣기도 민구스러운 노래는 하루와 은찬이의 얼굴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 먹어 버렸고.

 

 

 

"외톨이라 비웃지 마라!!!웃음없다 욕하지 마라!!!


한때는 나도 수줍은 소녀!!-0-한때는 나도 행복한 소녀..!!


한때는 나도.............한때는......................나도............"

 

 

 

\ 나나네 집 앞.

 

 

..

 

 

털퍼덕..

 

고래고래 터진 목을 움켜 잡으며..

 

가슴깃에 달린 학생증을 떼어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

 

 

 

헤헷...


웃기지도 않는 한숨과 함께 문앞에 미끄러져 주저 앉아 버리면....

 

 

 

 

"한때는 나도 풋풋한 처녀!!-0-!!"

 

"......언니..."

 

 

 


삐그덕 열린 문틈 사이로.

 

푸석푸석한 얼굴을 불쑥 들이미는 나나언니.

 

 

 

"요놈아!!!!!얼마나 기다렸는줄 아냐!!!!!!-0-은찬이 놈이 납치해다가 잡아먹는줄 알았네!!!"

 


"잡아먹긴.내가 그놈을 먹겠다..."

 

 

"그놈은 어딨어??"

 


"...몰라...좋아한다니까 열받아서 나가버리대.."

 


"고백을 했어!?-0-?"

 


"...어..."

 


"흠...."

 


...

 

...

 


양 허리에 손을 짚고서.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나언니.

 

 


"어쨌든.좋아.들어가자."

 


"....응....."

 

 

"밥은 먹었느냐"

 

 

"생각이 없답니다."

 

 

"맞고 먹을래느냐.그냥 먹을래느냐."

 


"맞고 안먹을래요."

 

 

"그래.맞고 그냥 먹자."

 

 

 

...

 


....피식...

 

 

이번에도 어쩔수 없이 날 웃게 만드는 나나언니.

 

방 한구석에 날 앉혀놓고는..

 

컵라면 봉지를 이빨로 죽어라 물어 뜯고 있는 나나언니.

 

 

 


"소가죽으로 만들었나.이런 젠장할.."

 


"손으로 해 손으로."

 


"나 일부러 안물어 보고 있다.니 비밀."

 


"..."

 


"니가 말해줄때까지 기다리는거라고 임마.."

 


"..알아.."

 


...

.....

 


잠시동안.


나나언니의 쌍커플 없는 길고 큰눈과 내 눈이 마주치면..


난 한없이 기대는 심정으로 두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고..

 

 

"아이구..인제야 됐네.."

 

 

...


....

 

 

그럼 나나언닌 애써 씩씩한 목소리를 내면서.


컵라면 용기 속에 뜨거운 물을 부어 넣는다.

 

 


"참..."

 


"...?"

 


"왠 여자가 전화해서 너 찾드라."

 

 

"..왠 여자..?"

 

 


"응.꽤 급한가보드라고.없다니까 어디 갔냐면서.언제 오냐면서..


아주 꼬치 꼬치 묻던데."

 


"..누구지..그럴 여자 없는데.."

 

 

"다시 전화 온댔으니까.그만큼 급하면 다시 하겠지 뭐.


자..자..인제 우리 먹읍시다!!-0-!!"

 


...

 


여자..?

 

이 집 번호를 알아내서 나한테 전화걸 여자가 있었나..

 

..

 

젓가락을 뜯으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면.

 

'쿵'하고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는 나나언니.

 

 


"젓가락이 짝짝이로 뜯어졌잖냐!!!!!!-0-!!"

 


"아무렴 어때.입안에 쳐넣기만 하면 되지"

 


"이거 아직 어린 기집애가 입이 이리 험해서 어따 쓴댜!!-0-"

 


"사돈 남말 하시네요!!-0-"

 


"너 크면 나처럼 될까 겁나 그런다 이것아!!!!!!!!"

 


"헤헤.그럼 언니랑 결혼하지 뭐"

 


"환장 하게 만드는구만"

 

 

라면을 입에 넣고 뱉어내는 시늉을 하는 언닐 보며..

 

잠시나마 하루와 은찬이를 잊는 길.

 

 


억지로나마..가엾게나마..악으로나마..

 

그렇게 꾸역꾸역 하루와 은찬이를 잠시 밀어내는 길.

 


...

 

 

"근데..대체 그여자 누구지..전화 할 사람 정말 없는데.."

 


"내일 다시 전화 오겠지 뭐.."

 


"인제 겁부터 난다.어떤걸지."

 


"걱정마라.너한테 겁주는 것들 내가 다 찍 눌러서 없애 줄테니.."

 

 


그리고 그날 밤.


나나언니와 내가 침대에 나란히 나눈 대화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대화 몇마디들.

 

..

 


그 몇마디들은..

 

다음날 정오에 새하얀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니....

 

 

 

 

 

\ 낮 12시 정각.

 

 

 

 

'톡톡톡톡'

 

 


"...아..누구야..젠장.."

 


"..=_=..은찬이 아닌가..?"

 

 

"에이씨..모처럼 쉬는날에..늦잠좀 잘랬더니.."

 


"됐어 언니.계속 자.그놈이면 내가 데리구 같이 나갈게.."

 

 

"오오냐..."

 

 

 

 

뒹굴뒹굴.

 

정말 은찬이면 대체 어찌 감당하려는지.-_-

 

팬티에 나시 차림으로 털퍼덕 뒤집어 엎어지는 나나언니.

 

 

 

'톡톡톡톡톡'

 

 


다시 다급히 들려오는 그 노크소리에.

 

..


난 황급히 위에 잠바떼기를 걸친채 신발장에 조심스레 다가섰고..

 

 


"..누구세요.."

 

 

"문좀 열어봐."

 

 


문너머로 들려오는 그 낯익은 목소리에 순간 나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누구.."

 


"알잖아."

 

"..........."

 


"시간없어.문 열어봐."

 


"..."

 

 

삐그덕....

 

...

 

잠들어 있는 나나언니를 재차 확인한뒤.

 

커다란 심호흡과 함께 문을 열어 제끼면...

 

 

 

"잠깐 좀 나가자.."


...

 

내 예상을 그대로 적중시켜 버리는 그 여자.

 

 


지금 이 순간에도.먼 훗날에도.


앞으로의 내 인생에 결코 달가운 손님만은 될수 없는 그 여자.


 
 
"내일 새벽 세시 십오분 비행기다."

 

 

 

\ 까페

 

 

"네..?"

 


"모든 경비는 내가 부담할거야.일년만 있어."

 

 


..하..

 

어처구니 없는 심정이 되어..

 

못본 사이 더욱 아름다워져버린 마녀를 똑바로 바라보면은.

 

테이블위로 여권을 스윽 꺼내 미는 마녀.

 

 

 

 

"비행기 티켓은 당일날 가서 받으면 돼.뉴질랜드 괜찮겠지?"

 


"내 여권 어디서 났어요..."

 

 

"이주전에 이미 신청해뒀던거야.아.이건 내가 사과할게.미안해."

 

 

"...미치겠군.."

 

 

 


언제 가지고 갔던건지.


아니.언제 훔쳐 냈던건지..

 

 

여권위에 놓인 내 주민등록증에.


난 기막힌 웃음과 함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그러면 마녀는.

 

한층 더 침착한 표정을 한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 은찬이랑 같이 있었지?"

 


"그래서 나 한국 밖으로 꺼지라구요..?"

 


"솔직히 하자면 그것도 그래.하지만 첫번째 이유는 아니야."

 

"......"

 


"사실 너도 그렇지 않니..?여기서 매일 똑같은 일상 반복하는것보다..


그 집에 틀어박혀 아무일도 안하고 얹혀사는것보다..거기 가서 머리좀 식히는게 낫지 않아..?"

 

 

"이해가 안가요.아줌마가 나한테 이러는게."

 

 

"지금 위험해."

 

 

"무슨 소리에요....?"

 

 


무거워진 마녀의 말에.

 

철렁하고 내려앉은 심장과 함께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면..

 

실크 손수건을 꺼내어 입주변을 능숙하게 훔치는 마녀..

 

 

..사실 뭐..

 

마녀라기엔 너무 아름답고 젋은 사람..

 

 

 

"우리들 얘기 말이야.기자들 사이에 하나둘씩 소문이 퍼지고 있어.


아마 조만간 너한테 갈꺼다."

 

 

".....왜요...?"

 

 

"왜라니.몰라서 묻니.?"

 


"..."

 

 


"애 아빠도 그렇고 하루도 그렇고..한마디로 산매장이지..


'불쌍한 소녀의 한 비극' 이란 제목으로.연일 기사 나갈테고..뭐..뒷일은 니가 알아서 생각해봐


그렇게 머리 나쁜 아이는 아니잖아..


아마 그사람들 끝없이 추락해버릴거야."

 

 

 

...

 

테이블위의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천천히 움켜쥐는 내 왼손.

 

 

 

"보니까 얹혀사는 집도 형편이 넉넉친 않은거 같던데.낮에 전화 상담소에서 알바한다며"

 

 


"대단하네요.남의 여권 만들기에 친구 뒷조사까지."

 

 

"뭐..니가 그렇게 나온다면야 할말이 없지만 말야.."

 

 

"아줌마 혼자 진행하는 일인가요"

 


"그래.애 아빠랑은 어차피 다음달이면 남남이고.나 혼자 결정내린거야."

 


"....."

 

 

"나도 처음에 이 집에 워낙 많은 상처를 받아서.


뭔지 알아 니 고통이.."

 

 

.......


............


나 거기 가면..


강하루 잊을수 있나..

 

 


"갈수록 심해져..그집에 한번 얽힌 이상 감당할수 없을만큼 아파질거야..


가는게 좋겠다..잠시만 가있는게 좋겠어.니 마음과 그애들의 마음이 정리 될때까지만.."

 

 

 

몽롱해진 두 눈으로 가만히 마녀를 들여다보면..

 

..이제까지완 전혀 다른..

 

따뜻하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천천히 날 어루어만져주는 마녀.

 

 


"너무 갑작스럽다면.연기해도 돼.한달안에만 결정 내리면 되는거니.."

 


"거기 나 가면요."

 


"..?"

 


"그럼 나랑 같이 사는 언니 도와줄수 있어요..?"

 


"거래야 그거?"

 


"아마도요.."

 

"가는 날짜가 내일 새벽이라면"

 


"내일 새벽이요"

 


"....좋아...."

 


"그리고."

 

 

"...그리고...?"

 

 

 

마녀가 커피잔을 입가에 가져대는 사이.

 

난 마른침을 삼키며 조용히 여권을 내려다 보았고..

 

그러면 그녀는..온화한 얼굴로 나를 찬찬히 흝어내린다..

 

 

"하루좀.."

 


"...."

 

"잘..해주세요.."

 


"글쎄..."

 


"....잘...해주는것 까진 안바라니까...밀어내지 마세요..."

 


"..뭐..좋아..^-^.."

 


"....."

 

 

"그게 다야?"

 

 


..끄덕끄덕..

 

여권과 민증을 주머니에 넣은채..똑바로 마녀를 응시했다.

 

은찬이와 좀 많이 닮아있는..

 

그래서 한없이 날 약하게 만드는..그 아름다운 얼굴을 단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쿨해서 좋구나.사실 좀 버틸거라고 예상했는데 말이야."

 


"내가 없어져야 균형이 맞잖아요."

 

"오..너무 자학하지 마라.."

 


"은찬이한텐 절대 말하지 마요.."

 


"그건 아마 내쪽에서 할말이겠지..^-^..?


자..이따 떠나려면 너도 나도 잠을 좀 자야 할테니까. 이만 일어나자."

 


..

 


계산서를 집어들고 쇼파위에서 가뿐히 몸을 일으키는 마녀.

 

 

그럼 난 물끄러미..


그 카멜레온만큼 알수없는 여자를 바라보았고..

 

 

 

"짐은 아무것도 필요없어.이따 밤 11시까지 그 골목 앞으로 나와.


현명한 결정 내린것 축하한다."

 

 


마녀는..


중후한 미소와 함께 그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또각또각..


경쾌한 굽소리를 내면서 카운터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젠장..

 

이미 물은 엎질러 지고 말았다.............................

 

 

 


"야 그여자 대체 누구냐!?"

 

 

 


\ 나나네 집.

 

 

 

"응...?"

 


"아까 집에 온 여자 말야.어제 전화 한 여자 맞지?!"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화장대 앞에 털퍽 주저앉아 립스틱을 바르면서..

 

맥없이 축 늘어진 날 향해 걸걸한 목소리를 내뱉는 나나언니.

 

 

 

"응.그냥 아는..근데 언니 안가면 안되냐..?"

 


"아후 젠장.나야 그러구 싶지.!!-0-근데 이놈이 두달동안 돈 안갚구 도망댕기다가


오늘 드뎌 갚는대잖냐!!진짜 황금같은 기회라니까는!!"

 

 

"...금방 오지..?"

 

 

"그럼.열시 전에 올거야."

 


".....응..."

 


"갔다와서 그 돈으로..!!갈비 먹으러 가자!!알았지!?-0-"

 


"응."

 

 


화장을 다 끝마친듯.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서 웃옷을 걸쳐입는 나나언니.

 

 

"쉬는날 못놀아줘서 진짜로 미안해요..-0-"

 

 

"대신 열시 전에 꼭 와야돼.."

 


"당근 빠따지 임마!!-0-!!오늘 밤엔 진짜 포식하는거다!!강은찬이도 부르자!!"

 


"..응..그래..그러자.."

 


"아이코야 늦었네!!

애기야 엄마 갔다올게!!-0-집 잘보구 있어요!!"

 

 

"..네..!!^-^!!"

 

 

"그래그래.이뻐 죽겠어 아주."

 

 

톡톡.

 


소매 깃도 제대로 안끼워 입고는.

 

허둥지둥 내 볼을 가볍게 두드린채 재빨리 신발장으로 달려나가는 나나언니.

 

 

 

"점심 저녁 꼭 챙겨먹고!!!-0-!!"

 

"응..!!"

 

"밤에 또 말없이 튀어 나가지 말고!!"

 

"응..!!"

 


"언니 진짜 간다!!"

 


"응!!갔다와!!"

 


"예썰!!-0-!!"

 


"..."

 

 


쿠당..!!

 

요란스럽게 문닫기는 소리와 함께.

 

먼지 하나 안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버린 나나언니.

 

 

 

"으아아아압..!!"

 

 

 

그랬기에.

 

참고있던 울분섞인 기지개를 펴며 침대위에 몸을 벌렁 누여버렸다.

 

 

.......

 

............

 

 

음..

 

 

천장에 벽지 무늬가 저랬나..

 

...다이아 몬드네..다이아 몬드..

 

 


근데 왜..

 


실감이 안나지..?..나..진짜 떠나나..?

 

제주도도 한번 못가본 촌년이..뉴..뭐..뉴..어쩌구..저쩌구..

 

하이튼..한국은 분명 아닐 그곳에..진짜로 혼자 떠나는건가..?..

 

 

 

 

 


"말도 안돼.."

 

...

 

 

정말 말도 안돼.

 

하루를 향한 증오에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건지도 몰라..다시 전화해서..

 

마녀한테 다시 전화해서..!!

 

 


분명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을때..

 

다시 한번 귓전을 스치고 가는 마녀의 차분한 그 한마디..

 

 

 

'갈수록 심해져..그집에 한번 얽힌 이상 감당할수 없을만큼 아파질거야..

가는게 좋겠다..잠시만 가있는게 좋겠어.니 마음과 그애들의 마음이 정리 될때까진..'

 

 

 

그리고 또..한마디..

 

 

 


'애 아빠도 그렇고 하루도 그렇고..한마디로 산매장이지..


'불쌍한 소녀의 한 비극' 이란 제목으로.연일 기사 나갈테고..뭐..뒷일은 니가 알아서 생각해봐


그렇게 머리 나쁜 아이는 아니잖아..


아마 그사람들 끝없이 추락해버릴거야.'

 

...

 

.......그래.......

 

나 하나다.......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은..어릴때부터 '병균'소리 듣고 자라온..

 

한설 나 하나 뿐이다...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

 

....

 

 

고요한 방안을 가득 울리는 전화벨소리.


그리고 베갯잎 위로 떨어지는 짭짤한 눈물 방울들..

..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생각이라는것이 아예 뭉그러졌으면 정말 좋겠다..


하고..그렇게 말도 안되는 바램을 곱씹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아 버렸다..

 

 

 


아니..

 

억지로 눈을 감아 버렸다.............

 

 

 

 

...........

 

 

..........................

 

 

 

 

 

 


"여기가 어디냐!!!!!!!!!!!-0-"

 

 

"숨은~바위다!!!!!숨은 바위면 배다칠라!!!!!!-0-"

 

 

"배다치면 큰일난다.아따 야들아 염려마라.에헤~!!!!!!!!!!!!-0-"

 

 

"에헤요~에헤요~에헤요!!!!!"

 

 


...이건..또..

 

무슨 개 삽살구 달여먹는 소리란 말이냐....

 

 

 

 

\ 밤.

 

...

 

 

잠들기전 분명 시계를 봐서 기억하고 있지만..

 

낮 3시를 가르키고 있던 시계바늘은.그 소란스러운 인기척과 함께 어느덧

 

밤 10시까지 삐죽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나나 토할꺼 같우우!!ㅠ0ㅠ!!"

 

 

"아 이런..!!자 내 앞치마를 벌려줄게 이리로 와!!"

 

 

"우우우욱!!ㅠ0ㅠ!!"

 

 


-_-...-_-...

 

비몽사몽 정신을 마구 두드려 깨우며.

 

방안의 불을 밝혔을때..

 

 

 

콰당...!!!!!!

 

미처 잠구지 못한 문이 아주 요란스레 열리면서..

 

날발이와 왠 볼이 빨간놈..그리고 그 가운데 비틀비틀 버티고 선 강은찬이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오오오!!너는!!!너는!!!!!!!!"

 


"..=_=.."

 

 

 

침대위에 팔짱끼고 앉은 나를 보며.

 

주접스러운 몸동작과 함께 방안을 콩콩 뛰어대는 날발이.

 

 

 

그러면 은찬인.

 

칼날같은 내 시선을 몽땅 막아내며 침대 구석에 털퍼덕 몸을 누이고..

 

난 다시 그 시선을 낯선 불청객들에게로 옮겨갔다.

 

 

 

 

"니들 뭐야!!!!"

 

 

"에!!네!!르!!기!!파!!-0-!!"

 

 

".....=_=....."

 

 

"저년이야!!저년이 다 구박하고!!나 미워하고!!나한테 막 그랬쪄 엉엉!!ㅠ0ㅠ"

 

..-_-..

 


볼이 빨간놈이 내게 에네르기파를 외치는 사이.

 

날발이는 그런 그의 품에 앵겨 들어서 도저히 적응 안되는 말들을 늘어놓았고..

 

이내 그들은 철썩 끌어 앉은채로 방구석에 벌렁 나자빠져 버리고 말았다.

 

 

 

내 이것을 그토록 우려했거늘..

 

 


후우우아...

 

 

 


"니들 빨리 안꺼져!!남의 집 와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저 나쁜년.우리 대장 울린 나쁜년."

 

 

"맞어 을씨년스럽게 생겨가지고.아주 더럽고 치사한 년이야."

 

 

...-_-...

 

대장이라면...내 옆에서 죽은듯이 잠들어버린 이 놈을 말하나..

 

...

 

 


"야..니들..나나언니 오면 진짜 죽거든..좋은말 할때 나가라."

 


"참네.우리 가면 은찬이 덮칠래는거 누가 모를줄 알고!!-0-"

 


"맞어.저년 은근히 막 은찬이 얼굴 만져."

 


"뺑덕어미같은년이야."

 


"난 어차피 삼십분 있으면 나갈건데.니들 뒷일이 걱정되서 그런다 이자식들아!!!!-0-"

 

 

"우웨에에엑!!!!!=0="

 

 

"우웨에에엑!!!!!=0="

 

 

...-_-...

 

동시에 날 향해 토하는 시늉을 하는 두 놈을 보며.

 

난 '이제 니들 어떻게 되는 알바 아니다' 라는 심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돌렸고..

..

 


잠잠해진 그들이 부둥켜 앉고서 잠이 드려는 찰나에..

 

..침착하게..마음을 다잡고서..

 

쌔근쌔근 잠이 든 은찬이를 내려다 보았다..

 

 

 

"..미안해..강은찬.."

 


"....."

 


"이러고 오면 어떡하냐..등신..인사도 못하게 생겼잖아.."

 


".........."

 

 

"나...진짜 약속할테니까..다시 올.."

 


"이불 주쎄용-0-"

 

 

"오들오들 추워용.이불 주쎄용=0=!!"

 

 

...

 

 

...후....

 

 

 

......마지막이다..참자..

 

어차피 저놈들은 이따 나나언니가 들어옴과 동시에 개묵사발이 될테니..

 

떠나는 마당에 너그러운 마음을 갖도록 하자..

 

 

..

그리하여.

 

 

난 성자와 같은 마음씨로 침대위 이불을 아래로 휙 던져주고..

 

그제야 놈들은 쥐죽은듯이..은찬이와 마찬가지로 고요한 잠에 빠져들었다.

 

 


'구르렁구르렁!!!!!!!!!-0-'

 


물론..

 

코야 좀 심하게 골았지만..

 


..

 

 


"..흠...흠.."

 

 


다시 한번 헛기침..

 

그리고..어린애처럼 잠이 든 은찬이의 옆모습..

 

...그 옆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는 내 왼손..

 

 

 


"강은찬아...."

 


......

 

...........

 

 

"우리 처음 본날..거지라고 놀린거...학교에서 사마귀파랑 싸울때 그냥 지나친거...


나가라고..집 나가라고 그렇게 구박한거..


..내가 다 용서할테니까..."


...

 

 

"너도 나 용서좀 해줘라...알았지..."

 

 

"........"

 

 


가기 싫다..

 

나도 가기 싫거든..정말 가기 싫거든..

 

근데 내가 가야 행복해 진단다..

 

내가 가야 모든게 원위치로 돌아오고..악병균이 사라져야 평화가 찾아오고..

..

 

 

또 솔직히 말하자면..

 

지긋지긋하다..

 

여기서 니 형한테 상처받고 울고 불고 하는거..

 

이제 더이상 못해먹겠다...

 

나도..제발 좀 웃어보고 싶다..

 

 

 


"이 말썽쟁이 사고뭉치..어린애처럼 삐딱한놈..


그래놓고 멋있는척 혼자 다하는놈..누가 데리고 사냐..."

 

 

"....."

 

 


"돈에 환장한 남자 강은찬씨..."

 


"..........."

 

 


강하루에 환장했던 여자 한설은 이만 갑니다......

 


...

 

 

코를 훌쩍이며..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미소진 얼굴로 놈의 얼굴에서 천천히 손을 떼어냈을때.

 

..

 


그때...

 

 

 

'째깍.째깍.째깍.째깍.'

 

 


열시 반을 알리는 시계 초침 소리와 함께..

 

'앗' 할 새도 없이 나를 꽉 끌어안아버린 은찬이..

..

 


술냄새와 샴푸냄새 눈물냄새로 뒤범벅되어..

 

그 숨막히는 향기속으로 날 꾹 안아버린 은찬이..

 

 


"..너..안잤냐..."

 


"내가 어제...."

 


...

 

 

술에 취해서..제대로 들을수도 없는 놈의 발음에..

 

난 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침대에 누운채 천천히 숨을 죽였고..

 

 

 

"왜..한설 학생증을 안받았을까요...."

 

 

 

놈은..

 

꿈쩍도 할수 없을만큼 날 감싸안은 두 팔에 힘을 주며..

 

힘겹게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

 

 

"일번..

그새 한설이 싫증나버려서.."

 


"...뭐야...그게..."

 


"이번...


형아가 불쌍해서...."

 


".....이거놔 좀 ..좀 놔봐.."

 

 

"삼번....여지껏 약올린거 복수 할려고..."

 

 

"......."

 

 

"...사번..."

 

 

"..............."

 

 


"사번.."

 

 

놈이 너무 꽉 안아버린 나머지.


이젠 입도 열수 없게 되었을때..


그래서 그 눈물나는 향기에 가만히 몸을 맡겨 버렸을때..

 

 

속삭이듯이..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이..천천히 그 한마디를 중얼대는 은찬이의 입술..

 

 

 


"내 이름이 아니라서.."

 


"..."

 

 

"한설이 들어오자마자 소리쳐 부른게.강은찬이 아니라 강하루여서.."

 

 


"...................."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사랑하는 사람 뺏겨도 봐서...


그게 너무 힘들어서..또 되풀이 될까봐 무서워서..."

 

 

 

 

등신아.....그런거 아니야......


그러려고 줬던거 아니야....

 

 


"뭐가 답일까요..."

 


"........."

 


"안맞추면 안놔준다..."

 


"사번.."

 


"..딩동댕.."

 


"바보 아냐..."

 


"..맞았습니다..."

 


"........."

 

 

차츰차츰.내 어깨를 감싸안던 은찬이의 팔에서 힘이 풀리면..

 

난 그 가슴에서 얼굴을 떼어낸채 가만히 놈을 바라보았고..

 

그럼 그앤.주먹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내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맞췄으니까 선물."

 

 

"은찬아..."

 


"그때 그 병원 602호실.."

 

 

"....안가...."

 


"거짓말."

 


".............안가..."

 


"너도 거짓말."

 


"....강은찬..."

 

 

 

나즈막히 되풀이된 내 말에..

 

등을 돌리고 누워버리는 은찬이...

 

 

 

"잘있어라..."

 


"거봐...갈거면서.."

 


"병원 가는거 아니야..."

 


"정답은 4번.딩동댕."

 

 

".....장난 아냐....정말 잘있어라...."

 


"병신 시끄러.갈땐 그냥 조용히 가는거야.사람 비참하게 자꾸 잘 있으래.."

 

 


"니 형한테 가는거 아니래잖아..."

 

 

"그럼 어디 가는데..."

 


"......."

 

 

"...형한테 안가면 너 어디 가는데...."

 


".............."

 

 

다시 내쪽으로 돌아누운 은찬이..

 

화가 난걸까 이애........

 

눈동자가..조금 식어버렸다....

 

 

 

"너 지금 어디 가는데!!!!!!!!!!!"

 

 

 


그래...결국 또 나때문에 화가 나버렸다.

 

 

 

"....그냥...."

 

 

"왜 자꾸 거짓말 하냐!!!!!!왜 자꾸 흐지부지한 태도로 사람 기대하게 만들어!!!!!!!!!!


그랬다가 결국 다시 갈거면서...


왜 자꾸 나만 병신 머저리 만드냐!!!!"

 

 

".....미안......"

 

 

"난 그래도...."

 

 

"............"

 

 

"니가 어제 나한테 준게 진심이라면..


형한테 보여주기 위한게 아니라 진짜 니 마음이였다면.."

 

 

다시 돌아 누워 버리는 은찬이..

 

그리고 또 한번 내 가슴을 후벼파내는 그 한마디...

 

 

 


"니가 나 따라올줄 알았다...."

 


".................."

 

 

"그리고..니가 어제 나한테 한 고백이 진심이라면.."

 

 

"............"

 

 

"지금 이 상황에도 넌 여기 내 옆에 있겠지.."

 

 


"............"

 

 


"근데 아니잖냐..."

 

 

 

나야말로 그런게 아니라잖냐.

 

이 말귀 못알아먹는 바보 천치야..

 

 

 

"내가 너 아니면 안되는것처럼..넌 형 아니면 안되잖아.."


...


........

"잘있어라......그리고 어제 내 고백...니 형 앞에 있어 한거 절대 아니였단것 알아줘.."

 


"그렇게 결국 갈거면서...."

 

 


후...

 


낮은 한숨과 함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그 머저리 같은 바닥위의 두놈을 밟고서 신발장으로 향하는 사이..

 

 

 


..

이제 그만했음 좋겠는데..

 

조금이라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났으면 하는데..

 


자꾸만..자꾸만..

 

내 발길을 잡아매 버리는 은찬이의 중얼거림..

 

 

 

 


"결국 가버릴거면서...."

 

 

 


끼기기긱..

 

조용히 문이 닫김과 동시에..

 

내 손목에 있는 시계 바늘은 어느덧 11시 10분을 가르키고 있었고..

 

 

..

 

 


저놈 품에 안긴채로 30분이나 넘게 있었던건지..

 

난 문너머로 들려오는 전화벨소릴 무시한채..

 

은찬이에게서 도망치듯..은찬이에게서 달아나듯..

 

단박 걸음에 재빨리 그 낡은 건물을 벗어나고 있었다..

 

........

 

................

 

 

어떻게..

 

가는 그 순간까지 오해냐...

 

 

윤영이 그렇게 원망해놓고..

 

나도 똑같이 은찬이 이용한 나쁜년 되버렸네..

 

똑같이 또 상처 주고 말았네..

 

거기에 젤 아플 은찬인데..거기에 젤 가슴 벅찰 은찬인데..

 

내가 두번째 상처를 주고 말았네...

 

 


아닌데...

 

정말 난 그게 아닌데...

 

 

 


"많이 늦었네."

 

 

 

 

 

 

하아.........

 


하..........아..........

..

 

 

정신없이 달리느라 보지 못한건지.아니면 어둠속에 가려있던건지.

 

한손에 여권을 움켜쥐고 그렇게 숨가쁘게 달리고 있을때.


등뒤에서 나를 멈추게 만드는 마녀의 목소리.

 

 

 

 


"..미안해요.."

 

 

"전화 했더니 안받길래.음성 메세지 남겼는데."

 

 

"네..!?!?"

 

 

"왜..?무슨 문제 있어??"

 


"빨리 가요..!!!"

 

 

"........무슨 일인데...."

 

 

"빨리요!!서둘러요!!!"

 

 


다급한 나의 고함에.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마녀..

 

 

 


그리고 난 은찬이놈이 오기전 얼른 서둘러야 한단 생각에.

 

낮짝도 두껍게 옆에 놓인 그 마녀의 차에 낼름 올라타버렸고..

 

이내 마녀 역시 운전석에 올라타서는..

 


날 향해 싱긋 미소를 짓고 시동을 걸었다..

 

 

 


"마음의 준비는 다 됐어..?"

 

 


천천히 골목을 벗어나는 마녀의 자동차.

 

 

 

"...아니요..."

 


"그래.준비가 다 됐다면 그게 이상한거지 뭐."

 


"....."

 


"은찬인 어제도 오늘도 집에 안들어 왔다는데.혹시 전화 왔었니?"

 

"...........아니...요..."

 


"후..정말 집안 꼴이 말이 아니네..한달전만 해도 이정돈 아니였는데 말야.."

 


...


...

 


결국 모든 원인이 내탓이란 말을 하고 싶은듯.


슬쩍 곁눈질을 해서 날 바라보는 마녀..

 

 


젠장. 나도 알아요.

 

그래서 가잖아요.

 

그래서 당신 가족한테 병균 못옮기는.아주아주 먼곳으로 가고 있잖아요.

 

 

 

 


"어디보자..인천이..여기서 우회전.."

 

 


"잠깐만!!!"

 

 


"..뭐...?"

 

 

"좌회전!!!삼십분이면 돼요..!!좌회전이요!!"

 

 

"무슨 소리야.거긴 반대방향인데.."

 

 

"출발시간까지 충분하잖아요!!!아주 잠깐이면 돼요!!!!!!!"

 

 

 

불현듯.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터져나온 그 말에.

 

마녀는 당황한듯 갈림길에 차를 세운채 나를 바라보았고..

 

그럴수록 나의 외침은 한층 더 간절해져 갔다.

 

 

 

 

"마지막으로요.마지막으로 해야될일이 있어요..꼭 해야될일이 있어요!!!"

 

 

"정말 미치겠군...잠깐..이건 또 뭐야.."

 

 

 

때마침 요란스레 울려대는 핸드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마녀.

 

 

 

 

"은찬이 번혼데..야단났네..꺼버리든가 해야지.."

 

 


"좌회전이요!!!!!!!!!!!!!!"

 

 


"하..나 참..."

 

 

 

"제발요..마지막이잖아요..!!!이제 더이상 당신 괴롭힐일도.


집안에 폐 끼칠일도 아무것도 없잖아요!!!"

 

 


차를 쩌렁쩌렁 뒤흔드는 나의 고함에.

 

핸들에 고개를 묻고 한숨을 내쉬다가...

 

...

 

 

"좋아."

 

..

 

 


단호한 그 한마디를 던져놓으며..핸들을 왼쪽으로 꺾는 마녀.

 

그리고 그녀의 손에 의해 꺼지는 핸드폰 전원.

 

 

...

 

 

그 두가지였다.

 


차는 목적지의 반대 방향으로.

 


은찬이가 거는 핸드폰 전원은 OFF로.

 

 

 


단지..

 

그 두가지였다.

 
 
저벅.저벅.저벅.저벅.

 

 

 

어두컴컴한.

 

텅빈 복도를 울리는 단 한사람의 발자국 소리.

 

 


얼굴만 보고 갈게..

 

정말 얼굴만 보고 가는거야..

 

 

탁.

 

 

 

\ 602호 앞.

 

 


숨소리와 함께 멈춘 발걸음.


눈안으로 똑똑히 들어오는 숫자 세개


6 . 0 . 2.

 


....

 

 

'십분안으로 나오는게 좋겠다.은찬이도 뭔가 좀 아는것 같고..


아무튼 빨리 나오도록 해..'

 

 

 

그리고 귓가를 맴도는 다급한 마녀의 목소리.

 

 

 


아니.

 

오분이면 충분해요..

 

 

 

"오빠 배 안고파요?뭐 먹고 싶은거 없어요..?"

 

 

 

그때.

 


문틈 사이로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난 재빨리 문 옆으로 몸을 숨겨야 했고.

 

이내 살그머니 그 틈사이로 고개를 갖다대면..

 

 

 

"휴..ㅠ_ㅠ..이렇게 안먹어서 어떡해..오빠..자요..?"

 


"........."

 

 

 

또다시 철렁 내려앉고 마는 심장.

 

 


세진이다..

 

 

침대앞에 바짝 붙어 앉아있는 저 뒷모습..분명 세진이다..

 

 

 


"오빠..잘래요..?저 이만 갈까요..?"

 

 

"..........."

 

 

"그치만 어제도 오늘도 아무것도 안먹었어요..이거 먹는거 보고 갈래요.."

 

 

"..........."

 

 

"..오빠..."

 

 


......

 

.........

 

 


떨리는 목소리의 세진이가.


조심스레 하루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가져가면..

 


...

 

탁..

 

아주 냉정할만큼 그 손을 뿌리치는 하루의 손.

 


........

 

............

 

 

잠든게..아니였나..

 

 


"왜 이렇게 고집 부려요..먹어야 낫죠.."

 

 

 


박윤영에..오렌지족에..한설에..홍세진..

 

아..애니몰 팸의 코끼리도 껴줘야지..

 

 

대체 다들 저런 잔인한 놈이 뭐가 좋다고..

 

 

..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한숨과 문가에 몸을 기대면..

 

곧바로 세진이의 청천벽력같은 한마디가 들려왔다.

 

 

 

"화장실 잠깐 갔다올게요..갔다오면 꼭 먹는거에요..!!"

 

 


헉.


지금 쟤가 병실을 나오려는건가..!!-0-


..

 


아니나 다를까.

 

날렵한 내가 병실 앞 의자 밑에 기어들어가 납작 엎드린 사이.

 

문이 열리며 그 자그마한 모습을 드러내는 홍세진.

 

 


"..후..."

 


...

 

 

초췌한 몰골에.깊은 한숨을 내쉬곤..


오른쪽 방향으로 천천히 멀어지는 그녀.

 

 

 


"진심이면...꽤 많이 아플꺼다...."

 

 

 

그러면 그런 그녀의 뒷모습에 중얼중얼 한마디를 던져놓고는..


팔꿈치로 바닥을 쓸어내리며 다시 복도로 기어 나오는 한설.

 

 

그리곤..


이제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불쑥 고개를 디밀어놓는다.

 

 

 

"......................."

 


...

 

....

 


이어서..


달빛 아래로 파랗게 빛나는 하루의 얼굴이 보이면..

 


쿡쿡..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기 시작하고..

 

...

 


두눈을 꼭 감은 그 얼굴에 용기를 내어..

 

아주 천천히 병실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부스럭..'

 

 

 


내가 세진인줄 아는건지..

 

벽쪽으로 아예 돌아누워 버리는 강하루씨.


마지막 순간까지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강하루씨.

 

...........

 


침대 앞에 내가 바짝 다가선 이 순간도.


이불로 온몸을 꽁꽁 싸잡아 맨채 미동도 하지 않는 강하루씨.

 

 

 

"쿡..."

 

 

 

 

그리고 그 눈사람 같은 모습에 내가 조그마한 웃음을 터트리면..


그앤 기분 나쁘다는듯 머리마저 이불속으로 쑥 파묻어 버렸고


..

 


그랬기에..


난 머리카락 한톨 안보이는 그 뒷모습을 보며..


소리없는 작별인사를 조용히 건네야 했다.

 

 

.....

 


..................

 

 

'안녕.안녕 강하루씨.

 

난 말야..그냥..한달동안..무서운 악몽을 꾼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 커다란 집도..별장도..5시마다 걸려오던 전화도..정원의 파티도..


미라도..오렌지족도..할아버지도..신기사 아저씨도..

 

은찬이랑..하루도...'

 

...

 

.....

 

 


'그냥 악몽이라고..윤영이는 행복하게 살다 죽었다고..


그러니까..그러니까 강하루는 단지 내 꿈속에 등장했던 한 사람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

...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 말에..


여전히 그 꿈속 주인공은 이불속에서 쌔근쌔근 숨을 몰아 쉬었고..

 

 


...

 

 

 

'그런데 악몽 치곤 너무 행복했다..


헤헤..내 인생에서 최고로 사랑했어...'

 

 

 

난 눈물 한방울과 손위의 학생증을 번갈아 본뒤..


조심스레 하루를 감싼 그 하얀 이불을 어루어 만졌다.

 

 


그런데 그때..

 

 

 

"너 언니...."

 

 


...

 

 

 

.....벽과 마주한 하루의 얼굴에서.....

 

중얼중얼 새어나오는 잔뜩 쉰 목소리...

 

 

 

"..."

 

 


"넌 니 언니랑..한설이랑..연락되지...너 걔랑 친척이라며....거짓말 아니지...."

 

 

"...."

 

 


등신..내가 한설인데..한설이랑 어떻게 연락을 하냐..


헛소리 말고 그 우스꽝 스러운 이불이나 좀 집어 치워봐..

 

 


잘 안들려..

 

그것때문에..니 목소리가 잘 안들린단 말이야..

 

 

 

 

"머리 예쁘다고 전해줘..잘어울린다고..


묶은머리보다..그게 훨씬 더 예쁘다고..내가 미안했다고..."

 

 

 

".............."

 

 

"그리고 그 말투 있잖아...뭐뭐 했냐..이거..그 말투가 제일 듣기 좋았다고..그것도 전해줘..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고..이제야 알아서 미안하다고..


그것도 꼭 전해줘.."

 

 

 

"..................."

 

 

"해산물도...싫어하는데.....내가 매일 억지로 먹였다....


한설은 아무거나 잘 먹는게 젤 어울리는데...가려먹는건 걔한테 안어울리는건데..


...억지로 시켜서..미안하다고...."

 

 

...


.....

 

툭..툭..

 

한방울..두방울..다섯방울..

 

시트위를 적시는 내 눈물을 알기나 하는건지..

 

 

 


...

 

계속계속..

 

아주 조그맣게 이불 너머로 들려오는 하루의 목소리..

 

메이고..쉬고..잠겨서..

 

눈물과 뒤엉켜버린 하루의 목소리..

 

 

 


"다 너무 늦게 알아서.........


아픈앤데....윤영이보다 훨씬 더 아픈앤데....내가....제대로 못안아줘서....


너무 너무 미안하다고........


젤 많이 웃게 해줘야 될 사람이...


젤 많이 울게 해서...죽을만큼 미안하다고....."

 

 


"...그래..........."

 

 

 

 

"......사랑하는데.....


진짜 이제 사랑하는데....이제 진짜...우주가 다 터져도 사랑하는데....


이제 진짜...그 여자가 살아와도 사랑하는데.....


....나 아플때 간호해준거 그 등신밖에 없는데....."

 

 

 

 

"........."

 

 

"젠장......"

 

 

"..."

 

 


"니 언니 사진 없지...한설 사진 없지...."

 

 


이제 그만 가자..한설..

 

이러다 영영 못간다..여기 있다간 나 정말...

 

윤영이한테 가장 못된 짓 저질러 버릴지도 모른다..

 

 

 

"사진이 한장도 없다....보고 싶은데....일초도 안거르고 보고 싶어 죽겠는데..


꿈에도 안나와..나는 꿈에도 싫은가봐...


사진좀 구해줘...어...?


니가 한설 사진........"

 

 


"여기 있잖아 이 등신아!!!!!!!!!!!!!!!!!!!!!"

 


".................."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된 내 고함에..


...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하얗고 커다란 이불..

 


그리고..

 

.....결국 몸을 돌려 나를 발견하고 만 하루의 눈.

 

 

 


몹쓸 눈물에 잔뜩 젖어서..


하얗게 바래버린 하루의 두눈..

 

 

 

 


"....한설....?"

 

 


"지금 와서 미안하다면 누가 좋대!!!!!!!누가 받아준대!!!!!!!?


그러게 왜!!!!!그러게 왜..................


병신....아플때 간호한게 뭐 대수라고........"

 

 

....

 

 


이를 악물고서 그 한마디를 내뱉으면..

 

하루는 창가로 얼굴을 돌린채 계속 계속 눈물만을 쏟아냈고..

 

말을 하려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듯..

 

분간못할 몇마디를 중얼거리며 눈물만 계속 흘려댔고..

 

 

.......

 

............

 


"여기 내 사진 있지!!!!!!!!!!!


내 사진....내 사진이다 임마!!!!!!!!!


너 임마...!!!윤영이한테 싹싹 빌어...!!난 됐으니까..!!


윤영이한테나 싹싹 빌어....!!나도 뭐 너 좋아한적 없어...!!!


그냥 얼굴에 잠시 홀랑 한거지..나도 진심으로 좋아한적 없다...!!"

 

 

 


난 내 학생증을 놈의 품에 던져놓으며.


애써 되찾은 그 특유의 씩씩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가지마라...."

 

 

 

"웃기네..가지말긴 뭘 가지마...좋아한적 없대도...나도 다 뻥이였대도..."

 

 


"가지마라...한설...가지마라..."

 

 


"싫어.이러고 있는 구질구질한거 누가 거들떠나 본대..잘먹고 잘살아라..


그리고 앞으로 조금씩 용서해줄테니까..이제 맘 편히 살어라.."

 

 


...


...터벅..터벅..

 


...

 

.............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립니다.


새파랗게 질린 세진이가 서있는 문앞으로..


세상에 태어난 이후 가장 무거운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가지마라!!!!!!!!!!!!!!!!!한설!!!!!!!!!!!!!!!!!!!!!!!!


제발 가지마라!!!!가지마라!!!!!!가지마라 한설!!!!!!!!!!"

 

 

 

...

 

 


처음듣는..

 

알고 지낸 후로 난생 처음듣는 하루의 악 섞인 고함을 들으며..


병실문을 나갑니다..

 

 

세진이를 향해 한번 미소짓고..


하루를 남겨둔채 병실을 나섭니다...

 

 

 


"너 진심 아니여도..이제 내가 진심 할게!!!!!!!!!

 

내가 진심할게 한설!!!!!!!!!!!!!한설!!!!!!!!!!!!!!!!!!

 

한설!!!!!!!!!!!!!!!!!!!!!!!"

 

 

 

 

천천히 뛰기 시작합니다.

 

등뒤로 들려오는 짓눌린 내 이름에 꽁꽁 묶여 버릴까봐.

 

머리와는 다르게 내 마음이 눌러 앉아 버릴까봐..

 

 

 


천천히..

 

아니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합니다...

 

 

 

...

 

 

 

뜁니다..

 

그날처럼..뜁니다..

 

 

 

....

 

 

 


나는 늘 뜁니다..

 

눈물을 등에 업고 달립니다...

 

 

 

한번도..단 한번도..

 


웃으며 달린적은 없습니다....

 

 

 


어느덧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버린..

 

'눈물'을 등에 업고 달립니다....

 

"휴..너무 늦어버렸잖니....이래서야 원...."

 

 

 

 

\ 마녀 차안.

 

 

 

꼼짝않고 몇분째 창문만 바라보는 나.


눈물자국 죽어도 들킬순 없어서....


찢어 죽일듯 창문밖만 노려보고 있는 나..

 


..

 

 


"인사는 잘 했어..?"

 


"...네...."

 


"근데..은찬이한테 무슨 얘기 했니...?"

 


"...왜요...?"

 


"전화가 쉴틈 없이 오네..."

 


"..아까..자동 응답기에..뭐라고 녹음 하셨는데요..."

 

 

쳐다보지도 않은채..

 

담담한 목소리로 마녀를 향해 물으면..

 

대로변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당연하단듯 대답하는 마녀.

 

 

 

 

"출국 시간 잊었냐고 빨리 나오라고 했지 뭐."

 


"...휴...."

 


"왜.무슨 문제 있어?"

 


"집에 은찬이 있었어요...."

 


"...뭐...?!?!"

 


"은찬이가 들었을거라구요..."

 

 

 

끼이이이이익.!!!!!!

 

 

 

나의 대답에..갑작스레 급정거를 하는 마녀의 차.

 

그리곤..새하얗게 질려가는 마녀의 얼굴..

 

 

 

 

 

"미리 말했어야지...!!!!!!!!"

 

 

"말할틈 없었어요.."

 

 

"세상에..야단이네..그 무대뽀가 들었단 말이야..."

 


"......"

 


"분명히 쫓아올텐데..물불 안가리는 애여서..."

 


".........."

 

 


머리가 진공상태라..

 

지금 마녀가 무슨말을 하는지..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구분이 가질 않는다..

 

 


내 머린 지금 진공 상태다...

 

 

누군가 손끝으로 살짝만 두드리면..


펑하고 터져버릴것 같은......

 

 

 

 

 

"지연이 딸이 몇살이였지..그래..니 또래니까..알맞는 옷이 있겠다..모자도 있을거고.."

 

 

"....."

 


"잠깐..어디좀 들렸다 가자.."

 


"..네..."

 


"너 근데 정말 무슨 일 있었니...?"

 

 


차를 다시 유턴 시키면서.


좀 걱정스러운듯 내 안색을 살피는 마녀..

 

 

"....네..."

 


"왜.하루가 못가게 잡아..?"

 

".....네......"

 

"지 엄마 닮아서 소유욕이 너무 강해."

 

"...."

 

 


결국.


자신과 하루를 모자가 아닌 남으로 구분짓고 마는 마녀..

 

 

 

"휴..키자마자 또 쏟아지네.."

 


...

 

 

그리곤..


낯선 맨션 단지로 차를 빠르게 몰면서..


핸드폰의 배터리를 능숙하게 빼낸다..

 

 

 

"옷 갈아입고..모자도 푹 눌러써야겠어..행여 모르니까.."

 

 

철저하시네요.

 

 

"이러면 난 공항 안까진 같이 못가겠다..


행여 그놈하고 마주치면 큰일이니까.."

 

 

네..어련하시겠어요..

 

 

"이따 가서 다 알려줄테니까..넌 아무 걱정 안해도 된다."

 

"...네..."

 

 

흐지부지한 대답소리가 못미더운듯..

 

슬쩍 곁눈질을 해 내 안색을 살피곤...

 

깔끔한 하얀 맨션앞에 차를 주차시키는 마녀..

 

 

 

"지금 열두시 반이니까..


..뭐..충분하겠네..기다리고 있어라.."

 

 


".....네...."

 

 

"설마 뭐..지금 와서 다시 뛰쳐 나간다는둥..그런 어리석은 짓은 안하겠지..?"

 

 

...

 


차에서 내린 마녀는..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마지막 확답을 얻어내고..

 

 

..끄덕끄덕..

 

 

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휴.."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타원형의 그 맨션 입구로 종종 모습을 감추었다.

 

..

 


안가...

 

 

가라고 등 떠밀어도 안가...

 


아니..가면 안돼..

 

내 마음을 더 확실히 알아버려서...

 

이젠 아무것도 할수 없어..

 

 

 

하루가 없는곳으로 떠나버리는것 외엔..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어떤 길도 찾을수 없게 되버렸어...

 


...

 

 

탁탁탁..

 

 

 

그러니까 그로부터 2분후..

 

마녀는 양손 가득히 쇼핑백을 들고서 다급히 차위에 올라탔고..

..

 

재빨리 눈물을 훔쳐내는 날 보곤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부릉부릉부릉.

 

 

 

그리고.

 

차는 다시 출발했다...

 

 

...

 

 

 

\ 30분후.

 

 

 

 

"흠 이제 공항로 진입이다..!!"

 

 

 

기분이 좋은듯.

 

핸들을 텅텅 두드리면서 도로 옆에 가로놓인 바다를 흡족히 바라보는 마녀..

 

 

 

..

 

 

그사이 난 무릎위에 얼굴을 묻은채..

 

꼭 지워야만 하는 그 얼굴을 괴롭게 눌러 삼켜댔고..

 

그럼 그녀는 다시 핸드폰 배터리를 끼워놓으며 흥얼흥얼 콧노래를 중얼 거렸다.

 

 

 


"들어가자 마자 화장실로 가서 옷 갈아입고.


그다음 티켓 받으면 돼.짐은 없으니까 괜찮을테고..


오클랜드행 3:15분에 탑승하면 되는거야.


게이트 17번.오케이..?"

 

 

 

"....네...."

 

 


"쇼핑백에 달러랑 현금 넣었는데.


현금도 환전하려면 하고..뭔지 알지..?"

 

 


설마 내가 그걸 알겠냐...

 


...

 

 

"도착하면 한국 사람이 마중 나와있을거야.


한눈에 알아보기 쉬워.너 거기가서 묶을 집 주인인데..


머리가 허리까지 오고 빨간 색이니까.


아.걱정마.한국인이다..^-^.."

 

 

"...네..."

 

 

"가면 꼭 전화하라구.잘 도착했는지 걱정되니까..


아마 10시간 남짓 걸릴거다.."

 

 

...이 여자 정말..

 

정체를 알수가 없구만...

 

..

 

 

천천히 허리를 일으켜 빤히 마녀를 바라보면...

 

새벽임에도 시끌벅적한 공항으로 서서히 차를 몰며 따뜻히 웃어보이는 그녀.

 

 


"아참.은찬이랑 마주치면 고개 푹 숙이고 지나쳐.


혹시.정말 혹시 말야..

 

어쨌든..그놈 둔해서 모자 하나만 눌러써도 전혀 못알아볼테니까.."

 

 

".......네......."

 

 

"아까부터 네네네.


마지막으로 가는 마당에 목소리좀 많이 들어보려 했더니.."

 

 

..

 


끼이이이익.

 

 

 

셔틀버스 정거장을 조금 지나쳐 차를 세우곤..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보이는 마녀..

 

 

 

"......"

 

 

"좋아.잠깐 내리자."

 

..

 

그리곤.


차에 깜박이를 밝히고서 가볍게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

 


뭐야...

 

나...진짜로...가버리는건가....

 

 

...

 

 

 

\ 인천 공항 입구.

 

 

 

 

"좋아..!!여권도 됐고.옷도 있고.돈도 오케이..!!"

 

 

"네..모두 오케이요.."

 

 

"가자마자 꼭 옷 갈아입도록 해라.알았지..?"

 

 

 

내심 은찬이가 걸리는듯.

 

마녀는 이리저리 주위를 살펴보며 내게 신신당부를 했고..

 

그랬기에 난 또 한번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휴..날이 정말 많이 춥네..."

 

 


손위로 호호 입김을 불어넣으며..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겨오는 마녀..

 

..

 

그러니까..


은찬이랑 닮아서 이젠 좀 친근하게 느껴지는 미소의 주인공.

 

 

 


"그동안..내가 많이 미안했다.."

 

 

 

"아뇨.."

 

 

"그 일..또 되풀이 될까봐..일부러 모질게 했던거야..내 맘 알겠지..?"

 

 


"...네...."

 

 


"그래.일년이니까..그동안 아무 걱정말고 푹 아주 푹 쉬다가 와.."

 

 

"네.아줌마도 건강히 계세요.."

 

 


"그럼..나야 늘 건강하지.."

 

 


"..하루도..좀..잘..보살펴..주시고..."


...


...

 

 

하루란 이름에서 흐려지는 내 목소리를 눈치챈듯.


더욱 명랑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마녀.

 

 

 

"그래!!알았어!!


너랑 같이 산다던 그 나나란 여자도 잘 보살펴줄게!!"

 

 

 


...나 원참..


이름도 알고 있구만..

 

 

 

"어쨌든 가자마자 전화하는거 잊지마..!!


돈은 두둑히 넣었으니까.면세점에서 쇼핑도 하고..!!기분전환도 할겸 말야..알았지!?"

 

 

"네..감사합니다.."

 

 

"떠나는 마당에 그게 뭐니.맥없이..좀 씩씩해져봐라.."

 

 

"네..!!감사합니다..!!안녕히 계세요..!!"

 

 

"그래..^-^..잘 해낼거라고 믿는다..^-^.."

 

 

"^-^..."

 

 


차 앞에 서서 손을 흔들어보이는 마녀..


..

 


그러면 나역시..


그녀에게 차갑게 언 손을 두어번 흔들고서..


천천히 입구쪽으로 등을 돌리고..

 

 

 

"잘가라..!!!!!미안하다 정말..!!!!!"

 

 


다시 한번 들려오는 마녀의 목소리에..


도망치듯 공항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말았다..


..

 


'잘가라'는 그 한마디가..


정말 끝임을 얘기하는것 같아..


울컥하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난생 처음으로 공항안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 인천 국제 공항.

 

 

 


"다시 한번 안내 방송 드립니다.


마닐라행 비행기가 새벽 4시50분으로 지연되었사오니.."

 

 


...뭐야...


...넓긴 또 더럽게도 넓네..젠장..

 

..

 

 

가방 하나 없이..양손에 펑퍼짐한 쇼핑백만 딸랑이며 화장실을 찾는중.

...

 

 


이 시간에도 어딜 그렇게 오고 가는지.

 

들뜬.혹은 피곤한 기색의 사람들은..

 

커다란 가방을 끌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댔고...


...

 


난 아직도 떠난다는것을 실감하지 못한채로.


막 발견한 화장실을 향해 맥없는 걸음을 했다..

 

...

 


참..

 

나나언니한테 인사도 못했잖아...


얼마나 나쁜년이라고 욕을 할까....


...이따 꼭 전화 해 봐야겠다..

 

...


후..벌써부터 겁이 나네..

 

 

 


철크덕..

 

태어나 본 공중 화장실중 가장 좋아보이는 화장실.

 

 

 

일단은..


그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문을 조심스레 닫은뒤에..


쇼핑백에 들어 있는 코트와 바지를 힘없이 꺼내놓았다..

 

 

 

"..참나..옷도 더럽게 좋네요.."

 

 

 

그리고..


볼멘소리와 함께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내리면..

 


..

 

'바스락'

 

주머니에 접히는 무언가.


..

 

그래서 이게 뭔가 싶어 얼른 꺼내어 손바닥 위에 펼쳐보면..

 

 

"........"

 

 

 

 

 


목걸이다..

 

 

 

강은찬이 선물로 주고간...

 

은색 하트모양 팬던트 목걸이...

 

 

 


"참나..무식한놈..이렇게 큰걸 주는게 어딨어..."


..

 

 

이내 비닐에 쌓인 그 목걸이를 빼내어 조심스레 뚜껑을 열면..

 

 

"♬♩♪♬♩♪♪♬♩♪♬♩♪♬♩"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조그맣게 오려져 팬던트안에 들어있는 사진..

 

 

 

하루와..은찬이..


은찬이와..하루..

 


...

 

 

둘다 중학교1학년쯤으로 보이는데..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채 사이좋게 웃고있는 두사람...

 

 

어디서 흙장난을 하고 온듯..

 

똑같이 양볼에 흙과 모래를 잔뜩 묻히곤..

 

앞머리랑 뒷머리가 붕붕 뜬 상태로..

 

입을 활짝 벌리고 눈부시게 웃고 있는 두 꼬맹이.

 

 

 

"...꼴통들..."

 

 

 

잠시...

 

옷갈아 입는것도 잊은채 멍청히 그 메달을 들여다 보았다..

 

 


그래서...


...

 

목걸이를 걸고..

 

옷을 갈아입고..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

 


세상에나..

 

치밀한 마녀가 준비한 까만 선그라스까지 쓰고 화장실을 나왔을때..

 

 


"1:51"

 

 

그래.


시계 바늘은 어느덧 1시 51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우왁!!늦겠다!!!!!!!!!!!"

 

 

..

 


수상쩍은 내 몰골에 한사람 두사람 슬금슬금 몸을 피하면.

 

난 티켓을 받아든뒤 출국 심사장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 시작했고..

 

 

 


"저리로 가는거 맞아요..!?!?"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선곳을 향해 손가락을 가르키면.

 

..

 

내 앞을 지나던 경찰관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휴..찾았다..."

 


안도의 한숨.

 

..

 

 


"아하하 그래가지고 말이여!!이번에 우리 딸이 영어가 얼마나 늘었는지!!


말도 못혀 말도 못혀!!-0-!!"

 

...

 


쭉 늘어선 사람들 뒤에 조심스레 몸을 옮기면..

 

들뜬 목소리로 한창 수다를 떨어대는 아줌마들.

 

 

 

"이번에 우리도 가면 영어좀 배워와야지.


인젠 애들 보기도 부끄러워서.안돼 안돼.영어는 기본으로 해야돼"

 

 

"내 말이 그말이라니까..-0-"


...

 


영어라..

 

 

...영어....

 

 

진짜 가는구나...

 

...가는구나 가.....

 

내가 드디어...

 

나 한설이 드디어 한국을 뜨는구나....!!!!!!!

 

 

 

"잘있어라 한국..!"

 

 

 

티켓과 여권을 직원에게 보이면서..

 

어서 게이트에 들어가 나나언니에게 전화를 해야겠단 생각에 마음을 졸일때..

 

 

 

 

"꺄악..!!"


....

 

 

....

 

 


가슴을 움찔하게 만드는 여자의 비명소리.

 

 


..

 

그리하여..


이것이 뭔소린가 싶어 고개를 돌리면..


...

 

여자를 바닥에 밀치며..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이리저리 공항 바닥을 휘집고 있는 한 사내..

 

 

 

 


"한설!!!!!!!!!!너 잡히면 진짜 죽는다!!!!!!!!!!!!!"

 


"........"

 

 

 


한쪽은 쓰레빠에..한쪽은 운동화에..


반팔 티셔츠 바람에...

 

 

머리는 동서남북으로 붕붕 삐쳐서는..


일렬로 늘어선 우리 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강은찬..

 

 


마녀가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정말 현실이 되어버리다니...

 

 

 

"왜 그러세요.아니.이러시면 안되는데요.."

 

...

 

내가 재빨리 고개를 숙인 사이.

 

그놈은 직원을 거칠게 밀치며 내가 늘으선 대열로 화들짝 놀랄만큼 가까워와버렸고..

 

 


이내..

 

한사람한사람씩 확인하며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니..

 

 

 


"저 안에 벌써 들어간거 아니야!!!!!?한설이라고 안들어갔어요!!!!!!!?"

 


"찾는 분 있으세요..?"

 


"젠장!!!!!!!미친거 아니야 진짜!!!!!!!!지가 무슨 뉴질랜드야!!!!!!!헬로우도 못하는게!!!!!!!"

 

 

이 새끼야..


나 헬로우는 할줄 안다.

 

 

 

 

"이 아줌씬 아니고.."

 


"이 학생이 왜이래!!>ㅇ<!!"

 


"이 아줌씨도 아니고..."

 


"어머머..어머머.."

 


...

 

 

뒤에서부터..천천히 사람들을 헤집으며 확인에 들어가는 강은찬.

 

 

 

"...이 아저씨도 아니고.."

 

"....."

 


"젠장..이 자식이 벌써 들어갔나.."

 

"........."

 


"하이튼 잡히면 족쳐버려야지..

이 여자도 아니고..."

 

 


....

.......

 

못들을줄만 알았던 목소릴 다시 들으니 반갑기야 그지 없지만..

 

하필이면 이런 상황이라니...

 

...-_-..

 


쩝..입맛을 다시며..이리저리 고개를 비틀어 대면..

 


추위에 꽁꽁 언 바람을 풍기며 내 앞에 멈춰선 강은찬.

 


철렁..

 

...철렁...철렁...

 

..

 


그리고...


동해바다의 돛단배처럼 심하게 흔들려오기 시작하는 내 심장..

 


..

 

젠장..여기서 걸리면 어쩐다..

 

 

그래.


그냥 뛰는거다..


저놈은 어차피 티켓없어 들어오지 못할테니..


저 검사하는곳을 향해 디립다 뛰..

 

 

 

 

 

"이 여자도 아니네..젠장.."

 

 

 


...어야 할..필요가 없어졌네...

 

...

 

 


정말 마녀 말대로.

 

모자 하나만 눌러쓰면 알아보지 못하는것인지..

 

 

내 앞을 스윽 지나쳐..

 

달랑 하나 남은 여자 앞에 우뚝 멈춰서는 강은찬.

 

 

 

"이 여자도 아니고!!!!!!!!!!!!"

 


"네..?"

 

 

"신발..벌써 들어갔잖아!!!!!!!!!!!!!!!"

 

 

"ㅠ0ㅠ....................."

 

 

 

"여기 오클랜드 행 티켓 남은거 없어요!!!!!!!!!!!!?!?"

 

 


"왜 이러세요 정말.자꾸 이러시면 경찰 부를겁니다..!!"

 

 

계속되는 강은찬의 횡포에.

 

보다못한 직원이 은찬이의 앞을 가로막으면..

 


..

 


어느덧 내 차례가 된 나는..


찬찬히 놈의 분노한 모습을 흝어본뒤에..


검사장을 향하여 발걸음을 떼어 놓았고...

 


..

 

 

잘있어라 이 꼴통아...

 

..무진장..보고싶을거다...

 

..하이튼 누가 꼴통 아니랄까봐..

 

아까 집에서 그 멋진 모습 마지막으로 남는듯 싶더니..

 


...

 

피식..


결국은 또 이렇게 나한테 웃음을 선사하는구나..

 

 

 


잘있어라 꼴통..

 

....진짜....눈물나게 보고 싶을거다.....

 

 

..

 


저벅..저벅..

 

난동부리는 은찬이에게 등을 돌리고..

 

한걸음..두걸음..멀어져 갈때..

 

 

 

 

...

......

 

 


"야.............."

 

...

 


순식간에..


내 온 정신을 갉아먹는 나즈막한 강은찬의 한마디..

 


...

 

 

그리고...

 

 

 

"야............."

 

 

 

나의 치명적인 실수를 곧바로 움켜쥐는 강은찬의 커다란 손.

 

 


'투두둑..'

 

...

 

.....

 

 

잠시후..


아니 잠시랄것도 없는 0.01초후..

 

 

 

내 목에 걸린 그 대빵만한 목걸이가..

 

그 무자비한 손안에서 튿어져 버리면..

 

 

 

 

 


"내가 바보냐............?^-^"

 

 

 

 

그 튿어진 목걸이와 함께..


나의 완벽한 일패를 알리는...


펄펄 끓어오르는 은찬이 목소리.


"안가!!!!!!!!!!!안간다고 이 새끼야!!!!!!!!!!!!!!!!!!!!!!안가아아!!!!!!!!!!!!!!!!!!!!!!!!!!!"

 

 

 

\ 인천 국제 공항.

 

 


바닥으로 팽겨쳐진 내 모자.


그리고 목걸이..


코트..

 

 

 

"시끄러 입 다물어!!!!!!!넌 진짜 몇대 맞을 각오 해라!!!!!!!!!!"

 

"니가 왜!!!!!!!!?내 몸 갖고 내가 간다는데 니가 왜!!!!!!!"

 

"입 다물랬다!!!!!!!!!!!!!!!!!!"

 

 

 

시끌시끌...


갑작스런 소란에 경찰들이 달려오고..


심지언 줄을 서있던 사람마저 합류해 이 개 난장판을 에워쌓고..

 

 

 

"개자식아!!!!왜!!!!!내가 간다는데 니가 왜!!!!!!!"

 


"그러니까 거길 왜 가냐고!!!!!!!!!!!!!!!!"

 

"내 마음이다!!!!!!!!!!!!!!"

 


"그럼 같이가!!!!!!!!!!!!"

 


"제발 어리게 굴지마 강은찬!!!!!!!보내준대매!!!!!!아깐 나보고 가래매!!!!!!!!!!"

 

"내가 형한테 가랬지 언제 뉴질랜드 가래 이 븅신아!!!!!!!!!!!!"

 


"니 형한테 안가!!!!!!!!!!!하루한테 안가!!!!!!!!!!"

 

 

 

악악..


악을 타고 흐르는 눈물..


은찬이의 억센 손아귀 탓에 빨갛게..


그러다 파랗게 멍이 들어버린 내 손목..

 

 

 

 


"여자분 놔!!여자 놓래잖아!!!!!!!!!!-0-"

 

 

그리고.


은찬이의 양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경찰관 아저씨 두명.

 

 


"아..놔봐요..."

 

"잠깐 좀 같이 가자!!"

 

"아 놔보라고..."

 

"같이 가..!!"

 

"좀 놓라고!!!!!!!!!!!!!!!"

 


...


...

 


콰당탕...


...

 


분노에 솟구친 강은찬의 팔이 두 사내를 바닥에 팽겨치면..


난 이때다 싶어 재빨리 여권을 움켜쥐고 입구를 향해 달아나..

 


...

 

 

려 했지만..

 

 


"아 어딜가 이 아줌마야..!!!!!"

 


...

 

 

재빨리 또 내 옷깃을 움켜잡는 강은찬의 떨리는 손.

 

 

 

"진짜 놔라..싸다구 팔백대 날라가기 전에.."

 

 

"형한테 가자.."

 

 

"..안가..놔.."

 

 

"지금 병원에서 뛰쳐나가서 없댄다..어디 갔는지 모른댄다!!!!!!!"

 

 

"난 갈거야..가서 일년동안 쉬다 올거야...인제 지긋지긋해.."

 

 

"너 형 좋아하잖아!!!!가서 보고싶다고 질질 짤래!!!!!?"

 


"여기서 짜는것보단 나!!!!!!!!!!"

 

 

"대체 왜 가겠다는건데!!!!!!!!우리 엄마가 안가면 죽인대!!!!!!!!?


너 아주 죽여버린대!?!?!"

 

 


이제 정말 막을도리도 없이..

 

어마어마한 구경꾼들이 우릴 에워쌓기 시작했고..

 

..

 

놈은..금방이라도 뭐든 다 때려부술듯한 표정이 되어 마구 악을 질러댔다.

 

 

 


"그런말 안했어!!내가 간댔어!!!냅둬!!니가 뭔데 지랄이냐!!!!"

 

 

"그러니까 왜!!!!!왜 가는데!!!!!!!!!"

 


"니 형땜에 간다 어쩔래!!!!!!!!!"

 

"하...."

 


...곧바로 터져나오는 은찬이의 한숨..

..

 

 


젠장..


벌써 두시 반이네..

 

 

 


"나 갈거.."

 

 

 


"형이 뭐..형이 대체 왜..그깟 싸움 한번 한게..비행기 타고 토낄일이냐..?


그리고 싸울때마다 딴나라 가면!!!!


신발 일년안에 세계 일주 하겠네!!!!!!"

 

 

 

"차라리 나도 싸운거면 좋겠어!!니가 내맘 알기나 해!!!!?"

 

 

"대체 뭐..!!!그럼 뭔데!!형이 헤어지쟤?!!?아니면 너 죽이기라도 한대..!?"

 

 


"내 친구 죽였잖아..."

 

 


악..


이를 악물고..


시선도 마주하지 않은채..눈물과 함께 흘러내린 그 한마디..

 

...

 

 

".....니 친구 누구...."

 


".........알잖아...알면서 왜물어..."

 

"니 친구 누구....."

 

"니 여자친구..."

 


"하..내 여자친구가 누군데..예란이..?"

 

".....4년전...니...여자친구...."

 


"..............................."

 


"다 알아..나도 다 알아..너 일본갔을때 다 알아버렸어..


그리고 걔 내 친구야!!!!!!!!!!내 하나뿐인 친구였어!!!!!!!!!!"

 

 

"..박.......윤........영........?"

 

 

 

작고 작고..또 작아져..

 

들릴듯 말듯한 은찬이의 그 한마디에..


난 썬그라스를 바닥위로 벗어던지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래.나 입양 되온 이유도.니 형이랑 바람났는것도.그래서 차타고 가다 죽어버렸다는것도.


다섯시에 전화한 새끼가 너라는것도..다 알았어..


알면서 너한테 숨긴거야.."

 

 

 

"너랑..걔랑..친구..였다고...?"

 

 


"그래.."

 

 


"너....입양 되온 이유는 뭔데....."

 

 

"쇼하지마...."

 


...

 

나즈막한 그 말과 함께.


옷깃을 꾹 움켜잡은 은찬이의 손을 뿌리치려 하면..


한층 더 거세지는 그아이의 손길.

 

 

 


"제발..놔라..은찬아..


나 좀 가자...나도..좀...가자..."

 

 

"너 지금 왼쪽 다리 부러졌던..그때 그사고..말하냐..."

 

 

"......그래...그래...


그래..!!!!!!!그 사고 말한다..!!!!!!!!!3월9일날 하루랑 윤영이랑 일어났던 그 사고 말한다!!!!!!!


내가 바본줄 알았냐!???????그딴거 하나 눈치 못챌 병신으로 보였..."

 


...

 

...

 

 

"너 이거 안놔..!?!?!?"

 


"................."

 


"야!!!!!!!!너 이거 안놔!!!!!!!!?!?"

 

 

 


다섯번째로 바닥에 떨어진 내 물건..


초록색 여권..

 

 

..

 

 

그리고..


거의 질질 끈다는 표현이 맞을만큼..


내 두 손목을 한손에 꽉 쥐고..


바닥에 벌렁 주저앉는 날 거침없이 잡아 끄는 강은찬.

 

 

 


"대체 저 인간들이 뭔 소리들을 하는거야..-_-..?"

 

"몰라..-_-..난 첨에 영화 찍는줄 알았는데.."

 

"암튼..여자가 토끼려다가 잡힌거 아냐..?형이랑 바람나서..?"

 

 


...

 

 

귓가에서 멀어지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난 더더욱 바닥위에 벌렁 나자빠졌지만...


그럴수록 말없는 강은찬의 손길은 더 거세져만 갔고..

 

 

 

"나 혀깨물고 죽어버린다!!!!!!!!!!!!!!!!!"

 

나의 그 협박성 고함이 구경꾼들의 머리를 더욱 세게 자극했을때.

 

..

 

어느덧 날 입구로 끌고 나온 은찬인..


까만 콜밴 안으로 나를 구겨 던져 버렸다.

 

 

 

"아저씨 방배동 장한맨션이요."

 

"네네...갑니다..."

 

 

...하..

 

진짜...이 새끼가 갈때까지 가보자 이거지...

 

 

 

\ 콜 밴 안.

 

 

 


"어어이!!-0-학생 뭐하는거요!!학생!!"

 

 

 

달리는 밴안에서 뛰어내리려고 문을 활짝 열자.

 

기겁하고 비명을 지르는 운전기사.

 

 


"신경쓰지 마세요 아저씨!!!얘가 밥대신 농약 처먹어서 그래요!!!!"

 

 

 

..그리고..

 

눈하나 꿈쩍않고 그 열린 문을 쾅 닫아버리는 강은찬.

 

 


"문 잠궈 버려요 아저씨."

 

"하이고 참..젊은 학생이 겁도 없이.."

 

 

..

 

이어서.


아저씨의 손에 의해 이젠 열수도 없게 되버린 문을 보며..


난 거친숨을 씨근덕대며 강은찬놈을 노려보았고..

 

..

 

놈은..태평스러운 표정을 다시 되찾은뒤에..물끄러미 나를 내려본다.

 

 

 

 

"아까 그 썬그라스는 또 뭐냐?..


아주 넌 날마다 오색찬란한 쇼를 제공하는구나."

 

 


"오늘 못가면 내일.내일 못가면 내일 모레.내일 못가면 그 다음날!!!!!!!"

 

 

"비행기 타고 싶으면 말을 하든가."

 

 


"장난하는거 아니야..


난 갈거야...더이상 이러지 마...난 누구 맘대로도 안움직여..내가 하고 싶은거 하고..


내가 가고 싶으면 가는거야..."

 


"일분만 늦었으면 큰일날뻔 했네."

 

 

"난 아무한테도 안 휘둘려....."

 

 


중얼중얼...

 

혼잣말하듯 계속되는 나의 그 말에..

 

운전기사는 두려운듯 어깨를 움찔해보였고..

 


놈은 창문을 열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은듯 눈을 감았다.

 

 

 

 

"박윤영..박윤영..그게 끝까지 말썽이구만.."

 

 

"넌 나한테 이럴 권리 없어.."

 


"양털 깎고 싶어 뉴질랜드 가게..?"

 


"헛소리 지껄이지마.."

 

 


"젠장..자다가 얼마나 놀랬는지..그 여잔 또 전화 목소리 왜케 깔어대.

 

'오 설이양.출국시간 3:15분이야.-0-.늦겠어.얼른 좀 서두를수 없어?

설마 자는거야-0-??'

 

완전 그게 뭐야..내가 받았음 새될뻔 했네.."

 

 


"....젠장...빌어먹을..미친새끼...


찰찐드기 호박엿 같은 자식....엿이나 쳐먹어라.."

 

 

 

"이건 진짜 날이 갈수록 입이 거칠어지네..!!

 

 


쿵.


머리위로 주먹을 먹이는 놈을..


여전히 꿋꿋히 노려보면은.....


그 시선이 좀 두려운듯.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리는 강은찬.

 

 

 


"무슨 여자 눈이 저러냐..호랑이 새끼 너댓마리는 난것처럼.."

 


"지금 어디 가는거야...."

 


"너 울리러.................."

 


"..웃기지마..난 안울어..."

 

 


증오 섞인 내 말에.


피식 웃음과 함께 담배를 무는 강은찬..

 

..

 


불을 붙일 생각은 않고..

 

입에 문 담배를 까딱까딱 거리며 장난을 치기 시작하는 강은찬.

 

 

 

"근데 너 입양되 온 이유가 뭐냐...?"

 


"헛소리 작작해.한마디만 더 하면 핸들 꺾어서 사고 내 버리는 수가 있어.."

 

 

 


피식..

 

은찬이가 계속 그렇게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는 사이..

 

겁먹은 운전수는 핸들 앞에 더욱 가까이 몸을 붙히며 조심스러운 밤운전을 했고..

 

...

 


난 그제야 강은찬에게서 시선을 돌린채로..

 

고요하고 외딴 도로를 바라보았다.

 

 

 


"이거."

 

 


그리고.


무릎위로 놓여지는 목걸이..

 

 


"바닥에 두고 올뻔했다.이 사진 한장뿐이 없는건데."

 


"..병신..두장 있는 사진도 있냐.."

 


"한장이야."

 

"...."

 


"그건 한장이야."

 


...


....

 

그 뒤로는 침묵 이였다..

 

은찬이의 그 슬픈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외롭고 새까만 콜밴은 방배동에 도착할때까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단 한마디도 건네 받을수 없었다.

 

 


"콜록콜록.."

 

 

반팔인탓에..


이따금 새어나오는 은찬이 기침소리를 제외하곤..

 

 

...

 

 

 


"다 왔습니다..장한 맨션 앞이에요.."

 

 

 

 


\ 장한 맨션 앞.

 

 

 

조심스런 목소리로 아저씨가 등을 돌리면.


히죽 웃으면서 만원짜리 몇장을 건네는 강은찬.

 


..

 

 


"야 내려.."

 

"................."

 

"내가 또 끌어낼까?"

 

"............"

 

"지금 내 손 잡고 싶어서 일부러 안내리지."

 

 


타앗.!!

 

그 말과 동시에 내가 밴 아래로 두 발을 착지 시키면.

 

시원섭섭한 미소를 짓는 강은찬.

 

 

 


"아 젠장 날씨 조올라 춥다!!!"

 

"빙신 반팔 입으니까 그렇지."

 

"니 덕분에 여길 다오네..."


"............"

 

 

한숨과 함께.

 

아까 그 마녀가 들린 곳의 딱 다섯배로 으리으리한 맨션을 올려다보며..

 

내 걸음을 재촉하는 강은찬.

 

 

 

 

 

"대체 여기가 어딘데........"

 

 

 

 

 


\ 장한 맨션.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5층을 누르고는..

 


왔다갔다..

 

손톱을 물어 뜯으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강은찬.

 

 

 


"나 여기서 자라는거냐.....?"

 

 

"낮짝 두꺼우면 그러던지......."

 

 

"......하루 있는거면..나 안가..."

 


"..............."

 

 

"니 얼굴 다신 안봐...."

 

 

"내 얼굴 다신 안보려고 공항 간거잖아"

 

 

"............"

 

 

"좀 심했다 너.."

 

 

"...뭐가.."

 


"아무리 그래도...그렇게 가려고 했던건....


됐다..관두자.."

 

 

 


띵.

 

 

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추며 문이 열리면..

 

나즈막한 그 한마디를 내 귀에 깊숙히 박아놓고는..

 

망설임없이 열린 문으로 나가버리는 강은찬..

 


...

 

그리고..

 

이번만큼은 놈에게 할말이 없어져버린 나역시..

 

 

천천히..


그 길고 넓직한 복도로 몸을 내려놓았다..

 

 

 

 

 

\ 장한 맨션 5층.

 

 

 


저벅..


저벅...


저벅.....

 

 

 

길고 긴 심호흡과 함께..


말없이 앞을 걸어가고 있는 강은찬..

 

..

 


그리고..

 


지나갈때마다 반짝반짝 불이 켜지는 신기한 복도를 둘러보며..

 

잠시나마 놓인 처지를 잊고선 그 뒤를 따르는 한설.

 

 

 


"대체 뭐냐고...뭐...


여기다 나 가두기라도 할꺼냐...."

 

 

...

 


분명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어딘가 분명 짙고 숨막히는 공포에 눌린 내가..


조금씩 떨려오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을때..

 

505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는 강은찬..

 

 

 

"...야....뭐냐......."

 

 

 


그리고..

 

기분나쁜 습한 공기를 뿌리치며 내가 그 앞에 다가섰을때..

 

안에서 들려오는 조그마한 웃음소리..

 

 

 

 

"여기가 어..디냐...안에..아는사람 있어..?"

 

 

"벨눌러."

 


"...뭐...?"

 


"니가 눌러라."

 


"....."

 


"니가 벨 눌러...."

 

 


고개 숙인채 그 말을 반복하는 은찬이의 모습에.

 

분명 이상한것을 느끼면서..


...

 


유독 이 복도만은 불이 켜지지 않고 칠흙같은 어둠이 깔려있는것을


수상쩍게 여기면서..

 

...

 

 

부들부들..

 


가느다랗게 떨리는 손을 벨 위로 가져다 놓았다..

 

..

 


그러면..

 

조금씩 더 크게 들려오는 그 여자의 웃음소리..

 

 

 

 

 


"꺄르르르륵..꺄르르르륵.."

 

 


숨넘어갈듯..

 

거의 찢어질듯 들려오는 그 가느다란 웃음소리..

 

 


쿵쿵.쿵쿵.

 


어딘지 섬뜩한 그 소리에..심장이 세게 죄여옴을 느끼면..

 

..이내 그 심장을 단박에 멈추어버리는 더더욱 기분나쁜 소리..

 

 

 

 

 

 


'삐그덕.......삐그덕..............

 

...........삐그덕..........삐그덕......................'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

 

....

 


삐그덕..하는 소리에 맞추어..

 

그 조그만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고..


이내 내가 두려운 시선을 등뒤로 옮겼을때..

 


..

 


어느새 단호한 표정을 한 은찬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야..잠깐만..!!"

 

 


말릴새도 없이.

 

문옆에 놓인 먼지묻은 그 벨을 힘차게 눌러버린다...

 


..

 


하...

 

 


순간..

 

참고 있었던 공포와 한숨이 바닥 위로 튕겨져 나가면..

 

 

..

 

 

 

'......'

 

 

 

뚝 멈춰버리는 그 괴기한 '삐그덕'소리와 웃음소리..

 

 

...

......

 


마지막으로...

 

...........

그 그친 웃음소리 위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천천히 가까워오기 시작하면..........

 

...........

 

나도 모르게 불끈 힘이 들어가는 두 주먹...

 


..


삐그덕..........

..

 

그때였다.

 

 

 

아주 조심스레 열린 그 문틈사이로..

 

단 일퍼센트의 빛도 없는 깜깜한 집이 조용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

 

 

 

단 일퍼센트의 빛도 없는..


그 지독하리만큼 컴컴한 집이..


거친 한숨소리와 함께 내 앞에 나타나 버렸다.....


삐그덕...........삐그덕..............

 

 

...........삐그덕...........삐그덕............

 

 

 

 


"누..구..세..요....??"

 

 

 

이게..어떻게 된거야...이 남자 대체 뭐야...

 

 

 

 

\ 장한맨션 505호 앞.

 

 

 

 

갑자기 들이닥친 현기증에 비틀대면..

 

재빨리 뒤에서 날 붙들어 매는 은찬이.

 

 

 

그러면..

 


...

 

 

그 어두컴컴한 집안에도 불이 밝혀지고..

 

이내 두번째로 날 미치게 만들었던 그 웃음소리가..

 

 

 

 

"꺄하하하하..꺄하하하..꺄하...."

 

 

 

거짓말처럼 뚝 그쳐버렸다.

 

 

 

 

 

"집에 좀 들어가도 되지"

 

 

 


멍하니 굳어버린 날 거칠게 옆으로 세우며..

 

그 삐그덕의 주인공에게 퉁명스레 말을 건네는 은찬이..

 

 


".......좋을대로......"

 

 

 

그리고..


신발장에서 아무 표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

 

삐그덕...삐그덕...

 

 

..

 

 

 

 

 

휠체어에 탄 남자가 거실로 들어가는 사이..

 

은찬인 말없이 내쪽을 한번 보곤..

 

남자가 사라진곳으로 까딱 고갯짓을 해보인다.

 

 

 

 

"이게 뭐야....저 남자가 누군데...."

 

 

"......"

 


"저 남자가 대체 누구냐고.....묻잖아..."

 

 

 

"아빠!!!!!!!"

 

 

 

 

 

그때였다...

 

 

...

 

 


은찬이가 거실로 날 질질 끌다시피 하여 데리고 왔을때..

 


그리고 휠체어 위의 남자가 빙글 뒤를 돌아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볼때..

 

 

...

 

 


그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휠체어의 남자에게 와락 안겨버린건...

 

 

 

 

 

 

"뭐야..저 거지가 여긴 왜..?야!!너 우리집에 누가 허락도 없이 들어오래..!?!?"

 

 

 

하...

 

.......

 


휠체어의 남자 뒤에 숨으면서..

 


날 향해 가느다란 고함을 지르는 웃음소리의 주인공..

 

 

 

 

 

 

'미라..'

 

 

 

 

 

그래...

 


...괴물집에서 보았던 그 미라다...

 

 

 

 

 


"방에 들어가 있어 미라야.."

 

 


"싫어 내가 왜!!여기 우리집이잖아!!저거 나가라고 해!!아까 하던 놀이 마저 해!!


응?아빠!!아까 하던 놀이 마저 해!!"

 

 

...

 

맞아..저 아이..은찬이더러 삼촌이라고 했었어....

 

...바보같이...왜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거지..

 

 

...

 


그럼..

 

저 남잔 뭐야...

 

은찬이랑..하루..가족이라는거야.......?

 

 

 

 

휠체어 위의 남자가 날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이..

 

그리고 은찬이가 인상을 구기면서 쇼파 위에 털썩 주저 앉는사이..

 

빠르게 내 머리속을 헤집는 몇가지 기억들.

 

 

 

 

 

 

앨범에서 보았던 그 정체모를 남자..12살 박이로 보이던 그 남자..

 

 


할아버지가 첫날 내게 했던 말..


'첫째랑 둘째는 안그래..'

 


....

 

마녀..그래..마녀가 한말도 있었어..

 

 

 

'너랑 주원이 좋으라고?'

 

...

 

.....뭐야....

 


이게 뭐야.....

 

 

 


"아빠!!!!!저 여자 쫓아내!!!!!!!!"

 

 

"들어가...."

 

 

 

"아빠 나랑 놀고 있었잖아!나랑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왜!!!!!은찬이 삼촌도 나가!!!


저 거지 왜 우리 집까지 끌어들여?!!!"

 

 

"너 또 맞아볼래!!!!!!!!"

 

 

"...................."

 


"후...."

 

 


"우아아아아아앙!!!!!!!!"

 

 

 

온몸이 떨리기 시작한 내가..

 

하루랑 좀 닮아보이는 그 휠체어의 사내를 바라보았을때..

 

 

 

그 사내는 미라를 향하여 악에 바친 고함을 내질러 버렸고..

 

그리하여 그 아인..

 

구석에 있는 작은 방으로 커다란 울음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그리고..

 

 

 

'삐그덕..........삐그덕.....................'

 

 

 

소름끼쳐 죽을것 같은 그 휠체어 소리와 함께..

 

꼼짝없이 얼어버린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

 

 


"...윤영이...동생...?"

 

 


"......"

 

 

"여기엔 왜 왔어..?나 벌주러..?나 욕하러..?나 몰아 붙이러..?!?!


아님 나도 죽이려고 왔어!!!!!!!!!!!!!!!!?!?!?"

 

 


"............"

 

 


눈동자가 반쯤 뒤집어 진채.

 

휠체어 위에서 몸을 마구 흔들어대는 남자..

 


...

 

 


확실하다..

 

...이제...

 


....모든게 확실해져 버렸다............

 

 

 

 


"걔 아무것도 모른다.그만해."

 

 

 

"..하하..뭐야..너도 참 오랜만이구나 강은찬..


사고 이후로 한번도 오지 않던놈이...."

 

 

 

"나도 여기 오기 죽기보다 싫어.


근데 쟤땜에.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쟤땜에.


어쩔수없이 들어온거야...내말 알았냐."

 

 

 

"..닥쳐..."

 

 


"잘들어라 한설.


여기 이 남자가 강주원.우리 첫째 형이다."

 

 


"......닥....쳐....."

 

...

 


거미줄이 칭칭 옭아매버린것 같다..

 

온몸을..온신경을..

 

저 남자의 푸르스름하고 퇴색된 눈안에 아주 꽉 옭아매 버린것 같다..

 

 

 

그래서 꼼짝할수가 없다..

...

 


휠체어의 남자가 마구 몸을 비틀어대는 이 순간도..

 

쇼파에 앉은 은찬이가 천천히 입을 떼는 이 순간도..

 

..

 

 

윤영이가 보인다..


저 남자 눈동자 바닥에 조용히 가라앉은채..


그애가 날 보며 눈물 흘린다..그애가 날 보며 미소 짓는다..

 


......

 


...........

 

 

 

"그때까진 참 사이가 좋았지.나랑.강하루.그리고 저 남자.우리 첫째형."

 

 

"...."

 

 


"근데 중학교 2학년때.하루한테 새 여자친구가 생겼어..이름은 박윤영.."

 

 


"......."

 

 

"내가 방금 얘기했지..사이가 참 좋았다고...


근데 나랑 하루가 특히 더 그랬어.한사람이 다치면 한사람도 아프고.


한사람이 기쁘면 한사람이 즐거워 날뛰고..그렇게..세상에서 둘도 없이..아끼고..또 아끼고.."

 

 

 

"....."

 

...

 


.....점점 더 차분하게 깔려가는 은찬이의 목소리....

 

 

 

..그리고...

 

모든걸 체념한듯 머리를 툭 떨군채..

 

조금씩 몸을 떨기 시작하는 남자..

 

 

 

 

"근데 그 여자가 나타나고 하루가 달라진거야.


내가 첫번째가 아니라.그 여자가 첫번째가 된거야.뭔말인지 알겠냐..?"

 

 

"......"

 

 


"니가 나랑 하루한테..


젤 기뻤을때가 언제냐고 물어봤던거 기억나냐..?""

 

 

 

"....그..래.."

 

 


"그럼 내 대답은.."

 

 

"4년전 그애가 나타나기 전까지.."

 

 


"누군가가 가장 미웠을때 내 대답은.."

 

 

 

"4년전 그애...."

 

 

 

"그래.4년전 그애 박윤영..."

 


....

 

 

 

머리가 하얘져..그랬다가 다시 까매져..

 

..차라리 하루동안 코막고 죽어 있는게 낫겠어..

 

지금의 내겐 차라리 그게 낫겠어.........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애를 내가 얼마나 원망하고..얼마나 질투하고.


얼마나 증오했는지..


단 하나 뿐이였거든...우리 집에서...날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은


하루형 하나뿐이였거든..."

 

 

"......그래서.....저 남자가...."

 

 


"어.저 남자가."

 

 

"하......"

 

 

 

"하루가 여자친구 생겼다고 온 집안에 자랑을 하니까.


밥 사줄테니 한번 데리고 나오라고 했겠지...


내 말이 맞냐..?"

 

 


천천히..

 

내가 거실 바닥위로 주저 앉아버리면..

 

여전히 날 뚫어져라 응시하는 그 남자에게..

 

비아냥 대듯 말을 건네는 은찬이..

 

 

 

 

".......미라가 들어...조용히 해...."

 

 

 


"내 기억엔 그때..


미라가 막 말을 시작했고....형수 나이가 22살...."

 

 

 

"윤영이가 먼저 엉겨 붙은거야!!!!!"

 

 

 

"엉겨 붙었든.형이 먼저 꼬셨든.

 

그래.어쨌든.하루가 중학교 2학년때.박윤영이 중학교 2학년때.

 

형이 25살때..그때..."

 

 


"..하아..."

 

 

 

"그때부터 형과 박윤영의 드러운 뒷바람이 시작되었습니다"

 

 

...


.....

 

 

그 말을 끝으로 담배를 입에 무는 은찬이..

 

 


그래서..저놈은 아무것도 몰랐다..

 

윤영이 얼굴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입양되어 온 이유도..


우리가 친구였다는 사실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니까.......

 

윤영인 아무 상관도 없었던 사람......

 

상관이 있다면..단지 형을 빼앗은 여자....

 

 

...

 

 


그리고...하루가 윤영이의 진짜 남자친구..

 

 

 

 

 

"걔도 참 대단해. 그 몇년을 어떻게 숨겼냐.?


하..그것도 그렇고 형도 대단하지..유부남이거든..


거기다 하루가 걜 얼마나 좋아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거든.."

 

 


"그년이 먼저 꼬리 친거야.."

 

 

"어쨌든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그년이..먼저..."

 

 


"강하루랑 박윤영.


뭔진 모르지만 하여간 기념일날.


두사람 다 고등학교 2학년 올라온지 얼마안됐을때...정확히 말해 3월9일..


그날..바보같은 강하루.우리 둘째형.."

 

 

..하....

 

잠시 이어지는 은찬이의 한숨..

 

 

 

"둘만의 언약식을 하기로 했는데..


그래서 강하루는 웨딩드레스 까지 다 준비하고


별장에 인형들 잔뜩 사다가 기다리고 있는데..."

 

 


...

 

꾸역..꾸역..

 

눈물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박윤영이 할머니네 집에 간다고 했다네.부산인가 그랬대지 아마.."

 

 

"..."

 

 

"별수 있냐 형이..?


그럼 늦게라도 오라고 별장에서 죽치고 기다린거지..


보일러도 고장나 얼어 뒤지기 딱 좋은 그 별장에서.."

 

 

"..........."

 

 

 

 

"근데 왠걸..그날 밤 집으로 전화가 한통 온거지..


충주에서 사고가 나서..첫째형 강주원이 병원에 실려갔다고.."

 

 


.......

 


...........

 

 


"그리고.같이 타있던 여고생 하나는."

 

...

 

 

잠시 말을 끊고.

 

입에 문 담배에 라이터 불을 갖다대는 강은찬..

 

 

 

 


"불에 타 죽어 버렸다고."

 

 

 


"....내가 아냐...그 기집애가 가자고 했어...먼저 충주 가자고.."

 

 

 

 

 

"못할게 없는 우리 아빠는..형수랑 미라한텐 모든 사실을 숨길수 있었지만...


....강하루만은 진실을 알수 있었어..


다행히 그때 그 전화 받은건 나였으니까..."

 

 

 

 

"............"

 


...

...

 


멍해진 내가...

 

이번엔 증오 가득한 눈으로 휠체어의 '강주원' 이라는 남자를 쏘아보면..

 


..

 

연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비스듬히 그 남자의 왼쪽 다리를 내려보는 은찬이..

 

 

 

 

"평생 못쓴다며.그 왼쪽다리."

 

 


"넌..내 동생..이야...그..만해.."

 

 

"그 날 이후로.우리집 완전 개박살 나버린거 알지."

 

 


".........."

 

 


"박윤영 나타나고..강하루랑 나...확실히 사이 틀어지긴 했지만..


그건 나만 참으면 끝나는 일이였어..


어쨌든 둘째형만 행복하면 되니까....


나 하나만 참으면..아무것도 문제 될거 없으니까.."

 

 


".............."

 

 


"근데 이거 알아...?"

 

 

...

 

 

후우...

 


두번째로 뿜어져나오는 은찬이의 담배연기..

 

...

 

그리고.


저 방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미라의 조그만 울음소리..

 

 

 

 


"지금이 일월이니까..


..그래..작년 3월9일...빌어먹을 3월9일..."

 


"..."

 

 


"그날 이후로..강하루가 한번도 웃질 않었어..


맨날 그 여자 얘기 하면서 행복해 하던 우리 둘째형이...


삐딱하긴 해도 친구들한테 늘 둘러쌓여 있던 우리 둘째형이..


웃는 모습이 젤로 끝내줬던 우리 둘째형이.."

 

 


"...."

 

 


"......밤마다 울었어......말시켜도 대답 안하고.......툭하면 손목 그어 병원에 실려가고...."

 

 

 

"..나도...힘들었어..."

 

 

 

"근데 그러면서 강주원 너한텐 욕 한번을 안했어..


그게 왜겠냐..."

 

 


"....제발 그만해..."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


그 여자가 사랑했던 남자라서."

 

 

 

"..............."

 

 

 

"자기가 죽을만큼 사랑했던 여자.

 

그 여자가 죽을만큼 사랑했던 남자라서..."

 

 


툭..

 


바닥으로 거칠게 던져지는 은찬이의 담배..

 


...

 

그리고...

 

미라 울음소리보다 몇배는 더 굵게 쏟아져 내리는 강주원의 눈물..

 

 

 

 

 


"그래도 한설 저거 나타나니까 웃대..


그래도 그때부턴 좀 웃대..."

 

 


...

 

 

 

피식..피식..

 


은찬이의 입가에서 웃음이 새어져 나오면..

 

..

 

난 이제 어떻게 할수도 없게 되버린 상황에 힘없이 무릎을 꿇어야 했고..

 

 

 

 

 

 

"근데 내가 저거 되게 좋아하거든..


저거 내가 되게 좋아하는 여자거든..."

 

 


...

 


그럼 은찬인..

 

아이처럼 마구 울고있는 강주원 어깨를 잡으며..

 

분노에 받친 말을 이었다..

 

 

 

 


"짜증나게..상황 더럽게 비슷하지..?"

 

 

 

"...."

 


"근데 나도 강하루 원망 못해.


욕도 못하고.질투도 못해..그게 왜겠냐..?응?"

 

 

 


"....."

 

 

 


"내가 죽을만큼 사랑하는 여자....


그 여자가 죽을만큼 사랑하는 남자라서..........."

 

 

 


".........흐..흐흐흑..."

 

 

 


"잘 들어봐.그럼 답 나올때 됐잖아..안그러냐..?"

 

 

 


"..흐흐..흐흐흐흐흑.."

 

 


"사랑하는 사람 행복 빌어주는 나랑 강하루가 정상이냐..


아니면...사랑하는 사람 불타죽게 내버려둔 형이 정상이냐.."

 

 

 

"...."

........

 

................

 

 


"제발 대답좀 해봐!!!!!!!!!!!!


그 사고 때문에 얼마나 꼬이고 꼬여버렸는지 알아!!!!!!!?


우리 집안 파탄난거!??그거 괜찮다 쳐!!!!그래 신발!!!!


어차피 다 같은 가족이니까 피눈물 흘리면서 용서 한다 쳐!!!!!!!!!!'

 

 

 

"..흐....으..."

 

 

 

"쟤는 어쩔건데...쟤말이야 쟤..제발 똑바로 봐!!!!!!


쟤..!!!!내가 사랑한다고 한 저 여자!!!!!!!


이제 쟤는 어떡할거냐고!!!!!!!!!!!!!!!!!!!!"

 

 

 

"....윤영아..."

 

 


"....뭐...?"

 

 

 

"윤영아....윤영아"

 

...


....

 


윤영이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을.


아니.한번도 만나주지 않았을 은찬이가..


...강주원의 말에 멍하니 넋 놓은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을때..

 

 


...

 

 

 

삐그덕..

 

닫혀있던 현관문이 열리면서.....

 


........

 

 

 

 

 


3번째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큰일났어 여보.하루가 병원을 뛰쳐나가서 소식이 없대..!!!"

 

 

 

 

 

 


...

 


.............

 


미쳤군..............

 


..............미쳤어...................

 

........

 


날보고 차라리...........

 

개가 되어 월월 짖으라고나 해...........

 

 

 

 

 


"어..?은찬이가 여기 왠일이야..?


설이도 왔네.......근데 이게 무슨소리야...?미라 우는소리 아냐...?


우리 딸 왜 울어..?..응..?"

 

 


"......."

 

 


"분위기가 다들 왜이래....

 

.미라야..!!미라야 엄마 왔어!!좀 나와봐..!!강미라!!어딨어..!!"

 

 


...

....

 

 

 

 

 

 

 


구석을 향해 점점 작아져가는 '오렌지 족'의 뒷모습을 보면서..

 

...

 

난 조용히 눈을 감아 버렸다..............

 

 

 


하루야..

 

...하루야....

 

미안해.......

 

미안해..강하루...

 

...강하루...

 

세상에서 제일 미안...

 


우주가 다 뻥 터져버릴때까지..

 


온힘을 다해서 미안...미안...

 

 

 


미안해..강하루..

 


"강하루!!!!!!!!!!!!!!!!!!!!!!"

 


...

 


......

 

 

 


\ 장한 맨션 앞.

 

 

 

젠장할...

 

.............

 


아무말도 할수 없고..아무것도 생각할수 없어서..

 

 

새벽 5시경.

 

주차장 위에 멍청히 주저 앉아 있으면..

 


...

 


찬공기를 맞으며 악에 바친 그 이름을 부르는 은찬이..

 

..

 

 


그리고 뒤엔 오렌지족과..


휠체어를 타고 나온 강주원이..

 

 

 


"차를 타고 가보자.일단 가볼만한델 생각해 보는거야..!!"

 

 

..하..

 

 

자신의 남편이 저지른짓을 꿈에도 모르는듯..

 

빨간 차 앞에 멈춰선채로 침착히 말을 꺼내는 오렌지족..

 

 


..

 

 

 

그래...이제 모든 비밀의 문이 서서히 열린다...

 

다섯시에 걸려온 전화..

 

'하루의 전화..'

 

 

 

 

'그 여자 뺏고..그 다음에 죽어도 돼..?'

 

 


하루가 말한 그 여잔..


강주원의 아내.....

 

 

아무것도 모르고 저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강주원의 아내이자 강미라의 엄마.

 

'오렌지 족'......

 

 

 


"인천이야.."

 

..

 


내가 멍하니 앉아..

 

꾹 잠겨있던 그 비밀의 문을 억지로 열고 있을때..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은찬이의 한마디..

 

 

 

 

"인천이라니..그게 무슨 말이야 은찬아..?"

 


"인천에 있다구요...."

 


"인천엔 왜...?"

 


"차 키 줘요.."

 


"나도 같이 가.."

 


"안돼요...여기 있어요..."

 


"미성년자가 대체 어떻게 운전을 해..!?난 못줘..!!절대 안돼!!"

 


...

 

....

 


단호한 표정으로 열쇠를 손안에 쥐곤..

 

나무라는듯한 시선으로 나를 보는 오렌지족.

 

 

 

"넌 대체 하루랑 무슨 사이야..


주원씨..저 애 좀 그래 난.."

 


"키 줘..."

 

 


"..뭐...?"

 

 

"내가 운전해서 갔다올게..키 이리 내..."

 

 


"그게 무슨 어처구니 없는 소리야..주원씨 다리도 그래서.."

 

 

"5개월간 집에 코빼기도 안비춰놓고...


...그래...하루 없어지니까 그제서야 뛰어 들어와...?"

 

 


"........"

 

 


"키 달라고 했지...가서 애나 보살펴..놀래서 울고 있으니까.."

 

 

"...그래도.."

 

 

"이리 내!!!!!운전도 못할만큼 망가지지 않았어!!!!"

 


...


....

 


짤랑...

 

 

고개를 가만히 들어 그 두사람을 노려보면..


강주원의 손위로 떨구어지는 은색 차키..

 

 

 

그리고.

 

나와 은찬이가 동시에 입을 열어 그를 저지하려는 찰나..

 

...

 

슬픈 표정으로 말을 흘리는 강주원..

 

 

 

 


"3월9일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했어..


사실 이건 우리 두사람 일이야.."

 

 

"그렇.."

 

 


"당사자들 외엔 누구도 매듭 지을수 없어..


어차피 언젠간 터질 일이였어..."

 

 

"....."

 

 


오렌지 족이 대체 무슨 말이냐는듯 우릴 번갈아 보는 사이.


휠체어를 능숙하게 이끌고 운전석을 향해 다가가는 강주원.

 


..

 


그리고..

 

마주치는 나와 은찬이의 힘겨운 시선..

 

 

 

 


"하루..아무일 없을거야...."

 


"절대로 없어."

 


"가자."

 


"그래.."


..

 


탁...

 


나와 은찬이가 뒷좌석에 올라탄뒤 문이 닫기면..

 

...

 

점점 뿌옇게 느껴지는 강주원의 뒷통수..

 

 


부릉부릉..

 

 

 

 

그리고..

 

차는 인천을 향해 출발했다..

 

 

 

 

\ 오렌지 족 차.

 

 

...

 

 

30분째..

 

...

 

 

아무 말없이..

 

음악도 틀지 않고서..

 

점점 밝아오는 새벽해를 맞으며 운전에만 몰두하고 있는 강주원..

 

 

 

그러면 은찬인 미세하게 떨려오는 내 손을 꾹 움켜 잡아 주었고..

 

난 그런 놈의 옆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어볼거 있는데...그래도 되냐..."

 

 


아직 비밀 문이 몇개 더 남았어..

 

 


"그래.."

 

 

"....그 노래..어떻게 알았어..?"

 

 

"뭐."

 

 

"외톨이의 사랑.."

 

 


"형이 가르켜 준거야...매일 집에서 흥얼 거렸으니까..그 여자 죽고 나서도..


그 노래 부를땐 목소리가 밝았거든.....


근데.... 니가 그 노랠 어떻게 아냐...?"

 

 

"그럼...소중한 사람을 뺏겼다는말은...하루를 말한거였네.."

 

 

 

"그...래..."

 

 


"...넌 정말...윤영이 얼굴 모르냐...?"

 

 

 

"앨범에 사진 있다는데 들여다 보지도 않았어.


장례식장도 당연히 안갔고..


그땐 정말 세상에서 걔가 젤 싫었으니까.."

 

 


"그럼 4년전 그 운정중학교에서 본게..하루였을까.."

 

 


"너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야..니가 형을 언제 봐.."

 

 

"이용당해서 익숙하다는 말은!!그건 대체 뭐였는데..!?!"

 

 


아직까지도 굳게 닫혀있는 문탓에.

 

난 굳어버린 은찬일 향해 그 의미심장한 기억들을 되물었고..

 


그 물음에..


은찬인 재빨리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중얼...입속으로 그 한마디를 웅얼 거렸다..

 

 

 

 

 

"다른 사람이야..이 일이랑은 전혀 관계 없는.."

 


"누군데..!!?"

 


"야.너 내가 묻는말엔 대답 안할래?!!"

 

 

 

대뜸.


안색을 바꾸며 버럭 고함을 치는 은찬이.

 

..

 


운전하던 강주원이 돌아볼만큼..

 

그래...

 

...3월9일 이후로..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그가..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볼 만큼...

 


..

 

 

 

"뭐 말야..."

 

 

"니가 그 노랠 어떻게 아냐고.박윤영은 또 어떻게 알고.


그 사고 내용은 누구한테 들은거냐..!?또 너 입양되온 이유는 뭐고!!"

 

 

........

 


...............

 

 

 

"그냥..친구였다.."

 


"누가.."

 

 

"나랑 박윤영이..."

 

 

"친...구...?"

 

 

"그래..예전에 좀 알았어..그 사고도 그래서 알게 된거고..."

 

 

"내 머리로는 이해가 좀 안간다..."

 

 


"하이튼 그래..그래서 3월9일의 그 사고는 나한테도 의미가 아주 크다.."

 

 

 

그 말과 함께..

 

똑바로 강주원의 뒷통수를 노려보면은..

 

지금 막 지나친 톨게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은찬이.

 

 

 

 

"엿같은 우연이네..하필이면..."

 


"...그러게.."

 


"그럼 니가 입양되온 이유는..."

 

 

"........."

 

 

"그건 뭔데..."

 

 


"너 윤영이 얼굴 한번도 본적 없댔지.."

 

 

"어...."

 

 


"나중에...이 다음에...사진 한번 봐라..."

 

 

"그게...무슨뜻이야...?"

 

 

"........................."

 

 


"나도 다 말했는데 치사하게 이럴래!!!!!"

 

 


"제발...나 지금 머리가 터질거 같다..


차라리 모르는게 나..


이 얘긴 나도 다시 꺼내기 싫고..너도 차라리 안듣는게 나을거야.."

 

 


".....젠장..사람 또 환장하겠네..."

 

 


벌렁..

 

의자 시트에 몸을 기대버리는 강은찬..

 

...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르면..

 


점점 더 속력을 더해가는 빨간 자동차.

 


'강주원' 이 운전하는 빨간 자동차.......

 

....


........

 

 

 

"정말...그랬어요...?"

 


"...."

 


"정말..윤영이 발로 밀고 혼자 나왔어요...?"

 


"후...."

 

 

"지금은 꾹꾹 참아요 내가.뺨이라도 몇천대 갈기고 싶지만.


같이 바다속으로 첨벙하고 싶은 심정이지만..지금은 참을거에요..알았어요.."

 


"...."

 


"하루 무사한거 확인되면.그 다음에 아주 독하게 갚아줄게요."

 

 


"....."

 

 


"그리고 만약 하루한테 무슨일 생겼다면.그 다음엔 당신 죽이고 나도 죽을게요."

 

......

 

...........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줄 알아..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마 꼬맹아..


그 상황이 되면 누구나 그랬어...말이면 쉽지...


그건 현실이야..죽음은 현실이였어..하루는 뭐 달랐을것 같아..?"

 

 

 

 

차창 너머로 검푸른 새벽바다가 가까워 올때..


조금씩 엑셀에서 발을 떼며 차갑게 쏘아 붙이는 강주원.

 

 

 

그러면 시트에 널부러지듯 기대있던 은찬이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지르려 하고..

 

난 그런 놈의 입을 재빨리 막으면서..그 대책없는 남자를 힘없이 바라보았다.

 

 

 


"하루한테 더더 미안해진다...


너같은 놈한테 뒷통수 맞은 하루..


위로는 못할망정 오해하고 욕하고 매몰차게 대한게 자꾸 자꾸 생각난다.


죽을때까지 빌어도 모자라겠다...죽을때까지 울어도 모자르겠다.."

 

 


"..........."

 

 


"야 지금 알았으면 됐지 뭐!!!!오해한게 잘못이냐?


오해하게 만든 사람이 잘못이지!!!!!!"

 

 

 


푹..

 

무릎위로 고개를 묻은채 내가 눈물을 감추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커다란 목소리로 위로를 해주는 은찬이..

 

 

 

 

 

"....윤영인 대체 왜....대체 왜....."

 

 

 

끼이이이이익..!!

 

 

 

그리고.

 

내가 윤영일 향한 원망과 동정을 토해내고 있을때..


낯익은 건물앞에 신경질적으로 멈춰서버린 오렌지 족의 빨간 자동차.

 

 

...

 

 

 

"난 여기 있을테니까.니들이 갔다와.."

 

 


...

 

 

 

투유였다..

 


얼마전 내가 다녀갔던 투유 앞에 차를 세우며...

 


강주원은 한탄하듯이 자신의 왼쪽 다리를 바라보고..

 


그 파랗게 녹슨 한마디를 내던졌다..

 

 

 

 

 


"하루야..!!!!"


"형!!!!!!!!"

 

 

 


\ 투유 앞.

 

 

 


동시에 그 이름을 외치며.

 

다급하게 차에서 뛰어내린 우리 두사람..

 

 

 

 

바스락.바스락.

 

 

 


그리곤 마당에 깔린 자갈을 지저밟고.

 

거칠고 횡량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투유의 문앞으로 달려간다.

 

 

 

'탕탕탕탕!!탕탕탕탕탕!!!'

 

...

 

....

 

 


AM 6:30분.

 


..

 

이른 시간인건 알지만..

 

무언가 단서를 얻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그렇게 무작정 문을 두드려대면..

 


..

 

 

삐그덕..

 

문이 열리면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미는 반가운 주인 여자.

 

 

 


"무슨..일..."

 


"여기요 혹시..남자 못봤어요..?!근처 서성이는..!!"

 

 

".....글쎄요......"

 

 

"키 크고요..병원복..그래 병원복이요..!!!"

 

 

"아..병원복..."

 


"봤어요?!!"

 

 

"아까 옆에 낚시대 집 아저씨가..환자복 입은 유령을 봤다면서..


우리 가게로 달려오긴 했었는데.."

 

 

 

환자복 입은 유령..?!

 

....


나 원참 미치겠군...

 

 


"저기 근데 무슨일인데 그래요..!?!"

 

 


등뒤에서 주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우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섰다 하며


투유의 자갈깔린 마당을 뛰쳐 나왔고..

 


...

 

 

 


'빵빵'

 

 

클락션 울리는 빨간 자동차를 지나쳐.

 

투유 오른쪽에 세워져 있던 허름한 낚시대 가게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

 

 

...

 


....

 


다행히 잠들지 않았던듯..

 

...

 


나와 은찬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전에 불쑥 열리는 미닫이 문.

 

 

 

"누..누구여..!!ㅠ0ㅠ.."

 

 


그리고.

 

투유 여주인의 말을 고스란히 증명해주듯.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는 육십대 가량의 체구 작은 할아버지.

 

 

 


"여기요 할아버지!!!!!병원복 입은!!!!!!!"

 

 

"응응!!"

 


"걔 보셨어요!??!"

 


"유령이여!!바로 그놈이 유령이여!!"

 

 

"유령이 아니에요!!!!!!"

 

 


"아이구 유령이여.바닷가에 가만히 서서는..중얼중얼.."

 


"걔 어딨어요!?!?!?"

 

 

"유령이 가버렸어...!!"

 

 

"가다뇨!?어딜요!!!!!!!"

 

 

"두시간 전쯤에.그니까 방파제에 서서 왔다갔다..중얼중얼 그 말만 되풀이 하길래..


쏜살같이 달아나서 가만히 지켜보니까.."

 

 

 


...

 

.....

 

 

점점 하얗게 바래져가는 얼굴.


귓속으로 생생히 전해져 오는 기절 일보 직전의 심장소리.

 

 

 

 

"요기 차도로 나와가지곤 택시를 잡잖어.."

 

"...하....제발..."

 


...

 

....

 

 

스륵...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내가..바닥에 맥없이 주저 앉아버리면..

 

할아버지의 양 어깨를 꽉 움켜잡고 더더욱 목소리를 높히는 강은찬.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난 몰러 몰러..유령이여 유령..ㅠ0ㅠ.."

 


"...신발...대체 뭐야...여기 말고 어딜 갔다는거야.."

 


"....나는..들어가 잘테여..."

 

 

...

...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눈물이 흘러내릴때..


할아버진 겁먹은 눈으로 등을 돌렸고....

 

..

 

 

순간..


번개처럼 스친 한가지 생각에.


난 재빨리 몸을 일으켜 할아버지의 옷깃을 억세게 움켜 잡았다.

 

 

 

 

 

 

"대체 나한테 왜이랴!!!!!!!ㅠ0ㅠ!!"

 

 


"중얼중얼..!!"

 


"ㅠ0ㅠ..."

 


"중얼중얼 뭐라고 했어요!???????!?"

 

 


"그놈이 유령이여..."

 


"유령 아니에요!!!!!!!!!유령 아니라잖아요!!!!!!!!!!"

 


"유령이여....ㅠ0ㅠ...."

 

 

"중얼중얼 했다면서요!!뭐라고 했냐구요!!!!!!!"

 

 

"그 말 하면 나 놔줘야혀.."

 

 


"알았으니까 제발..빨리좀 말해봐요!!!!!!!!!!"

 


...

 


.......

 

 

나의 그 고함이 마구 몰아쳐온 바닷바람을 산산조각 내버렸을때..

 

더듬더듬..

 

할아버지 입에서 새어나온 하루가 남기고 간 그 말..

 

 

 

 

 

 

 

 

 

"거기가면..너..있나.."

 

 


"..............뭐라구요..."

 

 

"거기..가면........너....있...나...."

 


...

 

....

 


.......

 


"인제 됐지?난 들어가 잘테여!!ㅠ0ㅠ!!"

 

...

 

 


드르르륵..쾅..!!


...

 


미닫이 문이 닫기고 나면..

 

전혀 다른 표정을 얼굴에 떠올린 나와 은찬인.

 

강주원이 탄 차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고...

 

 

 

 

 

 

 


"왕십리!!!!!!!!!!!!!!!!!!"

 


"남양주!!!!!!!!!!!!!!!!!!!!"

 

 

 

 

\ 오렌지 족 차안.

 

 

 

...하아...

 

...하아...

 

 

 

땀과 눈물로 뒤범벅된 내가.


그 목적지를 외쳤을때...


역시 그 표정만큼 전혀 다르게 터져나온 강은찬의 목적지.

 

 

 

 

"...하루가..여기 없대...?"

 

 

 

그리고..

 

당황한듯한 표정으로 강주원이 뒤를 돌아보면..

 

..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나와 은찬이의 실갱이.

 

 

 

 

"남양주야!!!!!!!!!그 여자 만나러 간댔잖아!!!!!!!박윤영 죽던날 기다리던 그 별장이라고!!!!"

 


"왕십리야!!!!!!!!!나랑 꼭 끌어 안고 잔 유일한 장소야!!!!!!!!!!


내가 추울때마다 갈때 없을때마다 거기 간다고 했단 말이야!!!!!!!!!!분명히 거기야!!"

 

 

 

"너 걔랑 꼭 끌어안고 잤냐!???????!!!!"

 

 

"지금 그게 문제야!!!!?!!왕십리.왕십리로 가요!!!"

 

 

"야!!!박윤영이라니까!!!"

 

 

"나야!!!"

 

 


"하 미치겠네..늦으면 큰일나 병신아..!!!일초라도 늦음 안돼!!


남양주야.남양주로 가..!!"

 

 


점점 거세어가는 우리 두사람의 고함소리.

 

 

 

 

 


"왕십리야.거기 비닐하우스!!!거기 가면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래도 박윤영이야..!!!고집 부리지마..!!"

 

 

"그건 니가 몰라서 그래..!!"

 

 

"내가 더 잘알지!!난 계속 같이 살았는데!!"

 

 


아니야.


병원에서 분명 그랬었어.


이젠 그 여자 와도 한설이라고..


우주가 다 터져도 한설이라고...


사랑하는거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왕십리야.지금 급해.고집 피우지마..왕십리로 가요.."

 

 

"확실한거지.."

 

 

"그래요.왕십리로 가요..!!!"

 

 

 

거듭되는 나의 고함에.

 

천천히 차에 시동을 거는 강주원.

 

 

..그리고..

 

그의 멀쩡한 오른발이 엑셀위에 천천히 올라가면은..

 

 

 

 

"그럼 난 남양주 갈테니까.니가 왕십리로 가.됐지."

 


...


....

 


굉장히 화가난 목소리로.

 

문을 열고 다리를 밖으로 내리는 강은찬.

 

 

 


"뭐하는거야 지금..!!"

 

 

"그게 낫잖아!!!!!!!만약에 갔다가 아니면!!!!!!둘다 동시에 가는게 낫잖아!!!!!!!"

 

 

"야!!!!!!!강은찬!!!!!!!!!"

 

 

"남양주야...아직 너 아니야...


남양주야...."

 

 


"고집 피우!!!!!!!!!!"


...

 

.........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


차 밖으로 완전히 튕겨져 나간채로..


마주 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은찬이..

 

 

 

 

 

"하..대체 정말 왜 저래 저자식이!!!!!!!!"

 

 


"인정하기 싫은거지.."

 

 

"뭐요.!?!"

 


"강하루가.윤영일 깨끗히 잊은거.그래서 완전히 너한테 와버린거.


그걸 인정하기가 싫은거야.."

 

 

"저 자식 대체 뭘 어쩌려고!!택시비만 얼만데..!!"

 

 


..

 

그렇게 때아닌 택시비 걱정을 하고 있으면.


이미 은찬이가 탄 검정색의 택시는 앞을 가로지르며 저만치 멀어져갔고..

 


...

 

 


그에 강주원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엑셀을 밟아갔다.


..

....

 

 

 

 

'완전히 너한테 와버린거.그걸 인정하기가 싫은거야..'

 

...

 

 

귓가를 뱅뱅 맴도는 강주원의 그 한마디..

 

....

 

 


왕바보..왕단순...

 

이 상황에서 그걸 따지면 도대체 어쩌자는거야....

 

 

 

 


...

 

아니면 정말 남양주인가..

 

내가 괜히 고집 부리고 있는건가..

 

...

 

 

 

 

환자복의 하루 얼굴..


그리고 그 위로 겹쳐지는 손목의 상처들..

 

 

 

"..하..제발.."

 

 

 


그렇게..


창가에 얼굴을 갖다대며 간절한 기도를 드릴때..

 

 


빠르게 도로를 질주하던 강주원이..

 


아주 천천히 입을 떼내어..

 


무디고 무딘..그래서 지나칠만큼 멍하게 느껴지는그 한마디를 건넸다..

 

 

 

 


......

 

..........

 

 


"그러고 보니...그때랑...같네...."

 

 

".............무슨말이에요..."

 

 

"3월9일....."

 

 


"당신 미쳤어요..?당신이 지금 그 말 지껄일 군번이야!!!?"

 

 

 


"다시 만나서 반가워 윤영아"

 

 

 

 

.......

 

............

 

 

 


미러를 통하여 비춰지는 강주원의 미소짓는 얼굴..

 

 


....

 

 


그러면 나 역시....


그 서른 아홉배로 태연하고 잔인한 미소를 놈에게 지어 주었다.

 

 

 

 

 

 

미안하지만 난 윤영이랑 달라..


알아 듣냐.이 새꺄..


난 강하다고.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우우웅.

 

 

 

\ 경인 고속도로.

 

 

시속 160km.


살짝만 핸들을 꺾어도 차가 뒤집힐것 같은 속도...

 

...

 

 

 

"그때도 이랬지.그때도 이렇게 빠르게 달리고 있었단 말이야.."

 

 

 

차창밖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을 쏘아보다가.


다시 한번 강주원의 뒷통수를 쏘아보면은..


...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 놈.

 

 

 

 

 

"왜..윤영이 너도 그래..?내가 널 단지 갖고 놀았다고..?


그게 전부야..?너도 그게 전부야..?"

 

 

"한설."

 

 


"하루도 널 잃었겠지만 나도 널 잃었어!!!!!!!!


그게 다가 아니야...전부가 아니란 말이야!!!!!!!!!!!"

 

 

 

"난 한설이다.."

 

 

 

..

 

 

나의 묵묵한 대답에 점점 거세어지는 강주원의 숨소리..

 

그리고 더욱 빨라져가는 차의 속도..

 

 

 

 

"하루종일 집에서 니 사진을 들여다봐....


회사 물려받겠다는 꿈은 이미 접은지 오래야...


난 이제 내 힘으로 걸을 수도 없게 되버렸으니까..


하하하..맞아..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니까..이제 다 끝나버렸으니까.."

 

 


"배부른 소리 하지마...윤영인 죽었어...


그딴 헛소리도 지껄일수 없게 죽어버렸단 말이야..."

 

 

 


"용서하지 않았어..윤영아..?나 용서 하지 않았어..?


아직도 나 원망해..?아직도 나 미워해...?"

 

 

 

"앞 똑바로 봐!!!!!!!!!!!!!!!!!"

 

 

 


순간.


멍해져버린 두 눈으로 놈이 고개를 틀어버리는 덕분에..

 

 

 

끼이이이익.!!!

 

 


차는 뻥 뚫린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서 중심을 잃은채 비틀거렸고..

 

..

 

 

놈은 재빨리 핸들을 바로잡으며 또 한번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니가 이렇게 올줄은 몰랐는데 말이야..좋아..다시 한번 해보잔 말이야..


말해봐.내가 어떻게 할까..남은 다리 하나도 분질러 버릴까..?"

 

 

 


"헛소리 작작하고 차나 똑바로 몰아."

 

 

 

 

'빵빠앙!!빵빠앙!!!!!!!!!'

 

입술을 꾹 다문 나의 말에.


미친듯이 클락션을 두드리는 강주원..

 

 

 

..이자식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날 윤영이로 착각하고 있어..

아니.

윤영이를 나로 착각하고 있어...

 

 

 

 


"그날 말이야..실은 그날..하루가 왔었어..하루가 왔었단 말이야.."

 

 


"제발 그만 나불 거리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그놈이 자주 아팠단 말이야..감기가 자주 걸려서..그래..아팠는데..


아무도 보살핀적이 없으니까..늘 혼자 끙끙 앓았어...


걱정하면 안된다고 니앞에선 내색 한번 안했었지만.."

 

 

 

"후우.."

 

 

"그럴땐 늘 나한테 전활 했는데....


그날은 내가 계속 받지 않았어......너와 함께 있었으니까....기억나지....?


니가 반장 됐다고 자랑하던날 말이야..."

 

 


"한설!!!!!!!분명히 한설이라고 했다!!!!!!!!"

 

 


"너희집에서...단둘이 파티를 하던날..."

 

 

 

"젠장..완전 맛이 갔구만.."

 

 

 

 


표지판에 써있는 '왕십리' 라는 선명한 세글자와..

 

넋나간듯 웃음을 흘리는 강주원의 얼굴이 겹치면..

 

...점점 더 나즈막하게 깔려가는 놈의 목소리...

 

 

 


"하루는 그날 알아버렸어......

 

너 죽기 2년전 그날부터.....이미 모든걸 다 알고 있었어...."

 

 


....

 


.......뭐........?

 

 

 

 

"슈퍼에 다녀온다고..내가 문을 열고 나왔을때..


...네가 반갑게 날 배웅했을때...


그애가 엘리베이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날 보고 있었어..."

 

 

 

"잔인한 인간들....."

 

 

 

"그때 마주친 그 힘없는 시선...아직도 이렇게 선명한데...


왜 그놈은 나한테 욕 한마디 안한걸까.."

 

 

 

"당신한텐 도저히 뭐라고 할말이 없다..."

 

 


"그래서 난 결국 가장 아끼던 두사람을 잃었는데..."

 

 


"차 세워."

 

 


"니가 이렇게 다시 와주었네....."

 

 


"너같은 놈이랑 같은 공기 마시고 있다는게 끔찍해...


당장 차세워!!!!!!!!!!!!!!!"

 

 

 


귓가에서 하루의 눈물 소리가 조금씩 커져가면.


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놈의 어깨를 마구 잡아 흔들었고..

 

 


..

 

 

그때 이미 눈앞에 포착된 190kmd의 속력은..


설마 했던 그 끔찍한 상상을 눈앞으로 성큼 앞당겨 버렸다.

 

 

 

 


"많이 힘들었지..이제 같이 가자.."

 

 

"죽는 한이 있어도 너같은 새끼랑은 같이 안가!!!!!!!!!!"

 

 

 

"많이 추웠지.....


많이 외로웠을거야....근데 이젠 괜찮을거야....이제 괜찮아...."

 

 

 

"강하루 기다려!!!!!!!!!!!!!나 기다린단 말이야!!!!"

 

 

 

"너 나 데리러 온거 잖아.....


나 벌주러..혼자 살아남은 나 벌주러..내가 운전하는 차에 다시 올라탄거잖아.."

 

 

 

말도 안돼...


나 정말 이새끼랑 같이 꽥꼬닥 해버리는건 아니겠지..


아무리 재수 없고 악병균 인생 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만약 하늘에 내 삶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개새꺄!!!!!!!!이건 너무 하잖아!!!!!!!!!!!!!!!!!!!!"

 

 

"마주오는 트럭이 없네...오늘은 마주오는 트럭이 없어...^-^..."

 


"일단 세워봐!!!!이건 누구한테도 옳은 방법이 아니야!!!!!!!!"

 

 

"하긴..꼭 둘이 부딪혀야 터지는건 아냐..

원래 혼자 터지는게 더 무서워...그게 더 뜨거운 법이거든..."

 

 


"빌어먹을..."

 

 


너랑 이 안에서 얌전히 죽느니


차라리 나 혼자 개처럼 죽어버릴거야...

 

 

 

'달칵달칵'

 


...


.....

 


그렇게 막바지로 접어든 결정에.


차가 낯익은 왕십리 근교에 접어들었음을 느끼며


땀에 흠뻑 젖은 손을 문고리에 가져갔을때..

 

 

...

 

 


"빵빵!!빵빵빵!!!"

 

 

 


차 뒤에서 다급하게 울려오는 클락션 소리.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주길..............."

 

 

...


....

 

 

강주원의 입에서 흥얼흥얼 새어나오는 그 노래에..


잠시 넋을 잃고 놈을 바라보다가.


다시 퍼뜩 정신을 차려 창문 사이로 고개를 불쑥 내밀면..

 

 

 

 


"야!!!!!!!아주 뒤질려고 작정을 했냐!!!!!!!!!?


엑셀에서 발 떼라 그래!!!!!!!아 빌어먹을!!!!!!!미쳤어 저 인간들이!!!!!


아저씨 더 좀 밟아봐요!!!!!!!"

 


...

 

 


순간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까만 택시 한대.

 

..

 

 

 

 

"강은찬!!!!!!!!!!!!!!??!"

 


"브레이크 밟아!!!!!!!!!!!!!!!!!"

 


"사고 내려나봐!!!!!!!!!!!!!!!어떡해!!!!!!!!"

 

"뭐!?!?!?!?!?"

 

"사고!!!!!!!사고 말이야!!!!!!!!!!!!!"

 

 

 

창문 사이로 나온 은찬이 얼굴이 점점 멀어지면..


난 다시 그 홱까닥 돌아버린 강주원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


"외톨이의 눈물을.."

 

 

놈은 점점 더 평온한 표정을 되찾으며 여전히 그 빌어먹을 노래를 되뇌이고 있었다.

 

 

 

"은찬이는 남양주 간거 아니였나...^-^...."

 

 

"하....정말 미치겠구만....."

 

 

"왜 왕십리로 왔지..."

 

 

"은찬아!!!!!!강은찬!!!!!!!!!!!!!!"

 

 

"슬프다..삼형제가 한여잘 좋아하는건가...."

 

 

 


정확히 말하지만 시속 190km.

 

창밖으로 고갤 내밀어봤자 어마어마한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뜰수가 없다.

 

그러나 불러야 한다..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

 

 

 

 

"강은차안!!!!!!!!!!!!!!!!!!!!!!!!!!!"

 


...


...

 


".....!!!"

 

 


멀리서 들려오는 은찬이의 목소리..

 

그리고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은찬이의 얼굴..

..

 

그렇게 점점 작아지는 택시를 보며..

 

난 들릴턱이 없는 그 아이의 이름을 마구 고함쳐 불러댔고..

 


..

 


바로 그때..

 

 


"하지만..어떤 책에서도 그렇듯..


결국은 첫째아들과 영원한 행복을 함께....."

 

 

 


심장을 철렁하고 내려놓는 그 한마디를 내던지며


핸들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러니까 강주원이..

 

고개를 돌려 씨익..날 향해 미소짓고는..

 

눈물 한방울과 함께 핸들에서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다...

 

 

 

 

"......"

 

 

 

탁..

거짓말처럼 막혀버린 숨.


..

 

 


그리고 빠르게 머리를 스치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

 

 

 

 

희미한 엄마 아빠..그리고 유민이의 얼굴..


아주 활짝 미소 지어주던 나나언니의 얼굴..


자상한 할아버지..재밌는 찬영이..


애니몰 패밀리..못된 꼬맹이 강미라..


똑같이 슬픈 오렌지족...그리고 예란이...

 

 


"하루...은찬이......하루.............


...은찬이................."

 

 

 


마지막으로 되뇌여 보는 그 이름..


지금 막 창밖으로 스쳐온 비닐하우스와 함께..


내 눈을 질끈 감겨 버린 그 이름..

 

 


....

 


저기 있을텐데..

하루 저기서 나 기다리고 있을텐데...

 

...윤영이도 이렇게...


한설도 이렇게...

 

 

 

이제 겨우 오해가 다 풀렸는데..


나 아직 미안하단 말도 못했는데...


바보같이..사랑한단 말도 한번 못해 봤는데.....

 

..

 

 

귓속에서 점점 커져가는 강주원의 흐느낌..


눈앞에서 점점 가까워가는 2층짜리 낡은 건물..


가슴속에서 점점 부풀어가는 하루와 은찬이..

 

 

 

멍청이 강브라더스...


나 때문에 늘 울기만 한..왕바보 왕단순 강브라더스..

 

 

 

 

 

"콰아아앙!!!!!!!!!!!!!!!!!!!!!!!!!!!!!!!'

 

 

 

 

그렇게.


하늘위로 구경나온 아침해를 요란스레 두동강 내며..


그 모든 체념들은 뜨거운 불속에 활활 타올라 버렸다...
 
 
 
....


......

 

 

'많이...아팠지...?'

 

'....'

 

'이제 괜찮을거다..아무일 없을거다..'

 

'......'

 

'사진보다 훨씬 예쁘고..따뜻하구나....'

 

 

 

 

네..많이 아팠습니다..할아버지..

 

그래서 할아버지가 그러셨습니다..

 

이제 괜찮을거라고..아무일 없을거라고..

 

이제 전 괜찮을거라고 그러셨습니다..

 

 

 


따뜻하단말...태어나 처음 들어본 그말...


그래서 행복할줄 알았습니다...

 

 

주제 넘은 말일지 몰라도..너무 큰 욕심이었는지 몰라도..


행복해도 되는건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여긴..


여긴 정말 따뜻합니다...


많이..많이..심장과 눈물이 녹아내릴정도로...참 많이 따뜻합니다..

 

 

 


"한설!!!!!!!!!!!!!!!!!!한서얼!!!!!!!!!!!!!!!!!!!!!!!!!!"

 


"..........."

 


"한설!!!!!!!!!!!!!!!!"

 


"...................."

 


"대체 뭐야!!!!!!!!!대체 뭐야!!!!!!!!!!!!!!!!!!!!"

 

 


....

 

 

......

 

 

모든게 녹아내릴정도로..


여긴 참 많이 따뜻합니다....

 

 

....

 

 

 

"문 열어..문... 열어.....!!!!!!!!!!!"

 

 


"...은..찬......"

 

 


"눈 감지마!!!!!!!눈 떠!!!!!!!!!!!"

 

 

 


".......으...으.응..."

 

 

 

"눈 떠 병신아!!!!!!!!눈 뜨란 말이야!!!!!!!!!


힘들어도 눈 부릅 떠!!!!!!!!"

 

 

...

 


...고막이 터질것 같은 은찬이의 고함소리...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의자 시트....

 


...

 

 


살았나...

 

...살아버린건가...

 

 

 

 


"케엑..케엑...케에에엑..."

 

...

 

 

 

괴로운 그 기침 소리에 가늘게 두 눈을 뜨면..

 

반쯤 불에 휩쌓이고 만 오렌지 족의 빨간 차.

 

 

 


그리고..

 

의자 위에 널부러져 목을 움켜쥔채 기침을 토해내는 강주원..

 

 

 

 

'쾅쾅쾅!!쾅쾅쾅쾅!!!'

 

 


"........하....."

 

 

 

 

점점 가빠오는 숨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천천히 고개를 들면..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은찬이가 열릴턱 없는 문을 마구 잡아 당기는게 보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선 핸드폰에 대고 다급히 고함을 지르는

 

택시기사 아저씨가 보였다..

 

 

 

 

"내 말 들려!?!?내 말 들려!!!!!!!!!!?"

 

 


".........."

 

 


"제발 대답좀 해봐....고개라도 끄덕여봐.....눈이라도 깜빡여봐!!!!!!!!!!!!!!!!"

 

 

 

".........응....살았다....살았다....오버..."

 

 

 


들릴리가 없는 나의 중얼거림에..


점점 거세어오는 불길에..


눈물을 닦으며 더욱 큰 소리를 지르는 강은찬.

 

 

 

 


"너 나 믿어 못믿어...!!!"

 

 

"...믿........"

 

 


"나 믿어 못믿어!!!!!!!!!!!!!!!!!!!!!!!!!!!!!"

 

 

 


".....믿어...믿어.................


...믿어................................."

 

 

 

"오케이!!!!!!!!!!!믿어!!!!!!!!!!믿는다!!!!!!!!!!죽어도 나 믿는다!!!!!!!!"

 

 

"......"

 


...

 

 

입모양으로 간신히 알아볼수 있었던걸까.

 

 


그을린 볼위로 눈물을 흘리며..어디론가 자취를 감추는 강은찬.

 


..

 

그리고..


점점 작아져가는 강주원의 기침소리..

 

 

 

.....

 

 

 

"이게...뭐에..요...."

 

 


"....카악......칵..."

 

 


"젠장...더럽게..뜨겁잖아요.."

 

 

 

"..우..우으...."

 

 

"윤영이 아니라니까..."

 

 


"..하아..하아.."

 

 

 

"내 이름 박윤영 아니라 한설이라니까......"

 

 

"................."

 

 

....

 


차밖을 완전히 에워싼 거센 불길에..

 

체념한 그 한마디로 천천히 눈을 감았을때..

 

창문을 깨부수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소리..

 

 

 

'쨍그랑...!!!'

 

 

...

 

 


그리고.....다시 정신을 차려 눈을 뜨기도 전에....

 

눈물섞여 들려오는 은찬이의 악소리...

 

깨진 창문보다 훨씬 처참하고 뾰족한 은찬이의 악소리...

 

 

 

 

 

"오빠 왔다!!!!!!!!!!!!!!!!!!!정신 차려라!!!!!!!!!!"

 

 


"..............."

 

 

 

"한설!!!!!!!!!!!!!!!!!"

 

 

 

"....그...래....."

 

 


"십초만 세자!!!!!!!!십초만!!!!!!!딱 십초만!!!!!!!"

 

 


".....십...."

 

 


"속으로 세!!!!!알았지!!!!!!!!?지금부터 시작!!!!!!!!!!!!!"

 

 


....

 

 

 

눈물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던 그 마지막 말과 함께...

 

은찬인 깨진 창문으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고...

 

....

 

 

뜨겁게 달구어진 문 손잡이를 망설임없이 움켜 잡았다..

 

 

 


".....일초....이..초...."

 

 


달칵달칵.

 


...점점 뿌옇게 변해가는 은찬이의 피투성이 손...

 


...

 


삼초..사초.....

 

 

 

 


".........으으..으..."

 


...

 

 

이젠 완전히 파묻혀버린 강주원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가까스로 힘주어 눈을 부릅떠 보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연기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정신..

 

 

 

 

오초...육..초.....

 

칠....칠..................초..

 

 

 

못하겠어...


너무 힘들어 강은찬..

 

아무리 그래도 십초는 너무 길잖아....

 

 

 

 


"너 눈 감으면 개망나니 강은찬한테 시집 보낸다!!!!!!!!!!!!!!!!!!!"

 

 

"....하...하..."

 

 


"거봐..그러니까 눈 떠..눈 떠야 형한테 보내줄거야!!!


눈 떠!!!눈 떠야지 너 보내줄거야!!!!!!!!!!"

 

 

 

"....병..신...."

 

 


"그래...잘했어....잘했어......"

 

 

 

은찬이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져가면..

 

창문안으로 들어왔던 그애의 손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이내 견디기 힘든 뜨거운 불길과 함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세상에 나왔네!!!!저 학생이 구했네!!!!!"

 

 

"어이구 한명 더 있나본데 어쩔거야!!!응!?!?어쩔거야!!!!!"

 

 

"119를 불러도 여기가 워낙 외진데라..아이구...나온다 나와!!"

 

 

 

타악...

 

............

 

 

 


그리고.


바닥으로 튕겨 나가버린 은찬이와..


그 위로 맥없이 엎어져버린 나 한설..

 

 

 

..

 


"아이구 당신들이 좀 가봐요!!!저러다 큰일 나겠네!!"

 

"아 가!!지금 간다고!!"

 

 


...

 

그러면...

 

저 멀찌감치에서 웅성웅성 구경을 하던 아저씨 두명이서 우리 쪽을 향해

 

다급히 달려오는것이 느껴졌고..

 

 

 

..

 

 

"대체 어쩌다 이런거래..!!"

 

 

 

그들은 차로부터 조금 튕겨져있던 우리를 억세게 등에 둘러매고..


그 무서운 불길로부터 혼비백산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

 


잠깐..아직 사람이 있어요...


...아직 저 안에 사람이 있다니까요...

 

 

 

 

 

"이 일을 어째...가서 찬물좀 가져와봐 성준이 엄마..."

 


"그보다 저 안에 사람이 한명 더 있어..!!"

 


"불 번지는거 아녀!?!?"

 


"아이구 이놈의 119는 불이 다 꺼진다음에 올랑가..!!"

 


....

 


안간힘을 다하여 왼쪽눈을 치켜뜨면..

 

오십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불길에 휩쌓인 빨간차를 바라보는 아줌마 아저씨들..

 

 

 


그리고 그 가운데 형편없이 뻗어있는 나와 강은찬..

 

 

 

 


"괜찮...냐....."

 


"강주원....너희 형.....은..."

 


"........."

 

 

 


유리에 긁혀 피나는 입술을 간신히 떼어..


까맣게 그을린 그앨 향하여 그 한마디를 건네면..


눈을 꾹 감고 욕 한마디를 중얼거리는 강은찬.

 

 

 

 

"은찬아..뭐라고 말좀 해봐.."

 

"........"

 

"그럼..결..국..정말 벌..받는건......"

 

 

 

 

그때...

 

...

 

 


점점 잿더미로 변해가는 차를 경악스레 바라보던 사람들이..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작은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응 여기야!!여기 이 두사람!!아는 사람맞아!?!?"

 

 


그리고...

 


우리의 발밑에 성큼 다가서 열심히 침을 튀기는 택시 기사 아저씨.

 

 

은찬일 인천에서부터 태우고 온 기사 아저씨.

 

 

..

 

 

 

 

"이게 뭐야....."

 

 

 

 


다음은....

 

멍한 눈으로 나와 은찬일 번갈아보는 환자복 차림의 하루..

 

이제서야 우릴 발견한 멍청한 강하루..

 

 

 

 


"불에 저 차가 탔어!!!이 갈색 머리 학생이 여학생을 구해왔다니까!!!"

 

 


"............."

 

 

 


"빨리 119가 와야 저 나머지 사람두 구할터인데..


끔찍해라...."

 

 

 

털썩..

 


무릎을 꿇은 하루가..차갑게 얼은 손으로 나와 은찬이의 얼굴을 어루만질때..

 

웅성거림에 뒤섞여 들려온 기사아저씨의 목소리..

 

 

 

"..저..안에...누가..또..있.나..."

 

 

 


그리고..


더듬더듬 들려오는 하루의 목소리...

 

 

 

"운전자가 못나왔어..틀렸지 뭐..


참..이런거 티비에서나 봤지..실제로 보니까....


아니-0-저..저 학생은 또 왜저래!!!가지 말어!!!!!!!왜그래!!!!!!!!!"

 

 


".............."

 

 


설마..

 

..하루 너 설마...

 

 

 


"암 상관두 없는 사람인데 그 아까운 목숨을!!!119올때까지 기다려봐!!"

 


"....."

 

 

"다들 좀 말려봐!!!!!옷 보니까 또 환자구만!!!!!!!"

 

 


시끌시끌..

 

점점 개판으로 변해가는 구경꾼들의 목소리..

 

 

..

 

 

 


"가지마...가지마 하루야..."

 

 


입에서만 맴도는 지독한 신음소리..

 

그리고 나와 같은 마음인듯..

 

자리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다 다시 바닥으로 형편없이 뻗어버리는 은찬이.

 

 

 

 

 

"학생 그러지 말어!!!이미 늦었대도!!!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왜그래.우린 뭐 구하기 싫어 이러구 있나!!!"

 

 

 


"....이야..."

 

 

 

"응??뭐라구??뭐라는거야 저 학생이.!!"

 

 


"저 등신 새끼 내 형이야..."

 

 

 

".....-0-....형...?"

 

 


....

 

............

 


그것이 마지막으로 들려온 하루의 말이였다.

 

..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터트린 그 한마디에..

 


난 똑같은 표정을 한 은찬이를 바라보며 오열과 함께 고개를 가로 저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구경꾼들은 점점 더 모여들어서..

 

 

작아져가는 하루의 뒷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

 

 

 

 


"안돼!!!!!!!!!강하루 안돼!!!!!!!!!!!!!!"

 

 


"엄머!!깜짝이야!"

 

 

"기절한줄 알았더니 어쩜 저리 생생해..-0-.."

 

 

"말려요..쟤좀 말려봐요!!!!!!!!"

 

 


"아이구.걱정 말어.지금 119 오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푹.."

 

 


"119 타령 그만 하고 어떻게좀 해봐요!!!!!!!!!"

 

 

"저걸 어떻게 해.갔다가 우리도 타죽으려고.."

 

 

"사람들이 어떻게 그래요!!!!!!!!!!!!"

 

 

 

 

 


죽어가던 내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바락바락 고함을 지르자..


겁이난 시선으로..혹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불길에 휩쌓인 차를 보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와 은찬이를 내려다보았고..

 

 


...

 

 

말없이 차를 바라보는 은찬이와 달리..

..

난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을 마구 비틀며 계속 쇠된 비명을 쳐댔다.

 

 

 

 

 

 

"제발요!!!!누가 좀 살려주세요!!!!!!!!누가 저 사람들좀 살려주세요!!!!!!!!


사례할게요!!!제가 천만원 사례 할게요!!!"

 

 

 


"야..돼지 멱 따는 소리좀 그만해라...너 천원은 있냐..?"

 

 

 

"강은찬!!!지금 농담 할때야!?!!!!!!"

 

 

 

"쪽팔리게.................."

 

 

 

"쪽이 여기서 왜 나오냔 말이야..!!!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데!!!!!"

 

 

 

"그 걸린 목숨들 지금 나오잖냐!!!!!"

 

 


"..뭐..!?"

 

 


"참나.....처음으로 방송 탄다는게 뉴스냐...쪽팔리게.."

 

 

...

 

....

 

 

멍....

 

침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맞은편에 있던 차를 바라보면..

 

어느덧 119가 도착한건지..

 

...

 

 

 

은색 옷을 입은 여러명의 남자가 분주히 뛰어다니는것이 눈앞에 포착되고..

 

방송국 로고가 새겨진 쥐색 봉고차에..

..

출근길에 내려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거리를 빼곡히 메워 버렸다.

 

 


..

 

 


그리고...


....

 

은찬이가 말했던 그 걸린 목숨들이...

..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비틀비틀 이쪽으로 가까워왔다..

 

 

 

 

아니.더 정확히 말하자면..

 

환자복 등에 업힌 운전자와.

 

운전자를 등에 업은 환자복이 쓰러지듯 위태위태 이쪽으로 가까워 왔다..

 


...

 

 

 


"네 이 사고는 새벽 6시 반경에 일어난것으로.


인근 주민의 말에 의하면 운전자의 자발적 사고라고 전해집니다.


사고 당시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

 


점점 멍해지는 리포터의 말소리와 함께..

 

'털썩...'

 

....

 


내 옆에 벌렁 누워 버리는 하루..


그리고 미동도 없이 고꾸라져버리는 강주원..

 

 


"....'

 

 


하...

 

할말을 잃은채 가만히 그 두사람을 바라보면..

 

저 멀리서 들것을 든 구급요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가까워오는것을 느꼈고..

 


...

 


............

 

 

 


한참만에 마른 입술을 떼어..


잦은 기침을 토해내는 하루에게 말을 건네려는 찰나..


잔뜩 말린 강주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구했...어...."

 

 

"......."

 


"니가 날 왜..구했냔 말이야..."

 

 

"형...이니까......"

 

 


"........"

 

 

"............"

 

 


"나...진심이였어..하루야...


갖고 논거..아냐...재미삼아 그런거 아냐...너만큼 아니여도...윤영이 진심이였어......


이 말 꼭..하고 싶었어...미안하단..말만큼..이말..꼭..하고싶었어....."

 

 


"........"

 

 

...

 

양옆에서 손을 꾹 잡은 은찬이와 하루를 천천히 번갈아보며..


다시 강주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점점 작아져가는 그의 목소리..

 

 

 

 

 


"구할수 없었어....


죽인게 아냐...발로 찬게 아니야...구할수 없었어...."

 

 

.......

 

 

 

흐느끼기 시작한다..


불에 타 일그러진 얼굴로...생각보다 훨씬 가엾고 여린 그 남자가..


어린 아이처럼 흐느끼기 시작한다..

 

...

 

 

 

윤영아..많이 울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때문에 자꾸만 울어..


떠나버린 사람은 홀가분 하겠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힘들어..


한사람도 빠짐없이 너무너무 아파해..

 

 

 

 


"강주원.강하루.강은찬.."

 

"...."

 

"이렇게 셋이 나란히 있는거 얼마만이냐..."

 


..

...

 

 

그때..잡은 내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비교적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여는 은찬이..

 

 

 

 

"......"

 

 

"더럽게 오랜만이다..나 형아들 이렇게 있는거 되게 보고 싶었는데.."

 

 


"........."

 

 


"큰형..작은형..이렇게 소리내서 부르는거..더럽게 해보고 싶었는데..


...너무 오랜만이라..감을 잃었다....


혼자 술쳐먹고 주정으론 많이 했는데..."

 


...

 

......

 


이젠 완전히 밝아져버린 하늘을 보면서..

 

맥없는 웃음을 터트리면..

 

양쪽에 나란히 누운채로..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는 하루와 은찬이..

 

 

 


그리고..

 

...

 


조그맣게 새어나오는 은찬이의 두마디..

 

 

 

 

"큰형......"

 


"........"

 


"큰형...............!!!!!"

 

 

"...그...래...."

 


"작은 형..!!!"

 


"........."

 

 

"작은 혀엉!!!!!!!!"

 

 

"..응.."

 

 

 

 

 

"......병신들...

 

.....빨리도 왔다........"

 

 


...


....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아무곳에도 끼어들수가 없었다..

 


...

 


손등으로 붉어진 눈시울을 가리는 은찬일 보며..

 

나와 반대편으로 고갤 돌려 눈물 숨기는 하루를 보며..


..

 

가장 먼곳에 누워 쉴틈없이 흐느끼는 강주원을 보며..

...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윤영이 얼굴만 원망하고 그리워하다 삼켜 버렸다...

 

 

 

 

'삐요.삐요.삐요.삐요.삐요.'

 

 

 

이내...

 

바로 머리 맡에서 경쾌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들것 네개와 하얀 구급차가 조금씩 눈물안에 녹아가고...

 

 

....

 

 


내 손을 꽉 잡고 있던 은찬이 손이 스르륵 풀어지면서..

 

 

이제야..


모든 비밀의 문이 열리고...


까맣게 타버린 네 사람위로...밝은 태양이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우린 네사람은 구급차로 실려가면서 꾹 감은 두 눈 위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

 

 

이제 드디어 밝게 웃을수 있다..


빌어먹을 외톨이의 저주가....지긋지긋한 외톨이의 저주가..


까맣게 탄 우리 네사람의 지독히도 쓴 눈물에


쓴웃음과 함께 왼손을 들며 항복을 선언했다... 
 
 
"이 환자는 당장 응급실로 옮겨..!!"

 

"심전도 체크해요!!아니야.거기 만지지마 손!!손 조심해요!!"

 

"갈색머리 손..!!손 조심하란 말이야!!"

 

"김 간호사 붕대좀 가져와!!"

 

 

 

....

 

......

 

 

어릴때부터 병원에 한번 실려와 보는게 소원이긴 했지만..


나원참..이게 뭐야..


내가 원한건 연약한 여자의 단순 빈혈이였다구요...

 

 

 

\ 한을 병원.

 

 

 

 

"후..의사 생활 12년에 이렇게 황당한 사고는 또 처음이네.."

 


..

 

...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수더분한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떠 보이면..


익숙한 솜씨로 오른편에 누운 은찬이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의사.

 

 


"형..은요.."

 

 


그리고.

 

왼쪽의 침대에 엎드려 누운채..

 

오만가지 인상을 다 찌푸리며 질문을 던지는 하루.

 

 

 

"형이라면.온 몸에 화상 입은 그 사람..?"

 

 

 


끄덕끄덕..


의사의 퉁명스런 물음에 하루가 고개를 끄덕이면.


곧바로 오른편에선 은찬이의 고함소리가 터져나오고.

 

 

 

 

 

 

"썅!!내 손에 뭐하는 짓이야!!!"

 

 


"가만 있어요!!!지금 이렇게 안해두면 평생 흉이 남는다구!!"

 

 

 


의사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그러면...

 


잠시후 다시 한번 반복되는 하루의 물음.

 

.

 

 

"우리 형이요.."

 

 


"아 그사람은 응급실로 갔어요..니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니까 말이야..


너무 걱정은 말어.내상 안입은게 천만 다행이..


아!!가만좀 있어봐!!=0=


몸을 비틀지 말란 말요!!!박힌 유리를 빼야지!!!"

 

 

 

"여자 간호사!!!!이 병원은 간호사도 없나!!!"

 

 


"아하 이것참..골치 아프게 시리..!!움직이면 출혈이 더 심하다니까!!!"

 

 

...

 

후....-_-...

 

저 인간은 이 상황에서도 끝까지 말썽이구만...

 

..

 

 

 


그렇게 온갖 발악을 하는 은찬놈을 보다가..


손목에 꼽힌 링겔 바늘을 바라보다가..


다음으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하루를 바라보면...

 

 

 

 

그러면 이놈...

 

...작게 미소 짓는다...

 

미안해 죽겠어서 제대로 바라볼수도 없는데..

 

피하는 내 눈을 장난스럽게 쫓으며 미소 짓는다...

 

 

...

 

그래..


니가 벌인 일이잖아 한설..


결과는 어떻든 사과는 하고 봐야지..


용기를 내서..하나..둘..셋..


셋..셋..또 용기를 내서..

 

 

 

 


"강하루........."

 

 

"............"

 

 

"나 있잖아..."

 

 

"응."

 

 

"널 니 형으로 오해하고..은찬일 너라고 착각했었다....


...진짜 골때리지.."

 

 

"알고 있었어.너 원래 좀 바보잖어..."

 

 

"화..안나..냐.."

 

 

"바보한텐 화 안내.내 머리만 아파."

 


"...."

 

 

"이 바보 또 우네.."

 

 

"죽을때까지 미안하다고 빌어도..너 나 용서 안해줄거지."

 


"아니."

 


.....

 

.........

 

"미안해..세상에서 제일 미안해..."

 

 

"괜찮아..나도 세상에서 제일 괜찮아.."

 

 

 

젠장..차라리 화를 내지..막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하지..

 

왜 그렇게 쉽게 웃어주는거야..

 

내가 한 그 모진말들 왜 그렇게 쉽게 용서하는거야..

 


..

 


하얀 시트 속으로 쏙 들어온 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때 늦은 눈물을 터트리면..


오른쪽 귀에서 분명히 들려오는 강은찬의 목소리.

 

 

 

 

 

"젠장!!!!!!!나 죽네!!!!!이 돌팔이가 내 손을 아주 다 후벼파는구만!!!!!!!"

 


"가만 있어요!!제발 가만 있으란 말이요!!!!!ㅠ0ㅠ"

 


"수면 마취 없냐구!!수면 마취!!"

 


"박힌 유리 빼내는데 왠 수면마취!!!!이게 성형 수술인줄 아시요!!!??=0="

 


"비켜요 내가 하게!!!!!"

 


"좋아요!!관둡시다 관둬!!나 이런 어이없는 사람을 다 봤나!!!=0="

 


....


......-_-......

 

덮은 시트 위로 잠시 냉랭한 공기가 흐르면..


의자를 확 밀치며 병실을 나가버리는 의사..

 

 

-_-..

 


그리하여 다시 시트를 살금살금 내려 놈을 바라보면..

 

손가락을 입에 가져댄채 온갖 육두문자를 중얼대는 놈..

 

 

 

 


"야..강은찬..."

 

 


"넌 계속 니 왼쪽 인간이랑 떠들어."

 


"넌 아까..왜 그렇게 무모한 짓 한거냐....."

 


"시끄러."

 


"잔뜩 심통난 생명의 은인아.."

 


"븅신.시트나 걷어라..두더쥐 새끼처럼 그안에서 무슨 청승이냐"

 

 


몇시쯤이나 된걸까..

 

우리 세사람뿐인 병실안에 눈치없는 햇살이 가득 쏟아들면..

 

난 내 시선을 피하며 손을 입에 문 은찬일 보다가..

 

그을린 머리를 헝크러트리는 하루를 보다가..

 

다시 하얀 시트속으로 온몸을 숨겨버렸고..

 

 

 


"...."

 

 


다음으론..더듬더듬.

 


부담스럽게 위험한 강브라더스를 향해 내 진심을 열었다..

 

 

..

 

 

 

 

"고마워..이 왕단순 왕바보들아..."

 

 

"지금 누가 누구더러 왕단순이래냐...?그지 형.."

 

 

"응.동생.."

 

 

"사랑받는다는게 어떤건지 가르켜줘서..너무너무 고마워..이 나쁜놈들아.."

 

 

"끝에 나쁜놈은 빼라."

 

 

"추울때 안아줘서 고맙고..잘못해도 감싸줘서 고맙고..실수해도 덮어줘서 고맙고..


..옆에서 숨소리 내줘서 고마워..그게 너무 고마워.."

 

 


"병.신."

 

 


"등.신."

 

 


차례로 들려온 강브라더스의 목소리.

 

 

 

"여태껏 너희가 나 지켜줬으니까..


인제부터 내가 너희들 지켜줄게....온 힘을 다해서 갚을게....


니네 가슴에 뻥뻥 뚫린 구멍들..다시 내가 천천히 메워줄게...."

 

 

 

"형.얘 어떡하냐?이불 확 걷어서 놀릴까?"

 

 


"콧물도 나온거 같은데...쪽팔려 하잖아."

 

 


"아.드러.이건 어떻게 된게 첨부터 끝까지 드럽냐.."

 

 

 

"......우리 인제 그만 아프자......"

 

 

"..."

 

 

"은찬이 너도..하루도..나도..인제 그만 아프고..다 웃자..


여태껏 충분히 아팠으니까..이제부터 충분히 행복하자...."

 

 


"......"

 

 


"응!?!?!!"

 

 


"......"

 

 

 

"둘다 대답 안해!!!!!?"

 

 

....

 

.....아니 이놈들이....

 

기껏 체질에도 안맞는 닭살스런 말들을 씨부려댔더니만....

 

왜 이렇게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거야..

 

 


스륵.

 

대답없는 무심한 놈들탓에.

 

얼굴을 덮고 있던 시트를 홱 걷어버리면...

 

다시 한번 나를 민망하게 만들어버리는 낯익은 두 얼굴.

 

 

 


그러니까.

 

'강'씨 집안에 없어선 안될 화려한 두 얼굴..

...

 

 

 


"하루야...!!!!!!!!!!!"

 


"이놈들아 이 애비 죽는 꼴 보려구 그래!!!"

 

 


제기랄......

 

 

 

"이게 어떻게 된거야.다친데 없어.?괜찮니!?"

 

 

...-_-..

 

오렌지족이 하루의 품에 와락 안겨들면..


그앤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외면하고..

 


그 사이 할아버진.

 

난생 처음 보는 눈물로 내 가슴을 후벼파내면서..

 

은찬이를 가슴팍에 꼭 끌어 안으셨다..

 


...

 

....

 

 

 


"이놈들아..이 늙은 애비 당장에 죽으라는거야..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랬어..

 

응..?무슨 일이라도 났음 대체 어쩔뻔 했냔 말이야.."

 

 


"멀쩡하잖아...."

 

 

 

"주원이는..주원이는 어딨어.."

 

 

 

"....응급실에...."

 

 


"못된놈들...이 천하의 못된놈들....


단 하루도 조마조마해서 살수가 없어...니놈들 무슨 일 날까봐 대체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

 

 

 

쿵..쿵...

....

 

 

연약한 할아버지의 두 주먹이 은찬이 가슴을 내려치는 사이..

 

그리고 뒤늦게 눈치가 보인 오렌지족이..

 

강주원을 보러 병실을 뛰쳐나간 사이..

 

....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어떤 시선도 던지지 못한채..

 

물끄러미 눈물 젖은 시트를 내려다보았고...

 

..

 


그러면 고맙게도 삐그덕 문이 열리면서..

 

아까 분이 나 뛰쳐나갔던 의사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험..어험..!!"

 


"아..선생님..!!"

 


"그참..보호잔 분 되십니까..?"

 


"우리 첫째놈은 좀 어떻습니까..!!어떻게..큰 상처는 아니지요?수술하면 다 낫는 거지요?!"

 


"아들 셋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하니.참 딱하십니다 그려..!-0-"

 

...

 


의사가 은찬놈을 노려보며 말을 이으면..

 

큰 죄인이 된것 마냥 고개를 푹 숙이시는 할아버지.

 

 

 

 


"그러니까..우리 첫째아들놈은...."

 

 

"....."

 

 


"첫째놈은 멀쩡하지요...살수 있는거지요...."

 

 


....

 

 

점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누구보다도 가여운 분..

 

대책없는 삼형제에 한시도 맘편할수 없었을 가여운 분..

 

 

 

 


"왜 그 돌팔이 의사한테 고갤 숙여!!!?아빠가 뭔 죄졌어!!!!!!!!?"

 

 

"부탁드립니다...꼭 좀 살려주세요...돈은 얼마든지 드릴테니까...


우리 아들좀 꼭 살려주세요..."

 

 

"그러니까.응급실 간 강주원하고.저기 저 싹수노오란 강은찬이란 학생하고.


강하루 삼형제."

 

 


"...."

 

 


"이 삼형제 보호자분 되시는거 맞지요??"

 

 

 

"아닙니다...."

 

 


"네.....?"

 

 

 

"삼형제가 아니라 사남매입니다......."

 

 


....

 

.........

 


콜록..콜록..

 

갑작스레 터져나온 할아버지의 말에..

 

사래 걸린 내가 추접스러운 기침을 토해내면..

...

 

 

 

동시에 나를 향하는 여덟개의 눈동자..

..

 

그러니까 호기심에 가득찬 의사의 눈 두개를 빼면..

 

두근두근 떨리는..

 

그러면서도 왠지 좀 슬퍼보이는 강씨 집안의 눈동자가 여섯개다..

 

 

 


"............."

 

 


마지막인가...

 

이게 나한테 주어진 마지막 선택인가...

 

 

 


"니가 나가니....아무도 신문 읽어주는 사람이 없구나.."

 


"...."

 


"눈이 영 어두침침해서..가까이 있는 글이 하나도 안보이는데..


이 몹쓸놈들은 아무도 나랑 상대를 안해줘.."

 

 

".............."

 

 

"이제 정말 괜찮을텐데...이제 정말 아무일도 없을텐데....


...한번만...이 못난 할아버지 용서해주겠니..."

 


......

 

.........

 


떨리는듯한 표정으로..

 

동시에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하루와 은찬이.

 

그래서.

 

하공에 단 둘이 남아버린 나와 할아버지의 눈동자..

 

 

 

 


"이렇게 부탁하마...집으로 돌아와줘라.."

 


"집으로 돌아와줘라.."

 


"돌아와라..."

 

 


은찬이와 하루의 입을 걸쳐 점점 짧아지는 그 한마디에..

 

난 긴 한숨을 밀어내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고..

..

 

 

그렇게..의사의 눈치없는 재채기와 함께 천근같은 침묵이 병실을 메웠을때..

 


...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할아버지..

 

그때 드렸던 질문이요..다시 한번요.."

 

 

 


"....."

 

 

 

난 정면으로 할아버지의 눈을 응시하며..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그래..뭐든.."

 

 

 

"저한테 이렇게 하시는 진짜 이유요. 형식적인거 말고 진짜요.


그 이유가..뭔가요..."

 


....

......

 

 

또다시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눈치없는 의사..

 

 

그리고.


눈가 한가득 주름을 늘어뜨리며 어깨를 으쓱해보이시는 할아버지..

 

 

 


"신문을 읽어줄 딸 하나가 필요해..그뿐이란다.."

 


...하하...

 

..하하하...

..

 

 


피식 터져나오는 웃음과 함께..눈물맺힌 얼굴을 뒤로 젖히면..

 


환한 미소로 이 마지막 말을 꺼내며..

 

강브라더스의 환호성을 터트리는 할아버지.

 

 

 

 

"사진보다 훨씬 예쁘고..따뜻하구나...

 

지금 허락해주며 웃는 니 모습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내 입으로 하기 참 쑥스러운 말이지만 서도..

 

'정말'이였다..

 

그때 할아버지가 대충 둘러대셨던 '거짓말'이 아니라..

 

(병실 유리창에 비췬 모습을 슬쩍 확인해본바 의하면)

 

거짓말이 아닌 '정말'이였다..

 

 

 

난..

 

너무 오랜만에..


시간이 무색할만큼 참으로 오랜만에..


온 힘을 다하여 진심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오늘이 진짜 무슨날인지 모른다고..?"

 

 

 

"아 모른다고 몇번을 말해 이 찰거머리 같은 자식아!!!!!!


아까부터 졸졸졸 아주 귀찮아 죽겠네!!!!!!!!!!"

 

 

 


한달이 흘렀다.

 

그러니까 내가 다시 괴물집.아니 할아버지네 집에 들어온지 꼬박 한달이다.

 

음..그리고 그동안의 변화 몇가지를 꼽자면..

 

글쎄....

 

 

 


학교가 이틀 전 개학을 했다는것.

 

강씨네 집안이 이전보다 훨씬 더 화목해 졌다는것..

 

강주원의 얼굴에 커다랗게 일그러진 흉이 남았다는것.

 

그리고 모든 사실을 안 오렌지족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는것.

 

마지막으로 하루의 성격이 좀 많이 밝아져 버렸다는것.

 

 

 

뭐..

 

아직까지 마녀가 코빼기도 안비취고 있는것이 좀 불안하긴 하..

 

 

 

 

"2월14일!!2월14일 진짜 몰라!!!!!!!!?"

 

 

"아 나 이새끼 증말 시끄러 죽겠네..


그게 뭐!!!2X7해서 14라도 나왔다는거냐!!-0-?!"

 

 

"쯧쯔.왜사냐?너 왜사냐.응?그냥 나가 죽어라.나가 죽어.."

 

 

 


\ 2.14일.-_-.등교길 차안.

 

 

 


오랜만에 등장한 신기사 아저씨가.

 

계속되는 나와 은찬이의 실랑이에 쫍쫍 입맛을 다시면은..

 

앞에 앉아서 빼꼼히 고개를 돌리는 하루.

 

 

 

 


"너 진짜 몰라?ㅇ_ㅇ?"

 


"그..그렇대도..!!"

 


"지금 돈 없어서 뻥치지?"

 


"아니야!!-0-무슨소리야!!난 아무것도 몰라!!2X7이 14라는것밖.."

 


"아 됐어.너 헛소리 할꺼면 입다물어.!!"

 

 


합..-_-..

 

순간 내 입을 꽉 막는 은찬이의 손에..

 

난 가방을 꾸욱 움켜쥐며 이만 깜찍한 연기를 (누가??) 마쳐야 했고..


..

 

 

놈들이 모르게 베시시 웃음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어제의 그 소란스러웠던 오후를 회상했다.

 

 

 

회상중 -

 

 

 

13일 오후 5시.나나 언니네 집.

 

 

 

'이년아!!!!!!!-0-(어느새 이년이 되버렸다-_-)이런 틀을 사오면 어째!!


좀 예쁜 틀을 사오라고 했잖아!!!!!!!'

 

 

'그럼 어떡하냐!!!쥐마트에 이거밖에 없었는데!!!'

 

 

'이 무지랭이 같은 자식.백화점에서 사라니까!!!


이 우스꽝스러운데다가 만들어 주면 그놈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은찬이 그새낀 왕돈까랍시고 하마 똥 같은걸 준놈이야.이정도면 황송하지 뭘 그래."

 

 

"야야.그래도 생각해봐라!!딴애들은 분명히 이쁜 바구니에 포장하고 난리부르스를 떨어서


줄텐데..!!이 사람 대갈통만한 궁댕이 틀이 뭐냔 말이야!!-0-"

 

 

'나원참.궁댕이가 아니라 하트라니까 그러네'

 

 

'길가는 사람 백놈을 붙들어 물어봐!!이게 하트인가 궁둥이인가!!-0-'

 

....

 


어쨌든..이쯤에서 회상 끝..-_-..

..

 

 

 


"그러게.오늘이 무슨날인지 모르는건 설학생이 심하구먼!!-0-"

 

...

 


차가 빠르게 가파른 동네를 내리면은.

 

운전을 하고 있던 신기사 아저씨마저 내게 슬며시 면박을 주기 시작했고.

..

 

 

난 비열한 미소를 씨익 입가에 흘리며.

 

놈들이 초콜렛을 받고 기뻐할 표정을 떠올렸다..

 

 

 

그러나 상상의 기쁨도 잠시.

 


그 주제넘던 내 망상도 교문안에 들어서는 순간 무참히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니................

 

 

 


\ 덕풍고.정평중 정문 앞.

 

 

 


"잘갔다와!!-0-초콜렛 많이많이 받어와!!올해는 누가 이기나 볼겨!!"

 


...

 

...

 


등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신기사 아저씨를 뒤로하고서.

 

..

 

 

큼큼..!!

 

건방진 두놈 사이에 떡 버티고 서 교문을 향해 다가서면..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흝어보는 아무것도 모르는 강브라더스.-_-.

 

 

 

 

 

"진짜로 모르냐.신기사 아저씨가 저렇게 말해도?"

 

 


"몰라.-_-.난 아무것도 모른당께.


한번만 더 물어보면 귀퉁댕이를 날려버릴테니 그 입이나 다물여."

 

 

 


"화이트 데이 아무것도 없다."

 


...

 

 

하루마저 잔뜩 삐져버린듯..

 

초콜렛 바구니를 든 정평중 아이들이 하나둘씩 가까워올때..

 

내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그 한마디를 중얼거리고..

 

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어보였다.

 

 

 

흥.이따 받고 놀래지나 말라고 이 자식들아

 

 

 

"오빠..이거요..쟤가 주래요..>_<"

 

"은찬이 오빠..안녕하세요.."

 

 


흥...


저 팬시점에 가면 널린 초콜렛들이 아니란 말이다.

 


손수 만들었단 말이야 내가.

 

요리책을 사다가 세상에서 젤 큰 초콜렛을 만들었다구..

 

 

 

 

"어.땡큐..아침부터 수고 많다.."

 

 

"나도 땡큐다.진짜 고맙다.최고로 고맙다."

 

 


얼씨구..

 

아우놈은 땡큐 타령에 형놈은 최고 타령인데.-_-..?

 

..

 


네학년은 더 어려보이는 여중생들에게 둘러쌓은 두놈들.

 

 


내가 중앙현관으로 질투에 휩쌓인 걸음을 하는동안에도..


놈들은 어슬렁어슬렁 그 순진한 아이들의 초콜렛을 받아들며


누구것이 더 많은가를 견주어 댔고..

 

 

 

 

"에이 줄맛 떨어지게.더럽게 잘난척들 하네!!-0-"

 

 


잔뜩 심통이 난 나는 성난 코뿔소처럼 교실로 우적우적 들어왔지만..

 


...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도다!!!!!!-0-"

 

 

 


\ 교실.

 

 


이곳에서도 역시.


그 강브라더스를 향한 위대한 초콜렛은 살아 있었다.


-_-.

 

 

 

드르륵.!!

 

 


".....왔네..왔어..."

 

...

 

 

아침 뉴스를 탄뒤로 완전한 요주위 인물이 되어버린 나.-_-.

 

강은찬과 강하루는 각각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한 위대한 영웅이 되어.

 

그 인기가 전보다 훨씬 더 치솟았지만..

 

 

 

 

"저 목숨도 질긴년..!!퉷퉷!!"

 

 

 

...덕분에 난...

 

정평중과 덕풍고 여자들의 무시무시한 도끼눈 세례를 받게 되었다..-_-..

 

 

 


"내가 온 교실 다 뒤져봐도!!니 초콜렛이 젤로 이쁘다니까!?!"


..

 


저벅저벅..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해서 1분단 맨 뒷자리에 털썩 몸을 앉히면.


내 바로 옆분단에 앉아서 또다시 보기 싫은 면상을 불쑥 들이미는 코끼리와 맘모스.

 

 

 

차라리 여우원숭이가 같은반이 되면 좋았을것을.

 

대체 왜 저것들이 3학년이 되서까지 내 옆에 따라붙는거냐...

 

 

 


"하루 오빠가 무지무지 좋아하겠다아>ㅇ<언제 줄건데?응?"

 

 

"이따 학교 끝나고..-0-..원래 젤 멋진건 젤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니까.."

 

 

 

참네.

 

정말 괴기스런 소리만 늘어놓고 앉았구만...

 

혀를 끌끌 차며..문제집을 책상위에 터엉!!내려놓고 연필을 꺼내놓으면..

 

...

 

 

바로 그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코끼리의 행동.

 

 

 

 

"추웁..추웁..-0-.."

 

 


"야아.너 뭐해!?!?"

 

 


"이걸 이렇게 내가 빨아서 다시 포장하면.!?


하루오빠가 다시 빨아 먹을꺼고!!그러면 우리는 간접키스를 하는거라구!!=0="

 

 

 

"어머.그렇네..진짜.."

 


...

 

우욱..

 

우우우욱...

 


..

 

 

"나도 좀 해보자..응?"

 


"미쳤어!!=0=하루오빠란 말야!!넌 딴사람한테 해!!"

 

"난 줄사람이 없단 말이야!!!-0-"

 

 

 

헛구역질을 멈추고 다시 한번 2분단을 바라보면.

 

분명 코끼리의 입에 쏙 들어갔다가 다시 쏙 나오는 초콜렛들..

 

 


오.....맙소사.....

 

정말 미저리가 따로 없군..

 

 

 

 

 

"그럼 넌 8반에 윤철이 줘!!걔 잘생겼대매!!"

 


"싫어.같은 3학년 주면 소문 돈다구.."

 

 

"금 덕풍고 오빠중에 하나 줘!!그럼 되겠네!!"

 


"쳇.좋아하는 사람두 없는데 뭐.."

 

 


"음...그럼...은찬이 오빠 줘..!!그 오빠 귀엽잖아..!!응?!"

 

 

....

 

자.다같이 기도합시다.

 

강브라더스..

 

아.........멘...........

 

 

 


"그럴까....?그 오빠 여자친구 있지 않나??그 선도부 스던 년.머리 드럽게 긴년."

 


"깨졌더라 뭐!!그 여자 딴학교 오빠랑 사귄대더라!!"

 


"그럼 줄까??-0-??너랑 나랑 나란히?"

 


"케케켁>ㅇ<그러면 되겠다.시누이랑 올케 하면 되잖아!!그치?!그치!!"

 

 

 

다시 아멘..

 

강브라더스 아멘..

 

 

 

"헤헤헤헤.그 오빠들 돈두 많대는데.우리가 알겨먹자."

 


"야야.넌 이거 줘.."

 


"응.알았어.좋아.좋아"

 

...

 

....

 


39번 문제를 풀다말고..

 

가만히 곁눈질을 해서 그 미친 두 동물을 바라보면...

 

코끼리에게 받아든 곰돌이 모양의 초콜렛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맘모스..

 

 

 

'바스락.바스락.'

 

 

'추웁.추웁.-0-'

 

 

'바스락..바스락..바스락..'

 

 

'추우웁..추우웁..-0-..'

 

 

 

그후로..1교시 2교시 (쉬는시간 포함) 내내..

 

내 몸뚱이만한 코끼리의 초콜렛 바구니.

 

그 바구니에 들어있던 모든 초콜렛들이 그아이들의 입에 쏙 들어갔다가 퐁 하고 다시 나오니..

 


...

 


모든 아이들은 경악한 눈으로 그녀들을 꺼리며 그 지옥같은 시간을 버텨내야만 했다..

 

 

 

 

딩동댕동.

딩동딩동.♬

 

 

 

 

 

\ 점심시간.

 

 

 


"야.우리 반에선 니가 젤루 많이 받았다 야!!-0-우와!!7개야 7개!!"

 


...

 

.....

 


대체 이놈의 발렌타인 데이를 누가 만든건지..


..

 


사내놈들은 반에서 젤 곱상한 놈을 둘러싼채 추켜세우고.


여자들은 초콜렛 얘기로 온갖 웃음꽃을 피우니..

 

 

 

"젠장..이 까짓거 진짜 그냥 휙 던져주고 말아야지...


나까지 괜히 동화되겠네.."

 

 

 

난 비장한 결심과 함께.


드르르르르륵.


가방을 매고 의자에서 슬며시 엉덩이를 일으켰다.

 

 


"어..누나 집에 가시게요..?"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란듯..책을 집어넣다 말고 빼꼼히 나를 바라보는


내 짝꿍.

 

 

 

"아니다.."

 

"그럼 왜 가방 매고..나가세요..?"

 


..

 

....

 


초코렛 달랑달랑 들고가기 쪽팔려서 그런다 이자식아!!!!!!-0-

 

 

 


그렇게 온갖 아이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을 받으면서..


위풍당당히 교실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면..


초콜렛을 받고 베시시 웃고 있을 그 재수없는 두놈들이 떠오르고..

 

 

 

 

 


"코끼리 초콜렛 말해주나 봐라.."

 

 

 

난 또다시 터져나온 심술맞은 질투에.

 

그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덕풍고 현관을 향해 질주해갔다.

 

 

 

내가 핫케익 이후로 처음 한 요리란 말이다 이놈들아.

 

자그마치 6시간이 걸렸다고..

 

어제 내가 늦게 왔다고 니놈들 다 찢어죽일듯 날 구박해댔지?

 

어디 눈씻고 찾아봐라..

 

이만큼 정성이 들어가고 커다란 초콜렛이 있나 없나!!!!!!-0-

 

 

 


"..무..슨일로.오셨어요....."

 

 

....-_-...

 

흠...

 

 

 

3-9반 앞이다.

 


그러니깐.불타는 투지와 함께 어느덧 하루네 반 앞으로 와버린 한설이다.

..

 

 

"하루..없는데....요.."

 

 


어느덧 내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건지..

 

두 다리를 오들오들 떨며 내게 말을 건네는 커다란 안경잡이 소년.

 

 

 

"어디갔어요..-_-..?"

 

 

"초코렛 받으러 나갔어요..."

 

 

"비루먹을 샵새끼.."

 


"그럼 전 이만 급식소.."

 


"잠깐!!!!!!!!!"

 


"...네...?"

 

 


정말 이딴거 승질에 안맞아서 못해먹겠네..!!

 


질투의 불꽃이 한계에 다다른 나는.


가방을 꽉 차지하고 있던 '은박지' 로 포장된 두개의 왕하트(궁댕이)초콜렛중 하나를


힘차게 꺼내들었고..

 

 

 

 

"아악!!>ㅇ<!!!!"

 


"...-_-..."

 

 

 

 

그놈은 그것을 무슨 무기로 본듯.


재빨리 두팔을 움추려서 허여멀건한 얼굴을 보호했다.

 

 

 

"때리지 마세요!!!!!!!!!!같은 학생끼리 그건 나빠요!!"

 


"이거...몽둥이 아니거든...-_-^.."

 

 

차근차근 내려앉는 내 목소리에..


슬며시 실눈을 떠서 나의 정성담긴 초콜렛을 바라보는 안경잡이.

 

 

 

"....그게...대체...뭐에요.....?"

 


".......후....."

 

 

"호박엿인가요...은박지로 쌓인걸 보니..."

 

 

"이거 하루 책상위에 살며시 내려놓아라..."

 

 

"네..."

 

 


젠장..기분 무지 더럽네..

 

나에 대해 헛소문 퍼진것도 억울한데..정성껏 만든 초콜렛마저 개무시를 당하다니..

 

 


이래뵈도 일주일전부터 사전 준비했던건데...

 

...씨....

 

 


"어쨌든..다음은 강은찬이다.."

 


....

 


.....스윽....

 

안경잡이를 지나쳐서..

 

은찬이가 있는 3-5반으로 서서히 방향을 바꿔 걸으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 뻔때나는 놈의 뒷모습..

 

 

 

 

 


"이거요 오빠..받아주세요.."

 

 

"우와!!무지 고마워!!너 최고다!!"

 

 

...

 

 

그리고..한걸음 한걸음 가까워갈수록..


더욱 명확해져만 가는 '엿같은 고백 타임'

 

...

 

 


"아니에요>ㅇ<오늘 되게 많이 받으셨죠.."

 


"많이는 뭐.아직 여덟개.."

 

 

 

니가 만들어 줬던 하마똥이나 쳐먹어라.

 

 

 


"그럼 제께 아홉개 째네요.."

 

 


"그렇게 되네!!어쨌든 티켓이 한발자국 앞으로!!아싸!!"

 


"네?티켓요?"

 

 

"어.아니야.암튼 고맙다!!진짜 고마워!!너 이름이 뭐냐?"

 

 

"저...근데..오빠..저기 뒤에..정평중..아는 애에요..?

 

 

"누구??"

 

 


안녕.


나란다.나.

 


....

 


여자의 손가락질에 강은찬이 빙글 뒤를 돌면.


난 머쓱해진 마음에 책가방을 덜렁덜렁 흔들어 보였고..

 

..

 

 

 

"뭐야.너 왜 올라왔냐?

 

 


놈은 히죽 웃으며..건들건들 내 앞으로 가까워 왔다.

 

 


천하의 재수없는 날다람쥐 같은놈.

 

 


"왜!!뭐!!올라오면 안되냐!?!"

 


"가방 뭐야..너 학교 쨀려 그러지.."

 


"내가 너냐 임마."

 


"째는거 맞구만!!!아주 죽을라구!!!!"

 

 


순간..앗할틈도 없이..


울상이 된 여자아이를 아랑곳않고 내 가방을 휙 빼앗아가는 강은찬.

 

 

그리곤 달랑달랑.


사람 대갈통만한 초콜렛이 든 내 가방을 흔들어보인다.

 

 


"어?이게 뭐냐..?"

 

 

"이래 내 이좌식아!!!!!!"

 


"이거 초코렛 아냐?"

 

 

"웃기네 미친놈!!!이리 내란 말야!!!!!'

 

 


"에에이.이거 초코렛인데 뭐..나 줄려구 갖구왔냐?^-^"

 

 

"미쳤냐!?!내가 왜 너한테 초코렛을 줘!!!!!난 그런 너저분한 짓 안한다!!


이리 가져와 그건 내 보물 책가방이야!!!!!"

 

 


"하긴..넌 초코렛 어떻게 생겼는지두 모르지..사본적이 있어야 알지.."

 

 


"뭐야!!?!"

 

 

 

"남자친구를 사겨봤어야 발렌타인 데이를 알고.


발렌타인 데이를 알아야 초콜렛을 사지.안그냐?"

 

 

 


이 자식이 진짜...


뼈빠지게 고생한 사람 순식간에 바보 만드네..

 

 

 

"이리 내!!!!!!!!!이 개퉁댕이 같은놈!!!!!!!!"

 

 


휙.!!

 

표유하는 한마리 암사자처럼 거칠게 가방을 빼앗아 손에 움켜쥐면.

 

은찬인 좀 당황한듯한 표정으로 나를 흝어보았고..

 

 

...

그럼 난 시근덕 시근덕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재빨리 놈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우..저거 사람 여럿 때려죽일 기센데..-0-..


야..너 왜 그러냐..?


가방에 뭐 못볼거라두 들었냐?"

 

 


"시끄럽다!!!"

 

 


"어디가냐..같이 밥이나 먹자..!!"

 

 

"놔라!!!!!손 놔라!!!!!"

 

 

 

"야 너 나중에 할거 없음 역도나 해라.뭔 여자 힘이 이렇게.."

 

 

"우와아아악!!!!!!!!!!!!!!!!!"

 

 

"..........."

 

 


잇몸을 몽땅 드러내보인 내 공격에 할말을 잃은듯..

 

오만가지 정이 다 떨어진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강은찬.

 

과 그 뒤의 겁에 질린 여학생..-_-..

 

 

 


나쁜놈들..

 


내가 미쳤지.내가 미쳤어.

 

안그래도 초코렛이 차고 넘쳐날 놈들땜에 개고생하고 마음졸인 내가 미쳤어..

 

..

 

 


휘적휘적.

 

덕풍고 4층 복도에 서서..

 

다혈질인 성격에 책가방안의 초콜렛을 창밖으로 휙 던지려 하면..

 

...

....

 


창밑으로 아주 조그맣게 두남녀의 머리통 윗꼭지가 포착되고.

 

여자가 남자에게 무언가를 내밀면..

 


남자는 불쑥 그것을 받아든다...

 

 

얼씨구나...지화자 조오타...

 

 

 

그래..강하루..머리까지 쓰다듬어주는구나..


오냐 그래..갈때까지 가보자..


그 무뚝뚝하고 차갑던 모습은 어디가고..기꺼이 여자의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는구나..


뿌듯하고 대견스럽기가 이루 말할데 없구나.

 

 

 

 


"카악!!!!!!!!!!퉷!!!!!!!!!!=0="

 

 

 

초콜렛 대신 창밖으로 날아간 나의 가래침.

 

이윽고 밑에서 여자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리면..

 

난 참 비참히도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 달아났고...

 

..

 

 

 


이제 그 빌어먹을 '초콜렛' 얘기는 나의 그 가래와 함께 끝이 나는듯 싶었으나..

 

 

왠걸..

 

 

 

그것은 단지 방과후와 늦은밤의 사고.


그 예고편에 불과했다.


"저기요.하루랑 은찬이가 교문으로 오래요."

 

 

 


\ 방과후.

 

 

 

참네.

 

웃기고들 있구만...(잔뜩 심술났음-_-)

 

 

청소를 끝마치고 교실을 나서면..

 

덕풍고 사내놈 하나가 조심스레 나에게 말을 건네고..

 

난 쓰레기장에 버릴 심사로 그 하트모양의 정성스러운 초콜렛을 손에 쥔채.

 

천천히 교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왔다!!꺄오!!>ㅇ<!!"

 


"꺄오오!!>ㅇ<!!"

 

 


오냐..니놈들..

 

내가 얘기해주나 봐라..

 

지금 저 악령의 초콜렛 바구니 들고 교문으로 달려가는 코끼리와 맘모스..

 

쳇..내가 어디 일러주나 봐라...

 

..

 


교문으로 무섭게 달려가는 그 두아이들을 보며..

 

난 좀 치사한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고..

 

이내 교문가에 있는 한 뭉탱이들이 점점 시야에서 커져오기 시작하니...

 

 

 

 

 

"우와..죽인다..지금까지는 은찬이가 앞서는구나!!!-0-!!자자!!니들은 줄서라 줄서..!!"

 

 

 

어느새 그 무리에 자연스레 어울린 하루를 보며.


그리고 다시 은찬이를 보며.


오랑우탄처럼 주둥일 쩌억 벌리며 신난 고함을 외치는 날발이.-_-.

 

 

 

동시에.


등뒤로 감추어지는 나의 정성스러운 은박지 하트 초콜렛.

 

 

 

"야야..얘 귀엽네 얘 귀여워..그래 넌 누구..?"

 


"오빠는 좀 저리 가세요..하루오빠 주려고 온건데.."

 


"뭬야!!!!!!!!-0-"

 

 

"어우..진짜 웃겨...-_-^"

 

 


참으로 꼴사납군 날발이.


..

 

 


여하튼.


어떻게 된게 저놈들 팬은 죄다 여중생 뿐인듯..


정평중 아이 하나가 그 시커먼 교복무리에게 다가서면..


하루는 쉽게 찾아볼수 없는 미소 띈 얼굴로 그 포장된 상자를 받아 들었고..

 

 

 

"흠흠..!!"

 

 


분명히 내가 그 옆에 살며시 다가섰지만..

 

나를 본체 만체 하면서..그 초콜렛을 받아들기에 바빴다..

 

 

 

"어?야.설이 왔는데?"

 


"쫌만 기다려.."

 

 


..후...

 


날발이의 흥미로운 말에도 아랑곳않고 초콜렛을 품에 안기 바쁜 강하루.

 

게다가 강은찬은 한술 더떠 친구가 받은 초콜렛을 갈취하려 하고 있고..

 

...

 

 

좋다 이놈아..


지금 니 앞에 수줍게 다가선 코끼리의 정체를 내가 까발릴소냐..

 

 

 

"..오..오...오..오..오파..!!-0-.."

 

 


그리고 때마침..

 

아주 고맙게도..정말 베리베리 땡큐하게도..

 

수줍게 '오파'를 외치며 하루를 바라보는 코끼리와 맘모스..

 

 

 

그러면 미소를 띈 하루가 코끼리를 돌아보..


기전...-_-

 

재빨리 그 앞을 타악 가로막는 날발이.

 

 

 

 

 

"얘!!넌 탈락이란다!!가려무나!!"

 

 

"뭐에요!!-0-비켜요!!"

 

 

"안돼 글쎄!!너희들은 안돼요!!염치없이 이게 무슨 짓이니!!-0-"

 

 

"고릴라처럼 생겨가지고!!=0=!!비켜요!!당신이 뭔데 이래요!!!"

 

 


"워어이!!워어이!!어서 동물원으로 돌아가도록 해!!


빨리 돌아 오라는 조련사 아저씨의 전갈이다!!-0-"

 

 


"어머!!이 고릴라가 왜이래!!!!!-0-"

 

 


안타깝게도..

 

두 팔을 가로막으며 코끼리와 맘모스를 운동장쪽으로 몰아가버리는 날발이..

 

 


그러면 난 교문에 턱 몸을 기댄채.

 

삐딱한 시선으로 초콜렛 더미에 파묻인 은찬이와 하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바로 그때.

 

 

 

"하루야..근데 이건 대체 뭐야..?이것도 받은거야..?"

 


"어..책상에 있던데..."

 

 


-0-헉!!

 

 

하루가 양팔 가득 낑낑 들고 있던 초콜렛 더미중.

 

내가 준 정성이 담긴 은박지 하트 초콜렛 (사랑의 왕돈까스와 다를것 없음-_-)을 휙

 

꺼내드는 삐죽머리 따개 단추 눈.

 

 

 

 

그거 내가 만든거야!!

 


그거 내가 너 주려고 만든 거라구!!

 


팔딱팔딱.소리없는 외침이 강하게 메아리 쳐 나가면..

 

 

 


"이거 기분 나쁘다 야!!납작해가지고 꼭 돼지 궁댕이 본뜬것처럼..버려..!!"

 

 


"어..안돼..."

 

 


"맞어.그거 버려라!!그럼 형이 나보다 더 적은거다 맞지!?!"

 

 


순식간에 따개 단추 눈을 거들며....


하루 품에 안긴 내 '정성이 담긴 은박지 하트 초콜렛'을 교문 옆에 놓인


쓰레기 봉투 안에 휙 집어던지는 강은찬..

 

 

...

 

 


....이럴수가....?

 

이럴수가..........

 

이럴수가...있는거냐...너희들...

 

 

 

 

난 그래도 니 왕돈까스를 버스안의 시선과 함께 우걱우걱 다 먹었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인제 다 끝난거 같은데 가자 형.애들 더 안올거 같은데"

 

 

"웃기지마.이대로 가면 니가 이기잖아."

 

 

"뭐 어떡하냐.요즘 상황이 이런걸^-^"

 

 

"니가 지금 버린거랑 아까 운동장으로 쫓겨난 애꺼 치면 내가 이긴다."

 

 

 

"솔직히 지금 버린게 초콜렛이냐!?!!그건 누가 먹다남은 호떡 은박지에 싸서


형 책상에 버리고 간거야.절대 인정 못해.."

 

 


"나도 이대론 집에 못가.아직 줄 애들 더 있어."

 


....

 


그래..먹다 버린 호떡..

 

초코렛 개수에 눈이 먼 너희들은 그렇게 입 놀리는데로 말이 터져나오겠지..

 

 

 

하지만 아냐..그건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준비한 초콜렛이야..

 

6시간 넘게..나나언니와 마구 싸워가면서..힘겹게 만든 초콜렛이라고..

 

니들이 받으며 기뻐할 모습 떠올리고...성질에도 안맞는 요리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

 


먹다버린 호떡...?

 

..하....

 

....눈물마저 핑 돈다..정말..

 

 

 


"야..한설 왜저러냐..?"

 

 

 

귓가에서 멍멍히 울려대는 강은찬의 목소리.

 

 

 

"아무튼 애들 나올때까지 더 기다려."

 

"좋아..해보자고..해보자..!!누가 이기나..!!"

 

 


또다시 시작된 두사람의 초콜렛 싸움에..이젠 친구들도 지친듯..

 

한놈 두놈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기 시작하고..

 

...열이 뻗칠대로 뻗친 내가 혼자 돌아서는 찰나..

 

그럼에도 그 썩을 강브라더스는 아랑곳 하지 않을 찰나..

 


...

 

 


"내 이 가스나 이럴줄 알았지!!!!!!!!!!!"

 

 

 

바로 코 앞에 택시 한대가 멈춰서며.

 

그 안에서 츄리닝 차림의 누군가가 푹 하고 튀어나오니..

 

...모든 이의 시선이 그를 향해..다음으론 나를 향해 꽂혀 버렸다.

 

 

 

넌 참 때도 알아서 잘 맞춰 오는구나..

 

 

 

"뉴스에서 보고 설마.설마 했지 내가.!!!!!


정평중 H모양!!한설 너 맞았구만!!!!!!!!!!"

 

 

 

"....-_-....."

 

 


"이 계집애야!!!!!!!!그때 말도 없이 그렇게 가버리고!!!!!니가 뭐야!!니가 친구야!!사람이야!!"

 

 


"넌 발렌타인 데이에 고작 올때가 여기밖에 없더냐.."

 

 


"그 사고가 대체 왠말이냔 말이야!!!"

 

 


덕풍고.정평중 교문앞..

 

그 앞에 마주선 백찬영과 나.

 

바로 등뒤에는 강브라더스와 그 졸개들.

 

 

찬영이가 계속 고래고래 내게 악담을 퍼붓는 사이..

 

이놈들이 어쩔까 궁금하여 살짝 등을 돌리면..

 


..

 


하루는 오랜만에 되찾은 그 무표정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은찬이는 초콜렛을 입에 천천히 굴리며 삐딱히 이쪽을 바라보고..

 

그러면 난 놈들을 이빨로 우적우적 씹어먹을듯 아주 세차게 노려본뒤에..

 

 

 


다시 눈치없는 백찬영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_-..넌 이 새끼야..그날 나한테 안맞아 죽은거만 해도 천만 다행인줄 알아"

 

 

"근데 니 뒤에 쟤네.어디서 많이 본거 같은데..


왜 저리 나를 노려보지..쟤네 쌈 잘하냐..=_=..?"

 

 

 

"몰라.저 매몰차고 잔인한 새끼들 내가 알바 아니야.."

 

 


"근데 너 그게 뭐냐.."

 

 

"뭐.."

 

 


"등뒤에 숨긴 그거."

 

 

"등뒤..."

 

 

 

등뒤에....

 


숨긴....내...'정성이 담긴 은박지 하트 초콜렛' (아주 끝까지-_-)

 

그리고 또 등뒤에....

 


강브라더스가 있었구만....

 

 

 

"야야..이게 뭐냐..하이튼 한설 희안한건 알아줘야돼..."

 

 


힘이 풀린 내 손에서 재빨리 은찬이에게 주려했던 그 초콜렛을 가져가는 찬영이..

 

더불어 멍청한 눈으로 그 초콜렛을 바라보는 하루와 은찬이.

 


한마디로 '아뿔싸' 라고 이름을 붙이면 딱 좋은 그 시선.

 

 

 

 

 

"우와..이게 뭐다냐.."

 


"이리 가져와!!!!!!!!!!!"

 


"아니..뭐야..은박지가 달라붙어 잘 벗겨지지도 않는구만..!!"

 

 

"날 더이상 희롱하지 말란 말이야!!!!!!!-0-"

 

 

대롱대롱.

 

키가 190도 넘는 찬영이 팔에 매달려 헛손질을 하는 사이..

 

어느덧 등뒤로 성큼 다가선 강은찬의 목소리.

 

 

 

 

 

 

 

"그거 내거다.가져와."

 

 

"뭐...?이게 니거라고..?"

 


"그래.그거 내거야.가져와..."

 

 

"진짜야?이거 쟤거냐 설이야..?"

 

 

 

술취했던 탓에 은찬일 기억못하는 찬영이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난 그 틈을 타 재빨리 나의 '가련한' 초콜렛을 손아귀에 넣은채.

 

교문짝이 부서져라 고함을 질러댔다.

 

 

 

 

 

"쳐먹다 남은 호떡 찌끄래기를 왜!!!!!!!이제와서 왜 찾아!!!!!!!!!!-0-"

 

 

"미안...죽을죄를 졌어..."

 

 


"더이상 사람 비참하게 만들지마!!!!!!꺼져!!이 개돼지놈들아!!"

 

 


"죽을죄를 졌습니다.."

 

 


은찬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비는 시늉을 하면.

 


교문앞에 앉아있던 그 졸개놈들은 '어쩌면 여자가 저럴수가-0-' 라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막 쓰레기 봉투를 뒤져 나의 초콜렛을 찾아 품에 안은 하루는..

 


눈치라곤 씨알머리도 없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한설아.이거 내가 버린거 아니라.강은찬 쟤가 버린거래."

 

 

 

"후...."

 

 

 

"..............."

 

 

"니놈것도 이리내!!!!!!!!!!!!


그리고 니들!!!!!!!!니들 앞으로 3일간 나한테 말걸지마!!!!!!!!!!!!!


한마디만 건넸다간 아궁이에 넣고 활활 불 태워버릴줄 알아!!!!!!!!!!!!!!!!!"

 

 

 


그렇게..


일단 방과후의 소동은 대강 끝을 맺는듯 싶었다.

 

 

 

 

\ 그날밤 내 방.

 

 

 


하...


정말 그것은 비참의 극치였도다..


하필이면 그때 백찬영놈이 나타나 그 정체가 드러난 꼴이라니...

 

 

 

"아악!!!!!!!!쪽팔려!!!!!!!!아아악!!!!!!!!!!!!!"

 

 

 

이따위꺼 꼴도 보기 싫어!!!!!!!

 

 

책상위에 놓인 그 문제의 초콜렛 두개를(하루꺼 기어이 가져옴-_-) 보며.

 

창밖에 던지고자 번쩍 집어들면..

 

 


..끼기긱..

 

문이 열리며..빼꼼히 모습을 드러내는 강은찬의 대갈통.

 

 

 


".......썩...꺼져라...."

 

 


"미안미안."

 

 


"3일간...한마디도..."

 

 


"홍세진.집앞에 걔 왔다."

 

 

"...뭐...?"

 

 

이게 대체 또 무슨말인가 싶어.

 

3일간의 절교 선언도 잊고서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면..

 

기회는 이때다 싶어 성큼 내 방으로 들어와버리는 강은찬이.

 

 

 

"그리구 작은형 나갔다"

 

 

"뭐야..?"

 

 

"걔 바구니 큰~거 하나 들구 왔던데?"

 

"..........사...상관없어..."

 

 

"너 지금 머리카락 곤두 섰다"

 

 

"나가!!!!!!!!"

 

 

"오오..이단계 변신..입술 경련.."

 

 

"그따위꺼 상관없으니까 나가!!이 초코렛에 눈먼 탐욕스러운 자식아!!"

 

 


"삼단계 변신.초싸이언!!얼굴 파랗게 변한다!!오오!!-0-"

 

 


...후우....

 

.....후우.....

 

 

 


"사단계 변신!!울트라 초 싸이언!!눈에서 광선 나온..!!"

 

 


"비켜!!!!!!!!비켜 이 자식아!!!!!!!!!"

 

 

 

콰당..!!


분을 이기지 못한 내가.그리고 질투를 이기지 못한 내가.

 


놈을 지나쳐 미끄러지듯 방을 나오면..

 

재빨리 책상위의 그 '정성이 가득 담긴 은박지 하트 초콜렛' 을 들고

 

내 뒤를 쫄랑쫄랑 따라 나오는 은찬이.

 

 

 


"아니..대체 무슨 일들이냐..?"

 

 


쿠당탕탕..!!

 


온갖 대소란을 일으키며 현관문으로 달음박질 치는 날 보며.

 

거실에서 TV를 보던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 몸을 떠시면..

 

난 신발 신는것도 잊어버린채 마치 마라톤 선수처럼 정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고..

 

 

 

...

 

 

 

"언니는 집에 있어요..?"

 

 

 

하아...아아아...

 

가쁜숨을 내쉬며 까맣고 커다란 대문가에 귀를 가져대곤..

 

이내 반대편에선 분명히 들려오는 세진이의 목소리에 온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응."

 

 

....그리고.....

 

목구멍이 뜨겁게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면....

 

아주 상냥하게 받아주는 하루의 대답소리...

 

 

 


"응..그렇구나..헤헤..오늘 초코렛 많이 받았죠.


내껀 줘도 별로 기분 안좋겠다.."

 

 


"아니야.좋아."

 

 

"정말요..?정말로 좋아요?거짓말 아니라 정말?"

 

 

"어.그러니까 줘."

 

 

....


..........

 


너무 다정하게 들려오는 하루의 목소리에.

 

어이없이 터져나오는 한숨...

 


그리고 이어 세진이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오면...

 

 

사박..사박..

 

내 옆에 귀를 찰싹 붙이고 덩달아 선 강은찬.

 

 

 


"열받냐?"

 


"너 저리 안꺼져?"

 


"스무개.스무개."

 


"이 새끼가 근데 여기까지 와서 또 그 타령이.."

 

 

"저거 형이 받으면 형이 이기는데."

 

 

"야......."

 


...

 

 

행여 건너편에 들릴새라.

 

이를 악문채 숨죽인 목소리로 놈을 노려보면..

 

내쪽은 바라보지도 않은채..계속 중얼중얼 말을 잇는 강은찬.

 

 

 

 

"내기했다."

 

 

"뭐야..?"

 

 

"아빠가 제주도행 1박2일 여행티켓 두장 있다고.이번 토요일에 두사람만 가래잖냐.."

 

 

"....."

 

 

"초코렛 더 많이 받는 사람이 너랑 가기로.


그렇게 일주일전부터 내기했다.."

 

 


"아니...이것들이 밥먹고 할짓이 없어 이젠 별짓거리를 다하네.."

 

 

 


그러나 대답과는 달리....


차츰차츰 누그러드는 속마음...

 

 

 

그래서 그렇게 미친놈들처럼 집착을 해댄거구나......


세진이도 초코렛 때문에 만나러 나온거고...


그리고 또..강은찬 너도..

 

 

 

"니가 이거 두개 다 나한테 주면 내가 이긴다."

 


"왠 헛소리야.........."

 

 

"병신.못알아 듣는척 하지마."

 

 

 

"이 자식이 근데 뭘 잘했다고..-0-.."

 

 

 


그렇게.

 

도끼눈을 부릅뜨고 은찬이를 바라보면..

 

건너편에선 세진이의 초콜렛을 받고서

 

뛸듯이 기뻐하듯 하루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오고..

 

 

 

...

 


은찬인..

 

내 앞에서 고개를 푹 숙여 목소리를 더더욱 낮춘 은찬인...

 

못알아듣는척 했던 내가 야속했던듯..

 

다시 한번 또박또박..정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기는 사람이 한설이랑 여행.


현재 스코어는 이십일대 이십.강하루가 앞서고 있음.하지만."

 

 

 


"우..웃기지마..니들 둘이가면 되겠네..!"

 

 

 


"강은찬 역습 가능성 0.1퍼센트 있음."

 

 

 

"나...원..참...기가 막혀서..."

 

 


"그래도 강은찬."

 

 

 


"...."

 

 

 

 


"0.1퍼센트 자격은 있음."

 

 

....

 

 

......

 

 

잠시후 똑바로 마주친 은찬이의 옅은 두 눈.

 

 


그리고.


순식간에 조용해져버린 대문 건너편..

 

아무래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은듯...

 

식은땀 흐르게 고요해져버린 대문 건너편..


"그러니까 현재 21대 20이란 말이지.."

 

 

 

 

대문 건너편에서 세진이의 작은 기침소리가 들려왔을때.


눈앞에 선 강은찬을 향하여 내가 똑바로 내던진 말..

 

 

 


"...."

 

 


그러면 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린 초콜렛 두개를 내 가슴팍에 푹 쑤셔놓고..

 

 

 

"후우우..."

 

 


난 아주 미세한 한숨과 함께 그 비참한 물건들을 내려보다가.


그중 하나를 은찬이의 손안에 덥썩 쥐어주었다.

 

 

 


"자.이거 원래 너 주려고 했던거.

 


"그럼 그건.."

 


"...."

 


"그거 형주면 내가 지잖아.."

 


"......"

 


"됐다....관두자...."

 

 

 


비장한 눈초리로 변한 내가 천천히 대문을 열어제낄때...


힘빠진 목소리로 정원을 향해 등을 돌려버리는 은찬이.

 

 

 

"언니..."

 

 

 

그리고 그와 동시..


활짝 열린 대문 앞에서 날 발견하고 몸을 움찔하는 홍세진이..


와 맞은편에서 사탕 바구니를 들고 멍청히 나를 바라보는 하루군.

 

 

-_-

 

 

 

얼씨구..


저 목에 칭칭 감은 하얀 털실 목도리는 뭐야..


초콜렛과 함께 받았나보구만..

 

 

 

....

 


"니들 날 두고 내기를 했다매?"

 

 

잠시후.


조금 비아냥대는듯한 나의 말에..


하루는 고개를 까딱이며 나와 은찬일 번갈아 노려보았고.

 

 

그에 난 손에 든 '세상에서 젤 비참한 초콜렛' 을 얼굴위로 번쩍 치켜 올리며..


세진이의 눈을 질끈 감켜 버렸다..

 


..-_-

 

이건 살인용 무기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니들 둘다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그랬단 말이지.."

 

 

"내기잖아."

 

 

"내가 당구 칠때 걸고 하는 짜장면이냐"

 

 

"짜장면처럼 까매"

 

 


후우우...

 

침착하자..침착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목에 칭칭 감긴 목도리는 도저히 침착할래야 침착 할수없는 아이템이 아닌가..

 

 

 

 

 

 

 

"있잖냐 난..이긴 사람 뒷꽁무니를 살랑살랑 쫓아가는 그런 순종적인 여자는 못돼"

 


"알아.그래서 그거 누구 줄건데."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어.중요해.누구 줄거야"

 

 

"내가 먹을거다!!!!!!내가 먹을거다!!!!!!왜!!!"

 

 


"....."

 

 

순간.


걸음을 멈춘 은찬이를 비롯해..


나를 둘러싼 세사람의 인상이 '이건 좀 아니다' 싶을 정도로 구겨져버리면은..


입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나의 '정성이 가득 담긴 은박지 하트 초콜렛'

 

 

 

 

"우걱우걱...."

 


"뭐하는 짓이야...?"

 

 

"동점 시키는짓.니들 내기 무효 시키는 짓."

 


"거짓말."

 

 


"퉤퉤...쓰레기통에 박혔다 나온거라 그런지 더럽게 맛없네!!!"

 

 

 

바닥으로 마구 튀기는 초콜렛 파편을 보며.


세사람의 표정이 한층 더 일그러져 가면..


난 도망치듯이 현관문을 향해 휘적휘적 다가가기 시작했고..

 

 


...

 

 

참 우왁스럽게도 상황을 모면한 내 자신에 대하여 동정섞인 경의를 표했다.

 


....

 

 

빌어먹을..


동점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말을 해.

 

 


마음속 승패가 정해져 있는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0.1퍼센트를 중얼대며 고개숙이는 니 앞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진 그 결과를 어떻게 씨부려대..

 

 

 

 

"뭐야 이게!!!!!!그럼 나랑 형이랑 둘이 가라는 거냐!!!!!!!!!!"

 

 

 


이젠 정말 진심이라는거 알아버렸는데..


불타오르는 차창밖에서 니가 날 보며 울부 짖을때..


니 마음도 정말 진심이라는걸 알아버렸는데..

 

 

 


"결국엔 하나가 상처 받아야 나머지 둘이 웃을수 있는데..


하필이면 또 그 상처 주는 역활이 내 차지라는데....."

 

 


"야!!!!!!!!!나만 니꺼 줬으니까 그럼 내가 이긴거다!!!!!!"

 

 

 


등뒤에서 은찬이의 고래고래 고함이 들려오면..


난 힘없는 미소와 함께 현관 문고리를 잡아 당겼고..


그와 동시에 할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이 귓가에 맴도나니..

 

 

 


"허허허허허허허!!!!!!!!"

 

 


-_-...

 

 

\ 평창동 집.

 

 

 

 

 

"허허허허허.것참 재밌구만.동점이라니!!-0-"

 

 

"할아버지...-_-..."

 

 

"당연히 하루랑 갈줄 알았더니만..


마음이 많이 약해졌구나..그 단단하고 거침없던 설이가!!-0-"

 

 


"왜 하필 두장이에요."

 

 


쇼파위에 앉아 사과를 아삭아삭 베어 드시며..


우스워 죽겠다는듯 배를 텅텅 두드리시는 강씨네 집 대마왕님.

 

 

 

"아냐 틀려.내가 처음에 준건 세장이였다."

 


"네.....?"

 


"주말에 머리나 식히고 오라고 세장을 줬지.그래.분명히 처음엔 그랬어.."

 

 

 

현관문으로 가까워오는 두 놈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서면..

 

오물오물 사과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여유롭게 말씀을 잇는 할아버지.

 

 

 


"그러니까 두놈 다 한장은 당장에 갖다 버리라지 뭐냐-0-


원래 밀월 여행은 남녀 둘이만 가는거라고..


게다가 당일치기가 아닌 일박 이일은 말이야.


어쨌든 너한텐 절대 말하지 말라기에 가만 지켜보긴 했다만.."

 

 

 

"..-_-.."

 

 

 

"지놈들이 판 함정에 지놈들이 걸렸으니.


두놈이 사이좋게 갔다오면 되겠지 뭐.껄껄껄껄-0-"

 

 


"진짜 입 주책맞네 저 영감!!!!!!!!!!!!!"

 

 

 

 

바로 그때.


너무도 가깝게 느껴지는 살기에..


건조한 표정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면..

 


성큼성큼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오는 강은찬과..


목도리로 코까지 칭칭 감은탓에 빼꼼히 보이는 두 눈을 깜빡거리는 하루.

 

 

 

 

"이 놈 이거 말버릇 보게나!!!!!!!!!!"

 

 

"그걸 왜 말하냐?!!!!!!셋이 비밀로 하기로 했으면 비밀로 해야지!!!!!"

 


"넌 또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어!!!!!이제 고3도 되어 좀 나아지나 했더니!!!!!!"

 

 

"형이랑은 안가!!!!차라리 안간다!!!!!"

 

 

"이놈이 안가게 된걸 왜 나한테 심술이야!!!!!너 회초리좀 맞아라!!!!!"

 

 


...


.....

 

 

사과를 접시에 휙 내던진 할아버지가 노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


강은찬은 씩씩대며 계단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마지막으로 하루가 목도리를 끌러 바닥에 휙 떨구어 던졌을때..

 

 

 


"니들이 그랬단 말이지.."

 

 

 

 

난 삐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애써 되찾은 딱딱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그 한마디를 내던졌다.

 

 

 

 

"......"

 

 


"가만히 있으면 이번주 토요일날 자연히 가게 되있던 나의 제주도 여행을.


내기다 뭐다 해서 니들 멋대로 변경 시켰단 말이지.."

 

 

"결국 동점으로 게임 끝 났잖아.그럼 된거 아니냐?"

 

 

 

쿠당탕..

 

 


남자들의 승부욕 세계는 정말 미묘하고 복잡한듯..


'동점'이란 결과에 그 두놈이 또다시 계단을 향해 엎치락 뒤치락 멀어져갈때..

 

눌러참던 미소가 얼굴에 번지며..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터져 나온 기대에 부푼 말.

 

 

 

 

 

"웃기지마.예정대로 해."

 

 

"뭐..?"

 

 

"원래 셋이 가기로 했던거니까.예정대로 하잔 말이야."

 

 

"셋이 갈거면 차라리 안가고 말아."

 

 

"왜!!?둘은 되고 셋은 대체 왜 안되는 건데!!!!!"

 

 

 


제주도에 눈이 먼 나의 고함에도 마음을 바꿀 의사가 없는듯.


강브라더스는 망설임없이 계단을 저벅저벅 오르기 시작했고.

 

 

이에 나는 재빨리 그놈들의 옷깃을 움켜 잡으며.


보다 설득력 있는 대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제주도에 눈이 멀었다)

 

 

 

 


"셋이 가서 사이좋게 놀면 되잖아..


대체 왜 싫은건데..그럼 더 재밌고 신나고 좋잖아.."

 

 

"그럼 신기사 아저씨랑 아빠랑 아줌마랑 넷이 갔다와라.


넷이니까 아주 신나서 발랑 뒤집어 지겠네."

 

 


"강은찬!!!!솔직히 이번 여행은 원래 가기로 되있던건데!!


니들이 생쇼 부려 물거품 만든거 아냐!!!!!"

 

 

"그 생쇼를 누구땜에 부렸는데"

 

 

"하루 너도 싫어!?!셋이 가는거 싫어!?!?"

 

 

"어."

 

 


"대체 왜?!!!"

 

 

"밤에 재미없어"

 

 


....

......

 

-_-..

 

 


뭔지 모를 오묘한 그 대답에..

 

할아버지의 사래걸린 기침 소리와 함께 머릿속 뇌세포가 핑글핑글 활동을 시작하면..

 

다시 계단을 오르는 두 남자의 발 네개.

 

 

 

그리고.


그 발 네게를 재빨리 잡아묶는 내 나즈막한 저음의 목소리.

 

 


"잠깐만.뭐라고..강하루..?"

 


"..."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굳이 둘만을 고집한 이유..거기다가 밤이 재미없다니.."

 


"....."

 


"이것들 내기 한 목적이 따로 있었구만..으응..?"

 

 

"...."

 

 

 

수상쩍을 정도로 말이 없는 그 모습에.

 

쿵쾅쿵쾅 계단을 올라 위에서 그 강브라더스를 내려보면..

 

내가 민망할정도로 확 달아올라버린 두 남자의 얼굴.

 

 

"어쭈..이놈들 봐라.."

 

 

 

이내.그 확연한 증거를 가리기 위하여.


그중 얼굴이 좀 덜 빨개진 하루가 아까 주운 털실 목도리를 머리위에 푹 덮으면.


내 투박하고 야성적인 왼손이 재빨리 그 목도리를 바닥으로 홱 행가래 쳐버리고...

 

 

 

 

"맞구만..맞아..


내기의 목적은 제주도가 아니라 1박2일의 그 '1박' 이였어..."

 

 

....


......

 

 


잠시 고요히 흐르는 정적.

 

그러면 그 정적에 맞추어 사뿐히 쇼파위에서 엉덩이를 떼는 할아버지.

 

 

 

 

"이 천하의 드러운 놈들!!!!!!!!!!그 불순한 사상때문에 내 꿈같은 제주도 여행을


산산 조각내!!!!!!!!!!?"

 

 

"뭐래냐!!!!!!!!!"

 

 


"그럼 그 시뻘개진 얼굴들을 어떻게 설명할건데!!!!


홍당무 즙 쳐바른것처럼 빨개진 그 얼굴들!!!!!!!"

 

 


"야야 시끄럽고!!!가서 좀 자라!!!!"

 

 


"어딜가!!!!말돌리고 어딜가 이놈들아!!!!!!!'

 

 


할아버지마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안방으로 자취를 감추신 바로 그때.

 

놈들은 서로의 어깨를 마구 밀쳐대며 도망치듯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내 제주도 가져와 이 음흉한 새끼들아!!!!!!!!


제주도 가져오란 말이야!!!!!!!!!!!!!!!"

 

 

 


그렇게 제주도를 향한 나의 집착은.

 

 

뻐꾹.뻐꾹.뻐꾹.

 

뻐꾸기가 세벽 세시를 울리는 그 순간에도..

 

 

 

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

 

뻐꾸기가 세벽 다섯시를 울리는 그 순간에도 그칠줄을 몰랐으니..............

 

 

 

 


"아 젠장!!!!!!!그래!!!!!!!!셋이 가!!!!!!!!!!!!


셋이 가자 셋이 가!!!!!!!!!!!!!!!!!!!!!!!!!!!얘 진짜 왜 이러냐!!!!!!!?"

 

 

 

 

 

 

 

\ 다음날 아침.

 

 

 

 

"자자!!김포 공항 출발이요!!!!!!!!!"

 

 

 

텅텅.!!

 

운전대를 두드리는 신기사 아저씨의 곱디 고운 손.

 

 

"출발..!!"

 

 


그리고 차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나의 즐거운 목소리.

 

 

 


"결국은 셋이 가기로 했구먼.그래야지 암.


남녀 단둘이 갔다가 뭔 큰일이 날려고..!!"

 

 


"아저씨 생각도 그렇죠!!!!!!!?"

 

 


"그럼!!게다가 아직 학생들인데!!"

 

 

 

"그러게요.제가 참 눈치가 느렸죠 뭐!"

 

 

 

콜록콜록..

 

 

미끄러지듯 차가 동네를 벗어나는 사이.


허를 찌른 나의 말에 양옆에 앉은 두놈이 동시에 약한 기침을 토해내면..

 

점점 더 의기양양해지는 나의 시선.


그리고 처음으로 하는 비행기 여행에 주체할수 없을만큼 솟구치는 엔돌핀.

 

 

 

 

 

"야야.비행기 창문 열어도 되냐?응?"

 

 

"또라이야.입다물어"

 

 

"바람이 좀 쎄서 안되나?못열게 하나?"

 


"휴..."

 

 

"거기 창밖으로 손내밀고 구름 만져봤어?"

 

 

 


차가 동네를 빠르게 벗어나는 사이에도..

 

들뜬 나의 질문은 그칠줄을 모르고..

 

그에 놈들은 한숨을 내쉬며 내 머리 위로 빙글빙글 손가락을 돌려대니..

 

 

 


'너 좀 돌았지?'


그래.한마디로 이런 의미가 담긴 두번째 손가락을..

 

 

 

 

"하하.그래 니들이 뭐 그렇게 심술낸다해도.


내 기분 오늘 진짜 최고다..!!"

 

 

"그래.그럼 구름 뜯어서 쳐먹어.더 째지겠네."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건데.."

 

 


"아 또 뭐!!"

 

 

"비행기 창밖으로 내다보면..구름 밖에 안보여..?

 

 

"..."

 

 

 

"왜..다른 행성이라든지..아니면 다른 비행기 창밖으로 얼굴 내민 다른 사람이나..


구름밖에 없으면 재미 없잖아..


근데 구름밖에 없나..?"

 

 

 

"왜.아주 천사가 여럿이야."

 

 


-_-...

 

신기사 아저씨의 숨죽인 웃음이 터져나오면..

 

비아냥대는 목소리로 내게 대꾸하는 강은찬.

 

그리고 왼쪽에서 그 바톤을 이어받는 하루의 목소리.

 

 

 


"어.천사들이 하프도 키고 피리도 불어"

 


"그래.니가 손흔들면 막 인사해줄껄..그뿐이냐..?"

 


"운좋으면 하느님도 볼수 있어"

 


"맞어.근데 한번 타선 보기 힘들어.한 이백번 타야 한번 볼까 말까야.

 

 

.....

 


......후....

 

 


참자..처음 하는 비행기 여행..


난생 처음 가는 제주도..


참아야 하느니라..


열뻗쳐도 성질나도 참아야 하느니라..

 

 

 

 


"설이야-0-"

 

"..네.."

 


"근데 아저씬 접때 말야..창밖에 손내밀었다가"

 

 


이 인간은 또 무슨말을 하려고....

...

 


뭔가 좀 불쾌해지는 마음에..

 

태연히 눈감은 강브라더스를 찢어죽일듯 노려보다가..

 

물끄러미 시선을 앞으로 옮기면은..

 

입을 동그랗게 오무리고 마지막까지 나를 희롱하는 신기사 아저씨.

 

 

 

 

 

 


"하느님하고 악수도 해봤다-0-"

 

 

"..............."

 


"진짜야.진짜"

 

 

"................."

 


"그러니까 꼭 창가에 앉아서 가.알았지?"

 

 


"안가!!!!!!!!!!!!!!!!!안가면 될거 아니야!!!!!!!!!!!!!!!!차 세워요!!차 세우란 말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우리의 제주도 여행.


어쨌든 그 시작을 간추려 말해본다면 대충 여기까지.....


가 물론 전부는 아니였다..-_-

 

"헤헤헤헤!!!!!!!!오돌이 먹으러 가자!!!!!!!!!"

 


"야이 미친자식아.거기 쳐먹으러 가는거 아냐...과제 하러 가는거야.."

 


"제주도오오오오오돌이!!!!!!!"

 

 

"야..나 진짜 쪽팔려..입다물어.."

 

 

"제주도오오오오오돌이!!!!!!!-0-"

 

 

 

...흠...-_-...

 

 

 

\ 김포공항.

 

 


드디어 공항이다.

 

그리고 우리 바로 앞엔..

 

그 목적지가 제주도임을 여과없이 알게 해주는 괴상한 두 남정네가 서있다.

 

 

 


"아 저것들 뭐야..미친거 아냐.."

 

"근데 오돌이가 뭐지.."

 

"몰라.."

 

 

 

내가 그 두 남정네를 뚫어져라 보는 사이.


강브라더스는 정말 죽어도 가기가 싫은듯..

 

그 야리꾸리한 두 남자를 씹으며 힐끔 힐끔 뒤를 돌아보고..

 

그에 난 놈들의 고개를 앞으로 홱 되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왕 가는거 재밌게 갔다 오자.응?"

 

 

"비행기 탈 생각에 설레냐?"

 

 

"입 다물어.강은찬."

 


"너 때문에 잠 못자서 온몸이 굳었잖아.이거 어떻게 책임질래.너 이따 안마 확실히 해라"

 

 

 

정말 이놈 끝까지 이 컨셉이구만..

 

 

 

그랬다.


검열대를 통과하는 내내..


비행기에 탑승하는 내내..


은찬인 입이 댓발 나와서는 계속해서 나에게 시비를 걸어댔고..


그에 반해 비교적 양반인 하루는 한마디 말도 없이 풍선 껌만 푸우푸우 불어댔다.

 

 

 

뭐..그것도 과히 기분 좋아뵈는 행동은 아니였지만..-_-^

 

 

 


\ 제주도행 비행기.

 

 

 

 


"야 어딜가 우린 여기야."

 

 


비행기에 올라탄 내가 주위를 마구 둘러보며 안으로 쑥 들어서면..


손목을 꽉 잡고서 맨 앞에 있는 넓은 의자에 휙 앉혀버리는 강은찬.

 

 

 

"어?"

 

 

"비즈니스 클래스."

 

 


"그게 뭐냐..?"

 


"젤 좋은 자리 병신."

 

 

"아~~!!그런거도 있구나!!!"

 


"목소리 낮춰.."

 

 

"우와..저 뒤에 자리보다 훨씬 넓구나..좋다아.."

 

 

 

분명 강은찬은 목소리를 낮추라 했지만.

 

난 쫙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창가 의자에 벌러덩 눕듯이 앉아 버렸고..

 

그에 내 옆자리는 단 하나만이 텅 비었으니..

 

 

 

 

"좌석 A-2.내가 여기다."

 

 


단호한 그 한마디를 내던지며.


내 옆 자리에 털썩 몸을 앉히는 강은찬.


그리고 곧바로 귓가를 쿡쿡 쑤시는 하루의 참고 참는 목소리.

 

 

 

"한설 너 누구랑 앉을거야"

 


"뭘 누구랑 앉아.자리데로 앉는거지"

 


"거봐.형 뒤로 가랜다"

 


"너 내 여자친구잖아"

 

".........................."

 

 


순간..

 

기내 전체에 아주 고요한 침묵이 흐르면..

 

...점점 삐딱해져가는 은찬이의 시선...

 

그리고 어제 놈들이나 만큼 벌겋게 익은 나의 양 볼.

 

 

 

"뭐..?"

 


"여자친구는 남자친구 옆에 앉는거야."

 


"...야..니들 자꾸 이럴래 진짜.."

 


"..."

 

 

통로를 가로막은 하루 때문에.


승객들이 더이상 들어오지 못하고 하나둘씩 불평을 토해내기 시작할때..


그앤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자신의 가슴에 펼쳐 달았고..

 

 


"..........."

 

 

 

이내 그게 내 학생증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난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한채 물끄러미 놈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저기요..빨리좀 갈수 없어요..사람들 못지나가고 있잖아요.."

 

 

 

점점 커져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점점 커다랗게 울려가는 내 심장소리..

 

 


이래서 셋은 안된다고 한거였구나..

 

이래서 셋은 안되는거였어..

 

 

 

"죽을때까지 이것만 기억해라."

 

 


...

 

 

 


떨어지지 않는 입 덕택에 멍하니 통로위의 하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놈은 내 학생증을 손으로 툭 치며 뒤쪽에 위치한 좌석으로 거칠게 사라져버렸고..

 

그에 난 커다란 한숨과 함께 무릎위로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 그거 형 줬냐.."

 

 

 

불평하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비행기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면..

 

정면을 꼿꼿히 응시한채 건조한 입술을 떼는 은찬이.

 

 

"...그래..."

 

"자리 바꿀까.."

 

"됐어..그냥 가자.."

 

 

...


....

 


"그냥 가자니까.."

 

 


내 말이 들리기나 하는걸까..

 

가방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린 강은찬..

 


....

 

 

그래서 결국엔 텅 비어버리고 만 내 옆자리.

 

 

 


"옆 자리 비었어요!!?!?"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한지 10분이 지나도..15분이 지나도..

 

두놈 모두 내 옆자리를 비참하고 덩그라니 비워놓고 말았으니...

 

 


...

 

 

이 놈은 아까 그놈 아냐..-_-..

 

 

전혀 낯선 목소리에 멀끔히 고개를 들면.

 

김포공항에서 '오돌이'를 외치며 모든 이의 시선을 잡아끌던 그 남자.

 

그 남자가 내 옆에 오도커니 다가서서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짜식...깜찍하게도 생겼다..-_-

 

 

 


"네.그런데요"

 

 

"나 앉고 싶다.나도 비즈니스 클래스 앉고 싶은데"

 


"..-_-..그쪽 자리 없어요?"

 


"있어요.."

 

 

...-_-..

 

 

베베 몸을 꼬기 시작하는 남자..

 

그래서 혹시나 싶어 힐끔 뒤를 돌아보면..

 

턱을 괸채 나란히 앉아있는 하루와 은찬이.

 

 

 

뭐야 저새끼들..-_-..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같이 붙어 앉았네..


나만 혼자 남겨놓고 말이지..

 

 

 

"빈자리면 나도 앉고 싶다...왜냐면 빈자리니까..

빈자리는 쓸쓸한데..."

 

 

"아.앉아요 그럼..-_-^..방해만 하지 말고.."

 


"헤헤 고마워요 누나!!!!!!"

 

 


과제 어쩌구 하는걸 보니 대학생 같던데..

 

이런 염치없는 새끼를 봤나..-_-^..

 

 

 

 


'누나'라는 그 소리에 발끈해 놈을 바라보면..

 

놈은 헤헤헤.또다시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에 덥썩 빵을 베어 물었고..

 

난 무표정과 함께 재빨리 창가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 창가 앉아야 하는데"

 

 

"뭐요..-_-.."

 


"내 친구 봐야 되는데..-0-.."

 

 


"이거 창문도 안열리던데요..!!!!"

 

 


"그럼 내 자리로 가서 앉을래?-0-?거긴 창문 열리는데"

 

 

"진짜..?

 

 

 


어느새 반말.-_-.

 

 

 

"응.창문이 쑤욱쑤욱 열려!!"

 


"..니 자리 어딘데..?"

 


"저기 맨 끝에.화장실 바로 앞앞에"

 

"진짜 열려...?"

 

"안열리면 홍두깨에~!!-0-"

 


"......."

 

 


너무도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해보이는 남자의 얼굴에..

 

난 잠자코 가방과 함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그에 그는 재빨리 내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며..

 


그 조그만 창문 앞에 얼굴을 찹쌀떡처럼 철썩 붙여 버렸다.

 

 


"...화장실 앞앞에..?"

 

 

 


"응.근데 거기 옆에 성질 드런놈 앉아 있는데 잘생겼다고 맘대로 키스하면 안돼.


너 확 물릴지도 몰라-0-"

 

 


"...-_-...그래.."

 

 

 

 

아까부터 느꼈지만 살짝 돈 놈이로구만..


...

 

 

 


"은형아.나 왔어.!!나 오돌이 먹으러 간다!!좋겠지!!!!?-0-"

 

 

 

살짝이 아니라 많이 돈놈이야..


...

 

등뒤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통로를 천천히 거닐기 시작했고..

..

 


이내 비즈니스 클래스 맨 마지막 좌석 바깥쪽에 앉아있던 은찬이가


팔을 뻗어서 내 앞을 가로 막아 버리니..

 

 

 

 

"어디가냐."

 

 

"창문 열러.."

 

 

"비행기 창문 못연다.어디가서 절대 그런 말 하지 마라"

 

 

"열린댔어"

 

 


"헛소리 그만하고 자리 가서 앉아."

 

 


"너희둘 화해해.비행기 착륙할때까지."

 

 


".............."

 


"나란히 앉았으니까.나란히 화해해...


안그럼 나 한라산으로 도망가서 행방불명 될거야"

 

 

 

그 마지막 말을 남긴 나는 창문을 열기 위하여 꿋꿋히 그 좁은 통로를 거닐기 시작했다.

 

 

 

"망할놈들..처음 하는 여행 기분 좋게 가면 좀 좋아..


시작부터 이렇게 삐그덕 거리면 어떡하자는거야.."

 

 


중얼중얼..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새어나오는 혼잣말..

 

동시에 멍하니 멈춰서버린 '화장실 앞앞' 의 좌석..

 

 


".....여긴가...."

 


"....."

 


"잠깐 좀 들어갈게요..."

 

 

 

그러면 창문 바깥쪽에 앉아있던 그 성질이 더럽다던 남자는..

 

만화책을 읽다 말고 구겨진 인상이 되어 빤히 나를 올려 보았고..

 

난 남자를 휙 넘어서 창가 바로 앞에 붙어 있는 의자에 재빨리 몸을 앉혀 버렸다.

 

 

 


그러니까..

 

내 자리에 대신 앉은 그 정신 돈 놈 자리에..-_-

 

 

 

 

"너 뭐야...?"

 

 

"당신 친구가 여기 앉으래"

 

 


"당신..?꼬맹아 너 몇살이니?"

 

 


"뭐야..여기도 창문 안열리잖아...어쨌든 니 친구가 그랬어.


키스 하면 죽인다고 어쩐다고 하면서..."

 

 

 

"김동영 이 미친 새끼."

 

 


벌떡..!!


분노한 내가 창문을 쾅쾅 두드리는 사이..


옆에 앉아있던 그 키크고 훤칠한 남자가 몸을 일으키면..


난 안간힘을 다해 창문을 밀고 흔들며 낑낑대기 시작했고..

 

 

 

 

"혹시 너 이름이 바보냐.."

 

 

"뭐야...?"

 


"그거 안열려."

 


"왜!!?"

 

 

"안열리게 만들었으니까"

 

 


"니 친구가 여기 창문은 열린댔는데!!!!!"

 

 


"걘 지구 바깥쪽에 사람이 대롱 대롱 매달려 사는줄 아는앤데.."

 

 

"...."

 

 

"넌 더하다.."

 

 

"......"

 

 


저벅저벅.

 

진공상태가 된 나를 내버려두고..

 

시원한 마스크가 인상적인 그 남자가 천천히 통로로 작아져가면..

 

 

 


"이 망할놈의 비행기 다시는 타나봐라!!!!!!!!!!!!"

 

 

 

 

난 열리지 않는 창문을 가진 비행기를 미워하며..

 

다음으론 하루와 은찬이를 싸우게 만든 비행기를 원망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쩍없이 제주도를 향해 가고 있는 비행기를 증오하며..

 

그 남은 35분간의 비행시간을 멀미한번 없이 꼿꼿히 견뎌냈다..

 

 

그리고...

 

 


"비행기가 착륙중에 있습니다.안전벨트를 꼭 착용해주시고.."

 


...

 


낭랑한 스튜디어스의 목소리가 그 망할놈의 비행기를 부드럽게 감싸 앉았을때...


...

 


좋아...이번 여행의 분위기 메이커는 기꺼이 내가 맡아주마..

 

 

 

그 당차고 터무니 없는 각오와 함께..

 

힘빠진 주먹을 불끈 쥐며 남아있는 투지를 불태웠다.

 

 

 

 


\ 제주도 공항.

 

 

 

 


"그러니까 말이야!!!


아까 그놈이 글쎄 지껀 창문이 열린다면서 나더러 지 자리에 앉으래지 뭐야!!"

 

 

 


"병신.자랑이냐."

 

 

 

휘적휘적.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은채 내 양옆에서 건들대며 걸어가고 있는 하루와 은찬이.

 

그러면 난 신이 난 표정으로 재잘재잘 입을 놀리며 그 낯선 공항 바닥을 거의 달리다시피 하고..

 

 

 


"야 니들 좀 천천히 걸어라.!!기럭지가 짧아서 난 뛰어야 된단 말야!!"

 

"형.택시 잡아서 가자."

 

"그래야지.

 

 


...어라...

 


놈들은 이미 비행기 안에서 몇차례 대화를 나누었던듯...

 

아무렇지 않은듯한 목소리로 공항을 나서며 멈춰선 날 향해 고갤 돌렸다.

 

 

 

"빨리 안올래!!!!!"

 

 

"화해..했냐?"

 

 

"안하면 한라산 가서 행방불명 된다매.


우리 한겨울에 등산 하는거 별로 안좋아한다.."

 

 

 

"헤헤.역시..강브라더스!!!!쿨해서 좋다니까!!!!!"

 

 


"그게 뭐냐..강브라더스가..."

 

 

 

덥썩.

 

놈들의 중간으로 뛰어들어 와락 안기다시피 어깨동무를 하면..

 

'강브라더스'를 처음 들었을 하루가 눈썹을 찡그리며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고..

 

난 안도 섞인 웃음을 계속 터트리며 신이 난 고함을 외쳤다.

 

 

 

 

"우와!!!!!!!제주도다!!!!!!!!제주도!!!!!!!!!!캬 공기 죽이고!!!"

 


"오랜만에 오네 제주도..."

 


"진짜...오랜만이네..."

 

 


그리고 공항문을 나섬과 동시에..

 

약속이나 한것처럼 기분좋은 미소를 지어보인 우리 세사람.

 

비행기에서의 그 냉랭한 공기를 깨끗히 씻어주는 맑은 바람에..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서로의 시선을 맞추며 밝게 웃어보이는 우리 세사람..

 

 

 

"일단 택시 타고 호텔로 가자."

 

"잠깐만.."

 

"....?"

 

 


공항앞에 쭉 대기하고 선 택시를 향해.

 

하루가 손을 까딱까딱 흔들어 보였을때...

 

공항 주변을 서성대던 할머니 몸 위로 꼼짝없이 멈춰버린 내 시선.

 

 


"왜..?"

 


"거지잖아.."

 


"그런가...근데 왜 공항 주변을 서성대..."

 


"관광객들한테 동냥하는거야..."

 


"아..."

 

"잠깐 여기 있어봐..."

 

 


알겠다는듯 하루와 은찬이가 고갤 끄덕이면..

 

난 주머니에 있는 천원짜리를 전부 꺼내어 그 남루한 차림의 할머닐 향해

 

재빨리 뛰기 시작했고..

 

 


"하...안녕하세요..."

 

 


이내..

 

좀 가쁜 숨과 함께 그 노란 누더기를 걸친 할머니 앞에 다가섰을때..

 

...

 


그녀는 3살박이의 어린아이 눈을 한채로 갸우뚱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니까..

 

딱 내 가슴까지 차오르는 작은 키..

 

 

 

 

"이거요..얼마 안되지만요..."

 

 

 

"떨어져.."

 

 


"....네....?"

 

 

 

"둘중 누구야??"

 

 

점점 커져가는 할머니의 동공..

 

....그리고 허공에서 맥없이 멈추어버린 천원짜리 몇장과 나의 불안한 시선...

 

 

 

 

"..무슨 말이에요...?"

 

 


"저놈이야.저놈이야..?"

 

 

"...."

 

 

...

 


....이내....

 


택시 앞에 서서 기분좋은듯 이쪽을 바라보는 하루와 은찬일 향해...

 


그 괴기한 할머니가 턱끝을 치켜들면...

 

 


...

 

 


".....그게..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

 

 

 

난 태연한..

 

그러나 가늘게 떨리는 음색으로 그 말의 의미를 재차 되물었고..

 

 

 

 


"니 영혼 다 판 놈 누구야?둘중에 누구야?"

 

 

...

 

.....

 

 

어린아이처럼 맑고 가늘어진 할머니의 목소리는..

 


잠자코 죽어있던 내 머리카락을 한올도 남기지 않고 모두 곤두 세워 버렸다.

 

 

 

 

 

"대답해야해.안그러면 큰일나.누구야?둘중에 누구야?"

 

 

"..........."

 

 

"너 큰일나.누구야?"

 

 

"..왼쪽..이요..."

 

 

"그것봐.인제 너 큰일나.난 몰라.난 몰라"

 

 


"...이거..받고요..저 그만 가볼게요..."

 

 

...

 

.....

 

 

왼쪽에 서있던 하루가...

 

어서 오라는듯 내게 손짓을 하면..

 

난 앙상하고 새하얀 할머니 손에 지폐 몇장을 지워준채 힘없이 등을 돌렸고..

 

 


...

 

...

 

 

저벅..저벅...

 


계속 그렇게 발걸음을 하는 동안에도...

 

...

 


맞은편에 있는 하루와 은찬일 향해 넋나간 발걸음을 하는 동안에도..

 

 


등뒤에선 계속계속..

 

7살 박이 어린애의 목소리가...

 

그러나 분명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그 목소리가...

 

이미 내려앉은 내 가슴을 꾹꾹 짓누르며 섬뜩한 꾸짖음을 시작했다...

 

 

 

 

 

 

"그 집에서 당장 나와..아가야 너 큰일나..


아가야...저놈은 안돼...차라리 오른쪽 놈에게 영혼 팔어...


왼쪽 놈은 안돼..."

 

 

 

"...."

 

 

 

 

 


타닥..타닥..

 


점점 빨라져가는 내 발걸음..

 

 

 

 

 

 


"누가 거짓말 해..그거 믿지마..믿으면 안돼.."

 

 

".........."

 

 

"그거 믿으면 너 큰일나...아가야....내 말 들어..."

 

 

...

 

 

 

....점점 가까워지는 하루와 은찬이의 얼굴...

 


창백해진 내 모습에 놀란듯..동시에 굳어져가는 두 남자의 얼굴...

 

 

 

 

 

 

 


"슬픈년 혼 하나가 매달려 있네!!!!!!!

 

그년이 안떨어져!!!!!!!!그년이 양보 못하겠대!!!!!!!!!!"

 

 

 

 

 


마지막..

 


마지막으로 째질듯이 울려퍼지는 그 비명에..

 


난 하루의 품안에 기절하듯 푹 안겨버렸고...

 

 

 

"한설...왜이래...."

 

"........."

 


"설이야...............설이야.............."

 

 


...

 


동시에 다급히 날 부르는 두놈의 목소리에........

 

주체할수 없을만큼 마구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진정 시켰다.

 

 

 

 

 


"저 할머니가 뭐래.."

 

 

 

"..아냐...아냐.."

 

 

"아까 뭐라고 소리 질렀잖아.."

 

 


"....아니야..신경쓰지마.."

 

 


천천히 등을 토닥여주는 하루의 손바닥..

 

그리고 자신도 많이 놀란듯..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내 머리를 천천히 어루어 만지는 은찬이..

 

 


하...

 

그래..단지 그래..

 

정신이 이상한 여자야...

 

아무것도 아냐....그냥...그게 전부야...

 


...

 

그렇게 스스로 내 자신을 위로하며...

 

두 녀석의 손길에 완전히 진정된 가슴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하루의 품안에서 얼굴을 들었다..

 

 

 


"..............."

 

 

 

그리고..그때..

 

이미 사라진 할머니가 깜빡 두고간 새빨간 그림자가..

 

진정된 내 가슴을 향해 소리없는 비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만 들을수 있는..

 


나만 볼수 있는..

 

나만 느낄수 있는........

 

.....

........

 

소리없는 비웃음을 지어보였다........

 

"형..얘 왜 이러냐...?"

 

 


"몰라.아무리 물어봐도 대답 안하잖아.."

 

 

"야..한설..."

 

 

"...."

 

 

"깜댕아 아까 그 할머니가 대체 뭐랬길래 그러냐!!!!!!"

 

 

 

\ 제주 해수욕장.

 

 

 

삼십분전쯤에 도착한 이곳 해수욕장.

 

차가운 모래 위에 앉은 나는 아무말없이 거칠고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그에 하루와 은찬인.

 

내 양 옆을 떡 버티고 서서는 답답해 미치겠단듯 발로 모래를 마구 지저 밟아댔다..

 

 

 

 


"아 뭐냐!!!!!!!!!얘 왜 이래!!!!!!!!혹시 오늘 그날아냐!?"

 


"그날이 뭔데..?"

 

 

 


멍한 초점으로 삼킬듯 물러날듯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면..

 

이어서 자신들만의 대화를 시작하는 두사람..

 

 

 

 

"아 그날 있잖아...여자들 예민한날..."

 

 

"몰라.그게 뭔데."

 

 

"순진한척 하지마라!!!!!!그럼 이 상황에서 내가 뭐가 되냐!!!"

 

 

"나 배고프다.."

 

 


"누군 뭐 배 안고파!!!!!!


야!!!!!한설!!!!!!!!너 쪽팔리게 벌렁 업혀서 갈래!!!!!!!!!!"

 

 

 

 

파도가 점점 가까워 온다..


우리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길수 없는 파도가..


안간힘을 다해도 필사적으로 몸부림 쳐도 절대 피할수 없는 파도가.....

 

 

 

 

"형 안되겠다..얘 들자.."

 

 


".............."

 

 

"도망가자...우리..."

 

 

"......뭐.....?"

 

 

 

삼십분만에 가까스로 입밖으로 새어나온 그 한마디..

 

그러면 점퍼를 꽉 여미다 말고...

 

'얘가 또 왠 헛소리야' 라는 시선으로 가만히 내 얼굴을 응시하는 두 사람..

 

 

 

 

 

"셋이서..멀리..멀리..괴롭히는 사람 없는곳으로..파도 없는 잔잔한 바다로


도망가버리자..."

 

 

 

"야.."

 

 

 

".때려 죽어도...난 행복할수 없는 운명인데..그 운명 거스르고 도망가자..


아니.나좀 데리고 도망가줘라..."

 

 

 

"그딴 운명이 어딨냐...."

 

 

 


털썩..

 

맥빠진 목소리와 함께..내 옆에 주저앉는 은찬이..

 

그리고 꿈쩍않고 자리를 지키고 선 하루..

 

이렇듯 날 힘들게 만들고 있는 하루..

 

 

 

 

"있잖냐...작은 상자 안에 갇혀 있는거 같애..우리들...


그런데...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고 높은 사람들이...있는 힘을 다해 그 상자를


막 흔드는거야...나오라고...다 떨어지라고...


너희들은 같이 붙어 있으면 안되는 운명이니까..다 떨어져 버리라고.."

 

 


"......"

 

 

 


"우리가..그 운명 이기자..빌어먹을 아웃 싸이더 방식..


다 깨 부수어 버리자..."

 


"병신..그딴거 없어...."

 

 


"나도 힘 쎄고..너도 쎄고..하루도 쎄잖아..우리 셋이 무서울것도 없고..


싸가지들도 없잖아.."

 

 


"싸가지는 너만.."

 

 

"도망가자....


...우리 다 같이 저 멀리 도망가자...아무도 못찾는데 있잖아...


거기 꼭꼭 숨어서..방해도 받지 말고..상처도 받지 말고..


셋이..그렇게 웃으면서..우리 셋이..그렇게 딱 한번만 행복해지자...


..이제 딱 한번만 행복해지자..."

 

 

 


말 끝이 흐려져가며 목이 탁 메어갈때..

 

머리 위로 떨어지는 두 남자의 잠바와 자켓...

 

그리고 성난듯 나를 노려보는 분노한 파도..

 

 


"어디로 갈래..아프리카..아니면 화성..아니면 무지개 나라.."

 

 

이후 담담하게 귓가를 울리는 하루의 목소리에..


난 피식 하며 작은 웃음을 터트렸고..


그러자 은찬이가 밝게 그 목소리를 이어 받으며..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망가자..까짓거 도망가 버리자!!"

 

 

"...."

 

 


"너 이 오빠들 믿지!!!!!!!!!"

 


"나 농담 아니에요.."

 

 


"나도 농담 아니다."

 

 


"배신도...상처도...눈물도...없는곳...우리 괴롭히는 어른들...단 한명도 없는데..."

 

 

"그런데가 있을까...."

 


.....

 

.........자리에서 나를 일으키며....은찬이의 입에서 그 한마디가 중얼중얼 새어나오면.......

 

그러면 여지껏 아무말없던 하루가...

 

힘차게 내 왼손을 움켜잡고..

 

이내 그 성난 파도를 향해 보란듯..들으라는듯 큰소리를 질러댔다..

 

 

 

 

 

"없으면 내가 만들어줄거야!!!잘들어!!!우리가 이길거야!!!!!


등신들아!!!!똑바로 들어라!!!!승자는 우리야!!!!"

 

 


"그래!!!!!승자는 우리다!!!!!!한설 너도 빨리 소리질러!!!!"

 

 

"..............."

 


"아 빨랑.!!"

 


"...."

 

 

"나한텐 맨날 잡아 죽일듯이 꽥꽥 소리 지르면서 왜 지금은 못하냐!!?


강하다며!!!!우리가 이긴다며......!!!!!"

 

 

 

 

전면으로 맞선 파도..

 

아까 그 할머니의 그림자처럼..

 

쓸쓸한 비웃음을 지으며 나를 동정하는 파도..

 

 

 

"우리가 이긴다...."

 


"더 크게 못하냐.제주도 오자고 그렇게 난리 부르스를 치더니.기껏 와서


그런 맥없는 소리밖에 못내냐!!!!!!!"

 


"우리가 이긴다....!!"

 

 

"아 뭐야..재미없다 한설..."

 

 

 

...우리가 이긴다...

 

....우리는 해낼꺼다...

 

꼭 그런곳 만들어서..보란듯이 행복해질거다..

 

불행 니가 절대 방해할수 없는곳..들어올수 없는곳..꿈도 꿀수 없는 그런곳..

 

 

 


"우리가 이긴다!!!!!!!!!!!!!!!!!!"

 


"그래!!!!!"

 

"우리가 이긴다!!!!!!!!!!!!!!!!!!!!!!!!!"

 

 


빌어먹을 아웃 사이더 방식아..

 

우리가 이긴다..


웃기지 마라..


칙칙한 니 운명보다 우리가 훨씬 강하다..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니 머리 끝에서 미소 짓고 있는건 우리다...

 

 

 

 

"우리가 이긴다!!!!!!!!!!!!!!"

 


"좋아!!그럼 이제 전투 의지 불태우러 식당으로!!!!!!밥먹자!!!밥먹고 하자!!!!!!!!!!"

 


"그때 거기.아빠랑 왔던데!!!"

 


"오케이!!!!좋아!!!!!!!!장소 결정.메뉴 결정.식사 결정!!!!!!!"

 

 

힘찬 고함과 함께..

 

약속이나 한듯 얇은 옷 하나만 걸친채 해변가를 빠르게 뛰어 나가는 두남자..

 

 

 


"...."

 

 


그럼 난 말없이 두사람의 옷을 얼굴위로 감싸쥐었고..

 

약속이나 한듯 똑같은 바닐라 향을 풍기는 놈들의 옷에..

 

'역시나' 하는 심정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때..


하루와 엎치락 뒤치락 뛰다 말고 고갤 돌려 버럭 소리를 지르는 강은찬.

 

 

 

 

"한설!!!!!!!!빨리 안올래!!!!!!!!!!!!!!!"

 


"간다..갈거다..꼭 갈거다...보란듯..가보일거다.."

 

 

"깜댕아!!!!!!!!!!!!빨리 안와!!!!!!!!!!"

 

 


"간다!!!!간다 이 새끼들아!!!!!!!"

 

 

 

마지막이 될수 있을까..


우리가 정말..달아날수 있을까..


이 힘찬 고함처럼..


빠르게 달리는 이 튼튼한 두 다리처럼......


우리가 정말 이길수 있을까....

 

 

 


\ 푸른 횟집.

 

 

 


"아 이 미친새끼!!!!!!!이건 내가 먹을라고 했는데!!!!!!!!이 새끼 두개 빼고 지가 다 쳐먹네!!!!!!"

 


"냠냠 쩝쩝-0-"

 


"야!!!!!!!!!씹어!!!!!씹어 쳐먹으란 말이야!!!!!!"

 


"싫어!!씹는 사이에 니가 먹잖아!!-0-..


어..?이것도 먹는건가..?

 

 

"그거 회 밑에 장식용으로 당근 껍데기 썰어 넌거야..여기 재떨이에다 버려..""

 


"아구작 아구작 =0= "

 


"......"

 

"너 창피하게 자꾸 이럴거야!!!!!!!?"

 

 

"배고파!!!!!나 배고프단 말이야!!!!!"

 

 

...

 

....-_-....


건물 8층에 위치한 고급 횟집...


물고기 비린내에 숨을 참으며..


놈들과 함께 함께 온돌방 위에 올라앉아 회를 기다리면..


맞은편 식탁에서 벌어지는 두남자의 싸움을 구경하는 하루와 은찬이..

 

 

 


"저놈들 대체 뭐냐..아까 비행기에 있던 애들 아냐..?"

 


"응.내 자리 대신 앉은 놈.."

 

 

"저 머리 붕붕 뜬 새끼는 회 처음 먹어 보나보다.."

 


"난 그보다 저 목에 두른 까만 보자기가 더 이상해.."

 

 

그렇게 하루와 은찬이가 그 괴상한 남자를 보며 중얼중얼 입을 여는 사이..

 

어느덧 종업원 아이의 손에 의해 식탁위에는 여러 밑반찬들과

 

'황금바리' 라는 값비싼 회가 놓여지고...-_-..

 

 


"...우웩...맛있냐..."

 

 


해산물을 전혀 먹지 못하는 나는..


눈을 반짝이는 두 남자를 보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어.너 못먹는데서 된장국이랑 밥 시켰어.."

 

 


친절히 그 한마디를 건네며..


이내 회를 먹는것에 몰두하는 하루..-_-..


그리고 은찬이..

 

 

 

"맛있다..역시 이게 최고야..그지 형..?"

 

"응.."

 

 

저게 맛있냐..


대체 무슨 맛으로 먹지....


어릴때부터 하도 풀떼기만 먹고 자라서..도저히 입에 안맞던데 말이야..

 

 

탁탁.

 

 

쇠젓가락을 세워 식탁을 두드리며..어서어서 나의 된장국이 올라오길 기다리면..


회를 뒤적이다 말고 고갤 들어서 나와 은찬일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루.

 

 

 

...


....

 

"왜...?"

 


"우리 다음주에 보드 타러 가자."

 


"그게 뭔데??"

 


"눈위에서 타는거...."

 


"아~내 위에서...!!"

 


"무슨 소리야..."

 


"내가 설!!눈이잖냐!!하하하하하!!"

 


"....."

 


".....븅신....지가 지 입으로 눈이란다..."

 

-_-...

 


분위기를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내가 던진 한마디에..


놈들은 전혀 동요 없는 표정으로 회를 우적우적 씹어댔고..


난 물 한컵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여전히 머리를 쥐어 박고 싸움중인 그 얼떨리우스 놈들을 바라보았다.

 


"나 다음주 안돼..."

 

 

그리고..잠시후..


왠지 좀 차분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하루의 '설' 위 보드 계획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은찬이..

 

 

 

 

"왜 안돼.너 토요일날 약속있어?"

 

 

".....아니......"

 


"그럼..?"

 

 

"하이튼 안된다면 안돼..둘이 가라.."

 

 

"그럼 우리야 좋지..그치 한설.."

 


..-_-..


뭐야 고개를 끄덕여야 하나..가로 저어야 하나..

 

 


"글쎄다..난..글쎄...다..."

 


"웃지마 병신아.사람 비참해져."

 

"내가 언제 웃었다 그래...?"

 


"좋잖아.둘이만 가면.방해꾼 사라지는데."

 

 

"야..너 갑자기 왜 또 심술이야.."

 

 


또..또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 한다..


강은찬의 '7살 떼쟁이 심술'

 

 

 


"셋이 가자.나 보드 못타니까 니가 가르켜 줘야지."

 


"됐다.형이랑 한설 둘이 가..난 안가...."

 


"제주도는 다 같이 왔잖아."

 

 

"난 다 같이 오기 싫다고 했잖아.."

 

 

 

후...

 

저게 또 왜 저러지..

 

바닷가에선 신나게 같이 소리도 쳐놓고서..

 

 

 

"강은찬.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안간다고 했다.."

 


"갑자기 왜 그러냐 너..?잘 놀다 또 갑자기 왜 그래..?"

 


"안간대는데 자꾸 가자니까."

 

 

"그러니까 왜 안가는데...."

 

 

"시끄러..먹는데 말시키지마라..."


...

.....

 

 


귀찮다는듯 등을 완전히 돌려서..


기계적으로 손을 놀려 회를 집어드는 강은찬..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그러면 그 변덕맞고 심술맞은 모습에..


나와 하루는 말 한마디 없이 그 냉랭하고 싸늘한 점심식사 자리를 지켜야 했고...

 

...


"디저트 뭘로 드시겠어요..^ㅇ^.."

 

 

잠시후.

 


접시를 치워 나르며 친절히 묻는 종업원의 얼굴에..


..

 

자리에서 스윽 일어난 은찬인..

 

한마디 말도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

 

 

"쟤 왜 저러냐..."

 

 


"회가 맛이 없었나"

 

 

"꾸역꾸역 잘 먹었잖아..


우리가 무슨 말 실수 한거 있나..?"

 


"아니.너도 나도 없어."

 

 


"왜 그러지..."

 

 

"제주도 셋이 와서 그런건지도 몰라.."

 

 

"그게 왜..?"

 

 

"이번만은 둘이 가게 해달라고..오늘 아침까지도 나한테 계속 빌었거든..


게임기도 준다고..시키는거 다 한다고.."

 

 

"그런말 없었잖아.."

 

 

"몰라.아무튼 그랬어...


우리도 일어나자...."

 

 

"그래...그러자..."

 

 

 

 

'이번만은 둘이 가게 해달라고.'

 

왠지 좀 찜찜하게 느껴지는 하루의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하며 일단 자리에서 엉덩이를 일으키기로 했다..

 

 


"여기 얼마에요"

 

 


그리고..


하루의 계산을 끝으로 카운터의 껌 두개를 입에 넣고 가게를 나와서..


다음으로 시끌벅적한 복도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

 

 

 


"둘이네."

 

 


잠시 은찬이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던 내 머리를.


하루의 그 한마디가 새하얗게 박박 지워 버리고 말았다.

 

 

 


\ 엘리베이터.

 

 

 

"뭐...?"

 


"둘이다."

 


"그...그래..둘이지..그럼..셋이냐.."

 

 

 

이놈의 심장이 왜 이렇게 주책맞게 뛰어대냐..

 

이러다 밖으로 푹 터져 나오겠네..

 

..엘리베이터도 더럽게 느려 터져가지고..

 

 

 


"껌 뱉어."

 


".....뭐.....?"

 

 

이런 내 마음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이제 막 엘리베이터가 6층을 지나칠때..

 

담담히 날 바라보며 그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 강하루.

 

 


"뱉어."

 


"왜...왜 뱉어..지금 씹은걸...싫어..싫다 임마..!!"

 


"그래..?"

 


"그래...!!"

 


"그럼 내가 두개 씹을게."

 

 

"....."

 

 

육초였다..

 

아니 엘리베이터가 더럽게 느려터진것을 감안하면 십초였다..

 


그리고 이번껀..

 

분명 전번과는 확실히 달랐다..

 

...

 

한참전에 버터플라이에서 하루가 나 구해낸날..


그날 내 방 침대에서 했던 가볍고 짧은 입맞춤과는..


확실히 분명히 달랐다...

 

 

....


.......

 

맙소사 이런.............

 


......내 껌이...........내 껌이...............

 

 

 


'띵'

 

 


마음속의 고요한 외침과 함께..

 

어질어질한 눈 앞으로 포착되는 숫자 '1'

 

...

 

 

"하..."

 

 

 

그리고 내가 달아오른 한숨을 몰아내쉬면..


무표정으로 껌을 입안에 굴리며 엘리베이터밖으로 휙 나가버리는 강하루.

 

 

............후....

 

침착..침착..

 

침착하자 한설...

 

그래도 체통을 지켜야 하지 않냐...

 

..자...일단 불타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고...

 

 


"......"

 

 

 

일단은 나 역시..


주춤대는 걸음으로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몸을 내렸다..


....

 


그러면 그때...

 

엘리베이터 오른편에 작게 딸려있던 경비실 앞에 기대서서..

 

담배를 만지작 거리던 은찬이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나와 하루를 바라보고..

 

 


"흠..흠..이제 어디 가냐..!?"

 

 

멋적게 터져나온 나의 생뚱맞는 말에..


담배를 낀 손가락 끝으로 텅빈 경비실안을 가르켰다..

 

 

 

 

"왜..?무슨일 있어..?"

 


".............."

 

 

"왜 그러는데..?"

 


"..........."

 

 


아무말없이 작은 경비실 안을 가르키는 은찬이 모습에..

 


...

 


아직도 쿵쾅대는 심장을 억누르며 그 앞에 다가서면...

 

그리고 다음으로 그애의 손가락이 가르키는곳을 바라보면......

 

 


....

 


"...하압..."

 


"....."

 

 

 

 

그 꼭대기에 달려있는 내 얼굴만한 소형 tv 한대..

 

흑백이라 분명치 않긴 하지만..


분명 선명한 모습을 띠고 있는 소형 tv 한대..

 

 

 

"구경 잘했다."

 

 

 

다음으론 모니터가 보여주는 생생한 모습.

 


'엘리베이터'안.

 


...

 

......


그랬다..

 

 

카메라가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 되어 있을줄 그 누가 알았으랴..

 

아까 허둥지둥 뛰어 들어온 덕분에 그냥 지나친 이 경비실이..

 

그 역할 때문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았으랴...

 

 

...
.....

 

 

"하하하하..!!"

 

 


웃음이였다..


마지막으로 이 상황에서 내가 해줄수 있는것은..


멋쩍은 웃음외엔 그 어떤말도 어떤 행동도 없었다...

 

 

"......."

 

 

 


그러면 놈은...

 

힘겹고 짧은 한숨을 끝으로..

 

담배 한개피와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어 버렸다.


"대체 왜 누가 거기다가 그런 부끄러운 장치를 해놓은거야!!!!!!대체 왜!!!!"

 

 

"........"

 

 


"누가 엘리베이터 안에 오줌이라도 쌀까봐!?!


호텔도 아닌데 왜 그런 카메라가 달렸냔 말이야!!!"

 

 

 

"4층에 모텔 있었잖아.."

 

 

 


"아아아아악!!"

 

 

 

 

 

\ s 호텔.

 

 

 

 

그래.여긴 호텔이다.

 

분명 택시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말 한마디.표정 하나 안짓는 은찬이를 앞에 태우고 분명히 이곳까지 왔다..

 

 

 

다음은..

 

다음은 방 두개를 잡았다.

 


1501호.1502호다.

 

 

 

 


"왜 문을 잠궈 버리냔 말이야 내말은...!!"

 

 

 


그리고 은찬인..

 

올라오자마자 1502호로 자취를 감춘뒤..

 

아무런 미동없이 우리 두사람을 아주 심히 애태우고 있다.

 

 

 

"분명히 하자.한설.."

 

 


왔다갔다..

 

안절부절 못하는 내가 호텔 발코니를 초조히 맴돌면..

 

그때 등뒤에서 단호히 들려오는 하루의 목소리..

 

 

 


"뭘..?"

 

 

그래서 등을 돌리면은..

 

침대 끝에 걸터 앉은뒤 가만히 날 올려다 보고 있는 하루.

 

 

 


"너 내 여자친구 맞아.아냐."

 

 


"맞아..."

 

 


"근데 왜 눈치 봐."

 

 

"...."

 

 

 

"사귀는 사람끼리 그러는거 당연한건데.


강은찬 눈치 왜 봐."

 

 


"..........."

 

 

 

"한사람한테 상처 주더라도 확실히 하는거.그게 니 스타일이잖아."

 

 

 


그래..그랬지..

 

그래서 나도 여러번 말했어..

 


근데 저놈이 그래..몇번을 밀어내도..몇번이고 다시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서 웃고 있어..

 

 

 

..그래서 나도 미치겠단 말이야..

 

분명 속은 커다란 상처들로 잔뜩 곪아 있을놈..

 

더이상 잔인한 말들 내뱉어낼 자신이 없단 말이야..

 

 

 

 


"진심이라는거 알아서..내가 널 좋아하듯..내가 널 생각하듯..

 

은찬이 역시 진심이라는거 알아버려서.."

 

 


".....또 반복되면..."

 

 


"..."

 

 

"나랑.강주원이랑.박윤영.그 일 또 반복되면.."

 

 

 

"그거랑 다르잖아..."

 

 

"같아.."

 

 


"...뭐가.."

 

 


"동생은 알면서도 못본척 하며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는거...


형은 그 동생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 포기 못하는거..."

 

 

....

 

 

 

생각하기 싫었던....그냥 영영 묻어두고 싶었던 얘기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면..

 

점점 무겁게 깔려가는 하루의 목소리...

 

그리고 다시 또 떠오르는 할머니의 끔찍한 목소리..

 

 

 

 

"그럼 어떡해....이 상황에서 이거 아님 내가 할수 있는게 뭔데...


그냥 은찬이 앞에서 대놓고 너랑 깔깔 웃으며 지내는거..?


아니면 널 포기하고 아예 집을 나가는거...?


아님 뭐..나 복제라도 해서 두사람 다 사랑할까...?"

 

 


"더 확실히 해.지금보다 더 확실히."

 

 

 

"...."

 

 

"내 동생 더 상처받기전에.너 포기시켜.."

 

 


"......"

 

 


"더 아프게.더 강하게.더 독하게."

 

 

 


차츰차츰 하루의 목소리가 커져가면..

 

난 은찬이의 웃고있는 얼굴을 떠올리며 천천히 방문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고..

 

이제 숨소리에 가깝게 변해버린 하루의 말이..

 

한숨과 걱정만이 가득 채우고 있던 방안을 힘겹게 울려 나갔다..

 

 

 

 

 

"당장은 아파도 나중에 덜 힘들게...

 

사랑이 더 커지지 않게..사랑이 더 커져서 더 많이 아파지지 않게..


울지 않게....죽고 싶어 지지 않게......

 

그 남자 옆에서 웃고 있는 그 여자가 너무너무 그리워서...보고 싶어서..

 

지금 당장 죽고 싶어 지지 않게...."

 

 


.....

 

.......눈물섞인 하루의 목소리........

 

저거다..

 

바로 저게..일년전 하루가 느꼈던 감정이다...

 

..그래..되풀이 되어선 안된다..

 

그 악몽같고 지옥같은 시간들이..다시 또 되풀이 되어선 안된다..

 

 

 

'삐그덕..'

 

 

조용히 열린 나무문을 통하여..

 

저벅저벅..차갑게 식은 눈을 한채 방을 나섰다..

 

그 어떤 표정에도 어떤말에도 절대 흔들림 없을..

 

그렇게 강하게 무장한 모습으로 방을 나섰다...

 

 

'똑똑똑..'

 

 

 


다음으로..

 

이제 거의 잊혀져 가던 내 죽은 얼굴을 다시 힘들게 불러냈다..

 

떠날 준비를 마친 그 얼굴을..용기내어 다시 붙잡아 버렸다..

 

 


"누구냐....."

 

 

 

잠시후.


아까보단 한층 누그러진듯..


방안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은찬이의 목소리.

 

 

 

"나 한설."

 


"..."

 


"꼭 할말있어.문좀 열어봐.."

 


"......."

 

 

"지금 아니면 못하니까 문 열어.."

 

 


....몇분이 흘렀을까....


그 건조한 한마디를 던져놓고 꼼짝없이 방문을 노려보고 있으면...

 

 

....

 

........

 


"뭔데....."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몹시도 귀찮은 기색을 띤 은찬이가 조용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

 

 

 

이내 내 표정을 보고 당황한듯..

 

그 귀찮은 기색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꿔 버린다.

 

...

 


더럽게 미안하게 시리...

 

 

 

 

"왜그래..무슨일 있어..?"

 


"그래.무슨일 있다.."

 

 


저벅저벅..

 


멍청히 굳은 그 놈을 지나쳐..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그 1502호로 불쑥 들어와 버리면..

 

 

은찬이의 손에 의해 조용히 닫기는 1502호 문..

 

 


"...."

 

 

그리고..

 

어쩔수없이 마주쳐야만 하는 강은찬의 따뜻한 두눈..

 

그래서 이순간 똑바로 바라볼수 없게 된 그 애틋한 두눈.

 

 

 


"강은찬."

 


"......"

 


"우리 확실히 해두자."

 

 

"말해."

 


"나 강하루 좋아한다."

 


"..그래서.."

 

 

"아니.사랑한다.."

 

 

"그래서.."

 

 

"너도 아주 많이 좋아한다..

물론 하루에게 느껴지는거랑은 전혀 다른 감정이지만.."

 

 

"......"

 

 

"좋아하는 사람하고 뽀뽀했어..근데 그게 나쁘냐..그렇게 나쁜거냐..


너 이렇게 삐져서 말 한마디 안할만큼..그게 그렇게 못할 짓이였냐...."

 

 

".....아니...."

 

 

"근데 넌 왜그래"

 

 

"아파서."

 

 

....

.......

 

아니야..안돼..

 

맘 굳게 먹어.......이 선에서 완전히 매듭 지어야돼....

 

 

 


"나 좋아하지 마."

 


"......그게 뭔데...."

 


"나 좋아하지 말라고..나 보지 말란 말이야..난 니 형 아니면 안되니까..


나 좋아하지마.."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

 

 


"니가 알면 좀 가르켜 줘라..그딴 방법 있으면 좀 가르켜줘.."

 

 

"아니.이번엔 정말 확실히 할거야.


나중에 상처 받는건 너야.더 커지기 전에 관둬.


나 있잖냐...잘때 이빨 갈아...성질머리도 더러워서 욱해 맨날.."

 

 


"알아."

 

 

"잘 씻지도 않아.귀찮으면 그냥 자..되게 더러워 나.."

 

 


"그것도 알아."

 

 

 

어느새 거짓말처럼 싸늘히 식어버린 우리 두사람의 눈동자.

 

허공에서 마주친채 멍청한 말만을 늘어놓는 우리들의 눈동자..

 

 

 

"그리고 심술도 많아.질투도 많아.


사랑 못받고 자라서 사랑하는 법도 몰라..거칠어..


여느 여자들하고 너무 달라..사랑스러운 타입 아냐..오히려 골치아파..


나 그런애야."

 

 

 

"알아...."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한 남자만 사랑해.


오리새끼가 태어나 처음 본 사람 뒤만 죽을때까지 따라다니는것처럼..


나 역시 그래..


태어나 처음 사랑한 남자만 죽을때까지 따라다녀..."

 

 

"아예 상처주기로 작정했나..오늘거 꽤 쎄네..."

 

 


"상처 받는 사람도 아프지만..상처 주는 사람도 아파...


그러니까 아픈거 이쯤에서 끝내자..."

 

 

"나도 맨날 이 새끼랑 싸우거든..."

 

 


쿡쿡..

 

입술을 악문 내가 똑바로 놈을 응시하면..

 

손끝으로 자기 심장을 가르키는 은찬이...

 

 


"...."

 


"근데 싫대.못하겠대.그게 안된대."

 

 

"......"

 

 


"부탁인데 얘는 그냥 두자......얘는 나랑 달라서 맘도 여리고 눈물도 많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혼자 이러게 냅두자.."

 

 

....

........힘들다......아프다.........

 

이런거 정말 끔찍하다..............

 

 

 

 

"강은찬은 이제 너 귀찮게 안할테니까.니 말처럼 너 포기할테니까...


얜 그냥 속에서 혼자 발광하게 냅두자.."

 

 

".....그게...되냐..."

 

 


"이러다 언젠간 죽겠지..언젠간 포기하겠지..


지금은 안되지만..언젠간 그렇게 되겠지.."

 

 

"왜 하필 나야...왜 하필....왜 하필 나같은거....너같이 잘난새끼가 왜 하필 나야..."

 

 

"그러게..왜 하필 너냐...


....왜 하필 너래냐.........."

 

 

 


어느새 등을 돌린 바보같은 한사람..


그 한사람이 조용히 문을 향해 멀어져간다..


그리고 아무말도 할수 없는 난 그냥 바라만 본다..


더이상 구멍날것도 없이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다시 그애의 작아진 뒷모습을 바라만 본다..

 

 

 

"얜 눈도 없어서 너 못보고..입도 없어서 징그러운 말도 못하고..


손도 없어서 너 잡을수도 없고....너 절대 힘들게 못하는 새끼니까..."

 

 

"....."

 

 

 

"이제 걱정하지마라...강은찬은 너 귀찮게 안할거야...


강은찬은 너 싫대...너 같이 드럽고 재미없는거 예전에 벌써 질렸대..."

 

 


조금씩 열리는 1502호 문..

 

그 사이로 인사도 없이 사라져가는 은찬이의 뒷모습..

 

 

 

 


"왜 하필....나야...."

 

"왜 하필....너냐....."

 

 


끼이이익....

 

그리고........

 


그 멍청한 두 마디와 함께...은찬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절대 죽을수 없다던 그 '멍청한 새끼' 를 가슴속에 품고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

 


..........

 


".....은찬이는.........."

 


대신 1501호 문앞을 초조히 서성이던 하루를 눈앞에 데려다놓고서...

 

 

 

 

 

\ 1501호.

 

 

 

"그래서..그냥 나갔어..?"

 


"...어..."

 


"어디로 간단 말도 안하고.."

 


"그래...."

 

"...."

 

 


넋나간듯한 나의 말에.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전화기를 집어드는 하루..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면..


그애의 두번째 손가락이 빠르게 숫자 버튼을 누르고..

 


..

 

'♬♪♩♬♪♩♩♬♪♩♩♬♪♩♩♬♪♩♬♪♩♩♬♪♩♩♬♪♩'

 

 

이내 방 구석에 놓인 은찬이 잠바 안에서 벨소리가 작게 울려퍼지니..

 

 

 


"뭐야..핸드폰 두고 갔나.."

 

"아까 은찬이 옷 내가 갖고 있었잖아....."

 

"...."

 

 

 


힘없는 나의 말에..

 

몸을 움직여서 가만히 그 옷을 집어드는 하루..

 

..

 

그리곤 물끄러미 그 잠바를 바라보다가..

 

주머니 안에서 은색의 폴더 핸드폰을 꺼내든다..

 

 

 


"나쁜형아다..나.."

 

 

"나도 나쁜년 됐다..."

 

 

"아빠한테 음성 왔었네...."

 


"하...."

 

 

 


중얼대는 하루의 목소리에 얼굴을 감싸쥐며 짧은 한숨을 내뱉으면..


귓가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통화 연결음..

 

 

 

 


"벌써 한참전에 온거다..."

 

 

"....뭐라시는데..."

 


"지금 나와..."

 


"그래......................"

 


"........................"

 

 

"은찬인...사람 빨리 잊는편인가..."

 


"....."

 

 

"길게 안아팠으면 좋겠다...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가슴속에 사는 그새끼가 얼른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

 

 

"왜그래....?"

 

 

 

 

쓸쓸히 번진 미소와 함께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하루의 인기척..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들어 방 구석을 바라보면..

 

 

".."

 

 

 

은찬이의 핸드폰을 움켜쥔채 방문으로 달려가는 강하루.

 

 

 

"야..너 왜그래..무슨일이야.."

 

 


"기다려.그리고 계속 안오면 이 핸드폰으로 전화해.은찬이 번호 알지."

 

 


"무슨 일이냐니까..할아버지 뭐라시는데...!!"

 

 


"나오지마."

 


"야..."

 

 

 

"내가 가야돼..."

 


"..대체 무슨..."

 

 

콰앙...!!!


.....

......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무색할만큼.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문밖으로 튀어나가버린 하루.

 

 

 

할아버지가 대체 어떤 말씀을 남기셨길래..

 

 

이번엔 또 뭐야....

 

...또 뭐가 남은거야....

 

 

....

 


혼란스럽고 아프고 슬프고 짜증섞인 감정이 뒤섞여..

 

점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은 더 거세지는데..날은 더 어둑해지는데..

 

두 남자는 호텔밖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

 

 

난 점점 또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도망가자..여기 너무 무섭고..좁고..답답하다..


아무도 못찾는데 있잖아...

 


거기 꼭꼭 숨어서..방해도 받지 말고..상처도 받지 말고..

 

셋이..그렇게 웃으면서..우리 셋이..그렇게 딱 한번만 행복해지자...

 

..이제 딱 한번만 행복해지자...'

 

 

...

....

 


아까 놈들에게 했던 그 말이 아릿하게 머리 위를 스치면서..


..꿈쩍없이 날 비웃던 파도가 떠오르며 점점 두 눈이 감겨오기 시작했다..

 

 


..

 

 


그래서 그렇게 우리의 제주도 여행은..

 

그렇듯 어이없고 외롭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수척해진 얼굴의 두 남자가 호텔방을 찾아오기 전까지..

 

난 은찬이 가슴에 산다던 그놈에게 무릎을 꿇어 애원하고 기도했다..

 

 

...

 

 

 


은찬이가 하루빨리 웃을수 있게 해주기를..


이제 그만 그애 가슴속에서 나가주기를..


아무런 상처 내지 않고 소리없이 죽어주기를....

 

 

 


누가 들으면 분명 코웃음 치며 웃었을 그런..

멍청하고 용기없는 기도를 올렸다..


"어제 대체 어떻게 된거야..."

 

 

 


\ 비행기 안.

 

 


잠 한숨 이루지 못해 누렇게 뜬 얼굴로..

 

탑승을 위해 비틀비틀 비행기 안으로 들어오다가 하루에게 말을 건네면..

 

대답없이 앞의 푸른 의자에 털썩 몸을 앉히는 놈.

 


..

 

 

 

"미안.."

 

 


"근데..너 여기 앉으면 나 어디 앉냐.."

 

 


"은찬이랑 뒤에 앉아."

 

 


"....뭐....?"

 

 


"내가 다른사람하고 앉을테니까..둘이 뒤에 앉아."

 

 

 

"니들 지금 사람 갖고 장난치냐.."

 

 

"...."

 

 


정말 뭐하자는건지..

 

어젠 딱 잘라 말하고 오라며 날 내보내놓고..

 

왜 갑자기 또 강은찬옆에 앉으라는거야...

 

 

 


"죄송하지만 고객님.자리에 앉아주시겠습니까.


뒤에 분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이가 없어서..

 

복도위로 가방을 떨구며 가만히 하루를 바라보면..

 

내 등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친절히 말을 건네는 스튜어디스.

 

 

"..네..."

 

 

 

그리하여 결국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채..

 

날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은찬이 옆에 앉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비행기가 이륙중에 있사오니.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안전벨트가 착용 되어 있는지


꼭 확인을 하여 주시고..'

 

 

비행기가 제주공항을 날아오르는 그 중요한 순간에도..

 

...하늘의 구름속을 헤집어 오르는 그 순간에도..

 


....

 

 

"흠..흠흠..."

 

 


몇분쯤 지났을까...

 

역시..아주 수척해보이는 은찬이의 얼굴이 여지없이 그 옆모습만을 보여줄때..


...


괜한 헛기침으로 작은 대화를 시도해보려는 나의 가상한 노력.

 

 

"..."

 

 

그리고 그 노력을 알아줄 맘이 전혀 없는듯.


의자 시트를 뒤로 벌러덩 제껴버리는 강은찬..

 


...

 

 


"어제..어디 갔었냐.."

 


"....."

 

 


"전화 몇번 했는데..안받더라.."

 


"....."

 


"너 나랑 계속 이러고 지낼거냐...?"


...

......

 


휙 얼굴을 돌려.

 

뒤로 한참이고 제껴져버린 은찬일 바라보면..

 


말시키지 말라는듯 잠바를 벗어 얼굴위로 덮어버리는 강은찬놈.

 

 

 

 

"가슴속에 그새끼 죽을때까지 나랑 말도 안할거냐구.."

 


"...."

 


"그럼 내가 그동안 집을 나가 있을까..할아버지한테 말씀 드려서.."

 

 


휙..!!

 

순간 갑자기 놈이 몸을 일으킨 덕분에 당황하여 눈을 움찔하면은..

 

...

 


"..."

 

 

 

뚱한 표정과 함께 머리위로 헤드셋을 써버리는 강브라더스의 셋째놈.

 

그리고 이내 그 손에 의하여 볼륨 버튼이 최고치로 올라가버리니...

 

...

 

 

"♬♩♬♪♬♩♬♪♬♩♬♪♬♩♬♪!!!"

 

 

 


비행기가 김포공항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요한 기내 안은 시끄러운 음악이 쩌렁쩌렁 울리며 소리를 질러댔고...

 

그랬기에 난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그 심술난 망아지에게

 

그 어떤말도 건넬수가 없었다...

 

 

....

 


그건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걸어오던 중간에 하루와 은찬놈이 소리없이 증발해버렸을때도 마찬가지였지만..

 

 


...

 

.......

 

 


"왜 이렇게 빨리 와..-0-.."

 

 

 


\ 평창동 집.

 

 

 

 

"우와아아악!!!!!!!!!!!!!!!!!!!!"

 


"아니 왜그래!!무슨일 있었어...!?"

 

 

 

거실 바닥에 무거운 배낭을 (혼자 짊어 지고 왔다-_-)

 

타앙 팽겨치며 그간 쌓였던 분노를 꽤애액 표출하면..

 

쇼파를 닦다 말고 혼비백산하여 날 바라보는 아줌마.

 

 

 

 

"걸어오다 뒤를 돌아보니 없는거에요!!!!!!!!!

 

난 그것도 모르고 계속 말을 시켰는데!!!!!!

 

 


"누가.누가..!?"

 

 

"그 자식들 말이에요!!!오는 내내 말 한마디 안하던 그 자식들!!!!!!!"

 

 

"어디 갔나부지.뭐.."

 

 

 

"그냥 지들 둘이 사귈것이지!!!왜 중간에 날 낑겨놓고 얼렀다 뺨치냔 말이야!!!"

 

 

"....둘이..?하루랑 은찬이 둘이..-0-..?"

 

 

"어제요.아줌마.


어제 할아버지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아무일도 없는거 같던데.."

 

 

"정말요..진짜죠.아줌만 저한테 숨기는거 없으시죠.."

 

 

"그럼.내가 이 집에서 숨길게 뭐가 있겠어.."

 

 

 

의심의 눈초리로 뚫어져라 아줌마를 바라보면..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듯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

 

후...

 

난 가방을 다시 집어들고 그런 아줌마께 꾸벅 인사를 드린뒤..


유일히 날 반겨주는 변함없을 내 방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젠장.그 나쁜 새끼들..빌어먹을 자식들..


나더러 뭘 어쩌라고...비밀을 대체 몇개나 꿍쳐둔거야.."

 

 

 

중얼중얼..

 

비맞은 땡중처럼 여전히 놈들을 향한 악담을 퍼부어 대며..

 

 

 

 

\ 내 방.

 

 

 

 

 

좋다.그래.


어디 한번 차근차근히 추리를 해보자..


어제 놈들의 알수없는 행각을 다시 곱씹어 보는거야..

..

 

 

벌러덩.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운채 일단 사건 추리에 들어가는 한설.

 

돌아가지도 않는 녹슨 머리를 굴리려니 어쩐지 가슴이 뻐근해져 오지만..

 


..

 

그래도 해야 한다..


이대로 있다가 언제 또 뒷통수를 맞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

 

 

그러니까 어제..

 

하루는 은찬이에게 잔인한 통보를 하라고 했고..

 

그에 은찬이는 가슴 아픈 말을 남긴채 방을 나가고...

 


...

 


하루는 은찬이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할아버지의 음성을 발견..

 

 

 

"그래..갑자기 은찬일 찾으러 방을 뛰쳐 나갔다....


그리곤 다음날 비행기에서 다시 은찬이 옆에 날 앉혀놓고...."

 

 

다음으론...

 

오는 도중 두사람 다 소리없이 증발해버렸다..

 

 

 

"이건 바로 두사람은 알고 나는 모르는 뭔가 있다는 사실!!!!!!!!!그래!!


바로 그거다!!!!!!!!"

 

 

(그걸 지금 추리라고 하고 있음-_-)

 

 


"그리고..두사람과 관련된 일이야!!!"

 

 

(다시 말하지만 그걸 추리라고 하고 있음-_-)

 

 

"다시 한번 말하자면.....할아버지도 아는일!!!!!"

 


(-_-)

 

 


그렇게..

 

한가지의 실마리가 풀려가며 녹슨 머리가 점차 바퀴를 굴려대기 시작할때..


그래서 자리에서 솟구쳐 일어나 쩌렁쩌렁 언성을 높히기 시작할때..

 


...

 


갑자기 방문가에서 느껴지는 누군가의 인기척..

 

 


"누구냐..!!?"

 


"...."

 


"누구냐..?!!!!"

 

 

"......"

 

 

...

 

그리고...

 

문이 열리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아줌마가 들어오니...

 

나의 심장은 덜컥하고 작동을 멈추어 버렸다.

 

 

 


"...설..학생.."

 


"왜 그러세요..아줌마..."

 


"...."

 


"애들한테 무슨일 있어요..!?"

 


"이거....보여줘야 말까..망설이다가...그래도 보여주는게 나을것 같아서..."

 

 

"..그게..뭔데요..."

 

 

"하루 방 청소하다가 침대 밑에서 나온거야..."

 

....


.....

 


일단은 두사람의 사고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줌마께 다가가면..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움추리며..나에게 몇장의 사진을 내미는 아줌마..

 

 

 

 

"어..이거 일주일전에 우리 셋이 남양주 놀러갔을때 찍은 사진인데..


이게 왜요..."

 

 

"계속 넘겨봐.."

 

 

"..."

 


음..

 

이건 하루랑 은찬이 밥먹던거 찍은거고..

 

이건 은찬이 자던거 내가 찍은거고...

 

이건 썰매타다가 둘이 발라당 넘어지는거 찍은거고..

 

 

이건...

 

....이건....

 

 


"나랑 하루랑 둘이 찍힌 사진인데...."

 


"....."

 


"왜....."

 

 

 

왜 내 얼굴위에 윤영이 얼굴이 오려져 붙혀 있지...

 

거기다 이 숫자는 뭐야...

 

'3.9.'.............?...

 


...

..

 


하하...

 

...식은땀을 머금고서..

 

다음장으로 계속 사진을 넘기기 시작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몇장의 사진을 바닥으로 떨구어 버리고 말았지만..

 

 

...역시다....

 

..역시 모두 마찬가지다.....

 

...나랑 하루가 찍은 사진엔...

 

모두 윤영이가 대신 들어가 있다...

 

 


아니..

 

'윤영이 얼굴' 이 오려져 붙어 있다..

 

'3.9' 라는 붉은색 숫자와 함께..

 

 


"이거..누가 이랬어요..."

 

 

차갑게 깔린 내 목소리에..

 

입술을 바르르 떨며 천천히 입을 떼는 아줌마..

 

 


"........하루겠지......"

 


"아니에요."

 


"....그럼..."

 

 

"하루 아니에요."

 


"......설 학생..."

 

 

"이거 다시 침대 밑에 갖다 놓으세요.아무튼 하루는 아니니까요...


하루가 이런거 아니에요..."

 

 

"이런말 안하려고 했지만 말야......"

 

 

사진을 받아들며...

 

몹시 걱정스러운듯 내 안색을 살피는 아줌마..

 

 


"하루..학생...아직..그 여자...못.."

 


"아니에요 아줌마..!"

 


"..."

 


"하루 안그래요.저 좋아한대요.그러니까 절대 걱정 안하셔도 돼요."

 

 

"휴...은찬이도 가면...사이도 더 깊어질텐데...


상처 받을까봐 걱정이야....제발 조심히 알아서 추스려..너무 다 주지 말란 말야..."

 

 


애써 미소짓는 날 남겨두고..

 

힘없이 방문가로 고개를 돌리는 아주머니...

 

 

 

"잠깐만요 아줌마."

 

 

"....응...?"

 

 

"은찬이 간다뇨....은찬이가 어딜가요....."

 


"에구 세상에..내가 주책이지..."

 

 

황급히 앞치마로 입가를 가리는 아줌말 보면서..

 

나의 그 형편없던 추리도 점점 더 구체적인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했고..

 

난 재빨리 달아나려는 아줌마의 손을 꽉 움켜진채..

 

빈틈없이 막힌 목구멍으로 힘겹게 말을 쥐어 짜냈다.

 

 

 

 


"은찬이가...가요....?...어딜..가요...?"

 

 


".......회장님 아시면 진짜 큰일나는데....."

 

 

"아니요...말씀해주세요..비밀로 할게요...비밀로 할게요.."

 

 

"그럼 침대 밑에서 사진 찾아낸것도 비밀로 해야해..


회장님 명령대로 뒤져본거라서...하루 학생 알면 큰일나니까.."

 

 


"네...그럴게요..."

 

 


"은찬이 유학간대..."

 


"언....제요...?어디로요..?"

 

 

"나도 몰라..회장님이 사모님하구..아니 인제 이혼했으니 사모님두 아니지..


아무튼 그 전 사모님하구 통화 하는거 들었는데...이미 다 결정된거 같더라구.."

 

 

"은찬이 엄마 말이죠.."

 

 

"그래.."

 

 

"확실한거고요..."

 

 

"그렇다니까...아무튼 두개 다 비밀이야...


안그래두 입단속 단단히 하라고 했는데..어휴..난 몰라..


지금도 난 설이 보면 안쓰러워 죽겠어...어쩌다 이 집에 들어와서.."

 

 

...

 

....멍....

 

사진속의 윤영이 얼굴만큼 충격적인 그 소식에...

 

할말을 잃은채 뒤뚱뒤뚱 방을 나서는 아줌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

 

 


'나 다음주 안돼...'

 

 

'이번만은 둘이 가게 해달라고..오늘 아침까지도 나한테 계속 빌었거든..


게임기도 준다고..시키는거 다 한다고..'

 

 

'강은찬은 이제 너 귀찮게 안할테니까.니 말처럼 너 포기할테니까...


얜 그냥 속에서 혼자 발광하게 냅두자..'

 

 

 

 


머리속으로 재빨리 겹쳐지는 은찬이와 하루의 목소리..

 

.....

 


.....하....

 

이어서 굳게 닫혀있던 입으로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나오면..

 

난 아무 생각없는 기계 인형이 된듯한 동작으로 멍하니 화장대 위의 수화기를 집어들고..

 

 


다음으론 손가락에 익숙해진 은찬이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뚜르르르르.뚜르르르르.뚜르르르르.뚜르르르르르.'

 


수화기 너머로 빠르게 흘러나오는 연결음..

 

 

...

 

웃기지마..

 

니가 왜가 강은찬..

 

내가 뭔데 니가 떠나..

 

가면 내가 가야지 니가 왜가....

 

....그만큼 울었으면 됐지 그만큼 아팠으면 됐지....

 

니가 왜...

 

 

 

"여보시용!!?"

 

"...."

 

 


...젠장...

 

 

 


"은찬이는 지금 술에 취해 전화를 못받습니다용!!-0-


그리고 이거 은찬이 폰 맞으니 말씀 하십시요!!"

 


"..날발이냐..."

 

 

"..날발이...-0-..?"

 

 


하필 이게 전화를 받을건 뭐람....

 

...

 

 

 

 

"여자애들 불러라..여자애들 없냐..!!?!"

 

 


...어떤말을 꺼내야 할지 머뭇 대고 있을때..

 

마침 수화기 저편에서 비틀비틀 들려오는 강은찬의 목소리..

 

 

'여자애들' 이라니..

 

대체 얼마나 쳐마셔댄거야..

 

 

 


"거기 어디야.."

 

 


"누구냐니까!!번호를 보아하니...어디보자...


아니!!이것은 은찬이네 집번호가 아닌가!!-0-그렇다면 넌 그 깜댕이 여깡패!!!!!!"

 

 

"그 새끼 술 그만 먹게하고.거기 어디야."

 

 

 

"은찬이가 여자애들을 부르라는건 이쁘고 쌈박한 애들이야!!!!!!!!!


어디 니가 감히 기웃대려 하느뇨!!!!!!!!!-0-"

 

 

"헛소리 그만 하고 당장 말해 이새끼야!!!!!!!!!!!!!!!"

 

 


"..-0-..."

 

 


젠장...


대체 왜...


굴러온 돌은 난데 니가 왜 나가...

 


...

 

 

"설 학생..어디가..할아버지가 하실 말씀 있다고 집에 있으라는데.."

 

"은찬이 데려올게요!!"

 


"뭐..-0-..?!!은찬이가 어딨는데..!!"

 


"술집이요!!!!"

 


"술지입..?!"

 

 

 

콰당탕.

 

 

퇴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던 아줌마.

 

그리고 그 아줌마를 가볍게 밀치며 더 빨리 집을 나와버린 나 한설.

 

 


미친놈 가긴 어딜가...

 

영어도 한마디도 못하는놈이 유학은 무슨놈의 유학이야...

 

외로운거 젤 싫어하는 놈이 떠나긴 대체 어딜 떠나..

 

...

 


누군가 꼭 떠나야 한다면 내가 가야지..

 

곱게 자란 왕자님이 왜 나땜에 고생을 사서하냔 말이야....

 

 


"아이고..왜 우시요..이쁜 학생.."

 

 

 

 

\ 택시 안.

 

 


지금 막 올라탄 택시안.

 

그리고 기사 아저씨를 향하여 뱉는둥 마는둥 행선지를 말씀드리면..

 

핸들을 꺾으며 걱정스레 날 바라보는 아저씨.

 

 

 

"어떤 븅신 새끼땜에요.."

 


"..-0-..누가..남자친구가.."

 


"아니요..아니요.."

 


"근데 왜..이쁜 학생을 울렸어..?"

 


"네..울려요..자꾸만 울려요..좋아하는 놈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놈땜에 자꾸만 울어요.."

 


"혼좀 내줘야겠구만.."

 

 

"강아지..가서 아주 줘패버릴거에요.."

 


"-0-..그..그래...그러는게 좋겠네.."

 

 

 


눈물과 함께 중얼중얼 쏟아지는 나의 살벌한 욕에..

 

대화할 마음이 싹 달아나신듯..

 

조심조심 대학로를 향하여 차를 모는 할아버지..

 

 

...

....

 

결국 안되는건가...


세사람이 함께 붙어 있을수 있는 방법은 죽어도 없는건가..


..아니면 나 때문인가..


행복할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나 때문에..


나때문에 지금 그 철없고 웃음많은 놈까지 불행해져가고 있는건가..

 

..

 

 


택시가 북적대는 도로를 내달리며 대학로로 향하는 내내..


..

 

난 창가에 비친 표정없는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읇조렸던 외톨이의 노래를 속으로 원망스레 중얼대기 시작했고..

 

 

 

 

"어디요..여기 맞소..?"

 


"...."

 


"학생.."

 


"..."

 


"이쁜 학생아..여기 맞소..!!!"

 

"..."

 


"하이고 참.....별일이 다있구만.."

 

 

 

행선지에 도착한뒤에도 잃은 넋이 쉽게 돌아오지 않은 덕분에..

 

생각보다 조금 더 늦게 호프집안에 도착할수 있었다..

 

 

 

...

 


그만큼 분노와 후회는 더 커져버렸지만.............

 

 

 

 


\ 호프 노바.

 

 

 

"죄송한데 빈자리가 없습니다.."


...

 


2층에 자리한 호프집.

 

휴일이라 그런지 안에는 한테이블도 빠짐없이 빼곡히 사람들이 들어차있고..


난 미안한 표정으로 그 사실을 전하는 여 종업원을 지나쳐..

 

...

 


밝고 신나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그 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몸을 들여 놓았다.

 

 

 

"야 원샷이다 원샷!!!!!!!!!!"

 

 

"한방울이라도 남기면 다시!!!!!!!!!"

 

...

....

 

 


단한번의 행복도 허락되지 않는 나를 앞에 두고.

 

너무 당연한 그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신나는 휴일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

 

..


점점 흑백으로 겹쳐오기 시작하는 그 원망스러운 사람들..

 

 

 

"이 자식 이거 술 되게 많이 늘었네!!이야~!!"

 


"여기 오뎅탕 한그릇 추가요!!^ㅇ^"

 


"아우 오늘 술 되게 안받는다 야>ㅇ<"

 

 

...그리고 점점 동그랗게 말려가는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들..

 

 


"강은찬....."

 

"여기요 언니..!!병맥주 하나 더요!!!"

 

"강은찬..............."

 

 

 


...비틀비틀...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강은찬을 찾는길..

 

..

 

이 행복한 사람들 가운데 뒤섞여서...

 

꾹꾹 눈물을 참고 있을 강은찬을 찾는길..

 

 

 


"강은찬!!!!!!!!"

 

 

"....."

 

 


"강은차안!!!!!!!!!!!!!!!!!!!!!!"

 

 

 


해맑게 웃는 씩씩한 모습이 젤 잘어울리는..

 

그러나 나에게 감염된 불행으로 천천히 눈물을 알아가고 있는 강은찬을 찾는길..

 

 


"강은찬!!!!!!!!!!!!!!!!!!!!!!!"

 

 

..........

 

..............

 

.....................

 

 

 

".....뭐야...쟤..누..가..불렀냐.."

 

 

 

 

고요했다..

 

호프안에 있던 백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숨이 막혔다..

 

정 중앙 테이블에 앉아 낯선 여자를 옆에 앉히고 술잔을 기울이는 은찬이의 모습이 너무 아팠다.

 

 

 

 

 


"저거 저거!!깜댕이 여깡패!!


너 있는데 안말하면 나 죽인다 그래갖고!!-0-!!"

 


...

....

 

눈치없는 호들갑과 함께 나를 손가락질 하는 날발이..

..

 

 

 

그러면..

 

비아냥대는 얼굴로 혹은 장난끼 어린 얼굴로 나를 흝어대는 은찬이의 친구 대여섯명..

 

또한 낯선 얼굴을 내비치며 소근소근대기 시작하는 그 옆의 여자들..

 

 

 

 


"아..젠장..뭐냐..저거...왜 또왔냐......잠깐만..쟤..한설 맞지..아..


아닌가.."

 

 

"많이 취했냐..."

 

 

 

"목소리..목소리 맞는데...그치..어..


야..쟤 한설 맞지..어.."

 

 

...

.....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서..

 

술에 형편없이 풀려버린 놈을 바라보면..

 

옆에 앉은 여자아이를 쿡쿡 찌르며 다시 또 날 올려다보는 강은찬.

 

 

 

"너 왜 왔냐...?"

 

 

"...병신새끼..."

 

 


"뭐..형 찾으러 왔냐..?


형 여자애들 와서 짜증난다고 나갔다.."

 

 

"..."

 

 

"형 없다고..."

 

 

"..............또라이....."

 

 

"형 없으니까 가라고..."

 

...

 

 

......다갈색의 은찬이 눈동자가...

 

커다랗게 흔들리기 시작하면...

 

차츰차츰 아래로 떨구어지는 힘없는 머리..

 

 

 


"형 없으니까 가라고!!!!!!!!!!!여기 니 애인 없으니까 가!!!!!!!!!!!"

 


"..."

 


"야!!!!!!!저거 누가 불러냈냐!!!!!!!!!?"

 

 

........

 

.............

 


두려운듯..아이들이 아무말없이 입을 꾸욱 다물면..

 

더욱 커져만 가는 은찬이의 술주정 섞인 고함소리..

 

 

 

 

"형 없다!!!!!!!가라 한설!!!!!!!!여기 니 애인 없다!!!!!"

 


".......그러게...하루 없네...하루 없구나.."

 


"그러니까 가라고..!!!!"

 


"......"

 

 

"아 신발....짜증나....


야..장소 옮기자...."

 

 


입이 떨어지질 않아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떨군채 가만히 바닥위의 무늬를 바라보고 있으면..

 

..

 

 


자리에서 우르르 일어나버리는 은찬이와 그 일당들..

 

 

 


"우리는..?그럼 우린 어떡해..?"

 


"니들도 따라와..-0-.."

 

 

 

그러면 다른학교 인듯한 그 여자아이들이 조금은 겁먹은듯한 목소리로

 

날발이에게 묻고..

 

 

 

이어서 떨어진 날발이의 대답에..

 

은찬이 옆에 붙어있던 키크고 늘씬한 여자아이 하나가..

 

재빨리 다시 놈 옆으로 철썩 엉겨붙었다.

 

 

 

..

 

"어디 갈건데 은찬아..?"

 

"쟤 없는데........."

 

 

"응...?"

 


"쟤 없는데 아무데나...."

 

 


그들의 목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발걸음도..뒷모습도...그 모든게 다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제야...

 

꾹꾹 참았던 내 눈물과 한숨이 얼굴 밖으로 흘러 넘친다..

 

...

 


"가지......마.."

 


"......................"

 

 

 

"가지마......."

 

 

"....."

 


"가지마 강은찬!!!!!!!!!!!!!!!!!가지마!!!!!!!!!!!!!!!!!"

 

 


마지막으로..

 

그 짧은시간동안 마음속으로 몇만번이나 웅얼댄 목소리가 폭발해버린다..

 

..

 

가게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은찬이와 나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며 입밖으로 폭발해버린다..

 

 

...

 

 

 


그러나 잠시후 문이 열리면..은찬이의 말없던 뒷모습이 또다시 사라져버린다..

 


매일 보아서 이젠 눈에 꼼짝없이 박혀버린 그 뒷모습이...

 

결국 또 이렇게 나와 멀어져버리고 만다..

 

 

 


"아가씨.울지마요.왜 울어요.울지마요.ㅠ0ㅠ.."

 

 


그래서 몇초간의 허무한 시간을 곱씹어 보다가...


주위의 동정섞인 시선들을 꼿꼿히 바라보다가.


다음으로 은찬이를 잡기 위해 문쪽으로 뛰어가려 하는데..


그때 내 앞을 재빨리 가로막으며 헛소리를 씨부려대는 술취한 얼간이 놈.

 

 


...

.....

 

 


"뭐야..비켜.."

 

 

 

"남자한테 채였구나..그쵸..ㅠ0ㅠ..나도 알아..나도 여자한테 차였거든요..


그 심정 나도 알아.."

 

 

"알았으니까 비켜.."

 

 


"근데 힘내요..아까 그 남자분은 좀 감당하기 힘든거 같더라구..


사귀어봐야 아가씨 맘만 아파요..맨날 바람필거 아냐..그쵸..ㅠ0ㅠ.."

 

 


..쿡쿡..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들..


...그러고 보면 이놈..

 

친구들과의 내기에서 져 이런 장난을 떠맡은듯..

 

맨 구석에 테이블에 앉은 놈들을 향하여 찡긋 윙크를 해보이고..

 

 

 

 

"후..별놈들이 다있네.."

 

 

 


난 긴 한숨과 함께 놈을 가볍게 지나치려 했지만...


놈은 다시 내 옷깃을 움켜 잡으며..


소주 세병은 나발분듯한 혀꼬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남자한테 채여도 기죽을거 없어요.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구요..!!!"

 

 

 

"......"

 

 


"낄낄낄낄..!!ㅠ0ㅠ 저 새끼 저거 하랜다고 진짜 하냐ㅠ0ㅠ"

 

 

.....


후.....................

 

 


.....이젠 남아있던 인내심마저 한계에 다다른탓에.....


옷깃을 잡은 놈을 향해 거칠게 등을 돌렸을때...


놈들 일행 테이블에선 주책맞고 술에 쩔은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좀만아..미안한데 차인건 내 쪽이거든.."

 

 

 

 

 

 

다음으론 애타게 찾고있던 그 목소리가 낮게 울려퍼지며..


얼간이를 향해 고함치려던 나의 입을 순식간에 막아버렸다...


타닥타닥.

 


"야!!잠깐만 멈춰봐!!!"

 


타닥타닥..

 


"강은찬!!!!!너 자꾸 이럴래!!!!!!!!!!!?"

 

 

....

 

......

 

 

 


\ 호프 노바 앞.

 

 


'좀만아 미안한데 차인건 내쪽이거든'

 

 

 

불과 1분전.

 


그 살벌한 한마디만을 얼간이 앞에 던져놓고..

 

뒤 한번 돌아보지 않은채 다시 건물을 빠져나가는 은찬이.

 

 

 

 

"누구 진짜 죽는꼴 볼래 너!!!!!!!!!"

 

 


그리고.

 

그에 질새라 뒤를 바짝 쫓으며 숨을 헐떡이는 나 한설.

 

 

 

 

 

"나 진짜 바닥에 벌렁 누워 버린다!!!!!!!!!!"

 

"....."

 

 

후...

 

멈췄다..

 

드디어..강은찬이 걸음을 멈춘채 나를 돌아본다..

 

 

 

여전히 무미건조한 시선에..지긋지긋한 알코올에 많이 헝클어진 눈동자로..

 

그렇게 찬찬히 내 얼굴을 흝어보다가...

 


이내 건물벽에 기대서 담배를 한개피 꺼내문다..

 

 


....

 


"......"

 

 


잠깐동안 찾아온 짧은 침묵..

 

 

"...어딜 간다는거야.."

 

 


그리고.

 

결국 본론으로 진입한 떨리는 나의 목소리..

 

 

 

"뭐가..."

 

 

"들었어.유학 간다며."

 

 

"형이냐..아빠냐...하여튼 입들두 드럽게 싸요.."

 

 

"강은찬."

 


"친구들 기다린다..얼른 집에 들어가라.."

 

 

"나가게 된다면 내쪽이야.넌 가만있어."

 

 

"유학가는거 너랑 상관없어.너야말로 가만있어."

 

 


푸우..

 

은찬이 입에서 장난스러운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오면..

 

나도 모르게 슬슬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는 부아.

 

 


"너 이대로 가면 내가 아 네 고맙습니다!!!


하고 하루랑 손뼉치며 좋아할꺼같냐!?!!"

 

 

 

"그럼 아 네 미안합니다!!하고 눈물이라도 흘려주던지.."

 

 


"은찬아 제발!!!!!!"

 

 


"원래 고3되면 가려고 했던거야.오버 그만하고 집에나 들어가요 아줌마."

 

 

 

 


그 말을 끝으로..

 

놈은 담배를 발아래로 지저끄며 싱긋 웃어보이고..

 

다시 되찾은 슬픈 표정으로 내 곁을 지나치려 했기에..

 

난 서둘러 놈의 옷깃을 움켜 잡으며 서투른 고함을 내질러야만 했다...

 

 

 

 


"분명히 말했다!!!!!!!누군가 반드시 나가야 한다면 그건 강은찬이 아니라 한설이라고!!!!!!!!"

 

 


"......"

 

 

"니가 나랑 같이 있는게 불편하다면!!!그래서 살아가는데 지장이 있다면!!


그런거라면 내가 나간단 말이야!!!그게 순서야!!알았냐!?!"

 

 

"몇번을 말하냐..너랑 상관없는 거라고..."

 

 


"그런 말 없었잖아!!유학 간단말 한번도 한적 없었잖아!!!


내가 그 말 믿을만큼 얼간이로 보여!!?!"

 

 


"오지도 못하게..가지도 못하게..그럼 날더러 대체 어쩌라는거냐.."

 

 


"....."

 

 

"오지도 못하게..가지도 못하게..


빙신처럼 중간에 쳐박혀서 지켜만 볼까.."

 

 

 

"그러니까..그러니까 말하잖아..내가 집을 나간다고..."

 

 

"너 나가도..난 둘이서 만나는거 계속 지켜보게 되잖냐..."

 

 

"...."

 

 

"너 나가도..난 형 입 통해서 계속 니 얘기 전해 들어야 되잖냐..."

 

 

"...."

 

 


다시 고갤 돌리며..


원망스러운듯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은찬이..


그리고 할말을 잃은 탓에 입술을 꾹 다문 날 보며..

 

천천히 다시 입술을 떼는 은찬이..

 

 

 

 

"그럼 이 안에 사는 찐드기 같은 새끼는 언제 죽냐..."

 

 

"그 새끼 죽을때까지 내가 하루 앞에도 안나타나면 되잖아..


아예 그동안만 잠수 타고 있으면 되잖아.."

 

 

 

"병신.."

 

 

 

"그럼 되잖아.어디 시골 구석에 쳐박혀서 기다리면 되잖아.


니 가슴속에 그 진드기 새끼 죽을때까지..!!"

 

 


"그 진드기 새끼...."

 

 

"...."

 

 


"니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더 오래오래 사는데."

 


"....."

 

 

 

"그새끼 죽는거 기다리다 너 꼬부랑 할머니로 혼자 늙어 죽을래.."

 

 

"그렇게...오래 살아....그새끼가....?"

 

 


"응..오래..되게 오래...."

 

 

"....."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오래.."

 

 


"빌어먹을..."

 

 

 

저절로 입을 비집고 나온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아래로 떨구어 버리면..

 

 


거 보라는듯한 의기양양한..

 

그러나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지친 표정으로..

 


다시 등을 돌려 천천히 멀어져가는 강은찬..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오래...'

 

 

 

그 한마디에 이렇듯 입이 꽉 닫겨져 버렸다..

 

 

 

내가 참 이기적이다..

 

오지도 못하게 가지도 못하게..

 


그래..내가 참 이기적이다..

 

그래도 그것만은 도저히 지켜 볼수가 없다...

 

 

 


"강은찬 너 혼자 외롭게 가버리는거...


그 뒷모습은 정말 지켜볼 자신이 없다....."

 

 


스르륵..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말았다..

 

한사람이 조용히 물러나야 끝이 나는 우리 세사람의 지긋지긋한 관계에..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 앉아 버리고 말았다..

 

 

 

 

 

'멍멍!!멍멍멍멍!!-0-'

 

 

 

 

그러면 그때..


등뒤로 갑작스레 들려온 강아지의 울음이 내 이기적인 눈물을 꾸짖어댔다..

 

 

 


"이거봐..멍멍이도 너 울지 말래..."

 


"하루야......"

 

 

"귀엽지..왼쪽 다리 다쳤나봐..자꾸 전다.."

 

 


...

 

.....

 

 

 

눈물에 가린 멍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면..


쭈그려 앉은채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하루..

 

 

 

"언제부터..있었어..."

 


"....."

 

 

"뭐야...갑자기..."

 


"얘도 왼쪽 다리 다쳤네..."

 


"강하루..."

 


"..."

 

 


"이제 나 어떡해....."

 

 


...

 

......

 

 

대책없는 나의 물음에..


하루는 다정한 표정으로 강아질 품안에 안아넣었고..


난 엉덩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조금 언성을 높혀 얘기했다.

 

 

 

 


"은찬이 그냥 가게 내버려둬..?너랑 둘이 행복하고 말아...?


나 그렇게 나쁜년 되버려....?"

 

 

 

"강아지 이름 정했어.설이..아니다..서리라고 할까..?


얘도 흰색이니까 서리...."

 

 


"니 동생 간대잖아....은찬이 떠난대잖아...."

 

 


"집에 가자.서리 춥겠다..털도 이렇게 짧은데.."

 

 

 

하...

 

어처구니 없는 심정이 되어..

 

쭈그려 앉아 강아지를 얼굴에 부벼대는 하루를 바라보면..

 

 

 

"월월!!월월월월!!!-0-"

 

 


정말 그렇다는듯.


날 향해 요란스레 짖어대는 흰 강아지..

 

 

 

".........................."

 


"월월월월월!!-0-!!!"

 

"후우..."

 

 

....

 

 

 


......그리하여......


결국은 은찬이 대신 '서리' 라는 똥강아지를 품에 안은채...


셋이서 나란히 집으로 돌아오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으니....

 

 

 


\ 동네 비탈길.

 

 

 

 

"월월월!!!!-0-!!!"

 

 

"강아지 진짜 되게 시끄럽네.."

 


"말 예쁘게 해라.날잡아 혼난다."

 

 


...


....

 

 

한발자국 앞서 걷고 있는 하루.


그의 품안에서 쉴틈없이 짖어대고 있는 '서리' 라는 이름의 똥강아지.


그리고 은찬이의 마지막 뒷모습에 안절부절 못해하며 뒤를 따르고 있는 나.

 

 

 

 

 

"그날 음성 듣고 나간거.은찬이 유학 내용이였지..?


넌 그거 알고 비행기에서 나 그놈 옆에 앉힌거지..?"

 

 


"멍멍아 왼쪽다리 왜 다쳤어.."

 

 


"은찬이 혼자 가게 내버려 둘거야!!!!!!!!!?"

 

 


"그럼 니가 따라 갈래..?"

 

 

멈칫..

 

조금은 화난듯한 목소리로 걸음을 멈추는 하루..

 

그러면 대답꺼리를 잃어버린 무색한 내 입술.

 

 

 


"내..내가 왜 따라가."

 

 


"그럼 자꾸 징징대지마."

 

 


"나때문에 그러는건데 어떻게 입닥치고 가만 있냐!!!!!"

 

 

"말 한번만 더 험하게 쓰면 죽는다."

 

 


"한번만 내 입장이 되서 생각해보란 말이야!!오도 가도 못하는 내 입장!!


니 옆에 있으면 마냥 맘 편한줄 알아!!?걔 그렇게 가고 나면 나 죄책감에 어떻게 살아가!!!"

 

 

 

"여깄는게 너무 힘들대."

 

 


"...."

 

 

 

"자기가 한국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난데.


그 하나뿐인 이유를 내가 가져서.한국에 있기 싫대.있어야 할 필요가 없대.


그러니까 너도 억지 그만 부려.."

 

 

 


점점 집의 거대한 담벼락이 가까워져 올때.

 

또박또박.한글자 한글자 분명한 발음을 하면서..

 

헤집어진 내 마음을 더욱 쿡쿡 쑤셔대는 강하루..

 

 


...

.....

 

 


"가서 밥해줘.배고프다."

 


"..."

 


"서리 왼쪽 다리 많이 아프겠다.."

 


"왼쪽 다리.."


"...."

 

 


자꾸만 반복되는 하루의 '왼쪽 다리' 에..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간 학교 앞의 한장면..

 

그러면 상황엔 전혀 걸맞지 않지만..

 

하루 옆에 바짝 따라붙어 주책스럽게 입을 뚫고 나오는 그 한마디.

 

 

 


"그러고 보니까.너 그때 왼 다리는 왜 절었냐.."

 

 

"...."

 

 

 

"다친건 강주원인데..너 가끔 내 앞에서 다리 절었었잖아..


정말 안좋은거야..?아님.."

 

 

"그땐 너 윤영이로 생각했으니까."

 

 

"..."

 

 


"그 사고 떠올리면서 죄책감 느끼라고..."

 

 


쿵..

 

분명 지난일임에 분명하지만..

 

사고회로와 상관없이 밑으로 철렁 내려 앉아버리는 심장..

 

 

 


"그럼 지금은..?"

 


"뭐가."

 


"지금도..나..윤영이로.."

 

 

"화나게 하지마."

 

 


단호한 목소리다...

 

오랜만에 듣는 굉장히 화가난 목소리...

 

 

 

 


"믿어도 되지."

 


"..."

 


"여러 말 들려와도..나 니 말만 믿으면 되는거지.."

 

 

"무슨 뜻이야.."

 

 

"하여간.이제 윤영이가 아니라 한설이라고..굳게 믿어도 되지.."

 

 

 

눈앞에 조그맣게 잡혀가는 누군가의 흐릿한 윤곽을 보면서..

 

왼쪽에서 걷고 있는 하루를 향해 떨리는 음성으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공항 앞의 할머니' 와 '3.9.사진들' 을 떠올리면서..

 

..

 

 

"...."

 

 

그러면 굉장히 화가 나버린 하루는.

 

말없이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집 대문을 향해 빠르게 멀어져 갔다..

 

 

 

"야..!!강하루!!!"

 


"..."

 


"그런 뜻이 아니라!!나는!!!!!!!!"

 

 


그리고..

 

다급해진 내가 허둥거리며 그애의 뒤를 따라 달렸을때..

 

...

 

 

그 희미했던 윤곽 하나가..

 


하루의 품안에 비틀대며 안김으로써..

 

내 발자국 두개를 꼼짝없이 자리에 박아 놓았다..

 

 

 

 

"나쁜새끼...강하루 이 나쁜새끼......"

 

 

 

 


술에 완전히 꼴아박은 울음섞인 목소리를 귓전에 남겨놓고서..

 

"엄마가 자꾸 삼촌 찾아서 내가 데려왔어!!!근데 저 거지가 삼촌 여자친구야!!?!!-0-^!?"

 


"거지 아니야."

 


"거지잖아!!깜댕이 거지!!!"

 

 

 


....

 


.......후우.......

 

 

 


\ 평창동 집.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는 하루.


와 오렌지 족..


그리고 뒤따라서는 날 쫄랑쫄랑 가로막는 '강미라'

 

 

 


"삼촌!!!!!엄마랑만 놀지 말고 나랑도 놀아!!!


삼초온!!!!!-0-^!!"


...

 

....그렇다....

 

...

 

 

하루 품에 안길 그 '망할 여자' 는 다름아닌 술에 꼴아박은 오렌지 족.

 

그리고 참으로 고맙게도 그 오렌지 족을 여기까지 부축해서 와준

 

'강미라'

 


...

 


불타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예 하루 품안에 척 엉겨붙은 오렌지 족은 이상한 노래를 흥얼대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고...

 

..

 

 

난 점점 불안한 마음이 되어서 재빨리 그 뒤를 따라 가..


려 했지만..

 

 


"나 배고파 밥줘 거지."

 

 

 

...-_-...

 

그런 나의 손목을 꼬옥 붙들면서..


강미라년이 건방진 첫번째 운을 띄었다..


여전히 '거지' 라는 그 수식어만큼은 잊지 않은채.....

 

 

 

 

\ 부엌.

 

 

 


"아 뭐야..맛 되게 없어.."

 

 

"그냥 쳐 먹어라......"

 

 

"하루 삼촌이랑 무슨 사인데..?"

 

 

십분전.

 

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만들어준 감자 볶음밥을 먹으면서..

 

그 부담스레 큰 눈으로 빤히 날 바라보는 미라..

 

 

 

그러니까.

 

뜻하지 않게 식탁 앞에 나란히 앉아버린 우리 두사람.

 

 

 


"사귀는 사이다.왜."

 


"거짓말.하루 삼촌이 미쳤어?너같은거랑 사귀게?"

 


"그러게나 말이다..그놈이 미쳤는갑지 뭐.."

 

 

"하루 삼촌 나랑 결혼할거야."

 

 

"축하해."

 

 

"짜증나..너 진짜 싫어.."

 

 

"그래.고맙구나...."

 

 


심드렁한 나의 대답에..

 

인형같은 눈을 깜빡이며 서투른 숟가락질을 하는 강미라..

..

 

 

뭐..

 

이쁘긴 참 오라지게 이쁜것이 사실이기에..

 

난 잠시 그 아이의 '싸가지'도 잊고서 멍하니 그 조막만한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게 참 기분이 나빴던듯..-_-..

 

그앤 내 반대편 방향으로 등을 휙 돌린채 아구아구 밥을 쳐먹기 시작했다.

 

 

 

"월월!!월월월!!-0-!!!"

 

 

자신을 향해 쉴새없이 짖어대는 '서리' 를 노려보면서..

 

..

 

 

 

"야.."

 


"...."

 


"넌 하루삼촌이 대체 어디가 좋으냐..?"

 


"아구작.아구작.= 0="

 


"저놈은 대체 어디가 얼마나 잘나서 저렇게 여자들이 하루도 안거르고 엉겨붙냐..


사람 엄청 불안하게시리.."

 


"아..시끄러...되게 귀찮게 구네.."

 

 

"여기 흘린거나 닦아 임마.."

 

 


옷으로 줄줄 흘러내린 감자 알갱이에..

 

가만히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내면..

 

...갑자기 확 붉어지는 미라의 얼굴...

 

 

 

"아..미안하다..거지의 손으로 만져서..-_-.."

 

 

"알면 됐어.더럽게.."

 


"근데 니네 아빤 좀 괜찮냐..?"

 


"아빠 일본 갔어.."

 

 

 


...모른다....

 

이 애....자신의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조차...

 

아니 사고를 당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근데 뭐가 괜찮아..?"

 

 

"아..아니다..아니야...

 

..밥 다 먹었네...그럼 거실에서 니 엄마 기다려라..내가 불러줄텐께.."

 

 

 

얼른 방으로 쳐들어가서 질질 끌고 나와버려야지..-_-^..

 

 


달아오른 조급한 마음에..

 

소매를 걷어 부치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

 

 


'타앙'

 

 


수저를 식탁위에 내려놓으며 또다시 날 빤히 올려다보는 강미라.

 

..

 


오렌지족과 닯아서 더럽게 기분 나쁜 얼굴..-_-^

 

 

 


"왜!!!"

 


"...."

 

 

"물 떠다 주랴!?!?"

 

 

"려...."

 

 

"...뭐...?"

 

 


"나 졸려..."

 


"..-_-..."

 

 

 

참으로 첩첩 산중이로다..

 

은찬이 일만 해도 머리가 터져 나갈 지경인데..

 

갑자기 등장한 오렌지족에..

 

이 건방진 꼬맹이에..

..

 

 

 

"월월월월!!-0-!!!"

 

 


저렇게 사납게 짖어대는 똥강아지 한마리에.....

...

 

 

후우...

 

정말 편할래야 편할수가 없는 드센 팔자로구나...

 

 

 

 


"자장가 불러."

 

 

 

 

\ 내 방.

 

 

 

 

"뭬야..-_-..?"

 

 

"자장가 불러 달라고.."

 

 

"거지 목소리라도 괜찮겠냐..?"

 

 

"상관없어.눈 감으면 되니까.."

 

 

"...-_-..후우..."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이냐..


...

 


바로 옆옆에 있는 하루 방에선 인기척 하나 들려오지 않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구만..

 

이 새파란것에게 꼼짝없이 붙들려 절절 매는 꼴이라니...

 

 

 

"빨리 불러..!!"


...

 

 

내 신세를 한탄하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


이불 사이로 머리통만 빼꼼히 내민채 나의 노래를 재촉하는 미라.

 

 

 


"그래...듣기 괴로우면 스톱을 외쳐라..."

 


"얼른 부르기나 하라니까..!?"

 

 

"..오냐..알았다..알았어.."

 

 

"...."

 

 

흠흠..

 

........

 


이 까탈스러운것에게 노래를 불러주려니..

 

참으로 심장 떨리기가 그지 없구만....

....

 

 


"...얼른 불러.."

 


"자장가는 아니지만..어쨌든 고요한 노래다.."

 


"..."

 

 


빗자루 같은 풍성한 그애의 속눈썹을 앞에 둔채...

 

조그맣게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 서글픈 노랫말..

 

 

 

 

"네가 남긴 작은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작은 개구리마저 구슬프게 날 위로해주던 길..."

 

 


"어!?그거.."

 

 

"니네 아빠도 부르던거지.....?"

 

 

"아빠가 자주 불러주던건데..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씁쓸한 미소가 저절로 입가에 번지면..


침대위로 벌떡 몸을 일으며 날 바라보는 강미라..

 

 

 


"내가 지은거니까..."

 


"우리 아빠랑 친해..!?"

 

 

"아니..그 여자랑......"

 

 


"그 여자가 누군데..!?"

 

 

"이 노래 불러주면서 세명의 남자를 힘들게 만들었던 내 친구..."

 

 

"몰라..난..그거 아무튼 아빠가 불러주던거야..술먹으면..맨날 울면서 불러주던거.."

 

 


"아빤....너한테 잘해줘...?"

 

 

"그런걸 니가 왜 묻는데..?"

 

 

"....좋은사람인가...궁금해서...."

 

 


죽었다 깨어나도 그 끔찍한 사고를 알수 없는 미라는..


묘한 나의 물음에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누이고..

 


이내...

 

너무 어리고 갸냘프게만 느껴지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투명하게 내보였다..

 

 

 

 


"다리 다치기 전엔 집에 잘 안들어왔어..그래서 매일 엄마랑 싸웠어....


지금은 집에만 있으니까 좋아...엄만 아직도 집에 없는 날이 훨씬 많지만..


그래도 아빠가 있어서 좋아..


술 마시다 소리 지를때도 많지만...가끔 때릴때도 있지만...


밤에 혼자 안자도 되니까 좋아..."

 

 

 

"너도..맨날...혼자였..냐...?"

 

 


"......"

 

 

"외톨이구나..너도..."

 

 


"아냐!!


하루 삼촌이 자주 놀아줬어..일년전만 해도 나랑 맨날 놀아줬어..


그땐 외톨이 아니였어...!!"

 

 

 

점점 작아지는 미라의 목소리..


분명 울먹이고 있는 작은 꼬마의 목소리..

 

 

 

 

"그럼 내가..친구..해줄까..?"

 

 

"...싫어..거지..싫어..."

 

 


"나도 외톨인데.....


나도 놀아주는 엄마랑 아빠가 없는데....예쁜 동생도 잃어버리고....."

 

 


"..왜...?"

 

 


"저기..하늘 나라 갔거든..."

 

 

"그럼 다신 못봐..?"

 

 

"응..다신 못봐..."

 

 


부스럭...


...

 


꽉 막힌 목을 통해 간신히 새어나온 그 한마디에..

 

갑자기 몸을 돌려 날 뚫어져라 보는 미라..

 

그리고 약속이나 한것처럼..

 

우리 두사람 볼을 타고 똑같이 흘러내리는 눈물 두 방울..

 

 

 


"울지마....."

 

 

"너도 울지마..."

 

 

"내가 친구 해줄게...거지래도...해줄게.."

 

 

"고맙다....."

 

 


눈물 젖은 뺨을 조심스레 닦아주는 그 작은 손에..

 

난 꽤 오랜만에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 미소를 보고 안심한듯..

 


그제야 미라는 두 눈을 꼬옥 감으며..중얼중얼..잠에 취한..

 


그리고 외로움에 취한 슬픈 말들을 웅얼 거리기 시작했다..

 

 

 

 

"아까..밥 흘린거 닦아줬을때 고마워....


맨날 그래서 혼나기만 했는데....닦아줘서 고마워....."

 

 

"앞으로 많이 닦아줄게..."

 


"거지라고 놀려서 미안.....

 

.....미안....미안해......"

 

 

 


점점 작아져..

 

이내 입 안으로 완전히 파묻힌 투명한 목소리...

 

아기천사처럼 곤히 잠든 하얗고 창백한 얼굴..

 

 


"잘자라..."

 

 


마지막으로..

 

그 큰 눈망울에 맺힌 눈물을 훔쳐주며 이불을 턱끝까지 덮어주는 두터운 내 손..

 

 


그리고...

 

굉장히 쑥스러운 짓이였지만..

 

스스로 해놓고도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민망한 짓이였지만..

 

그 작고 뽀송뽀송한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한뒤 조용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한설..

 

 

 

 

"잘자라..작은 외톨이..."

 

 

다음으론...

 

누구나 예상할만한 행동이겠지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환하게 불을 밝혀놓은 그 방을 빠져나왔다..

 

 

 

 


'똑똑.똑똑똑똑.'

 

 

 

 

\ 하루 방앞.

 

 

 

'똑똑.똑똑똑똑.'

 

 


한참을 머뭇대다가 문을 향해 던져놓은 노크.

 

 

"....."

 

 

 


그러나..

 

여전히 인기척 하나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문 건너편.

 

 


"강하루..."

 

"....."

 


"하루야..."

 


"...."

 

 

 

뭐야..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냔 말이야...

 

둘이 분명 방안으로 들어가는것 까진 봤는데..

 

창문을 열고 뛰쳐 내린것은 아닐테고..

 

 

..

 


좋아...


...........

 

그렇다면 어쩔수 없지....

 

바로 행동 개시다..

 

 


"문 연다..!!"

 

"..."

 


"오케이!나 지금 문 열어요!!!"

 

 

 


일단은 예의를 갖춘 선전포고를 던진다음..

 

"큼크음..!!"

 

멋쩍은 헛기침과 함께 방문을 활짝...!!!

 

 


"....."

 

 


방문을...활짝....

 

 


".................."

 

 


하...

 

지금 나랑 뭐하자는거야...

 

 

 

"야..강하루..."

 


"...."

 


"강하루....!!!"

 

 

 

분명...두 사람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

그래..거기까진 나도 충분히 이해해 줄수 있는 행동이였다..

 

 

 

 

그러나 단지 문제가 되는 한가지는...

 

오렌지 족이 하루의 자켓을 몸 위에 걸친채 놈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단 사실이였다.

 

 


저벅..저벅..

..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채로 방안에 걸음을 들여놓지만..

 

..

 

여전히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않는 두사람..

 

 

 


"나쁜자식....강하루....이 나쁜자식..."

 

 


그리고 꾹 다문 오렌지 족 입 사이로..

 

잠꼬대와 술주정이 합해진 그 목메인 말들이 삐져나오면..

 

난 이해해 줘야 한다는 너그러운 머리와는 다르게..

 

자꾸만 불타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쓰고..

 

 

 

 


"어....왔어......"

 

 


이제야 나의 인기척을 눈치 챈듯...


하루가 부시시 눈을 뜨면서 쉰 목소리를 내뱉었다.

 

 


"뭐하는거야..?"

 


"얘기하다 잠들었나봐.."

 


"그래.그럼 계속 자..^-^.."

 


"...왜그래...?"

 

 


왜 그러냐고...?


......

 

지금 나한테 왜 그러냐고...?

 

 

 

"안색 안좋다.."

 


"잘자라."

 


"야..."

 

 

 

콰당...!!

...

 


그렇듯 세차게 문을 닫고서..

 

눈치없는 왕등신을 남겨놓고 방을 나와버렸다..

 

 

 


"힘들다...젠장...

 

...강하루...강은찬...둘다 도저히 내 역량으로는 감당이 안된다..."

 

 

 

 


그리고..

 

방문가에 온몸을 지탱하면서 버거운 한숨을 내뱉다가..

 

이내 떨군 시선 위로 들어오는 발 두개에..

 

재빨리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았다..

 

 

 

..

 

 

"야...."

 

"......"

 


"언제 왔냐.."

 

 


듣는둥 마는둥..

 

지친 내 음색을 한 귀로 가볍게 흘리며..

 

하루의 방문을 거칠게 열어제끼는 은찬이..

 

 


"야....!!"

 

 

 

 

그리곤...

...

성큼성큼 하루와 오렌지족 앞으로 걸어가..


망설임없이 오렌지 족을 번쩍 등위로 들어올리는 은찬이..

 

 

 

 


"술만 안먹었으면 둘다 나한테 세대씩 맞았다."

 

 


꾹꾹 눌러참는 목소리였다..

 

정말 온힘을 다해서 꾹꾹 눌러참는 목소리..

 


..

 


그래.

 

그 한마디를 남겨놓은채 은찬인 하루 방을 나와 버렸고..

 

다음으론 힘빠진 시선으로 날 가만히 내려보다가..

 

오렌지족에게 입혀져있던 하루 자켓을 거칠게 벗겨서..

 

내 머리위를 팔랑 덮어 버렸다..

 

 


"병신.."

 


"....."

 


"이건 니꺼야..알았냐.."

 


"알아.."

 

 

"알면 물건 간수 똑바로 해."

 


"..."

 

 

대답없는 나를 스윽 지나쳐선..

 

아직도 술주정중인 오렌지 족을 들쳐 업고 계단을 내려가는 은찬이..

 

..

 

망설임없이..한번의 뒤돌아섬 없이..

 

거칠게 계단을 내려가버리는 은찬이..

 

 

 

 

"또...아프다...."

 

 

 

정말 아프다...

 

 

누구에게나 다 가슴 아픈 이 밤..

 

미라에게도..오렌지족에게도..하루에게도..나에게도..

 

...

 


그 열배를 더했을 은찬이에게도...

 

이 밤...불쑥 찾아온 이 고요한 밤...

 

누구에게나 다 가슴 아픈 이 밤..


"어흠..요새 집 분위기가 말이 아니구나..말이 아니야.."

 

 

 


\ 삼일후.

 

 

 

어느덧 삼일이란 시간이 흘러 2월20일이 되어버렸다..

 

..

 

그리고. 그 3일이란 짧은 기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었는지 꿈에도 모르는 할아버지께선.

 

지금 마악 등교길에 오른 나와 하루를 바라보시며..

 


아주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은찬이는요.."

 


"응?"

 


"은찬이는 학교 안간대요...?"

 


"응.오늘 좀 몸이 안좋대.."

 


"네..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냐..잘 갔다 오너라..-0-.."

 

 

"네...!!

 

 

힘찬 외침과 함께 꾸벅 인사를 하고..

 

신발을 탁탁 구겨 신은채 현관문을 열면..

 

갑자기 하루를 향해 조그마한 신호를 보내는 할아버지.

 

 


"...."

 

 


그럼 하루는.

 

흘끗 내 얼굴을 한번 보다가..

 

강아지 '서리'를 품에 안고서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다시 거실로 자취를 감추었고..

 


..

 

 

아직 놈과의 관계에 어색한 감정이 남아 있는 나는..

 

주저없이 혼자서 집을 나와 버렸다.

 

 


...

 

어제 봤을땐 멀쩡해 보였는데..


갑자기 또 어디가 아프다는거야....

 

..

 


그렇게 3일째 한마디도 대화를 못한 은찬놈을 걱정하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신기사 아저씨에 재빨리 대문을 향해 달리는데..

 

 

 

그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한 여자의 작은 모습..

 

 


"...."

 

 


그리고..

 

점점 그 의심을 사실로 만들어주며..조금씩 커져가고 있는 그 문제의 한 여자..

 

 


"....."

 


"오랜만이구나.."

 


"안녕하세요.."

 

 


젠장..마녀다..

 

 

 

"그래..뉴질랜드랑은 인연이 아니였던 모양이지..?^-^.."

 

 


빙긋 미소짓는 마녀의 의연한 모습에..

 

나의 민망한 표정은 더욱 더 대책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아.됐어.미안해 할것 없다.어차피 애 아빠랑은 남남이니까 말이야.."

 

 

 

이젠 더이상 신경쓸거 없다는듯..


내 어깨를 두어번 툭툭 두드려 보이는 마녀.

 

 

 


"네..그렇게 신경 써주셨는데..죄송하게 됐습니다.."

 


"대신에 우리 은찬이가 유학을 간다지..?^-^.."

 


"....."

 


"어쨌든 나한테 이제 미안해 할건 없어.

 

애 아빠랑 법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분명한 남남이 되었으니까."

 

 

"....네...."

 

 


"그래도 은찬이가 참 많이 좋아한 아이니까..작은 충고 한마디만 해주겠는데.."

 

 

 

...의미심장하게 깔려가는 마녀의 목소리...

 

그리고 안타깝고 측은하게 바뀌어가는 마녀의 눈동자...

 

 


"모든걸 너무 믿지 말아라.니 눈에 보이는 그애가 전부는 아니야."

 

 

"그게..무슨 뜻인데요.."

 


"웃는 얼굴 뒤엔 분노의 얼굴이..잠자는 얼굴 뒤엔 죽음의 그림자가.."

 


"...네...?"

 

 

"부디 너만은 현명한 결정을 내려 무사하길 빈다..^-^.."

 

 

 

뭐야 이 여자..

 

대체 지금 무슨 소릴 지껄여 대고 있는거야..

 

 


소름돋을 만큼 기분나쁜 심정이 되어..재빨리 마녀를 쏘아보면..

 

'또각.또각.또각.'

 

기분 좋은 하이힐 소리를 내며 점점 현관문을 향해 멀어져가는 마녀의 뒷모습.

 

 

 

 

'웃는 얼굴 뒤엔 분노의 얼굴이.잠자는 얼굴 뒤엔 죽음의 그림자가..'

 

 

 


.........

 


.............

 


대체 언제까지...

 

날 강하루라는 시험에 들게 할 작정인거지......

 

도대체 언제까지...

 

 

 

 


"3월 9일이야 우엉엉!!!!!!!!3월 9일이라구!!!!!!ㅠ0ㅠ"

 

 

...

 

 

 


\ 교실.

 

 


"진짜야!?!?아직 한참 남았잖아!!!ㅠ0ㅠ"

 

 

"난 2월달인줄 알았는데!!이런 빌어쳐먹을 학교 같으니라구!!"

 


...

 


.....뭐가 3월 9일이라는거냐....

 

..

 

 

3교시가 끝난 쉬는시간..

 

자리에 앉아 다음 시간 교과서를 책상에서 꺼내면..

 

2분단 맨 끝에 앉아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는 코끼리와 맘모스..

 

 

 


"3월 9일이 뭔데..?"

 

 


그리하여..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채 짝꿍을 향해 물음을 던지면..

 

그들에게 들리지 못하게 소근소근 대답을 해주는 내 짝꿍.

 

 

"개교 기념일이요.."

 


"개교 기념일..?"

 


"네..쟤네들은 맨날 달력에 빨간날이 몇개있나를 세보는게 학교 생활의 유일한 낙이에요."

 

 

"그래..그럴테지..-_-.."

 

 

 

그런데 왜 하필이면 3월9일이냐..기분나쁘게 스리..


...

 


순간.윤영이의 사고 모습과 사진에 있던 '3.9'라는 빨간 숫자가 겹쳐 떠오르면..

 

난 발끝에서부터 돋아오르는 소름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었고..

 

 

 

"자자..조용히들 해라..!!"

 

 


아주 다행스럽게도..

 

마침 국어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오며..

 

그 끔찍하고 불운한 생각들을 한방에 사르르 녹여 버렸다..

 

 

...

 

 

 

정말 다행스럽게도..

 

 

 


"자.그럼 칠판에 적은거 공책에 필기 하고.

 

그동안 선생님은 교무실에 잠깐 다녀 올테니.."

 

 

"오우히야히!!!!!!!!!!!-0-"

 

 


"...-_-..."

 

 


"천천히 다녀오세요 선생님!!!!!!-0-"

 

 

"하여간 저 자식들은..쯧쯧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는 코끼리와 맘모스를 보며..

 

넌덜머리 난다는듯 재빨리 교실을 나가버리는 국어 선생님.

 

 

 


"자자!!우리는 그럼 매점에 다녀올테니 넌 필기를 다 끝마쳐 놓도록 하여라!!!-0-"

 

 


그러면 코끼리와 맘모스는..

 

각각 자신의 짝꿍들에게 공책을 휙 내던져주며 게걸스러운 바퀴벌레처럼


휘다닥 교실을 뛰쳐 나가고..

 

 

 

"ㅠ_ㅠ..."

 


그녀들의 짝꿍은 일주일 굶은 우거지상이 되어서..시무룩하게 공책을 집어 들었다..

 

 

"어쨌든 저것들이 나가니까 교실이 조용해서 좋구만.."

 

 

중얼중얼..

 

순식간에 고요해진 교실 공기에..

 

다행스러운 그 한마디를 찍 내뱉으며 공책 필기를 시작하려는데..

 

 

.....


.......

 

갑자기 내 옆에 있는 창문으로 일제히 쏠리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시선들..

 

 

 

"우와...뭐지...뭐야...."

 

 


"설이 언니랑 친한 오빤데..."

 

 

"나 저 형 이름 알아.."

 


"응..은찬이 오빠.."

 

 

 

뭣이여..!?!?!?

 

은찬이...!?!?!?

 

 


갑작스레 귀에 쿡 박힌 그 이름에.

 

온 표정이 경직된채로 왼편으로 휙 고갤 돌리면...

 

...

 

 

정말이다...

 

...강은찬 얼굴이 창문에 철썩 붙어 있다...

 

...게다가...

 

웃는다.......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채 환하게 웃고 있다...

 

 

 

'톡톡톡.톡톡톡톡.'

 

 

이어서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놈의 오른 주먹에..

 

난 멍한 표정을 재빨리 풀면서 창문을 홱 열어 제꼈고..

 


"야..너..."

 

 


역시나 믿을수 없는 나의 어안벙벙한 목소리에..

 

놈은 열린 창안으로 턱을 받치고 선채..

 

싱글싱글 웃는 눈으로 날 빤히 바라보기에 이르렀다..

 

 


"너 공부시간 아냐..?"

 


"맞아."

 


"근데 왜..?"

 


"담배 피러.^-^."

 


"...."

 

 


뭐야 이놈이...왜 또 갑자기 화가 이렇게 쏴아악 풀린거지..

 

어젯 밤까지만 해도 술에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날 마네킹 취급하더니만..

 

 


"너..화..다 풀렸냐..?"

 

 


아직도 더듬더듬..

 

적응이 덜 된 나의 미심쩍은 목소리에..

 

갑자기 휙 손을 뻗어 헝크러진 내 머리를 매만지는 강은찬..

 

 

 

"잤냐?"

 


"..아니.."

 


"근데 기집애가 머리가 이게 뭐야.이쁘게 좀 하고 있지."

 


"너 어떻게 된거냐니까...이제 다 끝난거야....?거기 안가기로 했어!?"

 


"응."

 


"진짜지!!!!"

 


"응.내가 왜 가냐."

 

 

"진짜지 너!!딴말 하기 없기다!!어!?!"

 

 


의자를 박차며.방방 뛰어오르는 나의 목소리에..

 

흥미로운 시선으로 아주 조용한 침묵을 유지하는 우리반 아이들..

 

이 순간만큼은 코끼리와 맘모스가 없는것에 백번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안가 임마..."

 

 

"고맙다!!고맙다 강은찬!!!!!!!"

 

 

 

 

여전히 불타오르는 나의 외침에..


은찬인 눈을 반달로 만들면서 계속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보였고..

 

 


갑자기 주머니에서 학생증을 꺼내더니..


그것에 자신의 입을 가볍게 맞추고...


그 돌발적인 행동에 놀란 내 입술에 다시 그 학생증을 가만히 갖다 대었다.

 

 


"뭐냐...?"

 


"너 가져라."

 

 

"내가 이걸 왜..?"

 

 

"화해의 선물."

 

 

"....."

 


"고백하는거 아니니까 그렇게 굳은 얼굴 하지 마라.그냥 화해의 선물이야.


그동안 심통 부린거 미안해서."

 


"근데 갑자기 왜...갑자기 왜 이러는데..?"

 

 

"그냥.지나가다 너 공부하는 옆 얼굴에 뻑이 가서.."

 

 


그 말을 꺼냄과 동시에..

 

놈은 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 내리고..

 

...

 

난 가만히 그 학생증을 창문 너머로 받아 들면서..

 

다시 한번 놈의 장난스러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뭔가 있지...?"

 


"병신.속구만 살았냐?이건 잘해줘두 지랄이에요"

 

 

"이러다 갑자기 가는거 아니지?"

 


"너 내가 거짓말 하는거 봤냐?"

 


"....아니..."

 

 

"그럼 됐어^-^"

 


"....담배 피러 간다구...?"

 

 

"응.이따 보자."

 

 

"...."

 

 

"한설."

 

 

"...왜..."

 

 


학생증을 한손에 꾹 쥔채 놈을 보면..

 

뒤에서 재촉하는 날발이를 향해 한손을 흔들면서..

 

다시 한번 내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는 강은찬.

 

 

 

"한설."

 


"아 왜....

 


"내 키는..?"

 

"뭐??"

 

 

"내 키는?"

 


"180..."

 

 

"취미는."

 

"골프...?"

 


"좋아하는 색깔은."

 

 

"파란색.."

 

 

"혈액형은..?"

 

 


아니 이새끼가 진짜 왜 이래....

 

 


"에이형..."

 

 

"내 꿈은."

 


"할아버지 회사 물려받는거.."

 

 

"그럼 내 이름은."

 


"강은찬......"

 

 

"...."

 

 

"강은찬....너 분명히 니 입으로 안간다고 그랬다..."

 

 

"그래.내 입으로 분명히 그랬어.."

 

 


그래도 자꾸만 떨쳐지지 않는 의심에..


창밖에서 환히 웃고 있는 놈을 위아래로 흝어보면..


이내 천천히 날발이를 향해 뒷걸음질치는 은찬이.

 

...

 

.....

 


끝까지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그렇게 넘어질듯 말듯 위태위태하게 뒷걸음질을 치는 은찬이..

 

 

 

"이따가 보자고 그랬다!!니 입으로 분명히 그랬다!!!"

 

 


확인을 하듯 자꾸만 되묻는 나의 물음에.

 

대답대신 두 손을 마구 흔들어 보이는 은찬이..

 

 

 

"점심시간에 내가 니네 교실로 갈게!!그때 얘기하자!!!!"

 

 

..점점 작아지는 은찬이..

 

......점점 작은 점이 되어버리는 은찬이....

 

 

 

"이따 점심시간에 보자!!그때 보자 강은찬!!!"

 

 


그러면 내 목소리는 점점 더 크고 불안하게 변해만 가고..

 

이내 그 목소리를 반 아이들의 웅성 거림이 덮어버리니..

 

 

 


"우와 언니 저 오빠랑 진짜로 친해요?


선도 슬때 되게 무서워서 제대루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맞어..나도요..근데 지금 보니까 되게 착한거 같애요.."

 

 

"그 학생증 나도 좀 구경 하면 안돼요..?"

 


"근데 저 오빠도 똥 싸요..-0-..?"

 

 

 

난 그 순수한 질문들에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잠자코 학생증을 짝꿍의 손위로 넘겨 주었다..

 

 

"...."

 

 

 


그리고..

 

3교시 50분 수업 내내..

 

쉴새없이 입가위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추스리면서..

 

놈의 환히 웃는 얼굴과 함께 점심시간 시작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너무도 쉽게 돌아온 놈을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러나 최고로 감사하게 생각하며...

....

 

 


......

 

 


'♬♪♩♬♪♩♪♩♬♪♩♪♩♬♪♩♪♩♬♪♩'

 

 

 

 


"언니 일어나요..."

 

 

"고맙다..고맙다 이새끼야...."

 


"언니....설이 언니....."

 

 

"빨리 풀어줘서...고맙다...

 

 

"언니 점심시간이에요!!!!!!!!!!-0-!!!"

 

 


어!!?!?!

 

 


"점심시간 벌써 20분이나 지났다구요!!"

 

 

"오 이런!!-0-빌어먹을놈의 종이 언제 울렸냐!?"

 


"아까 그렇게 깨웠는데..!!"

 


"고맙다 민정아!!!"

 


"뭘요..-0-.."

 

 


쑥쓰럽게 머리를 매만지는 내 짝꿍을 보며.


일단 고맙다는 의미로 손을 꽉 부여잡고서...

 


...

 


이제 30분밖에 남아있지 않은 점심시간을 한탄하고 재빨리 의자위로 몸을 일으켰다.

 

 

 

'기다려라 임마..내가 간다...'

 


그리곤..

 

그 활기차고 설레이는 혼잣말과 함께..

 

여느때보다 훨씬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 뒷문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지지지직..지지지직..........'

 

 

 

교실 방송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우당탕탕 소란스러운 복도로 나가기 위해 교실 문고리를 꽈악 부여 잡았다..

 

 

 

 

"안녕하세요.선도부장 강은찬 입니다.."

 

 

 


그랬기에..

 

그 잡음 뒤로 흘러나온 친숙한 목소리는..


나의 심장과 사고 회로를 꼼짝없이 얼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먼저 신청 사연에 앞서서.모든 사람들한테 한가지 부탁좀 하겠는데..


방송 나가는중에 방송실로 달려오지 마세요.


말하는 도중에 쳐들어오면 나 쪽팔려 뒤져버릴꺼니까.."

 

 

......

 

 


........저놈이 진짜 홱까닥 정신이 돌았나......

 

덕풍고뿐만이 아니라 우리 중학교 교내에도 생생히 방송을 하고 있다니..

 

 

 

 

"신청곡 앞서 헛소리 몇마디만 하겠습니다.듣기 괴로워도 좀 참아주세요.


말하는 나도 상당히 힘들거든요..."

 

 

...

.....

 

 


"정평중 3학년2반 한설.


아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텐데.."

 

 

저 자식이...설마..


진짜 설마..

 

 

"네....

 

그 여자가 바로 제가 태어나 처음 사랑한 여자입니다..


그리고 죽을때까지 나한테 허락될수 없는 여자입니다..."

 

 


강은찬..

 

그럼 이것때문에..아까 그런 의미심장한 말 한거였냐.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이제 그 문제는 다 정리하기로 했잖아..

 

 

 

 


"미안합니다...."

 

 


힘들게 떨구어진 그 한마디..


그리고 참을수 없는 힘겨운 침묵..

 

 

 

 

"근데 아무래도..가슴안에 그새끼 죽을때까지 데리고 살아야 할것 같습니다...


그 여자랑 한 약속 도저히 지킬수가 없을것 같습니다..."

 

 

 

 

....

 


........

 

 


"이 노래 마지막으로 그 여자 보내기로 했었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안됐습니다..


그 여자가 형이랑 있으면 화가 나고..그여자가 울어도 화가 나고..


그여자 웃어도 화가 나고..그 여자가 힘들어도 화가 나고..


제 성질이 워낙 지랄 맞아서...


한번도 그 약속을 지킬수가 없었습니다.."

 

 

 


멍청아..왜 이래..


왜 자꾸만 니 눈물을 자초해..

 

 

 

 


"거지야..잘 있어라......


혹시 만약에..진짜 만약에 이새끼 죽으면...


그때 다시 폼나는 모습으로 너 괴롭히러 올게...


쭉쭉빵빵 이쁜 외국인 마누라 옆구리에 끼고서....너 잘 살고 있나 보러 올게..."

 

 

 

콰앙..!!!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떨리는 손으로 재빨리 뒷문을 열어 제끼면..

 

 

 


귓전에서 울려퍼지는 은찬이의 다음 목소리.

 

 

 

"이상.선도부장 강은찬..

 

아 씨..쪽팔려 뒤지겠네...오늘 밤 잠은 다 잤다..."


..

...

 

 

그리고..

 

각 교실안에서 그 슬픈 노래가 울려퍼지면..

 

..

 


난 복도로 나와 환호성 치는 아이들을 지나쳐..

 

2층에 위치한 방송실을 향해 미친듯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죽었어 넌...


강은찬 넌 진짜 나한테 죽었어...


안간대놓고...


강아지..안간다고 그렇게 웃어놓고..."

 

 


점점 노랫소리가 복도 밖으로 커다랗게 울려 퍼지면..

 


숨이 벅차 오를만큼 부풀기 시작하는 내 숨소리..


..

 

방송실 문앞에 멈춰선채 주체할줄 모르고 커져만 가는 내 숨소리..

 

 

 

 

 

"강은찬!!!!!!!!!!!!!!!!!!!!!!"

 

 

 

끝으로..

 


복도 저 끝에서 가까워 오는 하루의 얼굴을 확인하며..

 

온 힘을 다해 방송실문을 열어 제꼈을때..........

 


.........

 


그랬을때.....................

 

..

....

 

 


"I promise U I promise U 난 너를 잊어 갈께


I can't love with U I can't love with U Oh~no


이제는 기억에 사라질께 난..."

 

 


...

...

 


"하....."

 

 


분명 텅빈 방송실안엔 그 노래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고..

 

...

 


이내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

 

그 노래와 은찬이의 음성이 녹음된 테이프 안에서 흘러나온것이란걸 알았을때..

 

 


난 맥없이 그 바닥에 픽 주저 앉아 버려야 했다..

 

 

 

..

 

....말도 안된다....

 

그럼...아까 그게 마지막이라고...

 

아까 그렇게 대책없이 웃던 얼굴이 마지막이라고...

 

 

 

 

"지금 공항이야..."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놈의 미소띈 얼굴을 원망하고 있을때..

 

바로 위에서 들려오는 차분한 하루의 목소리..

 

 


"알고 있었지.."

 


"..."

 

 

그리고..

 

대답대신 내 손위에 쥐어지는 팬던트 목걸이와 은찬이의 핸드폰..

 

 

"......"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어..

 

입술을 꾹 다문 하루를 한번 보고..

 

다음으로 목걸이에 달린 팬던트 뚜껑을 조심스레 열면...

...

 


이건...

 

전에 나나언니 집에서 은찬이가 주었던 것..


은찬이와 하루의 어릴적 모습이 나란히 들어 있었던것..

 

 


"...."

 

 


하지만..

 

그 안엔 이제 나와 하루와 은찬이 얼굴이..

 

남양주에서 어깨동무를 한채 나란히 찍었던..

 

그 해맑고 씩씩한 미소가 담긴 작은 사진이..

 

 

 

 

"왜 나한테 말 안했어...


그래도 언제 가는진 일러 줘야 하잖아..이건 아니잖아..


이렇게 가는건 정말 아니잖아..."

 

 

 

툭..

 

손에 들린 목걸이를 바닥에 떨구며..

 

또 한번 하루의 얼굴을 바라보면..

 

하루는 천천히 등을 돌리며 눈물 범벅된 내 얼굴을 외면해 버렸고..

 


..

 

 

그 순간 손에 들린 핸드폰이 작게 진동하면서..


마비 되있던 내 신경을 일순간에 깨워 버렸다..

 

 

 

....

 

......모르는 번호.......

 

...

 


탁..

 

벅차오르는 마음에..재빨리 폴더를 열어 귀에 가져대면..

 

 


"......."

 

 

아무말이 없는 저 건너편..

 

 

 

"강은찬....."

 


"..."

 

 

그리고.


놈이 있는곳이 공항임을 여지없이 알려주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안내방송.

 

 

 

 

 

"너 진짜 이럴거야......"

 

 

"안녕."

 

 


"안간다며!!!!!!!!!!점심시간에 보자며!!!!!!!!!!!!!!!!!!


거짓말 안한다며!!!!!!!!!!!!!!!!!!!!!!!담배 피러 가는거라며!!!!!!!!"

 

 

 

악...악...악으로 변해가는 내 눈물소리에...

 

점점 더 차분해져가는 은찬이의 숨소리...

 

 

 

"한설.."

 

 

 


"셋이 도망가기로 했잖아..셋이 행복하기로 했잖아..!!!

 

나 데리고 도망쳐 준다고 했잖아!!!!!!!!!!!!!"

 

 


"...."

 

 

 

"넌 그때 나 잡았었잖아..공항에서 나 못가게 잡았잖아..


근데 왜 난 그런 기회도 안줘!!!!!!!넌 나 잡았는데 왜 난 너 못잡게 해!!!!!!!!!!!!


이 나쁜 새끼야!!!!!!!!!너 혼자 그렇게 도망쳐 버리는게 어딨어!!!!!!!!!!!"

 

 


건너편에서..

 

은찬이의 숨죽인 눈물소리가 가득 울려 퍼져나갈때..

 

난 차마 죽이지 못한 숨탓에..

 

혼자선 도저히 감당해낼수 없는 울부짖음을 토해내고..

 

..

 

 


"셋이서 도망치기로 했잖아...


은찬아....은찬아...우리 셋이 행복한 나라 만들기로 했잖아...


이렇게 혼자 가는게 어딨어......


말도 없이 이러는게 어딨어...아무리 화나도..아무리 슬퍼도...


이건 아니잖아 은찬아...


이건 진짜 아니잖아 강은찬..."

 

 

 

"잘 있어라..."

 

 

"강은찬!!!!!!!!!!!!!!!!!!끊지마!!!!!!!!!!!!!!"

 

 

 

 

"내 키는 180이 아니라 182.5.


취미는 골프가 아니라 보드타기..


좋아하는 색깔은 파란색이 아니라 흰색..


혈액형은 에이형이 아니라 오형..."

 

 

 

"...."

 

 

"꿈은 회사 경영이 아니라 니가 행복해지는거....."

 

 

 


"...."

 

 


"병신..어떻게 이름 빼고 아는게 하나도 없어........."

 

 


"제발............"

 

 

 

"웃어라...................."

 

 


...

 

 

......뚜....뚜....뚜....뚜.........


.....

 

 

 

그것이 끝이였다....

 


'웃어라....................'

 

그것이..은찬이가 내게 남겨놓고 간 마지막 한마디였다...

 

 


아무리 울며 발버둥을 쳐봐도..

 

가지 말라며 악을 쓰고 난동을 부려도..

 

그러다 지쳐서 바닥위로 고꾸라져 버려도..

 

은찬이는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와 주지 않았다..

 

 

 

 

 

내가 늘 그 아이에게 잔인하고 모질게 굴었던 것처럼..


그 아이 역시 단한번의 뒤돌아섬 없이 깨끗하게..


그러나 그 누구보다 힘겹고 아프게..


그렇게 젖은 날개를 날고서 내 곁을 떠나가 버렸다.. 
 
 
 
강은찬..잘 지내고 있냐..너 그렇게 가버린지 벌써 2주가 넘었네..


근데 많은 사람들이 그 2주에 적응해 버린것 같아 많이 슬프다..


확실히 니놈이 없으니 아침 저녁으로 집안이 썰렁하긴 하지만 말야....

 


...

 


할아버지는 물론 건강하시고.


강주원도 이제 내일 모레면 퇴원 할수 있댄다..


예란인 너 떠난뒤에 탈선의 길로 빠졌는지 코빼기도 안보이고..


날발이야...그놈이야 여전히 깝치지 뭐...


아....나랑 미라랑 친해진 얘긴 전해 들었으려나..?

 

 

..


..

 

어젠 니놈이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놀이동산도 같이 갔다왔걸랑..


상상이 잘 안되지..?^-^


뭐 그냥...아무도 자매로는 안보더라구..하하..


.....

 

그리고.......하루.....

 

하루는 말야...


그놈은 여전히 여자들한테 둘러 쌓여 있지 뭐..

 

요즘 말도 없고 좀 이상하긴 한데..에이..이 얘긴 관두자..!!

 

근데 참 오랜만에 글씨 쓰려니 오라지게 힘들다..

 

틀린데 몇군데 있어도 이해해라..

 

 

어쨌든..편지는 이쯤에서 마치고..

 

..오늘..오늘 3월8일 말이야..

 

오늘이...내 음력 생일인데..그거 니놈들 둘한테 밖에 말 안했는데..

 

.....

.......

 

 

어떻게...두놈 다 축하 인사 하나가 없네..

 

 

 

"한설!!!!"

 


....

 

......

 

 

 


\ 교실.

 

 

 

"한설 뭐하는거야!!!!"

 

 


갑작스런 담임의 외침에.

 

쓰고있던 펜을 책상위로 또르르 떨어트리면..

 

 


"ㅇ_ㅇ..."

 


단번에 내게로 집중되는 아이들의 시선.

 

..

 


이런..설마 편지를 빼앗아버리는건 아니겠지..

 

그 전에 얼른 선수를 쳐버리자..

 

 

 

 

"죄송합니다....."

 


"내가 종례시간엔 딴짓 해도 된다했어?!!-0-"

 

 

"아니요....."

 

 

"너 심부름좀 갖다 와라..!!"

 

 

...

 

.....

 

 

조금은 누그러진듯한 담임 선생님의 명령에..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면..

 

다음으로 교탁 앞에 딱 버티고 선 그녀를 향해 다가서면..

 

 

 

 

"자.이거 덕풍고 3-2반 갖다 주고 와."

 

 

 

유인물 한 웅큼을 내밀며 단호히 말을 자르는 담임.

 

 

 

"...거기 왜요...?"

 

 

"우리 반꺼랑 그 반꺼랑 몇장 뒤 바뀌었어.."

 

 

"다른애 시키시면 안될까요."

 


"맞아요 선생님!!제가 갖다 올게요!!!!!!!!=0="

 

 


"아니에요 저에요!!제가 할게요!!!!!!!"

 

 


...-_-...

 

순간.

 


의자를 발랑 뒤집으며 코끼리와 맘모스가 일어나면..

 

 


"너희들은 택도 없어!!설이 니가 딴짓했으니 니가 갔다와!!"

 

 

더이상 말도 말라는듯 내 등을 앞문쪽으로 떠미는 팔 힘 좋은 여 담임.

 

 

 

"그냥 갖다 주고 오면 되는거죠.."

 


"그렇다니까 글쎄..!!!얼른 갖다와!!"

 


"..."

 

 

 


젠장할..

 

하필이면 은찬이네 반에 가라냐......

 

...

 


그 힘빠진 작은 중얼 거림과 함께..


군말없이 손안에 구겨넣은 유인물..


동시에 교실을 힘없이 나선 나의 발 두개..

 

 

 

 

그렇게 천천히..아주 천천히..

 

힘없이 늘어트린 어깨로 덕풍고 3-2반을 향해 걸어간다..

 

 

그놈이 떠나고 없는..

 

그래서 이제 내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덕풍고 3-2반을 향해 느릿느릿 나아간다...

 

 

 


강은찬 이 나쁜새꺄.....

 

확실히 그건 비겁한 짓이였다..아냐..

 

'잘가라'는 인사 한마디도 허락하지 않은..

 

아주 아주 못되먹고 비겁한 짓......

 

 

 

 

 


"안뒤여!!!!!!!!!!!난 달뜰때까지 교실에 있어야 하는 실험용 쥐가 아니야!!!!!!!!

너희들은 속고 있어!!!!!!!담임의 계략에 놀아나고 있다구!!!!!!!!!!=0="

 

 


"글쎄..전국에 있는 고삼들은 다 그렇다니까..ㅠ0ㅠ..


가면 안돼..ㅠ0ㅠ..그럼 내가 선생님한테 혼나.."

 

 

 

"놔 이 씹새야!!내가 구해 주겠어!!!!!!!집에가서 도리깨를 가져 오겠어!!!!-0-^!!"

 

 


"안돼..ㅠ0ㅠ 너 또 도망치면 우리반 단체 기합이란 말야.."

 

 

 

 


\ 3-2반 교실 앞.

 

 

...-_-...

 


그래..니 놈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미친 소릴 할까냐만은...

 

 


"..똑똑..."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지없이 울려퍼지는 날발이의 목소리에..


작은 헛기침과 함께 교실문을 열면..

 

....

 

 


먼저 날발이의 발목을 잡고 울부짖는 참한 소년이 보이고..-_-..

 

다음으론 84개의 눈동자들이 내 몸을 마구 흝어 내리기 시작했다.

 

 

 

"어?깜댕이 여깡패!!!!!!!!"

 


"오랜만이다.."

 


"너 우리 반엔 왜 왔냐!!?은찬이두 없는데!!!"

 


"...."

 

 

-_-..

 


더이상 대답할 필요가 없다 판단하여..

 

저벅저벅 걸어가 교탁위에 유인물을 타앙!!하고 내려놓는 나 한설..

 

그리고 그 무수한 시선들을 똑바로 아주 정정당당히 쳐돌려준뒤..

 


다시 문을 향해 매정히 돌아 서버리면...

 

 


....

 

'빈자리...'

.....

 


안봐야지 안봐야지 해놓고..

 

끝내 두 눈 깊숙히 힘없이 박아 놓고 만 '은찬이의 빈자리....'

 

 

.....

 


햇살이 비치는 1분단..그 다섯번째 왼쪽 자리..

 

그냥 덩그러니 남겨 놓아버린 강은찬의 빈자리...

 

 

 

일단은 얼른 나가야 겠다는 생각으로 재빨리 문 고리를 부여 잡았다..

 

 


그러면 그때 나의 곧은 예상대로..

 

날발이의 주책맞은 고함소리가 교실 가득 울려퍼져왔다.

 

 

 


"은찬이 그날!!!!은찬이 그날 공항 가기 전에 니네 교실 들렸을때!!!!!!!"

 

 

"......"

 

 

 

수근수근..

 


여자아이들의 수근거림이 점점 더 귓가를 어지럽혀 오면..

 

그에 발 맞추어 딱 두톤 더 높아지는 날발이의 목소리.

 

 

 

 

"너 보고 막 웃었지!!!!!!!!?계속 계속 웃었지?!자꾸만 실없이 쪼갰지!!!!!!!?!"

 

 


"....."

 

 


"그리구서 그 새끼 뒤돌아 섰을때!!넌 그놈 뒷통수밖에 못봤지!!


앞통수는 못봤지!!!-0-"

 

 


"앞통수란 말도 있냐..."

 

 


"막 울었다 그새끼!!!눈은 웃는데 눈물이 막 줄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면서도 날 보고 웃는데!!난 그새끼 그런거 처음 봤다!!


'나 멋있지^-^v' 그러면서 날 보는데!!그래도 자꾸 자꾸 울었다!!


니가 줬던 그 그르지 밥퉁 같은 초콜렛.


포장도 안뜯고 품에 꼭 끌어 안구선 가는 내내 울었다!!"

 

 


"....."

 

 

 


"그래서 나도 울었다!!우엉엉!!ㅠ0ㅠ!!!


이런 넨장맞을..또 이 개살궃은 눈물이 흘러내리네..!!ㅠ0ㅠ.."

 

 


"안돼!!어딜 가는거야!!"

 

 


"화장실 가서 눈물 닦을거야.놔 이 씨방새야!!"

 

 


"그럼 가방은 두고가!!!가방은 두고 가란 말이야!!ㅠ0ㅠ!!"

 


"내 가방이야!!!!!이건 내가 할머니께 선물 받은 내 가방이란 말이야!!!!!!=0="

 

....

 

 


......타닥탁.....

 

온힘을 다해 등을 부둥켜 앉는 그 참한 소년을 무참히 행가래치고는.

 

열린 문 사이로 미친듯이 달아나버리는 날발이..

 

 

...

.....

 

 


"병신..."

 

 


그리고..

 

떨리는 입을 달래는 그 한마디로..

 

태연한척 날발이 뒤를 쫓아 교실을 나서는 나 한설..

 

 

 

 

 

"뭐야..?그럼 쟤 은찬이랑도 그래놓고 이젠 하루한테 저러는거야??"

 


"하루가 먼저 아냐?은찬이가 짝사랑한거고?"

 

"어우..저 음침한 애를..?"

 


"되게 웃긴다 진짜..."

 

 

 


되게 웃긴다...

 

되게 웃긴다.....

 

 


그러게...그 새끼 되게 웃기네...

 

강은찬 그새끼......진짜 눈물나게 웃기네..

 

재주도 참 대단하지..

 


이렇게 떠난 순간까지 눈물나게 웃겨버리네...

 

 

 

"뭐해."


....

 


......

 


순간..

 

복도를 힘없이 비틀비틀 지나치는 그 순간..


등뒤에서 들려온 그 한마디에..

 

두 귀를 의심하면서 재빨리 고개를 돌리면..

 

 


"강하루..???"

 


...

 

.....

 

정말이다.

 

똥강아지 '서리'를 머리위에 처억 얹어 놓고서..


담담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하루가 눈앞에 있다.

 

 

 

 

"왜 이 교실에서 나와?"

 


"그러는 너야 말로 뭐야..서리 학교 데려 왔었어..?"

 


"응."

 

 

"왜!?!?"

 

 


"내 짝이 지네 집 강아지가 더 이쁘다고 자랑하잖아..


그래서 오늘 결판 내기로 했어.."

 

 


"...-_-...짝꿍도 개 데리구 왔냐..?"

 

 

"아니.뻥이였대."

 

 

"그럼 들어가지...


너야말루 여기서 뭐하는데....."

 

 


"담임이 나더러 개 데리구 썩 꺼지래..."

 


-_-......

 


암담한 심정이 되어서..

 

재빨리 눈물과 콧물을 들이키며 눈앞의 못말리는 남자친구를 올려다보면..

 

'서리'의 두 앞발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콜록콜록 작은 기침을 토해내는 하루.

 

 

 

 

"너 요새 이상해 강하루."

 

 


"왜..?"

 

 


"오늘도 학교 먼저 왔고..그래서 서리 데리구 온것도 몰랐지만..


학교 끝나고 또 먼저 가고..집에도 잘 안들어오고..밥도 잘 안먹고.."

 

 

"....."

 

 

"오늘 나나언니 보러 같이 가기로 한건 안 잊었지!?"

 

 


"몰라.어쩌면 안될수도 있다."

 


.....

 

 

슬금슬금...


수줍은 표정으로 가까워오는 한무데기의 덕풍고 1학년 기집년들을 흘겨보다가..


다시 확 부릅뜬 도끼눈으로 놈을 째려보자..


놈은 서리의 앞발을 이빨로 앙 무는 시늉을 하고..

 

 

 


"일주일전부터 약속한거야!!!!오늘 별다른 일 없댔어!!!넌 과외 해서 야자도 빼먹잖아!!"

 


"...."

 

 

"강하루!!!!!!!!"

 

 

"알았어."

 


"가는거지!!?"

 

 


"어.갈게.."

 

 

"알았어..그럼..


...이따 전화할게...교문 앞에서 만나자..."

 

 


"응."

 


....

 


후....

 

다시 간단히 떨어진 하루의 대답에..


서리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곤...담으론 중앙에 놓인 계단을 향하여 처벅처벅 걷기 시작했다.

 


....

 


그리고 역시나...


그 수줍은 기집년들은 하루를 에워싼채..


(분명 나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_-)


갖은 아양을 다 떨어대며 나의 두 귀를 뜨겁게 달아올렸다.

 

 

 

 


"와..오빠..강아지 너무 이뻐요.."

 

 


"진짜..되게 귀여워요..오빤 강아지 같은거 되게 싫어할줄 알았는데..!!>ㅇ<"

 

 

"꺄아꺄아.정말 이쁘다 그치>ㅇ<"

 

 


"응.이런거 처음봐!!뭐에요 오빠!!?무슨 종이에요!!?"

 

 

"털이 이렇게 부드러운걸 보니까 아마도>ㅇ<"

 

 

 


"똥개야."

 

 

 


"네??아..그냥 똥개구나...아..똥개....;;


그..그래도 너무 예뻐요!!


원래 개는 똥개가 젤 예쁘잖아요!!사람도 혼혈아가 이쁜것처럼!!"

 

 

 

 

.....

 

 

 


.......그래 이년아........

 

그럼 넌 나중에 외국인하고 결혼해서 똥개 낳아 길러라....

 

 


....

 


빌어먹을..

 

저 깔롱 대가리 같은 자식은..

 

나 몰래 후배들한테 밥을 사주냐 떡을 사주냐..

 

왜 저렇게 오빠오빠 하고 따르는 애들이 많은거야...

 

 


괜한 질투인걸까..


아니면 내 생일을 기억 하지 못한것에 대한 심술인걸까...

 

 

 

....

 

 

그렇게..하루에 대한 불안감으로..섭섭함으로..


사실은 은찬이에 대한 미안함으로..서러움으로...


종례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난 입을 꾸욱 다문채 요즘들어 축 처진 두 어깨를 비틀어 댔고...

 

 

 

 

"자 그럼.내일은 개교 기념일이니 10일날 보자구!!!"

 


"와아아!!!!!!!!!!!!!>ㅇ<!!!!!!!!"

 

 

 


마지막으로 힘차게 나온 담임의 목소리에.

 

그러면 그 보다 더 우렁차게 터져나온 아이들의 목소리에..

 


..

 

"후..."

 

 

 


무거운 한숨과 함께..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혹은 하루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덕풍고.정평중 교문을 떠올리며 의자위로 몸을 일으켰다.

 


..........

 

.......................

 

 


'강은찬 멍청이..


너 우는거 보면 누가 때리냐..누가 욕하고 발로 차냐..


병신..그냥 울지...


남은 사람 덜 미안하게 그냥 펑펑 울고 가지...


하이튼..멋도 없는게..멋있는건 혼자 다할려 그래...


아주 마지막까지 나 나쁜년 다 만들라 그래...'

 

 

 


이젠 정말 염치 없어진..그리고 소용없어진..

 

목구멍속에서 자꾸만 억지로 되삼키려 하는 그 혼잣말과 함께...

 

...

 

.....

 

 

 

"밥.??"

 

 

 

 

 


\ 택시 안.

 

 

 


"그래 밥.밥 사준대.나나언니가."

 

 

 

"갑자기 왠 밥."

 

 

"전화 상담소 승진해서.이제 전화 안받고 사무실에서 경리 일 보는데..


그것 때문에 나한테 고맙다고."

 

 


"그 여자 뺏고...그 다음에 죽어도..."

 

 


"...."

 


"그래도...돼...?"

 

 


흠칫...

....

 

택시가 막 약속장소 맞은편 도로위로 서서히 멈춰설때..

 

...

 


서리를 무릎위에 올려놓고서...

 

내 심장을 철렁 밑으로 내려 앉히는 강하루.

 

 

 

 

"뭐...?"

 

 


"장난이야.그때 내가 너한테 했던말이잖아."

 

 


"...."

 

"근데 우린 진짜 인연인거 같다.그때 그 여자가 넌줄 누가 알았겠냐.."

 

 


"그런 장난 치지마!!!!!!!!!!!!!!!"

 

 

"이젠 장난일 뿐이잖아."

 

 

 

"그래도 싫어 새꺄!!그런 장난 치지마!!!!"

 

 

"내가 진짜 죽을까봐...?"

 

 


순간..

 

 

하루의 얼굴에 슬픈 빛 하나가 스치고 갔다면..

 

그래서 서리의 멍멍소리가 째질듯이 커져버렸다면..

 

...


그건 단지 나의 착각일뿐인가...

 

 

 

 

"여기 맞지요 학생들..????"

 

...

 

.....

 


할말을 잃은채..

 

검푸른 악몽을 어깨에 끙끙 업고서 멍청히 하루를 바라보고 있을때..

 

 

...

 

그 침묵을 깨주려는듯..

 

앞에 앉은 기사 아저씨가 다정히 말을 건네고..

 

..

 

그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하루의 뒤를 따라서 맥없이 택시 밖으로 몸을 내렸다..

 

 

 


그리고..

 

 

 

 


"같이가 임마!!!"

 

 


"..."

 

 

"뭐야뭐야!!같이 가자니까!!!!!!!!!"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음식점안으로 쏙 들어가는 하루를..

 

왠진 몰라도 함부로 말 걸수 없게 또 변신 해버린 하루를..

 

허둥지둥 조급히 따라가는 길.

 

 

 

 

 

"어서오십시요..!!^-^.."

 

 

 


\ 닭갈비 집.

 

 

 


"야!!같이 가자니깐!!!!!"

 

 

"...."

 

 

 

그랬다.

 


말 한마디 없이 횅하니 이곳에 들어와버린 하루는..

 


주의를 둘러보다가 맞은편에서 환히 웃는 나나언니 앞으로 털썩 앉아 버렸고..

 

 


"새끼..진짜 웃기네....."

 

 

 

머쓱해진 난..

 

고개를 갸웃하며 그 두사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어우 인제 와!!!?!?!-0-!!?"

 

 

"응.좀 늦었지.하루가 나보다 30분 늦게 끝나잖아."

 


"아냐.늦긴 뭘!!야야.배고프겠다.니들!!니들 뭐먹을소냐!!!"

 

 

 

여전히 활기차고 당당한 목소리로..

 

메뉴판을 떠억하니 펼치는 나나언니..

 

 


"^-^..."

 

 

 

그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아 가만히 턱을 받치고 바라보면..

 

언닌 심각한 표정으로 메뉴를 흝어내리고...

 

그런 언니 모르게 굳은 하루의 옆구리를 쿡 찔렀을때...

 

 

 

 


"에고고.얘네들이야..??"

 

 

 

바로 뒤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하나 들려오면서..


나나언니의 표정을 더욱 환하게 밝혀 버렸다..

 

 

 


"응!!얘네들!!


얘들아.얘가 내 대신 12번 전화 상담 하게 된앤데..!!


아직 식사 전이래서 같이 데리구 나왔어.괜찮지!!?"

 


"응.그럼.괜찮지...


...안녕하세요...^-^..."

 

 

 


"......"

 

 


....

 

......

 

 

뭐지....


...

 

얼른 등을 돌려 그 여자를 향해 꾸벅 고갤 숙이면..

 


....

 


좀 놀란 표정으로....

 

그러다 다시 반갑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

 

갑작스레 나와 하루의 어깨를 얼싸 안아 버리는 여자.

 

 

 


"세상에!!니들이였어!!?!!왠일이니!!>_<!!왠일이야!!>_<!!"

 

 

"저희 아세요..-0-..?"

 

 

"...."

 

 

 

 


당황한 나는 환호성을 지르는 여자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

 


이상하게 내 옆에 앉은 하루놈은 아무말 없이 두 눈을 내리 깔고..

 

..

 

 

"저.."

 

 


내가 무슨 오해가 있는것이 아닌가 하여..

 

잔뜩 메마른 입술을 천천히 떼네려 할때..

 

 

그때 바로 그여자...

 

하루와 나의 어깨에서 고개를 들며..

 

금방이라도 흘러내릴듯한 미소가 담긴 눈으로 먼저 입을 떼었다.

 

 

 

 


"강하루!!박윤영!!"

 

 


"...."

 

 

 

"이게 진짜 얼마만이야!!!

 

세상에나.여전히 사귀고 있구나!!!!

 

 


"...."

 

 


"근데 윤영인 왜 이렇게 피부가 탔어!!?

 

긴머리가 그렇게 이뻤는데 싹둑 잘랐네!!!!"

 

 


....

.......

 


제기랄....

 

누가 꿈이라고 좀 말해줘....

 


...

 

 

그렇게 머리속이 하얗게 바랜 내가 두 주먹을 꾹 움켜 쥐면..

 

하루는 말없이 서리의 코를 쓰다듬고..

 

 

 

그러면 여자는..

 

제발 그만 다물렸으면 하는 그 입을..

 

이제부터 시작이라는듯 활짝 벌리며 기어코 말을 꺼내기에 이르렀다.

 


"중학교땐 윤영이가 참 졸졸 따라다녔지!!?

 

그래서 그때 우리한테 불려서 혼도 나고 그랬잖아!!"

 

 

 

 

\ 닭갈비 집.

 

 


...

......

 


눈치가 없는건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건지.......

 

 


'윤영이'의 죽음을 가볍게 전하고 싶지 않은 생각에..

 

나와 나나언니.

 

그리고 하루를 합한 세사람이...

 

진실을 전해줄 맘 없이 허공을 응시하면....

 

 


...

 

 

하루와 윤영이의 중학교 1년 선배라는 여자는..


신이 나서 또 재잘재잘 입을 놀린다.

 

 

 


"어쨌든 그래서 사귀었어!!그치??


여자하구 눈 마주치는것도 싫어했었는데..하루 너 말야....


열번 찍어 안넘어 가는 나무 없다구.윤영이가 해낸거지 뭐.^ㅇ^"

 

 

"....."

 

 

"아주 더 멋있어졌네.머리도 길고 키도 더 많이 크고.."

 


...

 

.....후......


...그냥 일어나서 나가버릴까....

 

 

 

 

"근데 그때 하루가 너한테 했던 행동들이 지금도 전설로 남아있대요..


몰랐지 그건..?"

 

 

 

"내 이름은 박윤영 아닌데..한설인데.."

 

 

 

 

 

작은 내 중얼거림이 들리기나 하는걸까..


나랑 하루의 악몽같던 그 날이 보이기나 하는걸까..

 

 

 


"하루 너 조회시간에 태권도 대회 나갔다가 금상받을때.교장선생님이 소감 말하라구 하니까


'박윤영 사랑해' 라구 해서 학교 발칵 뒤집힌거.


또 퀵 서비스 배달인 인척 하면서 모자쓰고 니네 교실 가서 장미 백송이 준거..


그때가 니 생일인가 그랬지 윤영아..?"

 

 


"...."

 

 


"그치만 뭐니뭐니 해두 우리가 젤 부러워했던건..!!


너 발 인대 늘어났을때 하루가 맨날 업구선 등교 하교 시켰던거!!"

 

 

 

 

윤영이 생일..퀵 서비스 분장 하고 장미 백송이..

 

설이 생일.....아예 기억 못함..

 

 

 


"나나언닌 몰랐지?얘네한테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는지?"

 

 


"그만해.예림아."

 

 

 

"왜~애들 거의 몇년만에 보는거란 말야.


참..윤영이 아마 너두 이건 몰랐을거다.!!


접때 왜.하루 며칠간 학교 못나왔을때 있잖아..편도선 부어 입원했다고..


그래서 여자애들 병문안 간다고 난리 쳤을때..


이거 말해도 되지 하루야??"

 

 

 

.....

 

 

 

.....추억이 참 많네.....


두 사람 멋진 추억이 참 많구나....


제 3자가 이렇게 흥분해서 끝없이 늘어 놓을 정도로..

 

 

 

 

"그게 편도선 부운게 아니라 옆 학교 애들한테 죽도록 맞았었대.


니가 싸움 한번만 더 하면 헤어진다고 했다며.


그래서 이놈이 글쎄 손가락도 까딱 안하고 그냥 맞기만..."

 

 

 

"근데 얘 걔 아니야."

 

 


"어??"

 

 

 

"얘 지금 내 여자친구 맞는데.


이름은 박윤영이랑 전혀 달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하루가..


여자와 내 얼굴을 차례로 번갈아보면..여잔 당황한듯 내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윤영이 맞잖아...윤영이 맞는데 뭘..."

 


"윤영이랑 달라."

 

 

"그럼...다른애라구...?"

 

 

말도 안된다는듯..

 

손끝으로 내 눈을 가르키는 여자..

 

 

 

"생각하는것도.말하는것도.행동하는것도.


나 사랑해주는 크기도."

 

 

"...."

 

 


"전혀 달라."

 

 

 

 


그리고..


하루는 단호히 문쪽으로 몸을 돌려..

 

이내 내가 엉거주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때..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서 음식점을 나가버렸다..

 

 

 

 

"세상에..-0-..어떡해...죄송해요..어머..어떡해.."

 

 

당황한 여자를 남겨놓고...

 

 

"후...니년땜에 내가 진짜 못산다..못살아..."

 

 

체념한 나나 언니를 뒤로하고...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루야.....'

 

 

또 한번 상처 입은 날 버려두고....................

 

 

 

 

 

\ 평창동 집.

 

 

 

 

 


"아니.왜 또 둘이 따루와?다퉜어??"

 

 

"아니요.하루는요."

 

 

"방으로 들어가 소식이 없네-0-"

 

 

"......"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맞이하는 아줌마..

 

...

 

 

그러면 난 마찬가지의 심정이 되어 이층에 박힌 내 방으로 빠른 걸음을 옮기고...

 

 

..

 

 

이래뵈도 생일이야...

 

나도 오늘 생일이란 말이야....

 

 

....

 


자꾸만 비뚤게 나가는 망상과 불안에 사로잡혀..

 

금방 들어온 내방.

 

그 왼쪽 구석에 위치한 침대 위로..

 

터무니없이 지치고 만 몸뚱이를 누였다.

 

 

 


'생각하는것도.말하는것도.행동하는것도.


나 사랑해주는 크기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냥 가볍게 넘겨 들으려고 했지만..

 

....

 

껌딱지처럼 머리 깊숙한곳에 착 눌러붙어서...

 


지겹게도 내 아픈 심장을 쿡쿡 쑤셔대는 그 한마디..

 

 

 

 

"내가 크다는거야..아니면 작다는거야..?


내가 비교가 안되는거야..아니면 윤영이가 비교가 안되는거야..?"

 

...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다..


하루 네 맘은..정말 알다 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

 

 


단 한번도 나에겐..

 

얼굴을 마주한채 '사랑해'란 말을 해준적이 없다는것..

 

 

여지껏 단...한...번

 

 

 

 

 


"설이 안에 있니."

 

 

....

 


.......

 

 

그때.

 

그 '단 한번'을 읆조리며 나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번져올때..

 

방문너머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침착한 목소리.

 

 

 

"네 있어요!!"

 


"그래.그럼..잠깐 실례좀 하마.."

 

 


그러면 바로..

 


내가 침대위로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삐그덕 문이 열리며 할아버지가

 

지친 모습을 드러내셨고...

 

...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

 

할아버진 아주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시며..


꼿꼿히 일어난 내 얼굴을 굳은 눈동자로 차분히 응시 하셨다..

 

 

 


"....설아...."

 

 

"네.말씀하세요."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

 


"3월9일.그 아이가 죽은 날.."

 

 

"네...안그래도 내일 찾아가 볼 생각이에요."

 

 

"아니."

 


"..."

 

 

"집에서 단 한발자국도 꼼짝 하지 마라.."

 

 

"무슨...."

 

 


점점 낮게 깔려가는 목소리에..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애써 태연해지려 하면..

 


그럴 필요 없다는듯..내 두 손을 꼭 붙들어 잡는 할아버지..

 

 


"부탁이다...단 일초도 하루 옆에서 떨어지지 말아다오..."

 

 

"할아버지...."

 

 

"그 어디에도 나가지 말고.하루 옆에 꼭 붙어 있어줘...


제발 부탁이다...그애가 무사하게 도와줘..."

 

 


"하하...할아버지...아니에요...하룬 이제 전부 잊었어요..


아시잖아요..저랑 사귀는 사인걸요..절대로 할아버지가 걱정하시는 일.."

 

 

"이렇게 부탁한다.."

 

 


"...."

 

 

 

순간..

 

눈물 맺힌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할아버지를 보며..

 

난 비참함과 두려움이라는 두가지 교차된 감정을 느껴야 했고..

 

 


정말 미안하다는듯..

 

할아버진 두 손을 꼭 모으며 힘겹게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널 못믿어서가 아니야..단지..난..

 

작년에 그놈이 하도 3.9일날 가버린단 소릴 일기장 가득 써놔서.."

 

 


"...."

 

 

"혹시라도..정말 혹시라도..."

 

 


"알겠습니다.."

 

 


"미안하다..정말 미안하다..이런 부탁하는게 너한테 얼마나 힘들지 알지만.."

 

 

 

"아니요.제가 하루 여자친구잖아요.


제가 지켜야죠."

 

 

"...."

 

 

 

"하루.제가 지켜야죠 할아버지."

 

 

 

싱긋 미소를 짓는다.

 

애써 담담한척..아무렇지 않은척..

 

너무 작아져버린 하루의 '아버지'를 보며..태연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고맙다 설이야..정말로 너한텐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이라서.."

 

 

"아니에요."

 


"..."

 

 


"지금 제가 하루 방에 가볼게요."

 

 

"그래..."

 

 

그리곤..

 

가늘게 떨리는 할아버지의 어깨를 아주 잠깐 감싸 안았다가..

 

살짝 열려있던 방문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그러나 그전에..

 

꼭 해야 할 그 말만은 절대 잊지 않는다.

 

 

 


"그런데요 할아버지."

 

 

 

"..."

 

 

 

"제가 장담하지만 하루요.내일 밤 12시 직전까지 밖에 혼자 내놓아도 절대 아무 일 없어요.


전 그애 믿거든요.이제 윤영이가 아니라 저거든요.."

 

 


"미안하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불안해 하시니까.


저도 내일 온종일 할아버지 걱정하시는건 정말 싫으니까.


그래서 있을게요.단지 그거에요.그냥 단지 그거에요."

 

 


"안다..알고 말고.."

 

 


"네.그러니까 앞으로 할아버지도..


저랑 하루 좀 많이 믿어주세요..^-^.."

 

 

 

마지막으로 던진 그 한마디에..

 

할아버지가 너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면..

 

...

 

 

방안에 혼자 남겨져 있을 하루를 향해..

 


망설임 없는 걸음을 하는 나..

 

꼭 해야만 하는 걸음을 하는 나..

 

그러나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하는 나..

 

 

 

 


\ 하루 방.

 

 

 

'똑똑.똑똑똑."

 

 

"....."

 

 


....뭐지....

 


...이놈이 벌써 자나...

 

 

 

"하루야..자냐..?"

 


"....."

 

 

 

왜 아무말이 없어.....

 

설마 그새 잠든건 아닐텐데....

 

좋아..일단 들어가 보자...

 

 


"그럼 나 들어간다..."

 

 


역시나 아무 대답이 없는 저 건너편에.

 

일단은 문을 벌컥 열어제끼기로 했다..

 

 


'끼기익....'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은 내가 문을 활짝 밀어 젖혔을때..

 


...

 

 

 

침대 위에 엎드려 누운채 무언갈 하고 있던 하루가..

 

깜짝 놀라며 이불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야...뭐야...애교 부리냐..!?"

 

 

"뭐야."

 


"아니.뭐하나 궁금해서.."

 

 

"나가."

 


"...뭐....?"

 

 

"나가라고."

 

 

"야....."

 


"....."

 

 

"발코니로 나와."

 


"........."

 

 

"안나오면 서리 데리고 가출해 버릴거니까.


당장 발코니로 따라 나와라"

 

 

...

 


.....탁탁.....

 

내가 생각해도 참 여성스럽지 못한 그 말을 던져놓고..

 

일단은 하루 방을 괴벽스럽게 나서는 길..

 

...

 


그리 하여..

 

정확히 4분후..

 


달도 밝은 이밤.

 


나와 하루가 발코니 위에 마주하는 사태가 벌어지니..

 

 

 

...

 

 

 

 

"뭐야 대체 너."

 

 

"뭐가."

 

 


"아까 그게 화낼 일인가..솔직히 그 여자 눈치없는건 인정하지만..


화를 내면 내가 내야지.그게 니가 화낼 일인가."

 


"나 화 안났는데."

 


"....."

 

 

"졸리다.먼저 가서 잘래.."

 

 


....하....

 


어처구니 없는 날 남겨두고...

 

하루가 다시 발코니 문을 어깨로 밀려고 하면..

 

재빨리 또 그 손목을 움켜잡아버린 나.

 

 


"아까 그 말 뜻!!!!!!!!!"

 

 

".........."

 

 


"내 뜻대로 해석해도 되냐!!!!!!?"

 

 

"뭐가..?"

 

 

"지금은 너!!윤영이가 아니라 나라고!!!!!까놓고 말해서 너 지금 나 사랑한다고!!!!!!!!!"

 

 

 

 

 

그때....아주 급격히 차갑게 식어버린 하루의 눈....


잠시 잊고 있었던..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더 숨이 막히는....


단 1퍼센트의 감정도 찾아볼수 없는 짙고 새까만 하루의 두 눈.

 

 

 

 

 

 

 

"한설 넌."

 

 


".........."

 

 


"가끔씩 이렇게 날 화나게 만들어."

 

 


"그러니까 나냐고...나냐고 묻잖아......"

 

 

"너라고 대답하면."

 

 

"..."

 

 

"너라고 믿어줄래..?"

 

 

"그럼..."

 

 

"그럼 내가 박윤영이라고 대답하면..."

 

 

"..."

 


"박윤영이라고 믿어 버릴래...?"

 

 

 

"...뭐...?"

 

 

 

의미 모를 그 말에..

 

잔뜩 쉬어 버린 목소리로 짧게 되물음을 하면...

 

어디선가 분명한 핸드폰 진동이 들려오고..

 


...

 


내가 입을 열어 그 소리를 전하려 하기도 전..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가져대는 하루.

 

 

 

 

"여보세요...


...어....지금 나갈게.....


그건......아니..아니다...


응..알았어.....그래.기다려.."

 

 

 


"...."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누군데..?"

 

 


"홍세진."

 


"홍세진..?"

 

 

"어.홍세진.."

 

 


너무도 덤덤한 그 말투에.

 

두 귀를 의심하며 똑바로 놈을 바라보면..


더 말할것도 없다는듯..


단숨에 발코니 문지방을 뛰어넘는 하루.

 

 

 

 

"야.니가 걜 왜 만나는데!?"

 


"마지막으로."

 


"뭐!!?"

 

 

"마지막으로 보는거야.."

 

 

"마지막이라니...."

 

 

"금방올게.먼저 자."

 

....

 

 

......이러면 안되는데.....자꾸만 불안해진다......

 

굳게 지키고 있던 믿음의 성벽이...

 

할아버지의 걱정스런 얼굴과 함께 조금씩 허물어간다..

 

 

...

 


하루가 이렇게 작아져 갈수록..

 

하루가 이렇게 멀어져 갈수록....

 

 

 

 

"야!!!!!!!강하루!!!!!!!!!!!"

 


"...."

 

 

"강하루!!!!!!!!!!!!!"

 

 

"왜..."

 

 

"너 오늘 무슨 날인지 아냐!!!!!"

 

 

 

자존심 상하게..

 

진짜로 쪽팔리게..

 

다른 여자 만나러 가는 남자친구 등 뒤에서..

 

염치 불구하고 던져 놓은 그말..

 

 


그러면 그 말을 형체도 알아볼수 없을만큼 산산조각 내며..

 

너무도 쉽게 터져나오는 하루의 한마디.

 

 

 

 

"윤영이 기일 전날."

 

 

".........."

 

 

"윤영이 죽은 전날."

 

 


"....그래....."

 


"....."

 

....

 

.......

 

 


거짓말이기를..

 


장난이기를..

 


지금이라도 얼른 고갤 돌려 '속았지!!' 하면서 웃어주기를..

 


몇번이고 몇백번이고 바래보지만...

 

....

 

 

그 천하의 무정한 놈은..

 

여전히 뒤 한번 돌아보지 않는 그 버릇을 간직한채..

 

아주 빠르게 시야에서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버렸고..

 

 

 

 

"하하..하하하...

 


...윤영이 죽은 전날이랜다..

 

 

하하하하..."

 

 


난 그뒤로..

 


맥없는 웃음과 함께 십분가량을 발코니 바닥위에 주저 앉아 있다가...

 

 


....

 

자꾸만 감겨오는 눈과 심장을 억지로 부릅뜬채 휑하니 열린 발코니 문을 바라보았다..

 

 

 

...

 


'♪♬♬♩♪♬♬♩♪♬♬♩♪♬♬♩'

 

 


그리고 그때..

 

왼쪽 호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은찬이 핸드폰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기 시작하니..

...

 

 

 

그냥 무시해버리려던 난..

 


...

 


뭔지 모를 예감에 사로잡혀 핸드폰을 꺼내들고..

 

 

 

 

'발신자 번호 표시 금지'

 

 

 

이내 액정위에 선명하게 뜨는 그 아홉 글자에..

 

더 망설일것도 없이 재빨리 그 뚜껑을 열어젖혔다.

 

 

 


"........"

 

 

"............"

 

 

 


잠시후..

 

그 작고 정없는 구멍 사이로 조그맣게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숨소리.

 

 


"......"

 

 

때문에 아무 대답없는 내가 마른침을 삼켜 버리면..

 

긴장한듯..조그만 헛기침을 몇번 내뱉다가...

 

 

너무도 우스꽝 스러운 목소리로...

 

그러니까 더욱 정확히 말하면..


알아 듣지 못하도록 헬륨 풍선 가스를 들어마신 목소리로...


상황에 걸맞지 않는 신나는 노래를 부르는 놈..

 

 

...

 


분명히 말하지만 년이 아닌 놈..

 

또 분명히 말하지만 외국에 나가 있는 놈..

 

더욱 분명히 말하지만 강브라더스의 셋째 놈..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한설의!!!생일 축하합니다.♬!!!!"

 

 

"........"

 

 

 

 

이거 진짜...바보아냐....

 

...이런 웃기는 목소리로 축하해주는게 어딨어...

 

그것도 12시 되기 딱 1분전에...

 

가스 마신 목소리로 노래해주는게 어딨어..

 

 

"진짜..너...바보..아니냐..."

 

 


"...."

 

 

 

"내 생일 아는거 강하루 강은찬 딱 둘 뿐인데..


번호 금지로 전화하면 내가 모를줄 알았냐..."

 

 

"생일엔..웃는거야....."

 

 

 

 

정곡을 찌르는 나의 말에..

 

여전히 우스꽝 스러운 웃음으로..

 

그러나 그것에 가려진 힘겨운 눈물로 멍청한 대답을 지껄여대는 강은찬..

 

 

 


"웃으라고..?"

 


"...그래..."

 


"그래.웃으마."

 

 

"...."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그래도 자꾸 우네..가스 마신 보람없게........."

 

 

"...거기..지낼만 하냐...?우리 안보고 싶어...?"

 


"...."

 

 


"강아지..그렇게 가는게 어딨냐.....


그렇게 치사하게 내빼는게 어딨냐................."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점점 멀어져가는 은찬이의 숨소리...

 

 

 


"강은찬...."

 


"...."

 

 

"보고싶다 임마.........................."

 

 

".........."

 

 

 

 

 

뚜.......뚜..........뚜...........뚜..............

 


..........

 

 


그렇게 전화는 끝이 나버렸다...

 

 


12시 되기 1분전 받은 생일 축하..

 

떠난지 16일만에 건네 받은 놈의 목소리..

 

또 한번 내 눈물을 쏟아버린 강은찬.....

 

 

 

 

그렇게.....

 

3월8일..윤영이 기일 전날 내 생일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헬륨 가스 축하송을 받으며..

 

메마르고 쓸쓸한 외톨이 인생을 위로해 주었다.


"설 학생 일어나봐!!!"

 

 

"..........."

 

 

"설 학생!!!벌써 해가 중천에 떴어!!!일어나봐!!!"

 


"보고싶다..임마....."

 

 

"설학생!!!!!!!!!!-0-!!!!!!!!!!'

 

 

 

\ D- DAY ZERO . 3월9일

 

 

 

 

 

귓청이 떨어져나갈것 같은 그 고함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키며 두 눈을 치켜 뜨면..

 

...

 

 

코트를 단단히 여며 입고서..

 


한심하다는듯 내 얼굴을 내려다보는 아줌마.

 

 


"아니 어떻게 된거야.왜 여적지 자구 있어!!!!!!!"

 

 

 

그러니까 어제...

 


새벽 5시까지 꺼이꺼이 울다가...

 

...하루놈이 언제 오나 하고 창문밖으로 내다 보다가...

 

 


"아침 7시에나 잠들었단 말입니다!!!"

 

 


"어휴..참..난 이제 가야돼..!!"

 

 

"네?어딜가요?"

 


"공휴일이니 나도 쉬러 가야지!!-0-"

 

 


"아..네....-_-..."

 

 


"어휴.아침부터 회장님은 집에 있는 식칼 치우고 밧줄 치우고 창문 꽁꽁 걸어잠그고..


아주 난리도 아니였는데..


설 학생은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하루한테 얼른 안가봐!!?"

 

 

"맞다!!!!!!그놈 들어 왔어요!!!!!!!!!!?"

 

 

 

"글쎄.아침 8시 되기 전에 어슬렁 어슬렁 들어왔어요.


마침 회장님이 방에 계셨기에 망정이지..으휴..


정말 이 집 인젠 넌덜머리가 나.."

 

 

 


어느덧 침대밑으로 폴짝 뛰어내려 고함 지르는 날 보며.

 

어깨를 움추린채 재빨리 방을 나가버리는 아주머니.

 

 

 


"내 이자식을 그냥..


아주 반 죽여 버려야지.."

 

 

그리고.

 

분명한 외박 현장을 잡아낸채..

 

두 소매를 걷어붙히고 하루 방으로 달려가는 나 한설.

 

 


"강하루!!!!!!이 자식아 너 나랑 얘기좀 하자!!!!!!!!!!!!!!"

 


...

 

.....

 

 

타닥.타닥.

 


얼마 되지도 않는 그 방과 방의 거리가 맹렬히 좁아지기 시작하면..

 

 

 


"강하루우!!!!!!!!!!!!!!!!!!"

 

 

 


난 그 우렁찬 외침과 함께 하루의 방문짝을 부숴져라 열어 젖혀 버렸는데...

 


...

 

 


"야...너...."

 

 

 


분명히 그래 버렸는데.............

 

 

 

 

 


\ 하루 방.

 

 

 


뭐야 이 자식....

 

이게 지금 나랑 뭐하자는 심판이야...?

 

 

 

"...."

 

 


"너 왠 정장이야..?어디 가..?"

 

 

"어.."

 

 

"어디 가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뭐!!?!!"

 


"...."

 

 


허이고 참나..

 


방구 낀 놈이 성낸다더니 이놈이 지금 딱 그꼴이로구만..-0-..

 

...

 

 

어이없는 심정이 되어 주둥이를 축 늘어트린채 놈을 바라보면..

 

건조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익숙하게 셔츠 단추를 채우는 강하루.

 

 

 

 

 

"야 새꺄!!!너 어제 세진이랑 아침 해 뜰때까지 뭐했냐!!?!"

 

 

"얘기."

 

 

"뭐!!?얘기!!!!!!!!?8시간이 다 되도록 무슨 얘기!!?니가 걔랑 그렇게 친했냐!!?"

 

 

"어제 본게 마지막이야."

 

 


"뭐어!!?"

 


"핸드폰 꼭 갖고 있어.이따 전화 한다."

 

 


....-0-.....

 


이제 아예 무슨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발라당 뒤집힌 눈을 제자리로 차근차근 돌려 놓으면....

 

어딘가에 홀린듯한 싸늘한 눈을 하고서..천천히 내 옆을 지나쳐 버리려는 하루.

 

 

 

 

"잠깐 강하루."

 

 

"...."

 

 


"나도 같이 가."

 

 


"안돼."

 

 

"왜 안돼?"

 

 

"혼자 가야 되니까."

 

 


"어딜 가는데?!?"

 

 


"이따 전화해서 말할게."

 

 


"나 니 여자친구 맞냐...?"

 

 

"...."

 

 

 

"어젠 내 생일이였어!!!!!!!!!!!근데 여자친구 생일날 그 남자친구가!!!!!!!!


밖에 나가 다른 여자랑 날밤 까고 오는게 말이 돼!!!!!?축하한단 인사는 못할망정 그게


잘하는 짓이야!!!!!!!!?


그리고 들어오기 무섭게 또 어딜 간다는거야!!!!!

 

행선지도 안말해주고 어딜가!!!!!!!!"

 

 

"알기 싫어도 알게 돼.."

 

 

 

"...너 윤영이라도 따라 가냐...?"

 

 


분명 내뱉어선 안되는 말이였지만...

 

입술 안까지 치밀어 올랐어도 억지로 구겨 삼켜야 하는 말이였지만...

 

이미 방을 반쯤 나가버린 하루를 보며..

 

난 해선 안될 그 말을 불쑥 내지껄여 버렸고...

 

 

....

 

 

그에 놈은..

 

 

....

 


가슴이 섬뜩할정도로 슬픈 눈으로..

 


차라리 화난 눈이였으면 몇백배는 더 좋았을걸..하는 슬픈 눈으로..

 

가만히 나를 돌아 보다가...

 

다시 방문 밖으로 시선을 떨구어 버렸다..

 

 

 

 


"..미안..."

 

 

"...."

 

 

"금방 와야돼...꼭 금방 와야돼....한시간 안에 꼭 와야돼.."

 

 

"......"

 

 

 

천천히..다시 또 멀어지고 있는 강하루..

 

멋진 수트 차림으로..형편없이 오그라든 날 버려둔채 작아져가는 강하루..

 

 

 

 

"믿는다..나는 너 믿는다....


다들 니가 윤영이 못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겉은 아니여도 속으론 날 윤영이 대리용품이라고 동정 하지만...


나만은 믿는다..

 

니가 어제 말했던 '사랑의 크기' 내가 큰쪽이라고 믿는다.....

 

너 금방 돌아와줄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텅빈 방안을 메우는 나의 혼잣말..

 

어느덧 답답한 습관이 되어버린 나의 혼잣말...

 

 


"좋아..한시간이라고 그랬어..

 

딱 한시간이다..일분 늦으면 머리통 한대씩 추가야.."

 

 


비참한 말이였지만..

 

분명 내가 생각해도 참 암담한 말이였지만..

 

지금 시간이 낮 3시9분임을 확인하며..

 

침대위로 가만히 몸을 뉘였다....

 

 


담으론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땐 하루가 분명히 다시 돌아와 있을거라는 기대를 품으며...

 

아니 확신을 품으며....

 

감기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눈을 억지로 감아 버렸다...

 


........

 

..........

그리고....뿌연 눈물과 함께 그애가 나타났다...

 

 

 

 

 

'설이야..설이야....'

 

 

'윤영이....?윤영아....?'

 

 

'미안해....미안해...미안해 설이야...'

 

 

'괜찮아..?거기 안추워..?바다라서 춥지 않아..!?'

 

 

'설이야....설이야...'

 

 

 

점점 가까워 오는 윤영이의 얼굴..

 

 

하얗게 질린...

 


때문에 더욱 선명히 보이는 두 눈...

 


...그렇게 점점 코 앞으로 가까워 오는 윤영이의 얼굴...

 

 

 


불에 일그러졌다가..

 


다시 새하얀 가루로 흩날렸다가..

 


다시 검붉게 타오르는 윤영이의 얼굴..

 

 

 

 


'윤영아...........근데 하루 지금 어딨어......'

 

 


'눈 떠......'

 

 

 

'하루 지금 어딨어...?'

 


'눈 떠....!!'

 

 


'하루 너한테 가고 있어...?그래 윤영아...?'

 

 


"눈 떠!!!!!!!!!!!!!!!!!!!!!!!!!!!!!!!!!!!!!!!"

 

 


"아아아아아아악!!!!!!!!!!!!!!!!!!!!"

 

 


....

........

 


하아...........

 

................하.............

 

 

.........하..............

 


....

 

 

턱밑으로 마구 떨어지는 땀방울들..

 


흥건히 젖어 축 늘어진 티셔츠와 머리카락..

 

 

 


분명히 들었어..

 

꿈이 아냐..

 

윤영이 목소리였어...

 


분명히..똑똑히..들렸어......

 

 

 


"하루야....강하루....."

 

 

 

아직도 온몸을 에워싼 소름에..

 

그리고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창밖의 하늘에..

 

...

 

 

그애의 이름을 부르며 억지로 공포를 떨치면..

 

베개 맡에 놓여져 있던 부재중 0 통의 전화기가 눈안에 들어오고..

 

 

 

 

"6시 반......"

 

 

 

난 액정에 보이는 그 숫자를 분명히 확인하며...

 


미친듯 떨려오는 손으로 1번버튼을 꾸욱 눌렀다...

 

 

 

 


"뚜르르르르르.뚜르르르르르르.뚜르르르르르.뚜르르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뚜르르르르르르.'

 

 

 

그리고...

 


하루의 목소리 대신 귓가 가득 울려퍼지는 그 연결음에..

 

작은 욕설과 함께 마지막 땀방울을 흘려낼때..

 

 

 


"어..."

 


...

 


분명 수화기 건너편에서..

 

그 지긋지긋한 연결음이 끝나고..

 

귀에 익숙한..

 

이 순간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

 

하루의 그 짧고 낮은 저음이 떨어지는 내 땀방울을 바싹 말려버리고 말았다.

 

 

 


"강하루!!!!!!!!!!!!!!!!!!"

 

 

"응..미안..많이 기다렸지.."

 

 

"어디야!!!!!!!!!!!!!!!!!!!!!"

 

 


"벌써 6시가 넘었네..........."

 

 


"대체 어디야 이 자식아!!!!!!!!!!!!!"

 

 

"...."

 

 


"내가 지금 갈게..내가 지금 갈게!!!!!!!!너 오기 힘들면 내가 갈게!!!!!!!!!


거기 꼼짝 말고 있어 알았지 하루야!!!!!?응?!?!


꼼짝도 하지 말고 있어!!!!!!!!!!!"

 

 


"이따가.........."

 

 


"뭐!!!!!!!!?'

 

 


"좀 이따가...................."

 

 


"대체 어딘데!!!!!!!!!너 왜 이러는건데!!!!!!!!!!!!!!"

 

 

 


분명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이번엔 땀대신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어둠에 파묻힌 고함을 내지르면..

 

아주 조금 느껴져 오는 미소짓는 놈의 얼굴..

 

 


보이진 않지만..들리지도 않지만..

 

적막한 공기 속에서 분명히 전해져오는 미소짓는 하루의 얼굴..

 

 

 


"이따가..설이야..이따가......"

 

 

"사랑해!!!!!!!!!!!!!!!!!!!!"

 


"........"

 

 

"강하루 사랑해!!!!!!!!!!!진심이야!!!!!!!!!!!이게 내 진짜야!!!!!!!!!!!!!"

 

 

"나도..."

 

 

"하루야..거기 가만 있어..내가 갈게..


응..?내가 갈게..꼼짝 하지 말고..누가 말걸어도 대답하지 말고.."

 

 

"나도 사랑해.."

 

 

 


근데 왜 그렇게 목소리가 아파...

 


근데 왜 그렇게 목소리가 슬퍼!!!!!!!!!!!!!!!

 

 

 

 

"지금 전화 온다...."

 

 


"강하루!!!!!!!!!!!!!!!"

 

 

"내가 다시 전화 걸게........"

 

 


"제발!!!!!!!!!!!!!제발!!!!!!!!!!!!!"

 

 


"사랑한다고 해줘서..고맙다....."

 

 


"하루!!!!!!!!!!!"

 

 

 

'뚜뚜뚜'

 

 

 

놈의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

 

그 목소리 대신 통화 대기 음이 울려퍼지면...

 

난 침대위에서 흐느껴대며 핸드폰을 바닥으로 떨구었고...

 

 

....

 

 


불안해왔다..

 

이러면 이럴수록 더욱 불안이 엄습해 왔다..

 

 

 

 

"하..아냐..침착해...아무일 없어...

 

아무일 없어..나 왜이래..평소랑 똑같아..평소랑..똑같다고..."

 

 

 

자...일단...

 

잠깐..방에 불을 밝히고...

 


..........

 

 

 


'투둑..투둑...'

 

 

 


언제부터..비가 내렸던거지....................

 

.......

 


전등 스위치에 손을 가져댄채..

 

낯선 그 불청객의 웃음소리에 재빨리 고개를 돌리면..

 

분명 창밖으론 가는 빗줄기가 하나둘씩 쏟아져 내리는 중이였고...

 


...

 

 

 


"...."

 

 

 

난 낮은 숨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구어져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어..

 

망설일 틈 없이 재빨리 단축 다이얼 2번을 꾸욱 눌러 버렸다..

 

 

 

 


"여보세요!!"

 

 

 

그러면..

 

마침 기다렸다는듯..

 

한번의 신호가 가기도 전..다급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차분히 진정 시켜 주었다.

 

 

 

 

 


"설아!!?하루는!!"

 

 


"할아버지..."

 

 

"하루랑 같이 있니?지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하루가 안와요 할아버지..."

 

 

"뭐!!?"

 

 


"하루가 벌써 3시간 전에 나가서 안와요...


어딘지 말도 안해요....말투도 이상해요............


하루가 이상해요 할아버지..이상해요...."

 

 

"침착해.침착해라..설아..침착해...."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할아버지 역시 나 이상으로 목소리를 떨고 계셨고...

 

 


...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내가 수십번째의 눈물방울을 삼켜냈을때...


그는 다시 진정된 목소리로 입을 열면서 내 눈물을 달래주셨다.

 

 

 

 

 

"자..할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해보마...


아무일 없을거다..아무일 없을거야......


걱정하지 말고 있어라..알겠지...?"

 

 

"네....."

 

 

"좋아.그럼.오분후에 다시 통화하자.."

 

 


"네..."

 

 

 

딸칵..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급히 전화를 끊어버리시는 할아버지..

 


...

 

 

아니야..


아무일 없어..


하루 아무일 없어.....


난 그애도 믿고.윤영이도 믿어.


둘다 그럴 사람 아냐..


떠날 사람도 아니고..데려갈 사람도 아니야...

 


...

 

 


"월월!!월월월!!!-0-"

 

 


어느새 내 방에 들어온 서리가 창밖의 빗방울을 바라보며 마구 짖어대면..


난 안절부절 못하며 은찬이 핸드폰을 꾹 움켜쥔채 방안을 횡보하기 시작했고..


그때 마침 아주 작은 줄만 알았던 그 핸드폰의 노래가 요란스레 울려대니...

 

 

 


"여보세요!!!!!!!"

 

 

"....설이..야..."

 

 

건너편에서 생생히 들려오는 숨가쁜 할아버지의 목소리.

 

 

 


"하루가 뭐래요!!!!!!!!?"

 

 

"꺼져있어..."

 


"네...?"

 

 


"전원이 꺼져있어....."

 

 


"말도 안돼요!!십분전만 해도 켜져 있었는데!!!!!!!제가 다시 해볼게요 할아버지!!!!!!!!!"

 

 


"경찰에 다 연락해두었다...."

 

 

"경찰엔 왜요!!!!!!!!"

 


"서울 근교.경기도 일대.인천..."

 

 


"...."

 

 


"마지막으로 충주.. "

 

 

"할아버지....................."

 

 


"혹시 집으로 가는 중일지 모르니..넌 꼼짝말고 집에 있어라.."

 

 


"숨 막혀요...."

 

 


"나도..숨이 막히는구나..."

 

 

.....

 


.......딸칵........

 

 

그 아무 의미 없는 두마디를 끝으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면..

 

난 마구 짖어대는 서리를 품안에 안으며..

 

한손으론 다시 1번키를 꾸욱 눌렀고..

 

 

 

 


"서리야...짖지 마...아무일 없어...

 

니네 주인님 아무일 없어...지금 집으로 오는 중이야...

 

...집에 거의 다 오는 중이야...그러니까 그만 짖어...그만 울어...."

 

 

빗소리에 파묻혀가는 그 중얼거림과 함께..

 


'현재 고객님의 전화기 스위치가 꺼져 있사오니..'

 

귀속으로 생생히 스며드는 안내원의 목소리에..

 


다시 또 일번 버튼을 누르고..

 

또 다시 일번 버튼을 누르고...

 


누르고..누르고.....

....

 

 


가늘고 힘없던 빗줄기가 요란한 번개를 등에 업고 와서

 

의기양양히 날 비웃어줄때까지 다시 또 누르고..

 

 

 

 

그렇게 수백번도 넘게 1번버튼을 누르며..

 

마지막까지 놈을 믿었다..

 

그 순간까지 놈을 믿었다..

 

 

돌아올거라고..

 

윤영이가 아니라 나일거라고..

 

분명 놈은 마지막 통화해서 날 사랑한다 말해주었다고..

 


믿고..누르고..

 

...누르고...믿고...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힘든 믿음을 지켜나갔다....

 

 

 

 


'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뻐꾹.'

 

 

 

그리고....

 

......

 


1층에 있던 뻐꾸기 시계가..이 순간만큼은 고장나 닥쳐주길 바랬던 뻐꾸기 시계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오후 8시를 노래했을때...

 


...

 

 


난 안내원의 음성이 흘러나오는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댄채..

 

한손엔 서리를 안고..

 

조용히 그 어두컴컴한 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거센 비바람은 점점 집 전체를 둥글게 에워 쌓는데...

 

서리의 울부짖음도 점점 더 커져가는데..

 

안내원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하게 작아져가는데...

 

나의 믿음도 점점 밑바닥을 향하여 가라앉아 가는데....

 


....

 

 

'나도 사랑해...'

 

라는 그 한마디에 나의 모든것을 걸고서..

 

천천히 계단을 내려...

 

다음으론 서리의 눈조차 구분할수 없는 어두운 거실을 지나...

 

제일 구석에 자리한 할아버지의 방문을 망설임없이 열어 젖혔다..

 

 

.....


...........

 

 

"강하루..난 있잖냐..

 

사람 믿는거 잘 못한다..그런거 정말 잘 못해...

 

하도 뒷통수를 많이 맞아봐서..그리고 사랑 받아본적이 거의 없어서...

 

누군갈 믿는게 너무 힘들어....

 

수학 문제보다도...친구 사귀는것보다도..몇배는..아니 몇천배는 더 어려워..."

 

 

 

...근데..

 

나 넌 믿을래...

 

다른건 다 때려치우고 너만은 믿을래.....

 

윤영이가 아니라 나라고...

 

난 대리용품이 아니라 니가 사랑하는 행복한 한 여자 뿐이라고..

 

그렇게 굳게 믿을래...

 

믿는게 힘들어지면 그땐 악으로 버틸래...

 

깡으로 버티고.......그것도 안되면 온몸으로 막을래......

 


...

 


왜 였을까...

 


빗방울도 훔쳐 듣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놓은 그 말들을 되뇌이며...

 

내가 할아버지 방에 있던 앨범을 꺼내놓은건.

 


그리고 하필 그 앨범중에서..

 

윤영이의 독사진을 꺼내 눈앞에 펼쳐 놓은건 왜 였을까..

 

 

 

 

 

애원하려고..?..이렇게...

 

부탁하려고.....?....이렇게.....

 

매달리려고......?.....이렇게.......

 

 

 

"윤영아...박윤영......."

 

 

 

아는걸까...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졌는지 알긴 하는걸까...

 

 


"......"

 

 

산뜻한 교복을 차려 입고..

 

날 향해 싱긋 웃고 있는 윤영이의 얼굴..

 

그리고 그 옆엔 늘 그래왔듯 하루..

 


괜히 딴청 피는척 하며 윤영이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고 있는 하루..

 

 

 


"니 옆에 있는 놈 말야....

 

이젠 내 옆에 있거든....지금은 내 옆에서 이렇게 웃고 있거든....."

 

 

....

 

.....

 

 


"나 이놈 좋아해..좀 많이 좋아해...


너한테도 뺏길수 없을만큼..그렇게 좀 많이 좋아해..."

 

 

....

 

.......

 


창밖의 번개소리가 점점 비웃듯 창문을 두드려오면...

 

그에 덩달아 작은 빗방울마저 유리창에 딱 달라붙어 유심히 나를 바라보고...

 

 

 

 

"하루 무사히 돌려 보내줄거지....


..........내 믿음.........그대로 지켜줄거지......"

 

 

 

난 그 마지막 말을 되뇌이며...

 


힘없이 웃고 있는 윤영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탁'

 

 

 

유일히 불을 밝혀놓았던 할아버지의 방에 어둠이 찾아오면서..

 

비바람 소리가 더욱 거세어 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사진 한장이 바닥으로 흩어져 내렸다..

 

 


"월월!!!!!!!!!!월월월월!!!!!!!!!!!!!!월월월월월월월!!!!!월월!!!!!!!!"

 

 


"착하지..서리야...가만있어라...


별거 아냐...번개 때문에 정전 된거라구..."

 

 


"월월월월!!!!!!!월월월월!!!!!!!!!!!!!!"

 

 

 

심장이 철렁 내려 앉을만큼..

 

바닥에 떨어진 윤영이 사진을 향해 맹렬히 짖어대는 서리..

 

 

 

"어두워서 무서워..?


기다려봐..내가 불 밝혀줄게...."

 

 


어디 보자...

 

일단 핸드폰 불로 방안을 밝힌 다음에...

 


....

 

......

 

 

금방이라도 거품을 물고 넘어갈듯 짖어대는 서리 때문에.

 

난 일단 한손에 꼭 쥐고 있었던 핸드폰 뚜껑을 열어 제꼈고...

 

 

...

 

다음으론..

 

그 불빛이 비춰주는 바닥의 윤영이 사진을 향해 손을 뻗는데...

 

...

 

그랬는데...

 

 

 

"................."

 

 


울어...?

 


...윤영아....

 


너.......울........어....?

 

 

 

'따르릉..♪'

 

 

 

뼈속까지 오그라붙을만한 윤영이의 창백해진 얼굴과 함께..

 

...

 

핸드폰에서 조그맣게 울려오는 문자 도착음..

 


...

 


분명 하루일거란 생각에..

 

난 윤영이 사진에서 거둔 떨리는 시선을 다시 핸드폰 액정에 고정 시켰고..

 

 

...

 

 

"하.......살았다......"

 

 

 


011-9535-8......

 

 

분명 이건 하루 번호....

 

분명 이건 하루가 보낸 메세지....

 

 

"고마워...고마워 윤영아...고마워..."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문자 메세지의 확인 버튼을 누르면..

 


....

 

 

 

"월월월!!!!!!!!!!!!!!!!!!!월월월월!!!!!!!!!!!!!!!!!!!!!!!!!!!!!!"

 

 

 

 

 


서리의 울부짖음이 창문을 깨부술듯 부풀어 오르고...

 

...

 

......

 


난 그 울부짖음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비명을 스스로 짓이겨야 했으니.....

 

 

 

.....

 

 


거짓말.....

 


...거짓말....강하루....

 


돌아올거라고 했잖아.....

 


아무일 없을거라고 했잖아.......

 


...우주가 다 터져도...윤영이가 살아 돌아와도...

 

 

....

 

 

 

 

 


'오늘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오기 위했던 이용 도구.


미안해.너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줄 말은 단지 이 세글자 뿐이다.


미안해..'

 

 


.....


..................

 

 


나만 사랑한다고 했잖아...........

 

 

 

"왜 하필 우리 차냔 말이요!!!!!!!!!!!!!!!!!!

 

아니 자살을 하려거든 혼자 얌전히 하지!!!!!!!!!!!!왜 하필 우리 차냐고!!!!!!!!!"

 

 

 


"여보..그만해요..제발 그만해요.."

 

 

 

"하마터면 우리까지 죽을뻔 했잖아!!!!!!!!"

 

 

 

"여보!!!!!!!!"

 

 


....

.........

 

 

 

 

머리속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느낌..

 

물속에 깊숙히 잠겨 숨막혀 죽을것만 같은 느낌..

 

허공에 두 눈만 덩그라니 남은채 미친듯이 울부짖는 느낌..

 

 

 


아무것도 안보여..아무것도 안들려..


아무것도 생각 못하겠어....

 

 

 

 


\ 충주 병원.

 

 

 

 


"젠장할...정말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야.."

 

 

 

 

눈물로 뒤범벅된 여자를 품에 안으며..

 

중얼중얼..작은 욕설과 함께 우리를 노려보는 남자..

 

 

 

 

"하루야....하루야...."

 

 


그리고.

 


벌써 몇백번째 그 잔인한 이름 하나를 되풀이하면서..

 


초점풀린 눈으로 응급실문을 응시하는 할아버지..

 

 

 

 

"나쁜놈...모진놈.....이 나쁜놈....."

 

 

 

 


"하..낌새가 이상하면 내보내질 말았어야지!!

 

사는데가 서울이래매!!!!!근데 충주 이 먼데까지 내려 오도록 그냥 방치해둬요!!?"

 

 

 

 


그렇게 계속되는 남자의 고함에..

 


힘풀려 의자위에 앉아있던 오렌지족이 발끈하여 고개를 쳐들면..

 


그에 앞서 마녀가 재빨리 남자의 눈앞을 막아서버렸고..

 

 

 

 


그래..

 

벌써 두시간 전에 이곳에 도착했다..


우리 네사람..


크기는 달라도 모양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우리 네사람..

 

 

 

 

할아버지..마녀..오렌지족...

 

도착하기 일보 직전까지 사실이 아니라며 울부짖었던 나 한설..

 

이 네사람이..벌써 두시간도 전에 이곳 충주 병원에 도착해버렸다.

 

 

....

 

 

"..."

 

 

 

잠시후.

 

귓속으로 멍하니 마녀의 목소리가 새어 오기 시작할때..

 

난 굳게 닫힌 응급실 문을 바라보면서 복도위로 거칠게 주저 앉아 버렸고..

 

 

 

 


"소송이라도 걸어 돈이라도 몇푼 챙기고 싶은건가?"

 

 

 

그에 마녀는..

 

이번엔 좀더 분명하고 똑똑한 어조로..

 

흥분한 남자의 얼굴을 단번에 일그러 트리고 말았다.

 

 

 

 

"뭐..뭐요..!!?이 여자가 진짜!!!!"

 

 

 

"당신 입에서 '이여자' 란 대접 받을만큼 나 만만한 사람 아닌데.^-^"

 

 

 

"어처구니가 없구만...!!!"

 

 


"어처구니가 없는건 이쪽이야."

 

 


"하..나 이거 원.."

 

 

 

"애 신경쓰기도 힘드니 소란 그만 떨고 이만 가줬으면 하는데."

 

 


"..."

 

 

 

"아님.돈 뜯어낼 구실이 사라질까봐 아쉬워?"

 

 


"우리 차 앞으로 갑자기 뛰어 들었다고!!!!!!!!유리창이 박살나 버렸단 말이야!!!!!!!!"

 

 

 


....

 

 


......두근....두근.....

 


악에 받친 남자의 고함에....

 


몇시간째 기절중이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도로변에서 갑자기 달려와 차 앞으로 뛰어 들었단 말이야!!!!!!!!!!!

 

핸들을 조금만 늦게 꺾었어도 차가 완전히 뒤집힐뻔 했다구!!!!!!!!!!!!!"

 

 

 


"결국 이렇게 소리칠만큼 멀쩡하면 된거 아니야?"

 

 

 


"이 여자가 진짜!!!!!!!!!!!!!!"

 

 

 


"여보!!!!!그만 가요!!!!!!!!우리까지 안 이래도 충분히 이 사람들 벅찰꺼라구!!!!!!"

 

 

 

....

 

 

.....벅차요.....?


단지 그래 보여요.....?


단지 그냥 우리가....버겁고 숨차 보여요....?


당신들 눈에는...그게 전부 인것 같아요......?

 

 

 

 


"에이.젠장할.진짜 별 재수가 다 없으려니까.."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을 하라구.구걸 정도야 해줄수 있으니까.^-^"

 

 


"뭐야!!!!!!!!!!!!!!이 여자가 정말 죽고 싶나!!!!!!!!"

 

 

 


"여보!!!!!!!!"

 

 

 

개판...

 

모든게 개판이다...

 


.....

 

 

 

남자를 질질 끌고 계단으로 사라지는 여자..

 

그 여자에게 끌려가며 끊임없는 욕설을 퍼붓는 남자..

 

 

 

...씁쓸한 미소를 짓는 마녀...

 

소리없이 흐느끼는 오렌지 족...

 

나만큼이나 정신이 나가버린 할아버지...

 

 


개판..개판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게 다 개판이다..

 

 

 

 

"흠..그래요..저..."

 


...

 

.....

 

 

 

그때.

 

머리위로 들려온 침착한 여자의 목소리에..

 

힘없는 숨을 헐떡이던 우리 네사람이 재빨리 고개를 들면..

 

 

 

 

"일단...다들 너무 낙심 하지 마시구요..."

 

 

 

 

흰 가운을 입은 여 의사 한명이..

 

볼펜을 입에 물며 안쓰러운듯 할아버지의 눈물을 올려보는 중이었고..

 

 

 


"어떻게 됩니까...."

 

 


...

 

......

 

 

 


한마디 말도 할수 없게 된 내가...

 

멍청히 여의사를 응시하는 사이..

 


할아버진 가까스로 쥐어짜낸 그 한마디로 모든이의 심정을 대신하셨다.

 

 

 

 

 

"......"

 

 


"우리 아들...어떻게 됩니까..."

 

 

"....."

 

 


"어떻게 되지요...죽습니까...우리 아들이 죽습니까..."

 

 

"아니요."

 

 

 


자신있는 그 목소리에..

 

우리 모두가 한가닥 희망을 발견한 심정으로 가슴을 졸이고..

 

 

 


"허나 정상 생활은 힘들것 같습니다."

 

 

 

 

다시 이어지는 그 차분한 목소리로..


또 한번 우리의 머리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여 의사.

 

 

 

 

"그게..무슨..."

 

 

 

"아직 확실한걸 알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그러니까...몸이..불구가 된다거나..아니면.."

 

 


"몸이 아니라 머리요."

 

 


"........"

 

 


"하필이면 뇌가.."

 

 


"......그럼...그러면...."

 

 

"보호자분 되시죠."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잠깐 얘기좀 나눌수 있을까요.."

 

 

 

"....."

 

 


끄덕끄덕...

 


....

 

 


넋나간 눈을 한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의사의 뒤를 따른다..

 

 

 

'몸이 아니라 머리요'

 

라는 말에..

 

내가 꿈쩍없이 굳어버린 사이..

 

그는 비틀거리며 복도 끝으로 멀어져 간다..

 

 

 

 


"휴...."

 

 

 

그러면..

 

다시 또 마녀의 깊은 한숨이 메아리 쳐 들려온다..

 

 


내 눈물을 펌프질 하면서..


내 구역질을 부추기면서...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니"

 

 

 

 

 

 

\ 병원 앞.

 

 

 

"....."

 

 

 


"진작 떠나라고 했을때 들었어야지..


아니면 확실히 그애를 잡았어야지..."

 

 


"...."

 

 

 


"두가지 다 못했구나.결국 두 가지 다 놓치고 말았어.."

 

 

 

 

대답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원망스러운 듯한 마녀의 그 말에..분명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쥐어 짜내도..소리 쳐봐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이미 애 아빠랑은 남남이 되었으니까..

 

내가 이러쿵 저러쿵 참견할 처지는 아니지만..."

 

 


"..으..."

 

 

 

"박윤영이라는 그애.만약 살아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으..으.."

 

 


"가여운것.."

 

 


"...."

 

 

"진작에 내 말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으으..."

 

 

 

"그래도 그렇지..1년전 사고난 바로 그 지점에서..


똑같은 날짜..똑같은 시각에 뛰어든건 정말 섬뜩해..."

 

 


"......"

 

 


"정말....


....끔찍해."

 

 

 


"우으....우으으....으으으............."

 

 

 

 


....

........

 

 


뒤이어..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나를 남겨두고..

 


눈물과 입을 틀어 막은 마녀가 주차장쪽으로 빠르게 멀어져갔다..

 

 

 


"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으..흐....으....."

 

 

 

마녀 말대로 섬뜩하고..끔찍한 울음 소리다...

 

....

 


사람 하나 없는 칠흙같은 어둠을 가늘게 흔들며..

 


비로소 터져나온 나의 짓눌린 눈물 소리다..

 

 

 

 


"♬♬♪♬♩♬♪♬♩♪♬♩♬♪♬♩"

 

 

 


그리고.

 

그때 분명 오른쪽 호주머니 안에선..

 

집을 뛰쳐나올때 함께 딸려온 핸드폰이 요란스레 울리고 있었지만..

 

난 그보다 몇만배는 더 거대한 울음으로 힘없는 그 노래를 차곡차곡 묻어 놓을 뿐이였고...

 

 

 

 

 

""♬♬♪♬♩♬♪♬♩♪♬♩♬♪♬♩


♩♪♬♩♬♪♬♩"

 

 

 

그 노래가 스무번쯤 더 반복되어 울려 퍼졌을때..

 

 


이젠 노래가 아닌 전화를 거는 사람의 애타는 음성에 가까워졌을때..

 

 

 


놈이라는 생각에...

 

이건 분명히 놈이라는 생각에...

 

 


...

 


"하아...하아악...."

 

 

 

발악하는 눈물을 입밖으로 토해내며...


천천히 그 잔혹한 기계를 오른쪽 귓가에 가져대었다..

 

 

 

 

 

그러니까...

 

....

 


.......단 한마디도 내뱉게 될수 없게 된 빌어먹을 엿같은 상황이였다.....

 

 

 

"......."

 

 


"야.집에 무슨 일 있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놈'의 애써 포장한 명랑한 목소리.

 

 

 

 


"........................"

 

 

 

"첫째형한테 전화 왔었는데..말은 안하고 질질 짜대길래..."

 

 

"......"

 

 

 

"그러니까 전화 안하려고 했는데 뭔가 좀 이상해서....


젠장..그래..


그래...미안하다.....그래도 이러면 안되는데..."

 


...

 

...........

 

 

 

점점 작아지는 은찬이의 목소리..


그리고 점점 입술을 비집으려 꿈틀거리는 나의 목소리..

 

 

 

....

 

 

 


"잘 지내라."

 

 


"...."

 

 

 

"끊는다."

 

 


"왜......"

 

 

 


이상하지...

 

참 이상하지...

 

 


그렇게 나오길 거부했던 목소리가...

 

단 한글자도 양보하길 거부했던 목소리가...

 

새빨간 거짓말처럼 정말 터져 나와 버렸다...

 

 

 


방금전 바닥위로 토해낸 수많은 눈물처럼....

 

은찬일 앞에 두곤 대책없이 삐져 나와 버렸다..

 

 

 

 

 

 

"야....너 지금 우냐....?"

 

 


"...."

 

 

 


'왜' 라는 그 한마디에..


다시 핸드폰 너머로 바짝 붙어버린 놈의 목소리.

 

 

 

 

 


"왜..........."

 

 

 

 

"한설!!!!!!!!!!너 우냐!!!!!!!!!!!!!!?!"

 

 


"왜......내 사랑만 맨날 죽여요..................................


왜..........내 행복만 맨날 죽여요.................."

 

 


"........................"

 

 

 

 

"그게 내 운명이면 차라리 날 죽이지................"

 

 


"왠 헛소리야 병신아!!!!!!!!!!!!!!!!!!!!!너 진짜 죽을래!!!!!!!!!!!!!!!"

 

 

 

 

"하나..하나..왜..그렇게 하나..하나 다 뺏어가요.......


난 그럼 언제 행복한가요........죽어야만 행복해지나요.....


아니...죽으면 행복해질수 있긴 한가요........"

 

 

 


"내가 지금 갈게......!!!!!!!!!!!!!!"

 

 

 

 


"내 소원이 그렇게 거창한건 아니였는데.........

 

그렇게 어려운건 아니였는데............................"

 

 

 


"니 소원 내가 평생 들어 주면서 살면 되잖아!!!!!!!!!!!!!!!!"

 

 

 

"앞에서 사람 숨소리 들려주는거.........


그거 딱 하나였는데....................."

 

 

 

"좀 걸린다...내일 저녁이야 되야 도착할거야...


그러니까 기다려....어...?기다려...기다려 설이야...


너 숨막혀 뒤지게 내 숨소리 들려줄테니까 거기서 기다려!!!!!!!!!!!"

 

 

 

 

"무서워.................................


지는거 같아서..........이 말하면 영원히 인정해 버리는거 같아서................


몇년동안 참았는데...........몇년동안 한번도 말한적 없는데....."

 

 

 

 

"멍청아..!!!내 말 들려.......?!!!!!


내 말 듣고 있어........?!!!!"

 

 

 


"너무너무...무서워...


이렇게 혼자 있는게 너무 무서워.....


또 혼자 남는게 너무 무서워......"

 

 

 

 

"내가 지킬거야!!!!!1!!!!!!!!!!!!!!!


내가 너 죽을때까지 데리고 살거야!!!!!!!!!


니가 저주 받은 운명이면 나도 같이 받고...니가 평생 울어야 할 운명이면


나도 같이 울거야...!!!!!!!그러니까 제발 마지막으로 한번만 믿어!!!!!!!!!!!!!!"

 

 

 


"............거짓말..............."

 

 

 

 

"한설!!!!!!!!!!!!!!!!!!!!!!!!!!!!!!"

 

 

 

"또 거짓말...................................."

 

 

 

한설!!!!!!!!!!!!!!!!!

 

한설!!!!!!!!!!!!!!!!!!!!!!!!

 

 

 


절규가 되어버린 은찬이의 고함소리..

 

 

그게 끝이였다...

 

울음에 묻힌 그 이름을 멍하니 흘리며...

 

난 마치 기계와 흡사한 동작으로 핸드폰을 접어 주머니 안에 구겨 놓았다...

 

 

 

...

 

 


물론 울렸지만..

 

 

 

그 뒤로도...

 


내가 그 끔찍한 장소를 벗어날때도...


뒤 한번 돌아 보지 않고 정신없이 내 달렸을때도..

 

핸드폰 벨소리는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미친듯 울렸지만...

 

 

 

 

 


"아니.....난 받지 않았다....................."

 

 

 


희미해진 목소리로 중얼댄 그 한마디처럼...

 

...받지 않았다...

 

 

믿지 않았다...

 

더이상....

 

운명을 거스르는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야....너 왜이래........................


.........설이야...................설이야............


.......설이야!!!!!!!!!!!!!!!!!!!!!"

 

 


.....

..........

 

 

 


바닥위로 기다시피 하여 찾았던 은색빛의 녹슨 문앞에 도착할때까지...

 

그녀의 고함이 내 옷에 묻은 구토와 눈물들을 발견하기 전까지....

 

 

 

 


".........또..............

 


거,.............짓...................말.............."

 

 

 

 


악착같이 날 이곳까지 부축해온 그 한마디로 의식의 끈을 놓아 버릴 때까지.....................

 

이제 천천히 눈을 뜨면 말야..모든게 다 꿈이였던 거야...

 

여전히 거지라도 상관없으니까...

 


여전히 혼자라도 상관없으니까...

 

 

...

 

 


은찬이와 하루..그리고 윤영인..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던 끔찍한 악몽 이였던 거야...

 

 

그래서 지금 난 신문지를 덮어쓴채 지하철역에서 벌벌 떨며 자는 중이고....

 


눈을 뜨면 다시 그 거지 일상으로 돌아가는거야.....

 

 

 

 

무시 받는 외톨이 인생..


구걸 하는 외톨이 인생...


혼자 남은 외톨이 인생...

 

 

 

그치만 그 꿈처럼 끔찍하지 않은...

 

그 꿈처럼 소름돋지 않은..

 

그 꿈처럼 죽고 싶지 않은...

 

원래 내 일상에 익숙히 박혀 있던 외톨이 인생으로 돌아가는거야...

 

 

 

 

자....추워도 정신 차리고 귀를 좀 기울여봐...

 

 


이제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보면서 수근거리기 시작할거야...

 

그럼 그 목소리에 부스스 눈을 뜨는거지....

 

알겠지..한설...

 

 

 

아무렇지 않은듯 기지개를 펴며..

 

'아 정말 기분 드러운 꿈이네' 하고서 하루를 시작하는거다....

 

 

.....

 

 

 

한번 스치고 말 따뜻하고 동정심 많은 행인의 그 한마디에.....

 

자명종 시계 대신 늘상 들어 왔던 그 한마디에.....

 

악몽을 단번에 부숴뜨려 주는 그.......한마디에.......

 

 

 

 

 


"춥지 않아...............................?"

 

 

 

 

 

 


\ 3.10.PM 9:01분

 

 

 

 


"......."

 

 


"왜 이렇게 몸을 덜덜 떠는거야....

 

후..미치....


....어....!!!?정신 좀 들어!!!!!?"

 

 

 

가물가물...

 


눈앞에서 점점 선명해지는 나나언니의 얼굴...

 


...

 


.....그래.....

 


꿈이 아니다........

 


그건 결코 한밤의 꿈으로 조용히 물러날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후...한설...정신 드냐..!!"

 

 

"..언..니..."

 

 

"빌어먹을.................."

 

 


힘겹게 내뱉은 그 한마디에..

 


나나언닌 고개를 돌려 눈물을 떨구어 내고..

 

...

 


난 악착같이 침대위로 몸을 일으키며...허옇게 말라붙은 입술을 다시 한번 떼내었다.

 

 


"꿈이 아니면..."

 


"..."

 


"내가 가야해..."

 


"뭐..?"

 


"내가 떠나야 돼..."

 

 

"...."

 

 

"맞아..돈빌리러 왔었어...언니한테 돈 빌리러....


나 떠나야 돼...나 여기 있으면 안돼..."

 

 


"제발..몸부터 뉘여...."

 

 


"아니.지금 누우면 평생 누워.


나 갈거야..아니 가야만 돼..."

 

 


눈물을 쓸어 닦으며.

 

언니가 다시 날 침대위로 눕히려 하면..

 

난 머리맡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주워들곤 거칠게 그녀의 두 손을 뿌리쳤고...

 


..

 

 

이내 성큼성큼..

 

한숨을 내뱉는 언닐 내버려두고 현관문을 향해 걸어 나갈때..

 

..

 

 


"다 들었어."

 

 

 

그녀의 지칠대로 지친 메마른 목소리가 내 뒷통수를 세게 걷어 차버렸다.

 

 

 

 


"...뭘..."

 

 

"전화 계속 왔었다.할아버지한테.."

 

 

".....다....말씀하셔....?"

 

 

"그래.."

 

 

"...."

 

 


"같이 가자."

 

 


"하루는....?"

 

 


"야..지금 니가 그 새끼 걱정할 때야!!?"

 

 


"하루는!!!!!!!!!!!"

 


....

 

........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그 거친 고함..

 

 

 


"...."

 

 

그리고..

 

싸늘하게 내려앉은 나나언니의 깊고 큰 두 눈동자.

 

 

 

 

"아직 의식은 안돌아왔대."

 

 

"...생명은..."

 

 


"죽을일은 없을거래"

 

 


"............후..........."

 

 

 

 

뭘까...

 


상당히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안도의 한숨은....

 

뒤늦게 후회해봐도 이미 저질러버린 상당히 멍청한 짓이였다...

 

 

 

 

 


"같이 가자."

 

 


"...어딜...."

 

 

"같이 떠나자.이 지긋지긋하고 사람 북적대는 서울."

 

 

 

"언니가 왜..언니가 왜 떠나..."

 

 

 

"친구 벌써 한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어"

 

 

 

"친구..라니...?"

 

 


자꾸만 터져나오는 그 의심투성이 말들에..

 

잠시 걸음을 멈춘뒤 언니를 돌아보면..

 

 


"끙차!!"

 

 


상황에 걸맞지 않는 씩씩한 목소리와 함께..

 

침대 밑에 놓여 있던 큰 가방을 짊어매는 나나언니.

 

 

 

 

 

"뭐야...그게..."

 

 

 

"보면 모르냐.짐이잖아.짐."

 

 


"언니."

 

 


"어.동생."

 

 


"내 옆에 오지마.내 귀한테 숨소리 들려주지마."

 

 


"....."

 

 


"그럼 둘다 또 짓밟혀.

 

귓속에 사람 숨소리 들려오는 순간..

 

내 운명은 무참히 다시 돌아서서 우릴 짓밟아버려..."

 

 

 

"그래?그럼 이번 기회에 그 싹수노란 새끼 얼굴좀 보면 되겠네.."

 

 

 

"난 혼자가 더 편해.옆에 누구 있으면 걸리적 거려.


내가 싫어.이젠 내쪽에서 사양할거야."

 

 

 


"역시.여자는 튕겨야 제 맛이라니까는^-^"

 

 


"...."

 

 


후우...

 

...

 

 

 

말이 통하지 않음에..문고릴 부여잡고 열이 묻은 한숨을 내쉬면..

 

후들거리는 내 손목을 재빨리 부여잡는 나나언니.

 


아니.

 


강하게 묶어버리는 나나언니.

 

 

 

 

 


"전라북도 익산."

 

 

 


"나 혼자 갈게....그렇게 할게..."

 

 


"지금 데려다 줄 친구가 거기 작은 방 갖고 있어.


사촌 오빠가 시내에서 큰 옷가게를 운영 하는데 우리 두사람 일할수 있게 도와준대."

 

 

 


"나나언니."

 

 

"난 너 혼자 나뒹구는 꼴 못봐"

 

 


"..."

 

 

 

"그 심정 모르는 사람이면 아무것도 모른채 너 편한게 내버려둘지 몰라도.


난 알아서 안돼.


그렇게 가면 너 얼마나 가슴 쥐어 뜯고 살아갈지 알아서.


얼마나 비참하고 괴로워질지 알아서.


그것만은 절대 안돼"

 

 

 


"언니도 내 옆에 있으면 그 사람들처럼 다친다.."

 

 

 

"말은 똑바로 해라 너."

 

 

 


문을 열어 젖힘과 동시에 단호히 언니가 내뱉은 말이였다.

 

우리 두사람이 복도를 벗어난 사이에도..

 

섬뜩한 여운을 남기겨 그 문 밑에 스며든 말이였다.

 

 

 

 

 


"니가 있었기에 그들이 다친게 아니라.


그들 곁에 있었기에 니가 다친거야"

 

 

 


...

 

........

 

 


지금의 내겐 아무런 위로가 될수 없는 서글픈 말이였다..

 

 

 

 

 

 


\ 집 앞 주차장.

 

 

 

 

 

 

"헬로우.뻥쟁이 아가씨.꽤 자주 보네!!^ㅇ^!!"

 


.....

........

 


하라언니다..

 

버터플라이에서 이준영 룸에 들어간날..

 

그날 함께 일했던 언니의 친구 하라언니다..

 

 

 

 

 

 

"으흠.뭐.이유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출발이나 해보자구!!!!!"

 

 

 

 


무덤덤한 얼굴의 나나언니가 가방을 넣기 위해 트렁크 문을 여는 사이..

 


그녀는 볼록한 허리와 호박빛의 웨이브 머리를 흔들어대며 운전석으로 쏙 들어가 앉았고..

 

 


...

 


모든것을 체념한 나는..

 

트렁크에 가방을 구겨넣는 언닐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차에 타!!!!!"

 

 

 

 

그리고.

 

옆에서 뭘 그렇게 보고 있냐는듯..

 

비스듬히 고갤 틀며 언니가 두 눈을 깜빡일때..

 

마찬가지로 얼른 차안에 들어오라는듯

 

하라언니가 클락션을 빵빵 하며 두어번 울려댔을때......

 

 


......

 

 

 

 

 

"빵빠앙!!빵빠앙!!'

 

 

 

 


그러니까 바로 그때..............

 

 

 

 

 

"나나야!!!!!!!!!!!!!!!!!!!!강나나!!!!!!!!!!!!!!!!!!!!!!!!!"

 

 

........

 


.............

 

 

 

저 백미터쯤 떨어진 제법 가까운 곳에서....

 

심하게 낯익은 누군가가 빠르게 달려 오며...

 

우리 두사람의 심장을 순식간에 꽁꽁 얼려 버렸다...

 

 

 


.......

 

 

 

놈이다............

 

........

 


정말 놈이 나타났다........

 

 

 


"너 빨리 들어가"

 

 


"...."

 

 


"뒷수습 내가 할테니 빨리 차 안으로 들어가!!


가서 벌러덩 엎드려 있어!!알았지!!"

 

 

"...저새끼가...어떻게.."

 

 

"빨리!!!!!!!"

 

 

 

얼얼히 굳어버린 내가..

 


넘어질듯 엎어질듯 달려오는 은찬일 보며 간신히 마른침을 삼켜내면..

 

..

 


재빨리 트렁크 문을 닫고서..


날 차 뒷좌석 안으로 구겨 넣어 버리는 나나언니..

 

 

 

 

 

"어머..왜들 이래 또..?"

 

 

 

.......

 


...........

 

 

 

"어!!?쟤 그때 걔 아니야!!?버터 플라이에서 오빠들한테 실컷 얻어..!!"

 

 

"쉿.."

 

 

"뭐??"

 

 

 

어느새 뒷좌석에 길게 엎드린 내가..

 

나즈막히 그 한마디를 속삭이자..

 

핸들을 두드리며 흥분하던 그녀 표정도 순식간에 땡땡 얼어 버리고...

 

 

 

 


"야!!!!!!!!!!!!한설 여기 왔었지!!!!!!!!!!!!!!!!!!!!!!"

 

 

 


창문밖에선..

 

낯설고 탁한 그 목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나의 가슴을 한껏 더 세게 죄여 오기 시작했다...

 

 

 

 

 


"뭔 소리야?한설이라니!?!그리고 강나나라니!!?

 

내 성이 언제부터 '강'씨였드나!!!!!!!!!!!게다가 나나!!?


요놈이 나이두 한참이나 어린것이 말야!!!!!!!!-0-"

 

 

 


"한설 어딨냐!!!!!!!!!!!!!!!!!!!!"

 

 

 


"왜??설이 한테 무슨일이라두 생겼어!!?"

 

 


"아빠가 여기있을거래던데!!!!!!!너 자꾸 발뺌할래!!!!!!!!!!!!!!"

 

 

 

"요놈의 새끼가 근데!!!!!!!!-0-"

 

 

 


"빨리 말해라!!!!!!!!!!!!!!!!!!!!내일 아침 뉴스에서 내 이름 보기 싫으면!!!!!!!!!!!!!!!!!!!!!"

 

 


.....

 

.......

 

 

멍청한놈........

 

진짜 오는게 어딨냐........

 

그렇다고 진짜 비행기 타고 오는게 어딨냐........

 

 

........

 


무식한놈.........

 

옆에 있는데도 모르냐........

 

차안 뒷자석에 이렇게 형편없이 엎어져 있는데도 모르냐........

 

 

 

 

 

 

"난 몰라.난 정말 모르니까.니가 알아서 찾아."

 

 

.......

 

..........

 

 

 


꽉 쥔 내 주먹이 축축하게 젖어 갈때..

 

창문밖으로 나나언니의 낮고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을때...

 

 

...

 

 


"제발.....말해줘........................"

 

 

 

 

 


목메인 놈의 그 한마디가 창문밖으로 엷게 울려 퍼지며..

 

기어코 내 가슴을 잡아 뜯고 말았다..

 

 

 

 


"야...일어나...임마...얘가 왜이래...."

 

 

 

"제발 말해줘라.......제발 부탁이다........"

 

 

 

"일어나라니까..!!사내 새끼가 이런일루 무릎이나 꿇구!!!"

 

 

 

"이런일 아니야..."

 

 

"..."

 

 


"설이.나한테 이런일 아니야..."

 

 

 

"..."

 

 


"내 인생이 십이면 한설도 십이야.


내 인생이 백이면 한설도 백이야.


내 인생이 천이면 한설도 천이야.


강은찬 빼기 한설 하면 남는거 아무것도 없어.그래서 나한테 걔가 전부야"

 

 

 

 

"설이한텐 아냐.

 

정말 원한다면 그 입장 헤아려야지.니가 이럴수록 걘 더 아파.

 

더 힘들고 더 무거워져..얼른 일어나.."

 

 

 

"그 멍청이 내거야.이제부터 내가 가질거야.

 

어딨는지나 빨리 말해."

 

 

 


"정말 몰라..."

 

 

 

"어딨어"

 

 


"정말 몰라 임마...아까 갔어...갔다고..."

 


....

 


.......

 

그래..나 갔다...


내 맘은 이미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그러니까 일어나라 강은찬....

 

나 때문에 그 잘난 무릎꿇지 마라...

 

 

일어나라 강은찬...

 

...일어나라....

 

 

 

 

"어딜 가..걔가 어딜 갔는데..."

 

 

 

"떠났어..어디갔는지 말 안하고 그냥 갔어..


아무리 잡아도 그냥 가더라........"

 

 

 

 

창밖으로 점점 가까워 오는 나나언니의 목소리..

 

그래서 내가 더욱 더 고개를 움추렸을때..

 

 

 


'타앗'

 

 


조수석 문을 열고서 재빨리 안으로 몸을 앉히는 나나언니.

 

 

 

 

"몸은 괜찮아 보였어!!!!!!!!!?어디 아파 보이는데 없었어!!!!!!!!!!?"

 

 

 

탕탕탕!!

 

탕탕탕탕!!

 

...

 

 


까맣게 코팅된 창문을 두드리며..

 


은찬이가 발악에 가까운 고함을 질러대면..

 


나나언닌 슬픈 눈빛을 아래로 떨구며 조용히 고개를 내젓고..

 

 

 


"문 다 잠궈 하라야."

 

 

 

담배를 피우며 머리를 긁적이는 하라언니에게..

 

들릴듯 말듯한 나즈막한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 새끼..진짜 불쌍하네..


그때도 참 보기 안쓰러웠는데 말야..."

 

 


'찰칵'

 

 

 

네개의 창문과 문이 모두 다 잠귀면..

 

하라언닌 천천히 스틱을 당기면서 쓸쓸한 어투로 조수석을 향하여 속삭이고..

 

 

 


"나나야!!!!!!!!!아니 나나누나!!!!!!!!!!!!!!!!!

 

어디 짐작 갈만한데 없냐!!!!!!!!!!!!?애 상태는 괜찮았어!!!!!!!!!!?"

 

 

 


은찬이의 그 잔뜩 쉬어버린 외침에..

 

..

 


난 의자 시트위로 꺼내놓은 '강은찬' 강하루' 의 학생증을 보며..

 

마를틈 없었던 지친 눈물을 쏟아 내는데...

 


..

 

 


활짝 웃고 있는 은찬이의 얼굴에...

 

비스듬히 고개를 돌린채 입을 꾹 다문 하루의 얼굴에...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서 꾸역 꾸역 눈물을 삼켜 내는데.....

 

 

........

 

 

 

 

 

 


"너 당장 안내릴래."

 

 

 

 

...

 


.........

 

 

 


내 눈물과 엑셀을 밟은 하라언니의 오른쪽 발을 순식간에 멈춰 버리며...

 


...

 

내가 엎드려 있던 창문 밖으로 조용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강은찬.

 

 

 

 

 

"........"

 

 

 


"당장 내려."

 

 

 


".........................."

 

 

"차 뒤집어 엎어 버리기 전에 내려."

 

 

"......."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당황한 하라언니가 어쩔줄 몰라 하는 사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놈은 문 손잡이를 거칠게 흔들어 대고..

 

 

 

 

"차 출발 시켜..!!!"

 


"어어??"

 


"출발 시켜 당장!!!!!!!!!!!!"

 

 

 

 

애써 은찬이 얼굴을 외면한 언니가..

 

운전석을 향하여 모질고 힘겨운 고함을 내질렀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

쾅쾅쾅쾅!!!!!!!!!!!!!!!!!!!'

 

 

 

 


창문밖을 미친듯 두드려대는 은찬이의 두 주먹.

 

학생증 안에서 해맑게 날 바라보는 은찬이의 두 눈..

 

 

 

"한설!!!!!!!!!!!!!!!!!내가 그랬잖아!!!!!!!!!!!!!!!!!

 

지켜 준다고 그랬잖아!!!!!!!!!!!!!!!!!!!!!!!!!!!!!!!!!!"

 

 

 


"출발해!!!!!!!!하라야!!!!!!!!"

 

 

 

쾅쾅쾅!!!!!!!

 

쾅쾅쾅쾅쾅쾅!!!!!!!!!!

 

 

.......

..........

 

 

 

나란히 놓인 하루와 은찬이의 사진.


이젠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는듯 날 빤히 바라보는 하루와 은찬이의 사진.

 

 

처음처럼....


우리 행복했던 그 날처럼....

 

 

 

 

"우리 같이 도망치기로 했잖아!!!!!!!!!!!!!!!!!!

 

빌어먹을 아웃 싸이더 방식 다 깨부수기로 했잖아!!!!!!!!!!!!!!!!!!!!!!!!!!!!

 

니가 나 데리고 도망 가달라며!!!!!!!!!!!!!

 

나 그럴려고 여기 왔단 말야 병신아!!!!!!!!!!!!!너 데리고 도망 가려고 왔단 말이야!!!!!!!!!!!"

 

 

 

그래..

 

넌 이렇게 웃는게 어울려 임마..

 

이 사진속 처럼..

 

이렇게 환하게 웃는게 어울려 임마...

 


...

 

 

나랑은 안돼....

 

나는 너 한테 이런 얼굴 만들어 줄수 있는 사람 아냐...

 

난 죽어도 아냐 은찬아...

 

 

 


"내가 지켜줄게.....한설.....

 

우리 죽을때까지 같이 있자.............

 

그때까지 내가 지켜 줄게....!!!!

 

내가 정말 너 지켜 줄게!!!!!!!!!!!!!!!!!!!!!!!!!!!제발 한번만 믿어줘...

 

딱 한번만 나도 기회 갖게 해줘!!!!!!!!!!!!!!!!!"

 

 

 

 

 


...

.....

 

 

점점 작아져가는 은찬이의 눈물..

 

...

 

계속 계속 달려오지만...

 

이미 두 눈을 꽉 감고 엑셀을 힘껏 밟아버린 하라 언니..

 

 

 

 


"하...정말....


악역 하는것도 되게 엿같네...."

 

 

...

....

 


내 흐느낌이 들리기나 하는건지...

 

창문에 머리를 박으며 혼잣말을 중얼 거리는 나나언니..

 

 

 

그리고 나..

 

이제 웃는 얼굴을 영영 잃어버린 난....

 

부숴진 창문....

 

그 사이 사이를 타고 흘러내려...학생증을 적시는 은찬이의 피 한방울을 바라본다...

 

 


...

 

 

웃고 있는 은찬이의 얼굴위로..

 

날 칭찬해주며 거만한 미소를 뽐내는 피 한방울을 바라본다..

 

 

 

 

'그래.잘했어.옳은 선택이야.


네가 떠나야 돼.


네가 떠나야 비로소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와.


너한테 어울리는건 은찬이의 웃는 얼굴이 아니라 나라구.


해맑고 따뜻한 미소가 아니라 붉고 싸늘한 피란 말이야.'

 

 

 

 

 


...

....

 

 

 

 

 

 

 

"내가 너 지켜 준다고 그랬잖아 !!!!!!!!!!!!!!!!!!!!!"

 

 

 

 

저 멀리서..

 

이젠 분간 조차 어렵게 된 은찬이의 아련한 그 고함을 들으면서..

 

손등으로 천천히 그 피 한방울을 훔쳐 낸다..

 

 

 


...

 

 


'내 인생이 십이면 한설도 십이야.


내 인생이 백이면 한설도 백이야.


내 인생이 천이면 한설도 천이야.


강은찬 빼기 한설 하면 남는거 아무것도 없어.걔가 나한테 전부야'

 

 

 

'그래.잘했어.옳은 선택이야.


네가 떠나야해.


네가 떠나야 비로소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와.'


...

......

 

 

두 가지의 갈림길 중......

 

후자를 선택한것이 부디 옳은 선택이였기를 바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이젠 정말 마지막이 될 나약하기 짝이 없는 눈물 한방울을 떨궈 낸다..

 


...

 

 

 

 

그리고 이내 그 눈물은 학생증위에 맺혀있던 피 한방울과 섞이며..

 

흔적도 없이 은찬이 사진속으로 스며 들어 버린다..

 

강은찬의 해맑은 웃음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거짓말 같겠지만 말이야.


좀 믿기 어렵겠지만 말이야.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이야 난...

 


자주 웃기도 하고...


신나게 놀다가 힘찬 고함을 지르기도 해.....


실없는 농담을 할때도 많고...


예전과 같지 않게 덜렁대며 실수할때도 많아..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아무도 믿을수가 없게 되버렸는데.


진심으로 기뻐하는 법을 영영 잊고 말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끔찍히 여기는것이 '사랑' 으로 각인 되버려서...


꿈속에서 날 울렸던 니놈들 외에...그 외에 다른 남자들의 눈동자는...


1초 이상도 똑바로 바라볼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박시혀엉!!!!!!!!!!!!!이 개 후라질놈의 자식을 대체 우짤까!!!!!!!!!!!!!!"

 

 

 

"진정좀 해.심심하면 땡땡이도 치고 그러는거지 뭘.


오빤 왕년에 안 그러셨나."

 

 


"나나 너 가게에서 담배 피지 말라고 몇번을 말해야 쓰겄어!!!!!!!!!!=0="

 

 

 

"알았어!!!꺼요!!!!끕니다.!!"

 

 

 

하하....근데 말야..


시간이 참 고맙고 허무맹랑 하지 뭐냐....

 

 

그러한 그 지독한 거짓말 투성이 생활들이...


이젠 저렇게 일상적인 대화들 속에 폭 파묻혀..


벌써 2년이란 세월속으로 접어 들고 있거든.....

 

 

 

 

 


\ 옷가게 슈가빔.

 

 

 

 

 

"대학 가야 하는디 ㅠ0ㅠ 우리 시형이 대학 가야 하는디!!ㅠ0ㅠ"

 

 

 

"가긴 뭘 가.


그 새끼 얼굴도 뺀초롬하니까 졸업시켜 나중에 서울로 올려보내.


취향 특이한 서울 아줌씨들이 좋아할거다 아마."

 

 

 

"나나아!!!!!!!!!!!!!!!!!!!!!!!!=0="

 

 

 

"정 걱정되면 설이 보내서 찾아 오든가.

그 자식 설이 말이라면 꼼짝을 못하잖아"

 

 


"설이이....-0-....그렇지....설이가 있었구만...."

 

 

 

후...-_-...

 

 


카운터 앞에 턱을 괴고 앉아..

 

2년전부터 먹을수 있게 된 조개와 새우를 맛없게 우적우적 쳐먹고 있자니..

 

문앞에서 싸우던 사장님이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날 바라보고..

 

 

 

 

 

"나 안가요.이번이 몇번째야 대체"

 

 

 


난 그 무뚝뚝한 한마디 대답을 내뱉으며.


어느덧 가슴 팍에 다다른 치렁치렁한 머리를 올빽하여 포니테일로 묶어 버렸다.

 

 

 

 

 

"젠장..먹는데 되게 거슬리는구만..자르든가 해야겠네.."

 

 

"설이야아..설이야아..-0-.."

 

 


"아 싫어요!!싫다니까!!-0-그새끼 땡땡이 깔때마다 맨날 반복하잖아요!!


어디 오락실에서 게임이나 하구 있겠지!!사장님이 잡으러 가요!!!"

 

 

 

"내가 가면 똥꾸녕에 불붙은 쥐새끼처럼 도망간단 말이다!!!!!!!!!!!!!-0-"

 

 

켁..


드러워..


...

 

물컵안에 침 다 튀겼잖아..

 

 

 

 

"제발 부탁이다.우리 아들놈 대학좀 보내다우!!!ㅠ0ㅠ"

 

 


"내가 왜 시형일 대학 보내요!!?나도 못나온 대학을!!?"

 


"설이야아아..설이야아아아..ㅠ0ㅠ.."

 

 

"아 나 진짜...


그저께도 그새끼 찾느라 온 동네를 다 뒤집구 다녔는데.."

 

 

"설이야아..월급을 올려줄텐께..설이야아..ㅠ0ㅠ.."

 

 

"..-_-.."

 

 


이어서.


그렁그렁한 사장님의 두 눈동자가 눈물을 머금고 날 바라보면..


난 재빨리 그 눈동자를 피하여..


커다란 한숨과 함께 엉덩이를 일으켰고..

 

 

 

 


"아아!!가주는거냐!!?그래주는거야!!!?"

 

 

"확실히 올려요.그때처럼 일 이 만원 업 시키지 말구.!!!"

 

 


놈이 있을만한 곳은 이미 머릿속에 훤히 지도로 그려져 있기에..

 

 

"고맙다!!고마워!!!!고맙다!!!!!!!!!!ㅠ0ㅠ"

 

 

난리 부르스를 떨어대는 사장을 지나쳐.


나나언니가 비스듬히 기대선 유리 문으로 몸을 움직였다.

 

...

 


그리고..

 

손잡이를 움켜잡은 내가 양 어깨를 으쓱해보이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마지막 연기를 내뿜는 나나언니.

 

 

 

 


"너도 참 고생이다."

 

 


"그러게 말이야.그 새끼 이번엔 진짜 죽일겨"

 

 

"그러다 정들어 사귀는건 아닐런지요."

 

 

"누가!!?내가!!!?내가 그 꼬맹이랑!!?"

 

 

"뭐.어쨌든."

 

 

"냉큼 잡아올게"

 

 

"내일 니 생일이지?"

 


"어.그러네"

 


"슈가빔 식구들이랑 술이나 한잔 하자구^-^"

 

 


"오케이"

 

 


생일..?

 

그런가..

 

내일이면 벌써 내 생일인건가..

...

 

 

젠장.


떠올리지 마.


그런거 없어.


꿈이잖아. 단지 좀 긴 악몽 이였을 뿐이잖아.

 

 

 


"잘 갔다와!!!"

 


...

 

 


등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나나언니의 목소리를 삼키며..

 

힘찬 걸음과 함께 슈가빔을 나서는 길..

 

 

 

잠깐 또 떠오를뻔한 행복했던 악몽을 박박 지우며..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박시형이라는 놈을 잡으러 가는 중이다.

 

 

 

그 친구 년놈들 시선 받는것도 넌덜 머리 나고..

 

담배 연기 뽈뽈 나는 너구리 굴 가는것도 짜증나지만..

 


..

 


뭐..그래도..

 

살랑살랑 웃으며 옷 파는것보단 이게 더 맞으니까..

 

거칠게 욕하며 바깥바람 쐴수 있는 이게 더 신나니까...

 

 

 

 

 

\ X 존.

 

 

 

 

 

"시형아.니 홈피 주소 이거 맞제"

 

 

"으응!!그거!!!"

 

 

"근디 이기 왜 안되노..이상허네.."

 

 

"야야!!나 지금 컵라면 사먹을껀디 니네도 먹을라야"

 


"나나납!!!"

 

 


"박시형 이 시끼는 먼저도 먹어놓고.!!"

 

 

"야.갈통아.내것도 사와라"

 

 


"이 가스나야!!!!!!니껀 니 돈으로 사 쳐먹어!!!!!!!"

 

 

 

"점마 저 씨뿔할 새끼"

 

 

-_-....


멀리서도 참 한눈에 띈다 니 패거리들은..

 

 

흠..


지금 애니몰 패밀리가 딱 저 나이일텐데...


분명 저런 형상을 하고 어디서 나자빠져 있겠지..

 

 

 

 

 

"라면 먹으러 가자잉~♬라면 먹으....♬

 

......오.....이....야...-0-...이 일을 우야꼬......"

 

 

 


팔짱을 낀 내가.

 

문 앞에서 서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 꼴통 패거리를 바라보면..

 

..

 

컵라면을 사기 위해 신나게 이리로 달려오던 갈통이 놈이..

 

입을 떠억 벌리며 나를 올려보고..

 

 

 

 

 

 

"-_-...니가 꼬셨냐 시형이...?"

 

 

 

 

카운터의 알바생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나의 험악한 말투에.


두 눈을 꼬옥 감고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어 댔다.

 

 

 

 

"그럼.저 새끼가 먼저 나오자구 꼬셨냐"

 

 

"나는 모르는디.....나는 참말 모르는디...."

 

 


"그렇지.언젠 니가 뭘 알았냐."

 

 


"시형이 또 때릴라요..ㅠ0ㅠ..?"

 


"내가 언제 저 놈 때렸냐!!!!!!!!!!!!!!-0-"

 

 

 

완전히 날 깡패취급 하는 갈통이의 그 말에.

 

분통터진 내 고함이 땡땡이 중고생들의 아지트를 벅차게 울리고..

 


..

 

 

 


"ㅇ_ㅇ.."

 

 

 

예상했던 데로..


참 스릴없게시리 사냥꾼을 발견해 버리고 만 나의 표적감과 그의 패거리들.

 

 

 


"난 죽었네..."

 

 


웅얼..웅얼..

 

 

 

잠시후.그 침묵이 조금씩 허공으로 분산되기 시작할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어쩔줄을 몰라하는 시형이가 포착되면.

 

난 양 옆으로 두 팔을 쩌억 벌린채 (도망갈 곳을 봉쇄하기 위해-_-)

 

놈에게 저벅저벅 다가가기 시작했고...

 


..

 

이내 놈은 순한 양의 표정이 되어 베베 몸을 꼬아대려 하고 있으니..

 

 

 

 

"그 시답지도 않은 애교 집어치우고 알아서 뒤에 착 붙어라-_-"

 

 

 

난 패거리들의 혀차는 소리를 두 귀로 꾹 막아내며.


재빨리 시형이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 잡았다.

 

 

 


"누나다!!!!!!!"

 

 

 

"이 자식아!!!!!!개학 한지 한달도 안됐는데 이게 벌써 몇번째야!!!!!!!!!!


내가 토끼잡는 사냥꾼이냐?!!!!!"

 

 

 

"사랑합니다.나의 사랑.-0-.나의 사랑 당신을 사랑합니다.-0-"

 


-_-..

 

그 어처구니 없는 몇만번째의 애교와 함께..

 

내 어깨위에 처억하니 얼굴을 묻어버리는 박시형.

 

 

 

"모가지 들어라"

 

 

"누나.나 진짜 땡땡이 안칠께요.담부터는"

 

 

"그 담부터가 벌써 쌓이고 쌓여 폭발했다-_-"

 


"누나.누나.누나누나."

 

 

"누가 보믄 저 여자가 무신 시형이 깔치줄 알겄네"

 

 

"그라제.내 보기두 그렇다"

 

 

 

 

이 교복치마 흉칙하게 줄인 것들이 또 뭐라는거야..-_-^

 

 

 

..아니나 달라..

 


모니터 한대에 착 달라붙어 열심히 미니 홈피질을 하다가..

 


귓가에 다 들릴만한 수근거림으로 나를 흝어대는 두 계집애.

 

 

 

 

"누나.근데 나 땡땡이 친거 어떻게 알았어?


아빠도 알아!!?나 또 맞는거야 그러면..?그저께도 맞았는데 오늘도 또 맞아?"

 

 


..-_-..

 

잠시 그 두계집애를 노려보다가..

 

 


다시 휙.


내 손에 꼭 붙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을 가슴팍을 바라보자..


그는 일부러 위장한 가여운 목소리로 동정심을 유발하려 했고..

 

 


"넌 내 동생이였으면 진짜 반은 벌써 죽여놨다."

 

 


난 가차없는 그 말과 함께.


갈통이가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문쪽으로 놈을 질질 끌어 나갔다.

 

 

 

그러면 역시..

 

충분히 예상하고 짐작했던 데로..

 


...

 


나의 뒷통수를 향하여 쏟아지는 두 계집애의 들릴랑 말랑 하는 작은 소근거림.

 

 

 

"저 언니 할일도 참 없네!!-0-"

 

"내 말이!!우리 노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쌔빡이라.."

 

 

 

 


휙..

 

그리하여.

 

다시 또 솟아오른 오기로 나보다 더 가녀린 손목을 꾹 잡아 비틀며 등을 돌리면..

 


..

 

 

언제 그랬냐는듯 꾹 입을 다무는 흉측한 두 교복들.

 

..

 

 

저것들은 진짜..

 

교복입고 학교 다니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데..

 

하루가 멀다하고 제철만난 메뚜기처럼 밖으로 튀나오는거야..

 

 

 

 

 

"아 참!!누나야!!가는 길에 나랑 연극 보자!!


서울에서 전국 순회 하는데 오늘 익산 왔다는데!!"

 

 

 

"넌 제발 그 입 다물어라!!!!!응!!!!!!!!?"

 

 

 

눈치 코치 없는 시형이의 신나는 말소리에.


울화통이 터져 다시 또 빼액 고함을 지르고...

 


..

 


이젠 영화관 보다 더 고요해진 피씨방을 마지막으로 휙 둘러보면서..-_-..

 


성큼.

 

문을 열고 재빨리 임무 완수를 마치려 하는데..

 


...

 

 

분명 한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끝나는 일이였는데..

 

 

 

 

 

"야야!!이 봐라!!가영이 홈피에 그 강하룬가 뭐시긴가 사진 올라왔네!!!!-0-!!"

 

 


"이 남자가 강하루?!!!!!!!!"

 

 

"맞다잉!!!!졸업사진 스캔한거구마!!!"

 

 


"아따 새끼 허벌나게 잘생겼네!!!!!!!!!!-0-"

 

 

...


......

 


강하루.....

 

열배 백개 널린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단 한번 마주치기 힘든 그 이름...

 

특별한 단 하나의 이름 '강하루'란 한마디가 강하게 머리를 내려치며..

 


나의 발걸음을 전혀 반대 방향으로 되돌려 놓고 말았다.

 

 


...

 

 

 

 

"어메 깜짝아!!!!!!!이 여자 이 뭐꼬!!!!!!!!!!-0-"

 


"누군교!!!!!!!!-0-"

 

 


모든 악몽을 다시 불러온 낯선 여학생들을 거칠게 밀어낸채.

 


대책없이 떨려오기 시작하는 동공으로 꼼짝없이 모니터를 주시하고..

 

 

 

"........강하루...."

 

 

 


이내 미니홈피 사진첩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 얼굴을 발견한뒤..


다음으론 깨알같이 그 아래 박혀있는 그 글자를 발견한뒤..


실없는 웃음을 입밖으로 토해대는 한설.

 

 

 

 


'사실인가 거짓인지 온갖 소문에 말이 많았던 강하루 사진.


최초로 긴급 입수.

 

현재 서울 강북 평창동에 거주하고 떠돌던 소문은 모두 사실이라고 함.

 

재활원에서 치료중인데 두 팔이 모두 잘려나갔다는것은 거짓말이라고 들었음.

 

그러나 머리 다친건 회복 불가능.(그 학교 졸업생한테 들은거라 확실함)

 

그리고 잘 사귀는 예쁜 여자친구도 있다고 하고.

 

여자친구는 그 자살소동 다 덮어주고 이쁜 사랑 중이라고 들었음.

 

사진은 덕풍고때 졸업 사진.

 

(무슨 비리로 졸업을 할수 있었는진 식구들만 아는일.


참고로 이집 아빠 빽 대단함)

 

 


p.s같은 나이 배다른 형제도 덕풍고 나왔다고 하는데.그 동생 사진은


다음에 올리겠음.사진과 글의 출처 꼭 밝힐것.

 

 


- 출처 푸른나비-

 

 

 


...

 

....

 

 

"하하...하하하...이게 뭐냐...


..하하하...이게 뭐야........이런거 대체 누가 만든거냐.....


.....하하하....하하..."

 

 


"누나..왜그래..누나..설이 누나.."

 

 

 


귓속에서 멍멍히 울려퍼지는 시형이의 목소리..


눈앞에서 밝고 씩씩하게 미소짓는 하루의 얼굴..

 

 


꾸역..꾸역..

 

다시 또 구토 증세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난 또 모니터 앞에 머리를 쑤셔박고 피보다 괴로운 눈물을 삼켜내기 시작 한다..

 

 

 

 

"언니도 이거 알아요??"

 

 


게다가 나의 이 가상한 노력을 알아줄맘이 전혀 없다는듯..

 

자리에 앉아있던 두 여학생들은 또 재잘재잘 입을 놀려댄다.

 

 

 

 


"왜.인터넷상에서 한때 붐이였는데 모르는 사람이 어딨노"

 

 


"하이튼 임마 이거 진짜 멋있대.


죽은 여자친구 따라 그 날짜에 그 장소에서 자살기도 하고.


팬카페만 벌써 몇갠지.사진 퍼지면 몇곱절 더 늘어나겠네."

 

 

 

"그제.하마 벌써 2년이 다되가는데"

 

 

 

"아따.근데 여자친구 이년은 누군지 몰라도 억수로 복 받았네.


난 하는짓이 원체 멋있어 면상은 영 아닐줄 알았드만"

 

 

 

"근디 본인은 사진 올라온거 알랑가"

 

 


"야야~!!지 얘기가 인터넷에 떠도는지도 모른대드만!!


지금 제정신 아니라제"

 

 

"아무튼가이 임마가 2년전부터 내 우상이라.


낸 오늘밤 잠 다 잤다.


이거 스캔해 달라 해야지"

 

 


...

....

 


흥미거리..화젯거리..관심거리..

 

 

날 벼랑 끝까지 내몰았던 그 악몽이..

 

지금은 이렇게 전국의 흥미로운 사건이 되어 입방아 찧어지고 있다..

 

 


나에게 죽음보다 괴로웠던 그 나날들이..

 

인터넷 안에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멋진 전설로 떠받들여 지고 있다...

 

 

 

 

"누나!!어디가 누나!!!


누나아!!!!!!!누나!!!!!!!!!!"

 

 

 

비틀비틀..


...

 


악착같이 삼켜낸 추억들과 눈물들이 차오르기 시작하여..


모든 사람들이 절대 눈치 못채도록..


꾹꾹 차오른 목구멍을 부여잡고 문을 나서는 중..

 


..

 


"누나야 같이가자!!!!!!!!누나야!!누나야!!"

 

 


덧붙혀 뒤에선 시형이의 다급한 고함이 울려 퍼지는 중..

 

 

 

 

"예쁜 여자친구...........예쁜 사랑............

 

........예쁜 사랑...........예쁜 여자친구..........."

 

 

 

그리고.......

 

그간 억지로 우겨왔던 그 2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중....

 

 

 

 

'예쁜 사랑.예쁜 여자친구'

 

 

 

단지 그 두마디에.

 

그간 노력이 억울하다며 버틸새도 없이..

 

와르르 부셔져 내리는 중....

 


"진짜 괜찮아?정말로 괜찮아!!?

 

 

"....."

 

 

"뭐 잘못 먹은거 아냐!?얹힌거 아니야!!?"

 

 

"..............."

 


"누나!!!!괜찮냐니까!!!!!!!!!!!!"

 

 

\ 번화가.

 

 

 

 

피씨방을 나오자 마자.

 

입밖으로 마구 터져나온 구토들에 놀란듯...

 

말없는 내 옷깃을 꽉 움켜잡으며 빼액 고함을 내지르는 시형이.

 

 

 

 


"....."

 

 


"아까 보니까 새우랑 조개랑 아주 다 나오던데!!


누나 해산물 먹으면 꼭 토하드라!!"

 

 

"그래..."

 

 

 

"그거 왜 먹어!!그러니까 먹지 말래잖아!!토할거면서 맨날 먹어요.


보니까 알레르기 있는거 같은데."

 

 

"....후....."


...

.
..

 


등을 토닥여주는 시형이의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저으면...

 

작고 따뜻한 손으로 내 건조하고 투박한 손을 꽉 움켜 잡은채...

 


양볼에 보조개를 만들며 빙긋 웃는 하얀 토끼놈.

 

 

 


"집에 가자.아빠한테 맞지 뭐."

 

 

"......응..."

 

 


그 작은 대답과 함께.

 

손을 다시 힘주어서 비틀어 빼고선..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진정 시켰다..

 

 

 

 

"아까 그 강하루란 사람."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시형인...

 

머쓱한듯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또 그 긴꿈의 남자 주인공 이름을 현실 세계로 던져 버렸다.

 

 

 


"...."

 

 


저벅..저벅..

 

아무 대답없이 땅만 보고 걸어가는 한설..

 

 

 

"그때까지 나 이모랑 경기도 살았을땐데.


되게 유명했는데 그 사람.누난 몰라?"

 

 

 

"....몰라...."

 

 


"울 학교 여자애들이 그사람 얼굴 본다고 막 서울 가고 그랬는데.


내 여자친구도 팬카페 회원이였어.


그래서 속으로 되게 질투 했었거든."

 

 


"......."

 

 


"우와.얼굴 첨 봤는데 진짜 긴장 해야겠다.


경기도 사는 내 여자친구 절대 보면 안되겠어.컴퓨터 못하게 해야지.


...괜찮아..누나..?"

 

 

"어..............괜찮아..........


괜찮다.............."

 

 

 

아스팔트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몽땅 다 그 긴 꿈의 인물들로 탈바꿈 해 버린다..

 

 


저 꼬마는 미라...

 

...저 여자는 오렌지 족...

 

..지금 내 옆을 지나치는 이 남자는 강주원..

 

그리고 뒤를 졸졸 따라오는 시형이는 은찬이...

 

 

흔들린다..


두 눈이 뿌옇게 뒤덮혀 오기 시작한다..

 

 

 

 

"근데 되게 이상한건..


그 여잘 위해 목숨까지 던졌으면서 왜 그 여잘 기억 못할까..


다른건 다 잊어도 그 여자만큼은 알아야 하는거 아닌가.."

 

 


"....기억을.....못한....대...?"

 

 

 

"어.자세히는 몰라도.홈피에 떠도는 글엔 그래.


근데 뭐.인터넷에 떠도는거 반은 다 뻥이니까.."

 

 

".......하아..."

 

 

 


"그 박윤영이라는 여자 사진두 올라왔음 좋겠다.'-'


대체 얼마나 이쁜지 한번....


누나....누나 왜그래!!!!!!!!"

 

 

 

"...................."

 

 

 

횡단 보도를 건너자 마자..


밖으로 삐져나오려 애쓰는 악몽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형편없이 맥없이 주저 앉아 버리고 말았다..

 

 

 


"누나!!!!!!!!!!설이 누나!!!!!!!!!!!!!!!!!"

 

 

 


시형이의 고함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들일때까지..

 

그래서 그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져갈때까지..

 

덕분에 나오려던 꿈들이 다시 머릿속으로 스물스물 기어 들어가 버릴때까지......

 


.....

 

 

........

 

 

 

"누나...."

 


"....."

 


"정신 좀 들어.괜찮아..?"

 


"슈가빔....가게...가게 가야지..."

 


"....."

 


"여기 어디야..?여기 어디지..!!?!"

 

 

 

 

\ 회관 앞.

 

 

 


정신없이 도망친걸까..

 

아니면 정신없이 쫓아 온걸까...

 

 

 


"누나 진짜 바보같애."

 

 


픽..

 

웃음기 서린 시형이의 그 한마디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았을때..

 

...

 


등 뒤에는 하얗게 칠해진 아담한 3층짜리 건물이 서있었고..

 

그 앞은 사람 하나 없이 고요히 텅 비여 있어..

 

난 잠시 이곳이 '평창동'이 아닐까 하는 되먹지도 않은 착각에..

 

머리를 움켜 잡고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진짜 어디 아픈거 아냐!!?"

 

 

 

"괜찮아.니 말대로 잠깐 체했나봐.


근데 여기 어디냐......온뒤로 처음 보는거 같은데............"

 

 

"왜.시장 갈때 종종 지나갔었잖아.저 건물 보고 누나가 정신 병원 같애서 싫다며"

 

 

"...내가...?"

 

 


"응.!!누나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 내가...


...

 

너무도 당연하단듯 고개를 끄덕이는 시형이 모습에..

 

다시 두 눈을 부릅뜨면서 그 오묘한 건물을 올려다 보면..

 

 


"아싸!!잘됐다!!!"

 

 

 

갑작스러운 그 한마디를 내 뱉으며.

 

내 등을 그 건물 방향으로 떠밀기 시작하는 박시형.

 

 

 

 

"야..왜 이래 임마..."

 

 

 


"아까 내가 연극 보자고 했잖어 누나."

 

 


"근데 왜!!!"

 

 

 

"여기서 한단 말이야.그 연극이.


지금이 그러니깐 한시반이니까..


두시간 간격으로 오십분마다 한댔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다..!!"

 

 

 

"누가 너더러 연극 본다 그랬어..?


사장님 기다려..가게 가야지...!!"

 

 


"괜찮아.나 찾느라 늦었다 그러면 되잖아..!!!"

 

 

"안가 글쎄!!!!!!!!!!!"

 

 

"가자!!!!!!!!!"

 

 


"안간대도!!보려면 너 혼자봐!!괜히 나까지 땡땡이 인생 만들지 말구!!!!!"

 

 

어느덧 건물 입구까지 몸이 떠밀려 버린 까닭에.

 

더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 꼿꼿히 버티어 서버렸다.

 

 

 

"..씨..."

 

 

 

그러면 놈은 금새 울상인 표정이 되어..

 

문 앞에 붙혀져 있던 까만색의 포스터 한장을 망설임 없이 북 뜯어냈다.

 

 


"뭐하는거야."

 

 

"뜯어가서 나나누나 보여줄거야!!그래서 나나 누나랑 올거야!!"

 

 

"언니가 과연."

 

 


"누나보다 나나누나가 더 친절해!!


영화도 같이 봐주고 밥도 해주고!!누난 영화 보자고 아무리 졸라도 안가고!!!


같이 옷사러 가쟤도 싫다 하고!!!한번도 같이 안놀러 가주고!!!


손도 절대 못잡게 하고!!잘 웃어 주지도 않고 또..!!"

 

 


"숨 넘어 가겠다 임마..."

 

 

 

"죽어도 눈 안마주치고!!!!!!!!"

 

 


...

....

 


터벅..터벅...

 

...

 


다시 건물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선채...

 

무너질듯..넘어질듯.위태위태한 걸음을 떼어놓을때..

 

오른쪽 귀 바로 옆으로 재빨리 따라붙는 심통난 시형이의 목소리.

 

 

 

 


"맞잖아 내말!!"

 

 

 

"...."

 

 


"왜 눈을 한번도 안 마주쳐?!!내가 뭐 째려봐!!?


내가 그렇게 싫어!!!?"

 

 

 

...그게 아냐....

 

그런게 아냐 박시형...

 


...

 

 

그놈들이 마법을 걸어놔버렸어...

 

죽을때까지 그 어떤 놈도 볼수 없도록...그 어떤 놈도 믿을수 없도록...

 

그 어떤 놈도 사랑할수 없도록....

 

꿈속의 그 두놈들이 마법을 걸어놔 버렸어...........

 

 

 

"아 누나아!!!!!!!!!!"

 

 

"알았다..알았다구...."

 

 


"그럼!!연극 볼거야!!!?"

 

 

"지금은 근무 중이니까..이따 저녁에 와서 보자.."

 

 

"우와!!진짜지!!^ㅇ^!!"

 

 

"그럼.난 뻥 안쳐."

 

 


"아싸.아싸.나나 누나랑 셋이 같이 오자 그래야지"

 


...

.....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미라....아니..

 


7살 어린이보다 더 신나해 하는 시형일 바라보며..

 

입가에 다시 둥근 미소를 띄어 놓았다..

 

 

 

그리곤..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선채 놈의 손에 있던 포스터 한장을 슬그머니 건네 받았다.

 

 

 


...

 

....

 

 


"아웃...사이더..."

 

 


"응.연극 제목.멋있지."

 

 


"진절 머리 난다......."

 

 

"응.ㅇ_ㅇ.??"

 

 

 

아웃 사이더.


공연 날짜 1/1~3/13일까지 전국 순회 공연.


(서울.수원.안양.부천.부산.대구.익산.순천.청주.제천.)


출연자 - 김옥진.한상구.도영신.나태영.

 

 

 

 

 

 

빌어먹을...


하필이면 제목이 아웃 사이더냐...


연극 보는 내내 욕 꾹꾹 눌러 참게 생겼구만...

 

 

 

 

"거기 그 이쁜 누나가 주인공이래.헤."

 

 


"너 그래서 보자구 한거지.."

 


"헤..-0-.."

 

 

 

베시시 웃음을 지으며..

 

시형이가 손끝으로 포스터 중앙을 가르켰을때..

 

멍하니 흔들리던 내 눈동자 두개 역시 물끄러미 그곳을 응시 했고..

 

 


"........................"

 

 

 

 

 

 


잠깐....

 

 

 


..............

 


이 사람은......................

 

 

...............................이 사람은..........................

 

 

.........

 

 

 


"왜그래??아는 사람 있어??"

 

 

 


짙은 분장에 가리워 졌지만...

 

게다가 평상시의 표정을 구분 못할만큼 섬뜩하게 웃고 있지만...

 


...

 

 

 

"이 사람들 어딨어..시형아..."

 

 

"어.?"

 

 


"이 사람들 어딨어!!!!!!!!!!!!!!!!!"

 

 

"공연...중...아니면...대기실에서..쉬겠지..."

 

 

"....."

 

 


"왜 그러는데..."

 

 

 

"젠장................................"

 

 

 

"왜 그러는데 누나!!!!!!!!!!!!!"

 

 

 

뭐야....

 


착각이야...아님 사실이야...

 

우연이야...아님 필연이야...

 


연극이야...!!!!!!!!!!!!!!!!!아님 현실이야...!!!!!!!!!!!!!!!!!!!

 

 

 


"누나!!!!!!!!!!누나!!!!!!!!!!!!!!"

 

 

 


점점 까마득해져 가는 시형이의 고함소리.

 

하얀 건물을 향해 커져가는 내 발자국 소리.

 

 

 


확인해야 한다.

 

착각임을.우연임을.연극임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확인 해야 한다.........................

 

 

 


'콰당!!!!!!!!!!'

 

 


"어.무슨 일이요.지금 공연 중인.....

 

어...!!?아따 저 아가씨 왜 저런댜!!!!!!!!!!!!!-0-아가씨!!!!!!!!!!!아가씨요!!!!!!!

 

아가씨이!!!!!!!!!!!!!!!"

 

 

 


문을 열고 들어온 내가.

 


포스터를 바닥에 팽겨치며 텅빈 복도를 마구 달려 나가면..

 


매표소에 있던 남직원이 당황한듯 내 뒤에 바짝 따라 붙기 시작했고..

 

 

 

 

......


...............

 


"오...이런....


참으로 유감이지만 이건 현실이라구.


직시 해야해.네 앞에 놓여진 이 상황을 똑똑히 바라 보란 말야..!!


제시.내가 전에도 한번 말하지 않았나!!?


너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야.그리고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지.


그건 운명이야!!

 

운명은 거스르려 하면 할수록!!!!달아나려 하면 할수록!!!

 

맞서 싸우려 하면 할수록!!!!!더욱 더 강하게 너의 목을 죄어 온다구!!!!!"

 

 


...

....

 

하아.....하.....

 

...

 

 


이윽고.

 

노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크고 기다란 문..

 

거친 숨을 헐떡이며 내가 그 문 앞에 멈춰 왔을때..

 

 

 


분명 안에선 그 사람의 목소리가...

 

아직도 그 긴 악몽중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

 


서늘한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며 내 가슴을 난도질 해댔다.

 

 

 

 

 

 

"거기 이봐요!!공연중이라 들어가면 안된다니..!!!!-0-"

 

 

 

 

그리고.

 

어느덧 내 목덜미를 매표소 직원의 화가난 목소리가 힘껏 짓눌렀을때..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문 안에선 관객들의 자그마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을때..

 

 

 

 


'콰앙!!!!!!!!!!!!!!!!!!!!!'

 

 

 

 


분명 나의 두 손은 마치 그 운명을 거스르듯 문을 열어 젖혀서.


이제부터 펼쳐질지도 모르는 악몽의 또다른 시작을 알렸다.

 

 

 

 

 


"저...저것이 뭐냐...."

 

 

"흐미...간 떨어지는줄 알았네...-0-"

 

 

"얼래...?저 여자 지금 무대로 내려간다!!!!!!!!!!!!!!!!!!!!!"

 

 


"어메야!!!!!!!!미쳤는갑네!!!!!!!!!!!!!!!-0-"

 

 

 


무대를 제외한 수십개의 관람석은 컴컴히 불이 꺼진 상황..

 

그중 나를 발견한 사람들은..

 

무대위에서 인사하는 배우 대신에 지금 등장한 불청객을 멍청히 바라보는 상황..

 

 

 

 


"............."

 

 

...

 

 


나...?

 


...나...그래...이 상황에서 모든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나...

 

..

 


두말할것도 없이 계단을 내려 무대위로 가까워 가는 상황.

 

..

 

 

나와 마찬가지인 표정을 짓고 있는...

 

너구리 분장을 한 그 사람을 향해......

 

한 발자국...두 발자국...

 

피보다 지독한 눈물을 흘리며 가까워 가고 있는 상황...

 


..

 

 


"누...구...세요....?"

 

 

 

잠시후.

 

 

무대위에 올라선 내가..

 

머리카락을 옷깃 안으로 구겨 넣어 짧은 단발을 만든뒤..

 


물끄러미 그 네명의 배우 앞에 다가 섰을때...

 

...

 

 

 

미치광이 광팬임을 우려한 한 젊은 여자는 겁먹은 눈으로 나를 올려 보았고..

 

 

 

 

"...."

 

 

 


난 말없이 그 여자를 지나쳐..

 

조그맣게 떨고 있는 너구리 앞에 우뚝 멈춰서 버렸다.

 

 

 

 

 

"....................누..."

 

 

 

 

"누구냐고 한번 물어봐."

 

 

 

"......"

 

 

 

"나 알지."

 

 

 

".....몰라...."

 

 

 

"나 알지............"

 

 


"몰라....!!!!!!"

 

 

 

"그래........그럼 내가 잘못 봤나................"

 

 

 

".........."

 

 

 

"내가 잘못 기억 하고 있나.....그럼 이건 착각인가.....


우연이고 연극인가....."

 

 

 

 


"이 기집애 끌어...아아아아아아아악!!!!!!!!!!!!!!!!!!!!!!!!"

 

 

 


아수라장이였다...

 

이미 그것이 사실임을..필연임을..현실임을 깨달아 버렸기에..

 


다름아닌 꿈속의 주인공이였던 나 '한설' 이 발견해 버렸기에...

 

..

 

 

아수라장이라는 말이 모자랄만큼..

 

그것은 지독하고도 끔찍한 광경이였다..

 

 

 

 

 

"꺄아악!!!!!!!!!!!!!!!!꺄아아악!!!!!!!!!!!!!!!!!!!"

 

 

"그만!!!!!!!!!제발 그만 해요!!!!!!!!!!!!!!!"

 

 

"경찰서에 신고해!!!!!!!!!!정신병자야!!!!!!!미친년이라구!!!!!!!!!!!!!!!!!!"

 

 

 

연기보다 몇만배는 더 실감나는 비명을 질러대며..

 

무대 밖으로 도망쳐 가는 배우들...

 

그리고 연극의 진실을 죽을때까지 알수 없는..

 

앞다투어 문밖으로 뛰쳐 나가는 관객들..

 

 

 


그래...

 

내 손에 졸린 너구리의 목에서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새어나갈때까지.

 

겁쟁이인 그들은 깡 마른 여자 하나를 겁낸채 그렇게 뿔뿔히 흩어져 도망쳐 버렸고..

 

 

 

 

"켁...켁.............켁..


..말해...말할게...마..말..하.."

 

 

 


하얗게 뒤집힌 나의 두 눈이..

 


맥없이 축 늘어진 너구리를 죽음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을 무렵..

 

 

 

 

"저 여자!!!!!!!!!저 여자다!!!!!!!!!!!!"

 

 

 

그래서 대여섯으로 불어난 경비원들이 무대를 향해 달려올 무렵...

 

 

 

 

"....그..래.....


다.....준비된...거야......................


............하지만 난....몰랐어................


그런건지 정말...몰랐어....................."

 

 

 


..

 

 


너구리는 바닥으로 힘없이 엎어지며 가느다랗고 쇤 목소리를 내면서..


...

 


다시 까맣게 돌아온 내 두 눈동자를 향해..

 


그 까마득한 꿈속의 진실을 알려 주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냐니까!!!!!!!!!!!"

 

 


....


......

 


분명해..

 

연관이 있어...

 

무언가 더 남아 있어....................................

 

그게 다가 아니야....................

 

아무런 이유없이 그런 유치하고 무모한 장난을 꾸민게 아니야....!!!!!!!!!!!

 

 

 

"한설!!!!!!!!!!!!!!!!!!!!!!"

 

 

 

 

 

 

\ 자취방.

 

 

 


덜컹..덜컹..

 

...

 

 

무언가에 홀린듯..

 

익산에 도착할때 입고 있던 먼지쌓인 외투를 찾고 있는 나.

 

 

 

"뭐하는거야!!!!!!!!!!!"

 

 

 

그리고.

 

시형이의 숨 넘어가는듯한 외침을 건네 받고 재빨리 이곳으로 쫓아나온 나나언니.

 

 

 

 

"내 옷.언니.


올때 입고 왔던 내 옷....내 옷 있잖아...


내 외투...."

 

 

 


"너 연극 무대 올라가서 깽판 부렸다며!!대체 어떻게 된거야 짜샤!!!!!!!!!"

 

 

 

"내 외투 있잖아.......핸드폰 들어있던 내 외투..."

 

 

 


"은찬이가 너 주고 갔던 핸드폰..?그거 말하는거야...?"

 

 

 

"내 외투!!!!!!!!!!!!!!!!!!!!!!!"

 

 

 

"그거 여기 오자 마자 정지 시켰었잖아.


너 왜이래..너 무슨 일 있었던 거야..."

 

 

 

 

"하..제발...그거 어딨어...


그 외투 어딨어....."

 

 

 

경비원들을 뿌리치고 도망쳐 오느라..

 

모든 기운이 다 빠져 버린 탓에..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침대 앞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

 

 

 


그러자 나나언니..

 

아무말없이 이마를 문질러대던 나나언니가...

 

커다란 한숨을 한참동안 내쉬고는..

 

다음으론 울부짖은 날 가만히 내려다보고는..

 

TV 밑에 놓인 작은 철제 서랍을 열어 낯익고 서글픈 그 물건을 꺼내놓았다..

 

 

 

 


"...이거...."

 

 


"넣어 놨었어.버리자니 은찬이한테 참 죄짓는 느낌이잖아."

 

 

 

"..."

 

 

"대체 이게 왜.어차피 이젠 아무 소용도 없는거잖아."

 

 


아니..

 

소용 있어...

 

어쩌면 발견할수 있을지도 몰라..

 

그 마지막 악몽의 진짜 흔적을 어쩌면 찾아 낼수 있을지도 몰라..

 

 

 

'♬♩♬♪♬♩♬♪'

 

 

 

추억속의 그 작은 멜로디와 함께.


핸드폰 전원이 ON 으로 바뀌면....

 

 

...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린 나나언닐 앞에 두고..

 

가늘게 떨리며 문자 수신함을 꾸욱 누르는 나의 손가락..

 

 

 


"난 정말..아무것도 모르겠다..아무것도 모르겠어.."

 

 

 


잠시후..

 

12개 들어있던 그 문자..

 

2년전 그대로 저장되있던 하루의 문자들이..

 

여지껏 악을 써가며 외면해온 내 눈동자 안에 읽혀지면..

 

 

 

 

 

가장 마지막으로 왔던 문자 메세지.

 

 


'3.9일.오후 8:15분.

 

 

 

'오늘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오기 위했던 이용 도구.

 

 

 

 

외면하지마.한설.


똑바로 쳐다봐...


진실을 알기 위해선 더 용감해져야 돼...


꿈에서 도망쳐 나오려면 더 강해져야돼..

 

 

 

 


'오늘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오기 위했던 이용 도구.


미안해.너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줄 말은 단지 이 세글자 뿐이다.미안해..'

 

 

 


그래..이게 마지막으로 온것..

 


그날 저녁..하루가 내게 마지막으로 보낸것..

 

 

다음은...

 

...

 

 

 


3월8일.오후.3:00

 

 

 

'나 심심헤.선생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

.......

 

 

피식...

 


입가에 번지는 웃음...

 

 

그리고 세번째 메세지...다음으론 네번째 메세지...

 

 

다섯번째..여섯번째..........

 

...

 

 

 

마지막 열두번째 메세지 까지...................

 


..........

 

 

 

 


"뭐야...그 문자가 왜."

 

 

 


"왜 몰랐을까....왜 진작 발견하지 못했을까....."

 

 

 


"뭘 말이야.넌 대체 아까부터 왠 뚱딴지 같은 소리만 해대냐.."

 

 

 

".............어떡하지............이제 어떡하지................"

 

 

 

"아 대체 뭐 이 가스나야!!!!!!!!!!"

 

 

 

꿈속에서 일어났던 그 끔찍하고 어마어마한 소동..

 

그 소동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뛰어넘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것 같은데..

 

그리고 이제부터 그 일을 내가 벌려야 할것 같은데....

 


난 이제 어떡하지............................

 

 

 

 

"야야!!너 또 어디 가려고!!!!!!!!!!"

 

 

 

중얼..중얼..

...

 

 


완벽한 세번째 뒷통수를 맞은 내가...

 

반쯤 열린 문을 향해 혼잣말을 웅얼대며 돌아섰을때..

 

이번에야 말로 절대 안된다는듯..

 


억세게 내 허리를 감싸안는 나나언니.

 

 

 

 

 

"못가!!!또 무슨 사고 칠라고!!이 언니 아주 죽으라 그래 임마!!!!!!"

 

 


"...마지막..."

 

 

 

"마지막이라니!!!!!!!!"

 

 

"마지막 확인."

 

 

 

"아 나 참.너 어디서 꿈이라도 꾸다 온거냐!!!!!!!!?"

 

 


"아니길 바라는 마지막 확인...................."

 

 


"뭬야!!!?"

 

 


제발..................

.................

 


아니길 바라는........

 

그러나 맞더라도 꼭 밝혀야 하는...

 

나만이 할수 있는 마지막 확인...

 

 

 

 


"어어!!?쟤가 진짜!!!!!!!!!!"

 

 


"따라오지마 언니."

 

 

"-0-..한설.."

 

 


"제발 부탁이다."

 

 


"........"

 

 

 

"제발..제발..이렇게 부탁할게요...

 

마지막으로 한번만.....딱 한번만.........."

 

 

 

 

"그 집이랑 관련된거냐.."

 

 

 

 

끄덕..끄덕..

 

..

 

 

이미 몸은 문밖으로 나간 내가..

 

힘없이 언닐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면..

 

 

 

..

 

 

 

"그래...."

 

 

알았다는듯.

 

더이상 잡지 않겠다는듯..

 

힘풀린 눈으로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나나언니.

 

 

 

 

"금방 올게..."

 

 


".................."

 

 


"금방 올게 언니........"

 

 


"그런거 다 필요 없으니까.


다치지 마라.."

 

 

"....."

 

 

 


'금방올게'라는 나의 말에 언니가 대답을 하지 못했듯..

 

'다치지 마라'라는 언니의 말에도 난 대답을 할수 없었다..

 

 


..

 

 


다쳐야만 하니까..

 

내가 다쳐야만 진실이 밝혀질수 있는 일이니까..

 

 

 

 

"충주 한장이요."

 


..

 

 


그래서..

 


터미널에 도착한뒤 꿈속보다 더 멍멍한 목소리로..

 

두렵기만 한 그곳의 버스표를 한장 읇조렸을 때엔..

 

 

 


여지껏 이리저리 숨어 지냈던 나의 끔찍한 진짜 그림자가..

 


억지로 반항해오던 가슴과 머리를 아주 세차게 핥아먹고 있음을 느꼈다..

 

 

 

 

 


이젠 피할수도..도망칠수도..부인할수도 없다.

 

 

충주에 들린 후엔 곧바로 서울에 올라 가야 한다...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도로변에서 갑자기 달려와 차 앞으로 뛰어 들었단 말이야!!!!!!!!!!!

 

핸들을 조금만 늦게 꺾었어도 차가 완전히 뒤집힐뻔 했다구!!!!!!!!!!!!!'

 

 

 

 


내 기억에 담긴 무수한 날중 가장 끔찍했던 그 날에.

 

누구보다 넋이 나가있던 할아버지를 향하여 고함을 지르던 그 남자.

 

 

 

그 남자가 살고 있는 충주.

 

 

 

그래..

 


그 충주에서 남자를 만나 모든 사실을 확인한 후에..

 

난 두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던 서울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마지막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

 

마지막 상처를 짋어지기 위해서...

 

마지막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버스 출발 하겠습니다!!!!!!!!"

 

 

 

은찬이에게........

 


하루에게..................................

 


마지막 용서와 안녕을 고하기 위해서..................

 


'아..그 사고 말씀 하시는구나.자살 기도 말씀이시죠..?


2년전에 엄정에서 일어났던..'

 

 


'네....그때 그 남자애 치였던 운전자 주소요...


그게 필요하다구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

 

 

'실례지만. 그때 그 남학생하고 무슨 관계시죠..'

 

 


'연인...'

 

 

'네?'

 

 

'한때엔 위험한 연인사이...'

 

 

 

 

\ 충주.

 

 

 


연인이라는 내 말에.

 

오랜 차트를 뒤적이다 말고 눈을 가늘게 떠보이던 간호사..

 

 


그래.

 

죽을때까지 다신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이곳에..

 

너 때문에..

 

강하루 또 너 때문에 와버리고 말았다...

 

 

 


천천히 낯선 아파트 단지로 걸음을 내딛는 내 손엔.

 

30분 전쯤 충주 병원의 간호사가 건네준 주소지가 들려있고...

 

 

....

 

 

 

조금 전 간호사와의 대화를 천천히 되새기면서..

 

난 연수동에 위치한 낡은 아파트 앞으로 흐리멍텅한 두 눈동자를

 

멍하니 던져 놓았다..

 

 

여기가 그놈이 사는곳인가...

 

하루의 자살 기도 때문에 놀란 고함을 질렀던 그때 그 운전자가 사는곳인가.

 


...

 

 

만약 지금 내 틀리길 바라는 예감이 그대로 적중한다면..

 

그때 그 고함은 영화제의 남우 주연상을 준대도 모자라는 거겠지만...

 

 

 

 

 

 

"무슨 일로 왔어요?"

 

 


그러니까 좀 쉽게 찾아낼수 있었던 101동 앞에서.

 

덩그러니 세워진 그 15층 짜리 건물을 올려다보며 피식 웃고 있는 내가 수상했던듯.

 

 

 

막 입구로 들어가려던 내 앞을.

 

분명 어떤 누군가가 척하니 가로막고 서버렸다..

 

 


...

 

 

.....그래.....

 

나도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니까..

 

 

 

 


"못보던 학생인데?여기 아파트 삽니까??"

 

 

 


손안에 있던 주소지를 바닥으로 구겨 던져버릴때..


이번엔 좀더 분명한 어조로 의심스러움을 드러내는 경비원.

 

 

 

 

"누구좀..찾아왔는데요.."

 

 

 

"누구요."

 

 


"....601호...."

 

 


"아.그 혼자 사는 총각!!?그 총각 지금 없는데."

 

 

 

"...혼자...라뇨..."

 

 

 

"601호면 맞는데.코 옆에 큰 점난 그 총각 말하는거 아냐?"

 

 

 


..코옆에 큰 점..

 

그래..분명 있었지..정신없던 와중이지만 그 붉고 선명한 점만은 기억해..

 

 

그런데 총각이라니....

 

 

총각이라니...?

 

 

그때 분명.....

 

 

옆에 있던 커트머리에 키가 작고 통통한 여자가...

 

 

'여보..그만해요..제발 그만해요..'

 

 

 


라고...

 

 

 

 

"그 총각 없대도 그러네.원체 집을 잘비워"

 

 

"결혼..안했어요..?그 남자 유부남 아니에요..?"

 

 


"아 무슨 소리야.결혼은 무슨.벌써 7년때 여기서 독수공방 하고 있구만."

 

 

 

"......지금...어디 있는데요....."

 

 

 


"나두 몰러.


단지에 경찰들 들락날락 하구 좀 이상한가 싶더니만 외국으로 날랐는지


아니면 어디 두메 산골로 쳐박혔는지."

 

 


"경찰이라구!!!!!!!!!!?"

 

 

 

"귀청 떨어지겠네 참말..."

 

 

 

점점 버거워지는 내 숨소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건지.

 

난 분명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순식간에 굳어 버렸는데..

 

둔하기 그지없는 그 경비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서 등을 돌려 버렸다.

 

 

 

 

 

 


"경찰이 왜요!!!!!!!!"

 

 

 

 

"무슨 사고가 있었는데 조사할게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러구선 그냥 갔어.별일 아닌거 같더라구."

 

 

 


"그 새끼 지금 어딨어요!!!!!!!!!!!!!"

 

 


"아니 근데 이 어린놈의 학생이 아까부터 왜 자꾸 소리를 박박 질러!!!"

 

 

"......."

 

 


"나두 몰러!!뭐 어디 갈때마다 나한테 일일히 보고하구 가는주 알어!?"

 

 

 

잠깐만..

 


잠깐만요..

 


이렇게 끝나버리면 안돼...

 

 

그 남자가 있어야 돼......그 남자가 있어야 확실한 증거를 잡을수 있어......

 

 

 

 


"하이구.날씨두 참.봄이 올랑가 말랑가.


아주 변덕이 죽을 펄펄 끓이네."

 

 

 

 

맥없이 계단위에 주저 앉은 날 스윽 흝어보곤..

 

다시 경비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려는 남자..

 

 

 

그리고 그 순간.

 

단지 앞에 세워진 흰 승용차에..

 

이 변덕스런 날씨만큼 지친 내 시선이 멎어 버렸다

 

 

 

 

 

 


"잠깐만요..."

 

 


"아 또 뭐야."

 

 

 

"잠깐만....잠깐만요...아저씨..."

 

 

 

"뭘 보고 그려."

 

 

 

"저 차................저 차요................."

 

 

 

"뭐"

 

 


"저 차.................."

 

 

 

"하 참.답답해 죽겠네 그냥"

 

 


"저 범퍼 나간 차요!!!!!!!!!!!!!!!!!!!!!!!!!"

 

 


"...-0-..."

 

 


놀이터에서 놀던 꼬마들이 일제히 돌아볼만큼.

 

텅빈 단지 안을 용서없이 울려버린 나의 고함.

 

 

 

나의 시선.

 

나의 기억.

 

 

 

 


"저 차...."

 

 

 


"아.그 남자 꺼여.601호.벌써 두달때 저러구 서있는걸 뭐.

 

아이구 주민들 항의가 말두 아냐.가뜩이나 주차 공간 없...

 

..아니 아가씨!!어른이 말 하는데 버르장 머리 없이 뭐하는 짓이여!!!!!!-0-"

 

 

 

 

끝났어...

 

이제 머리속 정리가 모조리 끝나 버렸어...

 

너무나 어이없이...

 

그 몇년간의 지옥같던 붉은 실타래가..

 

너무도 어처구니 없이 풀려 버렸어..

 

 

 

 


"그러다 넘어지겠네!!!!조심조심 해!!!!!아직 얼음 안녹았어!!!!!!!-0-"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듯 달리고 있는 내가 불안한듯.

 

등뒤에선 낯선 경비원 아저씨의 목소리가 위태위태하게 들려왔지만..

 

 

 

 

아니.

 

멈출수 없다.

 

멈추면 안된다.

 

 

 

지금 내가 달리지 않으면...

 

모든 진실은 이 지구가 녹아 내릴 순간까지 영영 파묻혀 버리고 만다...

 

 

 

 


"죽여버릴거야..............."

 

 

 


아무것도 모른채 얼굴 가득 미소 짓고 있을 그 사람..

 


절대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질러 버린 그 사람.

 


내가 이렇게 달려가고 있을진 꿈에도 모를 그 사람..

 

 

 

 


죽여야 한다...

 

내 손으로 목졸라 죽여버려야 한다.........

 

 

 

 


"낼 드디어 수학여행이네.♡"

 

 

"응.슈퍼부터 먼저 들리자."

 

 

"엄마가 이것저것 사라고 10만원이나 줬어"

 

 


"와.역시 니네 엄마 통 큰거 알아 줘야돼."

 

 

 

왁자지껄...

 

 

 

이젠 마지막 웃음까지 강탈 당해버린 나..

 

그런 나의 옆을 지나치며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여고 생들..

 

 


나에겐 단 한번도 허락된적 없는데..

 

그런 일상의 작고 따뜻한 웃음들...

 


찾으려 하면..달아나고..잡으려 하면 사라지고..

 

 

그래서 나에겐 단 한번도 찾아와 준적이 없는데....

 

 

 

 


"근데 너희들은 참 행복해보이네..."

 

 

 

"뭐야..저 여자..이상해..."

 

 


"당연하다는듯 그렇게 웃고 있네..."

 

 


"야..무서워...빨리 가자......"

 

 

 

숨소리 한번 내지 않고 도착한 시끌벅적한 이곳..

 

 

 

 


'결국엔 왔구나..^-^..'

 

 

 

마음을 쿡쿡 쑤시는 그 비아냥 거림과 함께..

 


반갑게..또는 심술궃게 나를 맞아주는 언제나 빛으로 환한 이곳..

 

 

 

 

"저 교복 참 오랜만이네.................."

 

 

 

여전히 촌스러운 말을 내뱉는 날 거만히 내려다 보며.

 


뉴스와 신문지를 장식할 그 대 사건을 어서 터트리라 부축하는 이곳.

 

 

 

 

\ 서울.

 

 

 

 

"잠깐.전화좀 빌릴수 있나요."

 

 

 


버스 안이다.

 


터미널에서 나온뒤엔 사람들이 북적이던 거리.

 

그 다음으론 살인마에게 가기 위한 버스 안.

 

 

 

 

"아...네...=0=.."

 

 

뒷문 쪽에 서서.

 

창문에 머리를 박은채 그렇게 중얼거린 질문.

 

 

 

 

옆에서 대답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목소리를 듣고도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 못한채..

 

어쨌든 난 핏기 가신 손으로 그 쓸모없는 물건을 건네 받았고...

 

 


...

 


.....

 

 

 

 

젠장..

 

어릴때부터 경찰서에 한번 전화해 보는게 소원이였는데..

 

그래서 일주일에 몇번씩 꿈까지 꾸고 그랬었는데...

 

 

 

'아저씨!!살려주세요!!-0-'

 

 

 

다급히 고함 지르고.

 

늠름한 경찰관을 기다리는게 그렇게도 해보고 싶었는데..

 

...

 

 

 


"네..네..말씀하세요..."

 

 

 

 

이렇게 개같은 경우에 그 세자리 버튼을 눌러보게 될줄이야.

 

 

그것도 하필 피해자가 아니라 범죄자가 되기 위해...

 

 

 

 

 


"여보세요?여보세요??"

 

...

 

 

.....

 

 


이미 쏟아진 버스안의 시선들은 전부 삼켜버린지 오래고..

 


때문에 난 아무거리낌 없이..

 


걱정스러운듯 몇차례 되묻는 건너편 남자 목소릴 향해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네..-0-..?"

 

 

 

"지......금................"

 

 


"무슨일입니까!!!!!"

 

 

 

"사...람...을....하나..."

 

 

 


".....-0-....."

 

 

 

"죽일...거거든.........."

 

 

 

"이..이..이..-0-.."

 


...

 

....

 


중얼..중얼...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그 어처구니 없는 말을 지껄여대면..

 


건너편에서 점점 커져가고 있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

 

 

 

 


"그..러..니까....한시간쯤..뒤에................."

 

 

 

"한번만 더 이러면 공무 집행 방해로 감방에 쳐 넣어 버리줄 알아!!!!!!!!!!!!!!!!=0="

 

 


"........."

 

 

 


뚜..뚜..뚜..뚜...

 

...

 

 

 


"하....."

 

 


뻥인줄 아는건가..

 


이 자식도 내 말이 뻥인줄 아나..

 

 

 


"저..제 핸드폰..주시면 안돼요..ㅠ0ㅠ.."

 

 

 

망설임없이 전화를 끊어버린 남자 때문에..

 

고개를 조용히 가로 저으며 핸드폰을 꾹 움켜 쥐었을때..

 


...

 

 

고개를 덜덜덜 떨며 모든 이들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고 있는 한 사내놈.

 

 

 

 

이놈...한 중학교 1학년쯤 되었을까....

 

 

 

 


"제 핸드폰..ㅠ0ㅠ.."

 

 

"꼬맹아........"

 


"네...ㅠ0ㅠ.."

 

 


"난 지금 내려야 되거든........."

 

 

 

"네.....ㅠ0ㅠ..."

 

 


"근데 경찰서에서 내 말을 안믿네..........."

 

 


"...ㅠ0ㅠ..."

 

 


"그러니까 니가...정확히 한시간후에 신고해줄래...."

 

 


".....뭘..요...ㅠ0ㅠ..."

 

 


"사람이 죽었다고...어떤 여자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

 

 

 

"꼭 부탁한다.저지르고 난뒤엔 나도 모르게 달아나게 될것 같으니까..."

 

 

 

찰칵.찰칵.

 

 

 

내가 동물원 원숭이보다 훨씬 재미 있는듯..

 

 

잠시후 뒷좌석에 앉아 수근대던 놈년들이 날 향해 디카 후레쉬를 터트리면..


...

 

핸드폰을 빌려준 그 꼬맹인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

 

 

 


난 어서 썩 꺼지라는듯 정류장에 못 미쳐 급정거 한 버스 운전기사를 한번 본뒤...

 


다음으론 꼬마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뒤...

 


마지막으로 살인이 일어날 그 주소지를 꼬마에게 짧게 일러준뒤..

 

 

 

'타악.'

 

 

 

 

눈물로 가득차..

 


마치 콕 찌르면 터질것만 같은 팽팽한 몸뚱이를..

 


버스 밖으로 무겁게 던져 나왔다.

 

 

 

 

"지금 갈게.기다려."

 

 

 


전에도 분명 말했지만.

 

이젠 사람과의 대화보다 몇배는 더 익숙해져버린 혼잣말을 지껄이며..

 

 

 

...

 

 

 


\ 도곡동.

 

 

 

 

 

 

"문 열어!!!!!!!!!!!!!다 죽여 버리기 전에 문 열어!!!!!!!!!!!!!!!!!!"

 

 

 

"대체 왜 이래요!!!!!!!!누굴 찾아 왔는지 말을 하라니까!!!!!!!!!!"

 

 

 

"집에 들어 가야돼..그 집에 들어가야 돼!!!!!!!!!!!!!!"

 

 

 

"아 제발 진정좀 하시고요!!!!!!!!!!!"

 

 


...

 


......

 

 

카드가 없인 들어갈수 없는 입구.

 

그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추한 발광을 벌이고 있는 나 한설.

 

 

 

 

 


"제발 문 열어 달란 말이야!!!!!!!!!!!!!!!!!!!!!!!!!!"

 

 

 

"자꾸 이러면 경찰 부를거에요...!!"

 


...


.....

 


굳게 닫힌 유리문을 보며.

 


내가 마구 발버둥을 쳐대기 시작하면..

 

뒤에서 내 어깨를 붙는 경비원이 진땀을 흘려대며 호소를 시작했고..

 

 

 

 

 

"하..시끄러워 못살겠어 정말..당장 경찰 불러 쫓아내요..!!"

 

 


"세상에..동네에 저런 애 출입 시켜도 되는거야..?"

 

 


웅성웅성..

 


어느덧 날 둘러싼 그 잘난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면서..

 

마지막 순간을 위해 꾹꾹 눌러 참았던 내 악을 터트려 버리고 말았다.

 

 

 

 


"너 지금 뭐라 그랬냐."

 

 

 

 

".....어머...?"

 

 

 

 

경비원의 손을 강하게 뿌리친채 고개를 돌리면.

 

그 일미터쯤 떨어진곳에서 귀에 거슬린 말을 지껄이고 만 이십대 후반부 여자.

 

 

 

 

 


"너 뭐라 그랬냐!!!!!!!!!!!!!!!!!!!!!?!!!!!"

 

 

 

"이 쪼끄만게 어디서 반말이야!!!"

 


"...."

 

 

 

"진짜 기분 나빠서..."

 

 


"왜......


나같이 드럽고 가진거 없는애한테 막말 들으니까 기분 뭣같애.....?"

 

 

 

점점 깔려가는 내 음성을 알아 챈걸까..

 


..

 

 

"......"

 

 

 

경비원에게 재빨리 눈치를 해보이며.

 

함께 서있던 사람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하는 여자.

 

 

 

 


"말해봐.............그래서 죽고 싶냐..............."

 

 


"왜..왜이래...."

 

 


"당장 죽고 싶냐........."

 

 


"아우 빨리 경찰 부르라니..!!"

 

 

 

"그래서 지금 니가 나만큼 죽고 싶냐!!!!!!!!!!!!!!!!!!!!!!!!!!"

 

 

 

".........."

 

 

 

 

절규였다...

 


결코 21살의 여자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지만....

 


그건 절규였다....

 


아니..그 절규를 백개도 더 합친것만큼 무시무시하고 끔찍했다..

 

 

 

 


"....거..거기 경찰서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았을때..

 

 

그나마 당당하던 경비원마저 나즈막한 목소리로 핸드폰에게 그 한마딜 속삭였을때..

 

...

 

 

바로 그때...

 

 

 

 

"이게 누구야."

 


..
....

 

 

등뒤에서.

 

맨션 입구에서.

 


그토록 찾아 울부짖던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나의 사고 회로를 일순간에 정지 시켜 버렸다......

 

 

 

 

 


"난리가 났다고 해서 결국 내려왔지만.


난리라기엔 좀 약한데..


주먹 싸움도 없고.흐르는 피도 없고."

 

 


"....."

 

 

 

 

멍하니..

 

그리고 아무런 감정없이..

 


천천히 돌린 고개 위로 빙긋 미소를 짓고 있는 끔찍한 괴물 한마리..

 

..

 

 

 

소름돋도록 역겨운 괴물 한마리..

 

 

 

 

 


"안녕.............살인마..........................."

 

 

 


우리 두사람 사이에 그 누구도 알아챌수 없는 시선들이 오가고.

 

그 지독한 시선 속에서 괴물을 향한 내 첫인사가 건네졌을때..

 

 

 

 

 


"안녕.멍청이 아가씨."

 

 

 

 


그녀는 그 천연덕스러운 한마디를 던져 놓은채.

 


어서 들어가자는듯 열린 맨션 입구를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

 

 

 

 

 

마치..

 


죽어도 나에게 만큼은 항복할일 없을 거라는듯.

 

 

 

 


"2년만이지 우리.?"

 

 

 

 

\ 도곡동.

 

 

 

 

모르는거냐.

 

아니면 모른척 하는거냐.

 


내가 지금 이 집에 온 단 하나뿐인 그 사실.

 

애써 부인 하는거냐.

 

아니면 정말로 알아채지 못한거냐..

 

 

 

 

 


"너 그렇게 말도 없이 가버려서 모두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

 

 

 

"하루 얘긴 들었으려나?지금 시간이면 아마 재활 치료 받고 있을텐데..

같이 가볼래..?"

 

 


"어떡할까 나.다 알아버렸는데.."

 


"아..은찬이앞엔 가급적 나타나지마."

 

 

 

 

피식...

 

 

어처구니 없는 내 웃음의 의미를 끝까지 부인하며...


긴 쇼파위로 피곤한듯 몸을 누이는 마녀.

 

...

 

 

그동안 더 창백하게 아름다워진 마녀........................

 

 

 

 


"어쨌든 말야.오늘 이렇게 왔으니..."

 

 

"나 오늘 왜 왔는지 알아."

 

 


"글쎄다.표정을 보니까.."

 

 

"당신 죽이러."

 

 

 

 

단호한 그 한마디와 함께 내가 쇼파 앞으로 천천히 다가서자.


마녀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이마에 손등을 가져댔고...

 

그에 난...

 

충동적으로 튀어나가려는 거친 손을..

 

일단 모든 얘길 다 듣고 시작하자며 그녀 모르게 타일러야 했다..

 

 

 

 


"날 죽인다.....흐음....


한참 어린 여자 손에 죽는것도 결코 나쁘진 않겠네..^-^.."

 

 

 

"연기 그만해."

 

 


"무슨 연기를 말하니.?"

 

 


"세가지."

 

 


"........"

 

 

 


"당신이 남긴게 정확히 세가지였어.

그것도 제대로 된 결정타."

 

 

 

 

그러니까 이제부터 긴장 좀 해야 될거야.


나 당신이 생각하던 만큼 멍청한 년은 아니거든..

 

 

 

 

"세가지라.무슨 쫓기는 범인이 된 기분이네."

 

 


말은 그렇게 태연하면서도 내심 불안한듯..


쇼파 위로 상체를 일으키는 마녀..

 

 

 

 

"바람잡이를 고용하려거든.


산골 구석에 평생 박혀 살 사람을 택하는게 기본이지 .


안그러냐?^-^"

 

 


"흐음.원래 말투가 점점 나오는구나.


그동안 내가 잘해줬던 은혜를 까맣게 잊고서."

 

 


"아님 바람잡이 역활이 끝나자마자 잽싸게 외국으로 내보내주던지."

 

 


"어디서 꿈이라도 꾸고 온거니?"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나를 천천히 흝어내리는 마녀의 갈색 눈동자.

 


...

 


덕분에 더더욱 부풀어 올라가는 내 거친 증오들.

 

 

 


"제주도 공항에서 나한테 하루 떠나라던 거지 할머니.


연극 무대에서 너구리 분장하고 끝내주는 명연기를 펼치던데."

 

 


"뭐?"

 

 

 

"아무리 그래도 연극배우는 너무 대담했어.


아님 날 죽을때까지 극장 한번 안갈 문외한으로 생각했나.."

 

 

 

"하...정말 너구리 같은 소리나 하고 있구나..."

 

 


"처음부터 그 목적으로 당신이 준비 한거라며.


제주도 비행기 티켓.


할아버지한텐 애들 고생했으니 머리나 식히라고 말하며..


선심쓰듯 베푼거였다며."

 

 

 


"그래.분명 내가 분명 그 티켓을 주긴 했지.


그런데 넌 그 호의를 이렇게 무시하니....?


할머니라니..난 모르는 사람이야.."

 

 

 


"당신이 시킨거잖아...


하루한테 나 떼어놓으려고 당신이 시킨거잖아!!!!!!!!!!!!!!!"

 

 


참아야 했는데 터지고 말았다..

 

벌써 이러면 지치고 말텐데...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버젓이 남아 있는데..

 

 

 

 


"아....이래서 잘해주는게 아니였는데....


역시 처음 느낌은 틀리는 법이 없어.."

 

 

 


그리고 여전히 차가운 미소를 간직한 마녀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쇼파위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치 아이를 다루는 능숙한 유치원 선생님같은 표정으로..

 

 

 

"그렇지.처음 느끼는 법은 틀리는 법이 없지.


최악인 당신은 여전히 최악이야."

 

 


"그래서.그게 대체 어쨌다는거니."

 

 

 


"이제 두번째."

 

 


".........."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당신이 왜 티켓값을 버려가면서 그런 허접한 연극을 시켰을까.


대체 왜 내가 하루 옆에 붙어 있는걸 그토록 끔찍해 할까....


그래서 얼른 2년전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

 

 

 


"번호만 바꿔서 문자 사기 치려거든.


그사람 어투까지 확실히 알아 놨어야지."

 

 

 

왼손에 꼭 움켜쥐고 온 핸드폰.


그래.그 핸드폰이 떨리는 손에 의하여 펼쳐져 버리면..


코앞에 들이대어져 있는 액정화면을 보곤..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마녀의 깊은 두 눈동자.

 

 

 

 

"삼월 구일.오후 여덟시 십오분 도착.


오늘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오기 위했던 이용 도구.미안해"

 

 


"마치 지금 니 말은..


내가 사고를 냈다는것처럼 들리네."

 

 

"입 다물고 들어.한마디만 더 했다간.


이 이상의 대화 없이 당신 죽여버릴지도 몰라."

 

 


"맙소사..경찰이라도 불러야 겠군..."

 

 

 

"삼월 팔일.오후 세시 도착!!!!!


나 심심헤...!!!"

 

 

 

 

나의 언성이 조금 더 높아 지자.


그녀는 가족 사진 하나 없는 휑한 벽을 향하여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때문에 내 혈압수치는 점점 올라가 버려서..


이젠 도저히 억제 할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삼월 육일.오후 두시 반.뭐헤 한설"

 

 

"그래서."

 

 

"삼월 육일 오후 12시 반 도착.나 수업헤.조금만 기다려"

 

 


"아하..."

 

 


"삼월 오일 오후 네시 도착!!!!!!!!!!!!!!!!!


미안헤!!!!!!!!!좀 늦겠다!!!!!!!!!!!!!!!!!!!!!"

 

 

 


"너 설마 맞춤법 말하니?고작 그런것 가지고 여지껏 이 법석을 떤거야??"

 

 

 

"사고 당일 온 문자만 달랐어!!!!!!!!!!!!!


그 문자만 제대로 적고 나머진 다 달라!!!!!!!!!!!


왜!!!!!!!!!!왜!!!!!!!!!!!!!!?하루가 쓴게 아니니까!!!!!!!!!!!!


그 문자 하루가 보낸게 아니니까!!!!!!!!!!!!!!!"

 

 


터져나갈듯한 고함소리.

 

점점 빨라져가는 맥박소리.

 

한계에 다다른 눈물소리...

 

 

 

"그럼 내가 보냈다는 증거라도 있어?


행여 하루가 쓴게 아니라면.하필 내가 썼다는 증거가 있냐구"

 

 

 

"하...."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 상황에서도 당신이 이렇게 나온다면.

 

더이상은 일퍼센트의 아량도 베풀어 줄수가 없어요...

 

 

 

 

"좀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

 

 


"그날 통화 기록 조회하면 다 밝혀지겠지.


물론 그땐 내가 당신 죽여버린 뒤겠지만..."

 

 

 


"죽여?니가 날?"

 

 

"그놈 사고나기 2시간쯤 전에 나랑 통화하다가..


전화가 온다면서 끊었었거든.."

 

 

 


"..."

 

 

"그거 당신이잖아.

 

하루 사고 장소로 불러내려고 당신이 전화한거잖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대체 어떻게 내가 그 사고를 벌인거라고 생각하니?"

 

 

 


이젠 피하지 않는다 이 여자..


당당히 맞서 상황을 즐기고 있다..

 


더 정확한 이유를 들어보라고..


그래서 자신이 진다면 깨끗히 두손 들어주겠다고..


그런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서...


미칠듯 떨리는 내 까만눈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그래 좋아.


당신이 원한다면.

 

그 변태같은 즐거움 느낄새 없이 지금 바로 날려줄게.

 

마지막..

 

이제 정말 마지막..

 

 

 


"세번째."

 

 

"...."

 

 


"당신은 모르겠지만.은찬이 따라서 당신 집 앞에 온날이 있어"

 

 

"그래.그건 좀 설득력 있구나.일단 나와 직접 관련이니까."

 

 

 

"그놈이 당신한테 돈 전해준다고 이 집에 들어오고.

난 그 앞에 서서 기다렸었지."

 

 

"그래서"

 

 


"그런데 은찬이 들어가고.

이 맨션에 맞지 않는 왠 허름한 차 한대가 그 앞에 멈춰섰어"

 


"....."

 

 


이제 알겠냐.

 

내가 이기고 있어.

 

당신 똑바로 바라보며 죽이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큰 용기 내버렸어.

 

 

 


"참 다행이지"

 

 


"..."

 

 

 

"당신이 내린 그 차.


번호판이 죽은 내 남동생 생일이랑 똑같았거든"

 

 

 

"..."

 

 

 


"공.이.이.사.


그래서 선명하게 이 무식한 대갈통에 남아 있었지.


잊지 않고 공이이사.


단 한번에 공이이사.


다른 번호였으면 절대 기억할수 없었을텐데.


하늘에 있는 유민이가 날 도운건지.아니면 날 벌준건지."

 

 

 


"그래서 결론은."

 

 

 


"지금 그 사고낸 새끼 집에 갔다오는 길이야.


버젓이 확인하고 오는 길이야.


공.이.이.사. 공.이.이.사.


확실히 이 두 눈에 박아놓고 오는 길이야."

 

 


"....."

 

 

 

후우..

 

 

마녀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나온다...

 


그러면 억지로 구겨넣었던 내 진짜 얼굴이..

 

미처 말릴새도 없이 밖으로 튀어 나와 버린다..

 

 

 

 

"죽어."

 

 

 

"........"

 

 

"당신도 죽어."

 

 

 

"보기보단 쓸만하네.6년째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걸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발견해버리다니."

 

 

 


"6년."

 

 


"강주원과 박윤영 말이야."

 

 

하...

 

그래.....

 

 

 

"예상하고 있었다."

 

 


"은찬이한테도 말했니?"

 

 

"....."

 

 


"어차피 니 손에 죽을 목숨.


그애한텐 알리지 말아줘.착한 엄마는 한번도 된적 없지만 미치광이 엄마 또한


되기 싫으니까"

 

 

 

"....."

 

 

 


입술이 떨어지질 않아서..

 

맞은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

 

 


윤영이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는...

 

꽉 올려 묶은 머리에서부터 무서울만큼 닮아있는..

 

그래서 똑같이 울부짖는...

 

똑같이 죽어가는.....

 

 

 

 


"어차피 다 밝혀진 마당에 뉴스에 이름 오르고..

 

또 사람들 손가락질 받으며 교도소에서 썪느니.

 

차라리 니 손에 죽는게 나아"

 

 

 


"그 사람들도......당....신..아들이잖아...."

 

 

 


"그래야 나도 죽고 너도 망가지지.


내 인생 망가트린 너 혼자만 멀쩡하면 내쪽이 억울하잖아?^-^"

 

 

 

 

"강주원 강하루도 당신 아들이잖아!!!!!!!!!!!!!!!!!!!!!!!!!!!"

 

 

 

"걔들이 왜.?


내 배로 낳은건 강은찬 하나야.나 그런 애들 낳은적 없어"

 

 

 

 

천천히..천천히..

 


주방쪽으로 뒷걸음질치며 빙긋 미소를 짓는 마녀..

 


그리고 천천히..아주 천천히..

 


그 마녀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고 있는 한설..

 

 

 

 

 

"뒷 얘기도 안듣고 그냥 죽여 버리게?


그러기엔 그간 아팠던 세월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왜.........................."

 

 

 


"강씨 집안 그 누구에게도 털끝만큼의 미련.애정.사랑.없어.

 

단지 돈 때문에 결혼 한거고.


그 전 부인 떠난 빈자리 꿰차려고 은찬이 임신한거니까.


물론 그건 애아빠랑 나만 아는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래서 난 은찬이에게도 아무런 감정 없어"

 

 

 

 

"단지..그게..다는 아니지..."

 

 

 

 

"단지 그게 다야."

 

 

 

"......"

 

 

 

 

싱크대에 기대선 마녀.

 

조금의 죄책감도 없어 보이는 마녀.

 

오히려 날 동정하듯 빙그레 웃음짓고 있는 마녀.

 

 

 

 

 

 

"이혼 하더라도 내 친 아들 은찬이가 회사 물려 받아야 하니까."

 

 

 


"단지...그 이유가 다는..아니지..."

 

 

 

"그럴려면 첫째 아들이 없어야 하잖아."

 

 


"........."

 

 

 


"그런데 어떡하지.기껏 트럭 운전사한테 거금을 주고 일을 벌렸더니.


그 첫째 아들놈은 살아남고 대신 옆에 타있던 여자친구가 죽어버렸으니.."

 

 

 

단지 그것 때문에..


돈 때문에..권력 때문에...


윤영이가 죽고..강주원이 다리가 부러지고..


하루가 다치고..은찬이가 이용 당하고..


또 내가......


내가...

 

 

 

 

"어쨌든 주원이가 불구 된것만도 충분했어.


그 상황으로 회사 경영은 도저히 무리니까."

 

 


"...."

 

 

 

"근데 한번에 모든걸 해결할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어요."

 

 

 

 

나에 의해서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무너진 마녀는..


정신이 돌아버린듯...


아니면 정말 내 손에 죽을 생각인듯..


여지껏 볼수 없었던 실소를 터트리며 싱크대 위에 놓여있던 칼 한자루를 꺼내들고..

 

 

 

 

"...."

 

 

 


다음에 이어질 말이 그 칼보다 더 뾰족하리란것을 알고 있는 난.


조용히 두 귀를 막으며 마지막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죽은 여자애가 하루의 애인이였지^-^.


그 뒤로 하루는 몇번이고 자살을 시도하다 애 아빠한테 애원 받고.또 뺨도 맞고."

 

 

 

정말로 지옥이 있다면.


저 여자랑 나 함께 지옥으로 떨어트려 주세요..


영원히 증오하고 미워할수 있도록..


꽁꽁 묶어 지옥으로 같이 보내주세요..

 

 

 

 


"가만 있으면 알아서 곧 죽어줄 상황이였는데...."

 

 

"..."

 

 

 

"그런데 그 여자랑 꼭 닮은 니가 나타났어.


덕분에 하루한테도 어두운 그늘이 천천히 없어져 버렸지..


말도 안돼.그게 얼마나 절묘한 우연 이였는데 말야."

 

 

 

 


아니요..하루랑 은찬인 말구요..


그놈들은 하늘이요..

 

윤영이가 웃고 있을 하늘이요...

 

 

 

 


"어떻게든 떼어놓려고 갖은 애를 다 썼는데...


참 끈덕지게도 안떨어지더구나...


조폭들에..뉴질랜드..제주도..사진까지..


성격에도 안맞는 조잡한짓들을 얼마나 되풀이 했는데..


이제 그 이상한 행동들이 좀 이해가 가겠니.?"

 

 

 

 

"이제 곧 죽을 사람........말도 참 많네......"

 

 

 

 

"니 눈.처음 봤을때부터 기분 나빴어.


하루보다 훨씬 더.소름돋고 넌덜머리가 났어."

 

 

 

 

"유언 다 끝났나...."

 

 

 

"이런 형편없는 애 때문에 다 무너지다니.."

 

 


툭..

 

 

죽음이 두렵지 않은듯..

 

혹은 정신이 나가버려 아예 눈에 뵈는게 없는듯..

 

칼 손잡이 부분을 내 왼손위로 가만히 내려놓는 마녀.

 

 

 

 

"치워."

 

 

"..."

 

 

"복수를 하는건 칼이 아니야."

 

 

"은찬이..."

 


"내 손이지."

 

 

 

콰당...!!!!

 

 

 

비명도 없었고.


고함도 없었다..

 

 


그냥 난 마녀를 바닥으로 세차게 밀어 넘어트렸을 뿐이었고..

 

다음은 그 위에 올라 두 손으로 목을 꽉 움켜잡은것 뿐이였다...

 

 

 

"하..."

 

 

 


그리고 마녀는 가느다란 신음을 내쉬면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다음에 일어날 마지막 순서를 기다렸다.

 

 

 

"내가...하나만 말해줄까........."

 

 

 


톡..톡..

 

이젠 숨을 쉬는것보다 더 익숙해진 그 눈물들이..

 

까맣고 건조한 뺨위로 흘러내려..

 

마녀의 하얗고 창백한 얼굴위로 떨어져 내리면...

 

 

 

..

 

"...."

 

 

 

아무 대답없이..

 

 

괴로운 표정 하나 없이..

 

자꾸만 은찬일 떠오르게 하는 슬픈 눈을 천천히 치켜뜨는 마녀.

 

 

 

힘이 풀어진다..

 

나도 모르게 아주 잠깐..

 

은찬이와 꼭 닮은 그 모습에 오른손의 힘이 조금 느슨해져 버린다.

 

 

 

 

"은찬이도 알아.........


당신이 단지 결혼을 목적으로 자기 낳은거 알아...............


모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바보도 다 알아.............."

 

 

 

"........."

 

 

 


"이용당하는게 익숙하다는말...........


당신이 은찬이한테 만들어준 말이야...........


생판 모르는 남조차도 차마 하게 할수 없는 말...


부모인 당신이 그놈한테 새겨준 말이야.........."

 

 

 

"으......으...."

 

 

 

 

가느다란 마녀의 신음소리...


그리고 동시에 더욱 그 목을 조이는 나의 왼손.

 

 

 

 


"있잖아요..마지막 가는 마당이니까 정중하게 존댓말 써줄게.."

 

 

"...."

 

 


"하루 우는거 한번이라도 본적 있어요...?"

 

 

"...."

 


"은찬이 눈물..한번이라도 본적 있어요....?"

 

 

 


아무 대답없이 더욱 눈을 부릅뜨는 마녀.

 

이젠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똑바로 내 눈을 올려다보는 마녀..

 

 

 

 

"걔들이 울때 어떤 얼굴로 우는진 알아요.....?"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내 목소리.

 

 

 

 


"걔들이 세상에서 의지할땐 부모밖에 없었다는건 알아요...?"

 

 

 

"........."

 

 


"눈 감아요........"

 

 

"............."

 

 


"눈 감아....."

 

 

 


멍청이 되풀이 되는 내 중얼 거림에..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우며 더더욱 눈을 부릅 떠 보이는 마녀..

 


....

 

 

 

"눈 감아......."

 


"......"

 

 

 

 

왜 하필 눈이야..왜 하필 눈이 빼닮은거야..

 

차라리 목소리면...말투면...손가락이면 좋을텐데..

 

어째서 이 두눈이 똑같이 닮아 있는거야..

 


...

 

 

안돼..

 


흔들리지마.한설.

 

전혀 달라....

 


이 여자..은찬이에게 애정도 사랑도 단 일퍼센트 없다는 지독한 여자야..

 

 

.....

 

 


죽여..


그러니까 내 손으로 죽여야 해..

 

 

 


"눈 감아!!!!!!!!!!!!!!!!!!!!!!!!!!!!!!!!!"

 

 

 


처절한 몸부림..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온 체중을 두 손에 실어 커다란 고함으로 마녀의 목을 짓누른다.

 

 

 


"......."

 

 

 

그러자 그녀는...

 

여전히 괴로움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서...

 

죄 지은 사람 치곤 너무도 편안히 두 눈을 감아 보이고...

 


...

 

 

 


바로 그때....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

 

 

 

거실에서 조용히 울려퍼지는 전화 벨 소리.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

 

 

 


처음엔 조용히..

 

그러다 점점 크게..

 


결국은 울부 짖듯..

 

 

 


"잘가라......


조만간 지옥에서나 보자......"

 

 

 


그리고..


나의 넋나간 그 한마디가 붉게 터져 나갈것 같은 마녀의 얼굴위로 쏟아질때..

 

 

 

'찰카닥.


지금은 부재중이오니.삐소리가 나면 음성을 남겨주세요'

 

 

 

거실에선 안내원의 그 목소리가 전화기 위로 울려 퍼지며.

 

끔찍한 내 두 손을 잠깐동안 멈추어 버렸다.

 

 

 

...

.....

 

 

"나..은찬이.."

 

 

 

그랬기에..

 

다음으로 흘러나온 놈의 목소리는..

 

날 아무것도 할수 없는 패닉상태로 만들기 충분했다...

 

 

...

 

 

잔뜩 메인 목소리..

 

가쁜 숨에 묻혀 잘 분간할수 없는..

 

그만큼 힘들어 보이는 은찬놈의 목소리..

 

 

 


"나 또 아프다....."

 

...

......

 

 


"나 아프다...."

 

 

 

끊어..강은찬...

 

당장 전화 끊어...

 

 

 

 

 

"엄마가 그 멍청이 금방 돌아 올거라고 그랬었잖아....


일년안에 올거라고 그랬잖아..."

 

 

....

 

.......

 

 

 


"근데 왜 이렇게 안오지...."

 

 


바보냐...

강은찬 너 바보냐....

 

 

 


"아니..오늘은 이거 말하려고 한거 아닌데..


아무튼...지금은 아빠랑 남남이여도...


가끔 집에 들리고 그래...."

 

 

 

"........."

 

 

 


"아픈데 옆에 아무도 없으니까....


더럽게 슬프다........."

 


...

.......

 

 

 

혼잣말에 가까운 숨차오는 그 한마디와 함께..

 

놈은 드디어 수화기를 내려 주었다..

 

 

 

 

그러면 난....

 

 

놈의 그 말처럼 영락없는 '멍청이' 이 되어버린 난..

 


마녀의 가느다란 목을 꽉 움켜 잡았던 두 손을 힘없이 내리며..

 

얼굴을 돌린채 눈물을 흘리는 마녀에게...

 

증오를..원망을..애원을..떨구기 시작했다..

 

 

 

 


"저 바보....


무턱대고 사람 믿는게 취민가봐...."

 

 

 

"........"

 

 

 


"아줌마..은찬이 아프대..............."

 

 


"........."

 

 

 

"그래서 아줌마한테 전화했대............"

 

 


"....."

 

 

 

툭..툭..

 


마녀와 나의 눈물이 한데 뒤섞여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적시고..

 

 

 

 


"이제...우리..다..어떡해....?"

 

 

"......"

 

 

 

"우리 어떻게 살아.....???"

 

 

 

".........."

 

 


"이제 우리 어떻게 살아!!!!!!!!!!!!!!!!!!!!!!!!!!!!"

 

 

 

 

이번엔 목이 아닌 그 멱살을 움켜 잡아 올리고서..

 

난 멍한 마녀의 눈안에 은찬이와 꼭 닮은 그 고함을 던졌다..

 

 

 

 

"으흡...으......


으으으응.........읍......."

 

 


그러자 그녀는..

 


이 순간 어쩌면...나보다 더 살고 싶지 않을 그녀는..

 

내 어깨를 꽈악 움켜잡은채..

 

죽을 힘을 다하여 꾹꾹 눌러 참았던 흐느낌을 토해냈다.

 

 

 

 

"흐으으......................으으....

으으읍...으으으..으읍.........."

 

 

 


반쯤 벌어진 입..

 

생각이란 생각들은 모조리 빠져나간 텅텅 빈 머리..

 


....

 

 

힘없이 마녀의 어깨를 밀어내려 하는 두 손..

 

그러나 자꾸만 제자리 걸음을 하는 두손..

 

 

 


"윤영이가....그놈들이....얼마나 약한데...................


나랑은 다른데....나랑은 다르게 참 약한 애들인데............


상처에 면역 없어서...그래서 얼마나 버텨내기 힘든데....."

 

 

 


"으어...으..흐......흐흐...."

 

 

 


"단지 돈 때문에.......


그 예쁘고 착한 애들 사랑......다 죽이면 어떡해....."

 

 


"......흐..으.."

 

 

 


"돈 때문에...


단지 돈 때문에.........."

 

 

 

쾅쾅쾅쾅!!!

 


쾅쾅쾅쾅쾅쾅!!!!

 

 

 


눈물을 이기지 못해 바닥에 쓰러져버린 마녀...

 


제발 좀 멈춰 달라는듯..

 


숨을 헐떡이며 내 옷깃을 쥐어 뜯기 시작하고..

 

 

 

 

"문 열어!!!!!!!!!!!!!!문 열어!!!!!!!!!!!!!!!!"

 

 


난 문밖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목소리를 눈물 산 속으로 흔적없이 묻어 버리고...

 

 

 


.........

 

..............

 

 

 


"어이.이형사.경비실 가서 열쇠좀 달라 그래.


아니아니.열쇠..!!


됐다..!!내가 갔다 올게!!!넌 여기서 꼼짝말고 서있어!!!!"

 

.....


.........

 

 


거울아..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슬프냐...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가엾냐......

 

 

 

 


윤영이..하루..은찬이..한설..할아버지..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프고..누가 가장 불쌍하냐..

 

 


끝으로...

 

손자국이 선명히 베긴 마녀의 목을 내려보며..


정답없는..멍청하기 그지 없는 질문을 되뇌이며..


이 끔찍한 세상을 외면하며....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여기요.김형사님.통화 기록 다 조회 해 왔습니다."

 

 

 

"어디 보자...."

 

 

 

"아이구.그나저나 이 여자 진짜 악질이네.


가족 청부 살인은 종종 있어도.


부모가 자식한테 하는건 눈씻고 찾아보기가 힘든데 말야.."

 

 

 

"음..2005년 3월9일 여섯시 십분..


옳지.강하루랑 통화한 기록 있구만...."

 

 

 

"어떡할까요.애들 아빠 지금 오라고 할까요?"

 

 

 

"그건 아까 벌써 통보 했고.


그 사고낸 운전자 두놈 당장 소환해."

 

 

"아.근데 이놈들이 당최 연락이 안되서...


네.알겠습니다!!"

 

 


"가정부 여자도 가담 했다고 하니까 그 여자도


끌고 오고.아.연극배우라던 노인네랑.충주 사고때 운전자 옆에서 아내 연기한 여자도."

 

 

"네.!!"

 

 

 

"아..대체 이거 몇놈을 끌어들인거야..이 여자..


어이..이봐..당신 대체 무슨 깡다구로 그랬어?엉?"

 

 

 

 

 

\ 경찰서.

 

 

 

 


구토 증세가 또 시작되고 있다.

 


그래서 입을 틀어 막은채 마른침을 몇번이나 되 삼키는 중이다.

 

 

 

 

눈앞에 앉아 있는건 피부가 유달리 하얀 형사..

 

그리고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

 

 


"......"

 

 

 

 

물론 옆에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건 마녀.


아직도 나에게 눌린 목이 아픈듯.

.

간간히 기침을 하며 똑바로 형사를 응시하고 있는 마녀.

 

 

 

 

"아.근데 이 여자가 뭘 잘했다고 이렇게 당당히 쳐다봐!?"

 

 

"내가 말 안해도 알아서 조사 잘 하잖아."

 

 


"뭐...?"

 

 


"말할 기운 없어.니들이 알아서 만들어내."

 

 

 

"이 여자가 나보다 나이 많아 보여 끝까지 눌러 참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형사에..

 

마녀는 퉁퉁 부운 눈을 살짝 찡그리며 코웃음을 쳐보이고..

 


"우욱......."

 

 

 

 

난 고개를 아래로 떨군채.


자꾸만 터져나오려는 증오섞인 구토를 삼켜 내는데..

 

 

 

 

"저.김형사님.강하루요."

 

 

 

곧바로.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머리위의 그 한마디.

 

 

 

 


"어.증언 해야 되니까 오라 그래"

 

 

"근데 그 학생이.기억을 전혀 못한다는데.."

 

 


"뭐..?"

 

 

 

"사고때문에 머리가 심하게 다쳤대요.


근데 다리도 좀 문제가 있어서..지금은 우성 재활 센터 있다는데..


치료 끝나고라도 오라고 할까요?"

 

 

 

 

"아..나 미치겠네...그럼 강주원은.."

 

 


"네.이제 곧 올....


어..!?!어!!!!!!!!!!-0-저 여자 도망간다!!!!!!!!!!!!!!"

 

 

 


"아니 저 여자가!!!!!!!!!!!-0-"

 

 

 


우성 재활 센터..

..

 


그래..니놈들 말 한번 잘했다....

 


우성 재활 센터...

...

 

 


게다가 다리라니...

 

 

 

 

"저 여자 잡아아!!!!!!!!!


못나가게 붙들어!!!!!!!!!!!"

 

 

 

금방이라도 기절 할것 같았던 내가.

 

아주 갑작스레 튀어올라 문을 향해 돌진하자..

 

당황한 형사는 경찰서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고..

 

 

 


"아니-0-이러면 안돼요!!!"

 

 

 

그에 서 안에 있던 경찰들과 민원 상담원들이 두 팔을 벌린채 우왕좌왕 하며..

 

커다란 대 혼란을 빚어내고 말았다..

 

 

 

"증언이 끝나고 가야죠!!!!


이러시면 안되죠!!"

 

 


"비켜!!!!!!!!!!!!!!"

 

 

"아이쿠!!!!!!!!!!=0="

 

 

 

문가에 다다라.

 

내 옷깃을 움켜 잡는 남경관.

 

그리고 젖먹던 힘을 쥐어 짜내 그 경관을 힘껏 밀어젖힌 한설.

 

 

 


"세상에!!!야생매가 따로 없네!!!


잡아!!!잡아 잡아!!!!"

 

 

 


등뒤를 쩌렁쩌렁 울리는 그 기쎈 형사의 목소리에.

 

난 차도에 뛰어들수도 있을것 같은 심정으로 재빨리 경찰서를 튀어 나왔고..

 


...

 

 

 


"나 원 참!!어이!!학생!!미쳤어!!?"

 

 

 

끈질기게 나를 따라오는 젊은 경관들을 아주 잠깐 바라보다가.

 

망설임없이 그 바로 앞에 있는 혼잡한 차도로 정말 몸을 던져 버렸다.

 

 


'빵빠앙!!빵빠아앙!!!!!빵빵!!!!!!'

 

 

 

그러니..

 

당연히 그 도로위 차들은 난리가 날수밖에 없는 일..

 

 

 

"저게 죽구싶어 환장을 했나!!!!!?!"

 

 

 


그래.나 미쳤다.

 

이 순간부터 제정신이길 완전히 포기 해버렸다.

 

그러니까 미친년 맛 끝까지 좀 지켜 봐라..

 

 

 


"어어!!?어어!!!?!!-0- 얘가 왜 이래!!!!!!!"

 

 

 


차도 한가운데 뛰어든 내가..


점점 커지는 운전자들의 욕설을 가볍게 흘리며 저질러 버린짓.

 

 


"태우면 안돼요!!!!!!!"

 

 


봉을 휘두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순경을 한번 보고.

 

날 향해 젤 거친 욕설을 지껄이던 운전자 차 안으로 대뜸 올라타 버린짓.

 

 

 


"너 안내려!!?안내려!!!?"

 

 

 


하아..


이제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구토들에 안심을 하며..


윽박지르는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집어 던지기 전에 내려어!!!!!!!!"

 

 

 


사십대 후반가량으로 보이는 여자는.


걸걸한 목소리를 토해내며 갓길로 차를 정차시키려 했고.

 

 

 

"아줌마 제발요."

 

 


"대뜸 뭐하는 짓야!!!?보니까 경찰에 쫓기는애 같은데!!!!"

 

 


"죽을지도 몰라요!!!!!!!"

 

 

"...-0-...뭐뭐....?"

 

 


"그애 당장 안보면 온몸이 다 터져서 죽을지도 모른다구!!!!!!!!!"

 

 

 


이내 내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란것을 깨닫고는.


빠르게 달려오는 경찰관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안돼요 아줌마...."

 

 

 

"보아하니 지금 제정신이 아닌거 같은데...일단.."

 

 

"아직도 내 말이 농담 같아요..?"

 

 

 

싸늘히 식어버린 목소리와 눈동자.

 

 

 

"그러니까!!!!왜 하필 내 차야 그래!!!!!!!나 아느냔 말야 학생!!!!!"

 

 


"아줌마가 출발 안하면 나 죽고."

 

 

"아이구 돌아버리겠네."

 

 

"아줌마가 출발 하면 나 살아요"

 

 

"하..참.."

 

 


"나 좀 살려줘요..."

 

 


통한걸까..

 

알아 들은걸까..

 

 


간절한 나의 그 한마디에..

 

문득 심각한 눈이 되어 나를 천천히 흝어내리는 여자.

 

 

 

 

"나 딱 한번만 살려줘요......."

 

 

"....."

 

 

"참고로 나 농담 같은거 해본적 없어요."

 

 

"휴......"

 

 

"여지껏 단 한번도.그리고 앞으로 단 한번도"

 

 

"...어디야..."

 

 


"...."

 

 

"가는데 어디 냐구!!!!!!!!!!!"

 

 

...

.......

 

 


경찰이 막 창문을 두드릴 무렵.

 

나에게 신경질적인 그 한마디를 던져 놓고선..

 

 

 


"....우성..재활 센터...


고마워요..아줌마...."

 

 

 

 

이내 멍청히 새어나온 나의 대답에..

 


성격대로 화끈하게 엑셀을 지저 밟는 아줌마.

 

 

 


"거기 스란 말이야!!!!!!!!!!!!!!!!!-0-"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도...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친절하게도...

 

 

 


"우으으으윽.."

 

 


여자는.

 

난폭하고 거친 40대의 여자 운전자는..

 

차가 강북에 위치한 우성 재활센터로 가는 내내..

 

다시 또 치미는 구토를 삼키는 나에게..


까만 비닐 봉지 하나를 건네 주었다..

 

 

 


"참 많이도 했네..."

 

 

 

덕분에 그 가볍고 하늘대던 비닐봉지가...

 

지금 내 마음만큼이나 묵직하고 더러워져 버렸지만..........

 

 

 

 

 

\ 상계동.

 

 

 

 


끼이이이이익!!!

 

 

 

 

"이런.길이 아주 엉망이네.."

 

 

"...."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까부터 눈에 밟혀오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턱없는 여자는..

 

이제껏 해온 운전보다 몇배는 더 요란스레 차를 정차 시키고..

 

 

 

"여기 맞지.우성 재활 센타"

 

 

 

 

이내..

 

멍하니 창문에 손을 가져댄채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나에게..

 

퉁명스레 그 한마디를 던져 놓았다..

 

 

 

'우성.제활 센터.'

 

 

8층쯤 되보이는 큰 건물..

 


앞에는 환자들의 산책로가 있고..

 

 

창밖으로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벌써 다섯명째..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듯..

 

파란 페인트칠이 반짝반짝 빛나는 생소한 건물..

 

 

 


"아 빨랑 내려!!!!!!!!경찰 따라붙기 전에!!!!!!!!!!"

 

 

"......"

 

 

"나참.나이 마흔 넘기다 보니 별 희안한 일을 다 겪네....


....안내려!!!??!"

 

 


"고맙습니다!!!!!!!!!!"

 

 


"에구 깜짝이야!!!-0-"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얼레..-0-..."

 

 

 


시트에 머리를 쿵쿵 박아가며 연달아 인사를 시작하면..


여자는 황당무지한 표정을 한채 나를 바라보았고..

 

 

 

"고맙습니다!!!!!!!!!!!!!!!!!!!!"

 

 


난 정말 절실하기만 한 그 마지막 인삿말을 건넨채.


여자가 입을 열려는 찰나 재빨리 차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

 

 

 

"강하루!!!!!!!!!!!!!!"

 

 

 

그리고.

 


몇년만에 불러보는 그 이름과 함께..

 

산책로를 따라 검푸른 입구쪽을 향하여 내달리기 시작했다.

 

 

 

"강하루!!!!!!!!!!!!!!!!!!!!!!!"

 

 

 

 

 


\ 우성 재활 센터.

 

 

 

 


"강하루!!!!!!!!!!!!!!!!!!!!!!!

 

하루야!!!!!!!!!!!!!!!!!!!"

 

 

 

길고 곧은 복도.

 

 

 

간호원마저 보이지 않는 그 텅비고 적막한 복도에 들어서.


이렇듯 성급히 놈의 이름을 외쳐 부르고 말았다.

 

 


"하루야!!!!!!!!!!!!하루야아!!!!!!!!!!!!!!!!!"

 

...


.....

 


대체 어딨어..

 

어디서 부터 어떻게 찾아야 돼..

 

..

 

 

아무 대답소리 없는 매정하고 차가운 복도길에..

 

이번엔 좀더 침착히 행동하기 위하여...

 

...

 


또다시 치미는 구토를 재빨리 눌러 삼키고서...

 


간호사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언니.언니.누구야.?"

 

 

...

.....

 

 

왼쪽에 위치해있던 방문이 빼꼼히 열리며..

 


그 안에선..

 

9살쯤 되었을 꼬맹이 하나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

 

 

 

분명 정상인은 아닌..

 

그러나 많이 행복해 보이는...

 

...

 


적어도 미라보다는...

 


부러울것 하나 없는 인형같은 미라보다 훨씬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니..미안..소란 떨어 미안하다.."

 

 

"언니.고무줄 놀이 잘해?고무줄 놀이"

 


"...아니..."

 

 


"난 그거 잘하는데.."

 

 


"....그래...."

 

 

 

"언냐.언냐"

 

 

 


"저기...미안한데..내가 지금 좀 바쁘거든..."

 

 

 

"가지마...."

 

...

 

.....

 

 

누가 본다면 나쁜 어른이라고 손가락질 할지 모르지만.

 

한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매정하고 정없는 어른이라고 욕할지 모르지만..

 

..

 

아이의 손을 뿌리치며 내가 그렇게 뒤돌아서려던 찰나.

 


아이는 조그맣고 구슬픈 목소리로 내 발걸음을 멈추어 버렸고..

 

 

 


"미안한데 언니 지금 찾는 사람이 있어.


다음에 놀아줄게.다음에 놀아줄게 꼬맹아."

 

 

 


난 등뒤의 작은 아이에게 다정히 말을 건네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는 복도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하루 오빠"

 


...

 

.......

 

 

분명.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그 이름을 중얼대며..

 

재빨리 고개 돌린 날 천진난만히 올려다 보는 꼬마.

 

 

 

 

"하루 오빠."

 

 

 

"하루 알아!!!!!!!!!!?"

 

 


"오빠 여자친구 착해.나랑 놀아줘.


나랑 맨날 맨날 고무줄 했다!!?좋겠지~~!?"

 

 


"하루 어딨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꼬맹아!!!!!!!!!!!!!!!!!"

 

 

 

"..........."

 

 

 


"하루 오빠 어딨어!!!!!!!!!"

 

 

 

"옥상.옥상에서 뽀뽀야 한다.


언니랑 오빠랑"

 

 


"여기 옥상...!!!!?!?!"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젠장..

 

여자친구도 같이 있단 말이지..

 

 

 

 

"언냐.언냐.


언냐도 같이 뽀뽀해?오빠랑 언니랑 같이 뽀뽀해!!?"

 

 

 


노래를 부르던 꼬맹이가 순진무구하기 그지없는 질문을 내던졌을때.

 

그때 이미 계단을 향해 미친듯 뛰어가고 있는 나.

 

 

 


"자신은 없지만..."

 

 

 

 

여자친구랑 함께 있는 그 놈.

 

두 눈 똑바로 뜨고서 지켜볼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지켜 볼래.........

 

나 욕심내서 그놈 한번만 더 지켜 볼래................

 


...

 

 

 

쾅쾅쾅.쾅쾅쾅쾅.

 

 

 


이젠 놈을 완전히 단념한 내 마음처럼.

 

계단을 확실히 내리찍고 올라서는 내 두발..

 

 

....

 

 

 

 

 

 

'기억을 못한다' 는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번도 알수 없었던 나는.

 


그렇게 어리석고 무모한 발걸음을 하고 말았다..

 


...

 

 

그 충격이 얼마나 큰지 한번이라도 맛보았다면..

 


문을 열기전 일분이라도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는데...

 

 

 

 


"강하루!!!!!!!!!!!!!!!!!!"

 


.......

 


...........

 

 

 

 


단 일초라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는데...........

 

 

 

 

 


\우성 재활센터 옥상.

 

 

 

 


콰당.!!!!!

 

내 마음만큼이나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벌컥 열린 문.

 


...

 

 


뭐야..젠장..

 

덕풍고 옥상이랑 심하게 닮아있잖아.....

 


..

 

 

난간이 녹색으로 칠해진거 하며..

 

아무것도 없이 텅빈거...


왼쪽으로 도는 모퉁이가 하나 있는거.....

 


...

 

 

똑같이 닮아있어..

 

 

 

"강하루!!!!!!!!!!!!!!!!!!!!"

 

 


어쨌든.

 

이젠 아무 소용도 없는 그 추억을 애써 떨쳐내며...

 


금방이라도 옥상 아래로 튕겨져 나갈것같은 심장을 꼭 억누르고.

 


더불어 치밀어 오르는 구토도 함께 억누르고..

 

 

 

...중얼중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 왼쪽 모퉁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

 

 


제발 무사하길..

 

많이 다쳐 있지 않길..

 

전보다 훨씬 더 밝은 미소를 간직하고 있길..

 

..

 

 


이젠 자격도 없는 그 소원을 열심히 되뇌이며..

 

여자의 작은 속삭임이 들려오는 그 모퉁으로 떨리는 걸음을 옮겨 갔다..

 

 

 

 

 


"오빠 다리 다 나으면.우리 꼭 오빠네 별장 같이 놀러 가자.알았지?!"

 

 


"안나."

 

 


"아니야.나아.내가 꼭 낫게 만들거야!!!!"

 

 

"고맙다..."

 

 


"고맙긴.내가 더 고맙지요 오빠한테."

 

 

 

"나 이런데도 맨날 옆에 지켜줘서 고마워.


힘든거 다 참아줘서.견디기 힘든거 다 견뎌줘서"

 

 

 

"그런말좀 하지마 오빠.!!"

 

 

...

 

.....

 

 

힘든거 다 참아줘서..

 

견디기 힘든거 다 견뎌줘서...

 


...

 


그건 나였어 하루야...............

 

........

 


그건 홍세진이 아니라 한설 이였어...............

 

 

 

 


"언니.............................."

 

 

 

.....

..........

 

 

 

 

멍하니...

 


초점 잃는 눈으로 멍하니 그 두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니.

 


두사람이 아니라 한사람.

 


마치 다른 부분은 까만 물감으로 박박 칠해 놓은것처럼.

 


유일히 눈밖에서 빛나고 있는 단 한사람.

 

 

 

 

 

 

"누구야..?"

 

 


....

 

........

 

 

머리가 많이 자랐네...

 

까만 머리가 젤 잘어울렸는데 염색을 했구나...

 

얼굴은 여전히 멋져....

 

그런데 많이 마르고...목소리도 좀 굵어져 버렸네....

 


.....

 


그리고........

 

날 완전히 잊어 버렸네..........

 

 

 

 

 


"언니..여기..어떻게 알았어..."

 

 

 

이어서..

 

하루 '여자친구' 세진이의 목소리가 더듬더듬 들려오면..

 


...

 

 

 

난 바닥으로 주저앉을것 같은 몸뚱이를 꼿꼿히 버텨 세워놓고서..

 

휠체어 위에 앉은 강하루에게 멍청한 그 시선을 던져 놓았다..

 

...

 

 

 

일초이상 남자를 바라볼수 없는 마법을 걸어놓고.


그 마법을 풀지도 못하게 영영 날 잃어버린 놈..

 


...

 


윤영이도..나도..

 

아팠던 기억을 고스란히 잃어버린 놈..

..

 


난 이렇게 생생히 남아 있는데..


지금 날 보는 니 멍한 시선도..니 말투도..


니 사랑도..


이렇게 맘 아프게 생생히 남아 있는데...

 

 

 

 

"........강..하루...."

 

 

 

"아..어디서 봤는지 알겠다..."

 

 

 

그때.

 

두 귀를 의심하게 하는 놈의 그 한마디에..

 

나와 세진이는 각기 전혀 다른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움켜 잡았고..

 

 

 

'제발..오빠.....'

 

'제발..하루야..'

 

 


그렇게..

 

세진이의 철렁 내려앉는 눈과 나의 날아오를듯한 눈이 아주 짧은 시간을 마주 했을때..

 

 

 

"이거 니꺼지."

 


...

 

......

 

 

주머니에 있던 학생증...

 

 

....

 

 


자기가 죽을때까지 기억하라고 했던 그 학생증을 꺼내며....

 

신기한듯 천천히 입을 여는 하루.

 

 

 

 

 

"...............내.......꺼.........."

 

 

 


"내 주머니에 있던데.


너 나 아는애야?"

 

 

 

"....."

 

 

 

 

"내가 기억을 많이 잃었대.난 모르지만..


어쨌든..그래서 기억 못하는게 좀 많아..그건 미안하다."

 

 

 

".....미..안..."

 

 

 

"정평중 2학년.


이게 2년전부터 갖고 다녔으니까..그럼 너 지금 고1이냐..?"

 

 

 


"...........2..년..전.."

 

 

 

"세진아.얘 누구야?나랑 친했어?"

 

 

 


되풀이..되풀이..

 

하루가 내뱉은 말중..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을 되풀이 하는 한설..

 


..

 


그러면..


...

 


눈을 조용히 내리깐채..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세진이..

 

 

 

 

 

"한설.누군지 되게 궁금했는데."

 

 


"..."

 

 

 

"야.너 근데 머리 풀러라.푸른게 훨씬 잘 어울리겠다."

 


...

 


.....

 

 

적응이 잘 되지 않는 쾌활한 말투..


....

 


그리고 어서 가져가라는듯...

 

학생증을 손위에 얹어 내게로 내민다..

 

 

 

 


나쁜놈..

 

끝까지 내 가슴 난도질 하는 세상에서 젤 나쁜놈..

 

 

 

죽을때까지 이것만 기억하라고..

 

그 학생증 단 가슴 나한테 보였으면서..

 

 

 


...

 

 

나더런 죽을때까지 기억하라 그랬으면서...

 

 

 

 


"니꺼 아냐?"

 

 

 

"...."

 

 


"니꺼잖아.가져가."

 

 

"......"

 

 

 


"내 여자친구 신경쓰게 하지말고 니꺼 가져가라고.

전에야 어쨌든 난 지금이 중요 하니까."

 

 


"지금...행복..하냐..."

 

 


"뭐?"

 

 


"행복...하냐..."

 

 

"어."

 


..

....

 


너무도 당연하단듯...

 

새삼 왜 그런걸 물어 보냐는듯..

 

학생증 쥔 손을 흔들며..

 

빤히 날 올려다보는 강하루씨..

 

 

 

 

"그래.그럼 됐다.


니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

 

 

 

"이거.가져가라고."

 

 

 

"근데 그건 니가 가져라."

 

 


"....?"

 

 

 

"죽을때까지 기억하라고 했으니까.


죽을때까지 니가 가져라."

 

 

 

"...뭐라는거냐..대체.."

 

 

 


"그 약속만은 지켜라...


안그럼 내가 너무 비참해 지잖냐.........."

 


"너......


혹시 나 좋아 했었냐...?"

 

 

...

 

.......

 

 

 

좋아 했었냐고......

 


좋아 했었냐고 하루야......

 

 

내가 널..좋아 했었냐고...

 

 

 


"아니."

 

 


"근데 왜.."

 

 


"사랑했었어."

 

 


"......"

 

 

 

"죽도록.미치도록..


우주가 다 터져 나가도록."

 

 

 

"........."

 

 

 

툭....

 

하루의 손에서 힘없이 떨구어진 학생증....

 


...

 

 

 

"언니..미안해...이러려고 한건 아닌데..."

 

...

 


....

 

 

중얼..중얼..

 


시끄럽다 홍세진...

 

 

사랑하는건 죄가 아냐...

 


그런데 거짓말은 죄야......변명도 죄고...

 


그러니까 거짓말은 하지마라..변명도 하지마라..

 

 

 

"이제 그딴건 토 나오게 지긋지긋하다.."

 

 

 


터벅..터벅..

 


...

 

 

열린 문을 향해..

 

절대 뒤돌아 보지 말자 다짐하며 걸음을 옮긴다..

 


..

 

 


다행이지..참 다행이야..

 

 

 

행복하다던 하루가 고마워서..

 

기억을 못한다던 하루가 원망스러워서...

 

나의 존재를 영영 잊은 하루가 죽도록 그리워서...

 


...

 


외톨이 한설은 오늘도 이렇게 또 걸음을 옮긴다..

 

이렇게 또 뒷모습을 보이며 달아나 버린다........

 

 

그 노래를 되뇌이며..

 

완벽히 잊혀진 우리 두 여자의 그 구슬픈 노래를 되뇌이며...


....

 

........

 


"내가 잠든 사이에 거짓말처럼 날 데려가주길...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

 

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주길....영원히...잊지말고..기억해주길...."

 

 

 

 

"잠깐만 언니!!언니!!!!할말 있어 잠깐만 서봐!!"

 

 

 

 

\ 우성 재활원.

 

 

 

이제 강하루는 됐으니까..

 

그놈 행복한건 충분히 이 두눈으로 확인 했으니까..

 

나는 몰라도..나는 다 잊었어도..

 

그래도 그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웃고 있으니까....

 

 

 


"평창동이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재활원 정문앞에 서있는 택시를 향해..

 

꼭 들려야만 하는 그 행선지를 중얼 거리고 있는데...

 

 

...

 

 

 

"잠깐 언니!!!!!가면 안돼!!!!!!!!!!"

 

 

 

 


이젠 눈뜰 힘조차 바닥나버린 내 옷깃을 아주 거세게 움켜쥐는 세진이의 손가락..

 

 

 

 


"언니 가자....세진아...."

 

 

 

"미안해..이러려고 한게 아냐.....언니 미안해...."

 

 

 

"세진아...언니 좀...이제..가자......"

 

 

 

"대신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요...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오빠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요...

 

약속할게.."

 

 

 

"그래.....제발....."

 

 

 

 

"그때 오빠 별장만 안갔어도...내가 그 얘기만 안꺼냈어도.....


미안해....난 지금 언니 얼굴 똑바로 바라볼수가 없어....


오빠가 언니 기억만 한다면...난 당연히 오빠한테 언니..."

 

 


중얼..중얼..

 

고개 숙인채 계속되는 세진이의 혼잣말..

 

 

 

"비굴해 지지마라.."

 

 

 

 

"언니..미안해..정말 미안해요.."

 

 


"그런 약해빠진 정신으론 하루 감당못해.


걔 옆에 있으려면 눈물도 잘 참아야 되고.


소리도 잘 질러야 되고..여자들 무찌르려면 힘도 무지 쎄져야.."

 

 

"....."

 

 

 

"나 정말 주책이네..."

 

 

 

"응..나 잘할게..진짜 잘할게 언니.."

 

 

 

"고맙다.."

 

 

 


'고맙다'

 

라는 그 짧은 인삿말을..

 

내가 내뱉어도 됐던것인지..아닌것인지..

 


잠깐동안 그 비참한 후회를 하다..고개숙인 세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다음으론 택시의 문을 힘차게 열어 젖혔다..

 

 

 


"죄송합니다 아저씨.평창동이요."

 


그리고..

 

택시 뒤에 앉아..

 


재빨리 뒤돌아서 건물안으로 들어가는 세진이를..

 


끝으로 하루가 있을 옥상위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는데.....

 

 

 


...

 


......

 

 


"강하루...."

 

 

 

마지막으로 보이는 하루의 얼굴.

 


..

 

 

옥상 난간위에 앉아..

 

날 향해 손을 흔들어보이는 하루의 얼굴..

 

 

 

 

"잘가라구...?


나..잘 가라구 임마...?"

 

 

 


들릴리 없는데..

 

물론 지금 내 목소리 따위 놈에게 들릴리 없는데..

 


...

 

 

놈이 환하게 웃는다...

 

...

 


내 옆에 있을땐 쉽게 볼수 없었던 환하고 장난스런 웃음과 함께..

 


정말 잘가라는듯 두 손을 마구 흔들어 보인다..

 

 

 

그동안 수고 했다고..그러니 잘가라고..

 

그동안 미안 했다고..그러니 잘가라고..

 

그동안 즐거 웠다고..그러니 잘가라고.......

 

 

 

 

 

"가..임마..니가 가지 말래도 갈거야...


니가 가지 말라고 발목아지 붙들고 엉엉 울어도 갈거야...."

 

 

 


점점..점점..놈의 얼굴이 작아져간다..

 

 

더 보고 싶은데..

 

 

일분이라도 허락해준다면 다시 달려가 한번만 더 기억하고 싶은데..

 

 


....

 

 

내 이름을 하얗게 지워버린..우리의 기억을 단 한번에 지워버린..

 

신나게 흔들리는 놈의 두 손이..

 

가슴 깊숙히 박혀 오면.....

 

 

 

 

"강아지 또 울기만 해라!!!!!!!!!!!


또 지지궁상 떨면서 옛 여자 찾기만 해라!!!!!!!!!!!


기억 되찾아서 또 설이가 윤영이가 어쩌구 하면서 세진이 힘들게 하기만 해라!!!!!!!!!!!


홍세진 울리기만 해라!!!!!!!!!!!!!"

 


...

 


............

 

 

 


"기억 되찾기만 해!!!!!!!!!!!나 기억하기만 해!!!!!!!!!!!!


그럼 진짜 죽여버릴거야....


나 기억하면 죽여 버릴거야!!!!!!!!!!!!!!!!!!!!!"

 

 

 


"....큼큼...."

 

 

 

빠르게 재활원을 벗어나며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피는 운전자..

 


그리고 나...

 


그렇게 증오 해놓고..

 

지금 이렇게 형편없고 지독한 거짓말을 지껄여 버린 나..

 

 

 

 

기억해줘...하루야.....

 

나 좀 기억해줘.......다시 와서 나 좀 꽉 안아줘........

 

....내 이름 한번만 더 불러줘....

 

기억 해줘.................실컷 아파도 좋으니 세진이랑 행복해도 좋으니....

 


나 좀 제발 기억해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내이름 불러줘...

 

 

 

 

이게 진심인데....

 

이 비참하고 멋없는게 진짜 내 진심인데....

 

 

 

 

 

 

"나 기억하면....................죽여버릴거야....."

 

 

 

 

 

단 한사람의 청취자 택시 운전수를 위해..

 

마지막까지 새빨간 그 거짓말을 뱉어 놓고...

 

재빨리 눈을 감아 버렸다...

 

 

...

 

마녀의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3.9일 내일까지..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기에...

 

깨질듯한 머리를 조심스레 달래며..서둘러 두 눈을 감아 버렸다...

 

 

 


....

 

 

.......

 

 


이만큼 커다란 관문이 하나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서 잘해낼수 있을지 정말 의문이 들지만.....

 

 

 

 

"다 왔습니다 아가씨...."

 

 

 

 

 

 

\ 평창동.

 

 

 

 

2년..만인가...

 

 


....


......

 

 


그대로네..

 


여전히 무시무시하게 크구나...

 

...


신기사 아저씨는 어디 가신걸까...

 

왜 대문이 저렇게 열려 있지..

 

 

 


"다 왔는데요 손님."

 

 

 

창밖으로 보이는 그 2년만의 쓸쓸한 모습에..

 

멍하니 입을 벌린채 가슴을 추스리는데..

 

다시 한번 힘주어..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기사 아저씨.

 

 

 

"네...........감사합니다........"

 

 


그리하여..

 

똑바로 전달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 흐리멍텅한 한마디와 함께..

 

이 순간 꼭 들려야 하는...

 


그러기 싫어도 꼭 그래야 하는....

 

 

 

"....안녕....오랜만이다....."

 

 

 


모든 추억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거대한 괴물집을 향해..

 

마침 아주 조금 열려 있던 그 푸른빛의 웅장한 대문을 향해..

 

천천히..천천히..

 

한걸음 두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

 

 


웃고 있는 강은찬 강하루.

 


정원 저 한켠에서..호스로 물싸움을 하며 마구 웃어대는 하루와 은찬이..

 

 

 

 


'야!!!한설 너도 와!!!!!!!!!!!!!'

 

 

'한설 옷 갈아 입고 오라니까!!!!!!!!!!'

 

 

 


내 이름을 부른다 하루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

 


행복하게 웃는다 은찬이가...

 


우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수 있다...

 

 

 

 

"우아아아아아악!!!!!!!!!!!!!!!!"

 

 

 


그러나 아무도 없다..

 

나의 지금 고통스러운 비명처럼...

 

실제 이 정원엔...

 

다 죽어버린 연갈색 잔디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신차려라 한설.

 

떠나는 마당에 신기루까지 본다는건 너무 궁상맞잖아..

 

여기서 인사 한번 하고..

 

쿨하게 멋지게 한방에 가야지...

 


...

 

 


눈물로 모자라서 그놈들 환상까지 만들어내는건..

 

 

 

"하하....너무 지지궁상이잖아........"

 


...

 

......

 

 


들어줄 사람 없는 그 혼잣말과 함께..

 

이젠 정말 현관문을 열고 들어 서는 길..

 

 

 


'끼이이익...'

 

 


듣기 싫은 그 문소리와 함께..

 


꼭 들려야만 하는 이 괴로운 장소에 내 발로 알아서 기어 들어 가는 길..

 


...

 

.....

 

 


"......."

 

 

 


소름돋을 만큼 어둡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넓다란 거실....

 

인기척 하나도 들려오질 않는다.....

 


...

 

 

놈이 분명 이 안에 있을텐데...

 


마녀네 집에 전화 했을때 분명 몸이 아프다고 했었는데...

 

 

 


'따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

 

 

 

분명 경찰서에서 걸었을 그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려대면...

 


...

 


더듬..더듬...

 

불을 밝히는것도 잊은채..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한설...

 

 

 


"강은찬....은찬아...."

 

 

 


하루를 볼때만큼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으로...

 

2층 맨 가장자리에 있는 놈의 방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 오는 한설...

 


...

 

 


"강은찬....."

 

 


그리고...

 

잠시후 놈의 방 앞에 다다랐을때....

 

....

 


정확히 2년만에 찾아온...

 


그래서 문을 연 순간 그 익숙하고 낯익은 향기에 왈칵 눈시울이 붉어 졌을때...

 


...

 

 


"은찬..아...?"

 

 

 

 

놈이 없다...

 


....

 

 


침대도..옷장도..TV도..오디오도 책상도 그대로 있는데..


.......

 

 

방 어디에도 놈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강은찬..!!!"

 

 

 

혹시나 화장실에 들어갔을까 싶어 버럭 고함을 질러보지만..

 

 

 

"..............."

 

 

 

여전히 아무 대답없는 어둡고 고요한 2층 복도.

 

 


설마....

....

 

 


설마...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벌써 받은건.......................................

 

 

 

 

 

"강은찬!!!!!!!!!"

 

 

 

생각과 동시에 덜컥 내려앉은 심장에..

 


'우당탕' 소리를 내며 다급히 계단을 향해 달려 나가는데..

 


...

 

 

그렇게 첫번째 계단을 향해 마치 넘어질것만 같은 위태로운 오른발을 내딛는데..

 

 

.....

 


.......

 

 

 

 

 


"내방...."

 

 

 

 


계단 바로 왼쪽에 붙어 있던 내 방..


2년째 주인을 잃어버린 내 방문이..활짝 열려져 있다..

 

 

....

 

......

 

 


혹시.......

 

.....

 

그래서...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단을 내리려던 두 발을 힘주어 돌려...

 

내 방으로...

 

몇년째 먼지가 쌓여 있을 내 방으로 비틀대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

 

 


그리고.

 

 

 


"으응......"

 

 

 


조금씩 더 가까워 갈수록...

 


가느다랗게 귓가를 쑤셔대는 작은 신음소리....

 

 

....

 

 


아니길 바랬는데...

 


여기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랬는데....

 

 

 

 

".......강...은...."

 

 

 

미처 그 석자 이름을 다 내뱉지도 못하도록..

 

너무 아프게 그 오랜만의 모습을 드러낸 강.은.찬.

 

 

 

 

 

 

"......은찬아......."

 

 


...

......

 


분명 내 방엔 아무것도 없다...

 

침대도..커튼도..화장대도..책상도..

 


심지어 벽에 걸린 액자마저 떼어진 채로..보일러도 꺼져 있는 채로..

 

 

어둡고..습하고..얼음장 처럼 차갑고..

 

끝으로 텅 비여 있는 눈물나게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놈이 있다...

 

 

 


".....응....."

 

 

 

알아듣기 힘든 작은 신음과 함께..

 

그 방 한구석에 웅크린채로 등을 돌려 누워 있다...

 

 

 

...

 


뒷모습이라 잘 알수 없지만..

 

많이 말라 있는 모습으로......

 

너무 많이 작아져 버린 모습으로.......

 

 

 

 

"병신..추워 뒤지겠는데..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프다는 새끼가 보일러도 안틀고....."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듯..

 

그렇게 아예 까마득한 잠에 빠진듯..

 

 

 


"응......."

 

 

 

 

어린아이 같은 작은 신음소리만 내 뱉으며...

 

 

 


"....은찬아...."

 

 

 

 

심지어 내가 뜨거운 이마에 손을 가져댄 순간에도..

 

놈 뒤에 주저 앉아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도...

 

벽을 향해 돌아 누워 어깨를 잔뜩 웅크리는 강은찬.

 

 

 

 


"추운데 왜 이러고 있어......


그렇게 당해놓고....그렇게 울어놓고....


그 못된년 왜 기다려.......그만큼 아프고 넘어졌으면 됐지........


죽을때까지 딴 남자 본다던 그 못된년 왜 기다려............."

 

 

 

"........"

 

 

 


어둠에 익숙해져...

 


이제야 놈의 얼굴 윤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때...

 


아무말 없이...

 


두 눈을 꽉 감은채 내쪽으로 천천히 돌아 눕는 강은찬...

 

 

 

 

"하..."

 

 

 

순간..

 


절대 흘리지 말자 다짐했던 눈물이..

 

그 약속을 무참히 깨버리고 눈밖으로 흘러 내릴뻔 했다..

 

 

...

 

 

 

 


어디서 실컷 싸움질을 하고 다녔는지..

 

얼굴 여기저기 박힌 깊은 상처들...

 

 

매일 밤마다 얼마나 눈물을 짜댔는지..

 


탱탱 붓다 못해 퀭하게 들어버린 예뻤던 두 눈..

 

 

 

땀에 젖어..혹은 눈물에 흠뻑 젖어..


두 눈 위로 마구 헝크러져 있는 머리카락..

 

 

 

 

"너 진짜...나보다 더한 왕단순에 왕바보구나....."

 

 


".........."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이 방에 오면 어떡하냐..........."

 

 

 

"엄..마..............?"

 

 


"....."

 

 


엄마 라는 그 말에..

 

다시 현실로 되돌아온 내 기억..

 

 


...

 


그래..강은찬의 친엄마다..

 

내 손으로 목 졸라 죽이려 했던...

 

그리고 지금은 경찰서에서 밑도 끝도 없이 무너지게 만든..

 


내가 그렇게 만든 그 여자가 바로 은찬이의 하나뿐인 친엄마다...

 


...

 

 

 

 

 

"엄마......................엄마................


....엄마......................."

 

 

 

 


비몽사몽인지..

 


아니면 정신이 들었는데 날 정말 엄마라고 착각하는건지..

 


또 한번 멍해져 버린 내 손을 움켜 잡고..

 

자신의 뜨거운 오른쪽 뺨을 갖다내는 은찬이..

 

 

 

 

 

 

"아들 지금 무지 아프다......."

 

 

 


"........."

 

 

 

"근데 아줌마..

 

처음이네...아들 아프다고 이렇게 와준거..."

 

 

 


툭.....

 


내 손위에 앙상히 말라붙은 놈의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리면..

 

 


...

 

 


'타악..'

 

 


도저히 더는 견딜수 없는 마음.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금방이라도 터질것 같은 가슴과 머리에..

 


주머니 깊숙히 넣어 놓았던 놈의 핸드폰을 바닥에 떨군채..

 

 


'탁탁탁탁'

 

 

 


도망치듯 그렇게 내 방을 달려 나오고 말았다.

 

 


...

 


.......

 

 

 

 


"따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

 

 

 

벌써 몇십번째 울리는 전화벨을 지나쳐..

...

 


비겁하게 그 아픈놈을 내 버려둔채 집을 뛰쳐 나오고 말았다.

 

 

 

 

"우아아아아아악!!!!!!!"

 

 

 


들어올때 내질렀던 그 비명과 함께.

 


올때보다 좀 더 크고 좀 더 둔탁해진 그 비명과 함께..

 

 

 

 


\ 평창동 집 정원.

 

 

 

 

 

 

 

 

인사하고 가려 했는데 안되겠어 은찬아..

 


눈 뜬 니 얼굴 똑바로 다시 한번 보고..

 


욕이든 눈물이든 달게 받아 들이고..

 


그 다음에 떠나려고 했는데...

 

 

 

...

 

 

도저히 안되겠어 강은찬....

 

이 순간 너만큼은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어..

 

 

...

 

 

 

 

'끼이이이익.'

 

..


....

 


반쯤 닫혀 있던 대문을 힘껏 열어 젖히며..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야속하고 잔인한 여자의 모습으로 그 괴물집을 나와 버렸다..

 

 

 

...

 


.....

 

 

 


"하아..................."

 

 

 


그리고...

 


벅차 오른 한숨과 함께 재빨리 다시 대문을 닫으려는 찰나........

 

....

 

 

모든게 끝이다.

 


라는 생각으로...

 


아직도 환상속의 하루와 은찬이가 신나게 뛰어노는 정원을 향해 마지막 시선을 거두려는 찰나..

 

 

...

...

 

 

 

 


"엄마!!!!!!!!!!!!!!!!!!!이 핸드폰 어디서 났!!!!!!!!!!!


..........................."

 

 

 


"......................................."

 

 

 

"...................................................."

 

 

 


....

 

........

 

 

핸드폰을 손에 쥔 은찬이가...

 

넘어질듯 말듯 정원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다 우뚝 자리에 멈추서며........

 

 

 


절대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이...

 


네개의 눈동자를 단번에 멈추어 버리며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

 

 

...

 

 


"...."

 

 

 

 


꼼짝없이 굳어버린 날..

 

놈의 멍청한 두 눈이 발견해 버리고 말았다..

 

 

 


"한..설....?..."

 

 

 


마치 국어책 읽듯...

 

 

....아무 감정없는 어투로....

 


.....아무 감정없는 텅빈 두 눈동자로....

 

 

...

 

놈이 내 이름 두자를 불러 버리고 말았다..

 

 

 

 

 

하루의 입에선 죽을때까지 다시 들을수 없게 된..

 

이제 이 집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던 내 이름 두 글자를....

 

 

 


"한설!!!!!!!!!!!!!!!!!!!!!!!!!!!!!!!!!!"

 

 

 

 

\ 평창동 집.

 

 

 


깨질듯한 은찬이의 고함소리.

 

툭하고 바닥에 떨어진 그 핸드폰..

 

 

 

 

".................."

 

 

 

"한설!!!!!!!!!!!!!!!!!!!!!!!!!!!!!!!!!!!!!!!!"

 

 

 


또 한번..

 


마치 내 존재를 부정하듯 또 한번..

 

정원을 커다랗게 뒤 흔드는 강은찬의 고함소리..

 

 

...

 

 


그러면 깜짝 놀라 모습을 감추는 신기루들..

 

물장난을 치다말고 재빨리 모습을 감추는 하루와 은찬이의 신기루들..

 

 


...

 

 

 

"안녕..오랜만이다...."

 

 


"......."

 


"2년..만이냐..."

 

 

 


분명..

 

스스로도 형편없고 무책임한 인사말이라 느끼며..

 

다음으로 쏟아질 놈의 행동을 기다렸다..

 

 

 

 

뺨 한대가 됐든...

 


무수한 욕짓거리가 됐든..

 

...

 

두 눈을 질끈 감은채 놈이 내려 마땅한 그 벌을 기다렸다..

 

 

 

 

 


"나 안나왔음 그냥 갈라 그랬냐 이 된통아!!!!!!!!!!!!!!!!!!!!!!!!!!!!!!!!"

 

 

 


그러나 놈은..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주는 대신에..

 


목 메인 그 고함과 함께 와락 나를 품안에 안고 말았다..

 

 


...

 

 

숨도 쉴수 없을만큼..

 

눈도 뜰수 없을만큼..

 

 

 

 

"너 진짜 죽어볼래!!!!!!!!!!!!!!!!!!!!!!"

 

 

 

"숨..막혀..."

 

 


"내 손에 죽어볼래!!!!!!!!!!!!!!!!!!!!!!!"

 

 


"...아파..강은찬...."

 

 

 

"죽은줄 알았잖아!!!!!!!!!!!!!!이 새꺄!!!!!!!!!!!"

 

 

 

"........"

 

 

 

"진짜.....


너 죽어 버린줄 알았잖아..................."

 

 


"....."

 

 


고함..눈물..

 

오랜만에 안긴 은찬이의 품..

 

따뜻하고 넓은..바닐라 향이 나는 은찬이의 가슴...

 

 

미치도록 그리웠던...

 

죽을만큼 간절했던 그 두놈중..

 

좀 더 멍청하고 많이 단순한...

 

동생쪽의 간절했던 품안..

 

 

 


"미안...해........."

 

 


"...."

 

 


"나 왜 이렇게 구제불능이냐.......진짜 인간말종이다......."

 

 

 

"............"

 

 

 

"그 추운 방에서 벌벌 떨던 너도 마찬가지고..."

 

 

 

말이 없었다 놈은...

 

그냥 꽈악 안아줄뿐..

 

좀전보다 더 세게..이젠 입도 열수 없을만큼 세게..내 가슴이 부서져 나갈만큼 강하고 거칠게...

 

 


...

 

 

그렇게 한참을..

 


이제 다신 잃지 않겠다는듯 한마디의 말없이 한참을.............

 

 

 

 

........

 

 

 

 

"은찬아........."

 

 


"....."

 

 


"..너..우냐..."

 

 

 

"누가 우냐!!!!!!!!!!!!!!!!!!!!!!!!"

 

 

 

"하여간 목소리 큰건 여전해......"

 

 

 


"근데 넌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냐.........."

 

 

 

"........."

 

 

 


"그래도....오랜만에 보면....눈물 나오지 않나...


나 좋아하는거 아니더래도...보고싶은 맘 없었더래도..."

 

 


"..."

 

 

 

"보통 여자들 이럴때 울지 않나...


아니..반가워서.....오랜만이라서....눈물 한방울 정도는 흘려주지 않나..."

 

 

 

"니가 이렇게 펑펑 우는데...


나까지 울면 이산가족 산파극 찍게..."

 

 

 

"시끄러..."

 

 

 

"...."

 

 

 

"이제 안갈꺼지....."

 

 

 

"........"

 

 

 

"이제 안갈꺼지......."

 

 


"...."

 

 

 

"안갈꺼지 한설..이제 아무데도 안갈꺼지..."

 

 

 


점점...

 


점점 애원으로 바뀌어 가는 은찬이의 목소리...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채...

 


그 모습만큼이나 또 작아져가는 강은찬의 목소리...

 

 

 

 


"은찬아...."

 

 


"......"

 

 


"왜 대답을 안하냐..."

 

 


"한번만 더 불러......"

 

 


"....뭐....?"

 

 

 

"내 이름 한번만 더 불러............"

 

 

 

"가지가지 다하네 아주....."

 

 

 

"불러..........."

 

 

 

"...강은찬...."

 

 


"응......"

 

 


"강은찬....!!!!!!"

 

 


"응!!!!!!!!!!!!!!"

 

 


빼꼼..

 


우리 두사람의 유치하고 닭살돋는 재회에..

 

다시 조심스레 고개를 내미는 하루와 은찬이의 신기루..

 


..

 

 

키득키득 웃고 있는..


...

 

나무 뒤에 숨어 손가락질 하며 놀려대고 있는...

 


...

 


이젠 내게 아무 소용없는...

 

 

 

 

"강은찬..강은찬..강은찬.."

 

 

 

"..........."

 

 

"미안해.......이 미안한 말 누가 만들었는지 참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미안해.....미안해....."

 

 

 

"나도 이말 누가 만들었는지 찾아내서 한대 쥐어 박고 싶은데..."

 

 

 

"...."

 

 

 

"괜찮아......나한테 넌 그래도 괜찮아..............."

 

 

 


언제 놓아 줄껀지..

 

아니면 아예 놓아 줄 생각이 없는건지..

 

귓가를 간지럽히는 그 말과 함께..

 

은찬이가 내 머리를 마구 흐트려대고 있을 무렵..

 

 


...

 

 

나도 모르게...

 


천천히 입가를 비집고 나오는 공허한 목소리..

 

 

 

 

"강은찬 너...."

 

 

"....."

 

 


"나랑...놀이 동산 한번 가는게 소원이라 그랬지...."

 

 


"기억하네.....이 닭대가리가..."

 

 

 

"지금 가자.."

 

 


"뭐...?"

 

 


"지금 가자 우리.놀이동산 가자."

 

 


"....."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냐는듯...

 

손은 내 허릴 꽉 감싼채 고개만을 떼어...

 

눈물에 푹 젖은 연갈색 눈동자로 물끄러미 날 내려다 보는 은찬이..

 


...

 

 

 

 

오랜만이다..

 


오직 나만 바라보고 있던 이 눈동자 참 오랜만이다...

 

 

 

 


"놀이동산..."

 

 

 

"응..놀이 동산 가자..바이킹..회전목마..열차..많이 많이 타자.."

 

 

"썰매.."

 

 


"썰매...?"

 

 


"바이킹 말고 썰매 타러 가자."

 

 

 

"썰매라니.썰매를 어디서 타...


야!!!어디 가는데!!!썰매를 지금 어디서 타..!!!"

 

 

 

그 어딘가에 이미 정신이 팔려 버린듯..

 

재빨리 내 품에서 손을 떼내어..

 

열린 대문 너머로 날 질질 끌어대는 은찬이..

 

 

 

 

"니 소원이 놀이 동산 가는거라며!!!그러니까 거기 가서!!!!!!"

 

 


"니가 가르켜준 썰매."

 

 


"..."

 

 


"그게 바이킹보다 훨씬 재밌어."

 

 

 

"설마......너.."

 

 

 

"설마 나."

 

 


우려했던 그 걱정을 그대로 적중시키며..

 

자신의 핸드폰에 매달린 자동차 키를 짤랑짤랑 흔들어 보이는 강은찬.

 

 

 

 

"야..!!잠깐만!!!"

 

 

 

그리곤.

 


말릴새도 없이..

 


좀전의 아팠던 모습을 온데간데 찾을수 없는 괴력으로..

 


내 손목을 꽉 움켜잡고 차고쪽을 향해 질질 끌어대기 시작한다.

 

 

 

 

 


"안돼 나 시간 없어!!!!!!!"

 

 


"........"

 

 

 

"아니...이게 아니라...."

 

 


"시간.없어.?"

 

 


"아니..시간은 많은데.."

 

 


"시간은.많은데.?"

 

 

 

씨익..

 


하루의 졸업선물이라던 그 은색 스포츠카 앞에 다다랐을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내 말을 되풀이 하는 강은찬.

 

 

 

 


"....거긴 너무 멀잖아...."

 

 

 

 

"시간 많다며."

 

 

 

"....."

 

 

 


"이제 아무데도 안갈꺼잖아."

 

 

 

"...."

 

 

 

"아냐.?내 말 틀려?"

 

 

 


"아니..맞다..그래 맞다.."

 

 

 


"됐어.가자"

 

 


".........후...."

 

 

 

"트렁크 열고 구겨 넣기 전에 얼른 타라.!!"

 

 

 

 


아직도 눈물 번진 얼굴을 하고 있는 주제에..

 

짧고 씩씩한 그 한마디로 운전석에 턱하니 올라타는 은찬이..

 


..

 

 

젠장할...


나도 정말 모르겠다...

...

 

 

그리고 잠시후.


내가 그 한마디를 중얼대며..차갑게 식은 이마를 매만지며 정신을 차렸을때..

 

 

...


이미 놈이 운전하는 차는...

 

두번째 신호를 거칠게 지나치는 중이였다...

 

 

 

...

 

 

 

 

\ 차 안.

 

 

 

 

 

 

"같이 시장도 봐서 요리도 해먹고."

 

 

 

"...."

 

 

 

"비디오도 빌려보고 썰매도 타고.."

 

 


"......"

 

 


"새벽에 나와서 불꽃 놀이도 하고.."

 

 

 


"아픈놈이 조잘조잘 잘도 떠드네.....


열은 좀 내렸냐.."

 

 


"당연하지 임마."

 

 

 

"진짜 괜찮아..?"

 

 

"너 와서 한방에 다 날라갔어."

 

 


"꼴통...뻥치구 있네.."

 

 


"이거 입 드러운거 여전히 못고치구 왔냐!!!!!!!!"

 

 


"..."

 

 


헤헤..


웃는 날 보며..

 

그 익숙하고 그리웠던 고함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무는 강은찬.

 

 

 

 


"불 붙혀 줄까"

 

 

"됐어"

 

 

"붙혀 줄게"

 

 


"여자 아무데서나 담배불 들이미는거 아냐"

 

 


"폼 잡는건 여전하네.."

 

 

 

후우우...


...

 


애써 그 요지를 피해가는 날 흘끗 바라보곤..

 

찬바람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날려 보내는 은찬이..

 


...

 

 

 

"......."

 

 

"........."

 

 


그리고.

 

절대 피해갈수 없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

 

...

 

 

 

 


"어디 갔다 왔냐."

 

 

 

"익산 있었어"

 

 

 

"하하..


너 잡으러 전라북도 가긴 갔었는데.딱 익산만 빼놓고."

 


".........."

 

 

"형은.........."

 

 

"........형 뭐...."

 

 


"형 봤냐....."

 

 

 


그래...봤다....

 


봤는데...........기억이 안난다............

 

 

그놈도 나 기억 못하니까..............

 

 

 

 


"나도 그놈 기억 못한다........."

 

 


"........."

 

 


"근데 큰일났네.우리 둘다 요리는 개 진상으루다가 못하는데..


그걸 누가 해서 누가 먹냐.."

 

 

 

"말 이쁘게 해라."

 

 

 

"그래.개 꼴깝"

 

 

 

"죽는수가 있다"

 

 

 

"개 멍멍."

 

 


"...."

 

 

 

"너 운전 많이 늘었다.그때 터미널 갈땐 내가 이제 죽는구나 싶어 벌벌 떨었는데.."

 

 

 

"병신...."

 

 

 


애써 피하려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였던 걸까...

 

아니면 평소 나답지 않아 보기 싫었던걸까..

 


...

 

 


담배를 지저끄며..

 


왼손으론 핸들을..오른손으론 내 머리를 부비부비 쓰다듬는 강은찬.

 

 

 

 

 

"한설.그동안 고생했다..."

 

 


"너도 임마....고생했다..."

 

 


"박윤영 만난 그날부터 사고 당일까지 기억을 다 지웠대."

 

 

 


"그래..천만 다행이다...불행했던 기억만 다 지워서..."

 

 

 

"아니.세상에서 젤 불쌍하고 한심해."

 

 


"...."

 

 

 

"덩달아 인생 통틀어 젤 행복했던 기억까지 지워 버려서."

 

 


"..."

 

 

 

"야 이 된박아.너 말하는거야."

 

 


"으쌰!!!!!!!!으쌰!!!!!!!!"

 

 

 

"....뭐하냐..."

 

 

"너..너 전화오는거 아냐!?아까부터 계속 울리는데..!?!"

 

 

 

 

애써 떨쳐 내고자..

 


머리 위에 척 얹어진 놈의 손을 뿌리치며..

 

정말로 끝없이 진동하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면...

...

 

 

 

 

"어.아까부터 계속 오던데..니가 열어서 받아봐.."

 

 

 

 

 


스틱 밑에 놓여진 은색 핸드폰을 바라보며..

 

탱탱 부운 두 눈을 손바닥으로 마구 문지르는 강은찬.

 

 

...


......

 

 


"안받아...?"

 

 


"배터리 뺀다.."

 

 

"왜...?"

 

 


"내일 까지만 빼놓자..."

 

 


"누군데..."

 

 


"......."

 

 

 

"알았어.빼."

 

 

 


심각한 내 표정을 알아챈걸까..


...

 

 


더이상 묻지 않은채..

 


은찬이가 간단히 그 대답을 떨어 트려 놓으면..

 

 

 

'투욱.'

 

 


내 손에 의해 재빨리 분리되어 버리는 핸드폰과 배터리..

 

 

...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그런데 아직요...

 

아직은 은찬이 알면 안돼요......

 

저랑 있을때 까지만요...

 


이놈 그동안 실컷 울었으니까..그 추운방에서 실컷 아팠으니까..

 


저랑 있을때 까지만..

 


그때까지만 조금 더 웃게 해주세요...

....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대체 몇년만이냐...................."

 

 

 

 

 

 

\ 남양주 별장.

 

 

 

 


그렇게 핸드폰이 배터리와 분리된 이후로...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던것 같다...

 

 


...

 

 

물론 놈이 쏜살같이 차를 몰아온 덕도 있었지만...

 


부정하려 하면 할수록 더욱 강하게 와닿는 그 끔찍한 현실탓이 더 컸다..

 

 

 

 

 


"하도 안와서 녹이 슬었겠네..."

 

 

 


그리고 놈은..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 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왕단순 왕바보 강은찬은..

 


...

.....

 

 


눈 쌓인 별장앞에 차를 세우며..

 

여전히 내 손을 꼭 잡은채 휘휘 주위를 둘러 보았다..

 


...

 

 


"그때도..눈 왔었지.."

 

 

"언제.우리 처음 왔을때?"

 

 

"응.."

 

 


"그래서 썰매 탔잖아."

 

 

 

"그때 너.계단위에 눈치우고 있었잖냐.


내가 자꾸 넘어지니까.그치."

 

 

 

"하이튼 머리도 나쁜게 쪽팔린건 되게 기억 잘해요"

 

 


"누가 누구더러 머리가 나쁘대냐..고1때는 반에서 35등 했던게.."

 

 

 


차에서 몸을 내리며.

 

서울보다 유달리 차갑고 맑은 공기에 어깨를 잔뜩 움추리면...

 


...

 


나의 그 말에 충격을 받은듯..

 


성큼성큼 계단을 향해 걸어가다 말고 홱 고개를 돌리는 강은찬.

 

 

 

 

 


"너 내 성적표 훔쳐 봤냐!!!!!!!!!!!!!!!!!!!?"

 

 


"할아버지한테 들킬까 컴퓨터 자판 밑에 숨겨 놨더구만.."

 

 


"젠장."

 

 


"위 학생은 수업시간에 십분 이상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선도부 활동과 체육 시간 외엔 아무것도 두각을 나타내는것이 없습니다.


특히 여 학우들과의 관계가 문란하여.."

 

 

 

 

"시끄러 그런 너는!!!!!!!!!!!!"

 

 

 


"내가 뭘.난 정평중 가고 나서 한번도 시험 안봤잖아.


맨날 일등한 하루..."

 

 


"..."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루의 일과!!!"

 

 

 


"용쓴다.용써.."

 

 

 

"....하루의 일과..."

 

 

 

"그런다고 기억이 지워지냐....


눈물 겹게 애쓰지마 임마.........."

 

 

 

".....그래...용 안쓰마..."

 

 

 

"기억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거랑.....일부러 안하는건 전혀 다른거다.."

 

 


"..."

 


...


.....

 

 

순식간에 얼간이가 된 날 남겨두고..

 

눈 덮힌 오솔길위에 발자국을 새겨 놓으며..

 

별장의 2층 문을 향하여 천천히 멀어져가는 강은찬..

 

 

 


"같이가...."

 

 


...

 

......

 

 

 

"같이가 강은찬!!!!!!!!!!!!!!!"


..

....

 

 

 

놈을 따라 달렸다..

..

 


'기억을 안하려' 던 그 눈물겨운 생각을 당장에 집어치우고..

 

눈앞에 있는 은찬이의 뒤를 재빨리 따라잡기 시작했다..

 

 

 

 

 

"어..이상하다......"

 

 

 

 


그리고..

 


놈 뒤에 바짝 다가서 가쁜 숨과 추위에 꽁꽁 언 입김을 내쉬고 있을때..

 

...

 

 

 

 

"비밀번호가 왜 틀리지..."

 

 

 

놈은..

 


숫자키로 된 문을 이리저리 눌러 보이며..

 

한손으론 역시나 내 손을 아주 꽈악 움켜 잡았다..

 

 

 

 


...

 

 

 


"0309잖아..."

 

 

"어..근데 안돼..아빠가 와서 바꿨나..."

 

 

 

"어떡하지.."

 

 


"아빠 생일인가...."

 

 

 

틱틱틱.

 


은찬이의 두 손가락이 재빨리 네 버튼을 누르면..

 

 

 

 


"그래도 안되네..."

 

 


"어떡해..창문으로 넘어가자.."

 

 


"잠깐만..집 전화번호....."

 

 

"..."

 

 


틱틱틱틱.

 

다시 또 눌려지는 전혀 다른 그 네개의 숫자.

 


...

 


....

 

 

 

 

"아닌데..."

 

 

 

"뭐야..대체 누가 와서 바꿨지....형이 절대 못바꾸게 했을텐데.."

 

 

 


"그놈이..바꾼거 아닌가..."

 

 


"절대 아닐걸."

 

 

"....."

 

 


"빵빵빵빵 이런건 아닐텐데.."

 

 

 


틱틱틱틱.

 


다시 한번.

 


그 왕단순의 엄지 손가락에 의해 숫자 0 이 네번 연속 눌러지면..

 

 

 

'달칵달칵'

 

 


역시나..

 

열릴 생각 않고 오히려 은찬이의 단순한 머리를 비웃는 야속한 숫자 키.

 

 

 

 

"에이씨...뭐야..."

 

 

"..."

 

 

"창문 넘어야 겠다.너 여기 있어봐."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놈이..난간을 타야만 도달할수 있는 위태위태한 2층 창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때..

 

 

 

 


"잠깐만........"

 

 

...

 


.....

 

 

..설마....

 

정말 바보같은 생각인거 알지만....

 


기억 지울거란 다짐과 전혀 모순되는 어리석은 행동인거 알지만...

 


...

 

 

 

 

 

"공.....삼........."

 

 


"...."

 

 

"공...팔.....?"

 

 


"....."

 

 


"그게 뭐냐....."

 

 

 


철커덕....

 

....

 

.....

 

 

 


"어!!?열렸네!!!!!!!!!!!!!!"

 

 

"............"

 

 


"너 어떻게 알았냐...?0308이 뭔데....?"

 

 

 

"내 생일......"

 

 

 

"뭐!!?!?"

 

 


"내 생일...삼월 팔일..."

 

 

 

"오늘..이라고...?"

 

 

 

".....응...오늘..."

 

 

 

"니 생일.......사월 팔일 아니였어.....?"

 

 

 


문을 열고 들어서며...

 

....

 


천천히...천천히...

 

 

바닥으로 쪼그라든 수백개의 풍선들에...

 


썪고 썪어내려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커다란 케익에...

 

 

 

....

 


.......

 

 

벽에 걸린 나와 하루의 사진...

 


커다란 천막으로 확대된 우리 두사람의 사진...

 

 

'열 아홉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

.....

 

끝으로...

 

그 천막에 프린트 된 까만 글씨를 맥없이 바라보면...

 

 

....

 

 


'투욱..'


..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형편없는 풍선들 사이에서 작은 카드를 집어드는 은찬이..

 


..

 

 

 

 


"그 전화...하루였구나....그렇구나...."

 

 

 


"열아홉번째 생일 축하한다..


깜짝 파티는 처음이라 좀 그렇네.."

 

 

 


그놈이였구나..

 


그래서 그렇게 그날 내내 나한테 심통 부렸던거구나...

 

 

..

 

 

 


"니 사촌동생한테 뭐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이런 깜짝 생일 한번도 해본적 없대서....


여기서 이런거 해주면 좋아할거래서..."

 

 

 

...

.....

 


그래서 세진이랑 그날밤 내내 같이 있었구나....

....

 

그 끔찍한 3.9일...마녀 전화 올때까진 여기서 이 풍선 달고 있었구나....

 

 

 

 

 

"그동안 나때문에 많이 고생했지....이제 그럴일 없을거야....

 

절대 그럴일 없을거야...."

 

 

 

...

....

 

 


점점 더 커져가는 은찬이의 목소리...

...

 

 

 


"한번도 한적 없지 이런 말..."

 

 


"그만 읽어도 돼 은찬아."

 

 


"......"

 

 

"케익 냄새 장난 아니다.얼른 치우고 시장 보러 가자."

 

 


"사랑해."

 

 

"...."

 


"그것도 죽을때까지."


...

 

.....

 

 

웃기지마.......


......

 


인생의 절반도 안되서 까맣게 잊어놓고...

 

뭐가 죽을때까지야..뭐가 사랑이야....


......

 

 

누가 이딴 파티 해달래.......

 

이것때문에 너 그렇게 된거잖아.....

 

세진이가 말한 깜짝 파티만 아니였어도 너 그날 밖으로 안나갔잖아....

 

....

.......

 

 


대체 뭐가 죽을때까지 사랑이야..

 


내 이름도 모르면서..바로 눈앞에 두고 얼른 가라고 신나게 손 흔들었으면서..

 


...

 

 

 

"한설."

 

 

 


"갔다와서 치우자!!얼른 시장 보러 가자 배고프다!!"

 

 

"지금 그 말."

 

 


"카드 그냥 아무데나 버려."

 

 

 

"이제 형이 너한테 평생 못지키게 된 그 말."

 

 


"가자가자.!!"

 

 

 

"내가 형 대신 지킬게."

 

 


"....."

 


...

.......

 

 

식탁위로 놓여진 하루의 카드..

 

사진속에서 밝게 웃고있는 내 얼굴...

 

그리고 은찬이의 발 밑에 천천히 밟혀가는 쪼그라는 풍선들..

 


...

 

 

가까워 오는 강은찬...

 

....

 

문을 열고 나가려는 내 앞을 한팔로 가로막는 강은찬...

 

 

 

 

 

"눈치 있음 좀 알아먹어 된박아."

 

 

"....."

 


"사랑한다고."

 


"....."

 


"형은 죽을때까지."

 

 


"..."

 

 

 

"그 동생은 죽어도."

 

 

 


"이제 아무도 안믿어......"

 

 

 


"고개 들어."

 

 

 

"꿈이야.......


여지껏 일들도..지금도...내일 아침 이면 깨어나는 꿈이야..."

 

 

 


"지금 나랑 있는것도......"

 

 

 

"그래......다.....


모든게 다..........꿈이다...."

 


....

 

 

........

 

 


탁탁...

 


막혀오는 숨을 힘주어 삼키며...

 

피눈물 나게 간신히 떠올린 웃음으로 물끄러미 놈을 올려 보면...

 


...

 

 


한 손을 문에 기댄채...

 

또 한손을 내 이마에 얹은채...

 

잠시 풍선으로 뒤덮힌 바닥을 지친듯 바라보다가...

 

다시 똑바로 고개를 들어 우스꽝스러운 내 눈을 똑바로 내려다보는 은찬이..

 

 

 


그리곤...

 

 

 

.....

 

..........

 

 

 


"그럼 지금 이것도 꿈이다.."

 

 

 

 

그 짧은 한마디와 함께..

 


나와 놈의 입술이 맞닿아 버렸다...

 

...

 

 


안되는데.....

 

이러면 결국 우리 둘다 상처 받고 말텐데....

....

 

 

 

 

긴시간동안....

 

천막에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웃고 있는 하루가...

 

아무런 미련없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릴만큼 꽤 긴시간동안...

 

..

 

 

우린 결코 해서는 안될 그 위험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

 

 


창문 너머로 어느새 몰래 스며 들어온 태양의 눈물방울이

 

은찬이의 머리카락을 까맣게 태워버릴때까지...

 


억지로 눌러 삼키다 이제 봇물처럼 터져나온 내 눈물방울이

 


은찬이의 옷깃을 턱없이 적셔버릴때까지...

 

 

 

 

윤영아.

 

너랑 나 말야...

 

아무래도 애초에 만나지 않았던 편이 훨씬 좋을뻔 했어..

 

 

그러니까 수천번 수만번 생각해봐도..

 

그 겨울날 내게 손 내밀지 않았던 편이 훨씬 나을뻔 했어..

 

 

 


보고있어......?

 

우리 세사람 결국 어떻게 되버렸는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어..?

 


....

 

 


이제 얼마 남진 않았지만..

 

내가 완벽히 참패할 시간..

 

꼬박 하루도 남지 않은것 같지만..

 

 

 

 

 

"우리들은 여전히 아프다.....


아무리 노력해도 발버둥쳐도....이것만은 절대 이길수가 없다...."

 

 

 

 


\ 할인마트.

 

 

 

 


운명에서 절대 용납되지 않을 그 키스로부터.


대체 얼만큼의 시간이 흘러 버린걸까..

 

 

 

 

30분.....?

 

아니면 한시간쯤...?

 

모르겠다..아니..알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이제 내게 있어 시간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수 없게 되버렸다...

 

 

 

 

 

 

"이게 고추에요 피망이에요?"

 


....

 

.......

 

 

 

별장에서 출발한뒤.

 


좀 붉어졌다 싶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마구 문질러 대더니..

 


뒤 따라붙은 내 쪽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이 낯선 할인마트로 들어와버린 강은찬.

 

 

 

 

 

그러더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고추에요.피망이에요.?'


라니...

 


...

 

 

 


"아니 거기 써있잖아욧!!-0-"

 

 

 

"어디..


안보이는구만..."

 

 

 


"여기!!여기 써있네!!!"

 

 


"뭐 이래..씨..글씨가 개콩알만 해가지고.."

 

 

 

"가지!!-0-가아지이!!!"

 

 

 

"가지."

 

 


"뭐.뭐 찾는데!!피망?고추!!"

 

 


"피망."

 

 


"피망?"

 

 

"아니.케이크 좀 만들라고요"

 

 


"아니 케이크를 만드는데 피망을 왜 넣어요!!


난 또 살다 살다 그런 요리는 처음 듣네!!-0-"

 

 

 

 

야채 코너에 서있는 아줌마가 답답하다는듯 고개를 절레 절레 휘저으면.

 

 

 


"....씨..."

 

 

 

 

기분이 확 상한듯.


들고 있던 가여운 가지를 손톱으로 꾸욱 눌러 버리는 은찬이..

 

 

 


"강은찬."

 

 

 

그리곤 등뒤에서 울려퍼지는 낮은 내 목소리에.

 

아직도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식품 진열대 위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돌려댄다.

 

 

 

 


"강은찬."

 

 

 

".."

 

 


"됐으니까.케익은 파는거 사가자.


여기선 샴페인이랑 과자나 몇봉지.."

 

 

 


"내가 만들어줄거다."

 

 

"피망 케이크 말하냐...?"

 

 


"까불지 마."

 

 

"괜히 재료비 수고비만 날리고 온갖 상욕 들어먹기 싫으면..


얌전히 그 가지 내려놔라..."

 

 


"......."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은찬놈이 가지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아줌마의 얼굴을 매섭게 쏘아보면..

 

 

 

...

 

 

 

"어!!?야 초밥 판다 초밥 사가자!!!"

 

 

 


어느덧 나의 시선은..

 

마트 맨 구석에 있는 초밥 진열대로 사정없이 꽂혀 버렸고..

 

 

 


"맛있겠다..저놈들 참 맛있겠네..!!"

 

 

 

 

 

대답도 듣지 않은채 휘적휘적 그리로 걸음을 옮기는 날.

 

놈은 전혀 의외라는 눈빛으로 마구 흝어대기 시작했다.

 

 

 

 

 

"야.너 해산물 못먹잖아."

 

 

 

"어.근데 이제 먹어."

 

 

 

"왜....?"

 

 


"왜라니?"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왜..?"

 

 

"글쎄..한번도 왜라는 생각은 해본적 없지만..."

 

 

 

"뭐냐 그게."

 

 


"정말...그러구 보니까 내가 왜 먹지...?..그 싫어하던걸..."

 

 


"병신.니가 그러니까 한설이지."

 

 

"닥쳐라.피망 케이크."

 

 

"오케이.닥칠게.벙개걸."

 

 

"야!!!!!!!!!넌 그 몇년전 얘길 왜 또 꺼내냐!!!!!!!!?"

 

 


"쪽팔리게 세살 어린놈들하구 채팅이나 하구"

 

 

"그거 진짜 내가 한거 아니라니까 임마!!!!!!!!"

 

 


"이것두 보면 남자 꽤 밝혀요."

 

 


"야!!!!!!!!!!!그게 니가 나한테 할말이야!!!!!!!!?"

 

 


"난 신발.채팅은 안한다."

 

 

"내가 한거 아니라니까!!!!!!!!!!!"

 

 


"벙개가 좋아.남자가 좋아.♬"

 

 

"그만해라.그만해.!!!"

 

 

 

씩씩대는 날 남겨두고.


한손으로 신나게 과자 봉지를 흔들며 초밥 코너로 멀어져가는 강은찬.

 

 

 

 

 

"참나...어이가 없어...


피망 케이크라니..."

 

 

 


나의 어처구니 없는 혼잣말을 듣기라도 한듯.


살짝 고개를 돌려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2년이란 긴 시간이 지난뒤에 다시 보게 된..


그러나 또 다시 이틀 이상 지켜 볼수 없게 된..

 


놈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

 


.....

 

 

 

 

 

"샴페인!!초밥!!케이크!!폭죽!!과자!!컵라면!!!!!!"

 

 

 

"..........."

 

 

 

"야야.인상 펴라.누가 너 잡아 먹는대냐"

 

 

 

 

 


\ 별장.

 

 

 

 


양손 가득 까만 봉지를 달랑대며 다시 들어온 이곳.

 


물론 은찬이와 내 손에 의해 천막이며 풍선들은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방 구석으로 흔적도 없이 처박혀 버렸고...

 

 


...

 

 

"바보 삼룡이 같애.."

 

 

 

지금 내 심정을 조금도 알리 없는 강은찬은.

 

어느새 반바지 차림으로 별장 거실에 나와..

 

봉지 안에서 먹을것들을 잔뜩 꺼내어 늘어 놓는다..

 

 

 

 

 


"아!!!담배 안샀네!!!"

 

 

 

"아직 여섯시밖에 안됐는데 되게 어둡다...."

 

 


"몸 끈적여 씨..."

 

 


"난로불 켜야겠다.."

 

 


동문서답.


동문서답..-_-..

 

 

 

빌어먹을..

 


아까 그 키스 때문에 또 요 모양이 되어 버렸네..

 

 

 

 

"나..나 씻는다..!!!"

 

 

"....."

 

 

 


두 얼간이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마당에.

 


놈이 그 대포알 같은 한마디를 지껄이며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면..


...


케이크안에 든 초 개수를 세어보던 난 마치 거북바위 마냥 딱딱히 얼어버리고..

 

 

 

 

 

"왜!!!!"

 

 

 


이런 나의 표정을 의식한듯.

 

화장실로 가려다 말고 대뜸 고함을 빼액 지르는 강은찬놈.

 

 

 

 

"씻..는다고..?"

 

 

 

"그럼 넌 안씻냐!?"

 

 


"....."

 

 

"추접스럽게 훔쳐볼 생각 하지 마라!!!!"

 

 


"그래.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거실을 활보해도 니 몸만은 절대 볼일이 없다."

 

 

 

"이건 가만보면 꼭 줘맞을 소리만 골라서 해"

 

 


"알았으니까 빨리 씻기나 해!!나 배고파!!"

 

 

 

"에이씨...내 담배.."

 


...

.....

 

머리를 긁적이며.

 

놈이 매끈한 두 다리로 화장실을 향해 사라져 가면..

 

난 또 어쩔수 없는 피식 웃음을 짓다가 먹을것을 이리저리 늘어놓기 시작하고..

 

 

 

...


....

 

 

'촤아아아아.촤아아아아아.촤아아아아.'

 

 

 


저 멀리서 샤워기의 물줄기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올 무렵.

 


..

 

'그럼 지금 이것도 꿈이다'

 


또다시 떠오르고 만 그 위험한 키스질에 후끈 양 볼이 달아 오르니..

 

 

..

 

 


"이 새끼가 욕조랑 눈이 맞아 헤엄을 치나!!


왜 이렇게 안나와!!"

 

 

 


애꿏은 욕조를 몰아 세우며 TV쪽으로 억지 시선을 돌려 버렸다.

 

 

 

'뾰로롱.'

 


한손은 리모콘 전원 위에 올려 놓은채.

 


또 한손은 꺼내온 담요로 온 몸을 휘 감싸 안은채..

 

 


...

 

 

 

"내 칼을 받아라 뿡쟁이 대마왕!!!!!이야압!!!!!!!!!"

 

"우하하 넌 날 이길수 없다!!절대로!!!!!!"

 

"자만 하기엔 아직 이르다구!!!!!!!!!!"

 

...

......

 

 


만화 영화도 참 오랜만에 보는구나..

 

 


하긴..

 

이 시간대에 tv를 켜는것도 정말 몇년만의 일이니까..

 

 

 

"레이저 퀵퀵 오렌지 빔!!!!!!!!!!!-0-"

 

 


그나저나 여기에 채널 고정 시키고 있다가..

 

은찬이 나오면 또 온갖 구박을 다 들어 먹겠지..

 

 


...


........


참..나도..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는 짓인지..

 

 

 


"네 여기는 빙어 낚시 현장입니다!!


3월초임에도 꽃샘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려 여기 의림지에서도 빙어 낚시가.."

 

 

 


달칵달칵.

 

경쾌한 리포터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습관적으로 계속 리모콘 버튼을 눌러대면..


...


.........

 

 


"하는것도 더럽게 없네.."

 

 


아직 이른시간이라 딱히 재밌는것도 볼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리모콘의 전원 버튼을 꾸욱 누르려고 하는데...


....

.......

 

 

엄지 손가락에 힘만 조금 주면 끝나는 일이 였는데...

 

 

 

 

"네 속보입니다."

 

 

순간.

 

다급하고 조심스러운 남자 앵커의 목소리와 함께.

 

두 손과 두 눈이 순식간에 TV위로 철컥하고 멎어 버리니...

 

 

 

...

 

 

 

 

"마흔 한살의 김모씨가 두 아들의 살인 미수 죄로 경찰에 붙잡혀


시민들의 충격을 사고 있습니다."

 

 

 

...

......

 

 

화장실안에서 뚝 끊긴 샤워기 소리.


마냥 신이 나버린 은찬이의 콧노래 소리.

 

 


....

 

 


"예.이번 사건은 뒤늦은 한 여학생의 신고로 밝혀졌는데요.."

 

 


화면 안으로 분명히 비추어지는 마녀의 옆 얼굴.

 

 

 

"지금 김씨는 모든 죄를 인정하지만..


조금의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어


더욱 더 저희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

.......

.............

 


또 고개를 숙여 잘 알아 볼수 없지만..

 

분명 마녀 옆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는건...

 

가정부 아줌마와 연극 극단의 노파..

 

 

 

 

"남편 강모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네.신원불명의 여학생이 사실을 제보 하기전까진


그 누구도 김씨의 치밀한 계획을 눈치챌수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원인이 돈 때문이라고 들었는데요."

 

 

"네.김씨는 이혼 당시에도 상당한 액수의 위자료를 받았던걸로 알려지나.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여 자신의 친아들이 재산을 상속받도록 치밀하게.."

 

 

 

그 뒤엔 할아버지와 강주원...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창백히 질린 얼굴로...


허탈히 마녀의 옆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할아버지와 그의 첫째 아들 강주원..

 

 

 

...


.....

 

 

 

"아무튼 이번 사건은 일반인들이 상상할수 없을만큼 복잡히 얽혀 있어


좀 더 많은 조사를 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하루는...

 

그럼 하루는 어디 있나요....

....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 멍청한 놈은..

 


기억을 까맣게 지워버린 그 행복한 놈은 도대체 어디에서 울고 있나요..

 


...

 

 

 

"그럼 그 신원불명의 여학생은 현재 어디에 있는 상태죠?"

 

 

 


"네.그게 조사를 받던중 갑자기 행방불명된것으로 전해지는데요.


현재 경찰측에서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중이므로 빠른 시일내에.."

 

 

..

.....

 


아수라장이다..

 

작고 네모난 상자 안에서 미친듯이 카메라 후레쉬가 터져 대면..

 

...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할아버지가 작은 점으로 사라져가고..

 

끝으로 뻣뻣히 얼굴을 치켜든 마녀가 클로즈업 된다..

 

 


...

............

 

돌이킬수 없는 현실..

 

주워 담을수 없는 오늘..

 

내가 완벽히 뒤집어버린 그날의 진실..

 

....

 

 

그리고...

 

 

"뭐하냐?"

...

.......

아무것도 모르는 강은찬.

 

 


"어?"

 

"뭐야.니가 뉴스도 봐?"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재빨리 티브이를 끄고 애써 태연한척 기지개를 펴보였다..

 

 

 

그러자 이놈.

 

머리위에 수건을 한장 얹고서 내 앞에 털퍼덕 주저 앉아 버린다..

 

 


...

 


여전히 입가엔 씨익 미소를 머금고...

 


리모콘 버튼 하나면 완벽히 무너져 내릴 현실을 끝까지 알아채지 못하고..

 

 

 


...

 

....

 

 


"나 머리 말려줘"

 

 


".................."

 

 

"머리요.머리 말려주세요."

 

 


"어...그래........


...머리....."

 

 

"너 아까부터 왜그래"

 

 

"어?"

 

 

 


하얗고 커다란 수건이 놈의 머리를 멍청히 털어내기 시작하면.

 

두 눈을 빼꼼히 들어 날 빤히 바라보는 강은찬.

 

 

 

 

 

"형 때문에..?"

 


"아니..그게..아니.."

 

 

"..."

 

 

 


한숨..


젖은 머리칼을 매만지며 또다시 터지고 만 은찬이의 한숨..


그리고 마녀의 얼굴..


그 위로 겹쳐지는 할아버지와 강주원의 눈물..

 

 


그럼 하루는..


우리 하루는 대체 어디에서 울고 있나요...

 


...

 

 


"은찬아..."

 

"..."

 


"강은찬.."

 


"왜."

 

 

 

좀 삐진듯한..

 

고개를 푹 숙인 은찬이의 짧은 대답이 들려오면...

 

여전히 놈의 머리를 어설프게 털어내며.

 

기계적으로 흘러나오는 잔뜩 메어버린 내 목소리..

 

 

 

 

"엄마...사랑해...?"

 

 

 


....

......

 

 

스스로 물어놓고도 어처구니 없는 질문인거 알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해버렸다..

 

 

 

 

한글자..한글자..천천히..


아닐수 없지만 아니라는 그 한마디 대답을 바라며..


이기적인거 알지만 놈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어주길 바라며..

 

 

...

 

 


"응..."

 

 

 


결국 이런 대답이 터져나올줄 뻔히 알면서도..


은찬이도 어쩔수 없는 한 여자의 아들이라는걸 알면서도..

 

 

..

 

 


"왜...?"

 

 

"왜....?"

 

 

"응..왜..엄마 왜..엄마 왜 좋은데.."

 

 

"......."

 

 

 

 

두번째로 이어진 내 꼴통맞은 질문에..

 

수건 너머로 두 눈을 살짝 찡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강은찬.

 

 

 

 


".......음....."

 

 

".................."

 

 

"너도 해산물 이유없이 좋아졌다며."

 

 


"...."

 

 


"나도 이유 없어.


엄마 좋아하는데 그런 이유가 어딨냐.."

 

 

 


창밖으로 해가 조금씩 저물기 시작하면..

 

은찬이 머리위로 점점 커져가는 희미한 내 그림자..

 

 

 

 

 


"이용당하는거 익숙하게 만든 사람이라도..


그래도..사랑해..?그래도..좋아..?"

 

 

 


"..........."

 

 


"그래도...사랑...해...?"

 

 


"하나밖에 없는 엄마잖아..."

 

 


"응...."

 

 

 

"아무리 그래도 나한텐..


세상 통틀어 딱 하나밖에 없는 우리 엄마잖아...."

 

 

..

....

툭...

 

 


바닥으로 떨어내진 하얀 수건에...

 

뽀얗게 웃고 있는 은찬이의 얼굴이 내게 인사하면...

...

 

 

안녕...

 

난 도저히 놈을 바라볼수 없는 가슴에..

 


재빨리 고개를 숙여 아랫 입술을 힘껏 물어 버렸다..

 

...

 


또 안녕....

 

....

 

.........

 

 

 

하루와 은찬이는...

 

죽을때까지 아무것도 모른채 밝게 웃어주길 바라는 어리석은 간청과 함께..

 

잔인한 운명이 절대 허락해줄리 없는 바보같기 그지없는 마지막 소원과 함께..

 


"생일 축하 합니다!!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꼴통!!생일 축하 합니다!!!"

 

 

 


\ 남양주 별장.PM 8:15분.

 

 

 

 


은찬이가 케익을 앞에두고 신나게 박수를 치는데..

 

21개의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며 그런 놈의 얼굴을 비춰 주는데..

 

 

...

 

 


어떡하지..


머릿속이 텅텅 비여버렸다..

 

 


애써 하루만큼은 까맣게 잊으려한 그 현실이..

 

말없는 작은 상자를 통해 내 어리석음을 비웃어 주었다..

 

 

 

 

"야야.촛불 안끄냐!!"

 

 


"....."

 

 


"내 노래 쪽팔리게 할래!!!!!!"

 

 

"아...."

 

 


"아줌마 진짜 죽는다."

 

 

"미안..미안해.."

 

 


간신히 눈안으로 들어온 은찬이의 고깔 모자에..

 

힘없는 한숨으로 촛불을 꺼트리면..

 


...

.....

 

 

"후.."

 

 

 

그 한숨만큼이나 지쳐버린 얼굴로..

 


옆에 놓인 하얀 플라스틱 칼을 케익 위로 가져오는 마녀의 친아들..

 


...

 

 

 

"미안.."

 

 

"뭐가."

 

 

"이런거 너무 오랜만이라...잔뜩 굳어져 버렸네..촌스럽게.."

 

 


"앞으로 생일마다 할거야.내년 니 생일에도.백번째 니 생일에도."

 

 


"......"

 

 


"씨...케이크도 되게 맛 없겠네..거봐.내가 만들어 준다니까..."

 

 

 

"강은찬."

 

 


"그래도 배고프니까 먹어준다!!"

 

 


"강은찬."

 

 

"....."

 

 


심상치 않은 내 목소리에.

 


얘가 또 왜 이러냐는듯...

 


오른쪽 뺨에 크림을 묻힌채 뺀초롬히 날 바라보는 은찬이.

 

 

 

 


"은.찬.아."

 

 

"너 나 샤워하는 사이에 몰래 샴페인 쳐 마셨냐?"

 

 

"아니.."

 

 


"근데 아까부터 왜그래.사람 불안하게."

 

 


"약속 하나만 하자.."

 

 


"무슨 약속."

 

 

 

"내일 아침까지 TV도 핸드폰 전원도 키지 않겠다고.


그냥 나랑 단둘이 이렇게 있겠다고."

 


....

......

 

 

 


허공을 응시한 멍한 내 목소리에..

 

볼에 묻은 크림을 닦으며...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듯 전원 꺼진 핸드폰을 구석으로 휙 집어 던져버리는 놈.

 

 

 

 


"걱정하지마.나도 저거 싫다."

 

 


"....."

 

 

"얘가 아까 그 키스 한방에 갔나."

 

 


"날 왜 좋아했냐......"

 

 


"뭐..?"

 

 

 

"왜 하필..날 좋아했냐..하고 많은 여자중에..


너한테 잘해준것도 아닌데..성격이 착하고 예쁜것도 아닌데..


거기다 니 형까지 그렇게 죽어라 사랑했는데.."

 

 

 


하필 나냐 그래..

 

하필이면 너같은 놈이 나같은 년이냐..

 

 

 

 

"바꿔."

 

 

 

"......"

 

 


"원래 바보들은 과거형 현재형도 구분 못하냐.


했냐가 아니라 하냐로 바꾸라고"

 

 

 


난 이제 어떻게 가지..

 

이 바보놈 혼자 두고 어떻게 등돌려 가지..

 

이 왕단순 왕바보 가슴속에 사는 그 진드기 새끼 도대체 어떻게 죽이고 가지..

 

 

 

 


"너 처음 오던날."

 

 

"...."

 

 

 

"피부는 까매서 머리도 까매서.


인상은 드럽게 생겨 가지고.."

 

 


"......"

 

 

 

"되게 거슬렸어.


또 아빠가 너랑 형 엮을려고 엥간히 억지 부렸어야지.


그래서 이게 또 우리 형 뺏어가나 싶어 되게 밉고 되게 거슬렸어."

 

 


"....."

 

 

 

"근데 어느날 부턴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 사이로..

 

푹 젖은 은찬이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그 날을 기억하듯..

 

신조차도 되돌려 줄수 없는 그 첫날을 회상하듯...

 

 

 

 


"니가 아니라 형이 거슬리는거야."

 

 

"....."

 

 


"형이랑 웃고 있는 널 보면 짜증났는데.


어느날부터 니 옆에서 웃고 있는 형도 짜증나는거야.."

 

 


"병신.."

 

 

 

"그치.동생이 더럽게 못되 쳐먹었지.


처음엔 거지라고 그렇게 놀리다가.꺼지라고 갖은 구박 다 하다가."

 

 


"..............."

 

 

 

"아마 그날일걸..


니가 첨으로 내 생일 챙겨준날..."

 

 


"그래....그날....기억나..."

 

 


"끝까지 형만 보는 너 보면서..


처음엔 장난으로..오기로..그 담엔 호감으로..


결국은 내 인생 전부로..."

 

 


"......"

 

 

 

"넌 사람한테..


인생의 전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줄 아냐.."

 

 

 

"응...알아....."

 

 

 

"...."

 

 

 

숨쉴 필요가 없어져.


살아갈 필요가 없어져..


죽고 말아..


전부가 없어진 사람은 아무 미련없이 두려움 없이 죽어 버리고 말아..

 

 

 

 

 

"우리 진짜..많이 고생했다...


울고..싸우고..오해 하고......죽을뻔하고....떠났다가...다시 붙잡히고...."

 

 

 

그런데 나도 전부를 잃었어 강은찬.

 

넌 아직이지만 난 벌써..

 

아니 이미 오래전에..

 

그래서 이렇게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간신히 간신히 숨쉬고 있어..

 

 

....

 

 

나도 인생의 전부를 차례차례 잃어버렸어..

 

...

 


엄마..아빠..유민이..윤영이..

 

...

 

강하루...

 

이렇게나 많이..

 


한번도 견디기 힘든데 이렇게나 많이......

 

 

 

 

 

 

 

"에이씨 분위기 또 왜이러냐...!!


얌마!!니가 이상한거 묻느라 이렇게 됐잖아...!!!"

 

 

 

눈치없는 이 바보씨는.


아직도 내 표정을 알아채지 못한걸까..


아니면 하루탓일거라 여기고 애써 모른척 하는걸까..

 

 

 


"도망가자고 했었지!!!"

 

 

 


케익을 썰어 접시에 담아 넣음과 동시에.


행여 내가 달아날까봐..다시 하루의 품으로 돌아갈까봐..


안절부절 못해하며 그 쾡한 한마디를 던져 놓는다.

 

 

..

 

 


"뭐..?"

 

 

 


"니가 그때 그랬잖아.아무도 없는데 데리고 도망가 달라고.


어른들 없는데 가서 딱 한번만 행복하자고."

 

 


"내 생일도 기억 못하면서..그런건 잘도 기억하냐.."

 

 


"시끄러!!!!!!!!!!"

 

 

 

"할말 없음 맨날 시끄럽대..."


...

.....

 

 

 


화장실의 수증기 덕분에 한껏 더 하얘진 두 뺨을 붉히며..


우악스럽게 케이크 담긴 접시를 내 앞에 밀어넣는 강은찬.


..

 

 


그리곤 샴페인을 따르고..


고깔모자를 쓴 덕분에 이리저리 붕붕 뻗친 머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털며..

 


...

 

 


이제 그만 멈춰주길 바라는..


입속으로 다시 삼켜주길 바라는 마지막 말들을 천천히 내뱉기 시작한다.

 

 

 

 

 

"내일 당장 가자."

 

 

"...."

 

 

 

"박윤영 죽은날.형 자살 시도한 날.그리고 너 떠난날."

 

 


"숨막히는 날."

 

 


"그래.그 숨막히는 날이 내일이잖아."

 

 

"...응..."

 

 

 

 

그런데 그건 자살 시도가 아니라 사고..

 

처음부터 계획되 있었던 끔찍한 사고..

 

 

 

"그날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다시...시작..."

 

 


"넌 때려죽여도 행복해질수 없는 운명이라며.그러니까 이기자며.


다 깨부수어 버리자며."

 

 


"...."

 

 

"셋이 같이 붙어 있으면 안되는 빌어먹을 운명.


다 거스르고 도망가 버리자며."

 

 


"다..기억하네....."

 

 

 

 

기억하면 안될 말들만..모습들만..

 

그렇게 잔뜩 머리속에 담아 놓고 있네..

 

 

 


"형은 없지만..우리 둘뿐이지만.."

 

 

"그런데가..있을까.."

 

 

"그때도 너 그렇게 말했어."

 

 

"...."

 

 

"그래서 형이랑 내가 뭐라 그랬는지 기억해?"

 

 


"....."

 

 

 


아니..

 

기억 못해..안할래..

 

그 기억 슬퍼서 그냥 지울래..

 

 

 

 


"우리가 만들자."

 

 


"........."

 

 


"우리가 이기자."

 

...


........

 

 


지이익..지이익..

 


이미 한계에 다다른 머리와 가슴이 잘게 잘게 찢어져 내리는 중인데..

 

그래서 놈의 두 손을 꽉 붙들고 가늘게 신음하고 있는 중인데..

 

 

 

 


"우리가 이기자."

 

 

 


여전히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씩씩한 모습으로..

 

은찬인 내 머리 위로 빨간 고깔 모자를 씌워주며 꽉 메인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야.."

 

 

"..응..."

 

 

"야 한설.."

 

 


"...응..."

 

 


"여보 마누라!!!!!!!!!!!!!"

 

 


"..응.."

 

 


"너 분명히 응이랬다!!!!!!!!!!"

 

 


"응..."

 

 


"지금 내가 여보 마누라 했는데 응이랬다!!!!!!!!!!!"

 

 


"응......."

 

 

 

응.......


응...............

 

.......응.....

 

 

 

 

 

"나 무슨...


엄지 공주 약 타먹여 납치한 개구리 대마왕 된 느낌이네."

 

 

 

 

끄덕끄덕..

 

 


멍하니 고개를 떨구는 날 보며..


긴 다리를 쭉 뻗어 내 머리를 자신의 무릎위로 누이는 강은찬.

 

 

 

 


"여보 마누라."

 

 


"..."

 

 

 

"이런말 아직 안되는거 알아요.


아직 너한테 형 아니면 안된다는거.


내가 지금 이러는건 너 힘들게만 한다는거."

 

 

 

"..응..."

 

 

 


"그래도 난 포기 안해요..이제 너 혼자 남았으니까..

 

지켜줄 사람 없이 혼자 되버렸으니까..


그래서 더 포기 안하고 징그러운 개구리 대마왕 계속 할래요..."

 

 


"...응..."

 

 

 

"서른 한번째 생일..마흔 한번째 생일..


예순 한번째 생일.."

 

 

 

"...응..."

 

 

 

 


천천히 내 묶은 머리를 풀러 내리는 은찬이의 손길..

 

흘러내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은찬이의 따뜻한 손길..

 

 

 

 

 


"계속 계속 너 여보 마누라 하고 부를래요.."

 

 


"...."

 

 


"니가 듣든 안듣든..난 계속 기다릴래요...


백한번째 생일이 될때까지..늙어서 다 꼬부라질때까지..


이빨빠진 목소리로 계속 그렇게 부를래요..."

 

 

 


...

....

 

 

다음 생일은 없어요...

 


그치만 내 다음 생일은 없어요.....

 

 

 

 

 

"한설아.."

 

 

"..응.."

 

 


"존댓말 놀이 계속 할까.."

 

 

"응.."

 

 


"그래.넌 그렇게 응만 해라.내가 계속 떠들께.."

 

 

 

"...응..."

 

 

 

천천히..아주 천천히..

 

은찬이의 손가락이 내 눈물방울을 훔쳐내기 시작하면..

 

놈은 허리를 숙여 내 어깨위로 자신의 얼굴을 묻어 버렸고..

 

 

 


덕분에 푹 파묻힌..

 

그래서 잘 들리지 않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

 


그 바보의 존댓말 놀이는 끊이지 않고 계속 되었다..

 

 

 

 

 


"저기요.우시는 중에 불쑥 죄송한데요."

 

 

"...응.."

 

 


"나갈래요.."

 

 

"..."

 

 

"그날처럼 웨딩드레스는 없지만.나도 멋있는 수트 대신 반바지 입고 있지만.


그리고 형도 없지만...."

 


"........"

 

 

"나갈래요.그날처럼."

 

 

"....아니..."

 

 

"..."

 

 

"단둘이 있자...여기 그냥 이렇게 있자...


해 뜰때까지 단둘이 여기 있자.................."

 

 


...

......

 

단둘이...

 

아무 방해도 받지 말고 단둘이...

 

마지막으로 운명이 허락해준 내 생일이니까...

 

 

어떤것도 모르고..

 

그 어떤것도 생각하지 않고..

 

우리 둘이..

 

강은찬 한설 우리 둘이..

 

 

 

"...."

 

 

 

 

점점 작아지는 은찬이의 숨소리와 함께..


완벽한 어둠이 별장의 거실을 뒤덮어 버리면...

 


...

 

 


난 그 무릎 위에 한없이 기대 누워 마르지 않는 눈물로 놈의 두손을


흠뻑 적셔 버렸고...

 

 

...

 

 

여전히 놈은 내 뺨위로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떨구며..


숨막히는 어둠을 힘껏 막아놓고 피식피식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

 

 


"완전.이거 나 사귀던 여자애들이 보면 뒤집어 지겠네."

 

 


"..."

 

 


"걔들 사귈땐 이런 느끼한 말 때려 죽여도 안했는데.


보고싶단 말도 심지언 어디 같이 놀러 가자는 말도.."

 

 

"......"

 

 


"졸리다...그치..."

 

 


"응..."

 

 


"아직 열시도 안됐는데...왜 이렇게 졸리지...."

 

 


"은찬아..."

 

 

 


조금씩 내 몸위로 떨구어 지는 은찬이의 몸을 느끼며..

 

내가 용기를 내어 천천히 입을 열면..

 

 

들리는듯..


혹은 들리지 않는듯..

 

...

 

두손으로 내 어깨를 꽉 움켜 잡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강은찬.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뭘.."

 

 

 

"약해지지 않겠다고..강해지겠다고..."

 

 


"난 원래 강해 임마...."

 

 

 


"끝까지 살아 남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울지 않겠다고....도망치지 않겠다고....."

 

 


"난 너랑 같이 도망갈거야."

 

 

 

"은찬아..은찬아..."

 

 

 

 

 


우리 은찬아....


한없이 사랑받아 한없이 미안한 은찬아.....


전부를 다 바쳐 사랑한 죄밖에 없는 왕단순 왕바보 강은찬아...

 

 

 


"왜......졸린데 왜 자꾸 말 시켜...."

 

 

 

 

내일이 오지 못하게 막아 버릴수만 있다면..


지금 여기서 시간을 딸칵 멈추어 버릴수만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은찬아...

 

 

 

"얼른 자...된박아...내일 아침 먹고...같이 떠나야지..."

 

 

"강은찬."

 

 


"왜.."

 

 

"니 인생에서 한설을 빼면 빵이 남는댔지.."

 

 

"...."

 

 

 


점점 흐려지는 은찬이의 숨소리..

 

어느덧 내 몸위로 완벽히 기대 누워버린 영원히 그리울 은찬이의 향기..

 

 


"그때 그 멋있는말 거저 베껴서 미안하지만...."

 

 


"내일..같이....도망..가자.."

 

 


"내 인생에선 강은찬을 빼면 하루가 남아..


내 인생에서 하루를 빼면 강은찬이 남아.."

 

 

 

"병..신.........나보다..더..느끼하..게.."

 

 


"나한텐 너희 둘이 전부야.....


그래서 고마워.....그래서 행복해......."

 

 

...


....

 


이젠 완전히 역전 되어 버렸다..

..

 

 

 

 

 

내 품에 놈이 안기고..

 


내가 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

 

 


그렇게 젖은 머리카락이 손바닥 위로 미끄러지고..

 

난 구석에 놓여있던 은찬이 핸드폰을 손위로 꼬옥 움켜 쥐며..

 

끝으로 놈을 가슴안에 꽈악 안아 넣었다..

 

 


...

......

 

 


미안해....

 

또 이렇게 되어 버렸어...

 

결국 나 때문에 일이 또 이렇게 되고 말았어...

 

 

 


...

 

 

같이 도망 가기로 했는데..그럴수가 없게 되버렸어..


빌어먹을 운명에게 고개를 들 힘조차 까마득히 뺏겨 버리고 말았어..

 

 

 

 

"그래도....백 한번째..생일엔....."

 

 

"....."

 

 

"내가 여보 마누라 하고 불렀을때..."

 

 

"......"


...

....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걸까..

 

또 어떤 말로 내 눈물을 보고 싶어 했던걸까..

 

...

 

 

그 말을 채 잇지 못한채..


은찬이가 내 가슴 안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면..


...

 

난 온몸이 눈물로 꽈악 막혀버린 까닭에..

 

조그맣게 벌린 입으로 숨을 헐떡이며 놈의 어깨를 끊임없이 쓰다듬어 댔고..

 


...

.........

 

 

 

니가 원한게 이런 거였냐..

 

이렇게 안타까운 얼굴로 울어 제끼는거..

 

 

 

그동안 평탄히 지낸 내가 우습고 같잖아서..

 

그래서 그동안 그 행복들 갚으라고 이렇게 내 생일날 몰아 버렸냐..

 


...


.......

 

 

 

이제 시작이라고...?

 

이제 또 우리의 얽히고 얽힌 그 빌어먹을 악몽이 되풀이 될거라고....?

 

..

 


웃기지마..

 

그딴건 개나 줘버려...

 

그렇게 니 손에 또 놀아나느니...우리 셋 다 또 죽을만큼 괴로워 지느니..

 

 

...


.......

 

 

 

그 악몽 나 혼자 짊어져...


니 장난에 울고 불고 하는 그런 개만도 못한 하루는 오늘로 끝이야.

 


..

 

 

 

'삑...'

 

 


...

......

 

 

 

 

아침까진 잠들어 있어야 할 그 휴대폰을 서서히 깨우며..

 

한손으론 계속 은찬이의 뜨거운 두 뺨을 쓰다듬었다..

 


...

.....

......

 

 

 

 

'강하루'

 


010 - 9852 - .....

 

...


.....

 

이윽고.


전화번호부 액정위로 선명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리운 그 세글자.

....

 

 


아무것도 모른채 자고 있을..

 

혹은 모든 사실을 알아 어디선가 방황 하고 있을..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제일 조여오는 강.하.루. 단 세글자..

 


..

 

 

 

'따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르릉.'

 

 


잠시후...

 

핸드폰 너머로 건조한 그 수화음이 울려 퍼지고...

 

분명 그 지겹고 듣기 싫은 소리는...

 

은찬이가 잠꼬대를 웅얼 거릴때까지 되풀이 되고 또 반복 되었지만..

 

 

 


'따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릉.'

 

 

 

여전히 하루의 목소리는 낯선 내 귓가에 찾아들길 거부했고..

 

 

...

 

.....

 

 

 

"여보......마누라........"

 

 

..

 

....

 

 

은찬이의 입에서..

 

이번엔 보다 선명하고 힘겨운 그 잠꼬대가 흘러 나왔을때..

 


....

 


그리고 지친 내 눈물이 어둠을 잔뜩 노려보며 숨을 헐떡 이고 있을때...

..

 

 

 

 

"너 어디야."


..

 

....

 

 

 


핸드폰 너머로 잠에 푹 젖은 하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까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내 고개를..

 


왼편에 자리한 창문 너머로 힘차게 젖혀 버렸다..

 

 


...

.....

 

 

 


"너 어디냐고 강은찬."

 

 

 

 

 

 

그리고 그때 시각은.


새벽 3:17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강은찬."

 

 

 


\ 남양주 별장.AM 3:17분.

 

 

 

핸드폰 너머로 다급히 들려오는 하루의 목소리.


손안에 만져지는 은찬이의 마른 머리카락.

 

 

 

 

 

"어디냐니까."

 

 


"하루..야.."

 

 


".........."

 

 

 

"....하루야....."

 

 


"누구....."

 

 

 

알아 들을리 없지만..


내 목소리 따위 이제 기억 해줄리 없지만..

 

 

...

 

그래도 계속...


마지막이라는 핑계로 뻔뻔한 가면을 쓰고 이렇게 계속...

 

 

 

 

 

"나 설이..."

 


"내 동생 어딨어."

 

 

 

"나랑 같이..."

 

 


"빨리 들여보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나의 첫번째 예상대로..

 

아무도 하루에게 그 끔찍하고 토나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여기..."

 

 


그리고..

 

욕심쟁이 한설은..

 


아직 밝혀 지지 않았다는 그 마지막 사실에 조그만 희망을 얻고서..

 


염치없는 말을 꺼내기 위해 천천히 마른 입술을 떼어낸다..

 

 

 


"지금 여기...남양주..별장인데..."

 

 


"....."

 

 


"니 동생 데려가라...."

 

 

"뭐..?"

 

 

 

"난 가야 되거든....난 가야 되는데...


그럼 이놈이 혼자 남거든..."

 

 


"너 누구야."

 

 

"한설."

 

 


"...."

 

 

 

내 이름은..한설..

 

니가 한때 박윤영이라고 착각했던..

 

그러다 겨우겨우 알아서 힘겹게 불러주던..


...

 

 


하지만 결국은 까맣게 잊어버린..


단 한번의 사고로 머릿속에서 미련없이 지워버린..

 

........

 

 

개같은 운명 탓에 니 곁엔 죽어도 함께 할수 없는 한.설.

 

 

 

 

 

"그 학생증..?어제 재활원에서 본..?"

 

 


"........"

 

 


"너 은찬이 여자친구 였어?"

 


"하..."

 

 

 

 

쌔근쌔근 잠든 은찬일 보며.


다음으론 아무 감정 없는 하루의 말을 들으며..


상황에 맞지 않는 너털 웃음을 터트려 버리면..

 

 

 

 


"알았어 끊어."

 

 


그 웃음의 의미도 묻지 않고서..


아니..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서..


툭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하루..

 


...

....

 


내 마지막 욕심에 아무것도 모른채 달려와줄 하루..

 

 

 

 

 

"한설..추해..세상에서 젤 추해..."

 

 

그렇게..


들릴리 없는 혼잣말을 중얼 대며..


품안에 안긴 은찬이를 더욱 꽈악 안아 버렸다..

 

...

 

 

 

이젠 두번 다시 들을수 없는 숨소리..

 

두번 다시 만질수 없게 된 부드럽고 따뜻한 큰 손..

 

두번 다시 볼수 없게 된 하얗고 서글서글한 얼굴..

 

두번 다시 느낄수 없게 된 단순하고 멍청하기 그지 없는 가슴..

 

 

 

"강은찬.난 이제 갈거야.."

 

 


"......."

 

 

"그리고 넌 몇시간 후면 알게 돼..."

 


"...."

 

 

 

 

큰 충격을 받게 될거야..

 

속사정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카메라들이 무작정 널 향해 후레시를 터트릴지도 몰라..

 

...

 

 

 


네 엄마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널 바라볼꺼고..

 

그래서 넌 좀 많이 슬퍼져 버릴거야...

 

여지껏 내가 아팠던 만큼...

 

 

 

 

"그만큼 너도 힘들어 질거야..."

 


...

......

 

 


마치 잠든 막내 아들을 쓰다듬듯..


크림 묻은 볼을 천천히 닦아 내주는 내 오른 손가락..


동시에 바닥으로 떨구어지는 은찬이의 상처 투성이 오른손..

 

 

 

 

 


"이 손..나 구하려다 그런거였는데..."

 


"...."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내 목숨 지켜주려고 했었는데...."

 

 

...

.........

 


그치만 이젠 다 제자리에...


고깔 모자도 제자리에...


핸드폰도 제자리에.....


은찬이 너도 제자리에.........

 

 

 

 

"강해져야돼..약속했지..


울지 않기로..지지 않기로 약속했지..."

 

 


땀에 젖은 은찬이의 이마 위로..


눈물에 흠뻑 젖은 내 입술이 맞닿으면...


....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하는데..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데...

 

 

 

 

"강은찬.약속 했지."

 

 

꼭 감은 은찬이의 두 눈동자에..


야속한 내 마지막 그림자가 찰싹 달라 붙어 버렸다.

 

 

 

 


"마지막인데 좀더 웃어줄걸 그랬다..


여보 마누라 하고 불렀을때 활짝 웃으며 안아줄걸 그랬다.."

 

...

......

 

 

끼이익...

 


...

 

 


그리고 그 눈물 겨운 그림자를 뒤로 한 나는..

 

벽쪽으로 돌아 눕는 강은찬씨를 죽을 힘을 다해 외면하며..

 

굳게 닫혀 있던 별장 문을 천천히 열어 젖혔다..

 

 

 

 


"야.....

어디...가..."

 

 


그런데 그때....

 

 

 


열린 문 사이로 뒤한번 돌아보지 않은 내가 성큼 발을 내딛었을때.

 

새벽바람과 함께 내 눈물을 순식간에 부서트리는 은찬이의 목소리.

 

 

 


...


....

 

바로 등뒤에서 들려오는 강은찬의 목소리..

 

 


"...."

 

 

 

 

혹시나 잠꼬대인가 싶어..


아니..잠꼬대이길 바라며...


반쯤 고개를 돌려 그 어두운 거실을 바라보면..

 

 

 

 

"어디 가냐니까..."

 

 


놈은 달빛에 어슴푸레 빛나는 갈색 머리를 일으키며..


분명 뚫어져라 내 두 눈을 응시하고 있었고..

 

 

 

 

"..나..."

 

 

 


난 애꿏은 고깔모자에게 멍청한 시선을 던지며..

 

형편없는 거짓말들을 늘어놓고 말았다..

 

 

 

"잠깐.머리가 아파서 바람 쐬러."

 

 

"바람 쐬러..?지금이 몇신데..."

 

 

 

 

아직 잠이 덜 깬듯.

 

부스스한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강은찬.

 

 

 


"아니.은찬아."

 

 

"....."

 

 

"금방 올게..."

 

 

 


거짓말..

 


그렇게 증오해놓고..그렇게 당해놓고..

 


결국은 나도 또 거짓말...

 

 

 


"같이 가.."

 

 

"아니..혼자..나 혼자 갈래.."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속이 좀 안좋아서."

 

 

"괜찮아..?"

 

 

"응."

 

 


"너 아까 뭐라고 계속 중얼 대지 않았냐..?"

 

 

"아니."

 

 


"꿈인가."

 

 


"응.꿈이야."

 


...


.....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몇시간 후에 일어날 그 끔찍한 일들도.

 

다 꿈이야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눈 감아버려 강은찬..

 

 

 

 


"금방 와야 돼."

 

 

"....."

 

 

"십분 안에 와야 된다.."

 

 

"응...."

 

 


"금방 와서..."


..

....

 

 


차마 돌아볼수 없음에..

 

그냥 무작정 문을 열고 별장을 나와 버렸다..

 

 


...

 

 

 


첫번째 계단위로 감각 잃은 오른쪽 발을 디디며..

 

 

끝내 돌아보지 못하고..


결국 놈의 웃는 얼굴을 지켜보지 못하고..


천천히 그 0308의 문을 닫아 버렸다..

 

 

 

 


"다시 안아줘야 돼.."

 

 

 

 


그러면 문 너머로 덩그러니 쫓겨온 은찬이의 조그마한 중얼 거림은.

 


...

 

 


더이상 멈추지도 못하게.

 

더이상 돌아가지도 못하게..

...

열 여덟개나 되는 계단위로 단숨에 내 몸을 밀어 버렸다.

 

 

 

 

 

 

"네가 남긴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 길..

 

네가 남긴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 길.....

 

네가 남긴...네가 남긴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그리고 난..


이 순간 그 어떤 희극의 주인공보다 우스꽝 스러워 보일 난..


...

 

 

 

내 운명과 징그럽게 딱맞아 떨어지는 외톨이 노래의 첫 구절을 중얼 중얼 읇어대며..

 

...

 


피투성이 무릎을 절뚝이고 무작정 그 눈밭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설이야!!!!!!!설이야!!!!!!!!!!!!!!!"

 

 

 

 

한참이고 귀에 익은 두터운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질때까지.

 


목소리로 모자라 귀에 아릿하게 남아있던 클락션을 마구 두드려 댈때까지.

 

 

 

 

 

 


"설이야!!!!!!한설!!!!!잠깐 거기 서봐!!!!!!!!

 

설이야!!!!!!!!!!!"

 

 

 

 


무릎이 아파..

 

머리가 아파..

 

추억이 아프고..가슴이 아파..

 

 

 


"무릎은 또 어디서 이랬어!!!!!!!!!!"

 

 

 

타앗.

 

 

 


별장과 반대편으로 무작정 달리던 내 어깨를.

 

기어코 그 애처로운 두 손이 가로 막아 버리면..

 

 


"...아저씨..."

 

 

 

 

난 피에 젖은 바지 위로 고개를 떨구며..


눈앞에 세워진 BMW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이게..대체..어떻게.된거냐.."

 

 

 

금방이라도 울듯한 목소리로 신기사 아저씨가

 

그 한마디를 꺼내 놓을때..

 

 


...

 


'달칵.'

 

 

 

 

무거운 잿빛의 조수석 문이 열리며..

...

싸늘한 눈동자의 하루가...


기억을 잃은후의 두번째 모습을 드러냈다.

 

 

 


"아저씨도 걔 알아요?"

 

 

"어....저..."

 

 

"대체 누구길래.걔랑 우리집이랑 어떤 연관이 있었길래."

 

 

 


귀찮다는듯..


혹은 기분 나쁘다는듯..


..

 

 

신기사 아저씨가 가져다준 휠체어 위로 몸을 내리며..

 

감각을 잃어버린 내 앞으로 천천히 가까워 오는 강하루.

 

 

 

 

 


"내 동생 어딨어."

 

 


그리곤.


반지가 끼워진 왼손으로 옷깃을 여미며..


표정없는 내 얼굴을 찬찬히 흝어보기 시작한다..

 

 

 

 

"별장..안에...."

 

 

"둘이 같이 있었어?"

 

 

"......"

 

 

"왜..?"

 

 

"......."

 

 


"아냐..됐다..."

 

 

 


끼이익...끼이익...

 

...

 


아직..잠깐만..

 

조금만 더...십초만 더...

 

 

 

 

"휴...."

 

 


차 문에 기대선 신기사 아저씨 한숨과 함께..

 


익숙한 손놀림으로 하루가 휠체어를 타고 멀어져 가면..

 

...

 


난 바퀴 자국 난 눈밭을 멍청히 바라보다가..

 


재빨리 등을 돌려 놈 앞에 꼿꼿히 버텨 서버리고..

 

 

 

 

"뭐하는거야...비켜...."

 

 

 


갑자기 나타난 내 존재가 기분 나쁘다는듯.

 


혹은 은연중에 악몽 투성이였다는걸 감지 해버린듯..

 


휠체어의 방향을 왼쪽으로 서서히 틀어버리는 강하루.

 

 

...

 

......

 

 


"비밀..."

 

 

 


그러면 주책맞게.

 


떠나는 마당에 말도 많게.

 


그날의 마녀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기어코 또 마지막 목소리를 쥐어 짜내고 만 한설..

 

 

 

 

"비밀..?"

 

 


"번호..모르잖아..."

 

 

"무슨."

 

 


"너 말야.별장.비밀 번호..모르잖아.."

 

 

 

"내 동생한테 전화 하면 돼."

 

 

 

"생일이야.."

 

 


"..."

 

 


"내 생일..0308..내 생일..."

 

 

 

니가 바꾼 번호..

 


니가 준비해준 내 생일..

 

그날 끝까지 믿어주지 못한 니가 준비한 내 생일 파티.

 

 

 


"니가 왜..."

 

 

"고마워."

 

 

 

 

재빨리..

 

하루의 이어질 다음 말을 막아 버렸다..

 


너무 낯선 얼굴로 날 올려보고 있어서..

 


그 침묵을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서..

 


겁쟁이 처럼 재빨리 그 입을 막아 버렸다.

 

 

 

 

 

"노래 실력은 형편 없었지만 그래도 고마워.


정말 끝내줬어.그런 축하 말 처음 이였어."

 

 


"어제도 말했지만...


예전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든..


난 기억을 잃었.."

 

 

 


"고마워!!하루야!!"

 

 

 

"....."

 

 

 

"너무 고마워.생일 축하 고마워.사진도 풍선도 너무 예뻤어.


케익은....


케익은 먹진 못했지만 분명 굉장히 맛있었을거야....


너 좀 많이 까다로우니까...그것도 분명 맛있었을거야..."

 

 

 


웃는데 눈물이 흐른다..

 

인간도 참 추하게...

 

웃는 입 위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

 

 

 

"끝까지 너 믿고..끝까지 지켰어야 했는데...

 

끝까지 믿고..고맙단 말 그때 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늦게 왔지..."

 

 

"............."

 

 

 

점점 혼란스럽게 바뀌 어가는 하루의 표정..

 

 

그러면 그만 하라는듯..

 

그간 할아버지와 세진이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지 말라는듯..

 

등뒤에 서서 절래 절래 고개를 흔드는 신기사 아저씨..

 

 

 


그래..

 

알아요..

 

하지만 마지막이니까요..

 


....

 

 

마지막이니까 인사 정돈 해도 되잖아요..

 


고맙단 말 정돈 백번이고 더 해도 되잖아요...

 

...더불어 이정도...

 


포옹은 아니더라도...악수 한번 정돈 해도 되잖아요...

 

 

 

"만나서 반가웠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신기사 아저씨의 시선을 무시한채..

 


돌 위로 잔뜩 까진 왼손을 놈의 얼굴 밑으로 불쑥 내밀어 버렸다..

 

 

 


"...."

 

 

 

 

그러면 놈은..

 


2년전이라면 아무말없이 차가운 입김을 호호 불어 주었을 놈은..

 

...

 

 

 


"..."

 

 

 

 

말없이 반지 껴진 자신의 왼손을 내밀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 저었다.

 

 

 

 


"악수도..안되냐..."

 

 


"..."

 

 


"하하..악수도 안되는구나..."

 

 


"..."

 

 


"그렇구나...악수도 안되는구나..."

 

 

 

"자꾸 어지럽게 하지마...

 

억지로 기억 되찾는 노력..절대 안하기로 약속했어."

 

 

 

 


"누구.........랑...."

 

 

 

 

"아빠.여자친구.형..전부 다.


내가 기억 하면 모든 사람이 다 힘들어 진대..


오히려 다행이라고..서로를 위해서 이게 훨씬 좋을거라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만해."

 

 

 

 

그럼 나랑 했던 약속은...

 

기억 잃기 전에 했던 나랑 한 약속은...

 

 

 

 


"난..."

 

 

 

"다신 마주칠일 없었으면 좋겠다.."

 

 

 

".........."

 

 

 


"너 만나는거 여자친구가 별로 안좋아하거든."

 

 

 

"그..래.."

 

 

 


"여기 오기로 한것도.은찬이 데리러 온다고 나온거니까."

 

 


"같이 있었구나..세진이랑..."

 

 

 


내 대신..

 

이젠 그애가 텅비고 커다란 집을 지켜주는구나..

 


그래..

 

다행이다..

 

넓어서 사람 숨소리도 제대로 듣기 힘든 그집..

 

한사람이라도 더 있어주니 참 다행이다..

 

 

 

 

"너랑 은찬이랑 무슨 관계인진 모르지만."

 

 

 

"....."

 

 


"나랑은 평생 마주칠일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가.."

 

 

 

"미안."

 

 


"^-^..."

 

 

 


끼이익..끼이익..

 

...

 

......

 

 


참다 못한 신기사 아저씨는 차 안으로 들어 가버리고..

 

그 불쌍하고 가여운 놈은 별장을 향해 힘겹게 휠체어를 이끕니다..

 

 

 


당당히 걸어야 하는데..

 

저놈한테 어울리는건 어깨 당당히 피고 빠르게 걸어 가는건데..

 

 

...

 

.....

 

 

 

 

 


"하루야!!!!!!!!!!!!!귀 막아!!!!!!!!!!!!!!!!!!"

 

 


".............."

 

 

 

부질없는 지금 내 고함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서 빠르게 멀어져 버리는건데...

 

 

...

 

 

 


"이따 무슨 얘기가 들려오든 귀 막아!!!!!!!!!!


들으면 안돼!!!!!!!!은찬이한테도 말했지만 너도 절대 지면 안돼!!!!!!!!!


은찬이도 너도 꽤 큰 충격 받을지도 몰라!!!!!!!!!!!"

 

 

 


"........................"

 

 

 

 


저렇게 휠체어에 의지해 등돌리는게 아닌데...

 

저렇게 턱없이 천천히 멀어지는게 아닌데...

 

 

 

 


"그러니까 무너지지 않겠다고 약속해!!!!!!!!둘이서 다 이겨낼거라고!!!!!!!!!!!

 

나 찾지 않는 다고 약속해!!!!!!!!!!!

 

남들이 너랑 나 예전 관계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도...

 

절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약속해!!!!!!!"

 

 

".............."

 

 

 

여전히..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육중한 쇠바퀴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갑니다..

 

 

 

마치 그날의 강주원처럼..

 

휠체어 위에 앉아 소름 끼치는 눈으로 바라보던 강주원처럼..


...

 

 

 

 


"앞만 보고 가!!!!!!!!!!!


그래 그렇게 앞만보고 도망가!!!!!!!!!!멈추면 안돼!!!!!!!!!!!!


눈앞에 있는것만 믿어!!!!!!!!!!!!!!


니 기억에 대해 떠들어 대는건 다 거짓말이야!!!!!!!!!!


내일부터 니 귀에 들려오는건 모조리 다 거짓말이야!!!!!!!!!!!!!!!!!!"

 

 

 


"..............."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단 말을 남기고서..

 

벌써 저만큼이나 작아져 갑니다..

 

 


...

 

 

 

 

"가자..설이야....그만 가자..."

 

 

 

"둘이 이길수 있지..!!!나 없어도 할수 있지....?!!!!


니들 쎄니까!!!천하 무적이니까!!!!


나 없어도 둘이 도망칠수 있지!!!!!!!!!!!!!?"

 

 

 

"...설이야...."

 

 

 

"약속해!!!!!!!!!!!!!!!!!!!!약속 하고 가 새꺄!!!!!!!!!!!!!!!!


강하루!!!!!!!!!!그렇게 한다고 약속 하고 가!!!!!!!!!!!!!!!!!!!!!!"

 

 

 

"그만..가자..."

 

 

 


저만치 멀어진 별장 창문에 어느덧 불이 밝혀져 버렸는데..


...

 

나의 요란스런 고함에 은찬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것 같은데..

 

 

 

 

 

"그리고 이거 여자가 칠 대사 아닌데.....


내가 생각해도 좀 아니다 싶은거 아는데...."

 

 

 


미련스러운 내 혼잣말은 도무지 멈출줄을 모릅니다..

 

이미 하루는 내 사람이 아닌데..

 

저놈은 이제 내 존재를 아예 까맣게 잊어 버렸는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둘이 이제 많이 힘들어 질텐데..............

 

아침 해가 밝으면 지금 나만큼 죽고 싶어 질텐데............................."

 

 

 

 


벌써 저만큼 작아져 버렸는데..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느릿느릿 멀어져 버렸는데.........

 

 

 

 

 

"미안...........미안해...........

 

나만 혼자 이렇게 도망쳐 버려서 미안해....................

 

사랑한대 놓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가버려서 미안해.................."

 

 

 

 

 

신기사 아저씰 앞에 둔 내 청승맞은 눈물은 그칠줄을 모르고..

 

...

 


이내 아저씨의 두 눈이 쓰러진 나를 부축할때도..

 

차 안으로 힘겹게 앉혀 버린 그 순간에도..

 


...

 

 

점점 더 길 위에 쌓인 눈덩이처럼 불어나..

 

창밖으로 애타게 내 모습을 찾아 헤매는 은찬일 갈기 갈기 뜯어 버립니다..

 

 

 

 


"이제 그만해 설이야....

 

지금 누구보다 우리가 미안해야 할 사람은 하루가 아니라 너다...

 

이 사건의 젤 큰 피해자는 하루도..은찬이도 아니다.."

 

 

 

"..."

 

 

 


"너야..설이 너다..그러니 강한척 그만해..."

 

 

 


"........"

 

 

 

"아무도 안보고 있어...


은찬이도 하루도 없어...


그러니 마음껏 울어...더이상 참지 말고 그냥 울어...."

 

 

 


"죄송해요..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아저씨..."

 

 

 

"제발 설아.."

 

 

 

 

"......."

 

 

 


"이제 강한척 그만하고...

 

원래대로...그냥...니 모습 그대로...맘 푹 놓고 울어....


...


도저히 안쓰러워 볼수가 없구나.."

 

 

 

차는 출발하는데..

 

늘 은찬이와 나란히 타있던 이 자리..

 

이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지금..

 


차는 천천히 별장을 지나쳐 빠르게 논밭을 벗어 나는데..

 

 

 

 


"설이야!!!!!!!!!!설이야!!!!!!!!!!!!!!!!!!!!"

 

 

 

창밖에선 은찬이의 고함소리가 미치도록 슬프게 울려 퍼지고..

 


아저씨의 말대로 난 그냥 애처롭게 울기만 합니다..

 

 

..

 

 


"어허..어어엉..

 

어어어어엉...어어어엉.........어허엉.....

 

...........어흐어어어어..

 

어어어어엉....."

 

 

 


그간 참아왔던..

 

죽기 직전까지 꾹꾹 눌러 참아왔던...

 

몇분 전까지도 놈들 앞에서 강한척 하느라...

 

이젠 새파랗게 곪아버린 가슴을 움켜 잡고..

 

 

 

...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하루야!!!!!!!!!!!!!!!하루야!!!!!!!!!!!!!

 

하루야!!!!!!!!!!!!!!!!!!!!!!!!!!!!!!!!!!!!!!!!!!!!!"

 

 

 

 

사방으로 터져버린 비명과 울음을 토해내며..

 

 

 

정말 나..

 

정말 한설..

 

강한척 굳센척 한설이 아니라..

 

몇년째 잊고 지냈던 진짜 나 한설의 모습으로..

 

시트를 움켜잡고 첨이자 마지막 발광을 시작합니다..

 

 

 

 

 


"설이야!!!!!!!!!!!설이야!!!!!!!!!!!!!!!!!"

 

 

 

점점 더 멀어지는 은찬이 목소리를 묻어놓고...


죽을때까지 마주치지 말자던 하루의 그 한마디를 삼켜 놓고...

 

 

 

 

"아파요...나 너무 아파요 아저씨...

 

죽어요..차라리 죽을래요...

 

나 좀 죽여줘요..나 좀 제발 죽여 주세요...

 

아저씨..제발..

 

나좀 제발 죽여 주세요...!!!!!!!!!!!!!!!!!!!!!"

 

 

 

 

이렇게 형편없는 모습을 끝으로 놈들에게 안녕을 고합니다.

 

들키지 않았다며..

 

놈들에게 이런 모습 끝내 보이지 않았다며 어리석기 그지 없는 안도를 하며..

 


...

 

 

 

강하게..씩씩하게..굳어버린 가짜 한설을 창밖으로 집어 던지고..

 

..

 

이렇게 멋대가리 없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놈들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죽여줘요...

 

나 좀 제발 죽여주세요............

 

아저씨................이제 제발 내 눈물좀 멈춰 주세요....

 

나 이제 그만 아플래요...............

 

나 이제 강한척 하는거 그만 할래요................"

 

 

 

 

 

 

사실은 이렇게 겁도 많고............

 

이렇게 누구보다 약하고 우스꽝 스러운 내 진짜 모습으로.....

 

나 한설의 진짜 모습으로..............

 

 

........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을..

 

아니.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길 바란...

 

형편없기 짝이 없는 진짜 내 모습으로.......

 


"이제..좀..괜찮아..졌어...?"

 

 

 

 

앞좌석엔 교복을 입고 풍선껌을 불고 있는 하루가..

 

내 옆엔 선도부 뱃지를 가슴에 단 은찬이가..

 

 

 


두 놈 다 말은 없지만..물끄러미 날 보고 있어..

 

입을 꾹 다문채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날 보고 있어..

 

 

...

 

 

어쩌면 비웃나봐...

 

진짜 내 모습이 우스워 비웃고 있나봐...

 

 

 

 

"설이야...


...설이야...."

 

 

 

 


\ AM 4:10. BMW.

 

 

 

 

결국엔 이럴 거면서..


왜 그렇게 씩씩한척은 혼자 다 했냐고 마음껏 비웃어 주고 있나봐..

 

 

 

..

 

 

 


"설이야............."

 

 


"...."

 

 

 

"대답하기 힘들면 그냥 들어.아저씨가 혼자 말할게."

 

 


"......"

 

 

 


안녕.하루야.

 

안녕.은찬아..

 

새벽에 이렇게 한 차 타는건 처음이지..

 


이렇게 셋이 이 차에 타는것 조차도 너무 너무 오랜만이지...

 

 

 

 

"하루는 아직 몰라..


이제 곧 알게 되겠지만...어쨌든 회장님도 그 누구도 하루에겐 아직 알리지 않았어.."

 

 


"......"

 

 

 


"경찰에서 널 찾는다..


일단 넌 증인만 하면 돼..


그 자리에 버티고 있기 힘들테니..회장님이 검찰 조사 같은건 극비리에 되도록


다 손 써 놓셨어..."

 

 


"..."

 

 

 

"그냥 재판장에 가서 말 몇마디 하고..


그리고 나가면 돼...


그때도 절대 얼굴이 언론에 노출 되거나 하는일은 없을거야.."

 

 

 

"인천..."

 

 

 


"지금 아저씨랑 가서..


경찰서에 잠깐 들렸다가 바로 휴식을.."

 

 

 

"인천....가요....."

 

 

 


"....."

 

 

 

"윤영이요...."

 

 

 

"설아..지금 너 제정신이 아니라서.."

 

 


"윤영이 한번만 볼게요........"

 

 

 

"그 여자 때문에....."

 

 

"윤영이가 오래요 아저씨...지금 빨리 좀 와달래요....."

 

 

 


"미안하다..설이야..


나라도 하루한테 알렸어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만은 말해줘야 했었는데..."

 

 

 


"아저씨..윤영이가요...


저보고 빨리 좀 와달래요......."

 

 

 

"그래..알았어....가자...그리로 갈테니까..


제발 정신좀 차려....설아.."

 

 

 

 

두려운듯..혹은 안타까운듯..

 

귓가로 멍하니 흘러 드는 신기사 아저씨의 목소리..

 

그리고 전보다 훨씬 빠르게 도로위를 미끄러지는 자동차.

 

 

 


"이제 대체 어떻게 될지.......


은찬인 지 엄마가 그런짓 했다는걸 알면 대체 어떻게 될지...."

 

 

 

 


중얼..중얼..

 


눈물섞인 신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차안을 가득 맴돌면..

 

....

 


난 자꾸만 눈앞을 가로지르는 하루와 은찬이의 신기루에 재빨리 두 눈을 감아 버렸고..


...

 

 


"후..."

 

 

 

 


그에 아저씬 한숨과 함께 FM버튼을 누르시며.

 


차의 속력을 한껏 더 올려 붙었다..

 

 


...

 


그리고..

 

 

 

 


'네.이번 뉴스는 이혼한 남편의 돈 때문에 두 아들을 살해 하려 했던


비정한 한 어머니의 소식입니다'

 

 

 

여기를 가도..저기를 가도..

 

그 끔찍한 악몽은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되어 마치 악대의 나팔소리 인냥 울려 퍼지고 있어..

 

...

 

고맙게도 그 놈들의 환상을 순식간에 가루로 부서트려 주었다.

 

 

 

 

"후..이놈의 뉴스를 정말.."

 

 

"아뇨.아저씨..그냥 들어요...."

 

 


"......"

 

 

 

"들어요...우리 얘기잖아요...."

 

 

 

 


다른 사람 얘기 아니라..

 

저거 바로 우리들 얘기잖아요....

 

 


..

 

 

 

 

"네.김제아 기자 전해주시죠."

 

 

 

 

 


이 뉴스 나오는 동안엔 하루랑 은찬이 환상도 도망쳐 안보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참고 들어요..

 

정신병자 되어 버리는 것 보단 차라리 이 편이 나을거 같아..

 

 

 

 


"예.세상을 떠들석하게 한 이 사건은


다름아닌 평범한 여학생의 증언으로 낱낱히 공개가 되었는데요."

 

 

 


평범한 여학생..


내가 평범한 여학생이었나...

 

 

 

 

"현재 수사는 아직 진행중으로..

 

모든 사실이 밝혀진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김씨는 육년전 트럭 운전사 상모씨를 고용해 첫번째 사건을 조작한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렇게 들으니 참 쉽구나..


그 어렵고 복잡하던 얘기들이..


이렇게 알아 듣기 쉽게 이해 되는구나..

 

 

 


"네.그런데 그게 미수에 그쳤다구요"

 

 

"네 그렇습니다.김모씨의 의도와는 달리 애초 살해를 계획했던 첫째 아들 강모씨는


살아 남았고.대신 그 옆에 타고 있던 여자친구 박 모씨가 목숨을 잃었던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

 

....

 

김모씨...

 

강모씨...

 

박모씨....

 

...

 

 

내가 아는 사람들이..

 


저렇게 이름을 잃어버리고 낯선 여자의 입에서 흘러 나오네..


...

 

 

 

하하..박모씨래..윤영아..

 

너도 나처럼 이름을 잃어 버렸네...

 

 

 

 


"그만..끄자..설아.."

 

 

 

 

그렇게 너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일때.


조심스레 기자의 뉴스 위로 겹쳐지는 신기사 아저씨의 목소리.

 

 

 

"아뇨..아저씨.."

 

 

"이런거 들어서 무엇하니.."

 

 


"재밌어요.."

 

 

"..."

 

 

"되게 재밌는데요.."

 

 

"설아.."

 

 

"들어요."

 

 

"..."

 

 


"계속 들어요.앞으로 뭐라고 지껄여 대는지."

 


"후..."

 

 

 


이어지는 아저씨의 한숨과.

 


사실을 떨쳐내듯 달아나듯 좀 더 빨라져 버린 자동차의 속력.

 

 

 

 


"그래도 두 형제가 모두 그 사고에서 살아 남은건.


병원 측에서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두번째 사고는 자살기도로 위장이 되있었다고 하던데.


그럼 그 일도 모두 가해자 김모씨가 꾸민 일이 였나요?"

 

 

 

"네.그렇습니다.


지금 사고를 당한 피해자 강모씨가 기억을 잃은 관계로 정확한 진술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신고자 한씨의 행방만 찾게 된다면 모든 사건의 실마리도 깨끗히 풀릴것으로 보입니다."

 

 

....

 

........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지는 뉴스 앵커의 낭랑한 목소리..

...

 

 


차가 인천 톨게이트에 접어드는 순간에도..

 

여전히 그칠줄을 모르고..

 

30분 가량을 사고 얘기로 심각히 떠들어 대는 FM 세계속 사람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가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는지 단 한조각도 겪어 보지 못했으면서..

 

 

 

 

"것봐라..아저씨가..그만 듣자고..했잖아.."

 

 

 


결국.

 

내 부탁대로 아저씨가 모는 차가 TO YOU 앞에 다다랐을때엔..

 

한계에 다다른 내 눈물이 소리없이 줄줄 흘러나와..

 

빌어먹을 뉴스를 향해 한없이 욕을 퍼붓는 사태가 일어났고..

 

 

 

 

"자..다 왔어..설이야..


윤영이 보고 어서 가자..."

 

 


그에 신기사 아저씨는.

 

천천히 차 밖으로 내 몸을 부축해 세우며..

 

아직 어둡기만 한 새벽 하늘을 걱정스레 올려 보셨다..

 

...

 

 

 

 

 

그러니까 그건....


3.9일 새벽 4시45분경에 일어난 일이였다..

 

 

 

 

\ 인천.

 

 

 

 


"아 글쎄 혼자 여기서 뭘 하겠다는거야!!"

 

 

 

"잠깐 혼자 있을래요.."

 

 


"그럼 저기서 내가 지켜 볼테니까..."

 

 

 

"혼자 있을게요."

 

 


"너 대체 설이 너."

 

 

"도망 안가요."

 

 

"후...."

 

 


"도망 안간다구요."

 

 

 

 

처음 윤영이가 뿌려졌다는 그 바닷가..

 

...

 

 


그리고 새벽 5시라는 이른 시각에..

 


사람 하나 없는 텅빈 해변가에서..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눈을 질끈 감으며 가만히 날 마주보는 신기사 아저씨..

 

 

 

...

....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눈을 감고 있어 더욱이 알순 없지만.....

 

아마도 울먹이고 있는.........

 

나보다 더 마음이 여리고 약해져 있는.........

 

 

 

 


"파도 없어도 바다는 다 위험한거야..알지.."

 

 


"윤영인 몇년째 있는걸요.."

 

 

"뭐?"

 

 


"아뇨.아니에요..


잠깐 차에서 눈 붙이고 계세요.금방 갈게요."

 

 


"......"

 

 


"저도 추워요...금방 끝내고 서울로 돌아갈래요...


그러니까 빨리 가서 기다려요...."

 

 

 

"금방 와야돼..알았지.."

 

 


"금방 가요.."

 

 

"금방 와야 된다.."

 

 


"네.."

 

 


"너 진짜..금방 와야 된다 설이야.."

 

 

"..."

 

 


"정말로 금방 와야 된다.."

 

 

 


점점 멀어져가는 신기사 아저씨의 목소리..


..

 

 

두 눈을 꾹 감고 있는 탓에..

 


하루와 은찬이의 덧없는 환상에 두 눈을 꾹 감고 있는탓에..

 

 

"금방 가요..."

 

 

 

이 순간 눈앞에 보이진 않지만..

 

더불어 확인 할수도 없지만..

 

분명 점점 해변가를 벗어 나고 있는 신기사 아저씨..

 

 

 


"꼭..진짜로 금방 와야 돼..."

 

 

 

그리곤 이내 들릴듯 말듯한 겁먹은 목소리로..

 

완벽히 해변가에서 벗어났음을 알려주는 신기사 아저씨..

 

 

 


"하..오랜만이다..박윤영.."

 

 

 

 

그랬기에 난..

 

비로소 맘 편히 잔잔한 서해 바닷가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으며...

 

이젠 모든게 끝이라는 생각에 천천히 두 눈을 떠보였다...

 

 

 

 

 


"없구나..없네..."

 

 

 

다행히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감사하며..

 

다음은 천천히 기지개를 펼치며 검푸른 새벽 바다를 향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박윤영!!!!!!!!!!!!나 왔어 임마!!!!!!!!!!!!!!!!"

 

 

 

 

끝으론 고함...

 

신기사 아저씨를 안심시키기 위한...

 

파도 하나 없는 바닷물에 싸움을 걸기 위한...

 


...

 

 

"친구란 년이 참 빨리도 왔지!!!!!!!!!!!!!!!?"

 

 

 


지금 이 순간은 허풍과 거짓외엔 아무것도 될수 없는 씩씩한 가짜 한설의 고함.

 

 

 


"이제 다 끝났다!!!


한방에 다 보내버렸어!!!그 여자도 하루도!!!아주 깨끗히 그냥 보내줘 버렸어!!!"

 

 

 


찰랑찰랑..

 

차가운 늦겨울의 바닷물이 발목 위까지 차오르면...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침묵을 지키는 야속한 윤영이.

 

 

 

 

게다가 이젠 점점 양 무릎이 물안에 차오르고..

 

유일한 방패막이였던 어둠 마저도 하늘위로 거두어 지려 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이대로 있다간 다시 제자리..

 


처음부터 또 제자리 걸음을 하고 만다..

 

 


.......


...............

 

 


"알아..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야...

 

그런데도 발버둥을 쳐봤어...그놈들이랑 있는게 너무 좋아서 그냥 무작정 버텨봤어..

 

....난 니 대타일 뿐이였는데...

 

그래서 처음부터 될수가 없었는데...

 

사실을 알았을때 금방 뛰쳐 나왔어야 했는데....."

 

 

부웅..부웅..


..

 

 

 

그때 꽤 먼곳에선 듣기 좋은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오고..

 

때문에 좀 더 빨라져 버린 내 서투른 발걸음..

 

 

 

 

이젠 정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서..

 

바닷속에 정말 따뜻한 집을 가진 윤영이가 살고 있을것만 같아서..

 

 

 


잔잔한 물살을 가로 지르고..

 

엎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어두운 새벽 바다로 뛰어 드는 아웃 싸이더의 마지막 선발 주자.

 

 

 

 


"물이 많이 차갑다..

 

여기 되게 추웠구나.....

 

이 정도일줄은 몰랐는데....한 겨울엔 혼자 어떻게 견뎠냐 멍청아..."

 

 


허리까지 차오른 물에..


입술이며 턱과 손등이 마구 떨려오면..


난 문득 등을 돌려 텅빈 모래 사장을 바라 보았고..

 

 

 


"........"

 

 

 

 

아직 그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바다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날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주저 앉듯 물속으로 휘감기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떠도는 소리 들었냐...?

 

니 이름도 많이 나왔는데..내 이름도 나왔고 니 이름도..

 

비록 성뿐이지만..그래도 우리 둘 이름이 나란히 나왔어..."

 

 

 

 

지금쯤 두놈다 별장에서 출발 했겠지..?

 


성격도 참 지랄맞은 강은찬은...

 


온동네를 두드려 가며 내 이름을 외치고 있을거고..

 

 

 

 

하루는...

 

나랑 죽을때까지 마주치지 않겠다던 하루는..

 

 


글쎄....

 


아마 세진이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님 은찬이를 필사적으로 뜯어 말리고 있을까..

 

 

하하..

 


그래..그놈한테 필사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냐..

 

 

 

"거긴...안 울어도 되지....?"

 

 

 


"....."

 

 

 

"거기선...복수하는것도..배신 당하는것도..사랑 하는 사람 보내는것도..


아무튼 그런 성기같은 짓 안해도 되지.."

 

 


이제 가슴이야...

 

그러니까 대답좀 해줘..

 

아무 미련없이 머리 끝까지 푹 잠길수 있게

 

'응'이라는 한마디라도 해줘...

 


..

 

 

 

 

"윤영아.....박윤영......"

 

 

'........'

 

 


"넌 나 밀어내면 안돼.....

 

나 지금 무진장 떨리거든...그러니까 꼭 오줌이라도 쌀것 같은 심정인데...

 

그냥 무작정 가는거야...

 

여긴 아니래서 그리로 가는거야....."

 

 

 

그러니까 너마저 나 밀어내면 안돼...

 

 

6년전 그 겨울 처럼..따뜻하게 손 내밀고 안아 줘야돼...

 

 

 

허락도 없이 멋대로 죽어 버렸다고 욕하면 안돼...

 


무책임하게 혼자 도망 왔다고 구박 하면 안돼...

 

 

 

 

 


"근데 하필 여기냐...

 

동해 바다면 그냥 벼랑 위에서 뛰어내리면 그만인데...

 

이건 꼭 내 발로 기어 들어가야 되잖아....

 

언제 숨이 멈추는지..언제 다 끝나는지 도대체 알수가 없잖아......."

 

 


"설이야!!!!!!!!!!!아이고 설이야아!!!!!!!!!!!!!!!!!!!!!"

 

 

 


눈썹..이다..

 


그리고 저건 신기사 아저씨의 애타는 비명소리..

 


....

 

 


어둡구나...

 

여긴 아무것도 없네...

 

따뜻한 집도..니 얼굴도 없구나...

 


...

 

......

 


혹시나 싶어 둘러보지만..

 

하루랑 은찬이의 신기루조차 보이질 않아...

 

 

...

 

 

대답은 역시나 '아니'였구나...

 

여기도..저기도..넌 없었구나....

 

 

 

 

"설아아!!!!!!!!!!!!!!

 

설아아 어딨어!!!!!!!!!!!!!!!!설아 대답해!!!!!!!!!!!!!!!

 

설아아!!!!!!!!!!!!!!!!!!!!!!!!!"

 

 

 

 

 

이젠 눈을 뜨고 싶어도 뜰수 없게 되버려요 아저씨..

 


미안해요..여기까지 와서 공범자 만들어 버려 정말 미안합니다..

 

...

 


그런데 정말 아파서요...

 

더이상은 놀아줄수도...괴롭힘 당하기도 싫어서요...

 

...

 


그냥 갈래요...

 


나 그냥 여기서 숨막혀 죽여 버릴래요...

 

 

강은찬.강하루.할아버지.나나언니.미라.시형이.

 

그리고 아저씨.세진이.

 

나 죽으면 울어줄 사람 이렇게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나 그냥 죽을래요...

 

 

 

...

.....

 

 


너무 아파서요..

 


그냥 참고 견딜래도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서요...

 

...

 


허무 하지만..겁장이 같지만..

 

이대로 한번도 못 웃어 보고 죽는건 너무 억울하지만...

 

 

...

 

그래도 너무 힘들어서요.......

 

그러기엔 나 그 놈을 너무 사랑해서요.......

 

그러기엔 나 그동안 너무 고생해서요...

 

 


아빠 엄마 유민이 윤영이..

 

다음은 하루 였거든요...

 

그 놈 하나 바라보며 견뎌 왔거든요..

 

..

 


그런데 날 모른대요.

 

죽을때까지 마주하고 싶지 않대요..

 

난 죽을때까지 놈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놈은 죽을때까지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아 달래요..

 

 

 

 


"설이야!!!!!!!!!!!!!!!!!!!!

 

설이야 제발!!!!!!!!!!!!!설이야!!!!!!!!!!!!!!설이야아!!!!!!!!!!!!!!!!!!!!!

 

대체 어딜 간겨!!!!!!!!!!!!!!!"

 

 

 


알아요 나도.

 

거긴 아무것도 없다는거 알아요..

 

 

윤영이 같은건 없어요.엄마도 아빠도.유민이도 없어요.

 

이대로 죽으면 영영 끝이라는거 알아요..

 

그건 단지 남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거 알아요..

 

 


지금 감은 눈위로 활짝 웃는 하루랑 은찬이처럼..

 

절대 만질수 없는 환상이라는거 알아요..

 


나란 존재가 까마득하게 짓이져 지는거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은찬이도 오고 있대!!!!!!!!!!!!!!!

 

하루도 오고 있대!!!!!!!!!!!!!!!!!!!!!

 

두놈들 다 이리로 오고 있대 설아!!!!!!!!!!!!!!

 

설아!!!!!!!!!!!!!!설아아!!!!!!!!!!!!!!!!!!!!!!!!!!!!!!!!!!!대답해!!!!!!!!!!!!!"

 

 

 


그런데도 내가 간다는건요...

 

생각만으로 숨막히는 그런곳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내 발로 기어 들어 간다는 건요...

 

 

 


....


................

 

 

지금 난 눈썹을 깜빡일 힘 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에요...

 


이제 그 빌어먹을 운명에 깨끗히 항복하겠다는 뜻이에요..

 

 

 

 

 

 

"이제 두놈들 다 알았어!!!!!!!!!!!!!


하루가 너한테 할말이 있대!!!!!!!!!!!!설아!!!!!!!!!!!!!!!!!


설아!!!!!!!!!!!!!!!!!!!!!!!!!!!어딨어!!!!!!!!!!설아!!!!!!!!!!!"

 

 

..

....

 

 


이건 허락해 줄수 있죠..

 

웃는거.사랑하는거.행복한거.보살핌 받는거.

 

이중에선 아무것도 안됐으니까.이것만은 허락해 줄수 있죠.

 

 

 

 

 


"한설!!!!!!!!!!!!!!!!!!!!!!!!!!!!!!!!!!!!!!!!!!!"

 

 

 

 


나도...


나도 그냥 환상이 될래요...

 

 


눈물을 등에 업고 끝없이 달렸던...


단 한번의 행복도 허락될수 없었던....


그래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운명에 짓눌린 외톨이 전설이 될래요....

 

 

 

...

 

 

 

내가 시작한 아웃 싸이더 소녀의 거짓말 같았던 꿈 얘기들..


이제 그만 내가 조용히 끝 맺을래요..


결국 내가 죽어야만 끝나는 이 얘기의 결말..


정해진 대로 내가 죽을래요...

 


...

 

 

 

눈물을 등에 업고 끝없이 달렸던...

 

단 한번의 행복도 허락될수 없었던....

 

스스로 죽음을 택한 운명에 짓눌린 외톨이 전설이 될래요......

 

 


........

 

.....................

 

 


'눈 진짜 예쁘다..그치..'

 

 


'어..'

 

 

'내 이름도 눈인데..'

 

 

'설..?'

 

 

 

'응.한설.나 태어날때 눈이 내렸대.


그래서 내 이름 설이가 됐대.


근데 왠걸.자라면 자랄수록 피부가 새까매 진거야. 울엄마도 아빠도 되게 하얀데 말야.


뭐.할머니가 까맸다던가.?그런가봐...'

 

 

 

'그랬나보다..'

 

 

 

'근데 하루야...'

 

 


'응....?'

 

 

 

'너 내 이름 한번도 불러준적 없다..?그거 알아...?'

 

 

'....그런가...'

 

 

 

'그래.은찬이는 비록 듣기 싫은 고함이나마.-_-.한설!!한설!!내 이름 불렀는데.


넌 그런적 한번도 없단 말이지...'

 

 


...

 

.......

 


...................

 

 

 

 

"한설..................


한설...........................한설......................"

 

 

 

 

3월 9일 오전 8시경.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모래 사장을 기어 다니며...

 

애타게 남자의 이름을 통해 되뇌어지는 이름 두글자...

 

 


눈에 태어난 이름.

 

눈에 떠나간 이름..

 

 

 

 

 

 

"한설!!!!!!!!!!!!!!!!!!!!!!!!!!

 

한설!!!!!!!!!!!!!!!!!!!설이야!!!!!!!!!!!!!!!!!!!!한설!!!!!!!!!!!!!!!!!!!!!!!!!

 

한설!!!!!!!!!!!!!!!!!!!!!!!!!!!!!!!!!!!!"

 

 

 

 

남자의 입에서 수백번 수천번 불려지는 이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이름..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름..

 

외톨이로 태어나 외톨이로 떠나간 이름..

 

 

 

 

 

 

 


TO.강하루.강은찬.

 

 

 


강은찬 니가 잠든 틈을 타 잠깐 이렇게 짧은 편지글을 적는다.

 

물론 읽는 사람은 너희 둘이야.

 

강하루 니가 기억을 하든 못하든 이 편지의 수신인은 강하루 강은찬 너희 두사람이야.

 

그럼 지금부터 잠깐 헛소리좀 시작할게.

 

 

 


내가 잠시나마 웃은적이 있다면 그건 너희들 탓일거고.

 

내가 매일같이 눈물을 흘렸다면 그것도 다 너희들 탓일거고.

 

내가 일생에서 단 한번뿐인 사랑을 했다면 그것도 모조리 너희들 탓일거고.

 

내가 영영 이 빌어먹을 세상을 등져야 한다면 그것도 결국 너희들 탓일거야.

 

...

 


무섭지....인생의 전부가 너희들이라니 뭔가 좀 으스스 하고 찰거머리 같지...

 

그래서 이별을 고해...

 

마지막 치곤 좀 딱딱하고 짧은 이별의 인사를 고해..

 


......

 

..............

 

 

내 인생의 전부야.

 

안녕.......

 

니놈들 옆에서 평생 함께 할수 없다면 차라리 난 비참한 환상이 되어 버릴래.

 

 

 

내 인생의 전부야.

 

안녕.......

 

난 너희들 생각보다 훨씬 힘없고 보잘것 없는 작은 외톨이일 뿐이였어.

 

 

 

 

내 인생의 전부야.

 


안녕........

 


니놈들이 여지껏 보고 들어온 슬프고 커다란 사랑 얘기 들을 전부 합해서 크게 굴려봐.

 

 

 


...

 

 


너희들은 물론..

 


사랑이라곤 도저히 모를것 같은 한설이 과연 그랬을까 하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겠지만..

 


그렇게 안믿어도 나야 별 상관은 없지만.

 

 

정말이야...

 

이게 너희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마지막 말이야.

 

떠나는 마당에 모든걸 무릅쓰고 털어 놓지만...

 

 


......

 


.............

 

 

아마도 그것보다 삼천만배는 더 거대한게 바로 내꺼야.

 

니 놈들을 지켜봤던.

 

니 놈들을 떠나 보내야 했던.

 

그러나 입밖으론 내색할수 없었던 내 얘기야.

 

 

 

 

 


"네가 남긴 작은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작은 개구리마저 구슬프게 날 위로해주던 길...

 

목놓아 울다 네가 다시 내게 돌아와주길......

 

진동없는 작은 상자 힘을내 부숴져버리길....

 

내가 잠든 사이에 거짓말처럼 날 데려가주길........."

 

 

 

 

 

내 인생의 전부야.

 

안녕..................

 

이게 정말 내 마지막 얘기야..

 

너희들에게 꼭 털어놓고 싶었던 내 마지막 진심이야.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

 


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주길........

 


외톨이의 눈물을 기억해주길...외톨이의 사랑을 노래해주길......

 


외톨이의 복수를 지켜봐주길............................

 


외톨이의 ..........................................


...

 

 

 

외톨이의.............................."

 

 

 

 

 

 

이윽고 눈물에 얼룩진 종이 위로..

 


남자의 노래가 서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깨알같은 글씨를 천천히 뭉개 트리며.....

 


완성 되지 못한 마지막 구절이 수천번 수만번 되풀이 되는 남자의 노래가..

 

"말도 안돼 그런게 어디 있어요.진짜 말도 안된다."

 

 


"그래.말도 안돼..말도 안되는 얘기지.."

 

 

"에이..진짜 그건 말두 안돼......"

 

 

 


\ 전화 상담소.

 

 

 


짧은 커트 머리에 로션조차 바르지 않은 건조한 맨 얼굴로.

 

손사래 치는 12번 상담원을 묘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는 나나.

 

 

 

 

"그나저나..요즘은 상담 하는 사람들도 통 없구나..."

 

 

 


3개월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그녀는.

 


새롭게 12번 상담원을 맡게 된 열일곱살의 키 작고 주근깨 투성이의 소녀를 보며

 


굉장히 나른한듯 기지개를 펴보였고...

 

...

 

 

 


"그럼 그 언닌..정말..죽었을까요...?"

 

 

 

그에 소름돋는다는듯 두 팔을 감싸쥐며.

 

주근깨 소녀가 흥미롭다는듯 나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글쎄.그게 중요한거야.?"

 

 

 

 


비스듬히 돌려져 있던 전화기를 바로 세우며.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담배를 입에 무는 나나.

 

 

 


"아니.바다에 빠져들고.

 

거기 까지 였잖아요..그러니까 그 뒤로 그 형제들이 어떻게 됐는지..

 

여자를 따라 죽었는지..

 

아니면 그 형이란 사람은 여전히 기억을 못하고 잘 살아 가는.."

 

 

 


"그 여잔 정말 바보 였어."

 

 


"..네..?"

 

 

 

"아무도 눈치를 못챈다고 생각했거든.


실은 자기가 누구보다 약한데 기를 쓰고 강한척 하는거.


우리들 중 누구도 모를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거든.."

 

 


"...."

 

 

 

그리고 나나의 계속되는 낮은 저음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습관적으로 테이블위의 시계를 바라보는 주근깨 소녀.

 

 

 


"사실은 그게 아닌데..."

 

 


"....."

 

 

"그 바보 빼곤 다 알고 있었는데.."

 

 


"슬퍼요..왠지..좀 무섭기도 하고.."

 

 


"그렇게 용쓰고 기쓰는게 안쓰러워..


한명도 입밖으로 꺼내놓을순 없었지만..."

 


".."

 

 


"사실은 세상에서 제일 나약하고 볼품없는 외톨이라는거.


그놈들도 나도 다 알고 있었는데..."

 

 


"눈물이 나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겨져.."

 

 


"그러니까 농땡이 그만 부리구 잘하란 말야 짜샤!!!"

 

 


"헤헤헤헤..-0-.."

 

 

 

분위기를 바꾸려는듯.

 

두번째 연기를 내뿜으며 주근깨의 머리를 나나가 가볍게 두드리면..

 

주근깨는 재빨리 머리를 피하며 눈물 고인 눈을 슥 훔쳐 냈고..

 

 


"가만..오늘이..며칠이더라..."

 

 

 

장난을 멈춘 나나는.

 

돌연 테이블 위로 숙연히 턱을 괴고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언니 근데요..."

 

 

 

"....그러니까.."

 

 

"그 남자들이..정말 그렇게 멋져요..?"

 

 


"뭐야!!?"

 


"아니.아니.이게 아니라.."

 

 

 


나나의 표정을 보고 사태를 감지한듯.


서둘러 두 손을 휘저어보이는 주근깨.

 

 

 

 

 

"그 남자들.지금 괜찮을까요..?"

 

 


"....."

 

 

"잘..살고 있을까요...


죽은 그 언니만큼이나 괴롭고 힘들텐데요..."

 

 


"흠.............."

 

 

 

"아마....기억을 잃은 그 남자도 결코 행복하진 않을것 같아요....."

 

 

 

"그거야 나 역시..


연락도 안되고..소식도 알길이 없고...


...심지언 세진이란 그 애 조차 본적이 없는데..."

 

 


중얼중얼...

 

 


담배를 재떨이 위로 툭 던져버린 나나가..

 

주근깨에게 들릴듯 말듯한 중얼거림으로 손톱을 물어 뜯고..

 

 

 


"너무너무 힘들것 같아..


그렇게 가슴 찢어지는 유서까지 남기고 죽었는데 어떻게 멀쩡히 살겠어요.."

 

 


그에.

 


얼굴에 어딘지 어두운 그림자가 서려있는 주근깨 소녀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또다시 탁상 시계위로 시선을 가져갔다.

 

 


"왜..약속이라도 있어..?"

 

 


"아뇨..그게 아니라.."

 


"퇴근해야 되는거면 가.어차피 전화도 안오.."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

 

 

 

그때.

 


여자 둘뿐이던 다섯평 남짓한 상담소에서..

 

12번이란 숫자가 새겨진 전화 벨소리가 요란스레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

 

 

 

"뭐지....."

 

 

 

 

 

꼼짝없이 굳어버린 얼굴로..

 


멍청히 12번 전화기를 바라보는 나나.

 

 

 

 

"상담 전화 잖아요..왜 그래요 언니.."

 

 


"받지마 그거........"

 

 

"에..?"

 

 

"..........받지마............."

 

 

 

 

'따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릉.따르르르르르릉.'

 

 

 


숨 한번 고르지 않고.

 


나나의 목소리를 파묻으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는 전화 벨.

 

 


"받지 말라뇨.아직 엄연히 근무 시간인데.."

 

 

 

"............."

 

 


"네.12번 상담원 연결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론..

 

 


주근깨 소녀의 맑고 명랑한 목소리가 낡은 수화기를 통해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

 

 

\ PM.5:00

 

 

 

 


"..............."

 

 

 


"네.말씀 하세요.십이번 상담원 연결 되었습니다.."

 

 


"................"

 

 


"여보세요.....?"

 

 

 


분명 주근깨 소녀의 왼쪽 귀로 흘러든..

 


지칠대로 지쳐버린 한 남자의 흐느낌.....

 

 

 

 

"끊어..."

 

 


"...."

 

 

"끊으란 말이야..!!!"

 

 

 

그러면..

 

주근깨 소녀 옆에 바짝 붙어 있던 나나가.

 


별안간 그녀를 향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함을 질러댔고..

 

 


"남자가 울잖아요!!!!!!!!!"

 


...

 

......

 

 

 

동정심 많고 정 많은 주근깨 소녀는.

 

더욱 더 귓가에 수화기를 바짝 땡겨 놓은채..

 

남자의 다음 말이 이어지길 숨죽여 기다렸다..

 

 

 


"..............."

 

 


"......................."

 

 

 


그러나 건너편의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여지껏 소녀가 살아오며 들어온 그 어떤 것보다..

 

소름돋게 끔찍하고 힘겨운 흐느낌을 들려 주었다.

 

 

 

 

 


"저..여보세..요..."

 

 


"........."

 

 

"말씀 하세요..대체..무슨 일이 있는건지.."

 

 

 

"죽............었어...........................죽었어.............."

 

 

 


그리고...남자는...

 


꽁꽁 얼려 있던 소녀의 귀에 그 한마디를 박아 넣으며..

 

다음으론 옆에 바짝 붙어 서 듣고 있던 나나의 두 눈을 질끈 감겨 버렸다..

 

 

 

 

"네...?죽다뇨...


누가요...누가 죽었는데요...!!!!"

 

 

 

"셋이...같이..도망가기로 했는데.................


우리 셋이.............같이 도망치기로 했는데.................."

 

 


"무슨 일이에요 대체!!!!거기가 어딥니까!!네!!?!?"

 

 

...

......

 


점점 굳어져가는 주근깨 소녀의 얼굴..

 


그럴수록 희미해져가는 남자의 목소리..울음소리..

 

 

 


"끊어!!!!!!!!!!!!!!!!!!!!!!"

 

 


동시에..


결국 한계에 다다르고 만 나나의 비명소리..

 

 

 

 

 

"사람이 울잖아 언니!!!!!!어떻게 그냥 끊어요!!!!!!!!!!!!"

 

 

 

"근데 그게 미완성이였거든................."

 

 

"아 여보세요!?죄송해요!!같이 일하는 언니가 그만!!!"

 

 

 


"그 노래가 미완성.............


마지막 가사가 없어서 미완성............"

 

 


"네...?"

 

 

 

"마지막...뭔지 모르지........................"

 

 


"마지막이라뇨....."

 

 

 

계속되는 남자의 뜻 모를 말에..

 

이번엔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그러나 여전히 나나의 거친 손길을 이리저리 피하며..

 

힘겹게 물음을 계속하는 주근깨 소녀..

 

 

 

 

"맨 마지막 가사라뇨....


저 혹시 어디가 아프다거나...."

 


".........."

 

 

"저기요......"

 

 

"목놓아 울다 네가 다시 내게 돌아와주길......


진동없는 작은 상자 힘을내 부숴져버리길............


내가 잠든 사이에 거짓말처럼 날 데려가주길........."

 

 

 

"....................."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


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주길........"

 

 

 


"꺄악!!!!!!!!나나 언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되풀이 되는 남자의 노래에..


그 누군가의 손떼가 묻은 수화기를 집어 던지며..


주근깨 소녀가 나나의 품으로 와락 안겨 들었다..

 

 

 

 


"받지 말라고..내가 분명 경고 했지............"

 

 


그러자 나나는..

 

겁에 질려 흐느끼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 듬으며..

 


바닥에 떨구어진채 낡은 노래를 흘리는 수화기를 가만히 노려보고..

 

 

 


"외톨이의 눈물을 기억해주길...


외톨이의 사랑을 노래해주길......"

 

 

 

이어서..


잡음 속에 파묻힌 그 노래를 멈추기 위해..


조심조심 허리를 숙여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외톨이의 복수를 지켜 봐주길....................."

 

 


"그만해.............."

 

 

 

"외톨이의.........................."

 

 


이어서..

 

들릴듯 말듯..


나나의 귀에 조그맣게 울려퍼지는 노래의 마지막 구절.

 

 

남자가 비로소 완성시킨 단 하나뿐인 그녀의 노래.


더불어 그 마지막 구절에..


꾹꾹 밑으로 눌러 앉다가 기어코 폭발하고 만 나나의 분노.

 

 

 

 


"제발 그만해!!!!!!!!!!!!!!!!!!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 불쌍한 애 두고 장난질 그만 하란 말야!!!!!!!!!!!!!!!"

 

 

 


"오랜만이네요...."

 

 

 


"............."

 

 


순간.

 

갑작스레 멎어버린 나나의 눈물 줄기.

 

그리고 거짓말처럼 막혀버린 그 무수한 고함과 원망들..

 

 

 

"넌.........................."

 

 


"사랑한다고....................그랬는데...................."

 

 

 

"......넌........................"

 

 

 

 

'뚜............뚜............

 

..........뚜........................뚜.........................

 

.....................뚜....................................................

 


뚜........................뚜..........................................................'

 

 

 

 


"언니 왜그래요!!!"

 

 


".........................."

 

 

 

"언니!!!!!!!나나언니 왜 그래요!!!!!!!!대체 왜 그래요!!!!!!!!!!!!!!!!!!"

 

 


"다섯시......................다섯시.............."

 

 


"언니..."

 

 

 

"그 노랠 알고 있었어.....그 노랠 전부 알고 있었어......."

 

 

"언니!!!!!!!!!!!"

 

 


"또...시작 됐어.............................."

 


"뭐가..대체 뭐가 시작이라는 거에요...!!!!"

 

 

"개같은 운명질..............."

 

 

".................."

 

 


"그게..........그놈이 선택한 마지막...이야............."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구요..."

 

 


"마지막..가사..."

 

 

 


'뚜....뚜.........뚜.......뚜.......'

 

 

 

바닥에 형펀없이 떨구어진 수화기가...

 

신음에 가까운 마지막 숨소리를 버겁게 뱉어 내면...

 


....

 

........

 


나나의 품 안으로 더더욱 파고드는 주근깨 소녀...


....

 


그리고 그녀가 자주 불렀던 그 노래를 속으로 조그맣게 읇조리는 나나....

.....

 

 

지금도 울고 있을 놈을 원망하며...

 

그리고 보고파 하며.......

 

.......

 

 

그녀가 자주 불러주었던 그 노래를...

 

 

이제 완벽히 완성된 그 노래를 조그맣게 읆조리는 나나...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


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주길...........


외톨이의 눈물을 기억해주길...외톨이의 사랑을 노래해주길......


외톨이의 복수를 지켜봐주길............................"

 

 

 

"언니..나나언니..."

 

 

 

"외톨이의...........................................

외톨이의..................................."

 

 

 


"나나 언니!!!!!!!!!!!!!!!!!!정신좀 차려!!!!!!!!!!!!!!!


언니!!!!!!!!!!!!!!나나 언니!!!!!!!!!!!!!!!!!!!!!"

 

 


............

 

 

 

................................

 

 

 

 

..........

 

 

 

 


'있잖냐...작은 상자 안에 갇혀 있는거 같애..우리들...


그런데...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고 높은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그 상자를 막 흔드는거야...


나오라고...다 떨어지라고...


너희들은 같이 붙어 있으면 안되는 운명이니까..다 떨어져 버리라고...'

 

 

 

 

'.......'

 

 

 

 

'도망가자....우리 다 같이 저 멀리 도망가자...아무도 못찾는데 있잖아...


거기 꼭꼭 숨어서..방해도 받지 말고..상처도 받지 말고..


셋이..그렇게 웃으면서..우리 셋이..그렇게 딱 한번만 행복해지자...


이제 딱 한번만 행복해지자...'

 

 

 

'어디로 갈래..아프리카..아니면 화성..아니면 무지개 나라..'

 

 

 


'배신도...상처도...눈물도...없는곳...우리 괴롭히는 어른들...단 한명도 없는곳..'

 

 

 

'그런데가..있을까...'

 

 

 


'없으면 내가 만들어줄거야!!!잘들어!!!우리가 이길거야!!!!!


등신들아!!!!똑바로 들어라!!!!승자는 우리야!!!!'

 

 

 

'그래!!!!!승자는 우리다!!!!!!한설 너도 빨리 소리질러!!!!'

 

 

 

'.............'

 

 


'아 빨랑!!!!!!!'

 

 


'.......................'

 

 

 

 

'나한텐 맨날 잡아 죽일듯이 꽥꽥 소리 지르면서 왜 지금은 못하냐!!?

 

강하다며!!!!우리가 이긴다며......!!!!!'

 

 

 

'우리가 이긴다......'

 

 

 

'더 크게 못하냐!!!!!


제주도 오자고 그렇게 난리 부르스를 치더니.


기껏 와서 그런 맥없는 소리밖에 못내냐!!!!!!!'

 

 

 

 

'우리가 이긴다....!!'

 

 


'아 뭐야..재미없다 한설...'

 

 

 


'우리가 이긴다!!!!!!!!!!!!!!!!!!!!!!!!!!!!!!!!!!!!'

 

 

 

 

 

아웃 싸이더.

 

그러나 그 까마득한 옛날의 안타까운 다짐을 비웃듯.

 

6개월전 인천 바다 3월9일 AM 5:12분.

 

참혹한 한방으로 일전 일패.

 

 

 

 

 

 

 

.....

 


.................

 

 

 


"그거 알아..?

 

저 집 입양됐던 학생이 완성 못하고 죽었다던 그 노래의 마지막 말..."

 

 


"글쎄..난 모르겠는데.....그런거 싫어..워낙 무섭잖아.."

 

 


"아무튼 애들만 불쌍하지 뭐...딱해 죽겠어...."

 

 


"에구..아무튼 평창동에서 가장 넓은집도 주인을 잃었으니 저를 어째...

지금은 아들놈 혼자만 있대매...?아니 팔린 집에 아무도 없는데 뭣하러

들어 앉아 있대...."

 

 


"그 죽은 여자를 못 잊는 대잖어.."

 

 

"아무튼...사람일 정말 알다가도 몰라...."

 

 


"근데 진짜 마지막 가사 안궁금해..?저 사는 아들놈이 완성 시켰다던.."

 

 


"아 글쎄 됐대도!!!그런 무서운 얘기 하면 집에도 못가요 난!!"

 

 

 

"아무튼 몰라 난...


어쩜 그리 상황이랑 딱 맞아 떨어지게 가삿말을 붙혔는지......"

 

 

"자꾸 그러니 궁금하네.."

 

 


"거봐.알구 싶지?"

 

 

"뭔데 그래..?근데 대체 그건 또 어디서 주워 들었대.."

 

 

"내 알지.집 애들이 얼마나 시끄럽게 부르고 다녔는데"

 

 


"뭔데 뭔데.."

 

 

"그러니까 뭔고 하니.."

 

 


"아 뜸들이지 말구 빨랑 말해!!!!!!!!!!!"

 

 

 

"................."

 

 

 

 

 

네가 남긴 작은 추억을 밀어내고 오던길.

 

작은 개구리마저 구슬프게 날 위로해주던 길.

 

 

 


목놓아 울다 네가 다시 내게 돌아와주길.


진동없는 작은 상자 힘을내 부숴져버리길.


내가 잠든 사이에 거짓말처럼 날 데려가주길.

 

 

 


사랑을 부르고 사랑을 불렀던 우리들....

 

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주길........

 


외톨이의 눈물을 기억해주길....외톨이의 사랑을 노래해주길......

 


외톨이의 복수를 지켜 봐주길.....

 

 

 

 

 

그리고.....

 

 

외톨이가 떠나간지 정확히 육개월 하고 삼일후.

 


남자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고요하고 텅빈 평창동의 괴물집..

 

 

 

 

 

"외톨이의 죽음을.....................

 

..........함께 해 주길.............................

 

 

 

 

 

 

그녀를 잊지 못한 남자가 완성시킨 마지막 노랫말을 기다리며....

 


2 : 0 KO 로 게임 종료.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그러나 끝까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반드시 이기자 다짐했던 아웃 싸이더...

 

 

 

 

 

문자 그대로 영원히 원 밖에서 게임 오버.

 

 

 

 

 

 

 

 

"사랑한다고.................


그랬었는데...................................."

 

 

 

 

 

 

 

 

 

 

 

 


GOOD BYE OUT SIDER. 

 

 

ps  귀여니소설  이거 다읽어보는사람 몇명이나 될까 ?

 

근데 죨라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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