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책, 주제 사라구미의 눈먼자들의 도시. 내용은 눈먼 자들의 도시 그 자체이다. 실명이 한 사람에게 덥치고, 전염병처럼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겨져가고, 이윽고 도시 전체가 눈 멀게 된다. 그 가운데 눈이 멀지 않는 한 사람이 주인공에 가깝게 그려진다.
하지만, 자연재해에 대한 인간의 아름다운 도전이나, 전염병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묘사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 책은 매우 산문적인데다, 딱딱 끊어지는 문체를 따르고 있기에, 동화같은 느낌이 드는 동시에, 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현실과 동화의 갭 때문에 매우 까칠하다. 귀여운 그림으로 끔찍한 묘사를 하는 느낌이랄까.
간단한 인물묘사 때문에 인물에 대한 복잡한 생각도 들지 않고, 한 사람만 쫓아다니지 않는 시점 때문에 어떤 편에서서 다른 편을 욕하기도 쉽지 않고, 인간 생존 욕구의 끝을 보여주기에 아름다워라 하며 웃을 수도 없다. 인물들이 어떤식으로 묘사되나면, '안과 의사', '의사의 아내', '검은 안대를 하고 있는 남자',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여자' 이런 식이다. 차이점을 써놓은 것은 그저 같은 인간인데 이정도로 구별할 수 있어, 란 느낌. 동물 탈출극에서 얘는 검둥이, 째는 점박이, 그리고 리더는 꼬리가 긴 개, 이런 식이다.
작가는 가감없는(무표정한?) 표정으로 묘사를 계속해 나간다. 눈이 멀었다는 하나의 조작으로 사람들을 발가벗겨 놓는다.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잃었을 때, 나는 무엇이고 너는 무엇일까? 유지해야 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일까? 그 사이에서 눈이 보이는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해가면서 끝맺음을 맺는다. 끝을 향해 달리는 소설은 아니고, '눈이 멀다'라는 하나의 명제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긁어모아 세밀하게 보여주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