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피아노 발명] '피아노'의 발명은 18세기 사람들에게 하나의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건반악기인데도 큰 소리를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리 자체를 크고 작게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은 당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이 악기의 이름은 약하고 강하다는 뜻의 피아노 포르테(Pianoforte)가 되고, 이 말이 줄어 '피아노'가 된다.
악기의 계통별로 보면 '피아노'는 건반이 있는 현악기로 분류된다. 건반의 수는 7옥타브와 3도를 포함하는 88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뵈젠도르퍼 풀 사이즈 연주용 피아노는 폭넓은 저음을 얻기 위해 가장 낮은 건반 아래에 4개의 저음 건반을 더 갖기도 한다.
'피아노'가 발명된 것은 18세기 초의 일이지만 음악가들에게 비중있게 쓰여지게 된 것은 19세기로 접어들면서부터이다. 19세기를 피아니스트의 시대, 20세기를 지휘자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에서 차지하는 피아노의 비중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쇼팽과 리스트는 당대에 알려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서 '피아노'를 통해 자신들의 창작세계를 주로 펼친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들의 음악 속에는 피아니즘과 다이내미즘이 하나로 구현되어 있으며, 따라서 피아노 하나로 표현해 내는 음의 세계가 1백여 명의 단원이 소리내는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못지 않은 압도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쇼팽과 리스트의 피아노 창작세계가 사실로 구현될 수 있었던 원인 중에서 ‘창작 이전의 창작조건’으로서 피아노라고 하는 악기의 존재 자체를 간과할 수 없다. 만약 "피아노"라는 악기가 없었다면 쇼팽과 리스트의 그 화려하고 풍성한 울림과 환상적인 피아니즘은 작곡가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을 것이다.
바이올린 
물리적인 음향 법칙으로 보거나 형태적인 완전성으로 보거나 바이올린만큼 완벽한 악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곡선 하나에도 음향 원리가 반영되어 있으며 길이와 두께, 휘어진 각도까지도 이유 없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바로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이 이와 같은 원리와 모습을 갖게 된 것이 누구의 손에 의해서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악기 앞면에 있는 f자 울림구멍이 프란츠(Frantz)를 암시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으며, 프랑스의 황제 프랑시스 1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바이올린의 발명자로 지목한 일이 있으나 이 역시 정론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무수히 많았던 비올 제작자들 중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졌던 몇몇 사람들이 여러 가지의 시도를 통해 바이올린의 토대를 만들고, 어느 한 명인의 손에 의해 체계화되어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견해이다.
대부분의 바이올린 명기들이 크레모나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3세기 초까지는 이탈리아인들은 활을 사용하는 악기를 알고 있지도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류트나 기타를 만들었고 이 방면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들은 13세기를 보내면서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활을 사용하는 악기의 제작방법을 배웠고, 이 방법이 그들의 기술과 만나게 되어 훌륭한 비올 작품들을 만들게 된다. 그러다가 16세기 중엽에 이르러 돌연 바이올린이 볼로냐 화가의 그림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줄리오 노마노가 1550년에 그린 그림이나 페레그리노 티발디의 그림 ‘성 세실리아와 바이올린을 켜는 두 천사’ 속에 바이올린이 등장한다. 이것을 근거로 최초의 바이올린은 16세기의 30년대나 40년대의 볼로냐에서 태어났다고 추측된다.
바이올린의 역사를 찾기 위해 이전에 존재했었던 모든 현악기를 바이올린의 전신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어떤 악기들은 점진적으로 바이올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령 페르시아의 케멘체나 아라비아의 르바브, 무어인들의 레벡, 켈트인들의 크루트, 독일의 트룸샤이트, 프랑스의 비엘 등이 그 예이다.
한편 바이올린을 포함한 현악기의 계통을 그리스의 기타라에서 찾는 견해도 있는데, 손으로 퉁겨 연주하던 기타라가 중세 전기에 이르러 손으로 퉁기기도 하고 활로 문지르기도 하는 로타로 발전하고, 이 로타가 12∼13세기의 비엘로 발전하며 비엘이 15세기를 거치며 비올이 된다는 것이다. 비올은 바이올린처럼 허리가 잘룩한 모양을 갖게 되고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이 비올족의 악기들은 바이올린이 탄생한 이후에도 한동안 공존했으며 17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첼로
관현악 악보에 첼로(cello)라고 표기된 것은 실은 악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cellist)을 약어로 표기한 것이다.
첼로의 정식 명칭은 비올론첼로(violoncello)인데, 이는 작은 더블베이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비올로네(violone)는 비올족 악기를 뜻하는 어간(viol)에 크다는 뜻을 가진 어미(-one)를 붙여서 만든 단어로 큰 비올라라는 뜻이 되고, 이는 결국 더블베이스가 되는데, 여기에 다시 첼로(cello)라는 축소형 어미가 붙게 되므로 비올론첼로는 결국 작은 더블베이스가 되는 것이다. 이런 명칭관계를 통해 첼로가 비올라나 더블베이스보다 늦게 개발되지 않았냐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첼로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에 비해 훨씬 크고 연주자세가 다르기 때문에 운지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운지를 제외하고는 주법과 기능에 있어서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첼로의 전체 길이는 120cm로서 바이올린의 두 배쯤 된다.몸통만의 길이는 73~76cm 정도 된다. 활은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의 그것보다 약간 더 짧고(71cm) 더 굵으며 탄력성이 적은 편이다. 첼로의 4줄은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갈수록 현저하게 굵어져서 아래의 가장 낮은 선에서는 매우 풍부하고 부드러운 저음을 낼 수 있다. 조율체계는 비올라와 같은데, 음역은 한 옥타브 아래로 조율된다. 보통 높은 쪽의 두 줄은 아무것도 감지 않은 거트선을 쓰고, 아래쪽의 두 줄은 은이나 구리 혹은 알루미늄으로 감아서 쓰기도 하나, 최근에는 4개의 현 전부를 금속으로 감겨져 있는 것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첼로는 바이올린족의 여러 현악기 중에서 가장 거친 소리를 낼 수 있는 동시에 가장 부드러운 소리를 낼 수 있다. 이렇듯 폭넓은 표현 가능성 이외에도 첼로는 4옥타브에 걸친 넓은 음역을 갖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첼로를 연주할 때는 악기를 두 무릎 사이에 거의 수직으로 세우고 받침목으로 바닥에 고정시킨다. 공명통(몸체)의 뒤판이 연주자를 향하게 되므로 바이올린에 비교할 때 높은 음과 낮은 음의 방향이 바뀌어 가장 낮은 현이 오른쪽에 오게 된다. 목의 길이도 바이올린에 비해 짧은 편이며, 지판은 더 넓고 길어 브리지까지 이른다. 이 점 때문에 운지에 필요할 경우 엄지손가락을 사용할 수도 있다.
첼로는 비올족의 여러 악기 중에서 가장 다양한 음색을 낼 수 있다. 또한 첼로와 바이올린은 관현악에서 저음역과 중간 음역일 때 동질적인 음향을 내는 파트너이다. 그런 관계로 바이올린의 소리를 ‘아내의 소리’로, 첼로의 소리를 ‘남편의 소리’로 비유하여 말하기도 하며 바이올린을 ‘여자 시인’에, 첼로를 ‘남자 시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바이올린과 첼로 두 악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음향적으로 가장 높은 완전성의 경지에 접근해 왔다. 첼로의 음향은 저음역에서 숭고한 의식이나 비극적 장엄미를 표현해 내며, 고음역에서는 격렬한 정열을 나타내기도 하고 고요한 상태뿐 아니라 악마적인 광폭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첼로는 4개의 현 사이의 음색적 차이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작은 차이마저도 포지션을 바꾸어 고음역을 사용함으로써 상쇄시킬 수 있다.
음역이 사람의 베이스 성부 내지는 바리톤 성부의 저음역과 비슷한 2줄의 저음현 음색은 힘차고 근엄하지만 고요한 분위기를 내는 데도 적합하다. 이 두 현은 얇은 동선으로 감겨져 있기 때문에 고음의 두 현보다는 덜 탄력적이다. 따라서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는 데는 고음보다 저음이 불리하다.
첼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오케스트라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함부르크에서 활동한 요한 마테존에 의해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의 하나’로 인정을 받게 되고, 바흐와 헨델의 관현악곡에 이르러서는 현악기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첼로의 기능은 더블베이스와 함께 저음 베이스 성부에 국한되었다. 바로크의 통주저음 양식이 쇠퇴하면서 첼로의 기능이 보다 다양해지게 되고, 그 일례로 바흐는 첼로를 위해 다섯곡의 소나타를 작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아직 첼로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기법과 테크닉이 작곡가들에게 알려지지 못했으므로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이르러까지도 첼로의 테크닉은 단조로운 선에 그치고 있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베토벤 등의 작곡가들에 의해 첼로는 더블베이스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독자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낭만주의를 지나면서 바그너에 오면 첼로는 지금까지 해왔던 자기 역할을 찾는 여행을 청산하고 현대의 스타일로 정착한다. 오늘날 첼로는 화음악기가 아니라 독주악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