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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았는데 ...심심하다..뭐하지..

behappy003 |2008.03.24 14:41
조회 183 |추천 0

내나이 이제 서른...

평균연령으로 따지면 나는 앞으로 살아야할 세월이 더 많은 아직은 청춘이다....

동갑내기 남편과 일찍 결혼한 덕에 6년쯤 됐는데 내가 생각해도 우린 사이가

좋은편이다. 남편의 가족에 대한 성실함은 내가 인정하니까!

재작년 결혼기념일날 아이와 함께 부산여행을 하며

우리 매해 이러면 참좋겠다던 남편말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앞으로의 모든 결혼기념일은 내가 너무 아팠던날로 기억될뜻 싶다.

작년 11월30일 내 결혼기념일밤...나는 뇌출혈로 쓰러졌다...겨우 나이 서른에..!

거실에 쓰러진 나를보고 아들이 방에가서 자자며 울었고 녀석이 울음소리에

남편이 날 응급실로 데려가던 새벽에 나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고했다.

의식없는 아내와 빽빽울어되는 아들녀석을 챙기며 도착한 병원에서 뇌출혈이니 대학병원

으로 가라했을때 남편이 느꼈을 그 절망을 어떡하면 좋을까...

대학병원에서의 열시간넘는 대수술

의사쌤은 내가 죽는다 했었다고한다.

내딸인생이 허무해 어쩌냐며 우는 엄마과 가족들을 모두 보내고

남편은 홀로 중환자실앞을 지켰다.

새벽에 의식이 돌아온 나는 한고비 넘겼으나 그후로도 오래 중환자실을 나오지 못했다.

회사도 작파하고

아이는 친정과 이모손에 맡긴채 남편은 내 간호에만 매진했다.

차에서의 선잠을 자처하며 중환자실 하루 세번 면회시간마다 내게로 왔다.

기관지 절개로 말을 하지 못했던 나는 남편의 노트에  메모를 하며 그와 대화를 했다

나는 사실 끔찍하게 머리가 아팠던 그날밤.눈떠보니 병원..그 사이 이십일 가량의

기억이 없다...

남편말처럼 좋은 일 하나 없던 그 때를 기억해 무엇할까 마나

아무리 애를써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병원에서는 내가 의식이 돌아온것에 놀라했다.

내 치료가 어느정도 안정기에 들었을때쯤 남편은 퇴원해 정말 괜찮아지면

둘째를 낳자고 했다.

워낙 우리 부부는 출산전부터 아이는 한명밖에 생각이 없었다.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너무 벅차고 힘들때 가족이라곤

의지할가족이라곤 네살 아들밖에 없더라는 남편은 부모님 형제들도 정말 고맙지만

자식을 또 낳고싶다고했다.

그마음이 안쓰러워 나는 그러자고 했었는데....

나의 정확한 진단명은 임신중독증에 따른 고혈압뇌출혈..

더이상은 아이를 갖지 말란다..

내 인생에 자식은 저녀석으로 끝내란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많이걸리는 이 반사회적인 질병에 내나이 서른...

억울하고 답답해 많이 울었는데...

안낳는것과 못낳는것은 정말 많이 틀리구나...서운하다....미안하다...는 생각에

많이 울었지만....내 자식을 낳다 이렇게 됐다 하니.....억울할것도 없다 싶었다.

소뇌출혈로 수술한 나는 어지러움과 균형감각을 주관하는 신경을 모두

잃었으며 지금까지 나를 아마도 평생 나를 괴롭히는건 이 어지러움일것이다

퇴원후,어지러움으로 쓰러진후 다시 입원 다시 한달....

아들은 조카들과 지내는것에 점차 적응해 재미를 찾았는지...아무렇지도 않아 보여

날 서운하게 했다.

퇴원후 집에 와 현재 나는 요양중이라고 하는게 맞을것이다.

활동량이 많으면 어지러워 정신을 못차리겠어서 거의 외출도 안한다.

그랬더니 너무 심심하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남편말대로 죽다 살아나도

청소병은 그대로 인지라 집청소를 하고 나면 대체 다른 사람들은

이시간에 뭘하며 시간을 보낼까 싶다.

적게는 언어쟁애.대부분 마비.심하게는 치매까지 오는 뇌출혈환자들을 병원에서

너무 많이 봤다.

나처럼 육체적인 외상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감사할일인지 모른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3년안에 재발하면 목숨보장 못한다는 의사말에 겁이 나

바깥활동이 아직은 많이 무섭다.

집에만 있는다고 안전한건 아닐텐데...!

병원에세 살아줘서,,고맙다며 두손잡고 울던 우리 부부는

다시 예전처럼 살려줬더니 저 모양이라며 아웅거린다,.

퇴원후,엄마없는동안 온 친적의 안쓰러움으로 왕자대접을 받은 아들의 기고만장한

버르장머리도 많이 좋아진듯 보인다.

그런데...너무 감사해서 십년여 만에 엄마손에 이끌려 다시 교회도 가는데

남은 인생이 덤인줄 알고 살라는 의사말에

내 아들이 내나이만큼 클때까지만 덤으로 살게해주세요 라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데...

요며칠 내 존재가 가볍다.

엄마로써,아내로써 ,딸로써.예전만큼 해줄수가 없다.

이정도도 어디냐고 하면 할말 없지만....

조금 속이 상하다.

다시 일을 한다는것은 먼 이야기기같고 남편은 내가 무리할까봐 신경을 곧추세운다.

커피도 끊고...식시량도 줄였다.

병원에 있는 동안 십키로 가까이 빠진 살도 점차 안찾아도 되는데

제자리를 찾는듯 싶다.

나는 요양중인거야...설마 평생이럴까...평생 이런들 어때...나는 살았는데...

하면서도 욕심이 커진다,

예전처럼 일도 하고싶고,집안 큰일에 나서서 내 몫도 하고싶다.

자꾸 내가 열외가 되는듯해 서운하기도 하고

내가 한심스러워 지기도 한다.

나때문에 포기한 둘째계획도 미안하기만 하다.

우스개소리로 이렇게 골골할줄 알았으면 장가오지 말걸...하는 신랑말이

어디다...우스개 소리기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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