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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 어린이들은 절대로 아파서는 않됩니다.........

현이아빠준... |2003.09.18 22:56
조회 488 |추천 0

누구나 드라마의 주인공을 한번쯤은 꿈구게 됩니다. 그러나 그 드라마는 결코 비극은 아닐겁니다. 저희 가족에게는 2003년 4월 30일은 없었으면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14개월로 접어든 제 막내아들 현이가 돌잔치 전날 시작된 감기로 한달 가까이 고생하는 걸 늘 다니던 동네 소아과를 옮겨 보니 그날 바로 소견서와 함께 큰 병원으로 가보라더군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엄마, 아빠" 밖에 없는 놈이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그저 가슴이 미어지기만 합니다. 불치병이 아닌 난치병이라는 말은 곧 치료가 어렵지만 희망은 있다는 말이겠지요.......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뜻하지만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뜻한답니다. 그 동안 눈여겨 보아오지 않았던 세 잎 클로버가 마냥 그리울 뿐입니다..................

 

2003년 4월 30일(수)
  신계약을 마감하는 날이라 맘이 바쁘던 오후 3시경.............
애 엄마로부터 울먹이는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늘 다니던 소아과가 아닌 다른 소아과를 한 번 가봤는데, 소견서를 적어 주며 큰 병원으로 가보랬다고......  울먹이는 애 엄마를 전화로 겨우 달래고 우선은 급한대로 고대 부속병원으로 가보라고 한 후, 바쁜 사무실을 뒤로 한 채 서둘러 나왔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를 몰며, 큰 병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우선은 집으로 가서 큰 애를 단도리하고 병원으로 갔다......  자주 가 본 병원이지만 그 날은 왠지 낯설기까지 한 생각도 들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목이 말라 왔다.
  병원에서 늘 하는 대로 링거병을 팔에 꽂고 울먹이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을 바로 이런 때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젊은 인턴이 와서 혈액 검사를 하겠다고 하길래 처치실로 옮겨 피를 뽑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좀 더 고참인 듯한 의사가 조용히 불러서는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 혈액종양과가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 보라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급히 앰블런스를 수배하고 울며 메달리는 준이를 어렵게 남겨 놓고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갔다.
  앰블런스 속에서 울다 지쳐 잠든 녀석의 모습과 그 녀석 손을 붙잡고 눈물흘리던 애엄마의 모습..........  황금 연휴의 시작이라 막히는 길을 어렵게 뚫고 응급실에 도착.........
고대병원의 소견서를 간호사에게 건네자, 바로 응급실 구석의 침대로 안내를 해 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침대는 그나마 응급실내에서도 무균실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다시 혈액 검사를 하고, 어쩌고 하면서 시간은 흘러 갔다.
  12시가 가까워 졌을 무렵, 소아과 의사가 나만 불러 이 녀석의 병에 대해 얘기를 해 줬다.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얘기를.....
  "골수검사를 해 봐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백혈병이 거의 확실하다.  백혈구 수치가 23만 정도면 당장이 위험한 상태다.  지금 할 수 있는 치료를 우선 시작하겠다.  장담하기 힘든 상태인 것은 분명히 알고 시작하자."
  자그마한 체구의 젊은 여의사의 입에서 나온 소리치고는 너무 겁나는 얘기였다.  그 얘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게 그 치료의 시작을 지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우리 예쁘고, 귀여운 현이의 투병은 시작되었다....................

 

2003년 5월 1일(목)
  아무 일이 없었다면, 준이와 함께 유치원에 가서 민속놀이를 해야 하는 날이다.  동생이 아파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하니, 그래도 쉽게 그 미련을 떨쳐 버리는 녀석을 보니 더 맘이 아팠다. 
  준이를 신길동에 내려 놓고 병원으로 갔다.  어제의 그 침대에 어제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다행히 현이는 있었다.  웃는 얼굴로 맞아 주는 녀석을 나 또한 웃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다.  눈물을 흘리면 않되는 걸 알면서도 녀석을 보면 눈물부터 났다.  활짝 웃는 모습이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놈...............
  곧 병실이 나왔다고 병실로 올라가라고 했다. 1105호실................
TV를 통해 자주 보아왔던 아이들이 링거병을 하나씩 무슨 무기나 되는 듯 달고 병실 복도를 오가는 곳. 소아과 병동이 아닌 백혈병동이라고 해야 하는 곳이었다.  같은 방의 8명이 모두 백혈병으로 입원했다고 하며, 고참이라 할 수 있는 부모들의 낯선 시선을 받으며 병실로 들어 갔다.  휴일이나 다름없는 날이라 오늘은 골수검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닐거라는 희망보다는 줏어 들은 바로 골수성이 아닌 림프성이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병실이 조금 익숙해 질 무렵, 눈을 돌려 같은 병실의 아이들을 보니 더 답답해 져오는 건 치료가 시작되고 나면 우리 현이도 저럴텐데 라는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날 보며 웃어 주는 현이.............  그 앞에서 같이 웃어 주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정말 생각도 해 보질 않았는데..............
  눈물과 한숨으로 이틀이 지나갔다.
 
2003년 5월 2일 (금)
  다른 때와 다르게 아침이 힘들지가 않다.  아니, 잠에서 깨어나기가 어렵지 않다.  빨리 내 눈으로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고 싶어서일까?
  출근길에 병원에 들렸다.  9시경에 골수검사를 한다고 한다.  일말의 희망..........
  사무실에 들러 월말 마감 실적만을 정리하고 지점장께 얘기를 하고 바로 나왔다.  지점장을 비롯 여사원 모두가 분위기가 무겁다.  걱정 어린 눈길을 보내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내게 지워진 짐이 없는 그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이제 택시같은 것도 자제를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병실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수 검사를 한다고 부른다.  넥타이를 풀고 아이를 안고 처치실에 혼자 들어갔다.  애 엄마를 들어가라 할 수는 없었다.  다리를 젊은 인턴이 붙잡고 난 현이의 얼굴을 보며 손과 얼굴을 안고 있었다.  마취 주사를 놓고 자그마한 몸으로 쇠꼬챙이를 찔러 넣었다.  골수가 뽑혀 나오고................
  그 동안 많이 아파서일까 아프고 무서워 우는 녀석의 목소리가 힘이 없다.  집이 떠나라고 울었던 녀석이었는데..............  병실로 돌아와 우유를 타 먹이니 많이 지쳤는지 금새 잠이 들었다.  마취약 때문인지 꽤나 푹 잠이 들었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잠에 빠져든 녀석의 모습이 정말 예뻤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 모습을 영원히 지켜 주기로..............
 아침에 준비해 온 밥을 애엄마와 나눠 먹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4시경에 골수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이란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는데.....
  계속P 마감일이라 마감 입력을 하고 나니 지점장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병원으로 빨리 가고 싶기도 했지만, 한 번은 지점장과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일찌감치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 앞 선술집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기억에는 없다.  소주를 너 댓잔 마신 기억외에는.........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여사원들에게 바턴 터치를 한 후, 병원으로 달려 갔다.  누나가 와 있었고, 주치의와의 면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치의인 빈중현 선생으로부터 치료과정에 대하여 얘기를 들었다.  애 엄마와 함께..........
  항암 치료를 몇 회 실시한 후, 관해라는 과정을 거친 후, 골수 이식이 필요할 경우 골수 이식 수술을 하고, 생착과 공고 과정을 거치고 나면 완치에 이를 수 있다.  단, 현이의 상태가 항암을 견뎌낼 지가 걱정이라는.......
  완치......... 희망..............
조심스럽게 완치라는 희망을 가슴속에 품고 사흘이 지나갔다....................

 

2003년 5월 3일(토)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잔인한 4월 보다 더 잔인한 달이 가정의 달인 5월이 되어 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녀석의 생각에 더 누워 있기가 힘들다.  옆에 곤히 잠 든 준이를 보면서 어제 준이에게 한 말을 떠올려 본다. 
  "현이가 많이 아퍼.......  현이 몸에 피를 만들어 내는 공장이 고장이 났는데, 나중에 준이 몸에서 그 공장의 일부를 주면 나을 수가 있다는데............  조금 아프기도 한데, 준인 현이한테 줄 수 있지?,,,,,,,,,,,,,,"
녀석의 대답은 당연히 줄 수 있다는 답이었다.  기특한 놈...............
  병원에 가 보니 별 다른 치료는 진행 중이지 않았고, 척수검사를 추가로 했다.  머리 쪽에 균이 있을 수 있어 예방 차원에서라도 약을 넣어 주어야 한다는 이해하기 힘든 설명과 함께..........
  잠시 집에 들려 현이 옷을 사기 위해 영등포로 나가다가 애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엔젤 병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전화를...........
정신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준이를 오게 했다.  주치의의 말이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잘 못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엔젤 병동에서 쓰여질 물품을 준비하고, 준이를 기다리며..................
  어쩌면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사진을 찍었다...........
엄마의 품에서, 내 품에서 활짝 웃어주는 아이의 모습에 목이 매어 왔다.  이겨낼 수 있을거라는 말만 계속 되뇌이며, 처형이 준비해온 장난감을 마지막으로 병동 앞 자동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이별 아닌 이별을 해야만 했다........
  생이별이라 표현해야 할까?  그러한 슬픔 속에서 나흘이 지나갔다.............

 

2003년 5월 4일(일)
  눈물 속에 하루를 보내고 아침에 눈을 떴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고 아침에 병원으로 갔다.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하는 걱정이 먼저 떠올랐다.......
  옷을 갈아입고, 캡과 마스크를 쓰고 병동으로 들어섰다.  어제의 모습 그대로 앉아서 날 반겨 주는 녀석의 모습이 참 이뻤다.......  현이를 포함해 8명이 병실에 있었다.  모두가 같은 병명으로 고생하고 있는 녀석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남아 있지 않은 아이들........  얼마가 지나고 나면 현이도 저렇게 변해 가겠지라고 생각하니 한숨과 눈물이...............
   항암제를 처음 맞았다.  검정 봉지에 싸여진 자그마한 링거병의 항암제가 두시간이 지나지 않아 현이의 몸 속으로 들어 갔다.  이제 시작된 거라 생각하니..........   24시간에 걸쳐 투여되는 항암제가 다른 수액과 함께 걸렸지만, 현인 아직까지 컨디션이 괜찮은지 웃어 주며 놀았다...........  멸균식이라는 점심식사가 들어왔다. 밥과 미역국, 그리고 여타 반찬을 큰 술로 세 술 정도 잘 먹고 나서 애엄마와 교대를 하고 안산 집엘 다녀 왔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현이와 준이 옷을 정리해서 가져오고, 내 옷가지와 물품들을 챙기며 이 집도 조만간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쉬움이 크지만, 그래도 현이를 생각하면 아쉬울 것도 없지..............
  저녁에 다시 병동에 들어가 현이를 보고, 애엄마와 현이를 남겨 두고 돌아왔다........
아쉬움과 슬픔이 언제면 사라질까 하는 생각과 함께 닷새가 지나갔다...........

 

2003년 5월 5일(월)
  어린이 날이다......... 어린이 날........
  주인공인 현이와 준이에겐 정말 미안했다.  한 녀석은 아직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면서 어른들도 견디기 어려워하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고, 다른 한 녀석은 엄마를 빼앗기고 어린이 날을 보내야만 하다니..............  미안하다 얘들아.......... 언젠가는 어린이 날 다운 날이 오겠지.  그 때까지만 아빠, 엄마를 조금만이라도 이해해 주렴.............
  어린이 날의 개념을 아직 모르는 현이는 어제와 같은 모습이다.  아직 항암제의 후유증은 나타나지 않아 먹는 것과 노는 것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이 모습이 곧 다른 모습으로 바뀔 거라 생각하니..........
  준이는 큰 아빠가 사준 큐빅스가 그리도 좋은지 모든 걸 잊고, 잘 지낸 것 같다..........  다행히도..............
  다시는 이런 어린이 날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가장 즐겁고, 가장 축하 받아야할 주인공을 병상에 남겨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엿새가 지나갔다....

 

2003년 5월 6일(화)
  출근길에 병원에 들렸다. 애는 물론 애엄마도 보질 못했지만, 들리지 않고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간단한 찬거리를 병동 앞 사물함에 넣어 놓고, 전화로만 잠깐 얘기하고 말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매일 매일..............
  회사에 가서도 쉽게 맘 정리가 되질 않았지만, 오랜만에 사무실에 하루 종일 있었던 것 같다.  이제 회사 사람들 일부가 알게 되어 몇몇과 통화하다보면 먼저 머뭇거리며 말을 잊지를 못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또 다른 심려를 끼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여럿의 기도라도 빌려 보고 싶은 맘 간절하다.
  퇴근을 이제 조금 일찍하게 된다.  7시 30분에서 8시 사이던 퇴근 시간을 6시 30분에서 7시 사이로 정했다.  어차피 오래 있다 하더라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건 마찬가지고 현이도 그렇지만 준이도 걱정이 되기에............
  퇴근하며 병원에 들러 애엄마만 잠깐 보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준이를 샤워시키고 일찌감치 준이와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처음 진단서를 끊었다. 
  최종진단명 : 급성 골수성 백혈병(C920)
  관해 유도 항암 치료 후, 관해가 되면 골수 이식 예정입니다.
문자로 현이의 상태를 확인하기는 처음이었다.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현이를 위해 기도하는 준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며 일주일이 지나갔다..............

 

2003년 5월 7일(수)
  아침에 병원을 들러 간단한 아침 반찬을 함에 넣어두고 전화를 이를 알리는데, 불과 5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전화로 밖에는 만날 수 없다니...............
  두루터를 들러 일을 보고 본사 창구에서 보험금 접수를 했다.  돈에 대한 욕심도 없어진 지금 그 돈이 없더라도 현이가 건강해질 수 있다면................   보험금 청구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완쾌가 된 후 받던 입원 급여금과는 달리 이제 청구의 시작이라 생각하니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이발사를 불러 머리를 밀었다고 했다.  어차피 항암제 후유증으로 빠질 머리라 밀어 버렸다고 했다.  예쁘게 깍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밀어버리다니......  여러 가지가 참 현이에게 미안하게만 느껴진다.  머리가 없어도 참 이쁜 녀석이지만................
  퇴근해 집에 갔더니 키즈랜드에서 준이가 카네이션을 만들어왔다며 가슴에 달라고 한다.  내 것과 애 엄마 것을 만들어 왔는데............  현이가 만든 카네이션도 달 수 있겠지.......

 

2003년 5월 8일(목)
  어버이 날이자 석가탄신일이어서 쉬는 날이다.  그 날들의 의미를 되살리기에는 아직 내 마음에 여유가 없다.
  아침을 먹고 병원으로 갔다.  항암제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수치는 계속 떨어지고, 그 수치의 하락에 따라 현이의 컨디션도 많이 좋질 않아 보였다.  힘들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힘들어하는 녀석의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집에 다녀온 애엄마와는 얘기할 시간조차 가지질 못하고..........  생활하는게 점점 익숙해져야 하겠지만, 더 낯설어져만 간다.
  MRI를 찍는단다.  현이의 눈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약간 돌출되어 있는데 그 돌출 정도가 좌우가 틀려서 이상 여부를 알아봐야 한단다.  별일 없기만을 바랄 뿐.........

 

2003년 5월 9일(금)
  MRI를 찍기 위해 수면제를 먹였다는데.........  작년 서울대에 입원했을 때에도 수면제 때문에 고생을 했던터라 애엄마가 많이 걱정했는데 이번에도 똑 같은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계속 약을 먹였지만 힘들어하기만 하고 잠은 자질 않고.........
  퇴근해서 부랴부랴 병원으로 가서 옷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준이를 달래 놓고 병원으로 가서 애엄마와 교대를 했다.  수면제 때문에 고생하는 녀석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제는 병색이 완연한 녀석의 모습과 약에 취해 눈조차 힘겹게 뜨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녀석의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데..........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열흘이 지나갔다.........

 

2003년 5월 10일(토)
  아침을 먹고 준이를 8층에 맡겨 놓고 병원으로 갔다.  MRI를 찍기 위해 마지막으로 놓은 수면 주사가 약효를 발휘했는지 잠에 빠진 녀석과 열흘만에 병동을 빠져 나와 1층 MRI촬영실에 들어갔다. 촬영하는 동안 다행히 잠에서 깨어 나지 않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찍고 나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에서 깨어 안고 왔다. 

 

이 이후에는 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게을러 그럴 수도 있지만,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 일기를 중단했습니다.

일기를 쓰다 보니 그 날 그 날이 더 힘들어 지더군요......

그냥 이제 이 자리에 그 날 그 날의 斷想을 정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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