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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울 형님

동서 |2003.09.22 21:54
조회 13,216 |추천 0

울 형님은 외국인이다.

필리핀에서 시집을 왔다. 난 학교 다닐 때 부터 영어를 너무 싫어해서 외국인이라면 기피하곤 했었다.

근데 내가 결혼할 사람의 형수는 필리핀여자라고 했다. 그것도 결혼식몇일전에 알게 되었다.

별로 시댁엔 관심도 없었지만 내겐 바로 윗사람이 외국인이라 많이 당황했었다.

요즘 tv에서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외국인 노동자니 어떠니 해서 옛날과 틀리게 좋은쪽으로 인식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몇몇이겠지만,,,

나도 한가족이 된 마당에 별 반응없이 형님형님 하면서 깍듯이 형님 대우를 해주었다.

 

울 시댁은 농사를 지으며 산다.

그렇다고 생계가 어려운것은 아니다. 논도 밭도 많다. 먹고 사는데는 아무이상없이 산다.내 생각이지만

울 시엄니(나이 많은 그냥 평범하고 너무나 약하고 정도 많고 눈물 많고,그러나 누구에게 시키는 법이 없는 )모든 굿은일 혼자 다 한다.

울 아주버니. 어려서 부터 배를 타서 동생많은 장남이라 배운것 없어 장가 못가고 40이 다 되어 결혼을 했다. 필리핀 울 형님과

난 도시서 형님네는 시골서 그렇게 그렇게 사는가 싶었다.

참고로 울 신랑밑으로 아직 결혼안한 시동생이 3명이 더 있다. 다들 도시서 돈 번다

 

내용이 너무 길어졌다.

여태것 난 울 형님을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외국사람이 울 나라에 시집온 사람보면 한번더 좋게 보게 되었다.

그러나

아니다.

울 형님 그러니깐 시집와서 몇달되지 않아서  학원에 영어를 가르친다며 일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너무나도 단순한 울 아주버니와 울 시엄니 형님 뜻에 따라 분가를 시켜주었다.

울 아주버니 배타고 고기잡으러 갔다가 이틀 사흘에 들어오는 일을 한다.

분가한 울 형님네는 그렇게 사는줄 알았는데 매달 마다 생활비며 모든 잡다한 돈을 울 시엄니가 다 되어주었다고 한다.

모두들 두사람이 번돈은 알뜰이 모으고 아직 울 나라 를 잘 몰라서리 그렇다고 시시꼴꼴한 것도 눈감아 주었다.

일년 이년 해가 가도 울 형님 자기가 번돈은 어디가고 없는지 남편인 울 아주버니도 모르게 시댁에 의지하며 살았다.그돈에 절반은 우리집에서 보내는 울 시엄니 용돈도 포함되었다.

필리핀으로 전화를 하면 엄청나게 드는 전화비도 울 시엄니가 그러니하고 다 냈다.

대체 울 시엄니 왜 그랬을까?

그냥 관섭하고 말한다는 자체가 시어머니 노릇하다는 소리 듣기싫어서 그랬다고는 한다.

그러다가 학원 일도 없게 되고 하니깐 공장에 취직을 했다.

외국사람이라 울나라 사람하고는 받는돈이 많이 차이가 났다.

 

작년 쯤이다

마중간 울 아주버니 울 형님 오토바이 태우고 집으로 오다가 사고 가 났다.

대형 사고였는지 아직까지 일을 못한다

집에 노는 동안  울 형님 한번도 울 아주버니 병원에 데려 간적 없다.

아픈사람 병간호보다도 식사한번 제대로 챙겨준적 없다.

아침 밥먹고 일한다고 나가서는 저녁 늦게 들어온다.

글고 밀린 집안일은 울 아주버니가 다 했다고 들었다.

미련한 울 아주버니 자기가 그렇게 아프면서도 여태것 그렇게 살았다

 

결혼한지 오년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 애기가 없다.

첨엔 힘든갑다 생각들 했지만 울 형님 일부러 안가진것 같다. 내생각

매달 마다 은행가서 필리핀으로 돈을 보낸다.

그래 그기 사는식구들 걱정에 그럴수도 있다고 하지만 여기 달랑 두식구 생활하는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그냥 먹을것 없으면 시댁와서 가져가고 자기 신랑 아프면 시엄니 보고 약 사돌라 하고,

 

그러다가 울 시엄니 필리핀 간다고 난리여서 혹시나 안올까봐 없는돈 빌려 비행기표 사서 보내주었다.

돈이 많이 든다고해서 혼자 갔다.

결혼하고 일년도 채 못되어서 두 부부 필리핀 갔다왔다.

없는돈 다 털어서 전자제품이란 다 사서 바리바리 갖다주고 왔단다.

울 형님 필리핀 친정 간 20일 동안 울 시엄니 다리한번 못펴고 주무셨다.

혹시나 맘이 변해서 안올까봐

그러나 왔다.

 

6개월전 시댁에 갔더니 무척이나 심심해 했다.

울 형님 시댁일은 전혀 안한다.

밥해먹고 청소하는것 외엔 농사짓는것 울 시엄니 혼자 다 한다. 아직 아주버니는 몸이 안좋아 힘든일은 못하니깐.

난 아직 몇년이 다 되어도 울 형님 하고 긴 얘기 한번 나눠본적 없다.

명절이라 많은 식구 모이면 밥먹고 치우고 나면 과일깍아 먹고 도란도란 야그라도 하는데 울 형님 혼자서 방에 들어가 잠만 잔다.

내가 방에 따라들어가 말이 라도 붙이면 간단한 몇마디 던지고 싫어한다.

그렇다고 울 형님 한국말 못하는게 아니다. 이제는 울 나라사람 보다 더 잘한다.

첨엔 달라붙던 나도 성격이 그런갑다 하고 했는데

 

일을 냈다

5월 초 울 형님 교회간다고 집나가서리 연락이 끊겼다.

교회가서 놀다가 배가 없어서 집에 못온다고 했다.아니 일반적으로 한국여자 아니 주부이면 아침에 나가 놀더라도 저녁이면 들어와야 되지 않는가?

여튼 배편이 없어 못와서 친구집에서 자고 온다고 전화하고서는 끝이었다.

울 시엄니 동네 방네 울 형님 찾는다고 울며 다니고 .......

그러다 한달뒤 울 형님 모 공장에 취직해서 돈벌고 있다고 했다.

아니 이럴수도 있나.

내 생각엔 정말 이해가 안간다.

살림을 사는것도 아니고 돈 필요하면 시엄니 그냥주고, 아무리 돈이 필요하고, 벌어야 되지만

자기하고 같이 있다가 사고나서 아픈 남편 뒷전이고 집나가서 돈번다니. 그렇다고 여태 번돈 십원도 없고....

추석날까지 모두들 기다렸다.

힘들게 울 시엄니하고 나하고 음식하면서 대문만 봐라보았다.

혹시나 명절이니깐 오겠지.

역시나 명정이니깐 왔다.

오긴

추석날 저녁이 다 되어 나타난 울 형님 예전에 울 형님이 아니었다.

새까맣던 머리는 노랗게 염색하고 화장끼없던 얼굴엔 뽀얗게 분칠하고,더 놀란것은 손발톱까정 손질해서 나타났다.

이런.......씨

열받았다.

너무나도

열받았다.

나도 나오라던 미대 출신에 친정 빵빵하고 가질것 다 가졌다.

그래도 울 신랑 만나 꿈 다 버리고 애 낳고 살림하면서 없는 시댁 비위 맞추며 스킨하나 없이 산다.

그게 당연하다하고 살았다.

근데 힘들게 음식하고 냄새 풍기던 내게 울 형님의 등장은 나를 열받게 만들었다.

여태껏 형님으로 생각한 자체까지 짜증나게 했다.

오자마자 아무도 식사한사람 없는데 몇달 만에 온 주제에 밥퍼서 혼자 꾸역꾸역 먹는 모습이라니...

다들 황당했지만 아무도 말이 없었다.

다들 속으로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만서리

먹은밥 설겆이도 안하고 그냥 방에 가서 코 골며 잔 울 형님.씨...............

무슨말이라도 할라치면 좋은날 조금 미루자던 식구들 다음날 울 형님이란 사람 혼자 일찍 일어나 밥퍼묵고, 씻고, 인사하고 다시 일한다고 갔다.

다들 뭐했냐고,

붙잡고 가지말라 했고,

다른사람들 너무 황당해 그자리에서 말도 행동도 없었다.

그게 끝이다

 

 

지금 울 아주버니 너무 아파서 여태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못받아서 가지 못했던 병원을 울 시엄니 빚내서입원중이다.

울 시엄니 나이도 많고 차 멀미 엉청 하신다. 그래도 자기 자식 못난 죄다 생각하고 병간호 다 한시고 있다. 요번 태풍 피해로 집수리니 농사일이니 병간호니 혼자서는 너무 힘들다.

울 애기 짐 아파서 내려가지 못한다.

울 신랑 오늘 시댁갔다.

울 시엄니 너무 불쌍해서리......

 

 

난외국사람인 울 형님 다시는 안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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