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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홍일식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

중앙일보 |2014.12.24 00:14
조회 13 |추천 0
홍일식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은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젊은 세대에게 역사의식을 잘 가르치면 대한민국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세계 중심부의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문화사대계』를 완간해 달라.”

 시인 조지훈(1920~68) 선생이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을 지내다 타계할 무렵 연구소의 총간사였던 홍일식(78)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에게 남긴 유언이다. 홍 이사장은 당시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그의 가슴에 ‘민족’이란 두 글자가 평생의 화두로 자리 잡게 된 계기였다. 『한국문화사대계』는 2권까지 나온 상태였고, 이후 출간 작업을 홍 이사장이 도맡아 전 6권을 1972년에 완간했다.

 『한국문화사대계』는 순수 학술 도서로는 드물게 그 후 100만 질이 판매됐다. 학문적 축적이 많지 않던 시절의 획기적인 사업이었고, 훗날 일본 도쿄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한 저널에서 이것을 광복 후 한국학 연구의 3대 업적 중 하나로 꼽았다.

 2015년 한국 나이로 팔순을 맞는 홍 이사장이 최근 또 한 권의 민족을 생각하는 책을 펴냈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동서문화사)이다. 민족과 국가를 이야기하면 마치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졌다는 듯한 반응이 돌아오는 요즘의 세태를 그는 안타까운 눈으로 응시한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 얘기만은 꼭 전해주고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썼다고 한다. 초점은 ‘역사의식’에 맞춰 있다. 조선 말기-일제 강점기-광복과 분단-대한민국 건국을 아우르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그만의 경험적 시각으로 다시 전해주려고 한다.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그는 다른 한편으로 대학 시절 2년여에 걸쳐 직접 사사한 육당 최남선에 대한 기억도 털어놨다.

 19일 오후 서울 성북동의 한국인문사회연구원에서 그를 만났다. 홍 이사장은 “나는 농경 사회에서 태어나 IT 첨단기술 사회까지 살아온 세대다. 우리 민족이 한계상황에 닥치면 언제나 놀라운 순발력으로 난국을 타개해 나가는 것을 내 눈으로 봤다”며 “‘통일조국 건설’이라는 목표가 있는 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펴낸 계기는 무엇인가.

 “오늘날 70대 이상 세대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나라 없는 설움과 천대에다 모진 가난 속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광복의 환희도 잠시였고 6·25 전란의 참화와 굶주림, 게다가 집집마다 거의 안 겪은 사람이 없을 만큼 육친의 이산과 생주검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 비운의 세대가 오늘날 세계가 놀라는 현대 국가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정말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무엇이 기적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밝혀 알려주고 싶었다.”

 - 책 속에서 우리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를 요청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나라 중에서, 더구나 남북 분단과 전란의 악조건 속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차례로 이루어냈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우뚝 섰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 민족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가 절묘하게 역할 분담을 잘해냈기 때문이다.”

 -‘역할 분담’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국권을 상실하자 역할을 분담해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갔다. 중국과 미주로 망명해 무력 항쟁을 벌이고 외교적 독립운동을 택한 강경투쟁 노선과, 국내에서 갖은 수모를 참아가며 민족의 역량을 키워 미래를 준비한 온건준비 노선이 그것이다. 전 민족의 차원에서 보면 밖에서는 광복을 위한 투쟁, 안에서 자기 역량을 키우는 노력이 병행되었다는 뜻이다. 이 두 역량이 광복 후에 합쳐져 오늘날 전대미문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우리처럼 역할 분담을 못하고 식민지 해방투쟁에만 전념한 다른 제3세계 100여 개 나라들이 국권 회복은 했지만 아직도 민주화·산업화를 이루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

 -기존의 친일 개념에 어떤 문제가 있나.

 “예를 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홍사익 장군이란 사람을 보자. 일제시대 일본군 육군 중장이었다. 그래서 쉽게 친일파라고 매도한다. 얼마나 친일을 했으면 육군 중장까지 올라갔겠느냐는 거다. 하지만 그가 ‘명색이 최고위직에 있는 내가 일본군을 떠나 독립군에 가담한다면 나는 영광이 되겠지만 지금 강제로 동원된 병사들은 물론 징용된 수십만의 동포들이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한 당시의 기록이 있다. 그가 일본 육사에 간 것도 대한제국에서 유학생으로 선발돼서다. 친일 얘기만 나오면 흥분부터 할 일이 아니다. 이제 차분히 옥석을 가려 역사적 인물의 공과 과를 따져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 친일파를 변호하는 소리로 들린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가 쫓겨가면서 했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반드시 다시 온다. 100년, 200년이 가도 벗어날 수 없는 식민사관을 조선에 심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조선을 지배할 수 있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이 말에서 식민사관이란 말을 놓치면 안 된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보고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 요즘 세대에게 70대 이상의 아픔과 영광의 경험이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천형(天刑)과도 같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해오는 동안 더 귀중한 것을 잃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먹을거리를 생산해낼까만을 생각했지, 어떻게 해야 싸우지 않고 이것을 잘 나누어 먹을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식들에게도 어떻게든 1등만 하라고 다그쳤지 어떻게 하는 것이 남을 도우며 함께 잘 살아가는 길인가를 가르치지 않았다.”

 - 요즘 젊은이들을 ‘삼포 세대’라고 한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안타깝다.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이런 일화를 말해주고 싶다. 내가 15세 때 1·4 후퇴가 있었다. 그 전해 1950년 12월 28일이니까 이맘때쯤 피란 짐을 짊어지고 여덟 식구가 한강 얼음 위를 걸어서 건너갔다. 일주일 만에 겨우 선대의 산소가 있는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갔다. 무릎까지 눈이 찼고 기진맥진했다. 그런데 도착해서 아버지의 첫 마디가 ‘잘됐다’였다. 몇 끼를 굶고 뒤에서는 중공군이 따라왔는데 말이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내가 평소에 너에게 한문을 좀 가르치고 싶었는데 그동안 나는 사회생활, 너는 학교에 다니느라 바빴지 않니. 이제 너도 나도 내일부터 할 일이 없으니 한문 공부나 하자. 얼마나 잘됐나’고 하셨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이런 어려운 난국을 만났을 때 세상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럴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서 해야 뒷날 후회를 안 한다’였다. 나는 그때부터 한문을 읽었다. 맹자·논어·통감을 차례로 읽었다. 한문의 눈을 그때 떴다.”

 - 내년이 광복 70주년이다. 젊은 세대가 식민사관, 패배주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

 “희망이 있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얘기다.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목표가 있다. 중국은 소수민족 다루기, 미국 눈치 보기 등으로 정신이 없다. 일본도 이미 목표를 상실했다. 허공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통일조국 건설’이라는 목표가 있다. 이게 있는 한 사양길에 들어설 수가 없다. 우리만이 뚜렷한 공동체의 목표가 있고 희망이 있다. 목표와 희망이 있는 한 민족은 절대 사그라질 수 없다.”

 -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21세기는 ‘문화주권’ 시대가 아닌가? 문화대국으로 가야 한다. 국민의 도덕성을 함양해야 한다. 마오쩌둥(毛澤東)과 장제스(蔣介石)를 비교해보자. 1945년 당시 재력·병력·화력, 또 국제적 위상으로 보면 장제스와 마오쩌둥은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장제스가 우세했다. 그런데 불과 4년도 안 돼서 중국 대륙은 마오쩌둥 천하가 됐다. 그 결정적 요인이 도덕성이다. 독일 통일과 베트남은 어떤가. 서독의 경우 월등한 경제력이 흡수 통일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독일에 가보니까 그게 아니다. 동독에도 군인·정보원·경찰 다 있었다. 그런데 통일 과정에서 총소리 한 방 안 났다. 흡수되더라도 마구 죽이진 않을 거란 서독의 도덕성을 동독 사람들이 믿었던 것이다. 우리도 이걸 참고해야 한다.”

 - 책에서는 문명적 위기의 대안으로 우리의 전통 효(孝) 사상과 인본주의를 제시했는데.

 “현대인은 고독의 늪에 빠졌다. 농경 사회는 배고파서 못살겠다고 하던 시대였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으로 굶주림은 면했지만 노동시간 단축, 근로조건 개선을 내세우며 아우성쳤다. 그 다음에 기술주권 시대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살겠다고 한다. 또 지금 고도의 전문지식 정보화 시대는 외로워서 못살겠다는 때다.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고독의 늪에서 어떻게 해방·탈출할 것인가. 그 사상을 창조해내는 국가가 세계의 리더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좌우에 놓고 가운데에 동양의 인본주의를 놔야 한다. 여기에 인본주의의 기본인 우리의 효 사상을 접목시키면 고독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이 나온다. 이게 우리 사상의 발전적인 실체다. 앞으로 효 사상, 효 문화가 인류 구원의 메시아가 된다. 따라서 21세기 중반 이후 문화주권 시대에는 우리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리더가 될 것으로 믿는다.”

진행=배영대 문화부장
정리=김호정 기자

육당 최남선, 친일논란 규명 묻자 “시간 지나면 밝혀질 텐데 … ”

홍 이사장은 육당 최남선(1890~1957) 생전에 2년 반을 직접 배운 시절을 잊지 못한다. 고려대 국문학과 신입생이던 1955년 육당을 처음 만났다. “중풍으로 거동을 못하던 육당을 찾아가 무엇이든 배우려 했다”며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여 역사·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듣고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육당의 친일 논란에 대해 제자의 입장에서 반박했다. 일제시대 학병 권유를 한 예로 들었다. “육당은 일본 경찰·관리들이 쫙 앉아 있는 자리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온 세계 청년이 모두 전선으로 나가는데 조선 청년만 등 따시게 두겠느냐. 일본을 위해 싸우라는 게 아니다. 어쨌거나 총 쏘는 법을 배워두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친일로만 해석되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홍 이사장은 “육당 생전에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내서 친일 문제를 해명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텐데 뭘’ 하시며 그냥 두더라”고 기억했다.

 그는 2009년 나온 『친일인명사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전에 나온 4300명 외에도 더 많은 사람을 조사대상으로 삼겠다는 계획은 큰일 날 소리다. 일본의 논리가 뭐냐, 조선 지식인들이 일본과의 합병을 원했다는 것 아닌가. 『친일인명사전』은 이런 일본의 논리를 입증하고 정당화시키지 않겠는가? 또 김일성만이 민족해방 영웅이고 나머지는 모두 친일파라는 결론으로 귀납되지 않겠는가? 아주 무서운 논리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홍일식은 …

1936년 서울 출생. 양정고 졸업. 고려대 문학박사, 연세대 명예 철학박사, 고려대 13대 총장과 한국외국어대 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고려대 교수 시절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한국문화사대계』와 『중한(中韓)대사전』을 편찬했다. 현재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공동의장,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세계효문화본부 총재 등을 맡고 있다.

배영대.김호정.권혁재 기자 wisehj@joongang.co.kr
▶김호정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hjk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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