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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있는 천주교 00 교구장 故J 주교님 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그가 평소 골방에서 기도할대 묵상하던 하얀 석고상 십자가에 강한 빛과 성령의 감동을 받고 사진을 직어 현상한 결과 2000여년 전에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이 찍혔다. 입가의 하얀 쉐키나 (하나님의 영광)은 가시관의 고통소리로 믿에서 바라보시는 어머니(마리아)에게 들리지 않도록 참고 견디는 침묵선임(93년 5월)
†주님은 이 사진을 보는자마다 영육간에 치유함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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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헝가리 황제의 딸(엘리자베스) 공주의 궁중생활 기록문서중 개인 소장품 중에서 후대 사람에게 남기는 글이 발견된 기록이다. (1207~1231년)
그는 어느날 아지막 지병으로 임종을 앞두고 주님의 고난 당하신 십자가 앞에 마지막 힘을 다하여 묵상을 하다가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자기자신을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을 만나 뵙기를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데...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가야바 대제사장의 뒤뜰에서 골고다 언덕까지를 환상으로 보여 주셨다.
그때 나를 둘러선 빌라도의 군병은 150명이었고 그 중에서 나를 십자가에 매달릴 때 까지 끌고간 군병은 23명 이었다. 나를 사형집행 할 때 혹 민중들이나 제자들에 의해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대비하여 무장군병83명을 추가 주위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내머리는 150번이나 주먹으로 크게 맞았고 180번이나 발길질 당했으며 양쪽어깨에는 채찍으로 80번이나 맞았으며 내 머리칼은 끈처럼 꼬인채로 개처럼 질질 끌려 다녔으며 나는 24번이나 심문을 당하느라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수 많은 사람들로 부터 침세례를 받았고 110번이나 채찍으로 머리를 맞았다.
나는 낮 12시에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머리가 찢어진채 십자가에 달렸다. 특수 채찍으로 뼈가 부서질듯이 100번을 맞았으며 머리에 씌어진 강철같은 가시관은 7~8cm나 되었으며 그 가시관은 너무나 아파서 신포도주를 먹음치 못하고 3시에 운명하였다.
가시관의 가시숫자는 72개였는데 머리에 박힌 상처는 110개인 이유를 물으니 이 가시관을 한번 벗겼다가 다시 씌웠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박은 못은 20cm로 그중 하나가 산타클로치인 예루살렘 대 성당에 보간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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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발또르다 ( Maria Valtorta) 1897년 이태리 가제르카에서 출생. 37세부터 죽기까지 27년간 침대에서 생활했다. 예수께서 나타나 영화처럼 보여주신 환상을 4년동안 기록한것이 15000page를 넘는다고 한다.
그가 묵상중에 받은 고난에 대한 환상중 일부를 소개한다. 네번째 집행인은 머리가 둥글고 팽팽한 10원짜리 동전크기만한 길다란 못을 들고 기다리고 있으며 나무에 뚫어 놓은 구멍이 손목관절과 꼭 맞는지를 확인한다. 사나이는 쇠망치를 들어 올려 손목끝에 세워놓은 못을 향해 일격을 가한다. 문을 감고 있는 예수는 극심한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며 손바닥을 감아쥐고 눈물이 흥건한 눈을 뜬다. 이 아픔은 상상을 초월한다. 못은 근육과 맥과 신경을 찢고 뼈를 부수고 관통한다. 이모습을 보고 옆에 서있던 어머니 마리아는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웅크린다. 예수님은 너무 아파 신음하다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기위해 그아픔을 입으로 삼키며 다시는 비명을 지르시지 않는다
당시의 태형은 십자가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미리 때리는 방편으로 로마군병이 때릴때도 있지만 이집트의 가장 포악한 노예 6명을 선출하여 그들의 울분을 마음껏 채찍으로 풀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채찍에 맞아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죽는것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들 6명이 교대로 술을 마시며 지칠때 까지 때렸다.
- 두명이 탄력있고 흰가죽 채찍으로 피범벅이 될때까지 때리다 지치면
- 다른 두명이 딱딱한 파칠리우스 채찍으로 끝에 뼈가 달려 있는데 때릴때 살점이 튀고 피가 튀었다. 그들도 지치면
-마지막 두 명이 끝에 갈고리처럼 동물의 뼈같은 날카로운것이 달려있는 채찍으로 때릴때 옆구리, 등어리, 이마들에 갚숙이 패여, 피범벅이 되고 녹초가 되는데 이때 죽는사람도 부지기수지만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맞는 감각이 없을때 까지 때려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