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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으로

푸른바다 |2003.10.04 12:11
조회 378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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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으로


들녘의 벼들도 누렇게 잘 익었다.

고추잠자리 곱게도 하늘 나는 황금들판

눈감고 있어도 구수한 나락 냄새 코끝에 묻어온다.

산자락 붉나무는 무지개로구나 가을 먹은 과꽃이 갑사댕기처럼 빛 곱다.

가을은 익어가지만 채울 것 없는 내 마음은 허전히도 설익었구나.

그래 바로 그 허전함이란 지향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내 마음 때문이었구나.

오리무중 보이지 않는 길로 가는 마음, 그래서 허전하였구나.


가을이 어디쯤 왔을까

오고 있는 길목에 그리운 님 반기듯 마중을 가야지

숨 가빠 달리지 못하는 느릿한 기차를 타자

손만 들면 세워주는 시골버스를 타고 가자 밝은 가을이 오는 곳으로

가을 가기 전에 영혼 해맑게 익혀오자.

허전한 마음 가을 가득 담고 절망과 잡념, 증오와 애증의 씁쓸한 시간들

좁은 속과 시기로 얼룩지고 경거와 망동으로 가득 찬 마음을 잘 익은 가을바람에 날려 보내자.


하루쯤 이불 깨끗한 민박집에서 하얀 백지위에 긴 사연 가득한 편지를 쓰자.

비록 보낼 곳 없다 하드라도......

욕심으로 채워진 마음보를 뚝 떼어 이끼 낀 천년 바위 아래 묻어버리자.

녹녹치 않았던 삶의 고단한 짐도 가을 청아한 햇살 속에 훌쩍 벗어 버리자.


조용한 산사가 마음을 버리기에는 좋겠지

비운 마음 가을향기로 가득 담기도 산사가 좋으리라.

그래, 부석사로 가자.

부석사 잘생긴 안양루에 올라 다리쉼을 하며 지나간 봄과 여름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

잘 생긴 배흘림기둥에 세월의 사연 저며 새겨 두리라.

발아래 펼쳐진 첩첩 소백산줄기 인연의 끈으로 달리고

수줍은 산노을에 인간사 시린 마음 붉게 물들이며

가을 떠나기 전에 허전한 가슴 단풍으로 가득 채우자.


청청한 솔향기 서러운 산노을 고운 속 살 박혀 사과 잘 익은 부석사의 가을....

이 가을 가기 전에 만나고 싶다.

산사의 품 넓은 마당에서 번뇌를 벗어난 마음을 찾아오자.

그리고 함박꽃처럼 함박웃음으로 살아가야지

모든 어두운 시간들 훌쩍 털어내고 부딪쳐오는 세상을 눈부시게 맞아보기로 한다면

잘 익은 가을의 마음을 알만도 하리라.

먹는 것만 양식이 아니다.

보는 것도 양식이 아닌가.

잘 익은 가을 마음껏 보고 오자.

그리고 지평선 아스라한 김제 만경 외배미들처럼 가슴 광활하고 넓게 열어 세상을 사랑으로 받아 드리리라.


2003,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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