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다.
행복하지 못한 가정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것처럼."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영국에 이같이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하지 않아' 깨어지고 으스러져 가는 가정이 늘고 있다.
예의와 격식을 중시하는 이곳의 전통도 알고보면 앵글로 색슨 특유의 난폭한 성격을 다스리기 위한 장치였
다는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에 무게를 둔다면 그러한 종족의 후예들이 한 지붕 아래 오순도순 살기란 애초부
터 힘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하는 너그러운 상상을 보태게 된다.
영국 역사에 길이 빛나는 수많은 군주 가운데 헨리 8세는 그 누구보다 다양한 얘깃거리를
후세에 남긴 왕으로 전해진다.
그가 쟁쟁한 왕들을 물리치고 영국이 자랑하는 역사 다큐 프로그램의 단골 스타가 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사실 생전의 그가 휘둘렀다는 무소불위의 강력한 왕권이나 국교를 하루아침에 바꿔버린 종교적 의미에 대해
모두가 알고 싶어 하지는 않으리란 짐작이다.
그러나 왕이라는 지위보다 더 유별나고 파란만장했던 그의 여섯 번의 결혼과 여섯아내는 후대 사람들의 인
간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인 듯하다.
영국의 종교 역사를 고쳐 쓰게 만들었던 그의 첫 이혼은 끝내 그를 종교 탄압의 선봉에 선 무자비한
전제군주의 길로 안내했다.
후사(後嗣)가 절실했을 따름인 그에게 여섯 명의 아내는 고작 세 명의 후손만을 남긴 채 이혼당하거나
처형됐고 또 죽어갔다.
결국 사람들은 아내를 맘대로 갈아 치울 수 있었던 그 대단한 권력보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평탄치 못한 결
혼 생활로 이끌었나를 더 궁금해 하는 듯 하다.
다분히 동양적 발상으로 "당신은 결국 지지리도 처복이 없는 사내였다."고 말한다면
그 자신은 무어라 답할까.
이러한 헨리 8세가 오늘을 살고 있었더라면 그 역시 학교로부터 '무책임하게 이혼한 부모'라는 비난을
면키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주 중등학교교장단 협의회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제아무리 투철한 사명감에 불타는 학교일지라도 이대로 가다가는 조만간 학생 지도를
감당해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혼한 가정, 흔들리는 가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제대로 지도하기에 학교는 역부족이라는
고해성사 같은 얘기였다.
교육의 중심은 엄연히 가정이어야 하건만, 그 가정에는 이혼을 밥 먹듯하는 이기적인 부모들로 넘쳐난다면
모름지기 부모된 자로서의 기본을 제대로 해달라고 교육계는 간곡히 요청했다.
상처받은 아이들과 학교,그리고 사회가 이혼이라는 물귀신에 발목 잡힌 채 조용히 신음하고 있다.
이혼율과 편부모 가정 비율, 그리고 십대 임신율에 있어 영국은 현재 유럽의 선두주자다.
2002년 현재 1000명당 2.7명 이혼이라는 통계는 유럽 연합 평균 1.7명을 가볍게 누르고 거기에 더 보태어
현재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얼마나 갈지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나라로
영국을 꼽게 만들었다.
재혼 가정의 아이들은 접어두고라도 영국의 어린이 네명 중 한 명은 아빠 없이 혹은 엄마 없이 살아간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이곳의 감리교회에서는 지난해 수정 증보판 기도문 책자를 내놓았다.
여기에는 '결혼이 이혼으로 끝났을 때' 그리고 '누군가가 떠나갔을 때'라는 기도 제목이 추가되었다.
대체 무엇이, 누가 영국의 가정을 이렇게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모습의 닮은꼴로 만들어 가고 있을까?,,,,
언제나 자신의 안녕과 만족이 우선인 초지일관의 부모들에게 과연 교장 선생님들의
이 같은 충정어린 질책이 접수될 겨를이나 있었을지 의문이다,,,
** 안타까운 마음으로 옮깁니다,,패랭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