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스타 탄생했다며 난리고 전 너무 좋아서 심장이 고장난 것 같아요”
꿈을 이룬다는 것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일 게다. 특히나 장애인이 영화배우의 꿈을 이룬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스물네 살의 강민휘는 국내 최초의 정신지체 장애인 영화배우가 됐다. 평소 연예인이 꿈이었다는 그는 요즘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신이 났다.
한 번 간 길은 절대 잊지 않는 노련한 눈썰미
현재 나사렛 대학교 인간재활학과 졸업반
그와의 첫 만남.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그가 웃는다. 두 눈은 ‘꾹’ 소리가 묻어날 만큼 힘을 줘 감아내리고 입가에는 보조개가 깊게 파인다. 어금니가 보일 만큼 활짝 웃는 이 남자… 첫인상이 착하고 순해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웃음을 짓는 이 남자는 올해 스물네 살의 강민휘다. 그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강민휘는 현재 영화 촬영 중이다.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등의 명작을 연출한 박흥식 감독의 새 작품 ‘엄마 얼굴 예쁘네요’에 조연급으로 캐스팅된 명실상부한 국내 최초의 장애인 영화배우인 것이다. 정상인에 비해 지능지수, 언어 표현 능력, 암기력 등 모든 것이 뒤떨어지는 그가 영화배우가 됐다는 것은 실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스물네 살의 강민휘, 그는 진짜 영화배우가 됐다.
인터뷰를 하던 날, 김해에 사는 그의 부모님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왔다. 마흔 다섯 살 동갑내기인 부모님은 부족한 것이 많은 아들이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니 걱정이 앞선 것이다. 점심시간 무렵, 그와 부모님을 서울의 가장 번화한 거리 압구정동에서 만났다. 어머니 이경숙씨가 아들에게 묻는다.
“민휘야, 우리 점심 먹고 가자. 뭐 먹을까?”
“엄마, 갈비탕 먹자. 내가 갈비탕 진짜 맛있게 하는 집 안다. 우리 거기서 먹자”
“니가 진짜 아나? 여기가 어딘데? 니는 천안 사는 놈이 압구정동 갈비탕 집을 우째 아노?”
“안다. 며칠 전에 동석이 형(연기 지도 선생님)이랑 왔었다. 내가 안다. 가자.”
강민휘가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부모님은 따라나섰다. 그런데 “조금만 가면 된다”고 하던 갈비탕 집은 큰 사거리를 세 개나 지났는데도 나타나질 않는다. 혹시 아들이 길을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어머니는 재차 물었다. “니 진짜 길 아나?” 아들은 두말 하면 잔소리라는 표정으로 “다 왔다”만 서너 번을 반복했다. 그렇게 약 30분가량을 걸은 후에 정말로 갈비탕집이 나왔다. 아들은 씩 웃으며 “거봐 내가 안다고 했지” 하고는 씩씩하게 갈비탕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갈비탕 국물에 밥을 말아가며 공기밥 세 공기를 게눈 감추듯 먹었다.
일반적으로 다운증후군 환자는 지능이 낮아 사회생활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강민휘는 다르다. 일단 눈썰미가 좋아 한번 간 길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인내심이 좋아 힘들고 어려운 일도 참고 견딜 줄 안다. 찬바람이 부는 압구정동 거리를 30분 넘게 걸어가 갈비탕을 먹고는, 다시 30분 남짓을 걸어오자고 해 부모님의 다리를 바들바들 떨게 한 것만 봐도 그의 인내심은 일반인과 견줄 바 못 된다. 이렇게 갈비탕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 뒤라서인지 인터뷰 내내 강민휘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강민휘는 현재 천안에 위치한 나사렛 대학교 인간재활학과 4학년으로 내년 초 졸업을 한다. 다운증후군이라는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그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국내 최초의 기록이다. 사실 강민휘가 대학에 입학할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신체 장애자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대학에서도 정신지체라는 이유로 수차례 입학 불허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구의 장래를 위해 대학 입학을 고집했다. 대학에서 학업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학 진학을 두고 고민하던 부모에게 고등학교의 특수학급 교사가 나사렛 대학교를 추천했다. 세계 57개국에 퍼져 있는 이 학교는 올해 개교 50주년을 맞은 기독교 재단이다. 전체 학생의 약 20%가 장애인인 이 학교에서조차도 정신지체 장애인 학생은 강민휘군이 유일하다. 입학 당시부터 강민휘는 인간재활학과 진학을 원했지만 수능고사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과에 입학했으나 3학년 때 인간재활학과로 편입해 지금 졸업만을 남겨두고 있다.
“우린 민휘를 장애인이라 생각하고 키우지 않았어요. 실제로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있을 때는 민휘가 커피도 타오고, 라면도 끓여주고 하기 때문에 이 녀석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잊곤 해요. 주변 사람들도 민휘는 다른 다운증후군 아이들과 다르다고 해요. 단지 말이 좀 서툴기 때문에 민휘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당황하기도 하죠.”
생후 6개월에 다운증후군 판정받아
사회생활 가능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
강민휘의 부모는 아들을 키우며 ‘혼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강민휘의 부모는 다운증후군이 뭔지도 몰랐다. 생후 6개월이 지나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옹아리도 제대로 못하는 아들이 그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육이 늦는다고만 생각했던 것. 그런데 어느 날 감기 때문에 찾아간 병원에서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검사를 해보자”고 하더니 다운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다운증후군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나서도 실감이 안 났어요. 민휘는 발육이 늦었을 뿐이지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또래 아이들하고 잘 어울리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세살 때부터 미술학원이랑 놀이방에 보냈어요. 그림도 곧잘 그리고 아이들과도 잘 놀았어요. 민휘는 여덟 살 때 한글도 다 떼었어요. 근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보니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일단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학교에서도 부담스러워했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학습 능력도 떨어지더라구요. 그래도 특수학교에 안 보내고 일반학교에 입학시켰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강민휘는 특수학급이 있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가족은 다시 고민을 했다. 김해에서는 김민휘가 진학할 만한 마땅한 고등학교가 없기 때문. 특수학급이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경남 사천에 위치한 경남자영고등학교까지 가야 했다.
“중학교까지는 집에서 통학을 했는데 사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거예요. 무엇보다 민휘가 기숙사 생활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민휘는 생각보다 잘 해주었어요. 우리는 민휘한테 고맙죠. 부모가 이끈다고 해서 자식이 다 따라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민휘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잘 따라주었어요. 부모가 원하는 대로 따라오느라 민휘가 고생했죠.”
어머니는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아들이 대견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민휘에 대한 이야기는 다운증후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회자되어 자문을 구하기 위해 연락해오는 이들이 많아졌던 것이다.
“엄마, 나는 기숙사 생활 할 때 제일 힘든 게 주말에 혼자 지내는 거였다. 주말에는 기숙사 문을 잠그기 때문에 토요일, 일요일을 기숙사 방에서만 보냈다. 엄청 지루하다. 그랬는데 나중에는 친구들이 생겨서 주말에는 친구집에 가서 놀고 그랬다.”
강민휘가 집을 떠나 생활한 지 올해로 7년째다. 고등학교는 사천에서, 대학교는 천안에서 다니고 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기숙사 생활은 계속됐다. 그러다 지난해부터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복학생 형과 함께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민휘는 어려서부터 밥하고 청소하는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익혔기 때문에 자취 생활도 잘해요. 제가 일부러 다 가르쳤거든요. 유일하게 안 가르친 게 세탁기 사용법인데 요즘은 세탁기도 잘 쓴대요. 같이 사는 형도 특별히 불편한 건 없대요. 근데 이 녀석이 한번은 엉뚱한 짓을 해서….”
어머니가 말을 이으려 하자 강민휘가 입을 막는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럼 니가 말해봐”라고 한다. 이 엉뚱한 짓이란 강민휘가 양복을 좋아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다운증후군 환자는 목이 짧은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어머니는 민휘에게 양복에 넥타이 매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양복을 좋아하는 강민휘는 어느 날 함께 사는 형이 외출한 사이 형의 양복을 꺼내 입었는데, 바지 길이부터 차이가 났다. 형의 바지는 한참이나 길었던 것이다. 그는 가위를 꺼내 바지 길이를 자신에게 맞게 싹둑 잘랐다. 그리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양복을 입고 외출을 했다 돌아온 후 옷거리에 얌전하게 걸어두었다. 다음날 함께 사는 형이 양복을 꺼내 입었다가 기절할 지경이었다. 바지가 발목에서 대롱거렸던 것이다.
“형이 ‘바지를 입으려면 그냥 입지 왜 잘랐냐?’고 물었더니 민휘가 ‘실수’였다고 그러더래요. 사고치고 적당히 둘러댈 궁리도 하는 걸 보면 집 떠나 있으면서 ‘꾀’만 는 것 같아요. 대학 졸업하면 집으로 데려가서 적당한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했어요.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단이 있거든요. 이 녀석이 꼼꼼하니까 그런 곳에 자리를 마련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영화에 캐스팅됐다고 해서 저희도 놀랐어요.”
우연히 이뤄진 꿈, 그러나 기쁨 반 걱정 반
매니지먼트사와 3년 계약으로 배우의 삶 열려
강민휘가 영화에 캐스팅 된것은 우연한 일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가수가 꿈이었단다. 학교 축제 때 무대에서 좌중을 휘어잡을 만큼 끼와 재능을 겸비한 그는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연예계 진출을 꿈꿨다. 그런 그의 마음을 잘 아는 대학 교수님 중 한 분이 현재의 매니지먼트사를 추천했다. 이곳은 지난해 5월 국내 매니지먼트사 중에서는 최초로 장애인 연기자를 선발해 연기 트레이닝을 시키고 있는 곳이다. 이때 강민휘도 선발대회에 지원했지만 ‘정신지체 장애인은 트레이닝이 힘들 것’이라는 매니지먼트사의 판단에 따라 뽑히지 못했다.
“민휘가 연기를 하고 싶어하더라구요. 하지만 저희도 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대학을 졸업한 후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죠.”
가나엔터테인먼트에는 현재 시각 장애우와 휠체어 장애우 등 다섯 명의 장애우 연기자가 활동을 하고 있다. 신체 장애우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확신한 가나엔터테인먼트 김은경 사장도 정신지체 장애우 강민휘에게 가능성을 발견했을 뿐 배우로서의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YTN을 통해 김 사장의 인터뷰가 방송된 후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다. 현재 진행중인 영화 ‘엄마 얼굴 예쁘네요’에 출연할 다운증후군 배우를 찾고 있다는 것. 김 사장은 당장 강민휘를 떠올렸고 속성으로 연기 수업을 시켰다. 약 한 달간 연기 수업을 받은 후 그는 영화사 관계자들과 미팅을 했다. 그러나 첫번째 미팅에서 캐스팅이 성사되지는 않았다. 총 12번의 미팅을 가진 후 강민휘는 지난 11월 중순경 영화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사인하던 날이오? 너무 좋아서 심장이 고장났는 줄 알았어요.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막 들리더라구요. 밤에 잠도 안 왔어요.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얘기했더니 사인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진짜 스타가 된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강민휘는 국내 최초의 정신지체 장애우 영화배우가 됐다. 영화 ‘엄마 얼굴 예쁘네요’에서 그는 다운증후군 소년 ‘재명’으로 열연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 광호의 눈에 비친 세상을 그린다. 중학생 나이 쯤의 광호와 엄마, 누나 그리고 옆집 사는 장애우 재명이 영화의 주요 인물이다. 이중 재명은 대사보다는 행동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다운증후군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연기, 즉 남의 행동 따라 하기,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하기, 같은 행동 반복하기 등. 요즘 강민휘는 자신의 대본을 들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또 당구, 야구, 볼링 등 평소 즐기는 운동을 하며 순발력도 키우고 있다.
강민휘는 지난 11월 중순경, 전주에서 영화 촬영을 시작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촬영장에서 춥지 않겠냐?”고 묻자 “참아야죠. 영화배운데…”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마치 ‘그토록 원하던 영화배우가 됐는데 그까짓 추위가 대수겠냐’는 투다. 영화 출연료로 최신형 휴대폰을 살 거라는 계획까지 세우며 신이 난 그와는 달리 요즘 그의 부모는 걱정이 많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연예계 물(?)을 먹은 뒤에는 일반인의 생활로 돌아오는 데 혼란이 생긴다는데 우리 민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에요. 그래도 아이가 워낙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출연 허락은 했는데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죠. 외국에서는 장애우 연기자들도 수요와 공급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아직 그런 현실은 아니잖아요. 현재 기획사와 3년 동안 매니지먼트 계약을 했거든요. 사장님은 민휘한테 희망이 있다고 하는데 부모 된 입장에서는 기쁨 반, 걱정 반입니다. 하지만 영화 ‘제8요일’의 주인공처럼 우리 민휘도 평생 간직할 작품을 하나 만들어서 많은 장애우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죠.”
이제 막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에 선 강민휘. 그의 출발은 찬란한 무지갯빛만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학교와 집 그리고 부모님과 친구, 형들이 그를 둘러싼 환경의 전부였다면 이젠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상처와 아픔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장을 내던졌다. 그의 출발을 지켜보는 지금, 결승점에서의 가치를 생각하기보다 꿈을 향해 행진하는 그의 레이스에 진정한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