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달아 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소식을 알았다.
지금의 어머니 모습은 생각 하기도 싫다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지금 현재 정신분열증 환자다.
작년 6월쯤 어머니 아시는 친척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산 시내 길 거리에서 검은 비닐봉투를 쓰고 있다는 전화였다.
난 파출소에 전화를 했다. 당분간 보호를 부탁 한다는 전화를..
내가 몇 일 안에 찾아가본다는 말과 끊었다.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아산 파출소입니다.”
“아.. 네 …”
“어제 어머님을 아산 정신 병원에 모셔다 드렸어요.”
“네 .. 감사합니다..”
“한번 오셔야지요 ..따님 사정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 연고자 없는 노숙자로 등록했어요.”
“ 정말 감사합니다.”
“연고자 없이 등록해서 입원 시키시면 병원비는 나오지 않으니깐 걱정 마시고요.”
“네 …”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솔직히 데려오고 싶은 맘은 굴뚝 같은데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방 두 칸짜리 월셋방에서 동생까지 있는데 제 정신도 아닌 어머니를 데려 오기가 겁이 났다.
결혼한 여자들은 내 맘을 알거라 생각한다.
시댁 눈치 보는 것도 겁이 났다.
이런 저런 핑계로 어머니를 보러 가질 않았다.
몇 일 후 또 전화가 왔다 아산 시청에서 온 전화다.
“안녕 하세요 아산 시청인데요. 어머님 나이와 이름으로 목록을 뽑았는 데여.”
“네..” “ 호주를 불러 드릴께요.”
“네..” “ 이 동춘씨 라고 아세요?”
“저희 큰 삼촌 인데…주소가 어디로 돼 있나요?”
“네. 수원으로 나와있는데요. 맞나요?”
“네” “가족이 있으신 걸로 나와서 우선 호주 분께 연락을 취하려고 하는 데여.”
“ 아니요..연락해도 소용없어요..제가 몇 일 안에 꼭 병원으로 찾아가 볼게요”
“네 그럼 그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외가댁에 전화를 했다 모여서 상의 하기로 했다.
큰이모와 막내 외삼촌과는 왕래가 있었다.
우선 막내 삼촌과 내가 같이 가보기로 했다.
가는 동안 불안했다. 어머니를 과연 볼 수 있을까?
병원이 점점 가까워 질수록 심장이 마구 뛰었다.
“삼촌… 만약에 데려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 우선 의사랑 얘기를 해보고 데려가라면 어디 기도원이라도 보내야지 …
지금 사정에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큰이모도 그렇고 네 엄마
돌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깐 우선 가서 얘기나 들어보자”
“네..좀 그렀네요.”
병원까지는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들어 가는 길에 거기서 생활 하는 사람들 환자들을 보니 겁이 났다.
각자의 정신병으로 이런 곳에 와서 사는 환자들..
나와 삼촌을 보며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들 …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다 .같은 환자끼리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목이 메었다.
원무과에 갔다.”안녕하세요 이 경자 씨 딸인데요.”
“ 이 경자 씨요?” “네..” “ 잠깐만요..저기 그분 얼마 전에 이 동춘 씨 라는 분이 모셔갔는데요?”
“네? 그럼 담당 선생님이라도 볼 수 있을까요?”
“네.저쪽 원장실 보이시죠? 그리 가세요”
삼촌이 먼저 들어 가셨다. 난 차마 들어 갈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마음을 가다듬은 후 들어 갔다.
“안녕하세요 이 경자 씨 병명이 모에요?”
“이 경자 씨와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딸인데요..옆에 분은 삼촌 이시고요.”
“ 이 동춘 씨 아세요?”
“네 저희 큰 외삼촌이세요.”
“ 저희가 그 분한테 연락을 드렸어요. 다음 날 바로 오셔서 데려가셨고요.”
“ 그럼 치료는요?”
“우선 정신분열증인데 심각한 수준이에요 약을 한달 치를 지어서 받아가셨는데 치료는 모셔 가셔서 알아서 하신다고 했어요.”
“말도 안돼 ..”
“그럼 저희 누나는 치료하면 정상으로 돌아 올 수 있나요?”
“장담은 못 드려요 치료를 받으시면 어느 정도는 회복이 가능하지만 심각한 수준이라서 언제 또 재발 할지도 모르는 상태고요.”
“아 … 그럼 치료를 안받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약을 먹으면 잠시 동안은 괜찮지만 더 심각해질 경우에는 치료를 받아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 네.. 잘 알겠습니다 정말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삼촌과 나는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서로 말없이 집에 까지 왔다 “삼촌 조심이 가세요..”
“그래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네.” 난 집에 올라오면서 아무 생각도 하질 않았다.
큰 외삼촌이 무슨 생각으로 데려 간 거지 …
지금 우리는 큰외삼촌과 연락을 안 한다.
외할머니가 돌아 가신 뒤로 사이가 안 좋아 서다.
그날 저녁 애들을 재우고 큰 삼촌댁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외숙모 저 수아에여”
“ 어..그래 네가 왠일 이니? 잘 지냈니? 애들은 잘 크고?”
“네 숙모도 별일 없으시죠?”
“그래.” “ 다른 게 아니라요 저희 엄마 바꿔주세요.”
“저기 니네 엄마 없는데..” “ 네?”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네 삼촌이 데려와서 살림이라도 시킨다고 데려왔는데..”
“근데요?” “내가 집 비운 뒤에 미선이 한테 잠깐 산책 하고 온다고 하고 나갔는데.”
“나갔는데요? 그래서요?”
“아직 까지 안 들어왔네…” “ 아니 제 정신 아닌 사람을 혼자 내보내면 어떻게 해요?”
“나도 일하느라고 일일이 신경 쓸 수가 없어서 그리고 집에 와선 설거지도 하고 밥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잘 알아 보길래. 난 괜찮은 줄 알았지..”
“삼촌은 여? 없어요? 삼촌핸드폰 번호 가르쳐주세요.”
숙모와의 통화를 끝내고 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정말 모라고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화가 났었다.
제대로 책임지지도 못 할거 왜 데려 갔나 .. 원망스러웠다.
난 바로 삼촌께 전화를 했다
“삼촌 저 수안데요 엄마 책임지지도 못 할거 왜 데려갔어요? 말 좀 해봐요
거길 어떻게 보낸 건데 제대로 치료를 안해 줄거 왜 데려 갔냐구요?”
난 막무가네로 책임지라고 화를 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 자신이 미웠다.
하나뿐인 어머니 하나 제대로 모실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아무리 못난 부모라 해도 내 부모인데 너무나 서러웠다.
그 동안에 쌓인 서러움이 복받쳐 왔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난 짧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남을 원망해 본적이 없었다.
이번엔 원망스러웠다. 이런 아픔을 주려고 날 낳은 건가?
정말 싫었다. 부모의 이런 모습을 본다는 거 보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걸 경험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 한다.
우선은 어머니를 다시 잃어버렸다는 생각보다는 동생에게 미안했다.
어머니에게서 두 번 이나 버림 받은 경험이 있는 내 동생..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슬퍼 할 동생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동생은 아버지를 미워한다. 난 반대로 어머니를 미워한다.
내가 어머니를 싫어하는 이유..
어려서 버린 딸 잘 키우겠다고 잘 지내는 애를 데려 와서는
다시 한번 버렸다. 그 두 번 째 버림 받은 당시 동생의 나이는 18살 이었다.
한동안 동생은 그늘 속에 살았다.
웃음 이라는 걸 잊고 살았었다.
그런 동생에게 그런 어머니에 대해서 말 하기가 겁이 났다.
‘모라고 말을 해야 하나.. 이 기지베 무지 속상해 할 텐데… 진짜 난감하네..’
나보다 동생이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어린 나이에 자애원으로 보내졌다.
난 장녀라는 이유로 그나마 식구들 손에 큰 것이다.
동생이 있는 것과 자애원에 버려졌다는 사실 … 나에겐 감당하기 어려웠다.
동생을 찾은 것도 내가 가서 찾은 것이다.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난 동생에게 미안할 뿐이다.
내가 찾지 않았더라면 두 번째 버림은 없었을 텐데..
동생은 나에게 그런 걸로 속상해 하지도 미안해 하지도 말란다.
그래도 이렇게 언니랑 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 하다고 …
어머니를 너무 미워 하지 말라는 동생 … 그런 동생을 위해 엄마를 찾은 건데…
간신히 찾은 어머니 또 없어졌다고 차마 말을 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머라고 말을 해야 동생이 덜 슬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