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컵이 만들어낸 아나모르포즈, 즉 마술적 변형의 세계는 시뮬라크르의 공간과 맥이 닿는다. 구면형 거울과 같은 휜 공간은 피상적 세계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장미와 복숭아가 그려진 벽 앞에 붉은 자동차가 정차해 있다. 마치 자동차에서 한 떨기 장미꽃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 같다. 절묘한 각도에서 사물을 포착한 이 사진은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구멍 뚫린 담벼락을 통해 바라본 또 다른 담벼락의 모습. 언뜻 보기엔 평범한 풍경이지만, 마치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는 재미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 역시 사물 속에 숨어 있는 형태를 찾아낸 작품이다. 오래된 나무의 표면에 드러난 네모난 얼굴은 의도적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시각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파도 그림이 그려진 벽과 폴크스바겐의 꽁무니. 서로 다른 이미지가 충돌하면서 이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우두커니 서서 그림자를 내려다보는 남자는 과연 길에 서 있었던 것일까. 마치 중력을 초월해 건물 벽에 직각으로 붙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구도로 일상의 공간감을 변형시켰다.
강렬한 색채와 명암 대비, 절묘한 구도가 맞아떨어져 강렬한 인상을 자아낸다.
바삐 길을 재촉하는 사내와 그 뒤를 따르는 그림자. 사내의 모습과 미묘하게 다른 포즈를 취하는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듯 생경하게 느껴진다.
마천루와 승용차가 즐비한 도심 풍경은 ‘스펙터클의 사회’라는 표현을 실감나게 해준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장 보드리야르는 “모두 다 마음에 드는데…” 하며 미소를 짓다가 이 작품 앞에 섰다. 누군가 앉았던 듯 보이는 의자는 지나간 사람의 흔적과 현재의 빈자리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시간은 현실에서의 시간이 아닌, 이미지 안에서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