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1월에 프루동이 사망하자, 쿠르베는 1853년 그와 처음 알게 된 때의 모습을 재현시켰다. 화면 중의 1853년이란 작품의 제작 연대가 아니고 이처럼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무렵의 연대이다. 쿠르베는 같은 고향 출신인 사상가 프루동과는 상당한 친교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傾倒)된 적도 있다. 아마도 이 초상은 화가 자신에게 여러 모로 정신적 영향을 준 한 사상가에 대한 교분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임이 분명하다. 65년 살롱에 출품되어 졸렬하고 못생겼다는 혹평을 받았으나 쿠르베의 치열한 사실 정신은 의외로 인물들을 통해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