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복 (자는 입부(笠夫), 호는 혜원(蕙園))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특히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던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었던 화가이다. 같은 풍속화를 그렸지만 신윤복은 소재의 선정이나 포착, 구성방법, 인물들의 표현 등에서 김홍도와 두드러진 차이를 보여 주는데, 김홍도가 소탈하고 익살맞은 서민 생활의 단면을 주로 다루었던 반면, 그는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남녀간의 애정을 다룬 풍속화를 주로 그렸다. 대담하게 색정을 표출한 풍속화는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에로티시즘을 발산하고 있다. 이는 풍속화의 새 경향을 창출한 것으로 당시 반상을 구분한 성리학 이념의 폐쇄적 굴레에서 볼 때 더더욱 획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중인 출신의 도화서 화원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라는 벼슬까지 지낸 그는 세속적인 그림을 그린다 하여 쫓겨난 후 직업화가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배경을 통해서 당시의 살림과 복식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등, 조선후기의 생활상과 멋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신윤복의 작품들은 연대가 밝혀진 것이 드물어 활동 시기를 가늠하기가 어렵지만 대부분 19세기초의 작품들로 추정되며 주제와 형식의 특징상 김홍도와 아버지 신한평의 영향이 남아 있는 여속 그림과 신윤복의 개성미가 물씬한 도회 시정을 담은 그림, 기생의 초상화인 미인도 유형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국보 제135호로 지정된 ,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