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삼이' 박윤배 "50넘어 얼짱이라니…좋긴 좋네요"
[일간스포츠 2003-11-14 09:54:00]
[일간스포츠 김영현 기자] "얼굴이 짱구라는 줄 알았다. 내가 얼짱이라길래 '또 못생긴 사람의 대표로 뽑혔구나'라고 생각했다."
'응삼이' 박윤배(51. 그는 나이 밝히는 것을 무척 꺼렸다)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지난 22년 동안 전원일기 '응삼이'로 살다가 드라마 종영과 함께 겨우 박윤배라는 이름을 찾았는데 느닷없이 '얼짱'이란 새 별명을 갖게 됐으니 말이다. 박윤배가 원조 얼짱으로 꼽혔다는 일간스포츠 기사가 나간 뒤 그의 삶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공중파 3사는 물론 일간지와 잡지사, 라디오까지 달려들었다. 다들 '응삼이'가 원조 얼짱이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반응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박윤배 본인이 아닐까. 직접 만나서 얼짱으로 뜨고 있는 소감을 들었다.
▲얼짱에 대해
박윤배는 "기사가 난 신문을 들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했다. 나이 50대에, 그것도 농촌 총각의 대명사인 박윤배가 최고 꽃미남에게 붙는 호칭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역설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네티즌들의 장난기어린 이런 분위기에 대해 박윤배는 "내가 이런 상황을 일부러 유도해서 만든 것은 아니지 않나.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생기니 어쩔 줄 모르겠다"며 "나도 내가 얼짱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내 얼굴은 내가 생각해도 쑥스럽다. 어쨌든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윤배는 이어 "요즘 젊은이들은 누구나 예쁘다. 하지만 얼굴보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최근 불고 있는 일부 어설픈 얼짱 신드롬에 대해 일침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30년 전 얼짱 박윤배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은 박윤배가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복학 후 3학년 때 찍은 사진이다. 올해 인터넷에 팬 클럽이 만들어지면서 젊은 시절 사진을 달라는 회원들의 요구에 옛날 사진첩을 뒤져 건네준 것이었다.
사진 속의 박윤배는 당시 세계적인 스타였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의 광 팬이었다. 알랭 들롱처럼 검은 넥타이를 매고 다니며 그의 사진을 끼고 살았다.
"20대에는 사실 나도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동양의 알랭 들롱'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와 어울려 다녔는데 명동에 같이 나가면 난리가 났다. 명동 4번가, 7번가 골목에선 '박도령 이도령이 떴다'고 하면 서로 자기 집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당시 음악 다방이나 술집에서 부킹을 했는데 나도 킹카에 속했던 것 같다"며 박윤배는 자신의 얼짱 시절을 돌이켰다.
광고모델 드라마 잇단 캐스팅에 '싱글벙글'
▲얼짱과 함께 굴러 들어온 복
박윤배는 지난 12일 서울 대림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오디오 더빙과 동영상 촬영을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컴퓨터 교육 CD 광고 모델로 캐스팅됐기 때문. 1년 계약으로 CD 판매에 따른 러닝 개런티까지 받게 된 박윤배는 '응삼이! 7일 만에 컴맹탈출'이라는 이 CD 광고에서 홈쇼핑 모델은 물론 캐릭터로까지 나설 예정이다.
아울러 박윤배는 작년 말 MBC TV 전원일기 종영 후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 에 이어 그 놈은 멋있었다 에 카메오로 촬영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놈은… 이 인터넷 얼짱을 소재로 만든 영화란 점. "송승헌이 진짜 얼짱인데 촬영장에서 어떻게들 알았는지 내가 진짜 얼짱이라고 말해 당황스러웠다"며 웃었다.
여기에 겹경사까지 누리게 됐다. "시대극 출연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 마침 내년 하반기에 방송될 SBS TV 토지 에 캐스팅됐다. 감사할 일이 계속 생긴다"며 그윽하게 '얼짱의 미소'를 날렸다.
이혼·어머니 임종 등
'얼짱의 미소' 뒤엔 남모를 아픔이…
'원조 얼짱'으로 각광받고 있는 박윤배이지만 전원일기 촬영 동안엔 남모를 아픔이 많았다.
우선 지난 1993년 이혼의 시련을 겪었다. 평생을 같이하려 했던 반려자와 등을 돌리게 된 것도 이기기 어려운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 걱정이 앞섰다. 당시 15, 13세로 한창 사춘기를 지나던 아들과 딸이 행여 빗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일단 박윤배는 엄마 몫까지 확실하게 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새벽 촬영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더라도 늘 아침에 도시락을 직접 싸서 챙겨줬다. '엄마 없다는 이유로 기 죽이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박윤배는 지금도 아침에 자녀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음식과 옷가지 등을 준비해주고 있다.
하지만 불행은 늘 동시에 온다고 했다. 이혼과 거의 동시에 어머니가 허리를 다쳐 병상에 누웠다. 나중에는 치매까지 앓는 바람에 병 수발을 혼자서 도맡았다. 95년 돌아가실 때까지 3년 동안 노모의 대소변을 받아가며 간호에 정성을 쏟았다.
당시 전원일기 외에 다른 연기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한 게 바로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간병인도 제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항상 어머니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박윤배는 결국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지방 촬영 때문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 "이혼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항상 나는 죄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박윤배는 결국 어머니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작년 말 전원일기 종영 때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22년 동안 전원일기 의 월급쟁이로 살았다. 막상 종영된다고 하니 앞이 막막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섬으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다"고 말했다.
박윤배의 '섬 여행' 계획은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전원일기 후 오히려 2∼3배나 더 바빠졌기 때문이다.
김영현 기자 cool@dailysport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