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님과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입니다.
전혀 똑 같습니다. 사람만 다를 뿐이구요...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님의 여자분-이라고 차마 말하기 싫지만,,,년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님 생각해서-역시 이
부류일겁니다.
23세로 요절한 시인 존 키츠는 묘비명에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으로 기록되길 바랐다. 그는 천재적 재능과 드높은 야망을 갖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더구나 죽기 전까지는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인도 아니었다. 죽음을 앞두고 삶의 속절없음이 뼈에 사무치는데 재능과 야망, 명성이 다 무슨 소용이었으랴.
무렵 그에게는 치명적으로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를 두 번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 또한 순간순간 그를 아연케 했다.
"나는 우리 두 사람이 여름날 나비가 되어 딱 사흘 동안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당신과 그렇게 함께 보낸 사흘은 평범한 50년보다 더 많은 기쁨을 내게 가져다 줄 거예요"
키츠는 애인 패니 브론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렇게 썼다. 그러나 그의 애인 패니 브론은 요즘 말로 하면 팜므 파탈(Femme Fatale : 매혹적이지만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여성)에 가까웠다.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결코 존 키츠 한 사람에게만 매여 있는 데 만족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재기발랄함을 뽐낼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누구하고나 잘 어울렸다. 겉으로는 키츠의 사랑을 받아 주는 척했지만 속마음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덕분에 그녀는 지금도 팜므 파탈 유형으로 분류되곤 한다.
존 키츠는 미칠 것 같은 질투와 광기에 사로잡히곤 했다.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그 때문에 더 병이 깊어져 죽음에 이르렀다고 여길 정도였다.
김병욱 씨(가명, 30세) 역시 그런 감정을 경험했다. 존 키츠처럼 죽지는 않았지만, 그도 여자 때문에 광기와 허무에 사로잡혀 미칠 듯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사랑한 여자 역시 존 키츠의 연인처럼 팜므 파탈형이었던 것이다.
"제 앞에서는 늘 요조숙녀인 것처럼 굴었어요. 수줍어하고 얌전하고 목소리도 나긋나긋, 천사 같았죠, 게다가 이 세상에서 남자라곤 저밖에 모른다는 식이었구요"
여자는 남자가 사랑을 호소할 때마다 더할 수 없이 애틋하게 굴었다. 문제는 그녀가 그렇게 사랑을 나누는 남자가 적어도 두 명은 더 있다는 데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김병욱 씨는 '정말로 미치는 줄' 알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냐. 이건 배신을 넘어서 살인 행위다. 네가 날 죽일 작정이냐 하고 소동을 피웠지만 사실은 그녀가 떠나가는 게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매달렸죠, 다 좋으니 날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그렇게 해서 그는 여자가 다른 두 남자에게도 공평하게 (?)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여자는 대단히 복잡 미묘한 방법으로 남자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붙들어 맸다.
나중에는 나머지 두 남자도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럼데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 그녀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라는 철석 같은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여자가 '다른 남자들은 다 어쩔 수 없이 만나는 허깨비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속삭였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관계는 그렇게 1년을 더 끌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지치고 병이 든 채 병원을 찾은 것이다. 그는 깊은 우울증으로 몸과 마음 모두 황폐해진 상태였다. 존 키츠가 그랬듯이 그 역시 끝없이 질투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연인에 대한 사랑을 조금도 단념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사랑을 가장해 자기를 멋대로 조종했다는 것은 더더욱 믿지 않았다.
사랑의 감정을 앞세워 상대방을 조종하는 심리는 꼭 요부 같은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남녀관계에서도 그런 심리는 작용한다. 단, 여자가 팜므 파탈로 분류될 정도로 조종의 심리가 강한 경우, 대개는 그럴 만한 원인이 있다. 겉보기에는 나르시시즘과 교만, 남자들의 헌신을 즐기는 방종한 성격 등이 전부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무의식을 들여다보면 대개는 어떤 상황에서도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강한 욕구가 있다. 어린 시절의 뼈아픈 이별 경험 또는 성장 과정에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것도 원인일 수 있다. 그리하여 거짓 사랑을 남발해서라도 상대방을 조종해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여자에게 물어 보면 자기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말은 진심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남자들을 자기 곁에 묶어 둠으로써 버림받는 데 대한 공포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들만 물 위에 사랑을 새기는 셈이라고나 할까. 개중에는 그것을 운명적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으니 사랑의 모습은 제각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정신과 의사 양창순 칼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