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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의 활

피글렛 |2006.11.13 23:23
조회 1,004 |추천 0
솔직히 우리나라 선조들이 만든 활은 지금 공부하고 있어서 그다지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록보다 중국의 기록을 먼저 살펴보면 제일 먼저 제갈공명이 써낸 책(제목은 잊어버렸습니다.)에 이민족에 대한 글이 있는데 동이족전이 있습니다.

잠시 인용하면 '동이족은 그 성정이 순하디 순해 안에서 침투식의 전략을 짠다면 잠시 혼란은 가능하나 금세 혼란을 종식해 원인을 찾고 보복을 한다. 혹시나 전면전 양상이라면 외교적으로 마무리를 해야지 절대 전쟁을 해서는 안되는 호(胡)족이다.전면전이라면 막대한 피해만이 예상되기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되는 변방민족이다. 그리고 절대로 그들의 활을 피해야 한다.'

제가 삼국지를 읽다가 오장원의 전투이후 제갈공명이 강유에게 주었다는 책을 보다 기억나는 대목이었습니다.

혹시나 '영웅'이라는 이연걸,장만옥등 나오는 영화를 보셨을것입니다.

그 영화에 압권중 하나가 화살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 동이족의 활은 차원이 다르다는 중국학자의 견해가 있어서 더 놀랐습니다.(제가 중국어에 너무 미숙해서 의역으로 듣다보니 이름을 모르겠군요.)

그 중국학자는 당나라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당태종을 언급하며 '당태종은 황제가 되기전에 그 용렬함과 지략이 뛰어났다. 어릴때 강호에 몸을 담고 무술을 연마하고 전쟁을 하며 보냈기에 화살이 날라오면 말위에서도 피했다. 하지만 고구려엔 중국의 활과 비교조차 안되는 활이 있어서 당태종은 어쩔수 없이 화살에 맞고 말았다.'

역사적인 내용으로 봐서도 우리내 활은 차원이 다른 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우리 동이족의 활은 활 자체가 틀려서 동이라 그랬을까요? 아니면 솜씨가 출중해서 그랬을까요?

활 자체가 틀리다는데는 역사적인 기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중국과 확실히 외교적 우호관계를 맺은 고려시대때 거란의 침입을 걱정한 송나라가 고려의 각궁을 들여왔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고려의 각궁은 크기가 작고 가벼워 휴대하기가 좋고 살을 매기에 철궁보다 백배나 나았다라는 글과 명중은 10명중 8명이 명중했는데 명중하기에 좋은 활이다라는 글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과연 그러한 활을 만들지 못 하였을까?

여기서 재미있는 중국의 기록은 국가에 확실하게 갑옷이나 무기를 만드는 장인은 그다지 없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 중국은 전쟁시 그 어떤 무기들보다 활보다 무서운 무기가 없었다는 내용이지요.

또한 중국의 영웅장수들만큼이나 활을 잘 다루었다는 내용도 그다지 없었구요.

우선엔 활을 잘 만드는 장인자체가 없어서 만들지 못 했다는 내용엔 신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활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 민족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내용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무과시험때 실전시험 절반은 활쏘기였습니다.

정조시대 무예지를 보면 기마술과 함께 활을 쏘는 기술이 나와 있구요.

굳이 고구려시대 수렵도나 주몽이라는 이름의 내용은 풀이하지 않겠습니다.

그만큼 우리민족의 활솜씨는 탁월했다는 내용뿐이니까요.

더 재미있는 내용은 원나라(몽고족)때 전세계 민족이 기마민족인 몽고족의 활솜씨와 기마기술에 숨죽여 있을때 우리고려를 쳐들어왔을시 주둔하고 있던 몽고족들이 밤만되면 몇명씩 죽어나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몽고의 만부장 장수도 승병에게 활로 암살당한 기록도 있지요.

이렇듯이 우리민족은 활도 탁월한 성능이 있지만 그 실력도 출중하다는 내용입니다.

화약무기가 나오기 전의 최고의 무기 활.

우리민족은 그 활을 너무나 적절히 활용했다는 내용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우리민족이 약간만 더 욕심과 탐욕이 있었다면 아마 세계를 제패한 나라는 우리민족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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