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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같은 남편이야기...드라마같은 이야기

채명단 |2003.11.18 09:09
조회 1,826 |추천 0

내 남편 권범로! 이름도 흔한 이름이 아니지만 외모 또한 흔한 외모가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생긴 게 조금 ‘거시기’하다. 다행히 남자라, 벌어진 어깨와 몸가꾸기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알통, 풍부한 성량임에도 퍼지지 않아 강인하게 울리는 목소리, 고른 치아, 아프리카 원주민같이 바짝 올라붙은 탱탱한 엉덩이, 뭐 이런 것으로 얼굴을 조금 덮어 주자면 덮어 줄수 있다. 생긴 것은 이래도 그가 꾸리는 삶만큼은 400만 화소급 고화질이어서 답답하거나 흐린 구석이 없이 상쾌하고 사는 모습이 시원시원, 균형있게 매력적이다. 그의 삶의 색감이 이렇게 분명할 수 있는 것은, 매순간이 보약이라도 되는 양 빠뜨리지 않고 기분좋게 챙기며, 권범로표로 만들어 버리는 삶의 장인(匠人)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차고 넘쳐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프로’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그렇다. 그는 프로다. 삶의 프로 9단이다.

여느 집처럼 그의 집도 아름다운 옛 영화(榮華)의 전설을 갖고 있다. 선대(先代)의 부(富)가 이런 전설의 주제인 것처럼 그의 할아버지 또한 엄청난 부자였다. 지금은 거의 돌아가셨지만 권범로씨의 고향 마을 어른 절반 이상이 그의 집에서 머슴 살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머슴들이 흰 말을 타고 하루종일 논물을 보러 다녀도 다 못 보고 올만큼 그들의 논밭은 광범위했다. 일제시대때 그들의 땅이었다는 498번지라는 표시는 지금도 동네 절반 이상이 달고 있을 정도다. 6.25전쟁이 터지자 꽤나 오지였던 그 동네의 양민들은 정보유출을 빌미로 북한군들에 의해 집단 학살되었다. 그의 할아버지 또한 그 상황을 비껴가지 못했다. 그 때가 그의 아버지 나이 다섯살 때의 일이었다. 무녀독남이었던 그의 어린 아버지는 무서운 세상에 홀로 던져지게 되었고, 친인척의 재산 쟁탈전의 희생양이 되었다. 재산을 대신 관리한다며 그들은 문서를 가져갔고, 자기들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산산조각 재산을 뜯어간 친인척들은 도덕, 윤리와는 상관없이 대대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하늘이 있긴 있는 것이지, 하느님이 보긴 보셨는지 권범로씨 가족들은 한이 맺힐 뿐이다. 손이 귀한 안동 권씨 종갓집 외아들인 그의 아버지의 집이름은 ‘붙들이’였다. 일찍 죽을까봐 이름으로나마 혹시 있을 액을 막아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5살까지의 그의 아버지에 대한 집안의 대접은 황제를 방불케했다. 그러다가 어린 날 겪게 된 처절한 경험! 끝없는 환경의 추락! 끔찍한 상처! 이런 것들은 그의 아버지의 정서를 안정적일 수도, 평범할 수도 없게 했다. 비상한 머리로 감탄을 만들다가도 어린 아이같은 사회화 되지 않은 병약한 정서로 가장의 역할을 턱없이 모자라게 했다. 보통의 가장이 가져야 할 일반적인 가치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식구들은 모두 힘이 들었다.

가정에서 남자들이 무능하면 여자들은 마소처럼 일하게 된다. 그리고 억척스러워진다. 그의 어머니 또한 초인적으로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정형(定型)적인 모습처럼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느라 그 힘든 생활에도 등이 비어 본 적이 없으니,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일거리는 자연 첫째에게로 분담될 수밖에 없었다. 생활을 해야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업어 키웠고, 빨래를 했고, 하물며 그의 어머니 산바라지까지 그는 직접했다. 아침이면 앞집 뒷집 자식들 차비 꾸어 오느라 정신없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20리 학교길을 걸어 다녔다.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 파는 두부가 매일의 도시락 반찬으로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이제 마흔하나밖에 안된 권범로씨가 겪은 일들은 같은 또래의 사람일지라도 쉽게 공유할 수 없는 추억이다. 하지만 그는 이른 삶의 굴곡에도 참 잘 자랐다. 가슴 패이는 기억을 삶의 쓴맛으로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삶의 단맛으로 취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뚜렷한 대상을 향한 적극적이었던 삶을, 지금 그는 그가 일군 새로운 가족에 대한 아름다운 소명으로 펼치고 있다.

권범로씨는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을 일구는 데 일가견이 있다. 커오면서 부모나 동생을 먼저 생각한 배려의 마음이 사랑과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러니 계획된 아빠 노릇, 남편 노릇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한 남자의 철학인 것이다. 그는 가정에서도 게으름이 없다. 무엇이든 최선이다. 그래서 그의 가정은 대부분 양지다. 갓난쟁이 때부터 목욕시키고, 우유 먹이고, 업어 재우는 것을 자기 몫으로 했고, 심지어 납작한 젖꼭지까지 아이의 손에 기꺼이 놓아두었다. 둘째 녀석은 운전하는 아빠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젖꼭지를 만져댄다. 그렇게 순간순간 마음의 편안함을 찾으려는 아들을 정리정돈시키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휴지를 찾지 않고 윗도리를 들어 코를 닦아주는 그는 아이에 대해서는 옛날 엄마처럼 군다. 이러니 아이들은 ‘아빠’라는 종교의 광신도들이 될 수밖에 없다. 권범로씨가 출장을 가 집을 비우면 그의 티셔츠를 목에 두르고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닌다. 아빠 옷의 시접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든다. 이런 아이들을 보며 그의 아내도 남편이 소중해지고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그의 아내 또한 권범로씨의 은근하고 달콤한 사랑에 중독될 대로 중독된 사람이다. 권범로씨가 자기보다 하루 뒤에 죽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권범로씨는 큰 아이를 임신하고 힘들게 출근하는 아내를 몹시 안쓰러워했다. 100미터 정도의 지하철역까지의 거리도 그에겐 미안한 거리였다. 아내가 화장을 하는 동안 그는 십년 전에 산 중고 자전거를 꺼내놓고 기다렸다. ‘샘이 깊은 물’이라는 흑백 표지가 고상한 정기구독지를 뒷좌석에 서너 권 깔아놓고 그의 아내를 앉게 했다. 그의 허리를 감싸안고 가는 동안 그녀는 참행복을 느꼈다. 서서 강의하느라 퉁퉁 부은 발을 꾸벅꾸벅 졸면서 주무르는 그의 사랑을 그의 아내는 아가페적 사랑으로까지 느꼈다. 아파트를 나와 오르막 전의 커브길을 돌 때는, 아이를 안은 아내가 그의 쪽으로 쏟아질까봐 미리 운전대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두 사람을 밀어주어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권범로씨 가족들은 스스로가 최고의 위치에 있는 왕족임을 체험한다. 그것은 그로 인해 구조되고 완성되어지는 ‘장미의 성’에서 더욱 가능하다. 그는 가족을 위해 가장 빛나는 기쁨을 만들어낸다. 또한 그에 대한 가족들의 인간적인 감화는 그를 더욱 높고 크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행복하다. 그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하다.

하지만 권범로씨는 자신에 대해서는 딱딱하고 찰기가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에서만 그렇겠지만 스스로 그런 말로 사양하며, 귀하고 맛있는 것은 아내와 자식 입으로 고스란히 들이민다. 그의 아내는 처음에는 속깊은 사양이겠거니 싶어 행복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것이 못마땅하다. 한가정의 여자는 아이의 엄마일 수도 있지만, 한 남자의 아내이기도 하다. 먹거리를 준비하는 건, 자식들 입에서 오물거려져 키가 되고 살이 되는 그것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편과 함께 얼굴 맞대고, 과즙도 입가로 흘려가며 침도 튀겨 가며 갖는 식탁에서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는 그런 행복을 놓치는 그가 밉다. ‘먹기 싫은 것을 저렇게 폼나게 위장하는 건가?’ 때로 이런 삐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 속이 어떤 지 들어보진 못했지만‘여러가지 음식을 못 먹어봤고, 미각을 만족시켜온 버릇이 없어서겠지!’로 한가닥 생각이 닿으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밀려와 그를 소리없이 바라보게 된다.

음식만 알거나 옷에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남자도 천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먹는 것 못지않게 입는 것에도 지나치게 인색하다. 입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는 소금기가 배어 있다. 하기야, 데이트할 때 구멍 뚫린 양말을 신고 나오는 그는 수치심의 개념도 다른 듯했다. 아이들 옷만 사는 게 마음에 걸려 와이셔츠라도 하나 사오면, ‘입을 것이 없어서 사왔냐! 있는 옷만도 죽을 때까지 입겠다!’는 식으로 그의 아내에 대한 태도는 거의 꾸지람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매일같이 “뭐 입고 가지 자기야? 옷좀 골라 줘!” 라고 반복하니, 그의 아내는 그때 못한 대거리를 한꺼번에 해댄다. “자기가 알아서 입어! 맞출 옷이 있어야 맞추지! 기껏 사다주면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되레 사온 사람을 분수도 모르는 멍청한 인간으로 만들어!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지? 자기는 황새 못돼! 나도 황새 아니야. 우린 뱁새야! 언감생심 따라갈 생각조차 없어. 하지만 황새는 황새대로 걷고, 뱁새는 뱁새대로 즐겁게 가는 거야! 구색 맞추기 위해 산 옷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옷을 사는데 그렇게 야단스러울 게 뭐야!”“..., 그럼 내거 사지 말고 자기 거나 사 입어!”그는 이런 식으로 상황을 우회해 버린다. 요즘은 남자들에게도 옷에 대한 기호를 누리도록 권고하는 시대다. 옷이란 자신을 사회의 흐름에, 집단의 질서에 소속시키는 하나의 도구다. 음식은 자신이 즐겁도록 먹으면 좋은 것이고, 옷은 남의 눈이 즐겁도록 입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즐겁도록은 아니어도 눈에 거슬리는, 또는 옷으로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옷을 인격으로 보는 미숙한 시선이 많은 요즘, 권범로씨의 아내는 그가 답답할 뿐이다. 그녀는 오늘도 권범로씨의 원초적인 얼굴의 결함을 옷으로 커버해 주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하다.

권범로씨는 가족 속에서만 빛이 나는 사람이 아니다. 바깥 일에서도 빛을 뿜는다. 그는 철저히 프로다. 그의 열정과 그의 능력이 남김없이 몸값(?)을 올리는 데 투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은 윗사람들에게 특A로 인정받는다. 동료, 부하, 외부의 관계자들에게 받을 수 있는 다면평가에서도 그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경쟁 회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그와 비교하며 어떤 사람이 말했다. ‘권범로가 100이라면 넌 5야!’그는 일할 때만큼은 엄정하다. 완벽주의자다. 온정주의를 청산한다. 중간 지휘자인 그에게는 주제가 확실하다. 그리고 그는 직설화법이다. 그는 회사에게도 그렇다. ‘직원들에게 애사심만을 바라지는 마라! 이승엽이가 애사심을 가지고 56호 홈런을 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실현과 자신의 몸값을 위해 쳤을 것이고, 삼성이라는 이름은 덩달아 자랑스러워지는 것이다!’권범로씨의 단호한 주장은 밑의 사람들에게도 같다. ‘당신들 월급의 3배를 회사에 가져다 주고 월급을 챙겨라! 형편없는 실력으로 타이틀만 쓰고 다니지 마라.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라 이익단체이다. 아이디어를 내라! 수익을 창출해라!’그는 큰 돈을 만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돈을 따라다니다 길을 잃은 적도 없다. 그러니 노사간의 관계를 단적으로 돈을 매개로 연결시키는 그의 이런 피력에 건전성은 확보된다. 그의 적극적이고 도전적이며 합리적인 마인드는 2003년 새해 인사에도 잘 드러난다. “여러 분들은 그 동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라는 인사를 들었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어떤 절대자가 복을 준다고 생각해 그걸 받는 수혜자의 수동적인 역할만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올해는 여러분 스스로가 복을 많이 만들어 많이 챙기길 바랍니다.”그는 스스로의 노력과 열정만이 좋은 결과를 낳고, 삶의 기적까지도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날고 뛰는 회사는 아니지만, 그래서 거기에 몸 담고 있는 자신이 사회의 객관적인 서열에서 밀릴지 모르지만, 자신의 고유의 일에선 ‘최고’라는 자긍심을 산소로 취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늘 말한다. ‘보스를 열망하지 않는다! 리더이길 원한다!’

권범로씨는 삶의 뜨내기가 아니다. 주인이다. 그래서 그는 진부한 삶에 부역(賦役)하지 않는다. 삶을 이끌고 때로 뒤에서 밀기도 하면서 세상을 밝게 하고 미력이나마 도우려까지 한다. 그의 인터넷 ID는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다. 그의 아파트 우편함에는 도청, 시청에서 오는 공문이 거의 매일 들어 있다. 건의에 대한 결과 보고다. 그의 체감을 담은 정확한 주장에 대한 응답들이다. 그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에 대해선 엄격하다. 공무원들의 낡고 태만한 관습에 대해선 더욱 무섭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권범로씨의 레이더엔 잘도 걸린다. 대형마트에서의 일이다. 무심코 지나칠 풍경이거늘, 방화셔트 밑에 물건 쌓아 둔 것이 그의 눈에 딱 걸렸다. 대형건물,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방화셔트 밑에는 물건을 쌓아 둘 수가 없다. 만약의 위험에 많은 사람들이 노출돼 끔찍한 일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항의했다. ‘지금 당장 치우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그들은 중요한 깨우침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고발이 무서웠던 것인지 지금까지 그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
재작년, 아파트에 한 대 밖에 없던 공중전화를 한국공중전화 주식회사에서 떼가려 했다. 한달 수입이 12만원이 돼야 하는데 4~6만원밖에 안 나오니 적자가 심하다는 것이다. 그는 단호했다. ‘문화생활의 척도는 전기, 수도, 통신이다. 한 가지만 빠져도 문화생활을 할수 없다. 따라서 선진국도 못 된다. 미국 영화도 보지 못했느냐, 하루에 한 대밖에 안 다니는 오지 도로에도 공중전화가 있다! 적자가 심하면 모(母)회사(한국통신 주식회사)에 얘기해야지 공중전화를 떼가느냐! 공중전화는 문화시설이자 복지시설이다. 한 달에 한 명이라도 꼭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어야 공중전화로서의 가치가 있다!’‘세상을 지배한 사람은 말을 지배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의 달변은 그 때도 힘을 발휘했다. 전화기는 사라지지 않고 달려 있으며, 전화기 떼가는 것은 지금까지 보류상태다.

그는 1번 국도의 한 구간인 통일로에 불만이 많았다. 이름만 1번 국도지 꼴찌 국도라고 했다. 지방도로 중에서 이렇게 엉망인 도로는 없다고 했다. 포장도 개판이고 차선 도색도 개판이란다. ‘1번 국도’라는 이름답게 만들어 달라고 경기도에 건의했더니, 경기도 구간만 예산 확보되는 대로 하겠다는 서신 응답이 왔다. 지켜보고 있는데, 단편적인 변화는 몇 군데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 편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그는 많은 문제점들과 맞닥뜨렸다. 어느 날 수돗물이 누렇게 나왔다. 그는 동대표 자격으로 고양시 수도사업소에 전화를 해 아파트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들은 예(例)의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다. 깊은 물탱크 물을 육안으로 슬쩍 보고는 깨끗하다며 그냥 가버렸다. 분명 누런 물이 나오고, 침전물이 생기고, 입주민들이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건성이었던 것이다. 입주민을 무시한 행동이었다. 그들의 태도는 권범로씨를 자극했다. 그는 3일간 집중적으로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무원 생활 50년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그들은 되레 고압적이었다. ‘불철주야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지금 아파트에 일어난 현상은 전적으로 아파트 시공자 책임’이라고 미루기까지 했다. 현실은 그들의 주장을 비웃는데도 말이다. 지루한 전화 공방만으로는 해결이 안 나는지라 그는 11시 퇴근 이후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6시가 퇴근이니 그 전에 오라는 감정적인 대응으로 어설픈 강수를 두었다. 권범로씨의 초강수가 두어졌다. ‘불철주야 맑은 물을 공급한다더니 불철주야가 무슨 뜻인지 모르느냐! 6시에 퇴근을 하면서 왜 불철주야라고 하느냐!’일단 꼬리가 내려진 상황에서 수도사업소의 ‘요구조건이 뭐냐?’는 후퇴는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고, 결국, 물탱크를 두 번 청소해 주는 것으로 불거진 문제는 종결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수도사업소에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면 다른 아파트에서도 들고 일어날 것이 분명해 그들의 잘못을 끝까지 발뺌했던 것이다. 공무원들의 이런 비열한 언행은 갖가지 모양과 크기로 이어지고 있어, 더 강력한 권범로를 수백만 명 복제해도 정리가 되지 않을 듯싶다.

권범로씨가 살고 있는 동네는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제 막 아파트며, 빌라,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자연은 깨끗하고 공기는 맑다. 풍뎅이도 보이고, 무당벌레도 보이고, 벌도 보인다. 그런데 여름에는 반갑지 않은 모기까지 많이 보인다. 그는 그 동안을 지켜본 모양이었다. 방역이 부족하다는 것을! 동사무소에 더 많은 방역을 요청했다. 그러자 동사무소 직원 왈, “여기는 도농 복합 지역이라 방역이 어렵습니다! 아무리 해도 파리, 모기가 들끓을 수밖에 없어요”참으로 하룻강아지같은 소리를 냈다. 권범로씨는 그들을 잘 안다. 그들 또한 그가 이런 일에 무서운 범임을 잘 알고 있다. 권범로씨의 차분한 한 마디가 뒤따랐다. “그럼 해충구제(驅除)를 내가 해야 할까요?” 그 말이 있은 다음 얼마 후, 해충구제 연막차는 하루가 멀다하고 지나갔다. 아이들은 즐겁게 소리를 지르며 그 뒤를 따랐다. 어느 날 우연히 그 모습을 본 권범로씨의 표정은 평화로웠다.
철사를 나뭇가지인 줄 알고 물고 와 집을 짓다가, 합선이나 정전을 일으키기도 하는 까치의 까치집은 그의 신고 대상이다. 신호등의 연동 주기가 맞지 않아 시간, 연료 낭비가 초래되자, 파출소로 경찰서로 휴대폰을 누르더니 비효율적인 상황을 고치고야 만다. 시계외(市界外) 요금이 너무 비싸니 인하해 달라고 해, 한 달만에 시정되는 일을 권범로씨는 해낸다. 그러자면 아슬아슬한 수위를 오르내리기도 하고 힘든 전투를 치르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이루어진 일들이 권범로씨가 만들어낸 것인지를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일과 상관없이 이 동네에 많다. 그가 카풀 (car pool)을 잘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파발 버스 정류장에서, 그도 퇴근길에 버스처럼 거기에 선다.“고양동 가실 분 타세요!”노인들은 그가 택시기산 줄 알고 차비를 내려고 하고, 시간 줄여 주고, 수고 줄여 주는 그가 고마워 어떤 이는 형식적인 차비를 내려고도 한다. 도서상품권을 건네기도 하고, 3000원짜리 전화 카드를 기어코 남겨두려고도 한다. 그리고 그것도 아닌 사람은 말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아저씨, 고양시장에 출마하세요. 제가 표 왕창 몰아 드릴게요!” 그는 사람좋은 웃음을 보이며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그들과 또다시 만난다.

그는 몇해 전에 그의 아내에게 이런 바가지를 긁혔다. “있잖아, 양선생님네 대형차 샀다! 우린 언제 그런 차 타보냐!”“남편이 몇 살인데?”“마흔!”“마흔 돼서도 그런 차 못 타면 병신이지!” 그의 아내는 그의 허풍에 일말의 기대를 하며 기분좋게 속아 넘어가 주었다. 마흔 되던 해 그의 아내가 말했다. “자기는 병신이네! 마흔이 됐는데도 겨우 이차 몰고 다니니!” 그의 좋은 머리는 순간적으로 지혜를 쓴다. “차는 이래도, 운전 솜씨나 운전 에티켓은 그랜저잖아!” 그는 티코같은 그랜저는 싫단다. 그랜저같은 티코가 되고 싶단다. 그의 인격이 에쿠스급일 때 에쿠스를 사겠단다. 그는 그의 경제적인 현실을 이렇게 주무른다. 하기야 일전에도 오르막에서 낑낑거리는 경차를, 도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그의 차로 밀어서 올려준 적이 있다. 사람이 우선이라 양보도 잘 한다. 버스의 횡포에 단호히 굴만도 하건만,‘거기에는 사람이 많이 탔으니까!’로 간단하게 후퇴한다. 이 정도의 수양이면 머잖아 에쿠스를 살수 있겠다. 부디 그리 되도록 하느님이 보우해야 할텐데...!

‘작고 흔해 빠진 것들이 역사를 움직이는 수레바퀴 구실을 했다'는 말이 있다. 63억 150만명 중의 하나인 권범로씨 또한 아주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한국 인구로만 쳐도 4770만분의 1이라는 숫자는 아주 작고 흔한 존재의 또다른 표현이다. 그런숫자가 의미 없다면, 라디오를 켜놓고 황수관 박사의 흉내를 그럴 듯하게 내며 즐거워하는 자연인의 모습에는 별날 게 없다. 나훈아의 ‘고향역’을 핸들 두드려가며 부르는 혼자의 모습 또한 그저 평범할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사회적 장신구가 많아 멋있는 모습을 강요받거나, 불합리의 개선을 종용받은 적은 더더욱 없다. 그는 단지 인간 중심의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뿐이다. 작지만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 희망을 부르려 하는 것이다.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좀더 나은 세상의 주인이고 싶은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에겐 문제투성이의 현실에 내성(耐性)이 없다. 그래서 그는 깨끗하게 용감할 수 있으며, 기꺼이 지혜를 나누고,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종합을 향한 산 증인으로 작은 역사를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나는 나의 남편 권범로를 여과없이 고백했다. 더불어 지금까지의 권범로를 꽤 많이 사랑한다는 고백도 거기에 잇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당신 오지랖은 동대문 운동장을 쓸고도 남아!” 요즘 난 이런 식으로 그의 고된 사회 참여를 자제시키려 하고 있다. 때론‘되게 살지 말라’고 진심으로 호소하고, 그의 대칭점에 서서 ‘쨍’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까지 한다. 세상 참여의 가치를 떠나, 몇 개밖에 안 되던 흰머리가 그의 머리를 급속도로 덮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변함이 없다. 나의 우려를 집안의 내력으로 일축하며 타고난 상황의 전향력(轉向力)으로 “채명단 사랑해!”만을 간지럽게 던질 뿐이다. 게다가, 있지도 않은 ‘권범로 팬클럽’회원임을 자처하는 응원꾼들까지 많으니, 나의 저지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난 그를 과감히 진단했다. ‘권범로는 권범로라 권범로로밖에 살수 없겠구나!’아내인 내가 그 다음에 할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바로 이 말이겠다. “권범로 화이팅!!”“ 현승, 기승 아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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