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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두 女子 이야기

일송정 |2003.11.18 10:54
조회 9,229 |추천 0

세상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각기 다른 형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같은 여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어떤 여자는 온갖 호강을 누리며 살고, 어떤 여자는 온갖 고생을 겪으며 힘겹게 산다. 좋은 남편을 만나 안락한 삶을 사는 여자도 있고, 무능력하거나 바람둥이를 만나 눈물젖은 삶을 사는 여자도 있다. 남자들이 서로 다른 형태의 삶을 살 듯이, 여자들은 너무나도 상이한 삶을 살아간다.

화곡동의 한 일식집에서 B의료기의 J회장과 저녁을 먹었다. 얼마전 출간한 내 칼럼집에 들어있는 "내가 만난 특별한 사람들"코너에 J회장이 다른 9명의 인사들과 함께 수록돼있었기 때문에 책을 건네주기 위해서였다. B의료기의 K사장과, 탤런트 Y양 그렇게 넷이서 회를 먹으며 술을 마셨다. J회장은 내가 익히 알지만 여장부 스타일이다. 남자 못지 않은 배포와 뚝심, 거기에 야무진 경영마인드까지 갖추고 있다. 술도 남자보다 더 잘 마신다.
J회장이 처음부터 돈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뜨개질부업까지 해가며 살았을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었으나 이일저일 해가며 어떻게어떻게 사업을 하다보니 의료기에 손을 대게 됐고 지금은 꽤 유명한 회사가 됐다. 그녀가 오늘날의 회사를 일구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하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2003년도 대종상영화제에 협찬을 해줄 정도로 오지랖도 넓혔다. 술자리에서 K사장이 그야말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식으로 떠받들 정도로 그녀는 기분좋은 대우를 받는 위치에 있다.
K사장은 이리에 출장간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고 탤런트 Y도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둘은 몇 병을 더 마셨는지 대취했다. "노래나 몇 곡 부르러 가자"며 그녀가 일어섰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그녀의 승용차(벤츠600)에 올랐다. J회장은 평소 기사도 없이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날은 술이 취해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대리기사를 불러 갈까 하다가 나는 그냥 차에서 내렸다. 술이 너무 올라서 노래방 가기가 좀 그랬기 때문에. J회장은 남편한테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려는데 리어카에서 꽃을 팔고 있길래 2만원짜리 꽃바구니를 샀다. J회장한테 갖다 주려고. 차가 있는 곳으로 가니 그녀는 남편을 기다리며 잠이 들어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난 그냥 택시에 올랐다.

동대문지하철역 부근의 한 호프집. 출판사 J국장과 맥주 한잔을 했다. 내 칼럼집을 출간한 출판사 국장이라서 술한잔 내기 위해서였다.서빙을 하는 여자가 내 옆에 앉는다. 45세라는 그녀는 알바로 저녁에 이 호프집에 나온단다. 가슴과 힙이 엄청 큰 그녀는 얼굴도 못생긴 편이었지만, 먹고살려고 나온다고 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고3짜리 아들과 함께 창신동에서 산다고 했다. 그녀가 얼마나 받으며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는 생계를 위해 남자들 옆에서 술을 따른다.
"내일이 아들녀석 수능인데, 여기 나와있네요. 오늘 저녁에는 녀석과 함께 집에서 맛난 음식도 해주며 시험 잘 보라고 격려도 해주고 싶었는데---"
여자의 말속에는 진한 비애가 스며있다. 남편과 이혼은 했지만 아들 생각해서 서류는 정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취기가 오르자 나는 주인한테 양해를 구하고 그녀와 함께 옆의 노래방으로 갔다. 그녀는 놀랍게도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갖고 있었다. 남편이 사업을 했다니까 한때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지도 모르는 여자. 그러나 이제는 생계를 위해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고있다. 노래삼매경에 빠져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녀도 불행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고단한 삶의 하중으로부터 벗어나서, 그녀는 행복한 것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고단한 삶의 질곡 속으로 들어가야 하리라. 남자들에게 술을 따르고 웃음을 팔아야 하리라. 때로는 짓궂은 남자의 손이 그녀의 커다랗고 늘어진 가슴을 만지고, 때로는 몇장의 지폐를 받고는 여관에 가서 속옷을 벗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자신은 그날 그녀의 풍만한 몸매를 안고 부루스를 추다가 문득 치밀어오르는 성욕을 느꼈다. 그날 마음만 먹었으면 아마도 그녀는 내앞에서 속옷을 벗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그 순간적인 성욕이 정말 부끄럽고도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들과 함께 먹고 살려고 45세의 나이에 호프집엘 나오는 그녀에게, 나의 성욕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여자들은 그렇게, 너무나도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남자들도 마찬가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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