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내린 추적추적한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이제는 강한 바람과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옷 속에 내의를 껴입고도 “아이고! 왠 날씨가 이렇게 춥지!” 하는 동료 직원들의 말에 “아!
이 사람아! 인자부터는 겨울 아닌가? 그랑께 춥제!“ 하시는 선배님의 말씀에 ”정말 그렇구
나!” 하는 것을 공감하면서 우체국 문을 나섭니다.
거리의 가로수는 이제 모두 옷을 벗어버리고 찬바람에 부들부들 떨면서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듯 조용히 서 있습니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산에는 아직도 빨간색 노란색 진한 회색
그리고 녹색의 조화를 이루며 아직은 늦가을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합니다. “강원도 쪽에는
눈이 온다는데 그래도 이곳은 아직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달리다보니 어느덧 전남 보성읍 대
야리 모령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시골 마을은 언제나 조용하기만 합니다. 아직은 김장철
이 시작되지 않아서 인지 마을의 입구에 있는 밭에는 무와 배추가 싱싱한 자태를 뽐내며 저
를 반겨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령 마을 손두은 씨 댁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
갑니다.
그러자 손두은 씨의 아주머니께서 “우메! 아저씨가 마치 오시네! 아저씨 쪼금 기달려 보씨
요 잉!” 하시더니 방문을 향하여 “예 말이요! 예 말이요!” 하시며 아저씨를 부르십니다. 그
러나 방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다시 한번 방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예 말이
요! 아! 우체부 아저씨 왔당께 뭣하고 있소~오!” 하시며 다시 한번 아저씨를 부르는 순간
덜컥 방문이 열리면서 손두은 씨께서 “어! 자네가 오셨는가? 오늘은 으째 많이 늦었네?” 하
시며 손에 대 봉투 하나를 들고 나오십니다.
“거시기 이것을 등기로 보낼라고 저그 바깥에서 만날 자네를 기달려도 자네가 안 오드란 마
시 그래서 금방 들으와 부렇는디 자네가 따라와 부네 그란디 이것 등기로 보낼라문 을마나
되것는가?“ 하시며 대 봉투를 저에게 내미십니다. ”등기로 보내시려면 요금이 1,670원인데
요!“ 하였더니 ”이 사람아! 등기로 보낸디 돈이 그것뿐이 안한당가? 여그 3천원 잉께 갖고
가 보소!“ 하시며 대 봉투와 천원짜리 3장을 저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내일 영수증하고 잔돈은 가져다 드릴께요!” 하였더니 아저씨께서는 “아따 이 사람
아 먼 영수증이 필요하단가! 혹시 돈 남으문 자네 그 돈으로 커피나 한잔하시소! 부탁함세
잉!” 하시며 “자네가 금방 올지 알았으문 내가 바깥에서 쪼금 더 기달리꺼인디 그랬네!” 하
시며 빙긋이 웃으십니다.
“다음에도 혹시 등기나 소포를 보내시려면 우체국에 전화를 하세요! 그러면 저희들이 지나
가면서 가지고 가면 되니까요!” 하였더니 “대차 그라문 되것네 잉 내가 으째 그른 생각은
못했으까? 그나저나 꼭 좀 부탁하네 잉!” 하시며 무언가를 해결해서 홀가분하다는 표정이십
니다. “아마 내일쯤은 우편물을 받아보실 수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서 손두은
씨 댁을 나와서 다시 또 다음 다음마을로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리고 도착한 마을이 보성읍 옥암리 구성마을입니다. 구성마을은 예전에는 십여 호가 넘는
사람들이 살았으나 이제는 모두 떠나고 3호 밖에 살지 않는 조그만 마을입니다. 그 마을의
첫 집에서 주인을 불러봅니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어서 다시 오토바이로 빵빵 소리를 내
자 “나 여깃어!” 하시며 할머니께서 밭에서 무언가를 하시다가 저를 보시더니 급히 달려오
십니다.
그리고는 “우리 집이 뭐 중요한 것이 왔는갑네 나를 찾아싼 것을 본께!” 하시며 제 곁으로
가까이 오십니다. 그래서 “할머니 아드님에게 등기편지가 왔거든요! 도장을 한번 찍어 주셔
야 되겠는데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우메 은제 가서 도장을 찾으껏이여 그냥 지장을
찍어불제!” 하시며 빙긋이 웃으십니다.
“할머니 예쁜 손에 인주를 묻혀도 되겠어요?” 하자 할머니께서는 “아따 별소리를 다하네 늙
은이 손에 인주 좀 묻으문 으짜간디 괜찮한께 걱정도 말어!” 하시며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슬며시 내어놓으십니다. 그래서 우편물 수령증에 지장을 찍고 “할머니 편지는 잘 보관하셨
다가 아드님 보여드리세요! 아시겠지요?” 하였더니 “응 알았어!”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다음 마을을 향하여 막 오토바이를 돌리려고 하는데 할머니께서 갑자기
저를 부르십니다. 그리고는 “아저씨 인자부터는 거시기 한 것은 저기다가 넣어부러 잉!” 하
십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가르친 곳을 보니 공사판에서 쓰는 합판을 차곡차곡 어른 키만
큼 쌓아놓은 곳에 우편 수취함을 올려놓고는 그곳에 우편물을 넣으라는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방안에 우편물을 넣으면 더 좋을 텐데 왜 수취함에 우편물을 넣으라고 하세요?” 하
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아따 거시기 한 것까지 전부 방으로 갖고 들어온께 미안하드만
그래서 내가 우리 아들한테 말을 했드만 저그 다가 그냥 통을 세와 놓고는 저그다 편지를
넣으라고 그라데 그랑께 인자부터는 저그다가 거시기 한 것은 다 넣어 부러랑께! 알았제?”
하시며 다시 한번 빙긋이 웃으십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거시기 한 것은 전부다 저기다 넣겠습니다!” 하고는 할머
니 댁을 나왔습니다. 사실 할머니 댁에 우편물이 온다고 해도 얼마나 오겠습니까? 전화요금
의료보험 등 몇 가지 기본적인 고지서 모두 합하여 10여 통 미만일 것인데 그것도 방으로
배달하는 집배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수취함을 놓아두고는 거시기 한 것은 모두 수취함에 넣
어두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한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래서 저는 가장 행복한 집
배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