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보내셨더군요. 섬찟했습니다.
"어떻게 주소를 알아냈을까?"
저는 몇년 전에 집에서 나왔고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고 있습니다. 벗어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선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십수년동안 아버님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렸습니다. 어머님은 아무 이유없이 시달리는 저를 그냥 모른척 하고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이세상에 두분의 첫 자식으로 태어나긴 했지만...사랑을 받아 본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또 무엇인가 때문에 꼬투리 잡혀 구타당할지 몰라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공포스럽고 지옥이었고...그리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어찌할 줄 모르고 그냥 참고 살아야 했습니다....
아버님...나는 당신이 무섭습니다.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다 못해 옷장에서 가죽 허리띠를 꺼내시더군요. "너때문에 손이 아프잖아!" ...가끔은 재떨이가 날라오고 커피잔이 커피가 담긴채 날라오고 ...쫓겨 달아나다 미끄러지고 물벼락을 맞고...식칼도 휘두르시고...너 같은게 밥을 먹느냐, 감히 이불을 깔고 자는냐, 시키는대로 책상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면 두다리는 늘 심하게 붓고 아팠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머님께선 웃으시면서 넌 여자가 왜 이리 다리가 굵냐고 하시더군요.
어머님...난 태어나서 단 한번도 당신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 기억이 없습니다. 여섯살때 용기내서 말을 걸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래서?"였습니다. 중학교 입학전에 긴머리를 짧게 잘랐을 때 아주 속이 시원하다는 당신의 말씀은 나를 가슴시리게 했습니다. 난 당신이 해주는대로 모두 받아들이며 살았지만 결코 배려는 받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때 귀가 해 오니 제가 애지중지하던 인형상자를 버렸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한텐 단 하나밖에 없는 장난감이고 말동무였고 취미로 만든 살림살이와 옷가지등이 가득한 보물상자가 그렇게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버려질 줄은 몰랐습니다. 고등학교때 밤새워가며 만든 가사숙제<미니저고리>도 버려버릴 줄 몰랐습니다. 난 당신을 이해 못했습니다. 자식이 매일 벌벌 떨고 구타를 당하고 잠도 못자고 가위에 눌리고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당신은....뭐 하셨습니까? "아 또 왜그래?" 말 한마디 하시고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남동생도 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모두 너때문이라고 욕을 해댔지만 당신은 "아 또 왜그래?"가 전부였습니다.
전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말없이 책읽는 것을 좋아했었죠. 머리는 좋지 않았지만 기억력은 좋았습니다. 아버님께서 몰아세우고 닥달하지 않으셨다면 그럭저럭 공부도 잘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중학교에 입학했을때 전교 20등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졸업할 때는 간신히 100등...고등학교에 가서는 억지로 이과로 까지 권유하셔서...다시 문과로 오고 전문대 야간학과에 간신히 가고...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걸로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이제부터는 모두 니 할탓이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 초년기만큼 중요한 시기가 있을까 합니다. 부모님께 사랑을 받고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것을 공부하고 친구들과 추억을 쌓고 사회로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십대를 끝낼 무렵에 사람이 반 미쳐있었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얘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벌벌 떨고, 식사를 할 때 아버님의 젓가락이 가는 곳에 제 젓가락도 같이 따라갔습니다. 밤마다 가위에 눌린다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전기세 나가니깐 방 불 끄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나는 분명 두분의 자식인데도 아무도 귀기울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돈만 들어가는 귀찮은 존재인데 왜 버려버리지 않으셨는지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책두권을 받으면서 너 때문에 돈을 썼다는 말 따위를 왜 들어야 하는지요? 웃으면서 쌍욕을 던지고 갑자기 머리카락을 부여 잡고 마구 흔들다 나가 버려서 나이 어린 자식을 벙찌게 하시던 두분을 나는 증오합니다.
이제는 저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어디로 이사갔는지는 동사무소를 통해 알아내실 수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당신들이 무섭습니다. 자식으로써 도리도 못 느낍니다. 제가 이렇게 온라인에 공개적으로 편지를 올린 이유는 두분께서 멀리 이사를 가셨으면 해서요. "의정부에 있는 한국아파트 614동"에 사시고 전화번호가"031-877-992*"이라면서요? 그리고 한가지 더...전문대 다닐때 성적표가 에이로 가득했던 거 기억나시나요? 장학금을 안 주냐는 질문에 같은 과 학생들도 모두 에이를 받았다고 대답했었습니다. 야간에 다니는 꾸진 과이니 아무렇게나 얘기해도 믿으시더라구요. 그런데 사실은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아서 제 용돈으로 썼습니다. 교통비만 주시고 제가 밥 굶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시는 분께 드릴 생각은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제 소원이 뭐였는지도 말씀드릴께요...친구들과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다정하게 떡뽁이를 사먹는 거였습니다. 난 용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당신의 말을 한번도 믿은 적이 없습니다. 그걸 꼬투리로 당신에게 또 맞을 수도 있는데 내가...미쳤어요? 달라고 하게?
얼굴 마주 할 일 없었으면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