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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뭉클한이야기....

푸른하늘 |2003.11.30 11:25
조회 2,224 |추천 0

※ 어린이를 교통사고에서 구하고 대신 숨진 한 포항공대생에 관한 이야기로 이 글은 그의 동생이 쓴 글입니다.

우리 형은 언청이였다. 형은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아야 했고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런 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형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로 형을 들여보내고 나서 수술실밖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간절히 기도드리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형은 나보다 한 해 먼저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수술 자국을 숨기기 위해 아침마다 어머니는 하얀 반창고를 형의 입술 위에다가 붙여 주시고는 했다. 형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잘 몰랐지만 아마 고생께나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형에게는 말을 더듬는 버릇이 생기고 있었다. 나는 그런 형을 걱정해주기는 커녕 '버버리'라고 놀리고 그랬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나는 한참 만화와 오락에 빠져 있었는데 항상 용돈이 부족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간 크게도 어머니의 지갑에서 오천원이나 훔쳐서 텔레비전 위의 덮개밑에 숨겨 두었는데 그게 발각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당연히 나를 의심했다. 두려운 마음에 나는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 뗐다. 다음에 어머니는 형을 추궁했다. 형은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 줄 몰라 했다. 형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어머니에게 잘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죽도록 어머니에게 매맞고 있던 형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방을 나가버리고서 방 한구석에 엎드려 있던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형은 숨조차 고르게 쉬지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언청이'란 말을 처음 듣게 되었다. 나는 그런 희귀한 단어를 알게 된 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며칠 후 형에게 버버리대신 언청이라는 말을 썼다. 그 말을 들은 형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 말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그말을 이제 알았구나?" 하며 웃어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다닐 적 어버이날이었다. 어머니가 방안에서 무슨 편지를 읽으시면서 소리없이 울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가 방을 나가신 후, 나는 어머니가 지금 막 읽으셨던 듯한 편지를 꺼냈다. 형이 쓴 편지였다. 편지 내용을 읽어보고는 나는 왜 그토록 어머니가 형을 사랑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형처럼 태어났다면 나는 나를 그렇게 낳은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했을 텐데 형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자기가 그렇게 태어남으로 해서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셨을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고 또 위로하고 있었다.
형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또 수술을 받았다. 우리집은 가난했다. 국민학교 때까지는 일년에 두번씩 이사를 다녔다. 거기다가 형의 수술비까지 대느라 언제나 쪼들렸다. 형은 거의 돈을 쓰지 않았는데 그런 형도 돈을 쓰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길에서 거지를 보면 없는 돈에도 항상 얼마씩을 주고는 했다. 내가 옆에서 아무리 저런 사람들 도와줘 봤자 하나 소용없는 짓이라고 설교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형은 대학교 2학년 겨울에 또 수술을 받았다. 정말 끝이 없을 거 같던 형의 수술도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머니의 생일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 그날은 왠지 기분이 참 안좋았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심하게 느끼시는 것 같았다. 하루종일 초조하게 보내시던 어머니가 전화 한 통을 받으시더니 금새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형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부리나케 포항으로 내려갔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두손을 모아 누워있는 형의 손을 꼭 잡으셨다. 그 순간 연약하게 뛰던 형의 맥박이 조용히 수평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태 기다리다가 그제서야 안심하고 떠나는 것처럼...
차도를 무단 횡단하던 어떤 어린 여자아이를 트럭이 덮치려는 순간, 형이 그 앞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여자아이는 팔을 조금 다치고 말았는데 형은 트럭에 치이고 나서 머리를 땅에 부딪히고 말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슬픔에 넋이 나가버렸는데 나는 그 순간 묘하게도 '참 형다운 최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며칠동안 우리집은 무덤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음식은 커녕 물조차 드시지 않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고열에 시달리시고는 했다.

드디어 어머니의 생일이 왔다. 그날 아침 눈을 떠보니 밤새 눈이 내렸는지 온 세상이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 오후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느 동네 아주머니겠거니 하고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정말 태어나서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하얀 눈밭 위에 수백 송이의 아름다운 꽃들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누가 보냈는가 보았더니 바로 ‘형’이었다. 언제 꽃배달을 시켰는가 보았더니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어머니가 어느 새 나오셔서 그 광경을 보시고 계셨다. 형이 남긴 짤막한 생일 축하 메시지를 어머니에게 보여 드렸다.
"어머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셔야돼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어머니 곁에서 함께 할 겁니다."
어머니의 눈가에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조용히 번지기 시작했다.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 형이 선명회라는 기독교 사회봉사기관에 가입하여 한 어린이를 돕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그 아이의 후원자는 바로 나다. 한달에 한번씩 지로로 후원금을 부쳐주고는 한다. 그 애하고 만나봤는데 그 애 말이 형은 크리스마스나 그애 생일 뿐만 아니라 새 학기가 시작하면학용품도 사서 부쳐주고 편지도 자주 써 주고 그랬단다. 그애는 형이 참 보고싶다며 지금 형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히 이 애한테 형이 했던 것처럼 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 볼 생각이다. 그래야 천사의 동생이 될 자격을 갖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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