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이집트, 향료문화의 천국 기원전 2500년경에 이집트 제 5왕조가 훈트지방을 여행하면서 8만 포대의 향료를 사들였다는 최초의 문헌상의 기록내용과 같이 고대 이집트는 그 당시 향료문화의 천국이었다.
그들은 미이라를 만들면서 시체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향료를 사용했는데 그 유물이 바로 투탕카멘(Tutankhamen) 무덤이다.
몰약이라고 알려져 있는 미르(Myrrh)오일이 특히 미이라 작업에 많이 사용된 향료이기 때문에 '미르'라는 단어에서 미이라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또 설형문자로 새겨진 '앗사리아 서적'(기원전 2000년부터의 기록을 모은 판)에는 향기로운 유약과 향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중 '향을 가미한 음료는 호흡곤란 증상을 치료하는데 좋다.'는 기록이 있어 오늘날 아로마테라피(Aromatherapy,방향요법)의 근원이 되고 있다.
향료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에 의해서였다.
그녀는 특히 향료사용을 좋아해 자신만의 향 '커피'(Kyphi; 아이리스, 몰약, 육계 등을 건조시킨뒤 포도주에 넣어 추출해 송진과 벌꿀등을 첨가해 만듦)라는 것을 만들어 즐겨 사용했으며 그녀의 유람선 돛대에 수 많은 장미향을 수놓아 바다 저 멀리서도 그 향기를 맡을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나일강 일대에 그리스를 비롯 멀리 인도까지 향료를 수출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향료 문화는 그리스인들이 연회장을 장미로 장식하고, 음식물에 바르거나 태워 향이 스며들도록 할만큼 번성하였는데, 그 풍습은 로마인에 의해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귀족들도 목욕후 장미, 수선화, 백합 등의 향이 밴 유지를 몸에 발랐고, 심지어 싸움터에 나가는 병사까지도 만약 전쟁터에서 죽었을 경우 자신의 시체를 보호하기 위해 향료를 뿌리고 적과 싸웠 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향료재배와 제조기술이 일정 지역에 국한되어 일반인들이 향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주재배지역인 동양과 사용처인 서양을 잇는 길은 길고도 험한 항로였기 때문에 신선한 향료를 구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작은 공예품에 담겨진 용연향(Ambergris)이나 사향(Musk)등은 그 무게만큼 금과 맞바꿀 정도로 비쌌다. 따라서 향료는 특정인만의 소유물이었고, 부의 척도로 여겨져 화폐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향료가 일반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되면서 대중화와 전성기를 맞게된 것은 바로 베니스때문이다.
베니스는 1202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였고, 그 결과 동양으로 향하는 지중해권을 장악했다.
유럽인들은 이곳을 통해 들어오는 동양의 정교한 비단과 자수품, 향료 등을 선호하였고, 그 결과 베니스는 유럽에서 부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금을 만들어 내는데는 실패했지만 향수발전의 밑거름이 된 알콜(와인 증류과정에서 발견)을 만들어 냄으로서 원료로만 머물던 향료를 오늘날의 '향수'로 상품화시키는 토대를 마련했다.
즉 오늘날 향수의 원조격인 '헝가리워터'가 알콜 개발로 탄생될수 있었던 것이다.
1370년 헝가리 엘리자베스 여왕은 로즈마리(Rosemary)와 알콜을 이용한 '헝가리워터'향수를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그녀는 이것으로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녀의 나이 72세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국왕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이유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15세기 후반 포르투칼인들이 아프리카 주변을 최초로 항해하고, 3년후 콜롬부스가 인도서부의 섬으로 향하는 항로를 발견하면서 유럽국가들은 이곳의 향료를 직접 구할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항로의 발견으로 향수는 보다 대중화되었고, 특히 같은 시기 북유럽에서 시작된 문예 부흥기에는 예술 및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향기가 미의 기준으로 새롭게 인식되어 향수산업도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향료의 메카, 그라스 지방 프랑스에 향수를 전한 사람은 16세기, 앙리 2세의 왕비인 카트린드 메디 시스였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은 그녀를 따라 온 피렌체 사람 톰바렐리(Tombarelli)에 의해 퍼졌다고 한다.
그런데 향수를 제조한 곳은 파리가 아니라,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 그라스(Grass)였다.
원래 가죽산업이 번성했던 그라스는 이때부터 향수의 메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들은 가죽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용했던 향수가 단일상품으로서 전망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과감히 향료산업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한편 그라스 지역을 중심으로 16세기부터 19세기초까지 천연향료의 수확량을 늘리며 향료산업을 주도하던 프랑스에 비해 독일은 실험실에서 오늘날 사용하는 대부분의 향료인 합성향료를 개발해 내기 시작했다.
합성향료개발, 새로운 향수 1834년 최초의 합성향료 니트로벤졸(Nitrobenzol)의 출현을 시작으로 많은 합성향료가 개발되어졌는데, 이 합성향료의 발명은 향수산업이 크게 발전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여러가지 화합물의 조합으로 천연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속의 향기를 존재하지 않는 상상속의 향기를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합성 향료를 사용해 만든 가장 오래된 향수는 1889년 겔랑에서 나온 '지키(Jicky)'이며 샤넬(1921년), 레뒤탕 등이 그 뒤를 이엇다.
이제 향수는 사향, 헤리향 등의 극소수의 동물성향료와 1500여종에 이르는 식물성향료, 그리고 3000여종에 달하는 합성향료 등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