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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전서 요약

종달새 |2008.07.10 09:09
조회 480 |추천 0

<신약전서> The New Testament

마태복음

서론

2세기 때, 마태복음을 신약전서 맨 앞에 놓았다. 지금은 마가복음이 앞선 것을 알지만 당시는 마태복음이 최초로 쓰여진 것으로 알았다. 유대교와 관련된 문제들을 가장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마태복음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적절하게 이어준다. 마태복음은 1세기와 2세기 때, 가장 중요한 복음이 되었다. 초기 교회에 중요한 모든 요소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기적적인 수태에 관한 이야기, 예배식, 율법, 사도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 예수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 등이 그것이다. 오래 동안 마태복음은 4개 복음서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2세기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복음의 저자가 마태이고 그는 전직 세리(稅吏)이며 예수의 12 제자 중 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오늘 날 학자들은 마태가 저자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한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생애에 있었던 사건들을 기술하는데, 1세기 후반의 구비(口碑)와 그보다 앞서 쓰여진 마가복음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저자가 예수의 생애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저자는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열렬한 신앙심으로 여겼던 유대의 지식층이었고, 복음은 기원 후 80년과 90년 사이에 쓰여졌을 것이다.

마태복음은 7부분으로 정리된다. 서론 부분은 예수의 기적적인 탄생 이야기, 전도의 시작을 기술하고, 결론 부분은 최후의 만찬, 예수의 시험과 십자가에 달림, 부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간에 5개의 구조적으로 병행된 부분들이 있다. 각 부분에 이야기 부분은--대화와 짧은 설교로 이따금 중단되지만--예수가 행한 기적들과 활동을 이야기한다. 각 부분을 끝낼 때, 예수는 이야기 부분에서 배운 교훈에 대한 긴 설교를 한다. 기독교 메시지의 기본 요소를 소개하는 산상 설교는 예수가 처음으로 전도 활동을 시작한 후에 이루어진다(5:1-7:29). 예수의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는 전도 설교는 예수가 보다 많은 선생과 전도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 이루어진다.(10:1-42). 비유로 하는 신비스런 설교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를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예수의 대응이다(13:1-52). 교회에 관한 설교는 기독교인들의 지속적인 우애를 이룩할 필요에 대응한 것이다(18:1-35). 끝으로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종말론의 설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2:31-25:46)

요약

마태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까지 예수의 조상들을 추적한다. 마태는 예수의 잉태를 기술한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이다 (1:18). 마태는 마리아에 관해 별로 언급하지 않고, 약혼녀를 버리지 않은 요셉을 찬양한다.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 동방의 현자들이 선물을 가지고 그곳으로 와서 그와 그의 부모를 방문한다. 현자들은 별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간다. 헤롯 대왕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가 “유대의 왕”이라는 소문을 듣는다(2:2). 헤롯은 베들레헴에 모든 어린 아기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왕의 처벌을 면하기 위해, 요셉, 마리아, 예수는 애굽으로 도피한다. 요셉과 그의 가족은 헤롯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후 갈릴리라고 알려진 북부 지방에 마을 나사렛으로 이사한다.

세월이 흐르고 예수는 성장한다. 야생 꿀과 메뚜기를 먹고사는 한 남자가 유대 전역에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러” 올 사람, 예수에 관해 예언하기 시작한다.(3:11) 선지자 세례 요한은 결국 예수를 만난다,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주고 예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3:17). 예수는 황야로 인도되어 40일 동안 음식이나 물을 먹지 못한 채 사탄에게 시험을 받는다. 예수는 탈없이 승리하여 나와 그의 중심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4:17). 그의 전도 활동이 시작된다.

마태는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 시몬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언급한다. 예수는 소수의 추종자 무리들을 확보하고 설교하기 시작한다. 그의 초기 전도 활동은 유명한 산산 설교를 할 때 절정에 달한다. 그 설교는 점점 많아진 추종자들을 감동시킨다(5:1-7:29). 그리고 겸손, 순종, 이웃 사랑, 바르게 기도하는 법,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다. 예수는 가난하고, 온유하고, 배고픈 자가 축복을 받는다고 한다.

갈릴리를 여행할 때, 예수는 많은 군중의 관심을 끈다. 마태는 예수의 기적 중 10개를 말하는데 그것은 마가복음에도 나오는 것이다. 예수는 나병 환자, 중풍 환자, 출혈하는 여인, 백부장((로마군 장교))의 하인, 베드로의 장모를 고친다. 그는 폭풍우을 잠재우고, 귀신을 몰아내고, 맹인에게 시력을 주고, 죽은 소녀를 소생시킨다. 예수는 길 잃은 양이라 부르는 이방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기”로 결심한다(9:38). 예수는 12 제자를 지목하고 그들은 박해를 받게 되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을 설교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지시한다(10:7).

11장에서 마태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중단하고 예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는 예수가 당면한 반대 세력에 관해 설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죄인들, 세리들, 창녀들과 교제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들은 그를 대식가이고 주정꾼이라고 한다. 이런 배척을 당해도 예수는 사과하지 않고 그를 배척하는 사람들을 훈계한다.

예수는 그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비유로 대응한다. 마태는 예수가 그의 말을 들으러 모인 군중들에게 한 여러 가지 비유들--씨뿌리는 사람, 잡초, 겨자씨, 누룩의 비유들--을 기술한다(13:1-33). 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을 가족이라고 한다.

예수는 갈릴리 전역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고치고, 깨끗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는 고향 마을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는다. 그곳에서 그의 친구들과 이웃들은 그를 조롱한다. 그는 계속해서 기적을 행하지만 사람들은 반발하고 불신한다. 예수는 적은 양의 떡과 생선으로 수천 명을 먹인다. 아픈 사람들을 고치고, 영적인 의로움에 관한 메시지를 계속 설교한다.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이 여전히 그를 제대로 믿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기적적으로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갈 때, 그들은 그를 귀신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떡을 많이 만들어도 그들은 굶주림을 걱정한다. 오직 시몬만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예수는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꾼다. 그것은 그리스 말로 “바위”를 의미한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16:18). 그런 다음, 예수는 기독교도 사이에 공동 생활의 규칙을 정하고, 용서, 겸손,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을 강조한다.

예수는 설교를 계속한다. 금욕의 미덕을 설파하면서 이혼을 금하고 순결을 주장한다. 그는 재물의 유혹에 대해 경고하고, 용서를 가르치고, 어린이들을 환영한다. 예루살렘에서 환호하는 군중들이 그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뭇가지를 베에 길에 편다(21:8).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는 유대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몰아내고 대제사장과 장로에게 따진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21:13) 예수의 행동은 군중의 지지를 받는다. 그는 유대의 지도자들을 비난한다. 성전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의와 자비와 믿음“보다 법 조항만을 중시하는 위선자들이라고 한다(23:23). 예루살렘의 사악함을 보고, 사악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을 예견하면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종말에 대해 준비하라고 경고한다. 최후의 심판 전에 고난이 있지만 사람의 아들--예수 자신--이 올 것이며 의로운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될 거라고 한다.

26장에서 예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다. 예수는 제자 중 한 사람인 유다가 그를 배신할 거라고 한다. 예수는 그가 죽은 후, 다른 제자들이 도망칠 것을 예언한다. 베드로도 그를 배반할 것이다. 제자들과 떡을 자르고 포도주를 마실 때, 예수는 후에 성만찬으로 알려진 의식을 시작한다. 즉, 제자들에게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게 한다. 제자들과 식사를 마친 후, 예수는 겟세마네라는 동산으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그는 기도하며, 가능하면 임박한 고통을 면할 수 있는지 하나님에게 묻는다. 예수가 동산을 떠날 때, 유다가 성난 군중과 많은 로마 병정들을 데리고 다가온다. 유다는 성난 군중에게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는지를 알리기 위해 예수에게 키스한다.

예수는 체포되고 유대 법정으로 끌려간다. 거기서 그는 불경죄로 기소된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최종 판결을 위해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그를 보낸다. 빌라도는 놀랄 만큼 허약하고 당황한다. 그는 군중들에게 판결을 맡긴다. 그들은 모두 소리친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27:22).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승인한다. 그들은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다. 십자가에서 예수는 울부짖는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그는 죽는다(27:46). 마태는 처형 때,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등이 있다(27:56). 아리마대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예수를 매장하고 경비병이 무덤을 지킨다. 십자가에 못 박힌 후 3일 째 되는 날, 막달라 마리아와 마리아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그의 몸에 기름과 향료를 발라주기 위해 예수의 무덤으로 가지만 무덤은 비어있다. 놀란 그들은 천사를 본다. 천사는 그들에게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했고 갈릴리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여인들은 기쁘고 두려운 마음으로 무덤을 떠난다. 갑자기 예수가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그를 만나도록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여인들이 떠난 후, 경비병들은 도시의 제사장에게 사건을 이야기한다. 제사장들은 경비병에게 뇌물을 주고 그들이 잠자고 있을 때 누군가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보고하게 한다. 갈릴리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돌아다니며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는 일을 맡긴다.

마가복음

오래 동안 마가복음은 학자와 일반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었다. 마가의 문학적 스타일은 약간 재미가 없다. 예를 들어, 그는 많은 문장을 “그런 다음”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누가와 마태복음에도 예수의 생애에 관한 똑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보다 세련된 글이다. 또한 마가는 예수의 출생에 관한 설명, 산상 설교, 아주 잘 알려진 비유들을 생략한다. 그러나 성경 학자들이 4개의 복음 중 그것이 가장 먼저 쓰여졌다는 것을 발견하자 마가복음은 유명해졌다. 그것은 누가와 마태복음을 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의 출처였을 것이다. 더구나, 예수와 그의 첫 제자들이 글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마가복음은 현존하는 예수의 생애에 관한 기록에 가장 가까운 문헌이다. 마가복음의 저자로 여겨지는 요한 마가는 예수의 가장 가까운 제자 베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마가는 예수의 실제 생애를 가장 가깝게 목격한 신약성경 역사가이다. 마가복음은 저자의 안목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지만, 학자들은 예수의 생애, 행적, 십자가에 못 박힘을 이해하는데 마가복음이 충분히 믿을만하다고 확신한다. 최초의 출처와 가깝기 때문에 마가복음은 수준이 낮은 문체로 무시당했던 책에서 신약전서에서 가장 중요한 책의 하나가 되었다. 역사적인 중요성이 문학적 학자들의 평가에 영향을 주었다. 투박하고 간결하지만, 마가복음은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행동이 주축을 이룬다. 극적인 긴박감이 있다. 복음에 스며있는 풍자가 있다.

요약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그 대신 마가의 이야기는 성인이 된 예수를 기술하면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1:1). 마가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온다는 것을 예언하는 세례 요한에 관해 이야기한다. 요한이 물로 예수에게 세례를 준 후,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를 그의 아들로 인정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1:11). 예수는 황야로 간다. 거기에서 사탄이 40일 동안 그를 시험한다. 예수는 승리하고 돌아온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북부 지방 갈릴리로 간다. 그는 그의 첫 제자 시몬과 안드레 형제를 부른다. 두 사람은 어부이다. 예수는 그들에게 물고기 대신에 사람을 낚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며 따르라고 한다.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고 그를 따른다. 예수는 갈릴리에서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여 그의 능력을 과시한다(1:40-45). 마가는 예수가 중풍 환자, 시몬의 병든 장모, 그리고 손이 말라 빠진 남자를 고쳤다고 전한다. 예수를 보러 모인 사람들은 이런 기적들을 보고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적대감을 갖는다.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추종자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민다. 예수는 그의 전도 활동에 몰두한다.

예수의 활동은 많은 추종자들을 모은다. 기적 이야기는 점점 길어지고 상세해지고 예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강조한다. 마가는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의 말에 순종한다.”고 말한다(4:35-41). 동시에 예수는 오해를 받고 배척을 당한다. 그의 제자들까지도 그를 불신한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그의 메시지를 오해하는 때가 많다고 한다. 예수의 능력은 자연을 제어할 때 저절로 나타난다. 그는 폭풍우을 잠재우고, 귀신 들린 남자를 고쳐주고, 죽은 소녀를 소생시킨다. 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고향 마을 나사렛에서 매도된다.

예수의 전도에 관한 이야기가 헤롯 안디바 왕에게 전해진다. 그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벤 갈릴리의 통치자이다. 예수는 제자들을 각처로 보내 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게 한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다시 모일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메시지를 들으러 몰려든다. 기적을 통해 예수는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생선으로 5000명을 먹인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기적의 위대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물 위를 걷는 것을 보고 그들은 충격을 받는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전통적인 유대 율법을 무시하는 것에 화를 내며 그에게 질문한다. 그는 율법이 정한 것을 맹목적으로 지키는 것보다 율법의 정신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예수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의도가 의로움을 결정한다고 설교한다.

예수는 다시 북부 팔레스타인으로 간다. 그는 귀머거리와 어느 이방인의 병든 아이를 고치고 두 번째 기적을 행한다. 소량의 떡과 생선으로 4000명을 먹인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의 행동의 중요성을 계속 오해한다. 제자들 중에 베드로만 예수의 신통력을 인정하는 것 같다. 예수는 그가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는 것을 예견하기 시작한다. 그는 갈릴리를 계속 여행하지만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설교에 중점을 둔다. 그는 몇몇 제자들에게 하얗게 빛나는 모습으로 보인다. 예수는 세례 요한이 그가 온 것을 알리는 엘리야의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혼과 재혼을 금지하는 설교를 한다. 그는 순진한 어린애들이 의로운 행동의 모범이라고 한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한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희생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가치가 있다고 한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10:31).

마침내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간다.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을 몰아내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서민들은 그를 환영하지만 제사장과 서기관은 그를 미워한다. 그는 제사장들의 구두 공격에서 자신을 성공적으로 변호한다. 그는 시저에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죽은 자는 부활할 거라고 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한다. 종말이 곧 올 것이고, 하나님은 의롭지 못한 자들을 징벌하고, 사람의 아들이 돌아올 거라고 한다.

결국, 예수는 그에 대한 음모에 자신을 넘겨준다. 유월절 밤 축제 때, 예수는 성만찬을 시작한다. 제자들에게 상징적인 그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한다. 만찬 때, 예수는 제자 중 한 사람이 그를 배신할 거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놀라며 묻는다. “나는 아니겠지요?”(14:19). 식사는 겟세마네라는 동산으로 가서 기도한다. 예수는 근처에 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와서 그가 기도할 동안 잠들지 말라고 하지만 세 제자는 세 번 잠이 든다. 예수는 하나님에게 가능하며 임박한 고통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예수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동산을 떠난다. 그때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롯 유다가 제사장과 칼과 몽둥이를 든 무리들과 함께 온다. 유다는 예수에게 키스한다. 제사장들에게 예수의 존재를 알리려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예수를 체포하고 대제사장들의 법정으로 끌고간다. 그곳에서 예수는 그가 “축복된 자의 아들, 메시아”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다. 유대인들은 그를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매다는 것에 동의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울부짖는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5:34). 그는 죽고, 의로운 유대인 아리마다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그를 묻는다. 십자가에 매달린 지 3일째 되는 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에 올 때, 무덤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한 젊은 남자가 예수는 무덤에서 일어났다고 그들에게 말한다. 그후 예수는 부활한 몸으로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사도들에게 나타난다.

누가복음

신약전서의 최종 편집자들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분리시켰다. 그것들은 원래 같은 저자가 2권의 책으로 쓴 것이었다. 누가복음은 그 첫 권이고 예수의 탄생, 전도, 죽음, 부활에 관해 이야기한다. 두 번째 책은 사도들의 행적을 담고 있는데, 교회 역사를 기록한 최초 기록의 하나이다. 예수의 부활에서 사도 바울이 여행하며 “담대하고 금하는 사람 없이”(행전 28:31) 복음을 전파하던 때까지 사건들을 추적한다. 누가복음은 고대 역사가답게 서론적 사건을 내세운다. 그는 이렇게 쓴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1:3-4) 그 자신이 목격자는 아니었지만, 누가의 정연한 기술(記述)은 예수와 최초 사도들의 목격담에 의존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같은 시기인 기원 후 75년과 85년 사이에 쓰여졌다. 저자는 마가복음과 당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참고한 것이 분명하다. 누가복음은 재능 있는 문필가의 세련된 작품이다. 누가는 교양 있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약

서론 후에 누가는 두 개의 장에서 나사렛 예수와 그의 예언자 세례 요한의 기적적인 탄생을 나란히 기록한다. 가브리엘 천사는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과거에 불임이던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임신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얼마 후 가브리엘은 엘리사벳의 친척이며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녀도 성령의 은총으로 아기를 낳게 될 거라고 말한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가 될 것을 예언한다(1:43). 마리아는 기뻐하며 오늘날 성모 마리아의 송가로 알려진 기도를 한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한다”(1:46). 요한이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가브리엘의 예언을 불신한 죄로 임신 기간 중 벙어리가 되었다--사가랴의 노래라는 기도를 한다. “찬양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1:68). 마리아와 요셉은 인구 조사에 참여하기 위해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간다. 거기서 예수는 말구유에서 태어난다. 예수가 성전에 보내질 때--장남 아기들이 보내지는 곳이다--두 명의 선지자 시므온과 안나는 아기의 거룩함을 알아본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그가 진정으로 소중한 인물임을 모른다. 마리아는 젊은 예수가 성전에서 현자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2:49).

예수는 어른이 되고 유대의 사막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다. 요한은 죄의 사함을 위해 세례로 회개할 것을 주창했고 예수가 올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요한은 곧 북부 갈리리 지역의 통치자 헤롯 안디바에게 잡힌다. 누가는 최초의 인간 아담까지 이어지는 예수의 계보를 밝힌다. 사단은 황야에서 40일 동안 예수를 시험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황야에서 돌아온 예수는 전도를 시작한다. 그는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당하고 갈릴리 전역을 돌아다니며 많은 기적을 행한다. 귀신을 몰아내고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친다. 그는 어부 시몬 베드로에게 많은 고기를 잡게 해주어 그의 관심을 끈다. 그와 함께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최초의 제자로 삼는다. 나중에 9명의 다른 제자들이 합세한다. 전도를 시작할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에게 반발한다. 그들은 안식일 준수에 관한 전통적인 유대의 율법과 금식,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에 관해 따진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은 커진다. 그는 많은 군중에게 마태복음의 유명한 산상 설교를 짧게 들려주고 제자들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가르친다(6:27).

그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백부장((로마 장교))의 하인의 병을 고쳐주고,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킨다.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그가 누구인지 묻기 위해 사자(使者)들을 보낼 때, 예수는 그가 행한 많은 기적을 지적할 뿐이다. 사악한 여인의 행동을 수용함으로서 예수는 죄인들 중 가장 비참한 자도 용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고귀하고 너그러운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싹튼다고 비유로 설명한다. 예수의 진정한 가족은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의 기적 중, 그는 폭풍우을 잠재우고, 귀신 들린 남자와 혈루병이 있는 여자를 고치고, 야루스의 딸을 소생시킨다. 예수는 12 제자를 각처로 보내 복음을 전파하고 병을 고치게 한다. 그들이 돌아오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설교를 들으러 몰려든다. 그는 떡과 생선의 기적을 행해 적은 음식으로 5000명을 먹인다. 그는 제자들의 믿음을 묻는다. “네희는 나를 누구라 하는가?” 베드로가 대답한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9:20). 그후 예수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세 가지 예언 중 첫 번째를 말한다. 그는 처형되고 부활할 거라고 한다. 일련의 짤막한 영적 메시지들이 뒤따른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겸허함이 매우 중요하다.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 이가 큰 자니라”(9:48).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간다. 몇 가지 짧은 에피소드로 그의 여행이 중단된다. 그는 전국에 그의 말을 전파할 70명의 전도자를 임명한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고 한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친절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웃이라고 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과 주기도문을 가르치고 진심으로 요청하면 하나님은 들어줄 거라고 한다. 예수는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11:9). 그는 허식과 재산의 축적에 관해 조심하라고 강조한다. 바리새인들의 공격에 대응하여 그들의 위선을 비난한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보다 율법의 문구를 따진다고 한다(11:42).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공격을 예상하고, 추종자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대담하게 주장하고 최후의 심판에 대비하라고 한다. 그는 전도를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간다. 그의 비유와 훈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회개의 중요성, 겸손과 친절의 미덕, 재산의 위험성, 하늘 나라를 위해 세속적인 것을 완전히 포기했을 때 얻는 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닥칠 파멸에 관한 것이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 벌로 큰 도시가 파괴될 것을 예견한다. 장사꾼들을 몰아내고 예수는 성전에서 설교하며 서민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는 그를 반대하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그의 권능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들을 비난하며 사악한 거주자들로 비유한다. 성전의 진정한 주인인 하나님은 그들을 쫓아내고 벌줄 거라고 한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말로 예수를 얽어매려 하지만 그는 세속적인 권위에 순종하는 것과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여 그들을 좌절시킨다. 예수는 막강한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하고 종말의 날과 사람의 아들이 오기 전에 겪을 커다란 고통에 관해 말한다.

유월절이 되자 예수는 제자들과 전통적인 유월절 밤 축제를 경축한다. 밤 축제 때, 그는 성찬식을 시작한다. 새로운 계약의 표시로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게 하는 의식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들 중 누가 가장 큰가에 대해 싸우지 말 것을 경고한다. 봉사하는 것이 봉사를 받는 것보다 훌륭하다고 한다. 그는 그들의 믿음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다. 그는 시몬 베드로의 믿음이 흔들릴 것을 예언한다. 이 예언은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체포할 때 사실로 밝혀진다. 겁에 질린 베드로는 예수를 안다는 사실을 세 번 부인한다. 유대인의 법정 산헤드린에 끌려왔을 때, 예수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라고 간단하게 대답한다(22:70). 법정은 이 말을 자백으로 여기고 그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데려간다. 빌라도는 망설이지만 제사장과 장로들은 예수를 죽이는 선고를 내리라고 빌라도를 설득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며 말한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아리마다의 요셉이 그를 매장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금요일에서 3일이 지난 일요일에,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예수의 여성 추종자들이 그의 무덤으로 가지만 그가 없어진 것을 알게된다.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가 부활했다고 그들에게 말한다. 여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말하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는다. 베드로는 직접 무덤으로 가서 예수의 육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놀란다. 마침내 예수는 놀란 제자들에게 나타나 마지막 지시를 한다.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24:47-48).

요한복음

서론

네 번째 복음은 예수의 신비한 정체를 기술한다.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의 공관(共觀) 복음서에 나오는 친숙한 이야기들--예수의 짧은 경구와 비유, 예수의 배경에 관한 언급,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선포 등--을 많이 생략하고 그리스도의 특성과 근원을 설명한다. 마가복음은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예수를 그려 1세기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느끼게 하지만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신성을 기술하는 긴 논설이 많다. 요한은 예수의 전도 이면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혈육으로, 빛과 생명의 근원으로, 예수를 믿는 것, 그리고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필 수 있게 해준다. 요한의 이야기가 공관복음들과 다르지만 그것은 좋은 소식을 이야기하는 복음이다. 거기에는 예수의 전도의 기본적인 것들--그의 설교, 기적, 시험, 십자가에 달림, 부활이 들어있다. 요한은 모든 복음에 공통된 초기 구비(口碑)에서 이런 사건들의 세부적인 내용을 들었지만, 그는 이런 사건들을 자유롭게 해석해서 예수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보게 해준다. 요한복음은 공관 복음들보다 조금 늦은 기원 후 90년경에 쓰여진 것 같다. 요한복음의 실제 저자는 예수의 최초 제자의 한 사람인 요한의 해석자일 것이다.

요한복음은 주제에 따라 서론과 결론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론은 이야기의 개요와 요한의 신학적 핵심을 시적으로 소개한다. 복음의 전반은 “기적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의 전도를 이야기하며 예수가 행한 7개의 주요 기적과 이 기적들의 의미와 중요성을 중심으로 삼는다. 복음의 후반은 “찬양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십자가에 달림과 부활로서 예수를 찬양한다. 끝으로 책은 예수가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에필로그로 끝난다. 이것은 후에 편집자들이 복음에 첨가시킨 것 같다.

요약

요한복음은 예수의 근원, 사명, 목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적인 찬송가로 시작한다.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것이며, “은총과 진실”을 가져다주며, 모세가 준 율법을 대치하고 세상에 하나님을 알린다(1:17). 이야기는 자신을 이사야의 예언을 실현시키는 존재로 밝히는 세례 요한으로 시작된다. 그는 주님을 위해 길을 준비할 것이다. 실제로 예수를 만날 때 요한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증언한다(1:34). 다음 날 요한의 증언을 들은 두 제자는 예수를 따르기 시작한다. 안드레는 그의 아우 시몬을 예수에게 데려온다. 이때 예수는 여러 명의 다른 제자들을 얻는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후 3일째 되는 날,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갈릴리에 있는 가나에 어떤 결혼식에 참석한다. 거기에서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유월절이 다가올 때,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간다. 그곳 성전에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며 돈 바꾸는 사람들을 몰아낸다(2:16).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은 예수가 선생으로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그에게 엄숙하게 말한다. 그는 “하늘에서 태어났으며”(3:3),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여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고 한다. 예수는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기 시작한다. 세례 요한은 세례 주는 일을 계속했다. 누군가 예수도 세례주기를 시작했다고 그에게 알린다. 그는 요한이 경쟁자에 대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한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는 요한의 예언을 실현시키고 있다.

예수는 사마리아로 간다. 그곳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그리고 제자들과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야기한다. 그들은 그의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가 여인에게 “생수”(4:10)를 가지고 있으며,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4:32)라고 말할 때 그들은 예수의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마침내 여인은 예수를 이해한다. 그가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사실과 그의 메시지에 감동을 받은 그녀는 다른 사마리아인들에게 그가 유대 경전에 예언된 메시아를 의미하는 그리스도라고 한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갈릴리에 가나로 돌아온 예수는 죽음의 문턱에 있는 소년을 고친다. 예루살렘에서 또다시 명절날 베데스다라는 연못에서 병든 남자를 고치고 그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다. 그날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밖에서 물건을 운반하지 않는 유대인들은 예수에게 화를 낸다. 예수가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라고 하자 그들의 분노는 더 커진다. 예수는 긴 설교를 한다. 그의 말은 영생을 가져다주고 전통적인 율법을 때문에 예수를 배척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예수는 구약성경의 예언을 실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갈릴리에 돌아오자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구하러 그에게 몰려든다. 그들을 먹이기 위해 예수는 5개의 떡과 두 마리의 생선으로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한다. 그날 저녁 예수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예수가 그들을 향해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고 놀란다. 다음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온다. 그는 떡의 기적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다”(6:35). 떡의 기적을 이용하여 그와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의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는다. 예수는 그를 믿는 것은 미리 정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친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6:65).

유대인의 명절 초막절에 예수는 순례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에서 설교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가 전에 안식일을 어긴 것을 트집잡지 말라고 한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하라”(6:65).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인지 의심한다. 관헌들은 그를 체포하고 싶지만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관헌들은 그에게 간음한 여자를 데려와서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그녀가 유죄인지 아닌지 묻는다. 예수는 대답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8:7). 긴 설교가 이어진다. 이때 예수는 군중들의 질문과 비난에 응답한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승천을 예언하고 그의 권능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하는 거라고 설명한다. 그는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죄의 노예이며 하나님의 서자들이라고 비난한다.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앞서며 하나님에게서 영광을 얻는다고 주장하자 군중들은 마침내 분노하여 돌로 예수를 쳐죽이려 한다.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남자를 만나 그에게 시력을 준다. 바리새인들은 그가 실제로 그 남자를 고친 것을 알고 놀란다. 그 남자는 믿음을 고백한다. 그들이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예수는 바리새인들을 장님이라고 한다. 그는 좋은 목자이며 오직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양떼들은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여러 달이 지나 유대인의 수천절 명절 때, 예수는 성전에서 다시 유대인들을 만난다. 그들은 그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묻는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가 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응답한다. 군중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려하지만 예수는 예루살렘을 피한다.

예수는 베다니로 간다. 그곳은 두 명의 독실한 신자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들의 병든 오라비 나사로와 함께 살고 있는 촌이다. 그가 베다니에 너무 늦게 도착하여 나사로가 죽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나사로를 부활시키는 기적을 행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예루살렘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나사로와 예수를 죽이기로 한다. 그러나 예수는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간다. 그는 그의 희생으로 얻게 될 구원과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가 신성하다는 표식을 목격했지만 계속 믿지 않는다. 예수는 믿음이 없는 그들을 비난한다.

유월절 식사 때 예수는 제자들에게 긴 설교를 한다. 그들의 발을 씻겨주며 서로에게 봉사하라고 가르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13:34). 예수는 그와 하나님이 결합한 것을 강조한다. “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14:10).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유다의 배신을 예견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돌아갈 것이다”라고 그는 제자들에게 말한다(14:28). 예수는 제자들을 안심시킨다. 예수 대신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령인 창도자를 보내 그가 믿음 있는 자들과 함께 거할 것이고 그가 그들을 진실과 구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가 죽은 후에도 제자들은 박해를 받을 거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들의 궁극적인 구원이 임박했다. 이 예언을 듣고 제자들은 마침내 예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고백한다. 예수는 의기양양하게 응답한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길고 은밀한 기도에서 예수는 하나님에게 직접 말한다. 믿는 사람들을 신성하게 하고 보호해달라고 한다.

이야기는 빠르게 결론으로 간다. 예수는 유다가 데려온 병사들에게 체포된다. 그는 먼저 유대의 대제사장 앞에 끌려온다. 그런 다음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보내진다. 빌라도는 계속 심문하지만, 예수는 자신을 유대의 왕이라 주장하여 시저에게 반역했다는 고발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빌라도는 예수를 처형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를 처형하라고 동요하기 때문에 결국 승인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고 병사들은 누가 그의 옷을 가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는다. 빌라도는 십자가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붙인다(20:21). 예수는 죽는다.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병사가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찌른다. 아리마다의 요셉과 니고데모가 금요일에 예수를 매장한다.

일요일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에 오지만 비어있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가 그녀에게 나타난다. 그녀는 그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한다. 그날 늦게 그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의 메시지를 전파하라고 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20:21). 그때 도마는 방에 없었기 때문에 부활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1주일 후에 예수는 그에게도 나타난다.

사도행전

누가복음으로 시작되는 작품의 2부인 사도행전은 예수가 순교한 후 초기 교회에 관한 이야기다. 누가복음처럼 사도행전은 데오빌라라는 미지의 독자에게 말을 하고 서론에서 누가복음의 속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1:1-2). 2세기 기독교 전통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를 누가라고 한다. 그는 전도사 바울과 여행을 같이 한 동반자이다. 현대의 학자들은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저자를 동일인으로 보는데 동의하지만 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을 꺼린다. 저자는 기원 후 80년과 90년 사이에 썼을 것이며 바울의 친구였을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에 관한 난처한 문제의 하나는 네레이터의 어투와 인칭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는 대개 무관한 제3자로 말하지만 가끔 복수형을 쓴다. 사도행전은 초기 교회의 역사로 쓰여진 것이 분명하고 1세기 기독교인들에 관한 가장 완벽하고 소중한 역사이다. 그러나 1세기 기독교 신학과 종교의 발달에 관한 묘사에서 또는 교회의 정치적 역사를 기술하는 면에서 그것이 역사적으로 반드시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바울의 신학 지식에 관해 약간 미심쩍어하는 것 같다. 사도행전이 역사적으로 정확한 교제로 쓰여졌든 아니든, 그것은 신앙적이고 교훈적인 역사로서 읽혀질 수 있다. 부정확성으로 그것의 종교적인 목적이 변질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전파에 관한 이야기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거리가 멀어지고, 세계 종말에 대한 기대보다 세속적인 관심으로 움직이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승리한다는 이야기다.

요약

사도행전은 예수가 12제자에게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하라는 명령으로 시작된다. 베드로는 사도들과 예루살렘에 있는 믿음이 강한 소수 신도들의 지도자 역할을 한다. 그들이 맨 처음 할 일은 배신자 가롯 유다 대신에 12번째 사도로 맛디아를 선출하는 것이다. 예수가 죽고 부활하는 기간에 제자들은 오순절을 위해 모인다. 그것은 추수를 축하하는 종교적 명절이다. 성령이 그들에게 강림한다. 성령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한다.

베드로는 기적을 설명하는 설교를 한다. 어학의 재능은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예수의 생애, 십자가에 달림, 부활을 요약해서 말한다. 그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성서적 증거를 제시한다. 그는 하나님이 구약성서에서 유대인들을 역경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보내기로 약속했던 구세주이다. 베드로의 설교에 응하는 3000명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간다.--그것은 기도, 형제애, 공동 소유, 나눔이 있는 이상적이고 번영하는 사회이다. 바나바라는 남자는 관대함으로 특별히 칭찬을 받고 교회를 횡령한 어떤 부부는 갑자기 죽음을 당한다. 기도하러 성전에 가는 길에 베드로와 요한은 다리를 저는 거지를 고친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박해와 궁극적인 부활을 이야기하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은혜를 받았다는 말과 회개할 것을 요청하며 끝을 맺는다. 성전의 사두개교도 대제사장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으므로 베드로와 요한을 유대 법정에 끌고 온다. 베드로는 그곳에서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설교한다. 산헤드린이라는 법정은 여론이 사도들의 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경고만 주고 그들을 석방시킨다.

대제사장이 사도들을 투옥시키지만 한 천사에 의해 기적적으로 풀려난 그들은 전도를 계속한다. 법정에 다시 끌려왔을 때,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사도들을 변호한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5:29). 가마리엘이라는 교법사가 경고한다. “만일 하나님께로 났다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다”(5:39). 그러자 법정은 사도들을 처형하지 않기로 하고 그들은 예루살렘 전역에서 전도를 계속한다.

교회는 두 집단으로 나누어진다. 한 집단은 유대인으로 태어난 기독교인이지만 그리스 문화 배경을 가진 그리스 파들이다. 다른 집단은 사도들처럼 유대의 문화적 배경에서 태어난 헤브루인들이다. 그리스파는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리스 파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사도 공동체는 7명의 지도자를 선출한다. 그리스 파 기독교인 중에 으뜸가는 지도자는 스데반이다. 스데반과 몇몇 유대인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긴다. 유대인들은 그가 산헤드린 앞에서 이단적인 말을 했다고 비난한다. 스데반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한다”(6:13). 산헤드린 앞에서 스데반은 성경에 나와 있는 유대인의 지도권에 관해 긴 연설을 하고 심한 비난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목이 곧은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슬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7:48-51).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다. 기독교인을 심하게 박해하는 다마스커스의 사울이라는 젊은이가 이것을 승인한다. 스데반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당한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이다. 사울은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를 전멸시키려는 유대의 지도자이다. 그는 기도교인들이 유대의 율법을 소멸시키려 한다고 믿고 있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러 돌아다니던 중, 사울은 빛에 눈이 멀고 예수가 묻는 소리를 듣는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9:4). 그후 사울은 교회에서 가장 뛰어나고 대담한 기독교 전도자가 된다. 그는 해안을 따라 여행하며, 기적을 행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이방인들을 개종시킨다.

그 사이에 사도행전은 베드로의 기적과 연설에 관해 이야기한다. 해안을 여행하면서 베드로는 리다에서 중풍 환자를 고치고 욥바에서 여인을 소생시킨다. 가이사랴에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10:28). 그는 이방인들과 교제할 수 있다고 추론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10:34-35). 그래서 그는 고넬료라는 로마 백부장(百夫長)의 가족과 식사를 하고 그들은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은 최초의 이방인이 된다. 교회는 점차 이방인들을 환영하는 쪽으로 바뀐다.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달아난 사람들은 시리아의 도시 안디옥에 와서 그리스인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한다. 사울과 바나바가 이들에 속한다. 한편 유대는 헤롯 아그립바 왕의 치하이다. 그는 기원 후 41년에서 44년까지 통치했다. 헤롯 아그립바는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기관을 만들어 베드로를 체포하지만 그는 천사에 의해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난다.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이름을 바꾼 사울은 전도 여행을 떠난다. 구브로에서 바울은 그의 설교를 방해하는 엘루마라는 박수를 소경으로 만든다. 오늘날 터키의 중부 지방인 비시디아의 안디옥에서 바울은 유대인 회중에게 설교한다. 청중들에게 부활한 구세주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반박하고 전도사들은 그 지역에서 쫓겨난다. 이고니움에서도 약간 성공하지만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을 도시에서 몰아낸다. 리가오니아에서 바울이 절름발이를 고치자 현지의 이방인들은 처음에 그들을 제우스나 헤르메스 같은 이교도 신들로 착각한다. 바울은 아니라고 그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전도사들은 도시에서 쫓겨나고 바울은 돌에 맞아죽을 뻔한다. 두 사람은 전도를 하면서 시리아에 안디옥으로 돌아온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전도 활동을 한 것으로 의견 충돌이 생긴다.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 지도자들과 토론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간다.

토론장에서 전통적인 유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이 되려면 먼저 유대교로 개종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 세계에 교회를 확장하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예루살렘에 유대 기독교 지도자 베드로와 야고보는 바울의 견해에 찬성하기로 한다. 그들은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보존해야 하며,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라”(15:19)고 주장한다.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최소한의 율법만 따르면 된다. 바울은 바나바와 헤어지고 다른 제자 실라와 함께 마게도냐로 간다. 그들이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현지 이방인들은 화를 낸다. 그녀가 점치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옥에 가둔다.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깨어지자 전도자들은 재빨리 달아난다.

그리스에서 바울은 여러 사람을 개종시키지만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반대에 부딪친다. 아덴에서 바울은 공공 광장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그리스의 믿음들 속에 기독교를 설명하는 연설을 한다. 아덴을 떠나 바울은 고린도로 간다. 거기에서 유대인들에게 절망하여 돌아서고 이방인들에게 전도하여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충실한 제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얻는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 그 지역 총독에게 데려가지만 총독은 종교 문제를 판결하기를 거부한다. 바울은 안디옥에 잠시 돌아간 후, 계속 전도를 하며 그리스로 가서 에베소에 교회를 세우고 큰 기적들을 행한다. 은세공업자들이 선동하여 대규모 소요 사태가 벌어지자 그는 에베소를 떠난다. 바울이 이교도의 우상 숭배를 반대하여 그들의 사업이 피해를 입은 것이다.

바울은 계속 여행하다 드로아에서 죽은 남자를 소생시킨다. 바울은 에베소에 기독교 장로들을 부른다. 감동적인 연설로 그가 그들에게 해준 봉사를 상기시키고 앞으로 시작될 박해에 대해 경고한다. 성령은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한다. 그곳에서 그는 박해를 받고 죽음까지 당할 수 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야고보와 교회 지도자들을 만난다. 그들은 바울이 기독교인들에게 유대 율법을 따르지 않도록 종용한다며 걱정한다. 그들은 바울이 유대 율법을 계속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경배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성전에서 유대인들은 그를 잡고 성전을 더럽히며 율법을 반대하는 설교를 한다고 고발한다. 바울은 군중들에게 그의 경력을 말해준다. 그가 과거에 기독교인들을 박해했고, 그리스도의 놀라운 모습을 보았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이방인들을 전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군중들은 분노하고 로마의 호민관은 바울을 잡아 매질을 한다. 호민관은 그를 유대인의 법정 산헤드린 앞에 서게 만든다. 거기에서 바울은 법정의 두 파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반목시켜 분쟁을 일으킨다. 호민관은 벌어진 소요에서 바울을 구한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고 그를 가이사랴에 팔레스타인 총독 벨릭스에게 보낸다. 가이사랴 법정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유대 율법을 지킨다고 공언한다. 그가 재판을 받는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사두개인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바울이 자선 기부금을 받고 나누어준다는 것을 아는 벨릭스는 뇌물을 바라며 그들 2년 동안 감옥에 가둔다. 벨릭스가 죽은 후, 바울은 새로운 총독 베스도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 바울은 가이사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호소한다. 베스도는--바울이 유죄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의 처형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을 달래기 위해--그를 로마에 가이사에게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먼저 바울은 팔레스타인의 허수아비 왕 헤롯 아그립바 앞에 불려간다. 바울은 다시 그가 알게 된 예수의 선견지명과 기독교로 개종한 이야기를 하고 그의 전도 활동은 유대인의 소망과 구약성경의 예언을 실현시키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헤롯 아그립바 왕은 감동을 받지만 바울을 로마로 보낸다. 로마로 가는 도중 바울이 탄 배가 파선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사고로 여러 달 후에 로마에 도착한다. 로마에서 그의 청문회를 기다리며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믿지 않는다. 그는 또다시 이방인들에게 관심을 돌린다. 사도행전이 끝날 때, 바울은 로마에 와서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28:31).

로마서

서론

신약전서에 있는 27권의 책 중 14권은 전통적으로 위대한 전도자 바울의 것이었다. 이 14권의 책은 특정한 사람이나 사회에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다. 정전(正典)으로 인정받은 전통적인 신약전서의 순서에서 이들 14권은 사도행전 다음에 한 묶음으로 정돈되었고 3개의 그릅으로 나누어졌다. 여러 사회에 보내진 9개의 편지들, 개인들에게 보내진 4개의 편지들, 그리고 히브리서이다. 각 그릅에서 길이에 따라 책을 배열하는 것이 정법이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신약전서 배열은 다음과 같다. 로마서, 고리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스리서.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편지들인 로마서, 고린도서전후, 에베서만을 다룬다. 현대 학자들은 이 신약전서 편지들의 7개가 바울 자신이 썼다는 전통적인 2세기 기독교인들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것은 데살로니가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고린도전후서, 그리고 로마서이다. 이 편지들은 바울의 전도 활동이 절정이었던 기원 후 50년과 58년 사이에 쓰여진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문헌이다. 복음 중 가장 오래된 마가복음보다 10년 가량 더 오래되었다.

기원 후 57-58년 겨울, 바울은 그리스 도시 고린도에 있었다. 고린도에서 그는 신약전서에서 가장 긴 하나의 편지를 썼는데 그것은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1:7)에게 보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약전서 편지들처럼, 이 편지는 받는 사람의 이름 로마서로 알려진다. 바울의 편지들은 특정한 위기가 있을 때 그 대응으로 쓰여졌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는 내분을 일으키고 부도덕한 성생활을 한 고린도에 기독교 사회를 질타하기 위해 쓰여졌다. 그러나 로마서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당시 관행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한 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바울의 다른 편지들--예를 들어, 고린도후서--에는 열띤 수사와 개인적인 탄원이 많지만 로마서는 엄숙하고 차분한 투로 쓰여졌다. 시간상 후에 쓰여졌기 때문인 것 같다. 로마서는 현대 학자들이 바울이 썼다고 믿는 7개의 신약전서 편지 중 마지막으로 쓰여진 것으로 그의 생애가 끝날 무렵 바울의 사상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와 달리 로마 교회는 바울 자신이 세운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로마서 16장에는 바울이 로마에 많은 친지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로마서를 썼을 때, 그는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낯선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 편지를 보낼 때, 바울은 로마식으로 차분하고 공평한 투의 글을 쓰게 되었을 것이다.

요약

개인적으로 로마 교회에 친숙하지 않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며 편지를 시작한다. 그는 “사도의 한 사람으로 불려지게” 되었고 그의 임무는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는 것”이다(1:1-5). 바울은 그의 소개에 이어 로마 교회를 추켜세우는 인사를 하고 언젠가 로마에서 설교하고 싶다고 한다. 바울은 그의 편지의 주제를 요약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1:16-17).

바울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가능성을 말하기 전에 인간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것을 경멸하고 우상을 섬겼고, 유대인들은 은밀히 죄를 지으면서 유대 율법에 헌신하겠다고 공언하여 위선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옛날에 유대인들에게 한 약속--할례로 상징되는--은 자동적으로 구원을 주지 않는다고 바울은 말한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다”(2:29). 바울은 결론을 내린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

바울은 죄로부터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를 인용한다. 그는 “믿음에 대한 의로움”(4:13)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고 그것을 자손들에게 전승시켰다. 은총이라는 공짜 선물은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바울은 말을 계속한다. 아담의 타락은 세상에 죄와 죽음을 초래했지만 예수의 희생은 은총과 생명을 가져왔다. 세례의 중요성은 세례가 은총과 순결로 된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죄인은 상징적으로 죽고, 예수의 죽음 속으로 정화되어, 새로운 사람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서는 산 자이다”(6:11).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죄가 아니라 성스러움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 오직 성스러움만이 영생으로 인도한다. 유대의 율법은 더 이상 구속력이 없다. 율법은 죄스러운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이므로 기독교인들은 율법에 대해 죽은 자가 된다.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육신에 따라 살지 말고 영에 따라 살라고(8:4) 한다. 영을 통해 모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적인 자식들이 되고 하나님에 의해 영광을 얻는다. 이것이 기독교인을 위한 힘의 근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바울의 다음 화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의를 유대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구약성서의 약속과 화해시키는 문제이다. 이 부분은 탄식으로 시작된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바울은 하나님의 첫 번째 자녀로 여겨지는 이스라엘인들을 돕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은총에 대한 기독교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언약을 배신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은 “약속의 자녀들”, 이스라엘의 영적인 자녀들이다(10:10, 9:8). 이스라엘의 유전적 자녀들인, 유대인들은 유대의 율법을 구원의 수단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완전히 배척을 받은 것이 아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게 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원래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기독교 교의에 대한 설명을 마친 바울은 로마인에게 긴 권고를 시작한다. 기독교인 생활을 바르게 하는 방법에 관해 충고한다. 조화, 겸손, 그리고 사랑이 그의 주요 관심사이다. 그는 순결, 자제, 복종을 촉구한다. 바울은 다른 편지들에서 강조했던 세계 종말에 관한 주제로 돌아간다. 세계 종말의 시대에는 의롭게 행동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바울은 교회 내에서 종교적 양심에 대해 포용과 자유를 요구한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심판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 즉, 유대 율법을 포기한 사람들은 여전히 유대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수용해야 한다. 바울은 모든 민족에게 퍼지는 하나님의 경배에 관한 구약성서의 인용문들로 이 부분을 끝낸다. 바울은 자신의 전도에 관해 이야기하며 편지를 끝낸다. 그는 자신의 자격들을 통해 그의 권위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다”(15:17). 그는 그리스와 마게도냐의 교회가 모은 헌금을 예루살렘에 전할 거라고 로마인들에게 말한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16장에는 긴 인사말들이 들어있는데 많은 학자들은 후대의 편집자들이 첨가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은 로마 기독교인들에게 인사말을 보내며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16:17)고 로마인들에게 경고한다.

고린도전서

서론

고린도전서는 중요한 초기 기독교 전도자 바울이 쓴 것이라는데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공감한다. 56년 후기와 57년 초기에 바울은 소아시아에 에베소라는 도시에 있었다. 거기에서 그는 그리스의 도시 고린도에 연속적으로 편지를 보낸다. 그는 그곳을 50년과 52년 사이에 방문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기독교 믿음으로 개종시켰다. 고린도는 펠로포네스 반도를 그리스 본토로 연결시키는 지협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적인 이점으로 그곳은 번창한 상업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번영은 이교도적 쾌락주의를 가져왔다. 고린도가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은 고대 세계에 널리 퍼졌다. 고린도에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는 중대한 문제에 대한 그의 우려를 담고 있다. 그것은 고린도의 이교도와 관련된 자유분방한 부도덕이다. 이러한 부도덕이 고린도 교회를 전염시키기 시작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영적 건강에 대해 깊이 우려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그곳을 돌보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가 세운 어떤 곳보다 고린도 교회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신약전서는 고린도전후서 두 개의 편지를 보존하고 있다.

요약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보내는 인사로 고린도전서를 시작한다. 그는 고린도 교회의 믿음과 힘에 대해 감사한다(1:2). 그러나 그는 즉시 교회를 병들게 하는 문제점들을 열거하기 시작한다. 그가 4개의 장을 할애하는 첫 번째 문제는 교회 내 당파에 관한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복음의 여러 전도자에 따라 분열되었다는 것을 바울이 들어서 알고 있다.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1:12). 복음의 모든 전도자는 예수의 하인에 불과하므로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에게로 단결하라고 바울을 강조한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그들의 의견 차이를 제쳐놓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3:23)을 명심해야 한다. 전도자의 위치는 사람들의 지도자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4:1).

바울은 고린도 기독교인들의 여러 가지 부도덕한 경향을 열거한다. 교회 안에 성적 부도덕을 타파하라고 주의를 준다. 교회에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죄인들을 벌주고, 축출하고 그들 가운데 도덕적인 문제들을 판결해야 한다. 종교적 관행에 관한 뚜렷한 혼란에 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바울은 교의에 담겨 있는 원칙을 제시한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7:8-9). 바울은 믿음의 범위 안에서 양심의 자유를 옹호한다. 많은 초기 기독교인들은, 사실상 거의 유대인들이었는데, 할례가 기독교로 개종하는데 전제조건으로 여겼는데, 바울은 할례를 강요하지 않는다. 바울은 다른 기독교인의 양심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면 거짓된 신들에게 바치는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선언한다.

훈계를 멈추고 9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경우를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이 물질적 안락을 버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도덕적 훈계로 돌아와 바울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부도덕과 믿음 부족으로 벌을 받았던 예를 상기시킨다.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우상 숭배와 성적인 부도덕을 피하라고 권고한다. 어떤 음식을 먹는 것을 금지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바울은 공공 경배에 관해 말한다. 남자들은 머리에 아무 것도 덮지 않고 기도해야 하지만 여자들은 기도할 때 머리를 덮어야한다고 말한다. 성찬을 행할 때 자기 몸을 살펴야 한다.

12장과 14장에서 바울은 믿는 사람들의 교회 안에서 영적인 은사들에 대한 사용 규칙을 말한다. 고린도 교회 안에 예언을 하거나 방언을 하는 사람의 예가 많이 있다. 이런 영적인 은사는 여러 사람에게 힘을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모든 은사와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 필수적이다. 믿는 자는 예수의 한 부분이고 자신의 특정한 기능을 수행한다. 바울은 대체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여러 사람을 가르칠 수 없는 방언보다 명쾌한 메시지를 담은 예언을 선호한다. 바울은 사랑의 찬가로 알려진 13장에서 영적 은사에 관한 이야기를 중단한다. 그는 사랑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13:13).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교의적 의문을 설명한다. 그는 핵심적 기독교 교의를 상기시킨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 믿음의 주요한 핵심이다. 모든 죽은 자들이 미래에 부활하는 것은 예수 자신의 부활에서 유래한다. 기독교인의 희생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미래의 부활--영생의 약속--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15:32). 바울은 부활의 본질을 설명한다. 육신은 부활하지 못한다. 영원불멸한 것은 영적인 것이다. 영적인 것의 불멸은 죽음에 대한 믿음의 승리를 의미한다. 바울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15:57). 끝으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모금을 하라고 고린도인들에게 지시한다. 그는 곧 고린도를 방문하고 싶다고 한다. 한편 그의 사자(使者) 디모데를 열렬히 환영하라고 고린도인들에게 촉구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엄명한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6:13-14).

고리도후서

서론

고린도후서는 위대한 초기 기독교 전도자 바울이 쓴 14개 신약성경 편지 중 하나이다. 현대 학자들은 이 많은 편지들의 저자에 관해 논쟁을 벌렸지만 고리도후서를 바울이 썼다는 것에 거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것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고리도후서가 바울이 그리스 도시 고린도에 기독교 신자들에게 썼던 여러 편지들이 결합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편지들은 여러 달에 걸쳐 쓰여졌을 것이다.

고린도전서를 보내 후, 바울의 제자 디모데는 고린도를 방문했는데 그곳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사도행전 19:21-22). 이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바울은 즉시 고린도를 방문했다. 그는 나중에 이 방문이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익명의 적이 바울에게 따졌고 그의 권위를 손상시켰다. 바울은 “회초리”를 가지고 고린도에 갈 거라고 위협했지만,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고린도를 떠나면서 바울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편지를 보낼 때까지 다시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편지는 분실되었을 지 모른다. 또한 이 편지가 고린도후서 10-13장일 지도 모른다. 이 장들은 전 장에서의 낙천주의가 흔들리고 이미 해결된 논쟁을 다시 벌려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다. 고린도인들이 이 고통스런 편지를 받은 직후 바울의 다른 제자 디도가 고린도를 방문하고 바울의 편지 때문에 그들이 회개한 것을 알게된다. 17년 초 가을에, 고린도인들이 회개했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고린도후서가 되었다.

요약

고리도후서는 긴 인사말과 감사 기도로 시작된다(1:1-11). 바울은, 그의 제자 디모데와 함께 글을 쓰면서, 근래 겪었던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가 받은 격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바울은 그의 행동, 특히 고린도 교회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고무된 것이라고 한다. 그가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고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결정된 것이다. 애통한 편지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2:4). 그는 회개한 사람들에게 그가 전에 방문했을 때 그를 괴롭혔던 익명의 적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한다.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의 소명을 정당화하려고 애쓴다. 하나님의 사절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바울은 담대히 말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바울은 그의 전도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는 사도로서 많은 고난을 당하지만 자존심과 대담성을 잃지 않는다. 믿음의 인도를 받아 바울은 인간을 위해 서슴지 않고 그의 생명을 바친다. 하나님의 사제로서 어떤 억압을 받더라도, 바울은 “하나님이 지은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고”(5:1) 결국 보답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한다. 하나님이 그를 정당하게 심판하는 것처럼, 고린도인들도 그를 정당하게 심판해달라고 바울은 요청한다.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5:11). 바울은 복음 전파의 임무를 받은 “하나님의 의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한다. 그는 억압받는 하나님의 사도로서 역설적인 지위를 상기시키며 그의 소명이 중요하고 진정한 것이라고 한다.

바울의 마음은 고린도인들에게 활짝 열려있고 그의 소명에 개인적이 기쁨을 느낀다고 정직하게 말한다. 그는 고린도인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마음을 열고, 정직하게 그를 대접하고, 정당하게 그를 심판해주기를 요청한다. 바울은 잠시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에 관해 경고한 후, 격려의 말을 계속한다. 디도는 바울이 보냈던 책망의 편지에 대해 고린도 교회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의 편지를 받고 괴로웠지만 그들은 회개했다. 바울은 이제 고린도 교회에 자신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한다. 8-9장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너그럽게 모금을 하라고 한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8:7).

10-13장은 바울이 전에 고린도인들에게 보냈던 괴로운 편지의 나머지 부분이다. 이 장들은 7-9장의 화해의 승리에서 갑자기 바뀐다. 10-13장은 사도로서 바울의 소명을 맹렬히 변호하고 그의 비판자들을 강하게 질책한다. 바울은 전도를 위해 그가 겪었던 고난을 자세하게 말한다.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으니”(11:23). 바울은 예수가 선택한 원래의 12제자들보다 그가 못하지 않다고 한다.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12:12). 바울은 사도로서 자격이 있으므로, 고린도인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의 설교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 그 속에 들어있다. 그는 이 어려운 편지를 그들에게 보내며 말한다.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13:10). 결론적으로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기쁨, 공동의 조화, 그리고 평화를 바란다.

요한계시록

서론

요한계시록은 신약전서의 다른 부분과 크게 다르다. 거기에는 날개가 달리고 사나운 무리들, 메뚜기 재앙, 머리가 7개인 짐승들이 나온다. 계시록에는 애매하고 환상적인 상징과 신비적인 언급이 많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적인 구조가 없다. 이야기와 설교가 혼합된 다른 신약전서의 책들과는 달리, 계시록은 본질적으로 영감에 의한 미래상을 길게 기록한 것이다. 난해한 상징에 대한 해설이 없다. 계시록은 수천년 동안 암호로 읽혀졌다. 제대로 해석이 되면 역사의 비밀과 세계의 종말을 밝힐 것이다. 계시록에 나오는 숫자와 기호는 고대와 현대 역사에 충격적인 사건의 수로 여겨졌다.

계시록은 초기 성장과 혼란의 시대와 종말론 문학에 대한 오래된 유대의 전통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구약전서 중 에스겔서와 스가랴서에는 계시 부분이 많다. 가장 유명한 구약전서의 계시인 다니엘서는 기원 전 165년경에 쓰여졌다. 계시에 관한 장르는 기원 후 70년부터 더욱 인기가 높아졌다.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 사원이 파괴되었을 때, 바루크서와 에스라서 같은 외전(外典) 계시서들이 쓰여졌다. 독특한 특색을 가진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구분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계시 문학이 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초자연적인 존재, 난해한 상징, 애매한 숫자, 괴상한 형상, 심판의 날이나 세계 종말에 관한 우려를 통해 인간에게 계시를 하는 것이다. 계시 문학은 결정론적인 역사관을 갖는 경향이 있다. 즉, 역사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정해놓은 길을 따른다는 믿음에서 계시가 생긴다. 계시 장르의 모든 특징들이 계시록에 들어있다.

요약

계시록은 서론에 저자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고 종말이 가까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요한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7개 주요 중동 도시에 있는 기독교 사회에 인사를 보낸다. 안식일에 요한은 예언자의 환희에 빠진다. 그는 빛나는 예수의 영상을 본다. 그는 7개의 별과 7개의 램프 스탠드로 둘러싸였다. 이것들은 아시아에 7개 교회를 상징한다. 2장 1절에서 3장 22절에 요한은 각 교회에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각 교회의 장단점을 말하고, 어떤 교회는 격려하고 어떤 교회는 심판의 날이 되기 전에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예수는 그들에게 그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요한의 계시적 경험 중 전반은 천국의 문이 열리면서 시작된다. 한 목소리가 그에게 말한다. “이리 올라와라.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너에게 보여주겠다”(4:1). 요한은 24명의 장로에게 둘러싸여 권좌에 앉아있는 하나님을 본다.

번개가 비치고 천둥이 울린다. 6개의 날개와 많은 눈을 가진 구약성경의 천사들이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하나님은 7개의 봉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 책을 들고 있다. 예수만이 그의 희생으로 봉인을 떼어낼 수 있다. 예수는 여기에서 “죽음을 당해 서 있는 어린 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대 부족의 사자”처럼 보이기도 한다(5:5-6). 처음 네 개의 봉인을 뜯고 예수는 4명의 말 탄 자들, 즉, 승리, 전쟁, 기근, 그리고 역병을 내보낸다. 다섯 번째 봉인이 뜯기자 순교자들의 영혼이 정의를 실현해달라고 외친다. 그러나 정해진 수의 사람들이 순교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듣는다. 여섯 번째 봉인이 뜯기자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격변이 발생한다.

일곱 번째 봉인을 뜯기 전에 한 천사가 하나님의 봉인으로--이스라엘의 각 부족에서 12000명씩--144,000명의 사람을 표시한다. 다가올 재난에서 그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다른 의로운 사람들도 구조될 것이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큰 무리”가 자신들을 정죄하고 그들도 보호를 받을 것이다(7:9). 드디어 일곱 번째 봉인을 뜯을 때이다(8:1). 그러나 봉인을 여는 것은 점강적(漸降的)이다. 봉인이 열리자 일곱 개의 나팔이 나온다. 네 개의 나팔이 불자 각각 재난과 파괴가 발생한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8:6-12). 다섯 번째 나팔이 불자 심연에서 나오는 굴뚝의 문이 열리고 괴상한 메뚜기들이 연기 속에서 나와 하나님의 봉인 표시가 없는 모든 사람들을 쏜다. 여섯 번째 나팔이 불자 거대한 기병들이 나와 “인간의 3분의 1”을 죽인다(9:18). 그러나 생존한 자들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부도덕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일곱 번째 나팔을 불어서 “하나님의 신비”를 즉시 실현시키라고 한다(10:7).

예언자는 두루마리 책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것은 입에 달지만 속에서는 쓸 것이다(8:10). 두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러 일어설 거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들은 1,269일 후에 “끝이 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11:7). 하나님은 이 예언자들을 소생시키고 강력한 지진으로 예루살렘을 칠 것이다. 마침내 일곱 번째 나팔이 불고 요한은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11:15). 번개, 천둥, 지진, 우박과 함께 정의, 징벌, 승리를 위한 순간이 왔다.

계시록의 후반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역이 열리면서 시작된다. “해를 입고 발 아래 달이 있는” 여인이 아기를 낳는데, 그는 7개의 머리와 10개의 뿔을 가진 거대한 붉은 용에게 거의 잡혀 먹힐 뻔한다(12:1). 그 아기는 용에게서 구조되고 하늘로 보내진다. 천사장 미가엘은 사단인 용과 싸워 이기고 그를 천국에서 몰아낸다. 용은 여인을 계속 추격하지만 그녀는 다시 도망친다. 그는 그녀의 자식들과 전쟁을 벌린다. 용은 “짐승”으로 알려진 굉장한 존재에게 힘을 주고, 그는 성자들과 싸우고 하나님을 저주한다(13:4). 거짓 예언자가 “또 다른 짐승”으로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첫 번째 짐승을 경배하라고 설득한다(13:11). 그 예언자는 예수와 예루살렘 시온산에 숨어있는 144,000명의 의인들을 본다. 그는 심판의 날이 가까웠으며 큰 성 바빌론--로마 제국을 상징한다--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천사들은 포도주를 짜듯 사악한 자들에게서 피를 짜낸다. 의로운 자들이 모세와 예수에게 찬송가를 부를 때, 7명의 천사들은 일곱 사발의 질병을 지구에 쏟아 사악한 자들에게 고통과 파멸을 준다. 사람들은 회개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저주한다. 일곱 번째 사발을 퍼붓자, “이제 되었다”(16:17)는 소리가 들린다.

요한은 바빌론의 창녀의 모습을 본다. 그녀는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것이다. 한 천사가 바빌론이 함락되었다고 알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사악한 자들과 함께 벌을 받지 않도록 로마를 떠나라고 경고한다. 로마와 장사를 해서 먹고살던 사악한 사람들은 로마의 몰락을 애도하지만 의로운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의 권좌 주위에 많은 목소리들이 그 소식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어린 양, 예수는 곧 그의 “신부”, 하나님의 독실한 신자와 혼인할 거라고 발표한다(19:7). 요한은 결혼 발표문을 쓰라는 명령을 받는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19:9). 마지막 전투에서 하늘 문이 열리고,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사가 된 예수는 짐승과 지상의 왕들과 싸우기 위해 하늘에 있는 군대를 인도한다(19:11).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불타는 호수에 던져지고 다른 예수의 적들은 죽음을 당한다. 성자들과 함께 예수는 1000년 동안 다스린다. 그 1000년이 끝날 때, 사단은 그의 세력 곡과 마곡을 규합하여 다시 성자들과 싸우지만 그들은 불에 타죽는다. 사단 역시 불 구덩이에 던져진다. 곧 이은 심판의 날에 모든 사람은 부활하고 “그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20:12). 심판의 날 후에, 요한은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새로운 성도(聖都)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21:1). 새로운 예루살렘은 빛나며 완벽하다. 보석으로 조각이 되고 하나님과 예수의 영광으로 빛난다. 그들은 거기에 성전 대신 존재한다. 요한은 그가 받았던 환상을 널리 알리라는 명을 받는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22:10). 계시록이 끝날 때, 하나님이 곧 와서 의로운 자들을 보상하고 사악한 자들을 징벌할 거라고 요한 자신이 약속한다.

<신약성서>

작가와 작품에 관해

신약성서는 기독교 성경의 두 번째 부분으로 분량이 적다. 수 백년의 역사를 가진 구약성서와는 달리 신약성서는 겨우 수 십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며, 기독교의 종교적 가르침과 신앙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신약성서는 한 사람이 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어로 쓴 27권의 책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신약성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많은 사람들은 신약성서를 절대적으로 진실한 경서로 보고, 그것의 가르침을 신앙 체계의 기초로 삼는다. 어떤 성서 학자들은 신약성서를 종교적 신화들을 묘사하기 위해 아름다운 시를 사용한 문학 작품으로 해석한다. 어떤 학자들은 그것의 윤리적 그리고 철학적 사상을 연구한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어떤 가치관을 주입시키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의 책들은,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1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쓰여졌다. 많은 이야기들이 유대교의 의식과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수 그리도와 그의 제자들이 모두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 그리고 유대의 전통이 신약성서의 정치, 사회, 경제적 배경을 주도한다. 당시 유대교는 단일한 전통이나 신앙 체계가 아니었고, 그 자체 속에 여러 다른 분파가 들어있었다. 이런 분파들이 신약성서 이야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장 엄격한 유대인들인 사두개 파는 상류층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경전을 고지식하게 해석했고, 의식에 집착했다. 그들은 구전(口傳)과 헤브루 성경 즉, 구약성서에 언급되지 않은 영생에 대한 개념에 반대했다. 사두개 파와 대조적으로 바리새 파는 평신도들을 위해 유대의 율법을 해석했고, 신전 밖에서 유대인의 생활을 정립했다. 그들은 경전을 보다 너그럽게 받아들였으며 구전(口傳)과 예언자들의 말까지도 경전처럼 여겼다.

그리스도가 살았던 당시, 유대교에는 엄격한 사회 계급이 있었다. 신전과 그곳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은 순결하고, 성스럽고, 다른 누구보다 하나님에게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다. 유대인으로 출생한 사람들이 우선이고,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뒤를 따르는 계급 조직은 계속되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불순하고 하나님에게 봉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태어난 것이 개인의 순결을 결정한다는 제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개인의 순결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현재 신약성서를 구성하는 책들의 저자들은 구약성서를 대치하거나 그것에 맞서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독교 경전들은 원래 초기 교회의 필요에 따라 실용적인 서류로 작성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신약성서”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예수가 죽은지 100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신약성서를 유대인 경전의 대치가 아니라 구약성서에 나온 약속들을 실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신약성서의 역사적 배경은 우리가 그것을 문학으로 해석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성경의 많은 저자들은 역사적으로 그들의 시기에 생긴 쟁점과 문제점들을 말한다. 그리고 성서 시대의 다양한 문화적 지식은 주인공들의 동기와 반응을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더구나, 영향력 있는 종교의 교리로서 신약성서의 역할은 또 다른 배경이다. 종교적 문서를 문학으로 읽으려면 작품을 둘러싼 사건들에 대한 특별한 이해력이 요구된다.

2세기에 비로소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수집한 경서들을 “신약성서”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있는 신약성서는 27권으로 되어있지만, 원래 전체가 일관되게 쓰여진 것은 아니다. 예수 자신은 그의 행적에 관해 하나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신약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대개 예수가 죽은 후에, 초기 교회의 필요에 의해 쓰여졌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던, 대략 기원 후 30년경에,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세계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기원 후 60년 중반에, 예수를 알았고 직접 그의 행동을 목격했던 최초의 기독교인들이 대부분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의 생을 증거할 기록을 만드는 것이 필요해졌다. 예수의 재림이 지연되자, 교회의 지도자들은 초기 기독교 교회가 존속하게 해줄 책들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신약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크게 3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4개의 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복음이다. “복음”이란 "좋은 소식“이란 뜻이다. 복음서들이 말하는 ”좋은 소식“이란 나사렛 예수의 생애, 가르침, 십자가에 달림, 그리고 부활이다. 복음서들은 보통, 마태복음을 선두로, 신약성서 가운데 처음으로 나온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순서는 연대가 아니라 중요성에 따른 것이다. 복음서들은 기원 후 65년에서 110년 사이에 쓰여졌는데, 마가복음이 맨 처음이고, 요한복음이 맨 마지막으로 쓰여졌다.

신약성서의 두 번째 범주는 바울이 보낸 서한들이다. 타르소스의 바울은 초기 교회의 지도자이며 예수의 복음을 로마 제국에 전파한 정력적인 전도자였다. 그는 유대인 뿐 아니라 전도 활동의 최초 목표였던 이방인들에게 전도했다. 바울은 지중해 전역에 퍼진 다양한 기독교 사회에 많은 편지를 써서, 교의를 정착시켰고, 새로운 기독교인들에게 신앙 문제를 가르쳤다. 2세기 말경에, 기독교 사회는 바울이 썼다는 13개의 서한을 수집했고, 각 서한은 그것이 보내진 지역 사회나 개인의 이름으로 알려졌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이다. 14번째 서한 히브리서는, 동방 교회에서 오래 전에 받아들여졌는데, 서방 교회에서는 4세기에 받아들여졌다. 이들 서한의 실제 저자와 저작 연대에 관해 진지한 논쟁이 있었지만 바울이 50년대에 썼다는 것에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신약성서의 다른 책들은 분류하기가 약간 어렵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연속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후, 여래 해 동안 교회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이방인 세계 각처로 퍼지는 교회의 확장을 추적한다. 그 책의 주인공들은 예수와 가장 가까웠고, 12제자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와 가장 위대했던 초기 기독교 전도자 타르소스의 바울이다. 이밖에 신약성서에는 모든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7개의 서한이 포함된다. 이 서한들은 바울의 편지 후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그리고 유다서이다. 마지막으로 계시록은, 1세기말에 쓰여졌는데, 세계의 종말과 예수의 재림에 관한 사건들을 예언하는 책이다.

초기에 교회는 크게 분산되었다. 개별적인 교회 사회가 나름대로 성스러운 문서들을 수집했다. 동방과 서방의 지적인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교회의 분산은 심화되었다. 동방은 로마 제국이 분리된 후 비잔티움에 통치를 받았고,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은 로마가 중심이었다. 개별적인 교회가 모여 성스러운 책들에 관한 기준을 정하는 과정 그리고 그런 책들을 보존한 과정은 분명하지 않다. 성전으로 승인하는데 중요시했던 기준은 문서의 저자이다. 마태와 같은 사도가 쓴 글 그리고 바울처럼 직접 예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쓴 글에 우선권이 주어졌다. 그리고 문서에 들어있는 교의의 중요성과 인정된 정도를 고려했다. 서기 200년 전후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4개 복음서, 바울의 13개 서한, 사도행전, 베드로전서, 요한일서를 포함한 20개 작품의 신성을 받아들였다. 나머지 7개 작품--히브리서, 계시록, 야고보서, 요한이,삼서, 유다서, 베드로후서--은 2세기에서 4세기까지 인용되었고, 일부 교회에서 성서로 받아들였다. 결국, 4세기말경에, 27권의 정전(正典)에 관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과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널리 인정을 받았다.

신약성서의 책들은 당시 학문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쓰여졌고, 장과 절로 구분되었다는 것에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작가와 작품에 관해

신약성서는 기독교 성경의 두 번째 부분으로 분량이 적다. 수 백년의 역사를 가진 구약성서와는 달리 신약성서는 겨우 수 십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며, 기독교의 종교적 가르침과 신앙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신약성서는 한 사람이 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어로 쓴 27권의 책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신약성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많은 사람들은 신약성서를 절대적으로 진실한 경서로 보고, 그것의 가르침을 신앙 체계의 기초로 삼는다. 어떤 성서 학자들은 신약성서를 종교적 신화들을 묘사하기 위해 아름다운 시를 사용한 문학 작품으로 해석한다. 어떤 학자들은 그것의 윤리적 그리고 철학적 사상을 연구한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어떤 가치관을 주입시키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의 책들은,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1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쓰여졌다. 많은 이야기들이 유대교의 의식과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수 그리도와 그의 제자들이 모두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 그리고 유대의 전통이 신약성서의 정치, 사회, 경제적 배경을 주도한다. 당시 유대교는 단일한 전통이나 신앙 체계가 아니었고, 그 자체 속에 여러 다른 분파가 들어있었다. 이런 분파들이 신약성서 이야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장 엄격한 유대인들인 사두개 파는 상류층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경전을 고지식하게 해석했고, 의식에 집착했다. 그들은 구전(口傳)과 헤브루 성경 즉, 구약성서에 언급되지 않은 영생에 대한 개념에 반대했다. 사두개 파와 대조적으로 바리새 파는 평신도들을 위해 유대의 율법을 해석했고, 신전 밖에서 유대인의 생활을 정립했다. 그들은 경전을 보다 너그럽게 받아들였으며 구전(口傳)과 예언자들의 말까지도 경전처럼 여겼다.

그리스도가 살았던 당시, 유대교에는 엄격한 사회 계급이 있었다. 신전과 그곳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은 순결하고, 성스럽고, 다른 누구보다 하나님에게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다. 유대인으로 출생한 사람들이 우선이고,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뒤를 따르는 계급 조직은 계속되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불순하고 하나님에게 봉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태어난 것이 개인의 순결을 결정한다는 제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개인의 순결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현재 신약성서를 구성하는 책들의 저자들은 구약성서를 대치하거나 그것에 맞서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독교 경전들은 원래 초기 교회의 필요에 따라 실용적인 서류로 작성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신약성서”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예수가 죽은지 100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신약성서를 유대인 경전의 대치가 아니라 구약성서에 나온 약속들을 실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신약성서의 역사적 배경은 우리가 그것을 문학으로 해석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성경의 많은 저자들은 역사적으로 그들의 시기에 생긴 쟁점과 문제점들을 말한다. 그리고 성서 시대의 다양한 문화적 지식은 주인공들의 동기와 반응을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더구나, 영향력 있는 종교의 교리로서 신약성서의 역할은 또 다른 배경이다. 종교적 문서를 문학으로 읽으려면 작품을 둘러싼 사건들에 대한 특별한 이해력이 요구된다.

2세기에 비로소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수집한 경서들을 “신약성서”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있는 신약성서는 27권으로 되어있지만, 원래 전체가 일관되게 쓰여진 것은 아니다. 예수 자신은 그의 행적에 관해 하나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신약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대개 예수가 죽은 후에, 초기 교회의 필요에 의해 쓰여졌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던, 대략 기원 후 30년경에,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세계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기원 후 60년 중반에, 예수를 알았고 직접 그의 행동을 목격했던 최초의 기독교인들이 대부분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의 생을 증거할 기록을 만드는 것이 필요해졌다. 예수의 재림이 지연되자, 교회의 지도자들은 초기 기독교 교회가 존속하게 해줄 책들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신약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크게 3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4개의 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복음이다. “복음”이란 "좋은 소식“이란 뜻이다. 복음서들이 말하는 ”좋은 소식“이란 나사렛 예수의 생애, 가르침, 십자가에 달림, 그리고 부활이다. 복음서들은 보통, 마태복음을 선두로, 신약성서 가운데 처음으로 나온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순서는 연대가 아니라 중요성에 따른 것이다. 복음서들은 기원 후 65년에서 110년 사이에 쓰여졌는데, 마가복음이 맨 처음이고, 요한복음이 맨 마지막으로 쓰여졌다.

신약성서의 두 번째 범주는 바울이 보낸 서한들이다. 타르소스의 바울은 초기 교회의 지도자이며 예수의 복음을 로마 제국에 전파한 정력적인 전도자였다. 그는 유대인 뿐 아니라 전도 활동의 최초 목표였던 이방인들에게 전도했다. 바울은 지중해 전역에 퍼진 다양한 기독교 사회에 많은 편지를 써서, 교의를 정착시켰고, 새로운 기독교인들에게 신앙 문제를 가르쳤다. 2세기 말경에, 기독교 사회는 바울이 썼다는 13개의 서한을 수집했고, 각 서한은 그것이 보내진 지역 사회나 개인의 이름으로 알려졌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이다. 14번째 서한 히브리서는, 동방 교회에서 오래 전에 받아들여졌는데, 서방 교회에서는 4세기에 받아들여졌다. 이들 서한의 실제 저자와 저작 연대에 관해 진지한 논쟁이 있었지만 바울이 50년대에 썼다는 것에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신약성서의 다른 책들은 분류하기가 약간 어렵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연속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후, 여래 해 동안 교회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이방인 세계 각처로 퍼지는 교회의 확장을 추적한다. 그 책의 주인공들은 예수와 가장 가까웠고, 12제자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와 가장 위대했던 초기 기독교 전도자 타르소스의 바울이다. 이밖에 신약성서에는 모든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7개의 서한이 포함된다. 이 서한들은 바울의 편지 후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그리고 유다서이다. 마지막으로 계시록은, 1세기말에 쓰여졌는데, 세계의 종말과 예수의 재림에 관한 사건들을 예언하는 책이다.

초기에 교회는 크게 분산되었다. 개별적인 교회 사회가 나름대로 성스러운 문서들을 수집했다. 동방과 서방의 지적인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교회의 분산은 심화되었다. 동방은 로마 제국이 분리된 후 비잔티움에 통치를 받았고,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은 로마가 중심이었다. 개별적인 교회가 모여 성스러운 책들에 관한 기준을 정하는 과정 그리고 그런 책들을 보존한 과정은 분명하지 않다. 성전으로 승인하는데 중요시했던 기준은 문서의 저자이다. 마태와 같은 사도가 쓴 글 그리고 바울처럼 직접 예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쓴 글에 우선권이 주어졌다. 그리고 문서에 들어있는 교의의 중요성과 인정된 정도를 고려했다. 서기 200년 전후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4개 복음서, 바울의 13개 서한, 사도행전, 베드로전서, 요한일서를 포함한 20개 작품의 신성을 받아들였다. 나머지 7개 작품--히브리서, 계시록, 야고보서, 요한이,삼서, 유다서, 베드로후서--은 2세기에서 4세기까지 인용되었고, 일부 교회에서 성서로 받아들였다. 결국, 4세기말경에, 27권의 정전(正典)에 관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과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널리 인정을 받았다.

신약성서의 책들은 당시 학문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쓰여졌고, 장과 절로 구분되었다는 것에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주석: 이 글은 영어로 된 것을 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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