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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 / 권오길

외딴집 |2003.12.07 07:52
조회 250 |추천 0

 





세월이라는 것이 뭐란 말인가. 어느 것 하나 말라비틀어지고 삭아빠지는 풍화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머리카락도 대통같이 속이 텅 비어버려서 거기에 공기가 그득 들어간다. 문제는 공기(空氣)에 있다!
어찌 살았든 정년 2년을 남겨둔 내 모습이 그리 추하지는 않아 보인다. 얼굴엔 그래도 물기가 배어 있어 아직은 살금(주름살) 하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머리로 올라가면 말이 아니다. 완전히 털이 세어 백새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늙지 않으려면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니, 동안학모(童顔鶴毛)의 모습이 바로 나일 터, 하고 억지로 버텨나가고 있다. 동심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쓴다는 말이 더 맞다.
사실 어느 털이나 가장 안(속)쪽에는 공기가 조금씩 들어 있다. 살 밑에서 털이 만들어져서 자라나는 과정을 보면, 멜라닌(melanin)이라는 검은 색소가 털뿌리[毛根]에 쌓이고 공기도 조금 묻어 들어간다. 그러나 병을 앓거나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면, 또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색소 침착(쌓임)이 제대로 안 되고 공기는 더 많이 들어가서 안이 대나무 꼴로 비어버린다. 이게 바로 흰머리라는 것이다. 속 빈 털이 백모(白毛)인 것이다. 물론 내림, 즉 유전이 가장 큰 몫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속일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것이 유전물질 DNA라는 요술방망이다. 머리터럭 하나에도 이 놈이 묻어나오니 기가 막힌다. 대물림 씨는 못 속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털이 하얀 것은 멜라닌도 멜라닌이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공기가 주범이다. 공기가 햇살을 받으면 빛을 산란(散亂)하기에 털이 희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눈송이가 희게 보이는 것은 송이 틈에 든 공기의 빛 산란이요, 흰 꽃의 꽃잎이 뽀얗게 보이는 것도 세포 틈새를 채우고 있는 공기 때문이다. 대야에 눈을 가득 담아서 볼 때는 눈이 희지만 거기에 물을 부어버리면 공기가 빠져나가 흰색이 사라져버린다. 흰 꽃잎을 하나 따서 손가락으로 꼬옥 눌러보자. 안에 들어 있던 공기가 빠져 무색으로 바뀐다. 이처럼 머리털 속의 공기가 빛을 산란시켜 머리카락이 하얘지는 것이다.
손가락을 꺾으면 보통의 성인들은 거의 딱! 하는 소리가 난다. 발가락도 비틀면 그런 소리를 낸다. 왜 그럴까. 손마디는 다름아닌 관절이다. 무릎, 팔, 목 등 모두 구부리고 펴고 틀 수 있는 뼈마디가 모두 관절이다. 관절의 두 뼈 끝에는 말랑말랑한 연골(물렁뼈)이 붙어 있고 연골과 연골 사이에는 액체가 들어 있어 움직임을 원활케 한다. 그런데 역시 나이 먹으면 그 사이에 공기가 들어차게 된다. 손가락을 비틀어 꺾으면 두 뼈 사이에 들어 있던 공기가 눌려 밖으로 비켜 나가면서 딱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일종의 마찰음인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마찰적 파동(음파)’이라 한다. 그런데 소리가 난 손가락뼈는 곧바로 다시 비틀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즉 공기가 뼈 사이로 들어온 후 다시 소리를 내는 것만 봐도 그 소리가 ‘공기’ 탓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세 살배기 어린이의 손발가락은 꺾어보아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늙으면 조금만 허기져도 뱃속에서 ‘꼬르르’ 소리를 내는 것도 공기요, 그것이 밖으로 나갈 때 항문 괄약근을 떨게 해서 내는 소리가 방귀다.
대체 늙음이란 어떤 것일까. 머리털에 기름기 빠지고 얼굴에 주름살 지며, 속 비어 굽어지는 허리뼈에서만 늙정이를 보는 것이 아니더라. 머리털 속이 텅텅 비고 뼈마디에 바람 들고, 대장에 가스 차는 것도 늙어빠짐이렷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서울대 생물학과 동 대학원 졸업. 여러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중. 강의와 저술을 통해 생물학을 대중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꿈꾸는 달팽이』『인체기행』『생물의 죽살이』『개눈과 틀니』『생물의 애옥살이』등 많은 책을 펴냈다. 지난 4월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http://cc.kangwon.ac.kr/~ok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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