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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광소녀 관찰기 #4 - 방문

제이드 |2008.07.13 19:57
조회 311 |추천 0

#4 : 방문

 




 

- 야, 집에 있으면서 왜 전화도 안 받고 그래...엇?!

 

문이 열리는 것과 남자의 말이 끝나는 것, 그리고 무언가에 놀란 짧은 신음이 튀어 나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 남자는 대학선배 김성준. 대학 내내 함께 수업을 들으며 붙어 다녔고 직장도 함께 입사했다. 그리고 함께 퇴사했다. 첫 직장 퇴사 후 나는 다른 직장을 전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사회인으로 남아있었던 것에 반해 성준선배는 지금까지 쭈욱 백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도 근처라 가족들의 눈치가 보이거나 심심할 때면 늘 우리 집에 머물곤 했다. 그런데 하필 이런 타이밍에 올 줄이야.

 

- 누...누구?

 

처음 보는 여자, 더군다나 이 누추한 장소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미모의 여인이 나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선배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게 묻는다.

 

- 아 선배님...그러니까...

 

- 우린 사랑하는 사이에요.

 

일 났다. 뭐라 변명하기도 전에 그녀가 선수 쳐버렸다. 다짜고짜 사랑하는 사이라니. 뒷감당을 어찌 하라고.

 

- 네? 그럼 둘이 애인사이?

 

한층 더 놀란 얼굴이 된 선배가 나와 그녀를 번갈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당황스러운 건 오히려 나인데…….

 

- 야, 이민중. 너 다시 봤다. 언제 나 몰래 이런 미인을 낚았어? 능력 좋은데?

 

- 아니에요 선배. 그런 게 아니고...

 

-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구만. 제수씨 민중이 잘 부탁드립니다. 여자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알고 보면 괜찮은 애에요 하하.

 

선배는 어쩐지 굉장히 신나하며 그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 그런데 제수씨는 이름이 뭐에요?

 

이런, 큰일이다. 이 여자의 성향으로 보아 분명 ‘말씀드려도 모를꺼에요. 전 빛 언어를 쓰는 태양인이니까요. 굳이 지구인간언어로 바꾸자면 태양의 노래, 라고나 할까요?’ 라고 대답할게 뻔하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나는 안간힘을 써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답을 한다. 태양의 노래. 태양의 노래라...영어로 바꿔보면 Sunny Song. 써니 쏭. 서니 송. 송 서니. 송선희. 그래 그럴싸하다. 이걸로 밀고 가자.

 

- 선희에요, 송선희.

 

그녀가 또 사고치기 전에 얼른 대답해 버렸다. 내 속 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생글생글 웃고만 있다.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여서 더 얄미웠다.

 

- 아, 선희씨. 반가워요 선희씨.

 

성준선배가 웃으며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녀는 잠시 선배를 쳐다보더니 이내 손을 내밀었다. 선배는 알까? 저 손이 불을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손이라는 것을? 설마 악수하다가 선배를 통째로 태워버리는 건 아니겠지?

 

- 반가워요 선배씨.

 

선배씨라니...내가 선배, 선배 하니까 그게 이름인줄 알았나보다.

 

- 하하하, 저는 성준입니다. 김성준. 우리 민중이 잘 부탁 드려요.

 

성준선배는 특유의 시원한 웃음과 함께 본인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 민중이와는 대학 때부터 쭉 같이 다녔죠. 저 없이는 여자 화장실 앞도 못 지나가던 소심한 놈인데 이렇게 미인과 사귀게 될 줄이야, 하하.

 

내가 언제 그랬다고...저놈의 허풍은 멈출 날이 없다니까.

 

- 아무튼 잘 사귀기 바래요. 혹시 민중이 과거가 궁금하면 언제든 저한테 물어보세요, 저놈에 대한건 제가 모르고 있는 게 없으니까 하하.

 

선배는 내게 애인이 생긴 게(물론 절대 사실이 아니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허허 거리며 썰을 푼다. 과연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불안하기도 하지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 네 성준씨, 그런데 민중이가 누구죠? 누군데 자꾸 저한테 부탁하고 그러세요?

 

- 네?

 

예상치도, 기대하지도 않은 반응 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아직 그녀에게 이름조차 알려준 적이 없었다. 어찌 보면 나의 불찰이다. 그나저나 이건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야, 이민중. 어떻게 된 거야? 너 가명이라도 썼냐?

 

선배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위기다.

 

- 아 그게...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름도 모르는 애인이라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몰라 눈만 굴리고 있는데 순간 옆방에 놓인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 사실 저희 어젯밤에 처음 만났거든요, 채팅하다가. 그래서 제 아이디만 알지 이름은 아직 잘 기억 못해요. 제 아이디 아시잖아요 ‘제이드’.

 

- 그런 거야? 그럼 어젯밤 처음 만났는데 사귀기로 한 거야?

 

- 네, 뭐 그렇게 됐어요. 하하…….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다행이도 내가 말을 하고 있을 때엔 그녀가 끼어들지 않는다. 자기도 무언가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내가 당황하는 꼴을 즐기고 있는 걸까?

 

- 가만. 어젯밤 처음 만났는데 오늘 아침까지 같이 있었어? 그것도 집에서? 오호, 너 보통이 아니구나. 순진한줄 알았는데 완전 선수였네.

 

- 아...아니에요 선배.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점점 꼬여만 가는 당황스러운 전개에 등뒤로 식은땀에 맺히기 시작했다.

 

-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젯밤에 뭐했어? 응?

 

선배는 음흉한 눈빛과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 아니 저는 그저...

 

- 잠만 잤어요.

 

지금껏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것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결정적인 대답으로.

 

- 네?

 

- 제가 밤새 지켜봤는데요, 그냥 누워서 잠만 잤어요. 제가 옆에서 뜨겁게 해줬는데 아침에야 겨우 일어나더라구요.

 

- 정말요? 이거 이거 안 좋은데. 젊은 놈이 이렇게 예쁜 애인을 옆에 두고 그냥 잠만 자? 더군다나 화끈하게 달아 올라 있는데? 선희씨, 이해해 주세요. 이놈 이거 경험이 너무 없어서 그래요. 제가 차차 가르칠 테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한 달만 지나면 완전히 밤의 제왕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 선배 농담 그만하세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어떻게 수습은 된 것 같지만 분위기가 굉장히 야릇해 졌다. 이쯤에서 그녀와 관련된 대화는 중단시켜야 한다. 더 이상의 돌발 상황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 그나저나 선배. 아침부터 웬일이에요? 저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 웬일은, 아침부터 또 꼰대가 잔소리 해대 길래 나와 버렸지. 그리고 오늘 토요일이잖아. 네가 집에 없을 거라곤 생각 안했지.

 

아, 오늘이 토요일이었구나. 참 시끌벅적한 주말의 시작이네.

 

- 그렇구나. 선배 아침식사는 했어요? 전 아직 안했는데. 뭣 좀 먹으러 갈까요?

 

- 아니야. 괜찮아. 그냥 잠깐 뭉개고 있으려고 온 거였으니까. 난 그만 가볼게. 둘의 달콤한 주말 아침을 방해할 만큼 눈치 없진 않다 난.

 

- 괜찮아요 선배. 우리 나가요.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만 못이기는 척 한번 더 권해봤다. 

 

- 넌 괜찮을지 몰라도 선희씨는 안 그럴걸. 너 선희씨한테 미움 안 받으려면 나한테 많이 배워야겠다. 내가 나중에 시간 한번 내서 필승 연

애법을 전수해 줄 테니까 그때까지 차이지나 말고 잘 버텨라. 난 그만 가볼랜다. 선희씨 그럼 다음에 봐요.

 

- 네...그럼 잘 가요 선배.

 

나는 아쉬운 척 하며 선배에게 인사 했지만 속으로는 '빨리 가버려라'라고 외치고 있었다.

 

- 아, 그런데 선희씨...

 

뒤돌아 나가려던 선배가 갑지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뒤돌아보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갈것이지 뭘 또 물어보려고...

 

- 선희씨 집이 어디에요? 왠지 이 근처에서 본적이 있는 것 같아서요.

 

다시 한 번 위기다. 조용히 갈 것이지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거냐. 아무튼 선배가 ‘전 태양에서 왔어요’라는 대답을 듣게 만들 순 없다.

 

- 선희는...여기 살아요.

 

- 뭐?

 

이런,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다.

 

- 여기, 여기서 저랑 같이 살기로 했어요.

 

- 뭐? 어젯밤에 처음 만난 사람하고 동거를 한다고?

 

- 네, 자세한 건 지금 말하기 힘들지만. 그럴 사정이 있어서요. 그래서 당분간 저랑 함께 살기로 했어요. 죄송하지만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 뒷수습은 나중에 하면 될 것이다. 일단 말을 만들어서 대화를 끊고 선배를 보내야 한다.

 

- 그래? 흠...그래 뭐 네가 그렇게 까지 말하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암튼 그럼 잘 지내고 조만간 또 놀러올게. 잘하고 있어라.

 

- 네, 잘 들어가요 선배.

 

드디어 선배가 떠나고 나와 그녀만이 남았다. 이제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와 그녀는 졸지에 사랑하는 애인사이이자 동거까지 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실제로는 연애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인데 말이다. 허풍떨기 좋아하는 성준선배가 만약 여기 저기 떠벌리고 다닌다면...상상도 하기 싫다.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그녀는 아까부터 엷은 웃음을 띄운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저 눈빛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출처 : http://blog.naver.com/mysunny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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