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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진실] 약한 자에게는 강하지만 강한 자에게는 더 없이 약한... ■■

이동명 |2010.11.26 14:52
조회 25,157 |추천 8

전역한지 7년정도 되는 예비역입니다.

우선 전사한 두 해병대 장병들과 화를 당하신 분들에게 진심의 애도를 표합니다.

 

북한의 이번 소행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수가 없지만,
안일한 현 군부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네요.

 

이럴때 1973년 3사단(백골부대) 사단장님이셨던 박정인 준장님의 북한 도발의 대처 자세와 정신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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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년 전부터 내 주변 분들에게 이색적인 연하장을 보내고 있다. ‘21세기 우리의 맹서’라는 제목의 연하장에서 나는 우리의 적(敵)을 셋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우리의 적’ 첫째는 바로 부정부패(不正腐敗)이고, 둘째는 친북 좌경세력이며, 셋째가 적화통일 북괴군이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우리의 국력을 쇠잔(衰殘)케 하는 가장 큰 주범은 바로 각계각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부패인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우리가 21세기 영광된 조국을 후손에게 넘겨줄 수가 없을 것이다."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중에서>

 

1973년 무장한 북한군 14명이 아군의 경고방송에도 불구하고 MDL을 넘어 도발해옴으로써 양측간에 포격을 동반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강원도 철원군 중동부전선 비무장지대.

당시 백골부대장 박정인 장군은 이 도발은 북한군이 우리를 얕잡아 본것에서 비롯 되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시 주한유엔사령부를 통해 북한에 군사분계섯 푯말 정비 작업을 하겠다는 통보를 정식으로 했고 1개 소대가  계획대로 정비작업 하고 있었다.

 

얼마 동안 작업이 진행되었을까.. 느닷없이 북한군은 아군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왔다.

아군은 이 사격으로 인해 장교 1명이 중상을 입는 피해를 당했고,

당시 박정인 준장은 보고를 받고 북한측에 정전협적 위반 사실을 통보하고 사격이 중지되지 않는다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날 작업을 마치고 귀대하던 중 인민군은 아군 지역의 우리에게 기습사격을 가했다. 그로 인해 황 대위와 김 하사 등 2명이 중상을 입고 말았다. 나는 보고를 받자 예상대로 적의 함정에 빠졌음을 간파하고 인민군에 대한 응징책을 준비시키는 한편 마이크로 적측에 사격중지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민군 측에 있다’고 수차 경고했다. 하지만 인민군은 나의 경고를 끝내 무시했다. 나는 인민군에게 합법적인 응징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중에서>

 

북한군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참다 못한 박 장군은 사단 관측기를 공중에 띄어 적진을 관측시켜 559 GP에다 105미리, 155미리 곡사포를 정조준, 포격하여 북한군을 뭉개버린다. 이어 연막탄을 발사하여 작업중이었던 부상 장병을 구출, 귀대 시켰다. 자칫 확전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북한군은 꼬리를 말고 이내 사격을 중지했다.

 

나는 관측기를 상공에 띄워 포병 관측장교로 하여금 표적인 559GP를 관측하게 해 사단 포병에게 사격을 명령했다. 사단 포병은 즉각 불을 뿜어 인민군 559GP를 강타하는 한편 우리에게 불법사격을 가했던 적 보병 배치선에 포탄을 작렬시켰다. 그런 다음 부상한 황 대위와 김 하사를 안전지대로 구출하기 위해 백린 연막탄을 발사하고 철수작업을 전개했다. 그런데 그 연막탄으로 말미암아 전 지역에 불이 붙어 지뢰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적 보병이 도망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중에서>

 

이 같은 통쾌한 응징 5분후 1군 사령관 최세인 대장의 격려 전화가 걸려왔지만, 10분뒤 군단 사령부는 "무리한 사격"을 운운하며 장군을 질책했다.

 

분이 덜풀린 장군은, 그날 밤 사단 트럭들을 총 동원하여 전조등을 밝힌채 DMZ 남방한계선으로 진출시켜 당장 적진을 돌파할 기세를 보여줬다. 물론 북괴군에게 대한민국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한 조취였다.

 

이때 북측에서 혼비 백산하여 도주하는 모습이 관측되었다. 김일성이 너무나 놀라 전군에 비상동원령을 내린 사실도 알려졌다.

 

 

이후 북한군 귀순자의 증언을 통해서 아군의 강력한 포공격으로 적 1개 소대 병력이 연병장에 떨어진 포탄을 맞아 상당수가 죽거나 중상을 당했고, 적군 GP가 박살났다고 밝혀졌다.

 

나는 정당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었다. 그래서 끝내 부상 장병을 구출해 후송케 함으로써 포격작전을 끝냈다. 그날 밤 나는 김일성과 인민군에게 겁을 주기 위해 사단 내 모든 트럭을 동원해 라이트를 켠 채 DMZ 남방한계선까지 차량을 돌진케 했다. 부분적으로는 군사분계선 남단까지 쳐 올라갔다. 그랬더니 북측에서는 난리가 났다. 남쪽 군대가 야간에 기습해 오는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것은 물론 내가 노리던 바였다. 김일성은 즉각 전군에 비상 동원령을 내렸고 한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돌았다. 유엔군사령관은 “이번 사건은 북한 측의 휴전협정 위반으로 발생한 일이고, 유엔군은 부상병 구출을 위해 자위적인 작전을 전개했을 뿐 전투할 의사는 없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중에서>

 

북한군은 이후 백골부대라는 말만듣고도 전율했다고 한다.

지금도 북괴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는 '백골부대'로 알려져 있다.

 

이 후 유엔군 사령부에서도 "북측의 정전협정 위반으로 부상병 구출을 위한 자위적 작전이었다" 라고 결론내려졌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박 장군은 사단장직에서 해임되고 말았다. 당시 한미 양국은 김일성의 무모한 전쟁도발 구실을 막기 위해 전투 잘하는 장군으로 소문난 그의 지휘봉을 앗아 버렸던 것이다

 

"1973년 4월 3일, 두 번째 사단장인 백골부대장보직을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북쪽에 맹포격을 퍼부었다고 해서 보직해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때도 난 나의 판단과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상부의 어떤 결정에도 따른다’는 신조였기에 마음이 담담했다. 북한 공산당들은 약한 자에게는 강하지만 강한 자에게는 더 없이 약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포격을 퍼붓는 동안 그들은 단 한발의 포도 우리 쪽에 발사하지 못했었다"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중에서>

 

박장군이 사단장 이임식 날 백골사단 장병들의 무운장수를 빈다"는 이임사를 마치고 뚜벅뚜벅 걸어나오자 사단군악대가 "이별의 곡"을 연주했고, 장병들을 비롯한 간부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전속부관 이계복대위는 떠나는 사단장에게 "장군님은 진정한 조지패튼입니다" 라고 하면서 울먹거렸다. 그리고 그날 밤 임영호 준위가 "5성 별판을 집으로 가져왔다. 별하나 준장에게 맥아더 원수의 5성과 같은 왕별을 선물한 것이다. 이때부터 박장군은 "왕별"로 불렸지만, 이미 "풍운의 별" 이라는 칭호도 받고 있었다.

 

위 사건을 계기로 북한은 ‘백골부대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부대’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85년도 이상군 함남도민 회장이 이산가족 평양방문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갔을 때, 북한 정치보위부 고위 간부가 “박가성을 가진 요란한 사단장은 요즘 뭘 하오?”라고 관심을 표명한 적도 있다.

이 대 이회장은 "나는 기업인이라 잘 모르오" 라고 대답했지만, 북측이 얼마나 백골부대를 무서워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 75년 귀순한 유대윤 인민군 소위도 “백골부대는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라고 증언한 바 있으며, 지난 '00년에 귀순하여 초빙강연을 했던 북한군 통신단 출신 김영임씨도 “북에 있을 때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고 전투에 있어서는 악랄하다고 들어왔던 백골부대에 와서 강연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백골부대의 위용을 고백했다

 

그 이후 북한은 강에는 약으로 약에는 강의로 대응하는 집단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4월 6일의 사단장 이임식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북진통일의 성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사단장직을 떠나게 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백골사단 장병은 나의 의도를 받들어 선봉사단과 북진통일의 임무를 기필코 완수할 것을 당부하며 백골사단의 건승과 장병의 무운장구를 기원한다.”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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