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금... 어디도 얘기할데가 없어서.. 너무 답답해서..
나 모르는 사람들.. 아무개에게 말하다보면 조금은 숨통이 트일거 같아서..
별다른 목적없이 씁니다.
전..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아주 유복한 집안에서 정말 누릴수 있는 부란 부는 모두 누리며 살다가..
다들.. 한번씩은 겪을 법한 부모님의 사업실패로 초등학교 5학년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빚에 쪼들리며 살게 됩니다.
너무 어려운 가정 형편탓에.. 모든 형제들이 학교를 다닐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포기해야했죠.
그래서 동생들은 학교를 다니고 저는 공장도 다니고 식당에서도 일하고..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그렇게 부모님을 도와 집안을 일으키는데 열심히 도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학교도 다니며 평범한 인간처럼 살고 싶었기에..
낮에는 부모님을 도와 식당일을 돕고 밤에는 공부를 해 중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험도 봐서.. (제가 살던 시절엔 연합고사를 봐야 고등학교를 갈 수 있었기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참.. 부모라는게.. 낳았다고 다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란 분은 식당일을 돕지않고 학교를 다니겠다는 저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로인해 엄마와 아버지는 매일이 저의 문제와 돈 문제로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버지란 분은 우리 5남매를 버리고 자기혼자 살겠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것도 막내 소풍가던날..
막내를 내버려 두고.. 우리를 버리고.. 엄마를 버리고.. 자기혼자 살아보겠다 우릴 버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전 합격한 고등학교를 갈 수가 없었습니다.
많이 억울했습니다.
저와 둘째와는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맏이라는 이유만으로 제 인생이 평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고생하시는 엄마를 모른체 할 수가 없었기에 1년을 엄마와 또 열심히 일하며 집안을 꾸려갔습니다.
이를 악물고 일했습니다.
새벽에 남대문 시장에서 음식배달을 하며 일하고 낮에는 포기할 수 없는 학업의 꿈 때문에 틈틈히 공부하며 다시 학교 갈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가 안됐는지.. 엄마는 제가 고등학교 진학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가정형편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기에.. 낮에는 학교를 가고 새벽에는 남대문 시장에서 여전히 일을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그렇게 하기 싫다는 보충학습, 자율학습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제대로 해보지 못했습니다.(정말 하고 싶더라구요.. ^^;;)
그러다 고3이 되고.. 어려운 형편탓에 성적은 좋았지만 대학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성적을 아깝게 생각하신 담임선생님과 어머니 덕분에 대학진학을 독려받고 제 인생에 처음으로 고3시절 자율학습이란것도 해보고 보충학습이란 것도 받아보았습니다.
물론 방학때는 남대문시장에서 일을 도왔지만 열심히 하는 제 모습이 안돼보였던지 엄마는 고3동안은 남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것도 그만두게 배려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탓에 성적은 급상승하였고.. 대학시험을 보았지만 욕심을 부려 소신있게 지원을 한 탓인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여곡절끝에 야간대학을 가게 됩니다.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대학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학년 동안은 남대문시장에서 새벽엔 아르바이트를하고.. 낮에는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강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제가 그 쪽으로 소질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이젠 제법 자리를 잡으셔서 가정 형편도 점점 나아졌습니다.
저도 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금융연수원에서 컴퓨터 보조강사를 하며 차근차근 강사경력을 쌓아가다
저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여러 주위분들의 소개로 어느덧 능력있는 강사로 거듭 발전하게됐습니다.
그렇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나라 최대 그룹의 컴퓨터 강사로 2~3주 강의료만해도 300~400만원씩이나 되는 돈을 고스란히 어머니께 갖다드렸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강사료나 월급을 받으면 전 그대로 엄마께 갖다드렸습니다.
그럼 엄마는 그 돈을 관리해서 집을 사시고 그렇게 재산을 늘려가셨습니다.
그건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동생들이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으면 무조건 엄마께 갖다 바쳤습니다.
그러면서 우린 최소한의 용돈(대학원 다닐때까지 제 용돈은 한달에 3만원이었습니다.)만 받고 우리가 돈 걱정하지 않으며 살날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한번도 쉰적이 없습니다. 제가 쉬어 본 적이라곤.. 고3 1년과 대학원 논문쓰느라 쉰 한 학기가 제 인생에서 유일하게 아무일도 하지않고 공부만 한 시기입니다.
그렇게 쉬지않고 5남매와 엄마가 돈을 버니 어느새 경기도에 아파트를 사게 되고 안양에 빌라를 사게되고 서울에 아파트를 사게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큰 이모입니다.
큰이모는 우리가 어려울때 항상 우리 옆에서 힘이되어주신 고마우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경기도에 산 아파트를 팔아 1억이 넘는 돈을 이모가 어렵다 하셔서 그대로 드렸을때도 아무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막내이모 결혼하는데 집이 없는데 안양 빌라를 이모 혼수로 주었으면 좋겠다고 큰이모가 부탁을 하셔서.. 또 아무말 없이 그 빌라를 막내이모 앞으로 넘겼을때도 꾹 참았습니다.
항상 우리는 큰이모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살자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우린 아직 서울에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아파트를 사면서 은행담보대출을 받았는데 그 돈을 이모가 어렵다 해서 가져가실때도 설마설마 했습니다.
이모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엄마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가 큰이모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정도 많이 나아졌지만 중간에 셋째동생이 펜션사업을 하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또 막내동생이 일본에 유학을 가는 바람에 그 뒷바라지 하는 바람에 우리 사정도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외할머니 대신이라 생각하고 섬겼던 큰이모가 어렵다는데~하며 우리 정많은 어머님은 끊임없이 여기저기 이모에게 돈을 대어주고 빚보증까지 쓰기 시작하십니다.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예상하시겠죠.
쫄딱 망했습니다.
이모가 가라앉자 저희 역시 연쇄~ 가라앉게되는건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모든걸 버려야 했습니다.
그동안 노력해서 벌고 쌓아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정말 허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더욱더 허망한 것은... 그렇게 믿었던 큰이모가 이제와서 우릴 미친년들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냥.. 이모가 어려우니.. 나중에 이모가 잘되면 너희 은공은 잊지 않고 꼭 갚으마.. 이 한마디면 또 멍청하게 10년은 기다릴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딱 잡아떼는 겁니다. 사촌언니들까지.. 우릴 미친년들이라며.. 자기들이 언제 우리한테 돈을 가져갔냐며.. 딱 잡아떼는데.. 억울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 기분 아십니까..
얼마전에 결국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아주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됐습니다.
더이상 그 많은 대출이자와 빚을 감당할수가 없었거든요.
이사가기 바로전날이었습니다.
제 성격이 무뚝뚝하기도 하고.. 너무 어렵게.. 엄마와 동생들을 가장처럼 이끌어 온 탓에 동생들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인적이 없습니다.
그래선 안된다 생각했고..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슬퍼도 동생들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던 저입니다.
그런데 정말 마지막 짐을 싸려 집으로 동생들과 들어오는데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30년동안 힘들게 고생한 내 인생이, 동생들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또 허무해서 동생들 앞이지만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동생들과 함께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 마지막 짐을 싸려 집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때마침 정전이라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참.. 마지막까지 이러는구나라는 생각에 서러움이 더 해졌습니다.
저희 집이 9층이라 1층에서 9층까지 걸어올라가며 그 밤에 마지막까지 이런 비참한 기분이 드는걸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정전된 가운데 촛불하나를 켜놓고 짐을 싸는데.. 정말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피곤한 나머지 짐을 싸다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잠을 자는데.. 기분이 이상한게.. 깜짝놀라 잠을 깨니 화장대에 올려놓은 초가 다 타고 화장대에 불이 번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냥 손으로 탁하고 끄면 되는 불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냥.. 끄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냥 뒀습니다.
화장대를 태우고 장판을 태우고 온 방이 그을음으로 가득차는데 그때까지도 그냥 그 불과 함께 내가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생각에 그냥 그 불을 멍청하게 두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습니다.
죽으려면 나 혼자 죽지.. 내 동생들.. 그 착한 것들이 뭔 죄라고..
이사가기 전날 새벽.. 미친듯이 혼자서 화장실에서 물을 퍼다 불을 껐습니다.
다행히 제 방이 다른 방이랑 많이 떨어져 있어 아무도 불이 난줄 모르고 푹 잘 잤습니다.
물론 아침엔 다들 반쯤 타버린 제 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냥 그랬습니다.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한건 아니었는데.. 순간 너무 내 인생이 너무 허무했습니다.
그동안 정말 쉬지 않고 살아왔던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해져서 살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많은 힘든일들을 겪어온 저인지라 또 살면 살아지겠지.. 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엄마가 집을 나가셨습니다.
집을 처분하고도 정리되지 않은 빚들이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겁니다.
그래서 모든 짐을 제게 떠 넘기고 자긴 어디가서 죽어 없어질테니 못난 엄마는 잊고.. 우리더러 발 뻗고 잘살라 하며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빚쟁이들에게 전화해서 우리 딸들은 괴롭히지 말라고..
빚은 자기가 졌으니 불쌍한 우리 딸들은 놔둬돨라 부탁하고 연락을 끊으셨습니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순진하십니다.
법적으론 엄마말대로 우리가 갚지 않아도 될 빚일지도 모르지만.. 그 빚쟁이들.. 다들 저희가 아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그동안 애비없이 컸다 소리 안듣게 하려고 우리를 어찌나 바르고 또 바르게 키우셨는지.. 우리 남매들 성품이 남의 돈 떼먹고 편하게 살만큼 나쁘고 독하질 못합니다.
그 빚.. 고스란히 저희가 떠안게 됐습니다.
다행히 엄마도 우여곡절끝에 지금은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서.. 또 우리 남매들.. 모여서 그랬습니다...
더 어려울때도 있었는데.. 그래.. 견뎌보자.. 그러다보면 살아지겠지..
남들은 전생에 나라도 구하고 그랬다는데.. 우리는 전생에 을사5적이었나보다고..
그래서 그 업을 지금 다 지고 있나보다고..
그렇게 달래고 또 달래며 사려는데..
오늘.. 그냥... 갑자기 동생이 한달에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라며.. 수첩에 적힌 걸 보여주는데..
순간 울컥했습니다.
- 우리집 살리기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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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 50만원
희* 아줌마 돈 2천만원 (월 50만원씩 40회 갚아야함)
지* 아줌마 돈 3천만원 (월 50만원씩 40회 갚아야 함)
잔금 천만원 틈틈이 만들어 갚아야 함
최**씨 돈 1억 (월 250만원 40회 갚아야 함)
오** 돈 2천만원 (월50만원 40회 갚아야함)
서** 돈 3천5백만원 (월 52만원씩 40회 갚아야함)
민** 돈 이천만원 (월 100만원씩 갚아야함)
가게세 250만원
대출이자 월 100만원
막내동생 유학자금 1학기 3천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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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이게 우리집 살리기 프로젝트라고 보여주는데..
지금 딱 죽고 싶습니다.
그냥.. 딱... 눈 감고 싶습니다.
월 40회면.. 4년입니다.
지금 제 나이 마흔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말.. 그동안 이렇게 사느라 결혼도 미루다 결국은 포기하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4년동안 이렇게 살아야 한답니다.
그것도 전 한번도 써보지도 못한 저 돈들..
그것도 저 돈 쓴사람들은 우릴 미친년이라 욕하며.. 이촌동에서 두발 뻗고 이모자식들은 중대에서 교수씩이나 하면서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딱 살기가 싫은데.. 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저 많은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모라.. 차용증같은건 받아놓지도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 남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