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인셉션 (Inception, 2009)

전성욱 |2010.12.20 22:34
조회 109 |추천 0

 

 

 

 

인셉션 (Inception, 2009)
드라마, 액션, SF | 147 분 | 12세 이상 | 2010.07.21 개봉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와타나베 켄, 마리안 코티아르
제작/배급사 Warner Bros. Pictures/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드림 머신을 통해 꾼)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a) '킥'을 당한다.
b) 드림머신의 타이머가 종료된다.
c) 꿈속에서 죽는다.
d) 강력한 진정제의 약효가 사라진다.

 

 

 

'킥'이란 무엇인가?

 

 킥이란 (드림머신을 통한)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꿈꾸는 사람은 '킥'이 일어날 것이라는 조짐을 느낀다. (무중력 상태, 쏟아지는 물 등) 인셉션 작전에서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로써 킥의 조짐을 미리 알 수 있게 한다.

 

 

 

'토템'이란 무엇인가?

 

 토템은 현실과 꿈의 차이를 구분 짓기 위해 사용된다. 오직 소유자 1명만이 토템의 정확한 균형과 무게감 등등을 알 수 있다. 코브의 토템은 '팽이'이며 그는 팽이가 멈추면 현실, 계속 돌고 있다면 꿈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영화 속에 등장한 토템은 총 3가지. 아서의 토템은 주사위, 아리아드네의 토템은 체스말 비숍(의 쓰러지는 느낌), 임스의 토템은 극 중에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단순히 토템을 노출시키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초 사이토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타인이나 무의식의 존재에게 토템의 성질이 알려질 경우 그것을 모방한 설계나 물리법칙이 적용됨으로써 토템이 무용지물로 바뀔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또한 코브의 토템은 다른 Dreamer들의 토템보다 훨씬 강력하다. 현실과 꿈을 오가며 끊임없이 '습관'과도 같이 반복함으로써 토템의 활용 능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뿐만 아니라, 코브의 토템은 죽은 아내의 유품이자, 그녀에게 행했던 '인셉션'의 도구이기도 했다. 또한 코브의 토템인 팽이가 물리 법칙을 초월해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은 그의 '정보 추출자'로서의 뛰어난 경력과 남다른 경험을 했음을 방증한다.

 

 영화 속의 각 각의 토템들은 주인들의 성격을 비유하기도 한다. 코브의 팽이는 아내의 유품으로서 말의 트라우마에 계속 맴도는 상황이며 아서의 주사위는 '다이스 게임'처럼 냉정하고 주어진 룰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리아드네의 비숍은 게임 초반에는 큰 힘이 되지 못하지만, 후반엔 결정적인 승부를 가늠 짓는 중요한 체스말. 제2의 퀸이라고도 불린다. (이 영화의 진정한 '퀸'은 코브의 아내, 말이었죠.)

 

 

 

엔딩의 의미?

 

a.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범한 비즈니스맨'설)
 모든 건 코브의 '백일몽'에 불과했다. 모든 내용은 일등석을 타고 귀국하는 평범한 비즈니스맨 코브가 기내에서 잠시 졸면서 꾼 꿈에 불과하다. 인셉션도 드림머신도, 토템의 설정 따위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것 모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꿈일 뿐이다.

 

b. 유서프를 만난 이후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유서프 지하실-꿈'설)
 코브는 지하실로 내려가 유서프의 약물로 꿈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신약을 테스트 삼아 꿈에 빠져들었던 코브는 황망히 일어나 자신의 '토템'을 작동시키려 하지만 사이토의 참견으로 못하게 된다. 그 이후 영화는 단 한 번도 토템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코브는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인셉션이 성공하는 카타르시스를 맛보며 달콤한 꿈을 계속 꾸고 있는 것이다.

 

c. 인셉션은 사실 코브가 타켓이었다. ('인셉션-코브 타켓'설)
 포럼에서 강하게 대두되는 이론이다. 사실 인셉션은 피셔의 머릿속이 아니라 코브의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심는 작전이었다. 한번 생각해보아라. 코브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고, 그의 장인이자 말의 아버지인 마일즈 교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위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길 바라지 않았을까? 똑똑하고 재능 있는 건축가인 아리아드네를 소개해준 것은 코브를 위한 인셉션을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자. 엔딩 씬에서 코브가 공항에 내렸을 때, 프랑스에 있어야 할 마일즈 교수가 미국 공항에서 코브를 맞이하고 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반기기까지 한다. 피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장례식과 비행 일정을 어떻게 알았으며 코브가 말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어떻게 예상했는가? 코브에게 인셉션을 실행할 수 있는 건 오직 아리아드네뿐이다. 그녀는 영화 내내 말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하며, 코브의 꿈속을 들여다 본 유일한 사람이다. 또한 코브의 토템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본 유일한 사람이다. 아마도 인셉션은 전적으로 코브에게 실행된 것이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하고 정상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작전인 셈이다. 또한 '아리아드네'란 이름의 유래를 생각해보아라. 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세우스에게 '실뭉치(a ball of yarn)'을 건네주어 미노타우루스의 미궁을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크레타의 공주이다. 바로 무의식과 죄책감의 미궁에 빠져있는 영웅 코브를 도와서 탈출하게 도와주는 존재이다. 신화 속 미궁을 만들었던 사람은 '아리아드네'가 아닌, '다이달로스'였다. 곁가지로 생각해본다면,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코브가 꿈에서 황망히 깨어난 것을 기억하는가? 그 때가 아리아드네가 코브의 머릿속에 인셉션을 심어놓은 때일수도 있다.

 

d. 크리스 놀란 감독이 관객들에게 인셉션을 실행하는 것! ("인셉션-관객 타겟"설)
 생각해보라. 놀란 감독은 우리들의 머릿속에 생각을 심어버렸다. 엔딩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불완전한 의심은 계속 남을 것이다. 어떠한 이론이나 설명도 완벽하진 못하며, 못할 것이다. 왜 유서프의 지하실에서 팽이가 멈추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지? 놀란 감독은 우리 머릿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어버렸다. 마지막 엔딩 씬의 위태롭게 돌아가는 팽이를 보면서 우리는 '말'이 림보에 빠져버렸듯이 서서히 현실과 꿈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어떤 장면이 현실이고 꿈인 거야?'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e. 코브는 인셉션을 성공하고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인셉션-노멀 엔딩"설)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코브가 현실로 돌아와서 끝났다고 생각한다. 림보에서 코브와 사이토는 결국 꿈임을 서로가 자각하게 되며 사이토는 총을 든다. 아마도 사이토는 코브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함으로써 림보를 탈출한 것이다. 림보에서 벗어난 뒤엔 강력한 진정제의 효과가 떨어진 뒤 '킥'을 통해서 Lv1.현실의 비행기로 되돌아 왔을 수도, 혹은 이미 Lv.2-4까지 붕괴된 상태이므로 단 번에 현실로 돌아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결론은 마지막 부분에 의문을 남긴다. 코브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의 옷과 아이들의 나이는 코브가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봤을 때 모습 그대로이다?! 이로 인해 노멀 엔딩설은 의문을 남길 수밖에 없다. 혹 자는 놀란 감독이 만들어낸 열린 결말을 위한 장치라고도 결론짓는다.
추가) 영화 초반에 비해 엔딩에선 아이들의 옷과 연령대가 약간 달라졌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똑같아 보일 정도로 유사한 느낌을 주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의도적인 연출로 느껴집니다.

 

f. 엔딩은 림보에 갇힌 코브의 꿈이다. ("코브-림보"설)
 코브는 림보 안에 여전히 있다고 본다. 우선,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아이들의 모습이 첫 번째 근거다. 두 번째로는, 엔딩의 팽이 씬이 위태위태하게 계속 돌고 있는데, 코브는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을 향해서 걸어간다. 지금까지의 코브가 보여준 토템에 대해 신경 쓰고 주목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코브는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만족의 길을 택한 것이다. 또한,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림보에서 사이토가 코브 혼자만 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실에서 아이들을 만날 가능성이 없어진 코브는 결국 자신의 림보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던 것이다.

 

 

 

"반지 이론" (Ring Theory)

 

 영화 속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주인공 코브의 왼손 넷째 손가락이다. 씬에 따라서 그의 손가락엔 결혼반지가 있기도, 없기도 하며 이는 장면에 따라서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놀란 감독의 데뷔작 미행 때부터 사람의 손과 소지품에 집착하는 놀란 감독의 성향 상 실수라고 보긴 어렵다. 아래는 장면에 따른 반지 유/무 여부다.

 

Scene with old Saito in limbo: Wedding ring.
Both levels of the initial extraction heist with Saito: Wedding ring.
On the train after failed extraction: No ring.
In the hotel when he calls his kids and tests the top: No ring.
Mombasa: No ring.
Yusuf's basement AFTER testing sedative and dropping his totem: No ring.
Paris workshop: No ring.
Paris test with Ariadne (folding skyline): Wedding ring.
Airplane, pre-Fischer job: No ring.
Levels 1, 2, 3, and limbo of Fischer heist: Wedding ring.

 

 정리해보면, 일반적으로 현실이라고 보이는 장면들에서는 결혼반지가 없으며 (마치 죽은 아내를 잊은 듯이), 일반적으로 영화 속에서 꿈속이라고 그려지는 장면들 속에서는 결혼반지를 끼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엔딩 시퀀스에서는 코브의 손을 노출시키지 않는 편인데 어렵게 그 장면을 포착한 많은 사람들의 목격에 따르자면 결혼반지를 안 끼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곧 마지막 엔딩 장면은 현실이란 뜻이 된다.

 따라서 반지 설을 믿는다면, 자연적으로 인셉션-노멀 엔딩설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으로 인셉션의 모든 것이 설명이 끝난 것인가?

 

 아니다. 인셉션에 대한 해석은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아마 인셉션에 대한 완벽한 설명은 불가능 할 것이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서 이 영화는 얼마든지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놀란 감독은 수많은 출구가 있는 거대한 미로를 만들었으며, 어떤 출구를 선택해서 빠져나올 지는 여러분 하나하나 스스로 결정짓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영화의 엔딩을 단 하나로 규정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영화는 무수히 많은 열린 결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바라보는 엔딩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엔딩들은 마치 영화 속 꿈처럼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바로 이 영화 자체가 놀란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인셉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하나의 결론, 하나의 엔딩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해보아라. 어딘가 미심쩍고 이상한 부분이 느껴지지 않는가? 바로 영화라는 방식 자체가 거대한 '꿈'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무의식이 영화 내용 자체와 엔딩에 대해서 이질감을 느끼고 방어기재가 발동되어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 전체의 거대한 꿈은 엔딩 스크롤이 끝나는 순간, '킥'의 전주로서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놀란 감독의 거대한 꿈에 빠져 인셉션을 당하고, 마지막 순간 '킥'으로 깨어나며 영화관 밖을 나서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아직도 생각에 잠겨 혼란스러워 하는 당신은 여전히 놀란 감독의 꿈속에 깊게 잠들어 있는 것이다.

P.S - 엔딩 스크롤이 다 끝날 때까지 절대로 자리를 일어나지 마라. 영상이 아닌, 음악 쿠키가 영화를 완벽하게 마무리한다.

 

 

 

 


스태프 롤


 엔딩 스태프 롤의 마지막 즈음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킥의 동기화 신호로 쓰였던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대충 생각하면 이건 대략 이제 영화라는 꿈에서 킥 당하시고 깨어날 시간이라는 뜻이겠죠. (그 외 등등도 대략 갖다붙이기 나름이겠고) 가사 또한 영화에 어울리게 의미심장하니 찾아보실 분들은 찾아보시고요.

 노래가 끝날 때 즈음에는, 대탈출 동기화 킥의 교차편집 장면에서 인상적으로 사용된 바로 그 쿵- 쿵- 대던 음악으로 곡이 바뀝니다. 이 곡은 사실 완전한 오리지널 스코어는 아니고, 에디뜨 피아프의 곡을 느리게 재생했을 때의 곡조를 베이스로 작곡한 것입니다. 즉, 동기화 신호인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가 2단계, 3단계로 내려가면서 느려진 상태를 표현한 것이죠. 영화상에서야 매우 큰 볼륨으로 쿵- 쿵- 울려댔었고, 꿈의 단계를 넘나드는 교차편집 와중에도 한 템포로 곡이 흘러나왔으니, 실제 영화상에 있어서의 동기화 신호였다는 뜻은 아니겠습니다만, 매우 재치있고 섬세한 음악 연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위적으로 늘어뜨려 부자연스러워진 곡조를 하나의 스코어로서 제대로 살려낸 한스 짐머의 공도 큽니다. 물론 아이디어 자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공이겠지만요.

 

 

 

 

 

 

 

 

 

 

 

 

 

 

 

 

 의식과 무의식, 꿈과 현실, 실체와 그림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영화 '메트릭스'는 현실을 감싸고 있는 거대하고 잔인한 또다른 현실을 상상함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의 세상을 상상의 세계로 만들어 버렸다. '메트릭스'가 현실 겉에 있는 또다른 현실을 상상했다면 '인셉션'은 이와 반대로 현실 속에서 사고하는 인간의 정신 안에 존재하는 또다른 현실을 상상했다. '인셉션'은 우리의 꿈 속에 존재하는 세상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경험하여 믿고 있는 이 세상마저 꿈일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제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흔든다. '반지의 제왕', '스타워즈' 같이 판타지 혹은 공상과학 영화들은 현실 너머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혹은 시간 저편 어딘가 있을 법한 세상을 상상하게 해 준다. 이러한 상상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상식적이다. 때문에 이와같이 새로운 세계 혹은 다른 시간의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해준다. 하지만 '인셉션'같은 영화들은 우리의 상상력 속에 현실을 집어넣어 버린다. 때문에 우리의 실체가 그림자가 되고 그림자가 실체가 되는 절묘한 역전이 일어나거나, 꿈 속에서 꿈을 꾸고 현실마저 꿈이 되어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장치들과 메시지들을 다 파악할 수는 없다. 게다가,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심오한 메시지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 메시지에 대한 상당 부분을 보는 사람의 상상력에 맡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숨가뿐 이야기가 모두 지나가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본 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팽이가 멈출까? 혹시 멈추지 않는건가?"였다. 혹시라도 팽이가 멈추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너무 슬프다. 이미 '인셉션'의 이야기 속에 깊이 빠져들어가 감정을 이입하고 상상을 공유한 관객에게 멈추지 않는 팽이는 너무나 큰 고통이다. 차라리 팽이가 넘어지는 장면을 보여준 뒤 속 편하게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감독은 그릏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장면의 팽이의 움직임을 보면 웬지 멈추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뭐 당연히 팽이가 넘어졌겠지, 해피앤딩으로 끝난게 분명해!"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힘' 때문이 아닐까 싶다. 회전을 멈추고 누워버린 팽이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경우의 수를 놓고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멈추지 않았다면 어떻게 된 일인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그리게 되고, 감독이 제시한 배경들과 단서들을 가지고 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머리가 아프지만 "코브는 그 이후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아름다운 결말을 가슴에 품고 마음 편하게 한숨 돌리려면 상상력을 총 동원해야 한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마지막 장면에서 팽이가 넘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코브'가 행복하게 되게 하려면 오히려 영화가 들려준 이야기 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영화에 몰입해 상상력을 펼쳐나가다 보면 돌연 지금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세상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진지하게 '어쩌면 이건 꿈일지 몰라, 나의 꿈이건 누군가의 꿈이건...'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하는 현실이 너무나 비현실 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세상을 현실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왜곡이 맘을 불편하게 한다. 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인하다. 오히려 상처입고 병든 누군가의 꿈이라고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아니면 이 꿈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어쩌면 꿈에서 깨어나기 위한 노력과 헝클어진 설계를 바로잡는 노력을 동시에 하는 것이 안전할 지도 모르겠다. 우선,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킥'을 당하거나 드림머신의 타이머가 종료되거나 강력한 진정제의 약효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흘러 나올 때 '킥'이 다가옴을 깨닫고 대비하는 것이 유일하다. 꿈에서 깨는 문제에 있어서 꿈 속에 있는 우리는 전적으로 무능하다. 단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죽는것'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 방법에는 어마어마한 용기와 확신이 필요하다. 이 세상이 꿈이라는 확신과 더불어 꿈에서 깨면 훨씬 더 나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확신을 충분하게 가질 만큼의 증거가 없다면 불충분한 증거를 뛰어넘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림보'라는 세계는 마음 속 깊은 끝에 있는 무의식을 의미한다. '림보'는 제어 불가능한 무의식의 세계로써 그곳에 갇힌 사람은 더이상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때문에 림보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림보(limbo)'는 로마 가톨릭 신학에서 비록 벌을 받지는 않지만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천국에 사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영혼이 머무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경계지대를 이르는 말이다. 가톨릭이 말하는 내세는 천국과 림보, 연옥, 지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고성소(古聖所)로 불리기도 했던 림보는 천국과의 경계지역으로 세례받지 못한 어린이나 이교도 등의 영혼이 죽어서 가는 곳을 말한다. 인간이 죄를 완전히 씻지 못하고 죽어 머무는 곳이 연옥이라면, 림보는 어린아이들처럼 원죄만 있는 영혼이 영원히 사는 곳이다. 림보가 가톨릭의 공식 교리는 아니지만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처음 제시했으며, 천국만큼 행복하지는 못하지만 자연스러운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영화속에서 그리고 있는 '림보' 마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참 많이 닮아있다.

 

 어찌되었건, 곧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이다. 흔들림 없는 현실 인식을 위해 당신의 '토템'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이 슬프고 아름다운 꿈이 곧 붕괴될 것임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