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연변에서 택시를 모는 구남은 빚더미에 쌓여 구질구질한 일상을 살아간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는 6개월째 소식이 없고, 돈을 불리기 위해 마작판에 드나들지만 항상 잃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청부업자 면가에게서 한국 가서 사람 한 명 죽이고 오라는 제안을 받는다. 절박한 현실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남은 빚을 갚기 위해, 그리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황해를 건넌다.
매서운 바다를 건너 서울로 온 구남은 틈틈이 살인의 기회를 노리면서 동시에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서 목표물이 살해 당하는 것을 목격한 구남은 살인자 누명을 쓴 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친다. 한편 청부살인을 의뢰한 태원은 모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구남을 처리하려 하고, 연변에 있던 면가 또한 황해를 건너와 구남을 쫓기 시작하는데…
review :
올해 하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던 <황해>를 12월 21일 오후 8시 서울극장 시사회에서 관람하고 왔다. 장편데뷔작 <추격자> 한편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등 10여개의 상을 거머쥔 기대주 나홍진 감독과 하정우, 김윤석 트리오의 재결합이라는 점에서 <황해>는 관심을 끌었다.
시사회를 다녀온 내게 지인 A는 영화가 어떻더냐고 물었다. 보아하니 크리스마스용 데이트 무비를 고르는 것 같은데, ‘별로’나 ‘비추’라는 말로 짧게만 표현하기가 싫었다. ‘응’이라는 한 글자도 ‘ㅇㅇ’으로 생략해 말하는 21세기인 것을, 나는 그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칼로 죽이고, 도끼로 죽이고, 토막 내 죽이기 때문에 죽도록 헤어지고 싶은 연인들에게는 아주 쥑이는 영화’라고 하며 A가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어렵게 만난 인연의 운을 다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황해>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영화다. 찬사를 보내는 전문가들도 이 영화의 장단이 뚜렷해서 평가는 양극단으로 갈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뚜껑을 연 <황해>는 스릴러라기보다는 하드보일드에 가깝고, 피칠갑의 폭력은 슬래셔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하정우와 김윤석의 연기는 여전히 뛰어나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김구남 캐릭터의 문제점을 그나마 하정우니까 이 정도 했다고 생각한다. 짧게 깎은 머리와 수염, 찌푸린 미간과 부르튼 입술, 엉성하고 불안해보이는 걸음걸이는 빚에 치여 살다 청부 살인을 하게 된 3류 인생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팔에 총을 맞고 경찰에게 쫓겨서 산 속을 헤매다 잠시 지혈을 하며 우는 장면은 잊기가 힘들다. 그 표정에서 한가닥 희망을 찾아 한국에 왔다가 자본주의 사회의 무서운 법칙을 마주한 조선족의 얼굴을 떠올렸다고 하면 비약일까.
사람 죽이기를 파리새끼 죽이듯 하는 면정학 역의 김윤석은 마치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과 누가 더 악마적인지 경쟁하는 것 같다. 하정우보다 출연분량은 적지만, 존재감은 오히려 더할 정도로 면사장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저 자식이 뭔 말을 하고 뭔 짓을 할까?’ 싶을 정도로 관객을 긴장하게 만들고 스크린을 압도하는 힘이 대단하다.
<추격자>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나홍진 감독은 <황해>에 상당한 야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의 무대는 옌볜, 동해, 황해, 울산, 부산, 서울을 휘젓고,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영화는 4개의 장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면정학 일당이 구남을 쫓는 추격씬에서는 수십대의 차량들이 대파되고, 대형 트레일러가 전복되기도 한다. <황해>는 액션 장르로서는 일반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분히 보상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맹렬히 질주한다. <추격자>에 이어서 범인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고 무능하기만 한 경찰 묘사로 건져올리는 공권력 비판도 여전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평가에서 나는 <황해>에 호의적일 수 없었다.
첫째.
<황해>에 호평을 쏟은 평자들이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은 위에서 말한 카체이스 장면인데, 나는 그 장면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릴이 넘쳤다는 이들도 있을테지만 많고 많은 영화들의 추격씬을 목격해 왔던 나는 그 추격 장면이 진행 시간이 계속될수록 점점 지루해졌다. 중간에 측면 충돌을 담은 사실적 연출도 좋고, 차량이 여러 대 전복되고 대파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 추격씬의 미학적 완성도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한국영화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현재 개봉 중인 영화들 중 <황해> 외에 <쓰리 데이즈>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에도 추격 장면이 들어가 있다. 나는 두 작품들보다 <황해>의 추격 장면이 월등하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한국 영화라서 아주 좋게 봐준다 해도 <해리 포터>보다는 낫겠지만, <쓰리 데이즈>보다는 못하다.
문제는 창의적이지 못한 몇 개의 앵글과 기계적인 편집이다. <황해>의 추격씬 핸드 헬드 촬영은 지나치게 흔들렸다. 너무 흔들려서 무언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만 느껴지고 차량 이동의 동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쫓기는 구남과 쫓는 면사장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앵글과 두 사람이 탄 차량을 찍는 카메라, 그리고 추가된 두 세 개의 앵글만 가지고 편집을 하는데, 처음엔 그럴 듯 했지만 자꾸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편집도 비슷비슷한 식이다 보니 긴박감이 점점 떨어졌다.
추격 도중 구남과 면 사장은 계속해서 옆으로 박치기를 시도한다. 여러 차례 그것만 한다. 내가 지금껏 보아왔던 모든 추격 장면들 중 최고는 <본 슈프리머시>에서의 추격 장면인데, <황해>를 보면서 나는 그 제이슨 본 시리즈가 떠오르는 대신 강우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 중 옆으로 박치기만 시도하는 그 어설픈 추격장면이 떠올랐다. 트레일러 전복 씬은 한국영화에서는 드문 연출이라서 놀라워 보이기도 하지만, <터미네이터 2>에서의 액화질소 트럭 전복 장면과 앵글이 너무 유사하다. 카메라의 시점과 편집을 다르게 할 수는 없었는지 아쉽다.
덧붙여 지적하자면 김구남이 부산항에서 수십 명의 적들을 뚫고 도망가는 장면은 <황해>에서 압권인 시퀀스지만 이 부분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김뢰하 일당으로부터 탈출하는 장면에 빚을 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황해의 엔딩 크레디트 중 ‘Special Thanks To’에는 김지운 감독이 올라 있다.
둘째.
하드보일드 영화에서 강도 높은 폭력은 이 장르의 운명이다. 부조리한 세계를 폭로하기 위해 하드보일드는 폭력적인 표현을 수반한다. 물론 전제로는 주제 전달이든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든 그 폭력적 표현이 어떤 지점에서 꼭 필요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황해>의 폭력은 과잉이다. <황해>의 폭력과 섹스는 의미를 창출하는 대신 선정주의의 늪에 빠진 것 같다.
먼저 노출 장면을 이야기해보자. 구남이 꿈에서 아내와 섹스하는 장면은 이야기 흐름과 별로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나신을 근접 촬영한 장면을 비롯해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이어진다. 김태원 사장(조성하 분)과 정부의 섹스씬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김 사장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에서 굳이 정부의 가슴이 잘 보이도록 하고, 허리선 아래까지 아슬아슬하게 찍은 이유가 뭔가. <색, 계>처럼 강한 노출씬이 인물 간 관계 표현을 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이용된다면 모르겠지만, <황해>는 이 장면에서 이런 노출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황해>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이렇게 성적으로 대상화되거나 부차적인 기능만 해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
<황해> 외에도 올해 한국영화 개봉작들 중 잔혹 코드를 담은 영화들이 있다. <황해>에 비해 약간 과장되게 비유한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양반이고,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양갓집 규수이며, <아저씨>는 성균관 유생이다. <황해>를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이 제시하는 폭력에는 감정이 결합되어 있다. 약혼자를 잃고(<악마를 보았다>), 아이를 잃고(<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단 한명의 친구를 뺏긴(<아저씨>) 것에 대한 분노가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황해>의 경우 면정학 일당은 물론이고 김구남에게도 감정이입을 할 여지가 별로 없어서 잔인한 폭력을 대하는 관객은 구경꾼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관음증의 시선을 강요받는 불쾌함은 무자비한 세상의 질서를 대했을 때의 불편함과는 다른 것이다.
왜 그렇게 과잉의 폭력이 필요했던 것일까. 수많은 도끼질과 칼질의 사실적이면서도 반복된 묘사만이 세상의 냉혹함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차라리 나는 김태원 사장의 수하들이 면정학을 치러 가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방 바깥을 비추며 쿵쾅거리는 진동의 사운드만으로 방 안의 무자비한 폭력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부분이 좋았다. 굳이 사실적인 폭력이 어쩔 수 없이 필요했다면 꼭 필요한 장면들에서만 하면 족하다. 한국영화에서는 불모지인 하드보일드 장르에서 유일하게 계속 회자되는 영화인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역시 잔인하기로 소문났다. (그래서 흥행에서는 죽을 쑤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날 것 그대로의 폭력은 <황해>보다 훨씬 더 적은 장면에서 제시되지만 그 효과는 매우 강력하다. 반면에 <황해>는 계속해서 비슷비슷한 도끼질과 칼질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같은 방식의 잔인함이 지겨워서 지루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동어반복을 했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하드 보일드 장르는 명분일 뿐, 이 과도하고도 창의적이지 못한 폭력이 선정성 그 이상의 의미를 획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셋째.
이야기를 단순화시켜 한계를 설정한 다음 무지막지하게 돌진했던 <추격자>는 지금 생각해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황해>는 커다란 야망에 어울리지 않게 캐릭터와 이야기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다.
김구남 캐릭터는 하정우가 아니었다면 많이 망해 먹고 남았을 듯하다. 옌볜에서의 김구남은 빚더미에 쌓여 있으면서도 택시 운전으로 번 돈을 마작으로 하룻밤에 탕진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돈을 다 잃고는 중국인의 조롱에 발끈해 도박판을 뒤엎기도 한다. 그런 다혈질의 그가 청부살인을 위해 대한민국에 와서는 청부살인 대상이 거주하는 건물의 층마다 설치되어 있는 조명등의 지속시간을 세심하게 체크할 정도로 꼼꼼한 인물로 변해 있다. 이것을 청부 살인 한번 제대로 성공하고 인생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에서 김구남에게 잠재되어 있던 꼼꼼함을 최대한 발현했다고 - 별로 말은 안되지만 - 합리화하면서 넘어간다 해도 의문은 남는다.
초반에 보였던 김구남 캐릭터는 나약하고 단점 많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건너와서 쫓기는 신세가 된 김구남은 갑자기 수퍼맨으로 변신했는지 경찰을 두세 차례나 따돌리고, 면정학 일당에게도 단 한번 잡히지 않는 대단한 진기명기를 선보인다. 게다가 자신의 청부살인 대상이었던 김승현 교수의 아내를 찾아가서는 나는 결국 죽을 것이지만 죽기 전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반드시 밝혀내고 말겠다, 며 뜬금없이 굳은 의지를 밝힌다. 사람 하나 죽이고 그 보상금으로 새출발하려고 청부살인 제안을 받은 그가 아니었던가. 한국에 온 김에 아내를 찾는 만으로도 시간과 몸이 모자를 그가 갑자기 진실 추구를 하겠다고 돌연 선언하는 그 뜨악함이라니. 김구남은 다중인격자인가. <황해>는 하드 보일드가 아니라 사이코 드라마였단 말인가.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가고 텅빈 상영관을 빠져나오며, 나는 엉뚱하게도 <황해>가 MB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허점 많은 캐릭터와 이야기의 ‘내적 오류’는 장쾌한 액션과 물량 공세의 ‘외부 전시 효과’로 덧칠해졌다. 휘두르는 칼질과 도끼질에 박진감이 넘치기도 하겠지만, 이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며 반복되는 칼질과 도끼질의 사실적 묘사가 그 시점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면 물음표가 떠오른다.
<황해>는 크리스마스가 낀 주말에 전주 1위였던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을 3위로 끌어내리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탄생'을 축복하는 연휴 기간에 이렇게 '죽음' 잔치를 벌이는 어둡고 잔인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케이스는 특이해 보인다. 나홍진+김윤석+하정우 트리오의 이름값이 주효했겠지만, 피폐한 현실이 영화를 만든 것을 넘어 잔혹함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긴 코스피 지수 2,000을 돌파하며 한편에서는 축포를 터뜨리지만, 하루 평균 42.2명이 자살하며 OECD 국가들 중 최고(2009년 기준)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괴이한' 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특이하다고 볼 정도는 아닌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