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 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p78)
군대에서,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릴 때면, 과연 그렇다 싶다. 사랑의 무한한 가치를 모른 채 나는 왜 그리도 저렴한 사랑만 고집했었나. 나도 당신도 값싸게 만들었던 내 사랑들을 떠올려 보면 참 부끄럽다.
그날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의 극심한 통증(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겼다)을 겪으며 긴 행렬에 끼어서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우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우리의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만약 특별배급으로 소시지가 나온다면 그것을 빵과 바꾸어 먹을까? 2주일 전에 상으로 받았던 담배 한 개비를 수프 한 그릇과 바꾸어 먹을까? 한 쪽 신발끈이 끊어졌는데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하지?(중략) 그러다가 매일 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p133)
고통을 회피하려고 했다. 부지불식간에 덮쳐오는 고통을 회피할 수 없었을 뿐더러 맞서 이겨내지도 못했다. 내가 있는 이 곳에서의 고통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살아가는 생을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면 아마 수십장의 페이지가 될 이야기들을 나는 과연 지금의 규율과 환경이 내가 원하는 방식과 배치된다고 해서 이 책장들을 찢어버릴 것인가.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렇다면 위의 방법은 제법 괜찮은 파해법이다 싶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니체)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p176)
옛말에 틀린 말 하나 없다. '고인 물은 썩는다.'
그리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목.표.의.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