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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류 아내와 스커트

이이나 |2003.12.12 19:38
조회 278 |추천 0

 장롱 위에 있는 선풍기를 꺼내려다 저 만치에 가만히 놓여 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문득 관심어린 시선이 갔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 가방은 항상 그 곳에 있었다. 그 것은 아내가 시집을 올 때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그 가방에 그렇게 관심을 보이지를 않았다. 그것은 내 성격 탓이기도 했다. 나는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의 사생활이 있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방 또한 아내의 사생활의 일부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가방은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아서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쓰고 장롱 위에 보관되어 있는 다른 물건들과 비교가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결정적인 요인이었는 지도 몰랐다. 나는 애써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 철석같이 지켜온 신조를 하루아침에 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가방을 아내의 사생활의 영역 속에 계속 간직해 두고 싶었다. 나는 담배 하나를 꺼내 피우면서 결정을 하기로 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문득 그것이 혹시 판도라의 가방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가방은 제법 무게가 나갔다. 어림잡아 40kg은 넘어 보였다. 그래서 아내가 여자의 힘으로 그것을 장롱 위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막상 가방을 방바닥에 내려놓았지만 망설임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를 않았다. 그리고 외출한 아내가 갑자기 들어닥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번 생긴 호기심이 쉽게 사그러들지는 않는 법. 나는 단숨에 가방을 열어 제쳤다.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여러 권의 스크랩북이었다. 나는 연신 방문을 곁눈질하며 그 중에 하나를 손에 집어들었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쿵덩쿵덩 뛰고 등줄기에서는 땀이 배여나왔다. 잠시 스크랩북을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로 아내가 전에 사귀던 남자들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의외였다. 그 곳에 꽂혀 있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성의류 사진이었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밀물처럼 밀려오는 실망감에 맥이 빠지고 말았다. 물론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것이 남자사진이기를 은연중에 바랬던 것이다. 그런데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크랩북을 계속 넘기다가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여성 스커트였던 것이다. 나는 빠른 손놀림으로 다른 스크랩북도 넘겨보았다. 거기에도 한결같이 모두 여성 스커트 사진들만 꽂혀있었다. 그리고 열 권 정도 되는 스크랩북을 들어내자 그 밑에는 의복이 가지런하게 쌓여 있었다. 그것들도 역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스커트였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놀라워했던 이유는 아내가 스커트를 입고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스커트를 입지 않는 이유는 외적인 신체결함 때문이었다. 아내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래서 한 쪽 다리가 온전치를 못했던 것이다. 나는 결혼 한지가 10년이 다 돼가지만 그 다리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가재사냥을 자주 다녔었다. 가재를 사냥할 때의 묘미는 역시 돌을 헤쳐서 잡는 것보다는 가재 굴에 손을 집어넣어 가재를 낚아채는 데 있었다. 굴 속에 손을 집어넣을 때는 나는 항상 두려움에 유난히 큰 눈을 똥그랗게 뜨고 파랗게 질린 표정이었다. 언젠가 가재굴 속에 무서운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도사리고 앉아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수중에서는 뱀이 익사를 하기 때문에 살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러나 동심의 세계에서는 그 이치에 닫지 않는 말들이 우리를 얼마나 공포에 떨게 했던가! 그런데 나는 그 공포심을 즐겼던 것 같다. 돌을 헤쳐서 얼마든지 가재를 쉽게 잡을 수 있었는데도 굳이 굴 속에 손을 넣어 가재를 잡으려 했었으니 말이다. 한 번은 굴 속에 집어넣은 손에 따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영락없이 뱀에 물렸다고 생각을 하고 울음보를 터뜨리면서 손을 잡아 뺐다. 그런데 손과 함께 아랫배에 까만 알이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는 커다란 가재가 딸려나왔다. 가재는 커다란 집게손으로 계속 나를 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손을 물고 있는 가재를 떨구어 내기 위해서 손을 이리저리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가재가 멀리 날아가 풀 속으로 떨어졌다. 놈에게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 잡으로 달려가자 놀란 가재는 버드강아지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불행이도 녀석이 타고 올라간 나무는 그리 크지가 않아서 까치발을 하고 녀석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잡고 보니 녀석은 그 전에 내가 잡았던 가재들과 다른, 좀 특이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집게발의 크기가 현격하게 차이가 났던 것이다. 한쪽 발이 다른 발의 반정도 밖에는 안되었다. 녀석은 불쌍해 보이는 그 외모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 그것이 동정심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돌에 내쳐서 죽임을 당했을 지도 몰랐다. 나는 나중에 자연시간에 녀석이 특이한 외모를 하고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재와 같은 갑각류는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면 다시 원래의 모습을 재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가재는 집게다리를 재생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아내도 그때 그 가재와 마찬가지로 한 쪽 다리를 재생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두 다리의 크기가 일치가 되면 입고 다니기 위해서 예쁜 스커트를 사 모으는 중이었다. 아내가 스커트를 입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앞에 서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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