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사랑하는 울 아버지..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이강현 |2011.01.24 22:27
조회 96 |추천 1

안녕하세요! 저는 24살의 건장한(?) .. 아니..

조금 아주 많이 뚱뚱한 어린이집 남자보육교사 입니다!

 

몇 개월 전에 처음으로 글을 썼었는데

뭐 바로 묻혀서..ㅜㅜ 그냥 다시 한번 써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글 남겨봅니다.

 

 

아. 참고로 전 요즘 대세인 음슴체는.. 과감히 생략하겠으니

불편하셔도 읽어주시면 제 마음이 한결 편할 것 같네요^^

또한 24년간의 일들을 압축해서 썼지만

세월이 세월인만큼 많이 길 수 있으니 지겨우시면 뒤로 가기를 클릭해주세요.

 

 

------------------------------------------------------------------------------

 

 

유복하지도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가정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저는

세상의 밝은 빛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두 눈은 하얀 백테가 가득했던

' 선천성 백내장 '을 판정받고

유년기 시절부터 초등학교 4학년이 될때까지

수없이 많은 눈 수술과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의학이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제가 운이 없던 탓인지..

왼쪽 눈은 백테가 사라지지 않은 채, 거의 시력상실에 가까웠고,

간신히 살아남은 하나의 눈으로 24년동안 동거동락 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본인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죄책감에 시달리며 절 정성스럽게 키워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다리에 조그마한 장애가 있으셨던 아버지는

총각때부터 제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 근 20여년 간 다녔던

공장을 그만두시고 다리 수술을 받게 되셨습니다.

 

병원에서 곧잘 치료를 받으셨던 아버지는

정밀 검사 중, 'B형 간염' 까지 받으셨는데

간단한 치료 외엔 대수롭지 않은 듯, 쿨하게 넘어가셨습니다.

 

그렇게 다리 수슬 때문에 공장을 그만두게 되니

생계가 조금 막막해지더군요.

어머님께서 인력 사무소에 가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시며

근근히 생활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그러다 제가 중 2가 되던 해에

그동안 모아두신 돈으로 어머님이 종업원으로 일하시던

식당을 인수인계 받으셔서 10여년이 된 지금까지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오픈 빨 덕인지, 울 어머님 요리솜씨가 좋아서인지

2년만에 식당 차리느라 빌렸던 빚을 말끔하게 갚으셨습니다.

정말 행복한 나날이 가득하던 가운데..

 

하늘이 시기한 것인지 가게가 잘 풀리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공장에 다니실 때 하루에 반 병씩 소주를 드시곤 했는데

다리 수술 후유증에 가게에 손님이 뜸해지자 차츰 술을 드시는 횟수가

많아지고 하루에 반 병이던 술이 어느덧 3~4병까지 마시게 되셨습니다.

 

소위 '알콜 중독' 이라고들 하죠?

정말 울 엄마, 저, 그리고 제 동생..

술에 찌든 아버지에게 숱한 괴롭힘과 가끔씩 보여주시는

폭력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으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보단 분노와 증오심이 극에 달해있었습니다.

 

그게 제가 고 2가 됐을 떄까지 쭈욱 이어졌고,

분노를 이기지 못한 저는 아버지 앞에서

술병을 던지며 " 이딴 술이 뭐가 좋다고 마셔! " 하며

깨진 술병을 보며 절대로 난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겠다. 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와중에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제게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지금은 핸드폰을 수거하지만 제가 고 2였을 때만 해도

핸드폰 소지가 가능하여 학교에 가지고 다닐 수 있었죠.

 

수업 중이라 받지 못하고 쉬는 시간에 확인해보니

어머니에게 전화가 3통이나 왔더군요.

평소 어머니가 자주 전화를 하시는 분이 아닌데다

핸드폰이 없어 아버지 폰으로 사용하셨기에

전화를 걸어본 후에야 어머니가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아. 왜 수업 중인데 전화를 해. "

 

" ........... "

 

" 왜 그래. 전화도 잘 안하더니 왠일로 3통이나 했어? "

 

" ... 강현아(공개를 해야할 것 같아 실명공개합니다.)...

너 지금 OO 대학병원으로 와야겠다. "

 

" 왠 병원? 누가 아파? "

 

" 네 아빠.. 병원에 입원했어. 지금 중환자실이니까 올 수 있으면 빨리 와.. "

 

" ..... "

 

 

중환자실이란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설마설마 하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조퇴를 허락받고

병원으로 향하니 어머니가 중환자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흐느껴 울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이유는

제가 등교를 한 직후, 술을 찾다가 구토를 하셨는데

술로 인해 간이 망가져 혈액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동맥이 터져 피를 토해내고 만겁니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목젖을 건드렸다고 하는 어머니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나중에서야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되었죠.

충격적인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기대어

어머니를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곧이어 의사가 다가오더니..

 

 

"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 하는 겁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고요해진다는 느낌. 아실런지요?

그렇게 죽도록 밉고 싫었던 아버지가 정말 제 눈앞에서

죽어야 한다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

상황 지켜보고 연락 준다고 집에 가있으라며

등 떠밀듯, 집으로 가라며 재촉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며 한참을 울고 계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쫓겨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도 ' 죽음 ' 이라는 것이 두려웠고,

내 가족이 내 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워

빨리 병원을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이 아파트라 엘리베이터를 타며

핸드폰을 열어 사진첩을 열고..

그 안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활짝이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걸을 수 없었습니다.

 

옆에 같이 탔던 주민은 이상한 듯, 저를 쳐다보았지만

그런 시선 하나도 신경이 쓰이지 않고 뚫어져라 사진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동생이 왜 우냐며 아빠한테 무슨 일 있냐며

말 좀 해보라고 했지만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방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다음 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화를 기다리는데

타이밍 좋게도 어머니에게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 강현아!!! 아빠 살았다!!! 고비 넘겼다는구나! "

 

그 말 한 마디에 그동안 얽매여왔던 불안한 감정이

스르르 녹으며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옴을 느끼며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 듯,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셨고, 저와 어머니를 알아보시더군요.

그렇게 중환자실을 거쳐 며칠이 지난 후에야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정신을 잠시잠깐 차렸을 때,

중환자실 곳곳에 피가 흥건하고 자신의 입에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느끼며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극에 달하셨답니다.

그리고 지난 7년간 술을 일체 끊으시게 될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혈색이 좋아지고 그 전보다 일도 열심히 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 가족의 사랑 '을 진정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늘은 우리 가족을 질투하고 시기하나봅니다.

그렇게 술을 끊은 지 2~3년이 지난 후,

그 날 일로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으시던 아버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 간경변(간암의 일종, 간이 굳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 '

 

이 진단을 받고 몇 개월간 숨기고 지내시다가

나중에야 어머님께 사실을 들은 저는 그야말로 패닉상태였습니다.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던 '암'이 내 아버지에게 나타났다는 것이

그저 원망스럽고 증오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셨습니다.

지난 번, 중환자실을 다녀온 이후로부턴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던 아버지이시기에

그 독한 항암치료를 정말 독하게 이겨내셨습니다.

 

고주파, 색전술 등, 간에 직접 주사를 놓거나 약물을 투여해

암 덩어리를 태워 죽이는 그 치료는 받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고역입니다.

온 몸이 찌릿하고 고통스럽고 너무나도 진이 빠지는 치료입니다.

곁에서 그걸 지켜보신다면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느껴질 정도니까요..

 

1년여동안 항암치료를 받으신 아버지는

외래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것만으로도 긴장을 하시고 두려워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썩을놈의 암은 쉽게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더군요.

 

죽었다 싶으면 다시 자라나는 것을 반복, 또 반복..

사람 진을 빼놓는 녀석입니다.

의사도 정말 항암치료만으로는 완치되기 힘들다며

최선책으로 '간 이식 수술' 을 권장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수술비용이 비싸서? 아닙니다.

장기 이식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KONOS(장기이식센터)에 등록을 해도 짧으면 바로 될 수 있지만

평균적으로 몇 년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죠.

의사는 한시가 급하다며 우리 가족을 재촉했고,

공여자를 알아보는 중에 친척 형님이 선뜻 이식을 해드린다고 하더군요.

 

정말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에 국빈 대접 하듯,

그 형님을 치켜세워드렸죠.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막상 병원에 입원하고 검사를 받다보면

'수술' 이라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나봅니다.

 

몇 개월간의 검사결과에선 별다른 소견이 없다고 하더니

막상 수술이 임박해오자 의사가 건넨 말.

 

" 이 분(친척 형님)의 간이 너무 작아 수술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

 

제가 왜 형님을 의심하냐구요?

 

이 형님과의 수술이 불가피해지고 절망에 빠진 아버지를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사실 아버지와 제 혈액형이 같은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죠.

반신반의 하며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선뜻 수술 권장을 하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처음 인삿말에도 언급했던

뚱뚱한 제게도 '비만성 지방간'이 발견되어

치료를 한 후에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더이다.

 

그렇게 120kg에 육박하던 제가 3개월만에 죽을둥 살둥 살을 빼니

25kg가 빠지더군요. 95kg.. 지방간이 쉽게 없어지진 않았지만

간 조직 검사를 두 번 실시하니 드디어 수술 승낙이 떨어졌습니다.

 

수술을 하기 전, 원무팀에 들러 KONOS에 승낙서를 제출하려면

수혜자(간을 받는 사람: 아버지)와 공여자(간을 주는 사람: 저)의 관계부터

수술 동기, 수술에 대한 감정 등..

3시간여동안 상담을 받았습니다.

불법 장기 이식이 판을 치고 있기에 신중에 신중을 가하는 것 같았죠.

 

그런데 여기서 제가 형님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상담내용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상담사: 정말 아들로서 멋진 결정을 내리셨네요. 저희가 KONOS에 신청을 할께요.

           대신 아무리 내 아버지라도 수술을 하고 싶지 않을 마음이 생기시면

           꼭 말씀해주세요. 수술 전 날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저희가 의사와 조율을 해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으니까요.

 

 

이 대목을 들으시면서 친척 형님을 못 믿게 되었죠.

물론 친척이지만 어느 누가 자신의 가족도 아닌 친척에게 쉽게 수술을 해주겠습니까?

정말 해주겠다는 그 말씀 하나로도 형님에게 감사했고, 또 미안했습니다.

 

사실 제가 어린이집 교사입니다.

부모님은 극심히 반대하셨지만 눈이 좋지 않은 제가

기술을 배우기도 뭐하고, 또 다른 것을 하다보면 눈에서 마이너스가 될 것 같더군요.

물론 부모님을 책망하고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 사는 일이 제가 마음 편한 것만으로 끝나진 않더군요.

 

무튼 어린이집 교사를 생각하고 일을 한지 2년차.

눈 떄문에 군 면제라 가능한 경력이죠.

아버지는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열심히 일하려는 제 모습을 보곤

마음 속으로 응원도 해주시고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구요.

 

아무튼 2010년 6월 중순에 저와 아버지는 나란히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이다보니 연차, 월차는 꿈도 못 꾸지만

원장님이나 동료 선생님들이 이해를 해주시는 덕분에

대체교사를 영입하고 마음 편히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 하기 8일 전에 입원했는데

그 곳에서도 수 많은 검사와 두꺼운 바늘을 팔에 꽂으면서도

아버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잘 견뎌냈습니다.

 

 

입원하는 내내 그간 아버지와 서로 일에 치여 하지 못했던 말들도 하고

오랜만에 겸상을 하며 수술 컨디션을 조절해갔습니다.

수술 이틀 전, 다음 날은 수술을 위해 금식을 해야했는데

이틀 전, 저녁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아~ 아빠와 수술 전에 먹는 마지막 저녁이네. "

 

" .. 그러게..^^ 어여 먹어. "

 

" 응~ "

 

 

뭐 그냥 쓸데없는 말이었죠.

수술 당일 날,

어머니는 식당 일을 제쳐두고 병원으로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 수술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일을 안해. 가서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

하며 어머니를 보내려고 했지만 어머님이 어디 쉽게 발길이 떨어지겠습니까?

자신의 남편, 그리고 아들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는데 말이죠.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그 무섭고 두렵고 추운 수술실에 들어가시면서도

잘 될거라는 말과 함께 인자한 웃음을 띄우며 들어가셨습니다.

 

저도 1시간 뒤에 곧이어 수술실에 들어갔고,

전 뚱뚱했지만 제법 건강한 몸이기에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이 아닌 병실로 이동되었죠.

 

마취에서 깨며 어머님께 물었습니다.

아빠 수술 끝났냐고.

아직이랍니다. 생각보다 수술이 길어진다고 생각했죠.

 

다음 날, 마취에서 깨느라 고생했던 탓인지

이미 탈진 상태였던 저는 목에서 자꾸 살덩이가 걸리적거리더군요.

가뜩이나 수술 후엔 물 한모금 안 주는데 살덩이까지 말썽이니

죽겠더라구요. 그러다 여자 의사가 동맥 주사 한대를 놓았는데

바로 정신을 놓았습니다.

 

예. ' 호흡곤란 ' 이 찾아왔죠.

그 살덩이는 수술 당시 목구멍에 삽입했던 인공호흡기 때문에

목젖이 부어오른 것이었는데 부은 목젖이 기도를 막아

하마터면 골로 갈뻔 했습니다. 다행히 중환자실에서 정신을 바로 찾곤

놀란 마음으로 저를 바라보시던 어머님의 눈물을 보며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녁에 눈을 뜨니 중환자실 면회 시간.

초췌해진 모습으로 나타나신 어머님께

" 걱정마. 잘 끝났잖아. 근데.. 아빠는..? "

 

중환자실에 무균실이 있는데 그곳에 있답니다.

정말 너무나 다행스러운 마음 뿐이었죠.

사실 의사가 수술을 할 때 테이블 데스(수술대에서 사망)을 할 수도 있댔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잘 버텨주신 아버지께 너무 감사했죠.

하지만 어머님의 이야기..

 

" 수술 중에.. 장기가 너무 부어서.. 배를 닫지 못했대..

지금 인공적인 테이프로 배를 가려놨는데.. 붓기가 가라앉으면

다시 수술해야한대.. "

 

벙찐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긴장했던 탓인지 잠에 빠져들었죠.

 

 

2010년 6월 25일 새벽 1시 20분.

제가 중환자실로 옮겨진 지 꼭 12시간만에

아버지는 저희 가족 곁을 떠나셨습니다.

 

의사의 다급한 소리, 정체 모를 기계들의 소리.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 고모의 절규어린 통곡소리..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 부정.

절대 아닐 거라고. 우리 아빠 아닐거라고.

그렇게 되뇌이며 저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데

의사의 한 마디에 무너졌습니다.

 

" 아버지.. 좋은 곳으로 가셨어.. "

 

미칠듯이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수술만 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를 붙들고 일어나라고 소리쳤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더군요.

 

저 역시 수술을 한 몸이라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정신적인 충격. 주위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는데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임종, 아버지의 장례식, 아버지 발인..

아무것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저 정말 불효자식입니다.

단지 간 한번 드렸다고 모든 게 해결될거라 생각했던

제 자신이 너무 밉고 한심스럽습니다.

 

퇴원하고 집에 있는 동안 아버지의 빈자리에

어머니 모르게 눈물 흘린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벌써 7개월이 흘렀네요.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 현재 복직 중 입니다.

 

그런데 24년 살아가면서 아버지께 단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 아버지에게 진한 사랑 고백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 아빠. 나 강현이야. 왜 그렇게 빨리 떠났어? 뭐가 그리 급해서..

하나님은 왜 착한 아빠를 빨리 데려간거야? 참 슬퍼 그게..

얼마 전, 꿈에서 아빠가 나타나서 괜찮다며 좋은 곳 보내줘서 고맙다고 했던 것.

평생 잊지 못할 꿈이야. 내가 아빠 정말 술 많이 먹을 때 미워하고 싫어했지만

사실 마음속에선 우리 아빠 짱! 이라는 말을 되뇌었던 것 같아.

사랑하는 나의 아빠. 그 곳은 어때? 많이 춥고 무섭지?

하지만 언제나 아빠를 응원해주는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이 있어서

마음은 따뜻하지?

 

아빠.. 정말 너무너무 많이 사랑해..

지금은 아빠가 너무 보고싶지만 꾹 참고 있어.

아빠 사진도 안 보고.. 미안해.. 아빠 보면 눈물 날 것 같아서..ㅎ

이해하지?

 

아빠.. 평생을 살아가며 아빠가 내게 준 그 큰 사랑.

커다란 버팀목이 사라진 내게 있어서 아빠가 그간 내게 준 사랑.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할께. 그리고 아빠는 영원히 내 아빠이고

또 내 사람이고.. 그리고 영원히 아빠를 사랑할 거야.

 

아빠.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그리고.. 정말 사랑해...^^ '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