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2011-01-31]
'캡틴'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31일 오전 국가대표팀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지난 2000년 4월 5일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던 박지성은 11년 만에 태극마크 유니폼을 반납하며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이날 대표팀 은퇴로 2009년 10월부터 맡았던 대표팀 주장 완장도 벗었다. A매치 통산 기록은 100경기 13골 7어시스트로 마감됐다.
1981년 2월 25일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박지성은 수원 세류초 4학년 때부터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세류초 시절 차범근 축구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박지성은 점차 축구에 대한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안용중을 거쳐 수원공고로 진학할 당시까지만 해도 체격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이에 부친 박성종씨가 개구리즙을 박지성에게 달여 먹일 정도였다. 이 일화는 박지성의 자서전에도 소개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이슈가 됐다.
1999년 명지대학에 진학한 박지성은 허정무 감독이 이끌고 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쳐 그해 4월 5일 동대문운동장에서 펼쳐진 라오스와의 2000년 아시안컵 1차 예선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6월 7일 마케도니아와의 LG컵 이란 4개국 친선대회에서 마수걸이 골을 터뜨린 박지성은 여세를 몰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고, 명지대학교 휴학 후 일본 프로축구 J-리그 교토 퍼플상가(현 교토상가)에 입단, 프로무대에 섰다.
아시안컵까지 활약을 이어간 박지성은 이듬해 거스 히딩트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 대표팀에 포함됐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했다.
포르투갈과의 C조 최종전에서 결승골을 성공시켜 16강행을 이끈 박지성은 대표팀의 4강 신화의 주역으로 발돋움했고, 히딩크 감독, 이영표(34. 현 알 힐랄)와 함께 네덜란드 프로축구 에레디비지에의 PSV아인트호벤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 부진했던 박지성은 점차 실력을 끌어올렸고, 2005년 AC밀란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개인득점에 성공,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지성은 2005년 7월 히딩크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맨유에 입단,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됐고, 부진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체력과 스피드, 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주전경쟁을 이겨내며 주요 선수로 올라섰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동점골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한 박지성은 이듬해 소속팀의 리그 우승으로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지만, 무릎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꾸준히 재활에 전념한 박지성은 그해 연말에 복귀, 2008년 FC바르셀로나와의 UEFA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맹활약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결승전에 출전할 것으로 보였지만, 첼시와의 결승전에서 출전명단 제외의 아픔을 맛보았다.
와신상담한 박지성은 대표팀과 맨유를 오가며 꾸준히 활약을 이어갔고, 2008년 10월 15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B조 2차전부터 허정무코리아호의 주장으로 발돋움했다.
2008년 12월 아시아 선수 최초로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우승을 맛본 박지성은 2009년 5월 FC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서며 또 하나의 아시아 최초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2009년 10월 15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을 앞두고 대표팀 주장을 맡은 박지성은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본선행을 이끌어냈고, 사상 첫 한국의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기여하며 주목을 끌었다.
조광래코리아호로 변모한 대표팀에서 박지성은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반 세기만의 아시아 정복이라는 목표를 대표팀에서의 마지막 꿈으로 그렸지만, 아쉽게도 3위에 그쳐 파란만장했던 대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뉴시스 박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