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잊지못했고 분이 풀리지 않아 톡에서나마 제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2008년 5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중 운명같이 만난 前 남자친구와 예쁜 만남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학생이었고 그 남자친구는 불법 오락실(일면 바X이야기와 같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래들과 같이 평범하게 20살이 되어 대학 캠퍼스의 설렘을 안은지 2달정도 된 평범한 저였지만
언젠가부터 남자친구의 가정환경은 저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술주정, 그리고 밑에 동생이 둘이나 있지만 가장인 아버지는
정작 무직으로 저와 동갑이었던 첫째 동생이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도시에서 조금 더 큰 도시로 대학을 와 신기한 것도 많이 봐왔지만 이런 가정환경은 처음이라 저도
2살 더 많은 남자친구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정말 많이 좋아했습니다.
5월 6일부터 가진 만남이었는데 11일 쯤 그 남자친구가 아는 형을 데리고 온다며 저에게도 친한 언니 한명을
동행해 나오라고 해 평소 정말 믿고 따르던 언나를 동행해 만남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제 남자친구와 그 언니가 눈이 맞았더군요.
이 사실도 동거에 들어간 지 한달 후, 정확히는 사귄지 두 달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용서했습니다.
한번 정 들면 모든 걸 다 바치는 성격이라 사귄지 한달 후 아르바이트로 제가 모든 수입을 맡으며
반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여자를 항상 한달도 못만나던 바람둥이가 진짜 사랑을 만나면 올인을 한다죠?
제 남자친구가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나쁜남자였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사귀고 있었는데 만난지 약 100일 째 되던 날.
제 몸 속에 아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고민하고 말것도 없이 중절 수술을 하려 했지만 아르바이트로 남자친구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저에게는 모으기 힘든 금액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일용직이라도 하지 않던 남자친구가 참
원망 스럽습니다. 왜 그 때 그러고 있었을까요. . . .
눈앞이 막막하고 믿기지 않는 현실에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금액을 마련했지만
.
운명의 장난인지 수술을 얼마 앞둔 전 날에 그 동안 모아온 돈을 고스란히 잃어버리고
남자친구의 입영 날짜는 다가왔습니다.
일반 병사로 가는 것이 아닌 시험을 쳐서 간부로 가는 공군부사관.
가정환경은 어려웠지만 대학생인 저보다 똑똑했고 독서로 좋아해 유식했습니다.
그렇게 입영날짜를 앞두고 저희 둘은 운명이라 받아들이기로 하고 아기를 키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부모님께는 당장 알릴 자신이 없어 분만을 결심하고 알아 본 곳이 바로 미혼모의 집.
무료숙식과 분만, 그리고 산후조리를 도와준다고 해서 입소를 결정했습니다.
7개월이 되던 남자친구의 입영 날, 첫 초음파 검사를 하러갔는데 왜 그렇게 기쁘던지. . . . .
부모님께는 적당히 둘러대고 집에서 잠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잘 지내봐야지.’하고 생각하지만 하루아침에 바뀐 환경에 너무 적응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낯선 환경과 쉽게 친해지기 힘든 친구들, 집이 너무도 그립고 외로웠지만 태어날
아기와 분만 후의 귀가를 그리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곳에 입소해 정기적인 검진을 다닐 때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에 대해 신기하기도 했지만
미안함과 고마움이 앞섰습니다. 몸이 무거워 짐에 따라 ‘엄마께서도 날 이렇게 힘들게 뱃속에 담고
다니셨을텐데’ 하는 생각에 부모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도 있었습니다.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날 남자친구가 203기 임관식을 마치고 5일간의 임관휴가를 나왔습니다.
병원의 의사선생님께서는 출산 할 때에 남자친구가 곁에 있으면 좋을 것이라며 기왕 휴가나온 김에
촉진제를 맞아 분만을 유도하자고 했지만 남자친구는 진통중인 저를 차마 볼 수 없을 거 같다며
거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것도 참 무책임한 행동이었는데 말이죠. . . .
하루 중의 유일한 낙은 남자친구가 보내주는 편지와 제가 하루일과를 적어 보냈던 답장이었습니다.
그 곳의 친구들은 모두 20대 초반인 제 또래였기에 대부분이 분만 후 입양을 보냈습니다.
사실, 양육을 할지, 입양을 보내야 할지는 지난 10개월간 가장 큰 고민 거리였습니다.
양육을 한다고 해도 저와 남자친구의 꿈을 접어야 할 테고,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 아기 또한 그다지
행복하게 성장 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입양을 보내는 편이 낫겠다, 라고 생각하는 도중 예정일이 되었습니다.
23시간 동안의 진통을 통해 예정일에 딱 맞춰 태어나 준 아기는 건강한 남자 아이였습니다.
입양을 결정하기는 했지만 막상 남자친구를 쏙 빼닮은 아기를 보니 양육 쪽으로 다시 한 번 고개가
되돌려졌습니다. 퇴원 후에 시설에서 산후 조리를 하는 기간 내내 수면을 방해 할 정도로 머릿속을
꽉 메운것은 아기 생각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철없는 행동으로 생긴 아기지만 분명한 생명이고,
제 꿈을 접더라도 아기는 꼭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선생님과 상담 끝에 부모님께 알렸는데, 커다란 실망감으로 호되게 야단치실 줄 알았던
부모님께서는 오히려 몰라줘서 미안하다며 내 잘못을 덮어 주셨지만 남자친구와 아기에 대해서는
냉랭한 태도셨습니다. 결국, 아기는 한번 안아 보지도 못하고 입양리스트에 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과 집에 돌아온 지 한달, 남자친구로부터 이별 통지를 받았습니다.
애도 없는데 저와 잘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였습니다.
그 후로 산후조리식인 미역국은 물론이고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는데 부모님께서는 이를 눈치채시고
남자친구를 집으로 부르셨습니다. 따귀라도 때리실 줄 알았던 부모님은 너무나 자상하게 대하셨습니다.
어려웠던 가정환경을 가진 남자친구를 안쓰럽게 생각하시고 저와 잘 지냈으면 한다고 타일러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러다 아기가 백일 째 되는 날을 기억하고 혼자 울고 있을 때 부모님께서는 아직도 아기를 못 잊었으면
데려와 양육하는 방향으로 하자 하셨습니다.
너무 기쁜 마음에 남자친구에게 알렸지만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주말까지 생각해 보겠다고 했는데 그 주 주말. . . 남자친구는 저희어머니께 전화해 버릇없이 막말을
하고 저에게 너희 부모 왜 이리 사람을 귀찮게 하냐며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그런 놈과 다시는 연락도 말라며 그놈 새끼도 잊어버리라고 하시고는
양육문제는 그걸로 끝이 났습니다. . . . . .
그 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살기도도 해 보았고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도 다녔고 참 많이도 망가졌었습니다.
출산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몸에 상처도 많이 나서 속상했지만, 몸보다 더 큰 상처가 마음에 생겼고
길 가에 걸어가는 남자아이들만 보아도 잘 크고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결국 몇 달 뒤 아기는 타국으로 입양을 갔고 저는 이별 후 약 1년이 지난 후에서야 그 때 이별을
통보하던 당시 남자친구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관 후 특기 학교에 들어가 그것도 다른 여군과. . . 말입니다. . . 하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고 잊어버리고 싶지만 약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처럼 쉽질 않습니다.
제가 지내고 있고 남자친구의 고향인 이 도시에는 1비행단이 있어 남자친구는 자대를 이쪽으로
선택했다고 후에 들었습니다. 때문에 지나가는 공군만 봐도 목에 칼을 꽂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사실 천안함 사건때 전국에서 그 사건을 보고 웃은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놈과 아무런 관련없는 돌아가신 국군장병들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그 당시에는 '공군', '하사' 등 군에 관련된 분들만 봐도 살인충동이 일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타국에 있는 아기와 언젠가는 만나볼 희망을 기대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놈만큼은 제발 행복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 . 지금도 치가 떨릴 정도입니다.
정말 우연히 얼굴이라도 볼수 있을까 싶어 前 남자친구가 있는 1비행단에 부사관 시험을 지원해 필기시험을
몇번 치르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책상이 없고 작은 나무 판자를 하나 주며 책상대용 시험지 받침으로 쓰라고
주더군요. 거기에는 전에 시험을 치루었던 응시자들의 낙서가 한가득이었습니다.
문득, 이것을 통해 내 목소리를 내 볼수도 있겠다 싶어 두번의 시험에 모두 위의 글과 같은 내용과
前 남자친구의 신상명세를 대충 적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에게는 만족이었는데 . . .
누군가가 그글을 보고 1비행단 안에 소문이 났나 봅니다.
제가 생각한 방향을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복수라고 아는 몇명의 친구들은 속시원해 했지만
막상 그사실을 알고 나니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게 아닌데. . . . .
휴. 이 곳을 통해서나마 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속이 조금은 후련하네요.
판이 되어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작은 욕심이 있지만. . ^^;
두서없이 쓴 글이라 너무나 읽기 지루하셨을텐데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