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1살 되는 건장한 청년입니다. 지방으로 알바와서 숙소에서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아름답고 안타깝고 행복했던 추억을 정리하면서 느낀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땐 축구부에서 축구를 했었고, 중학교땐 축구를 그만두고 농구를 했으며, 고등학교땐 농구와 축구와 야구를 했고, 지금은 조기축구와 사회인야구를 병행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초등학교땐 운동하랴 장난치랴 애들 괴롭히랴 바빠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슬슬 이성에 눈뜨려고 하니 남중에 입학하여 농구만 죽어라 했고, 고등학교는 공학에 입학했지만 분반이라 남자고등학교와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사실 남중이든 분반이든 사귀고 만나고 할 것 다 할 수 있지만, 여드름 많은 피부에 점심시간만 되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뛰어다니던 저에게 연애는 뜬구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던 중 고2 끝나갈 무렵 '아, 이제 몸가짐도 똑바로 하고 공부도 해서 대학을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생각만 하고 실천은 제대로 하지 않아 수능을 실력대로 망치고 재수하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좋아하는 운동의 시간과 횟수를 80프로 이상 줄이고 겨울방학 보충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교실에서 친구들과 장난치고 있었는데 복도에서 뭔가가 번쩍이더군요... 다시 자세히 보니 이과반 여자애들 무리 중 한 아이한테서 나온 빛이었습니다. 친구들한테 '저 애 누구냐?' 고 물어보니 이과 x반 xxx라는 여자애라고 하더군요.
'첫눈에 반했다' 라는 말로만 듣던 감정을 직접 느꼈습니다. 가슴이 벌렁벌렁거리고, 머리가 텅 하고 비더군요.
그 때 학교 스캐쥴이 보충수업 1-4교시, 점심시간, 개인자습 이었는데, 알고보니 그 친구와 4교시중 2개가 같은 수업이더군요.
항상 땡땡이치고, 자고, 피씨방으로 도망치던 보충수업이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보충수업시간에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한 것은 물론이고, 발표할때 목소리를 깔고(중저음이라고 멋있다는 말을 자주 듣기 때문에...), 그애가 보이는 자리에 앉고, 옷차림도 깔끔하게(교복이지만) 하는 등, 최대한 잘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잠깐잠깐 그애가 긴 생머리를 펄럭일때도 너무 멋있었고, 스칠때의 샴푸냄새도 너무 향기로웠고, 그애가 발표할 때의 목소리도 너무 달콤했으며, 그때 들리는 모든 노래의 가사가 꼭 내 이야기 같았고, 항상 설레였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상이 아름다웠습니다.
이상형이라고 해야 되는진 모르겠는데 평소에 '나 이쁘니까 날 봐라' 라고 광고하고 꾸미고 다니는 여자애들 보단 외모에 신경쓰지 않고 깔끔하게 자기 할 일 똑뿌러지게 하는 사람과 만나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완벽하게 부합했습니다. 너무 좋았죠...
초등학교 이후 또래 여자아이들과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적이 없던 저였지만, 이 아이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같은 수업을 듣기 전 쉬는시간에 매점에서 커피를 사서 그 친구에게 수줍게 갖다주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행동을 실행했는지 신기하네요.)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 친구와 계단을 걷고 있는데 그 아이가 지나가길래, 충동적으로 번호를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친구와 같이 있을때 물어보는것은 그 아이가 부담스러워 할것 같아 친구를 보내고, 그 아이에게 '저기 너와 친해지고 싶은데 번호좀 알려줄래?' 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웃으면서 '그래, 핸드폰 줘' 라고 하더군요... 전'핸드폰이 없어서,종이에 적어줄래?' 라고 했습니다... 연애라든지 이성관계라든지 경험이 없다보니 호감이 있으면 번호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망연히 생각하여 핸드폰도 없이 막무가내로 들이댄거죠...
알겠다고 한 그 아이 표정이 좀 이상해졌지만, 전 기쁜 마음에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그 아이와 문자를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나머지 수업을 들었습니다.
다음날, 그 아이에게 수첩을 주어 번호를 받고, 수업시간이나 쉬는시간엔 이 아이 공부하는데 방해될까봐 점심시간이 끝난 후 친구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저'안녕, 나 번호물어본아이.ㅁㄴ.ㅇ라ㅓㅁㄴ이럽ㅈ디ㅏ서ㅣㅏㄴ머아ㅣ 공부해?'
그아이'응'
저'ㅁㄴㅇㄻㄴㅇㄻㄴㅇㄻㄴㅇㄻㄴㅇㄹ?'
20분후
그아이'ㅁㄴㅇㄻㄴㅇㄻㄴㅇㄹㄴㅁㅇㄻㄴㅇㄻㄴㅇ'
이 문자내용은 제가 지금까지 핸드폰 인생 3년중 가장 쑥쓰럽고 떠올리기 싫고 소름돋았던 문자였습니다.
그리고 집에가선 문자가 되는 우리집 전화기로 문자를 보냈지만 씹혔던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친구에게 말했더니 너 왜그랬냐고 하더군요...
제 평소 생각이'이미 지나간일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 그 것을 경험삼아 고치고 발전하자' 였습니다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정말정말정말x100 만큼 후회되더군요..
'그래도 나에게 번호를 알려준 것은 첫인상이 호감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하여 자습실의 그 아이 자리에 커피와 함께 포스트잍에 '핸드폰이없어서 ㅇ어쩌고저쩌고,,ㄴㅇㅁ리ㅏㅁ 내가 이런것이 처음이라 서툴러 ㅁㄴㅇㄻㄴㅇ라ㅣ, 핸드폰을 곧 사니 연락하겠다 ㅁㄴㅇㄻㄴㅇ' 라는 내용을 적어 올려놨습니다.
그 후, 쪽팔리기도 하고, 공부하는데 방해될 것 같아 있는듯 없는듯 지내다가 이주일 후 핸드폰을 사서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더군요... 제가 그 아이였어도 저를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을겁니다. 그래도 이대로 어물쩡 넘어가면 후회가 있을 것 같아 그 애가 공부하고 있을 때 '잠깐 얘기좀 할 수 있을까?' 라고 말을 걸었는데 '지금 바쁘다' 고해서 '잠깐이면 된다' 라고 하니 '이제 나한테 말걸지 마' 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고 후회많았던 겨울방학이 지나고, 1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지나고, 수능전날이 왔습니다.
그 애와 관련된 고3때의 이야기를 모조리 쓰고 싶지만, 너무 자세히 쓰면 제 신상이 탄로날 것 같아 그만 두렵니다.
그 애와 잠깐잠깐씩 스칠때마다 느겼던 그 설레임과 행복은 지겹고 지겨웠던 고3생활의 활력소였습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는 생각에 수능 전날 (수능전날인가 수능이 빼빼로데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빼빼로초콜릿을 건내주기 위해 핸드폰에 봉인해 두었던 그 아이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 '안녕 오랜만이야'
그아이 '누구세용?'
나 '누구누군데...'
응답없음
이렇게 끝났습니다.
'10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 '용기있고 끈기있는 사람들이 여자를 쟁취한다' '정말 좋으면 매달려라' 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전 싫다는 사람에게 자꾸 들이대면 그 아이가 불편해 할 것 같고, 제가 키도 큰편이고 등치도 좋은 편이라 그 아이가 겁먹을 것 같아서 여기서 그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의 친구의 친구를 통해 이것 저것 알아보니 그 아이가 이기적이고, 성적을 따지고, 학교를 따진다는 등 안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전 아름다운 추억과 설레임, 그리고 좋은 경험을 준 그 아이에게 정말 감사하고, 어리숙하게 그 아이를 불편하게 했던 것에 대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또, 내가 좀 더 잘할껄... 핸드폰을 산 후에 번호를 물어볼껄... 하는 후회는 있지만, 고백한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분들이 많이 계실껍니다.
'사귈 수 있을까?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여기서 끝나면 어떻게 하지?' 등의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계실텐데
결과가 어떻든 그 설레임과 용기있는 선택을 한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은 두고두고 남을 추억이 될 것입니다.
용기를 내세요.
(생각나는대로 적은거라 빼먹은 내용도 많고, 정신없네요... 그냥 재미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