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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스완

김동호 |2011.03.01 13:49
조회 49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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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네이버에서 펌) :

 뉴욕 발레단의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연약하지만, 순수하고 우아한 '백조' 연기로는 단연 최고로 꼽히는 발레리나. 새롭게 각색한 '백조의 호수' 공연을 앞두고, 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니나를 '백조'와 '흑조'라는 1인 2역의 주역으로 발탁한다. 하지만, 완벽한 '백조' 연기와 달리 도발적인 '흑조'를 연기하는 데에는 어딘지 불안하다. 게다가 새로 입단한 릴리(밀라 쿠니스)는. 니나처럼 정교한 테크닉을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관능적인 매력은 뿜어내, 은근히 그녀와 비교된다. 점차 스타덤에 대한 압박과 이 세상의 모두가 자신을 파괴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니나. 급기야 그녀의 성공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던 엄마마저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한 상황에서 그녀는 내면에 감춰진 어두운 면을 서서히 표출하기 시작하는데...

 

 

review :

 나탈리 포트만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전인 2월 26일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을 보았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두 번째 장편인 <레퀴엠(Requiem for a dream)>은 내 인생의 영화다. 2002년, 지금은 폐관되어버린 종로의 코아아트홀에서 단관 개봉한 <레퀴엠>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갖가지 편집과 스타일의 기교를 부리고, 네 인물의 시점을 복잡하게 오가면서도 내러티브는 유지되는 점이 놀라웠다.

 

 그는 오랫동안 ‘나만’ 알고 싶은 감독이었다. 왠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싫어서 컬트적으로 남았으면 하는 그런 것.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임스 카메론은 알지만 아로노프스키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난 이런 감독도 알아’하고 지적 허영심을 뽐내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없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은 이 감독의 이름을 부정확한 발음으로 언급해서 욕을 했다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블랙 스완>이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6배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면서 이런 팬으로서의 욕심은 조금씩 물 건너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블랙 스완>을 보고 나니 크게 흑백의 공존, 거울, 시점의 세 가지 감상 포인트가 잡혔다.

  

 첫째, 흑백의 공존.

이 영화에는 블랙과 화이트 외에 다른 색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외는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의 방 벽지와 침대에서 보이는 연한 핑크색(이것은 아직 마마걸에 가까운, 연약한 니나를 말한다), 마약에 취한 클럽 씬에서 원색 계열의 빨강, 파랑색 정도이다. 스토리만큼이나 어딘가 모르게 영화 자체가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런 무채색으로 한정한 색감의 사용 때문이다.

 

 연약하고 순수한 백조와 도발적이고 사악한 흑조를 동시에 완벽하게 연기하려다 보니 분열성 정신 질환에 빠져드는 발레리나의 스토리에 맞게 <블랙 스완>에는 블랙과 화이트의 색감이 공존하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주동인물인 니나의 의상은 화이트, (니나와 다르게)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인 릴리(밀라 쿠니스 분)와 니나에게 집착하는 니나 엄마(바바라 허쉬 분)의 의상은 블랙이다. 니나의 증상이 심해지면서 연습 중인 니나의 타이즈 색도 블랙으로 바뀐다. 검은 옷을 입은 니나의 엄마가 ‘백조의 호수’ 주연 역을 따낸 것을 축하하며 딸에게 흰 케이크를 내미는 장면(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지나친 행동)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니나가 길거리에서 블랙 의상을 입은 자신의 환영을 보는 장면은 흑조 연기의 가능성이 내재된 니나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흑백의 공존’은 이외에도 여럿 발견된다. 발레 감독 토마스(뱅상 카셀 분)가 객석에 앉아 니나에게 계속 다시 해보라고 주문할 때, 토마스가 입고 있던 상의는 화이트, 카메라가 토마스를 비출 때 주변으로 보이는 객석 의자는 블랙이다. 반대로 니나가 지하철에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변태노인을 보고 있을 때, 노인의 의상은 블랙, 지하철 좌석은 화이트다. 그리고 니나와 엄마가 거주하는 주택의 현관문 색은 블랙, 복도 벽면은 화이트다.

 

 

 

=====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영화보실 분들은 관람 후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

 

 

 둘째, 거울.

 <블랙 스완>에는 이중적으로 분열하는 니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니나를 둘러싸고 실로 많은 거울들이 등장한다. 발레 연습실, 분장실, 화장실, 니나의 집 등 니나가 움직이는 주요한 장소마다 거울이 보인다. 니나의 연기가 조금씩 좋아지고, 더불어 니나의 정신병도 심해지면서, 양쪽 거울 사이에 니나가 있고 셀 수 없이 많은 니나가 거울에 비치는 장면도 등장한다. 호러 영화처럼 거울 안의 니나가 거울 밖의 니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장면은 김성호 감독의 2003년작 <거울 속으로>에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도 한다.

 

- <거울 속으로> 중 한 장면 -

 

 

 

 니나가 붉게 변한 눈으로 깨진 거울 속 자신을 보는 장면도 기억에 남을 만하지만, <블랙 스완>에서 거울을 활용한 미장센 아이디어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커다란 삼각거울을 이용해 엄마가 오른쪽에, 니나가 왼쪽에 앉아 있고 두 사람의 거울상이 서로를 향해서 엇갈리게 비추어져 있는 장면이다. 딸을 사랑하면서도 집착하고 구속하려는 엄마, 엄마가 소중하지만 흑조 연기에 대한 야망으로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주체성을 얻어가고 싶은 모녀의 각자의 이중성이 멋지게 표현된 씬이다.

 

 셋째, 시점.

 <블랙 스완>은 니나의 시점으로 시작해 니나의 시점으로 끝난다. 관객은 니나가 보고 듣는 것만 보고 들을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 관객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신경증 환자를 이해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니까. 더군다나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신경증 환자의 머릿 속에 들어앉아서 세상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 영화가 미로를 찾아 헤매는 기분을 들게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영화의 첫 장면이 니나의 꿈으로 시작한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꿈이란 현실과 비현실의 혼합과 변주가 아니던가. 내겐 그 장면이, 이 작품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오가는 영화라는 선언처럼 보였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좀 더 흥미로운 해석이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니나의 시점에 지배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무엇보다 니나의 역할과 연기가 중요하다.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다. <블랙 스완>에서의 광기어린 표현은 <클로저>에서의 스트리퍼 연기나 <브이 포 벤데타>에서의 삭발 투혼을 훌쩍 뛰어넘는다. 전작인 <더 레슬러>에서 미키 루크의 망가진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했던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블랙 스완>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의 기존의 연약한 이미지를 백조에서는 활용하고, 흑조에서는 전복시키는 묘수를 썼다. 화가 난 니나가 방 안의 인형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을 때 내겐 그것이 ‘이제 <레옹>의 마틸다 따위는 잊어줘!’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외 몇 가지.

 <블랙 스완>의 흠이라면, 분장실의 니나가 착란 상태에서 자신에게 칼을 찔렀음에도 공연 중엔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상에 혈흔이 그 정도로 묻혀 있을 정도라면 객석에서도 보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 동료 배우들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공연이 다 끝난 뒤에야 갑자기 피투성이가 되는 것은 비약이 심했다. 니나는 공연에 대한 야망으로 흘러나오는 피를 도로 몸속으로 빨아들이는 재주까지 부렸던 것일까. 분열성 신경증이 초능력은 아니지 않은가.

 

 

 퇴물 발레리나인 베스 역을 연기한 위노나 라이더는 안타깝다. 그 인물이 위노나 라이더인지 아닌지 헷갈려 하는 관객들이 많고, <블랙 스완>을 보고도 위노나 라이더가 나왔다는 것조차 모르기도 한다. 하긴 얼굴도 좀 변했고, 영화 출연이 뜸해서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도벽으로 인해 가십기사에나 등장하는, 한물간 배우가 되어버린 그녀에게 퇴물 발레리나 역을 맡긴 아로노프스키는 캐스팅을 잘 했다고 해야 할지, 너무 잔인하다고 해야 할지.

 

 <블랙 스완>을 보다 보니 앞에 언급했던 <거울 속으로> 외에 다른 몇 가지 영화도 생각났다. 분열성 자아를 다루는 점은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을, 완벽한 연기를 위해(또는 최고의 순간을 위해) 열정을 다하고 관객의 함성 속에 최후를 맞는다는 결말은 전작인 <더 레슬러>와 공통이라고 할 수 있다.

 

 완벽을 꿈꿨던 니나는 극심한 망상과 강박에 시달리다

 일생 한번 뿐이라 할 경이로운 순간을 맛보고 생을 마감했다.

 

 어제...

 내가 매번 완벽하기를 바랐던 Z로부터 ‘끝’이라는 말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나를 미치지 않게 해주어서.

 다행입니다. 망상과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서.

 

 당신과 나의 이른 파국이 당신과 나의 삶을 좀 더 인간적으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완벽한 결과가 항상 완벽한 과정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랍니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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