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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를 사랑하고 싶다. 진정으로〃_『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읽고.

곽진숙 |2011.03.06 01:33
조회 99 |추천 2

〃나 그대를 사랑하고 싶다. 진정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나. 아직도 엄마에게 굽히지 못한다.

   ‘......’

 

   싸움의 시초는 이렇다(다투었다는 주체가 엄마가 된다는 것부터가 누구에게는 용납할 수 없으리라). 집으로 들어오는 내 옷매무새를 보시더니 기막히게 ‘구성마이너스’ 라 하신다. 항상 이 옷을 입을 때마다 벌어지는 각축전이기도 하다.

   “난 괜찮기만 한데 왜 그래. 엄마만 그러지 다른 사람 아무도 그런 말 안 해.”

   물론 난 그 다음에 어떤 문장이 올지 100% 알고 있다.

   “엄마니까 얘기해 주는 거지!”

   그렇게 계속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내 약점을 건드리셨다.

   “너가 다른 애들처럼 허벅지가 또 날씬하면 몰라(이때 난 다이어트를 결심하곤 하지만 이내 무너지고 만다).”

   난 드디어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묵상하려 노력했던 그 마음과 방금 전 철야 예배로 받은 은혜는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린 채 꽥꽥 소리 지른다.

   “나보다 뚱뚱한 애들도 당당하게 잘 먹고 잘 살아!!!!!!!”

   “넌 어떻게 엄마한테 단 한 번을 안 지니.”


    ‘하......’

   내 말이 앞뒤가 맞긴 한 건가?

 

   방문을 닫았다. 난 항상 방문을 열어놓기 때문에 내 방이 닫혀있다는 건 상대방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엄마는 어떠하실지 모르지만 이 상태가 나의 그 어떠한 상황 중에서도 가장 견딜 수 없고 무엇보다도 악으로 빠지기 쉬운 상황이다. 시험에 낙방했을 때보다도, 누군가에게 욕을 먹었을 때보다도, 그 어떤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보다도. 정말 그러하다. 철저하게 나 혼자가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다 포기하고 싶다. 다. 전부 다.


    그런데 예전보다 신앙의 무게가 깊어지니(물론 아직 하안~참 멀었다는 거 안다) 이전에 비해 제 상태로 돌아오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마음의 상태가 나약해 졌다 하더라도. 내가 말하고 싶은 요점이기도 하다.

   무의식적으로 영화를 틀었다. 한 편을 다 보고 역시 무의식적으로 책장을 넘겼다. 소름이 돋았다. 이때가 무의식에서 현실로 돌아온 시점이다.

 

   [권씨(율곡 아버지의 첩, 신사임당이 죽은 후 새 여자를 들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율곡을 괴롭혔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툭하면 방바닥을 두들기면서 시위하고, 빈 독에 머리를 처박고서 온 동네가 다 듣도록 통곡했다. 집안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물론 괜한 트집이었다. 그때마다 율곡은 아무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권씨의 방문 앞에 꿇어앉아서 그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권씨가 목을 매달고 자살소동을 벌이다가 그 후유증으로 사흘 동안 앓아누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율곡은 친어머니 신사임당에게 하듯이 손수 약을 달여 바치면서 권씨를 극진히 간호했다. 율곡의 한결같은 사랑은 권씨를 변화시켰다. 그는 서서히 착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했고 나중에는 율곡의 덕을 사모한 나머지 율곡처럼 살고자 했다.]

 

   [그런 묵자를 두고 맹자는 “그는 타인을 위하는 일이라면 머리끝에서 발꿈치까지 온몸이 다 닳아 없어질지라도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고, 장자는 “묵자는 천하의 호인으로 비록 몸이 말라서 없어질지라도 남을 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무엇을 느꼈겠는가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그들도 저리 심성이 갸륵하고 청렴하거늘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 마음먹은 난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이렇게 내 자신에게 위로했다.

   내가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와 다툴 때가 그 여느 때보다 힘이 드는 것이라고.

 

   집에서의 모습과 밖의 모습이 다르다고 흔히들 말한다. 난 그 수위를 매길 수 없을 정도이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을까.

   “진숙이를 보면 정말 잘 자란 것 같아요. 어쩜 그렇게 잘 키우셨어요?”

   이 말을 들으시는 부모님 뒤에서 웅크리고 나오는 내 한 마디.

   ‘주여......’

 

   “사랑하니까요. 가족이잖아요. 편하니까요.”

   변명일 뿐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자랑이 될 수 없다. 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내 모습을 다 보여줘선 안된다.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그것(잘못을 느끼는 행위)은 어떠한 식으로든 이제 나의 모습이 되어선 아니 된다.

 

   공상보다 사색을 하라 한다.

   난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아주 많고 복잡한데(그래서 수학을 좋아했고, 현대음악 작곡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 여겨(주변에서 항상 권고하기도 했다) 단순해지려 노력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오히려 이것이 날 더 옭아매고 힘들게 했다. 지금 느끼기에 오히려 이전의 내가 더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다 여긴다. 그러던 와중『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만났고, 다시 돌아왔다. 이제라도 제자리를 찾게 돼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어떤 현상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가지고 이전에도 끊임없는 사색을 하긴 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자제하려고 했었다. 그래도 참을 수 없을 땐 메모를 해 두곤 했었는데 얼마 전 다시 본 그곳에서 아주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여느 인문고전 독서가들처럼(물론 그분들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도 안 되지만) 몇 년 전 ‘나’, ‘너’, ‘우리’를 놓고 고민했던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왜 내가 대학 교양 과목으로 철학과 심리학을 두루 살폈었고, 부족하지만 여태껏 수학 과외를 하고 있는지.『안나카레니나』를 고등학생 때 피아노 선생님께 추천 받아 읽게 되었었는데 왜 그때 그렇게 어려워했었고, 내가 지적으로 이해 능력이 떨어지는 바보가 아닌가 절망했었는지, 왜 그래도『오만과 편견』은 쉽게 읽었는지. 모든 해답을 찾았다. 책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달음’을 위한 ‘사색’과 ‘사랑’에 있었다. 물론 ‘깨달음’을 얻는데 ‘사랑’이 없는 ‘사색’이 있을 수 없고, ‘사색’이 없는 ‘사랑’ 또한 결부될 수 없는 논리이자 이치다.

   이것이 바로 어느 분야에서든지 통(通)하는 해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연습에 집중하고 공부하며 사색해야 하는지.

   재즈 거장들의 명연주를 얼마나 듣고(통독) 분석(정독)하며 따라 쳐 보아야 하는지(필사), 그럼으로 나만의 스타일을 갖게 되고(자신만의 의견을 갖게 하라) 그 ‘음악’이란 것을 토론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인문고전 연구가와 토론시켜라). 그저 손가락만 빠르게 굴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그저 ‘사랑’ 끝없는 ‘사랑’

   율곡이 스무 살 때 「자경문」에

   ‘누가 나에게 악을 행하면 나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돌아본 뒤 그를 감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실로 그는 성인(聖人) 중에 성인이다.


   그리고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하신 예수님을 떠올려 본다.

   율곡도 성인중에 성인이라 하지만, 예수님의 그 한계가 없는 사랑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또 깨닫게 된다..
 

   책을 읽고 있는데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캡쳐 사진이다. 조용기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고 있는......

   ‘하......’

   자연스레 눈물이 맺힌다.

   나. 나란 인간이. 그 이후로 아직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나 정말이지 아직 멀었다.


 

   책을 다 읽고, 메모한 것들과 마음을 정리하며 이 글을 적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오시는 문소리가 난다.

   “다녀오셨어요.”

   와...... 어색하다. 엄마와 나. 둘 다 어색하다. 아는가? 이 기분을? 느낌을?

 

   그리고 잠시 후.

   “진숙아, 엄마 커피 한 잔만 타다주면 안될까?”

   “엄마 나한테 지금 부탁하는 거야? 그런 거야? 오우, 노우, 노우~ 그저 명령만 하십시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요?”

 

   물을 끓이며 보조개를 패인다. 이 마음이 작심삼일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엄마와 내가 언젠가 또 다툴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지만 노력하고, 기도하기에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난 지금 희망을 기대한다. 김난도 교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작심삼일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더 이상 그것은 작심삼일이 아닌 내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수기를 써 나가면 어떨까 생각하고 제목을 정했다(제목은 비밀이라 지금 말할 수 없다). 모두에게 권유하고 싶다. 훗날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고 바라볼 수 있으리.


   스물일곱.


   아직 인생 시계로 오전 8시 6분이다. 서른 살이 되면 정각 9시가 된다. 늦지 않았다. 정말이다. 오늘도 내일도 지금도 훗날도 끝없이 연습하고 사유하고 사색하며 연주하고 사랑하고 싶다. 나의 멜로디로 그대에게 영원한 사랑을 주고 싶다.


 

   ‘그대여 날 사랑하는가?’

 

   ‘나 그대를 사랑하고 싶다. 진정으로.’

 

추천수2
반대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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