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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이야기

행복한 인생 |2011.03.07 12:46
조회 180 |추천 0

이야기가 길어질것 같습니다. 지루한 분은 끝까지 안보셔도 되요.

저는 17년 6개월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 경남 김해시 삼계동 화정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교직을 떠났습니다.

저는 평범한 교사였습니다.

힘도 없고 빽도 없었습니다.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에 17년동안이나 교직생활에 몸담았습니다. 어릴때 가정환경이 너무나 불우했기 때문에 가난하고 힘든 형편의 아이들에게 남달리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첫발령받은 지역은 경남 의령군 궁류초등학교였습니다.

처음 만난 아이들중 진지호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1992년도)

초임교사가 아이들을 볼때 얼마나 기쁘고 설레였겠습니까?그중 지호는 키가 커서 맨뒤에 앉았습니다.

지호는 처음에 삐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업중 책이 없어서 책없냐고 물으면 고개를 사선으로 삐딱하게 들고 반항적으로 없는데요? 하던 아이지요.

정신없었던 초임시절 저는 사실 지호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갓 발령난 교사답게 1년동안 애들이 알아 듣던지 말던지 참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말한것 같습니다.

꼭 교과서 내용에 국한된 내용뿐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이야기들을 한것 같아요.

아이들과의 나이 차이가 열두살 밖에 되지 않아 스스로도 선생님으로서의 자아인식보다는 언니나 누나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말에 문득 깨달은 사실은 지호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뭐라고 표현할까?

그 철없고 삐닥하기 짝이없던 지호가 생각이 깊어지고 말솜씨가 달라지고 사물과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마치 어린 귀공자를 보는 것처럼 깊이가 생기고 품위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의 일기장에도 지호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제 교육덕분인지 아닌지를 떠나 한아이의 변화는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교직에 평생 몸담아야 한다는 결심까지는 없었던 때였습니다.

저는 지호를 보며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마치 구름위를 날아가는듯 했습니다.

그 경험이 얼마나 황홀하고 좋았는지 저는 할머니가 될때까지 교직에 평생을 몸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뒤 그런 경험들이 더 있었습니다.

의령읍에서 만난 문영이도 그런 아이중의 하나였습니다.

4년이 지나 김해로 옮겼습니다.

김해 첫 근무지는 칠산초등학교였습니다.

선화라는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선화가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5학년이 되던 첫날 저는 우리들 앞에 서있는 선생님의 눈속에서 기대감과 설레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눈속에는 기쁨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랬습니다.

어린 학생의 표현력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너무나 가감없이 그대로 읽어낸 학생의 예리함에 놀랐던 것입니다.

그말을 거꾸로 하면 첫날 자기 앞에 선 교사인 저를 얼마나 얼마나 자세히 쳐다보았다는 이야기입니까?

그해 그반은 첫날 자기들을 맞이하며 내가 눈빛이 떨릴 정도로 기뻐했다는 이유로 1년간 저에게 참 좋은 학생들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는 매학년 모든 첫날을 그런 감동으로 맞이해 왔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선화같은 학생을 만나고 어떻게 초등학생은 그저 어리고 미숙해 하며 무시할수 있겠습니까?

학생들은 예리하고 관찰력이 뛰어나며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곳을 볼줄 압니다.

 

그위 김해 지역의 동지역을 거쳐 김해 삼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교직생활을 한지 10년 6개월만에 저는 학년부장의 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신임도 받았습니다.( 퇴임하신 김상준 교장 선생님)

그러나 운명은 저를 낯선곳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5학년을 담임하게 되었는데 조금 특이한 학생이 하나 보였습니다.

준표  였습니다.

 준표는 때와 장소 상관없이 너무나 너무나 말이 많았습니다.

수업시간에는 습관적으로 제 이야기를 가로채어 자기가 말하는 바람에 수업을 진행할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달쯤 지나서 개인적으로도 저에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이 많고 수다스러운 남학생은 처음 보았습니다.

문득  이 아이의 마음속에 깊은 외로움이 자리한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상담을 해보니 거의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말많고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기를 좋아하던 준표는 남학생중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여학생들과 친구로 지내라고 할수 있습니까? 쑥스러워 이성과는 손도 안잡으려고 하는 사춘기 초반인데 말입니다.

제가 생각해 낸 방법은 인근 교회에 준표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말할기회도 노래할 기회도 자기를 표현할 기회도 그리고 친구도 많은 곳입니다.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준표에게는 자기를 표현하고 발산할 기회가 많은 장소가 좋은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누가 압니까? 커서 뮤지컬 배우가 될지요?

학교는 아무래도 통제가 많은 장소니까 준표의 자아를 상처없이 실현시켜 줄 장소로 교회를 택한것이었는데 준표 어머니는 불교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그 교회는 제가 다니는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김해중앙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교회여서 그곳에 가는게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준표가 처음 교회가는날은 교회에서 떡볶이 파티가 벌어지는 날이었습니다.

잘됐습니다.

마음껏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발산해도 (그렇다고 준표가 경우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누가 가만히 좀 있어라고 윽박지를 장소도 아니고 먹을것까지 있다면 더 좋습니다.
드디어 준표가 처음 교회가는날 수업을 마치려는데

비가 장대같이 쏟아졌습니다.너무나 심하게 폭우가 쏟아지더군요.

우리반에 옥영주라고 엄마 아빠는 없이 (어디 가셨는지 저는 아직도 모릅니다)60살쯤 된 고모랑 같이 사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 집이 단독주택밀집지역이었습니다.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의 단독주택지역 대충 어떤 곳을 말하는지 아시겠지요?

비가 너무 많이 왔어요.

그아이가 하교길에 제 차를 타게 됐어요.

그 아이집 가는 도중에 교회가 있었어요.

원래 저는 그아이를 교회에 데려가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그애 보호자와 상의가 된 것도 아니고..

그런데 먹는 파티다 보니 그아이도 준표랑 같이 내려서 그 떡복이 모임에 끼이게 된 것이죠.

중간에 고모분에게 전화를 한번 했고 별 말없이 끝나면 잘 보내달라 하시더군요.

영주는 그렇게 모임이 끝나고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제가 영주집 대문간에서 그 고모에게 한마디 했죠.

준표도 가는데 영주도 같이 교회를 다니게 하면 어떨까요?

고모는 싫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마디 더했습니다.

사춘기가 될무렵에는 종교를 떠나 정서적인 측면에서 교회생활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강요한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고모라는 분이 자기 딸을 시켜서 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주 힘든 터널을 지나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끈질기고 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직업도 가축도살이라고 하더니 살아있는 교사도 하나 잡으려고 정말로 끈질기게 글을 올렸습니다.

얼마나 끈질겼는지 찰거머리보다 더했습니다.

도교육청 홈페이지에도 글을 올리고 나중에는 청와대에도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죄목은 종교강요죄입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사람보는 눈이 없어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사람보는 눈이 없었을까요?

저같이 사람이 오히려 부모안계신 영주에게 더 따듯하게 잘해줄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요?

 

나중에 자기 입으로 말하더라구요.

선생님은 자기 조카에게 욕한마디 나쁜 말한마디 한거 없고 돈한푼 부당하게 받은거 없다고.. 교사로서 그렇게 못할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그러면 왜?

하여튼 그일때문에 저는 삼계동의 세 학교를 2년단위로 옮겨 다녀야 했는데..(선뜻 이해가 안가시겠지만 그분의 집요함은 거의 병적이었습니다. 저를 끝까지 벼랑으로 몰 생각이었던 거죠)

 

마지막 학교가 김해화정초등학교였습니다.

여기서는 얼토당토않게 수업을 안한다는 소문이 저를 따라다니더군요.

참 기도 안차는 일이죠.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끝까지 저를 죽이고 말겠다는 결사대(?)까지 조직됐습니다.

그중 한분이 배종우라는 학생의 어머니셨어요.

그분 정말 대단하시던걸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나쁜 교사였는지..

그런데 수업을 안한다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었죠.

저는 수업 열심히 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수업을 안한다고 하니까 여론이 그렇게 형성되어 가더라구요.

수업외의 것도 많이 가르쳐 줬습니다.

저는 아이들 참 좋아했거든요.

제 자식들보다 반 아이들을 더 관심가졌다면 누가 믿어줄지는 모르겠네요.

 

전에 다니는 학교에서 어떤 동료분이 그러시더군요.

아줌마 교사들이 흔히 하는 자녀 이야기를 학교에 와서 안한다고..

제 자녀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학교에 있을때 저는 제 자녀가 아니라 반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사대의 활동은 유령같았습니다.

절대 제앞에 나타나지 않더군요,

카더라 통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졌습니다.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 뒤에 숨어서 그림자처럼 유령처럼 저를 목조르더군요.

아무도 저에게는 전화도 안하고 나타나지도 않아요.

그냥 권력(?) 뒤에 숨어서 권력의 힘으로 저를 밀어내려고 하더군요.

 

교사였던 사람이 교직을 떠난다고 해서 그사람의 인생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제가 지금 잘살고 있는 것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행로가 바뀌는 것은 맞죠.

한사람의 인생행로가 바뀔지 모르는  중요한 순간에도 끝끝내 교장 교감 선생님 뒤에 숨어서

 저요 접니다.

선생님에 대한 불만 선생님이 물러가야 할만큼 나쁜 교사인 이유

저는 선생님 면전에 대고 이야기하라면 할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말은 확실하고 옳습니다라고 나타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교감선생님은 민원인 보호차원이라면서 그사람들을 끝끝내 자기 뒤에 숨겨주었고요.

저는 그때 진짜 학부모라는 사람들에게 진짜 팍 질려버렸습니다.

 

교사와 학부모간에 오해와 불신과 불만이 당연히 있을수 있죠.

그리고 그들의 말이 옳을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라는 교사를 교사가 아니라 적어도 한 인간으로만 여겼다 해도 그런식으로 사람을

그저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심심풀이 땅콩쪼까리 보다 못하게 취급하지는 않았겠죠.

그래도 몇개월동안 자기 아이들이 무릎이 까져 아플때 호호 해주고

무슨일로 눈물 흘리면 닦아주던 선생님 아닙니까?

그런데 이 인간들은 도데체가 인간성이 없는 거에요.

 

선생님이 자기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던지 말던지를 떠나서 적어도

우리 이야기 들어보세요하고 나타나기는 해야 될거 아닙니까?

선생님의 인생행로를 바꾸려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시죠?

바로 우리입니다

해야 할거 아닙니까?

정말 제가 세상에 살면서 그렇게 비열하고 비겁하고 야비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줄 몰랐습니다.

 

교장선생님에게 교감선생님에게 교육청에 말할곳은 다 말하고 다니면서 저에게는 안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그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기는 알죠.

알지만 그래도 저앞에 나타나야죠.

나타나서 말해야죠.

한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의 행로가 바뀌는 것 아닙니까?

 

인간성 상실의 살아있는 현장이 바로 그런 현장이죠.,

너는  우리 마음에 안드니 그저 소리 소문없이 꺼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교직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명예훼손으로 소송 걸거냐 누가 묻던데 그냥 안한다고 했어요.

그럴만한 가치도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의 자녀를 교육시킬 마음도 더는 없었어요.

제 인생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한번뿐인 인생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남아있는 제 인생 제 삶 제 시간 그들에게 주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돈이야 원래 학교밖에서 더 많이 벌수 있는거 아닙니까?

실제로 저는 학교밖에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어릴때부터 너무 가난한 형편에 처하다 보니 돈을 버는 재주는 좀 있어요.

학교다닐때는 공무원 신분이라 겸직이 안되서 그 아까운 재주 썩혔지만 나와서는 그 재주로 먹고 삽니다.

솔직히 초등교사가 무슨 돈이 됩니까?

학교다닐때 저 많이 가난한 교사였습니다..지금이 형편이 더 나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인간성 제로였어요.

떠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교감선생님을 통해 그사람들을 한번 만나고 싶다 했는데 그것마저 거절당햇습니다.

 

참 기도 안찬 제 인생의 이야기였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이 저를 버린게 아니라 제가 그들을 버렸다는 것을 그들은 아직도 모릅니다.

오죽이나 인간 아니었으면 버림받았겠습니까?

여러분중에 학부모가 계시다면 절대 그런 사람들은 되지 마세요.

적어도 여러분의 말이 옳다고 확신이 되시면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 하세요.

그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 가져야 할 사람의 마음 입니다.

 

사직하고 마지막으로 제가 몸담았던 교실을 쳐다보니  제가 3월달에 토 일요일에도 나와서 작업했던 교실환경정리는 그대로 있더군요.

제가 진정으로 미우면 제 손때가 묻은 그것들도 다 뜯어 버려야 되는 거 아닌가요?

기도 안차고 그저 황당한 쓴웃음만 나왔습니다.

긴 이야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지역이름 학교이름 아이들 이름은 실명입니다.

그만큼  제 이야기에 .

거짓은 한오리도 없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저는 그 아이들을 여전히 사랑합니다.

설령 그보호자와 부모들이 저에게 못할짓을 했다 하더라도 저는 그 아이들을 사랑하며 아마 죽을때까지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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