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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공연 <단막극 - 새 판에서 다시 놀다> 완전 자세하게 쓴 후기!!!

안녕메리 |2011.03.26 03:23
조회 30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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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24. (목) 7시 국립극단 소극장 판.

'세 판'에서 다시 놀다


반성하자면, 저는 지난 목요일에 아무런 기대 없이 공연을 보러갔기에 심지어 공연의 순서도 모른 채 그냥 '공연 세 개를 한꺼번에 하는 공연인가...' 하고 공연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파수꾼이 두려워하는 이리떼가 나타난 건지 사람떼가 나타난 건지, 그 사람떼에 내가 속하는 건지. (파수꾼) 그 다음 공연에는 더해서 저기 나온 저 배우는 강아지를 연기하는건지, 근데 개가 라면은 왜 먹고 잠옷 차림의 예쁜 여배우는 왜 계속 등을 돌리고만 있는건지 (흰둥이의 방문) 마지막 공연에서는 저 사람들이 연기를 하는건지 연기를 하는 연기를 하는건지 지금 연기는 어디까지가 진짜 연기인지 (전하) 공연장을 가득 울리는 쩌렁쩌렁한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며 연극에 관련된 자료를 찾다보니 머릿속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이 세 연극의 제목이 '새 판에서 다시 놀다'였다는 거죠.

새 판에서 '다시' 놀다


왜 하필 위의 작품들은 처음 노는 것이 아니라 새 판에서 '다시' 놀아야 하는 걸까. 해답은 간단했습니다. 흔히 누군가 노래를 부르는 등 뭔가를 하는 자리를 마련할 때 판을 만들어준다고 하죠. 이 작품들에게도 다시 제대로 놀 수 있는 판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파수꾼, 흰둥이의 방문, 전하 이 세 작품은 당시 기존에 누군가 멋대로 펼쳐놓은 '독재'라는 판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는 작품들이었거든요. (특히 '흰둥이의 방문'에서는 그 판을 아예 '개소리'가 난무하는 '개판'으로 묘사해두었으니 말 다했습니다.) 그런 사연을 떠안고 묵묵히 견뎌온 끝에 비로소 새 판에서 입을 연 세 작품들이 낯설었던 이유는 그동안의 침묵 때문일까요. 그렇지만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야기 뒤에는 그만큼 더없이 매력적인 여운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관객을 관객으로 남겨두지 않았던 연극, <파수꾼>



마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이리떼가 나타나면 북을 치며 알리는 역할을 하는 파수꾼. 그러나 새로 온 겁 많은 파수꾼에게 평생을 파수꾼으로 충실히 살아 온 늙은이와 식량을 운반해주듯 불안과 공포를 본인을 제외한 이곳 저곳에 그저 '전달'해주는 식량 운반인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들 때문에 회의를 느끼고 이리떼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된 젊은 파수꾼은 망루 위에 올라갔다가 모든 것의 허상을 목격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렸음에도 오히려 협박하는 듯한 촌장의 태도에 결국 망루 위에서 평생을 살아가게 된 젊은 파수꾼의 좌절담. 우화 형식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약자와 그들의 실패를 담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약자는 젊은 파수꾼만이 아니겠죠) 그 속에서 저의 모습 또한 발견할 수 있었구요.

이 작품은 외적으로도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한 듯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촌장이 소식을 듣고 몰려온 마을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다른 분들을 위해 하지 않겠지만, 정말 깜짝 놀람과 동시에 독특하다! 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저 혼자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요. 물론 힌트는 제목에 있지만, 다른 분들도 꼭 공연 보시면서 확인하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개판이구만, <흰둥이의 방문>



조금 자극적인 소제목인가 싶기도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개 판'이었습니다. 여자는 초반 이후로 계속 등을 돌리고 있고, 남자는 개에게 동화되어 온갖 동물 흉내를 내는 상황이라니.., 흰둥이의 방문은 사람인 저에게는 그리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더군요.(ㅋㅋ) 어쨌든, 사람의 모습을 한 흰둥이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말을 하며 남자에게 자신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남자는 시위를 진압하며 단식시위를 하던 그들에게 외칩니다. "개새끼들!!!!"

결국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바퀴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거죠. 클라이맥스에서 혼선을 일으키다가 결국 치직- 하고 나가버린 무대 위 거대한 티비처럼 머릿속이 펑- 하고 터지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남자와 여자, 그리고 개, 침실과 티비. 펑.' 으로 정리될 수 있을 만큼 간결하게 잘 정리된 작품이었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건 티비에서 보여주는 화면이 워낙 최신이다 보니 공연을 보다 말고 나도 모르게 티비에 눈이 가더라구요. 파수꾼때도 그랬지만, 영상의 장단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기가 빛이 나는 작품, <전하>


두 번의 공연과 인터미션을 거치고 온 작품이라 조금 힘들겠다 싶었던 생각을 확 깨줄 정도로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처음에 몇몇 관객은 공연이 시작된 지도 모르고 계속 얘기를 나눌 정도로 자연스럽게 시작한 <전하>는 일종의 극중극 형식으로, 배우들의 연극 연습 현장이라는 하나의 이야기 속에 성삼문과 신숙주의 갈등이라는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고, 연기를 하는 연기 또한 더 없이 훌륭했습니다. 정말 비장하게 사극 톤의 대사를 하다가도 상대 배우가 실수를 하자 연습을 하는 배우 역할로 돌아와 바람 빠진 듯 원래 목소리로 '야 목 아프니까 빨리 해..' 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웃겨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ㅋㅋ 처음에는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또 어디까지가 연기 속 연기인지 가늠해보느라 긴장했지만 가면 갈수록 그런 걸 따지는 게 무의미한 일이 되겠더라구요. 그러다가 배우들과 관객들의 몰입도가 극에 달할 때, 연극 연습은 끝이 났습니다. 연출 겸 연주자 역할을 하시던 분이 신들린 듯 북을 연주하시던 심정과 같은 이유는 아니겠지만 저에게도 북이 있었다면 저도 함께 치고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느낀 카타르시스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해야 되나.


다시 뛰어놀기 시작하는 세 판, 그리고 비로소 완성되는 새 판.


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세 판은 2011년 국립극단의 어느 극장에서 다시 뛰어놀기 시작했습니다. 침묵의 세월이 완전히 무색해지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판이 마련되었다는 거죠. 그리고 공연을 본 관객의 입장에서 그들은 정말 열심히 '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논다는 데 거기에 점수를 매기고 평가하려 들면 머쓱하지 않겠습니까. 이 작품들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침묵을 깨고 하나 둘 뛰어 나오기 시작하여, 다시 뛰어노는 새 판이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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